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욥기 29장 - study

산호석 2020. 12. 8. 01:08


# Study

Ⅰ. 욥의 이전의 영화〔1〕 29:1-6
욥은 여기서 다음과 같은 소원으로 말문을 연다(2절). 내가 이전달에 지내던 것과 같이 되었으면. 이렇게해서 욥은 여기서 자기의 번영하던 때를 끄집어내어서 이야기한다. "오, 내가 이전의 번영하던 상태로 다시 회복될수만 있다면, 그러면 내 친구들의 비난과 책망은 그들의 원리에 따를지라도 완전히 잠잠해지고 아주 물러가버릴 것을!" 욥은 자기가 이전에 하나님을 섬기고 있을때에 가졌던 용기를 지금도 가지기를 원하며, 그때만큼의 자유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갖기를 원한다. 이것은 그가 '강장하던 날'(4절)에, 즉 그의 전성기때의 일이었다. 다음의 두가지 사실이 욥에게 지난달을 기쁜 것으로 회상케 해주었다.
(1) 욥이 자기 하나님안에서 평안을 얻었다는 것이 그 한가지이다. 이것이 그가 형통하던 때에 그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주된 이유가 되는 것으로, 그의 번영의 원천과 그 감미로움은 바로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있다는 표시였던 것이다. 그날은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날'이었다(2절). 그때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취었고. 즉 하나님께서 욥을 향하여 그얼굴의 빛을 드셨던 것이다. 그빛은 그가 회의에 빠졌을때 그를 인도하였고, 그가 비탄에 빠졌을때 그를 위로하였으며, 그가 무거운 짐에 눌려있을때에 그를 위로하였고 그의 모든 어려움속에서 그를 도와주었다. 그때는 하나님의 우정이 내 장막위에 있었으며. 즉 하나님께서는 서로 흉금을 터놓는 친구처럼 그와 자유롭게 대화하셨다. 전능자가 오히려 나와 함께 계셨으며. 지금은 욥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셨다고 생각하지만, 그때에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으며, 따라서 욥에게는 하나님이 그의 전부였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면, 그집이 비록 오막살이에 불과할지라도, 그가 계심으로인하여 그집은 성채요 궁전이 되는 것이다.
(2) 욥이 자기 가족속에서 평안을 얻었다는 것이 또 한가지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에게는 자기의 음식을 먹을 사람들이 있었고, 또한 그 사람들을 위한 음식이 있었다. 이 둘중의 어느 한가지가 없다는 것은 큰재난이다. 이제 이런 위안을 빼앗긴 욥은 이 위안에 대하여 매우 감상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자녀를 잃어버렸을때에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사실로 우리 자신을 위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욥은 이많은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6절). 그가 원하기만 하면 '버터가 그의 발자취를 씻길'정도로 그에게는 젖소가 풍성했다. 또한 그의 감람나무 밭은 너무나 열매가 많았으므로, 마치 '반석이 그를 위하여 기름시내를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이와같이 욥은 쌓아두는 금과 은으로 자기의 재산을 따진 것이 아닌 실제로 유용한 버터와 기름으로 자기의 재산을 따졌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지 않을바에는 재산이 무슨쓸모가 있겠는가?

Ⅱ. 욥의 이전의 영화〔2〕 29:7-17
영예롭고 유력한 위치에 있었던 욥에 대한 언급이 여기에 나타나고 있다. 재판은 성문과 거리와 광장에서 행해졌으므로 누구나 자유롭게 참관할수 있었으며 거기서 말해지며 행해지는 것에 대하여 증인이 되고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렇게 될수 있었다. 거기서 욥은 상당한 유지였던 사람으로 그에 관하여 다음의 사실들이 나타나있다.
(1)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깊이 존경했는지를 알수 있는데, 이것은 그의 신분이 갖는 권위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인격적 고상함때문이기도 했다. 백성들은 그를 존경했고 그앞에서 어려워했다(8절). 자기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끼는 '소년들은 숨으며' 그를 피했다. 그리고 '노인들'은 비록 그 자리를 지키기는 했지만,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으려 하지않았다. 그들은 '일어나서 서며'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방백들과 귀인들도 그에게 깊은 경의를 표했다(9,10절). 욥이 재판정에 들어서면 그의 말을 더욱 귀담아 듣기위하여 방백들은 말을 참고 귀인들은 소리를 금했다.
(2) 그가 자기의 위치에서 얼마나 많은 선을 행했는지를 알수 있다. 욥은 자신을 평가할때에 자기 가족의 명예나 자기가 소유한 큰재산이나 자기를 위하여 지은 대저택에 의하여 평가한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쓸모있는 인간이었는가에 의하여 평가하였다. 그가 하는 말을 듣고 그가 자기 성읍에서 아버지와 같은 모든 권위와 애정을 가지고 공공의 선을 위하여 어떻게 자신을 내어놓는가를 본 모든 사람들은 그를 축복하였고 그를 위하여 증거하였다(11절). 또한 망하게 된 자(13절)와 욥의 도움에 의하여 건짐받은 자들이 욥을 축복하였다. 가난한 자들은 자기들이 해를 입거나 포학을 당할경우 욥에게 부르짖었고, 그래서 욥이 그들의 호소의 내용이 사실임을 발견하면 그는 '부르짖는 빈민'을 도왔으며(12절) 그들이 짓밟히도록 가만히 두고보지 않았다. 그는 '빈궁한 자의 아비'였다. 즉 그는 빈궁한 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악한 일을 당하지않도록 돌보는 재판관이었을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쓸것을 공급하고, 그들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돌아보며, 그들을 지도하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아비였던 것이다. 그는 망하게 된 자들을 건져내었고 병든 자들을 돌보았으며 버림받은 자들을 보살펴주었고 거짓되게 고소를 당했거나 재산을 몰수당할 위험에 빠진 자들을 도와주었다. 또한 그는 슬픔으로 한숨 짓고 두려움에 떠는 과부들로 기쁨의 노래를 부르게 해주었다. 어떤이유에 의해서든지 어찌할바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욥은 적당하고 합리적인 위안을 주었다(15절). 나는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고. 그는 공의의 실행에 자신을 바쳤다. 내가 의로 옷을 삼아 입었으며(14절). 즉 공의를 실행하는 것이 그의 몸에 배었다. 그는 옷을 입듯이 항상 의와 더불어 나타났으며, 의가 없이 나타난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의 공의는 도포와 면류관 같았었느니라. 만약 장관이 자기의 지위에 해당하는 의무를 이행한다면 그것은 그에게 있어 정금이나 자주빛 의복보다 더 큰명예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자기의 직무를 양심적으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의 도포와 면류관, 제복과 모자는 그의 수치에 불과한 것이다. 죽은 자에게 입혀놓은 옷이 그를 결코 따뜻하게 해줄수 없듯이, 야비한 자의 도포가 결코 그를 명예롭게 해줄수는 없다. 생소한 자의 일을 사실하여 주었으며. 그는 성실하게 사실을 탐구했으며, 인내를 가지고 공평하게 쌍방의 주장을 모두 경청하였다. 욥은 교만하고 악한 자의 폭력을 저지한 점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했다(17절). 불의한 자의 어금니를 꺾고. 그는 자기가 그들의 목을 부러뜨려 놓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즉 그는 그들의 생명을 끊어놓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어금니 곧 그들이 악을 행할수 있는 힘을 제거해버렸던 것이다. 이와같이 훌륭한 방백이 행악자에게는 두려움과 억압이 되고 무죄한 자에게는 보호가 되는 자이어야 한다. 재판석에 앉은 재판관은 야전 사령관처럼 대담하고 용감하여야 한다.

Ⅲ. 욥의 이전의 영화〔3〕 29:18-25
1. 욥이 형통했을때의 생각(18)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선종하리라. 그는 자기의 보금자리를 뒤흔들어 놓기위하여 일어나는 아무런 폭풍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내일도 오늘과 같으리라"고 단정하였다. 그는 영화로운 가운데서 죽을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 그는 '나의 날은 모래같이 많을 것이라'고 우쭐거렸다. 여기서의 모래는 바닷가의 모래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날들을 모래시계속의 모래, 곧 잠시후면 다 떨어지고 말것으로 여겨야 한다.
2. 그런 생각의 근거(19-25)
그는 자기의 몸에서 어떤 병세가 점점 심해지는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그의 재산 또한 어떤 불안정한 상태하에도 놓여있지 않았다. 즉 그는 자기의 재산의 기초를 좀먹는 그 어떤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마치 그 뿌리가 널리 퍼졌을뿐만 아니라 나무를 굳게 고정시키고 있어서 넘어질 염려가 전혀없는 나무와 같았다. 또한 그는 그 '뿌리가 물로 뻗어나가는' 나무와 같아서 양분의 공급을 족히 받았다. 즉 그는 땅의 비옥함과 하늘의 은택으로 축복을 받았다. 내 가지는 밤이 맞도록 이슬에 젖으며 내 활은 내 손에서 날로 강하여 지느니라. 즉 자신을 방어하는 그의 힘이 날로 강하여졌으므로, 그는 스바인이나 갈대아인의 침입을 두려워할 이유가 거의없었다. 또한 그는 자기 친구들의 신실성을 의심할 이유가 거의 없었다. 그가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질수가 없었으므로, 자기에게 불리한 어떤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은 참으로 확실했다. 사람들은 그가 마치 신탁을 받은 사람인 것처럼 그에게 문의하였다(21절). 다른 사람들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들으며 그가 가르치기를 잠잠히 기다렸다. 그들은 욥의 말에 대적할만한 것이 없듯이 또한 첨가될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내가 말한후에 그들이 말을 내지 못하였었나니(22절). 그는 모든 이웃에게서 사랑과 애정을 받고있었다. 욥의 말을 듣는 자들은 행복한 자들이라고 생각되어졌다. 그의 말은 그들위에 떨어졌으며, 그들은 마치 비를 기다리듯이 그의 말을 기다렸다(22,23절). "내가 그들을 기뻐함을 혹은 그들과 함께 기뻐함을 표시하기 위하여 '함소'하면 그것은 큰호의였기에 그들은 내가 기뻐서 웃었다고는 믿지않았다." 그것은 이 근엄한 사람이 미소를 짓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내가 그들의 길을 택하고. 즉 조종석에 앉아서 그들을 위하여 길을 인도하였다. 왕이 군중에 거함도 같았고. 즉 그는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명령을 내리는 자 같았다. 지혜의 영을 가진 사람 치고 통치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는데, 욥은 이 두가지를 모두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위로자의 부드러움을 겸비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욥과 같은 왕으로서, 가난한 자의 왕이시다.

# 핵심
29:1-25
욥의 독백(29-31장)가운데 마지막 변론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욥은 과거에 누렸던 행복했던 시절 곧 하나님과 나누었던 영적인 교제, 풍요롭고 존경받았던 삶, 불행한 이웃을 돌보며 정의를 실천했던 일들을 회상하고 있다.

# 묵상
고난에 처한 욥의 심경 ( 29:1-6 )
욥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심으로인해 자신이 이제까지 복된 생활을 했다는 신실한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극심한 고난에 처한다해도 지금까지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것으로인해 끝까지 감사와 소망의 신앙을 잃지말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한 사회보호법의 근거 ( 29:2-25 )
성경이 말한 사회보호법의 근거는 하나님의 공의, 사랑 그리고 자비의 속성입니다. 이러한 사회보호법의 제정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로하여금 조화로운 사회생활을 할수 있도록 평등과 자비, 그리고 사랑의 정신에 근거한 보호법제정을 명하셨던 것입니다.
사회보호 대상자들 ( 29:12, 13 )
사회보호 대상자들은 이방나그네와 객(신10:19), 그리고 과부와(신24:17-21) 고아입니다(신24:17-21). 또한 가난한 자와(레19:9, 10) 이웃(레19:13, 16), 귀먹은 자와 소경(레19:14), 가난한 품꾼(신24:14, 15) 등입니다.
백성들가운데서의 욥의 위치 ( 29:25 )
그는 왕같은 존재였고 애곡하는 자를 위해 위로하는 자와 같았습니다. 즉 욥이 실제적인 백성들의 영적지도자로 일했기에 백성들은 욥을 필요로했던 것이며, 욥은 도움과 위로를 제공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지도자이면서도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든지 불필요한 존재로 괴로움과 수고만 제공한다면 이는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