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불완전한 구약의 제사 (10:1-6절)
여기서 사도는 레위기에 기록된 계율을 낮게 평가한다.

1. 율법은 단지 장래에 올 좋은 일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이 좋은 일들은 장차 올 것이므로 아직은 분명하지 않았다. 그때 유대인들은 장차 올 그리스도의 좋은 일의 그림자만을 지니고 있었다. 현재 복음 아래 있는 우리는 그 실체를 접하고 있다.

2.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실체는 아니었고 단지 그림자였다. 율법은 하나님의 원대한 은혜의 계획을 대략적으로 그린 것이므로 지금의 우리는 그 일에 너무 매달릴 필요가 없다.

3. 매년 드려야 하는 율법의 희생 제사는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들을 단번에 온전케 할 수 없었다(1,2절). 그러나 복음으로 얻는 속죄는 온전하여 한 번 사죄를 받은 죄인은 그로써 영원한 죄사함을 받은 것이므로 오직 자신의 회개와 믿음을 새롭게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4. 율법의 희생 제물은 드리는 자의 죄를 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불가능하다(4절). 속죄의 제물은 자신이 제물로 드려짐을 승낙할 수 있는 존재이어야 하며 자발적으로 죄인을 대신하여 자기 몸을 바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존재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그렇게 하셨다.

5. 하나님께서 이러한 율법의 제물을 더 이상 받지 않으시며 또 이런 속죄물이 더 이상 죄인에게 효력이 없는 때가 있다고 정해 놓으셨다. 그런데 그때가 왔다. 이 레위인의 율법을 폐지 할 시기는 다윗에 의해 예언 되었다(시 40:6,7).

Ⅱ. 온전한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 (10:7-18절)
사도는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참 대제사장이며 참 속죄 제물임을 알린다. 그는 이것을 다음 사실로 논증하고 있다.

1. 성경에 여러 번 기록된,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과 목적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7절).

2. 그리스도를 위한 몸(즉 인성)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실을 들어서 설명한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우리의 구세주와 구속자로서 인정받으셨다.

3. 하나님께서 어떠한 제물도 받으시지 아니하실 때 그리스도께서 이 구원의 사업에 자진하여서 나선 사실을 들어서 설명한다(7-9절). 그리스도께서는 자원하여 이 일을 담당하셨다.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9절). 이런 것을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성경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된다.

4.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과 수행하실 계획을 들어서 논증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셨다.
  첫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제사장직을 폐하러 오셨다.
  둘째, 두 번째 제사장직을 세우러 오셨다. 즉 그것은 자신의 제사장 되심과 영원한 복음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세우신 위대한 계획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며 또한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다.

5. 그리스도는 제사장직의 온전한 효능의 사실을 들어서 설명한다(14절). 이것은 레위인의 제사장으로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온전한 위치에 오르기를 바란다면 그러한 위치로 우리를 인도하실 권세가 있으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으로 영접하여야 한다.

6. 우리, 즉 예수께서 현재 높임을 받으신 위치를 들어서 설명한다(12,13절).
  첫째, 그리스도께서 들림을 받은 명예로운 위치는 하나님의 우편, 즉 모든 것을 자의로 베풀고 받으며 행사할 수 있는 권세의 자리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가장 명예로운 자리인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고난에 대한 보상으로 이 위치에 오르게 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자리를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실 것이며 자신의 백성을 위하여 이 자리를 잠시도 비우지 아니하실 것이다. 이 자리는 영원히 그리스도의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으며 그것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께서는 지옥에 있는 존재들 이외에는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적은 지상에도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적이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마침내 당신의 적들을 발등상이 되게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기대하고 계시다. 그리스도의 원수가 정복될 때 모든 믿는 자들의 원수도 정복이 될 것이다.

7. 사도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씀하신 성경의 증거를 들어 그리스도의 뛰어나심을 설명하였다.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15절). 이 구절은 예레미야 31:31절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그들 백성에게 내려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또한 백성들의 마음 속에 율법을 새겨 주시며 그들의 심령 속에 율법을 기록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16절).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더 이상 기억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공로만을 보시므로 더 이상 다른 제사를 반복할 필요가 없다(18절). 이 점이 레위인의 제사장직과 희생 제물로는 도저히 효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Ⅲ. 그리스도인의 임무 (10:19-39절)

1. 여기서 사도는 복음의 존엄성에 대하여 논한다. 복음으로 인한 특권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는다. 믿는 자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된 존전 앞에 나가도록 준비될 때까지 하나님께 훈도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이신 복되신 예수를 얻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사람과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시며 또한 하늘에서 그들로 자신과 더불어 거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인 우리는 이 대제사장 없이는 어디서고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없다.


2. 기독교인들이 그런 특권을 향유할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해서이다. 사도는 이것에 대하여 좀 더 상술한다(20절).
  1) 이 길만이 유일한 길이다.
  2) 이것은 새로운 길이다. 또 이 길이야말로 항상 효력을 발휘하는 길이다.
  3) 이 길은 생명의 길이다. 곧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며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 길은 비록 죽었으나 다시 살아나신 구세주께서 내신 길이며 또 이 길에 들어서는 사람에게 생명과 삶의 소망을 주는 길이다.
  4) 이 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길이다.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은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에 의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곧 그의 죽으심이 우리의 삶의 길인 것이다.

3. 이 특권을 위하여 지켜야 하는 의무를 보여 주고 있다(22,23절).
  1) 먼저 하나님께 바른 방법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데에로 가까이 나아가야 하며 그들이 하나님 앞에 거하게 될 때까지 더욱더 가까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첫째, 진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마음 속을 감찰하시는 분이며 마음 속에서 진심이 우러나오는 것을 원하신다. 둘째, 믿음의 굳건한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죄된 불신앙을 모두 없애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셋째, '우리의 마음에 뿌림을 받아서 양심의 악을 깨달음으로써'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죄책과 죄로 인해 인간의 양심이 범하기 쉬운 모든 악한 것들로부터 씻음을 받게 될 것이다. 넷째, 우리의 몸을 맑은 물로 씻음으로써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의 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의 모든 불의까지도 제거해 주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힘입음으로써 우리의 몸을 깨끗게 하여야 한다.
  2) 모든 믿는 자들이 그들의 신앙 고백을 확고히 붙잡는 것은 의무이기도 하다. 첫째, 우리의 영적인 원수들은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우리에게서 빠져 나가도록 총력을 다할 것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 둘째, 흔들리지 않는 것은 우리가 당연히 견지해야 할 태도이다. 흔들리기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넘어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셋째, 이런 의무를 지켜야 하는 동기와 이유는 '약속하신 이가 미쁘시기 때문이다'(23절). 그는 조금도 거짓이 없으시므로 우리에게도 그렇게 대하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약속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더욱 확고하게 의지해야 한다.

4. 사도는 우리의 충성심과 인내를 더욱 향상시키는 길을 보여 주고 있다(24,25절).
  1) 우리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여야 한다(24절)'. 기독교인은 서로간에 관심과 사랑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좋은 모범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는 것은 가장 훌륭한 선행이며 가장 효과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된다.
  2)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않아야 한다(25절).' 당시에도 모이기를 피하여 믿음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있었다. 성도간의 교제는 서로에게 매우 큰 도움을 주는 것이고 특권이며 또한 믿음의 꾸준함과 인내를 주는 좋은 방법이다.
  3) 서로간에 돌아보아 서로를 권고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들 자신도 열심을 낼 뿐만 아니라 이웃도 경건한 열심을 내도록 권면하여야 한다. 이것이 아마 가장 훌륭한 선린이요 우정이 될 것이다.
  4) 우리는 시련의 때가 다가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기독교인은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시대의 징조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장차 다가올 시험의 때와 죽음의 시기가 있다. 우리는 이것들이 다가오는 것을 경성하여 살펴볼 줄 알아야 하며, 그날이 다가올수록 더욱더 경계하고 의무를 힘써 행해야 할 것이다.

5. 사도는 자기의 권고를 더욱 강조한다(26,27절).
  1) 배교의 죄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므로 권고하고 있다. 그는 이 배교의 죄를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범한 죄'라고 말한다. 여기서 언급된 죄는 최종적이며 전적인 배교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미 신앙을 고백했던 사람이 유일하신 구세주 그리스도를 배척하며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인 복음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2) 이러한 배교자들의 두려운 파멸을 말하므로 위에서 한 권면을 강조한다. 첫째, 이런 죄를 속하기 위한 또 다른 희생 제물은 없으며 이런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실 또 다른 그리스도는 계시지 않는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이 복음의 시대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그들을 위해 준비된 또 다른 피난처는 없는 것이다. 둘째,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서는 단지 무서운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27절). 하나님께서는 이런 지독한 악인에게는 무서운 파멸을 내리실 것이며 그들은 벌써 땅에 있는 동안 그들의 양심에 미리 두려움을 느끼고 이것을 피하지도 견디지도 못하리라는 절망감으로 몸부림칠 것이다.
  3) 모세의 율법을 모독한 자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공의의 징계를 들어서 말하고 있다. 그들은 두. 세 증인의 증언에 의하여 사형에 처형되었다. 그들은 아무런 자비를 얻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므로 사도는 여기서 그리스도를 배교하는 사람들이 떨어지게 될 두려운 운명에 대하여 피력한다. 이들 배교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발로 밟은 자들'이다(29절). 이런 자들에게 임할 형벌보다 더 큰 형벌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들은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29절). 이 배교자들도 전에는 자신들을 이 피로 거룩함을 입어야 할 죄인으로 알았으나 이제는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 또 이들의 죄가 중한 것은 이들이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령을 슬프게 하고 거역하였다. 이와 같은 행위는 가장 사악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음의 구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함으로써 어떠한 가망성도 바라볼 수 없는 절망 속에 빠져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4) 사도는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정의의 속성을 말하므로 권면을 강조하고 있다(30절). 주님의 진노에 대하여서는 계시를 통하여 그리고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익히 알려져 있다. 신명기 32:36절에는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보이는 교회를 감찰하시고 심판하여 시온에서 죄인들을 심히 혹독하게 징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본문에 나와 있듯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웁도다'하는 말로 결론을 내려야만 할 것이다(31절).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에서 오는 즐거움이 어떠한가를 아는 사람은 또한 하나님의 복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5) 사도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전에 고난을 당한 것을 상기시키고 끝까지 그 고난을 견디도록 격려한다. 그들은 전날에 복음의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을 당하였다. 자연의 상태는 어두움의 상태이다. 따라서 그 상태 속에 계속 머물러 있는 자는 세상과 사단의 훼방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은혜의 상태는 빛의 상태이다. 그러므로 어둠의 세력들이 대항하여 덤벼든다. 그들이 당한 고난에 대하여서는 본문에 '고난의 큰 싸움을 참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몸소 이런 고난을 체험하였다. 이들의 인격은 물론 이들의 이름과 평판에 무수한 비방이 쏟아졌다(33절). 기독교인은 그들에 대한 평판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신앙에 대한 평판이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비난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또 형제들에게 쏟아지는 비방과 환란으로 고통을 당했다. 기독교의 정신은 동정할 줄 아는 정신이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한 몸이며 자기 백성들의 고난 가운데서 함께 고난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이다. 만약 한 지체가 고통을 받게 되면 나머지 지체들도 고통을 받게 된다. 사도는 자기 자신의 고통에 대하여 그들이 얼마나 심히 고통을 당하였던가를 특별히 상기시킨다(34절).
어떻게 그들이 고난을 견디었던가? 그들은 인내로 고통을 견뎠을 뿐만 아니라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서는 그런 비방의 고통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로 고난을 견디게 한 요인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하늘나라에 더 좋은 그리고 영원한 재산이 준비되어 있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늘나라에 준비되어 있는 성도들을 위한 축복은 실재적인 것이다. 여기 지상에서 받는 모든 축복은 다만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 땅에서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다. 또 이 축복은 영원한 것이며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다. 천국에서 그들은 훨씬 더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이런 축복에 대한 확실한 인식은 이 세상에서 겪게 될 고난의 싸움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다.
  6) 사도는 끝까지 견딜 것을 촉구한다(35절). 그는 그들에게 확신을 버리지 말고, 그들의 고난의 원인이 되었던 그 신앙을 더욱 굳게 잡도록 권유한다. 그들의 거룩한 믿음과 확신에 대한 보상은 매우 클 것이다. 그것에 대한 현재의 보상으로는 기쁨과 거룩한 평안이며, 이후에는 더 큰, 말할 수 없는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는 또 그들에게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인내하는 은혜가 얼마나 큰 은사인지를 보여 준다(36절).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 받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이 필요하다. 또한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의 직분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만큼 기운이 쇠진했을 때는 하나님께 새 힘을 바라는 종이 되어야 한다. 또 사도는 그들이 인내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오실 때가 가까이 왔음을 확언한다. 그 정한 때가 있으며, 그 때에 그는 반드시 올 것이다.
  7) 사도는 인내가 그들의 축복이 될 것이며 배교는 욕이 될 뿐만 아니라 파멸에 이를 것이므로 인내할 것을 촉구한다(38,39절). 대 환란의 때에 믿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은 의인들의 명예로운 특징이다. 믿음은 그들에게 생명과 활기를 준다. 그들은 이런 어려운 때에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 의지하며 산다. 믿음으로 영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이후에 영생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다. 배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자의 표식이다. 또 배교는 하나님의 진노와 책망의 원인이 된다. 사도는 자신과 유대인들에 대한 긍정적인 소망을 언급하면서 이 장의 결론을 맺고 있다(39절). 신앙을 고백한 사람은 거보를 앞으로 내딛을 수 있으며 혹은 뒤로도 물러날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후퇴하는 자는 파멸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파멸의 구덩이는 더 가까워 지는 것이다. 과거에 큰 시련을 당하고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사람들은 믿음으로 사는 동안 그들이 전날에 받았던 것과 동일한 은혜가 그들을 항상 도와줄 것이라는 사실을 기대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믿음 안에서 살고 믿음 안에서 죽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영원히 구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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