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3장 - study
# Study
I. 여호와의 사자의 첫번째 방문 13:1-7
1절에는 이스라엘이 큰곤경에 처했다는 기사가 간략하게 언급되었는데, 이 곤경은 구원자를 세우게된 계기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전에도 그랬듯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로 그 이웃에 있는 대적인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기셨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비교해 볼때 보잘것없는 민족이었지만(그들에게는 단지 다소 주목할만한 다섯 성읍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손안의 회초리로 사용하시게 되자 그들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매우 압제적이고 고통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 고통은 다른때보다 더 오래 지속되어 언제나 똑같이 가혹하지는 않았지만 무려 사십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이스라엘이 이러한 환난에 빠져있었을때 삼손이 태어났다. 여기서 한 천사를 통해 그의 출생이 예고되는 것을 볼수 있다.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자.
(1) 삼손은 단지파의 혈통에서 태어났다(2절). '단'은 사사 또는 심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창 30:6). 단지파가 분배받은 땅은 블레셋땅 바로 옆에 있었으므로 그 지파의 어떤 지역은 그들의 속박을 당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삼손의 부모는 오랫동안 자녀가 없었다. 이삭, 요셉, 사무엘 그리고 세례 요한 등과 같이 특출한 이들의 어머니들은 오랫동안 자녀의 축복이 결여되어 있었기때문에 그 축복이 내려질때 자녀를 주신 은총을 더욱 기꺼이 받아들였었다.
(2) 삼손의 어머니에게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을 알려준 자는 '여호와의 사자'였으나(3절), 선지자 또는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을 갖춘 인간으로 나타났다. 이 놀라운 소식은 단지파에 속한 마노아와 그의 아내같이 이름없는 자들만 위함이 아니고 구원자를 필요로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이었으며 또한 이 경우처럼 천사들에 의해 탄생이 예고될 메시야의 예표가 되었다. 여호와의 사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1)여호와의 사자는 그녀의 괴로움을 알았다.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3절). 즉 "지금 너는 잉태치 못하나 언제까지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며 네가 염려하는 것처럼 그 상태가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2)여호와의 사자는 그녀에게 아들의 잉태를 확신시켜 주었다.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또한 5절에서도 그것을 거듭말하며 확신시켜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언약을 통해서 출생케하심으로써 말씀의 권능을 보여주셨다.
3)여호와의 사자는 그 아이가 태어날때부터 나실인이므로 그 어머니는(비록 그녀가 나실인의 서약을 한일이 없다하더라도) 나실인의 율법에 순종하여 이 아이가 태중에 있건 젖을 먹건 그녀의 몸에서 영양을 섭취하는 동안에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것을 지시하였다(4,5절). 다른 사사들은 하나님께 변절한 이스라엘을 바로잡았었다. 그러나 삼손은 그 어느 사사보다도 하나님께 더욱 성별된 사사로 나타났다. 삼손이 여러가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나실인으로서의 의식을 행하여 실질적으로도 나실인이 해야 할바를 실천하였다(민 6:2). 그러므로 이 구원자의 어머니는 스스로를 자제하여 부정한 것을 먹지말아야 했다. 그녀는 평소에는 합당한 음식이었다해도 이제는 삼가야 했다. 아기를 가진 여자들은 자기 몸안의 자식의 건전한 성격과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의식적으로 피해야 한다. 삼손이 나실인이 되어야 했기때문만이 아니라 그 어머니의 금주로인해 큰힘을 가진 인물이 되어야 했으므로, 그 어머니에게 포도주와 독주를 금지시켜야 했을 것이다.
4)여호와의 사자는 이 아이가 자기 나라에 해야할 일을 예언하였다.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5절).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언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 말은 블레셋 사람의 압제가 오랫동안 지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삼손은 단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이스라엘의 곤경이 여전히 오래 끌게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제 삼손이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사실이 다음과 같은 점에서 나타난다.
①삼손은 나면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님 예수는 나실인은 아니셨지만, 죄가운데 잉태되지도 않고 모든 죄로부터 완전히 깨끗하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전적으로 바쳐지신 분으로서 여러 나실인들에 의해 예표되셨다.
②삼손은 이스라엘의 구원자였다. 그리고 구주 예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신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삼손과 다르시다. 즉 삼손은 단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했을 뿐이었으나(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완전히 멸하였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삼손과 다윗의 역할을 모두 감당하사 우리 믿음을 시작하시는 이요 끝맺는 이가 되셨다.
(3) 마노아의 아내는 뛸듯이 기뻐하며 이 놀랄만한 메시지를 남편에게 급히 전하였다(6,7절).
1)그녀는 이 소식을 전해준 이에 대하여 말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6절). 그녀가 묘사한 그의 용모는 몹시 무섭게 생기고 위엄있는 표정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녀가 상상하고 있던 여호와의 사자의 모습과 똑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또한 이스라엘에서 그가 속한 지파나 성읍이 무엇인지는 알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로 충분히 만족하였다. 그녀는 그의 용모나 그의 메시지 자체가 그가 누구인가에 대해 명백하게 증거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더이상 묻지않았던 것이다.
2)그녀는 자기 남편역시 그 메시지의 약속을 믿을수 있도록, 사자가 전해준 메시지의 약속과 가르침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하였다(7절). 이와같이 배우자들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체험을 서로 나눔으로써 '거룩하다 일컬음받는 길' 가운데서 서로 도울수 있어야 한다.
Ⅱ. 여호와의 사자의 두번째 방문 13:8-14
본문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를 두번째 방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 마노아는 이 일을 위해 진지하게 기도드렸다(8절).
1)마노아는 이 약속된 아이는 때가 이르면 태어나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으므로 '그 낳을 아이'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말했던 것이다. 본문의 마노아처럼 '보지않고 믿는 자는 복이 있다.'
2)마노아의 모든 관심을 태어날 아이에게 '그들이 어떻게 행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선한 사람은 어떤 사건이 자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보다는 자기가 해야할 임무가 무엇인지를 더욱 간절히 알고 싶어한다는 점을 주목하자. 왜냐하면 사건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지만 그에 대한 임무는 우리가 행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그러므로 마노아는 그의 아내가 그러한 약속을 받고 기쁜 나머지 가르침을 몇군데 잊어버리지 않았나 염려되어, 그 주의 사자를 또다시 보내주셔서 이 나실인을 키우는데 관해 더자세히 지시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는 그 가르침을 완전히 앎으로써 아무런 실수도 하지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합당한 말씀을 전해주고 가르쳐줄 하나님의 사자 곧 복음의 사역자를 원하고 있는가? 그러한 사역자들을 보내주셔서 우리에게 가르치도록 여호와께 간구하자(롬 15:30,32).
(2)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게도 마노아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9절).
1)하나님의 사자는 두번째에도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났다. 그때 그녀는 홀로 앉아있었는데 아마도 양떼를 돌보고 있었던것 같다. 홀로있는 시간은 때때로 하나님과 교통할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들은 홀로 있을때에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결코 혼자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그녀는 남편을 부르러 급히 달려갔다. 틀림없이 그녀는 이 복된 하나님의 사자에게 자기 남편과 함께 돌아올때까지 머물러 주시기를 겸손히 구했을 것이다(10,11절). 하나님의 사자는 기꺼이 그녀가 남편을 데려오게 하였다(요 4:16).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가 두번째에도 자기에게 나타나지 않을 것을 불쾌하게 여기지않고 기꺼이 아내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사자에게 갔다. 아내가 남편을 인도하더라도 그일이 고결하고 칭찬할만한 일이라면, 아내를 따르는 것이 남편의 체면에 손상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3)하나님의 사자에게 나아온 마노아는 그가 자기 아내에게 나타났던 바로 그 사자라는 것에 만족하여 매우 겸손히 다음과 같이 행동했다.
①마노아는 약속의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였다(12절).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마노아의 이 말은 그의 소망을 나타낼뿐만 아니라, 또한 동정녀 마리아처럼(눅 1:38) 그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주여, 내가 당신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오니 그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②마노아는 자기 아내에게 지시했던 사항들을 다시 말해줄 것을 간구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12절).
그 지시가 이미 아내에게 내려졌었으나 마노아는 이 약속된 자식을 지시에 따라 잘 양육하기 위하여 자기가 아내를 도와야한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부모들이 아무리 주의하고 끊임없이 힘을 합해 노력한다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여 하나님께 바칠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우리라고 보장할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은 부부중의 어느 한쪽에만 일임시키지 말고 둘이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자식들을 가르치고 모범을 보이는 일에 신중을 기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어리석음을 몰아내고 어려서부터 마음과 행실을 바로잡아 올바른 길을 갈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이럴때 경건한 부모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것이다. "여호와여, 우리 자식들이 나실인이 되어 당신께 산제물이 될수 있기위해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양육해야할지 가르쳐 주옵소서."
4)여호와의 사자는 전에 지시해 주었었던 사항들을 다시 말해주었다(13,14절). 우리 자신과 자녀들이 올바로 행하기위해서 우리는 매우 주의하고 살필 필요가 있다. 성결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죄에 접하거나 죄로 인도하는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 마노아의 아내는 나실인 아이를 잉태했을때 부정한 것을 아무것도 먹을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은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들을 깨끗게하며 그 새로워진 영혼에 해가 될일은 아무것도 행하지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Ⅲ. 여호와의 사자의 승천 13:15-23
(1) 이렇게 대면한 마노아와 사자는 이야기를 좀더 나누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는 친절하게도 마노아와 함께있는 동안 자신이 여호와의 사자인 것을 숨기고 있었다. 가리워지지 않은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을 우리는 도저히 감당할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간, 즉 선지자와 목회자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려 하시며 심지어 그의 사자나 아들을 보내실때조차도 그들을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게 하사 그들이 단지 하나님의 사람으로만 여겨지도록 하셨다.
1)이제 사자는 마노아의 접대를 사양하고 그 대신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그에게 지시하였다. 마노아는 사자에게 자기와 함께 음식을 좀먹자고 요청하였다(15절). 그러나 사자는 기드온에게 했던 것처럼 마노아에게도 '너의 식물을 먹지 않겠노라'고 말하면서(16절) 그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라고 지시하였다(6:20,21). 우리가 먹지않거나 마시지않고 살수는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먹고 마셔야하며 따라서 일용할 양식조차도 제물이 되어야 한다.
2)사자는 그에게 자신의 이름 밝히기를 거절하였다. 마노아는 그의 이름과 소속 지파를 알기 원했다(17절). 당신의 말씀이 이룰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중하리이다. 여호와의 사자는 그의 의무를 이행하기위한 마노아의 요청에는 이미 대답해 주었지만(12,13절) 그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마노아의 요구에는 거절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무에 관하여 말씀으로 우리에게 충분히 지시해 주셨다. 그러나 그는 헛된 공상을 채우기위한 질문에는 절대로 응답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에 관해서 질문을 할때 절대로 헛된 호기심을 채우기에 급급해서는 안된다(골 2:18). 우리의 위대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 하지않는 것이라면 기꺼이 모르는채로 있는 것이 무지하지만 지혜로운 행동이다.
3)여호와의 사자는 그들의 제사를 거들었으며 받아들였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산제사로 드려야하며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맡겨야 한다. 기도는 영혼이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도를 향내나는 제물이 되게 하시는 이는 믿는 자의 마음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가 없는 우리의 제사는 역겨운 연기에 불과하나, 그리스도를 통한 제사는 열납되는 불꽃이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것에 적용될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피로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사'(히 9:12) 자신을 드린 그 제물의 불꽃가운데서 승천하셨던 것이다.
(2) 이러한 광경을 본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다음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
1)마노마는 큰두려움을 느꼈다(22절). 그는 자기들이 곧 아들을 낳게되어 기쁨이 넘치는 부모가 될것을 굳게 확신하여 말했었지만(8,12절) 그러나 이제는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나님이나 사자를 보게되면 즉시 죽는다는 것이 고대 유대인들의 일반적이고 통속적인 견해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념은 기드온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6:22) 즉시 마노아의 믿음을 완전히 압도해버렸다.
2)마노아의 아내는 더 큰믿음을 가지게 되었다(23절). 여기서는 연약한 그릇인 여자가 더욱더 강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아마도 천사가 두번씩이나 그녀에게 나타났던 것도 그녀의 믿음때문이었을 것이다. 배우자들은 중요한 시기에 상대방의 믿음과 기쁨을 위해 경건하게 도와야 한다.
여기서 마노아의 아내의 주장보다 더나은 것은 있을수 없었다. '우리가 반드시 죽으리로다'라고 그녀의 남편이 말하자 그녀는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징표로 보아서 그가 우리를 죽이리라고 생각할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여야한다고 생각하셨다면, 첫째 그는 우리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둘째 이 모든 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거나 나실인과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될 아들을 주시겠다는 이 크고 귀한 약속들을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큰희생을 하나님께 열납하신 것은, 그가 죄인들을 죽지않게 하시려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 유의하자.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은혜롭게도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다는 사실로인해서 암울한 시기에도 용기를 가져야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버려 종국에는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시고자 하셨다면, 그가 내 영혼을 위해 행하신 그런 일을 하지않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시는 일은 완전하시며, 또한 그의 은총을 입은 백성을 조롱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마노아의 아내와 같은 분별력을 배우자.
Ⅳ. 삼손의 탄생 13:24-25
(1) 삼손이 태어났다. 오랫동안 잉태하지 못하던 그 여인은 약속에 따라 아들을 낳았다.
(2) 그의 이름인 '삼손'은 어떤 학자에 의하면 히브리어 '셰메스' 즉 '태양'에서 유래된 '작은 태양'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그가 모세처럼 구원자로 태어났으므로 모세처럼 대단히 준수했으며 굉장한 힘으로인해 그의 얼굴이 마치 작은 태양처럼 빛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태양은 흔히 장대한 사람에 비유된다(시 19:5). 삼손이 작은 태양인 까닭은 그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며 그들에게 빛이 되기 때문이다. 그 작은 태양은 공의로운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다.
(3) 삼손의 어린시절은 다음과 같다. 그는 자기 또래의 다른아이들보다 훨씬 빨리 성장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위대하고 특별한 일을 위해 그의 몸과 마음에 복을 주셨으며 능력을 주셨음을 보여준다.
(4) 삼손의 청년시절은 다음과 같다. 그가 점차 자라자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셨다'(25절). 하나님의 신은 블레셋 사람들의 침략에 맞서기위해 단지파의 진영에 있던 삼손을 감동하셨다. 삼손은 어렸을때부터 단지파의 진영에 들어와 대담한 훈련과 강력한 힘으로 모든 사람들을 능가하였으므로 매우 용감한 몇가지 행동을 통해 스스로 유명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는 자기 나라의 대적에게 맞서는 통상적인 열심이상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였을 것이다.
# 핵심
13:1-25
이스라엘이 다시 죄를 범한 대가로 40년동안 블레셋의 혹독한 압제를 당하게 된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 삼손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와 은총에 의해 태어났다.
사사 삼손(13-16장)
삼손은 죄악과 심판, 구원이라는 반복되는 사사기의 역사적인 테마를 매듭짓는 마지막 사사이다. 삼손은 하나님의 긍휼과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 태어났으며, 나면서부터 나실인으로 구별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창녀와 자고, 죽은 것을 만짐으로써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는 등 사사로서의 소명에 진지한 관심이 없었다. 때로 성령의 감동을 입어 괴력을 발휘했지만, 그의 육정적인 성품은 변하지 않았다. 실로 가장 큰은총을 지니고 태어나서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마친 사사였다.
‘기묘’라는 이름(13:18)
“기묘”(히, 필리)는 ‘비밀’, ‘신비’라는 뜻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이것은 이름이 아니라 속성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인들은 인간이 신의 이름을 알면 그 신을 자유자재로 부르며, 그가 가진 힘을 이용할수 있다는 신앙을 가졌는데 이것은 이교도적인 것이었고, 하나님께는 용납될수 없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이름이란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머리로 다 파악할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이시다.
# 묵상
나실인 ( 13:5 )
나실인이란 ‘구별된 자’란 뜻으로, 성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술을 멀리해야 하며, 머리를 평생 깎지않아야 하고, 죽은 시체를 만져 자기를 더럽혀서도 안되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자발적 서원으로(민6:2), 부모의 서원으로(삼상1:11), 혹은 하나님의 명에 따라 나면서부터(5, 7절) 나실인이 되었습니다. 그 기간으로는 일정기간동안만 헌신하는 나실인과 평생 나실인이 있습니다.
한편 본문의 경우, 나실인으로 선택된 사람은 삼손이지만, 그뿐아니라 그를 잉태한 어머니까지도 나실인의 규례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거룩한 생활을 해야합니다.
기도의 바른자세와 그 응답 ( 13:8, 9 )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은 아들 삼손이 모든 행위에 바르게 살아가는 아들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올바른 기도의 자세는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찾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즉 기도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 전해져 실현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도가 드리는 기도를 하나도 버려두시지 않고 모두 응답하십니다. 다만 이러한 응답의 시기가 때에 따라서 다르기때문에 성도는 오직 인내하며 기다려야할 뿐입니다.
기묘 ( 13:18 )
이 말은 비밀스럽고 놀라운 것을 뜻합니다. 즉 기묘란 말은 오직 하나님께만 쓰였던 것으로, 이는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표현입니다(사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