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24절)
실제적인 교회 행정 - 본서의 결론부로 실제적인 교회 행정 곧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고린도 교인들의 연보와 몇 가지 부탁, 문안 인사로 이루어져 있다. 본장은 특히 추상적인 말이나 사상에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삶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바울의 신앙적 자세를 잘 보여 준다.
(1~4절)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헌금 - 본문은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연보 문제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연보는 중요한 행사의 하나로 바울은 가는 곳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연보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고후 8, 9장; 갈 2:10). 한편 예루살렘 교회가 특별히 어려웠던 것은 예루살렘 교회에는 원래 빈민층 신자가 많았으며, 여러 번의 흉년으로 인한 기근(행 11:27~30), 유대교인들의 가혹한 박해로 말미암은 핍절 때문이었다.
[2절]
매주일 첫날에. 오늘의 주일(主日)을 의미한다. 초대교회에서는 주로 안식일에 정규적인 모임을 가졌으나(행 15:21; 행 18:4) 차츰 예수께서 부활하신 한 주간의 첫날, 즉 주일에 정기적인 모임을 갖게 되었다(행 20:7). 이 두 모임은 상당히 오랫동안 병행되었으나 유대교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와 기독교의 성장으로 말미암아 두 종교간의 차이가 분명해지면서 A.D. 4세기초에 주일이 기독교의 안식일로 확정되었다<요 20:19, 주일의 기원과 그 의미>. 한편 바울의 정기적인 헌금에의 권면은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구제의 요구라기보다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의 요청이다<고후 9:1, 헌금에 대하여>.
[3~4절]
헌금을 자신이 직접 관리하지 않고 고린도 교회가 인정한 자들에게 맡기려는 바울의 순수한 태도를 볼 수 있다(벧전 5:2).
(5~9절)
바울의 여행 계획 - 바울의 변경된 여행 계획에 대한 언급이다. 본 서신은 A.D. 55년경 유대인의 유월절 이전에 에베소에서 기록된 것이다. 바울의 최초 여행 계획은 에베소를 출발하여 해로(海路)로 고린도를 방문한 후 마게도냐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고린도에 들를 예정이었다(고후 1:15, 16). 그러나 바울은 이 계획을 변경하여 마게도냐를 먼저 방문한 후 돌아오는 길에 고린도를 방문하겠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일부 고린도 교인들은 그를 신실치 못한 자, 변절자라고 비난하였다. 그러자 바울은 여행 계획을 바꾼 것이 자신의 안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비방거리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후 1:17~24).
[6절]
과동(過冬)할 듯도 하니. 구체적으로는 A.D. 57년말에서 58년초까지의 3개월 동안을 의미한다. 고린도에서 체류한 이 기간 동안 바울은 로마서를 집필하였다(행 20:1~3). 너희가 너를...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전도 여행 계획에 찬성하여 그의 필수품을 공급함으로써 그를 격려토록 하기 위함이라는 뜻이다.
[9절]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을 의미한다.
[10~11절]
디모데가 이르거든. 바울이 본 서신을 쓰고 있을 때 디모데는 에라스도와 함께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로 가는 도중이었다. 한편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디모데를 잘 대해 주라고 특별히 부탁했던 것은 고린도 교회 내에 있는 바울 반대파들의 냉대와 디모데의 연소함과 내성적 성격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후배 동역자를 위해 진심으로 배려하는 바울의 관대한 태도를 볼 수 있다(빌 2:25~30).
[13절]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어떠한 도전에도 굴복하지 말라는 뜻이다(살전 4:14).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신앙의 미성숙이나 연약함을 떨쳐버리고 승리하신 예수를 힘입어 지혜와 용기와 능력으로 대처하라는 의미이다.
[17절]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고린도 교인들의 바울을 향한 애정과 충고의 필요성을 전해 줌으로써 바울에게 용기와 기쁨을 주었다는 뜻이다.
[18절]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만일 고린도 교회에서 소식이 없었다면 바울은 쉼을 얻지 못하고 답답한 상태에서 계속 고통을 당했을 것인데, 전해 준 소식으로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오해와 불안을 씻게 되고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큰 유익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19~24절)
마지막 문안 인사 -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문안과 축도를 함으로써 본서를 끝맺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문안과 축도는 교회의 본질을 나타내는 성도들의 교제의 한 형태이며 참된 교제를 통해 주 안에서 서로 하나됨을 확인케 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19절]
아시아의 교회들. 오늘날의 아시아 지역이 아니라 에게해에 면한 소아시아 지방의 교회들, 즉 에베소,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교회 등을 가리킨다(행 19:10; 계 2, 3장). 
[22절]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이 말은 헬, '마라나다'인데 원래 아람어를 음역한 것으로서 초대교회 당시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인사말이다. 따라서 본절의 내용은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고 해석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초대교회의 간절한 기도로서 고난의 현실을 인내하는 힘의 근거가 되었으며(계 22:20),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궁극적인 바람이 한마디로 응축되어 표현된 것이다.

 

# 해설

연보를 요청함 (1~4절)

본장은 본서의 결론 부분이며 본문은 초대 교회 당시, 기근(행 11:28) 등으로 인해 곤경에 빠져 있던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연보 요청이다. 바울은 이 밖에도 여러 차례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와 연보의 요청을 한적이 있거니와(고후 8, 9장), 본문은 개교회 중심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진 성도들에게 교훈하는 바가 크다.

개인적인 요청 (5~18절)

바울의 변경될 전도 여행 계획(5~9절)과 함께 바울을 도왔던 인물들 곧 디모데, 아볼로 등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배려를 부탁하고 있다.

마지막 문안 인사 (19~24절)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문안과 축도이다. 이와 같은 형식으로 편지를 끝맺는 것은 바울 서신의 일반적인 특징 중의 하나이다(고후 13:11~13; 갈 6:18).

 

# 핵심

1~9절

바울은 본서를 종결 짓기에 앞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를 부탁했다. 그리고 가능한 자신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계획임을 밝혀 그들로 대비하게 했다.

 

# 묵상

하나님의 때 (1~9절)

바울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대적하는 자들이 많은 예베소에 오래 머무르면서 보다 많은 전도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자신의 뜻과 경륜을 이루어 가십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구원의 섭리로 큰 부흥과 전도의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고난의 박해로 인하여 섭리하시는 때도 있습니다.

디모데의 연소함 (10~11절)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며 디모데의 연소함을 인하여 고린도 교회가 그를 멸시할 것을 많이 염려했습니다. 교회가 주의 일꾼들을 대하는 근거는 하나님의 권위와 소명에 있습니다. 나이와 외모와 학력 등의 외적인 조건으로 교회의 일꾼을 판단하는 것은 결코 올바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에 있는 것처럼(고전 4:20), 하나님의 일꾼도 성령의 능력으로 증거됩니다.

아볼로를 향한 권면 (12절)

교회의 일은 어느 한 사람의 독단적인 지도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는 섬김으로 이루어집니다. 바울이 아볼로에게 권면한 것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합당한 것이었으나, 아볼로의 신앙과 양심은 다른 뱡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동일한 교회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으나, 언제나 동일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지엽적인 수단의 문제와 핵심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분간하는 것은 교회의 화목을 가져옵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 (15~18절)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복종과 순종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겸손과 온유를 본받는 공동체입니다. 성도는 열심히 일하는 교회의 사역자들을 마땅히 존경해야 하며, 그들의 수고에 대한 합당한 감사와 협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의 심판 (22절)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주님의 날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율법이 가르치는 크고 첫째되는 계명을 이루는 것입니다(마 22:37, 38).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믿음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신 계명들을 성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요 5:2, 3).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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