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횃불 언약
[창세기 15장 12절~21절]
12절 -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절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게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절 -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절 -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절 -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절 -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절 -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절 -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절 -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절 -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1. 언약의 징표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요구하신 것은 무엇이며(9~10절), 그분이 보이신 행동은 무엇인가요?(17절)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3년 된 암소, 3년 된 암염소, 3년 된 숫양,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와서 그 중간을 쪼개고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으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쪼갠 고기 사이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횃불이 지나가도록 하셨습니다.
희생제물을 쪼개어 마주 대하여 놓고 계약자 쌍방이 그 가운데로 지나가는 것은 고대의 일반적인 계약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당사자가 계약을 엄수할 것을 맹세하고 만약 위반할 경우에는 쪼개진 제물과 같은 신세가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횃불만이 제물 사이를 지나갔을 뿐 아브람은 지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계약이 하나님 홀로 의무를 지는 편무언약(片務言約)임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여 죄악과 패륜으로 나아갔을 때에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어김없이 진행되었으며 그 절정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로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의 계약 위반과 불성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고리는 하나님의 성실과 사랑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의 의지와 연합하여 이루는 구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아무리 굳은 의지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맹세한다 해도 결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인간 의지의 파산’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파산 맞은’ 인간의 상태를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넘어가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강한 어깨에 기댈 수 있습니다.
* 일방적으로 약속하시고 그것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이 내 삶에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또 이루어지고 있나요?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일방적인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그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쉬운 비유가 있다면 어머니의 사랑일 것입니다. “길에서 미열이 나면 하나님하고 부르지만 자다가 신열이 끓으면 어머니, 어머니를 불러요”라고 시인 신달자는 말합니다(시, “사모곡”). 우리는 어머니를 통해 처음으로 사랑을 배우고 깨닫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성실한 사랑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넣어 주신 분도 하나님이기에 사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훨씬 더 광대합니다. 성경은 계약을 지키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셨기에 그들을 애굽에서 번성케 하셨고 광야에서 훈련하셨으며 바벨론 포로 생활로 겸손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을 다시 고토로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기억하셨으므로 자기 아들의 몸을 쪼개어 십자가의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사 44:21).
2. 하나님은 언약 체결에 앞서 장래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고 계시하시나요?(13~16절)
아브람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종으로 섬기다가 4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며 그때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자손이 이방에서 종으로 섬기다가 4대만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대(代)는 후손을 보게 되는 평균 기간인 30년이 아니라 당시 인간의 수명으로 간주되던 100년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를 마치고 출애굽한 후 다시 가나안 땅을 정복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렇게 성취될 것입니다. 이러한 유예 기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무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정복당할 가나안 족속들의 죄악이 가득 차지 않아서 하나님의 심판의 수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뿐 아니라 이방 민족까지도 모두 다스리시는 통치자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행 13:17~19).
* 최근 내 삶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그 속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나누어 보세요.
4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브람의 후손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도록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무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보다 깊은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의 자손들에게 곧바로 땅을 주시지 않고 40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게 하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고난을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철저히 은혜로만 구원받는 자들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구원을 기뻐하는 사람은 어둠의 세력 가운데 있어 보고, 세상의 감옥과 학대가 무엇인지 겪어 본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죄가 관영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를 몸소 깨달아 안 사람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 안에서 견디어 낸 인내의 시간이 있었다면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경험한 구원의 기쁨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5~36).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이 본문에서 아모리 족속은 모든 가나안 족속을 대표하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16절)고 말씀하십니다. ‘가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렘’은 더 이상 채울 틈 없이 완전히 가득 찬 것을 뜻합니다. 이 ‘솰렘’은 ‘갚다’, ‘보응하다’, ‘성취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솰람’에서 파생된 형용사로서 ‘온전한’, ‘완비한’, ‘모든’이란 뜻이 있으며 본문 역시 이와 유사하게 ‘차고 넘치는’이란 의미로 번역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동사의 원래 의미와 좀 더 밀접히 연관시킨다면 ‘갚은’, ‘보응받은’, ‘성취된’ 등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죄악에도 쌓이고 채워지는 한도가 있다는 것인데 회개하지 않은 죄는 결국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아모리 족속은 이미 팔레스타인에서 갖은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회개의 기간을 400년이나 주셨지만 끝내 회개하지 않아 멸망당합니다.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에는 한계가 없으나 심판의 시기는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약속을 주신 것은 우리가 선하고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그분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사랑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횃불 언약을 체결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이스라엘의 앞날에 대해 먼저 계시하셨습니다. 비록 그들이 400년간 억압받고 종노릇하겠지만 결국 구출될 것이며, 큰 복을 받아 기쁨으로 나오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서 고난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둡고 두려운 때(12, 17절)에 빛을 발합니다. 흑암 중에 횃불처럼 빛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을 붙들 때 어려운 시간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기
- 죄인인 저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성실히 그 언약을 이루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은혜에 믿음으로 응답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 두렵고 불안한 상황, 시련과 고난의 순간을 맞이할 때 하나님의 구원 약속과 최종적인 승리를 바라보며 넉넉히 이겨 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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