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아하스에 대한 이사야의 메시지 7:1-9
선지자 이사야는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6:1) 위임을 받았다. 웃시야가 죽은다음 그의 아들 요담은 16년동안 통치를 잘하였다. 그의 통치기간동안 이사야가 하나님께 명령받은대로 예언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책에서는 그때 한 예언이 나타나있지 않다. 제일 처음에 나오는 예언은 요담의 아들인 아하스때에 한 것이었다.
(1)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가 예루살렘을 치려는 무서운 계획을 꾸몄다. 이들은 전에도 유다를 급습했었다(왕하 15:37). 이제 아하스가 통치한 2,3년째 되던 해에 그들은 유다를 치려고 동맹을 맺었다. 이하스가 자기목숨이 위태로운 것을 알고서도 우상숭배와 함께 통치를 시작했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람왕의 손에 또 이스라엘왕의 손에 붙이셨다'(대하 28:5). 이 승리로 의기양양해져서 그들은 예루살렘을 포위공격하려고 올라갔다.
(2) 아하스와 그의 신하들은 이음모에 대한 소식을 듣자 크게 두려워하였다. 아람과 에브라임이 유다를 치려고 동맹하였다는 소식이 '다윗 집에 들렸다'(2절). 아람과 이스라엘 군대가 출전하였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하스의 마음과 그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다에 흔들림같이 흔들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이렇게 두려워 한것은 죄책감때문이며 믿음이 약한 탓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적으로 삼았기때문에 어떻게해야 하나님과 친구가 될수 있는지를 몰랐다.
(3) 이사야는 아하스가 다윗의 자손이며 유다의 왕이므로 그를 격려해주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나님이 잊혀져서는 안될 그의 선조때문에 그리고 버려져서는 안될 그의 백성들때문에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그의 어린아들과 함께 아하스를 만나라고 명령하셨다. 그이유는 그의 아들의 이름, 곧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라"는 뜻의 '스알야숩'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하나의 설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아들은 포로로 잡혀간 하나님의 백성들중 남은 자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그렇게 불렸는데 그이름은 그들이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켜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윗못 수도끝'에서 아하스를 만나라고 가르쳐주셨다. 그곳은 아하스가 물이 흘러 내려가지않도록 성에도 모아두기위해 급수시설을 개조하는 법을 궁리하고 있던 곳이었거나(22:9-11;대하 33;3,4), 성의 방어공사를 위해 필요한 지시를 내리고 있던 곳이었다. 하나님은 이사야의 입에 말씀을 주셨다. 그렇지않았더라면 이사야는 그 악한 자에게 좋은 메시지를 어떻게 전해야할 줄을 알지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우시기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선지자는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책망해야 했다(4절).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용기를 내고 담대하라." 이사야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하라고 가르쳐야 했다. 두려움에 싸인 아하스의 마음에는 그원수들이 어느 한쪽도 상대할수 없는 강력한 두 군주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 그들은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라. 그들은 불덩이처럼 심히 노하며, 불타는 나뭇가지들이 합쳐지면 더욱 맹렬히 타오르듯이 동맹을 함으로써 서로를 더욱 악하게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그들은 단지 연기나는 부지깽이, 곧 이미 다 타버린 연기나는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라. 그들은 힘을 다썼으므로 너희는 그들을 정복하고 짓밟을수 있느니라." 선지자는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치려는 이 오만한 동맹자들의(그들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였다) 당시 계획이 좌절되어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시켜야 했다(5-7절). 유다는 그들에게 전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었다. 그들에게는 아하스와 다툴만한 이유가 없었지만, 아무런 까닭도 없이 그들은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곤하게 하자'고 말했던 것이다. 그들은 유다 왕국을 둘로 나누어 한쪽은 이스라엘왕이, 다른 한쪽은 아람왕이 차지하게 될것이라고 기대한다. 그 두왕은 '다브엘의 아들을 그중에 세워 왕을 삼고자 하였다.' 그가 아람 사람인지 이스라엘 사람인지는 확실히 알수 없다. 그들은 자기들이 목적을 달성할 것이라고 아주 굳게 믿었기때문에 먹이를 잡기도전에 그것을 나누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시도가 헛될 것이라고 친히 말씀하신다(7절).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 그들은 그들의 영토를 확장하지도 못할 것이며 더이상 계속해서 정복해 나가지도 못할 것이다.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요(8절). 르신은 이사실을 자랑한다. 그것을 그로하여금 만족하게 할것이다(8절). '에브라임의 수도'는 오랫동안 '사마리아'였고, 이때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였다. 이들은 그들 자신의 땅을 알게될 것이다. 즉 그들의 경계는 고정되어 있기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지나 유다의 성읍들을 정복하지 못할 것이며, 예루살렘은 더더구나 삼키지 못할 것이다. 두 원수중에 더악하고 뻔뻔스러운 적인 에브라임은 곧 완전히 뿌리채 뽑힐 것이며, 다른 백성들의 땅을 차지하기는커녕 자기 땅조차 유지할수 없게될 것이다. 그들이 멸망하게 되어있고 지금 거의 멸망 상태에 빠진 그들의 이웃나라 사람들을 멸망시키려고 한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사야는 그들이 굳게 믿을수 있도록 강력히 권고해야 했다(9절). 만일 너희가 믿지아니하면 정녕히 굳게서지 못하리라. "너희에게 한말들이 고무적인 것이라해도 너희가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고 하지않는한 그말씀들은 너희에게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라."

Ⅱ. 하나님이 보이시는 한 징도 7:10-16
(1)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아하스에게 한가지 은혜로운 제안을 하신다. 즉 그것은 아하스가 한가지 징조를 구하게되면 그것으로 앞의 예언들을 확증하시려는 것이다(10,11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징조를 구하되.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는 감각의 세계에서 살고있어서 증거들을 요구하기 쉽다는 것도 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룩한 표시와 징후들로써 우리에게 증거들을 베풀어오신 것이다. 하나님이 악하고 감사하지 않는 자에게조차 얼마나 자비롭게 대하시는가를 보라. 아하스는 기드온이 양털을 가지고서 징조를 구했듯이(사 6:37) 하나님의 징조를 구하라고 명령을 받았다.
(2) 아하스는 이 은혜로운 제안을 무례하게 거절한다(12절).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가 징조를 구하려고 하지않은 이유는 앗수르인들을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의 군대와 신들의 도움을 의지하였기때문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는 전혀 신세를 지려고 하지않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위선적인 이유를 꾸며댄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3) 선지자는 아하스와 그의 신하들이 예언을 멸시한데 대해서 책망한다(13절). "너희가 압제로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며, 또한 하나님께 무례하게 굴어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너희는 선지자들을 모욕하면서도 단지 너희와 같은 사람들을 무시한다고만 생각하고, 그들을 사자로 보내신 하나님 자신을 모욕한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느냐?"
(4)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징조를 보여준다(14절). 그것은 이스라엘과 다윗의 집에 하나님의 선의를 나타내는 징조였다. "너희 민족에게서, 너희 가문에서 메시야가 태어나리라. 또 너희에게 그축복이 있는한 너희가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 너희는 메시야가 너희가운데서 태어나리라는 말을 들어왔도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그이상의 소식을 전해줄 것이라. 그소식은 처녀에게서 아들이 태어나리라는 것이라. 이것은 그가 지니고 세상에 태어날 그의 신적인 능력과 신적인 순결성을 나타내주는 것이라." 이 징조는 백년이나 지난 다음에 성취될 것이었지만, 다윗의 집에는 큰격려가 되는 징조였고,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의 말이었다. 메시야는 그의 영광스런 이름속에 포함되어져 있는 영광스런 사명을 띤 분으로 소개된다. 그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이라. 즉 하나님이 이세상에 계시며, 우리와 맺으신 언약안에서 우리와 화목하게 지내시리라." 이 예언은 사람들이 메시야를 '예수,' 곧 '구주'라고 부를때 성취되었다(마 1:21-25). 만일 그가 임마누엘로 계시지 않았다면 다시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지 않았었더라면 그는 예수, 곧 구주가 되실수 없었다. 약속의 씨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는 임마누엘이 될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다는 이 말로인하여 위로를 받게될 것이라(8:10). 또한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다'는 말은 너희 땅이 임마누엘의 땅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이로인하여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될 것이라"(8절). 다윗 집은 마음이 흔들리지 말며(2절), 유다는 그들이 다브엘의 아들을 세울까 염려하지 말라(6절). 왜냐하면 아무것도 임마누엘이 되실 다윗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막지못할 것이기 때문이라." 우리가 곤경에 처해있을때 가장 큰위로를 주는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것들이다. 곧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안에서 받은 유익에서,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기대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자신에게서 오는 것들이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더많은 사실이 예언되었다(15절). 그는 참으로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며, 다른 아이들처럼 양육을 받고 자라게될 것이다. 본문에 특별히 지금 유다를 두렵게하는 이 두왕이 신속히 파멸하리라는 또다른 징조가 있다(16절). "이 아이(이구절은 이렇게 번역되어야 한다), 곧 지금 내가 안고 있는 이 아이는 임마누엘이 아니라 선지자의 아들은 스알야숩이라."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줄 알기전에. "이 아이가 서너살이 되기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왕' 베가와 르신의 '땅이 폐한바 되리라' 곧 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군들이 두왕에게 버림을 당할 것이라." 이 예언은 완전히 성취되었다. 예언이 있은지 2,3년후에 호세아가 반역을 일으켜 베가를 죽였고(왕하 15:30), 그전에 앗수르왕이 다메섹을 쳐서 취하고 르신을 죽였다(왕하 16:9). 그런데 그당시에 즉각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즉 베가와 르신이 사로잡아간 포로 20만명이 만군의 여호와의 신의 역사로 되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의미의 스알야숩이란 이 기적적인 귀환을 가리키는 것임에 분명하다(참조. 대하 28:8-15). 이 아이의 예언적인 이름이 이렇게 성취될 것처럼 그 아이에 관해 덧붙여진 이사실도 틀림없이 성취될 것이다. 아람과 이스라엘은 그들의 두왕을 빼앗길 것이다.

Ⅲ. 유다에게 닥칠 시련 7:17-25
다윗 집의 한가지(a branch)로서의 아하스에게 위로의 약속이 있은후 이어서 다윗 집에 타락한 가지로서의 그에 대한 두려운 경고가 따른다. 그의 죄악이 '막대기로 다스려질' 것이다.
(1) 경고된 그심판은 왕자신과 그백성들 그리고 왕가, 곧 왕의 모든 '아비 집에' 임할만큼 크다(17절).
(2) 이심판의 도구로 쓰이는 원수는 앗수르왕이다. 아하스는 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군을 대항하기위해 전적으로 앗수르왕을 의지하여 도움을 구했다(왕하 16:7,8).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가 하나님대신 의지했던 앗수르왕이 오히려 그를 치는 채찍이 될것이라고 위협하신다. 앗수르왕은 이후로 오랫동안 유다를 괴롭혔다. 다음 몇가지 점을 살펴보자.
1) 침략자들에게 내려진 호출(18절) : 여호와께서 파리와 벌을 부르시리니(참조. 5:26). 파리나 벌처럼 하찮게 보이고 쉽게 뭉개질것 같은 적들도 하나님이 쓰실때는 젊은 사자처럼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것이다.
2) 그들이 땅을 차지함(19절) : 유다는 전혀 그들을 저항하지 못했던것 같다. 그들은 전혀 어려움없이 밀고 들어와서 거친 골짜기에 앉았다. 그곳은 주민들이 파리와 벌들의 침입을 받았을때 버리고 도망간 곳이다. 그들은 파리떼와 벌떼처럼 낮은 땅에 내려와 앉을 것이며, 벌들이 종종하는 것처럼 바위틈에 숨어 자신들의 요새를 굳게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공공연히 가시나무와 덤불이 있는 곳마다 나타남으로써, 자신들이 무서운 존재임을 알릴 것이다. 그래서 그땅이 온통 그들로 뒤덮일 것이다.
3) 커다란 황폐가 있을 것이며, 그땅의 인구가 전체적으로 줄어들 것임(20절) : 주께서...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 하나님이 모든것을 쓸어버리실 것이다. 하나님은 아하스가 자기를 돕도록 고용한 것을 가지고 그를 파멸시키는 도구가 되게 하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여호와의 팔보다는 그들이 의지한 사람의 팔로 매를 맞는다.
4) 이 전체적인 인구감소의 결과 : 가축들이 다 죽을 것이기때문에 사람들은 보잘것없는 가축을 건지게될 것이다(21절). 간신히 자기 몫으로 어린암소 한마리와 양 두마리를 갖게될 것이다. 남아있는 극히 적은 가축들은 넓은 땅에서 풀을 뜯어먹게 됨으로 충분한 뻐터를 만들어낼만큼 '젖이 많을' 것이다(22절). 또한 사람들이 적기때문에 어린암소 한마리와 양 두마리가 내는 젖은, 한때 종들을 부리고 많은 젖을 소비하는 한가족 전체를 먹일수 있을만큼 풍부했다. 그땅에는 남아있는 사람들이 극히 적었으므로 버터와 꿀이 충분할만큼 인구가 줄어들 것이다. 한때 잘 가꾸어졌던 옥토는 온통 질려와 형극으로 뒤덮일 것이다(23절). 농부들이 농기구대신에 전쟁의 도구들을 들게될 것이다(24절). 그들이 수풀속에 있는 들짐승들을 사냥하며, 강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살과 활을 들것이다. 질려와 형극이 나지말아야 할곳에는 수북이 자라나고, 나야할 곳에는 전혀 나지않을 것이다(25절). 특별한 목적을 위해 '보습으로 갈던 산에' 한때는 가축들이 질려와 형극때문에 무서워서 그리로 가지 않았었지만 이제는 아무나 마구 드나들게될 것이다. '그담을 헐으사 수풀의 돼지가' 포도나무를 상해하게 될것이다(시 80:12,13).

# 핵심
7:1-9
유다왕 아하스가 이스라엘의 동맹소식을 듣고 두려워할무렵, 하나님은 그가 당신을 의지하면 그들의 도모를 파할 것이라고 위로하신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예언(7:14)
본절의 ‘처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마’는 ‘결혼 적령기의 여자’, ‘젊은 여자’로 해석될수 있다. 이로인해 일부 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자연적인 출생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하지만 성경에서 ‘알마’라는 말은 성숙한 여인으로 자랐으되 아직껏 남자를 모르는 결혼 적령기의 처녀를 가리키는데 사용된다(창 24:4; 시 68:25). 이사야는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메시아 잉태사건 자체가 기적적인 징조가 될것임을 강조했다. 그리스도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탄생하셨다(마 1:18-23).

# 묵상
징조를 구하지않겠다는 아하스왕 ( 7:12 )
아하스의 내심에는 이미 성전과 궁전에 있는 보석을 모두 앗수르왕에게 바치고 그들에게 구원을 청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시험치않겠다는 아하스의 말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보냄받은 이사야의 제의를 완곡하게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징조 ( 7:14 )
임마누엘이라는 한아이가 처녀에게서 탄생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임마누엘은 모든 사람을 그의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에 대한 또다른 칭호입니다. 그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 대한 구원의 징조입니다. 이사야의 이 예언은 신약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에 의해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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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하나님의 영광의 환상 6:1-4
이사야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었을'때 본 그환상은 사무엘상 3:20절에서 사무엘에 대해 한말과 같이, 그의 믿음을 견고히 하기위해 의도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처음에는 아브라함과(행 7:2) 모세에게(출 3:2) 영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 에스겔의 예언과 사도 요한의 예언은 하나님의 영광의 환상과 함께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지식을 가르쳐야 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먼저 하나님을 잘알고 있어야 한다. 그환상은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있었다. 그는 유다의 다른 왕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50년동안 통치를 한 왕이다. 그가 죽던 당시에 이사야는 보좌에 앉으신 이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다. 이스라엘 왕은 죽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다. 웃시야 왕은 별궁에서 문둥병자로 죽었지만, 왕중의 왕은 여전히 그의 보좌에 앉아계시다.
(1)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높이 들린' 그보좌를 보라. 그보좌는 다른 보좌들보다 높아 그것들을 능가할뿐만 아니라 다른 보좌들위에 있어 그것들을 다스리기도 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실체인 '여호와'(아무도 그를 본 사람이 없고 또 그를 볼수도 없다)를 본것이 아니라 그의 통치권인 '아도나이'를 보았다. 그는 주 예수를 본 것이다. 이환상은 요한복음 12:41절에서 이사야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던 것으로 설명된다. 그는 '보좌에' 앉아계시다. 다시말해서 그는 우리가 그앞에서 경배해야 하는 영광의 보좌에, 우리가 그아래 복종해야 하는 통치의 보좌에, 우리가 그앞으로 담대히 나아갈수 있는 은혜의 보좌에 앉아계시다.
(2)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나타난 그의 성전, 곧 세상의 교회를 보라. 그의 '옷자락' 곧 그의 예복자락이 '성전'에 가득하였다. 즉 온세상에(왜냐하면 세상은 전체가 하나님의 전이기 때문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의 표시들로 가득차고 아름답게 꾸며진 교회에 '가득하였다.'
(3) 그의 보좌를 시중드는 빛나고 복된 수행자들을 보라(2절). '스랍들이 모셔섰는데' 그들은 거룩한 천사들로서 '스랍' 곧 "숯 피우는 자"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기'(시 104:4)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그의 영광을 위하는 열심히 그리고 죄를 대적하는 열심히 불타오른다. 그천사들은 스랍들로서 그들의 빛에 비례하는 열심을 지니고 있고, 거룩한 지식뿐만 아니라 거룩한 사랑도 풍성히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것이 그들의 영광이 된다. 그들은 '각기 여섯날개가 있는데' 그날개들은 에스겔이 본것처럼 들어 펴지지는 않았다(겔 1:11). 날개 넷은 가리우는데 쓰였다. 그들은 위에 있는 두날개로는 얼굴을 가리우고 아래있는 두날개로는 발을 가리웠다. 그들은 발뿐만 아니라 얼굴까지도 가리운다. 두날개는 나는데 쓰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부름을 할때 빨리 날아간다(단 9:21).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일을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행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4) 천사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노래하는 찬송을 들어보라(3절). 그들은 열정적으로 열심히 크게 '창화하였다.' 또 그들은 조화를 깨뜨리는, 거슬리는 목소리를 조금도 내지않고서 '서로 창화하였다.' 그노래는 네 생물이 부른 것과 똑같았다(계 4:8). 하늘에 있는 교회는 찬송이 다같다. 박자나 음표가 다똑같다. 3절에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가장 영광스런 호칭중의 하나가 나온다. 그는 '만군' 곧 모든 군대의 '여호와'이시다. 그리고 그의 가장 영광스런 속성중의 하나인 그의 거룩함이 나온다. 청렴함이 없이 사용되어지는 능력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줄것이다. 하나님의 권능은 두번 언급되었으나(시 62:11), 그의 거룩함은 세번 언급된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이말은 삼위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킨다고 볼수 있다(왜냐하면 8절에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혹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래에도 계실 그분'을 가리키는 말로 볼수도 있다. '그영광이' 곧 그의 능력과 거룩함의 영광이 '온땅에 충만하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모든 행사에 거룩하시기 때문이다(시 145:13).
(5) 이 영광스런 하나님의 환상때문에 성전에 가득한 두려움의 징표들을 보라(4절). 성전이 흔들렸다.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인하여' 다시말해서 백성들을 판단하시려고 반포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로인하여(시 50:4), 굳게 세워진 '문지방의 터'조차 흔들렸다. 성전이 어두워졌다. 성전에는 '자기 보좌앞을 가리우기' 위해 그위에 '펴신 구름'(욥 26:9)같은 '연기가 충만하였다.' 하늘에 있는 성전에는 모든 것이 분명히 보일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빛가운데 거하시지만, 여기서는 '캄캄한데 계시다'(대하 6:1).

Ⅱ. 환상을 본 결과와 사죄 6:5-8
(1) 선지자는 영광스런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서 당황하였다(5절).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사람들은 그가 틀림없이 "행복하도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으리라"고 말했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외친다.
1) 선지자는 자신을 놀랍게 한것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였다.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어떤 사람들은 그가 특별히 과거에 한 경솔한 말이나, 뻔뻔스럽게 죄를 책망하지 않고 잠자코 지낸 죄악적인 행위를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좀더 일반적인 의미를 나타낸다고 할수 있다. "나는 죄인이요 특별히 말로 범죄하였나이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앞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해 몹시 슬퍼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입술이 부정한 자라는 사실을 슬퍼해야 한다. 우리의 입술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바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입술에 담기에 부적합한 자들이다. 우리는 우리 입술의 부정함을 고통스럽게 느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말로인해서 의롭다함을 얻을수도 있고 정죄함을 받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는 입술이 부정한 자들가운데 살고있다는 사실을 슬퍼해야 한다. 병이란 유전되기도 하며, 전염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로 우리의 죄책이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사실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입술의 더러움을 깨끗이 하기위해 행해야 했던 일을 하지않은 것때문에 우리의 슬픔을 증가시킬 뿐이다. 요셉이 애굽에서 그나라 대신들의 맹세를 배웠듯이(창 42:16), 심지어 우리는 입술이 부정한 자들의 관습과 언어를 익혀왔다.
2) 이러한 슬픈 반성을 하게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중보자가 안계시다면 우리는 하나님앞에 설수가 없다(삼상 6:20). 이사야는 겸손해졌다. 따라서 그는 선지자로서 부름을 받을수 있는 준비가 된것이다.
(2) 천사가 그에게 답변한 위로의 말이 그의 두려움을 가라앉혔다(6,7절). 스랍중의 하나가 그를 정결케 하기위하여 즉시 그에게로 날아왔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환상을 보고 엎드러진 자들은 그의 은혜를 받고 곧 다시 일어설 것이다. 여기에서 언급된 스랍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기 위해서, 영광의 보좌를 잠시동안 떠난 천사였다. 그는 날아서 이사야에게로 왔다. 우리 주 예수께서 번민하실때도 '사자가 하늘로부터 주께 나타나 힘을 도왔다'(눅 22:43). 스랍은 이사야의 입술을 정결케하려고 '단에서 핀 숯을 가지고 날아와서' 그의 입에 대었다. 거룩한 성령께서는 불처럼 역사하신다(마 3:11). 스랍은 선지자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왜냐하면 부정한 죄로부터 입술을 깨끗이 하는 방법은 영혼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태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것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네 죄책이 사죄의 긍휼로 제하여졌느니라. 즉 네 혀로 짓는 죄의 책임이 제하여졌느니라. 죄를 지으려는 너의 타락한 성향이 새롭게 하시는 은혜로 제하여졌느니라. 그러므로 아무것도, 네가 예배하는 자로서 하나님께 용납되는 것은 방해할수 없느니라.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보내는 사자로 네가 쓰임받는 것은 아무도 방해할수 없느니라."
(3) 선지자의 사명이 새로워졌다(8절).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와 대화하신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전혀 듣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말씀하시리라고 기대할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숙고하고 계심을 볼수 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역자를 보내는 일이 깊은 생각없이 함부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어 그의 이름으로 말하게 하려고 하실때, 하늘의 충만한 영광가운데서 나타나셨다는 사실은 성직을 명예롭게 한다. '내가 누구를 보낼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형제중에서 나온 한 선지자를'(히 2:17)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려고 하셨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 곧 자기가 가지고 오는 메시지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의 마음을 전하시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도 우리와 같은 죄인들이며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누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는가? 하나님을 위한 용기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한 관심을 어느정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더욱이 천국의 비밀을 꿰뚫는 통찰력을 갖추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들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위하여 갈수 없다(롬 10:15). 사람들에게 직분을 맡기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다(딤전 1:12).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겠느냐' 하실때 아무도 그직분을 맡으려고 하지않는것 같다. 그때에 이사야는 자신을 드려 그일을 하려고 하였다. "내가 가겠나이다.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겠나이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의 말은 준비가 되어있었음을 의미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는 억지로 일을 하는 자가 아닌 자원자니이다." '나를 보내소서' 란 단어의 뜻은 이렇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들도 이겨낼 각오가 되어 있나이다. 제가 단단히 결심하였나이다."

Ⅲ. 이사야의 임무 6:9-13
하나님은 이사야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에게 묘한 사명을 주어 보내신다. 그사명이란 그의 백성들의 파멸을 예언하는 것이며, 심지어는 그들을 파멸에 이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말씀은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교회의 상태를 예표하려는 것이다. 유대교회는 복음을 완고하게 거절함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배척당할 것이다. 본문 말씀은 신약에서 여섯번정도 부분적으로 인용되거나 언급되었다. 이사야는 여기서 다음 네가지 사실을 알게되었다.
(1) 그가 보냄을 받아 찾아가야할 백성들의 대부분은 그의 설교를 듣지않을 것이며, 그가 그들에게 알려야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나타내는 모든 사실들에 대해서 일부러 눈을 감을 것이다(9절).
(2) 그들은 그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더나아지려고 하지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나빠지게 될것이다. 일부러 장님노릇을 하는 자들은 천벌을 받아 정말로 눈이 멀게될 것이다(10절). "그들이 네 말을 알아듣거나 이해하려고 하지않을 것이라. 따라서 너는 '그들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다시말해서 무감각하고 세속적이게 하며, '그들의 귀가 더막히게' 하고 '그들의 눈이 더감기게' 하는 도구가 될것이라. 그렇게함으로써 그들의 회복과 회개는 전적으로 불가능해질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때로는 죄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3) 이렇게 한 결과 그들은 완전히 파멸할 것이다(11,12절). 이사야는 불쑥 '주여 어느때까지니이까' 하고 묻는다. "그상태가 언제까지 그렇게 계속될 것이니이까? 나와 다른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그들가운데서 헛되이 수고해야 하나이까. 사태가 더나아질수 없나이까?" 하나님께서는 이질문의 답변으로 마침내는 유대교회와 국가가 완전히 파멸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성읍들은 거민이 없으며 토지는 경작되지 않고 전폐하게 될것이라." 영적인 심판은 종종 사람과 장소에 실질적인 심판으로 내려진다. 이 예언은 갈대아인들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예언에 앞서 나왔던 예언들이 신약에서 우리 구주께서 활동하시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자주 명백하게 적용되기때문에 이예언은 로마인들에 의한 유대 백성들의 멸망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4) 그럴지라도 남은 자들이 보존되어서 긍휼의 기념비가 될것이다(13절). '그중에 십분의 일'이 즉 일정한 수이긴 하지만 불신앙가운데서 멸망할 대다수와 비교할때 매우 적은 수인 무리가 '남아있을 것이다.' 구원받은 이 십분의 일은 다음 몇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1) 그들이 돌아올 것인데 죄에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올 것이며, 또한 의무를 지키게될 것이며 포로로 잡혀간 땅에서 자기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6:13;10:21).
2) 그들이 삼키운바 될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집의 양식인 십일조가 그러듯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것이다(말 3:10).
3) 그들은 비록 나뭇잎은 없어도 생명은 있는 겨울 나무처럼 될것이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같이' 이 남은 자들도 비록 외적인 번영은 빼앗긴다해도 봄철의 나무처럼 다시 소생하여 번창할 것이다.
4) 이 고귀한 남은 자들이 공공의 이익을 지탱하게 될것이다. 영혼속에 있는 '거룩한 씨'는 사람의 그루터기이다. 심령속에 있는 은혜로 생명을 보존할 것이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하나님의 씨가 그속에 거하는' 자이다(요일 3:9). 인도(왕궁에서 성전으로 이어지는 높이 돋은 길, 혹은 계단식 길, 왕상 10:5)의 한쪽 가에서 자라난 나무들이, 그나무들이 없으면 무너질 흙을 받쳐줌으로써 그길을 지탱하고 있듯이 경건하고 진지하게 기도하는 소수의 백성들은 그나라를 지탱하여 현상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며 그상태가 더악화되지 않게 해줄 것이다.

# 핵심
6:1-13
이사야가 이상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고, 하나님께 선지자의 소명을 받는 장면이다.
천사의 조직(6:2)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는 영적존재이다(시 8:5; 히 1:4). 성경에는 직무상 구별되는 몇몇 천사 유형이 나온다. 첫째, 천사장 미가엘(단 10:13; 유 1:9)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사단과 싸우는 천사로 묘사된다(계 12:7). 둘째, 그룹이다. 그룹은 생명나무의 수호자(창 3:24), 하나님 보좌의 운반자(시 18:10), 언약궤 및 성전보물의 수호자 등으로 묘사된다(출 25:18-20). 셋째, 하나님의 보좌주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스랍이다. 넷째,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고 해석한다(단 8:16).

# 묵상
이사야의 소명시기 ( 6:1-5 )
웃시야 왕이 죽던 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주전 736년이나 혹은 735년경에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사야가 자신의 소명시기를 밝힌 것은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한편 스랍이라는 말은 '불타는 자들'이란 뜻입니다. 또한 스랍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영물들입니다.
핀 숯을 이사야의 입에 댄 스랍 ( 6:6, 7 )
이러한 행동은 이사야의 죄를 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편에서 인간의 죄를 덮지않는다면 죄를 소멸하려는 인간의 모든 노력이 소용없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죄를 깨닫고 그죄로부터 벗어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될수 있습니다.
부르심에 대한 이사야의 대답 ( 6:8 )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은 부르심을 받은 자의 모범적인 대답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사양했었던 모세나 예레미야와는 달리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신속성과 결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사야를 부르신 이유 ( 6:9, 10 )
이사야를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에게 그 참뜻을 숨겨서 깨닫지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마13장; 막4:11, 1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고 노력하거나 열심을 기울이지도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영적비밀을 알지못하게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패역한 백성들의 마음을 둔하게 하사, 그 귀가 막히게 하고 눈이 감기게 하기위해서 이사야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들을수 있는 귀를 잃었습니다.
그루터기의 의미 ( 6:13 )
죄인들속에서도 그들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거룩한 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본서 전체를 흐르고 있는 남은 자(Ramnnant) 사상을 보여주는 이 단어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될 성도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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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열매없는 포도원의 비유 5:1-7
하나님께서는 죄인들로 회개하도록 일깨우시기 위해 때로는 분명한 말로 또는 비유로 때로는 산문으로 그리고 여기서처럼 시로 말씀하신다. 성부 하나님은 자신이 포도원의 주인으로 임명하신 그의 사랑하는 아들, 그리스도의 명예를 위하여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명예를 위하여 그실정을 노래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신랑되신 그리스도의 지지자들이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며 우리의 사랑하는 구주이시다. 이 비유가 노래로 지어진 이유는 더욱 감동적이며 더욱 쉽게 배울수 있게 하고 기억되게 하며 후손에게 더욱 잘 전해질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것은 모세의 노래에 대한 하나의 설명으로서(신32장) 모세가 당시에 예언하였던바가 이때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 하나님이 유대 민족과 유대 교회를 위하여 행하신 큰일들 : 그들이 심겨진 땅은 '심히 기름진 산'이었다. 그땅은 맛있는 것이 풍성하였다. 그들은 그땅에서 단것을 먹고 마시며 살쪘다. 하나님이 이포도원을 위해 행하신 일을 더 살펴보자.
1) 그는 포도원에 울타리를 두르셨다. 만일 그들이 그울타리를 넘어뜨리지 않았더라면 결코 어떤 침략도 받지않았을 것이다(시 125:2;121:4).
2) 그는 이 포도원에서 돌을 제하셨다. 즉 돌같은 마음을 제하기위해 은혜를 주셨다.
3) 그는 이 포도원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셨다. 즉 그들가운데 순수한 신앙을 세우셨다.
4) 그는 포도원을 보호하기위해 한가운데 망대를 세우셨다. 성전은 그들의 망대였다.
5) 그는 그곳에 술틀을 만드셨다. 즉 그포도원의 소산이 바쳐질 제단을 설치하셨다는 말이다.
(2) 하나님의 정당한 기대가 실망으로 뒤바뀜 : 좋은 포도맺기를 바랐더니. 하나님은 포도원의 특권을 누리는 자들에게서 소산을 기대하신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선하게 시작하는 것이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열매 곧 포도원의 열매인 선한 마음과 행실이 있어야한다. 성령에 맞는 생각과 감정, 말과 행동이 있어야한다. 하나님의 기대는 좌절되었다. 들포도를 맺혔도다. 들포도란 타락한 본성의 열매이다. 또한 들포도란 그들의 위선적인 종교적 업적을 의미하기도 한다.
(3) 하나님과 그들사이를 판단하라는 호소(3,4절) :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사이에 판단하라.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지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이라는 요구가 나온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그들은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다받았다. "그러니 도대체 내가 좋은 포도를 바랐을때 들포도가 맺혀야할 이유가 있을수 있겠는가?"
(4) 그들에게 내려진 판결과 운명의 예고(5,6절) : "아무것도 그죄악의 구실이 될수 없고 그심판을 저지할수 없으므로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이제 나는 더이상 그포도원으로 있지못하고 황무지로 변할 것이다. 즉 유대인들의 교회는 교회의 특권을 빼앗기게 될것이다. 내가 그울타리를 걷어. 그러면 포도원은 벌거벗은 것처럼 다드러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모든 방어시설을 제거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적들에게 쉽게 먹힐 것이다. 그들은 더이상 포도원의 모습, 곧 교회와 국가의 모양이나 형태를 갖지못할 것이다. 선한 열매를 맺으려고 하지않는 자들은 아무열매도 맺지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지못하는 저주는 열매를 맺지않는 죄에 대한 형벌이다. 이판결은 갈대아인들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고, 완전한 성취는 로마인들에 의한 최종적인 유대인 말살이라는 사실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선고는 또한 오랫동안 하나님을 거절해온 자들로부터 하나님의 신이 떠나시는데서 자주 성취된다.
(5) 이비유의 해석 혹은 해결의 열쇠(7절) : 이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 곧 하나의 교회이자 국가로 조직된 백성들 전체를 가리키며, 포도나무는 '유다 사람'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들을 자비롭게 대해주셨으므로 그들에게서도 적절한 보답이 올것을 기대하셨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것은 좋은 포도였는데 그들이 내놓은 것은 들포도였다. 그들에게 공평을...의로움을 바라셨더니. 즉 백성들이 정직하고 그관원들이 엄격하게 공의를 시행할 것을 기대하셨다. 이것은 정당하게 기대하실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와 정반대였다. 공평대신에 압제자의 포학이 있었고 의로움대신에 압제받는 자의 부르짖음이 있었던 것이다.

Ⅱ. 탐욕과 방탕의 죄와 그에 대한 형벌 5:8-17
세상의 욕망과 육신의 방종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재앙을 선포하는 두가지 죄이다. 이것은 그당시 유다 사람들가운데 관영했던 죄로서 그들이 맺은 들포도의 일종이었다(4절).
(1) 여기에서 세상의 재물에다 마음을 두는 자들에 대하여 화가 선포되었다(8절). 그들은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며 아무도 그들곁에 살틈을 주지않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어떤일에 성공하면 소유물과 우선권을 독점하는 자들이다. 즉 과도하게 치부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무관심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배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심한 고통을 지우고 있으며, 재물을 축적하기위해 얼마나 악한 술책을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않는다. 이러한 죄에 대한 형벌로서 그들의 가옥이나 전토는 전혀 활용되지 못하게될 것이다(9,10절). 그들이 그렇게 좋아한 가옥들은 세드는 사람이 없어 오랫동안 비어있게될 것이다.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이는 그속에 들어가 살아야할 사람들이 칼이나 기근 혹은 역병에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이었다.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로운 자들이 들어가 살도록 집을 짓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이일에서 볼수 있듯이, 들어가 살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집이 지어지기도 한다. 그들이 그렇게 좋아한 전토는 소산을 내지않을 것이다(10절). '열흘갈이 포도원이 겨우 포도주 한바트'(8갤런정도)를 만들어 낼정도의 포도를 내고 '한호멜지기에는', 즉 약 두말의 정도의 씨를 뿌리면 간신히 그것의 십분의 일인 한에바 밖에 거두지못할 것이다.
(2) 여기서 감각적인 쾌락을 몹시 사랑하는 자들에 대한 화가 선포된다(11,12절). 세속성과 중압감이 사람을 파멸시키듯이 틀림없이 육욕도 사람들을 파멸시킨다. 이러한 화는 술에 빠져있는 자들에게 내려진다. 그들은 하루종일 술좌석에 앉아있으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한다.' 다시말해 포도주가 그들이 정욕을 불태울때까지 밤이 깊도록 술좌석에 머물러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진지한 것에는 전혀 마음을 쓰지않는 자들이다.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들은 자기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그러한 피조물들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 지혜 그리고 선하심을 주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정욕의 음식과 연료로 사용하는 좋은 것들을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섭리를 유의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그들은 쫓겨날 것이라고 예언된다. 땅이 이러한 술꾼들을 토해낼 것이다(13절).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이 지나치게 술을 마심으로인해서 스스로 모주꾼이 되고 바보가 되었는데 어떻게 지식을 지닐수 있겠는가? 그들은 가난해져서 과거에는 지나치게 낭비하고 남용하던 것들을 주리게될 것이다. 그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즉 기근을 당하여 죽게될 것이다.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기근과 칼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다(14절). 그러므로 '음부가 그입을' 벌렸다. 공동묘지인 도벳(예루살렘 근처의 옛날희생을 바치던 곳-역주)이 수효가 너무 많아, 작은 것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그것을 넓히지 않으면 안될만큼 매장되어야할 사람들이 많은 것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수치와 굴욕을 당할 것이며, 그들의 모든 영광은 사라질 것이다(16절). 하나님은 이러한 섭리의 공평과 의로움으로인해 높임을 받으실 것이고 그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받을 것이다(17절). 그때에는 어린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같이 먹을 것이요. 세상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을 따르며, 교만한 압제자들에게 핍박을 받고 두려워하는 온유한 양들이 조용히 풀을 뜯을 것이다. 그들을 두렵게하는 자들이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땅은 황폐해져서 이웃나라 사람들에게 먹힐 것이다. '살찐 자의 황무한 밭의 소산', 곧 편하게 살던 부유한 자들의 소유물을 그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유리하는 자'들이 먹을 것이다.

Ⅲ. 죄인들에게 임할 화 5:18-30
(1) 그당시의 유대 사람들에게 심판을 초래할 죄들 : 일단 이것은 그들에게 대한 것이지만 또한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1) 맹렬히 죄악을 추구하는 자들이다(18절).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즉 함께 수레를 맨 가축들이 애쓰는만큼 죄를 짓기에 애쓰는 자들이다. 그들은 마치 수레줄로 묶어 자기들에게로 끄는 것처럼 틀림없이 자기들의 악한 계획을 달성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줄은 조금만 힘을 주면 끊어질 헛된 줄임을 알게될 것이다. 연약하여 어쩔수 없이 죄를 짓는 자들은 죄에 끌려가는 것이다. 그러나 뻔뻔스럽게 죄를 짓는 자들은 섭리의 반대와 양심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죄악을 자신들에게로 끌어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수레줄로 끌어당기듯이,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자신들에게로 끌어당긴다.
2)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고 형벌을 내려보시라고 전능자에게 도전적인 말을 하는 자들이다(19절).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일을 속속히 이루어...그도모를 속히 임하게하여 우리로 알게할 것이라 하는도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비웃고 조롱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계시가 실행되는 것을 보지않는한 하늘로부터 내려온 그계시를 믿으려고 하지않는다. 하나님께서 이미 경고하신대로 그들을 치시려고 나타나신다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과 대충 타협을 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왔지만 그것은 단지 말뿐이었도다. 그러니 하나님으로 그도모를 속히 임하시게 하라. 우리는 충분히 우리 힘으로 일을 꾸려나갈수 있을 것이라."
3) 도덕적으로 선한 것과 악한 것의 차이를 혼동하는 자들이다. 악을 선하다하며 선을 악하다하며(20절). 술취함을 좋은 친교라 하고, 탐욕을 규모있는 살림살이라 하며, 또한 반대로 진지함을 나쁜 성격으로 규정하고 경건에 대하여 온갖 비방을 퍼붓는 자들은 하나님과 신앙심과 양심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과 타인의 영혼에게도 해를 끼치는 자들이다.
4) 그토록 큰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견해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21절).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그들은 자기들이 무한하신 지혜자를 앞지를수 있으며 섭리자체의 의표를 찌를수 있다고 생각한다.
5) 독한 술을 아주 많이 마시고도 취하지 않을수 있다고 자랑하는 자들이다(22절).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그들은 자신들의 정욕을 만족시키는데 온힘을 사용하는 자들이다. 술꾼들은 하나님이 선한 목적에 쓰라고 그들에게 주신 육신의 힘을 배은망덕하게도 남용한다. 따라서 그들은 점차로 그힘을 잃을수밖에 없다.
6) 재판관이면서도 공의를 곡해하는 자들이다(23절). 그들은 뇌물로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그들은 악인에게서 그죄를 면제하여 형벌을 받지않도록 하기위해 이런저런 구실을 찾는다. 그들은 무고한 자를 정죄하며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다.'
(2) 이죄가 그들에게 가져올 심판 : 의로운 하나님께서 보수하실 것이다(24-30절). 그는 이백성을 열매를 풍성히 맺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포도나무에 비유했었다(7절). 그러나 그나무에 베푸셨던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뿌리는 밑둥이로부터 썩었고 그꽃은 먼지처럼 날아가 버렸다. 죄는 백성들의 힘, 곧 그들의 뿌리를 약화시켜 쉽게 뿌리뽑히도록 만든다. 또한 죄는 백성들의 아름다움인 꽃을 없애므로 열매도 기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죄인들은 스스로를 그루터기와 마른풀이 되게하는 것이다.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같이' 마른풀도 도움이나 동정을 받지못한채 불에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의 율법과 말씀을 어긴다고해서 매번 그들을 거절하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그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의 율법을 버릴때 하나님이 그들을 완전히 버리시리라는 것외에 무엇을 더 기대할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공의가 이러한 파멸을 결정한다. 왜냐하면 그파멸은 '자기 백성에게 발해진 여호와의 노'이고 하나님께는 꼭 필요한 자기변호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과거에는 자주 그들의 원수를 치려고 드셨던 손을 이제는 그들을 치려고 드셨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백성을 치려고 나오실때는 산이 진동하고 백성중의 높은 자들도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사람들의 시체가 '거리가운데 분토같이' 널려져있는 것보다 더끔찍한 광경이 있을수 있겠는가? 이말은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을 의미한다. 즉 군인들이 전쟁중에 죽을뿐만 아니라 성읍의 일반 주민들도 냉혹한 칼날아래 죽어 생존자들이 그들을 매장할 일손도 마음도 갖지못하게 될것을 암시한다. 이파멸은 이방 원수들에 의해서 행해질 것이며 그들은 남김없이 훼파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이러한 계획을 이루는데 이용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일단 기를 세우시면 비록 사람들이 그 기가 세워진 이유나 원인을 알지못할지라도, 자진해서 그 깃발아래 모이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신다.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올 것이로되. 이 사실이 여기서는 우아하고 고상한 표현으로 묘사된다(27-30절). 그들이 오랫동안 행진할지라도 '그중에 곤핍한 자가 없을' 것이고, 길이 거칠지라도 그중에 '넘어지는' 자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쉬지않고 파수를 서야만할지라도 '조는 자나 자는 자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조금도 쉬거나 긴장을 풀기를 원치않을 것이다. 그들은 옷을 벗지않고 '허리띠도 풀지않으며' 오히려 항시 옆에 칼을 차고다닐 것이다. 여호수아 9:13절에서처럼, 낡아서 끊어지면 고치기위해 멈추어야만 하는 '그들의 신들메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무기와 군수품은 모두가 다 수리되고 잘준비되었다. 그들의 살은 날카롭고 모든 활은 당기어졌으며. 즉 느슨한채로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들의 말과 병거는 모두 사용하기 좋은 상태로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은 아주 강해서 '말굽이 부싯돌 같고' 그들의 병거바퀴는 부서지지도 찌그러지지도 않으며 '회리바람같이' 빠를 것이다. 모든 군사들은 하나같이 용감하고 대담할 것이다(29절). 그 부르짖는 것은 암사자 같을 것이요. 암사자는 부르짖는 소리로 자신을 격려하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겁나게 한다. 그들은 폭풍속의 '바다물결 소리같이 부르짖을' 것이다. 이때에는 구원에 대한 기대를 조금도 가질수 없게될 것이다. 하늘의 빛이 어두워지면 그어두움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시면 하늘도 그얼굴을 가리우므로 어둠이 드러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욥 34:29).

#핵심
5:1-7
‘포도원의 노래’라고 불리는 본문은 이스라엘을 포도원에 비유하여 그들의 죄악을 폭로한다. 농부이신 하나님이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으나 포도원인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써 들포도와 같은 죄악의 열매를 맺어 심판을 받는다는 내용.
팔레스타인의 포도재배(5:1,2)
팔레스타인의 기후풍토는 포도재배에 적합하여 거의 전지역에서 재배할수 있었다. 포도경작은 다른 어떤 농사보다도 정성을 필요로하며, 포도재배자는 주로 비옥한 언덕위에 포도원을 지었다. 그는 땅을 일구고 돌멩이를 제거한후에 약 3보 간격으로 가지런히 포도나무를 심었으며, 포도송이를 잘 영글게 하기위해서 수시로 가지를 쳤다. 한편, 성경에서 포도나무는 번영과 축복, 하나님의 은혜(미 4:4; 슥 3:10) 또는 이스라엘(시 80:13; 렘 2:21)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종종 언급된다.

# 묵상
들포도의 의미 ( 5:2 )
들포도는 ‘악취를 풍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바아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먹지못하는 작고 딱딱한 신포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행한 포학과 그것으로인한 부르짖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들포도같은 존재가 되지말고 말씀으로 거듭나 주님의 빛과 향기를 발하는 거룩한 존재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바라신 것 ( 5:7 )
공평과 의로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공평대신에 포학과 피흘림을 행했으며, 의로움대신에 부르짖음과 통곡소리가 넘치게 했습니다. 이렇듯이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을 원하셨으나 인간은 악을 행했던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이후 사람들은 마음으로는 선을 원해도 선을 행할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징벌받을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상 ( 5:8-23 )
토지강탈, 술취함, 불경건, 도덕적 기준의 곡해, 자만, 불의한 재판 등의 행위가 모두 하나님의 징벌을 받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행하신 일 ( 5:12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축복된 삶을 살았으나, 그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마저도 잊어버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최고의 복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자신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한번 냉정하게 자문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백성들의 무지 ( 5:13 )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패배를 당할수밖에 없는 당시의 정세에 대한 무지와, 또한 예언자를 통해 보내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깨닫지못하는 무지를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통찰력이 상실되었다고 하는 것은 곧 불신앙의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인생이 화를 받게되는 원인은 하나님을 알지못하는 무지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호6:3).
어린양 ( 5:17 )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종종 양으로 비유되었고 그들의 왕은 양떼를 맡고 있는 목자로 비유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이사야 당시 삯꾼 목자인 악한 왕들때문에 꼴을 찾기위해 헤매는 양들처럼 이리저리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거룩하다함을 받으시는 그날에는 어린양들이 자기초장에서 안전하게 풀을 먹는 것처럼,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그의 나라에서 영생의 꼴을 먹게될 것입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한다’는 표현 ( 5:20 )
선과 악의 분별이 바뀌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주신 도덕의 객관적 기준을 무시하고 자기 스스로가 도덕의 표준이 될때 이러한 가치전도현상이 일어납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악을 시인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악을 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악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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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다 부녀들의 죄에 대한 형벌 4:1
여기서 우리는 장정들이 허다히 살육된 결과를 본다. 하나님께서는 보통때에는 세상에 태어난 남녀의 수가 거의 같도록 하셨지만 전쟁의 참화를 통해서는 일곱 남자중 한사람만 가까스로 살아남도록 지혜롭게 섭리하였다. 출산시에 따르는 죽음이 여자에게만 있듯이, 그보다 더많은 사람을 집어삼키는 칼에 의한 죽음은 남자에게만 있는 것이다. '일곱 여자가 한남자를 붙잡을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남자들의 수가 부족하기때문에 보통때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구애를 하는 것이지만, 이때는 여자가 남자를 붙잡아야 했다. 그리고 일곱 여자들은 한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에 기꺼이 동의해야 했다. 율법에 의하면 남편이 아내를 위해 음식과 의복을 마련해야 했지만(출 21:10), 이 여자들은 기꺼이 스스로 벌어먹고 살려고 하였다. 이 여자들은 '자기들의 떡을 먹으며 자기들의 옷을 입으려고' 하였다. 따라서 그들이 구혼하는 남자는 아무손해도 보지않을 것이다. 그여자들은 다만 그사람의 아내라고 불리어 독신생활의 '수치를 면하려고' 하였을 뿐이다. 이 여자들은 어떠한 조건에도 관계하지 않고 오로지 아내가 되려고 하였다. 그여자들은 정숙함은 잊어버린채 오로지 남편을 얻는데만 관심을 가졌다. 그들에게 있어서 부도덕의 수치는 독신의 수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Ⅱ.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약속 4:2-6
앞에서 본 하나님의 경고들때문에 모든 것이 우울하게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는 태양이 갑자기 구름뒤에서 나타난다. 본문에서 우리는 위로의 확신을 주는 아주 위대하고 귀한 약속들을 많이 보게된다. 이 약속들은 아하스이후에 히스기야의 개혁통치에 의한 그리고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에 의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복의 상징을 통해서 메시야의 왕국과 메시야에 의해 이루어질 위대한 구속사역을 가리키는 것이다. 본문은 이 두사건과 약간의 관련을 가지고 있기는하나 주로 그리스도와 관계된 것이다.
(1) 하나님은 의의 가지를 일으키시사 의의 열매를 맺게하실 것이다(2절). '그날에' 곧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유대 민족이 뿔뿔이 흩어질때 메시야의 나라가 설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 친히 높아지실 것이다. 그는 '여호와의 싹'이시다. 이것은 그를 지칭하는 예언적인 이름들 곧 '내 종 싹'(슥 3:8;6:12) 또는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싹, 그뿌리에서 나온 한가지'(11:1) 등과 같은 이름들 중의 하나이다. 고대 갈대아 역본에는 이구절들이 "여호와의 그리스도 혹은 여호와의 메시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친히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영광으로 나아가실 것이다.
2) 그의 복음이 환영받을 것이다. 복음의 풍성한 결과는 여호와의 싹이 자라나 맺은 열매이다. 복음의 모든 은혜와 위로는 다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 그런데 복음이 '땅의 소산'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것이 이세상에서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음의 열매들인 사람들과 역사를 통해서 복음의 결과를 알수 있다. 여호와의 가지가 우리 눈에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보인다면 땅의 소산도 훌륭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에 우리는 땅의 소산을 약속의 소산으로 간주할수 있기 때문이다(시 37:16;딤전 4:8).
(2)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거룩한 씨를 남겨두실 것이다(3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신앙때문에 마른가지처럼 잘려질 것이나 그래도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1) 이들은 '생존한 자중 녹명된' 남은 자들이다. 모두가 죽는때에 살아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섭리의 책에 살도록 기록된 자들이다. 즉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자들이다(계 13:8). '생존자중 녹명된' 자들은 모두가 살아있는 자들가운데서 발견될 것이다. 그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주어진 자들중에서 하나도 잃지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2) 이들은 은혜의 통치아래 남은 자들이다. 이렇게 말할수 있는 이유는 '산 자들가운데 녹명된' 자들은 저마다 '거룩하다'고 불릴 것이며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개혁하시고 그안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바로잡고 고치실 것이다(4절). '주께서 그들의 더러움을 씻으실때'에야 즉 그들중에 악한 자들을 제거하고 악한 일들을 일소함으로써 그더러움을 씻으실때에야 남은 자들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이었지만 개혁이 필요하였다. 시온의 딸들이라함은 어머니 성읍인 예루살렘과 관계를 맺고있는 유다의 성읍과 촌락들을 의미한다고 볼수 있는데 그것들 역시 개혁이 필요하였다. 그들의 더러움이 씻겨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더러움이란 사악함 특별히 피흘리는 일을 말하기 때문이다. 주께서 그일을 하실 것이다. 개혁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일을 어떻게 하시는가? 죄인들은 하나님의 섭리의 심판에 의해서 멸망받는다. 그러나 죄인들은 그가 보내신 은혜의 성령에 의하여 개혁하고 회개하게 된다. 이런면으로 볼때 성령께서는 마음에 빛을 비추시고 양심을 일깨우며 우리를 안내하시고 귀한 것과 천한 것을 구별하며 감정을 자극하고 고무시키며 사람들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도록 감동시키는 분이시다.
(4)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와 교회에 속한 모든 자를 보호하실 것이다(5,6절). 성화된 자들은 완벽한 보호를 받게된다. 그들의 장막이 보호받을 것이다(5절). 그들의 안식의 장막, 즉 그들이 가족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들의 집이 보호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거처를 보호하시는데 아주 당당한 왕궁뿐 아니라 아주 초라하기 짝이없는 움막도 세심히 보호할 것이다. 그들의 집회나 예배를 위하여 모이는 장막, 즉 비록 두세 사람일지라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 집단은 하늘의 특별한 보호를 받을 것이다. 이같은 보호의 선언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행진할때 누렸던 안전함을 본따서 작성되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교회에도 그의 보호하심의 실제적인 증거로 이말씀을 주실 것이다. 비록 기적은 그쳤지만 하나님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교회에도 그의 보호하심의 실제적인 증거로 이말씀을 주실 것이다. 비록 지적은 그쳤지만 하나님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하셨던 것처럼 신약의 교회에도 동일하게 행하신다. 이같은 보호의 말씀은 양가죽과 해달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성막덮개를 본따서 작성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모든 거처와 모든 집회를 성막만큼이나 소중히 여기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바람과 험한 날씨로부터 그의 영광을 보호하기위해 '그 모든 영광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다.' 복음의 진리와 규례들 그리고 성경과 성직은 교회의 영광이며 이 모든 영광은 보호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그 모든 영광의 중심이시라면 그는 스스로 그영광을 두르는, 도저히 뚫거나 넘을수 없는 불벽이 되실 것이다. 사람이 은혜를 받았다면 그것은 곧 그사람의 영광이다. 은혜를 받은 자들은 요새안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는다'(벧전 1:5).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이 모든 성도의 성막이 될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은신처가 되실 것이다(시 32:7). 성도들은 그안에서 편안히 지낼 것이다(시 91:9). 하나님은 언제든지 자기 백성들의 피난처가 되신다.

# 핵심
4:1-6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므로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이 의롭다 칭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다시 임하게 될것을 말한다.

# 묵상
여호와의 싹 ( 4:2 )
여호와의 싹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남은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종말론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이나 ‘가지’로도 불려지는 인류의 구원자이신 메시야를 의미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시온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메시야에 관한 직접적인 예언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구름과 연기, 화염의 빛을 만드신 이유 ( 4:5 )
구름과 연기, 화염의 빛을 만드신 이유는 시온에 남아있는 자중 녹명된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출애굽시에도 하나님은 그의 선민들을 보호하시기위해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을 만드셨습니다(출13:21, 22). 이와같이 하나님은 당신에게서 피난처와 안식을 구하는 의로운 자들을 철저히 보호하시며 안전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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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 3:1-8
하나님은 그백성이 의지하는 모든 피조물을 파괴하여 그들로하여금 그것들에 대해 완전히 실망하게 하려고 하셨다(1절). 그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 곧 그들을 후원하는 모든 것이 제하여질 것이다. 그들의 교회와 나라는 이제 오래되어서 쇠퇴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노인들이 하는대로, 슥8:4) 지팡이에 기대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지팡이를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위협하신다. 제롬(Jerome)은 이 말씀을, 유대인들이 구주를 십자가에 못박은 이후 현저하게 쇠퇴한 유대 민족의 경우에 비교한다(롬 11:9,10). 그러나 이것은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을 노하시게 만들지 말라고 외치는 경고로 보는편이 타당할 것이다.
(1) 양식은 생명을 지탱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을 제하실'수 있다. 생명을 위하여 주어진 양식이 정욕을 위한 것이 되었을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제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은 비를 거두심으로써 양식과 물을 제하실수 있다(신 28:23,24). 또한 그는 사람이 의지하고 살아가는 그의 축복을 거두심으로써 그들이 버티어 살아가는 양식과 물을 제하실수 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양식이며 생명의 물이시다. 그가 우리의 버팀이 된다면 우리는 이분이야말로 결코 제하여지지 않는 좋은 몫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될 것이다(요 4:14;6:27).
(2) 그들의 군대, 곧 그들의 장군과 지휘관들이 제하여질 것이다. '용사와 전사' 그리고 하급 장교인 '오십부장'까지도 제하여질 것이다. 그러니 강한 자는 자신의 힘을 자랑하지 말고 백성은 누구든지 그들의 용사를 지나치게 의지하지 말아야한다.
(3) 또한 그들의 장관들, 학식있는 자들, 정치가들 그리고 성직자들도 제하여질 것이다. 즉 '재판관과 선지자' 그리고 재판관을 도왔던 '현자'(혹은 이들을 사술을 사용하는 '복술자'라고도 한다), '장로'들이 다 제하여질 것이다. 의지하는 모든 버팀이 제하여질때 '공교한 장인'들도 역시 제하여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능란한 요술자' 즉 어떤 경우에는 좋게 쓰이기도 하는 능변가들도 제하여질 것이다. 모세는 어눌하였으나 아론은 능변가였다.
(4) 땅의 기둥을 세우는 것이 주권자의 할일이다(시 75:3). 그런데 여기서 백성들이 믿는 버팀들이 그들을 실망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힘있는 자와 지혜로운 자들이 제하여지면 '아이들이 그들의 방백이' 될것이다. 즉 교사와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할만큼 어리고, 생각이나 행동이 요람속에 있는 아이보다 조금도 나을바 없는 사람들이 방백이 될것이다. 그사람들은 어린아이에게서나 볼수 있는 온갖 어리석음과 변덕, 고집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5) 백성들사이의 상호관계, 즉 훌륭한 위계질서와 이해력이 여기서 위협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들가운데 '악한 신'을 보내어(참조. 삿 9:23) 이웃과 불화하게 만드실 것이다(5절). 백성들이 서로 학대하며. "어린아이들로 구성된 그들의 방백들은 학대하는 자를 저지하고 학대받는 자를 돕는데에 전혀 신경을 쓰지않을 것이라." 다음 세대가 완악하고 제멋대로 구는 것은 백성들에게 더없이 나쁜 징조이다.
(6) 통치가 부재할 것이다(6절). 만인의 동의에 의해서 권세를 부여받고 사회의 공익을 위해 그권세를 사용할 훌륭한 관원이 나오지 않고서는, 이러한 모든 불만의 원인들을 고치고 다시 질서를 세울 방도가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상황은 매우 비참하게 표현되었고 모든일이 매우 슬픈 처지에까지 도달한 것으로 표현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방백이 어린아이이므로 사람마다 자기가 관원을 임명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자기가 적합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폭력을 써서라도 붙잡아 통치자로 삼으려고 할것이다. 그는 강제로 자기의 형제에게 그임무를 부과할 것이다. 이웃 사람들보다 더좋은 옷을 입었다는 사실이 그사람에게 통치권을 주기에 충분한 이유로 간주될 것이다. "너는 지혜가 있고 성실하며 경험이 많으니 우리의 관장이 되라"고 말하는 것은 다소 분별있는 말이겠으나 '너는 의복이 오히려 있으니 우리의 관장이 되라'고 말한다는 것은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직책을 맡도록 강요받은 자들은 자신들이 그책임을 감당할수 없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극구사양할 것이다(7절). 그가 소리를 높여(이말은 '손을 높이 들어'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고대부터 맹세할때마다 행해져온 의식이다)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나로 백성의 관장을 삼지말라 하리라. 통치자들은 마땅히 고치는 자가 되어야한다. 선한 통치자는 더 말할나위가 없다. 그들은 백성을 하나로 모으기위해 애써야하며 백성들사이에 있는 간격을 넓혀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억지로 관장을 삼으려고 하는 그사람은 왜 거부하였는가를 보자.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아무도 나라의 관직을 맡으려고 하지않는 것은 나라의 형편이 매우 나쁘다는 표시이다. 하나님이 나라의 형편을 이같이 슬프게 만드신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선한 뜻이 부족해서 그러신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8절). 이것은 그들의 자업자득이다.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렸기'때문에 파멸을 자초하였다. 그들은 말과 행실에서 하나님의 법을 어겼다. 마치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알면알수록 그영광을 무시할만큼 더욱더 교만해진 것처럼, 그영광을 무시할만큼 정면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노여우시게 하였다.

Ⅱ. 파멸의 네가지 원인 3:9-15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의 백성과 논쟁하신다.
(1) 하나님이 그들과 다투시는 것은 죄때문이었다. 그들은 애가탈지라도, 자신을 탓할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9절). "그들의 영혼이 불쌍한지고(이구절을 애도하는 내용으로 보아 이렇게 읽을수도 있다) 그들이 악을 자초하였도다." 그들은 점점 뻔뻔스러워졌다(9절). 이 뻔뻔스러움은 다른 어떤것 못지않게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하여 회개하지않도록 만든다. 수치를 모르는 자들은 은혜도 모르고 게다가 소망도 알지 못한다(12절). "너의 인도자(방백, 제사장, 선지자들)가 너를 잘못 인도하느니라. 그들이 너를 유혹하느니라." 학대받는 자들을 보호해야할 재판관들이 오히려 가장 무서운 압제자들이었다(14,15절). 즉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이 '포도원을 삼켰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가꾸고 보존하라는 지시를 받은 하나님의 포도원을 불살랐다(원어의 의미는 이렇다). 하나님은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심문하신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너희가 이런 일을 하기위해서 권세를 받은줄로 생각하느뇨?" 어찌하여 너희가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 이말은 너희가 마치 맷돌에 갈아지는 것같은 고통과 공포를 그들에게 주고있다는 의미이다.
(2) 이 논쟁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친히 기소자가 되신다(13절).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학대받는 자들을 위하여 백성을 심판하려고 서셨다. 여호와께서 방백들을 국문하시되(14절).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라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때 조사와 판결을 면제받지 못한다. 그 기소가 입증되다. "학대하는 자들을 보라.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그죄를 증거하도다(9절). 학대받는 자들을 보라. 그들의 얼굴에서 그들이 얼마나 사하고 학대받았는지를 볼것이라."(15절). 하나님은 자신들의 권세를 악용한 자들을 처벌하기위해 분별없이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자들은 그들위에 세우신다.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12절). 다시말해 그들은 부녀와 아이들처럼 판단력은 연약하고 열정은 강한 사람들이다. 만일 그들이 의로왔더라면 그성격이 그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성격이 그들에게 해를 끼쳤다면, 그이유는 그들이 약하거나 악해지려고 하기때문일 것이다(10,11절). 의지하는 모든 양식이 제하여질때에도 즉 아무리 기근을 당한다해도 의인은 배부름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그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즉 그들은 악에 물들지않고 자신을 순결하게 지켰다는 양심의 표시를 지닐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임하는 일반적인 재앙이 그들에게는 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악한 백성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다.

Ⅲ. 유다 부녀들의 죄 3:16-26
선지자의 임무는 모든 백성들에게 그들이 나라전체의 죄에 어떻게 참여했으며, 장차 있을 나라전체에 대한 심판에서 어떤 몫을 받는가를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여기서 그는 시온의 딸들을 비난하고 경고한다.
(1) 시온의 딸들은 여기서 두가지 일 곧 교만과 음탕때문에 비난받는다. 그들은 걸음걸이와 몸짓으로 마음속의 성향을 나타냈다. 그들은 교만하였다. 왜냐하면 키가 크게 보이도록 '목을 늘이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은 음탕하였다. 즉 '혹하게 했다'(단어의 의미가 그렇다). 그들은 기묘한 걸음걸이로 걸었다. 즉 '어기죽거려 행하며' 혹은 아주 경쾌하게 걸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발에 작은 방울을 단것처럼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냈다.' 신앙을 고백하는 여인들이 갖추어야 하는 정중한 태도로 행동을 해야할 시온의 딸들이 이러했다.
(2) 이러한 죄에 대한 형벌이 경고된다. 그 형벌은 얼굴이 거울에 똑같이 비치듯이 그죄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이었다(17,18절).
1) 그들은 '늘인 목으로' 다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하사 머리털을 자르지 않을수 없게 하시며 머리를 드러내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2) 그들은 여러가지 좋은 옷을 구하는데 돈쓰기를 아끼지 않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난과 곤경에 처하게 하여 몸을 가릴 옷조차 충분히 얻지못하게 하실 것이다.
3) 그들은 그들의 장신구를 한껏 자랑하였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집을 약탈당하고 보물을 빼앗기며 포로로 잡혀갈때 그들에게서 그 장신구들을 벗겨내실 것이다. 이것들이 어떤 종류의 장신구들이었는지를 묻는 것은 결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유행은 변하기때문에 그이름도 바뀐다. 장신구들중 대부분은 우리에게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도 모르고, 만일 그것이 그당시 유행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놀림을 받을만한 것이었으리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세마포나 두건, 면사포와 같이 점잖고 편의를 위한 것들은 그렇게 많이 또 다양하게 준비할 필요가 없다.
(3) 그들은 아주 좋은 옷을 입고 다녔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몸으로 그들 자신에게 수치와 짐이 되게하실 것이다(24절).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의복은 오래입어서 더러워질 것이다. 옷을 단단히 묶는데에 수놓은 값비싼 '띠' 대신 노끈이 사용될 것이다.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할' 것이다. 다시말해 머리털이 큰고통가운데 있을때나(15:2;렘 16:6) 심한 노역상태 가운데 있을때(겔 29:18)처럼 뜯기거나 벗겨질 것이다. 심한 굴욕의 표시로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이나 띠를 '대신할' 것이다. 그리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다. 피부가 아주 고운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햇볕에 그을릴 것이다. 얼굴이 고우면 고울수록 그만큼 더빨리 기후에 손상되는 법이다. 이 모든 사실로부터 우리는 화려하고 값비싼 것이 이끌리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장신구에 매혹당한 자가 하나도 없게될 것이다(25절). 너희 장정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시온의 수비대가 모두 죽을때 시온의 '성문이 슬퍼하며 곡하는'(26절)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성읍은 황무하게 되어, 수심에 잠긴 과부처럼 '땅에 앉을' 것이다.

# 핵심
3:1-9
예루살렘과 유다에 임할 심판의 결과에 대한 예언이다. 그들이 의지하는 모든 양식과 용사와 재판관과 선지자를 하나님이 제하여 버리시므로 그들은 정치, 종교, 경제적인 혼란에 빠질 것이다.

# 묵상
아이와 부녀 ( 3:12 )
본절에 언급된 아이와 부녀는 어리석고 감정에 쉽게 지배당하는 겁쟁이의 대명사로 유대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정치적 능력이 없는 자들의 통치는 결국 국가적인 불행을 초래하게된 것입니다.
심판이 임박할때 시온의 딸들의 행동 ( 3:16 )
교만하여 목을 늘리고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이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냈습니다. 뿐만아니라 당시의 여인들은 부패하고 교만하며, 사치스럽게 온갖 장식을 하고다녔는데, 특히 우상을 숭배하여 반달장식을 하고다녔습니다. 그들은 또한 우상숭배와 더불어 요란스런 치장과 요염한 몸짓을 통해 대낮에도 남자들을 유혹하고자 하는 음란함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가 바로 그러합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심판의 날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준비하고 깨어있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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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말일의 예루살렘의 영광에 관한 예언 2:1-5
이 예언의 제목은(1절) 이책 전체의 표제와 같다(1:1). 다만 앞에서 '이상'이라고 한것이 여기서는 '이사야가 받은바 말씀'이라고 기록했을 뿐이다. 이말씀은 말일, 곧 메시야의 날에 관한 예언으로 시작된다. 그때 메시야의 왕국이 모세시대의 맨마지막에 세상에 세워질 것이다. 지상의 예루살렘의 마지막때에, 즉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직전에 이 하늘의 예루살렘이 세워질 것이다(히 12:22;갈 4:26). 복음시대가 곧 말일이다. 그이유로는 첫째, 구약의 성도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복음시대가 마침내 도래했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는 우리가 복음안에서 받는 것외에 또다른 어떠한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지기를 기대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갈1:8,9). 셋째, 우리는 마지막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요일 2:18).
선지자는 다음의 사실들을 예언한다.
(1) 세상에 기독교는 신앙을 심을 것이다. 그때에 기독교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될것이다. 그때에는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가 모든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들의 집결지가 될것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점들이 약속된다.
1) 기독교 신앙이 공공연히 전파되고 고백될 것이다. 그것이 산꼭대기에 '마련되어'(어떤 역본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보고 듣게될 것이다. 사도들이 행한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었다(행 26:26). 기독교는 횃불의 빛이었고 높이 세우진 깃발이었다.
2) 기독교 신앙이 굳게서서 뿌리를 박을 것이다. 그것은 영구한 산꼭대기 '반석'위에 세워질 것이다. 그래서 '음부에 권세가' 산을 뿌리채 뽑지않는한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3) 기독교 신앙은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모든 경쟁에서 앞설 것이다. 모든 작은 산위에 뛰어나리니. 감추인 이 하나님의 지혜는 이세상의 모든 지혜, 곧 세상의 모든 철학과 술책을 무색하게 만들 것이다.
(2)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안에 들어올 것이다. 열방들, 곧 할례받지 않아서 예루살렘 성전뜰에 들어오지 못하게 금지된 자들이 교회에 들어오도록 허락될 것이다.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즉 많은 무리가 교회에 들어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일 것이다.
(3) 이러한 개종자들이 모여서 서로에게 도움과 격려를 줄것이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비록 그것이 오르막길이고 힘들지라도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올라가도록 도우시는 '여호와의 산'이라." 복음의 교회가 여기서는 '여호와의 산'으로뿐만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의 전'으로도 불려진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야곱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과 기도하는 그의 후손이 남아있고 그언약의 성취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도를 배우기위해 그의 거룩한 산에 오르는 것은 수고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리고 기꺼이 그러한 수고를 하는 자들은 그들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않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도를 우리에게 가르치시며 우리는 그길로 행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의무를 가르쳐주신다면 은혜로 우리에게 그것을 행할 결심을 주시리라."
(4) 이말씀에 의해 이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옛날에 모세의 율법이 시내산에서 나왔듯이 '율법' 즉 신약의 율법인 그리스도의 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도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다. 복음은 율법이며 믿음의 법이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시온산에 있는 성전에서 제자들은 복음을 전파하였다(행 5:20). 복음교회가 '모든 산위에 굳게서는' 것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 이복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5) 이세상에 구속주의 왕국이 설것이다. 그가 열방사이에 판단하시며. 하나님은 사람들 양심에 역사하시는 그의 신을 통해서 사람들을 판단하고 시험하며 저지하신다. 그의 나라는 영적인 나라이므로 이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6) 복음이 세상에서 성공을 거둔 결과로 큰평화가 임할 것이다(4절). 무리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때는 지금처럼 '이나라와 저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더이상 전쟁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의 목적과 취지는 평화를 이루고 모든 적의를 없애는 것이다. 복음에는 평화를 향한 가장 강력한 의무와 권유가 들어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것이 효과를 나타내는한, 사람들로하여금 화평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심령을 부드럽게 하고 즐겁게 만든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속에 풍성히 뿌려지면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게 될수밖에 없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형제애로 유명하였다. 그들의 적들조차 그점을 인정하였다. 여기에 이 모든 사실로부터 끌어낸 실제적인 결론이 있다(5절).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여기서 선지자는 야곱 족속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육체를 따라난 이스라엘 족속이나 영적인 이스라엘이나 야곱의 하나님께 나아온 모든 백성을 다 의미한다. 하나님이 그 도를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인가? 그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실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이 평안의 빛에 즐거이 행하자. 이제 더이상 전쟁이 없을 것인가? 그렇다면 계속해서 우리의 길을 기쁘게 행하자.

Ⅱ. 야곱의 죄악 2:6-9
(1) 이스라엘의 운명 : 그들의 운명은 본문의 처음과 마지막에 있는 두마디로 표현된다. 그 두마디는 무서운 말이다.
1) 그들의 사정은 이러했다(6절).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하나님이 버리신 백성들의 상태는 비참할수밖에 없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한후 유대교회가 비참한 상황에 빠졌던 것으로 보아 알수 있다.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마 23:28).
2) 그것은 완전히 절망적인 사정이었다(9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이 예언적인 기도는 그들이 용서받지못할 것이라는 경고가 된다. 이 예언은 특정한 사람들에게 관련된 것이 아니라(그들중 많은 사람이 이미 회개하여 용서받았다), 유대민족 전체에 관련된 말이다.
(2) 그러한 운명에 떨어지게 된 이유들 :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하나님을 노하시게하여 그의 백성을 버리게 만든 죄악 때문이다. 선지자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죄악이 그당시 그들사이에 가득했었다. 그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 가게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하여 일시적으로 거절하신다. 이사건은 여기서 언급된 죄들이 가져온 결과이었고, 로마군에 의하여 그들이 최종적으로 파멸당하리라는 사실에 대한 예표였다.
1)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그들을 특별한 백성으로 따로 세우사 다른 모든 백성들위에 높이셨다(민 23:9). 그러나 그들에게는 '동방풍속이 가득하였다.' 그들은 외국인들을 "귀화시켰고" 그들을 격려하여 자기들가운데 정착하도록 하였으나 결국 그들과 뒤섞였다(호 7:8). 그들의 땅에 아랍 사람들과 갈대아 사람들, 모압 사람과 암몬 사람들이 살게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들과 더불어 그민족들의 풍속도 받아들였고,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다.' 이렇게함으로써 그들은 자신의 명예와 언약을 더럽혔다.
2)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의 계시와 성경, 그리고 선지자를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이들을 무시하고 오히려 블레셋 사람같이 술객이 되어 점술을 끌어들였으며 별이나 구름, 새의 이동이나 짐승들의 내장을 보고서 비밀을 발견한체하거나 장래 일을 예언하는 척하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블레셋 사람들은 복술자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자들이었다(삼상 6:2).
3) 하나님께서 자신이 그들의 부와 힘이 되신 것을 보증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언약을 믿지않고, 오히려 금을 신뢰하고 말과 병거를 갖추며 자신의 안전을 위해 그것들을 의지하였다(7절). 금이나 은을 갖고 말과 마병을 갖춘 것이 하나님을 노하시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덮어놓고 탐을 낸것이 노하시게 한 원인이었다.
4)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을 위해 예배의식을 정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제정하신 제도를 모두 무시하였다(8절). 그들의 땅에는 우상이 가득하였다. 성읍마다 자기 신을 두었다(렘 11:13). 우상을 좋아하는 자들은 우상을 더늘릴 것이다. 그들은 아주 어리석게도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공경하였다.' 하나님께서 은과 금을 풍성히 주셨더니 그들은 그 은금을 가지고 우상을 만들었다.
5)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명예롭게 하셨으나 그들은 자신들을 천하게 낮추었다(9절). 천한 자도 절하며. 그들이 절하였던 우상들이란 이성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가장 비천한 피조물보다도 못한 생명없는 물건에 불과한 존재들인 것이다. 무식한 자들만 이렇게하는 것이 아니다. '귀한 자'도 자신의 위엄을 잊고서 스스로 천하게 되어 우상을 섬기고 자신이나 매한가지인 사람을 신으로 삼으며 자신보다 훨씬못한 돌을 신성시했다.

Ⅲ. 하나님의 심판예고 2:10-22
선지자는 여기서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실때 그들의 땅에 어떠한 황무함이 임하리라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예언은 특별히 첫번째는 갈대아인들에 의한 그리고 후에는 로마인들에 의한 그들의 파멸에 적용될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일을 하시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과 그의 심판을 무시한 죄인들을 깜짝 놀라게하여 일깨우시기 위해서이다(10절). 너희는 바위틈에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아주 두려운 심판으로 너희를 덮치실 것이므로 너희는 '바위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을 피하여야할 것이라. 너희는 용기를 완전히 잃고 나뭇잎이 떨듯이 두려워 떨것이라." 19절도 같은 의미로 쓰였다. 사람들은 아주 깊고 어두운 곳인 '암혈과 토굴'로 들어간 것이다. 이일은 특별히 로마인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할때(눅 23:30)와 박해하던 이방 권세자들이 멸망할때(계 6:16)에 일어날 것이다. 여호와의 위엄과 그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에게로 피하려고 하지않는 자들은 결국 그를 두려워하고 그를 피하여 헛된 피난처에 숨지않을수 없게될 것이다. 땅자체가 흔들릴때는 토굴속에 숨으려는 생각도 허사가 되고말 것이다. 그때에는 하나님과 위엣 것들외에는 아무런 은신처도 없을 것이다.
(2) 교만한 죄인들을 낮추고 굴복시키기 위해서이다(11절).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이말은 17절에서 반복된다.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사람들의 오만이 교만의 악을 깨우치게 하고 겸손케 만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나, 혹은 그들이 자랑하는 모든것을 빼앗아가며 비천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꺾일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홀로 높임을 받으시려고' 하기때문에 이일을 행하실 것이다. 또한 행하시되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낮추며 비천하게 만드는 심판에 의해서 행하실 것이다(12절). '만군의 여호와의 한날', 즉 그의 진노와 심판의 날이 '모든 교만자'에게 임할 것이다. 여기서 이날이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에게 임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의 날은 가장 곧고 당당한 '레바논의 백향목'과 가장 강하고 억센 '바산의 상수리나무'(13절)와 본래 높은 것들, 즉 골짜기위로 치솟고 하늘을 찌를듯이 보이는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작은 산'(14절)과 사람의 손으로 만든 '모든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에 임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15절). 이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1) 스스로 자기들은 백향목이나 상수리나무같이 견고하게 뿌리를 박아 어떠한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자기둘레에 있는 모든 사람을 관목처럼 보는 교만한 자들을 의미한다. "가장 높은 산은 가장 많이 벼락을 맞는다." 요란한 종이 매달려있는 '높은 망대'(이 망대는 천연적으로 견고하게 요새화되어 있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외부의 어떠한 침공으로부터도 스스로를 강하게 방비할수 있다)와 같은 교만한 자들이 넘어질 것이다.
2) 특별히 그들이 자랑거리로 삼아 떠벌이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그들이 신뢰하던 모든 방비를 그들에게서 빼앗아가실" 것이다. 그들은 널리 해외로 뻗어가는 그들의 무역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이 '다시스의 모든 배'에 임할 것이다. 그배들은 바다에서 침몰하거나 항구에서 파선할 것이다. 또한 여호와의 날이 '아름다운 조각물'에, 또한 그들이 여러나라로부터 배에 싣고 돌아온 진기한 그림에 임할 것이다.
(3) 우상숭배자들이 자기들의 우상과 그우상에게 표시한 경의로인해 부끄러움을 당하게하기 위해서이다(18절).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때(17절) 교만한 자들뿐만 아니라 신을 가장한 모든것으로 하여금 더욱더 큰모욕을 당케하실 것이다. 우상을 섬기던 자들이 그것을 버릴 것이며 그의 원수들이 그것들을 부술 것이다. 자기를 섬기는 자들을 안전하게 지키지 못하는 우상들은 자기 스스로도 지키지 못한다. 우상을 섬기던 자들은 그것들의 허위를 깨닫거나 자기들을 도울수 없는 무능력을 경험함으로써 그것들을 버리게될 것이다(20절). 하나님의 심판에 놀라 암혈에 들어갈때,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으로 삼아 곤경에 처했을때 도와줄 것으로 기대하던 그들의 우상을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질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로하여금 그들이 가장 좋아해온 우상들에 대해 넌더리를 내게하실수 있다.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은과 금을 자기의 우상으로 삼는다. 즉 돈을 자기의 신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것을 신뢰했던만큼이나 짐으로 느끼게 되는때가 올것이다. 선원들이 바다에 물건을 버리고 심지어 '밀을' 던진때도 있었다(욘 1:5;행 27:38). 박쥐와 두더지가 사는 컴컴한 굴속은 눈은 있으나 보지못하는 우상들에게 가장 적합한 장소이다. 사람들이 죄를 싫어하고 거기서 떠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렸던 것을 진정으로 회개하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단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비열한 두려움 때문일수도 있다.
(4) 육신의 팔을 의지한 자들로하여금 그들의 믿는바로 인해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22절).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참으로 연약한 것이 사람이라. 사람의 '호흡은 코에 있어' 순간마다 내뿜어졌다가 이네 영구히 사라지고 마느니라. 너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그를 두려워하지 말며 그를 기대하지 말라. 다만 하나님의 능력을 우러러보라. 사람의 모든 능력은 그중의 일부일 뿐이니라. 오직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만 소망을 둘지니라."

# 핵심
2:1-4
메시아 시대에 대한 예언이다. 메시아 시대에는 이방인들이 구원에 참여하며, 공의로 다스리는 메시아의 통치아래 더이상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평화를 누리게될 것이다.
동방풍속(2:6)
동방은 지리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동쪽, 즉 앗수르, 아람, 바벨론 등을 가리킨다. 이 나라들은 고대근동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동방풍속이란 이 나라들의 종교적, 사회적 풍속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특히 이 나라들의 종교적 악습, 곧 우상숭배의 풍속을 본받았는데, 이를테면 그모스, 바알브올, 몰록, 별(왕하 21:3-6), 벨과 느보(렘 50:2), 담무스 숭배(겔 8:14) 따위를 들수 있다.

# 묵상
야곱 족속을 버리신 하나님 ( 2:6 )
그들에게 동방풍속이 가득하고 블레셋 사람같이 술객이 되었으며 이방인과 언약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적인 종교적 타락이요, 그들이 우상숭배자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야곱 족속이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의 제사장 족속이 되기로 하나님과 굳게 언약한것을 잊었으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여호와의 한날 ( 2:12 )
‘주의 날’, ‘종말의 날’이라고도 불리우는 이날은 심판의 날을 의미합니다. 이날은 죄인들에게는 형벌이 주어지는 심판의 날이고, 의인들에게는 축복의 상급이 주어지는 구원의 날입니다. 궁극적으로 이날은 사탄의 모든 세력들이 결박당하여 영원히 멸망받게 되는 최후심판의 날이 될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있음을 생각하고 신앙의 절개를 끝까지 지키면서 그날을 소망가운데 기다리는 자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의 위엄과 영광 ( 2:21 )
이는 세상과 사람들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때 롯의 가족이 소알성으로 피하여 심판받는 것을 목도할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으로는 감당할수 없이 두렵고 큰것이므로 이를 피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심판을 피할수 있는 방법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피난처가 되십니다.
의지하지 말아야할 인생 ( 2:22 )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으로서, 여기서는 특히 방백들이나 점술가들을 믿지말라고 하는 뜻입니다. 아무리 많은 권세를 가진 자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의 호흡을 거두시면 그는 죽은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일시적인 존재에 불과한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존재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섬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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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책전체의 표제 1:1
(1) 선지자의 이름 : '이사야'(Isaiah)라는 이름은 신약에서 Esaias로 읽힌다. 그의 이름은 "여호와의 구원"이란 뜻인데, 이것은 특별히 구주이신 예수에 대해서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큰구원에 대해서 아주 많은 예언을 했던 이 선지자에게 적합한 이름이다. 그는 유다왕 아마샤의 형제 혹은 그의 아들인 '아모스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전승은 어떤 선지자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될 경우 그아버지 역시 선지자였다고 하는 규칙만큼이나 불확실한 것이다.
(2) 예언의 성격 : 이 예언은 이상이다. 그당시 선지자들은 '선견자'라고 불리었기때문에 그들의 예언이 '이상'이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그가 마음의 눈으로 본것이었으나,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마치 육신의 눈으로 본것처럼 분명하게 본것이었다.
(3) 예언의 주제 : 이책에는 바벨론, 애굽, 두로 그리고 그밖의 이웃의 여러나라들과 관련된 장들이 여럿있다. 그러나 이책에 주로 예언된 대상으로부터 제목을 택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사야는 다음과 같은 특별한 방법으로 유다 백성들의 의식을 일깨운다.
1) 교훈으로 일깨운다. 하나님의 이계시는 이 백성들에게 향한 교훈이다.
2) 책망과 경고로 일깨운다. 만일 유다에서 또는 예루살렘에서 죄악이 발견되면 그들은 다른 어떤 배경들보다 빨리 그에 대한 셈을 치루게될 것이라는 경고이다.
3) 아간때에 위로와 격려로 일깨운다. 시온의 자녀들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게될 것이라는 위로의 말씀이다.
(4) 예언의 시대 : 이사야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예언하였다. 이사실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점을 알수 있다.
1) 그는 오랫동안 예언하였다. 만일 그가(유대인들의 전승에서처럼) 마침내 므낫세에게 톱으로 켬을 당하여 죽었다면 실로 오랫동안 예언을 한 셈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바울이 히브리서 11:37절에서 이사건을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웃시야왕이 죽던 해부터(6:1) 히스기야왕이 병들었다가 회복될때까지는 40년의 기간이 있었다. 그가 그기간의 전후로 얼마나 많이 예언을 했는지는 확실히 알수 없다.
2) 그는 여러시대를 거쳤다. 요담은 선한 왕이었고, 히스기야는 그보다 더 선한 왕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틀림없이 이 선지자에게서 조언을 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왕사이의 기간, 그러니까 이사야가 한창 나이었을때인 아하스의 통치는 매우 불경하고 악했다.

Ⅱ. 유다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고발 1:2-9
(1)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을 하면서도 그의 백성들이 경청해줄 것을 기대하지 않고 하늘과 땅에다 말을 한다(2절).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이들에게 말을 한 이유는 창조의 법을 지키고 창조의 목적에 부응하는 무생물들이, 이 어리석고 무감각한 백성들보다 빨리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말의 의미는 하늘의 빛은 하나님의 백성의 어두움을 부끄럽게 하고 땅의 풍요한 열매는 그들의 황무함을 부끄럽게 하며 하늘과 땅이 제시간을 지키는 엄수성은 그들의 불규칙함을 부끄럽게 하라는 의미이다. 모세도 신명기 32:1절에서 그렇게 말을 시작하였다.
(2) 그는 그들의 비열한 배은망덕을 책망한다. 하늘과 땅조차 다음 두가지 사실을 듣고 놀랄 것이다.
1) 그처럼 불평이 많고 하나님을 진노케하는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처사이다. "나는 그들을 어린아이처럼 먹이고 키워왔도다. 그들은 잘먹고 잘 배워왔도다"(신 32:6).
2) 그처럼 자상하게 보살피신 하나님께 대하여 그들이 행한 비뚤어진 행위이다.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그는 이러한 사실을 무지와 분별없는 탓으로 돌린다(3절). 소는...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못하고. 다음의 사실들을 주목하자.
1) 피조물중 가장 우둔한 종류인 소와 나귀의 총명 : 소는 주인을 알고 그를 도울만큼 자기의무에 대한 의식을 갖고있다. 나귀는 자신이 거하는 주인의 마굿간을 알고 그것을 지킬만큼 자기권리에 대한 의식을 갖고있다. 그러나 사람은 지식에 있어서조차 이 어리석은 동물들에게 부끄럼을 당하고 그들에게 가서 배우도록 보내질뿐만 아니라(잠 6:6,7), 그들을 본받아야할 정도까지 되었다(렘8:7).
2) 이스라엘의 어리석고 우둔함 : 하나님은 그들의 주인이며 소유자이시다. 그는 우리를 지으셨고 잘 기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는 자들중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전능자가 무엇이길래 우리가 그를 섬겨야하는가?" 그들은 알지못하고 생각지 않는다. 사실 그들은 알고있긴 하지만 알고있는 것을 깊이 생각지 않기때문에 그지식이 그들에게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한다. 그들은 그지식을 자기들의 문제에 적용하지도 않고 그지식에 관심조차 쏟지도 않았다. 우리가 알고있는 것을 생각지않는 것은 우리가 알아야하는 것을 알지못하는 것만큼이나 신앙적인 면에서 우리에게 큰적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람들은 하나님께 반항하고 그를 거역하였던 것이다.
(4) 그는 유다 백성의 교회와 나라의 부패를 슬퍼한다. 죄라는 전염병이 만연하여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다 그것에 감염되었다. 범죄한 나라요(4절).
1) 사악함이 나라전체에 널리퍼졌다. 그들은 범죄한 민족이었다. 백성들의 대부분이 사악하고 불경하였다. 그들의 사악함이 '납조각'처럼(슥 5:7,8) 그들을 덮었다. 그들은 나쁜 줄기에서 생겨난 '행악의 종자'였다. 반역심이 혈통을 따라 내려가. 그들은 모두 반역자의 혈통이요 후손이었다. 그들은 '부패한 자식'이었을뿐만 아니라 부패케하는 지식 즉 악을 퍼뜨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악을 감염시키는 자식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고의적으로 '만홀히' 여겼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그거룩한 자를 화나게 만들수 있는가를 알았으며 또 그렇게하였다.
2) 그는 온통 문둥병이 퍼진 병든 몸이나 욥처럼 짓무른 종기가 가득한 몸을 비유로 들어 위의 사실을 설명한다(5,6절). 병이 신체의 중요한 부분들을 뒤덮었고 그래서 곧 죽게되었다. 그들은 판단력까지도 부패해졌다. 즉 문둥병이 머리속까지 퍼진 것이다. 문둥병이 온몸에 퍼져서 몹시 악취가 났다. '성한 곳이 없이' 즉 건전한 도의도 없고 신앙도 없이(왜냐하면 신앙은 영혼이 활력이기 때문이다) '상한 것과 터진 것' 즉 죄악과 부패 뿐이었다. 병을 고치기위한 어떠한 시도도 하지않았고, 설혹 하였다고하더라도 그것은 효과가 없었다.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죄가 회개되지 않고 남아있는한 그상처는 유하게 함을 받거나 싸매지지 않으며 그것을 치료하기 위한 어떤행위로도 처방받지 못한다.
(5) 그는 비록 그들이 자초한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그것을 몹시 슬퍼한다. 그들의 나라는 거의 파멸되었다(7절). "자 너희 나라가 어떤 지경에 처했는가 보라."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의 식물이 되어야할 토지의 열매를 '이방인들이 너희 목전에서 삼킬' 것이나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못할 것이다. 너희 원수는 물리도록 먹는데 너희는 굶주려 죽을 것이라." 시온의 딸같은(시온위에 세워진 성전은 예루살렘에게는 어머니였다) 예루살렘이 이제는 파멸되고 황폐되었으며, 포도수확기가 끝나 아무도 거하지 않는 '포도원의 망대'같은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에워싸인 성읍' 같은 그곳에 가까이 가기를 무서워하였다(8절). 이말씀은 아마도 아하스 치세때에 즉 유다가 아람, 이스라엘, 에돔,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침략당하여 많은 수가 죽고 포로로 잡혀간때에(대하 28:5,17,18) 전파되었던것 같다. 국민의 불경건과 부도덕이 나라의 황폐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전혀 개심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은 또다른 방침을 취하겠다고 경고하신다(5절). 하나님은 때때로 의로운 심판의 한가지 방법으로써, 오랫동안 제멋대로 지내온것 때문에 멸망시키려고 작정하신 자들을 징계하시기를 멈추기도 하신다.
(6) 그는 이러한 전반적인 부패와 황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징표가 될 남은 자를 생각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한다(9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배교가 만연한 시대에 순결함을 지켜주시고 공통적인 재난에서 안전하게 살려주신 자들이 조금 남아있었다. 바울은 이구절을 인용하여(롬9:27) 그의 당시에 유대 민족중 기독교를 받아들인 소수의 사람들에게 적용하였다. 이렇게 남겨두신 자들은 흔히 매우 적은 수이다. 수가 많은 것이 참된 교회의 표징은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에게도 적은 무리밖에 없었다. 완전한 멸망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이 멸망에 얼마나 가까이 가 있었는지를 돌이켜보고, 그멸망을 몸으로 막은 소수의 선한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얼마나 큰빚을 졌으며, 이같이 선한 사람들을 남겨두신 분은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좋다.

Ⅲ. 외식적인 종교의식들에 대한 거절 1:10-15
(1) 하나님은 자신의 말을 듣도록 그들을 부르신다(그러나 그것은 무위로 돌아간다, 10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붙이시는 호칭은 매우 이상하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이말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소돔과 고모라처럼 만드는 것이 공의로운 일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9절). 여기서 선지자는 그 관원들에게 소돔의 관원이라고 정면으로 공격한다. 왜냐하면 그는 오랜후에 처형되었다고 한다. 그들에 대한 선지자의 요구는 매우 정당하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려고 하시는 것을 경청할지어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의 법으로 삼을지어다."
(2) 하나님은 정당한 이유로 그들의 기도듣기를 거절하시고 그들의 예배, 즉 그들의 제사와 번제물, 제물의 기름과 피를 받으시기를 거절하신다(11절).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뜰에 들어오는 것(12절), 예물과 분향, 엄숙한 집회(13절) 그리고 월삭과 정한 절기(14절), 신앙적인 요청까지도(15절) 거절하신다. 그들은 손에 피가 가득했기때문에 일체를 다 거절당한 것이다.
1) 신앙의 능력에 대해서는 외인, 아니 오히려 운수이면서도 신앙의 형식과 그림자에 대해서는 매우 열심을 보이는듯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범죄한 나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제단앞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려지는 희생, 곧 화목제물과 번제물을 가져왔다. 그들은 말을 많이 하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이라고 생각하여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참된 신앙심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앞에 '보이러'(12절), 즉 하나님앞에 "보여지기 위해"(어떤 역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나왔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였다. 그들은 법과 공의를 구실삼아 살인, 약탈, 압제를 행하였던 것이다. 악의는 하나님께 있어서 마음의 살인과 같다.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사실 손에 피가 가득한 자이다.
2) 죄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지라도 죄를 버리고 생활을 고치기보다는 자기들의 종교적인 열성에 매달리기 쉽다.
3) 악한 백성들이 아무리 성대하고 값비싼 제물을 바친다해도 마음과 생활의 철저한 개혁이 없이는 하나님께 전혀 열납되지 않고 오히려 가증스러운 것이 된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이 여기서 아주 다양한 형태로 표현됐다. 아니, 순종이 없는 제사는 차라리 하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며 화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의 제사는 무익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묘사된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11절). 그것은 '헛된 제물'이다(13절). 하나님이 제정하신 제도들에 대한 그들의 열성은 모두가 헛된 수고였고 선한 어떤 목적에도 부합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12절). 그들이 기도할지라도 하나님은 들으려고하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그들이 많이 기도할지라도 그 기도가 신앙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희의' 제사이지 내가 원하는 제사는 아니라. 나는 그것들에 '배불렀고' 물리기까지 했노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뜰에 들어오는 것을 '마당을 밟는 것' 혹은 마당을 유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분향'은 비록 그냄새가 아주 향기로웠을지라도 위선적으로 그리고 악한 의도로 드려진 것이기때문에 하나님께 가증하게 여겨졌다. 하나님은 그들의 '성회'를 견딜수 없었고 인내심을 가지고 두고볼수도 없으셨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를 듣는 것은 결코 싫증을 느끼시지 않지만, 악인의 값비싼 제물은 이내 싫증을 내신다. 죄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심지어 기도와 신앙적인 봉사조차도 하나님께서 지겨워하실만큼 미워하시는 것이다. 가장된 경건은 이중적인 죄악이다.

Ⅳ. 회개와 개혁의 촉구 1:16-20
(1) 회개와 개혁을 촉구하신다. "너희의 제사가 열납되고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라거든 너희는 처음부터 일을 바르게 시작하라. 돌이켜 내 법을 지키라. 그렇지않으면 너희의 신앙적인 모든 행위가 받아들여질 것을 결코 기대하지 말라." 공의와 자선이 결코 무신론과 신성모독의 죄를 면해주지 못하듯이, 기도와 제사도 결코 사기와 압제의 죄를 면해주지 못할 것이다.
1) 그들은 '악행을 그쳐야' 한다. 즉 더이상 사람들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되며 더이상 무죄한 피를 흘려서도 안된다. 이것이 몸을 씻되 '스스로 씻으라'(16절)는 말의 의미이다. 우리는 추잡한 죄짓기를 삼가함으로써 악행을 버려야할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죄의 뿌리와 습관도 버려야 한다.
2) 그들은 '선행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그들의 회개를 마무리짓는데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선을 행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선을 행해야 한다. 우리는 선행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깨닫기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특별히 두번째 돌판에 있는 의무들을 강력히 요구하신다.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바른 것을 알아내어 그것을 행할수 있도록 하라. 그리고 학대받는 자들, 곧 고아와 과부의 원수를 갚아주어라. 그렇게함으로써 오만한 자들이 연약하고 힘없는 그들을 짓밟지 못하게 하라. 스스로 자신을 변명하지 못하는 자들, 그리고 너희의 친절에 보답할만한 돈이 없는 자들을 위해 대변해 주어라."
(2) 그들과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정의에 관하여 이성적으로 논쟁하자고 권하신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한 한 내게 무수한 재물을 가져올지라도 나는 결코 너희와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 그러나 너희가 씻되 스스로 씻는다면 얼마든지 내게 가까이 나아올수 있도다. 우리가 그문제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자." 신앙심을 갖게 되는데에는 그나름대로 동기가 있다. 이세상에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대로 행해야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이 변론에서 우리가 할일은 단지 죄를 자복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면 자연히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실 것이다.
1)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만일 그들이 회개하고 생활을 고친다면 이전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다시 받으리라는 것이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수 없다. 여기에는 어떤고해도 부과되지 않고 더무겁게 만들어진 멍에도 없다. 하나님은 "너희가 완전하게 순종한다면"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희가 기꺼이 순종하려고 한다면"이라고 말씀하신다. 자원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든 죄가 용서될 것이며 다시는 언급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죄가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또한 우리가 자주 배역하여 죄에 빠졌고 옷이 주홍물감에 담겨있듯이 죄에 오랫동안 잠겨있었을지라도, 용서하시는 자비가 그죄를 완전히 지워없앨 것이다. 우리가 회개와 개심으로 스스로 씻는다면(16절) 하나님은 완전한 용서로 우리를 희게 만드실 것이다. "즐겨 순종하기만 한다면 너희가 '땅' 곧 약속의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라." 죄를 용서받으면 음식물이 참된 위안이 된다.
2) 그들이 만일 계속해서 완고하게 순종치않는다면, 여호와의 법에 따른 판결이 그들에게 실행되리라는 것밖에 아무것도 그들은 기대할수 없었다(20절).

Ⅴ. 멸망의 경고와 개혁의 약속 1:21-31
(1) 선지자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한 타락을 슬프게 탄식한다. 왕의 성읍인 예루살렘은 신실한 곳이었다. 즉 하나님에게와 사람들중에 있는 하나님나라의 권익에 충실하였고, 유다의 공익에도 충실하였다.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공의가 정당하게 집행되었다. 우리가 그가운데 거하였더니. 아름답고 정숙한 배우자가 이제는 간음한 여인이 되었다. 이제는 공의가 예루살렘에 더이상 거하지않고 살인자들이 거기서 버젓이 살았다 방백들 자신이 아주 잔인하고 심한 압제를 하였으므로 살인자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예루살렘의 부패가 구체적으로 설명된다(22절).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관원들의 이러한 부패는 조화가 변조되거나 은이 찌끼로 바뀌는 것만큼이나 그나라에 치욕과 손해가 된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고. 그래서 맛이 없고 시큼하게 되었다. 찌끼도 은처럼 빛날수 있고 물이 섞인 포도주도 그빛깔은 간직할수 있다. 그러나 그 어느것도 전혀 가치가 없다. 이렇게 그들도 덕과 공의의 모양은 갖추고 있었지만 참된 의미의 덕과 공의는 전혀 간직하고 있지 않다. 다른 사람들로하여금 하나님께 충성하고 율법에 복종하게 해야할 사람들이 오히려 반역을 하여 하나님과 그의 율법을 무시한다. 도적을 막아야할 자들이 오히려 도적과 짝한다. 그들은 도적을 보호해주고 부정한 소득을 함께 나눈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득을 보려고만 마음먹는다. 즉 그일이 옳든지 그르든지 상관없이 자기들의 지위를 할수 있는한 최대한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그들은 손해당한 자들을 보호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였다. 즉 고아들을 보호하는데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난한 과부가 송사를 가져올때 뇌물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은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한다.
(2) 이러한 슬픔의 원인들을 시정하려는 결심이 세워진다(24절).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말한 것을 이루실 능력이 있으신 분께서)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마음을 편케하겠고. 하나님께서는 이 짐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할때와 방법을 찾아내실 것이다. 만일 신앙을 고백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4절)이신 그분의 형상을 따르지않는다면 그들은 이스라엘의 전능자이신 그분의 손의 압박을 맛보게 될것이다. 비록 교회안에 많은 찌끼가 있을지라도 교회는 버려지지 않고 정련될 것이다(25절). 내가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악은 억압될 것이고 압제자는 해를 끼칠 권세를 빼앗길 것이라." 한민족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 고유의 일이다. 내가 나의 손을 네게 돌리리라. "내가 처음에 신앙을 심기위해서 했던 그일을 이제는 신앙을 되살리기 위해서 행하리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한 행정관들과 사역자들을 보내심으로써 그일을 행하신다(26절).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하여 행악자들에 대해 법을 시행하게 하고 공무를 처리하게 하리라."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의의 원칙들을 심으시고 그원칙들에 의해 그들의 생활을 다스리심으로써 그일을 행하신다(27절). 외부적인 억압을 받을때에도 사람들은 많은 것을 행할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의 감화로써 그일을 효과적으로 행하실 것이다. 여호와께 구속받은 자들은 모두가 개심하게 될것이고 그 개심으로인해 구속될 것이다. "그 '귀정한 자' 혹은 '돌아오는 자'(어떤 역본에는 이같이 되어있다)는 의로 구속되리라." 사람들의 덕이 되살아날때 그들의 명예도 회복된다. 그리한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고침받기를 싫어하는 자들은 징벌만 받는 것이 아니라 멸망하게될 것이다. 신앙심이라고는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내어버린 노골적인 신성모독자나, 신앙고백이라는 가면을 쓰고서 악한 생활을 하는 위선자나 다같이 멸망할 것이다. 이전에는 여호와와 연합해있었으나 이제 '여호와를 버린 자도,' 수로가 샘에서 끊어지면 그속에 흐르던 물이 이내 끊어지듯이 곧 '멸망할 것이다.' 그들의 우상, 즉 '그들이 기뻐하던 상수리나무와 그들이 택한 동상도' 그들을 돕지못할 것이다. 즉 그들이 숲속의 푸른나무 아래서 예배하였고 그것때문에 참된 하나님을 버렸으며, 집안에서 은밀히 예배하던 우상들이 그들을 돕지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죄인들의 행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로인해 수치를 당할 것이다(29절). 그러면서도 그들은 뉘우치는 빛을 보이지않고 다만 절망하는 빛만 보일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우상으로 인하여도 수치를 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우상들 자체도 '사로잡혀 갈' 것이기 때문이다(참조. 46:1,2). 그우상들은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31절). "강한 자는 '삼오라기'같아 이내 부서져 토막토막 끊어질뿐만 아니라 쉽게 불이 붙을 것이라. '그의 행위는 불티같아서' 그 삼오라기를 태울 것이라." 이 모든 말씀은 다음 몇가지 사항에 적용될수 있다.
첫째, 아하스의 몹시 타락한 통치이후 히스기야 시대에 일어난 복스런 개혁의 활동에 적용될수 있다.
둘째, 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되돌아오는 것에 적용될수 있다.
셋째, 복음의 나라와 성령의 부으심에 적용될수 있다. 이 성령의 부으심에 의해서 신약의 교회는 새예루살렘, 의의 성읍이 될것이 틀림없다.
넷째, 그리스도의 재림에 적용될수 있다. 그때에 그는 자기의 타작마당을 완전히 정결하게 하실 것이다.

# 핵심
1:1-9
유다의 죄악상을 지적하시는 말씀이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을 거역함으로써 징계를 자초했다.
이사야(1:1)
유다의 상류계층 출신으로 왕족과 폭넓은 교제를 나누면서 외교문제에 대해 자문하는 역할을 했다. 이사야는 웃시야왕이 죽던해(B.C. 740년경)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때까지 약 60년동안 예언활동을 전개했다.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는 므낫세의 통치기간 중인 B.C. 680년경에 톱으로 몸이 잘려 순교당했다고 한다. 메시아의 구속사역에 관한 수많은 예언들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이 이사야서에 뚜렷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사야는 ‘복음적 선지자’라고 불린다.

# 묵상
이사야 예언의 특징 ( 1:1 )
이사야 예언의 특징은 미래에 대한 계시 혹은 이상(異像)이라는 점입니다. 이상을 다른 말로는 환상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환영을 보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전달하는 독특한 수단을 가리킵니다.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는 하나님 ( 1:11 )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제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불의한 자들의 예배는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은 종교행사의 외면적 거룩함보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내면적 거룩함을 원하십니다. 예를들면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보다는 자기 마음대로 제사를 드리다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기도가 상달되지 않는 이유 ( 1:15 )
그것은 기도자의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자의 손에 피가 가득하다함은 기도자의 악행을 말하는 것으로(1:13), 악과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한다고할지라도 그예배와 기도는 응답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또한 공의로우시므로 불의한 자를 참지못하시며 외면하시기때문에 그들은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사야 당시의 부패상황 ( 1:22, 23 )
은이나 포도주 등에 혼합물이 섞이며, 방백들은 뇌물을 구하고 불쌍한 자들의 억울함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무엇보다도 공평해야할 백성들의 관원이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치부하는 악습은 오늘날에도 쉽게 발견할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불의를 행치않고 빛과 소금이 되어야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마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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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끈질긴 사랑

 

[이사야 49장 5절~15절]
5절 -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6절 -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7절 -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8절 -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9절 -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10절 -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11절 -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12절 -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13절 -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14절 -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절 -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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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이사야 4장 2절~6절]
2절 -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3절 -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절 -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5절 -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6절 -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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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희망을 걸겠습니다

 

[이사야 26장 7절~15절]

7절 -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8절 -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9절 -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10절 -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11절 -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오나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들을 사르리이다
12절 -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의 모든 일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13절 -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는 주만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4절 -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
15절 -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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