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한눈으로보는 성경 - 이사야 ①

산호석 2020. 5. 1. 10:24

한눈으로보는 성경 - 이사야 ①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의 다른 이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인이시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여호와를 버리고 악한 길로 향한 결과 정의가 구부러지고 죄가 만연하여 멸망이 다가오고 있다. 여호와는 자기 백성에게 노하셔서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다. 그러나 곧 자기 백성에게 향한 진노를 그치시고 그들의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실 것이다.

이사야 한눈에 보기

본문

1~12장

13~27장

28~35장

36~39장

40~55장

56~66장

요점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열방에 대한 심판

반역하는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

히스기야 이야기

이스라엘의 구원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저자

이사야. 웃시야 왕의 전기를 기록했고(대하 26:22), 유대 전승에 따르면 므낫세 왕에게 톱으로 몸이 잘려 죽임을 당했다.

연대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부터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왕 시대까지 사역했다. 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암살되는

주전 681년까지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목적

이사야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강조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고 또한 구원하신다. 하나님은 징계하시지만 용서하시고, 사로잡히게 하시지만 돌아오게도 하신다. 이사야는 포로로 잡혀갔던 자들이 돌아오는 것을 내다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메시아가 다스리는 놀라운 새 시대를 바라본다.

분류

예언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1:1~12:6)
죄로 가득한 성읍(1:1~31)
예언의 주제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축복하신 땅을 빼앗기고 그 땅에서 쫓겨나 포도원 망대같이 적들에게 에워싸인 채 겨우 살아남았다. 게다가 땅은 황폐하고 지도자들은 부패하고 백성은 패역했다. 온 나라에 악행이 가득한 가운데 적들이 몰려드는데도 이들의 제사는 가증할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서받을 길을 제시하시고, 죄로 가득한 이 성읍을 장차 의의 성읍으로, 신실한 고을로 부르게 하실 것이다.

예루살렘의 심판(2:1~4:6)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에 앞서 회복의 약속이 주어진다(2:2~5). 온 백성이 성전에 올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리라 다짐한다. 하나님이 통치자요 재판장이 되셔서 다스리시니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회복의 약속은 이들에게 주어질 심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대변할 뿐이다. 본문은 예루살렘의 부패 상태를 가차 없이 지적한다(2:6~4:1). 여호와가 자기 백성을 버리심은 그들이 이방 민족과 같이 우상 숭배에 빠졌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심판 날에는 모든 우상과 교만하고 자고한 자들이 굴복하고 오직 여호와만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여호와가 자기 백성을 심판하려고 서신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여호와는 예루살렘이 정화되리라는 약속을 주신다(4:2~6). 그날에 주님의 영이 예루살렘의 더러움과 피를 씻기시고 청결하게 하실 것이다. 여호와가 피난처를 주시므로 모두에게 피할 곳이 있을 것이다.

포도원 노래(5:1~30)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비유하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이사야 5장에서 하나님은 들포도만 맺는 포도원에게 송사를 제기하신다. 농부는 땅을 잘 골라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열심히 가꿨는데 포도원에 들포도만 맺혔기 때문이다. 이에 농부이신 하나님은 이 포도원 곧 이스라엘을 헐고 황폐하게 하겠다고 하신다. 이어서 이스라엘이 맺은 들포도가 열거된다(5:8~12). 백성은 흥청거리고 예배는 가증하며, 규례를 지키는 자가 없고 사회는 패역을 일삼는다. 이들의 미래에 대한 경고가 쏟아진다(5:13~30). 여호와가 자기 백성에게 손을 들어 노를 발하시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들이 말씀을 멸시했기 때문이다.


이사야의 소명(6:1~13)

주전 742년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본다. 온 땅에 가득한 여호와의 영광 앞에서 선지자는 자신이 부정한 자임을 깨닫고 죽음을 각오한다. 하지만 스랍이 그의 입술에 불이 핀 숯을 대고 모든 악이 사해졌다고 선언한다. 그러고 나서 선지자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보냄을 받는다. 이 백성은 마음이 둔하고 귀와 눈이 닫혔기 때문에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여호와가 선지자를 보내시는 것은 백성이 혹시 돌이킬까 싶어서다. 이스라엘 전역이 황폐해지고 많은 백성이 이방 땅에 끌려갈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거룩한 씨가 그루터기처럼 남아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여호와께 징조를 구하라(7:1~8:22)

7~12장은 아하스 왕 시대 있었던 아람과 북 이스라엘 연맹군의 침입을 배경으로 한다. 북 이스라엘의 베가 왕은 아람의 르신 왕과 손을 잡고 예루살렘을 침공한다.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에게 대항하자고 유다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유다는 적의 공격을 막아 낼 만한 정치적.군사적.영적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하스 왕은 앗수르 왕에게 보호를 요청할 생각이었다. 이에 여호와는 이사야를 아하스 왕에게 보내 말씀하신다. 앗수르와 동맹하는 것이 유다의 패망을 잠시 연기시킬 수는 있겠지만 미봉책에 불과하고, 믿음에 굳게 서지 않으면 절대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없다고 하신다. 또 여호와는 아하스 왕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어질 징조를 구하라고 하신다. 하지만 아하스 왕이 거절하자 친히 주신다. 그 징조가 바로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아들의 탄생이다. 이 아이가 태어나 자라면서 북 이스라엘과 아람 왕국이 멸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유다가 끝까지 앗수르 편에 선다면 그들의 머리털과 발의 털이 밀리고 수염이 깎일 것이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 아주 심한 불명예를 상징했다.

하지만 아하스 왕은 이사야의 예언을 무시한다. 그래서 여호와는 서판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를 쓰게 하시고, 이사야 부부가 낳은 아이의 이름으로 삼게 하신다. 이 단어는 '갑자기 공격당해 순식간에 끌려간다'는 의미인데, 아람과 북 이스라엘의 멸망이 속히 이루어질 것을 나타냈다. 선지자가 서판에 글자를 쓴 것은 예언자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이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실현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예언의 진위를 판단할 것이다(신 18:22). 백성은 신접한 자나 거짓 선지자의 소리가 아닌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한다.


메시야의 약속(9:1~7)

오늘날 우리는 이 본문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표한다고 믿는다. 예수님은 흑암을 빛으로 비추시고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 진정한 왕이다. 한편 동시대 사람들에게 이 본문은 히스기야 왕의 탄생을 알리는 것으로도 여겨진다. 앞서 마헬살랄하스바스가 이사야의 아이로 하나님이 주신 자녀가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는 경우였다면, 이번에 탄생하는 아이는 '메시아'다. '우리에게서 난 자'가 우리를 다스린다. 이 아이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다. 한글 성경에서 쉼표를 찍어 마치 개별 이름의 모임인 듯한 오해를 주는데, 히브리어로 이것은 모두 한 단어다. '모사에 뛰어나신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시다.'라는 문장 형태로 해석해야 한다.


앗수르를 통한 이스라엘 심판(9:8~10:34)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주민, 곧 북 이스라엘은 멸망할 것이다. 아람의 대적인 앗수르가 와서 반역을 모색한 이들 나라를 칠 것이다. 그러나 이 백성은 멸망을 당하고도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한편 앗수르는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기 위해 여호와가 사용하신 도구일 뿐이다. 여호와가 주의 일을 행하시고 나면 앗수르 역시 그들의 완악한 마음과 교만을 심판받게 될 것이다. 그 후에 북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들이 돌아올 것이다.


이사야서의 역사적 배경

이사야가 사역한 주전 750~700년까지 유다는 급변하는 국제 정치 상황 속에서 앗수르와 바벨론, 애굽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이고 있었다. 유다 왕들은 앗수르에 조공을 바쳐 왔지만 신흥 강대국 바벨론을 무시하지 못했고, 이 관계는 특히 히스기야 왕 때 재난을 몰고 온다.


시기

사건 배경

이사야의 활동

주전 734년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맹군의 침략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왕에 대항해 북 이스라엘과 아람이 동맹을 맺고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다. 이들은 유다에도 동맹을 제안했지만 아하스 왕이 입장을 정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자 쳐들어온다. 앗수르를 배신하면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없겠지만, 지금 당장 침략해 오는 이들도 무시할 수 없다. 이사야는 아하스 왕에게 여호와가 주시는 징조 '임마누엘'을 약속한다(7:1~16).

주전 715년

북 이스라엘의 멸망과 애굽과 동맹을

맺으려는 유다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강대해지자 애굽은 유다를 압박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 하나님은 애굽이 장차 앗수르에 의해 멸망해 포로로 끌려가는 수치를 당하게 되리라고 경고하신다. 이사야는 이 예언을 예표하기 위해 3년 동안이나 자신이 직접 포로처럼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살아야 했다(20:1~6)

주전 701년

앗수르 군대의

예루살렘 포위와

바벨론과의 관계

앗수르의 산헤립 왕은 군대를 보내 예루살렘에 항복을 권한다. 이사야는 왕에게 하나님의 도성이 살아남는다는 확신을 준다(36:1~37:38). 히스기야가 병에 걸리자 이사야는 왕이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드린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15년을 더 살도록 허락하셨다(38:1~22).

히스기야는 병문안을 위해 찾아온 바벨론 므로닥발라단 사절단을 맞이한다. 이때 히스기야는 그들에게 예루살렘의 요새 전부를 공개한다. 즉, 유다는 앗수르에 반역해 바벨론에 동조하는 입장을 택한 것이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행동을 나무라고 바벨론이 그들에게 파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한다(39:1~8).


이사야 길라잡이 ①

국가 위기에서 백성을 깨우치는 예언의 말씀

김회권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이사야가 등장하는 시대 상황

이사야에 기록된 예언들을 선포하고 기록한 이사야는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Isaiah ben Amoz, 사 1:1)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에 본거지를 둔 상류 계층에서 태어났으며, 왕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과 외교 정책의 추이를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을 만큼 유다 왕국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왕실 내부자였다(사 7:3~4; 8:2; 30:1~7; 36:1~38:8, 21; 참조 왕하 18:3~20:19). 그를 웃시야 왕과 히스기야 왕의 서기관이었다고 기록한 역대기(대하 26:22; 32:32)는 신빙성 있는 증언일 것이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에 유다 왕들은 웃시야(6:1; 대하 26:22, 주전 742), 요담(주전 750~735, 이 중 740년까지는 웃시야의 섭정이었음), 아하스(주전 735~715, 섭정 기간 전제), 히스기야(주전 715~687/686)였다. 이 당시 앗수르 제국의 왕들은 디글랏 빌레셀 3세(주전 745~727), 살만에셀 5세(주전 727~722), 사르곤 2세(주전 722~705), 산헤립(주전 705~681)이었다.

이사야가 예언자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할 무렵인 주전 8세기 중엽(주전 740~738년경)은 북쪽 앗수르 제국의 정복 군주인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시리아-팔레스타인 쪽으로 제국의 지배권을 확장하던 시점이었다.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주전 734년경에 팔레스타인에 진출해 애굽 국경선까지 육박한다. 그는 정복 일지(ana Philistia)에서 '애굽 강 앞에' 군사(무역) 기지를 구축했다고 자랑한다. 이 가공할 만한 앗수르의 군사적 팽창에 직면한 많은 작은 왕국이 대항했으나 잔혹하게 진압당한다. 이런 와중에 시리아와 북 이스라엘은 반앗수르 동맹을 결성하고, 두 나라 동맹군은 유다의 아하스 왕에게 반앗수르 연합 전선에 동참하도록 강요하기에 이른다. 유다 왕국이 반앗수르 동맹에 가담하지 않자 두 나라는 유다를 공격해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을 일으킨다(주전 734~733). 예언자 이사야가 처음으로 공적인 무대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때다.


1~39장의 중심 메시지

이사야는 아하스 왕과 다윗 왕실을 향해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국 왕들의 강요에 굴복하지 말고, 앗수르 원군을 요청하지도 말라고 충고한다. 도리어 여호와 하나님의 다윗 언약을 믿고 외국 군대의 힘에 의지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이사야의 충고를 거부하고 앗수르에 도움을 요청한다. 이때 이사야는 해방자로 출병한 앗수르가 정복자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예언들을 쏟아 낸다(사 7:18~25; 8:1~10). 마침내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시리아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북 이스라엘을 앗수르의 속주국으로 만든다. 북 이스라엘의 베가 왕은 앗수르에 막대한 조공을 지불하고 간신히 파멸의 운명을 면한다(주전 732). 하지만 10년 만에 다시 북 이스라엘을 공격한 앗수르 제국의 사르곤 2세에게 북 이스라엘은 멸망당하고 만다(주전 722/721). 이제 유다 왕국의 정치적 독립은 최악의 위기에 놓인 셈이 되었다(5:29). 하지만 주전 705년에 사르곤 2세가 죽자 다시금 팔레스타인의 소왕국들이 반앗수르 봉기를 일으킨다. 이때 유다의 히스기야 왕이 애굽의 지원을 믿고 팔레스타인의 군소 왕국을 동원해 주전 705년경에 반앗수르 봉기를 주도한다. 불안한 정치적 상황과 북쪽 산악 족속들의 문제를 처리하느라 남서쪽 지역의 반앗수르 봉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던 앗수르의 새 군주 산헤립은 마침내 주전 701년에 남서 지역 정복 원정에 돌입해 히스기야를 새장의 새처럼 가둬 버린다. 산헤립은 매년 바치는 조공과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도록 히스기야에게 강요하며 항복을 종용한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요구에 굴복함으로써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는 참변을 피한다(왕하 18:13~16).

1~39장은 주전 740~701년 사이에 펼쳐진 정치 현실에 대한 이사야의 신학을 담고 있다. 이사야는 시리아-에브라임 전쟁부터 주전 701년 산헤립의 침공까지 유다 왕국의 정치적 위기 한복판에서 하나님 말씀을 대언했고, 이사야의 신학은 약 40년간 지속된 국가적 위기에서 유다 왕실과 백성을 깨우고자 선포했던 예언들 속에 갈무리되어 있다.


이사야는 시리아-에브라임 전쟁부터 산헤립의 유다 침공까지 유다 왕국의 정치적 위기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



출처 : 생명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