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교만한 지식을 경계함 8:1-3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들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그 당시에 우상 앞에 바쳤던 제물로 잔치를 벌이는 이방인들의 풍습이 있었다. 이 잔치는 보통 그 제물을 바쳤던 신전에서 베풀어졌다(10절). 이 잔치에 남은 제사장의 몫은 때때로 시장에서 팔았다(고전 10:25절을 보라). 이런 환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우상 숭배자들과 같은 사회에서 살때에 그들의 식탁에서 이 제물들을 먹어야할 경우가 많았다. 이 제물로 바쳐졌던 것이 그들의 음식상에 올라왔을 때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처신하여야 할 것인가? 그들이 이 신전의 잔치에 초대를 받았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고린도 교인들은 우상이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니기때문에 그 제물을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견해를 가졌던것 같다(4절).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우상은 허망한 것이며 아무 것도 아닌 것임을 알고 있으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말한다(14절). 사랑은 지식보다도 우월하다. 지적 교만보다 더 큰 무지의 증거는 없다.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때 닫는 자가 사실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무엇을 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똑바로 알고 있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바울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3절)고 말한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인정을 받는다. 자신의 허망한 지혜를 주장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 얼마나 더 좋은 일인가?

 

Ⅱ.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 8:4-6

 

우상의 허구성에 대하여 논한다. 이방인들의 우상에는 아무런 신성(神性)이 없다. 이것들은 단순한 상상의 신들이다. 이방의 신들에게는 진정한 신격(神格)이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은 없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 모든 것이 그의 것이며 우리를 비롯한 모든 것이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한다. 진정한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보자를 바로 아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특권이다.

 

Ⅲ. 약한 형제를 실족시키는 일 8:7-13

 

그들이 우상의 신전에 들어가서 그들의 이방인 친구들과 잔치를 즐겨도 된다는 생각은 정당하지 못한 것임을 지적한다. 그는 이런 일이 연약한 교인들에게 미칠 악 영향에 대하여 강조한다.

(1) 당시에 어떤 교인들은 우상이 헛 것이라는 믿음을 확고하게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연약한 교인들은 가장 평범한 진리도 잘 모르며 또 불확실한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양심이 약하고 더러워지는 것이다(7절).' 이들은 바른 지식이 없기 때문에 우상 제물을 먹을 때 우상 숭배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그래서 자기들의 양심을 크게 더럽힌다. 우리들은 약한 형제가 그들의 양심을 더럽히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한다.

(2) 바울은 먹고 마시는 것이 덕이 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죄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8절). 고린도 교인 중에는 신전에서 먹고 마시는 것을 자랑한 사람들이 있었던것 같다(10절).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과시했다. 이런 음식은 먹고 저런 음식은 삼가는 사람을 하나님 앞에 추천할 수 없을 것이다.

(3) 바울은 자유를 남용하는 자들에게 경고를 한다. 비록 그들이 아무 것이라도 먹을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할지라도 그것을 사용하는데는 주의를 하여야 한다. 그것은 형제들에게 거치는 것이 될 수 있다(9절). 우리는 형제들의 영혼을 위태롭게 하거나 넘어지게 하는것 보다는 자기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편이 더 낫다.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11절).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죽은 사랑을 생각한다면, 우리도 그들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사랑을 가짐이 마땅하지 않은가? 자기의 자유를 유보하지 않아서 형제의 멸망을 초래하는 사람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12절). 형제에게 주는 상처는 그리스도에게 주는 상처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큰 자비를 베푸신 형제에게 동정을 베풀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한 그리스도에게 죄를 지을 것인가?

(4) 바울은 자기의 경우를 예로 제시한다(13절). 우리는 형제의 영혼을 파멸시키거나 상처를 내면서까지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구속자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또 우리때문에 다른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하지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면, 우리 자신이 죄에 빠지지않도록 얼마나 주의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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