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16절)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 본장은 1:17절에서 언급된 전도의 자세를 점층적으로 설명해 준다. 즉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비교한 전장에 이어 본장은 복음 전파의 방법과 복음 전도가 오직 성령의 사역임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이 고린도 전도에서 인간의 지혜와 철학적 사변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성령의 지혜만이 완전하며, 인간적인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 복음 전파에 실제적인 장애가 되며, 십자가를 의지할 때 복음의 능력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5절)
구원의 근거 -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구원이 인간의 지혜나 능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성령을 의지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전파했다.
[1절]
내가 너희에게...전할 때.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중 고린도 지역을 방문한 주후 52~53년경을 의미한다. 그때 그는 그 지역에서 약 1년 반 동안 전도 활동을 하였다.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보다는 인간적인 지혜, 즉 철학, 수사학, 웅변술 등에 더 치중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책망한 것이다. 바울은 설교자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말의 논리성이나 지식의 정도, 문장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성령의 지혜와 능력임을 체험적으로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전도 사역 과정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고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과 하나님의 능력에만 의존하였다(4, 13절; 마 10:19, 20).
[2절]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의 이러한 결정은 바울이 개종할 때 겪은 신앙적 체험과 철학적 지혜로 설교를 하다가 실패한 아덴에서의 전도 경험이 배경이 된 것이다(행 17:22~34). 이를 통해 바울은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만이 참된 것이며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순수하게 전하는 것이 가장 옳은 길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3절]
약하며...심히 떨었노라. 바울이 심히 두려워 떤 일차적인 원인은 아덴에서의 전도 실패, 유대인들의 훼방과 대적, 고린도인들의 철학적 사변과 교만한 태도, 도덕적 타락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이유는 첫째, 자신의 결심을 변개시켜 철학적 지혜와 사변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둘째, 자신의 부족함으로 복음의 능력이 가리워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인간적인 모습, 즉 백절 불굴(百折不屈)의 위대한 신앙과 더불어 자신의 인간적인 나약성을 인식하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겸손하게 고백하는 그의 진실한 마음과 인격적인 태도를 볼 수 있다(엡 6:19, 20).
[5절]
복음 전도의 기본적인 원칙이 나와 있다. 즉 참된 전도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진리를 설파하는 것이며, 복음 전파자들은 자신의 연약성을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하며, 복음 전도의 성공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존하며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의 근거는 이성이나 신학의 논리적 전개가 아니라 진리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령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권능이다.
(6~16절)
성령의 구원 사역 -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이 구원 계획은 세상 지혜와는 별개의 것으로 성령의 사역과 깊은 연관이 있다. 또한 성령의 사역은 성도들의 영적 통찰에 의해서만 이해 될수 있다.
[7절]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죄인의 구원을 의미한다. 이 계획은 만세 전부터 하나님의 주권하에 주도 면밀하게 추진되어 왔으며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되어 오다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으로 마침내 성취되었다.
[8절]
이 세대의 관원. 공중 권세 잡은 자, 즉 사탄을 의미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여기서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 관원들을 의미한다.
[9절]
사 64:4절의 내용과 흡사한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는 점과 계시의 깨달음은 성령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10절]
오직...성령으로. 이것은 성령의 단독적인 구속 사역과 성령의 인격성 및 신성을 특별히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의 깊은 것. 세상 지혜로는 완해(完解)할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한 경륜, 즉 하나님의 존재, 속성, 그분의 생각, 구속사 등을 의미한다(롬 11:33).
[11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성령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사람의 속에 있는 영을 예로 든다. 즉 인간 내면의 감정, 생각, 계획 등을 가장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자신의 영인 것처럼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모두 알고 있는 분이라고 강조한다.
[12절]
세상의 영. 마귀 등의 실제적인 영적 존재들을 의미하기보다는 세상의 지혜나 합리적 이성을 추종하여 하나님이나 신앙 등의 초월적 가치를 부인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13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신령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전적 무지와 성령의 조명과 인도가 있을 때 비로소 구원이 가능하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14절]

육에 속한 사람.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모든 가치를 육체적, 물질적 기준에서 평가하는 사람을 뜻한다.

[15절]

신령한 자. '육에 속한 사람'의 상대어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16절]

우리가...가졌느니라.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성도들 마음속에 성령이 함께하시고, 성도들이 주의 마음을 본받는 것을 의미한다(마 11:29; 빌 2:5).

 

# 해설

하나님의 능력 (1~5절)

제2차 전도 여행 중 바울이 고린도 지역을 방문한 것을 배경으로(행 18:1~17) 하는 본문은 복음 전도의 기본 원칙을 명시하는바, 첫째 오직 그리스도와 십자가만을 전파하며(2절), 둘째 성령의 능력에 의지(4절)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울은 복음 증거를 마땅히 수행해야만 하는 당위적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었고(9:16, 17), 자신은 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령의 도구로 사용될 뿐임을 철저히 깨닫고 있었다(15:10).

성령의 조명 사역 (6~16절)

바울은 이제 영원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제시하면서(7절), 그것은 성령의 사역과 조명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음을 밝힌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결국 실패하고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성령의 일을 거부하고 미련하게 여길 것이다(14절).

 

# 핵심

1~5절

전도자로서 바울은 성령의 능력에 의지해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도만을 전하였다. 이는 전도란 세상 학식과 유창한 언변으로 행하는 것이 아님을 그가 체득하였기 때문이다.

 

# 묵상

전도의 능력 (1~5절)

전도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련해 보이는 방법입니다(1:21). 그러므로 전도의 능력은 인간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과 함께 기도가 있어야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자신에게는 그 능력이 없다는 철저한 겸손함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기도를 통하여 주어집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세상 (8~12절)

세상이 그리스도를 못 박은 것은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지혜를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신 이러한 구원의 지혜는 오직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만 증거됩니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신령한 구속의 의미와 적용은 성령의 은혜를 통하지 않고서는 누구에게도 주어질 수가 없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 study
(1~9절)
문안 인사와 감사 - 본서 전체의 서론에 해당하는 본문은 바울이 앞으로 쓰고자 하는 메시지의 내용이 압축, 요약되어 있다. 또한 본문은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사도권 변호, 문안 및 감사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본서가 공중(公衆)을 위한 편지임을 처음부터 분명하게 보여 준다<살후 서론, 서신서의 인사말과 사도권의 주장>.
[1절]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울의 사도직 권위의 기원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행 9:15; 롬 1:1; 갈 1:1). 이처럼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 권위를 극구 변호한 것은 자신의 명예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울의 빈약한 외모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과거 행적으로 인해 일부 교인들이 그의 사도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며, 자신의 소명의 진실성을 증거하고 그가 쓴 서신들의 영감성과 신적 권위를 확증하기 위함이다. 형제 소스데네. 그가 누구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행 18:17절의 고린도 회당장 소스데네와 동일 인물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는 후에 기독교로 개종하여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으며 본서를 대필하였다.
[2절]
하나님의 교회. 이것은 고린도 교회가 비록 분열, 도덕적 타락, 영적 미성숙 등으로 혼란과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지만 그들도 역시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의 구속적 섭리 가운데 있음을 확증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과 하나님의 교회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바울의 겸손한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는 지상의 유형적 건물이나 조직과 동일시될 수 없고 어느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가 교회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으며, 교회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임을 깨달을 수 있다.
[3절]
은혜와 평강. 거칠고 험한 인생길에서 지친 인간에게 평강은 그야말로 사막의 샘물처럼 사모할 만한 것이다. 더욱이 죄인인 우리는 아무 능력이 없으니 오직 은혜와 축복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 좇아 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결국 믿음의 대상과 그 기쁨을 깨달은 것과 같다.
(4~9절)
선재적(先在的) 감사 - 본문에 언급된 바울의 감사는 고린도 교회의 현재 모습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온전히 성장시켜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어 주실 미래상을 믿음으로 미리 내다보고 드리는 감사이다. 이것은 인간 속에 내재한 부패한 속성을 보기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바울의 긍정적인 믿음과 타인에게 내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울의 이타적인 사랑의 정신을 잘 보여 준다.
[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말은 바울 신학의 핵심 사상과 그의 신앙 생활의 원동력과 비결이 응축된 것이다<엡 2:7,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으며(요 1:14),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5절]
헬라인들은 선천적으로 지혜와 지식의 욕구가 강했다. 그중에서도 고린도 지역은 아덴과 더불어 철학적 지식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했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화술에도 능숙했다(18~25절). 한편 본절의 모든 구변은 깨우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모든 지식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복음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7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기다림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에 계시된 모든 예언의 절정이며 구원 언약의 최종적 성취이다. 주의 재림에 대한 소망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가장 큰 신앙적 특징의 하나로 고난에 대한 승리와 순교의 근거가 되어 왔으며 오늘날도 교회 내의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마 13:24~30).
[8절]
주께서...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인류 구원의 전과정이 오직 삼위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으로만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이것은 성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성도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다. 한편 구원은 단순히 죄로부터의 돌이킴만을 의미하지 않고, 소명→중생→회개→신앙→칭의→양자→성화→견인→영화의 전과정을 가리킨다.
(1:10~4:21절)
분쟁에 대한 교훈 - 본서의 본론이 시작되는 부분으로 고린도 교회 내에서 발생한 분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한편 바울이 분쟁 문제를 제일 먼저 취급한 것은 분쟁이 교회에 미치는 악영향의 심각성과 치명성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본문은 먼저 분쟁의 진상에 대해 언급한 후(1:10~17), 그 분쟁의 원인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의 지혜에 대한 과신(1:18~2:16)과 인간적인 교만(3:1~23)에 있음을 밝히고, 결론적으로 하나 될 것을 간곡하게 권면하고 있다(4:1~21). 본문에서 바울은 특별히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를 극명하게 대조시킴으로써 인간의 무능과 부패성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적으로 신뢰할 때만 사랑과 소망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10~17절)

고린도 교회의 분쟁 소식 - 고린도 교회의 분쟁 해결을 위한 도입부로 분열의 첫째 원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잘못된 인식임을 밝히고 있다.

[10절]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대원칙이 두 가지로 압축되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권위에 전적으로 순복(順服)하는 것과 동일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12절]

나는...에게...에게...에게. 실제에 있어 게바, 아볼로, 바울은 한 분 그리스도를 충심으로 섬겼던 것인데, 성도들이 인간적 생각으로 각자의 강조점과 교훈의 방법이 다소 다르다 하여 어느 하나만을 진리의 전부인 양 주장한 것을 말한다.

[13절]

바울이...바울의 이름으로. 바울은 반어법(反語法)을 사용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은 그리스도이시며 세례도 오직 그리스도의 권위로만 베풀어진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또 자신이 이름을 사용한 이면(裏面)에는 그들이 추종하는 아볼로나 베드로도 바울과 동일한 입장임을 암시한다(3:5).

[17절]

말의 지혜. 고린도 지역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곳 교인들조차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을 철학적 사변이나 지식의 한 종류로만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했다. 이것이 그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의 철학적 사변을 무익한 '말 장난'으로 일축해 버리고, 참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전적인 신뢰이며, 사랑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믿음임을 강조한다(갈 5:6).

(18~25절)

하나님의 지혜 - 지혜는 그 말이 아니라 내용과 능력으로 판단되어야만 한다. 즉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도는 불신자들에게 비록 미련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생명을 구원하는 반면, 사람의 지혜는 아무리 고상하고 놀라운 것일지라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하며 결국 멸망을 자초하고 만다(사 29:14).

[20절]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세상 지혜를 자랑하는 모든 자를, 선비는 유대의 서기관 및 율법 학자를, 변사는 헬라 철학과 말에 능한 변론가들을 의미한다. 본절은 특히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무능과 무지를 적나라하게 파헤침으로써 인간이 소유한 지식의 한계성 및 상대성과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참된 구원 행위를 분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21절]

본절은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인간의 무능력한 모습과 그런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인간을 찾아오셔서 대속 제물이 되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며 기독교의 계시 의존적인 성격이 잘 부각되어 있다(골 1:25~27).

[22절]

유대인...헬라인. 일차적으로는 지연(地緣)적이고 종족적인 유대인과 헬라인을 일컫지만 본절에서는 폭넓은 의미로 모든 세상 사람들을 총칭한다. 즉 유대인은 구약 시대로부터 하나님의 계시를 접했던 자들을, 헬라인은 하나님의 계시와는 무관한 이방인 전체를 상징한다.

[24절]

부르심을 입은 자들. 이는 그리스도에 대해 단순히 인식하는 차원을 넘어 주를 믿고 중생한 자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그 중심이 변화되는 것은 표적 중의 표적이요 최고의 지혜이다. 믿는 자들은 헬라인이든 유대인이든 상관없이 모두 하나님 안에서 세상을 초월하는 참된 능력과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25절]

하나님의...강하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사람의 지혜를 대조시키고 있는 본문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우월성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전적인 신뢰의 필연성이 강조되어 있다.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신뢰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만 가능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참된 지혜와 능력이 간직되어 있다.

(26~31절)

하나님의 섭리 - 본문은 세상의 미련하고 약한 자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하나님과 세상과의 역설적인 대조를 보여 준다. 이것은 구원받은 자들이 스스로 자랑치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가치 판단 기준은 인간의 기준과 전적으로 다르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는 인간에 의해 조금도 제약받지 않는 자유로운 것임을 잘 나타내 준다.

[28절]

천한 것들과...없는 것들. 세상적 안목으로 볼 때 소외받는 계층을 의미한다. 이들은 사회의 모든 기득권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어 핍박과 차별, 천대와 설움을 받는 자들의 상징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들어 하나님의 유업을 잇게 하신다. 뿐만 아니라 종말론적 심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나라가 도래할 때 그들을 그 나라의 참 주인공으로 등장시키심으로써 가진 자와 지혜 있는 자, 권력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정하고 신비로운 섭리로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진리와 세상의 기득권에 안주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30절]

너희는...예수 안에 있고. 이 말은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속하여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라'는 뜻이다.

[31절]

주 안에서 자랑하라. 세상 지혜의 순간성과 하나님 지혜의 영원성이 전제된 것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바라는 것만이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참된 것임을 강조한다.

 

# 해설

문안 인사 (1~3절)

본서 전체에 대한 서론(9절까지)의 첫 부분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당시 도덕적, 영적 혼란과 파쟁(派爭)을 겪고 있던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문안 인사이다. 세속적인 문안 인사와는 달리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의 신적 기원을 초두(1절)에 밝힘으로써 이하 전개될 내용이 신적 권위와 영감성을 갖고 있음을 확증하고 있다.

감사의 말 (4~9절)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마찬가지로(빌 1:3~7) 수신자들을 위한 감사의 말이 언급된다. 이 감사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한바 복음의 메시지가 그들의 삶 속에 견고히 자리잡을 것을 믿는 마음에서 주어진 목자(牧者)로서의 감사이다.

분열에 대한 소식 (10~17절)

이제 본론에 들어가서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다룬다. 고린도 교회 분쟁의 첫 원인은 어느 특정 지도자를 따라 형성된 파벌이 상호 적대감을 유발시킨 것이었다. 이에 바울은 13절의 강한 반문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의 유기체적 지체 의식을 강조했다(엡 4:1~16).

하나님의 지혜 (18~31절)

주지주의(主知主義)에 물들어 십자가의 도를 인식론적 차원으로만 이해하고자 했던 일부 고린도 교인들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서는 필히 언급되어야 했던 내용이다.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도(道)는 세상적인 지혜의 상대성과 한계성을 뛰어넘는 것으로서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을 가져온다.

 

# 핵심

1~9절

고린도 교인에 대한 문안 인사와 감사의 말이다. 그들이 더욱더 믿음에 견고히 서기를 바라는 바울의 간절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 묵상

하나님의 교회 (2~3절)

하나님의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부르심을 받은 무리, 혹은 공동체를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건전하게 전파되고 거룩한 성만찬이 정기적으로 시행되며, 참 믿음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 (4~8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목적은 택함받은 자들을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견고케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역사하는 교회와 성도들의 모든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부족함이 없이 부어주시는 은혜 아래서 자라는 신앙인들에게서 당연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9절)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관계 가운데 교제를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모든 죄에서 구원하시는 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죄의 결과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죄의 세력에서도 구원을 얻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됩니다.

세례 (10~16절)

한 주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교회의 일치를 가르쳐 주며 성례로서 죄사함을 의미합니다. 세례가 단순한 의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내적으로 역사하시는 참된 회개와 중생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지혜 (18~25절)

십자가의 도는 불신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생명을 구원하는 반면, 사람의 지혜는 아무리 고상하고 놀라운 것일지라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하며 결국은 멸망을 자초하게 됩니다. 성도는 인간이 소유한 지식의 한계성과 상대성을 인식하고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참된 구원 행위를 부각시켜야 합니다.

세상의 부끄러운 것 (26~31절)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부끄러운 것들을 택하신 이유는 구원의 지혜와 참된 겸손을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구원의 지식은 인간을 먼저 올바로 깨닫는 지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된 성도들은 서로를 용납하고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항상 자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입혀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미련한 우리를 택해 주셨고, 약한 우리를 택해 주셨고, 가난한 우리를 택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자랑함이 당연한 것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사랑으로 전하는 마지막 당부와 기도

[고린도전서 16장 13절~24절]
13절 -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4절 -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5절 -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절 -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17절 -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18절 -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19절 -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20절 -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21절 -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22절 -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24
23절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24절 -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바울은 고린도 형제들에게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권합니다. 스데바나 등으로 인해 기뻤다며 이들을 알아주라고 당부하는 한편, 아시아 교회들의 문안 인사를 전합니다. 특히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며 자신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들과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1. 네 가지 권면 (13~14절)
믿음은 삶의 현장에서 검증되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에 불과합니다.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명령문 형태로 네 가지 교훈을 제시합니다. 첫째,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에 굳게 서라'고 합니다. 사도들이 전해 준 복음의 기초로부터 이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합니다. 어떤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물러서지 말고 담대하게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넷째,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합니다. 인간적인 생각 때문에 갈등과 분쟁에 빠지지 말고, 성령 안에서 서로 용납하고 참된 연합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이런 교훈을 실천하는 교회가 진정 시대를 밝히는 교회입니다.
* 묵상 질문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지키고 실천해야 할 삶의 태도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바울의 권면 중에서 특별히 지금 내가 더욱 힘써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칭찬과 격려, 축복의 인사 (15~24절)
진정한 지도력은 따뜻한 관심과 배려에서 나옵니다. 복음 안에서 지속적으로 격려하고 책망할 때, 변화와 영적 성숙이 가능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인 스데바나를 칭찬하고,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아울러 에베소 교회를 포함한 아시아 교회들의 안부를 전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의 안부를 전합니다. 이어서 주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은 참된 성도가 아니며 교회를 파괴하기 때문에, 저주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엄중히 경고합니다. 지도자는 어느 누구도 포기하거나 방임해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사랑하고 축복하며 주님의 은혜와 긍휼 안에서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아시아 교회들의 문안을 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복음 안에서 내가 칭찬하거나 격려하고 축복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체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질도 나누게 하시며 위로가 필요한 자에게는 위로를 전하게 하소서. 모든 일을 행할 때에 자발적이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섬기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나눔과 동역으로 세워지는 교회

[고린도전서 16장 1절~12절]
1절 -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2절 -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3절 -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4절 -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5절 -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6절 -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7절 -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8절 -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9절 -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10절 -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11절 -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12절 -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처럼 고린도 교회도 매주 첫날 모일 때 수입에 따라 연보를 모아 두라고 당부합니다. 이 연보를 예루살렘으로 보낼 때, 합당하면 자신도 함께 가겠다고 합니다. 그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광대한 문이 열렸지만 대적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1. 아름다운 나눔 (1~4절)
성도의 필요를 채우는 일은 거룩한 책임이며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물질의 나눔을 통해 교회는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연합을 이룹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심각한 기근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방 교회들에게 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자발적이고 체계적인 헌금을 하라고 명합니다. 이런 나눔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의 구체적 실현이며,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지는 종말론적 예언의 성취입니다. 또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온 교회가 하나 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말과 혀만으로는 진정한 감동과 변화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구체적인 실천이 역사를 만듭니다.
* 묵상 질문
이방인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것은 어떤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 적용 질문
공동체 안에서 누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있나요? 특히 물질적 도움이 필요한 지체는 누구인가요?

2. 아름다운 동역 (5~12절)
하나님 나라의 일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더불어 협력하고 연대할 때,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에베소에 머무는 바울은 극심한 반대와 저항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하는 대신, 동역자들과 힘을 합해 당면한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합니다. 아울러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마게도냐와 고린도도 방문해 직접 교제할 계획을 세웁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일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사역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로 향한 디모데를 염려하고, 가지 않은 아볼로의 근황도 전합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면 넘어져도 서로 일으킬 수 있습니다(전 4:9~10 참조).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 묵상 질문
대적하는 자가 많은 상황에서 바울이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부분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누구와 어떻게 협력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기쁜 마음으로 감사히 드리기보다 제 것을 먼저 챙기려 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인색하게, 억지로 드렸던 마음을 용서해 주시고 제 마음을 예수님과 교회 사랑으로 가득 채우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부활을 소망하며 주의 일에 힘쓰라

[고린도전서 15장 50절~58절]
50절 -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절 -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절 -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절 -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절 -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절 -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절 -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절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1. 바울은 어떤 비밀을 알려 주고 있나요?(51~53절)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최후의 위대한 승리는 무엇인가요?(54절)
우리는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죽은 자들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될 것입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을 입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비밀입니다. 또한 그날이 되면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비밀이란 감추어진 하나님의 계획으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드러내신 계시 곧 장차 일어날 신비로운 섭리를 의미합니다. 성도의 부활은 마지막 날에 일어날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상식으로 상상할 수 없고 인간의 언어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기에 사도 바울은 부활의 사건을 신비요 비밀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는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소리입니다. 그날이 되면 나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자들도 변화될 것입니다. 부활한 성도들은 과거에 입었던 옷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썩음’과 ‘죽음’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죄의 지배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였습니다. 죄의 지배로 말미암아 그 결과로 멸망하는 것을 성경은 ‘사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근거로 자기 백성을 썩을 것에서 썩지 않을 것으로, 죽을 것에서 죽지 않을 것으로 변화시키셨으니 결국 사망은 그 효력을 상실하고 멸절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망의 멸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시작되어 모든 성도들의 부활로 완성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날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 25:8)라고 말했습니다.

* ‘혈과 육’, 즉 썩어 없어질 것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 없는데도, 이것만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나누어 보세요.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몸은 불완전하며 죄 아래 있으며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이 세상에서 호흡이 끊어지게 되면 이 몸은 결국 썩어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썩어질 몸을 가꾸는 데 일생을 허비하고 맙니다. 끝 모르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살아가지만 그것이 결코 구원과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함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것을 위해서 영원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는 인생을 지혜롭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은 영혼의 눈을 멀게 만들어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하고 일생 동안 영원하지 않은 것을 좇아 살다가 마침내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결국 이생의 자랑과 재리의 유혹과 삶의 걱정에 매여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생의 가을이 찾아올 때 자신이 잘못 살아온 것을 깨닫는 사람은 그나마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노욕에 사로잡혀 인생을 불행하게 마무리하곤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2. 영광스러운 부활의 순간을 바라보며 바울은 어떻게 노래하고 있나요?(55~57절) 부활을 믿는 사람이 힘써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58절)
사도 바울은 사망 권세를 조롱하며 “네 승리가 어디 있으며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합니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부활을 믿는 성도는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의 수고가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절대성을 확신 있게 설명한 바울은 구약성경을 인용해 사망을 향한 승리의 개가를 부릅니다.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앞에서 숨으리라”(호 13:14). 이것은 성도의 입장에서는 승리의 개가요 사망 권세의 입장에서는 조롱과 모욕입니다. 사망 권세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세상의 모든 인간에게 절대적인 권세를 휘두른 폭군이었으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멸망케 된 것입니다. 사망은 죄의 결과입니다. 사망은 죄를 통해서만 인간에게 자기 권세를 행사합니다. 죄가 없으면 사망은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며 인간에게 썩음과 죽음을 주지 못합니다. 죄의 권능은 율법입니다. 율법 그 자체로는 선한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에게 율법은 죄를 기억나게 하고 결국 죄의식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죄는 이것을 이용해 인간을 정죄하고 인간을 지배합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김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흔들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부활이 있기 때문에 주를 위한 모든 수고와 헌신을 하나님이 다 받아 주시고 부활의 날에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일상에서 사망 권세를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가까운 사람의 죽음 앞에서 사망 권세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간의 타락 이후 사망 권세는 인간의 역사에서 왕 노릇 해 왔습니다. 인간들은 사망 권세가 쏘는 독소를 맞고 죽어 갔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길 장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는 날 동안에도 사망 권세에 시달렸습니다. 허무주의, 무의미, 무자비,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율법으로 인해 항상 죄의식에 짓눌려 왔습니다. 이것이 내 삶 속에 여전히 역사하는 사망 권세의 실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단순히 감정일 뿐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쾌락주의에 몰두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호화로운 생활을 꿈꿉니다. 이런 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불행한 원인을 외적인 조건에서 찾고 불평과 원망과 절망과 탄식 속에 살아갑니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사망 권세가 인간을 종으로 삼기 위해 행하는 간사한 계략일 뿐입니다. 사망 권세는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는 거대한 세력입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말이 있습니다. 첫째, 우주적 종말입니다. 그날이 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군천사와 함께 이 땅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이때 잠자던 자들은 살아나고 살아 있는 자들은 변화를 받아 재림의 주를 맞이할 것입니다. 죄의 역사는 종식되고, 구속을 기다리며 탄식하던 모든 피조세계는 회복되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성이 순식간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꿈꾸는 부활의 개념이었습니다. 둘째, 개인적 종말입니다. 헬라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몸은 땅속으로 들어가 썩어 없어지고 그동안 육체 안에서 감옥살이 했던 영혼은 영원불변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몸과 영혼이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고, 몸은 사라져도 존재 자체는 여전히 실체로서 하나님의 품에서 잠을 잔다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유대와 헬라의 종말론은 모두 한 부분만을 설명할 뿐 종말에 일어날 신비의 사건을 다 표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주적 종말과 개인적 종말, 즉 유대의 종말론과 헬라의 종말론을 종합하여 부활과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세상은 사망 권세가 지배하고 있으며,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아무리 수고한다 해도 결국 안개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허망하고 덧없을까요? 우리에게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결국 사망이 전갈처럼 쏘아 대는 독침을 맞고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그날이 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잠자던 자들은 살아나고, 살아 있는 자들은 변화를 받아 하나님 나라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대한 미련과 헛된 욕망을 놓아 버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 탐욕과 어리석음에 취해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좇아 살지 않게 하시며,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은 기꺼이 포기하게 하소서.
- 날마다 삶에서 저를 얽어매는 사망 권세를 분별하고 죽음과 같은 절망에 지지 않으며,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히 살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부활체의 본질과 영광

[고린도전서 15장 35절~49절]
35절 -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절 -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절 -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절 -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절 -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절 -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절 -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절 -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절 -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절 -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절 -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절 -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절 -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절 -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절 -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죽은 자가 살아나면 어떤 몸으로 오는지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체마다 다르고 각각의 영광이 다릅니다. 육의 몸이 있듯 영의 몸도 있습니다. 첫 사람은 흙에 속했지만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으니, 우리도 흙에 속한 형상을 입은 것처럼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

1. 새로운 부활의 몸 (35~41절)
부활의 몸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 몸은 육체의 연약함과 부패함은 제거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닮은 영광의 몸입니다. 땅에 묻힌 씨앗이 전혀 다른 모습, 그러나 가장 적합한 형체로 살아나듯 우리 몸도 부활의 날에 하나님이 새로운 형체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는 과정이 될 것이고, 하나님은 각자 존재에 가장 걸맞은 몸을 주실 것입니다. 비록 지금 우리의 생각과 경험으로는 부활 이후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부활의 몸은 오염과 부패가 없는 영광스러운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장차 맞이할 영광스러운 부활 소망을 품고 현재를 사는 것이 참다운 그리스도인입니다.
* 묵상 질문
종말론적 완성의 날에 주실 부활의 몸은 어떤 모습일까요?
* 적용 질문
부활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잘 정립하고 있나요?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2. 육의 몸, 신령한 몸 (42~44절)
육의 몸은 결국 썩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육체의 부패 과정을 중단시킬 수 없습니다. 비록 몸은 땅에 묻혀 썩었을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께 힘입어 신령한 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육의 몸은 '썩음, 욕됨, 약함'일 뿐이지만, 미래에 부활하는 신령한 몸은 '썩지 않음, 영광, 강함'입니다.
* 묵상 질문
육의 몸이 땅에 묻히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나요?
* 적용 질문
성도로서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과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3. 아담과 예수님 (45~49)
하나님 나라는 자연의 법칙을 초월합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갱신이 필요합니다. 비록 첫 사람 아담의 속성을 공유한 현재의 육체는 오염되고 불완전할지라도, 둘째 사람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미래의 몸은 영광스럽고 완전할 것입니다. 성도는 썩어질 육체와 세상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한 나라에 가치와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아담의 형상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은 어떻게 다른가요?
* 적용 질문
세상과 육체에 집착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하소서. 빛에 속한 자로서 늘 깨어서 주님을 기다리길 원합니다.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소망을 가지고 주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십자가와 함께 죽고 부활의 능력으로 살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34절]
20절 -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절 -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절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절 -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절 -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절 -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절 -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절 -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절 -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29절 -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절 -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절 -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절 -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절 -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절 -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듯이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습니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얻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세를 멸하시고 나라를 하나님께 바치실 때, 사망도 멸망할 것입니다. 따라서 의를 행하고 죄짓지 말아야 합니다.

1.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 (20~28절)
아담의 범죄로 세상에 죽음이 왔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성도가 죽음 가운데서 부활할 것을 보증합니다. 아담 안에서 죽음을 맛본 사람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때에 다시 살아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재림 때 모든 성도가 부활하고, 사망이 멸망당할 것입니다. 사망이 멸망하는 순간 세상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의 발아래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만물과 함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것입니다. 부활의 날에 모든 것이 회복되며, 우리는 승리하신 주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안식과 기쁨을 얻습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마지막 날에 부활할 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2. 부활이 없는 삶의 허무함 (29~34절)
부활을 믿지 않으면 인생은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의 모든 신학과 윤리는 헛것이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살 아무런 이유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논증으로 '죽은 자를 위한 세례'를 언급합니다. 물론 바울이 이 관행을 인정한 것은 아니며, 부활이 없다면서 죽은 자를 위해 대신 세례를 받는 당시 관행이 모순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온갖 위험과 고난을 감수하며 복음을 전한 이유는 죽음 이후에 더 나은 부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부활이 없다면 허무주의나 쾌락주의가 우리를 기다릴 뿐입니다.
* 묵상 질문
죽은 자의 부활과 깨어 있는 삶은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 적용 질문
방종하지 않고, 날마다 깨어서 의를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부활의 산 소망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가지인 제가 항상 붙어 있는지 점검하게 하시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짓지 않고 의를 행하도록 날마다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부활이 있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2절~19절]
12절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절 -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절 -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절 -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절 -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절 -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절 -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절 -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시지 못했다면 바울의 전함도, 고린도 성도들의 믿음도 헛것입니다. 또 이들은 하나님의 거짓 증인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이면 이들이야말로 모든 사람 중에 더욱 불쌍한 자입니다.

1.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12~15절)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죽은 자의 부활은 당연히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첫 열매로서 이후에 이루어질 성도의 부활을 예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예수님의 부활은 믿으면서도 정작 다른 사람의 부활은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부활한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부활 역시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사도들이 전한 것이나 성도의 믿음도 모두 헛것이며 사도들은 거짓 증인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셨으며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믿는 자를 부활의 능력으로 살리십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 묵상 질문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 적용 질문
인간의 상식과 경험을 초월하는 부활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2. 이 세상의 삶이 전부라면 (16~19절)
부활은 기독교의 기초며 전제입니다. 만약 부활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의 체계는 무너지게 됩니다.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된다고 단언합니다. 성도는 부활의 능력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죄로부터 온전한 구원을 받으며, 풍성한 삶에 도달합니다. 아무리 치명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큰 죄인일지라도, 부활의 능력 안에 있으면 참된 회복과 부흥을 맛볼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 현실의 고난과 역경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게 하는 디딤돌입니다. 지치고 힘든 일이 많을수록 부활을 사모하며 천국의 영광과 기쁨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 묵상 질문
이 세상의 삶이 전부라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에 불과할까요?
* 적용 질문
부활에 대한 확신은 내게 어떤 소망과 평안을 주나요?

오늘의 기도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사셔서 저를 심판 아래 두지 않으시고 영원한 죽음에서 건져 내신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에 제멋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생명 되신 주님을 믿고 부활을 소망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복음의 핵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1절~11절]
1절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절 -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절 -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절 -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절 -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절 -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절 -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절 -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절 -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절 -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절 -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바울은 자신이 받은 대로 교회에 전합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여러 사람에게 보이셨습니다. 그중에 가장 작은 사도인 바울도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그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한다고 고백합니다.

● 복음의 핵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분은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성경대로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열두 제자와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부활은 사기극이나 환상이 아닌, 증인이 있는 사실입니다. 비겁한 도망자였던 제자들이 짧은 시간에 복음을 위한 순교자로 변화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박해자 사울(바울)이 극적으로 회심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주로 고백할 때 성령의 능력을 얻습니다.

* 묵상 질문
부활 신앙은 제자들을 비롯해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 적용 질문
부활의 능력이 내 삶에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모든 일을 질서 있고 화평하게

[고린도전서 14장 26절~40절]
26절 -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절 -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절 -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절 -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절 -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절 -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절 -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절 -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34절 -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절 -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36절 -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절 -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절 -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39절 -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절 -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바울은 모일 때 방언을 하는 경우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잠잠하라고 합니다. 예언할 때는 다른 이들이 분별하라고 합니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는 것은 하나님이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예언도 방언도 질서 있게 하면 됩니다.

1. 차례를 따라 (26~33절)
바울은 공 예배에서 방언과 예언을 할 때의 규칙을 제시합니다. 두세 사람이 차례로 방언을 하되 통역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두세 사람이 질서 있게 예언을 하되 다른 사람들이 영적 분별력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에 대한 고려 없이, 아무런 견제 없이 개인적인 감정과 판단에 따라 독단적이고 충동적으로 은사를 사용하면 무질서와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질서와 화평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은사를 사용할 때도 영적 권위에 순종합니다.
* 묵상 질문
방언과 예언을 할 때 질서를 따르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 적용 질문
은사를 사용하기 전에 모든 유익을 위해 누구와 의논하는 것이 좋을까요?

2. 문제를 일으킨 여자들 (34~35절)
바울은 과도하고 무질서하게 은사를 사용해 교회를 어지럽힌 여자들에게 엄히 경고하며 "교회에서 잠잠하라'라고 명합니다. 이 말씀은 시대적.문화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지, 단순히 여자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바울은 창조 원리에 근거해 아내는 남편에게 묻도록 함으로써, 교회에서 무분별한 질문으로 인해 가르침을 방해하는 일이 없게 합니다. 절제와 순종이 미덕입니다.
* 묵상 질문
왜 바울이 당시에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라는 명령을 해야 했을까요?
* 적용 질문
공동체의 유익과 덕을 위해서 조심해야 할 언행에는 무엇이 있나요?

3. 품위 있고 질서 있게 (36~40절)
아무리 은사가 많은 사람이라도 경거망동하면 망합니다. 바울은 '선지자'나 '신령한 자'일수록 자신이 편지로 전하는 말을 주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영적인 사람일수록 자만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겸손히 다른 사람의 리더십과 은사를 인정하고 품위와 질서를 지키며 자신의 은사를 사용할 때, 교회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아름답게 이루어집니다.
* 묵상 질문
자기 은사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의 폐해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특별히 내가 하나님의 음성으로 새겨들어야 할 말과 글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영적 은사가 있다고 해서 나만 신령한 자라고 생각하거나 제멋대로 행동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고 회개합니다. 교회의 질서와 영적 권위에 순종하며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덕을 세우는 일에 제 은사를 사용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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