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욥기 21장 - study

산호석 2020. 12. 3. 00:20

# Study

Ⅰ. 소발에 대한 욥의 대답 21:1-6
욥은 여기서 그의 친구들의 동정심을 가지고 자기의 처지를 생각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자기의 말을 중간에 막음으로써 말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지 말아달라는 그의 간청은 매우 공정한 것이다(3절). 그들은 욥을 위로하려고 왔다. "자" 하고 욥은 말한다. 이것이 너희의 위로가 될것이니라(2절). 즉 너희가 나를 위로할 다른 것을 가지고있지 않다면, 나의 말을 참고 들어주는 것이 나에게 위로가 될것이다. "내가 말을 끝마친 다음에 너희가 할말을 하도록하라. 그러면 비록 너희가 나를 조롱하는 말을 한다고할지라도 나는 결코 너희의 말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 너희가 나의 말을 공정하게 들어주기만 한다면, 너희는 마음을 바꾸어서 나를 조롱하기보다는 불쌍히 여기게될 것이라." 나의 원망이 사람을 향하여 하는 것이냐. "아니, 그렇지 않도다. 만약 그것이 사람을 향한 원망이었다면, 나는 그 원망이 아무소용도 없는 것임을 아노라. 그러나 나의 원망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며, 나는 그분에게 호소하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너희와 나사이에 재판장이 되시게 하라." 이것은 평범한 사건이 아니라 매우 특이한 사건이다. 욥 자신도 이 사건에 놀랐다. "나의 모든 평안을 갑자기 빼앗겼던 무서운날, 그리고 악창이 나를 치던날을 내가 추억하기만 하여도 혹은 너희가 나를 비통하게 하던 그 혹독한 모든 말을 추억하기만 하여도 답답하고 두려움이 내 몸을 잡는구나. 특히 악인들이 이세상을 지나가면서 이웃으로부터 얻는 찬사와 그들의 번영하는 상태를 나의 처지와 비교해 볼때에 더욱 그러하구나."

Ⅱ. 악인의 흥함 21:7-16
욥의 세친구들은 그들이 앞에서 행한 연설속에서, 이세상에서의 악인의 비참한 상태를 매우 유사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실이다"라고 욥은 말하고 있다. "어떤때에는 상당히 무서운 심판들이 악명 높은 죄인들위에 떨어지긴 하지만, 이것이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라. 왜냐하면 우리는 공개적으로 대담하게 악을 행하는 자들이 크게 그리고 오랫동안 번영하는 많은 실례들을 가지고있기 때문이라. 비록 그들이 자기들의 번영에 의하여 더욱 그 악함을 굳혀가고 있을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계속 번영하고 있도다."
(1) 여기서 욥은 그들의 번영을 그 높이와 넓이와 길이를 들어서 묘사한다. 그들은 지금 살아있으며, 하나님의 복수의 타격에 의하여 갑자기 끊어지거나 하지는 않고있다. 그들은 살아가고 있을뿐만 아니라 부하게 산다(삼상 25:6). 그들은 세력이 강하고 권세있는 자리와 신임을 얻는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참으시는 기간일뿐이며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번영을 하나님 자신의 경영을 위하여 사용하시는데 그러는동안에 그들에게는 파멸의 때가 무르익는 것이다.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서고. 그들은 안락하고 평안하다(9절). 소발은 악인들의 계속되는 놀람과 두려움을 이야기했지만, 욥은 위험과 위험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그 집이 평안하다'고 말하고 있다(9절). 그들의 재산은 넉넉하며 번창한다. 이에 대하여 그는 오직 한가지 예를 제시하고 있다(10절). 그들은 즐거우며 유쾌한 삶을 산다(11,12절).
(2) 욥은 그들이 어떻게 그들의 재산을 오용하며, 또한 그 재산에 의하여 그들의 불경건이 더욱 단호해지고 강퍅케되는가를 보여준다(14,15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번영하도록 내버려두신다. 그러나 이것에 대하여 놀랄것은 없다. 왜냐하면 '미련한 자의 안일은' 그로하여금 계속 범죄케함으로써 자기를 멸망시키기 때문이다(잠 1:32;시 73:7-9). 이렇게 번영하는 죄인들이 하나님과 믿음을 얼마나 경히 여기는가 보라. 그들은 이세상의 것을 너무나 많이 가진 까닭에 다른 세상의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믿음을 얼마나 싫어하고 있는가. 그들은 하나님과 믿음을 포기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린다. 그들이 선택한 몫은 이세상이다. 즉 그들은 이세상에 동조하며, 그안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동안, 그들은 하나님없이도 살수 있다. 우리가 주의 도리알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나이다. 우리를 믿음으로 이끌어서 그것을 고수하게 하는 두개의 큰끈은 의무라는 끈과 유익이라는 끈이다. 그들은 믿음을 갖는 것이 그들의 의무임을 믿으려하지 않는다. 전능자가 누구기에 우리가 섬기며. 그들은 전능자가 그저 이름뿐인 것처럼 여긴다. 그들은 믿음에 대하여 얼마나 강퍅하게 말하고 있는가. 그들은 이것을 섬기는 것이라고 부르면서, 노역과 고역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고귀하게 여기고 있는가. 우리가 섬기며. "부유하고 힘이 강한 우리가 그에게 종속되며 그의 시중을 들어야한다는 말인가? 아니, 그럴수 없도다. 우리는 주인이라"(렘 2:31). 그들은 믿음을 갖는 것이 그들의 유익이 된다는 것을 믿으려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이익을 얻으랴. 이세상의 부와 명예이외에는 이익이라고 불리울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가?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신령하며 영원한 축복을 얻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으로인하여 잃어버리는 것에 대하여 아무 불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3) 욥은 이런 행위속에 포함된 악인들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면서, 모든것이 그들에게 협력한다는 것을 단호하게 부정한다(16절). 그들의 복록이 그들의 손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라. 즉 그들이 하나님없이 그것을 얻은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들의 그런 태도는 매우 배은망덕한 것이다. 그들에게 그런 부를 얻게해준 것은 그들의 세력이 아니며 그손의 권세도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없이는 그것을 보존할수도 없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안에 있는 그들의 이익을 잃으면서 하나님께 자기들을 떠나달라고 요구한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그들의 재물이 곳간과 자루속에 쌓여있도다. 그 재물이 그들의 손에 있는 것은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렇다면 그 재물이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악인의 계획은 나와 판이하니라. 내가 그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그들처럼 말하고, 그들처럼 행동하며, 그들에게서 나의 척도를 취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라.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어리석음인데'도 그들의 자손들은 그들의 말을 칭찬할 것이라'(시 49:13). 그러나 나는 그들의 경영대로 행하는 것보다 더좋은 것을 알고있도다."

Ⅲ. 악인의 필연적인 멸망 21:17-26
욥은 악인의 번영을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악인의 필연적인 멸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1) 욥은 이 생애에서의 악인의 파멸에 관하여 그의 친구들이 주장한 것을 반박하고 있다. 악인의 등불이 꺼짐이나...일이 몇번이나 있었느냐. "너희는 그것이 심지까지 타들어가서 저절로 꺼지는 것을 자주 보지 않았는가"(17절). 재앙이 그들에게 임함이나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케하심이나...일이 몇번이나 있었느냐. "너희는 그들의 즐거움과 번영이 끝까지 계속되는 것을 자주 보지 않았는가?"
(2) 욥은 악인의 이런 번영을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와 조화시키고 있다. 그들이 바람앞에 검불같이 폭풍에 불려가는 겨같이(18절). 비록 악인이 그렇게 그들의 일생동안 번영할지라도 그들은 가볍고 무가치한 존재들로서, 하나님에게서와 지혜롭고 선한 사람 모두에게 아무런 중요성도 갖지 못한다. 그들은 멸망받기에 적당하고, 늘 멸망앞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들이 그 세력과 자만의 정점에 있을때에라도 그것과 파멸사이는 단지 한발짝 정도만 떨어져있을 뿐이다. 비록 그들이 이세상에서는 번영했지만, 저세상에서는 그 대가를 받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알게될 것이다(20절). 하나님은 그들이 결코 믿으려하지 않았던 '그들의 멸망을 그들 자신의 눈으로 보게하실 것이다.' 그들이 '보려고 하지 않겠지만 보게될 것이다'(사 26:11).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고집스럽게 감겼던 그 눈들이 자기의 파멸을 보기위하여 뜨일 것이다. 그의 달수가 진하면 자기 집에 대하여 무슨관계가 있겠느냐(21절). 영혼을 잃어버린 자에게는 이세상의 소득이 아무런 필요도 없을 것이다.
(3) 욥은 어떤 악인에게는 이렇게 작용하고 또다른 악인에게는 저렇게 작용하는 섭리의 차이점이 하나님의 지혜와 주권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22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우리가 하나님께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려야 하며, 어떤 죄인은 남겨두고 어떤 죄인은 처벌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 줄수가 있는가? 시간과 영원은 너무나 그 차이가 크므로 만약 모든 죄인이 마침내 가는 곳이 지옥이라면, 한사람은 웃으면서 그리로 가고 한사람은 한숨을 쉬면서 그리로 간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늙거나 병으로 쇠약해짐이 없이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평강하여 안일하게'(23절) 살다가 죽음이 임박함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것에 대한 두려움도 느끼지 않은채 갑자기 죽어간다. 그는 '그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 골수는 윤택하였기'(24절) 때문에 즉 건강하고 기운이 넘쳤으며 혈기가 왕성했기때문에 환락과 즐거움속에서 여러해를 사는것 이외의 다른 것은 생각지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음의 일격에 의하여 일순간에 이세상에서 끊어져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면서 불쌍한 욥이 그때에 처해있었던 것과 같은 슬픔과 고통을 겪으면서(25절) 병이나 노령, 혹은 마음의 슬픔때문에 '죽도록 마음에 고통하고 복을 맛보지 못한다.'

Ⅳ. 악인의 형벌 21:27-34
(1) 욥은 자기 친구들의 견해 즉 악인들은 욥이 지금 빠져있는 것과 같은 눈에 보이는 파멸속으로 반드시 빠진다는 견해를 "너희가 이 원리에 기초해서 나를 악인으로 정죄했도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내가 너희의 생각을 안다'고 욥은 말한다(27절). "나의 평안과 명예를 거스려서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궤휼도 아노라.' 그러니 너희들이 어떻게 깨달을수 있겠는가?" 욥의 친구들은 이미 이렇게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왕후의 집이 어디있으며(28절). "욥의 집 즉 그의 자녀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던 장자의 집이 어디있느냐? 욥의 집과 가족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본후에 '악인의 거하던 장막이 어디있느뇨'라고 물어보라. 그러면 너희는 곧 욥의 집이 폭군이나 압제자의 집과 같은 곤경에 처해있음을 알게될 것이라."
(2) 그런데 욥은 그것과 반대되는 자기 자신의 판단을 제시하고 있다. 욥은 지나가는 사람에게라도 그 문제를 의뢰할 용의가 있었다(29절). 너희가 길가는 사람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너희가 원하는 사람 아무에게나 물어보라. 그러면 너희는 그들 모두가 나의 생각과 같은 견해 즉 죄인들에 대한 형벌은 이세상에서 보다는 저세상에서 실시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될 것이라. 이것이 진리라는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1) 여기서 욥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가? 두가지이다.
① 회개치않는 죄인들은 저세상에서 반드시 형벌을 받을 것이다.
②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들이 이세상에서 크게 번영할지라도 이상하게 생각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지금 단지 보존되고 있을뿐인데 이는 그들이 그때에 형벌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죄인은 이세상에서 지혜롭고 선한 자들에게 두려움이 되어서 아무도 '능히 그의 행위를 면박하려' 하지 못한다(31절). 아무도 그를 책망하는 권리를 취하려 들지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행위를 감히 면박하려는 자가 아무도 없을진대, 하물며 그의 행한 것을 갚아주며, 그의 불의로 얻은 것을 돌려주도록 할 자는 더욱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들이 자기들의 과실을 들으며 그들이 행한 악행에 대하여 보복을 하려하지 않던 자들이 그 악행을 그들에게 되갚아주는 날이 온다. 그는 죽어야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죽음의 책망을 가리기위하여 우리가 생각할수 있는 모든 일들이 행해질 것이다. 그는 거창한 장례식에 의해서 장례가 치뤄지게될 것이다. 이것을 예상하고 자랑스럽게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불쌍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권위있는 일로 여긴다. 그는 당당하게 '무덤으로 메어져'간다. 그리고 그의 위에는 거창한 비석이 세워질 것이다. 거창한 찬사의 구절과 함께 "그가 여기 누웠노라"고 씌어진 비문이 그의 위에 세워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킬 것이다.' 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고. 무덤의 악취를 제거하기 위하여 할수 있는한 온갖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등불이나 향료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죽음의 불명예를 감소시키기위하여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당하는 운명이라는 주장도 나올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는 단지 운명에 순종한 것이며 그 앞선 자가 무수함같이 모든 사람이 그뒤를 쫓으리라"고 그를 변호할 것이다.
2) 이런 모든 것으로부터 욥은 그들의 연설이 주제넘은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34절). 그들은 잘못된 가정위에서 출발하였다. "너희의 대답은 거짓뿐이니라. 너희의 위로가 헛되지 아니하냐?" 진리가 없는 곳에서는 위로를 기대할수도 없다.

# 핵심
21:1-34
욥의 친구들은 한결같이 악인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수밖에 없다는 원칙아래 고난당하는 욥을 죄인으로 몰아붙였다. 욥은 그러한 친구들의 도식적인 주장에 맞서, 악인이 잘되고 죄없는 사람이 고난당하는 현실을 거론하며 반박했다.
욥의 경건(21:22)
욥은 세상사에 나타나는 부조리한 현상을 지적하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잃지는 않았으며, 하나님께 성급히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다. 대신에 무엇인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그분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욥의 이러한 태도는 얄팍한 생각으로 무신론이나 불가지론을 주장하며 절대자에 대한 신앙을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일대 경종을 울린다.

# 묵상
욥이 강경한 어조로 말하고있는 이유 ( 21:3-5 )
욥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더이상 친구들을 설복시킬 의사가 없었고, 조롱하는 친구들에게 자제해줄 것을 부탁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또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만 호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욥이 생각한 악인들의 번영원인 ( 21:16 )
자신들의 능력이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보았습니다. 사실 악인의 영화도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총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고,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느것도 있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욥이 말한 육체의 죽음 ( 21:23-26 )
욥은 인간 모두 ‘흙속에 누이고 그위에 구더기가 덮인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욥이 생각한 죽음은 영혼과 육체의 단순한 분리와 그후 영혼의 삶이 존재하는 것까지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때는 육체로 부활하며 영육을 함께가진 존재로서 악인은 형벌가운데, 의인은 영생의 기쁨속에 살게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육체의 죽음은 잠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며 이후에 있을 영원한 나라에서의 삶을 생각하며 살아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