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의 첫사랑을 기억하라
[예레미야 2장 1절~8절]
1절 -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절 -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3절 -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절 -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의 집 모든 족속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5절 -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6절 -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 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우리가 통과하게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7절 -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8절 -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
[배경 이해하기]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활동했던 시대의 국제 정세는 앗수르가 몰락하면서 신흥 강국인 바벨론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차지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지정학적으로 메소포타미아와 애굽 사이에서 정략적 눈치를 보아야 했던 이스라엘은 친 애굽 정책을 펼쳤지만, 바벨론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했습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친 애굽 정책을 폈던 유다와 그 지도자들을 향해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목 놓아 눈물로 부르짖습니다. 바벨론의 멍에는 유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에 그는 하나님과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회개하라” 외쳤습니다. 유다의 죄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출애굽의 은혜를 베푸셨지만,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상을 섬겨 영적 타락을 가져온 것입니다. 1장에서는 예레미야의 소명(1:4~10)과 더불어 그 소명을 확증하기 위해 보이신 살구나무 가지와 끓는 가마 환상(1:11~14)에 관해 다룹니다. 2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유다가 행한 죄악의 실상이 어떠한지 전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예레미야의 입에 두시고(1:9) 그분의 마음과 계획을 전하게 하십니다.
[관찰과 묵상]
1. 하나님이 말씀하신 ‘네 청년 때’, ‘네 신혼 때’는 언제를 가리킬까요? 하나님은 그때의 이스라엘을 어떻게 표현하셨나요?(1~3절)
‘네 청년 때’, ‘네 신혼 때’는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신의를 지키며 사랑으로 말씀에 순종하던 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그때의 이스라엘을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로 표현하십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타락과 배반을 지적하시기 전에, 이스라엘의 ‘청년 때의 인애’와 ‘신혼 때의 사랑’을 회상하십니다. 마치 방황하는 청소년기의 아이를 바라보며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이스라엘과 좋았던 시절을 기억하십니다. ‘기억하노니’(2절; 히, 자카르)는 한동안 잊고 있다가 갑자기 떠올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잊지 않고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청년의 때’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이후에 광야 생활을 하던 때입니다. 그 ‘청년의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에 대한 인애,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신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혼의 때’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때를 가리키는데,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만을 주로 섬기고 따를 것을 약속했습니다(출 19:3~6). 그 ‘신혼의 때’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는 마치 신랑과 신부 사이같이 뜨거운 사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성물 곧 첫 열매’(3절)로 삼으셨는데, 이는 주권적으로 택하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적용과 나눔
각자 하나님과의 첫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나누어 보세요. 처음 사랑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구별하시어 그분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남달리 가진 무엇 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게 하신 사건은 우리를 향하신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결코 우리의 잘남 때문이 아니라,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한 자임을 날마다 고백하며 십자가로 보여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신앙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식지 않고, 그 사랑은 우리를 죄악 된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지적하신 유다의 죄악은 무엇인가요?(5절) 제사장들, 율법을 다루는 자들, 관리들, 선지자들의 영적 상태는 어떠했나요?(8절)
유다의 죄악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헛된 우상을 따른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않았고,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관리들은 하나님께 반역하고,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이 ‘청년 때의 인애’와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신 것은 현재 유다의 모습이 과거의 모습과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는 어떤 불의함도 없으십니다. 유다가 하나님을 떠난 이유는 하나님께 무슨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그들의 욕심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청년의 때와 신혼의 때’ 받았던 사랑을 기억한다면, 결코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떠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5절) 행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헛된’(히, 헤벨)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의 숨’이라는 뜻입니다. 헛된 것은 단 한 번의 숨처럼 허무하고 무가치한 것을 의미하는데, 유다 백성이 섬긴 우상이 바로 이같이 허무하고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더럽히고 역겹게 만들었습니다(7절).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다’는 말은 먹은 것을 토해 내고 싶을 정도로 아주 혐오스럽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서 헛된 우상을 숭배해 역겹고 가증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섬겨야 마땅한 영적 지도자들인 제사장, 율법을 다루는 자, 선지자들이 오히려 바알에게 종노릇을 한 것을 하나님은 탄식하며 지적하십니다(8절).
적용과 나눔
내 삶에서 하나님이 싫어하실 만한 죄악 된 모습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우상은 눈에 보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외에 탐욕을 가지고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시 115:4),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현대인에게 우상은 첫째,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물질주의입니다. 돈으로 일어나는 분쟁이 많고, 심지어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 다 돈을 우상시한 결과입니다. 둘째, 과학적 판단으로 규명되지 않는 것은 전부 허구로 돌리는 과학주의입니다. 예수님의 이적을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없기에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셋째, 성경적 한계를 벗어난 쾌락주의입니다. 즐거움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벗어나 쾌락에 빠지는 것은 우상 숭배의 다른 모습입니다. 물질주의, 과학주의, 쾌락주의는 현대를 사는 우리가 쉽게 빠질 수 있는 우상 숭배의 가증한 형태입니다.
* 출애굽 이후 광야 시절에 이스라엘은 신혼부부처럼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따르면서 모든 복을 스스로 가로막았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불변한데 인간의 사랑이 변하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부부 관계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도 처음 사랑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격적인 관계며,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십자가 죽음에 내어 주신 사랑입니다. 성도는 그 사랑에 신실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헛되고 가증한 세상 것들을 이제 더는 좇지 않기 원합니다. 제 삶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날마다 기억하며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함으로, 능력 있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