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고한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담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12장 37절~50절]
37절 -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38절 -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9절 -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40절 -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41절 -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42절 -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43절 -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44절 -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절 -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46절 -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47절 -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절 -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49절 -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절 -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많은 표적을 행하셨으나 무리는 그분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관리들은 출교당할까 봐 드러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분을 보내신 이를 믿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러 오셔서 아버지 명령대로 말씀하신 예수님을 저버린 자는 마지막 날에 심판받습니다.

1.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이유 (37~43절)
믿음은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마음에 좌우됩니다.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많은 표적을 행하셨는데도 그분을 믿지 않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사야 시대의 유대인들처럼(사 6:9~10; 53:1) 완고한 마음으로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과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믿지 않음에 따른 결과는 전적으로 유대인들의 책임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마음으로 받아들였지만 공개적인 신앙 고백을 꺼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했습니다. 사람을 의식해 성경의 증언과 그것을 체험한 증인들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도 그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불신앙의 책임은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그 사람에게 있습니다.
*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도 유대인들이 믿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신앙을 드러내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2.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 (44~50절)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예수님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표적과 말씀을 통해 그분과 하나님은 하나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천명하십니다. 첫째,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기에 아들을 믿는 자는 아버지를 믿는 것이고, 아들을 보는 자는 아버지를 보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시고 오직 아버지의 명령대로만 행하십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목적은 심판이 아닌 구원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믿지 않는 자는 그에 따른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과 가르침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 가운데 나타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핍박이 두려워 신앙을 고백하지 못한 순간이 있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없어지지 않을 하나님 영광을 사모하며, 영생을 소유한 자답게 제가 믿는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심을 어디서든 당당히 말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밀알 신앙을 지닌 제자

[요한복음 12장 20절~36절]
20절 -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절 -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절 -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23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절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절 -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절 -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27절 -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절 -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29절 -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31절 -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절 -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절 -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34절 -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35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절 -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배경 이해하기]
요한복음 12장은 예수님 사역의 물줄기가 바뀌는 분수령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십니다. 대중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고, 병자를 치유하셨던 공생애 사역(마 4:23)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십니다. 유월절 한 주 전 사역은 죽음으로 나아가신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나타냅니다. 12장의 첫 번째 이야기는 향유 부은 마리아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첫 번째로 머무신 곳은 베다니(1절)입니다. 베다니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곳입니다(11장 참조). 예수님은 부활의 장소인 베다니를 통과하심으로써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님께 마리아가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발을 씻긴 것은 그녀의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위를 자신의 죽음을 교훈하실 기회로 삼으십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어린 나귀를 타신 왕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즉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고, 연약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오셨지만, 겸손으로 죽음을 감당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영광된 하늘 보좌의 왕위를 얻으셨습니다.   

[관찰과 묵상]
1.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실 때가 왔음을 아시고, 자신의 마지막 사명을 무엇에 비유해 말씀하셨나요?(23~24절)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비유로 자신의 마지막 사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23절)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영광 얻으심은 헬라인들이나 제자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방식은 ‘밀알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밀알의 원리로 설명하십니다. 그분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사해 주시고(땅에 떨어져 죽음),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모든 인류에게 새 생명을 주십니다(많은 열매를 맺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첫째, 십자가 죽음을 통해 많은 영혼이 죄와 사망과 사탄의 압제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막 10:45). 둘째, 부활을 통해 인류에게 참생명을 주시고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기 위함입니다(1:12). 그러나 먼저는 죽음이고, 그 후가 부활의 영광입니다. 영광은 십자가를 통해서 옵니다. 진정한 영광은 땅에 떨어져 죽은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 가장 잘 설명됩니다.
적용과 나눔
죽음으로 열매 맺는 밀알의 원리를 삶에 적용한 경험을 나누어 보세요. 하나님은 희생의 삶을 산 성도에게 어떤 은혜를 주실까요?

밀알의 원리를 일상에 적용하며 살 때 우리는 예수님의 번민, 하나님의 기대, 예수님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고, 또한 우리를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칭찬을 듣습니다. 예수님께도 밀알이 되어 희생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깊이 탄식하시며 번민과 불안과 갈등을 표현하셨습니다(27절). 밀알의 원리는 자연법칙이지만, 타락한 본성을 가진 자기중심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부활 생명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밀알의 원리로 열매 맺는 것이 우리에게도 가능해졌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25절). 이 역설적 진리는 자기(와 자기 가족)의 생명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행하는 본성적이고 이기적인 행위와 생각을 내려놓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칭찬하십니다(26절). 밀알 되는 일이 쉽지 않지만, 예수님의 생명을 이 땅에 펼치는 일임을 기억하고 기꺼이 순종할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2. 예수님이 땅에서 들리심(십자가 죽음)이 가져올 두 가지 결과는 무엇인가요? (31~32절)
예수님이 땅에서 들리심(죽음)으로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그분께로 이끄십니다.
예수님이 땅에서 들리심(십자가 죽음)으로 첫째,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날 것입니다(31절).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요일 3:8).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탄의 권세를 멸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이 광야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는 예수님께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6)라고 했습니다.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권세가 선악과 사건으로 인해 아담에게서 사탄에게 넘어갔습니다. 십자가 대속 과업을 완수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에게 탈취되었던 권세를 영원히 획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통치권을 믿는 자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통치권을 상속받은 상속자입니다(롬 8:17). 둘째, 모든 사람을 그분께로 이끄실 것입니다(32절). ‘땅에서 들린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인류의 죄를 대속하심과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셔서 보좌에 앉아 통치하심을 가리킵니다(엡 1:20~22). ‘들리심’의 목적은 믿음과 영생입니다(3:15).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적용과 나눔
복음의 능력은 나를 어떻게 자유롭게 했나요? 그 복음의 능력으로 주님께 이끌 영혼은 누구인가요?

예수님이 땅에서 들리실 때 그분은 모든 사람을 그분께로 이끄실 것입니다. 한 알의 밀로서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내주신 예수님의 죽음에는 이처럼 놀라운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복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가진 사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 복음을 소유한 사람은 영혼을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 자체셨기에 영혼을 이끌어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일에 쓰임 받기 원한다면, 먼저 나부터 묶인 것들에서 풀리고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또한 나부터 깨끗해지고 거룩해져서 나를 통해 복음의 능력이 막히지 않고 흘러가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능력보다 상황이 커 보일 때 혹은 예수님을 믿어도 여전히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듯한 나를 볼 때 낙망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앞에서 괴롭고 당황스럽고 슬프고 두려우셨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을 잊지 않으시고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부활의 권능을 믿으며 나아가면,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생명과 능력이 세상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처럼,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의로 고난의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 아들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것은 이처럼 자발적 순종으로 십자가 길을 걷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까지도 내어 주는 한 알의 밀이 되어 십자가를 자랑하며 예수님의 길을 묵묵히 따를 때 많은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인생이 됩니다. 십자가는 수치스러운 패배가 아니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전 1:18). 십자가 길은 참된 기쁨과 생명과 열매를 얻는 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십자가 길을 외면한다면 그분과 함께하는 영광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하나의 밀알 되신 예수님의 영성을 제게 부어 주소서. 십자가를 붙들고 부활의 권능을 믿으며 나아갑니다. 밀알 신앙의 소유자가 되어 예수님의 생명과 능력을 이웃에게 풍성히 전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십자가는 수치가 아니라 영광입니다

[요한복음 12장 20절~36절]
20절 -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절 -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절 -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23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절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절 -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절 -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27절 -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절 -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29절 -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31절 -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절 -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절 -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34절 -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35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절 -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 얻을 때가 왔고 한 알의 밀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시기를 예수님이 기도하시니 하늘에서 소리가 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이끌겠다 하시며,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1. 십자가와 제자도 (20~26절)
예수님의 죽음은 비극이 아닌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헬라인 유대교 신자들이 자신을 찾아오자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23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의 때를 영광의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명을 완수할 시간이 도래한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은 유대인과 헬라인을 포함해 모든 인류를 구원할 영광스러운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열매 맺는 밀알 비유를 통해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십니다. 이 비유는 일차적으로 예수님 자신을 빗댄 것이지만, 결국 모든 제자가 따라야 할 길입니다. 신앙은 십자가를 따르는 제자도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 길을 따르는 자를 하나님이 존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때가 왜 영광의 때일까요? 제자로서 십자가를 따르기 위해 내가 힘써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2. 십자가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의 고뇌 (27~36절)
십자가는 가장 고통스러운 사형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많지 않습니다. 수난사화인 18~19장에도 공관복음과 달리 겟세마네 기도 장면 없이 예수님이 적극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12장 27절을 보면,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의 고뇌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예수님은 십자가를 면하게 해 달라고까지 하나님께 간구하십니다. 하지만 이 고뇌는 십자가 사명에 대한 확신으로 끝납니다. 예수님은 정치적 왕인 메시아를 고대하는 무리의 기대와 달리, '이 세상의 임금' 곧 악의 세력을 십자가로 무찌르는 메시아십니다. 또한 모든 사람을 전인적으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분입니다.
* 십자가를 지시기 전의 고뇌를 예수님은 어떻게 이기셨나요? 나는 예수님을 어떤 메시아로 인식하며 따르고 있나요?

오늘의 기도
이 땅에서 잘되고 높아지는 것이 신앙의 최종 목적이자 결과라고 생각했던 저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고난의 십자가와 영광의 부활은 동전의 양면 같음을 깨닫습니다.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며 자기희생과 헌신으로 생명의 열매를 맺도록 제게 은혜와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성령님이 깨우쳐 주신 '평화의 왕' 예수님

[요한복음 12장 12절~19절]
12절 -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절 -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절 -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절 -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절 -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17절 -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18절 -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19절 -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명절에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이에 큰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나가 "호산나...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치며 그분을 맞이합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표적에 대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온 세상이 예수님을 따른다고 서로 말합니다.

1. 어린 나귀를 타신 왕 (12~16절)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올바로 깨우치려면 성령님의 조명하심이 필요합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무리는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훗날 요한은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평화의 왕'으로 기록합니다(슥 9:9 참조). 사실 제자들도 당시에는 무리처럼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정치적 왕이요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죽음 이후 이 땅에 오신 성령님으로 인해 그들은 예수님을 승전의 왕이 아닌 '평화의 왕'으로 바르게 깨닫게 됩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올바로 알고 기억(해석)하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14:26). 성경과 예수님을 바르게 깨닫기 위해 항상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신 후에 제자들이 깨닫게 된 것은 무엇인가요? 성령님의 조명하심으로 내가 올바로 깨닫게 된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무리의 증언, 무리의 영접 (17~19절)
증언은 먼저 어떤 사실을 보거나 체험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논리와 수사학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헬라 철학자들의 방식과 다르고, 율법 해석의 전통을 따라 판단하는 유대인들의 방식과도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큰 무리가 환영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목도한 이들의 증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을 율법 지식으로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라며 탄식합니다. 증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복음 전파 방법입니다. 성도는 입술의 고백과 행동하는 삶으로 예수님을 담대히 증언해야 합니다.
* 큰 무리가 예루살렘에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담대히 증언할 대상은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제가 환호하며 예수님을 찬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직하게 돌아봅니다. 세상의 고정 관념을 깨뜨리고 겸손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사망에 매여 있는 인간에게 참된 구원을 주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증언할 수 있도록 제 영을 밝혀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예수님의 십자가를 준비하는 마리아의 향유 부음

[요한복음 12장 1절~11절]
1절 -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절 -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절 -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절 -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절 -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절 -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절 -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9절 -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절 -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절 -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유월절 엿새 전 나사로 집에서 예수님을 위해 잔치할 때 마리아가 순전한 나드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습니다. 가룟 유다는 왜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았느냐 합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가만두어 그분의 장례 날을 위해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
사람은 대개 자기 생각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판단합니다. 나사로를 살려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잔치를 베푸는 자리에서 마리아는 예수님 발에 당시 노동자 1년 치 임금에 행당하는 값비싼 향유를 붓습니다. 이에 가룟 유다는 그 비용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며 마리아의 행위를 허비로 규정짓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이렇듯 공리(功利)를 내세웠지만, 그의 숨은 의도는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시점입니다. 시신에 바르는 향유를 십자가 사건 일주일 전에 예수님께 부은 행위는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를 미리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고 고귀한 것입니다. 성도는 다른 사람의 선한 행위를 쉽게 판단해 오해하거나 정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진의를 파악해 상황에 맞게 이해해야 합니다.

*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행위가 가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상황과 의도에 맞는 판단을 하기 위해 내가 구할 것은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인간의 악한 계략조차 하나님 섭리를 이룹니다

[요한복음 11장 45절~57절]

45절 -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46절 -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47절 -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절 -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절 -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절 -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절 -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절 -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53절 -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54절 -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55절 -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56절 -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57절 -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많은 표적을 행하는 예수님을 어떻게 할지 의논합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 말합니다. 이날부터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하고, 예수님은 유대인 중에 드러나지 않게 다니십니다.

1. 표적을 보고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45~46절)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의 현장에 함께 있어도 믿음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표적을 행하신 이후에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중요하게 기록합니다. 표적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믿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마지막 표적의 경우에도 이를 보고 믿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바리새인들에게 고자질하러 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표적과 말씀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임을 계속해서 알리셨지만, 마음이 바르지 못한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기록된 말씀을 통해, 크고 작은 삶의 기적을 통해 주님을 나타내 주시지만 믿음으로 응답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신 표적을 보고도 왜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표적을 볼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2. 인간의 계략과 하나님의 섭리 (47~5절)
인간의 계략이 아무리 정교해도 하나님 뜻을 막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신 표적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큰 화젯거리였습니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 유대인 당국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계략을 꾸밉니다.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로마인들이 성전과 유대 백성을 유린할 수 있다고 의견을 모읍니다. 산헤드린의 대표인 대제사장 가야바는 민족을 위한 희생양 계략을 말합니다. 한 사람을 희생시켜 백성을 구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뿐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죽으심으로 모든 믿는 사람이 한 백성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놀랍게도 이 계략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몸을 피해 때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악한 계략조차 그분 뜻을 이루는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제안은 하나님이 이루실 일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악한 계략조차 합력해 선을 이루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간구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일들을 믿음으로 받는 선한 마음의 소유자 되기 원합니다. 악이 득세하고 복음이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모든 것이 하나님 섭리 안에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제 삶을 통해 하나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기도로 심고 믿음으로 행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죽은 사람을 살리는 예수님의 새 창조 행위

[요한복음 11장 38절~44절]
38절 -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절 -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절 -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절 -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절 -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무덤을 막은 돌을 옮기라고 명하십니다. 죽은지 나흘 되어 냄새가 난다는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믿으면 하나님 영광을 볼 것이라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십니다. 항상 자신의 말을 들으신 아버지께 감사하신 후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그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나옵니다.

1.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 (38~40절)
믿음은 다 이해하지 못해도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몸으로 나타나시기 전에 누구도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또 예수님이 나사로를 부활시키시기 전에 누구도 그가 살아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나는 시체가 벌떡 일어나리라고는 마르다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믿음의 내용은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그분을 신뢰하면 놀라운 역사를 목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창조자로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피조물을 소생시키실 능력도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창조자 예수님은 부활의 주요,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 '네가 믿으면'(40절)에서 예수님이 요청하시는 믿음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나에게 주님이 행하실 새 창조의 영광을 기대하며 신뢰할 일은 무엇인가요?

2.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41~44절)
창조라는 말에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원래 상태에서 벗어난 것을 되돌린다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창조자요 치유자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치유 사역을 행하십니다. 창조자 하나님은 창조자 아들의 말을 항상 들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창조자임을 믿게 하기 위해 새 창조를 행하십니다. 예수님은 천지 창조 때와 같은 방식인 '말씀'(명령)으로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살아나 다니라)라는 예수님 말씀은 세상에 다니면서 피조물을 다스리라는 창세기의 문화 명령을 연상시킵니다. 제자의 사명은 예수님의 새 창조 사역을 전파하고 이어 가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실 때 누구와의 관계 속에서 그 기적을 행하셨나요? 내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감당할 회복 사역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무한하신 주님의 권능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제 이성과 상식, 현실의 돌을 걷어 내게 하소서.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할 수 있도록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부어 주소서. 믿는 자만이 볼 수 있는 주님의 놀라운 영광을 체험하고 전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성도는 현재도 미래도 부활 생명을 누립니다

[요한복음 11장 17절~37절]
17절 -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절 -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절 -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절 -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절 -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절 -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절 -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절 -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절 -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절 -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절 -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절 -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절 -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절 -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절 -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절 -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절 -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절 -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절 -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예수님이 오시니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맞으며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으리라 말합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인 자신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리라 하시며,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십니다.

1. 마르다와 대화하시는 예수님 (17~27절)
부활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표지이자 소망의 근거입니다. 유대인들의 부활 신앙 이해는 마지막 부활 때가 되어야 다시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부활 신앙의 참의미를 알려 주십니다. 부활 신앙은 마지막 때의 부활을 믿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생명이 역사해 현재 이 땅에서 부활의 삶을 사는 것까지도 포함합니다.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어 그 생명을 받으면 이 땅에서 생명의 삶을 살고, 또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이러한 부활 신앙이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마르다는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믿는다는 신앙 고백을 합니다(마 16:16).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잠시 잠든 것이며(11:11)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말씀해 주신 부활 신앙은 어떤 것인가요? 내가 날마다 생명을 누리고 부활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 마리아와 대화하시는 예수님 (28~37절)
예수님은 신적 능력을 행하시는 분임과 동시에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에 관한 일이 자신이 행할 마지막 표적임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조문하는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도 격한 감정을 표출하십니다. 본문에는 상대방의 슬픔을 공감하는 강한 감정 동사들이 사용됩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극도의 슬픔을 느끼셨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주체할 수 없이 힘든 마음이 되셨으며('불쌍히 여기사'), 눈물을 흘리셨습니다(33, 35절). 사명 수행은 피도 눈물도 없이 사명 완수만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공감하고 아파하고 눈물 흘리며 마음으로,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왜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하나님의 일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나는 영혼들의 아픔에 얼마나 공감하고 아파하며 눈물 흘리나요?

오늘의 기도
예기치 않은 시련과 슬픔에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이라는 불신앙의 탄식과 원망을 쏟아냈던 저를 용서하소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 불신의 죄에 물들어 죽어 가는 제 삶과 가정, 교회를 비통한 눈물로 살펴 주소서. 부활의 믿음을 고백하며 살아나도록 도우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요한복음 11장 17절~37절]
17절 -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절 -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절 -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절 -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절 -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절 -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절 -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절 -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절 -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절 -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절 -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절 -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절 -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절 -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절 -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절 -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절 -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절 -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절 -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배경 이해하기]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에 나오지 않는 예수님의 일곱 가지 자기 선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나는 문이다’(10:7, 9), ‘나는 선한 목자다’(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나는 참포도나무다’(15:1, 5). 이중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예수님이 부활과 생명 되심을 나타내는 일곱 번째 표적입니다. 이 표적이 다른 여섯 표적과 다른 점은 나사로의 부활이 바로 예수님 자신의 부활을 예표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부활은 장차 모든 성도가 경험할 사건임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적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베다니입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2~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예루살렘성에서 살 수 없었던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살던 지역입니다. ‘나사로’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도우셨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 말씀처럼, 나사로의 병을 통해 하나님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11:4).

[관찰과 묵상]
1.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 나사로는 무덤에 장사된 지 며칠이 지났나요?(17절)

예수님이 도착하셨을 때 나사로가 무덤에 장사된 지 이미 나흘이 되었습니다.
나사로가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요한이 처음 세례 베푼 곳, 1:28; 10:40)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에 관한 소식을 들으시고는 곧바로 베다니로 가신 것이 아니라 이틀을 더 머무신 후에 가셨습니다(11:6).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 이미 나사로는 죽어 장사를 지낸 지 4일이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기후는 고온다습해 사람이 죽으면 보통 당일에 매장하거나 아무리 늦어도 3일 이내에 매장했습니다. 그런데 종종 매장하지 않고 시체를 그대로 두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 관념상 죽은 후 사흘 동안은 그 영혼이 시신을 떠나지 않아 소생할 수도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이 되었다는 것은 그의 죽음이 완전한 죽음, 최종적인 죽음으로 확증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나사로의 부활은 완전한 죽음에 들어간 자를 살리심으로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을 확증한 사건이 됩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된다는 예수님 말씀이 이루어집니다(11:4).
적용과 나눔
불가능하다고 여겼는데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역전된 일이 있나요?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신뢰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해도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혹은 소원이 좌절될 때를 종종 경험하곤 합니다. 반대로 다 끝났다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 역전되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좋은 결과를 맞이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신앙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계획하심을 끝까지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또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보다 높고 크십니다(사 55:8~9). 우리는 이 같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전능하시고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결코 그분의 자녀들을 악한 길로 이끄시지 않습니다. 내 생각과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불신하는 것은 죄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틈타 공격하려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다 끝났다고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게 하는 것 역시 사탄의 전략입니다. 참신앙은 매 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끝까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기도하며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나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을 보이셨나요?(33~35절)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베다니에 도착하신 예수님은 마르다 마리아 자매를 만나시고 드디어 나사로의 무덤 앞에 이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35절). 그 이유는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는 마리아와 마르다 때문이었고, 또 나사로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33~34절).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 것을 요한이 특별히 기록한 이유는 예수님의 참사람 되심, 즉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사람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느끼는 슬픔의 감정을 동일하게 느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동정심에서 나오는, 감정이 북받치는 눈물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소망하던 메시아는 눈물 흘리는 분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또한 헬라인들이 만들어 낸 신화에서 묘사되는 신들 역시 인간에 대한 동정심이나 사랑이 전혀 없는 모습의 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하시고 마음을 다해 인간을 동정하시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고,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은 형식적인 눈물이 아닙니다.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눈물이었습니다.  
적용과 나눔
내가 슬퍼할 때 예수님도 함께 슬퍼하시며 내 연약함을 동정하십니다. 이러한 사실이 내게 어떤 소망을 주는지 나누어 보세요.

최근 많은 이들이 앓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증상이 있습니다. 바로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울증 환자의 생각과 말에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환자는 위로를 받고 우울증의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누군가 나를 이해해 주고, 나와 함께해 주며, 나와 함께 울어 준다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 삶에 대해 그 누구보다 충분히 공감해 주시고, 넘치도록 이해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는 그분이 우리가 겪는 슬픔과 아픔 이상의 고통을 경험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히 4:15~16). 한편 성령님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롬 8:26). 살다 보면 말할 수 없는 깊은 탄식과 슬픔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때 그 슬픔을 묵상하며 깊이 빠지지 말고 우리를 충분히 동정하시는 주님 앞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성도에게 주신 특권이자 은혜입니다.


*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모두 지니신 분입니다. 신성을 지니신 예수님은 생명의 주요 전능하신 하나님이기에 죽은 나사로를 말씀으로 살리십니다. 인성을 지니신 예수님은 인생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이기에 나사로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울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고통과 감정을 이해하시고 공감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심에도 우리가 겪는 슬픔과 아픔 이상의 고통을 친히 경험하신 분입니다(히 4:15~16). 전능하신 하나님 아들이 인간의 모든 슬픔과 아픔을 공감하시는 사랑의 주님이라는 사실은 우리 삶에 가장 큰 위로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제 모든 상황과 고통을 이해하시고 공감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힘을 얻습니다. 제 생각과 경험으로 주님 능력을 제한해 생각지 않고,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게 하실 주님을 끝까지 신뢰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제자들의 믿음을 위해

[요한복음 11장 1절~16절]
1절 -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절 -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절 -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절 -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절 -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절 -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절 -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절 -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절 -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절 -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절 -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절 -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절 -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절 -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절 -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예수님이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전언을 들으십니다. 예수님은 그 병이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 아들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제자들에게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십니다. 이는 나사로를 살리시고 제자들로 믿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 (1~4절)
사람들은 대개 어떤 사건의 이면을 보지 못하고 표면만 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이 선천성 맹인이면 그것이 누구의 죄 때문에 생겨났나 논쟁하고, 중병에 걸리면 그의 치유보다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은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발견하십니다.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것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 즉 자신이 영광받을 일임을 아십니다(2:24~25). 예수님은 사건의 표면이 아닌 이면을 보십니다. 우리도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의 현상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하나님 뜻이 무엇일지 늘 생각해야 합니다.
*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이를 어떤 일로 여기시나요? 지금 내 주위에 일어나는 사건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일까요?

2. 예수님의 행동 동인 (5~16절)
많은 사람의 행동 동인(動因)은 개인의 이익입니다. 예수님의 행동 동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본문에 드러난 예수님의 행동 동인은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죽이려 한 사람들이 있는 유대 지역으로 기꺼이 다시 가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시간을 상징하는 '밤'이 아니라 그분이 인도하시는 '낮'에 다니면 된다고 하시며 그곳으로 담대히 가십니다. 또 병든 나사로를 바로 고치러 가시지 않는데 그 이유는 죽은 그를 살려 자신이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자임을 계시하시고, 제자들이 이를 믿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행동의 동인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람들이 깨닫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 예수님은 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곧바로 가지 않으셨나요? 예수님의 행동 동인을 본받아 오늘 내가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숨 쉬기조차 힘겨운 절망과 고통의 순간에도 가장 합당한 때에 제 삶에 걸어오시는 주님을 기다리게 하소서. 사랑을 끝까지 거두지 않으시고 제 믿음을 더욱 온전하고 강건하게 하실 주님을 신뢰합니다. 사나 죽으나 주님 영광을 위해 저 자신을 아낌없이 드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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