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욥기 5장 - study

산호석 2020. 11. 20. 22:43

# Study

Ⅰ. 엘리바스의 책망〔4〕 5:1-5
엘리바스는 자신의 주장이 선하다는 것을 매우 확신했기때문에 욥에게 중재자를 택하라고 종용하고 있다(1절). 부르짖어 보아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지금의 너와같이 이러한 극한상황에 처한 거룩한 자가 정말 있었다는 예를 하나라도 들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를 결코 너에게처럼 대하시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분명히 너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선한 사람이 너처럼 자기의 생일을 저주한 일이 있느냐?" 거룩한 자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선한 사람들은 구약성경에서 거룩한 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엘리바스는 여기에서 두가지 주장을 하고있는데, 그는 그의 의견이 모든 거룩한 자들과 일치하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1) 죄인들의 죄는 직접적으로 그들 자신의 멸망을 초래한다(2절).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미련한 자는 자신의 분노로인해 죽고 만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분노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시기는 그 뼈를 썩게한다. 그러므로 시기심때문에 안달하는 어리석은 자는 망한다. 엘리바스는 말하고 있다. "네가 하나님과 더불어 논쟁하는한 너는 큰재앙을 너자신에게 끼치는 것이라." 욥은 자기의 아내에게 그녀가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 엘리바스는 욥에게 그가 미련한 자, 어리석은 자처럼 행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2) 죄인들의 형통함은 짧고, 그들의 멸망은 확실하다(3-5절). 엘리바스는 여기에서 욥의 경우와 악인의 일반적인 경우를 병행시키고 있는것 같다. 다른 악인들의 형통함이 빨리 끝나는 것같이 이제 욥의 형통함은 끝났다. 엘리바스는 악인의 멸망을 내다본다. 현재의 일만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자기들의 거주지를 축복하며 그것을 행복으로 생각한다. 엘리바스는 마침내 그가 예견했던 것을 보았다. 욥의 가족들은 파멸했고 그는 파산했다. 엘리바스는 이 구체적인 사실들에서 분명하게 그리고 몹시 불쾌하게 욥의 재앙을 중상하고 있다. 욥의 자녀들은 눌림을 당하였다(4절). 일반적으로 이것은 사악한 자의 가족이 멸망하는 것이라고 이해될수 있다. 즉 그들의 멸망은 사악한 자가 부정한 수단으로 얻은 것을 다시금 빼앗기게 되는 것으로 볼수 있는 것이다. 악인들은 탈취물을 자녀들에게 물려준다. 그러나 정당한 소유권자가 그 자녀들을 누를 것이고 법의 합당한 절차에 의해 그들을 몰아낼 것이다. 악인의 재산은 약탈당하였다(5절). 욥의 경우도 그러했다. 굶주린 도적들, 스바 사람과 갈대아 사람들이 욥의 재산을 빼앗아 달아났고 그 재산을 삼켜 버렸다. 엘리바스는 이러한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흔히 목격해왔다고 말하고 있다. 약탈과 노략으로 탈취한 것은 그와같은 방법으로 잃어버린다. 조심성있는 주인은 그것을 가시나무로 에워싼후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울타리는 탐욕스러운 약탈자에게는 아무소용이 없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탐욕스러운 약탈자는 가시나무를 뚫고 들어와 그것을 모아 불사를 것이기 때문이다(사 27:4).

Ⅱ. 엘리바스의 책망〔5〕 5:6-16
엘리바스는 욥이 죄에 대한 당연한 징벌로써 그의 재산을 잃고 자녀들을 잃었다는 것을 언급함으로써 그를 공격하고 난후, 본문에서는 욥을 절망상태에 빠지지않게 하기위하여 그를 격려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제 엘리바스는 마치 그가 욥에게 하였던 심한 말을 보상하려는듯이 친절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1) 엘리바스는 욥에게 우연히 임하는 재앙은 없으며 부차적인 원인으로인해 재앙이 오는 것도 아님을 상기시키고 있다. 재앙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요' 또한 풀처럼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6절). 만일 어떤 사람에게 나쁜일이 생긴다면, 그는 흙이나 기후나 햇볕에게 죄를 씌워서는 안되고 자기 자신에게로 돌려야한다.
(2) 엘리바스는 재앙과 고난이 우리가 이세상에서 당연히 예상해야할 것임을 욥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7절). 이 인생은 죄를 범한 인생을 가리킨다. 이처럼 우리의 육신은 연약한 것이고 우리의 기쁨은 허무한 것이기때문에 우리의 고난은 '불티가 위로 날음과 같이' 자연히 생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우리의 재앙을 이상하게 여겨 놀라거나 또는 가혹하게 여겨 불평해야 하는가?
(3) 엘리바스는 욥에게 그의 재앙속에서 욥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그방법을 알려주고 있다(8절). 나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우리가 "만일 어떤 사람의 경우라면" 하고 말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막상 그 시련이 임할때는 아마도 우리가 말했던 것처럼 행하기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엘리바스가 자신에게 비유해서 욥에게 건네준 선하고 적절한 충고는 다음과 같다. "만일 내가 너와 같은 처지에 처한다면, 내가 택할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최선의 방법은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이라."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와 다투실지라도 우리는 기도로써 하나님으로부터 긍휼과 은혜를 얻어야 한다. 우리가 이세상에서 가졌던 모든 것을 잃었을때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께 기도하라. 기도는 마음을 평안케 해주고 모든 상처를 치료해준다.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내가 그것을 하나님의 발앞에 두고 하나님의 손에 맡기겠노라."
(4) 엘리바스는 욥으로하여금 이처럼 하나님께 구하고 그의 일을 하나님께 맡기도록 격려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큰일을 행하신다'(9절). 그것은 참으로 큰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일도 행하실수 있으며 모든 것을 자신의 계획대로 행하시기 때문이다. 자연의 일들은 신비스럽다. 그래서 가장 지혜로운 철학자들도 그들 자신이 혼돈하게됨을 인정하였다. 섭리의 계획은 매우 깊어서 측량할수 없다(롬 11:33). 하나님은 '셀수 없는 큰일'을 행하신다. 그의 능력을 결코 다함이 없으시며, 그의 목적은 결국 모두 이루어지고 만다. 이제 엘리바스는 욥에게 이것을 깊이 생각해보도록 함으로써 하나님과 다투는 그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깨닫게할 셈이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에 대해 몇가지 예를 들고있다. 하나님은 자연계안에서 큰일을 행하신다. 비를 땅에 내리시고(10절). 하나님은 일반 섭리의 모든 은총을 위해 자연에 '결실기를 주시어 음식과 기쁨으로 우리 마음에 만족케하셨다'(행 14:17). 하나님은 사람들의 하는 일속에서 큰일을 행하시며, 그가 내리신 비로써(10절) 가난한 자를 부유케하시고 궁핍한 자를 위로하실뿐만 아니라 비천한 자를 높이시기 위하여 '궤휼한 자의 계교를 파하신다.' 11절과 12절은 위와같이 연결해서 읽을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과 자신의 백성들을 해롭게하는 모든 계획을 헛되게 하실수 있다. 아히도벨과 산발랏과 하만의 계획이 어떻게 실패로 돌아갔는가! 유다를 대적한 아람과 에브라임의 공모, 그리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대적한 그발과 암몬과 그리고 아말렉의 모의,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은 자를 대적하려는 땅의 왕들과 방백들의 계략이 어떻게 깨져버렸는가! 이방의 지식인들은 그들자신의 헛된 철학에 의해 우롱당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얼빠지게 만드시면 그들은 당황하고 어찌할바를 몰라 매우 명백하고 쉽게 보이는 일조차도 혼돈을 일으킨다(14절). 그들은 낮에도 캄캄함을 만나고. 아니 그들자신의 계획의 격렬함과 급함으로인해 '그들은 캄캄함 속으로 뛰어든다'(참조.12:20,24,25). 하나님은 낮은 자를 높이 드신다(11절). 하나님은 마음이 낮은 자들과 애통하는 자들을 높이시고 위로하시며 견고한 바위가 있는 높은 곳에 거하도록 만드신다(사 33:16). 그리하여 절망하기 시작했던 '가난한 자가 소망을 갖는다.' 어떤 사람들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로하여금 최악의 상태에서도 최상의 상태를 소망하도록 격려한다. 왜냐하면 도와줄 자가 없는 자들에게 도움을 주시고 소망없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 핵심
5:1-27
엘리바스는 재난을 하나님이 죄인에게 내리시는 징계의 측면에서만 생각하여 숨은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라고 촉구했다.
불티(5:7)
(히, 베니 레세프) 레세프는 번개, 역병, 파멸의 신으로 숭배된 우상이었다. 따라서 불티는 욥에게 번개처럼 갑자기 임한 파멸과 질병을 가리킨다. “불티가…같으니라”는 말은 불티가 불꽃이 있어야만 생기는 것처럼, 욥의 파멸과 재난도 그 원인이 있기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뜻이다. 아울러 이 말은 죄악되고 연약한 인생으로서는 고난을 피할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하기도 한다.

# 묵상
엘리바스가 지적한 욥의 고난 원인 ( 5:1-7 )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은 죄에 대한 징계에 있다고 지적하고 죄를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고난에 대한 불평은 하나님앞에 죄악임을 말하고 고난은 이유없이 임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을 욥이 범죄한 결과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성도들이 많이 범하는 실수입니다. 성도는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찾는 것을 먼저해야할 것입니다.
고난속에서의 소망 ( 5:17 )
고난은 고난받는 자로 하여금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케 해주며(욥4:2), 간절히 기도할 기회를 가져다 줍니다(사19:20, 22). 또한 주의 고난에 동참하여 인내하며 천국 상급을 받게해 주고(빌3:10), 고난속에서 도우시는 주님의 은총을 재발견하게 해줍니다. 때문에 성도들은 고난뒤에 영생과 영복이 있음을 깨닫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권고 목적 ( 5:17-27 )
엘리바스의 권고 목적은 욥의 회개와 그로인한 하나님의 은혜로의 회복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동기에서 나온 권고라도 잘못하면 고난당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조소하는 소리로 들릴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엘리바스의 경우처럼 고난의 원인을 잘못이해하여 그릇된 관점에서 권고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곤경에 처한 이웃에게 용기와 소망을 주며 위로의 하나님을 의탁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