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예레미야애가 5장 1절~22절]
1절 - 여호와여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보옵소서
2절 - 우리의 기업이 외인들에게, 우리의 집들도 이방인들에게 돌아갔나이다
3절 - 우리는 아버지 없는 고아들이오며 우리의 어머니는 과부들 같으니
4절 -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나무들을 가져오며
5절 -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우리의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기진하여 쉴 수 없나이다
6절 -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
7절 -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8절 - 종들이 우리를 지배함이여 그들의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
9절 -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
10절 - 굶주림의 열기로 말미암아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
11절 - 대적들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읍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
12절 - 지도자들은 그들의 손에 매달리고 장로들의 얼굴도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
13절 - 청년들이 맷돌을 지며 아이들이 나무를 지다가 엎드러지오며
14절 - 노인들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청년들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
15절 -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그쳤고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었사오며
16절 - 우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
17절 - 이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들이 어두우며
18절 - 시온 산이 황폐하여 여우가 그 안에서 노나이다
19절 -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
20절 -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21절 -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22절 -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




내가 그를 바라리라

[예레미야애가 3장 19절~26절]
19절 -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절 -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절 -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절 -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절 -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절 -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절 -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절 -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바라고 기다림

[예레미야애가 3장 19절~26절]
19절 -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절 -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절 -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절 -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절 -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절 -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절 -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절 -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예레미야애가

고난 중에도 소망은 있다
하나님이 그분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예루살렘을 버리셨다. 숱한 경고에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돌이키지 않은 백성의 죄가 결국 수치와 치욕을 불러왔다. 참담한 고난의 광경에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신 분이다. 고아와 과부같이 버려진 백성을 돌아보시고 다시 일으키실 것이다. 심판자 하나님이 곧 구원자 하나님이시기에 소망이 있다.

예레미야애가 한눈에 보기

본문

1:1~22

2:1~22

3:1~66

4:1~22

5:1~22

요점

버림받은 도성

하나님의 심판

희망의 염원

예루살렘 포위

회복을 위한 기도

저자

본문에서 저자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예레미야로 본다.

연대

예루살렘 함락(주전 586년) 직후

목적

애가는 말 그대로 슬픔을 담은 노래다.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혼돈과 패망의 현장을 아픈 마음으로 그리고 있다. 하나님의 경고로 예상된 고난이지만, 너무 끔찍해서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 의아할 뿐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그들 원수의 편에 서서 예루살렘이 짓밟히게 두셨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 가운데서도 소망의 찬송이 있다는 점이다(3:21~41). 하나님은 환난 중에도 자비하신 분이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절망적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을 수 있다. 하나님은 징계라는 정련의 과정을 거쳐 정결하게 하신 후, 예루살렘과 그분의 백성을 다시 일으키실 것이다. 폐허 속에서도 희망은 피어오른다.

본류

예언서, 애가


예레미야가 쓴 애가인가?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이 죽었을 때 애가를 지은 적이 있기에(대하 35:25), 이런 형식을 익숙하게 사용할 줄 알았을 것이다. 그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다가 구덩이에 갇혔던 경험을 이 애가에 담은 것으로 보인다(애 3:53~63), 반면, 예레미야가 저자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그는 시드기야 왕에게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바벨론에 투항하라고 예언했는데(렘 38:17~19), 본문에서 '우리' 안에 포함된 저자는 애굽이 구원해 주리라 기대한 듯하다(애 4:17). 또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을 썩은 무화과처럼 여겼지만(렘 24:8~10), 저자는 시드기야를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시고 택하신 지도자라 여겼다(애 4:20).

버림받은 도성 (1:1~22)
완전히 짓밟힌 도성은 텅 비어 있다. 하나님이 그들 원수의 편에 서 계신 듯하다. 화려하던 도성이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운 곳으로 바뀐 풍경 앞에서 끝없는 탄식만 흘러나온다. 이렇게 참담한 일을 당했는데도 위로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반복해서 나온다(2, 9, 16~17, 21절).

하나님의 심판 (2:1~22)
선지자는 예루살렘에 일어난 일이 바벨론 군대의 공격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여호와의 진노에 있다. 하나님이 백성의 죄악 때문에 예루살렘을 공격하신 것이다. 심지어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까지도 노략당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시온에게 주셨던 모든 절기와 안식일의 기쁨이 사라졌다. 아이들은 거리에서 죽어 간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사람들은 심지어 인육을 먹는다(2:20).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백성은 망연자실한다. 선지자는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피하거나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진술한다.

희망의 염원 (3:1~66)
선지자는 마치 자신이 어둠 속에서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겨 피 흘리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는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인해 자신이 화살을 맞는 과녁 신세가 되었다고 한탄한다. 어찌나 속이 상하고 고통스러운지 쓴 것을 잔뜩 먹은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기억한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에, 택하신 백성이 절대 진멸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게다가 영원하신 주님의 인자와 긍휼은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성실은 크고도 크시다(22~23절). 선지자는 연약한 인생으로 고통받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본래 의도가 아니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희망을 구하는 짧은 순간이 지나고, 선지자는 또다시 자신을 둘러싼 위험을 직시한다. 모든 것을 보고 아시는 하나님께 보호를 요청한다. 하나님은 비방과 모해를 당하는 이들의 원통함을 풀어 주시고 생명을 지켜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포위 (4:1~22)
차라리 하늘에서 불벼락을 맞아 타 버린 소돔 성이 나을 뻔했다. 예루살렘은 삽시간에 뒤엎어졌고, 시온의 백성은 극심한 고난에 처했다. 순금 같던 보배로운 백성은 질항아리같이 여겨지고, 광야의 타조같이 잔인해져 자녀도 돌보지 않는다.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아무도 몰랐다. 선지자는 굶어 죽는 것처럼 천천히 쇠약해지느니 차라리 칼에 맞아 죽는 것이 낫겠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시온에 임한 죄악의 형벌이 다한 후에는 다시는 백성이 사로잡혀 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회복을 위한 기도 (5:1~22)
선지자는 하나님께 이 백성이 당한 고난과 치욕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한다. 심판하신 하나님이 속량도 해 주실 것이다. 정의도 없고 자비도 없는 멸망의 도시에서 선지자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을 피력하며 애가를 마친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영원히 잊지 않으시고 오래 버려두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분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아보시는 날에는 그들이 새롭게 되어 옛적의 영화로운 모습으로 회복될 것을 소망한다.

예루살렘을 지배한 역사 속 주인들

시기

정복자

시대적 상황

주전 586년

바벨론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과 애굽 사이에서 위험한 곡예를 벌이다가 바벨론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는다. 바벨론 군대는 봉신 의무를 저버린 유다를 응징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을 비롯한 모든 집을 불사르고 성벽을 헐고 백성을 사로잡아 간다.

주전 540 / 539년

메대 - 바사

메대를 차지한 고레스 왕은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정복지의 백성에게 자기 땅으로 돌아가라고 명한다(스 6:3). 여러 차례에 걸쳐 고향으로 돌아온 유다 백성은 성벽을 쌓고 성전(2차 성전)을 재건한다.

주후 70년

로마

예루살렘의 통치자는 알렉산더 대왕과 셀레우코스 왕조를 거쳐 로마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분봉 왕들에 대항해 여러 차례 봉기를 일으켰고, 이를 골칫거리로 여긴 티투스 장군을 보내 예루살렘을 함락한다.

614년

페르시아

비잔틴 제국과 힘을 겨루던 페르시아(현재 이란)의 사산 왕조가 예루살렘을 차지한다. 632년 무함마드가 죽고 세계 정복에 나선 이슬람 세력은 이집트를 비롯해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한다(칼리파 제국, 637년). 지중해 연안에서 비잔틴 제국이 물러난다.

1099년

십자군

1차 십자군은 그나마 성공적으로 예루살렘을 차지한다.

1187년

살라딘

(이집트,시리아의 술탄)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배경. 십자군은 포로 석방 등을 조건으로 협상한 끝에 예루살렘을 살라딘에게 넘긴다.

1917년

영국

제1차 세계 대전 동맹국인 오토만 제국을 제압하고 난 후, 영국의 통치가 시작된다.

1948년

요르단, 이스라엘

이스라엘 독립을 두고 아랍 동맹과의 전쟁이 계속된다. 그 결과 예루살렘에 대한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분할 점령이 결정된다.

1967년

이스라엘

6일 전쟁을 일으킨 이스라엘은 두 번째 날 요르단이 점령하고 있던 동 예루살렘을 차지한다.


돌이켜 새롭게 회복되는 은혜를 주소서

[예레미야애가 5장 17절~22절]
17절 - 이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들이 어두우며
18절 - 시온 산이 황폐하여 여우가 그 안에서 노나이다
19절 -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
20절 -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21절 -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22절 -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

여우가 그 안에서 놀 만큼 시온 산이 황폐해졌습니다. 선지자는 여호와께 자신들을 오래 버리지 마시고 돌이키시길 간구합니다. 또한 주께 돌아가겠으니 자신들의 날들을 새롭게 하셔서 옛적 같게 하시길 간구합니다. 유다를 버리신 주의 진노가 참으로 크기 때문입니다.

● 돌이켜 새롭게 회복되는 은혜를 주소서
예루살렘뿐 아니라 백성의 심신도 황폐해진 상황에서 선지자는 하나님께 긍휼과 회복을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그분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죄악으로 수치를 당하고 있는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려면 그분의 주권적 개입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진정한 회개가 가능하며, 회복과 부흥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주님의 자비와 긍휼에 의지해 공동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전에 좋았던 모습으로 회복시키실 뿐 아니라, 더 좋은 모습으로 새롭게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 묵상 질문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나서 선지자는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하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는 회개의 은혜를 부어 주시도록 누구를 위해 중보해야 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죄를 버리지 않으면 면류관을 버리게 됩니다

[예레미야애가 5장 1절~16절]
1절 - 여호와여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보옵소서
2절 - 우리의 기업이 외인들에게, 우리의 집들도 이방인들에게 돌아갔나이다
3절 - 우리는 아버지 없는 고아들이오며 우리의 어머니는 과부들 같으니
4절 -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나무들을 가져오며
5절 -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우리의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기진하여 쉴 수 없나이다
6절 -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
7절 -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8절 - 종들이 우리를 지배함이여 그들의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
9절 -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
10절 - 굶주림의 열기로 말미암아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
11절 - 대적들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읍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
12절 - 지도자들은 그들의 손에 매달리고 장로들의 얼굴도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
13절 - 청년들이 맷돌을 지며 아이들이 나무를 지다가 엎드러지오며
14절 - 노인들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청년들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
15절 -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그쳤고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었사오며
16절 - 우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

선지자는 유다의 기업은 이방인에게 돌아가고 그들은 고아처럼 되어 쫓겨 기진하다고 토로합니다. 그들의 조상은 죄짓고 없어졌고, 후손은 그 죄악을 담당합니다. 유다가 굶주림의 열기로 피부가 검어지고, 기쁨이 그치며, 면류관이 떨어진 것은 그들의 범죄 때문입니다.

1. 포로의 참상 (1~8절)
선지자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읍과 포로가 된 유다 백성을 돌아봐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들은 이방인에게 기업과 집을 빼앗기고, 아버지 없는 고아처럼 되었습니다. 바벨론 군사들에게 끊임없이 쫓겨 다니니 쉴 수도 없었습니다. 모든 권리를 빼앗겨 땔감으로 쓸 나무조차 돈을 주고 사야 했고, 물도 사서 마셔야 했습니다. 궁핍한 그들은 애굽이나 앗수르 사람에게 손을 뻗어 양식을 얻어 보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일시적인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의 고난은 조상 때로부터 시작된 죄악을 후손이 답습한 결과였습니다. 죄의 종이 되면 하나님 자녀의 권리를 누릴 수 없습니다.
* 묵상 질문
선지자의 기도에 묘사된 유다 백성의 삶은 어떠한가요?
* 적용 질문
나에게서 하나님 자녀의 당당함이 드러나나요? 요즘 영적으로 눌리는 일은 무엇인가요?

2. 우리의 범죄 때문에 (9~16절)
성도의 삶을 파괴하는 가장 큰 적은 '죄'입니다. 예루살렘은 기근, 수치, 슬픔으로 가득 찬 비참한 성읍이 되었습니다. 굶주림을 달래려면 죽기를 무릅써야 겨우 양식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대적들은 시온과 각 성읍에서 부녀들과 처녀들을 욕보였습니다. 지도자들은 백성에게 존경받지 못했고, 청년들은 노예처럼 맷돌을 돌려야 했으며, 어린아이들은 나무를 지다가 엎드러졌습니다. 성문에 앉아 재판을 행했던 노인들은 이제 그렇게 할 권위를 잃었고, 바벨론 관료들의 불의한 판결을 그대로 따라야 했습니다. 유다 백성이 누렸던 기쁨과 영광도 사라졌습니다. 선지자는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범죄'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죄악에 빠진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중보자의 기본 태도입니다.
* 묵상 질문
선지자는 유다 땅에 기근과 치욕과 슬픔이 가득한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하나요?
* 적용 질문
내 마음과 공동체에 기쁨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사라진 기쁨과 찬양과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무엇을 인정해야 하나요?

오늘의 기도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보며 저의 죄를 보게 하시고, 그들에게 임한 무서운 진노를 보며 제게 임할 심판을 깨닫고 돌이키게 하소서. 여전히 남아 있는 죄악의 뿌리를 뽑고 그 자리에 말씀을 깊이 심는 하루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소망의 근거이신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예레미야애가 4장 11절~22절]
11절 -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12절 -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13절 -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4절 - 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그들이 만질 수 없도다
15절 - 사람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그들이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6절 - 여호와께서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 다시는 돌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17절 -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18절 - 그들이 우리의 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마다 다 다닐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들이 다하였으며 우리의 종말이 이르렀도다
19절 -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하늘의 독수리들보다 빠름이여 산 꼭대기까지도 뒤쫓으며 광야에서도 우리를 잡으려고 매복하였도다
20절 -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21절 - 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22절 - 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딸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진노를 쏟으시니 시온의 터가 불살라지고 대적이 예루살렘에 들어갑니다. 선지자와 제사장은 그들의 죄 때문에 버림받아 방황하고, 유다는 그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다가 종말을 맞습니다. 형벌이 다하면 다시는 시온이 사로잡혀 가지 않을 것입니다.

1. 지도자들의 타락과 방황 (11~16절)
하나님의 진노가 예루살렘 성에 쏟아졌습니다. 이방의 대적들이 예루살렘을 무너뜨리고 짓밟았습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입니다. 유다 백성은 선민의식에 빠져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만은 결코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만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도합니다. 예루살렘이 파멸에 이른 1차적인 원인은 지도자들의 타락에 있습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의인들을 핍박하고 죽였기 때문입니다. 백성을 거룩한 길로 인도해야 할 영적 지도자들이 타락해서 부정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탐욕과 정욕에 눈이 멀어서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까지 잘못된 길로 이끄는 영적 맹인이 된 것입니다. 이에 분노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흩어 이방의 포로로 내주셨습니다. 지도자는 영향력이 큰 만큼 잘못에 대한 책임과 징계도 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선지자와 제사장의 죄악은 예루살렘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요?
* 적용 질문
공동체 안에서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나요? 지도자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더욱 힘써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헛된 도움을 구한 백성 (17~22절)
하나님이 아닌 다른 이에게서 도움을 구하면 반드시 실망합니다. 유다 백성은 고난과 위기의 때에 하나님보다 주변 강대국을 의지했습니다. 당시 유다가 의지했던 애굽은 바벨론 침략 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물러갔고,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역시 바벨론 왕 앞에서 무기력하게 도망치다가 극심한 수모를 당했습니다. 그들이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들의 죄악에 대한 형벌이 다하면, 하나님이 에돔을 비롯한 유다의 대적들을 심판하시고 유다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성도는 헛된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유다 백성은 주가 도와주기를 바랐으며, 결과는 어떠했나요?
* 적용 질문
눈이 상할 정도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헛된 것을 바라보고 있다면, 시선을 어디로 돌려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역사에서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며 하나님이 주신 존귀함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더 경외하며 의지하게 하소서. 늘 거룩함으로 공동체를 섬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죄는 존귀한 인생을 비천하게 만듭니다

[예레미야애가 4장 1절~10절]
1절 -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2절 -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3절 -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4절 -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5절 - 맛있는 음식을 먹던 자들이 외롭게 거리 거리에 있으며 이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자라난 자들이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6절 -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아니하였는데도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이제는 딸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
7절 - 전에는 존귀한 자들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들보다 붉어 그들의 윤택함이 갈아서 빛낸 청옥 같더니
8절 -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의 가죽이 뼈들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어느 거리에서든지 알아볼 사람이 없도다
9절 - 칼에 죽은 자들이 주려 죽은 자들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그들은 찔림 받은 자들처럼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10절 -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금이 빛을 잃고 성소의 돌들이 거리에 쏟아지며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질항아리 같이 여겨집니다. 젖먹이가 목말라하고 어린아이가 떡을 얻지 못합니다. 존귀한 자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이 막대기같이 말랐습니다. 토지소산이 끊어져 그들은 점점 쇠약해 갑니다.

1. 기근에 굶주린 자녀들 (1~5절)
파괴된 예루살렘에서 가장 참담한 고통은 비참하게 죽어 가는 언약의 자녀들을 보는 것입니다. 시온의 자녀들은 순금처럼 존귀하고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창 22:17)이 성취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심판받은 예루살렘의 자녀들은 빛을 잃고 볼품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게 오랫동안 포위당해 식량 공급이 어려웠습니다. 극심한 기근으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어린 자녀들은 혀가 입천장에 붙을 지경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쁜 옷을 입고 귀하게 자랐던 아이들이 처량하게 길거리에 나앉았습니다. 자녀들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나라의 미래도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위해 울어야 할 때입니다(눅 23:28 참조).
* 묵상 질문
예루살렘의 자녀들이 기근으로 죽어 가는 모습이 무엇보다도 절망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어른들의 잘못으로 고통당하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2. 기근의 참상 (6~10절)
죄악의 도시로 유명한 소돔은 사람의 손에 멸망당한 것이 아닙니다. 소돔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불과 유황을 내려 멸망시키신 음란하고 악한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죄악이 소돔의 죄악보다 더 심했으니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얼마나 혹독했던지, 과거에 청옥처럼 아름답고 윤택했던 예루살렘의 유력자들마저 얼굴이 숯보다 검게 되고 몸이 막대기처럼 마를 정도로 비참해졌습니다. 심지어 부모가 배고픔을 못 이겨 자기 자녀들을 삶아 먹는 처참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굶주림에 허덕이며 서서히 죽어 가는 것은 칼로 단숨에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습니다. 죄악의 열매는 아주 쓰고 치명적인 고통을 줍니다.
* 묵상 질문
예루살렘의 죄악에 따른 징벌은 얼마나 무거웠나요?
* 적용 질문
사람들이 저지르는 끔찍한 죄악을 접할 때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기억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물질적인 풍요는 넘치지만 영적으로는 굶주려 주님의 영광을 잃어 가는 저와 공동체, 자녀들을 긍휼히 여겨 주소서. 주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회복되어 주님 안에 있는 부요함을 누리는 믿음의 세대가 이어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깊은 구덩이에서 부르짖는 기도

[예레미야애가 3장 55절~66절]
55절 -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56절 -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
57절 -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58절 -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
59절 - 여호와여 나의 억울함을 보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60절 - 그들이 내게 보복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보셨나이다
61절 -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비방하며 나를 모해하는 모든 것
62절 -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들과 종일 나를 모해하는 것들을 들으셨나이다
63절 - 그들이 앉으나 서나 나를 조롱하여 노래하는 것을 주목하여 보옵소서
64절 -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그들에게 보응하사
65절 - 그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주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66절 - 주께서 진노로 그들을 뒤쫓으사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멸하소서

선지자가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때 주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그의 원통함을 풀어 주시고 생명을 속량하셨습니다. 선지자는 자신을 비방하고 조롱하며 노래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고 저주를 내리시며 그들을 멸하시길 간구합니다.

1. 선지자의 고난 (55~59절)
선지자는 자신과 백성의 원통함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전에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깊은 구덩이에 던져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는 절망의 구덩이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간구를 들으시고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선지자는 이 말씀에 위로를 받았고, 결국 하나님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했습니다. 과거에 구덩이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선지자는 이제 국가적 탄식과 절망 속에서 다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자신과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과거에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 능력은 오늘의 고통을 헤쳐 나가는 데 큰 위로가 됩니다. 고통 속에 있는 성도는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간구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선지자는 깊은 구덩이에 갇혔을 때 어떻게 했으며, 하나님은 그에게 어떻게 하셨나요?
* 적용 질문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고난의 구덩이, 사방이 막힌 것처럼 암담한 상황 속에서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보응을 바라는 기도 (60~66절)
유다 백성은 원수들에게 비방과 모해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 분노하며 스스로 복수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선지자는 원수들의 악행과 암담을 하나님이 다 보고 들으셨음을 믿기에 그들의 처분을 하나님 손에 맡깁니다. 유다 백성을 조롱하는 원수들을 주목하시고, 원수들이 행한 대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응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원수들은 도에 넘게 유다를 억압하며 짓밟았습니다. 이에 선지자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로 원수들이 완전히 파멸되길 간구합니다. 이러한 탄원은 모든 것을 살펴보시는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원수에게 보복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선지자는 어떤 믿음으로 원수들의 처분을 하나님께 맡겼을까요?
* 적용 질문
나를 조롱하고 괴롭히는 존재에게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방식일까요?

오늘의 기도
제가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귀를 막지 않으시고 저를 가까이하실 것을 믿습니다. 힘들 때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응답해 주시고, 억울할 때 '너와 함께한다!'라고 위로해 주심으로 제 온 삶에 주님의 발자취가 남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께 돌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40절~54절]
40절 -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41절 -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42절 - 우리의 범죄함과 우리의 반역함을 주께서 사하지 아니하시고
43절 - 진노로 자신을 가리시고 우리를 추격하시며 죽이시고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
44절 - 주께서 구름으로 자신을 가리사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게 하시고
45절 - 우리를 뭇 나라 가운데에서 쓰레기와 폐물로 삼으셨으므로
46절 - 우리의 모든 원수들이 우리를 향하여 그들의 입을 크게 벌렸나이다
47절 - 두려움과 함정과 파멸과 멸망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
48절 -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49절 -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50절 -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니라
51절 -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들을 내 눈으로 보니 내 심령이 상하는도다
52절 - 나의 원수들이 이유없이 나를 새처럼 사냥하는도다
53절 - 그들이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짐이여
54절 - 물이 내 머리 위로 넘치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

선지자는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주께서 우리 죄를 사하지 않으시고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원수가 사냥하려 하고 멸망이 임했으니, 여호와께서 돌아보실 때까지 자신의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른다고 고백합니다.

1. 회개를 촉구함 (40~46절)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깨달은 선지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백성에게 권합니다. 백성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살펴보고 회개함으로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손을 들고 자기 죄를 인정하며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회복의 길입니다. 예루살렘에 재앙이 임한 근본적인 이유는 유다 백성의 범죄와 반역이 극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극심한 죄악과 불순종에 진노하신 하나님은 자신을 숨기시고 그들의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백성은 열방 가운데 쓰레기같이 되었고 원수에게 조롱을 당했습니다. 고난의 원인은 하나님께 있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살피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긍휼을 얻기 위해 유다 백성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마음과 손을 함께 들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아뢸 일은 무엇인가요?

2. 백성을 위한 눈물 (47~54절)
선지자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백성이 파멸하는 것을 보며,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는다고 손가락질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 눈물은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눈물이요, 유다 백성을 돌아봐 주시길 간청하는 눈물이었습니다. 선지자는 하늘에서 자비의 손길이 임할 때까지 쉼 없이 눈물로 간구하며 기다렸습니다. 참된 지도자는 연약하고 허물 많은 사람들을 정죄하는 대신, 그들을 위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합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진 이웃이 있다면, 우리는 중보 기도로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은 내가 누구를 위해, 어느 나라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기 원하실까요?

오늘의 기도
징계의 결과인 고통에 집착하지 않고 징계의 원인인 죄를 돌아보며 주님께 통회하게 하소서. 오직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신뢰함으로 저 자신과 이웃, 공동체의 거룩함이 회복되도록 엎드려 구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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