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조상으로서의 노아 (김희보 前 총신대 신대원 교수)

 

노아가 어떻게 그처럼 의인이되었고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었겠는가. 그 비결은 오직 하나 히브리 기자는 그것을 가리켜 '노아의 믿음'이라 했다. 믿음의 힘은 위대하다. 믿음은 죄인을 의인으로 보게도 하고 허물 많은 자를 불러 완전한 자가 되게도 하며 하나님과 멀리 떠난 자를 불러 저와 동행하는 자가 되게도 한다. 믿음의 최후 완성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인데 노아의 증조부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께서 승천케 하셨고 노아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그 가족과 더불어 방주에 들어간 생명을 구원했다.
그러면 노아의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었겠는가. 히브리11:7절은 그의 믿음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노아는 믿음으로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이제 이 말씀에서 노아의 믿음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
그의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었다. "그가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이렇게 히브리의 기자는 말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경고]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경고하심을 [받아]라는 말은 그 말씀을 듣고 믿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의 경고 말씀을 들었으나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노아는 그 말씀을 믿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자에게 믿음은 있을수 없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10:17)고 사도 바울은 알려 주었다. 그러나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가. 그렇다면 감사하자. 하나님의 은혜이다.

신약의 사도 베드로는 큰 은혜를 입은 믿음의 사람이었다.
눅5:45절에 보면,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했다. 사도 베드로가 특별한 믿음의 소유자였다는 것은 곧 말씀에 의지하여 움직인 사람이었음을 보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도 같다.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25) 이 말씀은 흉용한 바다에서 바야흐로 파선지경에 이르렀을때 두려워 떨고 있는 선원들에게 외친 그의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너를 버리지 않고 환난 중에 건지리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고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그는 확신했다. 하나님의 말씀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 그것이 참 믿음이요 큰 믿음이요 큰 은혜인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움직였다. 참으로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다.

2. 보이지 않는 것을 꼭 보는것 같이 믿는 믿음
히브리 기자는 노아를 가리켜 그가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방주를 예비했다고 했다. 노아는 보지 못한 일을 꼭 보는 것인양 믿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본질 중의 하나이다. 고후5:7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라"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때 세상은 그를 비웃었다. 어리석은 자라고 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은 홍수의 징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홍수가 나기까지는 비라는 말도 또한 홍수란 말도 없었다. 매일 매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평화로운 날들이 매일 계속됐을 것이다. 홍수에 대한 위험을 느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홍수의 경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홍수의 경고를 꼭 그대로 믿었다. 보이지 않는 그것을, 한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그것을, 꼭 그대로 믿었다. 사람들은 다 보이는 현실, 매일 경험하는 세상 일은 믿어도 보이지 않는 내세의 일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보이는 사람은 믿어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못 믿는다. 보이는 육신은 믿어도, 보이지 않는 영혼은 믿지 않는다. 그러나 참 믿음이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임을 믿는 믿음이다(고후4:18). 노아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꼭 보는 것 같이 믿을뿐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는 그것을 위해서 보이는 것을 희생한 사람이었다.

3. 노아의 믿음은 실행이 따른 믿음이었다.
그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했다"고 했다. 그의 믿음은 매일 매일 방주를 짓는 순종으로 나타났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는데 참 택함을 받은 성도들의 믿음은 반드시 그 행위로 나타난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거기에 여러 신앙 위인들의 믿음이 잘 나타나 있다.
거기에 아벨은 믿음의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 믿음은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기생 라합의 믿음은 위험을 무릅쓰고 정탐군들을 숨겨주는 행동으로 나타났음을 볼 수 있다. 그처럼 노아의 믿음은 방주를 예비하는 일로 그 믿음이 나타났다. 우리는 이제 고요히 머리 숙여 우리의 믿음이 지금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4. 희생이 있는 믿음

노아가 방주를 짓는 동안 그의 희생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해 보자. 물질의 희생, 시간의 희생, 노력의 희생만이 아니라 많은 수욕도 참았다. 이 얼마나 큰 희생었겠는가. 참 믿음이란 언제나 희생이 따름을 볼 수 있다. 아벨에게는 순교의 피가 따랐고, 아브라함에게는 모든 친척과 본토와 재산을 버리는 희생이 따랐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이었다.
이 역시 우리도 고요히 묵상해 보아야할 일일 것이다. 내 믿음은 무엇을 희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5. 자기의 가정을 구원한 믿음

"그는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라고 히브리 기자는 말했다. 흔히 우리가 아는 것은 믿음이란 개별적이란 점이다. 믿는 그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 부모가 믿는다고 자식도 따라서 구원얻는 것은 아니다. 자식들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서 깊이 배워야 하는 진리의 하나는 곧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는 약속이다. 아브라함이 잘 믿으니 그 가정이 구원을 얻었다. 가버나움의 가나안 여자의 간절한 믿음은 그 딸의 병을 고쳤고 백부장의 믿음은 그 종을 고쳤다. 노아의 믿음은 그 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 부모들에게 큰 용기를 주는 말씀이다. 부모가 잘 믿으면 불신앙의 자녀들도 돌아온다. 어머니의 기도를 못잊어 돌아오는 탕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우리의 가정을 구원하는 믿음이 되어야 하겠다.
언제까지나 나홀로 믿는 믿음은 크게 반성해야 될 것이다(
고전7:14).

 

6.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한 믿음

히브리 11:7에 보면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했다. 여기서 "이로 말미암아"하는 말은 그가 방주를 예비하는 일을 말한다. 그는 방주를 예비함으로 세상을 정죄했다.
그가 방주를 지을때 그것을 짓는 이유를 사람들에게 말했을 것이 분명하다. "누구든지 이 방주에 들어오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으리라. 누구든지 다 들어올 수 있도록 이처럼 큰 방주를 짓노라"고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지않는 자는 죽으리라"고도 했을 것이다. 말로만 아니라 실제 방주를 짓는 생활로써 증거했다. 이 얼마나 귀한 믿음인가. 이로써 그는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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