Ⅰ. 기도에 대하여 2:1-8
1.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1-3)
특별히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책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바울은 어떤 규정된 기도의 형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기도가 그들에게 전반적인 지적 능력을 충분히 가져다 주리라고 생각했다. 즉 만일 기도하는 중에 성경이 그들에게 가르치는 바를 깨닫고 기도의 영이 그들에게 부어진 바 된다면 그들은 구태여 어떤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본문 가운데 함축되어 있다. 우리는 또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는 분파되어 지는 것과 매우 거리가 먼 종교이다. 반면에 기독교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확산되어야 할 사랑을 가르친다. '임금들을 위하여 기도하라'(2절)는 말씀을 생각해 보자. 비록 그 당시의 임금들이 이방인들이었으나 그래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의 번영과 그들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그로 인해서 우리가 화평 중에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결코 우리가 높은 지위를 얻고 부요케 되고 그들 밑에서 명예와 권세를 가지기 위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선한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소망은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가지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경건하고 단정한 중에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결코 계속해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두 단어로 압축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의무를 보게 된다. 즉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경건과 모든 사람에 대하여 선한 행실을 보이는 단정이 그것이라고 하겠다. 이 둘은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것을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기도속에서 우리 자신들에 대해서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함과 아울러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다. 이는 그들이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기 때문이며, 그들의 높은 지위를 위협하는 많은 함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2.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4-7)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선하신 뜻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되 오직 한 분이시다(5절). 이 한 분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진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구원을 얻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2) 한 분 중보자가 계시며 그 중보자는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속전으로 주셨다(5,6절). 하나님의 긍휼이 자신의 모든 사역에 베풀어진 것처럼 그리스도의 중보도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진다. 따라서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행위의 언약으로서의 율법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언약으로서의 율법아래 있게 된다. 즉, 그들은 은혜아래 있게된 것이다. 우리는 죽지 않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 삼으셨다. 중보자는 불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불화를 만들어 놓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즉 화평케 하기 위해서 오신 중보자이시다. 그는 '기약이 이르면 증거되어질' 속전이시다(6절). 바울은 이 그리스도의 중보의 가르침을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하기 위해 세움을 입었다. 그는 특별히 이방인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신실하고 진실하게 세움을 입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코자 하시는 선하신 뜻을 가지고 계시다. 따라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 얻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뜻하심에 의한 것이므로 사람들의 부족한 의지로 인해 이루지 못하는 것과는 다르다. 구원 얻는 자들은 진리를 아는 데 이르러야 한다. 지식 없이 결코 생각이 온전할 수는 없다. 만일 우리가 진리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의해 지배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한 분 중보자시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속전으로 주신 분임을 전파하기 위하여 사역자로 세움을 입었다. 사역자들은 진리를 전파해야 한다. 바울처럼 그들은 믿음과 진실 가운데서 전파해야 했으며, 또한 그들은 신실하고 진실해야만 했다.
3.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에 대한 훈시(8)
남자들은 각처에서 기도해야 한다. 어떤 장소이든 기도하기에 좋지 않은 장소란 없다. 또한 어떤 장소이든 하나님이 더 받으실만한 장소란 없다. 거룩한 손, 혹은 정결한 손을 들어 기도해야 한다. 이 정결이란 죄의 오염으로부터의 정결을 말하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사랑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즉 분노없이 혹은 어떤 사람에게 악의나 화를 내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의심 없이' 기도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다툼 없이'로 해석한다.
Ⅱ. 여자들의 복장과 순종에 대하여 2:9-15
(1)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여자들은 단정해야 하며 건실해야 하고 종용해야 하며 순종해야 한다. (어떤 사람의 호사스럽고 저속한 복장 속에서 그 마음속의 허영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들이 '자신들을 단장할 더 좋은 장식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행은 가장 훌륭한 옷이다. 경건하려는 자들은 다른 행동에 있어서 뿐 아니라 그들의 복장에 있어서도 경건한 자답게 처신해야 한다. 여자들은 그들의 신앙의 원리들을 배워야 하며, 그리스도를 배워야 하고, 성경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종용해야 하며, 순종해야 하고, 남자를 주관하지 말아야 한다.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이다(13절). 또한 여자가 창조에 있어 가장 나중이었던 것처럼, 죄에 있어서는 가장 먼저였다. 정절 가운데 계속 있는 자들이 '해산함으로, 혹은 해산함 가운데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곧 위로의 말씀이다(15절). 그들이 죄에 빠졌다고 하는 판결이 결코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광대한 기독교 규범은 남자들에게 뿐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남자들 뿐 아니라 여자들도 신앙을 고백해야 하며 경건함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듯이 사도 시대에 있어서 뛰어난 기독교 신앙의 고백자들이었다.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옷은 선행이라고 하겠다. 여자들은 반드시 배우는 자들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교회에서 공공연하게 선생이 되어질 수 없다. 여자는 남자를 주관하지 못하며 오직 종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가르치는 것이 금해져 있지만 선한 여자들은 각 가정에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신앙의 원리들을 가르쳐야 한다. 디모데는 어릴 적부터 거룩한 성경을 알았다. 그러면 그의 어머니와 외조모외에 그에게 성경을 가르칠 사람이 또 누가 있었겠는가? 남자가 여자를 주관하며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할 것에 대한 매우 합당한 이유가 13절, 14절에 잘 나타나 있다. 여자는 자녀를 낳고, 산 자녀들의 산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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