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3장 - study
# Study
Ⅰ. 소발에 대한 욥의 대답〔4〕 13:1-12
욥은 친구들의 무정함에 대해 자신의 분노를 격렬하게 표시하고 있다.
(1) 욥은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을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들에게 도전하고 있다(1,2절). 욥의 친구들은 고린도인들이 바울에게 했던 것처럼, 자기 칭찬이나 자기 정당화가 아닌 방식으로 자신과 자기의 지식을 내보일 것을 욥에게 강요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과 주권을 보고들을뿐만 아니라 이해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 욥은 그가 전에 말했고(12:3), 여기서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2절) 자신을 정당화시켜 주리라고 생각했다.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나니. "나는 너희에게 가서 가르침을 받을필요가 없도다. 지혜에 있어서 너희만 못한 내가 아니니라."
(2) 욥은 그들로부터 몸을 돌려서 하나님을 향한다(3절).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욥은 이 친구들과 논쟁하느니 차라리 하나님과 직접 이야기하고자 했다.
(3) 욥은 그들이 자기를 불의하고 무정하게 다루었다고 그들을 정죄한다(4절). 그들은 욥을 거짓되게 비난했는데, 이것이 불의한 처사였다.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그들은 이세상에서 오직 악인에게만 현저한 고통이 있는양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그릇된 가설을 만들어내고는 그 가설로부터 욥이 분명히 사곡한 자였다는 그릇된 판단을 이끌어내었다. 그들은 욥의 치료를 맡아 그의 의사인양 행세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 쓸데없는 의원'이었다. 즉 "우상이 할수 있는 이상의 일을 나를 위하여 해줄수 없는 의사들이니라."
(4) 욥은 그들이 잠잠히 끈기를 가지고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것을 요청한다(5,6절). 너희가 잠잠하고 잠잠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것이 너희의 무지와 그릇된 성품을 숨길수 있기 때문이라."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추측컨대 비록 그들이 욥이 말하는동안 그의 말을 중간에서 가로막지는 않았다할지라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듯했으며, 욥의 말에 별로 정신을 집중하지 않았던듯 싶다. 그런 까닭에 욥은 그들이 자기의 말을 들어줄뿐만 아니라 마음을 기울여서 경청할 것을 부탁했던 것이다.
(5) 욥은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변호하는 척하면서 하나님의 명예에 욕을 돌렸다는 것을 그에게 납득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7,8절). 하나님과 하나님의 대의는 그런 변호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마치 하나님의 공의가 흐릿해져서 누군가가 그것을 닦아주어야할 것처럼, 혹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너희에게 대신 말해주기를 바라시는 것처럼, 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쟁론하겠다고 생각하느냐."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통을 내리신 것을 정당화시키는 체하면서 그들은 당당하게 욥을 사곡한 자요 악인이라고 정죄하였다. "이것은 '불의'를 말하는 것이라"고 욥은 말한다(왜냐하면 무자비와 흠을 잡는 것은 큰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의 거짓을 필요로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대의는 우리의 악한 정책이나 악한 열정을 필요로하지 않는다.
(6) 욥은 그들로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게 함으로써 그들로 좀더 온화한 마음을 가지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행한 일을 하나님께 좋게 이야기할수 있는지 스스로 숙고해보아야 했다(9절).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정직하게 행한 올바른 자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감찰하시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우면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감찰하심이 반갑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엄한 꾸짖음과 노하심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10절). "비록 은밀하게 마음속으로나마, 너희가 '만일 가만히 낯을 좇을진데 그가 정녕 너희를 책망하시리라.' 하나님에 대한 큰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하는 너희가 어떻게 감히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며 그렇게도 함부로 말을 하느냐." 하나님에게는 두려운 존귀가 있다. 하나님의 존귀는 그 자체로는 온후하다. 그러나 인간이 본성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으며 죄에 의한 인간의 결함과 타락이 어떠한가를 고려해볼때에, 하나님의 존귀는 두려운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그들이 이 위대한 하나님에 비하여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했다(12절). 너희 격언은 재같은 속담이요 너희의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즉 "너희가 죽었을때 기억되기를 바라는 너희안의 모든 것은 무가치하고 연약하며, 쉽게 짓밟히고 바람에 날아가버리는 것이라. 하나님을 위한 너희의 충고는 먼지보다도 못하고 너희가 쌓아놓은 이론은 아주 흔한 쓰레기더미와 같도다."
Ⅱ. 소발에 대한 욥의 대답〔5〕 13:13-22
욥은 여기서 자기의 결백함을 결코 놓치거나 빼앗기지 않으리라고 결심한 자처럼, 자기의 결백성을 새롭게 그리고 매우 강하게 움켜쥔다.
(1) 욥은 자기 친구들과 전체 무리에게 자기를 혼자 내버려두어서 자기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고(13절) 마음을 기울여 경청해 줄것을 호소하고 있다(17절). 욥은 자기의 항변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려했는데, 이는 오직 하나님과 자기 자신이외에는 어느누구도 자기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잠잠하고 더이상 나로 너희의 이야기를 듣게하지 말며, 도리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그리고 확증을 위한 나의 맹세로 이 논쟁을 매듭짓도록 하라."
(2) 욥은 자기의 양심이 증언하는 자기의 결백성에 대한 증언을 고수할 것을 결심한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변호하고 '무슨 일이 임하든지 내가 당하리라'(13절). 나는 하나님께서 너희가 했던 것처럼, 나의 필연적인 변론을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만들지 않으시기를 원하노라. 그는 나를 의롭다하실 것이며(18절) 그때에는 나에게 악한 일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 욥은 '그 행위를 변백하리라'고 결심하고 있다(15절). "내가 잠잠하고 스스로를 위하여 변호하지 않는다면, 나의 침묵은 영원히 나를 침묵시키고 말것이니, 이는 나의 기운이 끊어진 까닭이라"(19절).
(3) 그는 자기가 처한 고통과 슬픔의 극한을 원망하고 있다(14절).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왜 나는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내가 악인이 아님을 하나님께서 아시면서도 그가 이렇게도 큰고통을 나에게 내리시는 이유를 나는 의심하지 않을수 없도다." 모든것을 잃고서 전력으로 인내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의 선한 양심과 명예로운 이름으로 말미암아 위로받기를 거절당한다면(그가 그런 위로를 받을만한데도 불구하고) 그는 더욱 고통을 느낄 것이다.
(4) 그는 여전히 자기의 진의와 구원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다. 우리는 이 두개의 위대한 은혜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소망하고 있다(18절).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스스로 의로운줄 아노라. 하나님을 향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며 육신을 따라 행하지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들에게는 정죄가 없으며, 누가 무슨말로 자기들을 정죄해도 자기들은 의롭다하심을 얻으리라고 확신해도 좋을 것이다(16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여기서 욥이 의미하는 구원은 현세적인 구원이 아니다(그는 현세적인 구원을 거의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영원한 구원에 관해서는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사곡한 자가 아님을 알고있었으며, 따라서 자기는 버림을 받지않으리라고 결론지었다. 진실함은 복음서에서 가르치는 완성이다. 이 진실성의 결핍이외에는 우리를 멸망시킬 것이 없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15절). 이것은 고도한 신앙의 표현이다. 우리는 즐거워할 다른 아무것이 없을때에 하나님으로 즐거워해야 하며, 또한 비록 우리가 지금 하나님에게 위로를 찾지못할지라도 우리는 충실히 그를 쫓을수 있어야 한다.
(5) 욥은 만약 하나님께서 논의할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하나님과도 이 문제를 논의하기를 원하고 있다(20-22절).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옵시며. "이는 내가 이런 극단적인 고통속에 빠져있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할수 없음이니이다."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마옵실 것이니이다. 욥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여 나를 이런 육체적 고통과 영혼의 당황속으로 던져넣지 마옵소서. 이는 그렇게되면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기 때문이니이다." 악한 사람은 말할것도 없고 심지어 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고통에 빠져있으면 어찌 하나님앞에서 의롭다함을 얻기위하여 그와 변론할수 있겠는가.
Ⅲ. 소발에 대한 욥의 대답〔6〕 13:23-28
(1) 욥은 자기의 죄를 스스로 깨닫고자 간구한다. 나의...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23절). 그의 친구들은 그의 죄가 얼마나 많으며 또한 얼마나 흉악한지를 그에게 이야기해줄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었다(22:5). 욥은 계속해서 말한다. "그러나 주님이시여 주께서 나의 죄를 알게 하옵소서. 이는 주의 판단은 진리대로이나 그들의 판단은 그렇지않은 까닭이니이다. 나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자기의 가장 나쁜 것을 알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죄악이 무엇인지 알기를 간절히 바라야하는데, 이는 그것들을 자세하게 고백하고 앞으로 그것들에 대하여 스스로 단속할수 있기 위해서이다.
(2)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서 멀리 물러나 계신 것을 비통하게 원망한다(24절).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우시고. 이것은 분명히 그의 외적인 고통보다도 훨씬 심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의 영혼도 심히 곤고케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그를 잘알지 못하시는 것처럼 또 그를 싫어하시는 것처럼 그 얼굴을 감추셨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성령께서는 이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가장 훌륭한 성도들에게 어떤때는 은혜베풀기를 거부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늘의 증거는 가리워졌고 고통은 두절되었으며 절망스러운 현재에 대한 위로의 응답은 끊어졌다(시 77:7-9;88:7,15,16). 이런 상태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비가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소중한 은혜로 영혼에게는 슬픈짐이 된다. '심령이 상하면 누가 그것을 일으키겠느냐'(잠 18:14).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우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욥은 이와같이 질문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로부터 물러나신다는 생각이 들때에는 언제나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즉 하나님께서 어떤 죄악때문에 우리를 징계하시며 그가 우리를 위하여 계획하시는 좋은 일은 무엇인가를 살펴야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욥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전형이었는데,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사람들만 그들의 얼굴을 가리운 것이 아니라(사 53:3) 하나님까지도 그 얼굴을 가리우셨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말씀하실때에 십자가에 달린 그를 둘러싼 어둠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3) 욥은 하나님앞에 설수 없는 자신의 전적인 무능함을 겸손히 하나님께 고백한다(25절).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래시며 마른 검불을 따르시나이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리라'(마 12:20)는 것을 믿을만큼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깨닫고있어야 한다.
(4)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혹독하게 다루시는 것에 대하여 슬프게 원망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기와 더불어 다투시는 것이 자기의 죄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긴 하지만, 그것이 심하다고 생각한다(26절).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고통은 괴로운 일들이다. 주께서 나로 나의 어렸을때에 지은 죄를 받게 하시오며. 즉 "주께서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나를 벌하시며, 그렇게 함으로써 나로 그 죄악들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것들에 대한 나의 회개를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간은 죄책을 도말하여 주지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망각된 죄를 상기시키기 위하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그렇게함으로써 우리로하여금 그 죄를 다시 회개하고 끊어버리게 하신다. 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며. "이는 모든 거짓된 걸음에서 나를 고쳐주시기 위함이라. 주께서는 내 발자취를 한정하시사 내가 악으로 들어가자마자,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것으로인하여 고통을 당하게 하시는도다." 형벌은 죄의 발뒤꿈치를 바짝 따라다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된다.
1)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통을 주심으로써 그로부터 어떤이익을 구하려 하신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그런일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서 우리의 공과에 따라서 우리를 다루지 않으신다. 그것은 욥이 우울증에 빠져서 한말이었다. 그가 정신이 건전할때에는 결코 하나님을 그런 가혹한 주인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2)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죄를 발견하고 미래에는 그런 죄를 다시 짓지않기 위하여 그런 엄하고 세심한 눈으로도 우리 자신과 우리의 발길을 살펴야 한다.
(5) 욥은 하나님의 엄중한 손아래에 눌려서 자기가 후패되어 가고있음을 발견한다(28절). '썩은 물건'인 그는(즉 인간은) 내재적인 부패의 원리때문에 썩어 들어가서 점점 악화일로를 치닫는 좀먹은 의복과도 같다. 영혼속의 건전함이 그렇게 미약한줄 알거든, 하물며 육신속의 건전함이 얼마나 미미한가를 아는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못된다(시 38:3).
# 핵심
13:1-19
욥이 계속해서 변론하는 내용이다.
# 묵상
욥과 세친구의 고난에 대한 해석 ( 13:1-19 )
욥의 경우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의뢰하는 입장입니다. 이에 비해서 세친구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인과응보 원리에 입각해 도식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입니다.
자살금지의 근거 ( 13:14, 15 )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으며(고전6:19), 몸과 영혼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자신을 죽이는 것은 십계명의 제6계명을 범하는 살인행위인 것입니다(마16:26). 즉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주관자이시기때문에 자살행위는 인간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거역한 행위이므로, 성경의 윤리관으로보면 분명한 죄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욥의 불평 ( 13:20-28 )
욥이 고난가운데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였습니다. 즉 자신이 당하는 영육간의 고난은 연약한 존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었는데, 의인으로 자처하는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계속 침묵하시자 욥은 불평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열심히 일하고 순종, 헌신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응답이 없을때는 쉽게 절망에 빠지게됩니다. 그렇지만 이럴수록 침묵속에 하나님의 응답이 숨겨져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