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유년 시절 (김희보 前 총신대 신대원 교수)

창세기를 크게 두부분으로 나누다면 1장-11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우주와 만물과 인류를 창조하신 것을 그 인류들이 어떻게 타락하게 된 것을 기록했다. 그리고 둘째 부분인 12장-50장까지는 그 타락한 세대에서 한사람 아브라함을 택했고 그의 자손들인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한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 이스라엘을 통해서 온 인류의 구속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기록한 것이다.
흔히 이스라엘 4대 족장이라고 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말한다. 이 사대에 걸친 네 사람의 시대를 가리켜서 족장시대라고 한다.
창세기 12장-50장까지는 이 4대 족장들의 생애를 기록한 역사이다. 여기에서는 이 4대족장 중 맨마지막 족장인 요셉의 역사 중에서 특별히 어린 시절의 환난과 슬픔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아들 요셉은 어릴때부터 그 아버지에 못지않은 많은 환난과 곤고를 겪어야 했던 족장이었다. 그러나 요셉의 환난은 그 아버지의 환난과 비교해 볼때 근본적으로 그 다른점을 발견하게 된다. 즉 야곱의 환난은 그의 죄값으로 온 환난이었다. 그는 본래 모태에서부터 형의 발뒤꿈치를 잡은 사람이요, 그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여서 그 형의 기업을 빼앗은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외삼촌을 속이고 그 재산을 탐내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많은 환난의 징계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한 징계와 환난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는 거룩히 살고자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고생을 참아야 했던 것이다.
참으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이 세상이란 묘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범한 죄값으로 환난을 겪어야 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아무런 죄없이 오히려 더 진실하고 더 순결하기 때문에 환난과 곤고를 겪어야 하는 수도 있다. 우리는 요셉의 생애에서 특별히 그것을 발견하게 된다. 흔히 성경에서는 그러한 고난을 십자가의 고난 혹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고 말하고 있다.
요셉은 벌써 일찌기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지고 환난을 겪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마침내 요셉은 큰 영광의 면류관을 얻은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영광을 얻기까지 그는 많은 슬픔을 당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의 그는 자기의 형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 큰 우울에 빠졌다. 꼭 죽을 자리에서 구원을 받았으나 다시 그 형들은 그를 먼 나라 애굽의 종으로 팔아 버렸다. 종살이를 하던 그는 다시 애매하게 큰 죄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면 그는 무엇 때문에 그런 고생을 겪어야 했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는 자기의 죄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가정의 죄 또는 전혀 관계없는 다른 사람의 죄때문에 당한 환난이요, 희생이었다. 이제 몇 가지로 그것을 살펴 보자.
첫째, 그는 그 가정의 죄를 짊어진 희생제물이었다. 그의 아버지 야곱의 가정에는 죄가 많았다. 우선 그 아버지 야곱은 첩이 많았다. 그들 중에는 말할수 없는 시기와 질투가 있었다. 그 가정은 늘 평안치 않았다. 그들은 자녀들을 낳는 것도 서로 경쟁했다. 창29:35에 보면 그 아내 레아는 계속해서 네 아들을 낳았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이렇게 경쟁적으로 네 아들을 낳았다.
둘째, 아내 라헬은 그것을 시기하여 자기의 몸종인 빌하를 남편에게 주어 두 아들을 낳게 했다. 단과 납달리, 두아들이다.
여기에서 네 아들을 낳은 첫 아내 레아는 다시 그것을 시기하여 자기의 몸종 실바를 남편에게 주어 첩을 삼게하고 두 아들을 또 낳게 했다.
갓과 아셀이 그들이다. 그후 레아 자신도 또 두 아들 잇사갈과 스불론을 낳았다. 그후 끝으로 라헬 자신이 또 두 아들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다. 그러한 가정이 평안할 수는 없다. 물론 신앙적으로도 볼 것이 없었다. 
창 35:2에 보면 야곱의 아내들과 자녀들은 이방과 각종 우상을 다 섬기고 있었다. 야곱은 그것을 알면서도 가정을 신앙적으로 다스리지 않았다.
그 아들도 또 자기 어머니들 같이 서로 시기하였다. 마침내 그 형들은 어린 요셉을 죽이려고 했다. 이 얼마나 살벌한 가정이었는가. 이처럼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타락한 야곱의 가정의 죄를 어린 요셉이 그것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죄없는 요셉은 자기의 가정의 죄를 짊어지고 소위 아사셀의 어린 양과 같이 제물이 되어 멀리 멀리 버림을 받게된 것이다.
세째로,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아들이요, 또 그 자신은 죽임을 당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아들이었다.
창 37:3에 보면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야곱(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라고 했다. 야곱이 그를 그처럼 사랑한 이유는 성경에 보면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그 말에는 좀 분명치 않은데가 있다. 요셉보다 더 늦게 얻은 아들 베냐민이 있었다. 그러나 야곱은 베냐민보다 요셉을 더 사랑했다.
히브리 원문에는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라는 이 말이 어떤 사본에는 "요셉은 지혜가 있는 아들이므로" 이렇게도 되어 있다. 야곱이 요셉을 특별히 사랑한 이유는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일뿐더러 그는 특별히 지혜가 있고 총명했기 때문인줄 안다.
물론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자연히 느껴지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첫 아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야곱은 그 어느 아내 보다도 라헬을 더 사랑했다. 라헬보다 레아는 물론 먼저 얻은 아내였지만 마음으로 라헬을 레아보다 앞서 먼저 사랑했고 또한 후에도 그를 더욱 사랑했다. 마음으로는 라헬을 정처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는 오랫동안 생산을 하지 못하다가 드디어 첫 아들을 낳았다.
그러므로 그가 낳은 요셉을 그 어느 아들보다도 귀히 생각했고 사랑했던 것으로 안다. 그는 요셉을 마음의 장자로 생각한것 같다. 그 증거로써 창37:3에 보면 "야곱은 요셉에게 특별히 채색옷을 지어 입혔다"고 했다.
여기 이 채색옷이란 말은 그저 어여쁜 옷이란 뜻만이 아니다. 삼하 13:18에 보면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니라" 한 말이 있다. 채색옷이란 어린 공주들이 입는 긴 옷이었다.
특별회 공주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서 귀한 자녀에게 그의 단장으로 입히는 옷이 채색옷이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요셉이 입은 채색옷은 장자의 예복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야곱은 요셉을 마음에 장자로 구별하여 키운 모양이다.
또 이런 일이 있다. 창37:11에 보면 요셉이 꿈을 꾸고 하는 말이 "형들이 묶은 곡식단이 요셉의 자기가 묶은 곡식단에 와서 절하더라" 하는 말을 했을때 그 형들은 그 말을 듣고 분히여기며 시기하되 그 아비 야곱은 "그 말을 마음에 두더라"라고 했다. 이것은 분명히 야곱의 마음에 장차 요셉은 장자의 권위를 갖게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증거가 되는줄 안다. 이 모든 일들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 아버지는 요셉을 더욱 사랑하게 됐고 그 형제들은 더욱 그를 시기하게 됐던 것이다.
본문 창 37:4에 보면 "그 형들이...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고 했는데 이것은 우리의 번역이고 히브리 원문에는 "그에게 평안하냐고 인사도 않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불평 정도가 아니라 그 형들은 요셉과 한 집에 살아도 인사말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날이 갈수록 그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다는 것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요셉은 그렇지 않았다. 형들을 사랑했다. 창37장 이하의 요셉의 역사를 보면 그가 그 형들을 어떻게 사랑했는가 하는 말로 가득차 있다. 물론 후일의 일이었지만 그는 초라한 형들의 모습을 보고 골방에 뛰어들어 가서 슬피 목놓아 울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요셉은 형들을 사랑했다. 본문 37:13에 보면 "야곱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으니 너를 그들에게 보내리라" 그때 요셉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요, 내가 가겠나이다"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지자 지체하지 않고 멀리 형들의 소식을 알기위하여 세겜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형들을 찾지못하고 세겜 광야에서 그가 방황하며 있을때 어떤 사람이 그의 헤매는 모습을 불쌍히 여겨서 그 내용을 물었다. 그 사람의 말이 "그들이 여기를 떠나 더 멀리 도단으로 갔느니라"라고 했을때 그는 다시 멀리 그곳으로 찾아갔다. 형들은 그를 그렇게 미워했건만 요셉은 형들을 그렇게 염려했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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