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메시야의 승리와 통치 9:1-7
이 장의 첫마디는 모든 것이 어둡고 우울하게만 보인 전장의 마지막부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환난과 흑암과 어두움을 보라.' 그러나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중에 빛이 일어나리라'(시 112: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흑암이, 전에 때때로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어둡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악한때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들의 고통을 가라앉히고 그것을 상쇄할수 있는 빛이 있다. 그들은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고후 4:9), 근심하는 자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자들이다(고후 6:10). 땅이 흑암위에 있을때,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신' 하나님이(45:7) '빛과 어두움을 나누시고' 빛이 어두움을 이기도록 정하셨다는(창 1:4) 사실은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1) 여기서 세가지 사실이 약속되는데, 그것들은 성도들이 환란속에서 위로받게되는 복음의 은혜를 가리킨다.
1) 영광스러운 빛 : 그빛은 점점 어두움을 쫓아낼 것이다. 따라서 그어두움은 전에 때때로 드러냈던 것처럼 어두움을 드리우지는 않을 것이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하셨더니(이땅들은 멀리 변방에 있어서 이웃나라 적들에게 가장 많이 침략을 당하였다)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1절;참조. 왕하 10:32). 우리가 가벼운 고통을 받을때 겸손해지지 않고 마음을 고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욱 가혹한 고통을 받게될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참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그때에 열국이 평안치 못하였다'(대하 15:3,5). 그러나 임박한 흑암은(8:22) 그들을 멸망으로까지 이끌지는 못할 것이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빛을 보았기' 때문이다(2절). 이사야가 살아있던 이때에 유다와 이스라엘에는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예언은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고수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지도와 위로를 주는 큰빛이었다. 이예언의 말씀은 우리 주 예수께서 선지자로 나타나시어 스불론과 납달리 땅에서 그리고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했을때 완전한 성취를 보게되었다.
2) 영광스러운 증가와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널리 퍼지는 기쁨(3절) : 주께서 이나라를 창성케하셨나이다. "이나라가 잇따라 내린 고통스런 심판으로 쇠잔해왔으나 이제는 주께서 다시 나라를 창성케하시기 시작하셨나이다." 하지만 그구절에 뒤이어 '주께서 즐거움' 곧 육체적인 즐거움과 환락을 더하셨다고 이어지지 않고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한다'라고 이어진다. 그들에게는 진정한 영적 기쁨 곧 하나님앞에서 갖는 즐거움이 많았다. 이말씀은 2절에서 얘기한 복음의 빛이 비취는 것에 적합하다. "주께서 그에게는(마소라 사본에서는 이렇게 읽혀진다), 즉 그빛을 받는 모든이들에게 즐거움을 창성케하셨도다." 다음에 나오는 말들이 이러한 해석을 지지한다.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나이다(3절). 그들이 거룩한 의식들가운데서 크게 기뻐하며 주께 나오나이다. 그들의 즐거움은 이스라엘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가졌던 기쁨과 같은 것이 아니라(주께서는 그러한 즐거움은 더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은총과 그의 은혜의 표시들을 보는가운데서 누리는 기쁨이니이다." 그것은 거룩한 즐거움이다. 다시말해서 '그들은 주의 앞에서 즐거워했다.' 그들은 (눅 10:2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영으로 기뻐하며 더욱이 하나님앞에서 기뻐한다. 그것은 큰즐거움이다. 다시말해서 그것은 땅의 값진 소산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자들이 즐거움으로 거두어 들일때의 '추수하는 즐거움'이다. 또한 그것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위험한 전투를 마친후에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과 같다.
3) 영광스런 자유의 확장(4,5절) :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이는 주께서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를 꺾으셨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더이상은 노예상태 가운데 있지 않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주께서 미디안의 멍에가 기드온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목에서 떨어져 나갔듯이 '그어깨의 채찍과 그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셨기' 때문이다. '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시 3:9). 이말씀이 어떤 현세적인 구원을 언급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하도록 막으신 사건을 가리키는것 같다. 그일은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말씀은 더나아가서 흑암에 앉은 자들에게 비칠 큰빛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그빛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다(눅 4:18). 복음의 목적은 죄와 사단의 멍에를 꺾고, 죄책과 타락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스런 자유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의식법의 멍에를 꺾으시고(행 15:10;갈 5:1),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건지시어 우리로 '두려움이 없이 주를 섬기도록' 하셨다(눅 1:74,75). 이일은 시끄러운 소음속에서 치루어지는 전사들의 싸움과는 달리, 불처럼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마 3:11).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다(고후 10:4).
(2) 이 큰일을 행할 자, 곧 교회를 위해서 이 큰일들을 맡아 이룰 자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 선지자는 우리에게 메시야 곧 '임마누엘'(7:14)이 그일들을 이루실 것이라고 예언적인 표현법을 써서 이미 이루어진 사실처럼 말한다(6,7절). 즉 '한아이가 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교회는 메시야가 태어나기전에 이미 곧 은혜와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셨듯이 '창세이후로' 태어난 아기이셨다(계 13:8). 하나님께서 구약의 교회를 위해 행하신 큰일들은 모두가 영원한 말씀이시며, 특별히 중보자이신 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유대민족과 특별히 다윗 집은 오직 그들에게 그와같은 축복이 있었기때문에, 여러번 절박한 파멸에서 보호를 받았다. 갈대아 역본은 그구절을 영원히 있을 사람, 곧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으로 본다.
1) 그리스도의 낮아지신 모습 :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바로 그분은 '한아기로 태어났다.' 그는 우리를 높이고 충만케 하기위해 낮아지시고 자신을 비우셨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태어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하나님은 세상을 깊이 사랑하시어 그를 세상에 주셨다. 그가 '우리에게' 나셨다. 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바 된것이다.
2) 그의 높아지신 모습 : 이 아기, 곧 인자이신 이 하나님의 아들이 지극히 높은 영광과 권세를 받으셨다. 따라서 그가 우리의 친구가 되신다면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수가 없다. 그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9절). 그의 백성들은 그를 알게될 것이고 이 이름들을 따라 그를 경배할 것이다. 그는 기묘자이시며 모사이시다. 그는 하나님이자 사람이므로 '기묘자'로 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영원부터 하나님의 지혜를 모두 알고계셔서 사람들에게 알려주시므로 '모사'이시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혜이시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곧 전능자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지혜가 있듯이 능력도 있으시다. 그는 무엇이든지 구원하실수 있다.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 혹은 "영원의 아버지"이시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계시며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주시는 축복된 영원의 아버지이시다. 그는 '평강의 왕'이시다. 그는 왕으로써 그의 나라에 평강을 유지하고 명령하며 지으신다. 그는 우리의 평안이시다. 그의 보좌는 모든 보좌위에 있다(6절). 그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오직 그어깨에만 메었다. 그는 그어깨에 정사의 휘장('다윗 집의 열쇠', 22:22)을 달뿐만 아니라 정사의 무거운 짐도 지실 것이다.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통치권에 관한 영광스런 사실들이 언급된다(7절). 그 통치권은 확대될 것이다. 그것의 영광은 증가할 것이고, 더욱더 세상에서 밝게 빛날 것이다. 그것은 평강의 왕으로서의 그의 신분에 맞는 평화스러운 것이 될것이다. 그의 통치는 공평하고 신중하게 시행될 것이다. 그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다. 그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될것이다. 그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하나님께서 이 모든일을 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모든 권세를 손에 지고 계시사 모든 피조물을 마음대로 부릴수 있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를 이루실 것이다.'

Ⅱ. 이스라엘에 대한 무서운 경고 9:8-21
본문에서는 주로 이스라엘, 곧 열지파의 왕국인 에브라임과 사마리아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다루었다. 그들의 파멸이 여기에서 예언되었는데 그 모든 일이 불과 몇년안에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그경고는 더나아가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려고 하지않는 모든 민족의 운명을 예언하는 것이다.
(1) 이 예언의 머리말(8절) :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즉 그의 종이 선지자들을 위해서 말씀을 보내셨다. 하나님은 진노를 발하시기전에 먼저 경고하시지만, 그들은 그의 진노를 피하기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에서 폭우와 우박이 쏟아지듯이 그들에게 떨어졌고, 그들은 그것을 피할수 없었다.
(2) 이스라엘 백성의 죄 : 그 죄로인하여 하나님이 노하시어 그들에게 이러한 심판을 내리시게 되었다.
1)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상대할수 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무례히 도전한다. 그들은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내리시고자 하시는 심판을 내리시라고 말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집을 무너뜨리시면, 우리는 그집을 수리하고 더튼튼하게 만들겠노라. 벽돌로 지은 집이 전쟁중에 무너지면 그집을 다듬은 돌로 새로 쌓겠노라. 원수들이 무화과나무를 베면 백향목을 심겠노라."
2) 지금까지의 섭리에 의한 모든 책망에도 아랑곳하지않고 그들은 완고했다(13절).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면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무신론자들이므로 전혀 신앙이 없거나 우상숭배자들이므로 자기들의 상상의 산물이며 수공물인 우상을 찾는다.
3) 그들의 풍습은 타락했고, 불경함이 만연하였다. 백성들을 바로잡아야할 자들이 오히려 타락하도록 도왔다(16절).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하니. 백성들을 고쳐야할 의사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가장 악한 병이 될때, 그것은 백성들에게 불행한 일이다. "이 백성을 축복하는 혹은 '그들을 복되도다라고 하는'(어떤 역본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즉 그들에게 아첨하며 그들의 악한 행실에 비위를 맞추고 그들에게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말하는 자들은 그들로 미혹케하는 자들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악을 행할때에 우리에 대해서 좋게 말하는 자들을 두려워해야 한다(참조. 잠 24:24;29:5). 악이 만연해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에 물들어있었다(17절).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 악을 행하며. 백성들이 저마다 하나님을 모독하였고(그단어가 적절하게 그런뜻을 나타낸다) 사람들에게 악을 행했다. 대개 이 두가지는 한데 어울리기 마련이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
(3) 이러한 그들의 악때문에 그들에게 경고된 심판.
1) 그들은 결국 악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심판은 불처럼 삼킬 것이다(18절). 악행은 불태우는것 같으니. 질려와 형극이 불에 태워질때 '연기로 위로 오라가게 함과' 같이 되어서 그연기로 말미암아 온땅이 어두워질 것이다. 그들은 곤경에 빠질 것이며 더욱이 출구를 찾지도 못할 것이다.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19절).
2) 하나님이 이웃나라 군대를 무장시켜 그들을 치게하실 것이다(11,12절). 이 당시 이스라엘은 유다를 치려고 아람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아람 사람들의 적으로서 그들은 정복한 앗수르인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할 것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적들로 서로 동맹을 맺게하실 것이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유다를 침략했던 것처럼 서로 죄를 함께 지는 자들은 마땅히 죄에 대한 형벌도 함께 받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있던 아람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채찍이 될것이다. 그래서 앞에는 아람 사람이,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 그들을 공격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사방으로 그입을 벌려 그들을 삼킬 원수들에게 둘러싸일 것이다(12절). 블레셋 사람들이 무서운 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아람 사람들은 그들의 견고한 친구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을 삼킬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신뢰하는 자들을 그들로부터 제하실 것이다(14,15절). 여호와께서...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니. 이것은 다음구절에서 설명되었다.
첫째, 태생이 존귀하고 직책이 많은 관원들은 '머리'이며 종려가지였다. 그러나 이들은 백성들로 미혹케 하였기때문에 끊어질 것이다.
둘째, 거짓 선지자들은 '꼬리'며 '갈대'로서 가장 비열한 자들이었다. 악한 성직자가 사람들중에 가장 악한 자이다. 가장 좋은 것이 타락하면 가장 악해지는 법이다.
4) 타락이 백성전체에게 퍼져있었던 것만큼 황폐도 백성전체에게 미쳐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17절). 주께서 그장정을 기뻐아니하시며. 그들은 한창 젊은때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장정들을 너그러이 대접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특별히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고 후원하시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5)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멸망하게할 것이다. 사람이 그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19절). 내란은 이내 나라를 황폐시키고 만다. 이스라엘에 그런 내란이 있었다. 이러한 싸움가운데서 사람들은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자기 팔의 고기를' 먹었다. 배가 고파서 그들은 자신들을 뜯어먹었다(20절). 이것은 기근과 식량부족을 나타낸다. 이러한 일이 개개인들과 가족들사이에서 뿐만아니라 지파들사이에서도 발생했다(21절).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유다를 치는데는 연합할수 있었던 자들이 자기들끼리는 다투었다. 하나님 백성의 지파들간의 반목과 적의는 그들의 파멸을 무르익게 하는 죄이며 그파멸을 속히 재촉하는 슬픈 조짐이다.
6) 하나님은 그들이 이런 모든 심판을 받게되었어도 그들과 다투기를 그만두려고 하시지 않았다. 이것이 이노래의 후렴구이다(12,17,21절).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아니하며 그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그들은 회개하지도 않고 개혁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노는 그들에 대해 계속해서 불타오르며 '그손은 여전히' 펴진 것이다.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그들을 치신다.

# 핵심
9:1-7
메시아와 그나라에 대한 예언이다.

# 묵상
영화롭게 하신 이방의 갈릴리 ( 9:1 )
갈릴리는 천대받는 땅이요 고통의 땅이며, 죄인의 땅입니다. 따라서 이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은 곧 용서와 구원을 의미합니다. 이는 또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자라시고 그곳에서 사역을 베푸시어 모든 죄인을 온전케하실 것임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 ( 9:2 )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와같이 죄와 죽음의 암흑세계에서 살아가던 모든 사람들이 큰빛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빛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미디안의 날 ( 9:4 )
이는 기드온과 그의 삼백용사가 메뚜기떼와 같은 미디안을 대파한 날을 가리킵니다(삿7:22). 미디안은 이스라엘을 압제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전멸시키셨습니다.
한 아기 ( 9:6 )
이말은 구원을 가져다주는 자 곧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아기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으로, 이는 이 아기가 사람이 아니라 뛰어난 신적 지혜를 가진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거룩한 자들을 공평과 정의로 통치하실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예언은 이사야가 예언한지 700년만에 이루어졌습니다.
머리, 꼬리, 종려가지와 갈대의 상징 ( 9:14, 16 )
머리는 장로와 존귀한 자, 꼬리는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이며, 종려가지는 의인 혹은 신실한 자를, 그리고 갈대는 어리석고 연약한 백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말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들 역시 그들의 머리, 꼬리, 종려가지, 갈대가 아무 할일이 없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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