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방언보다 예언할 것을 권면함 14:1-5
여기서 바울은 여러 가지 영적인 은사 중에 어느 것을 더 사모해야 하는가에 대해 가르친다.
1. 사랑에 대한 권면(1)
모든 은혜 중 가장 중요한 이것만은 놓치지 말라고 권고한다.
2. 어떤 은사를 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1)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은사는 은혜와 사랑 다음으로 추구해야 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3. 이 은사를 사모해야 하는 이유(2-5)
사도 바울은 여기서 예언과 방언만을 비교한다. 방언은 성경을 해석하는 것보다 더 떠들썩하고 자극적이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추구하는 데는 별로 적당하지 못한다. 방언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둘이서만 이야기해야 한다(2절). 이해될 수 없는 것은 덕을 세우지 못한다. 그러나 예언의 말은 듣는 사람에게 유익하다. 이 예언으로 그들은 격려를 받고 위로를 받는다(3절).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덕만을 세운다(4절). 다른 사람들은 방언을 듣고 유익을 얻지 못한다. 교회에서 담화하는 목적은 덕을 세우는 일이며(4절), 예언은 이것을 감당한다. 이것을 가장 훌륭히 해내는 것이 가장 좋은 은사이다. 모든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가장 유용한 것이 가장 가치있는 것이 된다. 자기를 나타내기 위하여 방언을 하는 사람보다, 교회에서 가르치기 위하여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이 더욱 유용하고 가치가 있다. 사역자를 명예롭게 하는 것은 자기의 은사를 잘 나타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덕을 바르게 잘 세우는데 있다.
Ⅱ. 해석이 없는 방언 14:6-14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6절). 이 모든 것을 전부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말하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
(1)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꽹과리 소리나 거문고 소리와 별로 다른 것이 없다. 구멍이 하나만 뚫린 피리나 줄이 하나뿐인 바이올린의 연주에 맞추어서 춤을 출 수가 없듯이 방언도 사람의 행동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7절).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는 나팔에 비유하기도 한다. 진격 나팔 소리 대신 퇴각 나팔 소리가 나거나 무슨 소리인지 불분명한 소리가 나면 누가 출정 준비를 하겠는가? 의미가 없는 언어는 사람에게 아무런 교훈이나 사랑을 전하지 못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또한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야만인의 횡설수설로 비유한다. 세상에는 많은 언어가 있지만 그 말에 뜻이 없는 언어는 없다. 누가 하는 어떤 말이 말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좋은 의미를 가졌다 할지라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횡설수설이 된다. 이런 경우에는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야만인이 된다(11절). 그들은 의미없이 단지 소리만 교환할 뿐이다. 교회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방언하는 것은 횡설수설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2) 교회에서 덕을 세울수 있는 은사를 사모하라고 바울은 권고한다(12절). "사람의 영혼에 가장 최고로 봉사할 수 있는 은사를 사모하라." 또 외국어로 방언을 하거든 그것을 통역할 수 있는 은사를 주도록 하나님께 구하라(13절). 교회에 덕을 세우려면 그 방언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즉 한마디로 요약하면 교회에서 얻는 신앙 체험에는 모든 사람이 참여하여 유익을 얻도록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강력히 권면한다.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14절). 사람이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들이 그의 헌신에 동참할 수 없는 것이다. 가장 이해하기 쉽고 뜻이 분명한 언어가 신앙활동에 가장 적절하다.
Ⅲ. 지혜에 장성한 사람 14:15-20
(1) 사도 바울은 공중 기도와 찬양의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친다. 그는 다른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기도와 찬양을 하라고 말한다. 공중 예배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행해져야 한다.
(2) 바울은 이것에 대한 몇 가지 이유들을 밝힌다.
1) 그렇지 않으면 무시한 사람들은 기도나 감사에 "아멘"하고 회답할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배에 참여할 수도 없다(16절). 모든 사람들은 속으로 "아멘"하여야 한다. 또 공중 기도를 할 때에 내적으로 동의하여서 "아멘"하고 소리를 내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무슨 내용을 기도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면 어떻게 아멘 할 수 있겠는가? 만일 그들이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기도한다면 공중예배의 일치성은 완전히 허물어질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은 교회에서 덕을 세우지 못하며, 할 수도 없을 것이다(17절).
2) 바울은 자기를 본보기로 제시하여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① 바울은 신령한 은사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또 고린도 교인들이 그렇게 귀중히 생각하고 자랑하는 것을 바울이 과소 평가한 것은 시기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방언의 은사에 있어서도 그들 누구보다도 우월했다. 바울이 그들을 시기한 시기보다는 고린도 교인들이 그들의 사역자인 바울을 시기했음을 알 수가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불합리함을 책망할 때는, 그 책망이 그들의 어떤 소유나 혹은 어떤 업적에 대한 시기와 불평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② 바울은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19절)고 말한다. 참다운 목회자는 자신에게 칭찬과 인기가 돌아오는 것보다 사람의 영혼에게 다소라도 유익을 끼치는 것을 더 귀중히 여긴다.
3) 바울은 그들이 이런 하찮은 은사를 좋아하는 경향은 판단의 미성숙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20절). 어린애들은 새로운 것이나 이상한 것에 쉽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애처럼 행동하지 말고, 또한 실질적인 가치나 본질보다 떠드는 것과 외모를 더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순진성과 훼방하지 않는 성향에 대해서는 어린아이처럼 되라. 기독교인은 무르익고 성숙한 지혜와 지식을 소유해야 한다.
Ⅳ. 방언과 예언의 용도 14:21-25
바울은 계속해서 자기 주장을 전개한다.
(1) 고린도 교인들이 사용하던 방언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베푼 은혜라기보다는 심판의 표시였다(21절). 히브리말로 말하지 않고 다른 나라 말인, 방언으로 말하게 함은 한 하나님의 백성을 버린다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으로는 유익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고린도의 설교자들은 성령의 감화로 방언하기를 고대하였다.
(2) 방언은 믿는 자보다는 믿지 아니하는 자를 위한 표적이다(22절). 방언의 은사는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필요하였다. 방언은 불신자들에게 확신을 주기에 적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은사를 주신 목적을 또한 바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 불신자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는 방언의 은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교회에서는 아무런 유익도 없는 것이다.
(3) 고린도 교회의 명성과 믿음을 위해서는 방언보다는 예언을 사모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만일 사역자들이 예배에 참석한 모든 교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만 한다면 불신자가 교회에 왔을때 이것을 보고 그들이 모두 미쳤다고 할 것이다. 모든 종교가 일반적인 상식과 지식을 외면하는가? 이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기독교를 조소할 것인가? 만일 방언만을 일삼지 않고 사역자가 성경을 펼쳐 그 내용을 해석해 나간다면 세상 사람이나 혹은 불신자라도 와서 들으면 아마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될 것이다(25,25절). 그래서 자기의 죄를 고백할 것이고 하나님께 충성을 맹세하고 우리가 지니고 있는 신앙의 내용을 또한 소유하게 될 것이다. 예언은 틀림없이 교회내에 덕을 세우는 것이며 또한 불신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복음의 사역은 은사나 재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Ⅴ. 은사와 교회의 질서 14:26-33
(1) 바울은 사람들이 자기의 은사를 교회에 과시하려 하여 생긴 혼란에 대하여 책망을 한다(26절). "너희들은 예배의 각 부문에 있어서 혼란을 일으킨다". 혹은 "너희들은 차례를 지키지 않아서 혼란을 일으킨다". 이런 행동이 덕이 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 바울은 그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려 한다.
1)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함에 대해서는 한 예배에서 단지 두세 명만 하도록 지시하며 그것도 차례를 지켜 순서적으로 하라고 한다. 심지어 이것도 만일 통역이 따르지 않으면 하지 말도록 한다(27,28절). 만일 통역이 없으면 교회 안에서 항상 잠잠하고 오직 하나님과만 방언을 나누도록 지시했다(28절).
2) 예언에 대해서는
① 한 예배에서 두 명이나 세 명만 하도록 명령했다(29절). 여기에는 거짓 선지자가 있을 수 있으니 참된 예언자는 누가 성령의 감화를 받아 하는지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해야 한다.
② 만일 어떤 사람이 예언을 하고 있는 동안에 다른 동료 예언자에게 계시가 임하면 그 예언하던 자는 조용히 할 것을 명했다(30절). 새로 계시를 받은 사람은 자기 차례에 예언을 할 수 있다. 31절에 그 이유를 밝혔다. 모든 사람이 하나씩 하나씩 예언을 할 수 있느니라. 신령한 예언은 이방인의 사제들이 마귀에게 사로잡혀 난폭하고 무질서해지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반면에 근엄하고 침착하며 규율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감화를 받은 사람은 계시를 전할 때 항상 정상적으로 자연의 질서와 법을 지킨다.
(3) 사도 바울은 이런 규칙의 이유들을 설명한다. 이것들은 교회의 유익과 교훈과 위로를 위함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감화의 결과가 오히려 혼란을 조장시켜서는 안 된다. 만일 그들이 이런 혼란된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보는 이에게 하나님은 무질서하다는 개념을 심어줄 수가 있다. 이런 태도로써 혼란을 물리치고 질서와 화평을 심는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바울은 교회의 일들이 질서있게 진행이 되도록 촉구한다. 영적 은사가 그토록 넘치는 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무질서하다는 것은 창피한 사실이 될 것이다.
Ⅵ. 여자들의 복종과 침묵 14:34,35
여기서 바울이 당부하는 바는
(1) 여자들은 교회에서는 침묵을 지키도록 하며 무엇이 궁금하거든 교회에서 공공연히 질문하지 말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사실 여자들도 종종 교회에서 공중 기도를 하고 예언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전 11:5).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여자가 모든 공적인 교회의 일을 수행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여자들에게 교회 앞에서 말하지 못하도록 하였다(34절). 따라서 여자는 교회 앞에서 가르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공공연히 질문할 수도 없으며 만일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 것이다.' 조용히 복종하며 배우는 것이 여자의 의무요 여자를 가르침으로 우월성을 잘 지키는 것이 또한 남자의 의무이다. 교회에서 조용히 해야할 여자가 떠드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 것처럼 무언가를 말해야할 남자가 조용히 있으며 또 집에서 묻는 부인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이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2) 사도 바울은 여자가 교회에서 떠드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결론을 짓는다.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사리에 맞지않는 일을 한 것에 대하여 마음속에 불편한 것이 생긴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자들이 자기의 위치를 저버린 것보다 더 수치스런 일은 없다.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이 되도록 지음을 받았고 따라서 그 위치를 지키고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Ⅶ. 질서와 경건 14:36-40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과 자만을 정당하게 질책한다. "하나님의 계시의 은혜를 받은 교회가 오직 너희뿐인 줄 아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거만하게 구느냐!" 바울이 그들에게 한 말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참다운 선지자라면 그것을 거부할 수가 없다(37절). "만일 너희 계시가 내가 받은 계시와 상충된다면 그것은 동일한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이나 혹은 나, 양자 중 하나가 거짓 선지자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과 나 중에서 누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말하고 있는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계속해서 무지의 세력하에 있어야만 할 것이다." 고의적으로 빛을 거절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심령이 어두움 속에 잠겨있도록 버려두신다. 이제 그들이 방언의 은사를 경히 여긴다면 예언하기를 더욱 사모해야만 한다. 예언이 더 유용한 은사이다. 바울은 그들이 모든 일을 정중하고 질서있게 하도록 당부했다(40절). 또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행동은 버려야 한다(20절). 그런 행위는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한다(23절). 그들은 혼란이 일어날 우려가 있는 행동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33절). 신령한 예배의 모든 절차는 정중하고 질서있게 수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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