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믿음으로 세우는 세상 (공재영 목사님)

[출애굽기 8장 8절~15절]
8절 -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
9절 -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내가 왕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위하여 이 개구리를 왕과 왕궁에서 끊어 나일 강에만 있도록 언제 간구하는 것이 좋을는지 내게 분부하소서
10절 - 그가 이르되 내일이니라 모세가 이르되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11절 - 개구리가 왕과 왕궁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떠나서 나일 강에만 있으리이다 하고
12절 -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떠나 나가서 바로에게 내리신 개구리에 대하여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13절 -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집과 마당과 밭에서부터 나와서 죽은지라
14절 - 사람들이 모아 무더기로 쌓으니 땅에서 악취가 나더라
15절 -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큰 고통의 자리에는 특별한 은혜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리가 그 고난을 통해야만 깨달아지는 큰 가르침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인 것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12:9)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에게 질병을 주신 이유는 사도 바울이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으므로 자신도 모르게 교만의 자리에 세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바울이 세워진 자리를 고백하기를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고 한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노예로 사는 자리에서 해방하시기 위해 애굽 왕 바로를 깨닫게 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자리가 지금의 고통을 끝내려 하지 않고 내일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리에 세상을 복되게 세워 가도록 합시다.

 

1.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세우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8)

본문의 사건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로 살도록 일정기간 허락하셨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하신 때가 이르게 되자 노예에서 해방시키려고 모세를 보낸 것입니다. 모세가 형 아론과 함께 애굽 왕 바로를 찾아가서 애굽에서 노예로 살고 있는 이 민족은 하나님의 백성이니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내보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애굽 나라는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세우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중 요셉이라는 신앙인이 심각한 가뭄으로 인한 기근 때문에 애굽 나라가 존폐의 위기를 만났을 때 위기를 벗어나게 한 시대의 영웅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시대의 영웅인 요셉을 인정하지 않는 왕이 등극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세워진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때가 이르자 소망의 날을 열어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애굽 왕 바로는 강하게 반발을 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재앙을 내려서 심판을 한 것입니다. 그 재앙 중의 하나로 개구리를 보내 애굽 왕과 백성들의 집에 개구리가 가득하게 했던 것입니다. 개구리 재앙이 내려진 자리에 나타난 놀라운 사실은 애굽의 요술사들도 이 개구리를 생기게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개구리를 없애지는 못한고로 왕이 모세에게 요청을 받아들일테니 개구리를 없애 달라고 했습니다. 왕의 요청에 모세가 언제 개구리를 내보낼 것이냐고 물었더니 내일 개구리를 내보내라고 왕이 지시를 한 것입니다. 하룻 밤을 개구리와 함께 더 지내겠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애굽 나라 요술사도 만드는 개구리는 별것 아니지만 더럽고 추하니까 내보내 주면 요청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요술사도 행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교만이 꺾여질 때까지 하나님이 고통을 주시기로 계획하신 것입니다. 애굽 왕 바로의 자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내 힘이 강할수록 예수님은 문 밖으로 쫓겨나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세우지 못하는 세상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믿음의 복은 앞을 다투면서라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10).

믿음의 복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나에게 있어야 하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6:37)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모든 것을 적절한 때에 맞춰 일 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고 하셨고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16:4)고 하셨습니다. 셋째는 약한 자로 하여금 세상을 이기게 하는 지혜를 얻게 하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고 하셨습니다. 즉 믿음의 복은 성도로 하여금 어떤 세상 속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믿음의 복을 받는 자리는 앞을 다투면서라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보여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야곱은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일에 어떤 모험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자신을 행운아로 세워주겠다고 하며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를 담대하게 물리치기를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37:9)라고 소리를 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소년 다윗의 담대함을 성경이 증거하기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가 나아가노라(삼상17:4,5)고 했던 것입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미치광이처럼 쫓아다니며 죽였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복음 전도자로 세움 받은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했다(1:16)라고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의 복을 앞을 다투면서라도 가졌던 자의 삶은 모든 신앙인들의 자랑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애굽 왕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개구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잠을 자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자리에 기쁘게 나아가는 성도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더 큰 세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13,15).

하나님께서 보잘 것 없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바벨론 나라에서 노예로 살지 않게 하시고 애굽 나라에서 430년을 살게 하시면서 노예의 신분으로 세운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는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두 가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벨론은 아브라함이 죄된 모습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12:1)고 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애굽 땅을 하나님이 없는 부요한 세상으로 비유하여 그곳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을 노예로 팔려가게 했고 이 요셉을 세워 큰 가뭄으로 흉년이 들게 하여 세계를 살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이 나일강의 축복으로 비옥한 땅을 가졌기에 이 축복을 유지 관리하려고 과학과 학문이 크게 발달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계획 속에 세워진 강대국인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애굽 왕 바로에게 이 노예를 해방시키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가능할 수 없는 것이고 애굽 왕 바로가 허락할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애굽 왕 바로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애굽 왕 바로에게 보여준 사건이 열 가지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애굽 왕 바로가 세워진 자리는 자신이 신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첫 번째 재앙으로 나일강 물을 피로 변하게 했어도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재앙인 개구리가 왕궁과 모든 애굽의 집과 온 들판에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바로 왕은 자신의 존재보다 더 큰 하나님의 실존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 부터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자신 앞에 그 어떤 힘도 설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힘이 약한 것으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보다 더 큰 하나님의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인데 바로 왕은 이 구원을 거절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애굽의 왕에게만 아니고 우리에게도 더 큰 세상을 열어주시려는 하나님을 믿고 세상을 더 좋게 세우는 성도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11:1)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세상을 나의 복으로 받아들입시다.

 

결론을 맺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기대를 가질 수만 있어도 살아가는 것이 힘들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자리에 반드시 열려지는 자리가 있다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세우는 지혜는 첫째는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세우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의 복은 앞을 다투면서라도 가져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더 큰 세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열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세우는 세상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좋게 세워가는 성도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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