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경고가 울릴 때 더욱 의지할 하나님

[예레미야 4장 23절~31절]
23절 -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4절 -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25절 -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26절 - 보라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의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27절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길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28절 - 이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어두울 것이라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하였은즉 또한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로다
29절 - 기병과 활 쏘는 자의 함성으로 말미암아 모든 성읍 사람들이 도망하여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르며 각 성읍이 버림을 당하여 거기 사는 사람이 없나니
30절 -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네가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31절 -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시온의 딸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의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죽이는 자로 말미암아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 앞에 혼돈하고 공허해진 땅을 봅니다. 하나님은 온 땅을 황폐하게 할 것이나 진멸하지는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이 일을 이미 작정하셨고 돌이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유다가 금으로 단장하고 주변 국가들의 도움을 구하나 그 수고는 헛될 뿐입니다.

1. 진노 중에 임하는 은혜 (23~28절)
진노의 심판은 취소되지 않으나 심판으로 인한 완전한 멸망은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장차 유다에 임할 심각한 재앙을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이 빛을 잃고, 산이 진동하며 요동치고, 사람이 모두 사라지는 무질서하고도 두려운 세상으로 변합니다. 하나님은 그분 명령을 지켜 행하면 약속하신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 하셨습니다(신 4:40). 그러나 불순종으로 인한 진노의 심판 앞에서 모든 좋은 땅도 성읍도 순식간에 황폐해집니다. 이처럼 잔혹한 심판을 내리시면서도 하나님은 유다를 완전히 진멸하지는 않으십니다(27절). 하나님은 그분의 작정과 섭리대로 심판을 진행하시지만, 진노 중에도 긍휼과 은혜를 베푸셔서 남은 자들을 두시고 새 역사를 이어 가게 하십니다.
* 유다의 참혹한 심판 환상 가운데 주신 실낱같은 희망의 약속은 무엇인가요? 심판 중에도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신다는 사실은 내게 어떤 소망을 주나요?

2. 헛된 것을 의지하는 어리석음 (29~31절)
환난 때에 인간의 방법을 의지하면 더 큰 문제를 초래합니다. 바벨론 군대의 큰 함성에 유다 백성이 수풀과 바위로 도망합니다. 유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주변 국가들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고는 헛일이며, 유다가 의지하는 강대국들이 오히려 유다를 위협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진노의 때에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결과는 해산의 고통 같은 참혹한 고통과 재앙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닥친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을 찾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생사화복, 흥망성쇠의 주관자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나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 유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나는 위기와 환난이 닥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의지하나요?

오늘의 기도
기근으로 갈라진 땅처럼 말라비틀어진 인생의 고통을 십자가 앞에 가져갑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두 손 들고 나아가는 것만이 살길임을 고백합니다. 제 신앙과 행실을 바로잡아 황무지가 좋은 땅이 되는 반전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심판 경고에 담긴 하나님 마음

[예레미야 4장 11절~22절]
11절 - 그 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전할 자가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 있는 헐벗은 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라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하게 하려 함도 아니며
12절 -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
13절 - 보라 그가 구름 같이 올라오나니 그의 병거는 회오리바람 같고 그의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 하리라
14절 -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15절 -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에브라임 산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도다
16절 - 너희는 여러 나라에 전하며 또 예루살렘에 알리기를 에워싸고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부터 와서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하라
17절 -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 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했기 때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8절 - 네 길과 행위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네가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
19절 -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20절 -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장막과 휘장은 갑자기 파멸되도다
21절 - 내가 저 깃발을 보며 나팔 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
22절 -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배경 이해하기]
주전 722년,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절대 군주로 자리 잡은 앗수르에 의해 북 이스라엘이 멸망합니다. 북 이스라엘은 단과 벧엘에 제단을 세우고, 평민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등 하나님을 떠나 온 백성이 지속적으로 우상 숭배로 일관했기에 앗수르를 통해 그 악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신앙적 교훈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유일하게 선민의 명맥을 유지하던 유다 또한 북 이스라엘과 같이 죄의 길을 답습합니다. 유다는 히스기야(BC 715~687년) 이후 므낫세(BC 697~642년)와 아몬(BC 642~640년)의 통치기를 지나면서 우상 숭배가 극에 달합니다. 그러면서 유다의 마지막 선왕인 요시야(BC 640~609년)가 즉위하면서 종교 개혁을 단행하지만, 이미 백성의 삶에 깊이 뿌리박힌 우상 숭배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 유다 백성은 진정한 회개와 돌이킴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의 죄악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돌이키지 않는 유다를 향해 곧 이루어질 임박한 심판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이 심판은 과거 앗수르를 심판 도구로 사용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고대 중동의 신흥 강국인 바벨론의 막강한 군사력을 사용해 심판하겠다는 심판 예언이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다”(George Santayana, 1863~1952년). 

[관찰과 묵상]
1.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는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에 임할 두려운 심판을 어떻게 표현하나요?(11~13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뜨거운 바람’, ‘더 강한 바람’, ‘구름’, ‘회오리바람’, ‘독수리’라고 표현하며, 곧 화가 닥칠 것이고 멸망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에 임박한 재앙의 모습을 ‘광야의 뜨거운 바람’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바람은 아라비아 사막의 높은 산에서 팔레스타인 쪽으로 불어오는 ‘시로코’(Sirocco) 열풍을 빗대어 가리킨 것입니다. 이 바람이 불고 지나간 곳의 식물은 전부 타 버릴 정도로 뜨겁고 강렬한 바람이었습니다. 이 바람이 성경에서는 종종 하나님의 심판과 맹렬한 진노로 표현되곤 했는데, 호세아서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가 비록 형제 중에서 결실하나 동풍이 오리니 곧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라 그의 근원이 마르며 그의 샘이 마르고 그 쌓아 둔 바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되리로다”(호 13:15). 또한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될 바벨론 군대의 막강한 위력을, 마치 빽빽한 구름이 몰려오는 것과 같고,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회오리바람처럼 파괴적이며, 지상에 먹이를 발견한 독수리가 먹이를 가로채 가기 위해 날아오는 것처럼 빠르다고 표현합니다. 즉, 유다로서는 불가항력적이며 도저히 피할 수 없으며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심판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의 원인은 유다의 ‘악함’ 때문이고(14절),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17절). 실제로 바벨론 군대는 시드기야 제9년 10월부터 11년 4월까지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공격해 결국 함락시키게 됩니다(왕하 25:1~4). 
적용과 나눔
사랑하는 자녀를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언제, 어떻게 느꼈나요? 그때 징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교훈은 무엇이었나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많은 고난을 경험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고난을 겪는 근본적인 이유는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인간의 불순종과 교만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고난은 고난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겪은 고난에는 기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40년의 광야 생활, 70년의 바벨론 포로 생활 등 그 기간이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고난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한시적이며, 고난 뒤에는 반드시 회복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이유는 고난이라는 한계적 도구를 통해 성숙으로 나아가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고난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히 12:6). 

2. 예레미야는 자기 민족에게 임할 두려운 심판을 미리 보고 어떻게 반응했나요?(19절) 이 마음은 결국 누구의 마음일까요?
예레미야는 두려운 심판에 대해 슬프고 아프며,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다고 표현했는데, 이 마음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레미야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심판이지만, 마치 심판의 한복판에서 직접 그 심판의 멸망을 당하고 있는 사람처럼 극심한 고통과 처절한 슬픔을 느낍니다. 그 슬픔과 고통을 ‘슬프고 아프다’(19절)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의 원어적 의미는 ‘나의 창자여, 나의 창자여’입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감정이 사람의 창자 속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마치 창자가 끊어질 듯한 극한의 고통을 호소하며 슬픔과 아픔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제3자의 입장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자기 민족에 대해 가슴 아픈 예언과 선포를 해야 했기에 처절한 고통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또한 그는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19절)라고 말합니다. 이는 바벨론 군대로 인한 전쟁의 두려움으로 인해 진정할 수 없는 마음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극한의 고통과 아픔을 표현한 이유는 첫째, 유다를 침공할 바벨론의 공세가 너무나도 두렵고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 두렵고 무서운 심판에 대한 경고를 듣고도 도무지 깨닫지 못해 결국 두려운 재앙으로 멸망당할 유다 백성의 완악함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가족이나 이웃을 볼 때 내 마음은 어떠한가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누어 보세요.
예레미야는 심판 경고를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 자기 민족을 보면서 슬픔과 고통을 깊이 느끼며 애통해했습니다. 예레미야처럼, 바울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1~3). 예레미야도, 바울도 자기 동족을 향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 아픔과 고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비단 예레미야나 바울의 마음일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을 향한 간절한 사랑과 안타까움을 갖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예레미야와 바울이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동족과 민족을 위해 슬퍼하며 기도할 수 있었고,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당하면서까지 회개를 촉구하며 하나님께 돌아오길 소리 높여 외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한 영혼을 주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불씨가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은 죄에 대해 심판을 경고하시고,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두려운 심판에서 구원을 얻는 방법은 악한 길과 행위를 버리고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 완고한 자기 민족으로 인해 예레미야는 창자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며 슬퍼하고 답답해합니다. 이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을 대언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한 선지자입니다. 성도는 심판이 임박한 죄인들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긍휼의 마음으로 그들의 죄악을 끌어안고 애통하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이 제 마음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제 마음을 씻어 주소서. 아직도 우상 숭배를 버리지 못한 이들을 판단하기보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마음의 악을 인정하고 씻어 버리십시오

[예레미야 4장 11절~22절]
11절 - 그 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전할 자가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 있는 헐벗은 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라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하게 하려 함도 아니며
12절 -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
13절 - 보라 그가 구름 같이 올라오나니 그의 병거는 회오리바람 같고 그의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 하리라
14절 -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15절 -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에브라임 산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도다
16절 - 너희는 여러 나라에 전하며 또 예루살렘에 알리기를 에워싸고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부터 와서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하라
17절 -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 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했기 때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8절 - 네 길과 행위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네가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
19절 -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20절 -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장막과 휘장은 갑자기 파멸되도다
21절 - 내가 저 깃발을 보며 나팔 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
22절 -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이스라엘을 심판할 뜨겁고 강한 바람이 불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면 구원받을 것이라며, 하나님을 배반한 그들에게 재앙을 선포합니다. 전쟁과 파멸을 알리는 심판의 경보를 들은 예레미야는 어리석고 무지한 백성 때문에 탄식하며 슬퍼합니다.

1. 죄악이 부른 심판 (11~18절)
계속되는 악행은 돌이킬 수 없는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거듭된 경고에도 유다는 악을 버리지 않았기에, 참혹한 심판이 작정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임박한 멸망이 '뜨거운 바람', '더 강한 바람', '구름', '회오리바람', '독수리'로 묘사됩니다. 강렬한 심판이 조용하면서도 급하게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모든 것을 황폐화시키는 무서운 심판입니다. 백성의 악한 마음과 행실 때문에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다급한 심판의 경고가 울릴 때 구원 얻는 길은 마음의 악을 인정하고 씻어 버리는 것입니다. 악한 길과 행위를 버리고, 악한 생각이 더는 마음에 머물지 않도록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던 길에서 돌이켜 순종의 길로 나아가면 두려운 심판 중에도 살길을 만납니다.
* 심판의 경고 속에서 유다 백성이 씻어 버려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계속해서 경고 신호를 주실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2. 선지자의 애타는 마음 (19~22절)
영적 지각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경고를 두려움으로 받습니다. 유다 땅에 찾아올 재앙을 미리 본 예레미야의 마음은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합니다. '슬프고'(19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창자'를 가리키며, 이는 극심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는 전쟁 나팔이 울리고 약속의 땅이 탈취당하는 모습을 현재적 사건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선지자의 고뇌와 애타는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영적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종은 아픔 가운데서도 낙망하지 말고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악을 행하기에는 빠르나 선을 행하는 데 무지한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 계속해서 복음의 나팔을 울려야 합니다.
* 예레미야가 슬프고 아픈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교회 혹은 나라를 위해 내가 애통해하며 기도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신앙 좋아 보이는 겉모습 이면에 깊숙이 박힌 죄악을 내놓지 않는 저와 지체들과 공동체를 바라보며 애통함으로 부르짖게 하소서. 뜨거운 심판의 바람이 일기 전에 마음을 찢어 악을 씻어 내며, 선을 행하는 데 빠르고 지혜로운 사람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마음 가죽을 베어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예레미야 4장 1절~10절]
1절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네가 흔들리지 아니하며
2절 -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3절 -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4절 -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5절 -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6절 - 시온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난과 큰 멸망을 가져오리라
7절 -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나라들을 멸하는 자가 나아 왔으되 네 땅을 황폐하게 하려고 이미 그의 처소를 떠났은즉 네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게 되리니
8절 - 이로 말미암아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이는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아직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
9절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왕과 지도자들은 낙심할 것이며 제사장들은 놀랄 것이며 선지자들은 깜짝 놀라리라
10절 -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에 이르렀나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우상을 버리고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맹세하며 그분께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불같은 하나님의 진노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북방에서 가져오신 재난과 큰 멸망으로 성읍들이 폐허가 되면 유다는 낙심하고 애곡할 것입니다.

● 회개의 촉구와 심판 경고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긍휼의 기회를 얻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마음 가죽을 베는 진심 어린 회개를 하고 그분께 속하길 원하십니다. 이는 마치 이들이 조상 때부터 할례로써 하나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몸에 새겼듯,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기준을 아로새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상을 따르던 옛 삶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새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바른길로 행하면 세계 만민이 복을 누리지만,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의 진노의 불이 그들을 멸할 것입니다. '사자'(7절)는 북방에서 재난과 큰 멸망을 가져오는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하기에 낙심과 놀람과 애곡이 가득할 것입니다. 이는 지속적으로 말씀에 불순종한 삶의 처절한 대가입니다. 심판에서 벗어나는 길은 마음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삶의 진정한 변화입니다.

* 하나님께 속하기 위해 마음의 가죽을 벤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내가 형식적 회개에 그치지 않고 진심으로 회개할 일은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죄인이 살 길은 진실한 회개뿐입니다

[예레미야 3장 19절~25절]
19절 - 내가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들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들 중에 아름다운 기업인 이 귀한 땅을 네게 주리라 하였고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노라
20절 -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의 남편을 속이고 떠나감 같이 너희가 확실히 나를 속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절 - 소리가 헐벗은 산 위에서 들리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애곡하며 간구하는 것이라 그들이 그들의 길을 굽게 하며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음이로다
22절 -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23절 -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24절 -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25절 -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의 치욕이 우리를 덮을 것이니 이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청년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마치 아내가 남편을 속이고 떠남같이 배역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예레미야와 남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과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하나님께 죄를 짓고 불순종했음을 고백합니다.

1. 하나님을 속인 백성 (19~21절)
하나님은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늘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셨고,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며 떠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남편에게 정절을 지키지 않고 떠난 여인처럼 하나님 사랑을 완전히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그분이 주시는 모든 선물을 잃어버립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기던 헐벗은 산에서 결국 고통의 눈물로 간구합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 은혜를 잊고 그분을 떠나는 데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는 가장 합당하고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 늘 거하며 그분이 주시는 은혜에 자족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복입니다.
* 하나님은 그분을 '아버지'라 하고 떠나지 말라 하셨으나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나요? 나는 아버지요 남편이신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며 섬기나요?

2. 참다운 회개 (22~25절)
택하신 자녀를 향한 하나님 사랑은 그 무엇도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22절)라고 호소하십니다. 비록 불순종하고 배역했을지라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사랑으로 영원한 언약을 맺으신 백성입니다. 예레미야와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며 그분 앞에 나아와 진정한 회개 기도를 드립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조상들의 죄를 통회하며 자복합니다. 우상 숭배의 헛됨을 고백하며 구원의 소망을 하나님께만 둡니다. 그들이 욕심으로 좇았던 우상이 결국 상실과 치욕과 수치를 가져다주었음을 통감하고는 철저히 회개합니다. 회개는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열쇠입니다. 고난과 환난 속에서 죄를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하나님이 회복의 길을 여십니다.
* 헛된 우상 숭배는 이스라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었나요? 내가 속한 공동체의 모습을 바라볼 때,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입술로만 얄팍하게 회개를 늘어놓고, 제 욕심을 위해 하나님을 무시했던 삶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부끄러운지요. 고치고, 구원하리라 약속하신 하나님 아버지! 진실한 회개와 순종을 회복해 하나님을 평생 떠나지 않고 온 맘 다해 섬기는 자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돌아오라 외치시는 한없는 긍휼의 초대

[예레미야 3장 1절~18절]
1절 - 그들이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의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그에게서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남편이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아니하겠느냐 하느니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서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절 - 네 눈을 들어 헐벗은 산을 보라 네가 행음하지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3절 - 그러므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4절 -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
5절 -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
6절 -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배역한 이스라엘이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7절 - 그가 이 모든 일들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아직도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
8절 -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9절 - 그가 돌과 나무와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10절 -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1절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반역한 유다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12절 -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절 -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4절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15절 -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16절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17절 - 그 때에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그들이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18절 -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그들이 함께 이르리라


북 이스라엘이 이방 신을 섬기며 음란을 행해 하나님이 내쫓으십니다. 심판받은 북 이스라엘을 보고도 유다는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고 행음합니다.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라 명하십니다. 후일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어지고, 모든 이스라엘이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1. 창녀의 낯을 가진 백성 (1~10절)
우상 숭배는 영적 간음입니다. 북 이스라엘과 유다는 남편이신 하나님의 품을 창녀처럼 떠났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이방 신들과 음행을 저지를 때 하나님은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님은 이혼 증서를 주어 그들을 내쫓았습니다. 즉,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는 징벌을 받았습니다(왕하 15:29). 유다는 북 이스라엘의 배도와 하나님의 보응을 보고도 그 길을 답습하며 더욱 행음했습니다. 상대의 죄와 징계받는 모습을 보고도 돌이킬 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 진심으로 회개하며 돌이켜야 합니다. 그분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롬 12:2).
* 영적 간음을 행하고 패망한 북 이스라엘을 보고도 유다는 어떻게 반응했나요? 내가 반면교사로 삼을 대상은 누구며, 버릴 죄악은 무엇인가요?

2. 주님께로 돌이키는 백성의 복 (11~18절)
죄를 자복하는 회개는 회복과 소망을 가져오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보다 의로운 북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돌아오라'라고 요청하십니다.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돌이킬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시온(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자들에게 지식과 명철로 양육할 선한 목자들을 보내실 것입니다. 그때는 언약궤 중심이 아닌 다른 형태의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예배 중심지가 되고 만백성이 그리로 모여들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예배와 하나 됨'의 회복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진노를 한없이 품지 않으십니다. 우상을 버리고 남편 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회복과 은총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 자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어떤 회복을 경험하게 되나요?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라' 하시는 주님 앞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죄의 길로 행하며 번번히 믿음의 삶에 실패하는 제게 주님의 자비하심은 가장 큰 소망입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제 마음과 행동을 살펴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 가도록 도우소서. 회복이 필요한 이들을 일으키고 섬겨 주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그들과 함께 서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참사랑을 저버리고 사랑 없는 길로 행하다

[예레미야 2장 29절~37절]
29절 - 너희가 나에게 대항함은 어찌 됨이냐 너희가 다 내게 잘못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0절 - 내가 너희 자녀들을 때린 것이 무익함은 그들이 징계를 받아들이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 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31절 -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캄캄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이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아니하겠다 하느냐
32절 - 처녀가 어찌 그의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의 예복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셀 수 없거늘
33절 -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34절 - 또 네 옷단에는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 때문이니라
35절 -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의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36절 -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냐 네가 앗수르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함 같이 또한 애굽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라
37절 -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로 말미암아 형통하지 못할 것임이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랫동안 그분을 잊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피를 흘리고도 죄가 없다 하니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의지하던 앗수르와 애굽으로 인해 형통하지 못하고 오히려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1. 돌아오지 않는 백성 (29~33절)
불순종의 도가 넘으면 포악하게 대항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에 순종하지 않고 도리어 대항했습니다. 하나님이 채찍으로 자녀들을 징계하시며 그분께 돌아오길 원하셨으나, 그들은 더 포악해져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이고 핍박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소망없는 흑암의 땅이라 여기는 듯 그분께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며 무지와 교만의 죄를 범했습니다. 신부는 결혼 예물과 예복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신랑과 혼례를 치른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잊고 오히려 우상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을 꾸몄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 사랑의 관계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최고 가치로 여길 때, 하나님은 우리를 최고 신부로 만들어 주십니다.
*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징계에 어떻게 반응했나요? 죄로 인해 하나님이 징계하실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2. 형통하지 못할 백성 (34~37절)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은 이웃을 향한 불의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은 죄 없는 약자들을 학대해 불의하게 피를 흘렸습니다. 밤에 담을 뚫고 침입한 강도도 아닌 이들을 무고히 죽였습니다. 이처럼 죄의 실상이 심각한데도 이스라엘은 '나는 죄가 없다'고 외치며 자만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속히 임하지 않자 그들은 양심이 화인 맞은 것처럼 되고, 자기 합리화에 갇혀 버렸습니다. 또한 앗수르나 애굽을 의지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여기는 등 정세에 따라 의지하는 대상을 달리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들은 하나님이 잠시 들어 쓰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약한 이웃에게 불의를 행하는 사람, 매사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형통하지 못합니다.
* 이스라엘이 수치를 당하고 형통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상황의 변화와 관계없이 내가 항상 최우선으로 의지할 대상은 누구여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저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에 질책하시는 하나님! 결국 헛되고 수치만 더할 뿐인 세상 방법을 열심히 찾아다녔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외에는 제게 완전한 사랑을 주는 이가 없는데도,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갈구했던 저를 용서하시고 받아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무감각과 간사함에 이른 씻을 수 없는 죄악

[예레미야 2장 20절~28절]
20절 -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종하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에서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너는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
21절 -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22절 -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으리니
23절 - 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의 뒤를 따르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발이 빠른 암낙타가 그의 길을 어지러이 달리는 것과 같았으며
24절 -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들이 그들의 성욕이 일어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발정기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것들이 수고하지 아니하고 그 발정기에 만나리라
25절 - 내가 또 말하기를 네 발을 제어하여 벗은 발이 되게 하지 말며 목을 갈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나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 신들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하도다
26절 - 도둑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 같이 이스라엘 집 곧 그들의 왕들과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
27절 -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버지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들의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들의 얼굴은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다가 그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28절 - 너를 위하여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네가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경계 말씀을 헛되이 여기며 이방 신들을 사랑해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해방시켜 선택한 이들이 불순종해 지은 죄는 잿물과 비누로도 씻을 수 없습니다. 유다가 수치당하고 환난당할 때, 우상들은 그들을 결코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1. 완고한 백성 (20~25절)
오래된 죄악의 뿌리는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거역과 불순종은 오랫동안 반복된 뿌리 깊은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열매를 기대하며 이스라엘을 최상의 포도나무로 심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나눈 신혼 때의 사랑(2:2)을 저버리고 음행하듯 우상을 따르며 악한 종자가 되었습니다. 그 죄악이 얼마나 오래되고 깊은지 잿물이나 많은 비누로도 결코 씻을 수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더럽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죄는 자신의 실상을 보는 눈을 가려 심각한 무감각을 초래합니다. 이러한 무감각은 거룩하신 하나님 안에서만 깨어날 수 있습니다. 죄를 판단하는 기준은 자신이 아닌 오직 하나님과 말씀입니다. 죄에 민감한 정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반영합니다.

* 이스라엘이 행한 뿌리 깊은 죄악은 무엇이며, 그들이 죄에 무감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죄에 무뎌지지 않도록 내 마음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2. 헛된 경배 (26~28절)

공동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들을 통해 바르게 세워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참된 하늘 아버지를 저버리고 인격 없는 나무와 돌을 '아버지'라 부르며 섬겼습니다. 만들어진 신이 성읍 수만큼 많았고, 온 백성이 우상을 섬길 정도로 유다는 부패했습니다. 얼굴을 우상에게 향하고 하나님을 등진 이들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환난을 당하면 그제야 그들은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욕심을 따라 우상을 따르다가 환난 때만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이용하려는 것은 실로 간사합니다. 성도는 세상을 좇다가 위기에 처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이중적인 삶을 버려야 합니다.

*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우상을 섬기다가 환난을 당하면 누구를 찾았나요? 나는 환난 때뿐 아니라 평소에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나요?


오늘의 기도

'나를 속박하는 굴레' 같다며, 하나님 말씀 듣기를 거부하고 의지적으로 불순종의 길을 택했음을 자백합니다. 어떤 비누로도 씻을 수 없는 저의 더러운 죄악을 보혈로 깨끗게 하소서. 이제는 주님께로 얼굴을 돌리고, 주님께만 있는 구원을 바라오니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을 버린 삶에는 악과 고통이 따릅니다

[예레미야 2장 9절~19절]
9절 - 그러므로 내가 다시 싸우고 너희 자손들과도 싸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절 -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 이같은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라
11절 -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12절 - 너 하늘아 이 일로 말미암아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절 -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14절 -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15절 - 어린 사자들이 그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질러 그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으며 그의 성읍들은 불타서 주민이 없게 되었으며
16절 -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
17절 -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그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18절 -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19절 -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헛된 우상들과 바꾸었고,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터진 웅덩이를 팠습니다. 이에 포로가 되고 그 땅은 황폐해졌습니다.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려는 이스라엘은 징계와 책망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경외하지 않는 것이 악이요 고통입니다.

1. 백성의 두 가지 악 (9~13절)
하나님은 생명과 복의 근원이십니다. 인간 생존의 모든 필요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반역했고 영광의 하나님을 무익한 우상과 바꾸었습니다. 그들의 명백한 죄악을 말할 증인으로 하늘이 소환됩니다. 그들의 두 가지 죄는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13절). 그 무엇도 하나님을 대체할 수 없으며, 우상을 따르는 삶은 터진 웅덩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 있는 그들을 여전히 '내 백성'이라 부르시며 안타까움으로 책망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무엇보다 귀중한 보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사 33:6).
*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스라엘의 두 가지 죄악은 무엇인가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잊고 내가 터진 웅덩이처럼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을 버린 백성의 고통 (14~19절)
하나님을 떠난 삶에는 평강이 없고 고통만 남습니다. 이스라엘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저버린 결과는 엄청난 재난과 재앙입니다. 이스라엘은 종처럼 포로가 되었고, 어린 사자(앗수르)에 의해 땅이 황폐해졌으며, 성읍들은 불타서 주민들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애굽)은 유다의 정수리와도 같은 요시야왕을 죽였습니다. 위기 때에 백성은 강대국인 애굽과 앗수르를 더욱 의지해 보지만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재난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들의 죄악이 진노를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을 경외하지 않는 마음이 악이요 고통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는 마음에는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 따릅니다(잠 22:4).
* 하나님을 버림과 경외하지 않음이 결국 악과 고통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죄와 고통이 끊이지 않을 때 내가 먼저 점검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다른 곳에서 만족을 구하며 헤매다 황폐하고 마른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섭니다.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웅덩이에서 해갈하려고 했던 저를 여전히 '내 백성'이라 불러 주시는 하나님! 그 신실하신 사랑에 순복하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과의 첫사랑을 기억하라

[예레미야 2장 1절~8절]
1절 -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절 -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3절 -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절 -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의 집 모든 족속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5절 -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6절 -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 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우리가 통과하게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7절 -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8절 -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

[배경 이해하기]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활동했던 시대의 국제 정세는 앗수르가 몰락하면서 신흥 강국인 바벨론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차지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지정학적으로 메소포타미아와 애굽 사이에서 정략적 눈치를 보아야 했던 이스라엘은 친 애굽 정책을 펼쳤지만, 바벨론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했습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친 애굽 정책을 폈던 유다와 그 지도자들을 향해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목 놓아 눈물로 부르짖습니다. 바벨론의 멍에는 유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에 그는 하나님과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회개하라” 외쳤습니다. 유다의 죄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출애굽의 은혜를 베푸셨지만,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상을 섬겨 영적 타락을 가져온 것입니다. 1장에서는 예레미야의 소명(1:4~10)과 더불어 그 소명을 확증하기 위해 보이신 살구나무 가지와 끓는 가마 환상(1:11~14)에 관해 다룹니다. 2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유다가 행한 죄악의 실상이 어떠한지 전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예레미야의 입에 두시고(1:9) 그분의 마음과 계획을 전하게 하십니다. 

[관찰과 묵상]
1. 하나님이 말씀하신 ‘네 청년 때’, ‘네 신혼 때’는 언제를 가리킬까요? 하나님은 그때의 이스라엘을 어떻게 표현하셨나요?(1~3절)
‘네 청년 때’, ‘네 신혼 때’는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신의를 지키며 사랑으로 말씀에 순종하던 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그때의 이스라엘을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로 표현하십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타락과 배반을 지적하시기 전에, 이스라엘의 ‘청년 때의 인애’와 ‘신혼 때의 사랑’을 회상하십니다. 마치 방황하는 청소년기의 아이를 바라보며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이스라엘과 좋았던 시절을 기억하십니다. ‘기억하노니’(2절; 히, 자카르)는 한동안 잊고 있다가 갑자기 떠올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잊지 않고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청년의 때’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이후에 광야 생활을 하던 때입니다. 그 ‘청년의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에 대한 인애,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신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혼의 때’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때를 가리키는데,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만을 주로 섬기고 따를 것을 약속했습니다(출 19:3~6). 그 ‘신혼의 때’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는 마치 신랑과 신부 사이같이 뜨거운 사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성물 곧 첫 열매’(3절)로 삼으셨는데, 이는 주권적으로 택하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적용과 나눔
각자 하나님과의 첫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나누어 보세요. 처음 사랑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구별하시어 그분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남달리 가진 무엇 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게 하신 사건은 우리를 향하신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결코 우리의 잘남 때문이 아니라,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한 자임을 날마다 고백하며 십자가로 보여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신앙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식지 않고, 그 사랑은 우리를 죄악 된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지적하신 유다의 죄악은 무엇인가요?(5절) 제사장들, 율법을 다루는 자들, 관리들, 선지자들의 영적 상태는 어떠했나요?(8절)
유다의 죄악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헛된 우상을 따른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않았고,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관리들은 하나님께 반역하고,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이 ‘청년 때의 인애’와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신 것은 현재 유다의 모습이 과거의 모습과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는 어떤 불의함도 없으십니다. 유다가 하나님을 떠난 이유는 하나님께 무슨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그들의 욕심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청년의 때와 신혼의 때’ 받았던 사랑을 기억한다면, 결코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떠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5절) 행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헛된’(히, 헤벨)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의 숨’이라는 뜻입니다. 헛된 것은 단 한 번의 숨처럼 허무하고 무가치한 것을 의미하는데, 유다 백성이 섬긴 우상이 바로 이같이 허무하고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더럽히고 역겹게 만들었습니다(7절).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다’는 말은 먹은 것을 토해 내고 싶을 정도로 아주 혐오스럽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서 헛된 우상을 숭배해 역겹고 가증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섬겨야 마땅한 영적 지도자들인 제사장, 율법을 다루는 자, 선지자들이 오히려 바알에게 종노릇을 한 것을 하나님은 탄식하며 지적하십니다(8절). 
적용과 나눔
내 삶에서 하나님이 싫어하실 만한 죄악 된 모습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우상은 눈에 보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외에 탐욕을 가지고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시 115:4),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현대인에게 우상은 첫째,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물질주의입니다. 돈으로 일어나는 분쟁이 많고, 심지어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 다 돈을 우상시한 결과입니다. 둘째, 과학적 판단으로 규명되지 않는 것은 전부 허구로 돌리는 과학주의입니다. 예수님의 이적을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없기에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셋째, 성경적 한계를 벗어난 쾌락주의입니다. 즐거움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벗어나 쾌락에 빠지는 것은 우상 숭배의 다른 모습입니다. 물질주의, 과학주의, 쾌락주의는 현대를 사는 우리가 쉽게 빠질 수 있는 우상 숭배의 가증한 형태입니다.


* 출애굽 이후 광야 시절에 이스라엘은 신혼부부처럼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따르면서 모든 복을 스스로 가로막았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불변한데 인간의 사랑이 변하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부부 관계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도 처음 사랑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격적인 관계며,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십자가 죽음에 내어 주신 사랑입니다. 성도는 그 사랑에 신실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헛되고 가증한 세상 것들을 이제 더는 좇지 않기 원합니다. 제 삶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날마다 기억하며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함으로, 능력 있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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