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I. 비스가 산상의 모세 34:1-4
1. 산을 오르는 모세(1)
모세는 하늘을 향해 위로 올라가서 비스가 산정상에까지 이르렀다. 그곳은 그가 죽을장소로 정해진 곳이었다(32:49,50). 당시 이스라엘은 모압평원의 평지에 진을 치고 있었으므로 명령에 따라 모세는 그평지에서 느보산의 정상인 비스가에 이르렀을 것이다(1절). 비스가란 그렇게 우뚝솟음, 또는 탁월함을 일컫는 보통명사이다. 비스가 정상까지 모세는 "아무 도움없이 홀로" 등정해야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추측컨대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을 마치고 여호수아, 엘르아살을 비롯한 몇몇 동지들과 숙연한 작별을 고했던것 같다. 어쩌면 이들이 산발치에까지 배웅하러 나왔었겠지만 모세는 아브라함이 다른산에서 자기종복에게 말했듯이 올라오지 말라는 권고를 그들에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라. 나는 저곳으로 가서 죽으리라." 비스가 산정에 홀로 올라가는 그의 행동은 다음 두가지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1) 자기가 죽음도 기꺼워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는 자기가 죽을자리를 알고 결코 그것을 피하지않고 그자리에 이르기위하여 기꺼이 가파른 산을 올라갔다.
(2) 자기가 자신의 죽음을 승천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사람의 영혼, 착한사람의 영혼은 육체를 남기고 위로 올라간다(전 3:21). 하나님께서 그종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실때는 이와같이 "올라와서 죽으라"는 소환장이 내려오는 것이다.
2. 땅을 굽어봄(2-4)
자신이 결코 그땅을 밟아보지 못하게된 지상의 가나안을 살펴보기 위하여 모세는 다시 이땅을 내려다 본다. 그렇지만 이제 즉시 그는 믿음으로 대망하고 있는 하늘의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것이다.
(1) 비록 그가 비스가 꼭대기까지 홀로 올라갔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성부께서 그와 함께계셨기 때문이다(요 16:32).
(2) 보다나은 나라에 대하여 현재 우리가 품고있는 모든 즐거운 기대는 하나님의 은혜덕택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계시의 영'과 더불어 '지혜의 영'도 주시며, 사물과 더불어 그것을 볼수 있는 눈도 주신다.
(3) 그는 멀리서 가나안을 바라보았다. 신자들은 자신들의 장래의 상태의 지복과 영광에 대하여 은혜를 통해서 멀리서 바라보듯 한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말씀과 규례는 비스가 산정이 모세에게 주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4) 그는 그것을 보기만했지 결코 누릴수는 없었다. 장차있을 그리스도 왕국의 영광스런 것들, 그왕국의 발전과 확장 그리고 융성한 상태에 대해서 우리는 듣고 그사실을 내다볼수는 있으나 그러한 사실들을 목격하기까지 살것 같지는 않다. 단지 우리는 우리의 후세대들이 그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을 바랄뿐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5) 가나안은 임마누엘의 땅이었다(사 8:8). 그래서 그는 그땅을 보면서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는 축복을 보았던 것이다.

Ⅱ. 모세의 죽음 34:5-8
1. 모세의 죽음(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죽어. 광야의 그수많은 역경을 뚫고 나왔음에도 목적지인 가나안이 주는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는 것은 모세자신에게 있어서 큰괴로움이었다. 그러나 "그사람 모세는 매우 온유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일을 그렇게 원하신다면 그는 기꺼이 순종하는 것이다.
(1) 여기에서 그는 '여호와의 종'이라 불리우고 있다. 이는 그가 선한 사람으로서만이 아니라(모든성도들은 하나님의 종이다) 대단히 쓸모있고 유용한 인물로서 여호와의 종이라 칭함을 받고있는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고 광야를 통과하도록 이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2) 그런데도 그는 죽는다. 그의 경건도 그의 유용함도 죽음의 손길을 면케할수 없었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의 수고에서 쉬고 그보상을 받으며 다른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하여 죽어야 한다. 하나님의 종들이 이세상에서 더이상 그를 섬기지 않고 떠날때 그들은 더훌륭하게 그분을 섬기기위하여 그리고 '주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섬기기위하여 가는 것이다.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었다. 글자 그대로는 '여호와의 입에서'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입술의 입맞춤으로"라고 말한다. 여호와의 종들은 할일을 모두 마쳤을때 그주인에게 순복하여 마침내 죽어야하는 법이며 그주인이 그들을 부르러 사람을 보낼때면 기꺼이 본향으로 돌아와야 한다.
2. 그의 장례(6)
하나님께서는 자기종들의 시신을 돌아보신다. 그들의 죽음이 가치있듯이 그들의 주검도 가치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검과 함께 언약은 기억되어야 한다. 모세는 '벧브올 맞은편' 계곡에 묻히게 되었다. 영혼이 하나님곁에서 안식하고 있다면 그몸이 어디에서 쉬든지 그것은 큰문제가 못된다. 우상숭배의 성향이 깊었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민족의 위대한 기초자요 아버지인 모세의 사체를 봉안하여 절하는 일이 없도록 그 구체적인 지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3. 그의 나이(7)
(1) 그의 수명은 노령에까지 이르렀다. 그의 나이는 120세에 이르렀는데 이는 비록 그의 선조들의 나이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그당시 사람들보다는 훨씬 많은 나이였다. 모세의 생애는 사십년을 단위로 세등분할수 있다. 그 첫 사십년동안 그는 왕족의 일원으로 바로의 궁궐에서 편하게 위엄을 부리며 살았으며 두번째 사십년동안은 미디안광야에서 가난하고 소망이 없는 목자로 생활하였다. 세번째 사십년동안 그영예와 권세에 있어서 여수룬의 임금과 같이 생활하였으나 심려와 수고로 대단히 힘이 들었던 생활을 하였다.
(2) 그는 늙어서도 건강을 누렸다. 그의 눈은 침침하지도 않았으며 그의 기력도 쇠하지 않았다(이삭과 야곱의 눈은 쇠했었다. 창 27:14;48:10).
4. 모세를 위한 애곡(8)
애통하는 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었으며 그들이 곡을 한 기간은 '삼십일'이었다. 그러나 모세를 위하여 울고 애곡하는 기간이 끝났다는 사실은 비록 우리의 손실이 대단히 클지라도 무한정 슬퍼해서는 안되며 시간이 되어 치유가 될때까지 그상처를 견디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만일 우리가 기뻐하며 하늘나라로 가기를 소망한다면 왜 굳이 애곡하면서 무덤에 가려고 한단 말인가?

Ⅲ. 모세의 탁월성 34:9-12
여기에서는 모세와 여호수아에 대하여 매우 명예스런 찬사를 아끼지않고 있다. 두사람은 모두 찬사를 받고있는데 이는 받아 마땅한 것이다. 두사람 모두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기를…!
(1) 여호수아는 소명받은 사역을 감당할수 있는 자격을 매우 잘 구비하고 있는 사람으로 칭찬받고 있다(9절).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국경지역까지 이끌고와서 율법으로는 아무것도 온전케 될수 없다는 사실을(히 7:19) 나타내기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남겨놓은 채로 죽었다. 율법은 사람을 그에 대해 판결하는 광야로는 인도하지만 안식과 안정된 평안의 가나안으로는 인도하지 못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수 없는 것을'(롬 8:3) 우리를 위하여 하는것은 여호수아(즉 우리주 예수, 여호수아는 그의 예표이다)를 위해 예비된 영예인 것이다. 그를 통하여 우리는 안식 즉 양심의 신령한 안식과 천국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 이 위대한 과업에 대한 여호수아의 소명을 분명히 하기위하여 두가지 사실이 동시에 발생하였다.
1) 하나님께서 그를 그일에 적합케 만드셨다.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9절). 한사람의 장수에게 있어서 지휘능력은 용기와 함께 갖추어야할 필수적인 요소이다.
2)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모세가 그에게 그사명을 이양하였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모세는 자기의 후계자가 될 여호수아에게 안수하고 그를 불러내어 맡기시고자 하는 사명을 감당할수 있는 자격을 그에게 부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2) 모세도 칭송을 받는다(10-12절). 거기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 그는 실로 매우 위대한 인물이었다. 특히 두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① 그는 하나님과 친밀하였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신 자요. 그렇게해서 그도 하나님을 알았다(참조. 민 18:8).
② 자연세계에서 그는 영향력과 권능이 있었다. 그가 애굽에서 바로앞에서 행하였던 심판의 기적과 광야에서 이스라엘앞에서 행하였던 자비의 기적들은 그가 하늘의 친밀한 총애를 누린 자요, 이땅 위에서 나타내 보였듯이 그러한 일을 할수 있는 비상대권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임을 증명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에게는 모세보다 더 사랑해야 할만한 자가 없었으며,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보다 더 두려워해야할 자가 없었다.
2) 그는 구약의 다른 어떤선지자들보다 더 큰자였다. 물론 그들역시 하늘에 큰세력이 있고 지상에 큰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중 어느누구도 이 위대한 인물에 필적할수 없으며 모세가 했듯이 하늘로부터 받은 직권을 증명하고 행사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는 구절로 미루어보아 모세에 대한 이칭찬은 그가 죽은지 오랜뒤에 기록된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는 율법을 수여하시고 유대교회를 만들고 형성시키셨지만 선지자들로는 단지 소소한 꾸지람이나 지시, 처방, 예언 등을 주셨던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중 최후의 선지자는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는 훈계로 끝을 맺고있다(말 4:4). 그리스도께서도 종종 모세의 글에 호소하셨으며 모세가 멀리서 그리스도의 시대를 바라보았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얘기해던 증인임을 보증하셨던 것이다. 모세는 사환으로 충성하였으나 그리스도는 그의 집맡은 아들로 충성하셨다(히 3:5,6). 모세의 역사는 모세를 모압평원에 장사지낸 것으로 통치기간을 끝맺는데 비하여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는 주님을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도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편에 앉아계신 구주예수의 통치와 평강이 끊임없이 임할 것을 확신한다.

# 핵심
34:1-12
모세의 죽음과 장사를 기록하고, 생전에 행한 모세의 업적을 회상하는 부분이다.
모세의 사망기사를 쓴사람은?(34장)
모세의 사망기사를 쓴사람은 아마 눈의 아들 여호수아(9절)인 듯하다. 성령의 인도와 영감에 따라 여호수아가 존경하는 스승의 죽음과 장사에 관한 기록을 첨가하고 책의 말미에 유창한 찬사를 첨부했을 것이다. 어떤저자의 책의 말미에 그의 사망기사가 삽입되었다고해서 그의 저작사실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상당수의 보수주의 학자들도 사망기사는 모세가 쓴것으로 보지않고 있다.

# 묵상
모세가 얻은 복 ( 34:1-4 )
느보산에서 약속의 땅 전역을 바라보는 복을 받았습니다. 아론처럼 모세도 가나안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곳의 풍요함과 아름다움을 눈으로 목격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이세상에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천국의 아름다움과 풍요를 미리 맛보는 복을 얻었습니다.
모세의 장례 ( 34:5-8 )
모세는 가나안이 바라보이는 모압땅에서 죽었지만, 이는 비극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와 안식을 의미합니다. 그의 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그릇된 숭배의 여지를 없애고 올바른 신앙의 대상으로 향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리스도의 좌우편에서 엘리야와 함께 하늘나라의 비밀을 논의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마17:3).
모세의 후계자 ( 34:9 )
앞에서 이미 예정된대로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안수함으로써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했습니다. 여호수아도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의 말에 순종하였습니다.
가장 위대한 선지자인 모세 ( 34:10-12 )
모세가 이렇게 위대한 선지자라고 불리워진 것은 그가 하나님과 가까이 지냈기때문이며(10절),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이 모세를 통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11, 12절). 그렇지만 성도들은 모세보다 더위대한 우리의 사도요, 제사장이시며, 영원한 새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해설
모세의 최후 ( 34 )
신34장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임종을 기록한 장입니다. 모압평지에서 감동적인 율법설교를 마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채 최후를 마쳐야 했습니다. 한편 이러한 모세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모세가 남겼느냐 하는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두가지로 생각할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창조의 기사까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모세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자신의 죽음에 관한 기사도 썼을 가능성입니다. 둘째,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같은 사람이후에 이모세의 죽음기사를 첨부했을수도 있습니다. 이가운데서 어떤가능성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라는 대명제에는 위배되지 않습니다.
1. 모세의 죽음
1) 모세의 죽음
모세는 최후의 유언적 축복을 마친후에 모압평지에서 느보산으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갈 가나안의 온땅을 모세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땅이 바로 과거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땅임을 상기시키셨습니다(참조, 창12:1-3).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가 그곳까지 들어가지는 못할 것을 다시금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의 입구까지 인도하는 일이 그의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의 할일을 다했으므로 모압땅에서 죽었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죽음은 우리성도들에게 있어서 사명이 무엇인가를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성도들을 이땅에 보내어 생을 살게하신 것은 반드시 주어진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사명을 다할때에 죽게될 것이고 천국의 복락을 누리게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가 처한 어떤일에서든지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할 것입니다.
a.자기백성에게서 거부되어 미디안으로 도망한 모세(출2:15)
b.굶주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기와 만나를 제공하는 모세(출16:13-15)
c.제사장들에게 기록된 율법을 맡김(신31:9,26)
2) 묘지를 알지못함
모세는 모압평지에서 죽었고 벧브올 맞은편 모압땅에 있는 어느골짜기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묘지를 아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1500년쯤후에 유다서의 기자는 이일에 대해 언급합니다. 유다서 기자가 말하는 그이유는 하나님께서 장사지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장 미가엘을 보내어 모세의 시체를 인간이 알지못하는 어떤곳에 장사지낸 것입니다(참조, 유1:9). 그이유는 모세의 묘지가 사람들의 우상숭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혹은 변화산사건에서 예수님에게 나타났던 사람이 엘리야와 모세였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도 있습니다. 엘리야는 죽음없이 승천한 사람이고 예수님역시 그렇게 승천하실 분이라면 모세도 그런 특이한 몸이 아닐 것인가 말입니다. 다시말해 모세의 무덤이 밝혀지지 않고 천사장 미가엘이 그의 시신을 가지고 마귀와 시비한 것은 그가 부활체로 승천했기 때문이라고 볼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a.엘리사의 묘실에서 기적이 일어남(왕하13:21)
b.유다의 선한 왕들만이 다윗성 열왕의 묘실에 매장될수 있음(대하24:16)
3) 모세를 위하여 애곡함
모세가 죽은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압평지에서 30일간을 애곡했습니다. 광야생활 40년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 애굽을 물리치고 출애굽한 감격적인 사건때에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슬픔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죽을때 그의 나이 일백이십세였으나 그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도 않았다고 하는것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모세가 아직 죽을때가 안되었는데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해 모세는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데 대해 하나님의 징벌로 죽음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접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 광야생활동안 자기의 부모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의 반역사건으로인해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음을 당했던 사건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사명을 다시한번 기억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기시키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결심은 가나안입성과 더불어 시작되는 전투에 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용기와 믿음을 더해주었을 것입니다.
a.슬퍼하는 모든자들이 애곡에 참여함(삼상25:1)
b.애곡이 영영한 희락으로 바뀜(사35:10)
c.베옷을 입고 애곡함(창37:34)
2. 모세에 대한 회고
1) 후계자 여호수아
모세는 죽기전에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고 여호수아에게는 여호와의 지혜의 신이 충만했습니다. 과거 모세의 지도를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삼아 가나안정복에 나설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지도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광야생활을 인도하셨듯이 이제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정복의 역사를 이끌어가실 것입니다. 어느시대에나 하나님은 적절한 지도자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a.가나안을 정탐하러간 여호수아(민13:1-3)
b.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민27:18-23)
c.이스라엘 모든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한 여호수아(수19:51)
2) 위대했던 하나님의 선지자
신명기를 마감하면서 신명기의 기자는 모세에 대해 회고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역사에 있어서 참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직접 대면하여 말씀하시던 자요,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위엄을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행하던 자였습니다. 신명기 기자는 말하기를 모세후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모세보다 나은 선지자는 우리의 영원한 중보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중요한 한시대를 하나님의 뜻대로 이끄셨습니다.
a.선지자의 선포는 은혜와 구원을 내포함(벧전1:9-12)
b.이스라엘의 파수꾼(겔3:17)
결론
신34장은 모세의 최후를 기록하면서 아울러 이제 새로운 시작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를 통해 전개될 가나안 정복전쟁입니다. 이렇듯이 하나님의 역사는 한지도자의 죽음으로 중단되는 것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생활 가운데서도 한지도자의 교체와 같은 일로인해 교회전체가 갈등과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성도들에게 전하여 함께 나아가자고 권면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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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모세의 축도 33:1-5
첫절은 33장 전체의 제목이라 할수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축복이다. 앞장에서 모세는 죄에 빠진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위협을 큰소리로 선포하였다. 이제 그는 분노를 채 가라앉히지도 않고 축복을 덧붙이고 있다. 여기에서의 모세와 같이,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마지막사역은 제자들에게 이별의 표시로서 축복하신 것이었다(눅 24:50).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첫째는 선지자 즉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축복하였으며, 둘째는 이스라엘의 아버지로서 축복하였다. 선한군주들은 그백성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법이다. 임종시 자기의 아들들을 축복했던 야곱의 본을 따라, 모세는 여기에서 야곱의 아들들에게서 난 각지파들을 축복하고 있다. 모세는 비록 자신은 죽어야 하고 그복에 참여하지도 못하지만 각지파의 행복을 빌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실때 나타내셨던 영광스런 모습과 그율법을 그들이 소유함으로해서 얻었던 커다란 혜택에 대하여 고고한 필치로 묘사함으로써 자기의 축원을 시작하고 있다.
(1) 여기에서 무신론자들과 믿음이 없는 자들을 영원히 침묵시키고 그들에게 확신을 줄만한, 그리고 대단히 어리석고 경솔한 자들을 깨우치고 감동시킬만하며 다른신들을 남몰래 좋아하는 모든 성향들을 가진 자들이 부끄러워할만한 하나님의 엄위에 대한 확연하고 훌륭한 계시가 있었다(2절). 하나님을 수행한 자들도 영광스러웠다. 에녹이 오래전에, 하나님께서 마지막날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때에 대하여 예언한바와 같이(유14절) 하나님께서는 수만의 성도들을 거느리시고 임하셨다. 그래서 율법은 '천사들을 통하여 저희에게 전달된 것'이라고 일컬어진다(행 7:53;히 2:2).
(2)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1) 하나님의 율법은 '불같은 율법'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그율법이 '불가운데에서'(신 4:33) 저들에게 주어졌기때문이며 또한 그율법이 불같은 역할을 수행하기때문이기도 하다. 즉 율법은 받아들여지면 녹이고 데우고 순결하게 하고 오염의 짚더미를 태워버리지만 배척을 받으면 바짝말려 딱딱하게 만들고 태워 그을리며 고통을 주고 파멸시킨다. 성령은 갈라진 불의 혀처럼 강림하셨다. 복음역시 불이 율법이기 때문이다.
2) 율법은 그권능과 위기 그리고 그율법을 따라다니며 결코 헛되이 되돌아오지 않는 신적인 강력을 표시하기 위하여 '그의 오른손에서 나온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의 선물로서 왔으며 그귀중한 선물은 바로 하나님의 오른손이 내리는 축복이었던 것이다.
3)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베푸신 특별한 돌보심의 하나였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3절). 비록 그율법이 불같은 율법이었지만 '백성들을 위해서'(2절, 한글개역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영역본에는 나타남-역주) 즉 백성들에 대한 호의로 주어진 것이다.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은 마음에 뿌려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실한 증거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법이 그분의 은혜의 선물가운데 하나라고 여겨야 한다. 모든성도가 그수중에 있으며. 성도들은 마치 그리스도의 손에 있는 일곱별처럼(계1:16) 하나님의 수중에 덮혀 보호받기도 하고 합당하게 사용되기도 하였다.
(3) 하나님께서는 그들로하여금 자신이 그들에게 주셨던 율법을 영접하도록 하셨다. 주의 발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성도들은 존경의 표시로 선생님의 발치에 앉아 가르치는바를 겸손히 따르고 존경하는 학도들처럼 주의 발아래 앉았다. 그리고 그렇게 이스라엘은 시내산 기슭에 앉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듣고 따르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당시 모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채비를 하고 서있었으며 다시 율법이 공적으로 낭독될때도 그렇게 하였다(수 8:34).
1) 그들은 율법에 대하여 큰존경심을 품고 말해야하며 따라서 율법을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라 칭하라고 가르침을 받는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 대하여 큰존경심을 지니고 말하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자기이름을 자기의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 내세우지 않았으므로 더욱 그의 이름을 보전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제사장들은 '아론의 자손들'이라는 명예를 누렸지만 그의 후손들은 결코 '모세의 자손들'이라는 명예를 누리지 않았던 것이다.

Ⅱ. 르우벤과 유다에 대한 축복 33:6,7
1. 르우벤에 대한 축복(6)
비록 르우벤이 자기의 장자상속권의 영예를 잃기는 했지만 모세는 르우벤으로부터 축복을 시작한다. 우리는 명예가 실추된 사람에 대하여 지나치게 모독을 해서는 안되며 어떤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오점의 탈을 영구적으로 뒤집어 씌우려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6절).
(1) 모세는 이지파의 보존을 소원하는 그사실을 예언한다. 비록 요단강 건너편 변경지역에 위치한 지파지만, "존속하여 그주변 민족들에게 멸망당하거나 주변민족들 사이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노라." 아마도 모세는 이미 자기몫의 땅을 배당받은 르우벤지파 중에서도 가족을 그땅에 남겨놓은채 '저희 형제들보다 앞장서서 무장하여 건너갈'(민 32:27) 선택된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2) 그는 이지파의 번성을 원하고 예언한다. 그인수가 적지않기를 원하도다(6절). 또는 "그인수가 많아지기를 원하도다." 패트릭주교는 이구절을 '르우벤이 비록 인구가 매우 적지만 존속하여 사라지지 않게되기를 원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갈대아역 주석가들은 모두 이내용을 저세상에 관련시켜 생각한다. "르우벤으로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하사 제2의 죽음을 맛보지 않게 하옵소서." 옹켈로스(Onkelos)의 해석이 그러하다. 요나단(Jonathan)과 예루살렘 탈굼역은 "르우벤으로하여금 이세상에서 살게하옵시고 장차올 세상에서 악한 자들이 맛볼 죽음을 당치않게 하옵소서"라고 해석하고 있다.
2. 유다에 대한 축복(7)
유다에 대한 축복은 레위지파에 앞서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우리 주께서 유다의 줄기에서 나오셨기 때문이다. 이축복은 두가지로 볼수 있다.
(1) 이구절이 일반적인 유다지파 전체를 가리킨다고 볼수 있다. 모세는 유다지파의 큰번영을 간구하고 예언하고 있다. 유다지파가 기도하는 지파요 적극적인 지파일 것은 당연시되고 있다.
(2) 특별히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다윗에 대한 언급일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며'(시 20:1;요 11:4) 마찬가지로 그대적을 물리치는 승리와 위대한 과업에서의 성공을 그에게 주실 것이다. 그리고 유다를 '그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라는 기도는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라는 실로에 관한 야곱의 예언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시므온지파는 축복에서 제외되었는데 이는 야곱이 낙인을 찍었기때문이며 레위가 했듯이 그지파의 명예를 회복할만한 일을 아무것도 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지파는 광야생활중에 다른 어떤지파보다도 더욱 그수가 감소되었다. 그리고 브올의 일로 악명높았던 시므리가 바로 이지파 출신이었다. 또하나의 제외된 이유는 시므온지파에 대한 몫이 유다지파에 딸려있었기 때문에 시므온지파에 대한 축복은 유다지파에 대한 축복속에 내포되어 있을수도 있다.

Ⅲ. 레위에 대한 축복 33:8-11
레위지파에 대한 축복에 이르러 모세는 더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이는 결코 그지파가 자기자신의 지파이기 때문이 아니라(그는 자기와 자기 지파와의 관계에 대하여 전혀 유념하지 않고있다) 그지파가 하나님의 지파였기 때문이었다. 레위지파에 대한 축복은 다음사항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 대제사장에 대한 언급(8)
대제사장에 대해서 여기에서는 '주의 경건한 자'라고 칭하고 있는데 이는 그직임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그직임의 표시로 그의 이마위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자를 써붙였다.
(1) 모세는 므리바에서의 자기의 죄탓에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자손들을 해고하셨어도 부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민 20:12). 많은 사람들이 이구절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그반대로, 다른 므리바에서(출17:7) 백성들의 거센 불평을 막아버린 아론의 열정과 신실함과 담대함을 여호와께 호소하는 것으로 보는것이 더 타당하다. 모든 갈대아역 주석가들은 그사건이 일종의 시험적인 사건이었으며 그결과 그가 완전하고 충실히 행하였음이 증명되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2) 그는 대제사장의 직임이 계속해서 존속되기를 기도한다.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그것은 말라기 2장에 나타난 것처럼 봉사의 업무가운데 꽤 중요한부분을 위해서 대제사장에게 주어진 것이었다(말 2:5). "여호와여 그것을 그에게서 앗아가지 마소서." 이러한 축복에도 불구하고 우림과 둠밈은 포로기동안에 유실되어 버렸으며 제2성전기간에도 결코 되찾지 못하였다. '둠밈'이란 '고결'을 의미하며 '우림'이란 '빛, 조명'을 뜻한다. 이러한 것들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을지어다." 라는 이말은 "여호와여, 대제사장은 언제나 고결하며 슬기로운 사람이 되게하여 주옵소서"라는 말이다. 우리가 복음사역자들로 하여금 명석한 머리와 정직한 마음을 갖도록 기도드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지성과 순결은 완벽한 사역자를 만드는 것이다.
2. 보통 제사장과 레위인에 관한 부분(9-11)
(1)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던 자들에 반대하여 모세의 편, 즉 하나님편에 섰던 이지파의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추천하고 있다(출 32:26이하). 자기가 살고있는 시대와 지역의 편만한 죄악에서 자기를 순결하게 지킬뿐만 아니라 가능한 한 그러한 죄악에 대하여 증거하고 "행악자에 대항하여 하나님을 위해 일어서는" 사람들은 자기들위에 특별한 영예의 표시를 갖게될 것이다. 아마도 모세는 자기아버지의 반역모의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였던 고라의 아들들과(민 26:11), 죄인을 처형하여 염병을 그치게한 비느하스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민 25:6-13).
(2) 모세는 이지파에게 거룩하게 구별된 업무들을 처리하도록 임무가 부여되었음을 확증하고 있다. 이위임은 그들의 열심과 신앙심에 대한 보상이었다(10절).
1) 레위지파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백성들을 상대해야 했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레위사람들은 주의 경건한 회중가운데에서 설교자로서 율법을 낭독하고 해설하며(느 8:7,8) 사사로서 자기들앞에 가져온 애매하고 어려운 소송을 판결하게 될것이다(대하 17:8,9)."
2) 그들은 다시 백성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찬송을 올리고 그영광을 기리기위하여 분향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얻고 죄를 대속하기위하여 희생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과의 일에 관계하여야 했다. 이일은 제사장들의 일이었지만 레위사람들도 그일에 참여하여 도왔던 것이다.
(3) 모세는 다음과 같이 저희를 위하여 기도한다(11절).
1) 하나님께서 저들의 재산을 번영케하시기를 기도한다. 여호와여 그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혹자는 이 '재산'이라는 단어를 '여호와여 그미덕을 풍족케 하소서'라고 읽는다. "여호와여 저들속에 주의 은혜를 더욱 풍족히 내리사 저들로하여금 자기들의 행할 사업을 잘 수행하도록 하여 주옵소서."
2) 하나님께서 저들의 봉사를 열납하시길 기도한다. 그손의 일을 받으소서. "받으시되 레위지파 자신을 위해서 또한 그들이 백성들을 위해서 하는 손의 일도 열납하소서."
3) 하나님께서 레위의 편이 되사 그의 모든대적들을 물리쳐주시기를 기도한다.

Ⅳ. 베냐민과 요셉에 대한 축복 33:12-17
1. 베냐민에 대한 축복(12)
레위 다음으로 베냐민에 대한 축복이 그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제사장들과 업무가 이루어지는 성전이 베냐민지파 영토의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있기때문이기도 하며, 이렇게 베냐민이 요셉보다 앞에 놓이게 된것은 예루살렘의 존엄성이 사마리아보다 승하기 때문이었다. 예루살렘은 베냐민지파의 영토에 속해있으며 사마리아는 에브라임지파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여로보암과 더불어 다른 나머지지파들이 다윗가문과 여호와의 전 모두를 버렸을때 베냐민지파는 다윗가문과 여호와의 전을 버리지않고 고락을 같이했기 때문이었다.
(1) 베냐민지파는 여기에서 그조상 베냐민이 야곱의 사랑을 입었던 '야곱의 오른손의 아들'이었던 것처럼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불리우고 있다. 이스라엘의 초대임금 사울도 그리고 위대한 사도바울도 모두 이지파 출신이었다.
(2) 베냐민지파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을 확증받고 있다. 그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3)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전이 이 베냐민지파의 영토내에 건축될 것이라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거룩한 성읍 예루살렘은 이지파의 몫이었다(수 18:28). 비록 다윗성인 시온은 유다에게 속했으리라고 추측되지만 성전이 세워진 모리아산은 베냐민의 분깃에 해당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의 머리가 어깨위에 있듯이 성전이 모리아산 위에 세워졌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어깨사이에' 거하시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2. 요셉에 대한 축복(13-17)
이것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에 대한 축복을 포함하고 있다. 야곱의 축복에 있어서도(창 49장) 요셉에 대한 부분이 가장 길었는데 여기에서도 그러하다. 그리고 모세는 요셉을 '그형제 중 구별한 자'라고 칭한 야곱의 예언에서 그명칭을 빌어서(창 49:26, 그형제 중 뛰어난 자) 요셉에게 붙여주고 있다(16절). 요셉의 형제들은 그를 버려 노예가 되게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별하여 군주로 만드셨다.
(1) 커다란 풍요(13-16절) : 먼저 '그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라고 일반적인 면을 기원한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몫으로 떨어진 토지는 매우 기름진 땅이었는데 모세는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흘러넘치기를 기도하고 있다.
1) 모세는 자기가 기도한 두지파들의 부요와 풍요에 기여할 많은 구체적인 사실들을 일일이 열거한다.
① 시기적절한 비와 이슬에 대하여 기도한다. 이는 '하늘의 보물'이다. 이것들은 대단히 귀중해서 비록 순전히 물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들 없이는 땅의 소산이 모두 죽고 끊어져버릴 것이다.
② 풍부한 샘을 위해 기도한다. 샘물은 땅이 그소산을 내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여기에서는 '땅아래 저장한 물'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③ 천체의 온화한 영향이 있기를 기도한다(14절). 보물과 같은 열매는 태양의 촉진시키는 열과 달의 시원한 이슬에 의해 맺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④ 심지어 에브라임이나 므낫세 영토의 산이나 언덕에서도 결실이 있기를 기도한다. 다른지방의 영토에서는 산이나 언덕이란 불모지에 가까운 땅이었던 것이다(15절).
⑤ 땅속의 자원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땅의 보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16절). 비록 땅 그자체는 쓸모도 없고 가치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땅에서부터 인간생활의 유지와 안녕을 위해 매우 귀중한 것들이 산출되는 것이다. 혹자는 여기에서 모세가 간구한 이 귀한 보물들을, 하늘나라에 속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신령한 축복들과 은사와 은혜 그리고 성령의 위로에 대한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2) 모세는 '가시떨기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 즉 그에게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해내라는 사명을 주시기위하여 불이 활활 타오르면서도 타버리지 않는 가시덤불속에서 나타나셨던 하나님의(출3:2) 선의와 은혜로운 열납으로 두지파 모두를 영예롭게 한다. 비록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단지 잠깐동안 나타났었지만 이구절은 그곳에 '거하시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이구절은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의 쉐키나의 은혜'라고 읽을수 있는데 이는 '쉐키나'라는 말이 '임재한 자' 또는 '거하고 있는 무엇'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여러번 나타나셨었다. 그러나 임종을 맞는 모세는 그가 전능자의 모습을 처음 대하여 알기 시작했던 때였던 그 첫순간에 대한 추억이 가장 즐거웠던 듯하다. 그때는 결코 잊을수 없는 사랑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가시떨기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를 간구할때 그당시 그곳에서 갱신된 언약, 즉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모든소망의 근거를 이루고 있는 그언약을 염두에 두고있는 것이다.
(2) 큰권능에 대한 축복(17절) : 여기에서 모세는 세가지 예를들어 요셉의 권능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다.
1) 형제들사이에서의 그의 권위 : 그는 첫수송아지같이 위엄이 있으니. 수송아지 또는 젊은 황소는 당당한 동물로 이전에는 제왕의 위엄을 상징하는데 사용되었다.
2) 원수들을 대항하고 무찌르는 그의 세력 : 그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즉 요셉이 전장에서 일으키는 힘은 매우 강하고 가공할만한 것이어서 그힘으로 열방들을 밀어버릴 것이다.
3) 그백성의 인구 : 에브라임은 비록 아우의 집안이었으나 야곱은 아우의 집안에 자녀의 수가 훨씬 번성할 것을 예견하고 우수를 차지인 에브라임에게 좌수를 므낫세의 머리에 얹고 기도하였던 것이다(창 48:18). 에브라임의 만만이요 므낫세의 천천이리로다.

Ⅴ. 스불론, 잇사갈, 갓에 대한 축복 33:18-21
(1) 여기에서 우리는 스불론에 대한 축복과 잇사갈에 대한 축복이 한데 묶여있음을 보게된다. 이는 스불론과 잇사갈은 둘다 야곱이 레아에게서 난 아들들이기 때문이었으며 가나안땅에서 그들의 몫이 이웃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언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그들 두지파 공히 안락한 주거와 일자리를 갖게될 것이다(18절). 스불론은 기뻐할 이유를 갖게될 것이므로 즐거워해야 한다. 모세는 스불론이 전쟁터에 나가든지 바다로 나가든지 즐거워할 까닭을 갖게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스불론은 '배매는 해변'에 거하였던 것이다(창 49:13). 그리고 잇사갈은 그의 장막안에서 즉 주로 가내산업에서 즐거워해야 했다. 잇사갈지파의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농업에 국한하여 종사하였다.
여기에서 살펴볼 사실은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의 거주의 경계를 정해주시되 어떤이들에게는 도회지를, 어떤이들에게는 농촌지역을, 어떤이들에게는 항구를, 어떤이들에게는 내륙지역을 정해주시며, 마찬가지로 사람이 서로 다른일에 종사하도록 사람의 기질도 지혜롭게 나눠주신다. 어떤이의 재능은 책에 매달리게 하며 다른이의 재능은 바다로, 다른이들은 칼로 이끌며, 어떤이들은 농사일에 적성을 나타내지만, 다른이들은 상업에, 어떤이들은 공업에 적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렇게 적성대로 사는것이 좋은 일이다. '만일 온몸이 눈이면 듣는곳은 어디뇨'(고전 12:17). 스불론지파가 상업에 종사하고 잇사갈지파가 농부가 된것은 이스라엘 공동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② 우리의 지위와 사업이 무엇이건간에 스스로 그것에 적응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요 의무이며 그일들을 흡족히 여기는 것이 큰행복인 것이다.
2) 두지파 모두 각자의 처소에서 하나님의 명예와 민족의 종교적 유익에 공헌하게될 것이다(19절). 스불론과 같이 교류가 빈번한 항구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종교의 빛역할을 많이하게 마련이지만 잇사갈과 같이 농촌지역에서 장막에 거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종교의 생명과 열기를 더욱 많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흔히 드러난다.
① 여기에 예언되어 있는 사실은 이 두지파가 부요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해외로 진출하는 스불론은 상인들에게 충만한 젖가슴같은 바다의 풍부한 것들을 흡수할 것이며 집에서 머무는 잇사갈은 모래에 숨겨져 있는 보물 즉 땅의 소산이나 금속과 광물같은 지하자원 또는(여기에서 모래라는 말은 보통 바다의 모래를 의미하므로) 바다속에서 건져낸 풍요한 자원들로 부요하게될 것이다. 잇사갈의 분깃은 그지경이 해안까지 이르렀었다.
② 이와같이 부요하게 된 이지파들이 미가선지자의 말과 같이 자기들의 소득을 여호와께 성별하여 바칠것이 예언되어 있다. '내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 그들의 재물을 온땅의 대주재께 돌리리라'(미 4:13).
(2) 다음에는 갓에 대한 축복이 나온다(20,21절). 갓지파는 지금 모세가 있는 요단강 저편에 이미 자리를 잡은 지파들가운데 한지파였다.
1) 모세는 이지파의 앞날을 예언한다(20절).
① 갓지파는 그당시 할당받았던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게 될것이다. 이지파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대단히 그규모가 커졌는데 하갈족과의 전쟁에서 매우 경건하게 싸웠던 것으로 보인다(대상 5:19,20,22).
② 갓은 용맹스럽고 백전백승하는 지파가 될것이요, 홀로 버려두어도 사자와 같이 안전하고 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격노하면 사자와 같이 '팔과 정수리를 찢을 것이다.' 다시말해서 갓지파의 앞길을 막는것은 그것이 적의 팔(즉 힘)이든지 정수리(즉 전략이나 권위)이든지 모두 산산조각날 것이다.
2) 모세는 이지파가 이미 행했고 지금도 하고있는 일을 들어 칭찬한다(21절).

Ⅵ. 단, 납달리, 아셀에 대한 축복 33:22-25
1. 단지파에 대한 축복(22)
야곱은 단지파에 대한 그의 축복가운데에서 그지파를 영민함에 비유하여 뱀이라 일컫고 있는데 모세는 그용기와 결단력을 높이사서 단지파를 사자에 비유한다. 뱀의 지혜를, 그리고 사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단지파 앞을 누가 감히 막을수 있겠는가?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로 비유되고 있는데, 바산은 사나운 사자로 널리 알려졌던 산악지역으로, 사납기로 이름난 그사자들은 바산에서 나와 평지의 먹이감을 덮치곤 했었다. 일단의 단사람들은 라이스지방은 가나안땅에서 가장 먼곳에 위치한 성읍이었다(삿 18:27이하). 바산이라는 산이 그성읍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산에서 그들이 내려와 그성읍을 덮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2. 납달리에 대한 축복(23)
모세는 이지파를 경이롭게 바라보면서 칭찬을 한다. "오 납달리여, 너는 복되도다. 장차에도 복될 것이며 항상 그러하리로다." 야곱은 이지파를 사랑스런 암사슴(창 49:21)이라는 좋은말로 이지파가 온화하며 상냥한 백성들임을 묘사하고 있다. 이와같이 온화하고 상냥함으로서 이백성들은 무엇을 얻게되는가? 여기에서 모세는 그들에게 그이웃들의 사랑을 받는데에서 이득이 있을 것이요, 은혜로 만족하게 될것이라고 얘기한다. 유대인들의 말에 따르면 "비록 납달리지파의 분깃이 비록 북부지방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대단히 수확히 좋고 수확기가 아주 일러서 보통 납달리지파의 산물이 성전에 드리는 첫열매중 으뜸이었으며 따라서 여호와의 축복이나 다름없는 제사장의 축복을 가장먼저 받았다"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주로 머물고 계셨던 가버나움은 이지파의 영토안에 있었다. '바다편(난외주 참조)과 남방을 얻을지로다'는 '네분깃의 남쪽에 위치한 바다를 소유할지로다'라고 읽을수도 있다. 이 바다는 복음서에서 흔히 대할수 있는 갈릴리바다로서 이 바다의 바로 북쪽에 납달리지파가 자리를 잡고있었다. 이 바다는 이지파에게 큰혜택을 주었으며 가버나움과 벳새다의 부요함은 이를 잘 입증해준다.
3. 아셀에 대한 축복(24,25)
모세는 이지파에 관하여 네가지 사실을 기도하고 예언한다. 이지파는 그이름 자체가 복되니 레아가 '네가 기쁘도다'(창 30;13)라고 말하면서 이지파의 조상을 아셀이라고 이름붙였던 것이다. 그 네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자손이 증가할 것이다.
(2) 이웃관계에서 축복을 받을 것이다.
(3) 그땅이 풍성할 것이다.
1) 지상에서의 풍요 : 그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24절). 즉 "아셀로하여금 자기기업에서 기름이 풍성하도록 하여 그머리를 기름으로 바를뿐만 아니라 원한다면 발까지도 기름에 담가 씻을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2) 지하의 풍요 :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것이니(25절). 즉 "너는 네땅에서 대단히 풍부한 금속을 얻게되리라." 갈대아역은 이를 상징적으로 "너는 철과 놋처럼 강하고 빛이 나리라"라고 이해한다.
(4) 그들의 기력과 원기가 계속 넘칠 것이다. 네 사는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많은사람들이 이를 "너의 노년의 기력이 네 젊은날의 기력과 같아서 너는 쇠함을 느끼지 아니하며 지칠줄도 모르고 네 젊음이 더욱 새로워지리로다. 네 발뿐만 아니라 네뼈도 철과 놋같으리로다"라고 의역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맡겨진 일이 있는가? 그들은 일할 기력을 얻게될 것이다. 짊어질 짐이 있는가? 견딜 힘을 얻게될 것이다. 그리고 결코 '감당할 시험밖에는 당할 것이 없을 것이다'(고전 10:13).

Ⅶ. 축복의 맺음말 33:26-29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찬양한다.
(1) 세상에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같은 신은 하나도 없다. 열방의 어떠한 신들도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배하는 자들에게 베풀어주신 것처럼 자기들을 경배하는 자들에게 베풀어주지 못할 것이다.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자 없도다(26절).
1) 그의 주권과 권위 : 그가…하늘을 타시고. 하나님 여호와는 신속하면서도 강력하게 일을 처리하시고자 그백성을 위해 어떤일을 하실때 하늘을 타고 오신다. 어떤적들도 하늘을 타고 오시는 그분의 전진을 예상할수도 막을수도 없다.
2) 그의 끝없는 영원성 :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그의 팔은 '영원하다'(27절). 이방의 신들이란 최근에 고안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즉시 파괴될 것이지만 여수룬의 하나님은 영원하시니, 그는 모든세계가 지어지기 전에 계셨고 시간과 날이 사라져버릴지라도 존재하실 것이다(합 1:12).
(2) 하나님의 이스라엘같은 백성은 없다. 각지파의 행복을 선포한후에 모세는 마지막에 모두다 매우 복되며, 해아래 어느 다른민족도 이들 이스라엘 민족에 필적할수 없을만큼 모든면에서 복되다고 선언한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비길데 없는 분으로 알고 그에게 영광돌린다면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에게 은총을 베푸사 그들로 세상에 그예가 없는 백성들로 만드실 것이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교회에 대하여 언급된 사항들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교회'에 확실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교회는 사도가 그렇게 칭했듯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갈 6:16).
1) 어떤민족도 그렇게 터를 잘잡고 방호가 잘된 민족이 결코 없었다(27절).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또는 문자그대로 "너의 처소, 또는 너의 저택안에서, 사람이 자기집에서 그렇듯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안식하리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야말로 하나님안에 가정을 세웠다. 영혼은 그안식처요(시 116:7) 피난처이신(시32:7) 그분께 돌아가는 것이다.
2) 어떤민족도 그렇게 잘 부양받고 유지된 민족이 결코 없었다. 그영원하신 팔이 네아래 있도다. 즉 하나님의 전능하신 권능이 지지해주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권능에서 흘러나오는 영원한 언약과 영원한 위로야말로 신자들이 찬탄할정도로 보존을 받고 가장 어려운시기에서조차 기쁨을 누리게 하는 영원하신 팔이다. 즉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충족한 것이다(고후 12:9).
3) 어떤민족도 이 민족만큼 훌륭한 지휘를 받아 전투에 임했던 민족이 없었다. 그가 네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주시기 위하여 그의 전능하신 권능으로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대적들을 내쫓으실 것이다. 이처럼 신자들은 특히 자기들을 사랑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들의 영적원수들을 정복하는 자들이다. 우리 구원의 대장께서는 세상을 이기시고 십자가위에서 정사와 권세를 폐하시사 "우리앞에서 대적을 내쫓으신다."
4) 어떤민족도 이민족만큼 그렇게 보호받고 안전했던 민족은 결코 없었다(28절).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홀로 있나니. 하나님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들의 강력한 보루로 삼는 사람들은 '안전히 거한다.' '그는 높은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보장이 되며 그양식은 공급되고 그물을 끊치지 아니하리라'(사 33-16). 그들은 홀로 안전하게 거할 것이다.
① 비록 혼자일지라도, 그리고 그들이 이웃국가들과 동맹을 맺지않을지라도 안전하게 거할 것이다.
② 혼자이기 때문에, 그들이 이방인들과 뒤섞이지 아니하고 순수하게 순결을 보존하는한 안전하게 거할 것이다.
5) 어떤민족도 이스라엘만큼 잘 예비된 백성이 결코 없었다. '야곱의 샘'은 이제 좋은땅에 확고하게 뿌리를 박을 것이다(야곱의 샘이란 이스라엘 민족의 현재의 세대 즉 이후의 모든자손들이 생겨나고 또 온갖 물줄기들을 형성시킬 샘을 가리킨다). 이단어는 또 '야곱의 눈'이라고도 읽을수 있는데 이는 히브리어에서 샘이라는 단어와 눈이라는 단어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야곱의 눈'이 강건너편 즉 바로 그들의 면전에 있는 '곡식과 포도주' 위에 있다고 읽을수도 있다.
6) 이스라엘만큼 많은 도움을 입었던 백성이 없었다. 이스라엘이 곤경에 처했을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을 돕기위하여 하늘을 타고 오셨다(26절). 그들은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백성'이었다(29절).
7) 어떤민족도 이스라엘만큼 잘 무장된 백성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도움의 방패가 되셨으니 이스라엘은 그분으로써 방어태세를 갖추었으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영광의 칼'이 되사 그들은 그분으로서 공격태세를 갖추었으니 가공할만한 일이었다.
8) 어떤민족도 적군에 대한 승리를 그들처럼 확신할수 있었던 민족이 없었다. "적군들이 네게 거짓말하였음이 밝혀질 것이다"(한글개역은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이다-역주). 즉 "너희 대적들은 자기들의 뜻은 그렇지않지만 너희에게 복종치 않을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복종은 복종하는체 하는것 뿐이리라." 그래서 혹자는 이구절을 '너희대적이 네게 거짓말하였음이 발각되거든 너희는 그들의 머리를 짓밟을 것이니라'라고 읽기도 한다.

# 핵심
33:1-29
모세가 최후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느보산에 오르기전,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마지막축복을 선포하는 대목이다.
여수룬(33:5)
‘의로운 자’라는 뜻이며 도덕적, 영적으로 의로운 특성을 지닌 이상적인 백성을 가리킨다. 이 이름은 구약성경에 모두 4회 언급되며(5,26절; 32:15; 사 44:2), 이스라엘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이 이러한 칭호로 불린것은 그들 스스로가 의롭기때문이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때문이었다. 그들은 거듭 죄를 범하며 하나님말씀에 불순종했다.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이 의롭다함을 받는것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에 기인한다(롬 3:24).
 
# 묵상
모세의 축복기도 서론과 본론 ( 33장 )
임종을 앞둔 모세의 축복기도의 서론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때의 상황을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축복기도의 본론은,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가나안땅에서 누리게될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 대해 예언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내용입니다.
열두지파에 대한 축복의 상징 ( 33장 )
모세가 죽기전에 베푼 열두지파에 대한 축복을 살펴보면, 각지파는 각각의 성격대로, 또 그달란트대로 받았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복도 받은 각양의 은사대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요한계시록에 언급된대로(계22:1-5) 성도들이 누릴 복의 예표입니다. 즉, 모세의 축복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나라에서 영원히 누리게될 복을 상징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축복기도가 생략된 시므온지파 ( 33장 )
시므온지파에 대한 축복기도가 생략된 까닭은 시므온지파의 분깃이 유다지파의 분깃에 포함되기 때문이거나 야곱의 저주(49:6, 7) 이후에도 그들이 계속해서 죄를 범하여(민25:14) 의도적으로 삭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다가 받을 축복 ( 33:7 )
유다지파에게는 이스라엘의 지휘권을 쥐게되리라는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유다지파가 이런 복을 받은 까닭은 유다의 공로가 아니라 바로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유다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레위지파의 축복 ( 33:8-11 )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킬 것이며 재산이 풍족하고 그들에게 대적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꺾으실 것입니다. 한편 본문 10절에서는 제사장직분을 맡은 레위지파의 두가지 기본적인 직무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즉 첫째,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과 법도를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둘째,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단의 제사법대로 제사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대언자요 해설자로서, 백성들로하여금 올바른 말씀을 지키고 공의로운 판단을 내릴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베냐민지파의 축복 ( 33:12 )
베냐민지파에게는,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로서 여호와께서 곁에 두시고 늘 보호하시리라는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베냐민은 요셉 유고후 야곱이 애지중지한 막내아들입니다. 물론 인간적인 측면에서 편애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영적인 의미에서 볼때, 베냐민에 대한 야곱의 사랑은 신자에 대한 그리스도의 애틋한 사랑을 예표합니다.
축복의 결론 ( 33:26-29 )
하나님께서 늘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될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계심)의 복을 예표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하나님의 복을 평가하거나 축소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하나님 ( 33:29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방패요, 영광의 칼이 되어 대적을 이스라엘에게 복종시키고 그들의 높은곳을 정복케 하실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써 참된행복과 참된기쁨을 얻을수 있습니다.

# 해설
12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 ( 33 )
신33장은 전장의 모세의 노래에 이어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준 유언적 축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임종전에 하는 축복은 유언임과 동시에 예언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었음을 고려하면 본장은 일종의 예언적 기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남다른 감회를 가지고 있었을 모세는 이축복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될 것입니다.
1. 모세의 축복-이스라엘의 근원적인 축복
1) 율법을 수여받음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하고있는 축복은 노아나 이삭, 야곱 등의 족장과 같이 곧바로 종족들에 대한 축복이 아니라 일종의 일반적이고 서론적인 축복을 하고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모세가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근본적인 축복은 다름아니라 율법입니다. 신명기는 이율법을 수여받은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뿐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축복의 서두에서 시내산에서 율법을 수여받을때의 모습을 장중한 수사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일만 성도가운데 강림하셨고 그오른손에는 불같은 율법이 있다고 노래합니다. 이사실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독특하며 배타적인 특징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만큼 축복받은 민족은 없다는 것입니다.
a.율법은 하나님뜻의 표현(롬7:7-9)
b.율법의 준수명령(대상22:12)
2) 하나님이 통치하심
또다른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축복하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5절에서 언급하는 '여수룬에 왕'은 바로 하나님을 말하는데 여수룬이란 이스라엘의 별명입니다. 이스라엘에 율법을 주시고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는 분이 바로 온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할만했습니다.
a.통치자의 자격(신1:13)
b.통치하시는 하나님(출18:13-16)
2. 이스라엘 지파들을 향한 축복
1) 르우벤, 유다, 레위, 베냐민지파
르우벤지파에게 내려진 축복은 축복이라기보다는 종족이 보존된다는 소극적인 것에 불과했습니다. 르우벤은 장자였으면서도 아버지 야곱의 침상을 더럽힌 죄로 장자권을 빼앗기고 축복도 거의 상실한 것입니다. 유다에게 임한 축복은 이스라엘의 왕권에 대한 것으로 과거 족장들의 그것과 크게 다를바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예언의 최종적 성취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은 물론입니다. 레위지파에 대해서는 8절에서 11절까지 길게 언급되어 있는데, 여기서 모세는 레위지파의 역사와 직무에 대해서 언급하며 아울러 레위지파가 재산의 풍족함과 원수의 압제를 받지않는다는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베냐민지파에 대해서는 하나님곁에 늘 함께하는 안전함의 축복을 주고 있습니다. 베냐민지파는 실제로 예루살렘성전과 가까운 곳에 거하였으며 이스라엘의 분열시에도 유다지파와 함께 남유다에 속하게 되어 이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a.르우벤 자손은 네가족으로 나뉨(민26:5-7)
b.유다지파에 관한 예언(창49:8-12)
2) 요셉, 스불론, 잇사갈, 갓지파
요셉지파에 대해서는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구분되지 않고 함께 축복이 주어지고 있는데, 이지파는 풍성한 물질을 보장받았습니다. 스불론과 잇사갈지파에 대해서는 함께 축복을 하는데 같은 어머니인 레아에게서 출생한 형제이기때문에 친분이 깊었던 지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스불론지파는 바다까지 영역을 넓혀 무역업에 나가게 되리라고 축복한 듯하며, 잇사갈지파는 장막에 거하면서 조용한 농경생활을 하게되는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두지파에게 의로운 제사를 드릴것이 라고 축복하는 것은 신앙적인 열심을 가지게 될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갓지파에 대해서는 용맹성으로 전쟁을 잘하게 되는 것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이 갓지파가 먼저 기업을 택했다고 언급하는 것은 이들이 요단강 동편에서 이미 땅분배받기를 적극적으로 원하여 땅을 할당받았던 사실을 가리킵니다(참조, 민32:2-5).
a.스불론 자손에 대한 야곱의 예언적 축복(창49:13)
b.사사 엘론이 스불론 자손에게서 배출됨(삿12:11-12)
3) 단, 납달리, 아셀지파
단지파에 대해서 모세는 용맹스러운 사자새끼에 비유하여 전쟁에서 용맹을 떨칠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용맹한 사사였던 삼손은 바로 단지파 출신이었습니다. 납달리지파는 풍요로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갈릴리호수 부근의 비옥한 토지를 분배받기도 한 납달리지파는 풍요로운 물산을 누릴수 있었습니다. 아셀지파에 대해서도 역시 풍요와 기름진 옥토의 축복이 내려졌으며 아울러서 튼튼하고 안전한 요새지역에 거주함으로써 외적의 침입에서 보호받을 것임을 축복으로 약속받았습니다. 한편 각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에는 시므온지파가 빠져있습니다. 이는 시므온지파가 야곱의 저주를 받은후(참조, 창49:5-7) 회개하기는커녕 광야생활중 모압여인들과의 음행사건중 중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참조, 민25:14). 그래서 그들이 축복에서 제외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a.단에 관한 야곱의 예언(창49:16)
b.단은 빌하에게서 난 야곱의 아들(창30:6)
3. 하나님의 은혜와 복된 이스라엘
1) 하나님의 은혜
서론에서 율법을 수여받았음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되심을 기본적인 축복으로 노래한 모세는 이제 각지파에 대한 축복을 마치고 다시금 일반적인 이스라엘의 축복으로 유언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영원하신 팔로 붙들어주시는 은혜로우신 분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다른민족들과 달리 이스라엘을 특별히 택하여 사랑해주셨던 것을 모세는 다시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팔이 이스라엘을 돌보시며 안전한 처소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a.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약4:6)
b.죄인에게도 베푸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딤전1:12-13)
2) 복된 이스라엘
하나님의 은혜를 끝도없이 받는 이스라엘은 복된 민족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이야말로 행복자라고 결론짓습니다. 모세는 결국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승리자로 만드셔서 높은곳을 밟게하실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향한 축복이야말로 오늘 우리성도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얻는 축복이기도 합니다. 아직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지 않으셔서 사단의 최종적 멸망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된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a.복받은 시기는 창세전부터 영원토록(마25:34)
b.복있는 자의 실례(시94:12)
결론
본장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복받은 민족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며 은혜를 주셨고 율법을 주시어 지킴으로서 복을 얻게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을 우리성도들도 이미 받았음을 상기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고 그구원은 이세상 어떤것과도 바꿀수 없는 귀한 것임을 감사하면서 우리의 삶이 말씀중심의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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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노래의 서두 32:1-6

1. 모세노래의 위풍당당한 서주(1,2)
(1) 모세는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진실성과 중요성에 대하여, 패역하고 부패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의 공정함에 대하여 하늘과 땅에서 호소하는 엄숙한 말로 시작하고 있다. 하늘과 땅은 죄인들에 대한 증거자들이 될것이며 또한 그들에게 준 경고에 대한 그리고 그들이 그경고를 받기를 거절한 사실에 대한 증거자들이 될것이다(욥 20:27).
(2) 모세는 그백성들에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바에 대한 엄숙한 적용과 더불어 이노래를 시작하고 있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2절). "나의 교훈은 배역하는 사람들을 휩쓸어가버리는 비가 될것이다." 갈대아역본의 해설자의 한사람은 이구절을 이처럼 해석했던 것이다. 비는 때때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다. 그래서 어떤사람에게는 대단히 신선한,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향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공포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게 준비된 사람들에겐 달고 감미로운 이슬과 같이 될것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할수 있다.
1) 이노래의 주제는 교의적인 것이다. 모세는 이미 찬양과 감사의 노래를 백성들에게 지어주었었다(출 15장). 그러나 이노래는 훈계의 성격을 띠고 있는 노래이다. 시나 찬미나 신령한 노래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뿐만 아니라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는'(골3:16)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많은 시편을 마스길 즉 교훈을 주는 노래라고 제목이 붙어있는 것이다.
2) 이가르침은 대지가 결실토록 위로부터 내리는 비와 단비로 적절하게 비유되고 있다.
3) 모세는 자기의 교훈이 이슬과 가는비처럼 내려 적시되 조용히 와서 감미롭게 살며시 스며들때 유익한것 같다.
4) 모세는 백성들이 자기의 교훈을 받아들여 마음에 간직하기를 바라고 있다.
2. 하나님의 크심과 의로우심에 대한 장엄한 선포(3,4)
(1) 모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의로우심에 대한 장엄한 선포로 노래를 시작하면서 그사실을 자기의 첫째원리로 삼고 있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백성들을 대하심에 있어서 의로우셨음을 보이기위한 것이다. 우리는 심지어 그분의 심판이 큰심연과 같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렘 12:1; 시36:6).
(2) 모세는 여기에서 자기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라'고 못박고 있다(3절). 이는 이스라엘로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거짓신으로 바꾸는 우를 결코 범하지않도록 막기위한 조치였다. 이렇게 죄를 예방하고 우리자신을 우리의 의무의 길에서 떠나지 않게 하기위해 항상 하나님께 대하여 고결하고 명예로운 생각을 유지하며 모든경우에 있어서도 그러한 생각들을 나타내도록 하는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대단히 유용한 일이 될것이다.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3절). 이제 모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면서 하나님의 영원하심이나 광대하심을 설명하거나 천상세계에서의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에 대하여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의 사역의 완전성, 통치하시는 모든손길의 지혜로우심과 공평함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위대하심을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이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에게 가장 분명하게 비쳐오기 때문이며 이러한 사실들이 그분에 대하여 계시된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속한'(29:29) 것들이기 때문이다.
1) 그는 반석이시니(4절). 하나님께서는 반석이시다. 그까닭은 하나님께서는 불변하시고 부동하시기 때문이며 또한 그를 찾아 피난처를 구하는 자들에게 난공불락의 피난처가 되시며 자기를 의지하는 모든자에게 영원한 터전이 되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2) 그 공덕이 완전하고.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이 그렇게 완전하였고, 모두 매우 선하였으며, 그분의 섭리의 사역역시 그렇게 완전하며 또는 정한시간에 완전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비밀이 끝나는 날 하나님의 사역의 완벽함은 전세계에 드러나게 될것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그 어느것도 수정할 필요가 없다(전 3:14).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고 또 그백성들을 위해서 시작하신 일을 그당시에도 완성하고 계셨다.
3) 그모든 길이 공평하며. 하나님의 모든길의 결국은 모두 올바르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방법을 택하심에 있어서 지혜로우시다. 공평이란 말은 신중함과 공의 둘다를 의미한다.
4) 그는 '진실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약속에 충실하신 분이셔서 결코 거짓이 없으시며 그분의 경고 또한 땅에 떨어지지 않으므로 우리는 진실하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의지할수 있는 것이다.
5) 그는 '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자기를 신뢰하는 자를 결코 어떠한사람도 속이신 적이 없는 분이시오, 자기의 공의에 호소해 오는 자에게는 결코 그릇행하지 않으신 분이시며 자신의 자비를 믿고 그자비에 의탁해 오는 자에게 무정하게 대하지 않으신 분이시다.
6)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할 것 이상의 징벌을 내리시는 부당한 처우를 하지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섬기며 또한 자기를 위해 고난당하는 자들 모두에게 갚아주시는 일에도 결코 실패함이 없으실 것이다.
3. 이스라엘에 대한 심한 질책(5)
본문에는 모든면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성품에 반대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심한 질책이 나타난다.
(1)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2)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자들이었다. 비록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현세의 불완전한 상태속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흠이 있게 마련이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 흠이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죄는 그러한 죄가 아니었다. 그죄는 그들이 이겨내려고 애를 쓰고 극복하려고 경성하며 간구하던 연약함이 아니라 그들이 저지르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차있는 그러한 악이었다.
(3) 그들은 '사곡한 종류'였다. 그들은 부정적인 심정에 사로잡혀 있었으므로 금해져 있는 것은 그것이 금해졌다는 사실때문에 범하려고 했다.
4. 배은망덕한 백성들에 대한 충언(6)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1)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섬기며 자기에게 붙어있으라고 그들에게 명령하셨던 의무에 대하여 상기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버지가 되셨었다.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를 만드신 창조자에 대한 우리의 의무와 우리를 건져내신 구속주에 대한 우리의 의무 그리고 우리를 흠없이 세우시려고 성화시키시는 그분께 대한 우리의 의무역시 똑같이 크고 중대한 것이 아니겠는가?
(2)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을 말살하며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하는 악을 설명한다. 첫째, 그것은 비열하기 그지없는 배은망덕이요, 둘째 극도의 미친 짓이었던 것이다.

Ⅱ. 하나님의 은혜 32:7-14
모세는 일반적인 측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그들의 큰은인으로 제시하면서 이대목에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친절하심과 돌보심에 대하여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어떤예들은 옛날의 일인데 이옛날의 일에 대한 증거로서는 기록에 호소하고 있다(7절). 옛날을 기억하라. 옛날의 역사에 대한 믿을만한 기록은 쓸모가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특별히 구약교회건 신약교회건 요람기에 대한 여가는 매우 독특한 용도가 있다. 둘째, 다른예들은 거의 최근의 일들인데 그것에 대한 증거로 모세는 아직도 살아서 그들곁에 남아있는 그들의 아비들과 장로들을 들고 있다. 자기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친절하심에 대한 본보기로서 다음 세가지 사실들이 여기에서 부각되고 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주지로서 가나안땅을 일찍이 정해놓으셨다는 사실이다. 가나안땅은 우리의 천국의 처소내지 분깃에 대한 모형이요 예표로서 하나님의 경륜속에 옛부터 정해지고 예비된 것이었다(8절).
1) 사람의 자손들가운데 땅이 나뉠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중에 두고 계셨던 것이다.
2) 우리 인간세계에 이스라엘이 생기기전에, 그리고 그것을 생각한 수도 없었던 훨씬전에 하나님께서 이백성들에게 특별한 배려를 하신 그이유를 보면 그친절하심과 인자하심이 얼마나 큰지 표현을 잊게될 지경이 되고 만다(9절).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백성이라.
(2)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이가 찬 상속자로서 성부께서 정해놓으신 때에 이유업에 들어가기에 합당하도록 하나의 민족으로 형성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점에 있어서도 가나안은 하늘나라의 유업에 대한 모형이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의 유업은 영원전부터 하나님의 신령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입안되고 계획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령한 이스라엘은 시간이 되면(그것은 시간을 요하는 일이다) 그유업을 상속하기에 적합하게 되고 합당하게 되는 것이다(골 1:12). 이백성을 형성시키고 어떤형태로 다듬고 약속의 땅에서 그들을 위해 계획된 큰일들에 대해 그들을 적합하게 만들기위해서 대단히 많은 일들이 행하여졌다.
1)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만나시고(10절). 의심할 것도 없이 이구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까지 이끄실때 통과시켰으며 그들과 더불어 몸소 많은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던 그광야를 가리키고 있다. 즉 그것은 소위 '광야교회'(행 7:38)라고 불리우고 있다. 거기에서 구약의 교회가 태어나 양육받고 훈육받았던 것이다.
① 이스라엘은 오갈데 없는 신세였다. 애굽은 그들에게 황무지와 같았으며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와도 같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곳에서 매인 종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② 이스라엘이 지니고 있는 품성도 별로 바람직한 성격이 못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부분은 거룩한 하나님의 일에 너무나 무지하여 그것에 감화를 받기엔 너무도 우둔하고 꾸물거렸으며 불평이 많고 변덕스러워서, 황무지에서 만났다고해도 좋을만한 백성들이었다.
2) 여호와께서 그를…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10절). 즉 여호와께서 그를 이리저리 인도하시고 가르치셨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그들을 만나셨을때, 곧장 그들을 가나안땅으로 데리고 가신 것이 아니라 대단히 오랫동안 이러저리 다니게 하셨으며 그렇게해서 이스라엘을 가르치셨던 것이다. 피교육자들이 배우는데는 시간이 걸려야 한다. 이렇게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과 인내, 하나님 자신에 대한 신뢰를 시험하셨으며 그들을 광야의 고난에 단련시키셨으며 그렇게함으로써 그들을 훈육하셨다. 매단계마다 그속에는 무엇인가 교훈적인 면을 담고 있었다. 우리는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광야의 훈련을 거치지 않고 가나안에 갔었더라면 얼마나 그들이 그땅에 적합치 않았을 것인지 가히 상상할수 있다.
3)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하늘과 공중의 해로운 영향과 황량한 광야의 모든위험에서 할수 있는 모든배려와 애정으로써 지키셨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의 안내자요, 수호자였다.
4) 여호와께서는 독수리가 그보금자리에서 자기 어린새끼들에게 하듯이 이스라엘에게 행하셨다(11,12절). 출애굽기 19:4절에는 '내가 너희를 독수리 날개로 업었도다'라는 이와 비슷한 구절이 나타나는데 여기 신명기의 내용은 출애굽기의 이구절을 상술한 것이라 볼수 있다. 독수리는 어린새끼들을 보호하며 양식을 예비하며 교육하고 날기를 가르침으로 자기새끼들에 대하여 강한 사랑을 가지고있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이목적을 위하여 어미 독수리는 어린새끼들이 누워 졸고있는 둥지에서 새끼들을 깨우고, 그위에서 날갯짓을 하여 어떻게 그새끼들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날개를 사용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그새끼들이 자기들의 날개를 사용하여 새끼들로하여금 나는 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자녀들로하여금 일을 하도록 훈련시킴으로써, 게으름이나 안일함에 빠지지않도록 하고자하는 부모들에게 산 귀감이 아닐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와같이 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상태에 애착을 가져 그상태를 떠나기를 싫어할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사용하시사 자유를 열망하도록 그들을 자극하셨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광야로 이끄셨으며 마침내 그광야를 다 통과하게 하셨다.
(3) 이스라엘로하여금 좋은땅에 정착하도록 하셨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정착시키는 일은 두지파와 한지파의 절반을 행복하게 정착시킴으로 이미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나머지 지파들에 대해서도 온갖 좋은것으로 풍성하게, 속히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 기대되고 있는 터였다.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하시며(13절). 에인즈워드는 가나안에서의 온갖 좋은것의 풍성함은 그리스도의 왕국의 풍성함을 상징하며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천국적인 위로의 풍성함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왕국의 자녀를 위하여 버터와 우유 즉 말씀의 신선한 젖을 주시며, 강건한 자에게는 심령으로 즐겁게하는 포도주와 함께 단단한 음식도 주시는 것이다.

Ⅲ. 이스라엘의 배신 32:15-18
본문에는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배교가 묘사되고 있다. 그들의 배신은 즉시 일어났으며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배신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대목에는 이스라엘의 사악함에 대하여 두가지 큰예가 서술되고 있다.
(1) 안일무사, 정욕, 자만과 교만, 그리고 풍요와 번영에 대한 남용(15절) : 저들은 '발로 찼다.' 교만과 무례가 성장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발뒤축을 들었다.' 이스라엘은 '길들이지 않은 황소'처럼 몰이용 막대기를 차버렸으며, 화를 내며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섭리의 면전에서 도망가버렸다.
(2) 우상숭배는 이스라엘의 배교를 보여주는 큰본보기이다. 앞에 기술한 사실은 저들로하여금 자기들의 종교에 염증을 느끼게하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변덕을 좋아하게 만들어 필경은 우상숭배로 그들을 이끄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나서 어떤신들을 택하여 제사를 드렸는가(16,17절). 이스라엘은 마땅히 참하나님께 드렸어야할 섬김을 다른신들에게 드렸다.
① 그들은 '다른신'을 섬겼다. 이 낯선 다른신들은 이스라엘에게 어떤친절을 베풀었다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② '근래에 일어난 새신'을 섬겼다. 신종의 신이라니 이보다 더 괴상망측한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겠는가?
③ 그러한 신들은 도무지 신이라고 할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명칭은 인간의 공상의 산물이며 그형상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작품일 따름이었다.
④ 그것들은 마귀였다. 신들이기는커녕 그것들은 글자그대로 마귀 곧 파괴자들이요, 그렇게 불행을 목표로 삼고있는 못된 것들이었다.
2) 이러한 것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대하여 얼마나 큰모욕이었는가.
① 그런행위가 여호와를 망각한 행위라고 한것은 올바른 해석이다.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18절).
② 그런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Ⅳ. 하나님의 진노 32:19-25
이노래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앞장에 나오는 예언의 방법을 따르고 있다.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기뻐하셨지만 이제 그들을 배격하실 것이다. 죄악의 길에 오염되었으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께서 더욱 불쾌하게 여기신다(시 106:39,40).
(2)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그백성들과 함께하신다는 표시와 그백성들에 대한 호의의 표시를 나타내셨지만 이제는 그것을 거두시고,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하실 것이다(20절). 자기의 얼굴을 가리운다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몹시 노여워하심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또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늦추어지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고한 자들이었으며 신앙심이 없고 신뢰할수 없는 자들이었다.
(3) 하나님께서는 모든일을 그들을 편케해주려고 하나님께서 하셨으나 이제는 죄에 대하여 징벌하실 것이다(21절).
1)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무지 신이라고 할수도 없고 비천한 잡신들로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다.
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경멸해도 좋을 비천한 적들을 일으켜 그들에게 고통을 줄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위에 올라서서 다스리는 민족들이 비천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욱 야만적일 것이다(말위에 의젓하게 올라탄 거지보다 더 오만불손한 자는 없다).
(4)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좋은땅을 주시고 온갖 좋은것들을 입히셨으나 이제는 모든 위로를 박탈해버리고 멸망으로 몰아넣으실 것이다. 여기에 경고로 사용된 구체적인 심판은 기근, 역병, 짐승들의 독('야수의 이빨과 독사의 독', 24절), 전쟁과 그전쟁으로 인한 치명적인 결과(25절) 등등이다.

Ⅴ.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 32:26-38
받아 마땅한 진노와 복수에 대한 끔찍한 많은 경고뒤에 우리는 여기에서 도저히 받을자격이 없는 자비에 대한 놀라운 통보를 대하게 된다. 이러한 자비는 하나님께서 결코 심판을 즐거워하시지 않음을 나타낸다. 이자비로써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죄인들이 돌이켜 생명을 얻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1) 하나님은 자신의 위신을 위해서 이스라엘이 '인간에게 그기억이 끊어지게' 하지않으실 것이다(26-28절). 남은자들을 보존하기위해서 그리고 그무가치한 백성들을 전적인 멸망에서 건지기위해서 자비가 나타난다. 대적을 격동할까 염려라(27절). 이말은 사람의 표현형식을 빌어다 쓴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어떠한 사람의 분노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그렇지만 그러한 표현을 빌어 마치사람의 분노를 염려하신듯이 표현하신 것이다. 여호수아(수7:9)나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걱정하던 소수의 선한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다른 어느 예보다 이런경우에서 그원수의 분노를 염려했었다. 저희가 그점을 두려워하였기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것을 두려워하였던 것처럼 표현하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사실을 모세로하여금 자신에게 간구하도록 하실 필요가 없었지만 스스로 그러한 점을 상기하셨다. "애굽인들이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우리가 아무리 수치를 당해 마땅할지언정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의 보좌가 수치를 입지' 않게하실 것이다.
(2) 여호와께서는 저들의 복지를 염려하사 이스라엘이 회개할 것을 진정으로 열망하고 계시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스스로 자멸해가는 것을 즐겨보지 않으시며 죄인들이 스스로 일어나기를 마음속 깊이 원하신다. 그리고 혹시 그들이 그렇게하고자 한다면 즉시 그들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죄인들이 자기들의 훗날의 결국이나 미래의 상태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그들중 많은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것이다.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예언하셨다고 볼수 있으나 이말씀은 보다 일반적으로 적용될수도 있는 말씀이다.
(3)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백성들을 완전히 물리치지 않으신 이유로서 이전에 그들을 위해 행하셨던 큰기사를 회상시키신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있는 것처럼 여겨진다(30,31절). "어찌하여 가나안사람 천명이 여태도 그래왔듯이 이스라엘사람 하나를 힘겨워하였겠느냐? 그러나 다른신들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이제 가나안을 위해 싸우셨도다!" 그리고 이내용은 이사야의 말씀과 잘부합하고 있다(사 63:10, 11).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탓에 도리어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이 옛적 모세의 날을 추억하여 가로되 백성을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즉시 진압해 버리실수 있으시나(시 81:14) 이스라엘의 죄악은 자신들 적의 수중에 넘겨주었다.
(4) 여호와께서 마침내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압제해온 자들을 파멸시키기로 결정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정한 시간에 교회의 원수들을 거꾸러뜨리실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사악함에 대하여 불쾌하게 여기사 그사악함에 주목하시고 그셈을 반드시 치루신다(34,35절). 어떤이들은 이구절을 이스라엘의 죄, 특히 선지자들을 핍박한 죄로 이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을 벌하기위해 쌓여져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악한 자들의 악독이 모두 하나님곁에 차곡차곡 쌓여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2)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측은히 여기사 그일을 행하실 것이다. 비록 그들이 여호와를 크게 격동시켰지만 여전히 그분과 관계를 갖고있으며 그들의 비참함이 여호와의 자비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36절).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까닭에 이스라엘을 팔아버리셨었으나, 사사들로하여금 이스라엘을 취한 자들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던 구원의 사실과(참조. 삿 2:11-1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얼마나 마음에 근심하셨는가'(삿 10:16) 그리고 이스라엘이 극도의 곤경에 빠졌을때 이토록 슬퍼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수 없을때 그들을 도우셨던 것이다.
3) 여호와께서 하찮은 우상신들을 격하시키고 견책하시기 위해서라도 그일을 행하실 것이다 (37,38절). 그들의 신들이…어디 있느냐. 이말씀은 두가지 방향으로 이해될수 있다.
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이스라엘이 섬겼던 우상들이 결코 해줄수 없는 것을 해주시리라는 사실로 이해될수 있다.
②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섬겼던 우상들로서는 도저히 엄두도 낼수 없었던 일 즉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쳐부수는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될수 있다. 산헤립과 느부갓네살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구하시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뻔뻔스럽게 도전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대적들을 혼내주시고 그들을 건져 내셨다(사 37:10;단 3:15). 오히려 그신들을 경배하는 자들을 도우려고 일어나 방패가 되고자 하는 벨과 느보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도전을 하셨으며(사 47:12,13) 그신들은 자기들을 경배하는 자들을 돕기는 고사하고 자기자신들도 주체하지 못하였으니 저들은 형상에 불과하였으며 그것이 그들이 갖고있는 전부였다. 그것들은 결국 '자기도 잡혀가고 말았다'(사 46:1,2).

Ⅵ. 보응하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 32:39-43
이노래는 다음 세가지 사실을 말함으로 끝을 맺고있다.
(1) 하나님께 대한 영광(39절).
1) 위대하신 하나님은 자존자로서의 영광을 요구하신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줄 알라. 이처럼 모세는 하나님을 처음에 이 이름으로 알게 되었었다(출 3:14).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나는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있어왔던 자요, 앞으로도 있을 것이며, 있으리라 약속했던 자요, 있으리라 경고했던 자이다. 누구나 내가 내말에 충실함을 알게될 것이다." 웃질리드(Uzzielides)의 탈굼본은 이구절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여 놓았다. "여호와의 말씀이 자기백성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자신을 계시하실때, 그가 모든백성들에게 이르시기를 보라 나는 현재의 나요, 과거의 나요, 미래의 나이다." 우리는 이 사실이 사도요한에게 말씀하셨던 그분에게 얼마나 잘 적용되었는지 잘알고 있다. '나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자올 자라'(계 1:18). '나 곧 내가 그'라는 이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백성들에게 바벨론에서 건져내실 것이라는 소망을 불어넣어 주시기 위하여 격려하고 있는곳에서 자주 할수 있다(사 41:4;43:11,13,25;46:4).
2) 위대하신 하나님은 유일한 최고의 영광을 요구하신다. 나와 함께하는 신이 없도다. "아무도 나를 거들수 없으며 나와 견줄수도 없다"(사 43:10,11).
3) 절대주권, 보편적인 대권의 영광을 요구하신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4) 항거할수 없는 권능의 영광을 요구하신다. 내손에서 능히 건질자 없도다.
(2) 원수들에게는 공포(40-42절) : 진실로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공포이며 마찬가지로 다른신들을 섬기는 자들이나 신성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고의적으로 불복종하여 저항하는 자들이나 여호와의 신실한 종들을 핍박하고 그들에게 악을 행하는 모든자들에게 실로 두려움이 될것이다. 그러한 자들이 제때에 회개하도록 경성시키시려고 하신다.
1) 거룩한 선고가 맹세의 형태로 표시되고 있다(40절). 내가 하늘을 향하여. "즉 그의 거룩함의 본원지인 하늘을 향하여." 내손을 들고 말하노라. 이러한 행동은 옛날에는 맹세할때 사용하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표시였다(창 24:22). 여호와께서는 죄인들이 계속하여 죄중에 빠져있다면 저희의 죄악이 바로 저희의 멸망이 될것이라고 서약하셨으며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것이다.
2) 형을 집행할 준비를 하신다. 나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41절). 시편 7:12절을 보라.
3) 그 형의 집행이 매우 몸서리쳐질 것이다. 나의 화살로 피에 취하게 하고 나의 칼로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42절).
(3)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위로(43절) :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43절). 모세는 이노래를 끝내면서 기쁨의 노래말로 끝내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중에 남은자들이 있을 것이요, 그들이 결국은 평강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침내 기뻐하게 될것이요, 영원히 기뻐하게 될것이다. 기쁨의 사실로서 여기에서 세가지 점이 언급되고 있다.
1) 교회의 영역이 확장될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구절의 첫마디를 이방인의 회심에 적용시키고 있다(롬 15:10). '열방들아(너희 이방인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2) 교회의 대적들에 대한 교회의 탄원에 대하여 복수해주신다.
3) 하나님께서 자기의 교회와 교회에 속한 모든자들에게 자비를 쌓아놓으셨다. 하나님은 '자기땅과 자기백성들'에게 즉 어디에서나 그를 두려워하고 섬기는 모든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Ⅶ. 가나안 입성이 금지된 모세 32:44-52
(1) 이노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엄숙히 전달되었다(44,45절). 모세는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이 들을수 있도록 이노래를 불렀으며 여호수아는 동시에 다른회중에게 그목소리가 미치는한 많은이들에게 이노래를 전달하였다. 비록 그들사이에는 지휘권의 변동이 있었을지라도 하나님의 계명에는 조금도 변동이 없었다. 모세와 마찬가지로 여호수아도 만약 저들이 하나님을 저버린다면 그들에 대한 반대편 증인이 될것이었다.
(2) 이노래와 함께 모세가 그들에게 말해주었던 다른 모든 유익한 말씀들을 마음속에 간직하라는 간절한 유시가 내려진다.
1)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권고한 의무는 다음과 같다.
① 이말씀들에 주의깊게 경청하라는 것이다. "너희는 율법을, 약속과 경고를, 축복과 저주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노래를 마음에 새겨두라."
② 이말씀들을 그들후에 일어날 후손들에게 신실하게 전달하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착한사람은 자기 자녀도 그와같이 선하기를 바라는 법이다.
2)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하여금 경건을 그들의 주요업무로 삼고 인내하도록 설득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① 자신이 그들에게 권고한 사실들은 그자체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다.(47절).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그것은 하찮은 일이 아니요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일이었다.
② 그것이 그들에게 대한 유익이 있다는 점이다. 이 일로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들어가려는 생명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다짐해주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예표적인 약속이다(마 19:17).
(3) 모세는 여기에서 자기의 죽음에 대하여 몇가지 지시를 하달받는다. 하나님을 위한 증인으로 명망이 높았던 이사람이 자기의 증거를 다 끝마친 지금 그는 느보산에 올라가 죽어야 했다. 이명령들은 바로 당일에 모세에게 하달되었다(48절). 자기의 사역을 다 끝마친 지금 그가 하루라도 더 살것을 바랄 필요가 있겠는가? 물론 이전에 모세는 요단강을 건너갔으면 하고 기도했었으나 하나님께서 금하시고, 그문제에 대하여 더이상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므로 현재는 전적으로 만족한 상태였다.
1)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이전에 그가 지었던 죄에 대하여 그에게 상기시켜주셨는데 이 죄까닭에 그는 가나안에서 제외되었던 것이다(51절).
2)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또한 자기형 아론의 죽음에(50절) 대하여 상기시켜주시는데 이는 모세로하여금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섭섭하지 않게 느끼고 두렵게 생각지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3) 하나님께서는 모세로하여금 가나안땅을 둘러보고나서 죽도록 높은산에 올려 보내신다(49,50절). 자기죄에 대한 회상은 죽음을 무서워하게 만들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을 보여주신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벗겨주었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화목하셨다는 증거요, 비록 그가 지상의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막혔지만, 이세상에서는 다만 눈으로 볼수밖에 없는, 그리고 믿음의 눈으로만 볼수 있는 보다나은 땅에 들어갈 자격을 자기에게서 빼앗지 않으셨다는 분명한 표시였기 때문이다.

# 핵심
32:1-47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스라엘의 패역과 하나님의 심판을 주제로 삼아 이스라엘의 미래역사를 예언하는 일명 ‘모세의 노래’이다.
반석이신 여호와(32:4)
이스라엘 백성이 40년동안 방랑했던 광야에는 바위들이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반석이나 바위들에 익숙했다. 또한 암석이 많은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하여 건설된 요새 성읍들은 대적의 공격을 쉽게 차단할수 있었다. 이같은 배경하에서 바위는 신실하고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성도를 든든히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배려를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바위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물을 제공했다(출 17:6). 바울은 이같은 이미지를 반석이신 그리스도께 적용했다(고전 10:4).

# 묵상
모세의 마지막노래 ( 32장 )
모세가 32장의 노래를 지은 까닭은, 하나님의 은혜와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으로인한 멸망과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인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함으로써 후손들에게 범죄의 결과와 하나님의 복이 어떤것인지를 가르쳐서 이스라엘의 완전한 타락을 미연에 방지하자는데 그취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묘사 ( 32:4 )
모세는 자신의 마지막 노래에서 하나님을, 반석이시요, 공덕이 완전하고 모든길이 공평하고 진실무망하며 공의롭고 정직하신 분으로 묘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이스라엘의 배반 ( 32:10-18 )
하나님께서는 황무지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호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하여금 밭의 소산을 먹고 반석에서 꿀과 기름을 빨게 하시고, 기름과 젖과 밀과 포도즙을 풍성히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은총을 받은 이스라엘은 부요하고 윤택해지자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하지 않고 마귀에게 제사하면서 하나님을 잊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을 멸시하며 타락의 길을 가고있지는 않은지 오늘 우리자신을 한번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을 벌하시는 하나님 ( 32:15-27 )
이렇게 이스라엘에 징벌을 내리시는 까닭은, 이스라엘이 패역한 짓을 계속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버리기위해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가운데로 돌아오도록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징계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깨달아 알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분노의 결과 ( 32:22-26 )
분노의 불이 일어나 땅의 소산과 산들의 터도 삼키게 됩니다. 그리고 재앙을 이스라엘위에 쌓고 하나님의 살을 다하여 그들을 쏠것이며, 굶주림에 시달리고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에 쏘이게 될것입니다. 또한 밖에서는 칼에 맞아죽고 안에서는 놀라서 망하게 됩니다. 이와같은 재앙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임할 것입니다.
대적들에게 보수하시는 하나님 ( 32:35 )
하나님께서는 대적들이 실족할때 그들에게 직접 보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벌하기위해 대적들을 이용하시기는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느보산의 모세 ( 32:49-52 )
마지막 교훈을 끝낸 모세는 느보산에 올라가서 가나안땅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와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된 연유를 다시 상기시키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움을 입었고, 또 그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나안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결정적인 한번의 실수로 가나안땅에 들어갈수 없게된 것입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아바림산은 사해 북동편, 모압평지에 위치한 산맥으로 사해와 요단강을 동쪽으로부터 내려다볼수 있는 장소입니다. 또한 느보산은 아바림산맥의 최고봉으로서 팔레스틴 전지역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가장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 해설
모세의 유언 ( 32 )
본장에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어부른 노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긴노래는 그내용에 있어서는 비교적 단순하게 이스라엘의 패역함과 하나님의 심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의 앞날에 대한 암울한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노래는 이스라엘이 망하게 될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개시켜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므로 희망찬 내용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1. 모세의 노래
1) 은혜로우신 하나님과 패역한 이스라엘
지난 광야 40년의 세월을 돌아볼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하여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한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한 원망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질과도 같이 이해될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늘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해볼때 이스라엘은 망할수밖에 없는 백성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버지가 되시며 그들을 지으셨다는 말씀은 왜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있으며 유지될수 있었던가를 잘 설명해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 대해 한순간도 관심을 돌려본적이 없으십니다.
a.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아낌없이 주시는 은혜(시84:11)
b.은혜의 풍성함(딤전1:14)
2) 이스라엘의 과거를 기억하라
이스라엘의 역사는 거듭되는 이스라엘의 배반과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끊임없는 은혜로 점철된 역사였습니다. 사랑과 긍휼이 한순간도 줄어든적이 없었던 역사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러한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진정 자신들의 연약함을 회개하며 잘못을 통해 자복하지 않을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는 태도는 성도들로하여금 힘을 얻게도 합니다. 곧 자신의 생애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기억해보면서 힘을 얻을수 있는 것입니다.
a.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기억함(대상16:13)
b.하나님이 연단시키신 일을 기억함(신8:2)
c.기억의 방법(신11:18)
3) 우상숭배로 은혜를 되갚는 악한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끊임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셨건만 이스라엘은 배은망덕하게도 하나님께 패역하여 우상을 숭배하게 될것을 모세는 노래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의 역사를 보아도 시내산 밑에서부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던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특징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기본적인 심성을 말해줍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일반적인 은총도 깨닫지 못하며 또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인 말씀도 깨닫지 못하고서 자신만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오늘날 형상을 갖춘 이방신상만이 우상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돈, 섹스, 권력, 과학기술 등이 모두 우상이 될수 있습니다.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실때 하나님께서 느끼시는 배신감은 점점더 깊어지실 것입니다.
a.우상숭배와 원인은 인간의 부패한 마음(롬1:21-23)
b.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시에 우상을 가지고 나옴(수24:14)
4)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우상숭배와 배교에 대해 하나님은 결코 방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격노하시며 질투를 일으키셔서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오래참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마침내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을때는 엄중한 형벌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심판을 견딜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은 이세상 어느곳, 심지어 지옥 깊은곳까지라도 사를 것이라고 모세는 노래합니다. 또한 진노의 화살을 모두다 쏘아 죄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심판에는 백발노인부터 젖먹이까지 예외가 없을것을 보면 그심판의 심각성을 상상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아니하려면 하나님께서 경고하시기전에, 최소한 경고가 정점에 이르기전에 빨리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a.공의로 심판하심(창18:25)
b.그리스도를 공하여 심판하심(요5:22,30)
c.견디기가 어려운 심판날(마10:15)
5)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회복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에 대해 심판을 노래하던 모세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 반드시 회복의 은혜가 있을것을 노래합니다. 그방법에 대해서 모세의 노래는 이런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패역함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이방나라들을 사용하는 것인데, 결국 하나님은 그이방의 열강들에게도 죄를 물어 심판하실 것이므로 이스라엘은 마침내 해방되어 회복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예언은 후에 여러차례 이스라엘의 역사에 적용되었습니다. 사사기에도 여러차례 나타나면 바벨론 포로기가 결정적인 증거가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회복을 약속해주시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은 감사의 찬송을 돌려야 했습니다. 결국 택한 백성들에게 주시는 재앙은 그들을 파멸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돌이키게 하여 복주시려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a.용기를 얻고 위로받음(사57:18-19)
b.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음으로 회복하심(슥10:6)
2. 모세의 최후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
1) 모세의 권면
모세와 여호수아는 이 모세의 노래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어주고 가르쳐서 명심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이노래를 가르쳐 경계로 삼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래의 내용에 대해서 이상히 여길것을 염두에 두고 이노래의 내용은 이스라엘에게 허망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되는것, 즉 심판후에 회복시키려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a.권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살전2:3-4)
b.연보를 인색한 마음으로 하지말 것을 권면함(고후9:5-7).
2) 모세의 죽음을 선언하시는 하나님
이미 예고한대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을것임을 하나님은 다시금 선언하십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느보산에 올라 가나안을 바라보고는 조상에게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일을 충실히 감당할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므리바 물가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 행동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들 역시 매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가 돌아보아야할 것입니다.
a.그리스도만이 죽음의 공포로부터 구원하심(히2:15)
b.육신의 죽음은 흙으로 돌아감(창3:19)
c.성도의 죽음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롬14:8)
결론
본장 모세의 노래는 일관되게 이스라엘의 패역함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후의 심판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의 끝은 멸망이 아니라 회복과 생명임도 분명히 합니다. 우리성도들의 삶 역시 이 모세의 노래에서 큰교훈을 얻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는 삶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또한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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