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힘입니다

 

[느헤미야 8장 1절~12절]
1절 -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2절 -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3절 -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4절 -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5절 -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절 -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7절 -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께닫게 하였는데
8절 -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9절 -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절 -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르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절 -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12절 -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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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하시는 하나님

 

[느헤미야 9장 9절~15절]

9절 - 주께서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서 고난 받는 것을 감찰하시며 홍해에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10절 - 이적과 기사를 베푸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나라 온 백성을 치셨사오니 이는 그들이 우리의 조상들에게 교만하게 행함을 아셨음이라 주께서 오늘과 같이 명예를 얻으셨나이다
11절 - 또 주께서 우리 조상들 앞에서 바다를 갈라지게 하사 그들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 같이 통과하게 하시고 쫓아오는 자들을 돌을 큰 물에 던짐 같이 깊은 물에 던지시고
12절 -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이 행할 길을 그들에게 비추셨사오며
13절 - 또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그들과 말씀하사 정직한 규례와 진정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그들에게 주시고
14절 - 거룩한 안식일을 그들에게 알리시며 주의 종 모세를 통하여 계명과 율례와 율법을 그들에게 명령하시고
15절 - 그들의 굶주림 때문에 그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들의 목마름 때문에 그들에게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또 주께서 옛적에 손을 들어 맹세하시고 주겠다고 하신 땅을 들어가서 차지하라 말씀하셨사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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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이방인의 추방 13:1-9

 

이스라엘은 이방인과 혼합될수 없으며 이방인이 그들중에 들어오는 것도 허용할수 없었다.

(1) 이런 취지의 율법이 성곽 봉헌일에 백성들에게 읽혀졌다(1절). 그러므로 백성들은 아모리 족속과 모압 족속이 유다인으로 귀화할수도 없고 유다인들가운데 정착하여 살수도 없으며 연합할수도 없다는 율법을 알게되었다(1절). 그 이유는 그들이 예전에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악의를 품고 해하려하였으며(2절), 일상적인 호의도 베풀지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 했기때문이었다. 우리는 이 이유를 설명하는 율법을 신명기 23:3-5절에서 볼수 있다.

(2) 백성들은 기꺼이 이 율법에 순종하였다(3절). 하나님의 율법을 공중앞에서 낭독할때의 유익을 보라. 말씀을 낭독할때 우리는 죄와 의무, 선과 악을 깨닫게되며 우리가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 알게된다. 백성이…섞인 무리를 이스라엘가운데서 몰수히 분리케하였느니라(3절). 예전에 '섞여사는 무리가 탐심을 품었기' 때문에(민 11:4)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된적이 있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이들을 쫓아내었다.

(3) 도비야는 특별한 경우였다. 그도 암몬 족속이었다. 그도 조상들과 동일하게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 즉, 암몬 족속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은 느헤미야에 대한 증오에서 잘 나타나있다(2:10).

1)대제사장 엘리아십은 이 도비야를 불러들여 성전 뜰안에서 머무르게한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그는 처음에는 혼인관계로 나중에는 우호관계로 도비야와 동맹을 맺었다(4절). 또한 그의 손자는 산발랏의 딸과 결혼하였다(28절). 아마 그의 가족중 다른 사람도 도비야 가족과 혼인했을 것이다. 대제사장은 자기 민족중에서 결혼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자손으로 민족중에서 더럽히게' 된다(레 21:14,15)는 사실이 율법에 명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성전 뜰안에 있는 곳간으로 사용하는 방하나를 도비야가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러 온것처럼 꾸며, 하나님의 집 뜰안에서 이스라엘에게 존경을 받도록하려는 의도였다. 이것은 우상을 성전에 세우는 것에 버금가는 죄악이었다. 암몬 족속은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되어있는데, 암몬 족속중에서도 가장 악하고 더러운 자를 성전안으로 영접할수 있겠는가? 느헤미야가 "그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변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6절). 만약 느헤미야가 거기 있었더라면 대제사장이 감히 이런 일을 저지르지 못했을 것이다.

2)총독인 느헤미야는 과감하게 도비야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내어쫓고, 그 방을 본래의 용도로 회복하였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때, 이 일로 괴로움을 당하던 경건한 사람들은 대제사장과 대적이 얼마나 친밀하게 지내는지 그에게 전해주었으며, 그는 이 일때문에 심히 근심하게 되었다(7,8절). 그러나 느헤미야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 권력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였다. 도비야는 추방되어야 했다. 느헤미야는 도비야의 분노도 엘리아십의 분노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비야의 세간을 다 내어던지고 그를 추방하였다. 이와같이 구세주께서도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지 않게하기 위하여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음에서 죄악을 추방하기를 원하는 사람, 즉 살아있는 성전된 사람들은 정욕의 먹이나 연료가 되는 모든 것을 내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성전의 저장품을 다시 들여왔고, 하나님의 전의 기명을 다시 그리로 들여놓았다. 그러나 그 방은 우선 깨끗하게 하는 물을 뿌려야 깨끗이 될수 있었다. 이와같이 회개함으로 죄를 마음밖으로 내어던질때, 먼저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피를 마음에 적시고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의 은사를 마음에 채워야한다.

 

Ⅱ. 헌물 제도를 다시 세움 13:10-14

 

(1) 레위 사람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있었다. 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10절). 레위 사람들은 점잖았으므로 자신의 생계를 위해 무엇을 청구하지 않았다.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그 전리로 도망하였기로. 이 사실은 한편으로는 레위 사람들이 급료를 받지못한 이유가 될수 있다. 레위 사람들은 예루살렘 주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성전에서 직무를 담당하고 있어야할 시간에 농촌의 들에서 일하고 있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레위 사람들에 양식을 공급할 생각을 하지않았다. 또한편으로는 그들이 급료를 받지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헤미야가 그렇게 빨리 알아차리게된 이유가 되었다고 해석할수도 있다. 왜냐하면 레위 사람들이 직무를 떠나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직업으로는 생계를 유지할수 없었기때문에, 자신과 가족의 생계비를 벌기위해 들판으로 나가버린 것이다. 수치스럽게 번 생활비는 불명예스런 성직자를 만든다.

(2) 느헤미야는 민장들을 꾸짖었다. 그는 먼저 민장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하나님의 집이 어찌하여 버린바 되었느냐(11절). 왜 성전 일을 하는 레위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가?"

(3) 그는 지체없이 흩어진 레위 사람들을 불러모아 그 처소에 세웠다(11절).

(4)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가져오라고 명했다(12절).

(5) 레위 사람들에게 신속하게 정당한 급료를 지급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 일을 감독하기위해 관리를 임명했다(13절).

(6) 느헤미야는 이들을 위해 이와같은 선행을 했지만 그들로부터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않고 자신의 보상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14절). 그는 경건한 호소의 기도를 많이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기도한 것은 '내게 갚아 주옵소서'가 아니라 '나를 기억하옵소서'이다.

 

Ⅲ. 안식일에 대한 경계 13:15-22

 

여기에 느헤미야가 행한 또다른 경건한 개혁의 실례가 나와있다. 즉 안식일 성결제도를 부활시키고 제4계명의 권위를 회복시켰다.

(1) 안식일에 대한 율법은 매우 엄하며 아주 강조되는 율법이다. 여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안식일이 짓밟힌다면 유대교가 결코 권위를 가질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바로 유다에서 이 율법이 비참하게 짓밟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안식일에는 '밭갈때나 거둘때도 쉴지며'(출 34:21)라는 계명이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농부는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을 집으로 날랐다(15절). 율법에 가축들을 쉬게할 것과 사람들도 '안식일에 짐을 지지말 것'(렘 17:21)이라는 특별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농부는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였다. 유명한 상업도시 두로의 잡상인들이 안식일에 식물을 팔았다(16절).

(2) 이것에 대한 개혁.

1)느헤미야는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들에게 재차 경고하였다(15,21절).

2)이 일에 관하여 족장들과 상의하고 유다의 귀인들을 꾸짖었다(17절). 즉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느냐'고 책임을 물었다. 귀인들이 직접 곡식을 나르고 물고기를 팔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는 자들을 간과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사용하여 이 일을 제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통치자들이 공연히 권력을 가지고있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이 일로인하여 그들에게도 죄가 되었다. 이 일외에도 귀인들의 나쁜 본을 보여주었다. 즉 귀인들이 안식일에 스포츠나 오락, 무익한 방문이나 대화로 소일한다면, 도시나 농촌에서 일에 쫓기는 사람들이 세상적인 업무로 안식일을 더럽힌다 하더라도, 이것이 오히려 더 정당한 일이 될 것이다. 느헤미야는 이것을 귀인들에게 말했다(18절). 만약 그들이 경고를 받지않고 다시 동일한 죄로 돌아간다면, 마땅히 더 큰심판을 기대해야할 것이다.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을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3)느헤미야는 오직 개혁에 필요한 부분으로 안식일 더럽힘을 방지하는 조처를 취했다. 만약 그들이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돌아선다면 처벌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느헤미야가 그들을 처벌한다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을 돌이키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더 큰채찍을 맞지않도록 하기위해 견제의 역할을 담당하고 채찍과 재갈을 신중하게 사용하는 통치자에 대한 일례이다. 그는 예루살렘 성문을 안식일 전날 저녁부터 안식일후 아침까지 닫아버리라고 명하고, 자기 종자들을 배치하여 이 일을 감독하도록 하였다. 어떤 짐도 안식일 시간을 침식하지 않도록 하기위하여 안식일 전날밤 늦은 시간부터 안식일후 이른 아침 시간에까지 반입하지 못하도록 하였다(19절). 또한 물건을 가지고 성문에 온 자들을 위협하였고 다시 한번더 온다면 사로잡겠다고 경고하였다(21절). 그리고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지정된대로 안식일을 정결케하도록, 즉 먼저 자신들을 깨끗하게하여 백성들에게 본을 보이고 와서 성문을 지키도록 명하였다(23절). 이 일을 살펴볼때 총독과 성직자들이 힘을 합침으로써 이 일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서도 개혁이 일어날수 있었던것 같다. 느헤미야의 치료의 효과는 오래동안 지속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 당시에도 안식일 성결의 의식적인 면에 있어서 유대인들의 그릇된 열심과 지나친 세심함을 발견한다.

4)느헤미야는 이 구절을 기도로 끝마친다(22절).

 

# 핵심

 

13:1-3

이민족과의 교제를 단절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언약의 갱신(9,10장)에는 이민족과의 통혼이나 교제를 금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었다(10:30). 본문은 이 약속을 실행했던 내용이다.

 

# 묵상

 

율법 준수중 제일 먼저 시행된 것 ( 13:1-3 )

느헤미야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방인과의 단절을 시도하였습니다. 포로기이후에 이스라엘은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나가기 위해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적대시해 왔던 암몬과 모압사람들을 축출하여 종교적 혼합주의를 미연에 방지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의 개혁 ( 13:7-31 )

느헤미야의 개혁은 크게 성전 개혁과 성전 직무의 개혁, 안식일 개혁, 레위인들에 대한 개혁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성전 개혁을 살펴보면, 도비야의 죄악을 발견하고(7절), 도비야를 축출함으로써(8절), 성전을 거룩한 상태로 복구했습니다(9절). 두번째로 성전 직무에 대한 개혁으로는, 십일조 불이행을 발견하고(10절), 민장들을 책망했으며(11절), 레위인들을 소집하여 집무를 재수행하게 했고(11절), 네명의 곳간지기를 임명했습니다(12, 13절). 세번째로 안식일 성수에 관한 개혁이 있는데, 먼저 안식일 준수를 선포했고(15절), 안식일을 범한 자를 책망했으며(17-22절), 안식일동안 성문을 봉쇄하였고(21절),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22절). 그리고 네번째로 레위인들에 관한 개혁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레위인들에게 그들이 이방인과 통혼한 죄악을 책망했고, 저주를 선포했으며(25절), 이방인과 결혼한 대제사장을 추방했고(28절), 이방의 무리들을 축출했습니다(30절).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 13:22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범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자를 무한히 베푸시고(출34:7), 노하기를 더디하셨으며(느9:16, 17),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고(시32:3-5), 진노를 여러번 돌이키셨습니다(시78:38). 또한 사유하기를 즐겨하시고(시86:5), 죄과를 멀리 옮기셨으며(시103:12-14), 죄를 등뒤로 던지시고(사38:17), 죄를 기억지도 않으셨습니다(렘31:34). 그리하여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하시고(요일1:9), 구원해주셨던 것입니다(단3:4, 5).

이방인과 통혼한 대제사장 ( 13:28 )

당시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은 물론, 과부, 이혼한 여인, 더러운 여인, 기생과 결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오직 처녀와(레21:14) 제사장의 과부와만(겔44:22) 결혼할수 있었습니다(레21:14). 백성들이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도 금지되던 당시에 대제사장 가문의 잡혼은 느헤미야에게 큰충격을 주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 이방 여자는 느헤미야의 원수, 이스라엘의 원수인 산발랏의 딸이었습니다. 요야다는 제사장으로서의 본을 보이지 못했을뿐 아니라, 분별력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그를 내쫓아 버렸습니다.

참된 지도자 느헤미야 ( 13:31 )

그는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고(1:4-11), 백성들을 위해 고국에 돌아갈 것을 이방 왕에게 담대하게 간청했으며(2:5-8), 모든 일을 신중하게 준비하였고(2:12-16), 상황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내리고 옳은 일에는 소신과 열심이 있었습니다(2:20). 뿐만 아니라 난관에 부딪혔을때에는 기도와 아울러 현실적인 노력을 기울였고(4:9), 반대 세력에 부딪힐지라도 과감하게 일을 진행했으며(4:15-23), 사기가 저하된 백성들에게 믿음과 확신을 주었습니다(5:14, 15). 더욱이 그는 청렴결백하여 백성들을 압제치 않았고, 난관을 극복하고 추진하는 인내심과 추진력이 있었습니다(6: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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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12:1-26

 

여기 위대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이름이 많이 나와있는데, 이들은 그 당시 귀환한 유대인들가운데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이것을 기록한 목적은 아마 이들을 계승하고 이들의 명망과 지위를 이어받을 후손들을 격려하며 이들의 신앙과 용기를 본받게 하려는 의도인것 같다. 대제사장직은 바사 왕조 동안에 귀환 당시의 대제사장인 예수아로부터 얏두아(혹은 얏두스)에게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이 두로를 정복한후 예루살렘에 왔을때, 얏두아는 성직자의 권위를 가지고 알렉산더를 만나서 다니엘의 예언을 보여주고, 그가 여러나라를 정복할 것을 예언하였다. 이에 대하여 알렉산더는 그에게 큰 경의를 표시하였다. 여기에 제사장들의 다음세대가 나오는데 이들은 모두 족장이었고 요야김과 동시대에 활동하였으며 각 족속의 맏아들이었다. 1절이하에서 이야기하는 당시대에 뛰어난 이 모든 제사장들은 변동된 두사람만 제외하면 모두 12절이하에서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또한 다음세대에서 뛰어난 아들들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명의 훌륭한 아버지가 또한 20명의 훌륭한 아들을 둔다는 것은 흔치않은 일이다. 다음에는 레위 사람들의 다음세대가 나온다. 그런데 이들은 다음 다음세대라고 볼수도 있다. 왜냐하면 여기 제사장들은 요야김 시대에 활동했다고 되어있는 반면, 레위 사람들은 엘리아십 시대라고 되어있기 때문이다(22절). 이 시대에는 족장들이라고 기록된(22절)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뛰어나게 봉사했으므로, 이들의 봉사는 레위 사람의 신분에 걸맞지않게 우등하다고 인정되었다. 대제사장인 엘라아십이 도비야와 동맹하였기 때문에(8:4) 다른 제사장들은 직무에 태만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에 레위 사람들은 더욱 열심을 내었던 것이다. 이제 가르치고 기도하는 일을 맡은 사람은 모두 레위 사람들이었으며(9:4,5) 제사장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문제되는 것은 사역자의 신분보다 개인적인 자질인 것이다.

 

Ⅱ. 예루살렘 성곽 봉헌 12:27-43

 

(1) 예루살렘 주민이 어느정도 재충원되었을때 성곽이 봉헌되었는데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자비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그들은 이 성을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 바쳤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성을 소유하였다. 이 성은(다른 성과는 다르게) '거룩한 성', '큰임금의 성'(시 48:2; 마 5:35)이었다. 그들은 이 성과 성벽을 하나님의 보호하심아래 두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시지 아니하시면 성벽을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2) 봉헌식은 느헤미야의 지휘아래 매우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전국에서 레위 사람들이 모여들어 참석하였다. 이것은 큰모임이었다(28,29절). 레위 사람들은 먼저 몸을 정결케하고(30절), 또 백성들을 정결케하였다. 그 다음에는 성문과 성을 정결케하였다. 그들은 깨끗게하는 물(혹은 구별의 물, 민 19:9)을 자신과 백성들과 성과 성문에 뿌림으로 정결케하는 의식을 행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히 9:14)하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모형이다.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악기를 가지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림을 노래하면서(36절) 두떼로 나누어 성벽위를 걸어서 돌았다. 그리고 그들은 나누어졌던 곳에서 다시 만났다.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절반은 오른쪽으로 올라갔고, 에스라가 앞장섰으며(36절), 나머지 절반은 마찬가지로 감사를 드리면서 왼쪽으로 올라갔고 느헤미야가 마지막에 섰다(38절). 결국 두떼는 성전에서 만났고, 함께 감사를 드렸다(40절). 그런데 백성중 어떤사람은 성안쪽으로, 어떤사람은 성바깥쪽으로 돈것 같기도 하다. 무리가…심히 즐거워하였으니(43절). 여기에서 백성들의 외침 즉, 진정한 마음의 기쁨에서 나오는 외침을 주목하자. 하나님은 비록 그 외침속에 예술적인 아름다움은 없다할지라도 열의있고 진실된 예배를 너그럽게 받으셨다.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이들의 호산나 찬송도 무시되지 않았다.

 

Ⅲ. 하나님 섬기는 일에 힘씀 12:44-47

 

성직자들과 백성들은 봉헌의 감사축제에서 대단히 큰감화를 받고 그이후로는 더 성실하고 기쁜 마음으로 의무를 감당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봉사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되었다.

(1) 성직자들은 자신들의 일에 이전보다 더 신중하게 되었다(45절). 노래하는 자들은 더 힘써서 자신들의 직무에 시간을 맞추어 참석하였고 문지기들도 역시 정결의 일에 힘썼다. 즉, 관심을 가지고 성전을 깨끗하게 보존하려고 노력했다.

(2) 백성들은 성직자들의 생계를 위하여 이전보다 더 관심을 기울였다(44절). 이제 백성들의 헌물을 잘 거두어들일 조치를 취했다. 제사장들은 점잖았으므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포기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백성들의 대부분은 별관심이 없었을뿐더러 요구할때까지 헌물을 바치려고 하지않았다. 사람을 세워…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것 곧 율법에 정한대로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하였다(44절). 거두어들인후 공평하게 분배할 조치를 취했다(47절). 노래하는 사람들과 문지기들에게는 레위 사람으로서 받는것 외에 특별한 일급을 추가로 주었다. 이 특별 급여는 다윗과 솔로몬이 레위 사람으로서 수행하는 일이상의 임무를 그들에게 맡기면서 그들을 격려하기위해 특별 수당을 제정했던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추정할수 있다(45,46절). 그리고 다른 레위 사람들에게는 십일조 즉 본문에서 구별한 것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었고 레위 사람들은 율법에 따라 자신이 받은 것에서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주었다.

 

# 핵심

 

12:1-26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명단을 다시 재정리한 내용이다. 스룹바벨과 함께 1차로 귀환한 제사장들(1-7절)과 레위인들(8,9절)의 명단을 소개하며, 12-21절은 1-7절에 언급된 가문에 속한 제사장들의 명단을 보다 자세하게 보여준다.

성도와 영적인 지도자(12:44)

“유다 사람이…즐거워함을 인함이라”는 말씀은 귀환자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즐거이 그들의 쓸것을 제공했다는 말이다. 영적인 지도자들은 성도의 신앙성장과 영적축복을 위해 아낌없는 수고를 감당해야 하고, 일반 성도는 그들의 물질적인 필요를 함께 나누는 일을 기쁨으로 이행해야 한다(참조, 고후 11:9).

 

# 묵상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 작성 ( 12:1-26 )

이는 이스라엘의 종교 체계를 확고히 하기 위함입니다. 이때의 명단 작성 내용은 제1차 귀환자가운데서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명부(1-9절), 예수아를 위시한 대제사장의 가문(10, 11절), 레위 사람의 족장에 대한 사료와 그들의 역할(22-26절) 등입니다.

성곽 봉헌의 준비 과정 ( 12:27-30 )

성곽이 낙성되자 찬양을 올릴 찬양대를 모았고, 성곽 봉헌에 봉사할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성결케하는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이들도 자신의 몸을 정결케했고, 그 마음에 백성들을 정결케 했습니다. 비록 낙성식은 건축물인 성벽에 대한 것이지만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사람이기때문에 그들도 모두 정결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을 다 정결케한 후에는 성문과 성을 정결케 하였습니다. 이를통해 유대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의 시대에 제사를 위해 행했던 정결예식을 다시 회복한 것을 볼수 있고, 우상숭배의 죄악으로인해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의 선민으로서의 회복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 ( 12:27-30 )

기쁨과(43절) 평안(요14:27), 성령과(요16:13) 영광(롬8:17, 18), 은혜입니다(고후12:9). 또한 구원과(엡2:8) 부요함(엡3:8), 말씀과(엡6:17) 사랑입니다(요일4:9).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성곽 봉헌식 ( 12:31-43 )

성곽 봉헌식때 백성들은 성벽이 황폐했던 때를 생각했고, 성전의 무너짐은 자신들의 불순종이었음을 되새겼으며, 폐허에서 성벽을 다시 완성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들은 성벽을 돌아 두무리가 만났을때 하나님께 봉헌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 ( 12:43 )

구약 시대의 제사는 크게 그 제사의 목적과 방법에 따라 구분됩니다. 먼저 제사의 목적에 따라 번제(레9:12-16), 소제(레2:1-16), 화목제(레3:2), 속죄제(레9:8), 속건제(레7:17) 등이 있습니다. 또한 제사를 드리는 방법에 따라 화제(레1:6-9), 요제(출29:24, 26), 거제(레7:32), 전제(민28:7) 등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제사는 세속적 행사가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행위였습니다.

십일조의 확립 ( 12:44-47 )

이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무엇보다 백성들의 생활이 성전중심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성전봉사자들인 제사장과 레위인의 숫자가 점점 많아져 이들의 생계유지 문제때문에 십일조가 다시 회복되어야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역앞에서 늘 기쁜 마음으로 서로 격려하고 협조하며,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써 하나님과 올바른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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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예루살렘의 주민 11:1-19

 

여기에서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이라고 부른다(1절). 왜냐하면 거기에는 성전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자손들은 당연히 모두 그곳에 거하도록 택함받았지만, 오히려 그들은 그것을 기피하였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다른 도시보다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엄격한 생활자세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거룩하게 되려고 하지않는 사람은 거룩한 성에서 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혹은 예루살렘은 어떤 장소보다 많은 시기를 이웃 이방인들에게서 받고있었기 때문에(보통 명예로운 곳이 그러하듯이), 위험의 표적이 되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자신을 그 위험에 노출시키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따라서 핍박과 비방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떠났고, 하나님과 신앙을 위해 나서기를 기피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예루살렘이 적들로부터 위협과 모욕을 받는것만큼 하나님께서 그 성을 특별히 보호하시며 '안전한 장소'(사33:20; 시66:3-5)로 만들어주신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 혹은 세상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시골에 사는 것이 더나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상업도시가 아니므로 거기서는 장사해서 돈을 벌수가 없었지만 농촌에서는 곡식과 가축으로 돈을 벌수 있었다.

(1) 예루살렘 주민의 충원 방법

첫째, 통치자들이 거기 살았다(1절).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판단의 보좌를 두셨기때문에(시 122:5) 통치자들이 거주하기 알맞은 장소였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얻어 거주하게 되었다. 권력자는 끄는 힘이 있다.

둘째, 자발적으로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개인적 이익보다 공공복리를 더앞세우는 사람들이었다(2절). 그들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예루살렘의 복을 구하는'(시 122:9) 사람들이었다.

셋째, 통치자들은 그래도 '오히려 자리가 있는' 것을 보고 제비를 뽑아 모두 백성의 열사람중 하나는 예루살렘에 거주시키기를 결정했다. 모두가 다 인정하다시피 제비의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이다.

(2) 예루살렘에 거하게된 사람들.

1)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원래 이 성의 일부는 베냐민 지파에, 일부는 유다 지파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의 구역이 좀더 넓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예루살렘의 유다 지파 사람은 468가족인 반면 베냐민 지파는 928가족인 것을 볼수 있다(7,8절). 그러나 숫적으로는 베냐민 지파가 더많았으나, 유다 지파 사람들은 용사이며, 사역에 적합한 사람이며, 전쟁시 성을 보호할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예루살렘의 감독과 부감독은 베냐민 지파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볼수 있다(9절).

2)많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정착했다. 반차를 좇아 성전일을 돌보는 사람들이 어떤 가문에는 822명, 어떤 가문에는 242명, 어떤 가문에는 128명씩 있었다(12-14절). 또한 이들중의 어떤 사람들은 큰용사라고 말한다(14절). 또한 레위 사람들도 예루살렘에 와서 거주했지만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전부 합쳐서 284명(18절)과 문지기 172명(19절)이었다. 그 이유는 레위 사람의 직분이 전국을 다니면서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대하 30:32, 한글개역에는 달리 번역되어 있음―역주)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 일을 위해서 모든 이스라엘가운데 흩어져 살게되어 있었다. 그러나 첫째, 레위 사람중 한사람은 하나님의 전 바깥일을 맡았다고 한다(16절). 제사장들은 성전안의 사역을 맡은 반면, 레위 사람들은 헌물을 걷어들이고, 성전일에 필요한 물건을 준비하는 일 등 하나님의 전의 세속적인 일을 맡았다. 교회의 바깥일, 즉 식탁을 준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교회안의 일을 하는 사람, 즉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는 사람 못지않게 필요하다. 둘째, 레위 사람중 어떤사람은 기도할때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사람은 훌륭한 귀와 음성을 가지고 있었고 정확한 노래를 부를수 있었기때문에 시편을 인도하기 위하여 뽑혔을 것이다. 그는 성전에서 성가 선창자가 된 것이다.

 

Ⅱ. 나머지 백성들의 거주 현황 11:20-36

 

여기에 그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한 다른 성읍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다(20절). 예루살렘 주민들은 재충원하는 것이 필요했지만, 농촌에도 사람이 모자라지 않게할 필요가 있었다.

(1)기브온 족속의 후손인 느디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을 마주보는 오벨에 거주했다(3:26).

(2)레위 사람들은 온유다 성읍에 흩어져 살면서 예루살렘에 감독자를 하나 두어서 자신들의 질서와 직무를 감독하게 하였다.

(3)어떤 노래하는 사람들은 성전수리를 돌보는 일에 임명되었고 하나님 전의 일을 맡아 다스렸다(22절). 바사 왕은 그들에게 레위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몫이외에 특별 생계보조를 할당해주었다(23절).

(4)그리고 예루살렘에 바사 왕의 관리가 한사람 있었다. 그는 왕의 수하에서(왕의 편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다고 한다. 즉, 왕의 관리들과 주민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백성들이 왕에게 바치게 되어있는 것이 충분히 바쳐지는지, 왕이 성전 일을 위해 허락한 것이 적절히 지불되고 있는지를 감독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직책을 맡는 사람이 유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다행스런 일이었다.

(5)여기에 그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이 살게된 촌락 혹은 농촌 마을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다. 즉, 유다 지파가 사는 마을(25-30절)과 베냐민 지파가 사는 마을이 있었다(31-35절). 그리고 레위 지파 사람들은 이 두지파 가운데 나누어 살았다(36절).

 

# 핵심

 

11:1-36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유다 땅에 정착한 사람들의 명단과 지역명이 기록되어 있다.

찬양대의 역할(11:17)

17절에서 ‘기도’로 번역된 이 말은 ‘찬양’(praise)을 뜻하기도 한다. 즉 예배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을 갖도록 먼저 소리를 높여 ‘찬양 드리라’고 외칠때 사용되었던 말이다(시 100:4; 149:1). 따라서 이 말은 찬양대장과 찬양대의 역할이 예배자의 심령속에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축복을 바라볼수 있는 내적인 감정을 유발시킴으로써 역동적이고 생명력있는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 묵상

 

예루살렘의 거룩한 자 ( 11:1-36 )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제사장과 레위인 및 성전 봉사자들 등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많이 있었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이 정치, 군사, 경제의 중심지이고 성전이 중심인 종교의 중심지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성도들이 해야할 일 ( 11:2 )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을 섬겨야하며 또한 언제나 깨어서 기도하여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야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상고하고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하는 동시에, 성도들을 구제하고 믿음이 약한 자를 돌봐야합니다. 이렇게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항상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임무 ( 11:10-14 )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쳐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생활을 할수 있도록 하는 것과(레10:11), 여러 문둥병에 대한 진단(레13:2-69), 그리고 백성을 축복하는 것과(민6:23-27), 언약궤를 옮기는 역할(수3:6-17) 등을 담당하였습니다.

레위인의 임무 ( 11:15-24 )

레위인은 제사장의 수종자로서(민3:5-9), 성막 및 성전 기구를 관리하기도 하였습니다(민3:21-32). 또한 성전 제사외에 외부적으로 그와 관련된 다른 일들을 하는 이들도 있고, 찬양을 담당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기도할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한다는 것은 선창(先唱)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성전의 문지기로서 성문을 관리하였습니다(대상9:26-29). 여기서 성전의 문지기란 예루살렘 성의 문지기가 아니라 성전의 사방 네문을 지키는 자들을 말하는데, 여섯 가문이 이를 맡았습니다. 이처럼 각자의 은사대로 지체의 위치를 지켜서 충성하고 헌신함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와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외의 거주 장소 ( 11:25-36 )

예루살렘외의 거주 장소를 살펴보면, 유다 지파는 남방 한계선인 브엘세바에서 북방 한계선인 힌놈의 골짜기까지였고, 베냐민 지파는 유다 북방 지역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나라를 위해 충성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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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 언약에 서명함 10:1-31

이스라엘이 최초로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들어갔을때, 그들은 희생과 피뿌림으로 언약을 세웠다(출 24장). 그러나 여기에서는 언약의 모든 조항을 기록한후 서명날인하는 보다더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언약을 세웠다.
(1) 회중의 대표와 족장들인 관리들이 이 언약에 자필로 서명하고 인을 쳤다. 총독인 느헤미야가 맨먼저 서명하고, 다음으로 22명의 제사장, 다음으로 17명의 레위 사람들이 서명하였다. 이 레위 사람들은 대부분 회중 기도를 인도했던 사람들이었다(9:4,5절). 기도에 앞장서는 사람이 다른 모든 좋은 일에도 앞장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레위 사람들 다음에는 44명의 족장들이 자신과 나머지 회중을 대표하여 언약에 서명하였다.
(2) 나머지 회중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자기 족장들이 서명한 언약에 동의하였다. 여기에는 첫째, 여자와 아이들도 포함된다. 왜냐하면 이들도 범죄하였으므로 생활을 개혁할 필요가 있었다. 둘째, 이방인 개종자들도 포함된다.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28절). 여기에서 개종이 무엇인지 알수 있다. 개종이란 우리 자신을 세상의 생활습관과 풍습으로부터 구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데 헌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율법이 하나인 것처럼, 이방인에게나 그 땅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나 계약도 세례도 하나이다. 백성들의 동의가 29절에 나타나있다. 다 그 형제 귀인들을 쫓아 저주로 맹세하기를(29절).
(3) 이 언약의 전반적인 취지 : 이들은 필수적인 것외에는 어떤 부담도 스스로에게 지우지 않았다. 나머지는 모두 이미 의무와 축복과 감사에 대한 다른 모든 약속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쫓아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29절).
(4) 이 언약중에는 그들이 당면한 시험에 관한 몇가지의 특별 조항이 들어있다.
첫째, 이방인들과 상호 혼인하지 않겠다(30절).
둘째, 안식일과 율법이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말라'고 규정한 날에는 시장을 열지않겠다. 안식일은 우리 영혼을 위한 장날이며, 육신을 위한 장날이 아니다.
셋째, 가혹한 변리 놀이를 하지않고, 율법에 따라 제7년은 안식년으로 지키겠다(31절).

 

Ⅱ. 헌물 제도를 정함 10:32-39

 

(1) 백성 전체가 성전의 일을 정성스럽게 수행할 것과 하나님의 집의 일을 율법에 따라 절기대로 수행할 것을 결의하였다(33절). 하나님의 전의 일이 잘되도록 관심을 쏟을때, 우리 자신의 집안일도 잘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39절). 즉, 우상숭배자들처럼 다른 신전이나 사당을 위해 또한 무신론자들이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처럼 농사일이나 장사를 위해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다.

(2) 위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성전의 일을 풍부하게 지원하고 쪼들리게 하지않겠다고 결의하였다. 백성들이 바쳐야 제사장들이 일할 재료가 있는 것이다. 이제 그것은 다음과 같이 합의되었다.

첫째, 하나님의 상과 제단에 넉넉히 드리기위하여 가축과 곡식을 바친다. 백성들은 해마다 각기 세겔의 1/3(1세겔은 약 10펜스)을 바치기로 합의하였다. 비록 적은 양이라도 모든 사람이 선한 사업을 위하여 일하고 물질을 바칠때 그것이 합하여 상당한 양이 될 것이다. 이 세금은 총독이 부과한 것이 아니다. 백성들이 스스로 규정하고 부담하였다(32,33절).

둘째, 제단의 땔감을 준비하고 제단위의 불이 항상 꺼지지 않도록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셋째,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생계를 위하여 하나님의 율법이 명한 모든 것을 제때에 드리고, 자신의 가족부양을 위해 없어서는 안된다는 핑계로 율법을 무시하게 하는 시험에 빠지지 않는다. 당시에는 첫열매와 십일조가 성전사역자들의 수입의 주요원천이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첫열매와 십일조는 반드시 성전에 들여놓겠다고 결의한 것이다. 이것은 율법이었다(민 18:21-28).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다고 책망하셨다(말 3:8,9). 동시에 하나님과 성물받는 사람들에게 바로 드리도록 그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만일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그들에게 복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말 3:10).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집에 식물이 있도록 이것을 준행하겠다고 결의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이것을 행하겠다"고 말했다(37절). 70인역에는 '우리의 종된 성읍에서'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 자신의 땅에서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9:36). 그들은 당시 바사 왕에게 무거운 세금을 내고있었고, 이것만해도 과중한 부담이 되었지만 이것을 핑계삼아 십일조를 내지않으려고 하지않고, 오히려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했다.

 

# 핵심

 

10:1-39

언약서에 서명한 지도자들의 명단이다. 이상하게도 에스라의 이름이 빠져있다. 에스라는 서명을 받는 위치에 있었고, 당시 귀환자들의 최고지도자는 느헤미야였기 때문에 느헤미야의 이름만을 필두로하여 차례로 서명을 했다고 보아야 할것 같다. 서명이 끝난후에, 온백성은 성전 중심적 삶의 중요성을 깊이 자각하여 언약이행을 맹세함으로써 단호한 실천 의지를 보였다.

늘 바치는 생활(10:32-39)

귀환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삶을 살겠다고 언약했다. 이 가운데는 늘 바치며 살겠다는 헌신이 포함되어 있었다. 바치는 삶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을 섬기는 방법가운데 하나이다. 예배에 사용되는 물질을 공급하고 또 사역자들을 위해 즐겁게 드리는 삶은 하나님의 백성이 행해야할 의무이다.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느헤미야 당시의 귀환자들처럼 하나님께 바치는 삶을 실천하였다(행 4:32-37).

 

# 묵상

 

성경에서의 인(印) 사용 ( 10:1 )

문서를 인준하거나(1절) 하나님께 순종과 헌신을 서약할때(9:38), 왕의 명령을 확증하거나(에3:12) 예언의 진실성을 보증할때(렘32:11-14), 비밀을 지키거나(계10:4) 하나님의 말씀책을 보존할때(단12:4; 계 5:1) 등입니다.

남은 자들의 맹세 내용 ( 10:28-39 )

이방인들과의 혼인금지(30절; 출34:16), 안식일과 안식년의 준수(31절; 출20:8-11), 성전세 납부와 제물 및 성물헌납(32, 33절; 출3:11-16), 번제단에 쓸 나무 제공(34절; 레6:12), 만물의 처음난 것을 하나님께 드림(36, 37절; 출23:19), 십일조를 바칠 것(37-39절; 민18:21-24) 등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적회복의 증거 ( 10:30-34 )

말씀을 깨닫고 그로인해 기뻐하였고(8:10), 힘을 얻어 주의 성일을 지켰으며(8:11), 슬픔이 사라지고 크게 즐거워하였고(8:12), 진리를 좋아하고 갈망하였으며(8:13), 진리를 지키고 말씀연구에 힘썼으며(8:18), 회개함으로 악에서 떠났고(9:2), 주께 경배함으로 경건생활을 맹세하였으며(30절), 주의 사업에 힘썼습니다(32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십일조 ( 10:38 )

십일조의 헌납은 율법에서 명하고 있는 성전에 대한 의무를 지키고 하나님의 전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의 조력으로 성전이 유지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백성들의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 은혜의 징표인 성전을 감사와 경배로 돌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그 맡기신바를 관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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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백성들의 회개 9:1-3

 

여기에 이스라엘 사촌이 실시한 공동 금식에 대한 객관적인 기사가 나와있는데, 이것은 느헤미야의 명령에 의해 실시된 것 같다.

(1) 이것은 사람이 정한 금식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날은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사 53:5)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백성들은 성진뜰에 서 베옷을 입고 머리를 땅에 대고 곡하는 상주의 차림으로 모였던것 같다.(1절). 전에는 울지말라고 명령받았지만(8.9절). 이제는 울라고 지시를 받았다.

둘째, 이날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었다(사 58:6). 금식하지 않으면서 베옷을 입고 새위에 앉는다는 것은 우스운 꼴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이날은 하나님과의 교통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2)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금식하였다.(슥 7:5). 왜냐하면

첫째, 기도로서 하나님께 아뢰었기 때문이다. 기도없는 금식은 영혼없는 몸, 즉 쓸모없는 시체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말씀을 통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율법책을 읽었다. 우리는 율법의 거울을 통하여 우리의 추악함과 더러움을 보고, 무엇을 인정해야 하며 무엇을 고쳐야하는지 알수 있게된다. 그들은 시간을 쪼개어서 세 시간은 말씀을 읽고 강해하고 적용하는데 사용하고, 세 시간은 죄를 자백하고 기도하는데 사용했다. 이렇게 함으로 백성들은 여섯시간 동안 함께 모여있었으며, 모든 시간을 거룩한 행사에 보냈지만 "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라고 불평하지 않았다.

 

Ⅱ. 레위 사람들의 기도 9:4-38

 

본문에서 금식일에 행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에 대해 설명이 잘 나와있다. 우선 진행자들의 이름이 나와있다. 이름은 반복되어 나온다(4,5절). 이들은 연속해서 기도했거나,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집회를 여덟개의 소집단으로 나누어 레위인 각사람이 하나의 소집단을 인도했을수도 있다. 다음으로 행사의 내용이 나와있다.

첫째,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죄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둘째, 하나님을 찬양했다. 찬양하는 일이 금식일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헌신에 있어서 이것을 목표로 삼아야한다. 즉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이날의 기도를 요약하여 기록하면 다음과 같다.

(1) 완전하시고 영화로우신 분이며 만유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넘치는 경배(5,6) : 사회자는 백성들에게 일어서서 이 경배에 동의를 표시하라고 명하고, 자신은 하나님께 아뢴다.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는 것은(15절). 여기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분으로 경배를 받으셨다.

첫째, 홀로 계시는 참하나님이시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둘째, 만유의 창조자이시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밀월성신과 땅과...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셋째, 모든 피조물의 보호자이시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지으셔서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십니다."

넷째, 모든 피조물의 찬양의 대상이시다.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6절).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2)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고백.

1)이제 많은 사실들을 순서대로 하나님께 아뢴다.

2)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특별한 실례를 회고하고 있다.

①아브라함을 부르심(7절).

②그와 그의 자손에게 더나은 나라에 대한 모형으로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8절).

③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심(9-11절). 현재 이들이 바벨론으로부터 해방을 완성해가는 과도기에 살고있기 때문에 이 해방의 사건을 회고하는 것은 매우 시기적절한 일이었다.

④광야를 통해서 그들을 인도하심.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이 갈 길, 이동 시기, 머물러 휴식할 시기와 장소, 그리고 그들의 모든 단계와 발걸음까지 지시하셨다.(12절). 이것은 그들을 인도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확연한 증거였다.

⑤광야에서 풍족한 양식을 주심. 이로써 그들은 굶어죽지 않았다. 하늘에서 양식을 주시며…반석에서 물을 내시고(15절).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붙드시고, 그들로하여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소유하게 하신다는 약속을 하셨다. 그들은 여행할때는 수월하게 고기, 물, 음식을, 여행끝에는 좋은 땅을 얻게되었다. 무엇을 더 원할 것인가? 이 은혜는 그들의 반항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것으로 반복해서 말해진다(20,21절). 40년동안을 들에서 기르시되.

⑥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심. 율법을 주신 분은 매우 영광스러운 분이었다(13절). "당신은 율법을 주셨을뿐만 아니라 친히 내려오셔서 저희와 더불어 말씀하셨습니다"(신 4:33). 해아래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나라가 어디있는가(신 4:8). 그리고 율법과 안식일과 함께 '선한 신을 주사 저희를 가르치셨다'(20절).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외에 또한 모세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으로서 모세오경을 그들에게 영원한 교훈으로 주셨다.

⑦좋은 땅 가나안과 나라들과 족속들을 소유로 주심(22절). 그들을 번성하게 하셔서 그 들에 가득차게 하시고(22절), 정복하여 승리하게 하셨다(24절).

⑧이스라엘이 반역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자신들위에 쌓고 있을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 구속 역사를 하실 준비를 하심. 그후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하여 살면서, 죄로 자신들을 적들의 손에 팔아 넘겼지만, 그들이 굴복하고 겸손히 간구할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자를 주셨고(27절), 사사들을 통하여 멸망이 임박했던 그들을 위해 구원을 여러번 이루셨다.

⑨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훈계와 때에 따른 경고를 주심.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통으로부터 건져내실때, 이 구원을 자신들의 악함을 간과하신 것인줄로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위하여 그 죄에 대하여 경계하셨다(28,29절). 선지자들의 증거는 선지자안에 있는 성령의 증거이며, 그들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의 증거이다(벧전 1:10,11). 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는 사람들'의 자격으로 말하는 것이므로 그들의 말은 마땅히 준행되어야 했다.

⑩오래참으심과 책망을 경감하심. 여러해 동안 용서하시고(30절). 하나님께서는 벌하기를 싫어하시고, 그들이 회개하는지 보시면서 기다리셨다. 그리고 그들을 벌하실때에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셨다(31절).

(3) 그들 자신과 조상들의 죄에 대한 참회.

1)그들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죄부터 고백하기 시작했다. 저희와 우리 열조가 교만히 하고 목을 굳게 하여(16절). 사람의 고집과 불순종은 자만심에서 나온다. 사람이 하나님의 규례나 섭리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할때,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지은 죄로서 여기에 두가지 큰죄가 특별히 명시되어 있다. 즉 돌아가기를 희망한 죄이다.

첫째, 마늘과 파를 먹을수 있는 애굽의 종살이를 약간의 어려움과 불편한 점이 있는 영광스러운 자유보다 더 좋아했다.

둘째, 애굽의 우상에게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저희가 송아지를 부어만들고 "이는 너희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망발을 저질렀다.

2)다음으로 조상들이 가나안을 차지하고 난후의 반역을 애통해하였다.

3)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세대로 내려와 자신들의 죄를 슬퍼했다. 이 죄로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였으며, 오랫동안 고통받았고 아직까지 일부밖에 해방을 얻지못한 상태에 있었다. 이 고통의 원인으로 그들 자신과 조상들의 두가지 죄악을 지적하였다.

①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율법에 대한 멸시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지혜의 명령,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권 요구를 거절하는 죄악을 범했다.

②하나님께서 주신 넓고 기름진 땅에 대한 멸시였다(35절). 따라서 자신의 땅에서 적들을 섬기게 되었다. 이것은 신 28:47,48절에서 경고하셨던 저주인 것이다.

(4) 자신들이 여러번 겪었고 지금도 겪고있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겸손한 태도.

1)이전의 심판을 기억하였다. 그들은 경고를 무시하였다. 따라서 적들이 저들을 괴롭게하였고 그들이 다시 악을 행하였을때,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붙이셨다(27절).

2)자신들의 비참한 상태를 하나님앞에 내어놓았다(36,37절).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삽는데. 자유인으로 태어난 이스라엘이 노예가 되었고, 그들이 하나님께 받았던 보다더 명예로운 땅은 바사 왕에게 예속되어 버렸고, 그 땅을 이제는 다시 바사 왕에게서 받고, 그들은 그의 봉신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이것이 다 자신들의 죄때문이라고 솔직히 인정하였다. 가난과 노예상태는 죄의 열매이다. 죄는 우리를 모든 비참속으로 몰아간다.

(5) 그들은 이 재난가운데서 하나님께 간구했다.

첫째, 하나님께서 이 고통을 작게 여기시지 말도록 간청하였다(32절). 이것은 이 모든 기도가운데서 유일한 간청이다. 이 고통은 전이스라엘 민족의 고통이었다. 즉 열왕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열조와 모든 백성에게 닥쳐온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 죄를 함께 지었기때문에(34절) 심판도 함께 당하는 것이다. 이 고통은 오래 지속되었다. 앗수르 열왕의 때로부터 오늘날까지(32절). 북왕국 열지파들은 앗수르에게 포로가 되었다. "주여 이 모든 것을 돌아볼 가치도 없는 작은 것으로, 구속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으로 여기지 마옵소서."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하나님이 하실 일을 지정하여 요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맡겼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은 자신들의 죄에 비하면 실제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였다(33절). 즉 자신들에게 이 모든 고통을 내리신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한 것이다.

(6) 모든 일에 대한 결론과 결과가 여기에 나와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소사실을 이렇게 길게 나열한후 마침내 다음과 같은 결심을 하였다. "이 모든 일로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분명한 약속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곁을 자주 떠나갔지만 이제는 옛날의 어떤때보다도 굳게 자신을 하나님께 붙들어매기 원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죄때문에 너무 많이 매를 맞았으므로 이제는 결연히 죄에 대항할 결심을 하고자 합니다. 이제 더이상 어깨를 움츠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중에서 몇사람을 그 집회의 대표로 뽑아 서명하고 인을 치게 하였다.

 

# 핵심

 

9:1-38

느헤미야 당시의 귀환자들은 민족이 범해온 죄과를 뉘우치며 거국적인 회개를 했다. 이들은 자기 민족의 거듭되는 죄악과 배교에도 불구하고 늘 구원을 베푸사 기회와 소망을 제공해 주셨던 하나님을 찬송했다.

하나님의 긍휼과 축복(9:17-35)

본장에서 반복되고 있는 주제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긍휼과 축복이 죄사함, 오래 참으심, 의식주를 베풀어 주심, 대적하는 이들로부터 구원해 주심 등과 같이 영혼과 육체에 필요한 모든 방면에 걸쳐 나타나고 있음을 강조한다.

 

# 묵상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 ( 9:1-3 )

금식하며 자신들의 죄와 선조들의 죄까지도 자복하며 회개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들이 회개한 죄의 내용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들을 섬긴 불순종과 반역한 행위들이었습니다.

금식의 의의 ( 9:1 )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마6:16-18)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간구하기 위한 것이며, 자기 의(義)의 표현이 아닌 경건의 훈련으로서, 의례적 행사가 아닌 국가적 재난이나 개인의 커다란 문제점이 있을때 하나님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개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위 ( 9:6-15 )

시를 지어 하나님을 송축하였는데, 그 내용은 이스라엘 역사속에 개입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한 송축입니다. 이 송축시는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며 살겠다고 하는 언약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백성의 회개 운동 ( 9:7-38 )

이 회개 운동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 초기역사를 회고하면서 이스라엘의 죄를 자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회개 운동은 성벽공사 완료후 하나님과의 언약을 재확인함으로써 그 절정을 이루는데, 이것은 언약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것은 이스라엘의 전역사를 볼때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의 은총과 언약에 대해 불성실했던 과거와는 대조적인 장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안에 있을때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 ( 9:19-21 )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 길을 인도하셨고, 광야생활 40년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로 백성들을 먹이시고 메마른 광야에서 물을 주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능력으로 옷이 해어지지 않게 하시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필요를 채우셨고 광야 길을 안전하게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며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할때 성도는 의지할 자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갖게되며, 또한 환난중에 큰위로를 얻게됩니다.

하나님과 계속적으로 범죄한 이스라엘 ( 9:26-31 )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범죄하는 이스라엘에 대해 오랫동안 참으시고 선지자를 보내셔서 주의 신으로 그들을 경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경계를 듣지않고 불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열방의 손에 붙이시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결국 긍휼을 베푸셔서 그들을 완전히 멸하거나 버리지않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깨달은 하나님 ( 9:32 )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신 언약의 주체로서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지극히 크시고 능력이 무한하시며 두려우시며 언약대로 반드시 이루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분임을 알게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이 환난을 당할때 그들을 위로하시며 도우시고 그들이 환난을 이길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악을 행하고 죄악중에 거하여 있을때에도 하나님은 끝까지 신실하게 행하셨습니다.

앗수르 침략후 선지자들의 선포 내용 ( 9:32-38 )

이스라엘의 단순한 회복보다는 미래의 영원한 메시야 왕국의 비전을 제시하였습니다. 즉 선지자들은 무조건적인 기복 신앙만을 말하지않고 역사의 주관자되신 하나님의 율법을 의지해서, 하나님의 뜻을 지킬 것에 대한 서약과 이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김으로 보다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로 나아가야할 것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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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율법 강해 8:1-8

 

여기에는 거룩한 집회와 이 집회에서 일어난 경건한 행사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있다.

(1) 때는 7월 1일이었다(2절). 이 날은 '안식일'이라 불려지고, 성회로 모이게 되어있는 '나팔절'이었다(참조. 레 23:24; 민 29:1). 이것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돌아온후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기 시작한 날이며, 그때까지 살아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기념하는 날이었다.

(2) 장소는 수문앞 광장이었다(1절). 이곳은 넓은 거리이기 때문에 성전뜰에 다 들어갈수 없을정도의 큰 군중도 수용할수 있었던것 같다. 아마도 당시 재건된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만큼 크지 못했던것 같다. 희생은 성전문에서만 드리게 되어 있었지만, 기도와 찬미, 그리고 말씀전파는 그 당시에도 다른 장소에서 거행될수 있는 행사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 회중이 광장에 모였을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다는 것은 의심할여지가 없다.

(3)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백성 전체였으며, 이들은 강요에 의해 모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한사람처럼 마음을 같이하여 모였다. 그리고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과 아이들도 모였다. 어린아이들에게 사고의 훈련을 시킬때 경건의 훈련도 함께시켜야 한다.

(4) 이 집회의 대회장은 제사장 에스라였다.

첫째, 제사장직에 대한 에스라의 소명의식은 분명했다. 에스라는 제사장 직책에 있으면서 율법학자로서 자질을 갖추었고 백성이 그에게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했을때 백성들에게 율법을 읽어주었다(1절).

둘째, 그는 아주 편리한 자리를 골라 올라섰다. 에스라는 강단 혹은 나무탑위에 섰다. 특별히 지은 나무강단에 서매(4절). 따라서 그가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전달되었고, 더 잘 들릴수 있었고, 백성들은 눈으로 그의 모습을 볼수 있었을 것이다(참조. 눅 4:20).

셋째, 에스라에게는 보조자가 있었으며 몇사람은 그와 함께 서있었다(4절). 즉 6명은 오른쪽에, 7명은 왼쪽에 서있었다. 보조자중 나머지는 같은 시각에 인접한 다른 장소에서, 에스라의 말이 들리는 곳까지 오지못한 사람들에게 율법을 읽어주고 설명하는 일을 담당했던것 같이 보인다(7절).

(5) 이 대회는 성례가 아니라 도덕적 교훈과 설교를 위한 집회였다. 대회장으로 에스라는 첫째, 하나님에 대한 백성의 입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백성들은 전심으로 그에게 연합하였다(6절). 에스라는 여호와를 광대하신 하나님으로 송축하였고, 백성들은 손을 들어 아멘으로 응답하고 몸을 굽혀 경배하였다. 둘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입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백성들은 주의하여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회중앞에 이르러(2절). 성직자들은 강단에 오를때 반드시 성경을 가지고 가야한다. 에스라도 그렇게 하였다. 즉 성경에서 지식을 얻게되는 것이다(참조 대하 17:9). 에스라는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백성의 목전에서 책을 폈다(5절). 그리고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책을 읽어주었고(3절) 분명하게(한글성경에는 빠져있음―역주) 낭독했다(8절). 이와같이 말씀을 읽고 설교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말하는바를 먼저 이해하고 그것에 감화받으며, 청중이 그것을 이해하고 감화받을수 있도록 진술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함부로 이 물건을 거룩하다하여 서원하고 그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물이 되느니라' 그는 읽는 것을 설명하였다. 말씀을 듣는 자들은 반드시 이해해야하므로 가르치는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그 말씀을 설명하여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에스라가 책을 펼때 모든 백성이 일어섰다(5절). 이렇게 함으로 백성들은 에스라에게 그리고 그가 읽으려는 말씀에 경의를 표시했다.

 

Ⅱ. 백성들의 기쁨 8:9-12

 

(1) 백성들은 낭독된 율법의 말씀에 충격을 받았다. 율법은 백성들에게 죄와 죄로인한 비참함과 위험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율법을 들을때 다 울었다(9절). 이 현상은 요시야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들었을때 슬퍼했던 것처럼, 백성들의 마음이 여리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표시이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거역했었는지 생각하고 울었다.

(2) 백성들은 다시 전해들은 화평의 말씀으로 고침을 받고 위로를 받았다. 그 날은 거룩한 절기중의 하나였고 그 날에는 기뻐하는 것이 백성들의 의무였다. 그러므로 죄로인한 슬픔이 아무리 크다할지라도 하나님안에 있는 우리의 기쁨을 방해할수 없으며 오히려 우리를 기쁨으로 인도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에스라는 백성들이 말씀에 감동받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자신의 의견을 에스라에게 말하였고, 에스라도 지금 우는 것은 시기에 맞지않는다는 느헤미야의 생각에 동의하였다. 이 날은 거룩한 날이므로 기쁨과 찬양으로 축하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과는 다른 날이었다. 그들은 백성들이 슬퍼하고 우는 것을 금지하였다(9절). 근심하지 말라(10절). 마땅히 종용하고 근심하지 말라(11절).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여 자신들의 기쁨을 나타내도록 명했다. 또한 기쁨의 표시로서 잔치를 베풀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다음의 사항을 지키도록 했다.

첫째,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 것. 예비치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주라. 이렇게함으로 너희의 풍성함이 저들의 부족함을 채워서 그들도 너희와 함께 기뻐할수 있을 것이다.

둘째, 믿음과 경건함으로 행할 것.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거룩한 기쁨은 우리의 순종의 수레바퀴에 윤활유가 될 것이다.

(3) 모든 백성은 이 주어진 명령에 순종했다. 그들은 울음을 그치고(11절) 크게 즐거워하였다(12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말씀의 확신앞에서 두려워 떠는사람은 말씀의 위로안에서 승리하게 될 것이다.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는 것은 고기를 먹고, 단것을 마시고, 친밀한 교제를 가질수 있었기때문이 아니라 읽은 말의 뜻을 밝히 알았기 때문이었다. 고통의 어두움은 무지와 오해의 어두움에서 생긴다. 백성들에게 처음 말씀이 낭독되었을때 그들은 울었지만,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을때 회개하고 생활을 고치는 자들에게 주신 귀중한 약속을 발견하고 그것으로인해 이스라엘에게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즐거워하게 되었다.

 

Ⅲ. 초막절을 지킴 8:13-18

 

(1) 백성들이 말씀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하였다. 다음날, 그날은 절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족장들이 다시 모여 에스라가 강해하는 것을 들었다(13절). 이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뭇백성의 족장들과 함께 에스라에게 왔다. 이것은 그들이 율법의 말씀안에서 가르치기위한 것이었다. 이들이 스스로 배우러 온것은 백성들을 가르칠 자질을 갖추기위한 것이다. 이제 이들은 시험을 통하여 자신들의 부족과 에스라의 뛰어남을 전보다 더 분명히 알았기때문에 둘째 날에는 배우는 자로서 겸손하게 에스라의 발아래 앉았다.

(2) 백성들은 율법에서 자신들의 의무를 깨달았을때, 즉시 말씀에 순종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었다. 백성들의 족장들이 7월 21일에 율법의 교훈을 받으려고 왔을때, 에스라는 그의 손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스 7:25) 그 달의 절기에 관한 율법을 읽어주고, 나머지 백성들에게는 초막절에 대한 율법(레 23:34, 신 16:13)을 읽어주었던것 같다.

1)초막절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재고하였다(14,15절). 그들은 율법책에서 초막절에 관한 명령을 발견하였다. 이 초막절은 유대 민족이 광야에서 보냈던 장막생활의 기념이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의 장막생활의 모형이다. 열국이 그리스도를 믿게될 것에 대한 예언이 이 절기의 비유에 들어있다(슥 14:16). 이 세상에는 영원한 도성이 없으므로 결국 초막절을 지키려 온 것이다. 백성들은 스스로 나무가지를 베어와서(예루살렘 주민은 감람산에서 나무가지를 가져왔다) 초막을 짓고 그안에서 거하였다.

2)이 명령에 따라 절기의식을 지켰다(16,17절).

첫째, 그들은 의식을 준수했다.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안에 거하니.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초막을 성전뜰에 세우고, 집을 가진 사람들은 지붕위에나 뜰에 장막을 짓고, 집이 없는 사람은 길가에 세웠다. 그들은 이 절기 기간내내 축하하며 즐거워하였다.

둘째, 절기동안 백성들은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낭독과 강론에 참석하였다(18절).

 

# 핵심

 

8:1-18

에스라가 베푼 율법의 가르침에 백성이 깨우침을 얻고 율법이 명한대로 초막절을 지켰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에스라는 에스라 10장을 끝으로 사라졌다가 14년만에 다시 백성앞에 나타나 일종의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셈이다.

말씀 교육(8:1-9)

말씀교육과 예배는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말씀에 관한 참된 지식은 영적 재각성을 가져다줌으로써 참된 경배심을 불러일으킨다. 에스라가 말씀을 봉독하고 가르치자, 백성은 감동과 위로를 받으며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오늘날에도 뭇심령들을 깨닫게함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케하는 방법으로는 말씀교육이 최우선이다.

 

# 묵상

 

에스라의 율법강독의 의의 ( 8:1-8 )

유대 백성이 하나님 말씀으로 재무장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된 것을 말해주는 사건입니다. 한편 제2차 귀환자들의 대표자로는 학사겸 제사장이었던 에스라가 선택되었습니다. 에스라는 포로생활에 찌든 유대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해석해 주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이들의 갈급한 마음을 생수로 흡족하게 채워주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책 ( 8:1 )

모세오경을 뜻하며 법률적인 자료를 수집한 책입니다. 또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기록된 제사에 관한 율법서라고도 합니다. 한편 본절에서는 에스라가 귀환시 갖고왔던 완전히 갖추어진 형태의 모세오경을 가리킵니다. 아울러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한 곳은 넓은 광장이기 때문에, 에스라가 먼저 낭독하면 레위인이 낭독한 내용을 다시 전달하는 과정을 취했습니다.

율법책과 관련된 사항 ( 8:4-6 )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것이고(출24:12), 모세의 율법책으로 불렸으며(수8:31, 32) 돌판에다 새겨졌습니다(신27:8; 수8:32). 이러한 율법책은 재판의 근거로 사용되었으며(왕하14:6), 항상 언약궤옆에 두었고(신31:26), 타국인에게도 배우도록 했습니다(신31:12). 아울러 이 율법책은 후에 성경으로 우리에게 전해졌는데, 이는 종교개혁의 기초와(왕하23:2-14) 신앙부흥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율법 낭독후 백성들의 반응 ( 8:9 )

에스라로부터 율법의 말씀을 전해들은 백성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는데, 이것은 진리를 깨달은 인간의 자연스런 반응이라 볼수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율법을 지키기는 어려웠지만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 삶의 의미를 체험하게 하시고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에스라가 감화받고 눈물을 흘리는 백성들의 눈물을 억제시킨 것은 나팔절이 기뻐해야할 날이기 때문이며 더욱이 이 나팔절은 새해가 시작되는 축복의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날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며 즐거워해야할 날이었던 것입니다(레23:24). 진실한 눈물도 귀한 것이지만 더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님과 나누는 기쁨입니다. 따라서 이 기쁨은 우리가 가져야할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힘 ( 8:10 )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진리와 더불어 기뻐하고 슬퍼할수 있는 통찰력이 요구됩니다. 또한 사람을 창조하신 근본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님만을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임을 알고, 항상 기뻐하며 살기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백성들이 초막을 지은 장소 ( 8:15-18 )

백성들은 자기들의 지붕위에 혹은 집의 뜰안에, 하나님의 전 뜰에, 수문 광장에, 에브라임문 방향으로 가는 광장에 초막을 지었습니다. 이때는 에스라에게서 받은 것을 그대로 지키기위해 지도자들의 지시에 따라 성밖으로 나아가 나뭇가지를 취하였고, 백성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여호와께서 명하신 절기를 지켰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기쁜 마음으로 맡은바를 성실히 수행했음을 가르쳐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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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예루살렘의 치안 7:1-4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위에 파숫꾼을 세우고(사 62:6). 이것이 바로 느헤미야의 관심사이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파숫꾼이 없는 죽은 성벽은 방어구실을 거의 하지못하기 때문이다.

(1) 느헤미야는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일에 따라 자리에 임명하였다.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성의 방어이며, 자신의 임무를 명심하는 사역자들이야말로 성위의 파숫꾼들인 것이다.

(2) 느헤미야는 두명의 관원을 임명하여 성의 관리를 위임하고, 공공의 안전과 치안의 책임을 맡겼다. 그중 한사람은 느헤미야의 형제인 하나니 즉, 예루살렘의 황폐소식을 수산 궁에 있는 느헤미야에게 전해주었던 사람인데, 성실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인정받은 사람이다. 또 한사람은 바사 궁의 관원이었던 하나냐였다. 이 하나냐에 대하여는 위인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고 평하고 있다(2절).

(3) 느헤미야는 성문개폐와 성벽방어에 대한 명령을 내렸다(3,4절). 이 성의 규모는 매우 크다. 전에 있던 기초위에 그대로 성벽을 둘러쳤고, 성내부는 아직 주택을 건축하지 못했기때문에 대부분 황폐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믿음으로 성곽을 쌓고 믿음의 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최근에 말씀하신(슥 8:3이하) 예루살렘 재충원의 약속을 바라보았다. 비록 지금은 주민이 희소하지만 곧 몇배로 증가할 것을 믿고 이들이 거주할수 있는 넓이의 성을 쌓았다. 성을 지키기위하여 민장들에게 다음의 것을 명령했다.

첫째, 성문에 지켜서서 매일밤 성문이 닫히는 것과 빗장 지르는 것을 확인할 것.

둘째, 아침에는 모든 것이 밝아지고 평온해진 것을 확인할때까지 성문을 열지않도록 주의할 것.

셋째, 보초를 세우고 적이 접근하는 것을 제때에 경고할수 있게 할 것.

넷째, 주민들은 자신의 경계 차례가 되면 반드시 자기집 맞은편에 서게 할 것. 이렇게 함으로 자신의 가족때문에 특별히 주의해서 경계할수 있게 한 것이다. 공동의 안전은 자신과 가족을 죄, 곧 공동의 적으로부터 지키는 특별한 관심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시 127:1)라는 말씀을 깨닫게 되었다.

 

Ⅱ. 인구 조사 7:5-73

 

이것은 느헤미야가 세운 또하나의 훌륭한 계획이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이 성의 안전이 성곽의 높이와 견고함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수와 자질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었다. 따라서 인구 조사를 하여 어떤 가문이 본래 예루살렘 주민인지 찾아내어 그들로하여금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고, 종교적으로 아니면 사업상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그들도 예루살렘에서 집을 재건하고 거주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였다. 도시와 농촌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한나라 통치자의 지혜이다. 도심지가 지나치게 비대하여 농촌이 고갈되거나 가난해져서는 안되며, 또한 성읍이 자위능력이 없을정도로 약해져도 안될 것이다.

(1) 느헤미야의 지혜의 출처 : 내 하나님이 네 마음을 감동하사(5절).

(2) 인구 조사 절차.

1)모든 민장들과 백성을 불러모아서 가문의 현재상태, 즉 가족수와 가세와 현정착지를 조사하였다.

2)이전의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보계"를 참고하고 현재의 통계와 비교하였다. 따라서 여기에 에스라 2장의 계보가 반복되고 있다. 이 계보와 에스라의 계보간에 숫자상 많은 차이가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로 사본가들의 실수 혹은 사본의 차이 등을 추정해 볼수 있다. 아니면 에스라의 통계는 스룹바벨이 바벨론을 떠날때 작성한 것이며, 느헤미야의 통계는 예루살렘에 도착했을때 작성한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노래하는 남녀의 숫자가 에스라서에는 200명, 느헤미야서에는 245명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 숫자만 제외하면 양쪽의 통계는 동일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의 하나님의 사업에 드려진 헌물의 통계는(70절 이하) 에스라 2:68,69절에서와 현저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사실 이 통계가 과연 동일한 헌납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지 의심할수밖에 없다. 느헤미야서에는 방백 혹은 족장들이 헌납하기 시작했는데, 에스라서에는 이런 사실이 나타나있지 않다. 그리고 에스라서의 하나의 통계 숫자가 느헤미야서 헌물의 총계보다 많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통계는 동일한 사실에 관한 것이다. 그 차이는 각각 다른 사본에서 베껴쓴 결과라고 보아야할것 같다. 왜냐하면 느헤미야 7:73절이 에스라 2:70절과 3:1절의 기록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이름이나 숫자나 계보나 연대의 정확성이 아니라 율법과 복음의 위대한 것위에 세우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 핵심

 

7:1-4

성벽을 마무리하는 공사가 끝난뒤, 느헤미야는 성문과 성벽을 파수할 책임자를 임명했다.

 

# 묵상

 

성문지키는 자로 뽑힌 레위인들 ( 7:1 )

이는 당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예루살렘 인구의 반수 정도를 차지했었고, 성전문 지키는 임무를 레위인들이 잘 감당해왔기 때문입니다(대상9:17-22). 여기에서 교훈하는 점은 하나님의 일꾼들은 성공과 승리가 주어져도 방심하지 않으며 근신하여 깨어있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잘 간직해야 하며, 맡은바에 충성하고(고전4:2) 누구보다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탁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1차 귀환자들 ( 7:5-73 )

고레스 왕 칙령으로 주전 537년에 이루어졌는데(스1:1-4), 고레스 왕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주전 539년) 메대와 바사의 왕이 되었던 그 첫해에 유대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귀환할 것과 성전을 재건할 것을 명했습니다. 이 사실은 고레스 왕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루어나가는 도구임을 가르쳐줍니다. 한편 포로귀환자들의 총수는 42,360명이고 이외에 노비가 7,337명, 말이 736, 노새가 245, 약대가 435, 나귀가 6,720이었습니다.

인구 조사의 교훈 ( 7:7 )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라야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도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생명록에 기록되기 때문에 그 어떤 악의 세력도 우리에게서 구원과 영생의 축복을 빼앗지 못합니다. 느헤미야가 귀환자들의 명단과 숫자를 파악하게 된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족보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장해주고, 하나님의 통치하심 속에서 평안과 기쁨을 느끼게하는 확실한 소망이며 증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족보에 기록된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로서 한사람도 빠짐없이 새예루살렘에 들어갈수 있는 것입니다(계20:11-21:4).

제1차 귀환자들의 인구 조사 이유 ( 7:8-73 )

이는 관리 및 책임자를 임명하여 명실공히 독립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울러 순수한 이스라엘 혈통을 확인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기록된 명단은 스2:1-69절의 명단과 거의 유사합니다.

바스훌의 자손 ( 7:41 )

바스훌은 예레미야 선지자와 동시대 사람으로 성전의 유사장이요 제사장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예레미야를 때리고 착고에 채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마골빗사빕’(사방으로 두려움)이라고 부르시면서, 그가 유인의 바벨론 포로와 살육을 보게될 것이며, 그 자신도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에서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렘20:1-6). 비록 바스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지만 그의 자손들은 몇 안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귀환했습니다. 그들은 그 조상 바스훌과는 달리 하나님과 성전에 대한 열심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계보에서 누락된 자들 ( 7:61, 62 )

계보에서 누락된 자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회중에 들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이들은 이방 사람들과 결혼하여 그들의 피에 이방인들의 피가 섞였으므로 그 신분이 불확실하게 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부정하게 여겨져서 선민의 순수성을 지키기위해 분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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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느헤미야에 대한 적들의 두가지 계략 6:1-9

 

(1) 느헤미야를 함정으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적들은 성벽의 모든 무너진 곳이 수리되었고, 비록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했을지라도(1절) 유대인들은 성을 완공한 것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느헤미야를 일격에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적들은 교묘하게 베냐민 지파의 한마을에서 서로 만나자고 느헤미야를 초청하였다. "오라 우리가…서로 만나자. 만나서 우리 지방의 공동 관심사를 상의하자"고 했지만 실상은 그를 해하고자 함이다(2절). 느헤미야는 이 제안을 거절하였다. 느헤미야의 관심사는 축성작업이 중단되지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때문에 만일 자신이 떠난다면 이 작업이 곧 중단된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3절). 저희가 네번이나 이같이 내게 보내되 나는 여전히 대답하였더니(4절).

(2) 느헤미야를 협박하여 사역을 중단시키려는 것이었다. 산발랏이 이 계략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첫째, 느헤미야로 하여금 예루살렘 축성사업이 전반적으로 왕에게 파당적이며 모반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하려고 노력했다(5-7절). 이 일이 공개적으로 알려져있고, 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꾸미기위해 봉하지않은 편지를 느헤미야에게 보내어 그가 스스로 왕이 되어 바사의 속박을 벗어나려고 한다고 가스무가 주장하고 있음을 전해주었다. 산발랏은 마치 그가 느헤미야의 친구로서 친절하게 이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위장하였다. 즉 "이 소문을 어떻게 가라앉힐 것인가.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산발랏은 유다처럼 입맞추고 죽이려고 했다. 느헤미야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을뿐만 아니라, 그들이 왕에게 보고했다는 사실도 믿지않았다. 왜냐하면 느헤미야는 너무나 잘 알려져있어서 의심받을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와같이 그는 올무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우리도 선한 양심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평판을 하나님께 맡기자. 느헤미야는 다음과 같은 짧은 기도문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9절).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특수한 임무나 영적 전쟁을 수행할때 이것은 좋은 기도가 될 것이다.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Ⅱ. 스마야의 계략 6:10-14

 

유대인의 적들은 느헤미야를 예루살렘 성곽건축 사역에서 손을 떼게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하였다. 이제는 느헤미야의 안전을 구실로 성전안에 몰아넣으려고 하였다. 즉, 그를 건축 현장이 아닌 딴곳에 있게하려고 한 것이다.

(1) 적들은 아주 비열하게 이 계획을 추진하였다.

1)그들의 계획은 느헤미야로 하여금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게 하고, 이것으로 그에 대한 조롱거리로 삼으려는 것이다(13절). 나를 두렵게 하고…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2)그들의 수단은 거짓 남녀 선지자였다. 적들이 이들을 고용하여 느헤미야로 하여금 사역을 멈추고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숨도록 유혹하였다. 이 거짓 선지자는 스마야였다. 그는 자기 집에 문을 닫고 들어가서 명상하느라고 두문불출한 것처럼 위장하였다고 한다. 느헤미야는 그의 의견을 듣기위해 그의 집으로 갔다(10절). 또다른 선지자들과 노아댜라는 여선지자도 있었는데, 이들도 모두 적을 이롭게하는 자들이었다(14절).

3)그 위장수법은 그럴듯했다. 이 거짓 선지자들은 느헤미야에게 적이 밤에 와서 그를 살해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함으로 느헤미야의 안전을 크게 걱정하는체 하면서, 위험이 지나갈때까지 성전에 몸을 숨기고 있으라고 심각하게 충고했던 것이다. 만약 느헤미야가 속아서 이렇게 숨었더라면, 백성들도 즉시 일을 그만두고 무기도 팽개치고 모두 자신의 안전을 위한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적들은 아무 저항없이 쉽게 성벽을 다시 허물어버렸을 것이다.

(2) 느헤미야는 이 유혹을 극복하고 승리자가 되었다.

1)그는 즉시 이 충고에 따르지않기로 마음먹었다(11절).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즉 "나는 들어가지 않겠다. 오히려 비굴하게 일을 버리기보다는 일을 하다가 죽는 편을 택하겠다."

2)그리고 곧 이 권유의 출처를 알아차렸다(12절). 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바가 아니라. 즉 "선지자가 이 권고를 한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나를 해하려는 적의 음모였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 두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다. 나를 두렵게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13절). 우리가 무엇보다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죄이다. 그리고 죄에 대항하는 좋은 방법은 죄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자신을 수치스럽게 하는 것이다(14절).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3)느헤미야는 이 비열한 모략을 한 그들을 벌하실 것을 하나님께 겸손히 간구했다(14절).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소위를 기억하옵소서.

 

Ⅲ. 예루살렘 성벽 완공 6:15-19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곽을 완성하지만, 아직까지 적들로인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1) 도비야와 유대인의 적들은 자신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성이 완공된 것을 보고 굴욕감을 느꼈다. 성은 52일만에 완공된 것이다. 날짜를 따져보면 안식일에는 사역을 쉬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15절).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고, 이들이 예루살렘을 사랑했기때문에 이 일을 즐거움으로 수행하였다. 적들은 작업이 훌륭하게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성이 완공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낙담하였다(16절). 그들은 유대인의 번영과 성공을 시기하였고, 완성된 예루살렘 성을 보고 슬퍼하였다. 이 일이 하나님의 사역이었다면, 그것을 적대하려고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아무소용이 없다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따라서 이 일은 확실히 잘 진행되어 승리를 거둔 것이다.

(2) 성곽 완성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크게 실망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백성중에 도비야와 관계함으로 모반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유대인들이 자기 나라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도비야와 굳은 비밀 동맹을 맺고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파멸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도비야와 동맹한 것은 도비야를 군주로 모신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친구이자 연합세력으로 맺은 것이다. 이 사실은 도비야와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딸들과 결혼한 사실을 보면 알수 있다(18절). 이방인과의 혼인은 악영향을 끼친다. 즉,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한사람 개종할때, 유대인은 이방 종교로 열사람이나 개종한다. 유대인들은 뻔뻔스럽게 느헤미야에게도 도비야와 동맹관계를 맺으라고 권고하였다. 또한 그들은 느헤미야의 계획을 도비야에게 누설할정도로 어리석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느헤미야가 잘못되었다고 그를 반대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선하게 여기셨다.

 

# 핵심

 

6:1-19

느헤미야의 대적들은 그를 암살코자 했지만 그는 그들의 꾐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그가 역모를 꾀한다는 흑색선전을 시도했으며, 사람을 매수하여 그를 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예루살렘 성의 건축을 완수했다.

 

# 묵상

 

성벽재건 방해와 느헤미야의 대처 ( 6:1-14 )

하나는 느헤미야를 암살하려 하고 모함한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산발랏과 도비야에게 뇌물을 받고 거짓 예언으로 느헤미야를 유혹해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느헤미야는 하나님앞에 결백함을 말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시고 도와주심을 확신하고 기도하였으며, 거짓 선지자를 구별했고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지도자가 아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스마야의 행동 ( 6:10 )

스마야는 성벽중건 공사에 참여하지 않고 집에서 두문불출 했는데, 이는 느헤미야를 유인하기 위한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며 영적 기만입니다.

성전으로 피하지않았던 느헤미야 ( 6:11 )

느헤미야가 위급한 상황가운데에서도 성전으로 피하지않았던 이유는 제사장외에는 아무도 성전에 들어갈수 없도록 율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느낄때에도 율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존중하고 사랑하였던 참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성벽 ( 6:15-19 )

이스라엘에서 성벽이 갖는 의미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에게는 성벽이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며, 선민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의 성벽은 재건을 시작한지 52일만에 완공되었는데(6:15),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보호가운데 이루어진 기적같은 신앙의 걸작품입니다. 아울러 이 성은 바벨론 느부갓네살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이 무너진지 150년만에 재건축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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