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욥 10:1~12)
생명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욥기 10장 1절~12절]
1절 -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2절 -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3절 -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4절 - 주께도 육신의 눈이 있나이까 주께서 사람처럼 보시나이까
5절 - 주의 날이 어찌 사람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해와 같기로
6절 -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들추어내시나이까
7절 -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8절 -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9절 -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10절 -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1절 - 피부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12절 -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배경 이해하기]
욥은 빌닷에게 응답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변론하며 항변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 내용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무차별적인 심판을 내리신 것에 대한 탄식입니다. 이를 통해 욥은 그가 겪는 고난의 문제는 친구들과의 논쟁이 아닌 오직 하나님과의 소통으로 해결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재판장으로, 자신을 피고인으로 세우며 자신을 정죄하지 마실 것을 간구합니다(2절). ‘무슨 까닭으로’ 자신에게 고난을 주시는지 변론해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이어서 욥은 하나님의 능력과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신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가 겪는 고난이 부당함을 변호합니다. 그는 먼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성격이 무엇인지 답변을 요청합니다(3절). 9장에서 하나님과 자신의 본질적인 차이를 인식하고 체념하는 자세를 취하던 욥은 10장에서는 반대로 강력히 항변하는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 요구는 자신을 향한 정죄를 잠시 유보해 주실 것과 고난의 정당성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욥은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에게 생명과 은혜를 주시면서 동시에 고난과 질병도 주실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12절).
[관찰과 묵상]
1. 욥은 피조물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에 대해 어떤 오해를 했나요?(3절)
욥은 창조주 하나님이 그분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고 멸시하시며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는 분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정죄하는 것을 잠시 미루시고 고난에 처한 원인을 말해 달라고 요청합니다(2절). 또한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에 비유하면서 계속 질문합니다(3~6절).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3절에서 ‘선히 여기시나이까’에 해당하는 ‘하토브 레카’는 원어에서 3절 맨 앞에 위치하며 뒷 문장과 연결됩니다. 이를 다시 번역하면 ‘당신은 선하신가?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가 되며, 이어지는 ‘멸시하고’와 ‘악인에게 빛을 비추시는’까지 의미가 연결됩니다. 즉, 욥은 그의 창조 신앙을 토대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인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분의 손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피조물을 다스리시고 보호하시는 선하신 분입니다. 욥은 그러한 믿음으로 선하신 하나님이 악을 행하지도 않은 자신을 학대하시고 고난을 겪게 하시는 데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의 항변은 수사적인 의문문으로 4절부터 6절까지 이어집니다. ‘주께도 육신의 눈이 있나이까?’(4절), ‘주의 날과 해가 어찌 사람의 것과 같습니까?’(5절), ‘어찌 내 허물과 죄를 들추어내시려고 하십니까?’(6절, 새번역)라고 강하게 항변합니다. 욥은 이렇게 하나님의 행동을 사람처럼 묘사함으로써 그분과의 인격적인 친밀함을 강조하며, 인격적인 하나님이 어떻게 무죄한 자신을 죄인 취급하시는지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적용과 나눔
나를 창조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은 어떠한가요? 나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있나요?
본문에서 ‘주의 손’은 욥을 학대하고 멸시하는 심판자로도 표현되며(3, 8절), 힘을 다해 흙을 빚어 걸작품을 만드는 토기장이의 손(8절)으로도 묘사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생령, 곧 생명 있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특별한 애정과 관심으로 창조된 인간이 범죄했음에도 하나님은 인간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 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내어 주기까지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실하신 사랑의 하나님 손으로 친히 창조되었음을 인식하며 창조물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흙으로 빚어져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토기장이의 손에 맡겨진 진흙처럼 겸손하게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어떠한 고난이 와도 하나님의 손안에서 생명과 은혜를 선포하며 그분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욥이 창조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고백한 내용은 무엇인가요?(12절)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시며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에게 임한 고난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려 달라고 요청합니다(4~6절). 그는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흠 없이 살아온 ‘악하지 않은 자’임을 밝히며 고난의 불합리함을 호소합니다(7절). 그러면서 하나님의 섭리(손)에서 벗어날 수 없음도 인정합니다(7절). 이제 욥은 창조주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8~13절). 먼저 하나님의 창조를 수사학적으로 설명합니다. 8절의 ‘주의 손으로…빚으셨으며’에서 ‘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드’(dy")에는 ‘재능’, ‘능력’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욥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창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창조에 ‘손으로’라는 표현을 쓴 것은 하나님이 다른 피조물은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과 달리 인간만큼은 친히 손으로 빚어서 창조하셨으며,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피조물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빚으셨으며’의 히브리어 ‘아차브’(bc;['')는 ‘힘써 일하다’라는 뜻이며, ‘만드셨는데’의 히브리어 ‘아사’(hf''['')는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듯이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의미들을 종합하면 ‘당신께서는 나를 손수 빚어 만드시고는 이제 마음을 바꾸시어 나를 없애 버리시렵니까?’(공동번역)입니다. 욥은 창조주 하나님의 신실성을 강조해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면서도 결국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고 보살피시며 지키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적용과 나눔
인생의 고난 속에서 나는 하나님께 항변하는 때가 많나요,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헤아려 보고 감사하는 때가 많나요?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욥은 하나님께 자신의 괴로움에 대해 진솔하게 의문을 제기합니다. ‘무슨 까닭으로 내가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이 같은 욥의 질문에 우리는 모두 공감합니다. 우리도 고난당할 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질문을 던질 때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은혜에 관한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와 고난에 대해 ‘왜?’라고 물을 수 있다면, 하나님이 베푸시는 생명과 은혜에 대해서도 ‘왜?’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형평에 맞습니다. ‘도대체 왜 나에게 건강을 주셨습니까?’, ‘왜 나에게 이런 재능을, 좋은 직장을, 아름다운 가정을 주셨습니까?’ 등 하나하나 따져 묻는다면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더 진지하게 고난에 임할 수 있고, 더 인내하며 고통을 견딜 수 있습니다. 은혜를 주신 이유를 찾다 보면 은혜에 보답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질문할 때 고통과 슬픔에만 집중하지 말고 이미 받은 은혜와 사랑에 관해 질문한다면, 어떤 고난이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인내하며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 욥은 두 가지 질문으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첫째는 “무슨 까닭으로 나를 정죄하시며 고난을 주십니까?”라는 것이고(2절), 둘째는 “주의 손으로 빚으셨는데 왜 나를 멸하십니까?”라는 것입니다(8절). 두 질문 사이에서 욥은 심판자이신 동시에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피조물임을 깨닫습니다. 욥의 고난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그는 생명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 창조주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성도는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그 고난에 비할 수 없는 큰 영광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롬 8:18).
[말씀으로 기도하기]
제게 고난이 닥칠 때 이를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 깊이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생명과 은혜의 주님을 소망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