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실수 (김희보 前 총신대 신대원 교수)

 
위의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슬프게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만 실수하여 첩을 얻게 되었다. 그가 그렇게까지 된 경로는 다음과 같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5)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었다. 그때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셨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 앞에 의로 여기심을 받을만큼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 시혐에 그만 실패했다. 즉 그 시험이란 이렇다. 세월은 흘러 그가 가나안에 들어와 약속을 받은지도 어언 10년이 지났건만 아들이 없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첩으로 준 때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10년 후이었더라"(창16:3)
10년을 더 참지 못하여 아브라함은 아들을 얻기 위하여 첩을 얻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그 아내 사래의 권면을 따른 것이었다. 창16:2에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치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하였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을 따라 하갈을 첩으로 얻었다. 이것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큰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성경에 기록된대로 아브라함은 지난 날에도 벌써 여러 차례의 작지않은 시험들을 당했었다. 어떤 시험에도 잘 이겼으나 어떤 경우에는 넘어지기도 했다. 먼저 그가 이겨온 시험들을 보라.

1.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창12:1)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그는 순종했었다. 그는 그것을 순종하므로 잘 이겼다. 이로써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2. 롯에게 슬픔을 당하는 시험이 있었다(창13:1-11). 그때에도 그는 모든 권리를 그에게 모두 양보했었다(창13:8-9).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뻐하셨다. 그에게 가나안의 기업을 주시며 후손의 창성을 약속했었다(창13:14-17).
3. 신앙의 용기가 있느냐 하는 시험도 당했었다. 그는 318명의 적은 무리를 가지고 시날왕의 연합군을 물리쳤다(창14:1-16).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오는 믿음의 힘이었던 줄 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방패가 되어주셨던 것이다(창15:1).
4. 세상의 부귀와 영화의 시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겼다. 즉 소돔왕이 제공하는 큰 재산을 그는 거절했었다(창14:21-23). 그때 하나님께서도 그를 얼마나 기뻐하셨던가. 친히 여호와께서 그의 상급이라 하셨다(창15:1).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그의 후손이 창성할 것이다. 물론 먼 훗날의 일이지만 그는 사랑하는 독자를 바치라는 그 어려운 시험에도 이겼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넘어졌던 시험은 어떤 것이었던가.
먼저 일상 생활에 있어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시험에 졌다. 즉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을때 그는 약속의 땅을 계속 지켰어야 했지만 그는 가나안을 버리고 애굽으로 갔었다(창12:10).
그는 아무리 궁핍하여도 모든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겼어야 했건만 그렇지 못했다. 사실 우리가 일상생활에 있어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아브라함에게는 물론 순종도 있었고, 믿음의 용기도 있었다. 겸손한 양보도 있었고 물질의 욕심도 이길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굶주림을 이기며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모든 염려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언약만을 바라보며 살아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드디어 모든 시험에 못 견디어 애굽으로 내려 갔었다. 애굽에서 그는 큰 위경에 이른때가 있었으나(창12:14-15) 하나님의 특별한 권고로 그는 거기에서 무사히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창12:17-20).

다음은 오늘 본문에서 보는 시험이다. "하나님께서 네 씨(자손)로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면 그는 그것을 믿고 하나님의 때가 이르기까지 견디고 참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10년 이상을 더 참을 수 없었다. 드디어 하나님의 거룩한 그 약속을 인간의 추악한 방법으로 이루려 했다.
마침내 하갈을 첩으로 얻어 아들을 보려했던 것이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전혀 믿지못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되 그 약속을 하나님의 방법대로가 아니라 인간의 악한 수단으로 이루려 하였다는 거기에 그들의 실패가 있었다고 본다.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은 하나님의 거룩한 방법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적인 방법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이룰수는 없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오기까지 참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그렇지 못한데 그의 실패가 있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자주 느끼는 것은 약속을 바라보며 오래 참고 견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야곱의 경우에서도 그것을 본다.
창25:23에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자를 섬기리라"는 약속을 받고 태어난 아들이 곧 야곱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때를 허락하시기까지 그는 믿음으로 오래 참고 견디었어야 했었다. 그러나 그는 참지 못했다. 인간의 속임수로 장자의 기업을 빼앗으므로 그 언약을 이루려 했다. 그는 그것 때문에 일생을 유리하며 고생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잘못된 방법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신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히브리서 10:26에도 보면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심을 본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래 참았어야 했을 것인데 그만 10년에 지치고 말았다. 그가 첩을 얻은 결과도 물론 비참했다. 우선 가정에 불화가 생겼다. 하갈은 사라를 멸시했다(창16:4). 사라는 또 하갈을 학대하여 내어쫓아야 했다(창16:6). 그 여종 하갈의 후손과 사라의 후손 사이에는 늘 전쟁이 있어 천추의 원수가 되어버렸다.

아브라함이 첩을 얻은 그 결과는 참으로 비극 그것이었다. 어떤 사람들 중에는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다처주의를 용납하시지 않았던가 의심하는 자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성경은 신구약을 막론하고 철저한 일부일처주의이다. 말라기2:15에 보면 "여호와는 영이 유여할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 하셨다. 이것은 일부일처이어야 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오직 그래야만 경건한 자녀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 아브라함의 씨 중에는 드디어 불경건한 씨가 섞기게 되어 두고 두고 큰 불행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역사에 있어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거듭 말하거니와 아브라함이 첩을 얻은 것은 결코 하나님의 허용이거나 묵인이 아니었다. 분명히 그것은 그의 큰 실수였다. 그러면 믿음의 조상인 그가 어떻게 그런 실수를 범하였겠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가 아직도 옛 습관과 옛 풍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말려들어간 옛 습관이란 어떤 것인가. 아브라함 시대의 것으로 소위 하므라비 경전(Hamurabi Code)이란 것이 일찌기 발굴 되었는데 거기에 보면 바벨론에 있어서는 아내 된 자가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경우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 자녀를 얻어 자기의 자녀로 삼을 수 있다는 법이 허락되어 있다. 하무라비의 경전 밖에도 그러한 법률의 흔적이 다른 고고학적 자료에도 나타나 있다. 그것은 모두 아브라함 시대의 그의 고향이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굴된 자료들이다. 사라와 아브라함이 하갈을 그의 첩으로 얻게한 것은 그러한 시대의 풍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속적 불신행동이었음이 확실하다.
우리는 이제 엄숙히 사도 바울의 다음 성구를 다시 한번 묵상하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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