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간의 타락과 그 결과 (오정현 목사)

[창세기 3장 7절~13절] 
7절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절 -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절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절 -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절 -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절 -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절 -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타락과 그 결과를 아는 것을 통해 철저한 자기절망과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돌아봄이 있을 때 복음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올려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고, 이제 겉으로 그들이 살아있어도 영적으로는 죽음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이제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은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의 결과로 첫 번째,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신들이 벗은 줄을 알았습니다. 이제까지는 그들의 관심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었지만, 이제 자기에게 몰입하는 자의식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자기 판단이 더 중요하게 되어 버렸고, 마음속에 자유와 평안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자의식은 자기고집과 자기만족, 이기심으로 나타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과 의도를 볼 수 없게 하고 나아가 하나님을 판단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 없이도 자신이 가장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치명적인 타락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렇게 지나친 자의식에 빠진 사람은 자기중심의 인간관으로 바뀌게 되어 책임보다는 권리가, 의무보다는 자유가 중요시 되고, 이웃보다는 자신이 더 중요하게 됩니다. 이제 자신들이 벗은 줄 알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앞가리개를 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불충분한 사람의 자기 능동적 의를 불쌍히 여기셔서 동물의 피 흘림을 통한 죄 사함으로 수동적 의를 허락해 주십니다. 이처럼 구원은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타락의 결과 죄책감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은 벌주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범죄 한 그는 죄의식이 있기에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 앞에 숨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모든 사람이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복음의 은혜에 눈이 열린 우리는 숨지 말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세 번째로, 타락의 결과 책임전가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책임을 떠넘김으로 자신의 죄책감을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책임전가에는 이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 때문이라는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이고, 책임전가 또한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삶의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이 사실을 명심하고 자신을 추스르기 시작하면 우리의 삶이 온유하게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의 결과 책임전가가 생겼고, 책임전가는 모든 것을 분리시킵니다. 또한 집단적 책임전가는 집단적 분열현상을 낳아 배타적 소속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죄의 기원은 사탄이나 환경이 아닙니다. 나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죄를 범한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질책에, 사람이나 환경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했다고 고백하고 눈물로 회개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해 그 죄를 사하셨음을 말씀해주시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타락과 죽음의 운명을 전달해준 첫째 아담이 있다면,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우리를 자유하게 하심으로 새로운 운명을 열어주실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십니다. 아담과 달리 하늘에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심으로 하늘에 속한 자의 품위와 능력을 받으십시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내가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함으로써 자기몰입으로부터 해방되는 은혜를 누리십시오. 그리하여 책임전가의 욕망 앞에서 먼저 내 눈에 들보를 빼고,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복음의 능력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믿을 수 없는 현실, 온전한 순종

 

[창세기 17장 15절~27절]

15절 -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절 -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절 -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절 -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19절 -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20절 -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21절 -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22절 -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23절 -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24절 -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25절 -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더라

26절 - 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27절 -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하나님은 사래를 사라라 부르시며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웃으며 늙은 사라가 어떻게 출산하겠느냐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사라가 아들을 낳겠고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명하십니다. 아브라함과 모든 남자가 말씀대로 할례를 받습니다.

 

1. 사라가 받은 약속 (15~22절)

하나님의 약속은 사래에게도 새롭게 주어집니다. 사래도 '사라'라는 새 이름을 받습니다. 사라는 '왕비'를 뜻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왕권을 약속받은 열국의 어머니요, 열왕의 시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고령이라는 현실과 이미 얻은 아들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들을 약속하시며 이삭이라는 이름까지 주십니다. 하갈도 유사한 약속을 받았지만, 사라는 임신하기 전이고 언약의 자손을 낳는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삭은 약속의 시작부터 성취까지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신 언약의 자녀입니다. 이스마엘에게도 열두 부족의 시조가 되는 복이 주어지지만, 본질적인 약속은 은총의 자녀인 이삭에게만 주어집니다.

* 묵상 질문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응답이 없는 현실이 아브라함의 믿음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 적용 질문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고 낙심케 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2. 할례를 행함 (23~27절)

아브라함의 순종은 즉각적이고 완전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날 할례를 행합니다. 이런 빠른 순종은 그의 믿음이 다시 살아났음을 말해 줍니다. '이날'을 반복하면서 아브라함 부자의 할례 받은 나이를 언급하는 것은 이 시간이 세계 역사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가족에게 할례를 행한 날은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로 들어간 날이며,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역사적인 날과 같습니다. 할례 받은 자들의 명단이 반복되는 것은 아브라함의 순종이 완벽함을 강조합니다. 또 아브라함의 집에 속한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공동체에 의해 기억되고 성취됨을 뜻합니다. 공동체는 약속의 성취로 이루어질 복을 함께 누립니다.

* 묵상 질문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즉각적으로 온전히 응답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이 지금 즉시 내게 기쁘게 순종할 것을 요구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민족의 아버지, 민족의 어머니로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바꾸신 하나님, 제 이름도 하나님이 택하신 귀한 자녀라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약속을 믿고 순종한 아브라함처럼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승리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언약의 표징으로 주신 새 이름

 

[창세기 17장 1절~14절]

1절 -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절 -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절 -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절 -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절 -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절 -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절 -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절 -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절 -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킥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절 -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절 -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절 -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절 -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흐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절 -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아브람이 99세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언약을 재확인하십니다. 여호와는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고 부르시고 그의 자손이 번성할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언약의 징표로 할례를 명하십니다. 대대로 아브라함 집의 모든 남자는 할례를 행해야 합니다.

 

1. 새 이름 아브라함 (1~8절)

아브람의 나이 99세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전혀 새로운 차원의 약속을 주십니다. 이스마엘이 태어난 지 13년이 지났지만 사래는 여전히 불임 상태입니다. 이스마엘이 아브람의 상속자로 굳어지는 듯합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불가능한 현실을 깨고 약속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람과 맺으신 언약은 이전 약속을 세 가지 차원에서 새롭게 합니다. 첫째, 이 언약은 하나님의 창조 의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브람은 새 창조의 첫 열매가 될 것입니다. 둘째, 이 언약은 왕권을 약속합니다. 아브람은 제왕적인 약속에 걸맞게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받습니다. 왕이 즉위할 때 왕의 이름을 바꾸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셋째, 이 언약은 영원한 효력을 갖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관계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 묵상 질문

아브람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언약 성취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적용 질문

현실이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이 여러 통로를 통해 재차 확신시켜 주신 언약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언약의 표징, 할례 (9~14절)

하나님의 약속에는 인간의 응답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요구하십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이 약속을 신뢰한다는 표시이며, 언약의 입문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꺼이 충성하고 복종한다는 헌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 할례를 행함으로써 몸에 영구적으로 남는 표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영원한 결속을 나타냅니다. 할례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의 의무를 상기시킵니다. 아브라함에게 속한 공동체의 모든 남자는 할례를 행해야 합니다. 할례의 진정한 의도는 지적인 신앙인에게 머무르지 않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는데 있습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행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 앞에 새로운 헌신과 열정으로 나아가기 위해 마음에 행할 할례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인생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찾아오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으로 제 앞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약속의 말씀을 의지해 힘과 용기를 얻고, 믿음으로 뿌리고 거두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제목 : 유혹에 대한 처방 (오정현 목사)

[창세기 3장 4절~6절]
4절 -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절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절 -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셨다면 우리도 유혹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유혹에 굴복당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와는 마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는 축소하고 명령은 과장시키고 형벌은 약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이 마치 자기를 착취하는 분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욕심에 이끌려 미혹된 하와의 눈에 선악과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인 것입니다. 즉, 사람의 마음속에 뿌려진 욕망의 씨가 커서 죄가 출산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욕구에 마음이 치우치면 건강한 판단과 정신을 소유하지 못하고 욕망적 감성에 따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합리화 시켜 유혹에 넘어가게 됩니다. 가인이 질투의 욕망에 휩싸여 동생을 죽인 것을 합리화 시킨 것이나, 에서가 육신의 욕구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것, 다윗을 질투해 죽이려한 사울도 그런 경우입니다. 이렇게 뒤틀린 욕망이 합리적인 생각을 압도해 버린 사건들은 우리의 시대에도 많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을 깨달아 건강한 지성과 합리성으로 판단력을 가지고 시대를 섬기는 주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하와가 유혹당하는 과정을 보면, 선악과를 보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여겨 자신도 먹고 아담에게도 줍니다. 즉 유혹은 잠시이지만 이성을 마비시키는 기쁨과 매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욕망적 요구를 자극하고, 나중에는 우리가 자포자기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건강하고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새 힘을 주십니다. 복음이란 것은 감성에 먼저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정신과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므로, 성령의 역사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이루신 일을 깨닫는 건강한 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신앙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성에 반하지 않고 오히려 건강한 이성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거꾸로 합리적인 판단과 생각이 아닌 감정을 자극하고 욕구를 불러일으키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는 건강한 객관성 보다는 개인의 주관성을 중시하므로 합리성 보다는 포퓰리즘 같은 감정적 욕구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가지고 사회적인 광기에 휩쓸리지 않는 올바른 판단을 가져야 합니다.

유혹에 대한 처방은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세 가지에 대해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배고픔을 해결하라는 육신의 정욕에 대해서는 영적인 문제는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사단에게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다 주겠다는 안목의 정욕의 유혹에 대해서는 인생의 빈 공간은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예배할 때 채워짐을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 성전에서 뛰어 내리라는 이생의 자랑의 유혹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의심치 않고 고백하심으로 물리치셨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사는 우리의 판단 기준은 오직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생존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욕망적 감성이 건강한 정신을 압도하지 않도록 주님과 동행하며 그 음성을 듣고 주님을 근거로 판단하는 신실한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약자를 살피시는 하나님

[창세기 16장 1절~16절]
1절 -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절 -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라가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절 -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4절 -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5절 -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6절 -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7절 -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8절 -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9절 -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10절 -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절 -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오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2절 -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13절 -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4절 -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15절 -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절 -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사래는 아브람에게 여종 하갈에게서 자녀를 얻으라고 말합니다. 아브람이 가나안에 거주한 지 10년 후의 일입니다. 임신한 하갈은 사래의 학대를 피해 도망하다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납니다. 하갈은 돌아와 아들을 낳고 이스마엘이라 이름 짓습니다.

 

1. 하갈의 임신과 불화 (1~6절)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린 인간의 계획은 실패합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불임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사래가 인간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아브람은 이를 받아들입니다. 여종 하갈을 통해 상속자를 얻기로 한 것입니다. 하갈의 임신은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하갈이 여주인을 멸시하자, 사래는 아브람의 허락을 받아 하갈을 학대합니다. 하갈은 학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칩니다. 사래의 대안은 약속을 위기에 빠뜨리고 가정에 파탄을 가져옵니다.

* 묵상 질문

아들을 얻기 위한 사래의 계획이 하나님의 약속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 적용 질문

약속이 지연될 때 인간적인 방법을 시도하나요,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나요?

 

2. 하갈이 받은 약속 (7~12절)

하나님은 하갈의 처지를 아시고 그녀의 고통을 돌아보십니다.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 하갈에게 가정으로 돌아가 여주인 사래에게 복종하라고 명하십니다. 대신 하갈은 놀라운 약속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약속하시고 이름까지 주십니다. 하갈을 통해 후손이 번성할 것이라는, 아브람에 버금가는 약속을 주십니다.하갈의 후손은 들 나귀처럼 자유로운 방랑자로서 자신의 힘에 의지하며 살 것입니다.

* 묵상 질문

하갈에게도 놀라운 약속을 주신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게 되나요?

* 적용 질문

약자 혹은 친분이 없는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떤 마음으로 대하나요?

 

3. 하갈의 하나님 (13~16절)

하갈은 하나님께 별칭을 붙인 최초의 여성입니다. 13~14절에는 히브리어로 '보다'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옵니다. 브엘라해로이도 '나를 살피시는(보시는) 살아 계신 분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하갈은 하나님이 자신을 보고 계신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사자의 명령에 순종하여 호의적이지 않은 아브람과 사래의 가정으로 돌아가 아들을 낳습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라는 뜻을 찬양과 감사의 표현입니다.

* 묵상 질문

자신에게 약속과 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하갈으 어떤 믿음의 고백을 드리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이 언제나 나를 보고 계신다는 확신은 삶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오늘의 기도

기다리지 못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실패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도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감찰하시며 도우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제목 : 마귀의 유혹방식 (오정현 목사)

[창세기 3장 1절~5절]
1절 -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미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절 -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절 -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마름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절 -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절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유혹에는 성적 타락이나 물질에 탐닉하는 것뿐만 아니라 현실과 동떨어진 과도한 기대, 상처와 경험으로 인한 상태 등 여러 범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유혹은 두려움이었고, 히스기야 왕의 경우는 교만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성적 유혹이었고, 아간에게는 물질에 대한 탐심, 데마에게는 세속성이 유혹이었습니다. 이처럼 유혹은 다양하기 때문에 수많은 신자들이 예수를 믿고도 유혹의 끈이 죄책감의 채찍이 되곤 합니다.
마귀의 유혹을 잘 극복하려면, 첫 번째로 마귀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가 어떤 존재인지 알면 그 계책을 알 수 있고, 속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뱀은 히브리어 원어로 "빛나는 어떤 존재"를 의미합니다. 즉 마귀가 우리를 유혹할 때 더럽고 흉측한 존재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끌 만한 매력을 가지고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광명의 천사로, 빛나는 존재로 나타나 우리 마음에 조그마한 틈만 있어도 비집고 들어옵니다. 또한 마귀는 뱀이 그러했던 것처럼 간교하고 사특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남성에 비해 감성적 존재인 하와를 먼저 공략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 공략 방법은 먼저 발끝으로 디디게 하고, 발판으로 안정감 있게 서게 하고, 똬리를 틀어 집어 삼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마귀의 전략을 앎으로 속지 않고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마귀의 계책은 전형적인 계략이 있습니다. 뱀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섭섭한 감정과 의심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의심이 생기고 난 다음의 하와의 대답은 하나님의 원래 말씀과 달라집니다. 첫째로 선악과 외에 다른 나무를 자유롭게 먹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축소시켰습니다. 둘째로 만지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나님의 명령을 과장했습니다. 셋째로 정녕 죽으리라는 범죄의 형벌을 약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둔감하여지고, 잘 안되고 힘든 것만 과장하며, 결과에 대해서는 슬쩍 넘어가는 이것이 유혹의 메커니즘입니다.
마귀의 작전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불신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의심과 불신의 씨앗이 뿌려지면 가정과 교회, 사회가 깨어지고 흔들립니다. 따라서 마귀의 계책을 아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한하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임을 깨닫고, 기도응답이 늦어지는 것이 축복임을 깨달아 계책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또한 유혹의 사정거리에 들기 전에 미리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유혹을 이기는 방식은 피조물인 우리 인생의 경계선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안에 모든 실과를 마음대로 먹으라는 자유와,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경계를 모두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지만 분명한 경계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유와 경계가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서 굴러갈 때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이 아닌 인격자로 대하시기에 거룩한 금기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피조물로써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경계선을 침범할 때 많은 슬픔과 비극이 있어왔습니다. 마귀는 이 경계선을 깨뜨리도록 유혹하지만 주님의 사랑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축복입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보호해 주시려고 경계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피해의식이 느껴진다면 마귀가 유혹하는 소리임을 깨닫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기록된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마귀를 대적하시어 승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횃불 언약

 

[창세기 15장 12절~21절]

12절 -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절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게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절 -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절 -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절 -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절 -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절 -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절 -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절 -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절 -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1. 언약의 징표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요구하신 것은 무엇이며(9~10절), 그분이 보이신 행동은 무엇인가요?(17절)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3년 된 암소, 3년 된 암염소, 3년 된 숫양,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와서 그 중간을 쪼개고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으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쪼갠 고기 사이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횃불이 지나가도록 하셨습니다.
희생제물을 쪼개어 마주 대하여 놓고 계약자 쌍방이 그 가운데로 지나가는 것은 고대의 일반적인 계약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당사자가 계약을 엄수할 것을 맹세하고 만약 위반할 경우에는 쪼개진 제물과 같은 신세가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횃불만이 제물 사이를 지나갔을 뿐 아브람은 지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계약이 하나님 홀로 의무를 지는 편무언약(片務言約)임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여 죄악과 패륜으로 나아갔을 때에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어김없이 진행되었으며 그 절정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로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의 계약 위반과 불성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고리는 하나님의 성실과 사랑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의 의지와 연합하여 이루는 구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아무리 굳은 의지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맹세한다 해도 결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인간 의지의 파산’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파산 맞은’ 인간의 상태를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넘어가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강한 어깨에 기댈 수 있습니다.

* 일방적으로 약속하시고 그것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이 내 삶에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또 이루어지고 있나요?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일방적인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그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쉬운 비유가 있다면 어머니의 사랑일 것입니다. “길에서 미열이 나면 하나님하고 부르지만 자다가 신열이 끓으면 어머니, 어머니를 불러요”라고 시인 신달자는 말합니다(시, “사모곡”). 우리는 어머니를 통해 처음으로 사랑을 배우고 깨닫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성실한 사랑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넣어 주신 분도 하나님이기에 사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훨씬 더 광대합니다. 성경은 계약을 지키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셨기에 그들을 애굽에서 번성케 하셨고 광야에서 훈련하셨으며 바벨론 포로 생활로 겸손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을 다시 고토로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기억하셨으므로 자기 아들의 몸을 쪼개어 십자가의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사 44:21).

2. 하나님은 언약 체결에 앞서 장래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고 계시하시나요?(13~16절)
아브람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종으로 섬기다가 4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며 그때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자손이 이방에서 종으로 섬기다가 4대만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대(代)는 후손을 보게 되는 평균 기간인 30년이 아니라 당시 인간의 수명으로 간주되던 100년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를 마치고 출애굽한 후 다시 가나안 땅을 정복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렇게 성취될 것입니다. 이러한 유예 기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무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정복당할 가나안 족속들의 죄악이 가득 차지 않아서 하나님의 심판의 수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뿐 아니라 이방 민족까지도 모두 다스리시는 통치자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행 13:17~19).

* 최근 내 삶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그 속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나누어 보세요.
4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브람의 후손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도록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무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보다 깊은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의 자손들에게 곧바로 땅을 주시지 않고 40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게 하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고난을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철저히 은혜로만 구원받는 자들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구원을 기뻐하는 사람은 어둠의 세력 가운데 있어 보고, 세상의 감옥과 학대가 무엇인지 겪어 본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죄가 관영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를 몸소 깨달아 안 사람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 안에서 견디어 낸 인내의 시간이 있었다면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경험한 구원의 기쁨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5~36).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이 본문에서 아모리 족속은 모든 가나안 족속을 대표하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16절)고 말씀하십니다. ‘가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렘’은 더 이상 채울 틈 없이 완전히 가득 찬 것을 뜻합니다. 이 ‘솰렘’은 ‘갚다’, ‘보응하다’, ‘성취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솰람’에서 파생된 형용사로서 ‘온전한’, ‘완비한’, ‘모든’이란 뜻이 있으며 본문 역시 이와 유사하게 ‘차고 넘치는’이란 의미로 번역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동사의 원래 의미와 좀 더 밀접히 연관시킨다면 ‘갚은’, ‘보응받은’, ‘성취된’ 등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죄악에도 쌓이고 채워지는 한도가 있다는 것인데 회개하지 않은 죄는 결국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아모리 족속은 이미 팔레스타인에서 갖은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회개의 기간을 400년이나 주셨지만 끝내 회개하지 않아 멸망당합니다.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에는 한계가 없으나 심판의 시기는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약속을 주신 것은 우리가 선하고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그분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사랑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횃불 언약을 체결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이스라엘의 앞날에 대해 먼저 계시하셨습니다. 비록 그들이 400년간 억압받고 종노릇하겠지만 결국 구출될 것이며, 큰 복을 받아 기쁨으로 나오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서 고난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둡고 두려운 때(12, 17절)에 빛을 발합니다. 흑암 중에 횃불처럼 빛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을 붙들 때 어려운 시간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기
- 죄인인 저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성실히 그 언약을 이루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은혜에 믿음으로 응답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 두렵고 불안한 상황, 시련과 고난의 순간을 맞이할 때 하나님의 구원 약속과 최종적인 승리를 바라보며 넉넉히 이겨 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하나님의 비전과 아브람의 믿음

 

[창세기 15장 1절~11절]

1절 -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절 -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절 -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절 -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절 -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절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절 -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8절 -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절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절 -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절 -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하나님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후사가 없던 아브람의 몸에서 상속자가 태어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뭇별 같은 자손과 땅을 약속하시며, 언약의 증거로 제물을 가져오게 하십니다.

 

● 하나님의 비전과 아브람의 믿음

아브람은 동방 왕들의 침략이라는 외부 압력에서는 승리했지만, 자식에 대한 약속이 지연되는 현실 앞에서 흔들립니다. 이때 하나님이 나타나 약속에 대한 확신을 주십니다. 아브람은 이미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정했다고 항변합니다. 아브람은 포기했으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대한 본보기로 하늘의 뭇별을 보여 주십니다. 이에 아브람은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겨 ㅈ십니다. 구약에서 믿음이라는 말이 이곳에서 처음 나옵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아브람을 의롭다고 여기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약속과 현실이 동떨어져 실망하고 조급한 마음이 들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축복을 받을 때와 거절할 때

[창세기 14장 17절~24절]
17절 -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절 -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절 -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절 -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21절 -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22절 -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23절 -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24절 -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브람이 돌아올 때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축복합니다. 이에 아브람은 얻은 것에서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줍니다. 아브람은 소돔 왕의 재물은 취하지 않고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동행자들의 분깃만 요구합니다.

 

1. 멜기세덱의 영접 (17~20절)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는 미래뿐 아니라 현재에도 그 성취를 맛볼 수 있습니다. 아브람을 영접하기 위해 가나안의 유력한 두 왕이 나온 것은 높아진 그의 위상을 말해 줍니다. 특히 멜기세덱의 영접이 관심을 끕니다. 첫째,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전쟁에 지친 아브람과 일행들을 위로합니다. 둘째, 아브람을 축복하며 그를 위해 복을 빕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셋째, 창조주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동일시하며 찬양합니다. 아브람의 승리와 명성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가나안의 안정도 아브람으로 인해 열방이 복을 받는다는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 묵상 질문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하는 모습에서 둘 사이에 상하 관계가 어떠함을 알 수 있나요?

* 적용 질문

기억할 만한 축복 기도를 받은 것은 언제였으며, 어떤 내용이었나요?

 

2. 소돔 왕의 영접 (21~24절)

소돔 왕은 아브람을 만나러 예루살렘 근처까지 꽤 먼 거리를 왔습니다. 그는 동방 왕들의 원정을 초래한 장본인으로서 많은 피해를 당했습니다. 아브람은 그의 원수를 갚아 준 은인인 셈입니다. 그러나 그는 멜기세덱의 영접에 비해 무성의한 태도를 보입니다. 아무 감사의 표시도 없이 전쟁 포로들을 돌려 달라고 명령조로 말합니다. 또 선심 쓰듯 전리품을 취해도 좋다고 거만을 떱니다. 전쟁의 승리자가 전리품을 취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아브람은 이를 거절합니다. 오히려 행복과 번영은 소돔 왕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고 도전합니다. 그는 전쟁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의 정당한 몫은 나누어 주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취하지 않습니다. 약속의 자녀는 힘없는 인생으 의지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합니다.

* 묵상 질문

아브람이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누군가 부정직한 돈이나 선물을 건네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아쉽고 절실할 때는 열심히 주니을 찾다가 넉넉할 때는 주님과 멀어지는 제 모습을 회개합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물론 승리한 때에도 하나님만을 신뢰한 아브람처럼, 세상의 복이 아닌 영적인 복을 추구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가나안 땅의 미래 주인

 

[창세기 14장 1절~16절]

1절 -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2절 -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3절 -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4절 -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5절 - 제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6절 -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7절 -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8절 -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진을 쳤더니

9절 -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맞서니라

10절 -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11절 -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12절 -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13절 -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14절 -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15절 -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16절 -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시날, 엘라살, 엘람, 고임의 왕이 소돔과 고모라, 아드마와 스보임, 벨라 곧 소알의 다섯 왕과 싸워 이깁니다. 이들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를 약탈할 때 롯도 함께 사로잡힙니다. 그러자 아브람은 훈련된 318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 롯과 재물을 되찾아 옵니다.

 

1. 전쟁 포로가 된 롯 (1~12절)

약속의 땅 가나안은 강대국들이 패권을 다투는 곳입니다. 동방의 네 왕들은 사해 남부 도시국가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을 핑계로 가나안을 침입합니다. 대상들의 교역로인 왕의 대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반란과 관계없는 동요르단과 네게브, 즉 남방에 거하는 족속들도 공격합니다. 구약에서 처음으로 전쟁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약속의 땅은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는데, 동방이 왕들이 종주권을 주장하며 나타난 것입니다. 반란의 주동이 된 도시는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애굽 땅에 견줄 만큼 비옥한 소돔과 고모라는 동방 왕들의 표적이 되었고, 이곳에 거주하던 롯은 포로가 되어 끌려갑니다. 이것이 약속 대신 현실을 택한 결과입니다.

* 묵상 질문

약속 대신 현실을 택한 롯의 결국은 어떠한가요?

* 적용 질문

현실이 아닌 약속을 선택하기 위해 미련 없이 포기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2. 아브람이 롯을 구함 (13~16절)

하나님은 아브람을 통해 가나안 땅의 미래 주인이 누구인지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동방 4개국 왕들과 사해 남부 5개 도시국가들이 전쟁하는 동안, 아브람은 헤브론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롯이 끌려간 소식을 듣고 신속하게 대처합니다. 아브람은 약속을 무작정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을 대비해 종들을 무장시키고 군사훈련을 시켰습니다. 아브람은 소규모의 군사이지만 효과적인 전술로 롯을 포함한 친척들을 구출합니다. 이는 빚 때문에 곤경에 빠진 친족을 가장 가까운 친척이 속량하는 제도(고엘)의 정신을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레 25:25~28, 47~53). 하나님은 약속의 상속자 아브람을 통해 위기에 빠진 가나안 땅을 구원하십니다.

* 묵상 질문

아브람에게 318명의 훈련된 가신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어떤 면을 보여 주나요?

* 적용 질문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며 내가 조금씩 준비해 두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약속 대신 현실의 쾌락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거룩한 통찰력을 주셔서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알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는 데 선하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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