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입맞춤

[누가복음 15장 18절~21절]
18절 -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절 -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절 -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절 -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누가복음 15장에는 유명한 세 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한 목자가 양 백마리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려 양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들로 산으로 떠나간다는 말씀과 또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 중에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리자 온 방안을 뒤지고 등불을 켜들고 빗자루로 쓸며 마침내 찾으니까 온 동네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잃어벼렸던 아들이 돌아오는 탕자의 비유 말씀입니다. 이 세 가지 비유의 말씀은 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이렇게 기다리시고 심히 기뻐하시며 중요하게 보신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중 오늘 살펴볼 탕자의 비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작은 아들이 나쁜 친구의 꼬임에 빠졌는지 아버지께 자기에게 돌아올 재산을 달라고 졸라대서 마침내 많은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는 그 돈을 온갖 쾌락과 사치를 좇는데에 다 탕진해 버렸습니다. 마침내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지자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다 마침내 돼지를 치는 집에 찾아가서 돼지를 치면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며 지냈습니다. 너무너무 고생스러우니까 우리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풍족하고 품꾼도 많은데 이제라도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염치 불구하고 발길을 돌이켜 아버지를 향하여 돌아옵니다. 돌아오면서 그는 마음 먹기를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으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만 써 주시옵소서 해야지' 하고 돌아오는데 거지가 되어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아버지는 멀리서부터 알아보고 달려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어 주었습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아버지를 멀리 떠나 많은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꼴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더럽다고 하지 않고, 책망하여 내쫓지 않고, 도리어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여기서 '입을 맞추었다'고 하는 말을 원문대로 정확히 하면 '입을 많이 맞추었다'-and kissed him very much(eagerly)입니다. 아버지는 그 거지 같은 아들을 끌어 안고 많은 입맞춤을 해 주었으며 옷을 갈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찐 소를 잡아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해타산을 초월한 사랑이요, 한이 없이 주고 또 주는 사랑임을 여기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맏아들이 보기에는 자기 동생이 많은 재산을 탕진한 것과 같이, 그 탕자에게 많은 입맞춤을 해주고 옷을 갈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살찐 소를 잡아 잔치하는 아버지를 볼 때 쓸데없이 재산을 허비하는 것 같이 보였을 것입니다만, 그 아버지의 사랑은 이해타산적인 생각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탕자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무한히 주는 사랑이 필요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아내 고멜이 도망가면 데려오고 또 도망가면 또 데려오고 그렇게 도망가면 많은 돈을 물어주면서까지 데려왔다고 하는 것은 무한히 주고 또 주는 한없는 사랑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다고 하는 말씀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죄가 많다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어떠한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 앞에 손들고 나오면 하나님은 다 반겨주시고 과거를 묻지 아니하시고 용서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의 죄를 씻어주시고, 자복하고 회개하는 그 입술에 입맞춤해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아버지께서 보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보시고'란 말에는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죄인인지를 알아보십니다. 또 참회하는 모습, 회개하는 마음도 알아보십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가 측정할 수 없는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 중심, 가슴 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것입니다.
또 '뛰어가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들은 어깨가 푹 쳐져서 걸어왔지만 아버지는 뛰어갔습니다. 이 빠른 아버지의 동작에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은혜주시고 축복하시기를 속히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농촌에 한 아름다운 가정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 주위에는 대추나무,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앵두나무가 둘러 있고 건너편은 멀리 기차길이 있어 하루에 몇 차례씩 기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집의 외아들이 나쁜 친구의 꼬임을 받아서 많은 돈을 훔쳐가지고 멀리 도망을 갔습니다. 그 부모는 돈을 잃어버린 것보다 자기의 귀한 아들이 없어진 것을 더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돈은 다 없어졌어도 내 아들이나 무사히 돌아왔으면…" 하고 날마다 날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 아들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반가운 아들의 눈물로 얼룩진 편지를 읽어보니 '아버지 어머니 내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많은 재산을 훔쳐가지고 와서 다 탕진해 버리고 이젠 거지꼴이 됐습니다…이 못된 자식을 용서해 주실런지요?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 자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부탁드리는 것은 내가 죽기 직전에 기차를 타고 우리집 앞 동네로 지나갈텐데 만일 나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면 집 앞에 흰 수건을 하나 걸어 주십시오. 만일 흰 수건이 걸려있는 것을 보면 나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으로 알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아들의 편지를 보고 너무너무 반가워서 아들이 지나간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다가 그 날이 되자 아침부터 큰 흰 홑이불을 가져다 대추나무에 걸어 놓았습니다. 혹시나 그것도 안보일까봐 흰 보자기와 천은 있는대로 다 내다 앵두나무에도 걸어놓고 사과나무에다가도 걸어 놓았습니다. 아들이 기차를 타고 지나갔습니다. '흰수건이 걸렸을까? 안걸렸을까?…'하고 마음을 졸이고 가는데 이윽고 동네 앞으로 지나가다 자기 집앞을 바라보니 나무마다 온통 하얗게 걸려있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반가이 맞아주시고 그 아들은 깊이 회개하고 이후로는 순종하며 효도하는 아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 주는 본문 말씀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고 하는 아버지의 많은 입맞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 한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앞에서도 누누히 말했듯이 아버지의 사랑은 편협한 사랑이 아니요, 없는 사랑을 있는 체하는 위선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주고 또 주는 한없는 사랑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가끔 어쩌다 사랑해 주는 간헐적인 사랑이 아니라 끊임없이 쏟아 부어주시는 넘치는 사랑이요, 한없는 사랑입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은 진심으로 사랑해 주시고 헤아릴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2. 완전한 용서를 의미합니다.
이 탕자는 아버지께 고백할 죄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누누히 고백하기 전에 이미 아버지는 그 아들을 용서해 주었다는 것을 이 입맞춤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받았다고 죄를 고백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이미 씻어 주셨으나 더 겸손히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기를 주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솔직히 자복하고 회개하는 그 입술에 용서하는 입맞춤을 해 주실 것입니다.
사 44:22절에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 43:25절에도 보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분명 이 아버지는 회개하는 탕자에게 이렇게 말씀했을 것입니다. '내 아들아, 나는 네 과거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3. 완전한 회복을 의미합니다.
아들은 '나를 품꾼의 하나로 써 주소서' 하고 말할 결심을 먼 나라에서부터 하고 풀 죽은 모습으로 아버지께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의 목을 안고 입맞추어 줌으로써 사랑하는 아들로 그를 맞아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입맞춤은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는 증거였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사단의 자식이었던 악한 죄인이라도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나의 귀한 아들이라고 입맞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4. 아버지의 한없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탕자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춰주는 그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아버지의 한없는 기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기쁨이 넘쳐 억제할 수 없음을 입맞춤을 통해 나타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춤을 추고 풍악을 울리며 잔치를 하는 동안에도 아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자꾸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죄인이 돌아왔을 때 이렇게 기뻐하십니다. 성경 말씀에 보면 죄인 하나가 돌아왔을 때 하나님은 천군 천사와 더불어 기뻐하신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한 사람의 영혼이라고 구원받도록 하나님께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5. 넘치는 위로를 의미합니다.
그 아들은 오랫동안 먹지도 못하여 배고프고 먼길을 걸어오느라고 지치고 기진맥진했을 것입니다. 또 죄책감으로 풀이 죽어 돌아왔을 것이지만 아버지가 목을 안고 반갑게 입맞춰 줌으로써 이 아들은 크나큰 위로와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탕자는 과거를 걱정하고 추한 현재의 모습도 걱정했을 것입니다. 또 앞으로 내 운명이 어떻게 될까 미래를 걱정했을 것이지만 아버지는 모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염려를 깊은 입맞춤으로 제거시켜 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겔 11:19,20절에 보면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겔 36:26절에도 보면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죄인이라도 상하고 찢긴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며 돌아올 때 그 모든 것을 치유하시고 위로해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6. 가까운 교제를 의미합니다.
입맞춤은 가장 가까운 친밀한 교제를 나타냅니다. 특별히 가족들과 교제하기 전에 아버지의 입맞춤이 있었기 때문에 이 탕자에게는 잔치도 좋았고 노래소리도 즐겁게 들렸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기 전에 아버지의 입맞춤이 먼저 있지 않았다면 이웃과 친족이 초대되었을 때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더욱이 형님과 만나기 전에 아버지의 입맞춤이 없었다면 아마도 형의 불평하는 말을 듣고 심히 낙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아버지의 사랑을 먼저 체험했기 때문에 형이 무어라 불평을 해도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탕자의 아버지의 많은 입맞춤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표현입니다. 완전한 아들로서의 회복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의 표현입니다. 넘치는 위로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과의 가까운 교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큰 하나님의 은혜의 입맞춤을 간절히 사모하고 그에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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