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욥기 23장 - study

산호석 2020. 12. 3. 19:43

# Study

Ⅰ.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 23:1-7
지금 욥은 비참한 상태에 있지만 결코 자기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1) 욥은 자신의 고통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2절). 내가 오늘도 혹독히 원망하니. 즉 "내가 그것을 시인하나 과장해서 원망하지 않았노라. 왜냐하면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중함이니라. 몸의 고통과 영혼의 아픔으로인해 탄식하지 않을수 없도다."
(2) 욥은 친구들의 비난에 대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보아 욥이 위선자가 아니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위선자였다면 감히 하나님께 호소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1) 욥은 하나님의 심판이 공정한 것을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그앞에 호소하기를 갈망했다(3절).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 이것은 죄로인해 하나님을 잃게되었고 만일 다시 그의 은총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파멸하리라는 사실을 알고있는 영혼의 경건한 탄식소리로 볼수 있다.
2) 욥은 자신의 주장이 선한 것임을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주장이 하나님의 법정에서 밝혀지기를 갈망하고 있다(4절). 그앞에서 호소하며. "그 호소가 진실됨을 밝히리라." 이것은 기도의 의무에 적용할수 있는데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고 심지어 은혜의 보좌에까지 나아갈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면할수 있는 자유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말씀드릴 자유도 얻었다. 즉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호소할수 있는 허락을 받은 것이다. 겸손하고 경건한 영혼이 하나님과 자유로이 나누는 교제와 같은 것을 이세상의 왕들과는 절대로 누릴수 없다. 우리는 기도하고 요청할뿐만 아니라 탄원하고 논쟁할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다시말해서 '변백할 말을 입에 채울수' 있는 허락을 받았는데, 하나님을 일깨우기 위해서가 아니라(하나님은 우리의 호소를 듣기전에 이미 그 사실을 완전히 알고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움직여서,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의 열성을 일깨워주고 믿음을 격려하기 위함이다.
3) 욥은 하나님의 은총속에서 판결받게 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확신했기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로 열망했다(5절).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고. 이 말씀은 모든 논쟁에 있어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논쟁은 결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슨 대답을 하시는가를 알고 그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3) 욥은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리라는 소망으로 자신을 위로했다(6,7절). 교만한 죄인들을 벌하시던 바로 그 권능이 겸손한 성도들을 위하여 약속되었다. 겸손한 성도들은 야곱과도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힘을 가지고 하나님과 겨룬다(호 12:3;참조. 시 68:35). 최종판결이 내려질때 '정직자가 그와 변론할수 있은즉', 하나님의 의가 실현될 것이다. 의로운 자라 하더라도 종종 여호와의 징벌을 받으나 그들은 여호와의 징벌에 대해 변론할수 없다. 결백 그자체는 재난이나 비방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그때에 의인과 악인을 분별할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외적인 모습은 별차이가 없어서 우리는 지금 거의 그들을 구별할수가 없다. 거기서...내가 심판자에게 영영히 벗어나리라. 그들의 주인이시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구원된 자들은 영원히 그의 심판과 보수에서 벗어날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그의 자비하심 가운데로 나아가는 길밖에 없다.

Ⅱ. 섭리의 비밀 23:8-12
(1) 욥은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의미를 이해할수 없음을 원망하고 있다(8,9절).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계시고. 그는 하나님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대답을 듣고자하는 큰소망을 가지고 있으며 심판자를 발견할수가 없었다. 욥은 물론 하나님께서 모든 곳에 존재하시고 그의 모습을 나타내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이 혼란하고 격동된 상태여서, 욥은 자신이 하나님안에 있다는 것을 장담할수 없었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징벌을 받을만큼) 욥은 다른 사실보다 더많은 죄를 지은 사람을 감지할수 없었고 또한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괴롭히시는 일에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을 헤아릴수도 없었다. 욥은 매우 당황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알수 없었다.
(2) 욥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결백함을 증거해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결과가 좋게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1) 욥은 미궁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생각을 품고서 매우 만족스럽게 앉아있었다. 즉 "비록 나는 그가 택하신 길을 모르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느니라"(10절). 인간들은 그의 뜻을 알지못하며, 알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않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알고계시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믿는 자들에게는 매우 큰위로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때때로 그릇된 걸음을 따를지라도 계속 선한 길을 밟으며 진리의 길을 쫓고있다는 것을 아시나이다." 즉 의인의 길을 인정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시 1:16) 하나님은 그것을 용인하시며 그것을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욥은 '그가 나를 단련하신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라고 추론하고 있다. 따라서 시련은 끝날 것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다투시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은 정련된 정금처럼 되어 선하고 더훌륭하게 된것을 느끼게될 것이다.
2) 현재의 환난이 이처럼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희망을 갖도록 욥을 격려했던 것은 자기의 양심이 자기의 결백함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길이 곧 하나님의 길이었다(11절).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즉 하나님께서 디디신 발걸음을 붙잡고 바싹따랐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욥의 걸음을 인도하는 법칙이었다(12절). 욥은 '하나님 입술의 명령'으로써 그 자신을 다스렸고 또한 하나님의 율법을 엄격하게 지켰다. 내가...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즉 욥은 일용할 양식없이 생계를 유지할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없이는 살아 갈수 없었다. 이 말은 포위공격에 대비하여 식량들을 쌓아두었던 자들과 같이 또는 기근에 대비하여 양식을 모아둔 요셉과 같이 그 말씀을 쌓아두었다는 의미이다. 일정한 음식이 우리 몸에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생명을 유지해주고 영적생명의 활동을 위해 우리에게 힘을 준다.

Ⅲ. 욥을 두렵게하시는 하나님 23:13-17
욥은 강건한 인내로써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그 인내로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심하게 대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을 견딜수 있었다. 그러므로 욥이 말한 가장 나쁜 말은 하나님께서 까닭모르게 그를 다루신다는 것이었다.
(1) 욥은 훌륭한 진리들을 제시하였다(13,14절).
1) 하나님의 뜻은 불변하시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혹자는 '그는 하나이시다 또는 일정하시다'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조언자들이 필요없으시므로, 사람들의 조언으로인해 뜻을 바꾸시는 일이 없다. 기도는 하나님의 방법이나 섭리를 변경시킬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드러내주신 것은 모두 그가 행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능력은 대적할수 없다.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아무도 그의 손을 멈추게 할수 없다.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다 행하셨도다'(시 135:6). 그리고 언제나 그렇게 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가 하시는 일은 가장 선하기 때문이다.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즉 하나님은 설명할수 없는 섭리로 많은 일을 행하시사 그것은 그의 절대적인 주권아래 행해진다.
(2) 욥은 이 선한 진리를 잘못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앞에서 떨며(15절). 불쌍한 욥이 스스로를 부인함으로써, 얼마나 큰 혼란속에 빠져있는가를 보라. 바로 조금전에는 하나님의 부재로인해 두려워하였으나(8,9절) 이제는 그의 나타나심으로인해 떨고있다. 내가...이를 생각하고 그를 두려워하는구나 하나님이 나로 낙심케하시며 전능자가 나로 두렵게 하시나니. 이는 현재의 모든 일들이 압박하고 미래의 모든 일들이 위협하는듯한 낙망감에 빠뜨리신다는 의미이다. 욥은 하나님께 불평을 하고있다. 이는 어두움으로 나를 끊지 아니하셨고(17절).

#핵심
23:1-17
욥은 엘리바스의 충고를 들은후에 억울한 마음을 풀길이 없어 자신의 결백함을 입증해줄 하나님의 정당하신 판단을 갈망했다. 특별히 본장에서 욥은 자신의 고난이 믿음을 위한 시련일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함으로써(10절) 고난의 의미를 보는 시각이 한결 발전되었음을 시사한다.

# 묵상
욥의 성숙된 신앙자세 ( 23:1-9 )
욥은 사람을 향해 자신의 의를 변호하거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을 호소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성도는 하나님을 통해 고난의 상황이 해결될수 있다는 기대와 확신을 가져야합니다. 그리할때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운데 선한 뜻을 이루게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신앙자세 ( 23:3 )
욥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마지막 신뢰의 대상이며,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주시는 하나뿐인 재판장이십니다. 이와같이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고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세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계시며 가장 적절한때에 적절한 방법으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지식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우리 성도들은 알아야합니다.
욥의 확신 ( 23:10-17 )
욥은 주께서 자신을 연단하심으로 자신이 정금같이 되리라는 것과 고난의 상황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가운데도 늘 인간의 나약성때문에 온전한 순종의 자세가 부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가 고난속에서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인내해야될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때문입니다. 우리의 결심은 자주 번복될수 있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그 약속하신바와 뜻하신바를 반드시 이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