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따라가는 소명의 길


[예레미야 20장 7절~18절]
7절 -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절 -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9절 -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절 -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11절 -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절 -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절 -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14절 -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절 - 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16절 -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무너뜨리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가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니
17절 -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
18절 -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

[배경 이해하기]
18~20장은 예레미야의 여덟 번째 설교로, ‘토기장이의 비유’(18장)와 ‘깨진 옹기 비유’(19장)라 불리는 유명한 두 비유를 통해 온 우주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알립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유다에 대한 심판을 선언합니다. 이때를 여호야김 통치 초기 또는 그 이전으로 추측합니다. 먼저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토기장이에, 유다를 진흙에 비유해 진흙이 토기장이 손에서 그릇으로 빚어지듯, 유다의 운명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음을 상기시키며 재앙의 길에서 돌이킬 것을 촉구합니다(18:1~12). 그러나 유다 백성은 회개하지 않고 예레미야를 핍박하고 죽이려 하자, 예레미야는 탄식하며 기도합니다(18:13~23). 이런 예레미야의 심판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은 계속 악을 행했고, 제사장이자 성전 총감독 바스훌은 예레미야를 때리고 감금하기까지 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스훌에게 임할 재난을 예언한 후(20:3~6), 심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자신의 선지자적 소명과 백성의 박해로 인한 내적 갈등과 고통을 토로합니다(20:7~18). 

[관찰과 묵상]
1. 감당하기 힘든 핍박으로 인해 선지자의 소명을 포기하고 싶은 내적 갈등 속에서도 예레미야가 확신한 것은 무엇인가요?(10~13절)
예레미야는 두려운 용사 같으신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그를 박해하는 자들이 결국 이기지 못하고 치욕 당할 것을 확신합니다. 또한 그의 사정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보복하시며,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해서 구원하실 것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로 부르셨을 때, 예레미야는 아이라 말할 줄 모른다면서 항변했습니다(1:6). 하지만 하나님이 강권하셨기 때문에 그는 소명에 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성실하게 전했지만, 백성은 돌이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완악한 태도로 그의 예언을 거부하고 조롱하며 핍박했습니다(8절). 이로 인해 예레미야는 심한 내적 갈등을 겪으며 더 이상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를 선포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과 같아서 전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9절). 예레미야에게 더욱 낙심이 된 것은 어려운 때에 위로와 도움이 되어야 할 친구들마저도 자신이 잘못되기를 바랐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중심에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운 용사’로 자신의 곁에, 자신을 대적하는 자 앞에 서 계시는 분으로 믿었습니다(11절). 둘째, 원수의 멸망을 확신했습니다. 두려운 용사이신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예레미야를 박해하던 원수들은 결국 넘어지고 큰 치욕을 당할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러한 확신은 예레미야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표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이끌었습니다(13절). 
적용과 나눔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이나 핍박을 당한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그때 하나님이 주신 확신 혹은 약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세속적 가치로 가득한 세상 한가운데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난과 핍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안목의 정욕, 육체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란 잣대로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하고 핍박하며, 그 강도는 갈수록 더해져 갑니다. 회사와 학교에서의 예배와 성경 공부 모임은 지탄의 대상이 된 지 오래고, 먼 나라 이야기로만 여겨졌던 동성애 이슈는 이제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가 되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 신약의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도 고난과 핍박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불순종을 일삼는 백성은 하나님의 사람들뿐 아니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 핍박하며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소망과 위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과 핍박에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함께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 고생과 슬픔,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삶으로 인해 예레미야가 스스로 저주하며 한탄한 내용은 무엇인가요?(14~18절)
예레미야는 자신의 생일이 저주를 받았어야 하고, 자신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한 자도 저주를 받았어야 한다며 자신의 출생을 한탄합니다.
예레미야는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보입니다. 심한 내적 갈등에도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던 그가 확신에 가득 찼던 앞부분과는 달리 자신의 생일이 저주를 받았어야 하고 자신이 태어난 것을 전한 자도 저주를 받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당하고 있는 고통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태에서 죽지 않은 것까지 한탄하면서 자신의 삶을 불평합니다. 소명을 외면하고 침묵하고 있자니 마음속에서 불타올라 견딜 수 없고, 사명을 수행하자니 그로 인한 고통이 너무 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심지어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러한 모든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욥기 3장에 나오는 욥의 탄식과 매우 유사한데, 욥이 원인 모를 고난으로 자신의 출생을 저주했다면, 예레미야는 감당하기 힘든 소명으로 인해 자신의 출생을 저주합니다. 이 탄식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소명 의식을 떨칠 수 없는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고난에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으로서 드러낸 깊은 고뇌지만, 결국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도무지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은 무엇인가요? 소명을 감당하며 어떤 점 때문에 힘들었는지, 하나님을 원망한 적은 없는지 나누어 보세요.
소명(vocation)의 라틴어 어원은 ‘목소리’(voice)입니다. 소명이란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나를 창조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분으로부터 들어야 할 소리입니다. 죄를 뜻하는 헬라어는 a`marti,a하마르티아입니다. 이 단어의 동사형인 a`marta,nw하마르타노는 호메로스 이후에 ‘과녁을 빗나가다’, ‘잃어버리다’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죄는 과녁에 적중하지 못하는 삶, 혹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에서 벗어난 삶을 가리킵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진 삶이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해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함께하자는 그분의 초대입니다. 그래서 성숙한 신앙인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자신의 뜻과 다르다 할지라도 그분 뜻에 자신을 굴복시키고 순종해야 합니다.


* 소명을 받은 사람은 영광과 함께 고난도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뜻에 온전히 복종하심으로 죽음까지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소명을 따라 살다 보면 수많은 회유와 핍박을 경험합니다. 그때 소명자는 고난 자체에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받은 소명에 충실해 어떤 상황에서도 올곧게 하나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비결은 불같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며 내 힘이 아닌 그분의 은혜로 소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소명을 따라 살아갈 때 겪게 되는 고난에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도우심을 확신하게 하소서. 은혜 없이 살 수 없음을 고백하오니 하나님 뜻에 제 모든 뜻을 복종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모욕과 조롱을 이기는 힘, 마음에 임한 말씀의 불

[예레미야 20장 7절~18절]
7절 -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절 -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9절 -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절 -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11절 -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절 -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절 -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14절 -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절 - 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16절 -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무너뜨리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가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니
17절 -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
18절 -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

멸망의 말씀을 선포한 예레미야는 온종일 모욕과 비난을 받습니다. 그는 말씀을 선포하지 않겠다고 작정해 보지만, 마음이 불붙듯 답답해 견딜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사정을 아뢰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도 괴로움이 극심해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탄합니다.

1. 마음이 불붙는 선지자 (7~13절)
그 무엇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감을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권유대로 백성의 죄를 지적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합니다. 그러자 백성이 그를 모욕하고 조롱합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다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씀을 선포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사명감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말씀의 불이 그의 심령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실족해 말씀 선포를 포기하길 원수들이 고대할 때, 그는 하나님 앞에 모든 사정을 아룁니다. 그리고 두려운 용사이신 하나님을 붙들고 고난을 헤쳐 나갑니다. 성도는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악인을 다루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기다리며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 왜 예레미야는 조롱과 비방 속에서도 말씀 선포를 멈추지 못했나요? 복음을 전하다가 조롱과 비방을 당할 때 어떻게 극복하나요?

2. 선지자의 탄식 (14~18절)
조롱과 모욕과 비방을 계속 받으면 믿음의 사람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극심한 고난 속에서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며 탄식합니다. 원수들에게 공격당해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믿음으로 찬양했지만(13절), 연약한 인간으로서 감당해야 할 현실적인 아픔과 슬픔은 너무도 컸습니다. 그는 모태에서 나와 고생하고 조롱받는 자신의 현실을 탄식합니다. 그의 탄식은 욥의 탄식(욥 3장)과 상통합니다. 믿음의 사람도 때로 현실의 고통으로 탄식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살펴보시고 의인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사랑과 공의의 주권자십니다(12절). 하나님을 향한 탄식의 기도는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이끕니다.

* 예레미야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면서까지 탄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실의 괴로움으로 인해 내 속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의 간구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주님을 따르려는 제 진심이 모욕과 비난의 화살을 맞을 때, '차라리 주님을 몰랐더라면...'하고 탄식하게 됩니다. 고통으로 부르짖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품어 주소서. 신음을 찬양으로 바꾸실 강한 용사이신 주님을 붙들고 일어나 믿음으로 새날을 열어 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두려움으로 몰락하는 거짓 선지자의 운명

[예레미야 20장 1절~6절]
1절 -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2절 -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
3절 -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에서 풀어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4절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너로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그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로 죽이리라
5절 - 내가 또 이 성읍의 모든 부와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중품과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가리라
6절 - 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이 포로 되어 옮겨지리니 네가 바벨론에 이르러 거기서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너와 너의 거짓 예언을 들은 네 모든 친구도 그와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제사장 바스훌이 유다 멸망을 예언한 예레미야를 때리고 가두었다가 풀어 줍니다. 예레미야는 바스훌에게, 하나님이 그를 마골밋사빕이라 부르시며 그가 두려움이 되게 하실 것이라 말합니다. 유다가 멸망할 때 바스훌과 그 집안사람과 친구들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거기서 죽을 것입니다.

1. 예레미야를 핍박하는 바스훌 (1~3절)
심판과 회개 메시지를 달갑게 듣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는 것이 말씀 선포자의 사명입니다. 제사장이자 성전의 총감독인 바스훌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예레미야가 타락한 성전의 죄악상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레미야가 자신의 체제와 권력을 위협한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바스훌은 예레미야를 때리고 감금했다가 다음 날 풀어 줍니다. 예레미야는 그를 '마골밋사빕', 즉 '사방으로 두려움'이란 뜻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는 바스훌이 장차 두려운 일들을 당할 것을 나타냅니다.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서 진리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고 도리어 진리의 말씀을 방해하면, 두려움이 따르는 인생으로 전락합니다.

*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결박하고 감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군가 내 잘못을 지적하고 바른길을 권면할 때 그 말을 듣는 내 마음과 태도는 어떠한가요?


2. 바스훌의 운명 (4~6절)

하나님의 선지자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괴롭히고 감금한 바스훌에게 재앙을 선언하십니다.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와 사람들이 칼에 엎드러지고, 예루살렘의 모든 재물이 원수의 손에 빼앗길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사방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그때 바스훌과 그의 집 모든 사람은 바벨론에 끌려가고 그곳에서 죽을 것입니다. 바스훌은 예레미야를 핍박했을 뿐만 아니라 거짓 예언을 전하기도 했습니다.(6절). 하나님 뜻을 올곧게 전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위해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거짓 선지자는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며, 그를 따르는 이들도 모두 동일한 운명에 처할 것입니다.

* 거짓 예언자 바스훌은 결국 어떤 운명에 처하나요? 거짓 예언을 따르다가 함께 멸망에 이르지 않기 위해서, 내가 주의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복음으로 인해 겪는 손해나 핍박 앞에 연약한 모습을 보였던 저를 은혜의 날개로 덮어 주소서. 교묘하게 속이는 이단에 미혹되지 않도록 진리를 더욱 분명히 알게 하소서. 오직 주님만을 두려워함으로 죄와 거짓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허무한 우상을 따르면 깨진 옹기처럼 됩니다

[예레미야 19장 1절~15절]
1절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2절 -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에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
3절 - 말하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리니
4절 -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 곳을 불결하게 하며 이 곳에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 곳에 채웠음이며
5절 -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6절 - 그러므로 보라 다시는 이 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죽임의 골짜기라 부르는 날이 이를 것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7절 - 내가 이 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무너뜨려 그들로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
8절 - 이 성읍으로 놀람과 조롱 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조롱할 것이며
9절 - 그들이 그들의 원수와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경에 빠질 때에 내가 그들이 그들의 아들의 살, 딸의 살을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살을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
10절 -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옹기를 깨뜨리고
11절 -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
12절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 곳과 그 가운데 주민에게 이같이 행하여 이 성읍으로 도벳 같게 할 것이라
13절 -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이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더러워졌은즉 도벳 땅처럼 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
14절 -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예언하게 하신 도벳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15절 -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읍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들의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하시니라

예레미야는 토기장이에게서 옹기를 사 들고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함께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갑니다. 우상 숭배하고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바친 그곳은 죽임의 골짜기라 불리게 됩니다. 깨뜨려져 다시 붙일 수 없는 옹기처럼, 완전히 깨어지는 재앙이 성읍과 백성 가운데 내려질 것입니다.

● 깨진 옹기 비유
하나님은 죄로 물든 삶을 반드시 깨뜨리십니다. 예레미야는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재앙을 선포합니다. 그곳에서 백성이 우상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아들들로 인신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옹기를 깨뜨린 것은 유다의 파멸을 의미합니다. 산산이 깨져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그릇처럼, 죄악으로 가득한 유다를 하나님이 깨뜨리실 것입니다. 즉, 바벨론 군대로 인해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은 폐허가 될 것입니다. 우상 숭배가 자행되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죽임의 골짜기'라 불릴 것입니다. 다시 성전으로 온 예레미야는 심판을 선포해 잘못된 성전 신앙을 지적합니다(14~15절). 하나님을 버리고 불순종한 결과는 무서운 재앙과 사망입니다. 성도는 깨진 옹기 같은 인생이 되지 않도록, 주권자 되신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 우상 숭배 장소였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게 되나요? 깨진 옹기가 아닌 온전한 옹기로 쓰임받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고난받는 사명의 자리, 기도로 감당합니다

[예레미야 18장 13절~23절]
13절 -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누가 이러한 일을 들었는지 여러 나라 가운데 물어보라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14절 -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바위를 떠나겠으며 먼 곳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15절 - 무릇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게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들의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하게 하여
16절 - 그들의 땅으로 두려움과 영원한 웃음 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의 머리를 흔들리라
17절 -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 앞에서 흩어 버리기를 동풍으로 함 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18절 -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 하나이다
19절 -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와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옵소서
20절 - 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내가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유익한 말을 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21절 - 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 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넘기시며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죽음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
22절 - 주께서 군대로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게 하사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 이는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뜨리려고 올무를 놓았음이니이다
23절 -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옵시며 그들의 죄를 주의 목전에서 지우지 마시고 그들을 주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 주께서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하니라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고 우상에게 분향하므로 황폐하고 조롱거리가 되어도 하나님이 그들을 돌아보지 않으실 것이라 전합니다. 그러나 백성은 예레미야를 해치려 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려고 그들에게 유익한 말을 했던 자신을 기억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1. 가증한 일을 행하는 백성 (13~17절)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참된 신앙의 길입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바른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허무한 것에 분향하며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헤르몬산의 만년설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순응해 요단강의 마르지 않는 수원을 형성하고, 변함없이 물을 내보냅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은 하나님 뜻을 거역하며 온 땅에 악행을 흘려보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들을 조롱거리로 만드시고 원수 앞에서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실 것입니다. 재난의 날에 유다에게서 얼굴을 가리시고 그들을 돕지 않으실 것입니다. 변함없이 신실하게 주님의 길로 행하면 평안과 복을 누리지만, 곁길로 행하면 비웃음거리가 됩니다.
* 하나님을 잊고 허무한 것을 섬기는 백성에게 어떤 재앙이 임하나요? 영적 순결을 지키며 변함없이 하나님만 사랑하는 삶을 어떻게 이어 갈까요?

2.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음모 (18~23절)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라도 진리라면 선포해야 합니다. 그때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수 있습니다. 유다 백성은 심판을 선포하는 예레미야를 반역자로 내몰고 그를 해치려는 계략을 꾸밉니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없어도 제사장, 지혜로운 자, 선지자에게서 얼마든지 위기를 극복할 지혜와 책략이 나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했으나 그들은 오히려 그를 미워하고 대적합니다. 선지자와 그의 말을 대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선을 악으로 갚는 이들을 심판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는 복수심이 아닌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어그러진 악한 길에서 돌이키게 하기 때문입니다.
* 예레미야는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기도를 드렸나요? 나를 미워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오늘의 기도
세상 곁길에 한눈팔지 않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만 바라보며 말씀의 길을 똑바로 걷기 원합니다. 제가 베푼 선이 오해와 악으로 돌아와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 말씀을 신실하게 전하는 종 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의 긍휼과 공의에 기대어 사랑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절대 순종으로 따를 절대 주권자 하나님

[예레미야 18장 1절~12절]
1절 -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2절 -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시기로
3절 -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4절 -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5절 -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6절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7절 -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8절 -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9절 -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10절 -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11절 -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
12절 -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가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그릇 만드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토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이스라엘 족속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국가든 악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이 재앙을 거두실 텐데 유다 백성은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습니다.

1. 토기장이 비유 (1~6절)
토기장이 비유는 하나님과 그분 백성의 관계를 잘 보여 줍니다. 토기장이는 진흙으로 그릇을 빚다가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으면, 자기 마음에 들기까지 다시 그릇을 빚습니다. 흙으로 빚어진 인생의 운명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토기장이시며 절대 주권자십니다. 토기장이가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그릇을 빚듯, 하나님은 주권적 섭리로 행하십니다. 비록 언약 백성일지라도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행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능히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십니다. 절대 주권자 앞에서 요구되는 것은 경외함과 순종입니다. 우리는 토기장이 하나님 앞에 진흙 같은 존재임을 기억하고 그분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 토기장이와 하나님은 어떤 면에서 비슷한가요?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앞에서 내 방법을 내려놓고 온전히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2. 악한 길에서 돌이켜 순종하라 (7~12절)
복과 재앙은 말씀에 순종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심판이 작정되었어도 악에서 돌이키고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심판을 거두십니다. 복이 작정되었어도 악을 행하고 불순종하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복을 거두십니다. 하나님은 이제라도 유다 백성이 악에서 돌이키고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면 재앙을 돌이키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계획대로',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내 계획을 앞세우며 죄성 가득한 마음의 요구를 따르면, 불순종과 악으로 향합니다. 토기장이신 절대 주권자 하나님은 그분의 뜻과 계획에 따라 복과 재앙을 내리십니다.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고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정할 때, 저주가 복으로 바뀌는 은혜 인생이 시작됩니다.
* 악에서 돌이키고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는 말씀에 유다 백성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하나님 뜻대로 돌이키기 위해 내가 버릴 악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내 인생을 왜 내 맘대로 못 하게 간섭하느냐'고 주님게 항변했던 죄악을 회개합니다. 주님 계획보다 제 계획을 더 낫게 여기며 고집했던 교만을 용서하소서. 저를 누구보다 잘 아시고 가장 선하게 빚어 가실 주님의 손에 놓인 진흙으로서 늘 겸손과 순종을 잃지 않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언약 백성의 표징, 예배 중심의 삶

[예레미야 17장 19절~27절]
19절 -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가서 유다 왕들이 출입하는 평민의 문과 예루살렘 모든 문에 서서
20절 - 무리에게 이르기를 이 문으로 들어오는 유다 왕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모든 주민인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21절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22절 -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23절 -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24절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순종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어떤 일이라도 하지 아니하면
25절 - 다윗의 왕위에 앉아 있는 왕들과 고관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함께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원히 있을 것이며
26절 - 사람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둘린 곳들과 베냐민 땅과 평지와 산지와 네겝으로부터 와서 번제와 희생과 소제와 유향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오려니와
27절 -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되게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시니라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모든 문에 서서 유다 왕들과 백성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면 하나님은 예루살렘성이 영원히 있게 하실 것이나, 순종하지 않으면 성문에 꺼지지 않는 불을 놓으셔서 그 성을 삼키게 하실 것입니다.

1. 안식일 준수의 의미 (19~23절)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 함에는 빈부귀천의 차이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특정 계층이 아닌 모든 예루살렘 주민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준수하도록 촉구합니다(출 20:8~11; 신 5:12~14). 특히 안식일에 외부에서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 안으로 들어와서 장사하지 말라는 하나님 명령을 전합니다. 안식일 준수는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표징입니다. 안식일을 범하는 행위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겠다는 선언이고, 율법에 대한 총체적 거부입니다. 안식일 준수를 등한시하면 필연적으로 하나님과 멀어지고, 나머지 다른 언약도 어기게 됩니다. 언약 백성은 창조주요 구속주 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거룩한 정체성을 지켜 가야 합니다.
* 예레미야가 왕과 모든 백성에게 선포한 하나님 말씀은 무엇인가요? 예배에 집중하기 위해 주일에 내가 특히 금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2. 안식일 준수의 결과 (24~27절)
안식일 준수는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명령입니다. 유다 왕들과 온 백성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다윗 왕조가 지속되고, 예루살렘이 회복되며,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가 지속될 것입니다. 또한 예배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영원한 평강을 누리는 영광의 도성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반면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준수하지 않으면 꺼지지 않는 '불'이 예루살렘을 포함한 모든 터전을 사를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승리와 복이 임하며 찬양과 감사가 넘쳐나지만, 불순종하면 징계와 심판이 뒤따릅니다. 이 계명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날인 주일을 잘 지키면 하나님도 우리 삶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 안식일을 준수하는 유다 왕들과 백성에게 어떤 복이 주어지나요? 나는 평소에 주일을 어떻게 준비하며, 또 주일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요?

오늘의 기도
세상에서 들려오는 질책이, 온전한 순종을 잃어버린 저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지 두렵습니다. 주신 말씀 따라 하루하루 행함으로 일평생 순종의 사람으로 서게 하소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워 참다운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사명의 길에서 드리는 소망의 찬양, 믿음의 간구

[예레미야 17장 12절~18절]
12절 - 영화로우신 보좌여 시작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13절 -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14절 -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15절 - 보라 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냐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 하나이다
16절 - 나는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를 따랐사오며 재앙의 날도 내가 원하지 아니하였음을 주께서 아시는 바라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 주의 목전에 있나이다
17절 -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
18절 - 나를 박해하는 자로 치욕을 당하게 하시고 나로 치욕을 당하게 마옵소서 그들은 놀라게 하시고 나는 놀라게 하지 마시옵소서 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며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하나님께 자신을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는 사람은 모두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그가 목자의 직분을 다하고 주의 말씀을 선포한 것으로 인해 치욕당하지 않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1. 치료와 회복의 소망 (12~14절)
온 세상의 중심은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성소입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피조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시고 피조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유다 백성의 멸망을 눈앞에 둔 예레미야는 깊은 탄식 속에서 주권자요 소망이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유다 백성은 흙에 기록되듯 허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절망과 포기를 선택하기보다 영화로운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높이고 찬송하며 그분께 매달립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하나님이 도우시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메마르고 상처받은 모든 영혼을 치료하고 구원하는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언약 백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기도와 찬송을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문제에 집중하기보다 주권자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아뢸 소망의 기도는 무엇인가요?

2. 조롱받는 선지자의 간구 (15~18절)
사명의 길이 항상 지지받는 것은 아닙니다. 악한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신 심판과 멸망의 예언을 올곧게 전했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하나님 말씀이 성취될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조롱하며 그를 핍박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목자(선지자)로서의 책임을 신실하게 감당합니다. 원수의 공격이 커질수록 더욱 하나님께 매달려 간구합니다. 자신의 말이 근거 없는 의견이 아닌 하나님 말씀임을 입증해 치욕을 면하게 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은 생명보다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대로 이루실 하나님을 의지해 끝까지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 예레미야는 자신을 조롱하는 대적들의 방해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억울하게 모함당하고 근거없는 비난을 들을 때 나는 어떻게 기도하나요?

오늘의 기도
목마름을 채우고자 헛된 것을 향했던 길에서 돌이켜,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님이 유일한 소망이심을 고백하오니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치유와 구원을 허락하소서. 믿음을 비웃고 위협하는 세상에 위축되지 않고, 맡겨진 직분을 충성되이 감당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누구를 의지하며 사는가?

[예레미야 17장 1절~11절]
1절 -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거늘
2절 - 그들의 자녀가 높은 언덕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
3절 - 들에 있는 나의 산아 네 온 영토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리니
4절 - 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하여금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원수를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를 맹렬하게 하여 영원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라
5절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절 -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7절 -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절 -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9절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절 -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11절 -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배경 이해하기]
예레미야 2~25장에는 유다의 심판을 경고하는 예레미야의 설교 열두 편이 나옵니다. 16~17장은 그중 일곱 번째 설교에 해당하며, 예레미야의 일상의 삶과 관련된 상징적 행동을 통해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경고합니다. 이 설교가 선포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여호야김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바벨론의 2차 침공이 있기 전으로 추정합니다. 16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결혼 금지, 상가집 출입 금지, 혼인집 출입 금지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상징 행위를 통해 유다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백성에게 알리십니다. 유다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유다 사회가 붕괴될 것을 암시합니다. 물고기 잡는 어부와 사냥하는 포수의 비유(16:16)는 유다 백성에게 임할 심판이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철저한 심판임을 강조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긴 데 있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깊어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씻기지 않을 정도입니다(2:22). 17장에서는 유다의 죄악이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었을 정도로 명백하다고 밝힙니다(17:1~4).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 중심의 삶과 세상을 의지하는 인본주의적 삶을 사는 두 인생을 비교해 제시하며(5~11절), 하나님께로 돌이켜 그분을 의지할 것을 촉구합니다. 

[관찰과 묵상]
1. 사람을 의지하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어떻게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되나요?(5~8절)
사람을 의지하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사막의 떨기나무같이 저주받은 삶을 삽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물가에 심긴 나무같이 청청하고 열매 맺는 삶을 삽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르며 사람의 힘을 의지해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예레미야는 금강석 끝 철필로 새겨질 정도로 명백한 유다의 죄악과 심판을 예고한 후, 사람을 의지하는 자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결국이 어떠한지를 비교하며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촉구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믿고 육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는, 세상을 의지하는 인본주의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운명은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습니다. 이는 사막의 떨기나무는 대개 비를 기대하기 힘든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 쓸쓸하게 버려져 가까스로 생명을 이어 가는 생명체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이런 사람의 삶은 ‘물가에 심긴 나무’와도 같습니다. 물가에 심긴 나무는 계속해서 수분을 공급받을 수 있기에 더위나 가뭄에도 잘 견디며, 그 잎은 싱싱하고 푸르르며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7~8절). 이는 시편 1편을 연상하게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 
적용과 나눔
나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나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해 받은 복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하나님과 율법을 저버린 유다 백성은 사람의 힘을 믿고 신뢰했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공격해 오자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먼저 애굽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사람이 가진 힘과 무기를 의지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다가온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잠 24:19)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지금은 형통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곧 저주를 받아 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세상 물질을 따라 살고 세상의 인기와 명예를 따라 삽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결국은 심판과 저주입니다. 그들은 아무데도 쓸모없는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을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섬기며 그분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고난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감사와 기쁨의 찬송을 부릅니다. 전능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맺는 삶의 풍성한 열매를 통해 많은 이가 그 은혜를 함께 누립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유일한 힘의 근원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2. 성경은 사람 마음의 실상이 어떠하다고 말하나요? 하나님은 무엇을 살피시고 시험하시며, 또 어떻게 보응하시나요?(9~10절)
성경은 사람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해 헤아리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을 살피시고 폐부를 시험하시며, 각각 그의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사람의 마음이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다’라고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9절). 여기서 ‘부패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치유할 수 없는’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이 이 세상 무엇보다도 거짓되어 고칠 수 없는 상태여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선을 행할 수 없는 구제 불능 상태임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하기 때문에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행동 역시 추하고 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을 살피시며 폐부를 시험하십니다. ‘심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브’는 ‘마음’(1, 5, 9절)을 뜻하기에, ‘심장을 살피신다’는 표현은 ‘마음을 살피신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폐부’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콩팥’을 뜻하는 단어의 복수형으로 인간의 가장 깊은 내적 측면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곧 하나님은 인간의 내적인 모든 요소를 살피시는 분으로, 인간이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각 사람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외모와 드러난 행위로만 판단하지 않으시고, 숨겨진 동기까지 판단하시고 그대로 갚으시는 분입니다. 
적용과 나눔
내 마음의 동기를 살피시고 보응하시는 하나님 앞에 걸림이 되는 일은 무엇인가요? 내 마음과 달라도 말씀에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성경은 사람의 마음이 심히 거짓되고 부패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어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부패했기에 사람은 상대방의 폐부를 볼 수 없습니다. 피상적으로만 느낄 뿐 속마음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을 꿰뚫어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외모가 아니라 심장과 폐부를 살피십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숨길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하나님의 시선 안에 내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살아갈 때,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것은 메마른 마음에 생명의 샘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그 뿌리가 물가에 닿아 있기에 절대 시들거나 말라 죽는 법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은 사람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기에 그 삶이 시들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 하나님을 떠나서 사람을 의지하는 인생과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는 인생의 차이는 확연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기에 그 마음속에 두려움과 걱정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은 두려움과 염려라는 우상을 생산하는 공장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은 물가에 심긴 나무가 지속적으로 수분을 공급받아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처럼, 하나님 안에서 복과 생명을 누립니다.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을 따라 행하면 실패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지만, 생명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면 형통한 인생이 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인생의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서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풍성히 열매 맺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 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예레미야 17장 1절~11절]
1절 -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거늘
2절 - 그들의 자녀가 높은 언덕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
3절 - 들에 있는 나의 산아 네 온 영토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리니
4절 - 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하여금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원수를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를 맹렬하게 하여 영원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라
5절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절 -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7절 -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절 -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9절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절 -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11절 -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깊이 새겨진 우상 숭배 죄로 인해 유다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잃고 낯선 땅에서 원수를 섬길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아 메마른 땅에 살 것이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아 물가에 심긴 나무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고 그 행위대로 갚으십니다.

1. 하나님을 떠난 사람 (1~6절)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유다 백성의 죄가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매우 명백하고 그 뿌리가 깊다는 뜻입니다. 이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상태임을 강조합니다. 우상 숭배로 온 땅이 부패한 유다에 하나님의 심판은 필연적 결과였습니다. 유다 백성의 또다른 죄는 사람의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사람은 피조물에 불과하며 결코 의지할 대상이 못됩니다. 그의 호흡은 코에 있기에 셈할 가치가 없습니다(사 2:22). 우상을 숭배하고 사람의 힘을 의지한 결과 유다 백성은 노략과 추방을 당하고 먼 이방 땅에서 '사막의 떨기나무'(6절)같이 황폐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성도는 도울 힘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세상의 헛된 우상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 하나님을 떠나 사람과 우상을 의지하면 어떻게 되나요? 내가 종종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대상은 무엇이며,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2.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 (7~11절)
사람과 우상을 따르면 실패한 인생이 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풍성한 삶을 누립니다. 원죄로 인해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9절) 상태입니다. 선을 행하기에 전적으로 무능하고, 끊임없이 악을 계획하고 자행합니다. 그렇게 불완전한 사람을 신뢰와 의지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때 물가에 심긴 나무처럼 그 잎이 청청하고 가뭄에도 결실이 풍부합니다(시 1:3).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시기에 그분을 통해서만 생명과 복이 지속적으로 공급됩니다. 성도는 부패한 마음을 따라 불의를 행하지 말고,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시고 보응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공의를 행해야 합니다.
*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게 되나요?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감출 수 없는 나의 죄와 허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눈에 보이는 세상 것들을 주님보다 더 신뢰하는 제 모습이 다음 세대에 악한 영향을 끼쳤음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주님을 등지고 사람을 의지하는 삶이 얼마나 공허한지요. 마르지 않는 물가와 같은 주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려, 의의 열매를 맺는 싱그러운 인생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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