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
2절 - 그 때는 여고니야 왕과 왕후와 궁중 내시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관들과 기능공과 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
3절 -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리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말하되
4절 -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5절 -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절 -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7절 -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8절 -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9절 -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절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절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절 -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절 -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절 -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모든 백성에게 편지로 하나님 뜻을 전합니다. 백성은 바벨론에 집 짓고 살며 번성하고, 거짓 예언에 미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하나님이 그들을 유다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 생각은 평안과 미래와 희망입니다.
● 바벨론으로 잡혀간 이들에게 보낸 편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이면 어디든 희망의 보금자리가 됩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포로가 된 유다 백성에게 편지를 보내 하나님 뜻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곧 회복될 것이라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미혹당하지 말고 잡혀간 그곳에서 집을 짓고 텃밭을 일구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일상의 삶을 살라고 명하십니다. 또한 그곳에 오래 머물 것이니 바벨론 성읍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고 그 안에서 평안히 살라고 하십니다. 70년의 징계 기한이 차는 날, 하나님은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는 선하신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택하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과 미래와 희망입니다. 고난의 때는 하나님을 찾을 때입니다. 성도는 현실에 낙심하지 말고 미래 회복을 소망하며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심판의 주권자 하나님은 회복의 주권자십니다.
* 바벨론에 잡혀간 백성에게 편지로 전해진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정하신 때까지 내가 이어 가야 하는 일상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예레미야 28장 1절~17절] 1절 -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 기브온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2절 -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3절 -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4절 -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5절 -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하니라 6절 -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니라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가 예언한 말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되돌려 오시기를 원하노라 7절 - 그러나 너는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잘 들으라 8절 - 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9절 -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 받게 되리라 10절 -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고 11절 - 모든 백성 앞에서 하나냐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
12절 -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 버린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기를
13절 -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
14절 -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라
16절 -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17절 -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더라
시드기야왕 제4년 5월, 선지자 하나냐가 2년 안에 성전 기구와 포로가 돌아오리라 예언하며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든 나라의 목에 메울 쇠 멍에를 만들었고, 패역한 말을 한 하나냐는 금년에 죽으리라 하십니다. 하나냐가 그해 7월에 죽습니다.
1. 하나냐의 거짓 예언 (1~11절)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와 평안일 때도, 죄에 대한 심판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평안만 전하고 죄와 심판을 전하지 않습니다. 기브온의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하나님이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으실 것과 성전 기구들이 2년 안에 고국으로 옮겨질 것과 포로 된 이들이 귀환할 것을 예언합니다. 그는 이것이 확실하다는 증거로 예레미야의 목에 있는 멍에를 빼앗아 꺾어 버립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는 예레미야의 예언과 2년 내에 모든 것이 회복된다는 하나냐의 예언이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그러나 평화를 전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이 성취된 후에야 비로소 참선지자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과 상반된 거짓 평안의 예언은 죄의 길에서 돌이킬 기회를 가로막는 악한 행위입니다.
*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가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증표는 무엇인가요? 죄와 심판의 말을 멀리하고 평안의 말만 들으면 어떻게 될까요?
2. 하나냐의 최후 (12~17절)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는 것은 그분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입니다.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목에서 나무 멍에를 빼앗아 꺾어 버렸으나 하나님은 오히려 쇠 멍에를 만드십니다. 이는 모든 나라가 반드시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계획이 변치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 무엇도 주권자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분 뜻과 반대되는 거짓 예언으로 백성을 미혹시킨 하나냐를 지면에서 제거하리라 선언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된 후 2개월 만에 하나냐는 죽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예레미야가 참선지자요 하나냐는 거짓 선지자임이 밝혀집니다. 하나님 뜻을 거스르는 거짓 예언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 하나님께 패역한 말을 한 하나냐의 최후는 어떠한가요? 하나님의 크신 뜻을 거역하고 자신의 뜻만 고집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
오늘의 기도
제 욕심과 주변의 기대를 총족시키기 위해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곡해했던 불신앙을 쏟아 놓습니다. 교묘하게 꾀는 악한 속임수에 흔들리지 않도록 늘 경계하며, 제 잘못된 확신이 하나님 뜻을 훼방하지 않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소서.
12절 - 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의 왕 시드기야에게 전하여 이르되 왕과 백성은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사시리라
13절 - 어찌하여 당신과 당신의 백성이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에 대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 하나이까
14절 - 그러므로 당신들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함이니이다
15절 -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리니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멸망하리라
16절 - 내가 또 제사장들과 그 모든 백성에게 전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여호와의 성전의 기구를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이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하셨나니
17절 -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을 황무지가 되게 하려느냐
18절 -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와 유다의 왕의 궁전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를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
19절 - 만군의 여호와께서 기둥들과 큰 대야와 받침들과 이 성에 남아 있는 기구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나니
20절 - 이것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귀인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옮길 때에 가져가지 아니하였던 것이라
21절 -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성전과 유다의 왕의 궁전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 기구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22절 - 그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내가 이것을 돌보는 날까지 거기에 있을 것이니라 그 후에 내가 그것을 올려 와 이 곳에 그것들을 되돌려 두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왕에게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면 칼.기근.전염병을 피해 살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시지 않은 거짓 선지자들이 바벨론에 뺏긴 성전 기구가 속히 돌아오리라 예언합니다. 그러나 남은 성전 기구도 바벨론으로 옮겨져 하나님이 돌보시는 날까지 거기 있을 것입니다.
1. 거짓 예언을 듣지 말라 (12~15절)
성도는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을 분별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왕과 백성에게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바벨론을 섬기라고 권고합니다. 왕에게 이와 같은 굴욕적인 말을 전하는 것이 예레미야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거짓 선지자들은 왕과 백성이 원하는 말을 들려주기 위해 바벨론 왕을 결코 섬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며 거짓을 예언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는 참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고 거짓 선지자의 말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를 따르는 자는 거짓 선지자와 함께 멸망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은 결국 어떻게 되나요? 말씀을 왜곡하는 이들을 분별하는 영적 감각을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요?
2. 성전 기구에 대한 예언 (16~22절)
심판과 회복의 때는 하나님의 주권적 시간표에 따라 진행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바벨론의 시날 땅 신전 보물 창고로 옮겨진 성전 기구들(단 1:2)이 속히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속히' 돌아온다는 말은 바벨론이 '즉시' 멸망한다는 거짓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이 정하신 뜻은 남은 성전 기구가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그분이 허락하시는 때가 되면 다시 옮겨 오리라는 것입니다. 성전 기구들은 주전 605년(1차 포로)과 597년(2차 포로) 두 차례에 걸쳐 바벨론으로 옮겨졌고, 예루살렘이 함락된 주전 586년에는 모두 수탈되었습니다. 그 후 바사 왕 고레스 칙령으로 귀환하게 된 주전 537년에야 비로소 유다로 반환됩니다. 사람의 거짓된 희망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시간표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 성전 기구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내가 더 이상 기대하면 안 되는 인간적인 헛된 소망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예배에 동원되는 도구는 화려하고 편리해져 가지만, 예배를 향한 마음은 시들해진 저와 공동체를 긍휼히 여겨 주소서. 예배의 감격이 날마다 제 삶 곳곳에 벅차오르길 소원합니다. 피할 길을 찾아 헤매지 말고 피할 길이신 주님 앞에 엎드리게 하소서.
1절 -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예레미야에게 임하시니라
2절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말씀하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
3절 - 유다의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주어 에돔의 왕과 모압의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의 왕과 시돈의 왕에게 보내며
4절 - 그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의 주에게 말하게 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너희의 주에게 이같이 전하라
5절 - 나는 내 큰 능력과 나의 쳐든 팔로 땅과 지상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내가 보기에 옳은 사람에게 그것을 주었노라
6절 -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섬기게 하였나니
7절 - 모든 나라가 그와 그의 아들과 손자를 그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 섬기리라 또한 많은 나라들과 큰 왕들이 그 자신을 섬기리라
8절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내가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하리라
9절 -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복술가나 꿈꾸는 자나 술사나 요술자가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너희는 듣지 말라
10절 -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 너희가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또 내가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망하게 하느니라
11절 - 그러나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 밭을 갈며 거기서 살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예레미야가 줄과 멍에를 목에 걸고 에돔.모압.암몬.두로.시돈의 사신에게도 주어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땅과 들짐승들을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의 손에 주실 것입니다.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섬기는 나라는 그 땅에 살 것이나, 그러지 않는 나라는 멸망할 것입니다.
1. 줄과 멍에를 목에 걸라 (1~7절)
하나님은 역사의 주권자시며 열방의 흥망성쇠를 통해 선하신 구원 계획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줄과 멍에를 만들어 목에 걸라고 명하십니다. 이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유다가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을 의미합니다. 또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방문한 각국 사신들에게 줄과 멍에를 들려 보내라고 하십니다. 유다뿐 아니라 열방이 바벨론을 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심판 도구로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시키시고 그분의 종으로 삼으십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역할도 '그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7절)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고 선하신 주권적 의지와 계획을 따라 열방을 통치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계획이 나의 기대와 다르게 보여도 그분의 선하신 주권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줄과 멍에를 목에 걸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선하신 주권으로 내게 명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2.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라 (8~11절)
하나님 백성이 이방 왕을 섬기는 것은 굴욕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심판의 도구 앞에 겸손히 순종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않는 백성과 나라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진멸하겠다고 경고하십니다. 하지만 거짓 예언자들은 결코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않으리라고 말합니다. 이는 유다 왕에게 충성심을 보이고 백성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정치적 행동일 뿐입니다. 하나님 뜻을 무시하면 삶의 터전을 잃고 맙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멍에를 메는 것이 징계보다 더한 비참함을 면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거짓 선지자나 이단의 가르침은 달콤해 보이나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
* 예레미야가 전한 메시지와 거짓 선지자들이 전한 메시지는 어떻게 다른가요? 하나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메야 할 멍에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가정, 직장, 학교, 사회 등의 일에 짓눌려 이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가혹해 보이는 현실의 멍에에 주저앉지 않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묵묵히 순종하게 하소서. 제 짐을 함께 지시는 주님께 나아가 참쉼을 얻게 하소서.
[예레미야 26장 16절~24절] 16절 -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느니라 17절 - 그러자 그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8절 -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밭 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19절 - 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언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 것이니라 20절 -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럇여아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하매 21절 - 여호야김 왕과 그의 모든 용사와 모든 고관이 그의 말을 듣고서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그 말을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여 간지라 22절 - 여호야김 왕이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냈더니 23절 -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
24절 -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손이 예레미야를 도와 주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고관들과 백성이 하나님 이름으로 말하는 예레미야를 죽이지 못하게 합니다.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히스기야 때 미가가 전한 재앙을 듣고 왕과 백성이 돌이킨 일을 말합니다. 반면 여호야김왕은 우리야가 전한 경고를 듣고 그를 죽입니다. 아히감은 예레미야가 죽임당하지 않도록 돕습니다.
1. 히스기야의 교훈 (16~19절)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듣는 마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경고를 듣고 완악하게 반응한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고관들은 양심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예레미야를 죽일 만한 이유가 없다면서 오히려 그를 위한 변론을 펼칩니다. 이 당시보다 약 100년 전 히스기야왕 때 미가 선지자도 예루살렘 성전이 우상을 섬기는 산당과 같이 변질되는 것을 지적하고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이에 히스기야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겸손히 회개로 반응했습니다. 고관들이 제시한 역사의 교훈은 예레미야를 위한 변호였을 뿐만 아니라 말씀을 듣는 자의 태도에 대한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 앞에 항상 겸손과 순종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고관들은 예레미야의 경고에 어떻게 반응했나요? 하나님의 경고를 사랑으로 듣고 겸손히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2. 여호야김의 교훈 (20~24절)
사명자에게는 죽음을 각오하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우리야도 예레미야와 같은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선지자였습니다. 우리야의 고향인 기럇여아림은 언약궤가 약 20년간 머문 장소였는데, 그곳에서 우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외심도 배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야김왕은 우리야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권력을 사용해 애굽에 사람을 보내 우리야를 데려와 죽였습니다. 예레미야도 동일한 위기에 처했지만 아히감에 의해 보호를 받습니다. 왕의 손에 죽임당한 우리야도, 아히감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한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습니다. 신실한 사역자는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 여호야김왕은 우리야 선지자가 전하는 경고 메시지에 어떻게 반응했나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가지고 바른길로 권면할 지체는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말씀대로 가르치고, 전하고, 사는 일이 고달플지라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인생의 순간순간 채우셔서, 말씀을 신실히 지키고 사명에 헌신하게 하소서. 살길을 내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도우심을 신뢰합니다!
1절 -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이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2절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마디도 감하지 말라
3절 -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4절 - 너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며
5절 -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6절 -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7절 -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이 말을 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듣더라
8절 -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9절 -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하느냐 하며 그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드니라
10절 - 유다의 고관들이 이 마을 듣고 왕궁에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가 여호와의 성전 새 대문의 입구에 앉으매
11절 -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고관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은 죽는 것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 같이 이 성에 관하여 예언하였음이라
12절 - 예레미야가 모든 고관과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가 들은 바 모든 말로 이 성전과 이 성을 향하여 예언하게 하셨느니라
13절 -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14절 -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의견에 좋은 대로, 옳은 대로 하려니와
15절 - 너희는 분명히 알아라 너희가 나를 죽이면 반드시 무죄한 피를 너희 몸과 이 성과 이 성 주민에게 돌리는 것이니라 이는 여호와께서 진실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말하게 하셨음이라
[배경 이해하기] 므낫세왕의 55년 통치 기간(주전 697~642년)과 암몬왕의 2년 통치 기간(주전 642~640년)에 유다 백성은 극심한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유다 백성은 성전 예배 등을 통해 겉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우상을 숭배하며 율법을 거스르는 온갖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예레미야 2~25장은 범죄한 유다를 향한 심판을 직접적으로 경고하는 예레미야의 12편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6~33장은 바벨론의 제1차 예루살렘 침공(주전 605년) 전후에서 제4차 침공(주전 588년) 이전까지의 주요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예레미야가 선포한 시점은 유다 제18대 왕 여호야김(주전 609~598년)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입니다(1절). 1~7절은 성전 뜰에서 선포되었기에 ‘성전 설교’라 불리는 부분으로, 7장 1~15절의 ‘성전 설교’와 동일한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을 향해 악행에서 돌이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예루살렘성과 성전이 멸망해 열방의 저줏거리가 되리라 경고합니다. 이어지는 8절부터는 예레미야의 설교를 거부하고 오히려 그를 체포하고 죽이려 하는 유다 종교 지도자들의 폭력적인 반응과 예레미야의 변론이 나옵니다.
[관찰과 묵상] 1. 예레미야는 성전에 예배하러 온 백성에게 어떤 말씀을 선포했나요?(4~6절)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율법을 행하지도 않고, 선지자의 말도 순종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성전을 실로처럼 되게 하고 열방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시리라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성전 뜰에서 예언하되 지시하신 말씀을 ‘한마디도 감하지 말고 그대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2절). 유다를 향한 경고의 목적은 그들이 듣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3절). 하나님이 진노를 선포하시는 목적은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은 겉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삶에서는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율법을 행하지도, 선지자의 말을 듣지도 않는 불순종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선민이기에,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기에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유다 백성을 향해 예레미야는 그들의 불순종을 지적하며, 끝내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실로같이 되게 하고, 예루살렘성을 세계 모든 열방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는 심판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실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법궤를 모셔 둔 곳으로, 예배의 중심지요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훗날 블레셋의 침공으로 파괴되고 법궤도 빼앗겼습니다(삼상 4장). 유다 백성이 회개를 거절하고 불순종으로 일관한다면 하나님은 실로처럼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되고 열방의 조롱거리가 될 수 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지만, 끝까지 마음을 완고하게 한다면 징계의 심판을 행하십니다. 적용과 나눔 형식적인 종교인이 아닌 진정한 예배자로 살아가기 위해, 나는 어떤 것을 돌이키고 회복해야 할까요? 예레미야 시대에 성전에서 예배하던 유다 백성은 분명 열정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열심은 하나님과 무관한 종교적 열심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만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열정이 있었다면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데 애썼을 것입니다. 그들은 신앙인이 아닌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종교적 행위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는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종교적 행위 뒤에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이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미 6:8)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형식적으로 종교 생활하면서 정작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왔다면 돌이켜야 합니다. 예레미야 때 유다 백성처럼 마음이 강퍅해 말씀을 통한 교훈을 얻지 못해 심판당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죄인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의 때, 구원의 때를 놓치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2. 예레미야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했나요? (12~15절)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셔서 예언하게 하셨음을 분명히 선포하고, 유다 백성이 악한 길과 행위를 고치고 하나님 목소리를 청종하면 하나님이 재앙에서 돌이키시리라 선포했습니다. 예레미야의 설교에 대한 종교 지도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성전이 있기에 예루살렘은 결코 망할 수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증오심으로 예레미야를 붙잡아 죽이려 했습니다. 백성을 하나님의 길로 올바로 인도해야 할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예레미야의 체포 소식을 들은 유다 고관들이 성전으로 올라가 성전 ‘새 대문’ 입구에서 재판을 열었습니다(10절). 하지만 자신을 죽이려고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예레미야는 당당했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말씀만 전한다고 말하며, 다시 한 번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 말씀을 청종해 악한 길과 행위에서 돌아서라고 촉구했습니다(13절). 그리고 자신을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자신을 죽이는 것은 무죄한 자를 피 흘리게 하는 살인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또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기 때문에 유다에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했습니다(14~15절). 예레미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확신을 가지고 죽음을 무릅쓰고 담대하게 선포한 선지자였습니다. 적용과 나눔 복음을 전하다가 거절이나 배척을 당한 경험이 있나요? 그때 어떻게 반응했나요? 종교의 자유가 존중되는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핍박당하지는 않지만, 세상으로부터 압박과 거절을 경험합니다. 다원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참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하고, 진리가 거짓에 의해 매도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많은 성도가 영적 소경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이 보기에 옳은 대로 행동하며, 사랑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모습을 겸손히 진리의 말씀에 비춰 보는 자세입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죄가 있다면 돌이키고, 공의를 실천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해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진리를 저버리거나 구차하게 세속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결국 거짓은 무너지고 진리만이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포기하지 않고 붙잡는 성도들을 진정한 승리자로 세우실 것입니다.
* 유다 백성은 종교적 열심은 있었으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는 신앙생활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잃어버린 종교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언약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은 말씀을 귀담아듣고 순종함으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러한 삶을 살려다 고난과 핍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고 진리를 끝까지 따르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박해에도 굽히지 않는 말씀 사역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굳건히 세우십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마음을 다하지 않은 형식적인 종교 생활이 죄인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사모하게 하소서. 세상에서 진리를 전하며 죄와 타협하지 않는 빛과 소금이 되게 하소서.
1절 -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이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2절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마디도 감하지 말라
3절 -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4절 - 너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며
5절 -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6절 -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7절 -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이 말을 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듣더라
8절 -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9절 -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하느냐 하며 그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드니라
10절 - 유다의 고관들이 이 말을 듣고 왕궁에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가 여호와의 성전 새 대문의 입구에 앉으매
11절 -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고관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은 죽는 것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 같이 이 성에 관하여 예언하였음이라
12절 - 예레미야가 모든 고관과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가 들은 바 모든 말로 이 성전과 이 성을 향하여 예언하게 하셨느니라
13절 -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14절 -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의견에 좋은 대로, 옳은 대로 하려니와
15절 - 너희는 분명히 알아라 너희가 나를 죽이면 반드시 무죄한 피를 너희 몸과 이 성과 이 성 주민에게 돌리는 것이니라 이는 여호와께서 진실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말하게 하셨음이라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 예레미야가 성전 뜰에 서서, 백성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치 않으니 성전이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리라 예언합니다.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이 예레미야가 죽어 마땅하다 하자 예레미야는 자신을 죽이면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1. 성전 설교 (1~7절)
하나님은 거룩한 열심과 사랑으로 끊임없이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십니다. 주전 609년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이 왕으로 즉위했을 때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성전에서 예배하는 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가장 거룩해야 할 성전이 '도적의 굴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수많은 백성이 성전에 예배하러 왔지만 그들의 삶은 악행과 불순종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이 계속해서 불순종하면 예루살렘 성전도 실로와 다를 바 없이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시 78:60~61). 그러나 그분 말씀을 듣고 돌이켜 순종한다면 예고하신 징벌을 철회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참된 예배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습니다.
*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성전으로 보내 말씀을 전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참된 예배자의 말과 행실, 마음과 생각은 어떠해야 할까요?
2. 핍박받는 선지자 (8~15절)
하나님 편에서 진리를 외치는 일은 외롭고 험난합니다. 예레미야가 성전 뜰에서 설교를 마치자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이 거세게 반발합니다. 그들은 선지자의 목숨까지 위협합니다. 성전이 실로같이 된다는 예언은 그들에게 신성 모독 발언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실로는 언약궤가 있던 장소였지만 블레셋에 의해 파괴되었고, 예레미야 당시에도 폐허 상태였습니다. 이에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은 예레미야가 성전에 적대적이고, 반민족적인 말을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생명의 위협에도 담대히 회개와 순종의 메시지를 외쳤습니다. 참된 사역자는 핍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합니다.
* 예레미야가 미움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거센 반발과 핍박에도 하나님 편에 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위로와 평안의 말씀만 은혜로 여기고, 책망과 경고의 말씀에는 마음을 닫았던 제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돌이키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사랑에 회개와 순종으로 반응하게 하소서. 비난받고 손해 보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가감 없이 나누고 선포하게 하소서.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유다 백성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그 경고를 무시한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고도 살아남을 존재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에게는 심판이 완전한 멸망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잡혀간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심판 메시지와 회복 메시지
하나님은 유다의 징벌 기간을 70년으로 정하셨다.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 동안 이스라엘 땅은 안식을 누린다(대하 36:21). 예레미야는 죄악된 유다 백성에게 심판 메시지를 전했지만, 막상 바벨론의 공격을 받기 시작할 때는 회복 약속도 함께 전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25:12).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유다를 징계하는 도구로 바벨론을 사용하시지만, 후에 교만한 바벨론도 심판하신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100년이 채 못 되어 메대와 바사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다(50~51장). 예레미야가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했을 때는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계 역사의 주권자시며 온 땅을 공의로 다스리는 왕이시다.
예루살렘 멸망 이전(1:1~45:5)
유다의 심판(23:1~25:38)
하나님 말씀을 백성에게 정직하게 전해야 할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말씀을 왜곡했다. 이들은 자신의 탐욕을 추구하면서 백성이 듣고 싶어 하는 거짓 '평안'을 전했고, 백성은 이 거짓 예언을 듣고 양심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고 악행을 일삼았다. 하나님은 결국 이들을 심판하기로 하신다.
메시아 도래와 하나님의 경고(23:1~40)
하나님은 불의를 행하는 유다 백성을 심판하시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의로운 왕을 세우실 것이다. 때가 되면 다윗의 계보를 잇는 메시아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23:5~6). 이 예언과, 이어지는 불의한 목자에 대한 심판 예언이 대조를 이룬다. 유다의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을 일삼고 간음을 하며 헛된 꿈을 전했다. 하나님은 이들로부터 솟아 나온 죄악이 온 땅에 퍼질 지경에 이르렀다고 질책하신다(23:15).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고 심판과 회개가 아닌 거짓 평안을 전해 유다의 멸망을 자초한다.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24:1~10)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무화과 두 광주리를 보이시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여고냐 등)은 좋은 무화과에,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시드기야 등)은 나쁜 무화과에 비유하신다. 이는 당시 유다 백성의 통념과 반대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하나님은 '바벨론 침공'이라는 고난을 통해 그들을 정화하고 연단하신 후에 새롭게 하시기로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성은 하나님의 이 같은 의도와 깊은 사랑을 알지 못하고 눈앞에 닥친 고난만 보았다.
유다와 열방의 심판(25:1~38)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을 이기고 이스라엘의 지배권을 갖게 된 시기(46:2)에 전해진 말씀이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보내 회개를 촉구하셨지만 유다 백성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25:3~4).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 뜻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미워하고 조롱했다. 결국 하나님은 북방의 바벨론이 와서 유다를 쳐 멸하고, 유다는 바벨론 왕의 종이 되어 70년간 고초를 겪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심판의 도구였던 바벨론과 이방 민족들도 면죄되지 않고, 결국 자신들이 행한 악한 일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들에게는 '땅끝에서부터 일어나는 큰 바람' 같은 심판이 임할 것이다(25:32).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폐허가 되듯, 그들의 모습도 비참해질 것이다.
예레미야 시대의 왕들
이름과 평가
통치시기
예언의 성취
본문
요시야(선한 왕)
주전 640~609년
요시야는 므깃도에서 애굽군의 화살에 맞아 죽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아들 살룸은 애굽의 포로가 되어 그곳에서 죽는다.
왕하 23:29; 렘 22:8~12
살룸(여호아하스, 악한 왕)
주전 609년 (3개월)
여호야김(악한 왕)
주전609~598년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불태우고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다가, 느부갓네살의 쇠사슬에 결박된 채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대하 36:5~6; 렘 36:27~31
여고냐(여호야긴, 악한 왕)
주전 598년 (3개월)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받아 바벨론으로 끌려가지만 포로 생활 37년 만에 귀환해 명예를 회복한다.
렘 13:18~19; 52:31~34
시드기야(악한 왕)
주전 597~586년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살길임을 예레미야가 일러 주지만 바벨론에 대항하다 두 눈이 뽑히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만다.
이대희 / 꿈을 주는 교회 담임 목사. 예즈덤성경교육원장 징계 없이는 결코 돌이키지 않는 완악한 백성 유다 백성은 그들의 죄악이 마치 금강석 철필로 새긴 것처럼 확실해 멸망을 피할 수 없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빚다가 잘못되면 자기 의도대로 다시 빚듯, 모든 것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죄악을 버리고 그분께 돌아오면 언제나 기회는 있다.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은 은혜의 또 다른 표현이다.
예레미야서 교차 대칭 구조 예레미야서는 다음과 같은 교차 대칭 구조를 이룬다. 예레미야서에 담긴 여러 메시지는 결국 구원에 대한 약속에서 절정을 이룬다. a 1장 서론 : 예레미야의 소명 b 2~25장 죄와 심판 : 이스라엘 민족 c 26~29장 고난 이야기 : 예레미야의 고난 d 30~35장 구원 : 아나돗의 밭 구입과 레갑 족속 이야기 c' 36~45장 고난 이야기 : 예레미야의 고난 b' 46~51장 죄와 심판 : 이방 민족 a' 52장 부록 : 유다의 멸망과 포로 됨
예루살렘 멸망 이전(1:1~45:5) 유다의 심판(2:1~25:38) 유다는 하나님과의 처음 사랑의 언약을 깨뜨리고 이방 신을 따랐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거듭 경고하셔도 끝내 회개하지 않으니, 그들은 결국 패망해 흩어질 것이다.
우상 숭배와 심판(9:1~10:25) 하나님은 열방의 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권능의 주님이시다. 유다 백성은 이런 하나님을 버린 무지한 자들이다.
거짓과 속임수(9:1~26)
예레미야는 방관자로 머물지 않고 백성의 죄를 슬퍼하고 아픔을 함께한다. 그의 탄식에는 하나님 마음이 담겨 있다(1절). 백성이 지속적으로 악한 길로 행하고 회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알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삼지 않으니 거짓말과 속임수 등 죄에 무감각해지고 그들의 혀.입.마음이 죄악으로 가득해진다. 하나님은 죄악을 일삼는 백성에게 쓴 쑥과 독을 탄 물을 먹이시고, 그들을 이방에 흩어 멸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에 기초한다. 그분의 공의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세상의 지혜와 지식, 힘과 재산을 자랑하는 인생은 어리석다. 오직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그분을 경외하며,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며 사는 것이 참된 지혜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면, 죄를 버리고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삶을 선택하게 된다.
우상 숭배(10:1~25)
예레미야는 열방의 길, 즉 우상 숭배의 길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손으로 만든 우상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분은 살아 계신 창조주요 영원하신 왕이다. 반면 우상은 은금으로 정교하게 꾸몄다 해도 나무나 돌조각에 불과하다. 하나님을 알수록 우상의 헛됨도 알 수 있는데, 유다 백성은 어리석게도 만물의 조성자이신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마음의 완악함과 욕심을 좇아 헛된 우상을 따랐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을 내던지실 것이고, 그들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 섬기는 바른길을 깨달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예언적 주제를 선포하는 기도로 10장을 마무리한다(23~25절). 승리하는 인생을 사는 비결은 제 뜻대로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순종함으로 걸어가는 데 있다.
약속을 파기한 유다 백성(11:1~13:27)
하나님 앞에 가장 큰 죄는 그분과 맺은 언약을 깨뜨리는 것이다. 약속으로 맺어진 관계는 어느 한편이 약속을 깨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말씀에 불순종한 백성(11:1~12:17)
'언약'이 핵심 단어로 반복된다. 쇠 풀무 같은 애굽 땅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의 땅을 소유한 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고 우상을 숭배하며 약속을 저버렸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백성의 악한 모습을 폭로하라고 명하신다. 경고하신 대로 언약 파기의 대가를 백성이 치르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백성이 섬긴 우상의 수가 예루살렘의 거리 수만큼이나 많았을 정도로 그들은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 있었다(11:13). 요시야왕이 개혁을 단행했음에도 유다 백성 안에 깊이 뿌리내린 우상 숭배의 근성은 근절할 수 없었다. 북 이스라엘의 패망을 목격하고도 그들이 간 길을 답습한 유다의 모습은 인간 본성이 얼마나 악한지를 보여 준다. 예레미야가 하나님 심판을 선포하자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죽일 음모를 꾸민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성벽'(1:18)이 되게 해 구원하시고, 도리어 그들을 멸하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뽑아내신 후 약속의 땅으로 다시 인도하시겠다는 소망의 메시지를 주신다. 심판은 멸망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임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두 가지 징표(13:1~27)
하나님은 유다 백성의 악하고 교만한 모습을 베띠와 가죽 부대 비유로 드러내신다. 허리에 띤 베띠를 유브라데 물가에 감추는 것은 장차 유다가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을 암시한다. 물가에 감추었던 베띠는 썩어서 쓸모없게 되었다. 하나님 알기를 싫어하고 율법을 버린 교만한 유다 백성은 이처럼 철저히 파멸할 것이다. 한편 포도주가 가득 찬 가죽 부대는 유다의 죄악이 가득해 마치 술 취한 상태와 같음을 의미한다. 하나님 진노의 포도주가 차면 유다는 패망한다. 교만과 세상의 악한 것에 잔뜩 취한 백성은 죄악이 고착화되어 더는 고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이를 구스인의 피부와 표범의 반점에 비유하신다(23절). 인간이 극도로 타락하면 그때부터는 악이 제2의 천성이 되어 고치기 힘들다.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악한 유다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매우 슬프고 안타까우셨다.
택하신 백성을 거절하시는 하나님(14:1~20:18)
유다의 죄가 뿌리 깊어 심판은 취소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고 없이 심판하지 않으신다.
가뭄 재앙과 선지자의 탄원(14:1~15:21)
예레미야의 탄식과 하나님의 답변이 대화체로 이어진다. 유다에 극심한 가뭄 재앙이 임할 것이다. 백성의 죄가 극심해 재앙과 심판은 취소될 수 없다. 금식이나 제사, 구원을 위한 기도도 무의미하다(14:11~12).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패망한 가장 큰 이유는 바알을 따른 것이다. 백성은 만물을 주관하시는 참 하나님을 저버리고 물질의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바알에게 미혹되었다. 게다가 거짓 예언자들이 거짓 평강의 예언으로 백성을 현혹했다. 특히 므낫세왕의 죄악은 유다를 패망하게 한 결정적 요인이다. 예레미야는 백성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올곧게 대언했지만, 인간적 고뇌를 토로한다. 심지어 하나님은 흐르다가도 마르는 여름철의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분이라고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사명자가 갈 길은 끝까지 하나님 말씀만 붙드는 것이다.
포로의 징표와 회복의 날(16:1~21)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결혼하지 말고 자녀를 두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나라에 환난이 닥친 시기에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더 큰 고난을 당하기 때문이다. 유다는 잔치의 즐거움이 사라지고 매장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어 황폐해질 것이다. 유다에 닥친 이 같은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과 공의가 드러나고, 그분의 거룩한 이름과 놀라운 능력이 만방에 알려진다(21절). 예레미야는 유다가 하나님 심판으로 바벨론 포로가 될 것을 전하는 동시에 제2의 출애굽과도 같은 바벨론에서의 귀환을 예언한다(14~15절). 그 회복의 날, 백성은 하나님을 '나의 힘, 나의 요새, 환난 날의 피난처'라고 고백하며 허망하고 거짓된 신을 따랐던 지난날의 죄악을 회개할 것이다.
사람을 의지한 결과(17:1~27)
하나님과 예레미야의 대화가 계속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른 자신이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달라는 탄식 기도를 드린다. 유다의 죄는 그들 마음에 금강석 철필로 새겨져 지울 수 없다. 이에 하나님은 불같은 진노로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그들을 쫓아내시고 그들이 이방 민족을 섬기게 하겠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이 살아남을 마지막 길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저주의 길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생명과 복의 길이다. 유다 백성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을 의지했다. 백성의 이 같은 속마음은 '우상 숭배'와 계명에 대한 '불순종'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십계명 중에서도 특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네 번째 계명을 어겼다(21~27절; 출 20:8~11; 신 5:12~15). 제 욕심을 따르는 데 정신 팔려,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분을 예배해야 할 안식일마저 지키지 않은 것이다.
토기장이 비유(18:1~19:15)
하나님은 토기장이 비유를 통해 두 가지를 말씀하신다. 첫째, 토기장이가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그릇을 만들 듯, 열방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18:3~10). 둘째, 하나님은 한번 깨어지면 다시 붙일 수 없는 토기처럼 유다 백성과 성읍을 무너뜨리실 것이다(19:10~11). 유다 백성은 예레미야의 말보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더 신뢰한다. 거짓 선지자들은 진리가 아닌, 당장 백성이 듣기 원하는 말만 전해 죄를 짓게 했다. 예레미야는 옹기를 깨뜨리며 하나님의 진노를 전한다. 유다가 당할 심판은 그처럼 비참할 것이다. 부모가 아들과 딸의 살을 먹는 지경에까지 이를 것이다(19:9). 이 참혹한 예언은 주전 586년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했을 때(애 2:20; 4:10)와 주후 70년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했을 때,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났다.
투옥되고 탄식하는 예레미야(20:1~18)
심판 선포로 인해 예레미야는 핍박받는다. 예레미야가 받은 고난과 그로 인한 탄식은 당시 백성의 죄악이 얼마나 극악했는지와, 하나님 공의에 대한 백성의 의식이 얼마나 바닥까지 추락했는지를 보여 준다. 예레미야를 핍박한 대표적인 사람은 제사장이자 성전 총감독인 바스훌이다. 예레미야는 고난과 철저한 고독 속에서 탄식하면서도 하나님 능력을 의지한다. 핍박에 지쳐 하나님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해 보지만, 결국 그는 하나님 말씀에 항복한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9절)라는 표현은 하나님 말씀을 맡은 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 준다(고전 9:16 참조). 예레미야는 고통 속에서 욥처럼 자기 생일을 저주하며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겠다고까지 말한다. 이는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토해 낸 것이다(12절). 이 과정을 통해 예레미야는 믿음을 새롭게 하고 철저한 자기 부인에 이른다. 탄식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버리지 않는다.
심판당하는 유다 왕조(21:1~22:30)
바벨론은 유다의 죄악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다. 유다가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다.
시드기야와 예레미야(21:1~14)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포위당한 위기의 때에 예레미야에게 사람들을 보낸다. 시드기야가 예레미야를 찾은 시기는 주전 588년 1월경부터 시작된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 때였다. 시드기야는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시길 기대했지만, 하나님은 기적이 아닌 재앙을 내리겠다고 선포하신다. 시드기야와 유다 백성이 살 길은 오직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뿐이다(9절). 하나님은 재앙과 심판으로 이스라엘을 새롭게 빚으신 후 다시 평안을 주고자 하셨다. 멸망의 위기 한가운데서도 유다 왕들과 백성은 하나님의 분노의 불길이 왜 이렇게 타오르는지 모른다. 예루살렘성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앙 때문에 그들은 회개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13절). 죄는 결국 우리를 하나님의 대적이 되게 한다.
유다 왕조 마지막 왕들(22:1~30)
유다 왕들은 불의를 일삼고, 정의와 공평을 삶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아버지 요시야의 선한 모습을 본받지 못한 아들들은 한결같이 악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유다가 그분의 공의와 정의가 편만한 하나님 나라로 서는 것이다. 그런데 유다 왕들은 자기 왕국을 세우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그들이 한결같이 하나님 뜻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반역한 이유가 이것이다. 유배된 고니야 곧 여호야긴의 이야기(24~30절, 살아남았지만 실제로 왕 역할은 하지 못함)는 이제 어떤 후계자도 왕좌에 오르지 못할 것을 말해 준다. 이는 육신적 다윗 왕조의 종말을 예고하는 동시에, 영적 다윗 왕조의 도래를 암시한다. 즉, 다윗 가문에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언약인 메시아의 도래다. 이는 23장에 나오는 '한 의로운 가지'와 연결된다.
예레미야가 본 환상 및 예언의 의미
예레미야 길라잡이 ②
완악한 마음이 초래한 심판
조휘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선지자들이 꿈과 이상 또는 직접적인 음성을 통해 전달받은 하나님 말씀을 신탁이라고 한다(민 12:6; 신 18:18; 렘 23:16, 22, 28). 예레미야서에는 하나님 말씀을 직접 인용한 '신적 신탁'과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을 받은 후 자신의 말로 전달한 '선지자 신탁'이 있다. 신탁의 내용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뉜다. 하나는 죄를 지적하는 '고소 단락'이고, 다른 하나는 고소에 뒤따르는 '선언 단락'이다. 이는 원인을 지적하고, 그 결과를 서술한 형식이다. 예레미야서를 묵상할 때는 유다 백성이 지적받은 문제가 무엇인지, 하나님은 어떤 결정을 내리시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백성의 죄를 드러내고 심판을 선언하는 신탁
원인을 지적하는 고소 단락에는 주로 유다 백성이 완악한 마음을 품고 자행한 일들이 서술된다. 9장 3~16절을 살펴보자. 백성은 거짓을 말하고, 강성하지만 진실하지 않고, 끊임없이 악행을 저지를 뿐만 아니라 이웃을 속이는 일만 되풀이한다. 이렇게 죄에 빠져 하나님 알기를 싫어하는 백성의 문제를 하나님이 지적하시는 고소 단락이 나온다(9:3~6). 그리고 하나님이 결정을 내리시는 선언 단락이 이어진다. 하나님은 심히 안타까워하시면서도 자기 백성을 녹이고 연단하겠다고 결정하신다. 반역한 백성에게 보복의 심판을 행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신다(9:7~9). 심판의 결과로 하늘과 땅이 예레미야가 탄식할 정도로 황폐해진다(9:10~11). 하나님은 다시 백성의 우상 숭배를 지적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완악한 마음으로 바알을 따랐다(9:12~14, 고소 단락). 이에 분노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쓰디쓴 고통을 겪게 하시고, 그들을 여러 나라로 흩으시며 칼로 진멸하실 것이다(9:15~16, 선언 단락).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로 마음을 향하지 않았기에 겪게 될 결과다. 일부 본문에서는 특정 상황을 서술한 후 신탁을 제시하기도 한다(11:1~17; 13:1~11; 18:1~17; 19:1~15; 20:1~6; 21:1~14). 이때는 하나님이 행하실 심판을 시각적으로 묘사하거나 하나님 말씀이 주어진 정황을 먼저 설명한다. 여기에도 백성의 죄악상과 원인, 그에 따른 결과를 밝히는 신탁의 흐름이 있으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묵상해야 한다. 특히 34~44장에서는 어떤 사건이 진행되는 중에 신탁이 주어지기에, 사건과 상황을 분명히 이해한 다음 신탁에 담긴 원인과 결과의 흐름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구성 방식을 고려해 예레미야서를 읽고 묵상하다 보면 본문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예레미야의 탄식과 눈물 어린 기도
예레미야서에서 신탁의 말씀과 함께 주목할 내용은 선지자 예레미야 본인에 관한 기술이다(11:18~23; 12:1~6; 14:7~9, 19~22; 15:10~21; 16:19~21; 17:12~18; 18:18~23; 20:7~18; 23:9; 37:18~20). 예레미야는 신탁을 전달하는 사명을 감당하면서 자신이 느끼는 고민과 갈등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할 때 예레미야가 받은 멸시와 위협과 공격, 하나님과 율법을 대놓고 무시하는 악인이 번성함을 보는 괴로움, 유다 백성의 죄를 대신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바라는 눈물 어린 기도가 그의 기록에 그대로 담겨 있다.
예레미야서를 읽던 눈을 돌려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 나의 모습을 살펴보자. 나는 의를 추구하기에 핍박받는가? 진리를 알면서도 말하기 두려워하는가, 혹은 진리를 말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붙는 듯하고 골수에 사무치게 답답한가? 하나님 심판이 임할 줄도 모르고 멸망을 향해 내달리는 세상을 보며 애끓는 심정으로 기도하는가? 예레미야의 심정을 묵상하면서 스스로 묻고 대답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예레미야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책망과 격려, 위로를 마음에 품고 하나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성도의 삶을 다짐해야 한다.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과 백성의 행태, 하나님의 신탁을 자세히 살피면 하나님의 심판을 유다 백성이 자초했다는 말씀에 동의하게 된다(7:19). 지금 내 삶은 과연 무엇을 불러오고 있는가? 하나님의 기쁨과 복인가? 혹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아닌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돌아오라 예레미야서는 인간 죄악의 실체와 공의로운 심판, 그리고 새로운 구원의 소망을 담고 있다. 모든 죄는 하나님 은혜를 잊고 그분을 떠나는 데서 시작한다.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시기에 그분을 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회복의 시작이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진실한 회개만이 살길이다.
예레미야 한눈에 보기
특징과 역사적 배경 예레미야서는 유다 왕조 마지막 때 이야기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조 말기인 요시야 때 예언을 시작해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그리고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까지 멸망을 향해 가던 왕들의 통치 시기에 예언 활동을 했다.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심판과 유다의 멸망에 대해 경고했기에 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았다. 가능한 한 심판을 미루시면서 즉각적인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이 예레미야서 전체에 담겨 있다. 예레미야의 사역 시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주전 627~605년으로 앗수르와 애굽의 위협을 받은 시기다. 둘째, 주전 605~586년으로 유다가 바벨론의 포위 공격을 받으며 위기 상황에 놓인 시기다. 마지막으로 주전 586~580년,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한 후로 예레미야가 예루살렘과 애굽에서 사역한 시기다.
예루살렘 멸망 이전(1:1~45:5) 소명(1:1~19)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 출신인 예레미야는 유다 왕조 말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처음엔 그 부르심을 거부했지만, 결국 순종으로 응답한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것은 여러 나라와 민족 가운데 하나님 뜻을 전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두 가지 환상을 보여 주신다. 첫 번째는 '살구나무 가지' 환상이다(1:11~12). 두 번째는 '끓는 가마' 환상으로, 하나님이 심판 도구로 부르신 북쪽 나라들이 예루살렘을 칠 것이라는 내용이다(1:13~16). 하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레미야에게 미리 보여 주심으로써, 두려워하지 말고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도록 힘을 실어 주신다.
유다의 심판(2:1~25:38) 하나님이 애굽에서 구해 내신 백성이 하나님 대신 우상들을 따름으로 사랑의 언약을 깨뜨렸고, 심판을 자초했음을 폭로하신다. 회개할 기회가 거듭 주어졌음에도 그들은 회개하기를 싫어했기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책망(2:1~3:5) 하나님 백성의 반역과 우상 숭배에 대한 책망은 예레미야서를 관통하는 핵심 내용이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우상의 수가 사람들이 사는 성의 수만큼이나 많았다. 심지어 그들은 나무로 만든 우상을 '아버지'라 부르며, 돌로 만든 우상이 자신들을 낳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예레미야는 그들의 잘못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2:13).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과 물을 담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스스로 판 것이다. 즉, 참된 구원자 하나님을 거부하고, 도울 힘이 없는 이방 신을 섬기며 강대국을 의지한 것이다. 이는 악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돌아오라는 경고(3:6~4:4) 예레미야는 북 이스라엘의 역사적 교훈을 상기시키면서 유다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그들은 돌과 나무로 만든 우상을 섬기는 영적 간음죄를 저질러 온 나라를 더럽혔다.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거부하고, 곧 닥칠 심판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들이 살 길은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밖에 없다. "배역한 자들아 돌아오라"(3:14, 22). 하나님이 애타는 마음으로 여러번 전하셨으나 그들은 끝까지 거절하고 듣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한 데 비해 인간은 얼마나 완악한지를 알 수 있다.
북쪽에서 다가올 재난(4:5~31) 예레미야의 간절한 외침에도 유다는 전혀 회개할 기미가 없다. 이제 곧 북쪽에서 군사들이 예루살렘성을 향해 쳐들어올 것인데도 유다는 여전히 위기의 순간을 자각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재앙은 인간의 악한 행동에 따른 결과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은 하나님 뜻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악한 일을 행하는 데 빨랐지만 선한 일을 행하는 데는 무지했다. 23~31절은 예루살렘이 어떻게 침량당하고 함락될 것인지, 또 그 백성이 어떻게 포로로 잡혀갈 것인지 미리 보여 준다. 나라의 멸망을 앞두고도 그들은 깨닫지 못한 채 화려한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은 희망의 말씀을 잊지 않으신다. "그러나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겠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구원을 생각하신다. 택하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는 구원과 회복의 시작이다.
임박한 심판과 그 심판의 이유(5:1~31)
거룩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에 대해 진노하시며 심판하신다. 그러나 그분의 본래 마음은 자기 백성의 구원과 회복이다. "(예루살렘성에서)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1절)라는 말씀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끔찍한 심판이 곧 유다 땅에 임할 것이다. 그들이 심판받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죄' 때문이다(19절). 하나님은 심판의 이유를 밝히시면서, 이러한 심판 뒤에 그분의 사랑과 구원 계획이 함께 있음을 알리신다(18절).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곧 회개며, 죄를 이기는 길이다.
벌받을 성 예루살렘(6:1~30)
하나님은 이방 군대를 동원해 유다를 징벌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평화의 성 예루살렘이 전쟁터로 변할 것이다. 유다에 임할 재앙을 예레미야가 예언함은 백성에게 아직 기회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는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과 은혜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다림에도 기한이 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결국 하나님이 공의의 심판을 행하실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안다면 죄를 반복하거나 끝까지 거역함으로 불행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7:1~8:3)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성전 문 앞에서 설교를 한다. 이 같은 장면은 예레미야서 중반부인 26장에서도 반복된다. 이는 성전 설교가 예레미야서에서 상당한 비중이 있음을 말해 준다. 예레미야가 성전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전 뜰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회개를 선포한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 말씀하신다. 성전에서 예배한다고 그것이 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 돌아보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는 말씀을 지키는 삶이다. 말씀을 통해 자신의 죄를 돌아보며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서는 변화가 있을 때 하나님은 그 삶을 예배로 받으신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의 삶(8:4~22)
하나님은 그릇된 길로 가는 유다 백성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예레미야를 통해 거듭 선포하신다. 하나님을 계속 거부하는 그들에게 이제는 완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예고하신다. 북방에서 독뱀을 보내 이스라엘을 물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시면서 예루살렘성이 어떻게 멸망당할 것인지 미리 보여 주신다. 이 말씀을 들은 예레미야는 백성의 아픔을 보면서 자신의 상한 마음과 슬픔을 토로한다. 고통을 겪는 백성과 함께 고통스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참선지자의 모습을 그에게서 볼 수 있다.
예레미야서의 지리적 배경
예레미야 길라잡이 ①
하나님의 심정 안으로
조휘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예레미야서 전반부(1~29장)에는 주로 유다 백성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는 내용이 나온다. 선지자들이 전하는 하나님 말씀에는 기쁨.탄식.슬픔.분노.기대.안타까움 등 하나님의 심정이 담겨 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생생하게 이해하려면 말씀에 표현된 그분의 심정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왜 그런 심정을 갖게 되셨을까? 그 심정에 따라 어떤 일을 하셨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본문에서 찾는 과정이 바로 묵상이다.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도, '무엇'에 관한 '하나님의 어떤 심정'이 표현되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완악한 백성에게 쏟아지는 하나님의 분노
유다 백성의 문제를 지적하는 본문에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답답하고 화난 심정이 담겨 있다. 따져 묻고 다그치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말투에서 이 같은 심정이 드러난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2:21).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8:7. 참조 2:5, 14, 17, 31; 4:18, 22; 8:5).
이런 표현을 접할 때에는 "하나님이 왜 이렇게 답답해하시고 화가 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본문에서 찾아야 한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의 뻔뻔함 때문에 답답해하시고 분노하신다. 유다 백성이 어느 정도로 철면피한지를 말씀 속에서 살펴보면, 하나님의 답답한 심정을 가늠할 수 있다.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대로 살라고 선지자를 통해 권면하셨을 때, 유다 백성은 그것을 헛된 말로 여기며 자신들은 이방 신들을 따라가겠노라고 답했다(2:25).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길 뿐 즐거워하지 않았다(6:10).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게 그들의 영혼이 평안히 쉴 길을 알려 주겠다 하시면 그들은 그리고 가지 않겠다고 했으며, 하나님이 경고의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시면 그들은 듣지 않겠다고 했다(6:16~17, 참조 43:1~7; 44:15~19). 이러한 태도에 대해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하신다(8:12). 한마디로, 지극히 뻔뻔하다는 말이다(3:3~5; 5:3 참조).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말하는 유다 백성은 태연자약하기 그지없다(2:35). 그들은 진정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얼굴을 향하지 않으며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2:27; 7:24).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순종하지 않고,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마음의 완악함'을 지적하신다(13:10; 16:12; 18:12; 23:17). 이처럼 배은망덕하고 악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결심은 단호하다. 그들의 악행을 벌하시고, 그 나라에 보복하시겠다는 것이다(5:9, 29; 15:3~4; 17:10~11; 18:17; 21:10).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각처에 남아 있는 자들은 살기보다 죽기를 더 원할 것이다(8:3).
죄를 가볍게 여기는 완악한 백성에게 심판을 선언하실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가?
'괜찮아' 신학의 폐해
유다 백성은 왜 그리 악행을 일삼게 되었을까? 거짓 선지자들이 '괜찮아' 신학('It's ok' theology)을 설파하며 백성의 악함과 완악함과 뻔뻔함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6:14, 참조 7:10; 8:11; 14:13; 23:17; 28:1~17). 죄와 죄로 인해 겪는 환난은 결코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유다 백성의 모습에서, 오늘날 죄 문제는 제쳐 두고 거짓 평안과 세속적 성공을 외치는 목회자들과 그것에 부화뇌동하는 신자들을 본다. 사망의 길을 내달리는 유다 백성에 대한 심판 선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오롯이 느끼며, 나 자신과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심정은 과연 어떠하실지 생각해야 한다.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4:14)라고 외치시는 하나님 앞에 즉시 악을 버리고, 진정한 회개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