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에 주님 앞에 서서 칭찬받을 제자

[누가복음 21장 29절~38절]
29절 -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절 -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절 -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32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33절 -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4절 -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절 -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절 -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37절 -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38절 -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화과나무에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아는 것처럼, 징조가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 하십니다. 또 마음이 둔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가르치십니다.

1. 말씀대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 (29~33절)
종말론적 신앙은 세상과 시대를 분별하는 영적 안목을 갖게 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나무들의 싹은 대개 늦은 봄에 나기에 곧 여름이 가깝다는 신호가 됩니다. 자연 현상을 보고 지혜를 얻듯,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마지막 때에 있을 징조들을 자세하게 알려 주십니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은 일차적으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 파괴로 성취됩니다.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성도는 종말론적 신앙을 갖고 주님의 날을 기다리는 거룩한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보여 주는 징조들은 무엇인가요? 종말의 관점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내가 내려놓을 것은 무엇인가요?

2. 인자 앞에 서기 위한 준비 (34~38절)
종말론적 신앙은 영적으로 늘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방탕함과 술 취함, 세상의 즐거움과 죄에 빠져 종말의 심판에 대해 무감각해지도록 하는 것은 사탄의 전략입니다. 또한 생활의 염려와 근심에 눌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도 사탄의 전략입니다. 마음이 둔해져 종말에 대한 영적 감각을 상실하고, 믿음을 선택하기보다 염려에 빠져 사는 것은 주님의 제자들에게 큰 위기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생각하지 않은 때에 홀연히 임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때에 깨어 있어 반갑게 맞이하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마 24:45)은 복이 있습니다. 장차 있을 모든 두려운 징조를 능히 피하고 주님 앞에 올바른 모습으로 서서 칭찬받는 제자가 되는 비결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준비하는 것입니다.
*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에 빠져 살면 어떤 결과를 보게 될까요? 분주한 일상에서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삶을 어떻게 실천할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가 이 땅을 떠날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주님 앞에 섰을 때 내놓을 수 있는 것만을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며 방탕한 세상을 뒤로하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며, 주님께 기쁨이 될 만한 것에 집중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맹렬한 진노 안에 감춰진 지극한 사랑

[누가복음 21장 20절~28절]
20절 -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21절 -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22절 -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23절 -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24절 -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25절 -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절 -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27절 -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8절 -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예루살렘이 이방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며 백성은 큰 환난을 당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땅의 혼란으로 곤고하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는 것으로 인해 무서워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일이 시작되면 인자가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올 것이며 속량의 때가 가까운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1. 예루살렘의 멸망 예언 (20~24절)
자비의 하나님은 또한 진노의 심판자가 되십니다.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이 보내신 이들을 돌로 치는 예루살렘(13:34)에 맹렬한 심판의 불꽃이 타오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임합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백성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거나 이방에 사로잡혀 갈 것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독립 전쟁을 벌인 유대인들은 주후 70년경 로마의 칼날에 약 110만 명이 죽임을 당했고, 9만 7천 명 이상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징벌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계속됩니다. 그러나 고통과 슬픔과 비극의 역사 속에서도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됩니다. 이를 통해 성도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 가며, 마음 깊숙이 새기게 됩니다.
*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맹렬히 심판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와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묵상해 보세요.

2. 인자의 재림 예언 (25~28절)
예수님의 초림은 은밀하고 초라했지만, 그분의 재림은 영광스럽고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때 해와 달과 별들에 징조가 나타납니다. 마태와 마가는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마 24:29; 막 13:24~25)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바다와 파도도 사납게 날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보고 무서워 기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재림의 징조 앞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듯 분명히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예수님이 재림의 징조를 미리 알려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재림 때 머리를 들고 주님을 맞이할 담대함과 소망이 있나요?

오늘의 기도
당장 오늘 일도 모르면서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돈과 권력을 좇았음을 회개합니다. 이 땅의 모든 것에 끝이 있고 심판의 때가 있음을 늘 기억하며, 계수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삶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여 두려움 없이 소망 가운데 재림의 날을 맞이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박해받아도 복음을 전하고 미움받아도 사랑하십시오

[누가복음 21장 10절~19절]
10절 -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11절 -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12절 -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13절 -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14절 -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15절 -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16절 -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17절 -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18절 -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19절 -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여러 징조가 있기 전에 제자들이 주님의 이름 때문에 박해를 당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일이 도리어 증거의 기회가 되며, 그때에 할 말과 지혜를 주님이 주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모든 사람, 심지어 부모와 형제에게도 미움을 받을 것이나 인내하는 자는 영혼을 얻을 것입니다.


● 마지막 때에 일어날 징조

전쟁, 기근, 지진 등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현상을 볼 때 두려워하거나 거짓 소문에 미혹되지 말고 하나님의 경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해 시험을 받을 일이 많아집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을 때 성도는 더욱 인내하며 온유한 심령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려는 이들에게 성령님은 상대가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로 함께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모든 인간관계가 파괴되는 고통의 때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는 부모와 형제, 친척과 벗을 비롯해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미움과 박해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끝까지 인내하는 성도는 영원한 천국과 상급을 누릴 것입니다.


* 제자들에게 닥칠 환난은 어떤 것들이며, 그 일은 도리어 어떤 결과를 가져오나요? 그리스도인은 종말의 때를 어떤 다짐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진실된 과부의 헌금, 거짓된 성전의 미래

[누가복음 21장 1절~9절]
1절 -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절 -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절 -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절 -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5절 -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6절 -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7절 -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8절 -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9절 -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두 렙돈을 헌금한 가난한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넣었으니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 하십니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성전에 감탄하자 주님은 성전이 무너지리라 예언하시며, 그 징조로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나고 난리와 소요의 소문이 있지만 그때가 끝은 아니라 하십니다.

1. 전부를 드린 과부 (1~4절)
헌금의 액수보다 그 안에 담는 사랑과 헌신과 믿음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부자들과 한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주목해서 보십니다.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의 약 64분의 1에 해당하는 적은 돈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부자는 풍족한 중에 일부를 드렸지만, 과부는 가난한 중에 전부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는 것은 사랑과 헌신, 그리고 필요를 채우실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돈보다 하나님을 우선시하느냐는 풍족할 때보다 부족할 때 확연히 드러납니다. 사랑을 담아 자원하는 마음으로 물질을 드릴 때,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십니다.
* 예수님이 부자들의 헌금보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이 더 많다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헌금할 때 어떤 마음으로 드리나요?

2.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 (5~9절)
성전이 아름다운 것은 미석으로 꾸며졌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헤롯 왕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솔로몬 성전을 흰 대리석과 금으로 장식하고 두 배 더 확장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때가 되면 그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 예언하십니다. 종교 예식은 있으나 말씀과 기도가 사라지고 위선과 불의가 가득한 성전은 강도의 소굴(막 11:17)일 뿐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종말의 시작이자 열방을 향한 복음 전파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는 거짓을 분별하고 전쟁과 재앙의 소문에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것과 말세의 징조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오늘날 교회가 교회답고 성도가 성도다우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 하루의 모든 순간이 예배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 최고의 사랑을 드리는 데 인색하지 않게 하소서. 시간과 재정 등 모든 영역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고 아낌없이, 사심 없이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예수님을 '주'로 모신 마음, 사람을 섬기는 '종'의 마음

[누가복음 20장 41절~47절]
41절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42절 -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43절 -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44절 -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45절 -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6절 -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7절 -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나, 시편에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했으니 그리스도가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십니다. 또 시장에서 문안받고 상석을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하시며,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외식하는 그들은 엄한 심판을 받는다 하십니다.

1. 다윗의 자손, 하나님의 아들 (41~44절)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믿었으나 정작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시편 110편 1절을 들어 다윗이 '주'(Lord)라 고백한 것을 상기시키십니다. 다윗도 그의 후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알고 오래전에 그리스도를 '주'라 부른 것입니다. 다윗은 그리스도가 인간인 동시에 신적인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겸손히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지만,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다윗보다 뛰어난 왕이시요 만왕의 왕이시며, 경배받기 합당하신 분입니다.
*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시지만 다윗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다면, 나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나요?

2. 외식하는 서기관들을 조심하라 (45~47절)
외식과 교만의 결국은 엄중한 심판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본받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문안받고 높은 자리에 앉기 좋아하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와는 거리가 먼 행동입니다.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긍휼을 베풀기보다 자기 배만 불리기에 급급한 이들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외식으로 길게 하는 그들의 기도는 공허한 소음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미 6:8)입니다. 자신이 말하고 가르치는 대로 사는 성도, 믿음과 삶이 일치하는 성도는 경건의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들은 어떠했으며, 그들은 결국 어떻게 되나요? 하나님이 높이실 때 교만과 위선에 빠지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예수님의 이름은 모든 만물이 무릎 꿇어 '주'라 시인하며 찬양할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주님이 주인되신 삶을 살아가도록 아침마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하루를 시작하게 하소서. 주님을 섬기는 낮은 마음으로 오늘도 주님의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한 생명을 이어 갑니다

[누가복음 20장 27절~40절]
27절 -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28절 -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9절 -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30절 -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31절 -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32절 -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33절 -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34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절 -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36절 -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37절 -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38절 -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39절 -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40절 - 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 묻습니다. 7형제 중 맏이가 결혼해 자식 없이 죽고 형제가 차례로 그녀와 결혼했으나 자식 없이 모두 죽었다면, 부활 때 그녀는 누구 아내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 때는 결혼하는 일이 없고,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 하십니다.

1. 사두개인의 부활 논쟁 (27~36절)
부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부활 없는 기독교는 영혼 없는 몸과 같습니다. 사두개인들은 현실주의자들로, 부활이나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아들 없이 죽은 형제의 아내와 결혼해 후손을 잇는 제도(형사취수제, 신 25:5~10)와 연관시켜 부활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부활에 대한 그들의 무지와 오해를 깨우쳐 주십니다. 부활 때에 성도는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부활한 하나님의 자녀는 결혼할 필요도 없고, 다시 죽을 수도 없으며, 천사와 동등한 영적 존재가 됩니다. 부활은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이자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승리입니다.
*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숨겨진 의도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나는 미래와 사후에 대해 어떤 소망을 품고 살아가나요?

2.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37~40절)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할 존재로 지음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에게 출애굽기 3장 6절을 들어 부활의 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구약의 족장들이 이 땅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란, 하나님이 족장들과 맺으신 언약은 영원히 지속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은 그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셨습니다. 부활 신앙은 생명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 하나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다는 말씀에서 어떤 진리를 깨닫나요? 부활 신앙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삶에서 어떤 차이를 보일까요?

오늘의 기도
예수님이 친히 이루신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신비를 통해 제게 구원의 영광을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 이 영광을 놓치지 않길 원합니다. 삶의 곤고함과 불확실함, 제 연약함 때문에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부활의 자녀라는 영광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악한 계략, 지혜로운 답변

[누가복음 20장 19절~26절]

19절 -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20절 -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21절 -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22절 -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23절 -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24절 -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25절 -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6절 -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이 이 비유가 자신들을 가리키는 줄 알고 예수님을 잡으려 하나 백성을 두려워 합니다. 이에 예수님을 총독에게 넘기려 정탐을 보내 책잡게 합니다. 그들이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이 옳은지 묻자 주님은 가이사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십니다.

1. 예수님께 덫을 놓은 간교한 사람들 (19~22절)
성도는 교묘한 꾀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는 악한 세력을 경계하며, 영적 분별력을 갖춰야 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잡을 기회를 엿보며 정탐꾼을 보냅니다. 의인인 척 위장한 정탐꾼들은 예수님이 바른 말씀을 하고 진리로써 가르쳤다고 먼저 아첨합니다. 그러고는 로마 황제(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이 옳은지 예수님께 묻습니다. 만일 로마에 납세하는 것이 옳다고 대답하면, 유대인에게 매국노로 지탄받을 것입니다. 반면에 옳지 않다고 대답하면, 로마의 반역자로 체포될 것입니다. 사탄은 성도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두고 보지 않고, 입에 발린 소리로 성도를 현혹하며 궁지로 몰고 갑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아첨에 방심하지 말고,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영적 촉각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 예수님께 다가온 정탐꾼들의 간교함이 어떻게 드러나나요? 의인인 양 다가와 함정에 빠뜨리려는 사람들에게 넘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 (23~26절)
하나님은 신실한 성도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의 악한 계략을 꿰뚫어 보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씀으로 허를 찔러 모두가 할 말을 잃게 하십니다.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으로 세금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우리 자신(창 1:26~27 참조)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나라에 소속된 시민이면서, 동시에 이 땅의 국가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국가에 대한 의무와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모두 이행해야 합니다. 성실한 납세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표식입니다. 이 땅에서 주어진 책임을 다하며,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나는 국가와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어떻게 충성하나요?

오늘의 기도
사람들의 칭찬과 아첨을 진위 여부도 따지지 않고 쉽게 받아들일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아픔이 되더라도 삶을 바로 세울 수 있는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길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 시민답게 살아가도록 영적 분별력과 지혜를 제게 허락해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악한 농부들, 머릿돌에 깨어지다

[누가복음 20장 9절~18절]
9절 -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절 -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1절 -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절 -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13절 -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14절 -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절 -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6절 -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7절 -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18절 -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배경 이해하기]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해 공개적으로 자신의 메시아 됨을 선포하십니다. 제자들 또한 예수님의 주 되심을 선포하자 바리새인들은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합니다. 예수님이 장사치의 소굴이 된 성전을 보시고는 의분을 발하시고 정화하시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모의합니다. 또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의 권위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에 대해 도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의 불순한 질문들, 즉 권위에 대한 도전(20:1~8), 포도원 농부 비유(9~18절), 가이사에 대한 세금 문제(20~26절), 부활 때의 혼인 관계(27~40절)에 대해 권세 있고 지혜롭게 반박하면서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본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 지도자들의 완악함에 대한 신랄한 풍자에 해당합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의 사회적 상황을 잘 보여 줍니다. 부유한 외국 지주들은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임대해 주었습니다. 소작인들은 그 땅을 경작하며 지주가 멀리 떠나 있을 때에 포도원들을 돌보았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주인은 소작료를 거둬들이기 위해 종을 보냈고, 이때 종들과 소작인들 사이에 시비가 일어나곤 했습니다. 때가 이르러 열매를 거둘 때가 되면, 주인(하나님)에게 패역한 소작인(유대 지도자들)은 심판당할 것입니다.

[관찰과 묵상]
1. 본문의 비유에서 포도원, 포도원 주인, 소작인 농부, 주인의 종이 상징하는 바는 각각 무엇인가요?(9~12절)
포도원은 이스라엘,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소작인 농부는 유대 지도자들, 주인의 종은 선지자들을 의미합니다.
중동 지역에서 포도는 풍요로움과 즐거움의 상징이었습니다. 포도나무는 전적으로 열매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는 식물이기에, 성경은 포도 농사를 종종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에 빗대어 묘사합니다. 갈릴리에는 자신들의 소유지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유대인 혹은 로마인 부재지주(不在地主)가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포도밭을 사서 농장 건설 과정에는 관여하다 자신의 본거지로 돌아가고 현지 소작인들에게 농장 관리를 맡기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추수할 때가 되면 소작인들에게 소작료를 요구했습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고, 농장 경영을 맡은 소작인들은 유대 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주인이 보낸 소작인들은 구약의 많은 선지자를 의미하는데, 패역한 백성은 선지자들을 때리고 목에 나무 고랑을 채우고, 돌로 쳐 죽이고, 조롱하고, 채찍으로 때리며, 결박하고 옥에 가뒀으며, 톱으로 켜거나 칼로 베어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무는 다하지 않고, 이미 얻은 기득권을 지키는 일에만 열심을 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대 지도자들의 이 같은 반역에도 불구하고 인내하시며 계속해서 그분의 종들을 보내어 그들을 설득하십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포도원은 무엇인가요? 청지기 역할을 잘 감당하는지, 게으름이나 욕심으로 불순종하진 않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소작인이 본래 포도원 주인이 아닌 것처럼 나도 자녀, 일터, 물질, 은사, 시간, 건강, 그 밖에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를 청지기(steward)라고 부릅니다. 청지기란, 주인(소유권자)이 맡긴 것들을 주인의 뜻대로 관리하는 위탁 관리인으로서(창 43:16), 하인을 감독하고 주인의 자산을 관리하는 자입니다. 청지기 관점에서 우리의 일상을 바라보면 참으로 많은 분야에서 우리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녀는 내 소유가 아니므로 자녀에게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게 됩니다. 기업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을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청지기 삶을 사는 사람들은 게으름으로 세월을 낭비하지 않고 주어진 은사를 부지런히 개발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합니다.

2. 주인의 아들은 누구를 가리키며, 주인이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13~18절)
주인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만, 심판 때에 주님은 그 죄인들을 진멸하시고,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하실 것입니다.
세 명의 종을 보냈지만 그들이 모두 폭행을 당하고 능멸당한 채 빈손으로 돌아오자 포도원 주인은 자기 아들을 직접 보냅니다. 소작인들은 서로 상의하여 주인의 아들을 포도원 바깥으로 끌어내어 죽입니다. 이 비유의 실제 주인공이 되시는 예수님은 바로 며칠 뒤에 그와 같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십니다. 한편 사랑하는 아들의 비참한 죽음을 마주한 포도원 주인은 대노하여 직접 포도원으로 갑니다. 그리고 포도원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다른 이들에게 넘겨줍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반역한 유대인들이 마주할 최후의 심판을 의미하며, 아울러 이방인들이 어떻게 구원을 얻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이 비유를 들은 사람들은 두려움과 분노에 사로잡혔습니다. 자신들이 당하게 될 운명에 대해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표현은 시편 118:22절에 최초로 등장합니다. 돌에 걸려 넘어지는 자나 돌에 맞아 죽는 자나 모두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인데, 전자는 메시아에 대해 잘못 이해함으로 시험에 드는 자들이고, 후자는 적극적으로 메시아를 반대하고 핍박하는 데 동참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적용과 나눔
건축에서 기준이 되는 돌이 중요하듯, 예수님은 삶의 기준이십니다. 예수님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어떻게 다른지 나누어 보세요.
큰 건물을 정확한 기준도 없이 모래 위에 주먹구구로 집을 지어 올리는 건축가는 없습니다. 단단한 반석 위에 기준이 되는 모퉁잇돌을 세우고 그것을 기준 삼아 건물을 올립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정과 사업과 사역을 바른 기준 위에 세워 나가야 합니다. 그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회사의 사훈이나 가정의 가훈, 혹은 개인의 좌우명에도 그 기준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동일한 돌이 두 가지 용례로 판이하게 쓰이게 될 것을 말합니다. 먼저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에게 그 돌은 거치는 돌(Stumbling block)이 되거나 모든 것을 부서뜨리는 돌(Smiting stone, 단 2:34~35)이 될 것이고, 반대로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인생이라는 성전을 지어 갈 때 기준을 제공하는 모퉁잇돌(Cornerstone)이 될 것입니다. 포도원 소작농들이 처음에는 주인의 종을 폭행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후에는 주인의 아들을 죽이기에 이르게 된 것처럼 예수님을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은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악해져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습니다. 그러나 매사에 주님을 모퉁잇돌로 삼는 사람은 견고한 건물을 세웁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세워야 합니다(고전 3:10). 최후 심판의 날 우리의 공력은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 악한 소작인 농부들이 주인 뜻을 거스르고 그 아들까지 죽인 것은 예언적 비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거듭해서 하나님을 거역했고, 이 비유의 비극적 사건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성문 밖에서 죽임으로써 성취됩니다(히 13:12). 비록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리시고 온 세상이 기준으로 삼아야 할 머릿돌로 바꾸셨습니다. 결국 악한 농부들은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대신 받을 것입니다(마 21:43). 예수님을 기준으로 삼고, 맡겨진 것을 청지기 마음으로 관리하는 사람은 하나님 뜻에 합한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어렵고 힘든 일상 속에서도 주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순종하는 청지기가 되게 하소서. 말씀에 기초한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예수님을 버린 인생은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20장 9절~18절]
9절 -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절 -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1절 -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절 -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13절 -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14절 -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절 -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6절 -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7절 -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18절 -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비유에서 주인은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세주고 타국에 갑니다. 주인이 소출을 받고자 세번이나 보낸 종을 농부들이 때리고 내쫓습니다. 상속자인 아들까지 죽인 그들을 주인이 진멸하고, 포도원을 타인에게 줄 것입니다. 예수님은 건축자의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됨을 말씀하십니다.

1.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 비유 (9~15절)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열매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횡포를 부립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악한 농부들처럼, 주인이신 하나님께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죽입니다. 하나님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개의 기회를 여러 번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라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이 자비와 긍휼의 손을 내미실 때 뿌리치지 말고, 돌이켜 그 손에 회개의 열매를 올려 드려야 합니다.
* 악한 농부들에게 자기 아들을 보낸 주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주님께 회개하기는커녕 완악한 마음으로 배은망덕한 모습을 보이진 않나요?

2. 건축자들이 버린 돌 (16~18절)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영접하지 않으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의 비유를 들은 사람들은 심판이 자신들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에 예수님은 시편 118편 22절을 인용하시며,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임을 확언하십니다.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 뜻대로, 말씀대로 움직입니다. 머릿돌은 건축물 전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돌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에게 버림받으셨으나, 하나님께 가장 중요하게 쓰임받아 교회의 머리(골 1:18)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심판이 임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강하고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모든 악한 권세는 깨어지고 맙니다.
*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예수님을 걸림돌로 생각하나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여기나요?

오늘의 기도
큰 욕심 내지 않고 그저 남들 사는 것만큼만 바란다고 하지만, 실상 내면에는 지금보다 더 갖길 원하는 탐심이 있습니다. 그 탐욕의 고리를 끊길 원합니다. 주신 것에 자족하며, 주님으로 인해 부요한 삶을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늘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상 권위자들

[누가복음 20장 1절~8절]
1절 -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절 -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3절 -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4절 -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5절 -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6절 -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7절 -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8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는지, 사람으로부터 왔는지 물으십니다. 그들이 서로 의논하다가 알지 못한다고 답하자, 주님도 그들에게 대답하지 않겠다 하십니다.

1. 종교 지도자들의 질문 (1~2절)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자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변함없이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십니다.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시고 제물 파는 것을 막으신 예수님 때문에 재정적으로 손해를 입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위가 손상되었다고 생각하며 분개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아무 지위도 없는 예수님이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자,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백성에게 지지받는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덫을 놓은 것입니다. 세속적이고 부패한 권위는 언젠가 반드시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 권위의 출처를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복음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나요?

2. 예수님의 답변 (3~8절)
진정한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즉 하나님께로부터 권위를 받으셨습니다(마 3:16~17; 28:18 참조). 그런데도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그분의 권위에 도전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요한의 세례에 관해 질문하십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면, 그가 메시아로 선포한 예수님(요 1:29)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해 할 말이 없게 됩니다. 반면에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면, 요한을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생각하는 백성에게 공격당할 것입니다. 결국 제 무덤을 판 격이 되자, 종교 지도자들은 대답을 회피합니다. 성도는 자기 이익이나 입장 따라 진리에 대해 침묵해서도, 왜곡해서도 안 됩니다.
*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내 입장이 불리해진다고 진리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는 없는지 돌아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세상의 어떤 권위보다 말씀의 권위 앞에 마음의 무릎을 꿇게 하시고, 주님께 도전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을 경배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일상에서 제 위에 세우신 권위자를 겸손히 존중하며, 제게 주신 작은 권위를 지혜롭게 사용하는 선한 청지기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