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솔로몬을 위한 기도 72:1
이 1절은 왕과 왕의 아들을 위한 기도이다.
(1) 이 기도는 솔로몬에게 적용될수 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이는 그를 훌륭한 사람이, 더나아가서는 훌륭한 왕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1) 이 기도는 자식을 위한 아버지의 기도로서 족장들이 자식들에게 베풀었던 것과 같이 임종시 베푸는 축복기도의 성격을 지닌다.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가 기도한 내용처럼 하나님께 부귀와 명예가 아니라 지혜와 명철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아무런 은총도 베풀어줄수 없다. 그들이 할수 있는 일은 단지 기도를 통하여 자식들을,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뿐이다.
2) 이 기도는 후계자를 위한 왕의 기도이다. 다윗은 그의 통치기간동안 공의를 실천했으며 이제 그의 아들도 그렇게 할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우리도 후손을 위하여 이와같은 기도를 해야한다.
3) 이 기도는 왕을 위한 신하들의 기도이다. 다윗은 백성들이 노래를 통하여 솔로몬을 위한 기도를 할수 있도록 이 시를 지었던것 같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자들은 왕과 모든 권세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공의를 베풀어주도록 기도해야 한다.
(2)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 적용될수 있다. 이 말은 우리를 위하여 중재자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재를 필요로하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1) 이것은 메시야를 보내달라는 구약교회의 기도이다.
2)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 예수께 모든 권세를 위임하사 그 권위를 통해 참성도들이 누리는 만족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주 예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베푸사 그로 우리의 의가 되게 하시며,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어주는 위대한 주관인이 되게 하소서."

 

Ⅱ. 메시야의 왕국 72:2-17
이것은 솔로몬이 통치하는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왕국이 번영을 누리며 영원히 존재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첫째, 이 예언은 이 기도가 시행되도록 간구함으로써 시작된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1절).
둘째, 이 예언은 그의 기도에 대한 평화의 응답이다. 이 예언이 메시야의 왕국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이유는 이 예언속에 솔로몬의 통치방식과 일치되지 않는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언급된 왕국은 태양과도 같이 오랫동안 존속하고 있으나 솔로몬의 왕국은 곧 소멸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유대인 성서해석가들도 이 왕국을 메시야의 왕국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제 이 왕국이 어떻게 예언되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1) 이 왕국은 의의 왕국이다(2절). 저가 주의 백성을 의로 판단하며(사 11:4절과 비교해 보라). 그리스도의 왕국의 모든 법은 영원히 공의의 법이다. 그리고 그의 왕국의 평강은 그의 의를 통해 유지된다(3절).
(2) 이 왕국은 평화로운 왕국이다.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3절). 해몬드 박사의 말에 의하면 여기서의 '산'과 '작은 산'은 솔로몬의 왕국에 있던 상급 재판소나 하급 재판소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 왕국에는 '평강의 풍성함'이 있을 것이다(7절). 솔로몬이라는 이름은 '평강'을 의미하며 사실상 그 이름의 뜻대로 통치했다. 그러나 평강이란 본래 특별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의 영광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평강이 널리 퍼져있을때 그 평강은 사람들로하여금, 하나님과 그 자신들과 그 이웃들을 향하여 화해하도록 만들고 모든 증오를 불식시키기 때문이다.
(3) 이 왕국에서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이 특별히 보호를 받는다. 저가...주의 가난한 자를 공의로 판단하리니(2절). 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4절). 이러한 내용은 12,13절에 다시 강조됨으로써 그리스도가 분명 상처받은 가난한 자를 대신하여 신원해주실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는 압박을 받고있는 궁핍한 자를 구원하시며 또한 그의 긍휼을 바라는 궁핍한 자들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주실 것이다. 이것이 긍휼함을 바라는 자들의 소망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들의 왕이시다.
(4) 교만한 압제자들은 이 왕국에서 책망을 받는다. 저가...압박하는 자를 꺾으시리로다(4절). 마귀가 바로 교만한 압제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마귀를 꺾으실 것이며 그 왕국을 멸망시킬 것이다. 저희 피가 그 목전에 귀하리로다. 그러므로 단 한방울이라도 사단의 기만과 폭력과 그외의 술책으로인해 헛되이 흘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비록 그가 때때로 신하들에게 그를 위하여 피를 흘릴 것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는 결코 그들의 피를 헛되이 쓰지는 않으신다.
(5) 이 왕국안에서 신앙심은 크게 타오를 것이다(5절). 저희가 해가 있을동안에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동안에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지만 그 성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말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을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그 마음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이것은 영원한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사람들사이에 공의와 인애를 증가시킨다(7절).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며. 마음속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법은 사람들로하여금 정직하고 공정하게 행하며 의무를 다하도록 만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법은 사람들로하여금 사랑안에서 살게 만듦으로써 많은 평화를 가져오며 칼을 쳐서 보습이 되게 한다. 거룩함과 사랑하심은 모두 그리스도의 왕국에 영영히 있을 것이며 결코 사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왕국의 신하들은 '해가 있을동안에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동안에 대대로' 그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세상에 뿌리를 박고 마지막때까지 그 의를 지킬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그 뿌리를 박음으로써 죽음으로 인하여 해와 달과 별들이 빛을 잃을때까지(곧 그것들을 볼수 없을때까지) 그 마음속에 계속 존재할 것이다.
(6) 그리스도의 왕국은 그가 진실로 사랑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큰위로를 준다(6절). 저는 벤 풀에 내리는 비같이 임하리니. 즉 그것은 성령의 은혜와 위로를 통하여 임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베어졌지만 봄이 오면 다시금 싹을 낼수 있는 풀위에 임할 것이다.
(7) 그리스도의 왕국은 크게 확장될 것이다.
1) 그의 왕국의 범위 : 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끝까지 다스리리니(8절). 여기에 언급된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가 뜻하는 것은 남극해에서부터 북극해까지를 나타내거나 홍해에서부터 지중해까지를 나타낸다. 솔로몬의 통치범위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창 15:18) 매우 광대했다(왕상 4:21). 본문에서는 바다의 이름이나 강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은 바로 주 예수님의 전인류적인 왕국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복음은 '온세상'으로 전파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전파될 것이다(마 24:14). 그러므로 그의 영역은 다음과 같은 나라들까지 확장될 것이다.
① 그때까지 그를 모르던 나라 : 광야에 거하는 자는 저의 앞에 굽히며. 구세주의 기쁜소식을 전혀 들어본적이 없던 그들이 이제 그 소식을 듣고 그를 믿고 경배하며 그의 멍에를 멜 것이다.
② 그와 원수가 되어 대적했던 나라 : 그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2) 속국들에 대한 그의 위엄 : 그는 광야에 거하는 가난한 농군들뿐만 아니라 왕궁에 거하는 자들까지도 지배하실 것이다. '다시스'와 이스라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섬의 왕들이' 그들의 최고 통치권자인 그리스도에게 '공세를 바칠'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솔로몬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천하 열왕이...솔로몬의...지혜를 듣기원하여...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대하 9:23,24).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는데 이는 그가 탄생했을때 동방박사들이 경배하러 와서 예물을 드렸던 사실로 보아 알수 있다(마 2:11).
(8) 그리스도는 그의 모든 백성들에 의하여 영광과 사랑을 받을 것이다(15절). 저희가 생존하여. 백성들은 왕이 장수하기를 기원할 것이며(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또 거기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그가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 14:19).
첫째로, 백성들은 그에게 예물을 바칠 것이다. 그는 어느누구의 예물이나 봉사도 필요로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스바의 금을 저에게 드릴' 것이다. 가장 존귀한 자는 가장 존귀한 것으로 섬김을 받아야한다.
둘째로, 백성들은 그를 위하여 끊임없는 기도를 드릴 것이다. 백성들이 솔로몬을 위하여 기도를 드림으로써 솔로몬과 그의 왕국은 그 백성들에게 큰축복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그리스도에게는 어떤 식으로 적용될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사실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그 기도를 통해 아무런 유익도 얻지못한다. 그러나 구약교회의 성도들은 그를 '오실 자'로 부르면서 오실 것을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리고 그가 오신 지금, 우리는 그의 복음이 열매를 맺으며 그의 왕국이 확장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도를 요청하시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백성들은 그에게 찬양을 드릴 것이다. 사람들이 저를 위하여...종일 찬송하리로다.
(9) 그리스도의 왕국에서는 백성들과 먹을 양식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즉 그 나라는 부유해질 것이다. 열매를 맺기 힘든 '산꼭대기의 땅에도 화곡이 풍성하며 그 열매가 레바논같이 흔들릴' 것이다. 그 화곡은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매우 굵고 키가 크며 강하게 자랄 것이다. 이것은 메시야시대에 복음의 씨를 통하여 그리스도는 놀라운 수확을 거두셨다. 그 밭은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요 4:35;마 9:37). 각 성읍마다 백성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과 같이 왕성하리로다. 그들은 수효가 많아질뿐만 아니라 생기도 넘칠 것이다.
(10)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원히 계속됨으로써 그에게 영광이 되고 백성들에게는 행복이 될 것이다. 주 예수님은 홀로 영원토록 통치하실 것이다. 이 영원한 통치는 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지 결코 솔로몬에게 적용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대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5절) 해와 달이 다할때까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7절)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분이시다. 그 왕의 영광은 불멸하며 결코 더럽혀지지 않을 것이다(17절). 그 이름이 영구함이여. 세상왕들의 이름이 그 후손들에게 전해지듯이 그리스도의 이름도 영원토록 전해질 것이다. 그 백성들 역시 큰행복을 누릴 것이다. 사람들이 그로인하여 복을 받으리니. 그들은 진정 영원토록 복을 받을 것이다.

Ⅲ. 감사와 기도 72:18-20
(1)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그 예언과 약속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18,19절).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확실하기때문에 우리는 그의 말씀이 아직 이행되지 않았을지라도 그 말씀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모든 위업을 생각해볼때, 하나님께서는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며...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리스도안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우리는 그를 첫째, 여호와 하나님 곧 스스로 존재하시고 스스로 충족하시는 우리의 최고 통치권자로 찬양해야 한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에게서 경배를 받으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찬양해야 한다. 셋째, 창조와 섭리 특히 모든 것보다 뛰어난 구속사역을 통해 '홀로 기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찬양해야 한다.
(2) 시편 기자는 이 예언과 약속이 성취되도록 간곡하게 기도하고 있다. 온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다윗은 '아멘 아멘'이라는 말로 그의 기도를 마치고 있다. 또한 그는 이 기도로 인생의 마지막을 맺고있다. 이것은 비록 시편의 맨마지막에 놓이지는 않았어도 그의 생전에 마지막으로 지은 시편이다. 그는 이 시편과 함께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 메시야의 왕국이 세워지게 하라. 그 이상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노라. 이 시편으로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를 끝맺게 하라.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속히 오시옵소서."

# 핵심
72:1-19
솔로몬의 시편으로서 이스라엘 왕국의 영화와 번영을 묘사하고 나아가 장차 이루어질 메시아 왕국을 예고하는 내용이다.

# 묵상
솔로몬이 요구한 주의 판단력 ( 72:1 )
솔로몬이 요구한 주의 판단력이란 공의를 가리킵니다. 이는 솔로몬이 등극한 직후 드린 기도(왕상3:4-9)로, 왕의 재판과 통치가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이어야함을 의미합니다.
의로운 통치의 영향 ( 72:6 )
의로운 통치란 메시야 왕국의 우주적 통치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의로운 통치는 백성을 풍요롭고 평화롭게할 것입니다. 또한 의로운 왕의 통치는 영원할 것입니다.
메시야 왕국의 우주적 통치 ( 72:12-14 )
메시야 왕국의 우주적 통치가 실현될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실현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땅에서 소외받는 자들이 구제받고, 위로받을 것입니다(시116:15). 이와같은 공의의 실현, 넘치는 평강, 풍요로운 번영은 메시야 왕국의 특징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이 메시야 왕국이 약속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찬양해야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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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도 71:1-13
(1)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으로 수치를 당하거나,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갖게되는 기대에서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고 있다. 이러한 간청을 통해 모든 참된 성도들은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수 있다.
1)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뢰의 고백을 반복하면서 그 신뢰를 더욱 확실케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전적인 신뢰를 고백함으로써 그를 찬양해야 한다(1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하든 그는 야곱의 하나님을 그의 도움으로 선택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산성이심이니이다(3절).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7절). 즉 "내가 주께로 도망하오며 주안에서 주의 보호를 받고 안전하게 될것을 확신하나이다. 주께서 나를 굳게 지키시오매 아무라도 나를 해치지 못하리이다." 주는 나의 소망이시오 나의 어릴때부터 의지시라(5절). 이 말은 또한 다음과 같은 뜻을 지닌다. "주께서 주의 말씀을 통하여 나의 소망과 나의 의지의 적당한 대상으로서 주님 자신을 나에게 천거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안에서 소망을 가졌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았나이다."
2)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뢰는 그의 체험으로 지지되며 격려된다(5,6절). 주는...나의 어릴때부터 의지시라. 이는 "내가 내 좌우를 식별하기 시작한 이래로 주께 의지하여 왔나이다"라는 의미이다.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바 되었으며. 우리가 태어날때 우리의 도움이 되신 하나님은 우리의 어릴때부터의 소망이 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만한 능력을 갖기도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능력을 갖추었을때 조금도 지체해서는 안된다. "주는 주의 은혜의 팔, 곧 주의 날개밑 그늘과 같은 주의 언약으로 나를 이끄시는 분이시니이다. 나는 주께서 나를 보호하시리라고 소망할수 있나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나를 지켜주신 주께서 이제 내가 넘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할수 없었을때 나를 도와주신 주께서 또한 지금도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할 것이니이다."
3) 그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뢰속에서 다음의 것들을 요청하고 있다.
① 그가 수치를 당하지않도록, 즉 자신이 기대했던 은혜에 대해 실망함으로써 자신의 기대를 부끄럽게 여기지않도록 요청하고 있다(1절).
② 원수들의 손에서 그를 구원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2절).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곧 "주님은 상한 자의 호소를 변론해주시는 의로운 재판관이시니 어떤방법으로든 나를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이 환난으로부터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하셨으니(3절).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구하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종종 명령으로 언급되는 하나님의 약속은 그렇게하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음을 나타낸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7절). 나는 무리에게 이상함이 되었사오나. 즉 "모든 사람들은 내가 당한 특별한 환난과 내가 하나님께 고백한 특별한 신뢰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를 기다리고 있나이다." 또는 "나는 괴물로 간주되어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나를 피하나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나의 피난처가 되시지 않는다면 나는 멸망할 것이니이다. 사람들은 나를 버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버리지 마소서."
③ 그가 항상 하나님안에서 휴식과 안전을 찾을수 있기를 요청하고 있다(3절). 주는 나의 무시로 피하여 거할 바위가 되소서. 하나님안에서 편안히 거하는 자들, 곧 끊임없이 믿음과 기도로 하나님께 의지함으로써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자들은 그들에게 견고하여 스스로든 어떤 침략적인 세력에 의해서든 결코 깨어지지 않는 거할 바위가 있음을 확신해도 좋다. "지금 내 원망이 가득한 것처럼 주를 찬송함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그때 내가 나의 소망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니이다. 그러나 나의 원수들은 그들의 오만함을 부끄러워하리이다."
④ 노쇠해가는 지금 멸시당하지 않도록 요청하고 있다(9절). 나를 늙은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때에 떠나지마소서. 노년기에는 모든 것이 쇠약해진다. 내 힘이 쇠약한때에. 육신의 강건함, 정신의 활기, 좋은 시력과 우렁찬 음성, 튼튼한 팔다리, 이 모든 것들은 노년이 되면 모두 쇠하여지고 만다. 그러나 그는 이와같은 그의 노쇠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계속 자기와 함께하시기를 바란다. '나를 늙은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때에 떠나지 마소서.' 어떤 시기이든 특히 늙었을때와 우리의 힘이 쇠하여졌을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심령에 힘을 주는 자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은 그들이 노년기에 이르러 힘이 쇠하여졌을때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확신할수 있다. 다윗은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나님께 다시 기도를 드리고 있다.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12절).
(2) 그는 그의 원수들이 그를 해치고자하는 음모로인해 수치를 당하게 되도록 기도하고 있다. "그들은 나의 영혼을 엿보며 서로 꾀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저를 버리셨은즉 따라잡으라 하나이다"(10,11절). 여기에서 그들의 전제는 완전히 잘못되어 있다.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버림받았다고 간주되는 사람들은 실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은 자들이다. 여기에서 그들의 전제가 잘못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추측도 잔악하다. "그러나 나의 원수들아 기뻐하지 말라. 내가 비록 쓰러진다해도 다시 일어나게 되리라." 하나님은 잠시동안 버리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영원한 자비를 베풀어 다시 모으실 것이다. 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로 수치와 멸망을 당케하시며(13절). 이 말의 뜻은 다음과 같다. "만일 그들이 회개함으로써 수치를 당하려하지 않을뿐 아니라 구원을 받으려고도 하지않는다면 영원히 수치를 당하고 또한 멸망을 당하게 하소서."

Ⅱ. 기쁜 찬양 71:14-24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과 찬양에 도취되어 있다. 우리는 14절에서 다윗의 기쁨과 찬양을 모두 살펴볼수 있다. 이 구절에서 그의 표현은 갑작스럽게 변화한다. 즉 그의 두려움은 모두 가라앉고 소망이 솟아나며 그의 기도는 감사하는 내용으로 바뀐다. 즉 "내 원수들이 나를 절망에 빠뜨리기위하여 바라는 것을 모두 말하게 하소서. 그러나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살겠나이다. 즉 아무리 어둡고 캄캄한 날일지라도 죽는 날까지 그 소망을 품고 살겠나이다."
(1) 그의 심령은 믿음과 소망으로 가득찼다.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내가 절망의 늪속에서 허덕이지 않고 분발하여 나아갈 것이며 또 내 자신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힘과 주의 은혜로 얻는 힘에 의지하겠나이다" 내가 측량할수 없는 주의 의를...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여기서 말하는 '주의 의'란 주의 모든 말씀의 신실함과 주의 공평한 처리와 주를 신뢰하는 백성들에 대한 주의 인자하심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말은 "내가 기도할때 그 인자하심을 간청하겠나이다"라는 말로 이해될수 있다. 그는 비록 자기가 늙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버리지마시고, 과거와 똑같이 끝까지 함께계실 것을 바라고 있다(17,18절).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그는 어린시절 그의 부모가 준 훌륭한 교육과 유익한 교훈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이므로 하나님께 감사할수밖에 없음을 시인했다. 그리고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때 그는 하나님의 모든 기사를 전하였다. 어렸을때부터 선을 얻은 자들은 완전히 성장을 한뒤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해야 할뿐 아니라 그들이 받아온 은혜를 계속 전파해야 한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때에도 나를 버리지마시며. 여기서 '늙어 백수가 될때'라는 말은 이세상을 하직하여 저세상으로 가게되는 때를 나타낸다. 어렸을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여기는 자들은 늙어 백수가 되었을때에도 하나님께서 버리지않으시며 오히려 노년기에 가장 영화를 누릴 것이다. "나는 후대에 내 자신이 체험한바 '주의 힘'을 전할 것이며, 또 '장래에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주의 능'을 기록하고 남겨 전하겠나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가운데 특히 나이많은 사람들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신앙의 권능과 기쁨과 유익뿐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진실함을 증거해야만 하는 의무를 갖고있다. 다윗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를 소생시키시어 비천하고 쓸쓸한 처지에서 건져주실 것을 바라고 있다(20절). 우리에게 많고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그는 여기에서 "주가 우리로하여금 이 심한 환난을 당하게 하셨나이다"라고 말하지않고 다만 다정한 아버지가 그 자식에게 하듯 "주가 우리에게 이 환난들을 보이셨나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환난중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에 적절한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 환난으로부터 곧 구원받게 된다는 사실을 확신할수 있을 것이다. "주께서는 이 고난뒤에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나에게 전보다 더많은 유익을 주시리이다. 그리고 주께서는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실 것이므로 내가 더이상 어떤곳에서도 어둡고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도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통해 그들을 더욱 창대하게 하시므로 그들의 빛은 구름에 가렸다가 드러나는 태양만큼이나 더밝게 빛난다. 이제 다윗은 그의 원수들이 수치를 당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24절). 나를 모해하려 하던 자가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
(2) 그의 심정은 기쁨과 찬양을 통해 고무되었으므로 그는 소망중에 기쁨을 누리며 찬양을 드리고 있다. 소망을 통해야만 구원을 얻기때문이다. 15절에 다윗은 '주의 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라고 고백한후 여기서 또다시 고백한다. 내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말씀하오리니(24절). 본문에 의하면 다윗은 하나님의 의를 통해 특별한 감동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 하나님의 의에는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로하여금 그의 곧은 성품과 공정한 섭리와 의로운 율법에 의해 살도록 하셨고 또 그가 주신 의로운 약속과 우리를 의롭게하고자 그의 아들이 가져온 영원한 의에 의지하며 살도록하셨다. 하나님의 의와 구원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다윗은 주의 의와 구원에 대해 '측량할수 없다'고 말했었다. 이 말은 곧 "나에게 베푸는 주의 은혜는 일일이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매우 많지만 나는 그 은혜속에서 또다른 은혜를 발견하기때문에 여전히 그 은혜를 전하겠나이다"라는 뜻을 나타낸다(19절). 이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완전성과 공적은 매우 높아서 우리가 파악할수 없을뿐 아니라, 너무 위대해서 그 실체에 대해 깨닫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라고 찬양을 드리고 있다. 진정 하나님과 같은 자는 하늘이나 땅을 막론하고 아무도 없다. 천사중에도 없고 왕들가운데도 없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존재가 아니시다. 하나님께서 이와같은 분이심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올바른 찬양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을 찬양하리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알리신다. 만일 그의 말씀과 그 말씀의 성실함을 찬양한다면 우리는 그를 찬양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시라는 사실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주가 되신다는 사실은 또한 그의 백성에게도 영광이 된다. 다윗은 그가 얻은 큰기쁨을 성스러운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비파로...수금으로. 이런 일에 있어서 다윗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그러므로 그는 최고의 재능을 발휘하여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킬수 있을정도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 "내가 주께 열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 곧 주의 영광을 찬양하리이다." 내가 주를 찬양할때에 내 입술이 기뻐외치며 주께서 구속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그러나 우리의 입술이 기뻐하는 것으로 그치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아무리 고운 노래를 부른다해도 그것으로 끝난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입술과 영혼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하며 우리의 내면에 담긴 모든 것을 가지고 그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해야 한다.

# 핵심
71:1-24
표제가 없으며, 작자도 확실하게 알려져있지 않은 시편이다. 다만 5,9절로 미루어볼때, 비교적 연로한 신앙인이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나간 세월을 회고하며,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에서 구원받기를 간구하는 내용이다. 부활을 소망하는 신앙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20절).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71:6,7)
이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이 은혜로우신 목적으로 자신을 창조하셨음을 확신하고 있다. 인생의 기원과 그 목적을 알았을뿐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힘이 하나님께로서 온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았다. 따라서 그는 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그분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왔다. 이렇듯 믿음으로 사는 그를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의 눈에는 독실한 신앙인의 삶이 이해될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의 행복과 가치를 확신했기에 사람의 조롱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 묵상
주께 피하는 자세 ( 71:1-8 )
시인은 흉악한 자와 불의한 자의 장중에서 피하며 주께 숨으며 구원을 호소합니다. 여기서 주께 피한다는 것은 피난처되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하는 신앙자세를 말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에 이를수 없으며, 타인을 구원할수도 없기때문에 구원의 능력을 가지신 주께 전적으로 매달려야 합니다.
다윗의 체험으로 본 사탄의 속성 ( 71:10, 11 )
다윗은 젊었을때부터 해치고자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늙고 힘없게 된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탄은 사람이 약해질때를 엿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뢰하여 남은 여생동안에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여전하기를 소망해야 하겠습니다.
다윗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총 ( 71:15 )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릴수 없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은총이 무한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총이 구하는 자에게 예비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삶을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회고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자신의 삶에 함께하기를 소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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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도움은

 

[시편 124편 1절~8절]
1절 -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절 -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절 -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절 -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절 -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절 -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절 -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절 -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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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에 찬 기다림

 

[시편 130편 1절~8절]
1절 -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절 -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절 -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절 -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절 -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절 -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절 -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절 -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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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를지라도

 

[시편 133편 1절~3절]
1절 -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절 -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절 -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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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3편 1절~3절]
1절 -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절 -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절 -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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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3편 1절~3절]
1절 -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절 -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절 -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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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고난에 대한 탄원 70:1-5
표제를 통해 우리는 이 시편이 기억을 위한 목적에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즉 이 시편은 하나님으로하여금 그의 자비와 약속을 기억하게하려는 의도에서 기록된 것이다. 우리는 기도할때, 전에 자주 사용했던 말들을 다시 사용할수 있다. 우리 구주께서도 번민중에 계셨을때 같은 말로 세 번이나 기도하셨다. 마찬가지로 다윗도 여기에서 그가 전에 사용했던 말들을 되풀이하여 사용하고 있다.
(1)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이 속히 그를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1,5절).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5절). 이는 그가 궁핍과 고난속에서 내면적인 갈등을 심하게 겪고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과 같이 탄원하고 있다. "속히 나를 건지소서. 내 영혼의 열망이 주를 향하고 있나이다. 나는 속히 도움을 받지 못하면 멸망을 당하리이다. 주가 아니면 나에게는 구원을 기대할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분이시니이다. 주께서 주를 찾는 모든 자에게 그리하실 것을 약속하였사오매 내가 주를 의지하고 나에게도 그리될 것을 믿나이다. 주께서 그 약속을 이행하신 사실을 내가 종종 보았사오며 또 주께서는 그렇게하고도 남음이 있는 분이시니이다. 그러므로 속히 내게 임하소서."
(2)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원수들의 얼굴을 수치로 가득하게 만들어 줄것을 기도하고 있다(2,3절). 내 영혼을 찾는 자로 수치와 무안을 당케하시며. 이는 다음과 같은 뜻으로 한 말이다. "저희로 회개케하소서. 수치가 저희에게 가득하게하사 주의 이름을 찾게하소서(83:16). 저희로 주께서 보호하시는 자와 싸우려는 저희의 어리석음을 보게하시고 나를 해치려는 저희의 음모를 좌절시켜 주소서. 그러면 저희가 수치와 무안을 당하고 스스로 낙담하리이다"(느 6:16).
(3)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친구들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4절).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우리의 중대사로 여기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큰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며 그의 구원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잘못이 없는한 주께서 주시는 기쁨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또 주님을 향한 숭고한 찬양이 우리의 입을 채울 것에 대해 확신한다. 성도들의 평안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은 다윗의 이 기도에 아멘으로 답하지 않을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은 광대하시다'라고 말하게 된다.

# 핵심
70:1-5
40:13-17절의 내용과 매우 흡사하다. 핍박과 궁핍에 시달리는 가운데 탄식하며 하나님의 신속한 구원의 손길을 갈망하고 있다.

# 묵상
지혜로운 자의 기도 ( 70:1-5 )
본 시는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로서 시인은 오직 주의 도움만을 간절히 외치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형편이 그만큼 절박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생의 절박한 위기속에서 우리의 구할 진정한 도움은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가르쳐 줍니다.
광대하신 하나님 ( 70:4 )
‘하나님은 광대하시다’라는 찬양의 고백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한 다윗의 체험적 고백입니다. 다윗은 뜻하지 않은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기도한것 이상으로 넘치게 받았습니다. 이와같은 다윗의 고백이 하나님의 은혜를 풍족히 누리는 성도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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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역경에 대한 탄원 69:1-12
이 본문에서 다윗은 자기의 고난을 호소하고 있다.
(1) 그는 매우 비통해하며 자기를 무겁게 짓누르는 짐을 덜기 원하는 자로서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1) 그는 그의 고난이 그의 영혼에 끼친 깊은 영향을 호소하고 있다(1,2절).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1절). "그 고난의 물들은 나의 생명을 위협할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을 불안케하기까지 하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전처럼 항상 하나님과 내 자신을 기뻐할수 없나이다."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잠 18:14). 그러나 그 심령이 상했을때 우리는 무엇을 할수 있겠는가? 그것이 바로 여기 다윗의 경우였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당하셨던 영혼의 고통과 그가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요 12:27), 즉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마 26:38;막 14:34)라고 말씀하셨을때 겪으신 내적고민을 나타내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죄를위해 그리스도께서 제물로 바치셨던 것은 바로 자신의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2) 그는 자신의 고난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음을 호소하고 있다(3절).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그는 그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는 죽음에 직면할수록 더욱더 그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했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즉시 죽음으로부터 벗어날수 있는 평강의 응답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내 하나님을 바람으로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탄원함으로써 그의 믿음과 기도를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그의 목은 말랐으나 그의 심령은 마르지 않았다. 그의 눈은 쇠하였으나 그의 믿음은 쇠하여지지 않았다. 이와같이 우리 주 예수께서도 십자가위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치셨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굳게 붙잡으셨다.
3) 그는 그의 원수들의 악의와 세력, 그들의 불의와 잔인성, 그리고 그에 대한 그들의 학대를 호소하고 있다(4절).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즉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건만 그들은 나에게 그러한 악의를 품고 있나이다"라는 의미이다. 우리 구주께서는 '저희가 연고없이 나를 미워하였다'(요 15:25)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다윗의 이 기도를 자신에게 적용시키셨다. 내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내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이 원수들은 그 수효가 매우 엄청났고 그 힘이 강해서(권위와 권능에 있어서 그들은 강했다) 결코 멸시할수 없었으며 오히려 그에게 심히 큰두려움을 주었다.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나이다. 이것은 다윗이 그의 원수들을 진정시키고 그들과 화평을 맺기위하여 그들이 그에게 부당하게 강요한 것들에 동의한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그리스도께 적용시킨다면 이것은 그가 그의 피로써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던 것에 대한 주목할만한 묘사가 된다. 이렇게 그는 자신이 취하지도 않은 것을 우리를 위하여 물어주셨던 것이다. 즉 그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할 처벌을 대신 받으심으로써 우리의 빚을 갚으셨고 우리의 잘못으로 고난을 받으셨다.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손상되었다. 또한 인간의 명예와 평화와 행복도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사라졌다. 이러한 것들을 탈취한 자는 그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죽음을 댓가로 이것들을 물어주셨던 것이다.
4) 그는 그의 친구들과 친척들의 냉대를 호소하고 있다(8절).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이는 "그들이 나를 외면하여 나와 대화하기를 싫어하고 나를 인정하기를 부끄러워하나이다"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 즉 그의 형제들이라도 그를 믿지 아니하였고(요 7:5),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며(요 1:11), 그의 제자들조차 그를 버렸던 것이다.
5) 그는 그가 당한 경멸과 끊임없이 그에게 퍼부어지는 비난을 호소하고 있다. 다윗의 이 호소는 특별히 우리를 위하여 가장 큰수치와 모욕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입장을 나타낸다. 다윗은 여기에서 자기에게 가해진 심한 모욕을 말하고 있다. 다윗을 모욕한 자들은 그가 겸손하게 행동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린 것때문에 그를 조롱했다(10,11절). 다윗은 순수하게 하나님께 헌신하는 가운데,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그의 존경을 입증하기위해 곡하고 금식함으로써 그의 영혼을 단련시켰으며, 겸손한 회개자가 하는 것처럼 '굵은베로 그의 옷'을 삼았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훌륭한 본보기를 따르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온갖 힘을 기울였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그의 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저희의 말거리가 되었나이다. 그들은 이처럼 그가 자학을 일삼는 어리석은 자라고 비웃었다. 가장 엄숙하고 가장 존경받는 사람들, 즉 좋은 말을 기대할수 있는 사람들도 그를 조롱했다. 여기서 우리는 선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떤대우를 받는지에 대해 보게된다. 지혜로운 자들에게 있는 칭찬할만한 점이 종종 어리석은 자들의 노랫거리가 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사리를 옳게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자기들이 당하는 멸시를 가볍게 여길수 있을 것이다.
(2) 그는 매우 진지하게 자기 죄를 고백한다(5절). 하나님이여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곧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나의 모든 것을 아시나니 그들이 나를 고발한 죄에 대해 내가 얼마나 결백한지에 대해서도 아시나이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진실한 참회를 하는 자의 고백이 아닐수 없다. 그는 자기의 죄를 덮어두고는 형통할수 없으며 따라서 그 죄를 시인하는 것이 지혜롭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앞에서는 모든 죄가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된 본성을 알고 계시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께서 내 마음속에 담겨져있는 우매함을 아시나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삶속에서 자행되는 범죄, 그것도 가장 은밀하게 행해진 범죄를 모두 알고 계시다. 그것들은 모두 그가 보시는 가운데서 행해지며 회개하고 사함받기전에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3) 그는 매우 열정적으로 간구한다.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침잠하지 않도록 절망하지 않도록 나를 구원하소서!" 만군의 주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로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케 마옵소서 이스라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로 나를 인하여 욕을 당케 마옵소서(6절). 이것은 다윗이 두려워하는바를 암시해 주고있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지 않을경우 모든 선한 백성들이 좌절에 빠지고 말것이며 그들의 원수들은 그들을 짓밟고 승리를 거두게 되리라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했으면 하나님을 찾고 바라던 모든 사람들은 수치와 욕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갖고 그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고 있다.
(4) 그는 매우 강력하게 탄원하고 있다(7,9절). "주여 나에 대한 비난을 멈추게하시고 나의 사정을 변호해 주소서 내가 주로인하여 훼방을 당하였나이다." 선행으로 인하여 비난을 받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를 하나님께서 빛처럼 드러내실 것을 겸손한 태도로 신뢰하고 있어야 한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이런 이유로 주와 주의 집을 미워하는 자들이 나를 미워하나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열심히 사모하고 있는지 그들도 알기때문이니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들에게서 받았던 모든 사랑과 존경을 사라지게 했나이다." 이 구절은 또한 하나님의 집을 위하는 다윗의 열심에 대한 실례로서 해석될수 있다. 즉 그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행해진 모든 무례함을 마치 자기 이름에 대한 모욕처럼 여기며 분개했던 것이다. 그는 신앙위에 퍼부어지는 모든 경멸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있었다. 이 구절에 대한 두가지의 해석은 모두 그리스도께 적용될수 있다.
1) 그리스도가 성전의 매매자들을 채찍으로 내쫓으심으로써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그를 삼키게 했던 사실은 아버지에 대한 그의 사랑의 실례였으며 이는 그의 제자들로하여금 이 시편을 상고시키게 했다(요 2:17).
2)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참조. 롬 15:3)라고 한것은 그가 자기를 부인하고 그 자신을 기쁘게하지 않은 것의 한 실례가 되었다. 그런점에서 그는 또한 우리의 본보기가 되신다.

Ⅱ. 다윗의 열성적인 간구 69:13-21
그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때문에 그들로부터 비방을 당했으며 또한 그것때문에 술취한 자들의 노랫거리가 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도를 계속하기로 결심한다. 비록 우리가 선행을 한 것때문에 조롱을 받을수는 있지만 선행을 하지 않았기때문에 조롱거리가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여호와여 나는 주께 기도하오니.
(1) 그는 무엇을 요청했나. 내게 응답하소서(13절).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시며(16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17절). 즉 "내가 말하는 것을 들으실뿐만 아니라 내가 구하는 것을 허락해주소서."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하시고(14절). 즉 "다른 사람들이 하듯이 나를 수렁속에 내버려두지 마시고 나를 도우사 내발을 반석위에 두소서"(40:2).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14절). 곧 "사자의 발톱에서 건지우는 어린양처럼 나를 건지소서." "비록 내가 깊은 물에 들어가도(2절) 큰물이 나를 엄몰하지 말게하소서(15절). 나를 절망의 수렁에 빠지지 않게하시며 그 깊음이 나를 삼키지 않게하소서. 그리고 웅덩이가 내위에 그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그렇지않으면 내가 멸망하게 되나이다."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이 그에게로 돌이키사(16절) 그에게 미소하시며 그로부터 그 얼굴을 숨기지 않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17절).
(2) 그는 이러한 청원들을 굳게 주장하는 근거로 무엇을 탄원하고 있나.
1) 하나님의 자비와 진실을 탄원하고 있다(13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로 내게 응답하소서.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서 얻은 논증을 반복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그 인자하심은 자체로서 선할뿐 아니라 차고 넘치나이다."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16절).
2) 그 자신의 환난과 고통을 탄원하고 있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중에 있사오니(17절). "나는 주의 은혜를 필요로 하나이다. 그러므로 그 은혜가 이제 때맞춰 임한다면 나는 그 은혜를 귀하게 여기겠나이다." 주께서 나의 훼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19절). 이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자기의 심정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20절). 왜냐하면 선한 명성의 가치를 알고있는 자가 나쁜 평판을 받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하여 능욕을 당하는 것이 얼마나 명예로운 일이며 그의 이름을 위하여 수치를 당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은총으로 간주될수 있는가(사도들도 그렇게 생각했듯이, 행 5:41)를 깊이 생각해볼때, 우리는 그러한 비방이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할 이유가 조금도 없음을 알게될 것이다.
3) 그의 원수들의 오만과 잔인함을 탄원하고 있다(18절). 내 대적이 다 주의 앞에 있나이다(19절). 즉 "주께서는 내가 어떤 위험에 빠져있으며 또 그들이 나를 치기위해 행하고 계획하는 일에서 주께서 얼마나 비방당하시는지를 아시나이다." 그는 그들의 잔인한 행동을 보여주는 한 실례를 언급하고 있다.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때에 초로 마시웠나이다(여기서 쓸개라는 말은 쓴풀을 의미하며 흔히 쓴쑥에 해당된다).
4) 그는 그의 친구들의 불친절과 그들에 대한 실망을 호소하고 있다(20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그들은 모두 여름의 시냇물처럼 그를 실망시켰다. 이것은 그리스도에게서 이행되었다. 왜냐하면 그의 모든 제자들이 그가 고난을 당할때 그를 버리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Ⅲ. 예언적인 저주 69:22-29
다윗이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저주들은 그 자신의 원수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핍박자들, 특히 유대 민족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이것은 우리 주께서 친히 눈물로써 예고하셨던 것으로 그가 죽은지 약 40년후에 이루어졌다. 이 본문의 처음 두구절에는 하나님께서 믿지않는 유대인들을 심판하시는 내용이 분명하게 드러나있다. 사도 바울도 이 점을 로마서 9:9,10절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 본문 전체는 그러한 맥락위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1)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이 받게될 심판은 어떠한 것인가. 이 심판은 그들 모두에게 임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에 가담했었으나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얻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행 2:23;3:14,15). 이 심판은 그들가운데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에게 임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면서 완악한 마음으로 복음을 불신하고 거절했을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들과 그 따르는 자들을 마음속 깊이 적대하였다(참조. 살전 2:15,16). 여기에서 예언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그들이 드리는 제사와 제물은 그들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22절). 저희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이 '밥상'은 하나님의 제단으로 볼수 있다. 하나님의 제단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상으로서 제사를 드린후에 그 제물을 나누어 먹는 곳이었다. 또는 '밥상'의 의미를 그들의 필수적인 양식을 포함하는 일상적인 음식물로 볼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쓸개와 신포도주를 주었었다. 따라서 그들의 음식과 음료수도 당연히 그들에게 쓸개와 신포도주 같이 될 것이다.
2) 그들은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복된 지식과 평화의 위로를 결코 얻지못할 것이다(23절). 저희 눈이 어두워 보지못하게 하시며. 즉 그들이 그리스도앞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못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죄로인해 빛을 싫어하여 눈을 감고 그 빛을 보려하지 않게될 것이다. "그들을 절망속으로 몰아넣어 끊임없는 혼란에 빠지게 하소서." 이 말은 로마 군대가 쳐들어왔을때 유대인들이 절망중에 빠짐으로써 성취되었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맹렬한 분노아래 놓이게될 것이다(24절). 주의 분노를 저희위에 부으시며.
4) 그들은 땅과 나라를 완전히 빼앗길 것이다. 그들은 바로 이것을 두려워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이 주장한대로 이것을 방지하기위하여 그리스도를 핍박했다(요 11:48). 저희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25절). 이 말은 그 나라가 로마 군인들에 의하여 황폐하게 됨으로써 성취되었다. 그리하여 '시온은 밭같이 갊을' 당한 것이다(미 3:12). 성전은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의 자부심을 주었던 집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집은 '황폐하여 버린바' 되었다(마 23:38). 그 장막에 거하는 자가 없게하소서(25절). 이 말은 특별히 유다와 예루살렘에 철저히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멸망한뒤 어떤 목적으로라도 사람들이 그 나라에 다시 거주하게 된 것은 무척 오랜후였기 때문이다.
5) 그들이 멸망에 이르는 길은 내리막길과 같아 아무것도 그들을 멈추게 하지못할 것이다(27절). "주여, 저희 죄악에 죄악을 더 정하사 그들로 그들 마음대로 행하게 하소서." 주의 의에 들어오지 못하게하소서. 하나님께서는 어느누구도 의로부터 내쫓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복음은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음을 거부하지 않은 자라면 그 누구도 멀리하지 않기때문이다.
6) 그들은 행복에 대한 아무런 소망도 갖지못할 것이다(28절).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즉 "저희를 오래살지 못하게하소서. 그들이 오래살수록 그들은 더많은 죄악을 범할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믿지않는 많은 유대인들이 칼과 기근에 의해 쓰러졌다. 그들은 민족으로서 도말되었으므로 더이상 하나의 백성이 될수 없었다.
(2) 그들은 어떤 죄로 이 두려운 심판을 당하게 되었나(26절). 대저 저희가 주의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케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께서 치신 분이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하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사53:3,4,10). 그는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같이 되었다(사 53:3,4). 그들은 분기충천하여 그리스도를 핍박했을뿐 아니라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라고 외쳐대기까지 했다.
(3) 시편 기자는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29절).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즉 "내 처지는 외적인 고통으로인해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나이다. 그러나 나는 의인과 함께 기록되었으며, 그들처럼 하나님의 분노아래 있지 않나이다."

Ⅳ. 감사와 찬송 69:30-36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의 본보기로서 이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슬픔의 탄식과 항의로 시작했던 이 시편을 거룩한 기쁨과 찬송으로 끝맺는다.
(1) 그는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기로 결심하고 있다(30,31절).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는 마음으로뿐 아니라 노래로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겠다는 뜻이다. 이 찬양은 기도뿐 아니라 찬송의 중보자도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를 기쁘시게할 것이므로 율법상의 가장 귀한 제물인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더나을 것이다(31절). 이것은 메시야 시대에 속죄제물뿐 아니라 의식법에 의하여 규정된 찬양과 감사의 제사로 끝나게 되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암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 대신 영적인 찬송과 감사의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될 것이다.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찬양이 가장 값비싸고 화려한 제물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위로가 된다.
(2) 그는 다른 선한 백성들로하여금 하나님을 기뻐하고 계속 그를 찾도록 격려하고 있다(32,33절). 온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1) 그들은 궁핍한 자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응답하시고 또 그들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을 베풀어주시고자 하심을 보게될 것이다.
2) 그들은 구세주의 높이 들리우심을 보게될 것이다. 왜냐하면 시편 기자는 구세주에 대해 그리고 구세주의 모형으로서의 그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왔기 때문이다.
(3) 그는 모든 피조물 곧 천지와 바다, 그리고 그중에 거하는 모든 것들로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촉구하고 있다(34절). 온세상은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베푸신 은혜를 찬양해야 한다(35,36절).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에 대한 예배가 거행되던 시온 그 거룩한 산을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각각의 교회들이 복음의 원리에 따라 형성되고 조직될 것이다. 그리하여 '거기 거하여 소유를 삼는' 남은 자들이 있게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일반적으로 신앙에 대해 호의를 갖고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앙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또 그리스도 교회안에서 그들의 거처를 찾게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나라의 시민들, 곧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그 교회안에 머물게 된다. 구속자는 그의 후손을 볼 것이며 그들속에서 그의 날이 연장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비밀이 풀리고 신비스런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이다.

# 핵심
69:1-36
원수들의 무고한 모함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는 암담한 상황을 탄식하는 시편이다. 대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호소하며, 고난속에서도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의 신앙이 돋보인다. 특히 본시편은 하나님의 의로운 종이신 예수님이 지상사역 기간동안 당하신 고난을 예표하는 대표적인 시편이다(참조, 요 2:17; 15:25; 행 1:20; 롬 11:9,10; 15:3).

# 묵상
고난에 대한 성도의 자세 ( 69:1-35 )
성도는 고난가운데서도 그속에 담겨진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혹 죄에 대한 형벌로 고난이 임했을경우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고(고후7:9),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선하시며 의로우심을 믿어야합니다. 또한 회복을 기다리며, 고난으로 인한 연단을 잘 견뎌내었을때 주어질 상급을 바라보며 위로를 얻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히4:15)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다윗이 겪은 고통의 예표적 의미 ( 69:4 )
다윗은 자신의 고난에 대해 억울하고, 잘못없이 배상해야할 처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무흠하신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신 구속사역을 예표합니다(요15:25).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고 역경을 이겨내는 원천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구원을 위한 기도 ( 69:4-28 )
본문은 환난을 당한 성도가 환난을 극복하기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환난에 빠진 성도는 고난이 극심할때 다른 길로 나아가지 않고 주님앞에 나와 부르짖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결코 외면치 않으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환난을 당할지라도 좌절하지 말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구원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림으로 응답받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역경에 대한 탄원 ( 69:15 )
‘깊음이 삼키고 웅덩이가 입을 닫는다’는 것은 구원받을 소망이 전혀없음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처지가 암담하고 처절할때에 하나님께 구원의 소망을 잃지않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긍휼에 매달리는 다윗의 신앙을 잘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의 특징 ( 69:16 )
여호와의 인자는 자비롭고 풍부하시며(출34:6), 선하시고 영원하십니다(대상16:34). 그리고 사랑으로 충만하시며(시33:5), 용서하시고 복주시며(대하30:9), 보배롭고 선하시며(시36:7), 오래참으시고 구원하십니다(딛3:5).
은혜에 대한 찬양 ( 69:29-36 )
본문은 고난과 시련가운데서도 승리를 예견하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찬양한 감사시입니다. 여기서 시인의 찬송은, 하나님께서는 곤고와 환난가운데에서도 종래에는 그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에 찬 것입니다. 이같은 다윗의 구원의 확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결국은 구원해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시온의 구원 ( 69:35 )
시온은 하나님 백성이 거하는 거룩한 도성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시온의 구원은 하나님백성의 영원한 구원과 하나님나라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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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찬양 68:1-6
(1) 여기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영광중에 나타나시기를 기도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로써 그의 대적이 혼란에 빠지게될 것이기 때문이다(1,2절). "하나님은 대적들에게 선고를 내리는 재판관으로서 또 전쟁터를 누비며 대적들을 처단하는 장군으로서 일어나 그 원수들이 흩어지게 하소서. 하나님은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일어나사 밤의 어두움이 떠오르는 태양앞에서 사라져 없어지듯 어두움의 자식들이 흩어지게 하소서." 이와같이 다윗은 모세의 기도를 해설하고 있으며 그것을 자신과 자기의 시대에 다시 적용시킬뿐 아니라 그것을 확대 해석하여 성경의 기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비록 우리가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해야겠지만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증오와 하나님의 나라를 해치려는 그들의 모든 시도를 물리치기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2) 그로써 그의 백성들이 위로와 기쁨을 얻게될 것이기 때문이다(3절).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앞에서...즐거워할지어다. 이 말은 곧 의인이 지금은 슬픔속에 있다해도 결국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된다는 뜻이다.
(2) 그는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나타나신 것으로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1) 그는 하나님을 무한히 위대하신 하나님으로 찬양하고 있다(4절).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 그는 모든 천체운동의 근원이 되시며 별거를 탄 자가 그 병거를 다루듯 하늘에 영향을 끼칠수 있는 최고의 명령권을 갖고 계시다. 그는 하늘을 '야훼' 혹은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곧 스스로 존재하고 자족하는 자이며 모든 존재와 권세와 운동과 완전성의 근원이 되는 자로서 통치하신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이다.
2) 그는 하나님을 은혜로운 하나님, 곧 자비와 긍휼을 지니신 하나님으로 찬양하고 있다. 그는 위대하시며, 위대한 권능의 하나님이시지만 그의 권능을 고난받는 자들을 위로하시는데 사용하신다(5,6절).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는 그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다.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는 하나님은 그 자신이 '고아의 아버지'인 것을 기뻐하신다. '여호와께서 높게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하시나니'(138:6).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로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가르치시며 그들에게 양식과 기업을 허락하여 주신다. 그들은 자유롭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그들의 보호자로서 하나님께 호소할수 있다(146:9;10:14,18). 그는 또한 과부의 보호자로서 그들에게 권고해주시고 그들의 슬픔을 감싸주시며 그들을 인정하시고 신원해 주신다(잠 22:23). 그는 그들의 모든 호소에 귀를 열어놓으시며 손을 펴사 그들의 모든 궁핍함을 채워주신다. 그는 '그 거룩한 처소에서' 이런 일을 하신다. 그러므로 그들로하여금 그의 거룩한 처소로, 곧 그의 말씀과 율례로 나아오게 하라. 거기에서 그들은 그를 발견하고 그에게서 위로를 얻게될 것이다. 가족이 구성될때 그 가족의 설립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고독한 자로 가족중에 처하게 하시며. 하나님은 고독한 자들을 다정한 친척관계로 들어가게 하신다. 하나님은 밖에서 위안을 구할수밖에 없는 자들을 집에 거하게 하시며(해몬드 박사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가난한 자들에게 생계를 마련할 길을 열어주신다.
3) 그는 하나님을 공의로운 하나님으로 찬양하고 있다.
① 그것은 하나님이 억눌린 자들을 구원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는 '수금된 자를 이끌어내시며' 부당하게 투옥되어 노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신다. 어떠한 사슬로도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만드신 자들을 묶어놓을수 없다.
② 그것은 하나님이 압제자들을 응징하시기 때문이다. 오직 거역하는 자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압제자들은 그들이 협잡과 부정을 통해 얻은 것으로 아무런 위로도 얻지 못한다.

Ⅱ.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회고 68:7-14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때마다 이전에 받은 긍휼을 생각해야하며 또 그 모든 긍휼을 감사한 마음으로 되새겨야 한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1) 하나님은 광야에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다(7절).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행진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군병들로서 곧 군기를 든 군대로서 광야를 지나갔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그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내셨다(8절).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민족은 결코 없었다(신 4:32,33). 또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렇게 훌륭하게 상술되고 시행된 율법을 가진 민족도 결코 없었다. 거대하고 길게 뻗은 산마루를 지닌 시내산도 하나님 앞에서는 진동하였다(참조. 삿 5:4,5;신 33:2;합 3:3). 하나님의 임재의 두려운 광경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도록 그들을 격려했을 것이다. 그들의 복된 정착을 가로막는 어떤 어려움의 산이 있었을지라도 시내산을 진동시킬수 있었던 하나님은 그것들을 쉽사리 제거하실수 있었다.
(3) 하나님은 광야와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우 풍족한 양식을 제공해주셨다(9,10절). 하나님이여 흡족한 비를 보내사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1) 이것은 광야에서 그들의 장막이 만나로 채워졌던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볼수 있다. 이 만나는 메추라기의 경우와 같이 광야에서 그들에게 비같이 내렸던 것이다(78:24,27).
2) 이것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으로 기록된(신 11:11),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그들이 때에 따라 양식을 공급받았던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볼수 있다. 더나아가서 이것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마련된 영적양식으로 볼수 있다. 은혜의 성령과 은혜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산업을 견고케하신 흡족한 비이며, 그 비에서 그들의 열매가 나온다(사 45:8).
(4) 하나님은 종종 이스라엘 백성들로하여금 그들의 원수를 이기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들 군대의 대장으로서 그들에게 '말씀을 주셨다.' 그는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워서 그들에게 행할바를 지시하시고 성공을 확신시켜 주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의 말씀을 주시자, 곧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에게 임하자 그의 말씀을 전파하는 자들, 곧 선지자들과 여선지자들이 큰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12절). 그들은 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 도망을 쳤다. 그들은 급히 달아났을뿐 아니라 그후 두번 다시 군세를 회복하지 못했다. 집에 거한 여자도 탈취물을 나누도다. 전장에 나갔던 군인으로서 탈취물을 나눠갖게 되었을뿐만 아니라(삼상 30:24) 집에 머물렀던 여자들도 그 탈취물을 나누어 가질수 있었다. 이것은 전리품이 그만큼 많았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전능하신 자가 열왕을 그중에서 흩으실때에는 살몬에 눈이 날림같도다(14절). 여기에서 '그중에서'라는 말은 "그녀를 위하여"라는 뜻이며 이 "그녀"라는 말은 이스라엘 교회를 나타낸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통해 더욱더 순전한 신앙을 갖게되었다. 그들은 대적을 치러 출진할때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갔다(신 23:9). 그 결과 이스라엘은 승리를 거두었고 그 승리를 통하여 그들의 신앙을 더욱더 순결하고 경건하게 지킬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인하여 우리의 영적인 대적들은 모두 달아났을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가운데 어느 한사람이라도 결코 해칠수 없게되었다.
(5) 그들은 비천하고 멸시받던 처지에서 벗어나 영화와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지냈을때와 그후 가나안에서 주변의 강대국들로부터 압제를 받았을때, 깨어져서 쓸모없이 된 그릇으로서 '양우리에' 곧 쓰레기속에 누워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이스라엘의 짐을 벗기셨다(81:6). 그리하여 다윗의 시대에 이스라엘은 '그 깃을 황금으로 입힌 비둘기'(13절)처럼 세상에서 가장 번영하는 왕국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해몬드 박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무와 돌을 향해 경배하며 가장 천박한 욕망에 사로잡혀 살던 이방의 우상숭배자들도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오게 되면 그 수치스러운 상태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리스도인의 모든 덕, 곧 세상에서 가장 큰 내적 아름다움을 실천하는데까지 다다를 것이다.

Ⅲ. 시온의 영광 68:15-31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을 특별히 시온의 하나님으로 찬양하고 있다. 9:11절의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라는 말과 비교해 보라. 이런 이유때문에 시온은 '하나님의 산'으로 불린다.
(1) 그는 시온을 바산의 산 및 그밖의 높고 비옥한 산들과 비교하면서 그 산들위에 서게한다(15,16절). 사실상 시온은 그 산들과 비교해 볼때 작고 낮은 산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산'이라는 점에서 다른 모든 산들보다 뛰어나다.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시온을 시기하여 보며 너희의 높이를 자랑하느뇨. 이 시온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산이로다." 시온이 이처럼 특별한 영광을 받는 이유는 시온이 복음교회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교회는 시온산으로 불린다(히 12:22). 다윗은 이 본문을 통해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영히 거하시리로다'라고 말함으로써 이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2) 그는 시온을 이미 언급한바 있는(8절) 시내산과 비교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시온이 시내산만큼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실제적으로 쉐키나, 곧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있는 산임을 보여주고 있다(17절). 천사들은 바로 '하나님의 병거'들이다. 그들의 수는 엄청나게 많아서 '천천'과 '만만'에 이른다. 하늘의 예루살렘에는 '천만 천사'가 있다(히 12:22). 그러므로 혹자는 이 17절의 마지막 문장인 '주께서 그중에 계심이 시내산 성소에 계심같도다'를 "시내산은 성소에 있도다"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성소가 시내산 대신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은 이 성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3) 시온산이 영광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 거룩한 산에 세우신 왕 때문이었다(2:6).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그 왕의 승천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은 신약에서 명백하게 적용되었다(엡 4:8).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18절). 이 말을 47:6절과 비교해 보라. 그리스도는 높은 곳에 이르셔서 영광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옥의 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이다. 그는 '사로잡은 자를' 끌고가셨다. 즉 그는 위대한 정복자들처럼 승리하여 그의 포로들을 끌고가신 것이다(골 2:15). 그가 포로로 끌고가는 자들은 바로 우리를 포로로 끌고갔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우리를 영원히 포로로 잡아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죄와 사단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림으로써 사로잡힘 그 자체를 끌고가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적인 대적들을 물리치고 완전하게 승리하셨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대적들을 넉넉히 이기게 된다(롬 8:37). 그는 승천하심으로써 모든 성도들에게 하늘문을 열어주셨다. 선물을 인간에게서 또는 패역자 중에서 받으시니. 사도 바울은 이 말을 '그가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는 뜻으로 해석한다(엡 4:8). 그는 받은대로 주시는 분이시다. 즉 영생을 주는 권세를 얻었으므로 그는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신 것이다(요 17:2). 주께서는 인간에게서 선물을 받으셨다. 즉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기위해 친히 옷입기를 기뻐했던 인성을 통해 선물을 받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베푸는 그리스도의 친절과 사랑을 확대시키기 위하여 우리에게서 선물들을 받으실뿐 아니라 '패역자', 곧 반역을 일으켰던 자중에서도 선물을 받으신다. 아마도 이 패역자는 특별히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이방인을 뜻하는것 같다(골 1:21). 어쨌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패역자들이 용서받을뿐 아니라 사랑받기까지 한다는 사실은 바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차고 넘칠정도로 증대시킨다. 그리스도는 이 패역한 세상을 정죄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하려고 오셨다. "주께서 패역자 중에서 선물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패역한 세상에다 교회를 세우셨다.
(4) 시온의 왕이 영광을 받는 것은 그가 그의 기뻐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구원자와 은인이 되시고 그에게 반역하는 모든 자들에게 사르는 불이 되시기 때문이다(19-21절). 우리는 여기에서 선과 악,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대하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선물은 매우 많고 무거우므로 그는 진정 우리에게 그 선물들로 짐을 지우신다고 할수 있다. 하나님은 더이상 쌓을 곳이 없을정도로 복을 부어주신다(말 3:10).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그가 우리의 하나님으로서 우리와 폭넓게 맺고있는 언약의 관계에 응할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계속 적의를 품고있는 자들은 반드시 멸망을 당할 것이다(21절). 그 원수의 머리는...하나님이 쳐서 깨치시리로다. 그 원수는 사단, 곧 옛뱀에게 속한 자들이다(이 뱀에 관하여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고 예언되어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최초로 하신 약속이었다, 창 3:15). 그는 '그 죄과에 항상 행하는 자의 정수리'를 쳐서 깨치실 것이다. 다윗이 머리를 정수리로 부른 것은 아마도 압살롬을 비유하여 말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숱이 많은 그의 머리는 그에게 오히려 굴레가 되었다. 그렇지않다면 그 정수리는 가장 사납고 야만적인 그의 원수들을 나타낼지도 모른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더무섭게 보이려고 머리를 길렀던 자들이다.

Ⅳ.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구원 68:22-31
여기에서는 세가지 내용이 찬양되고 있다.
(1)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리라는 은혜로운 약속과 그와 그들의 원수들에 대한 그들의 승리이다(22,23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백성의 구원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하리라"고 하셨다(20절). 내가 저희를...바다 깊은데서 도로 나오게 하고. 하나님은 이 일을 그가 애굽의 노역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시어 편하고 자유로운 광야로 인도하셨을때처럼 행하실 것이다. 내가 저희를 바산에서 돌아오게 하며. 즉 광야에서 궁핍을 당하며 유리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풍성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어 정착하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그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바산의 땅은 요단강 건너에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시혼과 옥을 맞아 싸웠고 또 그곳으로부터 가나안 땅으로 갔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그들로하여금 그들의 원수들을 이기게 하실 것이다(23절). 너로 저희를 심히 치고 그 피에 네 발을 잠그게하며 네개의 혀로 네 원수에게서 제 분깃을 얻게하리라. 개들이 아합왕의 피를 핥았다.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세대가 멸망할때 피가 '말굴레'까지 닿을 것이다(계 14:20).
(2)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할 것이다. 하나님이여 저희가 주의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에 행차하시는 것이라.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주의 사역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적극적인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사유한다. 그는 하나님인 동시에 왕이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않고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되신다. 하나님은 성소와 그의 말씀 및 규례와 특별히 복음교회에 속한 그의 백성들가운데로 행차하신다. 하나님께서 성소로 행차하실때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은 그를 찬양한다(25절). 레위인들은 이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앞장서도록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놀라운 승리의 날이었으므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던 자들가운데 '소고치는 동녀'들도 있었다. 해몬드 박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가 하늘로 올라갔을때 사도들도 이처럼 그리스도의 승천을 찬양하면서 그 사실을 온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그 사실의 증인들인 여자들도 그들과 합세하여 그 사실을 열심히 전파했다." 엄숙한 종교적 집회에 참여하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한다. 즉 회당이나 선지자들의 학교나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자들의 회중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송축해야 한다. 우리가 함께 나누어 갖는 공적인 긍휼에는 모두가 연합하여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가운데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도 앞장서야 한다(27절). '거기는 저희 주관자 작은 베냐민과(베냐민 지파는 사울시대에 왕족이었다) 그 무리', 곧 그들의 우두머리와 지도자들이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완성시키는데에도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28절). 28절의 전반부에서 이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네 하나님이 네 힘을 명하셨도다. 이는 "너를 위하여 어떤 일이 행해지든 또 네가 어떤 힘을 갖고있든 그것은 하나님, 곧 그의 권능과 은혜와 그가 명하신 말씀으로부터 온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28절의 후반부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에 힘입어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을 견고히 하소서. 즉 "주여 당신이 명하신 것을 굳게 하시고 당신이 약속하신 것을 이행하시며 당신께서 영광스럽게 시작하신 그 선한 일이 좋은 결과를 맺게하소서."
(3) 교회밖에 머물던 자들이 거부할수 없는 초대와 권유를 받고 교회와 연합하게 된다(29-31절). 이것은 다윗과 솔로몬시대에 유대교로 개종한 많은 사람들을 통해 부분적으로 이행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방의 모든 민족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개종함으로써 완전하게 성취되었다(엡 3:6).
1) 어떤사람은 두려움으로인하여 복종할 것이다(30절). 갈밭의 들짐승과 수소의 무리와 만민의 송아지를 꾸짖으시고 은조각을 발아래 밟으소서. 이 말의 뜻은 다음과 같다. "갈밭의 들짐승들, 즉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대적하는 자들, 수소의 무리들처럼 맹렬히 분노하며 만민의 송아지처럼 우둔하고 부정한 자들(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대하고 이세상에 그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막기위해 온갖 힘을 기울였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나타낸다), 주여 그들을 책망하시고 그들의 교만을 꺾으시며 그들의 음모를 흩으소서. 그리하여 그들 각자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와 화평을 맺고자 애쓰게 하소서." 많은 사람들은 다행히도 책망을 받음으로써 멸망의 길로부터 구원되었다. 그러나 스스로 복종하려 하지않는 자들에 대해 이 시편 기자는 그들이 뿔뿔이 흩어지도록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도는 결국 하나의 예언이 되고 말았다. 저가 전쟁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셨도다. 이는 믿지않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일수도 있다. 그들은 거룩한 자손이면서도 싸우기를 즐겨했고 스스로 복종하기를 원치않았기 때문에 결국 온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다윗 자신도 전사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결코 전쟁을 기뻐하지 않았으며 전쟁자체를 위하여 피흘리지 않았음을 하나님께 호소할수 있었다.
2) 어떤사람들은 자원하여 복종할 것이다(29,31절).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전을 위하여 왕들이 주께 예물을 드리리이다. 다윗은 믿음으로 이 말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은 건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대에는 다만 성전을 짓는데 필요한 재료와 그 모형만 준비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다윗은 두나라, 곧 애굽과 구스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 나라들은 방백들과 간청자들이 나올 것을 거의 기대할수 없는 나라들이었다(31절). 방백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에게 복종하는 대사들로서 나올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받아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라고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사 19:25).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구스(대하 14:9)도 하나님을 붙들기위하여 즉시 기도와 예물로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 것이다.

Ⅴ. 하나님의 권능 68:31-35
시편 기자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기도한후, 여기에서는 그들이 교회로 나오는 것이 그들의 기쁨과 찬송이 된다는 사실을 시사하며, 그들로하여금 다나아와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연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그들을 초대하고 있다(32절). 땅의 열방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절대적인 최고의 주권때문이다. 그는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분이셨다(33절). 4절과 비교해 보라. 그는 태초부터 아니 시간이 존재하기도 전에 그의 보좌를 마련하셨다. 이제도 그는 하늘위에 앉으셔서 이세상에 그의 권능과 선을 베푸신다.
(2) 하나님의 가공할만한 위엄때문이다. 주께서 그 소리를 발하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이 소리는 일반적으로 우레를 언급한다고 볼수 있다. 우레는 힘있고 위엄찬(29:3,4) '여호와의 소리'로 불리고 있다. 그렇지않다면 이 소리는 특별히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실때의 그 우레를 언급한 것으로 볼수 있다.
(3) 하나님의 강한 능력때문이다. 너희는 하나님께 능력을 돌릴지어다(34절). 나라와 권세가 하나님께 속해있으며 영광도 그에게 속해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의 사실들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해야 한다.
1) 은혜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해야 한다. 그 위엄이 이스라엘위에 있고.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보호하고 다스리는 가운데서 그의 최고의 배려를 나타내 보여주신다.
2) 섭리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해야 한다. 그 능력이 하늘에 있도다. 그 하늘에서 그의 권능의 우레와 그의 능력의 적은비와 큰비가 나온다.
(4) 하나님의 성소의 영광과 거기에서 역사되는 이적들 때문이다(35절).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하나님은 그의 성소에서 그를 섬기며 그의 계시를 받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경외와 거룩한 두려움으로써 찬양과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 하나님의 속성가운데 그의 거룩하심보다 더 죄인들을 두렵게하는 것은 없다.
(5) 자기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힘과 능을 주시나니(35절). 헛되고 거짓된 열방의 신들은 그들을 경배하는 자들에게 아무것도 줄수 없다. 자신들 스스로도 도울수 없는 그 신들이 어떻게 자기의 숭배자들을 도울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그의 백성에게 힘과 능을 주신다면 그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또한 모든 것이 그로부터 왔다면 그 모든 것은 그에게 돌려져야할 것이다.

# 핵심
68:1-35
이 시편의 배경에 대해서는 대략 두가지 견해가 제시된다. 첫째,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길때 지었던 것으로 추정한다(삼하 6장). 둘째, 다윗이 암몬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삼하 10장) 직후에 지었다고 본다. 어쨌든 본시편은 연약한 이들을 돌보시고 전쟁의 승리를 가져다주신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깨뜨리시는 전사로 묘사된다. 이는 사단의 세력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를 예언한 것이다(엡 4:7-13).

# 묵상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 ( 68:5 )
이 말은 소외당한 자들을 돌보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강조한 표현입니다. 여기서 고아와 과부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의 대표로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성도들은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해야할 것입니다.
흡족한 비 ( 68:9 )
흡족한 비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보호를 의미합니다.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팔레스틴에서 비가 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하나님 ( 68:19 )
다윗은 하나님을, 세상에서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당신의 백성을 간과하지 않으시고 세심하게 돌보아주시는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으로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일순간도 잊지않으시고 필요에 따라 채우시며 영원한 사랑과 구원을 공급해 주십니다.
이방의 멸망확신 ( 68:28-35 )
이방은 하나님의 대적자들을 대표합니다. 따라서 이방의 멸망은 하나님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승리를 의미합니다. 시인은 이를 우주적 승리로 선포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악인들의 최종적인 멸망을 예언할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속성과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확증할만한 역사적 사실에 의해서였습니다. 다윗은 이 두가지 확실한 증거에 의하여 하나님이 악인들을 완전히 제거하시고 영원히 통치하실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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