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두로의 파멸 23:1-14
두로는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그것의 멸망에 관한 이 예언이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라는 문구로 시작되고 끝나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왜냐하면 두로의 사업과 부와 명예가 모두 해운업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운업이 망하면 그것들도 모두 망하게될 것이다.
1. 두로의 번영(1-3)
바다에서 무역하던 '시돈의 상고들이' 처음에는 '시돈을 부요케하였다'(2절). 시돈은 두로보다 더 오래된 성읍으로서 같은 해안에 위치해 있었고 두로보다는 북쪽지방에 더많은 동맹을 맺고있었다. 그리고 두로는 처음에 시돈의 식민지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딸이 어미를 앞지른 것이다. 애굽은 두로를 일으키는데 아주 많은 도움을 주었다(3절). 시홀은 애굽의 강이었다. 애굽은 그강을 통해서 그리고 그강이 흘러들어가는 바다를 통해서 두로와 교역을 하였다. 두로에게 있는 것이라곤 바다밖에 없었지만 부지런히 일함으로써 부유해지고 강성해졌다. 두로는 환락과 쾌락으로 유명한 '희락의 성'이었다(7절). 이런 이유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 종들을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경고를 속구하기를 싫어하였다. 두로는 또한 '고대에 건설된' 성이었고 그사실은 두로의 방심을 조장하였다. 두로는 스스로 면류관을 썼고 또 '면류관을 씌우던 성'이었다(8절). 그 상고들은 방백이요. 또한 '그 무역자들은' 어느나라로 가든지 '세상에 존귀하던 자' 곧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던 자들이었다.
2. 두로의 몰락(4-14)
두로가 이웃 나라들의 화를 자극했기때문에 환난을 초래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재물로 그들을 유혹했기때문에 환난을 초래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로를 멸망시키도록 느부갓네살을 자극한 것은 바로 이 두로의 재물이었다면 그는 실망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로가 13년동안이나 공격을 버티다가 그거민들이 가족과 재물을 가지고 바다로 도망가 버렸기때문에 느부갓네살에게는 텅빈 성읍밖에 남지않았기 때문이다. 두로의 파멸이 본문에 예언된다. 다시스의 배들이 징벌할 편리한 항구가 없어지고 모든 것이 '황무하여질' 것이다(1절). 두로가 파괴되어 황폐해질 것이다. 그거민들은 너무도 슬픔에 눌린 나머지 그것을 나타내는 것조차 못할 것이다. 이웃 나라 사람들은 그들때문에 놀라고 고통당할 것이다. 바다의 굽이치는 파도가 두로로부터 이소식을 가져다가 시돈에 전해주었기 때문에 '시돈이 부끄러워할' 것이다(4절). 시돈에서 '바다의 보장'(흠정역에는 '바다의 힘'으로 되어있음-역주) 곧 밀려오는 높은 물결이 이렇게 외치며 선포한다. 나는 구로하지 못하였으며 생산하지 못하였으며. "나는 무역과 장사를 하며 성장한 젊은 사람들의 뱃짐을 두로에 가져오지 못하겠노라." 무역과 상업은 두로를 그처럼 부유하게 하고 사람이 북적대게 만든 것이었다. 사실 애굽은 두로보다 훨씬더 넓고 강대한 나라였다. 그렇지만 두로는 매우 폭넓게 교역을 하고 있어서 주변의 모든 나라들은 오래잖아 애굽의 멸망소식을 들었을때만큼이나 두로의 멸망소식을 듣고서 애통해할 것이다(5절). "오랫동안 '해변 거민'이었던 너희는 이제 슬피 부르짖을때가 되었도다. 너희가 다시스로 건너가야 하기 때문이니라. 너희가 취할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되도록 빨리 다시스로 곧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니라." 도망할수 없었던 자들은 포로로 잡혀가는 길밖에 달리 기대할 것이 없었다(7절). 그백성이 자기 발로 먼지방까지 가서. 그들은 사로잡혀 급하게 끌려갈 것이다. 도망하려고 시도한 자들중 많은 수는 적의 손에 떨어질 것이다. 두로는 '나일같이 그들의 땅에 넘쳐서' 불행의 심연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그들은 적의 손에 쉽사리 희생될 것이다. 그리고 두로에게 더이상 힘이 없듯이 자매도시 시돈도 더이상 희락이 없을 것이다(12절). 너 학대받은 처녀딸 시돈아. "이제 승리하여 의기양양하는 갈대아인들에게 곧 제압당할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라." 그런데 이 모든 환난이 어디에서 올것인가? 하나님이 그환난의 장본인이 되실 것이다. 그환난은 '전능자에게서 오는 멸망'이다. 이런 질문들이 제기될 것이다(8절).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일을 정하였느뇨. 무한히 지혜롭고 공정하신 하나님이 그일을 작정하셨다. 하나님은 독단적인 능력을 과시하기위해 두로에 이같은 재난을 내리시지 않았다. 오히려 두로 사람들의 교만을 벌하기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다른 많은 죄들도 그들가운데 만연해있던 것이 틀림없지만, 교만의 죄가 하나님이 두로를 치신 특별한 이유였다. 하나님은 이일에서 자신의 의도한바를 세상에 알리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세상 모든 영광의 헛됨과 불확실함을 깨우치려고 하셨다. 즉 그영광이 아무리 견고한 것처럼 보이는 때라도 얼마나 시들기 쉬운 것인가를 보여주려고 마음먹으셨다. 학식과 재물, 화려함과 권력이 사람들의 영광인가? 두로의 파멸을 보라. 그모든 영광이 더럽혀지고 훼손되며 티끌속에 묻혀지는 것을 보라. 여호와께서 바다위에 손을 펴사. 갈대아인들이 두로를 파멸시키는 도구가 될것이다(13절).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들과 그들의 땅은 너무도 쉽게 앗수르인들에게 파괴당했다. 그들이 손수 바벨론을 '창건하며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일으켰을지라도' 앗수르인들이 그것을 헐어버렸다. 따라서 두로도 장차 느부갓네살에게 망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넘어지는 것을 좀더 주의하여 본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서있으리라고 흔히 확신하는 그런 자신감을 갖지못할 것이다.
Ⅱ. 두로의 회복 23:15-18
(1) 두로의 황폐가 계속될 시기가 정해졌다. 두로는 영구히 황폐하도록 되어있지 않았다. 두로가...칠십년을 잊어버림이 되었다가(15절). 두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무렵에 느부갓네살에게 파괴되었고 예루살렘이 황폐해있던 기간만큼 황폐해 있었다. 느부갓네살은 두로의 교만을 짓밟았고 그러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가 더 큰교만을 부리자 하나님은 그후에 곧 그를 겸손케 만드셨다.
(2) 두로가 다시 그영광을 회복하리라고 예언된다. 즉 '한왕' 혹은 한왕조 느부갓네살 왕조의 '년한같이 칠십년이 필한후에' 그영광을 회복할 것이다. 고레스가 유다 백성들을 해방시키면서 예루살렘을 재건하도록 그들을 격려하였을때 또한 두로 사람들도 해방시키면서 그들을 격려하여 두로를 재건하도록 했으리라 생각할수 있다. 여호와께서(긍휼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다투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두로는 옛날의 무역을 다시 회복하기위해 온힘을 다기울일 것이다. 한동안 음란함때문에 징벌을 받았던 두로는 기생처럼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두로가 자유롭게 될때 옛날에 유혹하던 그악기를 다시 사용할 것이다. 즉 두로 사람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무역을 추진시킬 방법을 궁리하고 가장 좋은 상품을 조달하며 모은 고객들에게 은혜를 베풀 것이다. 한때 잊혀졌던 기생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을때 노래와 춤으로써 손님들에게 호감을 사듯이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행하며' 소야곡을 부를 것이다. 두로가 다시 점차로 열국들의 상업중심지가 될것이다. 두로는 '다시 취리하여' 즉 장사를 하여, 이전에 한창 번성할때 교역했던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다'(즉 두로가 무역으로 상거래를 할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을 음란을 행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선지자가 계속해서 기생의 비유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재물을 사랑하는 것은 영적인 음행이다. 그러므로 탐심이 가득한 사람들은 '간음하는 자들'이라고 불린다(약4:4). 일단 옛날의 무역이 다시 회복되면 두로는 그것을 이전보다 더 잘이용할 것이다(18절). 그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두로의 무역과 그로인해 얻는 모두 이익은 하나님께 바쳐지고, 하나님께 봉사하는데 쓰일 것이다. 그것은 이전처럼 몰래 감추어 쌓아두지 않고 경건과 자선의 일에 쓰일 것이다. 그들이 자신과 가족의 생활비에서 떼어두는 것이 '여호와앞에 거하는 자' 곧 여호와의 종들인 제사장들을 위한 '자료가 될것이다.' 제사장들과 그들의 가족이 '배불리 먹고 잘입을 것이다.' 즉 튼튼하고 질긴 옷을 입을 것이다. 이 예언은 새두로에 신앙이 수립되고 그들이 참하나님을 알게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교제를 가져야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우리는 이때에 두로 사람들이 유다땅에 거하는 것을 볼수 있다(느13:16). 두로와 시돈이 그리스도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성읍들보다 신앙에 더욱 호의를 가졌다. 왜냐하면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들가운데 가셨더라면 '그들이 회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마11:21). 또한 우리는 두로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게 된다(행21:3,4). 상인들의 무역한 것과 날품팔이꾼의 이익도 모두 하나님께 바쳐져야 하는 것이다. 즉 그것들은 '여호와께 거룩히 돌려져야' 한다. '여호와께 거룩히 돌리라'는 이말은 대제사장 의관에 붙인 패에 새겨진 문구와(출39:30)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따로 떼어두는 것(레27:30)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행하거나 얻기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려야한다. 우리가 가난한 자를 후하게 구제하고 목회자를 도우며 복음을 장려할때, 진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으로 그런 일들을 행한다면 우리의 무역한 것과 이익이 여호와께 거룩히 돌려질 것이다.
# 핵심
23:1-18
당시 해상무역으로 경제적 풍요를 향유하고 있던 두로를 향한 심판선언이다.
두로(23:1)
팔레스타인 북쪽, 지중해 해변에 위치한 성읍. 그 거민들은 가나안 정복당시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 원주민들을 멸절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하고 남겨둔 가나안 족속의 후손들이다. B.C. 10세기 이전부터 두로는 무역과 상업을 통해 풍성한 부를 누렸다. 베니게의 고대도시인 시돈을 장악한 두로는 지중해연안에 많은 식민지를 두었다. 애굽을 비롯해 스페인의 다시스까지 무역로를 개척했고, 각종 호화로운 교역품들을 실어 나름으로써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당대 최고의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 묵상
시홀의 곡식 ( 23:3 )
시홀이란 애굽 동부국경 가까이에 있는 나일강의 한지류인 펠루시악 강이나 부바스티테 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홀의 곡식’이라는 말은 애굽의 곡물을 의미하며, 시돈 사람들이 자신의 손으로 일하지 않고 타민족, 곧 애굽인들의 곡물 거래로 생계를 이어나갔음을 암시합니다.
두로의 주된 산업 ( 23:5-7 )
베니게의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도시국가인 두로는 다윗과 솔로몬의 무역동맹자 히람왕의 성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역에 힘썼으며 물감, 유리 등의 산업을 발달시켜 지중해 상업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한편 이러한 두로를 향해 구약의 예언자들은 그들의 물질주의와 노예매매 등에 대해 호되게 비난했습니다(욜3:5; 암1:9).
두로를 위해 여호와께서 정하신 일 ( 23:8, 9 )
하나님께서는 두로로하여금 모든 영광의 교만을 욕되게 하시며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하려 하셨습니다. 즉 무엇보다도 경제력으로인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교만했던 두로에 대한 심판이 이미 작정되었던 것입니다. 세상물질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을 멀리하는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으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백성은 복이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시146:5).
여호와앞에 거하는 자 ( 23:18 )
이는 유대 민족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것은 두로의 무역한 것과 그이익은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림으로 유대 민족이 먹고 입을 재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종말의 날에는 열방이 그의 예물을 시온으로 가져오므로 제사장 족속인 유대 사람들은 그예물로 생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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