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으로보는 성경 - 이사야 ③
장차 공의로 다스릴 왕이 오리라
열방이 일어나 자기 힘을 과시하며 하나님 백성을 괴롭게 해도, 하나님은 앗수르나 애굽보다 강하시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위해 존귀한 일을 계획하셨는데, 바로 장차 공의로 통치할 왕의 등장이다. 광야에 길이 놓이고 구속함을 입은 자들이 그 거룩한 길을 다니며 여호와를 찬양할 것이다.
반역하는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28:1~35:10)
무능한 애굽(30:1~31:9)
하나님은 애굽과 동맹을 맺으려는 유다 지도자들을 향해 '패역한 자식들'이라고 하신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할 이들이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애굽을 의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유다에서 애굽으로 가려면 '네겝', 즉 유다의 남쪽 땅을 거쳐야 하는데 여기에는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날아다니는 불 뱀'이 있다. 출애굽 때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이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신 8:15). 그러나 이렇게 위험한 곳을 통과해 도착한 애굽은 유다를 도울 힘이 없다. 하나님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고 부르신다. 여기서 '라합'은 무례하고 오만하다는 뜻으로, 한때는 명성이 자자했지만 이제는 간신히 자기 자리를 지킬 정도로 무기력해진 처지를 가리킨다. 우리말로 하면 '이빨 빠진 호랑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유다는 경고를 받고도 돌이키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 선견을 하지 말고, 바른 것도 보이지 말고, 부드럽고 거짓된 것만 말하고 보이라고 선견자들에게 강요한다. 이에 하나님은 토기장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을 깨뜨리듯이 유다를 무너뜨리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애굽으로 내려가 도움을 구하는 대신, 여호와를 기다리며 그 은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멸망시키신 것처럼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을 그분의 진노로 심판하실 것이다.
성읍과 나라와 왕의 별칭
예루살렘 | 환상의 골짜기(22:1), 아리엘(29:1) | ||
애굽 | 가만히 앉은 라합(30:7), 상한 갈대 지팡이(36:6) | ||
바벨론 | 해변 광야(21:1) | 바벨론의 왕 | 아침의 아들 계명성(14:12) |
앗수르 | 하수 저쪽에서 세내어 온 삭도(7:20), (여호와의)진노의 막대기(10:5) |
예루살렘의 미래(32:1~33:24)
하나님은 새로운 세계 질서를 보여 주신다. 장차 한 왕이 와서 공의로 통치하고 방백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다. 이 새로운 나라에서는 모두가 지식을 깨닫고 어눌함이 민첩함으로 변화될 것이다. 어리석고 악한 자는 패역한 계획을 세우고 행하나, 존귀한 자가 계획한 존귀한 일이 성취될 것이다.
여기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언급하다가 갑자기 '너'를 언급한다(33:1). 이는 하나님 백성을 침략한 자 곧 앗수르를 지칭하는 게 분명하다. 다만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 있었던 산헤립의 공격을 근거로 해서, 속이고 학대하는 자를 '산헤립'으로 볼 수도 있다.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한 북 이스라엘을 떠올리는 것은 현대 유다가 적의 침략을 앞두고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댈 곳은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뿐이다.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계신 모습은 먼 훗날의 이상적인 예루살렘, 즉 메시아가 다스리시는 시온 성을 예표한다. 그곳은 안정된 처소요, 옮겨지지 않을 견고한 장막이다(33:20).
에돔의 멸망(34:1~17)
다시 예언은 열국으로 향한다. 모든 열방이 여호와의 진노를 받고 하늘이 두루마리같이 말릴 것이다. 이는 여호와의 보복의 날, 시온을 신원하시는 해이기 때문이다. 특히 예루살렘의 고통을 조롱했던 에돔이 당할 보복이 극심하다. 에돔 땅은 황폐해지고 들짐승만 살아가는 처소가 될 것이다. 끝으로 선지자는 여호와의 책을 언급하며 자신이 예언한 내용을 보증한다. 여호와의 입이 명령하고 여호와의 영이 모으신 여호와의 경고는 빠짐없이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35:1~10)
하나님 백성과 열방 사이를 교차하던 선지자의 예언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주제를 향해 나아간다. 그날 사막에 대로가 펼쳐지고 시내가 흐르며 사나운 짐승이 사라지고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는 자들이 그 거룩한 대로를 따라 돌아올 것이다. 하나님 백성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노래하며, 슬픔과 탄식은 사라질 것이다.
히스기야 이야기(36:1~39:8)
이사야서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때 히스기야 이야기는 중간에서 이들을 이어 주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즉, 이사야 앞부분(1~35장)에서 강조되는 열방의 심판 상황을 구체적으로 예시하는 한편, 이어지는 이사야 뒷부분(40~66장)에 대한 서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앗수르의 침략(36:1~37:38)
주전 705년 왕위에 오른 앗수르의 산헤립은 서쪽 나라를 정복하기 위한 전쟁에 나선다. 주전 703년에는 바벨론을, 주전 701년에는 지중해 해안선 나라들을 손에 넣었다. 유다 왕 히스기야는 통치 14년째에 앗수르가 쳐들어오자 성전과 왕궁 금고를 열어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산헤립에게 보낸다(왕하 18:13~16). 그런데 산헤립은 또다시 자신의 최측근인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에게 명해 대군을 거느리고 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게 한다(왕하 18:17).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다음 공격 대상인 애굽의 원조 요청을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다. 랍사게는 유다 방언에 능숙했고, 여호와 유일신 신앙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다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지방 산당을 부수고 예루살렘 성전 예배만 허용한 사실을 비판했고, 아무리 여호와를 믿고 의지해도 강력한 앗수르 군대를 절대 이길 수 없다고 경고한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께 간구한다. 이사야는 앗수르 군대의 침략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하나님이 산헤립에게서 예루살렘을 지키실 것이라고 확언한다. 마침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앗수르 군영을 찾아가 185,000명을 죽이고, 산헤립은 니느웨에서 아들들의 칼에 암살된다(왕하 19:14~37; 대하 32:1~23).
히스기야의 발병과 회복(38:1~39:8)
이사야는 중병에 걸린 히스기야 왕에게 그가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히스기야가 성전에 올라가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은 그가 회복될 것이라고 응답하신다. 이 내용은 다른 성경에도 나오지만(왕하 20:1~11; 대하 32:24~26) 이사야 38장에는 히스기야가 직접 회고한 내용이담겨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는 산 사람만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며 죽음보다 나은 삶의 의미를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회복의 징조로 해 그림자를 뒤로 10도 물러나게 하신다. 하지만 회복된 히스기야는 문병 온 바벨론 사신들에게 예루살렘의 전부를 보여 준다. 므로닥발라단은 앗수르를 피해 엘람 땅에 숨어 있다가 훗날 엘람 동맹군과 함께 앗수르를 공격하는 인물이다. 그가 이때 히스기야에게 얻은 정보는 훗날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데 요긴히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사야 길라잡이 ③
국가적 위기 순간에 굳게 의지할 분
김회권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이사야 30~39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30~31장과 36~39장은 주전 705년 앗수르 왕 산헤립이 시리아-가나안 일대를 점령한 후 마지막으로 예루살렘과 유다를 침공하게 된 배경과 경과를 다루고, 그 사이에 기록된 32~35장은 하나님의 폭풍 심판이 지나간 후에 전개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다룬다.
유다 왕실이 의지한 것들
30~31장과 36~39장, 두 단락은 공통된 주제를 다룬다. 이사야는 유다를 규탄한다. 국가적 위기 순간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회개와 영적 갱신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애굽과 맺은 군사 동맹, 애굽에서 수입한 무기와 말, 그리고 자신의 군사력을 의지한다. 하나님 대신 강대국을 의존해 무기와 군마를 사들이는 유다 왕국의 길은 다시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하나님이신데 유다 왕실은 엄청난 금은보화를 싸들고 가서 애굽의 병거와 말을 사들인다.
신명기 17장 14~20절에 나오는 왕에 관한 율법은 무기 및 병마를 구매하거나 모으는 것을 이상적인 왕도에서 이탈한 패역의 길이라고 단죄한다. 이 모든 군마와 병거 수입을 주도하는 사람이 바로 히스기야 왕이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활 한 번 쏘아 보지 못한 채 앗수르 대군에 예루살렘이 포위된다. 앗수르 대군은 예루살렘 성벽을 허물고 당장이라도 예루살렘을 짓밟을 기세였으나, 성중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있었다.
시편 46편은 바로 이 역사적 위기 순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바닷물이 흉용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사야는 강대국을 의존하는 길과 하나님을 의뢰하는 길의 결국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 준다. 이사야 37장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라를 위해 간구했던 이사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보여 준다. 예루살렘은 또다시 극적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또다시 강대국(바벨론)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앗수르에 맞서려고 한다. 강대국 숭배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심판과 정화
32~35장은 하나님의 폭풍 심판의 역사적 정화 효과를 다룬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 아닌 헛된 우상을 숭배하다가 파탄을 경험한다. 국가 갱신을 위한 하나님의 정화용 심판을 받고 나서야 총체적인 속량과 치유를 맛본다. 하나님의 심판이 지나간 자리에는 강대국을 의존하거나 숭배하는 왕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백성에게 위로가 되고 구원이 되는 왕과 관료들이 정치 지도자로 등장한다. 이방인들이 더는 하나님 백성을 압제하지 못하고, 시온은 정결하게 된 하나님 백성의 보금자리로 복구된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 백성을 괴롭히고 노략질한 이방 족속 에돔은 하나님의 가혹한 심판에 처해진다.
30~39장을 관통하는 주제는 7장 9절이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만일 다윗 왕실이 다윗 집에 주신 하나님의 언약(삼하 7:12~16; 사 55:3)을 믿지 못하면, 남은 선택은 강대국을 우상처럼 섬기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윗 왕조에게 주신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은, 공평과 정의로 통치하는 왕을 이스라엘 목자로 세워 주신다는 것이다. 한 나라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그 나라 통치 근간이 된다는 것이다. 공평과 정의라는 하나님의 통치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붕괴하고 쇠락할 수밖에 없다. 공평과 정의가 사라진 나라는 이 붕괴를 막아 보려고 강대국의 군사 원조나 동맹을 믿으며 강대국 숭배로 치닫는다.
오늘날 미국.중국.일본.러시아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운명과 미래는 강대국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높이 들린 보좌 위에 계셔서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강대국 숭배는 우상 숭배다. 무기와 병거 숭배도 우상 숭배다. 하나님은 핵폭탄을 신으로 섬기는 망령된 자들에게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 아닌 것을 의지하고 공평과 정의를 저버리는 나라는 붕괴하고 쇠락할 수밖에 없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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