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라
[누가복음 23장 26절~32절]
26절 -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27절 -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절 -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절 -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30절 -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31절 -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32절 -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배경 이해하기]
예수님의 수난 기사를 기록한 복음서 중 마태, 마가, 누가는 모두 구레네 사람 시몬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구레네는 애굽의 한 도시로, BC 321년 톨레미 왕조 통치하에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거주한 곳입니다. 현재는 트리폴리(Tripoli)라고 불립니다. 오순절 등 유대 절기 때마다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수많은 예루살렘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행 2:10).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시기는 유월절입니다. 시몬은 유대인 디아스포라로,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것이고,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닌 억지로 지긴 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영광에 동참했습니다. 예수님이 골고다를 향해 가실 때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백성과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가슴을 치며 우는 여인들과 이들을 향해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라는 누가의 언급은 약자인 여성에 대한 그의 세심한 관심을 잘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전후에 중심 역할을 한 이는 제자들이 아니라 바로 여인들이었습니다. 여인들은 계산 없는 순전한 사랑으로 예수님을 끝까지 따랐습니다.
[관찰과 묵상]
1. 구레네 시몬이 어떻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나요?(26절) 이 일은 시몬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막 15:21; 롬 16:13 참조)
구레네 사람 시몬은 길을 가던 중 로마 병정들에 의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이 일 이후 시몬의 가족은 신앙의 가족으로 많은 이에게 알려졌을 것입니다(후일 로마서에서 바울은 시몬의 아들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안부를 묻고, 시몬의 아내를 ‘내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길을 가던 때는 유월절 기간이었습니다. 당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완성된 형태의 십자가를 어깨에 진 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손목을 박을 가로축을 지고 올라갔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형 제도는 죄인이 십자가를 직접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탈진과 고통으로 인해 십자가(가로축)를 질 수 없게 되자, 군병들은 주변에 있는 건장한 사람(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 유월절의 주인공이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실제로 지고 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가복음은 시몬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막 15:21)라고 기록합니다. 마가복음은 로마에서 기록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시몬의 자녀인 알렉산더와 루포의 이름이 마가복음에 기록된 것은,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이후 그의 가족에게 미친 신앙의 영향력을 잘 보여 줍니다. 또한 후일 시몬의 아들 루포는 로마서에서 바울로부터 문안받는 인물이 되었고, 그의 어머니(시몬의 아내)는 바울이 자신의 어머니라고 말할 만큼 신뢰를 받고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롬 16:13).
적용과 나눔
내 삶에서 예수님을 따라 어떤 십자가를 지고 있나요? 십자가를 질 때 어떤 어려움과 은혜를 경험하나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큰 특권입니다.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인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지만, 온 인류를 위한 위대한 구원 역사에 동참하게 되었고, 결국 그의 가정은 신앙의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9: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는 고난이 따릅니다(롬 8:17; 벧전 4:13).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양보하고 때로는 큰 손해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중국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무도 부족하고 약했기 때문에 주님은 나를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일을 군중에게 맡기지 않으십니다. 누군가를 훈련시켜 침묵과 낮아짐을 충분히 배우게 하신 후에 쓰십니다.”
2. 울면서 따르는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인가요?(27~28절)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29~31절)
예수님은 슬피 우는 여인들을 향해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고 하셨습니다. 영적 무지로 메시아를 못 박은 후그들이 당할 심판을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백성과 여인들이 가슴을 치며 울면서 예수님을 따라갔다는 기록은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여인들이 가슴을 치면서 우는 모습은 그들이 매우 진지한 태도로 슬픔을 대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뒤 구경하러 왔던 많은 무리가 가슴을 치며 돌아갔습니다(눅 23:48). 이 여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딸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종종 등장하는 표현(사 4:4; 미 4:8)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하던 바리새인과 유대인,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돌을 들어 치려 하였고, 죽이고자 공모하였으며 실제로 사형을 언도하였습니다. 여인들이 울자 예수님은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라고 하셨습니다. ‘걱정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희’라는 의미입니다. 여인들이 진정으로 가슴을 치며 슬퍼해야 할 이유는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정죄해 못 박고 있는 백성과 종교 지도자들의 영적 무지와 죄악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슴을 치며 울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리고 대제사장의 언급대로(마 26:61) AD 70년에 무너졌습니다.
적용과 나눔
죄에 대해 무감각하면 결국 어떻게 될까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염려하시는 예수님에게서 어떤 교훈을 얻나요?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 앞에 담대하십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거룩한 사명임을 아시기에 끝까지 순종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보다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안위를 염려하십니다. 영적 무지함 때문에 메시아를 못 박은 일로 인해 그들은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십자가 형벌은 무섭지만, 잠시 후 부활의 영광을 보게 합니다. 예수님이 여인들에게 ‘딸들아’라고 하신 말씀이 너무도 따뜻하게 들려옵니다. 당시 여인은 사람의 수를 셀 때 포함되지도 않았습니다. 여인은 약자였고, 피해자였고, 무시당하는 존재였습니다. 물론 ‘예루살렘의 딸들’이 여자들만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이 말은 구약에서도 여러 번 쓰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십자가의 길은 패배의 길이 아니라 승리의 길입니다. 비록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구레네 사람 시몬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진 특권을 누렸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통 중에도 자신의 안위를 염려하지 않고 사람들의 안위를 염려하십니다. 십자가의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죄에 대한 무감각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결국 부활의 영광을 보게 하지만, 죄에 대한 무감각은 영원한 심판에 이르게 합니다.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길을 따르기로 결단하는 것이 제자도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죄에 대해 민감함으로 영적 감각을 회복하고 주님의 뜻과 길을 선명하게 분별하게 하소서.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도 주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제자의 삶을 살아 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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