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I. 가인과 아벨을 낳음 4:1,2
아담과 하와에게는 많은 아들 딸들이 있었다(5:4). 가인과 아벨은 그형제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두사람이었던것 같다.
1. 두아들의 이름(1,2)
(1) 가인은 "얻음"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그이유는 하와가 그를 낳았을때 기쁨과 감사와 더불어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서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를 늘려주신다는 사실에 대해 마땅히 감사를 드려야 한다. 우리 자녀들이란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하나님은 친히 지으시고 주신 선물을 저버리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알때 자녀들에게서 오는 우리의 위로는 갑절이 되고 신성하게 되는 것이다.
(2) 아벨은 "헛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하와는 자기가 가인으로써 약속된 후손을 얻었다고 생각하였기때문에 또다른 아들은 자기에게 헛되다고 여겼다.
2. 가인과 아벨의 직업(2)
(1) 그들은 둘다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가 순결한 상태에 있을때조차도 직업을 주셨으며 이제 그들에게도 직업을 주셨다. 우리 모두가 이세상에서 할일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일을 할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자녀들에게 성경과 직업을 주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실 것이다"라고 도드는 말했다.
(2) 그들의 직업이 달랐기때문에 기회가 있을때마다 그들은 서로 물건을 거래하고 바꿀수 있었다. 국가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또한 그들은 상호간의 거래를 통해서 서로에게 더 큰호의를 가질수 있게되는 것이다.
(3) 그들의 일은 그들 아버지의 직업인 농사꾼으로서의 소명에 속해 있었다.
(4) 아벨은 비록 동생이었지만 먼저 직업을 가졌고 이 본보기가 아마도 가인으로하여금 직업을 갖게 만들었을 것이다.
(5) 아벨은 명상과 기도에 가장 유리한 직업을 선택하였다. 왜냐하면 명상과 기도에 유리하다는 이유때문에 목축생활은 특별히 더좋은 직업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Ⅱ. 가인과 아벨의 신앙 4:3-5
1. 가인과 아벨의 신앙(3,4)
'세월이 지난후에' 가인과 아벨은 그가족의 제사장인 아담에게 각각 '여호와께 드릴 제물'을 가져왔다. 하나님은 이렇게해서 약속에 대한 아담의 믿음과 치료책으로 주신 법에 대한 그의 복종을 시험하셨다. 하나님은 이렇게해서 다시 하늘과 땅사이에 교통이 있게하려고 하셨고 장차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를 주려고 하셨다. 여기서 다음의 네가지 점을 생각해 보자.
첫째,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한 예배란 전혀 새로운 고안물이 아니라 옛부터 있어온 제도이다. 그것은 '태초부터 있는'(요일 1:1) 것이며 '옛적의 선한 길'(렘 6:16)이다.
둘째, 자녀들이 어릴때 그들에게 경건한 예배를 잘가르치고 일찍부터 훈련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래야 그들이 장성하여 스스로 행동하게 되었을때는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니 우리는 가진바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한다.
넷째, 위선자들과 악을 행하는 자들도 외형적인 예배에 있어서는 가장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나타내 보일수 있다. 가인도 아벨과 함께 제물을 가져왔다. 아니, 마치 가인이 아벨보다 먼저 제물을 가져온 것처럼 가인의 제물이 앞에 언급되었다. 바리새인이나 세리나 모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었다(눅 18:10).
2. 그들 신앙의 각기 다른 결과(4,5)
신앙의 모든 행위가운데서 목표삼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열납하심이다. 만일 우리가 이목표를 이룬다면 참된 예배가 이루어진 것이며 이것을 놓친다면 우리는 헛되이 경배하게 되는 셈이다(고후 5:9).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을 열납 하셨으며' 아마도 하늘에서 불을 내리심으로써 그증거를 보여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가인과 그제물을 열납하지 아니하셨다'.
(1) 그들사이에는 인격의 차이가 있었다. 가인은 악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제물은 '헛된 제물'이었다(사 1:13). 하나님은 가인 자신을 열납하지 않으셨으며 따라서 그의 제물도 열납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아벨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의인 아벨'이라고 불린다(마 23:35). 그의 마음은 곧고 그의 생활은 경건하였다. 하나님은 그를 거룩한 사람으로서 열납하셨고 그러므로 그의 제물을 거룩한 제물로서 열납하셨다.
(2) 그들이 가져온 제물에 차이가 있었다. 성경에는 아벨의 것이 가인의 것보다 '더나은 제사'(히 11:4)라고 명백히 언급되었다. 아벨의 것은 제사의 성격에서나 제물의 질에 있어서 더나았다. 가인은 손쉽게 구할수 있는 것인 '땅의 소산'을, 곧 자기에게 필요없는 것을 가져왔다. 그러나 아벨은 제물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신중했다. 아벨은 절름발이나 깡마른 것이나 찌꺼기를 제물로 선택하지 않고 '양의 첫새끼', 곧 그에게 있는것 중에 가장 좋은 것으로 그리고 '그기름', 곧 최고의 것들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으로 제물을 삼았다.
(3) 무엇보다 중대한 차이는 아벨은 믿음으로 제물을 드렸고 가인은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의거한 원리자체에 차이가 있었다. 아벨은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법칙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목표로 삼고 제물을 드렸다. 그러나 가인은 단지 교제를 위해서 하는정도로만 했다. 곧 자기 자신의 신용을 보존키위하여서만 드렸으며 믿음으로 드린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것이 그에게 죄가 될수밖에 없었다. 아벨은 회개의 마음을 가진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가인은 겸손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만을 신뢰하였다.
3.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와 자신의 제사에 차별을 두신데 대한 가인의 불만(5)
가인은 이에 대해 몹시 분을 내었고 그것이 이내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첫째, 이러한 그의 분노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적대감을 나타낸다. 명백히 그는 자신의 불신앙과 위선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지 아니한 것이라고 자신을 나무라고 통분해 해야했었다. 우리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듣는 비난들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우리가 겸손하지 못한 마음을 가졌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둘째, 또한 그것은 자기 동생에 대한 그의 시기심을 나타낸다. 그는 자기 동생을 원수로 보고 증오심을 품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에 무가치한 자들은 흔히 하나님의 은총으로 귀하게된 자들에 대해 분을 품는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도 막음'으로써(눅 11:52) 가인의 이러한 길을 걸었다. 시기심이란 대체로 그자체에 뼈를 썩게하는 형벌이 따르는 죄이다.

Ⅲ. 가인의 분노와 하나님의 책망 4:6,7
여기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그의 분노와 불평이 어리석고 죄된 행위임을 깨닫게 하고 그로 다시 선한 성품으로 돌아오게 하여 그이상의 악을 방지할수 있도록 그와 변론하신다. 이와같이 탕자의 아버지도 맏아들과 그들이 당면한 문제를 변론하였다(눅 15:28 이하).
(1) 하나님은 가인 스스로 자신의 불평의 동기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도록 말씀하신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6절). 여기서 다음 두가지 점을 유의하자.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적인 격정과 불만을 주목하고 계시다.
둘째, 우리는 스스로 이렇게 자문해 보아야할 것이다. "왜 내가 분해하는가? 내가 분을 내는데 실제적이고 바르며 적당한 이유가 있는가? 내가 어찌하여 그렇게 급히 성을 내는가?"
(2) 하나님은 다시 가인의 마음을 바로잡으시기 위해 여기서 다음의 두가지 사실을 그에게 명백히 밝히셨다.
1) 그가 하나님께 화를 내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① 하나님은 가인앞에 생명과 축복을 제시하신다.
㉠ "만일 네가 네 동생이 한것처럼 선을 행했다면 너의 제물도 네 동생의 것처럼 틀림없이 열납되었을 것이다."
㉡ "이제 만일 네가 선을 행한다면 다시말해 네가 네 죄를 회개하고 네 마음과 생활을 고치며 보다 나은 제사를 드린다면 그것은 열납될 것이고 너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며 너의 위로와 명예가 회복되고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이 얼마나 일찍부터 전파되었는가를 보게되고 그복음의 은혜가 죄인들중의 괴수인 한사람에게까지 제공되었음을 보게된다.
② 하나님은 가인앞에 죽음과 저주를 놓으신다. "만일 네가 선을 행하려하지 않는다면 다시말해 네가 계속해서 분을 품고 하나님앞에서 스스로 겸비해지기보다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마음이 강퍅해진다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이말씀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 죄를 더하게 된다는 뜻이다. 즉 "분이 네 마음속에 있으니 머지않아 살인을 하게되리라"는 것이다.
㉡ 죄의 형벌을 가져오리라는 뜻이다. 죄와 형벌은 아주 가까운 동계어다. 그래서 히브리어에서는 같은 어휘로 두가지 뜻을 모두 표현하고 있다. 죄가 집안에 숨어있으면 저주는 죄수를 발견하기만 하면 곧 체포할 준비가 되어있는 형사처럼 문에서 기다린다. 네가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와 '죄를 위한 희생'을 모두 의미한다. 성경은 대속제물이신 그리스도께서 '문밖에 서계시다'고 말한다(계3:20). 이모든 사실을 생각해볼때 가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화를 내야했지 하나님께 대하여 화를 낼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2) 그가 자기 동생에게 화를 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의 소원은 네게 달려있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너를 형으로 존중할 것이고 너는 장로로서 이전처럼 그를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열납하셨다고해서 장자 상속권을 그에게로 옮겨주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렇게하려고 하지않으셨고 아벨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가인이 그렇게 화를 내야만 했는가?

IV. 아벨이 죽임을 당함 4:8
이사실은 다음 두가지 면으로 생각해 볼수 있다.
(1) 가인의 죄를 생각해 볼수 있다. 그것은 가장 심각한 진홍빛 붉은 죄였다. 이점에서 우리는 다음 몇가지 사실들을 볼수 있다.
1)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것은 아주 사소한 죄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죄로 말미암아 아주 극악한 죄가 들어오게 된것이다.
2) 이것은 여자의 후손을 대적하는 뱀의 후손이 품고있는 적의의 결과였다. 육신을 좇는 자가 '성령을 좇는 자를 핍박하는' 일은 이처럼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3) 여기서 또한 우리의 '시기와 미움과 악의 그리고 모든 무자비함'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된다. 이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에 가득하면 그사람은 살인과 같이 두려운 죄에 빠질 위험이 있다. 많은 죄들은 가인의 죄가 악화된 결과들이었다.
① 그가 살해한 사람은 자기의 친동생 곧 그가 마땅히 보호해야할 어린 동생이었다.
② 또한 그동생은 자기에게 조그만 잘못도 결코 행한 적이 없는 착한 동생이었다.
③ 하나님께서 친히 그에게 이일로 말미암아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으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야만적인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④ 그는 겉으로 우정과 친절을 보임으로써 그계획을 숨겼다. 70인역에 따르면 가인은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고 말하였다고 한다. 아람역의 부연 설명에 따르면 가인은 장차올 심판도 없고 내세도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이에 대해 아벨이 진리를 변호하여 말하자 그가 이것을 기회로 그를 때려 눕혔다고 한다.
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바에 의하면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는 '자기행위는 악하고 그아우의 행위는 의로왔기' 때문이었다(요일 3:12).
⑥ 아니 그는 자기 아우를 죽이는 가운데서 직접 하나님 자신을 공격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벨을 사랑하시기때문에 그를 미워하였다.
(2) 아벨의 고난으로 생각해 볼수 있다. 아담이 범죄한 이래로 줄곧 사망이 왕노릇 해왔으나 이제까지 누가 그사망에게 붙잡혔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사망에 붙잡힌 자가 나오게 된것이다.
1) 제일 먼저 죽은 사람은 성도, 곧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에게 열납된 자였다. 그리하여 최초로 무덤에 간 자는 천국에 갔다.
2) 최초로 죽은 자는 자신의 믿음을 위하여 죽은 순교자였다. 아벨의 죽음은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면류관이 따르는 죽음이었다.

Ⅴ. 첫범죄자에 대한 공판과 정죄 4:9-12
1. 가인에 대한 심문(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 하나님은 가인이 스스로 자기 죄를 고백할수 있도록 그에게 물으신다. 그이유는 하나님앞에서 의롭다하심을 받으려하는 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비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를 뉘우치는 자들은 그렇게 할것이다.
2. 가인의 항변(9)
그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며 살인죄에 반항의 죄를 더한다. 여기서 다음 두가지 점을 살펴보자.
첫째, 그는 계획적인 거짓말로 계획적인 살인을 감추려고 애쓴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이와같이 마귀는 처음부터 가인안에서 살인자요 거짓말쟁이였다. 이상하게도 눈이 먼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에게서 자신의 죄를 숨길수 있다고 생각하며 또한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은 고백하기만 하면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에게서 자신의 죄를 감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그는 하나님께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무례하게 자신의 재판관을 어리석고 불의한 자로 비난한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내가 바로 내 아우를 죽인 자가 아닙니까"라고 자책하며 말했어야 했다. 혹자는 그가 마치 "당신이 그를 지키는 자가 아닙니까? 그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지 그를 지킬 책임이 없는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식으로 하나님과 그의 섭리를 비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형제들을 돌보는 일에 무관심한 자들은 그형제들의 신체나 재물 혹은 명성이, 특히 그들의 영혼이 손상되는 것을 예방해야 할때가 되면 사실상 가인과 같은 말을 한다(레 19:17; 빌 2:4).
3. 가인의 유죄선고(10)
그의 말을 반대하는 증거가 논의의 여지가 없을만큼 명백하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지식이 가인에 대하여 불리한 증거를 하기전에 마치 피자체가 증인이고 고발자인 것처럼 말씀하신다. 여기서 다음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살인은 하나님께 가장 크게 울부짖는 죄이다. 인내로 고난을 받은 자들은 용서를 위하여 부르짖었지만(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의 피는 원수갚음을 위하여 부르짖는다.
둘째, 하나님은 피가 땅에서부터 호소한다고 말씀하셨다. 곧 '땅이 그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11절).
셋째, 원문에서는 그단어가 복수로 쓰여 네 아우의 '피들이라고 되어있다. 이것은 지금 죽은 자의 피뿐 아니라 그의 후손으로 태어날수 있었을뻔한 모든 사람들의 피도 또한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가 아벨의 피보다 더나은 것을 말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히 12:24). 아벨의 피는 원수갚음을 위하여 호소하였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용서를 위하여 호소하였다.
4. 가인에게 내려진 선고(11)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라.
(1) 그는 저주를 받았다. 아담의 불순종에 대한 저주는 땅에 대한 것, 곧 '땅은 너로인하여 저주를 받으리라'는 것으로 한정되었다. 그러나 가인의 반역에 대한 저주는 즉시로 그자신에게 떨어졌다. '네가 저주를 받으리라'. 사실 우리 모두가 다 이저주를 받아 마땅한 존재들이다. 신자들이 이저주에서 구원을 받고 축복을 상속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갈 3:10-13).
(2) 그는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다. 가인은 자신이 자기 몫으로 선택하고 마음을 둔곳에서 자신의 형벌을 발견하였다. 우리는 땅에서 두가지의 것을 기대한다. 그것은 음식물과 정착이다. 그러나 이 저주로인하여 가인은 땅에서 기대할수 있는 이 두가지를 모두 박탈당했다. 그러므로 땅에서 나는 음식물이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가 그러한 것을 누려왔고 특별히 그의 직업을 생각해 볼때 이사실은 그에게 저주였다. 네가 밭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효력을 네게 주지아니할 것이요, 또한 땅에서의 정착이 그에게 거절된다.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그는 이 저주로인해 사람들사이에서 끊임없이 수치와 비난을 받게되었으며 그자신의 마음속 또한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가 일게되었다. 그리하여 그자신의 범죄한 양심이 그가 어디로 가든지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힐 것이고 그로하여금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하게 만들 것이다. 가슴속에 스스로 불안을 품고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어디로 간다고해서 어떤 안식을 얻을수 있으며 정착할 어떤 곳을 발견할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처럼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은 도망자가 될수밖에 없는 법이다. 이것이 가인에게 내려진 선고였다. 그리고 이선고에서조차도 그가 즉시로 제거되지 않고 회개할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주어졌다는 점에 있어서 거기에는 자비가 뒤섞여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래참으시며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Ⅵ. 이선고에 대한 가인의 불평과 하나님의 선고의 확정 4:13-15
1. 자신에게 내려진 선고에 대한 가인의 불평(13,14)
그는 이선고가 엄하고 힘들다고 불평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절망의 말을 토로했다고 여긴다. 아무리 큰죄와 죄인들이라도 용서의 하나님께로 가면 거기에서 사유함이 있다. 그러나 그 사유함을 단념하는 자들은 그것을 잃고 만다. 바로 조금전까지만 해도 가인은 자신의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또다른 극단으로 치우쳤다. 사단은 자신의 노예들을 처음에는 뻔뻔스러움으로 다음에는 절망으로 몰아간다. 가인은 사실상 자신이 관대한 취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혹독한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가 지옥에 던져지지 않은 것을 오히려 놀라와해야할 지금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소리높여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가인은 자신의 불평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자기에게 내려진 선고를 길게 늘어놓는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세가지 점을 살펴볼수 있다.
첫째, 그는 이선고로 말미암아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한다.
둘째, 그는 자신이 이생의 모든 위로에서 추방되어 결국은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는 '오늘 이 지면에서 쫓겨난 것'이다.
셋째, 그는 이선고로 말미암아 자신이 모든 인류의 미움과 악의를 받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그가 어디로 돌아다니든지간에 그는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할 것이다. 적어도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의심하는 사람처럼 자기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자기를 쫓는 자라고 생각한다. 그당시 그의 가까운 친족들외에 달리 살아있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자기 동생에게 스스로가 그처럼 야만스럽게 행동했던 그로서는 그들조차 무서워한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는 모든 피조계가 자기를 대적하여 무장했다고 본것이다.
2. 이선고에 대한 하나님의 확정(15)
하나님은 심판하실때(모든 이의를) 이기시는 분이다. 여기서 다음 두가지 점을 살펴보자.
첫째, 가인은 본문의 선언에 의해 진노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우리는 이선언이 그당시 존재해 있던 작은 세계 전역에 공포되었다고 추측할수 있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왜냐하면 가인이 죽으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가 받은 선고(그가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선고)가 좌절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가인의 경우를 통해서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의 손에서 칼을 빼앗는 자는 뻔뻔스러운 찬탈행위를 하는 자이다.
둘째, 가인에게 표를 주사. 이것은 그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하고 그가 바로 자기 동생을 죽인 사람이라는 것을 공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Ⅶ. 가인의 후손 4:16-18
여기에는 가인이 하나님께 배척을 받은후의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1) 그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게 되리라는 선고에는 순순히 복종하였다(16절). '가인이 여호와앞을 떠나 나갔다'는 말은 곧 그가 의도적으로 하나님과 신앙을 포기하고 신앙의 교훈을 받지않기 위하여 신앙의 특권들을 기꺼이 버렸다는 말이다. 가인은 이제 여호와앞을 떠나 나갔다. 그가 위로를 받기위하여 다시 여호와앞으로 돌아왔다는 기록은 성경 어느곳에서도 결코 보이지 않는다.
(2) 그러나 그는 자신이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는 선고에는 대항하여 맞서려고 애썼다.
1) 그는 자기 땅을 선정하였다. 그는 나가서 '에덴 동편에 거하였다.' 이곳은 아담과 그의 경건한 가족이 거주하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정착하려고한 그의 시도는 헛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자신의 영혼이 끊임없는 불안속에 있었으므로 그가 거주한 땅이 그에게는 '놋땅'(the land of Nod, 즉 흔들림 혹은 떨림의 땅)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은 다른 어느곳에서도 안식을 얻을수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난후 그는 결코 안식을 누리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내 영혼아 네 안식으로 돌아가라. 하나님안에 있는 네 안식으로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영원히 쉬지 못하리라."
2) 그는 거주하기위해 성을 건축하였다(17절). 어떤 사람들은 이구절을 '그는 성을 쌓고있었다'고 읽는다. 즉 그는 늘 성을 쌓고있었으나 그와 그의 손의 행사에 저주가 내려졌기때문에 그일을 완성하지는 못하였다는 말이다. 여기서 다음 몇가지 점을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의 선고에 가인은 반항한다. 하나님은 그가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그가 회개하고 겸손해졌다면 이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되었을 것이다.
둘째, 가인이 하나님을 버린후에 무엇을 선택하였는가를 보라. 그는 이세상에 정착지를 정하여 자신의 영원한 안식처로 삼았다.
셋째, 가인이 끊임없이 자기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공포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어떤 방법을 취하였는가를 보라. 그는 자신의 불행을 생각지 않기위하여, 그리고 망치와 도끼소리로 범죄한 양심의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지않게 하기위하여 도성의 건축사업에 손을 대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분주한 세상사에 몰두함으로써 양심의 가책을 무마시키려고 애쓴다.
넷째, 어떻게 악한 사람들이 종종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선을 제압하며 외적인 번영에 있어서 그들을 앞서는가를 보라. 아담과 그의 복된 가족은 장막에 거하였는데 비하여 가인과 그의 저주받은 종족은 성에 거하였다.
(3) 그의 가족도 또한 늘어났다. 여기에 그의 후손에 대하여 즉 그의 가계의 상속자들이 일곱대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Ⅷ. 라멕에 관한 기사 4:19-22
여기에는 아담의 칠대손으로서 가인의 혈통을 타고난 라멕에 관한 몇가지 기사가 있다. 비록 라멕이 두아내를 취함으로써 죄를 짓기는 하였지만 그들로인해 자녀의 축복을 누렸고 그자녀들은 그들의 경건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발명의 재주때문에 당대에 유명하게 되었다. 그들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을뿐만 아니라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들이었고 발명에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아니면 적어도 무엇을 개량하거나 유익한 어떤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의 자녀들에 대해 고찰해 보자.
(1) 야발은 유명한 목축업자였다.
(2) 유발은 유명한 음악가로서 특별히 퉁소를 연주하는 자였고 고상한 예술 혹은 음악에 대한 규칙을 최초로 고안한 사람이었다. 야발이 사람들로하여금 부유해지게 만들었다면 유발은 사람들로하여금 즐거워하게 만들었다. 야발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목양신이었으며 유발은 아폴로신이었다.
(3) 두발가인은 유명한 대장장이로서 전쟁과 농업의 유익을 위해 동철을 다루는 기술을 크게 발전시킨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불과 대장간의 신(Vulcan)과 같은 사람이었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은혜를 갖지않은 사람들도 탁월하고 유익한 많은 재능들을 부여받을수 있고 그로 말미암아 당대에 유명하고 쓸모있는 존재가 될수 있다. 이와같이 일반적인 재능들은 사악한 자들에게도 주어진다. 반면에 하나님은 세상에서 어리석다고 하는 것들을 자신만의 것으로 택하신다.

Ⅸ. 라멕의 말 4:23,24
여기에 기록되어 있고 필시 그당시에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을 라멕의 이말에 비추어 볼때 그는 대체로 저주받은 가인의 종족이 그러했던 것처럼 악한 사람들이었던것 같다. 그는 자신이 사납고 잔혹한 성격을 갖고 있어서 자기를 방해하는 자는 마구 휘둘러치며 모두다 죽이고마는 사람이라고 공언한다. 그가 어떤 기질의 사람인가, 즉 그가 얼마나 성을 잘내는 사람인가를 아는 그의 아내들은 혹 누군가가 그를 죽일까봐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누가 나를 공격하든지간에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나를 공격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 어른이든지 소년이든지 불문하고 죽이리라."

Ⅹ. 아담이 또다른 아들을 낳음 4:25,26
이 장에서 아담에 대한 언급이 여기에 처음 나온다. 아벨의 살해, 가인의 회개치 않음과 변절이 아담과 하와에게 큰고통을 주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게다가 그들자신의 사악함과 과오가 그들을 책망하고 비난하였기때문에 그사실들이 더욱더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고통가운데 있는 우리의 첫조상들에게 그고통을 덜어주는 어떤 것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1) 그 슬픈사건으로 그들의 가정이 몹시 흔들리고 약화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가정을 다시 세워주셨다.
1) 그들은 그들의 후손, 곧 "아벨대신에 다른 씨'를 보았다(25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다루시는 섭리가운데서 그들에게 베푸시는 자비와 온정을 보라.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서 한가지 위로를 거두어 가실때에는 그대신에 다른 위안을 그들에게 주신다. 그런데 그위로는 그들이 이전에 누렸던 위안(비록 그위안이 없으면 살수 없다고 생각했을지라도)보다 그들에게 더 큰축복이 되는 수가 종종 있다.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는 자들은 이러한 수단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지치리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스스로 속고말 것이다. 그리스도는 여전히 자기의 후손을 보실 것이다. 하나님은 돌을 가지고서도 자기를 위한 자녀들을 일으켜 세우실수 있으며 순교자들의 피를 교회의 씨앗으로 만드실수 있다. 아담과 하와는 예언자적인 안목으로 이 아들을 '셋'(Seth, 즉 '고정하다' '정해진' 혹은 '놓여진'이라는 뜻이다)이라고 불렀다. 그이유는 그의 후손을 통해서 인류가 세상끝날까지 존속할 것이며 그에게서 메시야가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배교의 우두머리인 가인은 방랑자가 된 반면에 참교회의 조상이 된 셋은 정착한 사람이 된 것이다. 참된 정착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안에서만이 있을 뿐이다.
2) 그들은 그들의 후손의 후손을 보았다(26절).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2) 하나님은 그들로하여금 자기 가정안에서 신앙이 되살아나는 것을 보게하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26절). 만일 선한 사람이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내리는 것을 보지 못하고 또한 자기 후손들이 진리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보지못한다면 그가 자기 자녀의 자녀를 본다는 것이 그다지 큰위로가 되지는 못한다. 이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스스로 분발해서 과거에 행했던 것보다 더욱 열심히 신앙으로 살려고 애쓰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기 골방과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격식을 갖춘 공중집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스스로를 구별하기 시작하였다. 난외주에는 그구절이 이렇게 적혀있다.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기 시작하였다.' 혹은 스스로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렀다.

# 핵심
4:1-9
타락으로인하여 인간사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시기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하와(4:1)
아담의 갈빗대로 지음받은 최초의 여성. 아담이 처음 하와를 보았을때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기뻐하며 맞았다(창 2:23). 하지만 하와는 사단의 유혹에 빠져 남편인 아담을 불순종에 끌어들였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히 여기고 안목의 정욕을 자극하는 사단의 부추김을 따른 결과였다. 타락한후에 하와는 해산하는 고통이 더해지고 남편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형벌을 받았다.

# 묵상
아벨의 제물의 특징 ( 4:4 )
양의 첫새끼를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아벨의 제물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하고 있으므로 온전한 제사이며, 목숨을 내어놓은 제사이므로(4:10)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고, 믿음으로 드린 제물이므로 하나님의 증거를 받았습니다(히11:4).
가인의 죄의 발전과정 ( 4:5-16 )
가인은 잘못된 제사를 드렸다가 열납되지 않자 하나님께 분을 내었고,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그를 죽였으며, 하나님께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였고 급기야는 여호와앞을 떠났습니다. 이처럼 죄는 한번으로 만족하지 않고 계속 발전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일단 죄를 지으면 그굴레에 빠져들기전에 하나님앞에 가지고 와서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용서함을 받아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살려주신 이유 ( 4:15 )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뿐이심을 밝히기 위함이며, 죄인에게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살려주시고 다른 사람이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의 삶이 주는 교훈 ( 4:16-24 )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떠나 인간만을 위한 세속적 문화를 창출하며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에게서 떠난 자들은 노아 홍수 사건에서 보여지듯이 멸망할수밖에 없습니다.

# 해설
타락된 인류역사의 시작 ( 4 )
창3장에서는 인류의 시조가 타락하는 장면과 범죄의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본장에서는 범죄한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인 가인과 아벨 그리고 셋에 대한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어 전개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자녀와 함께 살고있는 가족을 보게 되지만 가인이 범죄한 자의 후손답게 자신의 동생인 아벨을 살해하는 가장 무서운 범죄가 연출되는 기록이 있습니다.
1. 가인과 아벨의 제사
1) 가인과 아벨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는 성생활의 결과 두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두아들의 이름은 가인과 아벨이었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는 자이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목축업에 종사하였습니다. 이는 성경역사상 양대 직업이 되었습니다. 즉 최초의 인류가 낳은 두아들은 농경과 유목이라는 구분되는 직업을 가져 이후 전개될 인간중심의 세속문화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문화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a.아담의 첫째아들 가인(창4:1)
b.가인과 아벨의 직업(창4:2)
2) 제사를 드림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후 그들 가정에 두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범죄하여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기위하여 제사를 드리기 시작한 것은 가인과 아벨부터였습니다. 형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이었으므로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동생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이었으므로 양의 첫새끼와 기름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a.제사에는 순종이 동반되어야(삼상15:22)
b.상한 심령의 제사를 드려야(시51:16-17)
c.아벨의 제물과 다른 가인의 제물(히11:4)
3) 제사의 결과
4절과 5절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각각 드린 제사에 대한 상반된 결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았고 아벨의 제사는 열납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가인의 제사가 믿음이 없이 드린 제사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a.초태생은 가장 귀중한 것을 의미(출13:2)
b.인애가 동반된 제사를 열납하심(호6:6)
c.흠있는 제물을 열납지 않으심(말1:9-11)
2. 가인의 범죄와 형벌
1) 분노하는 가인
자신이 드린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은 것을 안 가인은 하나님의 처사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가인에 대하여 하나님은 '네가 분하여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책망은 회개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분노하고 반항하는 가인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a.분노는 어리석음의 소치(잠12:16)
b.투기와 분노(창30:1-2)
2) 아벨을 죽이는 가인
하나님의 거듭된 책망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께 열납된 제사를 드린 동생 아벨을 시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생을 죽이려는 생각까지 품었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살해하기 위하여 그를 광야로 유혹해내어 거기서 살해하였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함으로써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형제간의 살인은 죄가 인간에게 들어와 얼마만큼 파괴적인 역할을 할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a.의인들의 죽음(마23:35)
b.광야는 크고 두려운 장소(신1:19)
c.살인자 가인(요일3:12)
3) 가인의 형벌
가인은 아벨을 광야에서 살해했으므로 아무도 본 자가 없을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가인의 살인행위를 보셨으며 하나님의 귀는 아벨의 의로운 피가 호소하는 소리를 들으신 것입니다. 아벨을 살해한 가인에게 하나님은 형벌을 내리셨습니다. 첫째형벌은 땅에서 저주를 받아 땅이 그에게 아무런 은혜를 주지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둘째형벌은 하나님과 사람을 피하여 숨어다녀야 하고 항상 정처없이 방황하며 유리하는 삶을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즉 가인의 범죄는 그의 삶을 황폐한 삶으로 변하게한 것입니다.
a.형제 살인(요일3:11-12)
b.패역한 자들의 행위(유1:11)
3. 하나님의 위로
1) 아벨대신 새아들을 주심
아벨의 죽음과 가인의 추방으로 슬픔속에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아들 셋을 주심으로써 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두아들을 거의 동시에 잃은 부모의 심정을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은 치셨을지라도 싸매시는 분이며(참조, 욥5:18;호6:1), 택하신 자들의 한을 풀어주시는 분임을 알수 있습니다(참조, 눅18:7).
a.아담의 세번째 아들(창4:25)
b.그리스도의 조상(눅3:38)
2) 소망을 주심
가인의 제사실패와 아벨의 살해로인한 하나님의 저주는 아담의 가정에 신앙의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아담의 가정에 죽은 아벨을 대신하여 셋을 주신 것은 아담 가정에 새로운 소망을 갖게 했으며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도록 했습니다. 아담부부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그언약에 대한 소망을 잃지않았고 더나아가 셋을 통해 새로운 신앙의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a.하나님이 주신 씨(창4:25)
b.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족속(창12:8)
c.위로자 하나님(고후1:3-4)
결론
우리는 창4장을 통해 하나님께 열납된 아벨의 제사와 관련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가인의 살인을 통해서 인간세상에 침투한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알게됩니다. 또한 인간을 끔찍히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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