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전 된 성도는 사람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23절]
16절 -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절 -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8절 -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절 -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절 -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절 -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절 -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절 -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기에 거룩하라고 권면합니다. 누구든지 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야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세상 지혜를 가진 사람의 생각은 주님께 헛것이기에 누구든 사람을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만물이 우리의 것이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16~17절)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각각의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내주하시는 거룩한 하나님 자녀요,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가 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체입니다(엡 2:21~22). 성도 개개인은 성전을 이루는 벽돌과 같습니다. 벽돌은 성전의 설계도에 맞게 다듬어질 때 가치를 발휘합니다. 스스로 거룩하다 하여 자기 모양만 고집하면 건축을 방해하는 쓸모없는 돌이 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를 버리고 사람을 터로 삼아 그 위에 자기 벽돌을 쌓으면 성전 안에 더러운 우상을 세우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멸하십니다.
* 누구든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하시나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서 내게 합당하지 못한 모습은 무엇인가요?

2.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18~23절)
이 세상의 지혜로 하나님의 높으신 지혜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최고의 지혜자이신 하나님 앞에 이 세상 지혜는 실로 어리석고 헛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가져 영적인 일들을 분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소속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도는 사람에게 소속을 둘 수 없습니다. 바울, 아볼로, 게바도 교회의 지체들일 뿐입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21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만물도 교회의 것이고 교회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우주 역사의 중심에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것이기에 그리스도께 속하고, 구속 역사는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로 진행되기에 궁극적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 세상의 지혜 또는 사람을 자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사람에게 소속되어 있나요, 예수 그리스도께 소속되어 있나요?

오늘의 기도
제 경험과 지혜를 내려놓고 '온전한 겸손'으로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제 안에 지혜롭다 하는 세상 사람과 물질을 우상으로 두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헛것으로 여기시는 것을 저도 헛것으로 여기게 하시고, 그리스도만이 주인 되신 삶을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늘 상급에 소망을 두는 하나님의 동역자

[고린도전서 3장 1절~15절]
1절 -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절 -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절 -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절 -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절 -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절 -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절 -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절 -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절 -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절 -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절 -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절 -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절 -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절 -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절 -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바울은 시기와 분쟁으로 파가 나뉜 고린도 성도들을 육신에 속한 자라 합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심고 물을 주었을 뿐, 자라게 하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지혜로운 건축자같이 그리스도의 터를 닦았습니다. 이 터 위에 세우는 이는 타지 않을 공적을 세워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동역자들 (1~9절)
신령한 사람은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삽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면 육신에 속한 사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세상은 신분과 지위를 놓고 서로 시기하고 경쟁합니다. 서로 파를 만들어 경쟁하고 자랑하며 자신들의 지도자가 최고라고 내세웁니다. 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는 종(사역자)인 것을 압니다. 다양한 역할에 따라 권한과 사역 범위가 다르지만 목적은 한 가지, 곧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것임도 압니다. 그리스도인은 서로 경쟁자가 아니라 동역자며,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습니다. 오직 자라게 하는 이가 하나님뿐이심을 잊고 살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내세우다가 자신도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 되고 맙니다.
* 육신에 속해 사람을 따르고 높이는 이들은 어떤 모습을 보이나요? 요즘 공동체 안에 생긴 시기와 분쟁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2. 그날에 밝혀질 공적 (10~15절)
교회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세워 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은혜를 주셔서 임무를 수행하게 하십니다. 바울의 사역은 터를 닦는 것입니다. 그는 다니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많은 교회의 터를 닦았습니다. 그 터 위에 세워질 상부 구조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몫입니다. 바울은 '무엇을 세우냐'가 아니라 '어떻게 세우냐'를 조심하라고 권면합니다. 다양한 건축 재료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자기가 맡은 역할을 소중히 여기고 충실하면 영원히 빛나는 영광과 상급을 받지만, 하찮게 여기면 겨우 자신만 불 가운데서 구원받습니다.
* 마지막 때 하나님은 각 사람의 공적을 어떻게 밝히시나요? 내가 맡은 사역은 무엇이며, 불 심판에 남아 있는 공적이 되려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로서 주님 사역에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동역자들과 경쟁하지 않고 협력하며, 지혜로운 건축자로서 한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온전히 세우게 하소서. 주님께만 상급을 기대하며 불타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공적을 쌓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성령의 사람에게 주신 선물, 분별력과 그리스도의 마음

[고린도전서 2장 10절~16절]
10절 -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절 -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절 -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절 -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절 -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절 -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절 -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기에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기에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들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1. 하나님의 깊은 것을 보이시는 분 (10~12절)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사람은 참현실을 발견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그분의 비밀을 성령으로 보이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속사정을 살피시는 분입니다. '통달하시느니라'(10절)로 옮긴 헬라어는 '살피다, 찾아내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성도 편에서' 사역하시는 모습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살피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생각으로 몰아가십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고,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합니다.
* 하나님의 깊은 뜻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분은 누구인가요?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특권을 얼마나 누리고 있나요?

2. 신령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 (13~16절)
영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분별력에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신령한 자'는 성령에 속한 사람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각이 열려 하나님의 모든 것을 깊이 상고합니다. 그러나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들을 무익하고 무가치하게 여깁니다. 영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의 행동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영적인 것을 분별하고 판단하면서도 자신은 세상의 가치 기준에 흔들리거나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그의 속사람이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매사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 영적인 일들에 관해 신령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은 어떤 차이를 보이나요? 일상에서 영적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 어떻게 훈련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인생임을 고백합니다. 성령께서 영적 분별력을 제게 주시고,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람과 일을 대하도록 도우소서. 육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임을 깊이 새기며 하루를 시작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성령으로 전하는 복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영광의 주

[고린도전서 2장 1절~9절]
1절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절 -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절 -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절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절 -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절 -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절 -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절 -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절 -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말과 지혜가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전했습니다. 이는 듣는 사람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하신 지혜는 세상의 지혜로는 알 수 없습니다. 만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 복음 전도 (1~9절)
복음 전도와 믿음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성령이십니다. 바울은 많은 지식과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자신의 지혜와 지식으로 복음 전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때로는 복음을 전하면서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인해 두려워하며 떨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겸손히 성령만 의지했습니다. 복음 전도자는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 위에 믿음을 세우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만세 전에 정하신 은밀한 하나님의 지혜, 즉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비밀은 세상의 지혜로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이 우리 육신과 마음으로 알 수 없는 일들까지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죄인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구속 사역의 완성자이십니다.

*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의 마음가짐에서 배우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인간의 방법을 버리고 성령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복음을 전할 대상은 누구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은혜를 알면 세상 자랑 버리고 주님만 자랑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31절]
26절 -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절 -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절 -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절 -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절 -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절 -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천하고 멸시받는 자들을 부르심은 세상에서 지혜롭고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아무 육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신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1. 세상 기준과 다른 부르심 (26~29절)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어떤 차별도 조건도 없습니다. 바울 시대에 육체의 자랑거리는 지혜, 정치적 힘, 문벌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학벌, 지위, 집안 배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를 폐하시고 세상 기준과 반대로 미련하고, 약하고, 천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이는 누구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만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복음은 모두를 위한 것이며,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차별 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세상의 자랑거리가 많으면 하나님을 찾기 어렵습니다. 지혜로운 자, 강한 자, 부유한 자에게는 더 큰 겸손이 요구됩니다. 비록 미련하고 약해도 자신을 비워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면 하나님 능력을 드러내는 통로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 미련하고 약한 사람을 부르시는 것에서 하나님의 어떤 성품이 느껴지나요? 하나님의 능력만 온전히 드러나도록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주 안에서 자랑하라 (30~31절)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삶의 터가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옮겨진 사람입니다(골 1:13 참조). 예수님 안에 있으면 누구나 놀라운 특권을 누립니다. 예수님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고 의롭고 거룩하고 구원받은 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십자가에 못 박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입니다(엡 2:8~9). 그러므로 누구도 자기 공로를 내세우며 자랑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자랑하는 지혜와 힘과 재물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자랑하려면 오직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된 기쁨을 자랑해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특권들은 무엇인가요?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 가고 있는 기쁨을 오늘 누구에게 나눌까요?


오늘의 기도

보잘것없는 제가 주님 안에 있을 때 특별한 존재가 되게 하시는 은혜를 찬양합니다. 차별 없는 은혜를 받은 자로서 저 또한 차별 없이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육체의 모든 자랑거리를 배설물로 여기며 구원의 은혜만 자랑하는 인생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십자가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고린도전서 1장 18절~25절]
18절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절 -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절 -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절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절 -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절 - 우리는 십자게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절 -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절 -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십자가의 도가 구원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시고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십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유대인과 이방인에겐 미련하게 여겨져도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겐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보다 지혜롭고 강하십니다.

1. 십자가의 도 (18~21절)
십자가의 도는 영원한 구원과 멸망을 가르는 핵심 진리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믿고 따르면 구원 받지만, 멸시하고 거부하면 멸망합니다.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 앞에 이 세상의 지혜와 지식은 티끌에 불과하며 이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도, 구원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그분을 알게 하시는 방법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입니다. 이는 '전하는 내용의 미련함을 통해서'라는 의미입니다(롬 10:14, 17 참조). 세상이 보기에 어리석고 무능해 보여도,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의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성도는 십자가의 메시지를 통해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믿고,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십자가의 도'를 수치스럽고 미련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결국 어떻게 되나요? '전도'를 통한 영혼 구원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요?


2.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22~25절)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인류를 구원하시고 죄인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자기들이 믿을 수 있을 만한 하나님의 이적을 요구합니다. 한편 헬라인은 하나님 존재를 자기 지혜로 이해하려고 지식을 찾습니다. 이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걸림돌이요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만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역사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죄인이 그리스도와 만나는 자리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하나님이 인생에 행하시는 가장 큰 표적이요, 인생 최고의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인생보다 지혜롭고 강하신 전능의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유대인이나 이방인은 어떻게 이해했나요? 부르심을 받은 나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고백하나요?


오늘의 기도

어리석고 나약해 보이는 십자가 희생에 최고의 지혜와 구원의 비밀이 있음을 믿습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며, 믿지 않는 이들에게 소망의 복음 전하기를 힘쓰게 하소서. 오늘도 지혜와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겸손히 행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복음의 본질에 집중하면 마음과 뜻이 하나 됩니다

[고린도전서 1장 10절~17절]
10절 -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절 -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절 -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절 -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절 -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절 -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절 -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절 -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 성도들의 분쟁을 전해 들은 바울은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는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이가 바울, 아볼로, 게바가 아닌 그리스도이심을 상기시킵니다. 바울 자신은 세례보다 복음을 전하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도록 전했음을 밝힙니다.

1. 온전히 합하라 (10절)
교회는 다양한 은사 속에서 하나 됨을 이루는 성령 공동체입니다. 바울이 분쟁이 있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형제들아'라고 칭하는 것은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지체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는 어떤 사람도 다른 의견을 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음악에 비유하면, 모두가 각자의 음색을 내되 화성에 맞춰 조화롭고 아름답게 노래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합니다. 비난과 분쟁은 사탄의 속성이지만, 화평과 연합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교회 구성원 모두가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연합할 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믿음의 역사들을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 교회 안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바울이 제시하는 해법은 무엇인가요? 내가 섬기는 공동체의 문제는 무엇이며, 권면하거나 솔선할 일은 무엇인가요?

2. 고린도 교회의 분쟁 이유 (11~17절)
복음의 본질보다 사역자나 사역의 열매가 우선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푸는 몇몇 사역자 중심으로 파가 나뉘어 서로 마음과 뜻을 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본질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입니다. 또한 세례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바울, 아볼로, 게바 등 사역자들은 단지 복음의 본질이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합니다. 바울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기보다 복음 전파에 힘쓴 이유는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으로 복음 전파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말의 지혜나 탁월한 언변을 통해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십자가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 교회에서 각자 선호하는 지도자를 앞세워 자기 소속을 자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성도들이 복음의 본질에 집중해 연합하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오늘의 기도
화평하며 연합하기보다 분쟁하며 편을 가르는 저의 죄성을 용서하소서. 공동체 안에서 분쟁으로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분열된 마음이 성령으로 하나가 되도록 도우소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순종으로 연합을 이루는 성숙함이 저와 공동체 안에 있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 대한 확신과 감사

[고린도전서 1장 1절~9절]
1절 -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절 -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절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절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절 -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절 -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절 -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절 -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절 -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문안하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빕니다. 그는 고린도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증거 위에 굳게 서서 모든 은사에 부족함 없이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을 감사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들을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1. 은혜와 평강의 문안 (1~3절)
그리스도인의 자기 정체성 인식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입니다. 바울은 여러 문제가 산재해 있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인사말에서부터 그들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려 줍니다. 성도의 정체성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여러 개의 파당을 만들고 특정 지도자를 내세워 자기 소속과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근본 신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별된 자'입니다. 바울은 자신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각처의 모든 그리스도인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해진 자들임을 상기시킵니다. 분쟁으로 나뉜 교회가 하나 되는 길은 우리 모두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 고린도 교회의 정체성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나요? 성도라는 정체성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2. 성도들에 대한 감사와 기대 (4~9절)
책망보다 칭찬을 통한 권면이 인격적인 관계 형성과 변화를 가져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문제를 언급하기에 앞서 성도들을 칭찬하고 격려합니다. 그들은 언변과 지식이 넘쳤고,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모든 언변과 지식의 은사는 그리스도를 알아 가고 그분을 증언하는 일에 쓰일 때 그 가치가 빛납니다. 바울의 소망은 훗날 그들이 그리스도 앞에서 책망할 것 없는 자로 견고히 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 곧 복음이 확고히 뿌리내린 사람은 하나님이 그 인생을 끝 날까지 견고하게 붙들어 심판 날에 책망할 것 없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과 깊이 교제하고 그분을 증언하는 것은 성도의 특권이자 축복입니다.
* 고린도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감사 속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나요? 훗날 주님 앞에 책망할 것 없는 자로 서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별된 '성도'임을 기억하고 매사에 거룩함과 화평함을 추구하게 하소서. 제게 주신 은사를 통해 주님을 깊이 알아 가고 주님을 전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견고한 믿음 위에 서게 하시고 정결한 신부로 준비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고린도전서 2장 14절~16절]
14절 -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절 -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절 -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린도전서 3장 1절~9절]
1절 -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절 -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절 -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절 -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절 -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절 -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절 -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절 -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절 -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성숙한 신앙인이라는 것은 중생했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 성장하여 육신의 소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영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연인 그대로인 육에 속한 사람이 되어서도 안되고, 중생은 했으나 성령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고 늘 육신의 지배를 받으면서 사는 육신의 사람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되겠습니다.
영의 지배를 받지 못하는 상태에 있으면 늘 마귀한테 속고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로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신 18:13절에 보면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고 했습니다.
엡 4:13절에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성장하고 발전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마 5:48절에도 보면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해지도록 믿음으로 나가야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5년, 10년 예수를 믿으며 설교 말씀도 수없이 많이 들으나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것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까운 적이 많이 있습니다.
실로 우리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온전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날마다 성숙하고 발전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1. 육에 속한 일을 버려야 합니다.
육에 속한 자를 어린아이와 같다고 했는데, 고린도전서 3:3절에 보면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의 표적은 시기하고 분쟁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있는 교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베드로파다' 하면서 자기한테 이로운 대로 생각하고 당파를 만들면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략하고 싸웠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아직도 육신에 속해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육의 생각과 정욕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은 육에 속한 일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영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내 뜻도 아니고 오직 주님의 뜻'으로 뭉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니 서로 시기 질투할 것 없이 우리가 하는 맡은 부서에서 열심히 일하면 하나님이 상을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성도들이 있게 될 때에 교회는 쪼개지고 분열됩니다. 고로 하나님은 육에 속한 어린아이와 같은 자를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가지 육신의 고통과 채찍으로 육신의 고집과 이기심을 깨뜨리십니다.
모세가 아무리 40년 동안 바로의 궁전에서 공부를 많이 하고 똑똑했다 할지라도 그는 육에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말할 수 없이 고생하면서 시련과 고통을 겪은 다음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낼 수 있는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야곱은 상당히 지혜와 수단과 꾀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무지한 상태였습니다. 얍복 강가에서 형이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죽이러 온다는 말을 듣고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으며 기도하다가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내리쳐 위골이 되었을 때 그때에야 야곱은 육성이 깨지면서 하나님께 항복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참 신자가 되어 그 다음에 비로소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참 축복을 받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야곱의 환도뼈는 신체에서 제일 강한 부분인데 그것이 부러지면서 육적으로는 약해졌지만 영적으로는 강한 사람이 되고 성숙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영적으로 성숙한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물질의 환도뼈, 건강의 환도뼈, 자존심의 환도뼈, 어떤 이에게는 자식의 환도뼈를 쳐서 하나님 앞에 항복하게 만들고 영적으로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육신도 편안하고 잘 살기를 원하시지만 육신만 편안하다가 영적으로 병들어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육신적으로는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영적으로 온전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고통의 방망이로 두드리시고 깨뜨리신다고 하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비밀을 깨달았기 때문에 고후 12:10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적으로 육신적으로 약하다고 느낄 때에 무능하다고 느낄 때에 영적으로는 강해지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장 가깝게 매달리게 되는 때는 바로 우리의 환도뼈가 얻어맞을 때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자기 만족이나 자기 신뢰나 자기 희열을 즐기기 보다는 모든 것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만을 기뻐하고 하니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되는 것입니다.

2.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해지려면 어린아이처럼 바뀌어져야 합니다.
한 번은 제자들이 서로 누가 더 높으냐 하고 시기하고 다투다가 예수님께 이러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 18:3절에서 예수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단순하고 진실해질 때 영적으로 성숙해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큰 자, 성숙한 자는 그 마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단순한 자입니다.
구원의 진리, 영적인 진리는 인간적인 면에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겨지고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믿는 자에게만 나타내지는 것입니다(마 11:25).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하면서 세상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이 폐하셨다고 했습니다.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요 세상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해서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부터 인간은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은 무섭게 자기 중심적이고 인본주의적이고 육적이고 이기주의적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이성과 슬기로는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지혜나 슬기가 장성할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고 영적인 면이 약해지기 쉽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오만한 인본주의적인 지혜나 재주를 깨뜨려 겸비하고 낮아지게 한 후에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믿는 사람이나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사람은 말이 많고 의문이 많습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아주 유치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고 믿음이 자라게 되면 그 이론 많던 것이 다 없어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하면 단순해지고 어린아이와 같아집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다 어린아이와 같으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물으시겠지만 그러나 인간적인 지혜와 슬기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만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의 지혜로 살게 됩니다.
고전 1:25절에 보면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호랑이와 사자는 자기 힘으로 살지만 양은 목자의 돌보심으로 삽니다. 이처럼 우리 신자들은 어린양과 같이 자기 수단 방법이 없어도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 주셔서 키워주시고 보호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정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아질 때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3. 피와 땀과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비유로 말씀을 하시다가 눅 8:6절에서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명도 습기가 있어야 됩니다. 말씀의 씨가 자라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려면 습기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눈물과 땀과 피를 말합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생전 하나님 앞에서 눈물 한 번 흘려보지 않은 사람, 땀이 나도록 기도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은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고통으로 인해서라도 눈물을 많이 흘려 본 사람이 영적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괴테가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말했듯이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온하고 평탄하고 생전 땀 한 방울 눈물 한 방울 흘려보지 않은 사람은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수분이 없으면 생명이 못살고 아름다운 꽃도 열매도 맺을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적인 면에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땀과 눈물과 피의 수분이 있어야 됩니다.

군인들이 훈련할 때 땀을 흘리지 않으면 전쟁할 때 피를 흘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할 때 땀을 흘리면 가난이 물러가고 찬송할 때 땀을 흘리면 기쁨이 오고 기도할 때 땀을 흘리면 능력을 받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도 성장하려면 반드시 이와 같이 피와 땀과 눈물의 습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숙한 신자가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예수를 믿고 중생을 했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육신에 속한 욕망대로 살아서 시기, 질투, 당파 싸움을 일삼아서도 안되겠고, 늘 어린아이와 같은 심령으로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가 되고, 피와 땀과 눈물의 수분으로 성장하시는 영적으로 성숙한 우리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승리의 영광을 위하여

[고린도전서 9장 24절~27절]
24절 -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절 -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절 -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절 -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듯이 성도의 신앙 생활은 달리기 경주와도 같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믿음의 경주에 나선 선수들입니다. 이 경기에 참가하여 끝까지 달린 모든 선수들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 경기의 심판자는 우리의 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는 우리가 예수을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난 그 순간에 울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러한 믿음의 경주에 참가하는 데만 의의를 둘 것이 아니라, 영광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끝까지 있는 힘껏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면 이 믿음의 경주에서의 영광된 승리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무거운 짐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혹 여러분은 마라톤 선수가 짐을 지고 나온 경우를 본 일이 있습니까? 아마 결코 없을 것입니다. 운동 선수는 가능한한 간편한 옷차림으로 경기에 임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믿음의 경주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생활하는데 장애가 되는 짐들은 모두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에 히 12:1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산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몸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거추장스러운 걱정이나 염려들은 모두 벗어버리고, 죄악의 무거운 짐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영적 호흡인 기도와 영혼의 양식인 성경 말씀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 때에 적절히 공급해 주시며, 우리로 하여금 끝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2. 목표를 똑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경주자가 상을 받기 위해서는 결승 테이프가 있는 목표만을 보고 힘껏 달려야 합니다. 한눈 파는 자에게 승리의 영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의 경주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승리자가 되려면 세상적인 쾌락이나 욕망에 한눈을 팔아서는 안됩니다. 뒤를 돌아보아서도 안됩니다. 눅 9:62절에 보면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불규칙적이고 무분별한 생활, 안일하고 나태한 삶도 청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히 12:2절의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설 그날에 받게 될 승리의 영광과 상급만을 바라보고 있는 힘껏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빌 3:14절의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는 말씀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잖습니까? 세상 경주자들도 썩을 면류관과 곧 사라져 버릴 영예를 위해서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데, 하물며 썩지 않을 아름다운 면류관을 받을 우리가 앞에 있는 목표를 바로 보지 못하고 세상의 헛된 물질이나, 명예, 권력에 한 눈을 팔 수 있겠습니까?

3. 경기규칙을 잘 지켜야만 합니다.
운동선수가 제아무리 1등으로 결승점에 도달했다고 해도, 그가 만일 경기규칙에 위배되는 행동을 했다면 그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없습니다. 딤후 2:5절의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경주자는 반칙없이 자기 코스를 제대로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의 경기규칙은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경기의 주최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행동은 모두 반칙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경주자들은 항상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 보아 절제하고 그 말씀에 맞추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 가운데는 간혹 주의 일을 열심히 한다는 명목으로 이웃 사랑, 이웃 섬김의 기본 계명을 어기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자기 판단대로 믿음의 형제를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육체의 소욕대로 방종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바울은 혹 예수님을 만족케 해드리지 못함으로 인해 주께서 준비해 놓은 상급을 잃게 될까봐, 끊임없이 자신을 쳐서 말씀에 철저히 복종시키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라는 바울의 고백에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에 어긋난 태도와 행동을 모두 버립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입각해서 하도록 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께서 마련해 두신 상급을 얻기 위해 경주에 나선 경주자들입니다. 경주자가 승리하여 상급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목표를 향해 경기 규칙을 잘 준수하며 달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도 죄악의 짐, 세상 근심의 짐, 육신의 정욕의 짐을 벗어 던지고 예수 그리스도 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함으로써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하시기 바랍니다. 롬 8:18절에 보면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그 과정이 고통스럽고 힘들지라도 다가올 미래의 영광을 생각하며 현재의 고난을 능히 참고 이겨 하나님께 상급을 받는 여러분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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