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불의한 압제자에 대한 경고 10:1-4
여기서 선지자에게 화를 선고받는 방백과 재판관들이 이스라엘 사람인지 유다 사람인지는 확실치 않다.
(1) 이 압제자들에 대한 기소(1,2절) : 그들은 다음과 같은 죄목들로 고발당하였다.
첫째, 불의한 법령을 만들었다.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이같은 법령을 고안해내는 고위 권력가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또한 그러한 법령을 작성하고 기록하는 하급관리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둘째, 제정된 법을 실행함에 있어서 불의를 행하였다.
셋째, 마음대로 다룰수 있는 자들을 압제하여 치부하였다. '고아'에게는 변호해줄 후원자가 없기때문에 가진 것이라곤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고아의 것을 약탈'하였다.
(2) 하나님의 심판에 대항하는 그들의 교만과 권세에 대한 그들의 도전(3절) :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가 지금은 과부와 고아를 짓밟을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일어나실때에는 어떻게 하려느냐(욥 31:14). 너희 영화를 폭풍이 지나간 다음에 다시 찾기위해 어느곳에 두려느냐." 그들이 모아놓은 재산이 그들의 영화였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그것을 안전하게 맡겨둘 곳이 없었다.
(3) 그들에게 내려진 선고 : 그 선고에 따라 그들중 얼마는 붙잡혀 포로가 될것이고 '그들은 포로된 자들사이에 혹은 아래에 구부릴 것이다.' 나머지는 죽을 것이다. 고아와 과부를 밟던 자들은 오히려 짓밟히게 될것이다(4절). "내가 없으므로, 즉 너희가 나를 버리고 내게서 떠나갔기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
Ⅱ. 앗수르왕의 교만 10:5-19
앗수르왕 살만에셀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리라는 것이 전장에서 예언되었는데 그 예언은 히스기야왕 6년에 성취되었다(왕하 18:10). 그것은 머리와 꼬리가 모두 잘린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파멸이었다. 이 장에서는 앗수르왕 산헤립이 유다왕국을 바로 잡게될 것이 예언되는데 이 예언은 히스기야 14년에 성취되었다(왕하 18:13,17). 마침내 앗수르인들은 당황하고,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옴으로써 크게 용기를 얻게된다.
(1)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앗수르왕을 자기 종으로 임명하여 도구로 사용하셨다(5,6절).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내가 그를 보내어...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유다 민족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위선적인 나라였다. 그들은 신앙을 고백하고 특별히 당시에는 개혁을 단행했지만, 실상은 신앙이 없고 개혁도 행하지 않았다. 히스기야가 그들의 우상숭배의 풍습을 상당히 많이 고쳤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불경한 행동에 빠졌다. 위선은 곧 불경한 행위이다. 그들은 불경하고 위선적인 민족이므로 하나님의 노한 백성들이다. 죄가 가져다준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라. 하나님이 선택하여 거룩하게 한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의 노한 백성들'이 되었다(암 3:2). 앗수르인들은 겉보기에 매우 대단한 존재들 같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응징하는데 기꺼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에 불과하였다. 그들이 쥐고서 하나님의 백성을 치는 '그손의 몽둥이는 하나님의 분한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들 손에 몽둥이를 쥐어주었다. 하나님은 때때로 전혀 자기를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민족을 채찍으로 삼아 진실되게 자기를 섬기지 않는 위선적인 자기 백성을 응징하신다. 그 앗수르인은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라고 불렸다. '내가 그를 보내리라. 내가 그에게 명령하리라.' 그 앗수르인의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탈취하며 노략하게' 될것이다. 앗수르인은 온땅을 약탈하고 집을 샅샅이 뒤지고 가축들을 몰아내며 백성들의 재무과 장신구들을 탈취하고 게다가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같이 짓밟을' 것이다. 어째서 이 앗수르인이 그들을 이처럼 쳐부셔야 하는가? 그것은 그들을 파멸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2) 앗수르왕은 교만해져서 마치 자기가 절대적인 것처럼 가장했으며,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행동하였다. 하나님은 그에게 심판을 행하도록 명하여 그로 자기 백성을 회개시키는 도구가 되게하셨다.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7절).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종이거나 이스라엘의 친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응징하여 그들의 위선을 고치고 그들을 더욱 자기 가까이에 두려고 하신다. 산헤립이 그렇게하려고 마음 먹었는가? 아니다. 그는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고' 정복한 군주 국가를 세우려고 하였다. 산헤립이 그의 장군을 통해 히스기야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에게 오만과 허세가 배어있음을 알수 있다. 그의 오만함과 주제넘는 생각은 한편으로는 그의 어리석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그가 망하고 말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서 묘사되었다. 그는 자기가 다른 나라들에게 행한 큰일들을 자랑한다. 그는 그나라 왕들을 자기 신하로 삼았다(8절). 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지금 나의 방백들은 전에는 다 왕이었던 자들이 아니냐." 전에는 자기 나라에서 절대적인 군주였던 자들이 이제는 산헤립아래서 왕권을 유지하고 그에게 신하의 예를 다하였다. 그는 많은 성읍을 차지하였다. 그는 다 정복한 여러 성읍들의 이름을 말한다(9절). '갈로'도 '갈그미스'처럼 이내 항복하였고, '하맛'도 '아르밧' 이상으로 버티지 못하였으며, '사마리아'도 '다메섹'과 마찬가지로 그의 것이 되었다. 내손이 이미 신상을 섬기는 나라에 미쳤나니(10절). 그는 그나라를 자기 것으로 삼았다. 산헤립은 나라를 하나씩 정복할때마다 신을 하나씩 정복했다고 오만하게 생각하였다. 그는 자신의 영토를 확장시켜 열국의 경계를 옮겼으며, 많은 넓은 영토를 자기 나라의 경계안에 포함시켰다. 그재물을 약탈하였으며(13절). 위대한 정복자들은 대개 약탈자에 지나지 않는다. 또 용감한 자같이 위에 거한 자를 낮추었으며.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을 내가 낮추었노라." 그는 자기가 자신의 책략과 능력으로 이 모든일을 해냈다고 자랑한다. 나는 내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13절). 그는 이 모든일을 쉽게 해냈다. 마치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같이 그일을 장난삼아 했다(14절). 나의 손이 생의 보금자리를 얻음같고. 그는 어미가 둥지에 있는 알을 주움같이 쉽게 온세계를 얻었다. 알렉산더처럼 그는 자기가 세상을 정복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이제 그는 예루살렘을 어떻게 포위공격하려고 하는지를 말하며 위협한다(10,11절). 그는 불경스럽게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우상이라고 부르면서, 마치 그가 숭배하는 태양신인 미드라외에는 참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다른 나라의 거짓된 신들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에게는 새긴 신상을 만드는 것이 명백히 금지되어 있다는 것과 누군가가 그것을 만들려면 몰래 만들어야 하므로, 그신상은 다른 나라의 신상들처럼 그렇게 장대하거나 호화로울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언약궤와 시은좌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는 매우 어리석게 말한 것이다. 외적인 화려함과 장대함을 참된 교회의 표징으로 삼는 자들은 그와 똑같이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는 사마리아를 정복하였기때문에 예루살렘도 무너뜨릴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사마리아가 하나님을 저버린데 반하여 예루살렘은 자기 하나님께 매달렸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공의롭게 그의 교만을 책망하고 그의 운명을 예언하신다.
1) 하나님은 그의 무례하고 안하무인격인 자랑의 헛됨을 보여주신다(15절).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체하겠느냐. 우화속에서 파리는 수레바퀴 위에 앉아서 "야, 내가 굉장한 일을 하는구나"라고 말하였고, 도끼는 "내가 얼마나 나무를 잘쪼개는가 보라"고 말하였다. 본문에서 도끼로 비유된 앗수르왕은 두가지 면에서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첫째는, 저항과 거부이다. 산헤립은 자기가 다른 나라의 신들을 다루었던 것처럼 하나님을 다루겠다고 위협하면서 하나님을 모독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도끼가 자기를 손에 지고 찍는 자에게 정면으로 대드는 것과 같은 태도였다. 한낱 도구에 지나지않는 것이 장인과 다투는 것은 진흙이 토기장이와 다투는 것과 마찬가지로 터무니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재물과 능력을 가지고서 하나님과 다투는 것은 정당화될수 없는 일이며 또한 묵인될수 없는 일이다.
둘째는, 경쟁이다. 아무리 도끼를 가지고 일을 했다해서 힘과 내 지혜로 이일을 행하였다'고 말한 것은(13절) 그처럼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막대기가 들릴때 자기가 자기를 드는 손을 움직이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다. 막대기는 들려도 여전히 나무가 아닌가.
2) 하나님은 그의 파멸과 몰락을 예언하신다.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여 자기 일을 마치신후에, 그를 벌하실 것이다(12절). 산헤립의 침략과 관련해서 하나님은 이러한 섭리를 통해 시온과 예루살렘에 선을 행하려고 계획하셨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곤경에 처하게 하시는 것은 그들에게 죄를 기억나게 하고 그들의 의무를 각성시키며,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며 돕도록 가르치시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목적이 고통을 통해서 얼마간 달성되면, 그고통은 하나님의 긍휼가운데 제거될 것이다(레 26:41,42). 그 막대기는 '하나님이 보내어 시키시는 일을 이룰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이같은 은혜의 일을 마치신 다음에는 그들을 침략한 자들에게 진노의 일을 행하실 것이다. 내가...앗수르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시온과 예루살렘을 치려는 앗수르왕의 시도는 반드시 좌절되어 수포로 돌아가고 말것이다(16,19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또한 '이스라엘의 빛'인 하나님께서 친히 그일을 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확신할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군' 곧 하늘과 땅의 모든 군대의 주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빛이시오 거룩한 자'이시기때문에 그일을 하시리라고 확신할수 있다. 이 파멸은 마치 질병으로 몸이 초췌해지는 것처럼 이루어질 것이다. 즉 '여호와께서 살찐 자로' 혹은 살찜을 '파리하게 하실 것이다.' 아주 뚱뚱하게 살찐 몸과 같은 그의 허다한 군대가 점점 줄어들고 야위어져 해골처럼 될것이다. 여호와께서...그영화의 아래에 불이 붙는 것같이 맹렬히 타게하실 것이라. 그불은 맹렬한 불이 장중한 집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듯이 삽시간에 그의 군대를 파멸시킬 것이다. 홍해에서 똑같은 구름기둥이 이스라엘에게는 빛이 되었으나 애굽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되었듯이 이스라엘의 빛은 앗수르인들에게는 불이 될것이다. '그불은 형극과 질려' 즉 형극과 질려같은 그의 장군과 병사들을 '소멸할 것이다.' 심지어 '그삼림의 영광' 즉 사람들이 (그들의 삼림의 영광인)상수리나무나 (그들의 갈멜 땅의 영광인)과실수를 소중히 여기듯이, 그가 소중히 여긴 그의 정예부대가 불을 만난 형극과 질려처럼 소멸될 것이다. 선지자는 그결과 그군대의 수가 줄어들어 매우 적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병인이 점점 쇠약하여감 같을 것이라. 남아있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아주 의기소침해질 것이다. 그삼림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Ⅲ. 남은 자에 대한 약속 10:20-23
선지자는 산헤립으로 그땅을 침략하게 하여,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실 것'이라고 말하였다(12절).
(1) 소수의 사람들의 개심 : 이러한 섭리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않고 슬퍼보이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할 것이다. 이들은 남은 자(22절), 곧 '이스라엘의 남은 자'이며(20절) '야곱의 남은 자'(21절)들이다. 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 곧 야곱 집의 타락을 피하고 거의 모두가 변절한때에 자신의 순결을 지킨 그런 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할 것이다.' 즉 그들은 앗수르인들 자체가 가장 악한 원수라는 것을 알고서 다른 원수들을 대항하기위한 도움을 얻기위해 앗수르인들을 의지하는 일을 결코 하지않을 것이다.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라(이뜻은 이사야 선지자의 아들의 이름인 '스알야숩'에 의해서 나타났다, 7:3). 그들은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공격이 풀린후에 조용히 그들의 집과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자신들이 본분을 지키기위해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회개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자신들의 생활을 고칠 것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 대한 이같은 개심과 구원의 약속을 받은 사도 바울은 복음이 처음에 전파되었을때 그것을 받아들인 유대인들중의 남은 자들에게 적용시켰다(롬 9:27).
(2) 다른 사람들의 소멸 : 여호와께서 끝까지 행하시리라(23절). 이말씀은 유대인들중 많은 수의 재산과 가족이 앗수르 군대에 의해서 소멸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같은 소멸이 일어날 것이 '작정되었을' 뿐만아니라, 또한 "준비되었다"(단어의 뜻이 그렇다). 그 소멸이 어디까지 미치며 얼마동안 계속될지가 특별히 정해졌다. 하나님은 자기를 격노케하는 백성들을 이같이 엄밀히 소멸하실 것이나, 지혜롭고 자비롭게 그일에 한계를 두실 것이다.
Ⅳ. 앗수르에 대한 보복 10:24-34
선지자는 귀한 자들과 비열한 자들을 구별하여 설교한다. 그는 산헤립의 침략을 말하는 '하나님의 노한 백성들'인 위선자들에게는 두려움을 말하지만(6절),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백성들인 진실한 자들에게는 위로를 말한다.
(1) 이 임박한 재난을 보고 놀라지말라고 하나님의 백성을 권고함 : '시온의 죄인들은 두려워하라'(33:14). 그러나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을 두려워말라'(24절).
(2) 그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힘 : 하나님이 정하시고 작정하신 것외에는 앗수르인이 그들에게 아무것도 행할수 없었다. 폭풍은 이내 지나갈 것이다(25절). 즉 '내가 불구에' 곧 얼마있지 않아(단어의 뜻이 그렇다) '네게는 분을 그치고' 손의 몽둥이인(5절) '노를 옮기리라.' 그들을 위협하는 원수 자신이 셈을 치루게될 것이다. 원수가 시온을 치려고 '몽둥이를 들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채찍을 들어 그원수를 치실 것이다'(26절). 지금은 그 앗수르인이 하나님의 백성을 격려하기위해 선례들을 인용한다. 그 앗수르인은 '미디안 사람을 쳐죽이신 것같이'(이일은 보이지않는 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파멸될 것이다. 따라서 산헤립은 미디안 방백중 하나인 오렙이 '오렙 반석에서' 죽은것 같이, 그의 군대가 패한뒤에 죽을 것이다. 막대기를 드시되. 이스라엘로 도망하도록 홍해바다를 가르고, 그들을 쫓는 자들을 멸망시키기위해 그것을 덮었듯이 이제도 예루살렘을 구원하고 앗수르인을 멸망시키기위해 그의 막대기를 드시되 '애굽에 드신 것같이 하실 것이라'. 그들은 그 앗수르인의 권세와 그권세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될것이다(27절). 그멍에는 벗어질뿐만 아니라 또한 '기름진 까닭에 부러지리라.' 그이유로 다음 몇가지를 들수 있다.
첫째, 히스기야를 위해서이다.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로서 적극적인 개혁자이며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자이다.
둘째, 다윗을 위해서이다. 이점이 하나님이 산헤립으로부터 예루살렘을 보호하려 하신 이유이다(37:35).
셋째,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이다. 곧 그들중에 있는 경건한 백성들을 위해서이다.
넷째, 메시야 곧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자를 위해서이다.
(3) 그 앗수르인의 두려움과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겪는 두려움(28절).
1) 앗수르인들은 매우 무서웠다. 여기에 매우 빠르게 행진해 나아간 산헤립의 행군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있다. 즉 '그는 아얏에 이르렀고' 그의 중포병대때문에 더멀리 갈 필요가 없는 것처럼 '믹마스에 치중을' 머물렀다. 그처럼 모든 곳이 쉽게 함락되었거나 창고로 쓰이는 유다의 요새화된 성읍들이 이제는 그의 병기고가 되었다. 그는 상당히 높은 고개도 지났다. '그들은 영을 넘었다.'
2) 그 변변치못한 타락한 후손들인 유다 사람들은 매우 겁이 많았다. 그들은 비상신호가 울리자마자 '도망하였다.' 제사장들의 성읍인 '가련한 아나돗'은 모범적으로 용기를 내어보였어야 하는데도 다른 어떤 성읍보다 더 비명을 지른다(30절). 거민들은 싸우기위해서가 아니라 다같이 도망가기위해서 모였다(31절). 이사실은 그 앗수르인의 진행에 대한 소식이 얼마나 빠르게 나라전체에 퍼졌는가를 보여준다. 누군가가 '그가 아얏에 이르렀다'고 말하면, 또다른 사람은 더나아가 '그가 미그론을 지났다고' 말한다.
3) 예루살렘을 치려는 그의 시도는 아주 무력해질 것이다. '그는' 시온산을 바라볼수 있는 '놉에서 쉴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다시 시온산을 향하여 '손을 흔들 것이다'(32절).
4) 그로인해 그는 치명적인 결과를 당하게될 것이다. 그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손을 흔들때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고, 그 빽빽한 삼림을 베시리라'(33,34절). 그 높고 당당한 나무들이 찍힘을 당할 것이다. 즉 교만한 자가 낮아질 것이다. 그가 그 빽빽한 삼림을 베시리니. 무장한 앗수르의 군인들과 바짝 긴장한 그들의 창들이 삼림처럼 레바논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룻밤사이에 그들이 모두 죽었을때, 레바논은 '권능 있는 자'에게 즉 멸하는 천사에게 갑작스럽게 베임을 당하였다. 이것이 그 교만한 침략자의 최후일진데 하나님의 백성은 그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 핵심
10:1-4
권력을 이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한 자들에 대한 심판예언이다.
시온산(10:12)
‘요새’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다윗이 예루살렘 근처의 구릉지대인 이곳을 정복하고나서 ‘다윗성’이라 명명했다(삼하 5:7,9; 왕상 8:1). 솔로몬은 다윗성이 자리한 북쪽 구릉에 성전을 짓고 이산을 시온산이라 불렀다. 이처럼 시온산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의 거처가 되었으며, 다윗왕조의 언약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후에 시온산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시 48:12; 렘 14:19). 시온산은 종말론적 축복의 시발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렘 31:6; 슥 9:9).
# 묵상
멀리서오는 환난 ( 10:3 )
먼나라에서 바람처럼 갑자기 쳐들어오는 군사들을 말하며, 앗수르에 의한 전쟁과 재난을 의미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심판날에 폭풍우를 동원하실 것에 대한 표상으로서 그재난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임을 나타내고자 한 것입니다(왕상19:11).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 ( 10:5 )
앗수르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들 손의 몽둥이는 하나님의 분노를 대신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삼아 죄악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교만하였던 앗수르 ( 10:10, 11 )
앗수르 사람들은 다른 우상들보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능력이 월등하다고 자랑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사마리아와 그신상들을 파괴한 것같이 예루살렘과 그신상에게도 그렇게 행할수 있다고 교만하게 뽐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치켜세우면서 하나님보다 더강하다고 생각했고 하나님과 거짓신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앗수르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게 됩니다. 즉 그들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때문에 징계당하리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시고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시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추시는 하나님을 늘 기억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아래서 언제나 겸손한 성도들의 삶이 되어야합니다.
이미 작정된 것 ( 10:15-27 )
이스라엘을 향해 이미 작정된 것은 심판과 회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옛적부터 하나님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배웠고, 하나님의 진리에 관하여 마음속 깊이 새길수 있도록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배은망덕하게도 하나님을 저버리고 앗수르를 신뢰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판의 도구로 앗수르를 들어 이스라엘을 치도록 하셨습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공의는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죄인들에게 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종말이 임박해 있습니다(계22:20).
앗수르의 교만함에 대한 비유 ( 10:15 )
이사야 선지자는 본문에서 앗수르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공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위해 앗수르를 도구로 사용하신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는 주객이 전도되어 주체자를 움직이려 하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인간들이 필요이상의 것을 자기의 공로로 돌릴때, 그행위는 하나님께 대한 반항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 성도는 어떠한 결과를 도출할지라도 앗수르처럼 교만해서는 안되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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