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시드기야가 사로잡힘 25:1-7
시드기야는 바벨론왕을 반역하고 그의 멍에에서 벗어나기위해 애를 썼다(24:20).
(1) 바벨론왕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1절). 바벨론왕은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를 2년간이나 계속했으며, 애굽왕의 위협때문에(렘 37:11) 잠시 물러갔지만, 애굽왕이 생각만큼 강력하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곧 다시 돌아왔다.
(2) 예루살렘의 포위기간동안 기근이 만연하였다(3절).
(3) 결국 성이 강력한 공격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다. 갈대아사람이 그성읍을 에워쌌으므로 성벽에 구멍을 뚫은지라(4절). 포위한 군사들이 성벽에 구멍을 내고, 그리로 밀려들었다.
(4) 시드기야왕과 왕의 가족과 귀족들이 밤에 비밀통로를 통하여 도주하였다(4절). 시드기야왕이 도주했다는 정보가 갈대아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갈대아인들은 곧 시드기야왕을 사로잡았다(5절).
1) 시드기야왕이 바벨론왕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군사재판에 의해, 신의를 서약한 사람에게 반역했다는 죄로 재판을 받았다.
2)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저의 목전에서 죽이고(7절).
3) 시드기야의 두눈을 빼어 그에게서 태양의 광채를 빼앗아버렸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잡혀갈 것을 예언하였었으며(렘 32:5;34:3), 에스겔은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보지 못하리라고 예언하였었다(겔 12:13). 이와같이 시드기야는 바벨론으로 잡혀갔지만 눈이 뽑혔기때문에 바벨론을 보지 못하였다. 이와같이 그의 생명이 끝나기전에 그의 시대가 끝났다.
4)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갔더라(7절). 그들은 시드기야에게 더큰 수치를 주기위해서 그를 결박한채 끌고갔던 것이다.

Ⅱ.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 25:8-21
약 한달후(8절과 3절을 비교해보라)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의 파괴를 마무리지으라는 느브갓네살의 명령을 가지고 파견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이전까지는 오래 인내하셨지만, 다시 유다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시려고 이기간을 주셨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1) 예루살렘과 성전이 불탔다(9절), 다윗이 준비하였고, 솔로몬이 이와같이 막대한 경비를 들여서 건축한 그집,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라고 하신 그집(왕상 9:3)이 재로 변할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성전을 불타게 하심으로써 참된 경건의 생명과 능력이 무시될때는 예배의 외적인 화려함에는 별관심이 없으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하셨던 것이다. 백성들은 죄가운데 있는 그들을 마치 성전이 보호해줄 것처럼 성전을 믿었다(렘 7:4). 그리고 첫번째 성전이 갈대아사람들에게 불탄것과 동일한 달, 동일한 날에, 제2성전이 로마사람들에게 불탔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요세푸스는 이날이 8월 10일이었다고 말한다.
(2) 승리한 갈대아군대는 그렇게 오랫동안 예루살렘성밖에서 있었던 것에 대해 복수하려는 것처럼, 예루살렘성벽을 철저히 헐어버렸다(10절). 그리고 난후 이성벽은 느헤미야때까지 보수되지 못하였다.
(3) 백성중 남은자들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아갔다(11절). 백성중에 유다땅의 가난한 사람들은 들을 경작하고 갈대아사람들을 위해 포도원을 가꾸도록 뒤에 남겨두었다. 어떤때는 가난이 보호책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가진것이 없는 사람들은 잃을것도 없기 때문이다.
(4) 금과 은기물들은 대부분 지난번에 가져갔고, 이번에는 놋기물들과 다른 성전부속물들을 바벨론으로 옮겨갔다. 하나님의 집의 능력과 안정을 상징하던 두놋기둥 '야긴'과 '보아스'를 완전히 조각으로 부수어 그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13절).
(5) 귀족중에 몇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였다. 이것으로 재난이 마무리되었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그땅을 차지한후 약860년만에 이러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와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21절). 죄는 이스라엘 조상들을 40년간 광야에 잡아두었었고 그죄가 이제는 그후손들을 그땅에서 제거시켜 버렸다.

Ⅲ. 나머지백성의 무산 25:22-30
(1) 남아있던 백성들도 제각기 분산되었다. 예루살렘성읍은 황폐된채 버려져있었다. 유다땅에는 소수의 백성들이 있었는데(22절), 이들은 맹렬한 공격에도 살아남았고, '자기들의 생명을 그들에게 먹이로 준' 사람들이다. 바벨론왕은 그들가운데 한사람인 그달리야를 그땅의 보호자와 관할자로 임명하였다. 그는 아주 선한사람이며, 좋지않은 상황가운데에서도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이었다(22절). 그의 아버지 아히감은, 모든방백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할때에 그를 지지하고 보호한 사람이었다(렘 26:24). 이 그달리야가 예레미야의 조언을 듣고 갈대아사람들에게 건너가서 스스로 잘 행동하였음으로 바벨론왕이 그에게 행정을 맡겼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예루살렘이 아닌 베냐민땅 미스바에 거하였다. 이곳은 사무엘시대에 유명하던 곳이다. 그리고 시드기야에게서 도망친자들이(23절) 미스바로 와서 그의 보호를 받게되었다. 그달리야는 비록 주권적인 왕의 권위와 권력을 가지지는 못하였지만 유다의 대부분의 왕들보다 유다백성들에게는 더큰 복이 되었다. 그러나 이 희망에 찬 정착생활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왕족인 이스마엘이 그달리야가 지도자로 우대된 것과 그의 보호아래 백성들이 행복하게 정착하는 것을 보고 시기하여 그달리야와 그달리야의 지지자이면 유대인이든지 갈대아인이든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을 야비하게 살해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달리야를 살해한 사건으로 갈대아사람들이 아주 불쾌히 여겼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남아있는 백성들이 겸손하게 나가서, 이것이 단지 이스마엘 일파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밝히게 되면, 무죄한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처벌도 가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예레미야의 조언에 따르지 아니하고 모두 애굽으로 내려갔다. 이들은 아마도 거기서 어느정도 애굽인들과 혼합되었을 것이며, 더이상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할수 없게 되었다. 이와같이 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과 불순종으로인하여 완전한 종말을 가져왔던 것이다. 이 마지막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의 장의 마지막 구절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길로 너를 애굽으로 끌어가실 것이라'(신 28:68). 이사건에 대하여 예레미야 선지자가 더자세하게 말하고 있다(렘 40∼45장).
(2) 포로된 왕이 지위가 회복되었다. 스스로 항복한 여호야긴 혹은 여고냐(24:12)에 대한 기록이 나와있다. 느부갓네살이 죽고 그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왕이 되었을때, 그는 즉시 여호야긴을 옥에서 석방시켰다(그는 37세에 옥에 갇혔으며, 당시는 55세였다). 그리고 그에게 '선히 말하고'(28절), 죄수복대신에 왕복을 주고, 왕의 궁전에서 살게하였고, 그와 그의 가족을 위하여 그의 신분에 맞게 연금을 허락하였으며, 종신토록 날마다 정수대로 쓸것을 공급하였다. 정말 오랫동안 수치와 옥에 갇혀있은후 명예와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주 캄캄하고 지리한 밤이 지난후 아침이 돌아오는 것과 같다. 우리가 오랫동안 악한일만 보고 살아왔기때문에 다시는 선한일을 보지 못하리라고 말하지 말자. 가장 비참한 사람도 하나님의 섭리가 그들의 일에 어떤 복된 몫을 주실지 모르기 때문이다(시 90:15). 고난당하던 성도들의 죽음은 그들에게 이와같은 변화이다. 죽음은 성도들을 감옥에서 해방시키며, 육신의 죄수복을 벗게할 것이다. 죽음은 성도들을 왕중 왕의 영광스러운 자유로 이끌어줄 것이다. 에윌므로닥은 자신의 아버지가 포로들의 멍에를 너무 무겁게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사람의 온유함에 따라, 왕의 명예에 따라, 멍에를 가볍게 해주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이 미쳤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을때, 그 기간동안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물어 아들 에윌므로닥을 감옥으로 보낸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때 옥중에서 여호야긴과 친분을 맺었고, 그결과 그가 권력에 오르자마자 고통당하는 자인 여호야긴에게 함께 고통당했던 자로서 이 친절을 베풀어주었다는 것이다. 어떤사람들은 에윌므로닥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로부터 참종교의 원리를 배웠다고 주장한다. 이제 70년가운데 36년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와같이 대우가 나아진 왕을 보는것이 포로된 백성에게는 적당한 시기에, 정해놓으신 시기에 그들자신들의 해방을 예고하는 위로를 주는 징조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황한 일을 당할때, 우리도 좌절하지 말자.

# 핵심
25:1-21
남유다의 멸망에 관한 기록이다. 남유다는 르호보암이후 시드기야에 이르기까지 344년간의 통치시대를 끝으로 B.C. 586년에 역사속으로 사라져갔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주는 교훈(25:1-21)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권유했다(렘 38:14-28). 그것은 바벨론의 침략이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서 피할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드기야는 그말을 따르지않고 완강하게 버티고자 했다. 결국 예루살렘은 처절하게 파괴되었다. 하나님의 징계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않았던 탓이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때 고집을 부리는 행위는 더큰 심판과 불행을 부른다.

# 묵상
눈을 빼는 행동의 의미 ( 25:7 )
그사람의 시력을 잃게함은, 모든능력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소경에게 시력을 회복시켜주는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하여 이땅에 오셨습니다.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의 눈을 뜬 이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안에서 능력을 받고 살아갑니다.
멸망한 유다의 상태 ( 25:8-12 )
여호와의 전과 왕궁이 불살라졌고, 예루살렘성벽이 헐렸으며, 백성의 힘있는 자는 포로로 끌려갔고, 나머지 약한사람만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이제 사라졌음을 의미하며 예루살렘성벽이 무너진 것은 그들을 보호할자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 성전파괴 ( 25:9 )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교만히 자행자지하는 인생들과 더이상 교제하기를 원치않으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처소인 성전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곳에서 진행되는 각종제사와 예배도 헛된 일임을 일깨워줍니다(말1:10). 성전으로 대표되는 구약율법의 한계를 일깨우며, 동시에 참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를 대망하도록 만들어 줍니다(요1:14). 이런형상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지존하신 모습을 분명하고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빈천한 국민 ( 25:12 )
이는 ‘아무것도 가지지못한 가난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약속의 땅에 남게된 사람은 귀한사람, 부한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갖지못한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에서 약한것들을 택하사 강한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세상의 천한것들과 없는것들을 택하사 있는것을 폐하십니다(고전1:27, 28). 그러므로 성도들은 약하다고 생각될때 가장 강하며, 없다고 생각할때 풍부함을 믿어야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산법칙입니다.
바벨론 감옥에서 석방된 여호야긴 ( 25:27-30 )
여호야긴의 석방은 포로된지 70년후에 고국으로 되돌아가리라는 이스라엘회복의 메시지를 전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렘29:19)이 마침내 실현되기 시작했음을 알려주는 희망찬 신호탄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당신의 백성을 잠시 징계하시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징벌하시거나 영영히 멸망시키지는 않습니다. 또한 당신이 정하신때가 이르면 반드시 다시 회복시켜 당신앞에 새롭게 세우십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이야말로 우리들의 구원의 근본 동인(動因)이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역사의 마지막이 주는 교훈 ( 25:27-30 )
인생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살지만, 하나님께 악을 행하고 말씀을 거역하면 참담한 결과를 낳게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성도의 마지막역사도 최후의 심판대앞에서 드러나는데 염소처럼 자기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양처럼 겸손하여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자가 될때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쓸수 있습니다. 언제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금생과 내생에 큰상급이 있습니다.

# 해설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후의 상황 ( 25 )
시드기야왕때에 유다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여 예루살렘과 유다가 멸망당하고 그곳의 거민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을 통하여 유다를 심판하셨는데, 예루살렘성전과 성벽이 완전히 훼파되었고 성전기물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짐을 당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남을 상징했습니다.
1. 느부갓네살왕의 유다침공과 예루살렘의 멸망
1) 예루살렘을 침공하는 바벨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유다백성은 진멸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유다가 애굽에 군사적인 지원을 요청하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사면으로 토성을 쌓고 이년동안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설상가상으로 그러한 예루살렘에 기근이 임하게 하시어 그땅 백성의 양식이 진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바벨론의 예루살렘침략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바벨론군대는 예루살렘성벽에 구멍을 뚫고 마침내 예루살렘성을 함락시켰습니다.
a.에워쌈을 당한 예루살렘(렘39:1)
b.운제를 세우며 방패를 갖춤(겔26:8)
c.성중에 기근이 임함(애4:9)
2) 시드기야집의 멸망
예루살렘성이 함락당하자 시드기야왕은 아라바길로 도망하였으나, 바벨론군대에 잡히게 되어 바벨론왕에게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왕은 시드기야를 신문했는데 이는 자신을 배반한 죄에 대한 책망과 정죄였을 것입니다. 또한 바벨론군대는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목전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눈을 빼어 사슬로 결박한 상태로 바벨론으로 끌고갔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자기의 뜻대로 행하는 악한자의 결국이 어떠함을 증거하여준 사건입니다.
a.하나님을 배반한 대가(겔17:20)
b.하나님의 그물에 걸림(겔12:13)
c.쇠사슬에 결박됨(대하33:11)
2. 진멸당하는 유다왕국
1) 예루살렘에 임한 수치
바벨론왕은 시위대장관 느부사라단을 시켜 예루살렘을 훼파하고 약탈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느부사라단을 중심한 바벨론군대는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모든귀인의 집을 불살랐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성벽을 훼파함으로써 유다의 재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였습니다. 예루살렘성전과 성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중에 거하심을 상징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사건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범죄에 빠졌을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시고 이방의 손에 파셨던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왕이 예루살렘에 대해 이와같이 심하게 행한것은 그들이 자신을 배신한 것에 대한 진노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는 또한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a.성소가 불에 탐(시74:7)
b.더럽혀진 성전(기79:1)
c.불타는 궁귈들(암2:5)
2) 포로로 잡혀가는 예루살렘거민
바벨론군대가 예루살렘을 진멸할때 유다의 청년들은 성전에서 죽음을 당해야 했으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도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바벨론의 예루살렘침공때 그들의 칼을 피하여 목숨을 부지한 자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서 노예신분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이제 출애굽이전의 노예신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구원과 가나안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몸소체험하고도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범죄함으로써 다시 노예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a.칼에서 벗어난 자들(대하36:20)
b.열방이 바벨론을 섬김(렘27:7)
3) 약탈당하는 성전기물들
바벨론군대는 예루살렘성전을 훼파하면서 그곳에 있던 모든기물들을 바벨론으로 가져갔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때 하나님께 드린 기물들은 모두가 귀한 보물로서의 가치가 있었으므로 이방인들에게 약탈당하였던 것입니다. 이또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성전의 보물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축복하심을 나타내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이방의 손에 의해 이방의 땅으로 옮겨짐은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가 이스라엘을 떠나갔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a.중수를 알수없는 많은기구(왕상7:47)
b.두개의 놋기둥(왕상7:15)
c.단에서 쓰는 그릇들(출27:3)
3. 그달리야와 여호야긴
1) 유다땅을 다스리는 그달리야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은 유다땅에 남아있게한 자들중에서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로 유다땅을 관할하게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자신에게 충성할만한 자에게 유다땅의 통치를 맡겼던 것입니다. 왕권이 몰락한 유다에서 침략국의 앞잡이가 되어 유다를 관할하게된 그달리야는 유다의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볼때 매국노와 같았습니다. 이때에 바벨론군대를 피하였던 유다왕족의 자손들이 그를 찾아가자 그는 바벨론왕을 섬김으로 평안을 누리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달리야가 어떠한 생각으로 그러한 말을 하였는지는 알수 없지만 그의 말은 옳은 말이었습니다. 이는 이미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유다백성에게 예언하셨던 바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과 섭리속에서 유다백성을 일정기간동안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하기로 작정하셨으므로 지혜로운 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바벨론왕을 섬겨야 했습니다.
a.바벨론왕이 세움(렘40:5)
b.예레미야를 데려옴(렘39:14)
2) 그달리야를 살해하는 자들
왕족의 후예들에게는 느부갓네살왕을 섬기며 신임을 받아 유다의 방백이 된 그달리야가 반역자로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 그와 함께한 자들도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바벨론사람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였습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였는데,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땅에 가나안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이 있을것임을 예언하였습니다(참조, 사19:18).
a.완고한 행위(삼상15:23)
b.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함(렘43:4)
3) 여호야긴의 바벨론생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여호야긴왕은 잡혀간지 삼십칠년만에 옥에서 나와서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고 모든 필요한 물질을 제공받은 영화를 누렸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멸망시키셨지만 유다를 다시 회복시키실 것임을 암시하여 준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신실하신 분으로 유다를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시고 징계의 기간이 지나면 이방의 땅으로부터 해방시켜 구원을 베푸실 것입니다.
a.하나님의 도우심(욥5:11)
b.다윗상에서 먹은 므비보셋(삼하9:7)
결론
유다의 멸망에서 성도는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는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악인에 대한 마지막심판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여 모든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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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여호야김의 최후 24:1-7
본문에서는 황금머리에 해당되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대한 첫번째 기사가 나타난다(1절). 느부갓네살은 강한 왕이었으며, 강대국에게도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대인의 포로에 관계되지 않았더라면, 그의 이름이 거룩한 기록인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1)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김을 봉신으로 만들고 삼년간 자기를 섬기게 하였다(1절).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김 제4년에 치세를 시작하였다. 여호야김 제8년에 그는 여호야김을 사로잡아서, 자기를 충실히 섬긴다는 약속을 받고, 다시 왕위에 복귀시켰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이약속을 3년정도 지킨후, 느부갓네살에게 반역을 일으켰다. 이것으로 보아 그가 애굽의 원조를 기대하였던것 같다.
(2) 여호야김왕이 반역을 일으켰을때, 느부갓네살왕은 갈대아사람, 아람사람, 모압사람, 암몬사람으로 구성된 군대를 보내어, 여호야김과 그의 나라를 멸망시키게 하였다. 갈대아나 아람, 모압사람들은 그때당시 모두 바벨론왕을 섬겼고, 바벨론왕에게 조공을 바쳤으며(2절), 더욱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하여 오래된 적대감정을 계속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제 그감정을 표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유다로하여금 이렇게 고통당하게 하시는 목적은 다음과 같다. 므낫세의 죄를 처벌하시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므낫세의 죄를 '삼사대'에 이르러서 갚으시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처벌하시기전에 먼저 그들이 회개하는지 보시려고 오랫동안 기다리셨다. 그러나 그들은 끈질기게도 회개하지 아니하였다. 므낫세는 회개하였으므로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므낫세가 행한 핍박과 살인죄는 용서되었다고 할수도 있지만, 이것은 국가적인 죄이므로 여전히 그땅에 책임이 있었으며, 따라서 국가적인 심판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아마 그죄를 도와주고 선동한 자들가운데 그때까지 살아있는 자도 있었을 것이다. 이사실은 국가가 조상들의 죄로인하여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조상들의 죄에 대한 회개의 애통이 많이 필요함을 알게해 준다.
(3) 애굽왕도 마찬가지로 바벨론왕에게 굴복하였으며, 그의 나라의 상당한 부분을 빼앗겼다(7절). 애굽왕이 다시는 그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그는 후에 시드기야에게 어떤원조를 하려고 시도하였으나 퇴각할수밖에 없었다(렘 37:7).
(4) 여호야김은 자기나라가 황폐하게 되었으며 자신도 적의 수중에 곧 떨어지게될 상황에 처했음을 보고, 한창나이에 애통해하다가 죽었다(6절).

Ⅱ. 유다왕 여호야긴 24:8-20
본문에는 에스겔 1:2절처럼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역사가 기록되었다. 여호야긴은 왕위에 즉위하였으나, 왕으로서의 명예를 얻었다기보다는 왕위를 상실하는 수치를 당하였다.
(1) 그의 통치기간은 아주짧고 고려할 가치도 없다. 그는 즉위한후 불과 3개월간을 통치한후, 폐위되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다. 그러나 이 어린왕의 통치기간은, 그가 조상의 악한행위를 좇았기때문에 조상의 죄로인하여 정당하게 고난을 당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히 긴시간이었다(9절).
(2) 여호야긴의 통치시작부터 그와 그의 집과 백성에게는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재난이 닥쳤다.
1) 예루살렘이 바벨론왕에게 포위되었다(10,11절).
2) 여호야긴왕은 바벨론왕에게 즉시 항복하였다. 그에게는 이스라엘사람의 신앙도 경건도 없었으므로, 남자로서, 군인으로서, 왕으로서의 결단력도 없었다. 그는 자신과 왕가를 전쟁포로로 넘겨주었다.
3) 느부갓네살은 성전과 국가의 모든 보물들을 샅샅이 뒤져서 은과 금을 탈취해 갔다(13절). 이제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무릇 왕궁의 모든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20:17).
4)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주민의 대부분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보다 8년전 느부갓네살 원년, 즉 여호야김 3년에도 주민의 일부를 포로로 잡아갔었다. 이들중에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참조. 단 1:1,6). 느부갓네살이 당시 포로로 잡아간 이들은 다음과 같다.
① 어린왕과 그의 가족.
② 모든 귀족들과 방백들과 관리들.
③ 모든 군인과 '모든 용사들'(14절), '나라에 권세있는 자들'(15절), '용사'와 '싸움에 능한자들'(15절).
④ 전쟁무기를 만드는 모든 기술자와 장인들. 선지자 에스겔도 포로로 잡혀갔다(겔 1:1,2).
(3) 바벨론왕은 여호야긴 대신에 그후계자를 임명하였다. 그는 요시야의 아들 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우고, 온세상으로 하여금 그가 바벨론왕이 세운자라는 사실을 알게하였고, 그의 이름을 개명하여 '시드기야'라고 불렀다(17절). 이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왕이다. 바벨론왕이 그에게 붙여준 이름은 '여호와의 정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왕을 배반하니라(20절). 이것은 그가 할수 있었던 일중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일은 그의 왕국의 파멸을 촉진시켰던 것이다.

# 핵심
24:1-7
여호야김왕은 결국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정복당한채 종말을 맞았다.

# 묵상
선지자의 역할 ( 24:2 )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백성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자신을 부인하며(마16:24),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호야긴의 통치 ( 24:8, 9 )
여호야김의 아들로 석달을 다스렸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우상숭배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넘기신 하나님 ( 24:11-17 )
백성들을 죄에서 돌이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영영히 버리고 포기하신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와 각종 죄악중에서 방황하는 이스라엘을 채찍질하심으로써 그들의 허물을 스스로 발견토록 하고, 더나아가서 그들로하여금 죄악을 청산하고 새롭게되는 은총을 누리게 하기위한 선한목적으로 그렇게 섭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뜨겁고도 초월한 사랑의 한 표현이라 하겠습니다(히12:5-13).
시드기야 ( 24:17-25:7 )
요시야의 셋째아들인 맛다니야로서 느부갓네살에 의해 시드기야로 개명되었습니다. 유다의 마지막왕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다가 두눈이 뽑힌채로 바벨론에 포로로 처참하게 끌려갔습니다.

# 해설
유다말기의 왕들의 치세와 몰락 ( 24 )
요시야왕이 죽은후부터 유다왕국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요시야왕의 개혁정책에도 불구하고 그의 뒤를 이은 왕들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열조의 악행을 본받아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언을 믿지않고 이웃나라를 의지하는 정치술로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앞에서 온전히 행하지 않는 왕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심판을 내리심으로써 유다에 대한 심판을 진행시키셨습니다.
1. 여호야김의 치세
1) 바벨론을 섬긴 여호야김
여호야김은 처음에는 애굽의 느고를 섬겼으나 변화된 국제정세에 편승하여 바벨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애굽과 앗수르 동맹군은 B.C.605년 바벨론과의 갈그미스전투에서 패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야김은 팔레스타인의 새주인인 바벨론을 애굽대신 섬기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처음부터 친애굽정책을 실천하던 자였으므로 느부갓네살왕이 애굽을 침범하다가 패하자 바벨론을 배반하였습니다. 여호야김은 애굽을 의지하여 그아래서 보호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a.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함(렘25:1)
b.느부갓네살왕을 섬김(렘28:14)
c.70년동안 바벨론을 섬긴 유다(렘25:11)
2) 유다멸망의 동기가 된 바벨론배신
여호야김의 바벨론배신은 유다멸망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여호야김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무시하고 친애굽정책을 실시함으로 멸망을 자초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야김에게 애굽을 좇지말고 바벨론을 좇으라고 예언하였습니다(참조, 렘27:7-11). 여호야김의 선지자의 예언에 대한 불순종과 애굽의 선택은 유다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가까워왔음을 예시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므낫세의 가증한 우상숭배의 죄로인해 유다에 예정된 피할수없는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a.호세아가 앗수르를 배반함(왕하17:4)
b.에돔이 유다를 배반함(왕하8:20)
c.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함(왕하1:1)
2. 바벨론의 포로가 된 여호야긴
1)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함
여호야김이 죽자 여호야긴은 십팔세에 왕이되어 예루살렘에서 석달의 짧은기간동안 치리했습니다. 여호야긴은 하나님의 징벌이 이미 시작되어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속에서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나라와 국민을 구하기위하여 하나님께 엎드려 회개하여도 충분하지 않을상황에서의 여호야긴의 악행은 유다의 멸망을 가속화시켰던 것입니다. 환난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여호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범죄한 여호야긴의 행위는 참으로 멸망받을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a.가증한 죄악(렘15:4)
b.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함(왕하21:16)
c.우상숭배(왕하21:11)
2) 바벨론의 침입
하나님께서는 여호야긴의 악행을 보시고 심판의 강도를 늦추지않으시고 바벨론으로 다시 유다를 침략케 하셨습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은 군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올라와 그성을 에워쌌습니다. 결국 여호야긴과 그가족들은 바벨론군대에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여호와전의 모든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다 집어내고 솔로몬왕이 만든 여호와의 전의 금기명을 다 훼파하였습니다. 또한 빈천한자 외에는 그땅에 남은자가 없도록 다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즉 여호야긴과 그의 모친과 왕의 아내들과 내시와 나라에 권세있는 자, 그리고 용사와 공장과 대장장이 일천을 잡아갔던 것입니다(참조, 왕하24:15-16).
a.이사야의 예언(왕하20:17)
b.포위된 예루살렘(단1:1)
3) 여호와의 말씀같이 됨
바벨론이 유다를 침입하고 모든보물을 약탈해가고 사람들을 잡아간 것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예언의 성취였습니다(참조, 렘20:5). 또한 하나님께서 솔로몬과의 언약에서 이미 경고하셨던 일이었습니다(참조, 왕상9:6-9). 여호야긴과 유다백성이 바벨론에게 당한 수치는 단지 그들만의 죄로인함이 아니요 오랜세월동안 우상숭배로 범죄하여 여호와를 진노케한 유다의 열왕과 백성의 죄로 인함이었던 것입니다.
a.하나님의 재앙선포(왕하21:12)
b.성전훼파에 대한 예언(왕하23:27)
3. 시드기야의 유다통치
1) 시드기야의 악행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다의 마지막왕이 된 시드기야는 이십일세에 왕위에 올라 십일년을 예루살렘에서 치리하면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멸시하여 그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바벨론을 섬길것을 권하며 만일 그렇지 않을경우 비참한 종말을 맞게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참조, 렘32:4;렘38:17-23). 그러나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왕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을 어기고 배반하여 하나님앞에서 범죄하였습니다.
a.열조의 악행을 본받음(왕하23:32)
b.언약을 배반함(겔17:18)
2) 범죄하는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
시드기야는 여호와앞에 교만히 행하여 범죄하였을뿐 아니라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들까지도 이방의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며 여호와의 전을 더럽혔습니다. 왕과 함께 종교지도자들과 백성의 타락은 유다멸망의 때가 도래하였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백성과 그거하시는 곳, 즉 성전을 아끼셔서 멸망의 심판을 유보하시려고 선지자들을 보내어 유다백성의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백성은 하나님의 사자을 오히려 비웃고 조롱하며 말씀을 멸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을 자초하였습니다.
a.범죄한 치리자들(미3:9)
b.허망하여진 백성(미2:11)
3) 만회할수 없게된 유다의 죄악
여호와께서는 유다를 진노의 심판에서 피하게 하시기위해 선지자들을 보내어 끝까지 회개를 촉구하셨지만 그들이 목을 곧게하여 겸비치 아니하므로 더이상 진노를 지체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참으시지만 회개치 않는자들에 대해선 반드시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십니다. 시드기야와 유다백성은 회개치 않음으로 바벨론군대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히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 회개를 촉구하고 있지만 끝까지 회개치 아니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심판때에 영벌에 처해지게 됩니다. 임박한 진노를 피하는 길은 회개밖에 없습니다.
a.하나님이 이미 버리심(렘34:2)
b.느부갓네살에게 붙여진 유다(대하36:17)
결론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로 이어지는 유다말기의 왕들은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언을 믿지않음으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야 하는데, 이는 그길이 구원과 승리의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환난중에서도 피할길을 제시하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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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요시야의 언약 23:1-3
요시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예루살렘의 패망을 방지할수 없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렇다고해서 절망가운데 주저앉지 않았다. 오히려 개혁을 위한 준비를 다음과 같이 착수하였다.
(1) 요시야는 전국민의 대회를 소집하였다. 이모임이 국가적인 대회가 되게하기 위하여 장로들과 방백들, 혹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대표자들인 제사장들과 선지자, 일상적인 말씀의 사역자와 특별사역자들과 함께 '여호와의 전'으로 불러모았다.
(2) 요시야는 이대회에서 연설을 하는대신에 율법책을 그들에게 낭독하도록 명령하였다. 아니, 오히려 왕이 직접 낭독한것 같기도 하다(2절). 왜냐하면 율법책에서 감동을 받은자로서 백성들도 그렇게 감동받기를 간절히 원하였기 때문이다. 귀족들의 대회이외에 왕은 '유다 모든사람과 예루살렘 거민'들을 모으고 율법책을 낭독하여 듣게하였다. 만약 요시야가 율법에 따라 다스리기를 결심한만큼 백성들도 율법에 따라 순종하기로 굳게 결심하였더라면, 유다왕국은 행복하게 됐을 것이다.
(3) 요시야는 백성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확증해주기 위해서 율법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훈을 통해서 백성들이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할수 있도록 하나님과의 교제를 제안하였다(3절). 율법의 책은 언약 즉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도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그들이 열심히 언약에 나타난 자기들의 의무를 수행한다면, 하나님도 분명히 하나님의 의무를 수행하시겠다는 언약의 책이었다. 이언약을 계약한 자들은 먼저는 요시야왕 자신이었는데(11:14), 그는 대위에 서서 이언약에 대한 자신의 동의를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다. 이에 백성들도 동의했다. 백성이 다 그언약을 좇기로 하니라(3절).

Ⅱ. 요시야의 우상타파 23:4-24
본문에서는 유대의 역대왕에게서는 볼수 없었던 개혁과 가증한 물건에 대한 철저한 제거와 영광스러운 선한사역을 위한 기초작업에 대한 기록을 볼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인 것은 백성들 대다수가 개혁되기를 싫어하였다는 점이다.
(1) 유다와 예루살렘은 과거에나 그때에나 악으로 넘쳐 흘렀다.
1) 심지어 솔로몬이 건축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광과 예배를 위해 봉헌한 여호와의 집안에서도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섬기기위한 각종 그릇과 기구들이 발견되었다(4절). 요시야가 우상숭배를 금지하였지만, 그것을 섬기기위해 만든 각종기물들이 심지어 성전안에 전부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2) 바로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곳 근처에' 종교적인 사용을 위한 말을 두는 외양간이 있었다. 이말들은 '태양을 위하여 드린' 거룩한 말이었다. 즉 '그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같은'(시 19:5) 태양신이 말을 필요로 하는것처럼,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를 태양의 수레를 묘사한 시적허구에 알맞게 꾸며놓았던 것이다. 어떤사람들은 그들이 매일 아침마다 이말들을 성대하게 차려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기위해 외양간에서 끌어내었다고 생각하며, 다른사람들은 태양을 숭배하는 자들이 이말들을 타고 나가서 떠오르는 태양에게 경배하였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이말들은 사람들이 경배하는 태양의 수레를 끄는데 사용된것 같다.
3) 여호와의 전 바로곁에 소돔사람들의 집이 있었다. 여기에서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짓, 심지어 아주 잔인한 일까지 종교라는 허울을 쓰고, 자기들의 더러운 신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는 자들은 이와같이 자신들의 명예를 더럽히도록 버려두셨다(롬 1:24이하). 또한 거기에는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 즉 비너스상에 둘러치는 텐트를 짜는 여자들이 있었다. 이 텐트안에서 아세라 숭배자들이 온갖 난잡한 일을 저질렀었다. 이런곳이 '여호와의 전안에' 있었던 것이다.
4) 궁궐의 어떤곳, 즉 '아하스의 다락지붕'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제단들이 많이 발견되었다(12절). 유다사람들의 지붕은 평평했고 그들은 이곳에 자신들의 산당을 만들고, 여러가지 제단 즉 가정의 제단을 세웠다(렘 19:13; 습 1:5).
5) 예루살렘 바로근처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는 '도벳'이 있었다. 여기에는 몰록의 상(다른신들이 비정상적으로 난잡한 것과 마찬가지로, 몰록은 비정상적으로 잔인한 신이다)이 세워져 있었다. 어떤사람들은 몰록에게 자식을 희생으로 드리기위해 불에 태우고, 어떤사람들은 자식들을 불가운데로 통과하게 함으로써 자식들을 바쳤다(10절).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합 2:13), 그리고 그들이 자식들을 불에 태울때 들리는 그들의 비명을 듣지않기 위하여 북을 두드렸기때문에 '도벳'이란 말은 '도프', 즉 불이란 말에서 연유된것 같다.
6) '예루살렘앞'에 산당들이 있었는데, 이것은 솔로몬이 세운 것이다(13절). '게바에서 브엘세바까지'(2절) 전국이 산당으로 가득차 있었고, '부윤 여호수아의 대문어귀 곧 성문 왼편'에도 성문의 산당이 있었다.
7) 모든우상의 제단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이 있었는데(5절) 이들은 흑인, 혹은 검은옷을 입은 사람들이었다(참조, 습 1:4). 오시리스에게 희생을 드리는 자들, 담무스를 위해 우는 자들(겔 8:14), 혹은 지옥의 신들을 숭배하는 자들은 곡하는 자들처럼 검은옷을 입는다.
8) 마술사와 점장이, 그리고 '신접한 자'와 같은종류도 있었다(24절).
(2) 선한 요시야왕은 이모든 우상들의 유물을 철저하게 파괴하였다.
1) 요시야왕은 힐기야와 다른제사장들에게 성전을 정결케하라고 명령하였다. 바알을 위하여 만든 모든도구를 없애고 그것들을 전부 불사르고, 그재는 벧엘로 옮겨가도록 명했다. 이 벧엘은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움으로써 우상숭배의 총본산이 된 곳이다.
2) 우상숭배하던 제사장들을 전부 끌어내렸다. 이들가운데 아론의 집에 속하지 아니한 자들이나 또는 바알이나 다른 거짓신들에게 희생을 드린 자들은 율법에 따라 사형에 처하였다. 산당의 제사장들은 다 단위에서 죽이고(20절). 이것은 그단에서 드린 희생가운데 가장 받을만한 희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론의 집에 속한 자들로서 산당에서 분향하기는 하였지만, 오직 하나님께만 분향한 제사장들은 이후로 하나님의 제단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왕이 금지하였다. 그러나 '그 형제중에서(거주하며) 무교병을 먹는' 것은 허락하였다. 이 누룩을 넣지않은 빵(비록 딱딱하고 먹기에는 좋지 못하였지만)도 그들에게는 분에 넘치는 것이었으며, 이것으로 생명을 유지할수는 있었을 것이다.
3) 모든 주상들을 깨뜨리고 불로 태웠다. 아세라상(6절). 혹은 갖가지 여신상들은 불사르고 빻아서 재를 만들었으며, '그가루를 평민의 묘지(예루살렘성의 공동묘지)에 뿌렸다'(6절). 율법에 의하면 묘지와 접촉하면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요시야는 신상의 가루를 묘지에 뿌림으로써 이 신상들이 아주 부정하다는 사실을 공포하려 했던 것이다. 사람의 해골로 그곳에 채웠다. 요시야는 우상의 재를 무덤으로 가져다가 죽은사람의 뼈와 혼합하였고, 또한 죽은사람의 뼈를 우상이 있던 곳으로 가져다가 우상의 방에 두었다. 이렇게 두가지 조치를 취함으로써 우상을 혐오스럽게 여기도록 만들었고 우상의 티끌과 우상을 섬겼던 곳의 폐허에 백성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4) 모든 악한장소인 우상을 안치하였던 이 불경건의 둥지와 그리고 소돔사람의 집들을 모두 헐어버렸다(7절). 산당들도 마찬가지로 부수어버리고, 평지처럼 평평하게 만들었다(8절). 다른 우상숭배의 장소와는 반대로 도벳은 계곡에 있었다. 그러나 언덕과 높은곳에 있던 산당을 파괴한 것과 마찬가지로, 도벳은 예루살렘의 묘지가 되었다. 여기에 관한 설교를 우리는 예레미야19:12절이하에서 볼수 있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은 '그들을…도벳에 장사하리라', 그리고 온성이 도벳처럼 될것이라고 경고하신다.
5) 태양에게 바쳐진 말들은 끌어내어 일상적인 일에 사용하게 하고, 태양의 수레는 불에 태웠다.
6) 신접한 자와 박수는 다 제하여 버렸다(24절).
(3) 요시야는 자기의 의로운 열심을 자기의 통치영역 안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의 성읍에까지 미치게 하였다. 이스라엘의 열지파는 앗수르의 포로로 잡혀갔고, 앗수르의 식민지땅에는 아직까지 사람들이 채워지지 않았기때문에 그당시 이스라엘의 많은 성읍들이 스스로 유다왕의 보호를 받고 있었던것 같다(대하 30:1;34:6). 요시야는 이곳들을 방문하고 그의 개혁사역을 실시하였다.
1) 벧엘에 있는 여로보암의 제단을 거기에 속한 산당과 아세라목상과 함께 더럽게 하고 파괴하였다(15,16절). 추측컨대 금송아지는 없어진 것이 분명하지만 ('사마리아의 네송아지는 버리웠느니라.' 호 8:5), 제단은 거기있었다. 요시야는 이 여로보암의 제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조처하였다.
① 그단을 더럽혔다(16절). 요시야는 경건한 열심히 우상숭배의 옛터전을 샅샅이 뒤지고, 우상을 숭배하던 제사장들이 묻혀있었을 무덤까지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무덤을 열고 그뼈를 꺼내어 단위에 불살랐다(20절). 요시야는 이와같이 제단을 오염시키고, 모독하였으며, 사람들이 그제단을 혐오하도록 만들었다.
② 그단을 파괴하였다. 즉 그제단과 그부속물을 부수고(15절), 태울수 있는 것은 태우고, 빻아서 가루로 만들고, 바람앞의 티끌과 같게 만들었다.
2) 요시야는 모든산당과 사마리아 각성읍에 있는 모든사단의 회당을 파괴하였다(19절).
3) 그러나 요시야의 개혁을 예언하기위해 유다에서 내려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무덤은 조심스럽게 보존하였다. 이사람은 '벧엘의 단에 향하여 행하신 이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사자에게 찢겨죽었던 그 선한 선지자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선지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났음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그의 무덤주변의 무덤들이 파헤쳐질때도 그의 무덤은 안전하게 하셨으며(17,18절), 아무도 그의 뼈를 옮기지 못하게 하셨던 것이다.
(4) 요시야와 그의 백성들은 이모든 일을 행한후에 거룩한 유월절의식을 지켰다. 그들은 그나라를 옛누룩으로부터 정결케 하고난후, 자신을 드려서 유월절을 지켰다. 성경에는 히스기야시대의 유월절에 대해서와 같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부분은 달리없다(대하 30장). 그러나 대체로 이전시대에는 물론,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의 열왕의 시대에든지 유다열왕의 시대에든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일이 없었더니'(22절)라고 한다. 이 유월절은 참가자들의 수호와 헌신, 그들의 희생과 제물들, 그리고 유월절에 관한 율법을 엄격하게 지켰던 점에 있어서 특별했던 유월절인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타파한 이들의 열심에 대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은총의 특별한 표시로서 보상해주시기를 기뻐하셨다. 이모든 일이 요시야의 유월절을 아주 돋보이게 하였다.

Ⅲ. 요시야의 죽음 23:25-30
(1) 요시야는 지금까지 다윗의 왕위에 올랐던 선한 왕들중의 한사람이라는 사실이 본문에 인정되고 있다(25절). 곤경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은점에 있어서 히스기야에 필적할만한 사람이 없는것처럼(18:5), 성실과 열심히 개혁의 사역을 꾸준히 수행한점에 있어서도 요시야에 필적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1) 조상들은 여호와을 반역했으나 요시야는 여호와를 섬겼고 또한 자기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도록 하기위하여 그가 할수 있는 모든일을 다하였다.
2) 요시야는 이일을 전심을 다 기울여 행하였다.
3) 요시야는 이일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열정과 용기와 결단을 가지고 행하였다.
4) 요시야는 이일을 행함에 있어서 '모세의 모든율법을 온전히 준행하여' 행하였다. 그는 모든일을 행할때 법규대로 행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야는 장년의 때에 전장에서 죽임을 당하였고, 그의 왕국은 몇년후에 곧 멸망하게 되었다. 이와같은 많은 개혁을 한뒤였으므로 사람들은 당연히 왕과 왕국의 번영과 영광을 얻게되리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로 왕과 왕국 모두가 암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1) 유다왕국은 개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멸망의 딱지는 여전히 붙어있었다.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진노하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26절).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처럼(렘 18:7,8), 만일 멸망하시기로 작정한 어떤나라가 '그악에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도 그들에 대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는 말씀은 분명히 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시야의 백성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수밖에 없다. 즉 그들이 요시야의 권력에는 굴복하였지만, 그들의 중심으로는 요시야의 개혁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왕이 권력으로 그들을 돌이키게 했을뿐이지, 그들이 자의적으로 각기 악한길에서 돌이킨 것은 아니었으며 여전히 자기들의 우상에 대한 연정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대한 재앙의 선고를 취소하려 하시지 않으셨다. 내가 뺀 이성 예루살렘과 내이름을 거기 두리라한 이 전을 버리리라(27절). 그러나 이멸망도 이스라엘의 효율적인 개혁을 위해서 계획하신 일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질병이 위기에 닥쳤으며, 치료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수밖에 없다.
2) 이것에 대한 증거로서, 개혁을 시도하던 요시야왕이 한창 일할나이에 죽어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요시야로하여금 그의 왕국에 다가오는 재앙을 보지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조치였다. 애굽왕이 앗수르왕에게 싸움을 걸었다. 이때의 앗수르왕은 바벨론왕이 그렇게 불리운 것이었다. 요시야의 왕국은 두 강대국사이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요시야는 스스로 애굽왕을 대항하여, 증대되고 있는 위협적인 큰세력을 견제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요시야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그 첫번째 교전에서 죽임을 당했다(29,30절). 이처럼 귀한보배와 같은 요시야왕을 그보배의 가치를 잴줄도 모르고 감사하지도 않는 백성에게서 취하여 가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우리는 찬양할수밖에 없다. 백성들은 요시야의 죽음을 크게 애도하였고(대하 35:25),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요시야의 죽음에 대한 의미와 이것이 얼마나 두려운 흉조인지를 말해주었으며 요시야왕의 죽음을 슬퍼하라고 말하였다.

Ⅳ.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 23:31-37
요시야가 죽고난 이후로 예루살렘은 좋은날을 하루도 보지못하였고, 22년이 지난이후 유다왕국이 완전히 멸망할때까지 재난이 연속되었다. 본문에는 요시야 두아들의 통치에 대한 기록이 간단히 소개되어 있다. 전자는 애굽왕에게 포로가 되었고, 후자는 애굽의 봉신이 되었다. 이 애굽왕은 요시야왕을 살해한후 모든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요시야의 집과 왕국을 쳤다.
(1) 백성들이 요시야의 두아들 중에서 동생인 여호아하스를 먼저 왕으로 세웠다. 이렇게 한것은 아마도 여호아하스가 형보다 더 전쟁을 좋아하는 성품을 가졌기때문에 애굽왕에게 당당하게 맞서서 부왕의 죽음을 원수갚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아하스는 악하게 행하였다. 여호아하스가 그열조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32절). 비록 그가 많은악을 행할만큼 통치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기행동방침을 이미 결정하였던 것이다. 여호아하스는 불과 석달동안 왕노릇을 했으며, 애굽왕에게 포로가 되어 살다가 그대로 죽었다.
(2) 요시야왕의 다른아들인 엘리아김은 애굽왕에 의해 왕이 되었다. 그때까지 유다의 왕위는 언제나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계승되었을뿐 형제에게로 계승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애굽왕은 자기세력을 이용하여 엘리아김을 왕으로 삼았고, 나아가 그의 이름을 고침으로써 자기능력을 과시하였다. 애굽왕은 엘리아김을 여호와의 이름과 관련이 있는 '여호야김'으로 불렀다. 이것은 애굽왕이 유대나라로 하여금 종교를 버리게 하거나 잊어버리도록 할 계획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여호야김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애굽왕이 그를 가난하게 만들고, 그로하여금 '은 일백달란트와 금 한달란트'의 막대한 조공을 바치게 하였다고 한다(33절). 여호야김은 이것을 아주 어렵게 백성들에게서 쥐어짜서 바로에게 주었다(35절). 그는 하나님의 징계아래 있으면서도 이징계를 통하여 깨닫고, 겸비하여져서 회개하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열조의 모든 행한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37절).

# 핵심
23:1-27
요시야는 언약을 갱신하고, 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종교개혁을 추진했다.
도벳(23:10)
예루살렘 남쪽에 힌놈의 골짜기가 있고, 그곳에는 암몬족의 우상인 몰록을 섬기는 제단이 있었다. 도벳은 바로 그제단이 있던 곳을 가리키는 말로서, 원문상의 의미는 ‘침뱉음(을 당한자)’, 혹은 ‘용광로’로 이해된다. 전자는 더러운 우상숭배가 행해졌던 곳임을 나타내고, 후자는 인신제사를 암시한다.
치고자하여(23:29)
이문구는 히브리어 ‘알’을 번역한 것이다. 이말은 ‘위하여’라는 의미로도 해석할수 있다. 따라서 역본마다 차이가 있는데, KJV는 한글개역성경과 같이 ‘대항하다’라는 뜻으로 번역했고, NKJV와 NIV 등은 ‘돕기위하여’라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뒤의 번역은 당시의 국제정세를 고려한 것이다. 당시 앗수르는 쇠퇴일로에 들어서 있었고, 신흥세력인 바벨론이 강력한 나라로 부상하고 있었다. 애굽왕 바로느고는 바벨론에 의해 공격당하는 앗수르를 돕고자 출전했을 것이다.

# 묵상
말씀을 깨달은 자 ( 23:1-3 )
이들의 행동은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사람들도 그말씀을 듣고 회개할 것을 전합니다. 성경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나1:15). 이에 성도는 예수님이 잃은양 한마리를 위해 온정성을 쏟으신 것처럼 사랑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선민의 지위 ( 23:3 )
이스라엘이 선민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지킬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스스로의 경건이나 종교적 열심때문이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순전히 이스라엘과 무조건적으로 언약을 친히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불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언약을 준수해오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덕분이었습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 ( 23:4-14 )
우상을 섬길때 쓰던 기명을 불살라 없앴고, 우상을 섬긴 제사장을 폐했습니다. 그리고 신상과 휘장을 짜는 처소를 헐었고,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없앴으며, 자녀를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없앴고, 여호와의 전마당에 있는 이방신의 단들을 모두 부수었습니다.
벧엘 ( 23:4 )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으로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창28:10-19). 북왕국은 이곳을 우상섬기는 곳으로 바꾸었는데(왕상12:27-33), 요시야가 이를 다시 회복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만난 첫사랑을 기억하며(계2:4), 성숙한 소망을 가져야합니다.
기드론 ( 23:4, 6, 12 )
기드론은 예루살렘과 감람산 사이의 계곡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상들을 불사르고 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위해 감람산에서 기도하신후 이곳을 건너가셨습니다(요18:1). 새예루살렘에 입성하게될 성도는 이처럼 세상의 것을 다버리고 순결한 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상 ( 23:9 )
두주인을 동시에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듯 가증스런 우상과 거룩하신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수는 없습니다(마6:24). 하나님은 절대 거룩하신 분으로서 당신과 관계를 맺는 모든영혼들도 마찬가지로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레11:44, 45).
유월절 ( 23:21-23 )
유월절은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으로 탈출하게 된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잊을수 없는 날입니다. 유월절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생활과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요1:29).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요시야 ( 23:25-27 )
요시야왕은 하나님이 명하신 율법을 준행함에 있어서 다른열왕들보다 더 온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는 사람처럼 빛나는 신앙인은 없습니다(삼상15:22). 그러나 요시야의 선한 치적에도 불구하고 유다가 멸망될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요시야의 선한정치를 답습치 못하고 오히려 온유다에 사악한 우상숭배를 조장한 므낫세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이 많으신 분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죄악과 부패마저도 용납하시고 방치해두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아하스의 통치 ( 23:31-34 )
본문은 여호아하스의 통치에 대한 기록입니다. 여호아하스는 요시야의 둘째아들로 3개월동안 다스렸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죽었습니다.
여호야김의 인물됨 ( 23:34-24:7 )
그는 요시야의 첫째아들로 애굽의 느고에 의해 옹립된 왕입니다. 그의 이름이 엘리아김에서 여호야김으로 바뀌었고, 하나님앞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여기에서 이름이 바뀌었다는 의미는 그 명명자의 권한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제 그리스도의 종이된 것입니다.
여호야김의 대표적인 악 ( 23:37 )
첫째는 자기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위해 백성을 늑탈한 일과 둘째는 하나님의 선한일꾼인 선지자 우리야를 죽인 일이었습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절대적인 권위에 순복하지 않고, 또한 맡겨진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는 지도자는 하나님과 백성으로부터 모두 배척될수밖에 없습니다.

# 해설
요시야왕의 개혁과 유월절 행사 ( 23 )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회개한 요시야왕은 백성을 불러모아 하나님앞에서 언약을 갱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 지역에 있는 우상들을 멸절시키는 개혁을 단행하며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열조의 죄악으로인하여 유다에 대한 진노를 거두시지 않고 언약하신대로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이러한 심판은 요시야왕이 므닛도 전투에서 죽음을 당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 요시야의 언약갱신과 개혁정책
1) 여호와앞에 언약을 세우는 요시야
요시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장로를 불러모아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때에 유다 모든사람과 예루살렘거민과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과 모든백성이 무론대소하고 다함께 모였는데, 이는 요시야가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모든백성이 성전으로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요시야왕은 모든 백성앞에서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의 모든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게 하고 모든백성이 보는중에 여호와앞에서 언약을 세웠습니다. 그언약의 내용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시야의 언약의 내용은 이미 율법에서 여러번 말씀되어진 것입니다(참조, 신11:13;수22:5;왕상2:4). 그러므로 요시야가 하나님앞에서 세운 언약은 새로운 언약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충실히 지키겠다는 맹세였던 것입니다.
a.율법을 낭독함(신31:11)
b.모든말씀을 낭독함(수8:34)
2) 예루살렘과 유다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는 요시야
요시야왕은 왕위에 오른지 십이년 즉 요시야가 이십세 되던해부터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 우상을 제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전지역에는 선왕 아몬이 세운 우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그우상들은 요시야의 조부인 므낫세왕이 만들어 세웠다가 종교개혁때 예루살렘 성밖으로 던져버렸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의 부친 아몬왕은 그우상들을 다시 가져다가 세우고 경배함으로 온유다를 다시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빠뜨렸던 것입니다. 요시야왕은 다시는 이런일이 반복되지 아니하도록 바알들의 단을 훼파하고 단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어버렸을뿐 아니라 아세라목상들과 부어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거기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렸습니다. 또한 산당에서 우상을 숭배하던 제사장들의 무덤을 파내어 단위에서 뼈를 불태우고 재로 만들었습니다. 요시야는 우상의 형체를 없애버림으로써 이제 다시 그우상들 앞에 절할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제거해버렸던 것입니다.
a.말씀을 순종함(출34:13)
b.기드온의 우상제거(삿6:26)
3) 이스라엘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는 요시야
요시야왕의 개혁은 예루살렘과 유다에만 머물지않고 북이스라엘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요시야는 북이스라엘에 있는 우상과 단을 파괴함으로 이스라엘을 망하게 했던 요소를 제거하였습니다. 또한 그곳에서 제사하던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단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단위에서 불살랐습니다(참조, 왕하23:19-20). 요시야왕의 온이스라엘에 대한 개혁은 이스라엘과 유다백성을 망하게한 우상과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우상숭배자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됨을 요시야왕의 개혁에서 볼수 있습니다.
a.사마리아의 바알사당(왕상16:32)
b.이스라엘이 괴로움을 당한 원인(왕상18:18)
4) 유월절행사의 회복
요시야왕은 레위사람들에게 다윗과 솔로몬의 글에 기록된대로 준행하여 차서대로 성소에 서서 유월절을 예비하되 여호와께서 모세로 전하여 주신 율법의 말씀을 좇아 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본문에서 요시야왕때의 유월절행사는 선지자 사무엘이후로 이스라엘가운데서 전무후무한 규모였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참석자들의 수와 제물의 수 등에서 월등한 행사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온백성이 요시야왕을 중심으로 여호와께 드린 유월절제사는 유다의 멸망을 앞두고 그들의 영적능력을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a.유월절을 범한 이스라엘(대하35:18)
b.매년 지켜야할 절기(신16:16)
2. 요시야의 죽음과 여호아하스의 치세
1) 애굽왕 느고의 길을 막다가 죽는 요시야
애굽왕 느고는 앗수르를 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고 그지역의 패권을 잡기위해 유브라데 하수로 올라갔습니다. 당시 앗수르제국은 이미 바벨론제국에게 멸망당했으나 바벨론의 영향력이 그곳을 완전히 장악하기 전이었으므로 애굽왕 느고는 선수를 쳐서 바벨론의 세력확장을 견제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요시야왕은 므깃도전투에서 전사하고 맙니다. 요시야왕은 아합과 같이 변장하고 전투에 참여하였으나 적군의 화살에 맞아 죽음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볼때 요시야왕이 느고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다가 징계를 받은것으로 평가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왕의 죽음은 그보다 더깊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a.느부갓네살에게 패한 바로느고(렘46:2)
b.애통의 상징인 므깃도(슥12:11)
2) 요시야왕의 죽음의 의미
요시야왕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여선지 훌다를 통하여 계시하신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훌다는 유다의 죄로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반드시 임할것을 예언하면서, 요시야는 겸비하고 회개하였으므로 유다에게 임할진노를 보지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입니다(참조, 대하34:28). 즉 요시야왕의 죽음은 하나님의 징벌이라기보다는 축복약속의 성취였습니다. 왕으로서 자기백성에게 여호와의 진노가 임하여 이방나라에 짓밟히는 것을 보는것은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일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시야왕의 죽음이 하나님의 축복이었음은 그의 죽은후를 보면 잘 알수 있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활을 맞아 부상당하였으나 예루살렘에 와서 숨을 거두었고 열왕의 묘실에 잠들었습니다.
a.말씀대로 이루어진 죽음(왕하22:20)
b.경건한 자의 끊어짐(시12:1)
c.사람에게 정해진 죽음(히9:27)
3) 여호아하스의 등극과 몰락
요시야가 애굽왕 느고의 길을 막다가 죽음을 당하자 유다백성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아하스는 왕위에 올라 석달밖에 다스릴수가 없었는데, 이는 여호아하스가 여호와앞에 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반애굽정책을 펼친 여호아하스를 그위에서 폐하였습니다. 또한 애굽왕 느고는 그를 하맛땅 립나에 가두고 유다로 은 일백달란트와 금 한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했습니다. 느고는 유다의 왕을 감금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애굽땅으로 잡아갔습니다. 애굽왕은 여호아하스 대신에 그형제 엘리아김을 왕위에 앉히고 그의 이름을 여호야김이라고 바꿨습니다. 여호야김은 애굽왕 느고에게 은, 금을 주기위하여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하여 늑봉하였습니다. 여호야김은 유다의 왕이라기보다는 애굽의 앞잡이 노릇을 하였던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여호야김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a.다시 돌아오지 못함(렘22:11)
b.죽음후에 심판받을 악인(히9:27)
결론
요시야의 개혁정책은 비록 유다를 하나님의 진노에서 유다의 포로기간을 준비시키는 영적인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성도는 언제나 그시대에 필요한 영적인 사역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개인의 철저한 회개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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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요시야왕의 성전보수 22:1-10
(1) 요시야는 아주 어렸을때, 즉 8세부터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때에 나이 팔세라(1절). 영국에도 이런 어린아이가 왕이 된적이 있는데, 그는 에드워드 6세이다. 어린 요시야는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나쁜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곧 그들의 실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주셔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악한 행위에서 충고를 받게 하셨다(참조, <겔18:14 >이하).
(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2절).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을 보자. 하나님께서는 아비인 므낫세는 무시하셔서 자기 죄가운데서 멸망하도록 버려두시고, 그의 아들인 요시야는 선택받은 그릇으로 사용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상황이 너무 곤란하기때문에 하지 못하실 일은 없다. 그의 좌우편이 모두 실수로 가득차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요시야를 지켜 바른길을 가게 하셨다. 따라서 그는 미신속으로도 오만함속으로도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3) 요시야는 성전을 수리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이일을 즉위 18년째 되는해에 실시하였다(3절). 역대하 34:8절과 비교해 보라. 그는 훨씬더 일찍이 '하나님을 구하는 일'을 시작하였다(대하 34:3절에 나타나있는 것처럼). 그러나 개혁사역이 서서히 진행된 것은 위협때문이었으며, 많은 반대에도 부딪쳤다. 그는 서기관 사반을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보내어 문지기들이 성전건축을 위해 거두어 들인돈을 계수하게 하였다(4절). 이들도 요아스가 돈을 거둔 동일한 방법으로 돈을 거두어 들인것 같다(12:9). 이렇게 거두어진 돈은 성전보수를 위해 내어놓도록 대제사장에게 명하였다(5,6절). 그리고 이제 일꾼들이(요아스시대와 마찬가지로) 잘 처신하여 왕이 '저희손에 붙인 은을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7절). 이것은 분명히 일꾼들을 칭찬하는 말이다.
(4) 성전보수 도중 '율법책'이 발견되어 왕에게로 가져간 것은 다행한 일이다(8,10절). 혹자는 이책이 모세가 직접 손으로 쓴 모세오경의 원본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다른 이들은 고대의 권위있는 사본이라고 생각한다.
1) 이 율법책은 분실되었거나 아니면 발견하지 못했던것 같다. 성경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별 관심없이 아무데나 버려두고 무시하고 구석에 집어던져서 그냥 잊혀진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우상을 숭배하는 왕이 성경을 묻어버림으로써 다시는 빛을 보지못하도록 고의적으로 악의를 품고 감추어 버렸을 것이다. 아니면, 어떤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성경이 적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게하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보존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성경보존의 도구가 누구였든지간에, 그안에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여야 한다. 이것이 그당시 있었던 유일한 모세오경의 권위있는 사본이었다면, 그때 힐기야의 손에 의해 이책이 발견되게 하신, '구하지 아니하던' 때에(사 65:1) 발견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는 무릎을 꿇고 감사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보존하신다는 것은 성경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2) 이 율법책이 그당시의 유일한 권위있는 사본이었든지 아니었든지간에, 그안에 포함된 내용이 왕과 대제사장에게는 전혀 새로운 내용이었던것 같다. 요시야왕은 이 율법책을 읽을때 그의 옷을 찢었다. 만약 율법책이 분실되고 없었더라면, 요시야가 어떤정치를 펴는것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는' 것인지,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어떻게 종교의식을 지켜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백성들은 일반적으로 율법요약본을 소지하고 있었다고도 생각할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법률요약집과 같은 것인데, 그들에게 종교의식에 대한 지침을 주지만, 어떤생각이 적당한 것인가, 특히 하나님의 여러가지 약속과 경고(레 24장과 신 28장 이하)는 그런 요약본이었을 것이다. 이 율법은 요시야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었으므로, 그는 율법조항에 큰감명을 받았다(13절). 성경의 요약, 발췌, 혹은 명언수집등은(물론 필요할때도 있겠지만)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하나님의 뜻을 전달, 보존하는데 있어서 성경 그자체만큼 유용하지 못하다.
3) 율법책이 이처럼 시기적절하게 발견됨으로써 요시야가 시작한 복된 개혁사업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촉진시킨 것은 요시야와 그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총의 증거이며, 자비의 표시였다. 성경을 대중적인 언어로 번역한 것은 종교개혁의 영광이며 능력이며 기쁨이었던 사실을 기억하자. 그들이 선한일을 시작할때에, 즉 성전을 수리할때에 율법책을 발견한 사실을 주목하자. 현재 지식을 따라 자신들의 의무를 수행하는 자들은, 그과정에서 지식을 더 얻게될 것이다.
4) 대제사장 힐기야는 율법책을 발견하자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다. 그가 사방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 함께 기뻐하자. 내가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가치를 측정할수 없는 보물을 내가 발견하였노라. 자 이것을 왕에게 가져가자. 이것은 왕관의 보석가운데서도 가장 값진 보물이다. 그리고 왕앞에 읽어드려라. 왕은 지금 그조상 다윗의 모든길로 행하고 계신다."

Ⅱ. 유다멸망의 연기 22:11-20
이 율법책은 고문서로서 왕궁서가에 보관되거나 진귀한 골동품취급을 받거나 하지않고, 왕앞에서 낭독되었다. 성경을 진실로 존중하는 사람은 매일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과 대화하며, 매일의 양식으로 삼으며 성경에 비추어서 행하는 자이다.
(1) 율법책낭독은 요시야왕에게 큰감명을 주었다. 요시야왕은 오래전부터 자기왕국의 상태를 왕국안에 있는 우상숭배와 불경건으로인하여 악하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지금 자기앞에서 낭독된 율법으로 말미암아 그는 자기의 왕국이 참으로 얼마나 악한지 이제사 깨달았다. 그가 자기옷을 찢었다는 것은 자기마음을 찢었음을 보여주는 행동이다.
(2) 요시야왕은 이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13절).
1) 여기에서 요시야왕이 알고 싶어하던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로 생각할수 있다.
①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고, 우리 죄로인하여 받아야 마땅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방하려면 우리가 어떤길을 택하여야 하는가를 물으라."
② "우리가 무엇을 예상하며, 어떻게 대비하여야 되는가를 물으라." 요시야는 다음사실을 인정하였다. 우리열조가 이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13절). 즉 "만약 이책이 의의 법칙이라면, 우리조상들이 크게 그릇 행한것이 분명하다. 의심할 여지도 없지만 이책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우리는 모두 부패하였고, 또한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에 대하여 신실하실 것이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말하신 진노가 크도다'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 요시야는 이러한 내용을 묻기위하여, 사자들을 보냈다.
① 귀족들 몇사람을 보냈다. 이들의 이름은 12절에, 또다시 14절에 기록되었다.
② 여선지자 훌다에게 보냈다(14절). 미리암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는 일을 도왔으며(미 6:4), 드보라는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이제 훌다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교훈하였다. 그가 한사람의 아내라는 사실은 그가 여선지자가 되는일에 전혀 지장을 주지않았다. 왜냐하면 '결혼은 아주 존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귀할때 선지자들이 있었으며, 후에 예언이 그쳤을때, 더많은 성경을 가지게 된것은 예루살렘에 주신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왕의 사자들은 훌다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이것은 그의 남편이 성전에서 직책을 맡고있었기 때문일 것이다(그는 예복관리인이었다). 왕의 사자들은 전에도 다른건에 대하여 훌다에게 상의한 적이 있으며, 그녀의 입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것 같다. 훌다는 예루살렘 성안에, 왕궁에서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유대학자들에 의하면 훌다는 여인들, 즉 성전을 섬기는 여인들가운데서 예언하였다고 한다. 이견해에 비추어보면, 예루살렘 둘째구역은 성전을 섬기는 여인들이 거주하는 장소인것 같다.
(3) 요시야는 이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훌다는 여선지자의 어투로, 즉 모든사람은 평등하게 취급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왕의 질문에 대한 응답을 말해주었다.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고하기를(15절).
1) 훌다는 왕에게 하나님께서 어떤심판을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 예비하고 계시는지 알려주었다(16,17절). 내가 이곳과 그거민에게 재앙을 내리되…나의 이곳을 향하여 말한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2) 또한 하나님께서 요시야를 위하여 어떤은혜를 예비하고 계시는지 알려주었다.
① 하나님은 요시야의 큰온유함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관심을 유념하셨다.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감명을 받고, 말씀을 두려워하고 굴복하였다. 이것이 그의 마음의 온유함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를 인정하셨다. 여호와앞 곧 내앞에서 겸비하여(19절). 하나님의 진노를 가장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것을 당하기를 가장 원치 않는다.
② 하나님께서는 요시야의 죽음이후에까지 유다의 멸망을 유예하셨다(20절).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서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하나님께서는 그가 살아서 유다의 멸망을 보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주셨다. 만일 그가 정말 풍성히 보상을 받을 내세가 없다면, 이것이야말로 그의 뛰어난 경건에 비하여 보잘것 없이 작은 보상일 것이다(히 11:16). 요시야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가운데서 죽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보장하는 평화는 단순히 죽음의 상황, 즉 전장에서 죽지않는 정도가 아니며, 죽음의 본성을 바꾸어버리는, 혹은 죽음을 깨뜨리고 승리할수 있는 평화이다.

# 핵심
22:1-13
요시야왕의 탄생은 이미 약 300년전 여로보암시대에 예언되었다(왕상 13:2). 요시야는 다윗이래로 가장 경건한 왕이었다. 그는 성전을 수리하는 일을 시작으로 개혁을 일으켰다.
요시야시대(22장)
요시야는 B.C. 640-609년경에 유다를 다스렸다. 당시 앗수르제국이 쇠퇴일로를 걷고 있었기때문에, 그는 앗수르로부터 독립하였다. 그리고 새로 발흥하던 바벨론과는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요시야는 안정된 발전을 이룩할수 있었으며, 북이스라엘의 일부까지 통치했던 것으로 보인다(23:4,15-20).

# 묵상
성전의 의미 ( 22:3-7 )
이스라엘에서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며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출25:10-22).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성전임을 말씀하셨습니다(요2:19-22). 성도의 몸도 성전이 됩니다(고전3:16; 6:19). 성전수리는 오실 메시야에 대한 기대이며 나아가 자신의 삶이 변화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인생 ( 22:8 )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인생은 우매해지고 늘상 탄식하며 본원적인 갈증으로 영원히 고통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죄와 허물로 죽은 인생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토록 해주는 영혼의 등불이요 삶의 길잡이가 되기 때문입니다(시119:105). 그러므로 육신의 양식으로만 살아가는 자는 살았으나 근본적으로 죽은 자라고 단언할수 있습니다.
요시야왕이 취한 행동 ( 22:11, 19 )
말씀대로 지키지 못한것을 알고 슬퍼했습니다. 신약의 유대인들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하고서는 어찌할바를 몰라했습니다(행2:37).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심령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히4:12). 그러한 말씀앞에 선 인간의 모습은 추함과 패역입니다. 또한 그렇게 말씀앞에 설때 겸비한 자가 되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태도 ( 22:14-20 )
전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뜻대로 해석되거나 풀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그대로 전해야 하는것이 말씀을 전하는 자들의 태도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 ( 22:15-20 )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하여금 복을 얻게하고, 불순종하는 자로하여금 심판을 받게할 것이라 선언하셨습니다(신11:26-32). 그런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인생으로 영생과 영벌을 결정짓게 해주는 참된 척도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 해설
요시야왕의 통치와 성전수리 ( 22 )
요시야왕은 다윗의 정직한 길로 행하여 하나님을 잘 섬겼으며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성전을 수리하였습니다. 성전수리 중에 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은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로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었고, 요시야는 그 말씀앞에 두려움에 떨며 옷을 찢고 회개하였습니다. 훌다 여선지자는 유다의 범죄로인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예언하였으나, 회개한 요시야왕에 대해서는 환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을 선고하였습니다.
1. 요시야왕의 선정
1)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함
요시야에 대하여 본서 기자는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치 행하였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요시야가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지 않고 마음을 오로지하여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겼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요시야왕은 선왕인 아몬왕의 극악한 우상숭배를 개혁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일생은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었습니다.
a.여호와를 경외함(잠14:2)
b.정직함을 들으심(시17:1)
2) 다윗의 길로 행함
요시야왕은 다윗의 길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고 본문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다윗의 길은 여로보암의 길과 대조되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간 왕들의 척도가 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평가는 요시야가 평생동안 시종일관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지 아니하였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솔로몬왕은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말년에 우상숭배의 죄에 빠져 범죄함으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어지는 비극의 동기를 제공했습니다. 므낫세는 오랜세월을 우상숭배의 죄에 빠졌다가 말년에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한번도 우상숭배의 가증한 죄에 빠지지않고 여호와만을 섬겼습니다.
a.정직히 행한 다윗(왕상15:5)
b.계명을 지킴(수1:7)
c.세속과 짝하지 아니함(약4:4)
2. 요시야왕의 성전수리
1) 힐기야에게 사람을 보내는 요시야
요시야왕은 성전수리를 위해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부윤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보냈습니다. 이들은 힐기야에게 백성들이 성전세로 바친 헌금을 전해주는 임무를 띠고 있었습니다. 요시야시대의 대제사장 힐기야는 요시야의 서기관에게 돈을 받아 그돈을 여호와의 전역사를 감독하는 자의 손에 붙여 성전수리 사역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성전을 수리하는때는 많은돈이 필요했고 사람도 필요했습니다. 재료를 사야했고 유다의 왕들이 헐어버린 전을 위하여 들보를 만들기도 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술자가 필요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성전수리에 참여한 기술자들이 그일을 진실히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기술로 하나님의 전을 온전히 회복하는 일에 대해 성심성의껏 봉사했던 것입니다.
a.자원하여 드리는 은(출35:5)
b.여호와의 전을 맡은자(왕하12:11)
2)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한 힐기야
요시야의 성전수리 사역을 감당하던 대제사장 힐기야는 여호와의 전에서 연보한 돈을 꺼내려다가 모세에게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였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는 율법책을 발견하자, 서기관 사반에게 율법책을 발견하였음을 알리고 왕께 보고하도록 하였습니다. 사반은 요시야왕에게 나아가 복명하며 요시야가 명한대로 성전수리 사업을 준행했음을 고하고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하였음을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사반은 요시야왕 앞에서 그율법책을 읽었습니다.
a.연보궤에서 발견됨(대하34:14)
b.모세에게 주신 율법(출24:12)
c.평생 가까이할 말씀(신17:19)
3) 옷을 찢고 회개하는 요시야왕
사반이 낭독하는 율법의 내용을 들은 요시야왕은 곧 자기옷을 찢었습니다. 옷을 찢는것은 히브리관습에서 극한 슬픔과 위기의식을 나타냅니다(참조, 민14:6;수7:6). 요시야왕은 율법의 말씀을 통하여 유다백성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으며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닫고 극도의 공포심에 잠겼던 것입니다. 요시야왕은 신하들에게 유다의 앞날에 대해 여호와께 묻도록 지시합니다. 그것은 율법에 기록된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그말씀대로 임할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것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요시야왕은 스스로는 경건한 자였지만 백성의 죄로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며 괴로움에 빠졌던 것입니다.
a.슬픔을 나타냄(창37:34)
b.들음에서 나는 믿음(롬10:17)
3. 훌다의 예언
1) 예언자 훌다의 심판예언
요시야왕의 명을 받아 유다의 알날에 대하여 물으러간 자들은 여선지 훌다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였습니다. 훌다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습니다. 훌다는 유다왕이 읽은 책의 모든 말씀대로 유다백성에게 재앙이 임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유다왕 요시야가 읽은 율법책의 내용이 성경 어느부분인지는 명확하게 알수 없으나, 요시야왕이 옷을 찢으며 회개하였던 것으로 보아 죄악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을 경고하는 말씀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참조, 신28:15-68). 그심판에 대한 말씀에는 유다백성이 이방민족에게 멸망당하여 포로가 되는 수치를 당하게 될것이라는 예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다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저주를 선포하신 이유는 그백성이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신을 섬김으로써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파기하고 범죄에 빠진 유다백성은 진노의 형벌을 받지않을수 없게된 것입니다.
a.여선지 드보라(삿4:4)
b.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함(신29:25)
c.하나님의 진노(시74:1)
2) 요시야에 대한 구원예언
하나님께서는 훌다를 통하여 유다에 대한 저주를 선포하시면서도 요시야왕에게는 관용을 베푸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즉 요시야왕은 이와같은 유다에 내리게될 재앙과 멸망의 수치를 체험하지 않고 열조에게로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말씀은 요시야가 죽은후에야 유다에 재앙이 임하게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왕으로서 백성과 나라의 멸망을 본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실제로 요시야는 애굽의 바로느고와의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시야의 생명을 거둬가심으로써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는 인간의 죽음까지도 축복이 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에 대해 심판을 선언하시면서도 요시야왕에게는 은혜와 관용을 베푸신 것은 요시야왕의 회개 때문이었습니다.
a.겸손한 자를 구원하심(사57:15)
b.상한심령을 구원하심(시51:17)
결론
유다에 임한 심판선포는 하나님의 공의를 증거하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심판주인 것입니다. 성도는 요시야왕과 같이 철저하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앞에 겸비히 행하여 심판날에 구원을 받는복을 받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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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므낫세의 폭정 21:1-9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은 이제 누추해져 버렸고 예루살렘의 모든영광과 희락은 쇠퇴하여 사라져갔다. 본문에서는 므낫세왕의 치세가 모든국면에서 그의 아버지인 히스기야왕의 치세와는 정반대이며, 어떤의미에서는 히스기야왕이 이룩해놓은 업적을 완전히 붕괴시키는 것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1) 므낫세는 어려서 왕이 되었다. 므낫세가 위에 나아갈때에 나이 십이세라(1절). 므낫세는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42세 되던때, 즉 히스기야가 병에서 회복된후 3년만에 태어났다. 그러나 므낫세는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면모를 지닌 자였다.
1) 므낫세는 공명심에 부풀어 있었고, 스스로 아주 지혜로운 자라고 생각하고, 자기아버지가 이룩해놓은 업적을 붕괴시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2) 므낫세는 유혹자들의 말에 쉽게 넘어가서 곁길로 나갔다. 히스기야의 개혁에 반대하고 옛우상숭배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 므낫세왕을 부추겨서, 자기들 마음대로 왕의 권력을 악용하였던 것이다.
(2) 므낫세는 유다의 여러 왕들가운데서 최장기간인, 55년이라는 아주 오랫동안을 치리하였다. 그는 악한왕으로서 오랫동안 통치한 유일한 왕이다. 그러나 므낫세가 왕이 되어 치리했던 초기 얼마동안은, 아마도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치세하던 방향으로 계속 진행되었으리라고 생각할수 있으며, 또한 그의 치세말기에서도, 그가 회개한 이후에는 경건한 신앙의 자세를 갖게 되었으리라고 기대할수 있다. 비록 그가 55년이라는 오랜기간을 왕위에 있었으나, 거기에는 그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한 기간이 포함되어 있다.
(3) 므낫세는 매우 악한정치를 하였다.
1) 므낫세의 일반적인 악한정치는 다음과 같다.
①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② 이방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2절), 아합의 소위를 본받아서(3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9절).
2) 특별히 행한 악한정치는 다음과 같다.
① 그부친 히스기야의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3절).
② 그는 다른신들, '바알'과 '아세라'상을 세우고, 하늘의 일월성신 즉 해와 달과 다른 위성들과 별들의 상을 세우고, 이것들에게 경배하고 섬겼으며(3절), 그는 자기가 만든 신상에 이신들의 이름을 붙이고 충성을 바쳤다. 이것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5절), 물론 그 제단위에 희생을 드렸다.
③ 또 그아들을 불가운데로 지나게 하며(6절). 이렇게함으로 하나님께 호신함을 상징하는 할례의 인침을 멸시하고, 몰록에게 자신을 드려 헌신하는 자가 되었다.
④ 므낫세는 마귀에게 묻고, 사울처럼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6절). 점장이와 마술사들(이들은 성전과 구름, 길일과 흉일, 길조와 흉조, 새가 나르는 모양, 짐승들의 내장 등을 이용하여 다가올 일을 예언하는체 하는 자들이다)이 므낫세의 측근이 되었다.
⑤ 므낫세가 무고한 피를 흘렸다는 기록도 있다(16절).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선지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예루살렘에 지우셨는데, 이 선지자들가운데 많은사람을 므낫세가 죽였을 것이다.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므낫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톱으로 켜서 죽이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이들은 히브리서 11:37절에 언급된 것이 바로 이사건이라고 생각한다.
3) 므낫세의 우상숭배 행위가운데서 가장 나쁜 세가지 행실은 다음과 같다.
① 므낫세는 '여호와의 전에'(4절), 전의 두마당에(5절), 즉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이름을 영원히 둘찌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집에(7절) 그의 우상과 우상의 제단을 세웠다.
② 므낫세는 이렇게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이스라엘과의 하나님의 언약을 크게 멸시하였다.
③ 므낫세는 이렇게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고, 타락시켰고, 우상숭배로 끌어들였다(9절).

Ⅱ. 예루살렘에 예고된 심판 21:10-18
여기에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의 운명이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그들에게 가르치시고, 그들의 의무를 기억나게 하기위하여 선지자들을 보내셨다. 선지자들은 이사역이 성공하지 못하였을때,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그들의 죄를 책망하였다. 그래도 별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죄인들이 오히려 완악하게 죄악을 계속할때, 다음으로 선지자들이 할일은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해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의무감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이 심판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깨어서 회개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1) 므낫세의 죄상을 열거했다. 이것은 심판의 근거가 된 기소장인 것이다. 유다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전에 있던 아모리사람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우상으로 유다를 범죄케 하였도다(11절).
(2) 이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고가 내려졌다.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자마다 두귀가 울리리라(12절). 이심판의 소리를 세상사람들이 듣고, 많은사람이 목격하게 될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심판의 다림추를 예루살렘에 드리우신다면, 그것은 '아합의 집을 다림보던 추'가 될것이며, 그 악한집에 내리신 동일한 심판을 받을것으로 드러날 것이다(비교 사 28:17).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찌라(13절).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그릇을 씻을때 그릇을 비우듯이 예루살렘에서 찌꺼기같은 주민들을 깨끗이 비우시리라는 것이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며, 그땅은 안식을 누릴 것이며, 깨끗이 씻어진 접시처럼 정돈될 것이다." 이것은 예루살렘을 파괴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화하기 위함이다. 접시는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나거나 녹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단지 깨끗하여 질것이다. 본문은 죄가 유대나라의 비극의 알파이자 오메가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열왕기하에 기록된 므낫세 행적의 전부이다. 즉 그는 죄를 선고받았고 저주를 받았다. 그러나 역대기에는 그의 회개가 하나님의 용납하신 일이 더 기록되어 있다. 므낫세가 그열조와 함께 자매 그궁궐 동산에 장사되고(18절). 이것은 므낫세의 유언대로 행해진 조치인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죄로인하여 진정으로 겸비하여져서, 스스로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할자, 즉 다윗의 아들의 이름을 감당치 못할자로 여겼으므로 시신조차도 '열조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할자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죄인이 회개하고 죽어서 공동묘지에 묻히는 것이, 회개하지 않고 죽어서 교회마당에 묻히는 것보다 훨씬더 낫고 더명예로운 일이다.
 
Ⅲ. 유다와 아몬  21:19-26 
므낫세의 아들 아몬의 짧고 명예스럽지 못한 통치가 기록되었다. 므낫세가 45세이후에 태어난 아들이다.
(1) 아몬의 통치는 아주 악하였다. 그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그길로 행치 아니하더니(22절). 그는 그열조에게 주신 계명에 불복종하였다. 그는 자기아버지의 우상숭배의 자취를 따랐고, 므낫세가 말기에 없애버렸던 것들을 부활시켰다.
(2) 아몬의 최후는 아주 비참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그의 신하들은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였다(23절). 그는 불과 2년동안 다스렸다. 그땅 백성들의 대표자들이 다음의 두가지 일을 행하였다.
1) 그들은 왕을 죽인 반역자들을 재판하고, 사형에 처하였다. 비록 그가 악한 왕이었다할지라도, 그들의 왕이었다. 따라서 그의 죽음을 복수하는 것이 충성의 한 방편이었다.
2) 그들은 '그아들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을 삼았다. 이것은 비록 요시야가 어렸지만, 그에게 있는 좋은성품을 보고 그들이 한 행동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그들에게 덕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가장 악한 왕들중의 한사람에게서 모든 유다 왕들중에 가장 선한왕의 한사람에게로 행복한 전환을 하게되었다.

# 핵심
21:1-18
므낫세의 악한통치와 심판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경건했던 부친 히스기야가 없앴던 우상숭배를 다시 도입했다.

# 묵상
므낫세의 통치 ( 21:1-9 )
히스기야의 아들로 유다왕중 최장수 왕이지만 하나님께 악을 행했습니다. 그는 산당을 세우고 이방신을 섬겼으며, 아들을 제물로 바치고 점을 치며 사술을 행했습니다. 이것을 볼때 은혜받은 가정에서의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대를 이어 전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큰복입니다.
은혜에서 떠난자가 행하는 악 ( 21:9, 11 )
이들은 오히려 이방인들보다 더심한 악을 범합니다. 인간의 타락은 죄때문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복음을 받지않은 사람들은 죄가 죄인줄 모르지만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죄를 알기에 타락하게 되면 이전보다 더심하게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유다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징계 ( 21:13, 14 )
북왕국 이스라엘처럼 남왕국 유다도 이방인의 손에 넘어가게 하셨습니다. 이방인에게 넘겨지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유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악을 행할때는 이방인들을 막대기와 채찍으로 삼으셔서(사10:5) 그들을 쳐서 아픔을 겪게하시지만 결국은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악인의 생애 ( 21:16-18 )
하나님은 의인의 해가 이땅에서 길게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악인의 생애가 긴이유는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사 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자비의 기간을 유예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은 언젠가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므낫세와 아몬의 죄 ( 21:19-26 )
대하33:10-13절은 므낫세가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오면서 회개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을 그의 아들 아몬의 행적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아몬은 여전히 회개하기전의 므낫세와 같이 행동했습니다. 이들의 죄악, 특히 므낫세의 죄악은 너무 치명적이어서 하나님께서 그의 죄악으로인하여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십니다(렘15:4).

# 해설
므낫세와 암몬왕의 치세 ( 21 )
므낫세는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을 무색케 할정도의 가증한 우상숭배를 행하여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징벌이 선포되게 했습니다. 그의 아들 아몬도 그아비의 행위를 본받아 악행을 일삼음으로써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신복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1. 므낫세왕의 악행
1) 우상숭배를 행함
므낫세는 십이세에 왕이되어 오십오년을 통치했습니다. 그는 부친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정책을 좇기는커녕 오히려 히스기야가 없앤 우상의 산당들을 다시 세우고 그앞에서 절함으로써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본장에서는 므낫세가 히스기야의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악명높은 왕인 아합의 소위를 본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바알을 숭배하였으며, 특히 여호와께서 구별하시어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으로 삼으신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들을 위하여 단을 쌓음으로써 가증한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또한 아들을 불가운데로 지나게하는 등의 하나님이 가증히 보시는 일들을 일삼아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였습니다.
a.몰렉숭배 금지계명(레18:21)
b.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함(왕하17:17)
2)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않은 이스라엘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성전의 의미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성전은 여호와의 이름을 영원히 예루살렘에 둘것임에 대한 약속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율법을 지켜행하면 다시는 가나안땅에서 떠나 유리하지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잊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때 심판하신 가나안의 거민들보다 더욱 악한일을 행함으로써 가나안땅에서 쫓겨남을 당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a.성전에 가득한 영광(왕상8:10-11)
b.율법준수 명령(출13:9)
c.말씀을 거부함(슥7:11-12)
2. 므낫세에 대한 심판예언
1) 므낫세와 백성에게 임한 여호와의 저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므낫세와 백성의 죄악으로인하여 심판을 내리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보던 추로 예루살렘에 베푸시겠다는 말씀은 앗수르를 통하여 유다를 징벌하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같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씻어 버리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가나안땅을 더럽히는 가증한 죄악을 일삼은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땅을 우상숭배로 더럽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이방인이나 이스라엘 백성이나 차별없는 심판을 내리시어 진멸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과 배치되는 자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땅에 거할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므낫세의 죄악만으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가증한 배역죄로 인하여 심판을 내리심을 본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심판을 행하시지 않고 회개할 시간을 충분히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을 완악하게하여 심판을 자초하였던 것입니다.
a.듣는자마다 귀가 진동함(렘19:3)
b.임박한 재앙(왕하22:16)
c.패역자를 버리심(렘6:28)
2) 성취된 므낫세에 대한 심판예언
하나님의 심판예언에도 불구하고 므낫세와 그백성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치 않고 우상숭배의 가증한 행위를 그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앗수르왕의 군대장관들로 유다를 치게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므낫세는 앗수르의 포로가 되어 쇠사슬로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수치를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백성이 범죄에 빠질때 이방나라를 들어 징계의 채찍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온인류의 역사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삶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는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징계의 채찍과 같은 것입니다. 므낫세도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을 맞고는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a.맹렬한 노를 쏟으심(애4:11)
b.환난을 당해 겸비해짐(대하33:12)
3. 아몬왕의 통치
1) 므낫세와 같은 악을 범하는 아몬
므낫세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아몬이 왕위를 계승했을때 아몬은 므낫세의 악행을 그대로 답습하였습니다. 므낫세가 만든 아로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여 섬겼던 것입니다. 아몬이 우상숭배를 다시 하게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범죄였을뿐 아니라 그아비 므낫세의 명을 어긴 것입니다. 므낫세는 말년에 회개하고 유다백성에게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고 명했습니다. 그러나 아몬은 므낫세가 죽자 아비의 명을 어기고 다시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아몬의 모친이 욧바 하루스의 딸 므술레멧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몬의 모친이 이방여인이었음을 밝힘으로써 아몬의 악행배경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불경건한 어머니의 아들이 범죄에 빠짐은 너무나도 당연할지 모릅니다.
a.주를 경외해야 함(전12:13)
b.우상제거 명령(신7:5)
2) 더욱 범죄한 아몬
아몬은 므낫세와 같이 스스로 겸비치 않았을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범죄하였습니다. 아몬은 므낫세와 마찬가지로 친앗수르 정책을 폈는데, 아몬은 므낫세의 종교개혁 정책이 외교에 도움을 주지않을 것을 우려하여 반개혁 정책을 펼쳤던것 같습니다. 므낫세는 스스로 겸비하여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했습니다(참조, 대하33:12-13). 그러나 아몬은 끝까지 회개치 아니함으로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똑같이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지만 회개의 유무차이는 두사람의 인생행로를 바꿔놓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행위가 완벽한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자를 찾아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a.악행에 대한 보응(롬2:8-9)
b.심은대로 거둠(갈6:7)
3) 신복의 반역으로 죽음을 당한 아몬
이십이세의 젊은나이에 왕위에 오른 아몬은 신복들의 반역으로 궁중에서 죽음을 당하여 2년간의 짧은 통치를 끝마치게 됩니다. 아몬은 2년동안 므낫세의 악행만을 본받아 행함으로 하나님께 범죄하다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죽게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몬의 신복들을 사용하시어 아몬을 심판하셨지만, 그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국민들의 손에 의해 반역자들도 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죄는 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유다백성은 반역자들을 죽이고 그아들 요시야로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습니다.
a.공의로운 심판(시20:6)
b.행위대로 심판(벧전1:17)
결론
므낫세와 아몬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우상숭배를 행함으로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성도는 범죄후에는 항상 하나님의 징벌이 있음을 기억하여 하나님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거룩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지키시며 복을 내려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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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히스기야의 병과기도 20:1-11
앞장에서는 불경건한 산헤립이 죽으리라고 예상할수 없는 자리에서 갑자기 멸망당한 사실이 언급되었고 이제 여기서도 기도하는 히스기야가 살가망이 전혀 없어보이는 자리에서 구원받게되는 사실을 보게된다.
(1)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그때에. 이때는 앗수르왕이 예루살렘을 포위한 같은 해이다. 어떤이들은 이때가 바로 앗수르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때이거나, 포위할 준비를 하고있던 때라고 생각한다. 다른사람들은 이때가 산헤립이 패전한 직후라고 생각한다. 히스기야는 승리의 순간에 병마에 사로잡혔다. 본문에서 '종처'라고 표현된 것으로 보아 그의 병은 유행성 종창인것 같다(7절). 앗수르군사들을 죽게했던 동일한 질병이 히스기야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당시 모든 사람들가운데서 가장 하늘의 은총을 많이 입은 히스기야도 병에 걸려 죽을지경에 이르게된 것이다.
(2) 히스기야는 죽음을 준비하라는 경고를 받았다. 히스기야에게 이경고를 전해준 사람은 이사야 선지자였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에게 말한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히스기야가 걸린병은 치명적인 질병이어서 하나님의 자비가 기적으로 회복되지 않는한 그는 죽게되리라는 것이었다.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1절).
2) 따라서 히스기야는 빨리 죽음을 준비하여야 된다는 것이었다. 너는 집을 처치하라. 회개하고 믿음을 강하게 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함으로 마음을 정돈하고, 즐겁게 이세상을 하직하고 내세를 영접하라. 집안을 정리하라. 유언을 남기라. 재산을 처분하라. 그리고 왕위를 계승할자의 편의를 위하여 할수 있는한 최선을 다하여 국사를 정돈하라.
(3) 이말씀을 전달받은 히스기야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2절). 병든자가 있는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며, 또한 그자신이 직접 기도하게 하라. 앞에서 히스기야는 믿음의 기도가 평화의 응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보게되었다. 지금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만약 이 사형선고를 바꾸어 놓을수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기도를 통하여 번복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사형선고가 번복될수 없는것이라 할지라도, 기도는 죽음에 대한 최선의 예비책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일을 잘 마무리할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을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사실을 살펴보자.
1) 히스기야는 다음과 같은 환경에서 기도하였다.
① 아마도 그는 침대에 누운채로, '낯을 벽으로 향하였던'것 같다. 이렇게 한것은 아마도 그가 은밀히 기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평소에 하던대로 골방에 들어갈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위의 신하들에게서 돌아누웠다. 또는 어떤이들이 생각하는대로 할수만 있다면 성전에 올라가는 것과 거기에서 기도하는 것을 얼마나 원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히스기야는 얼굴을 성전쪽으로 돌렸을 것이다(19:1,14에서 처럼).
② 히스기야는 '심히 통곡하였다'. 어떤이들은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했다는 사실은 그가 죽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추측한다. 영혼과 육체의 분리에 대하여 어떤 두려움을 갖는것은 인간의 본능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히스기야에게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한창 일할때여서 이제막 개혁의 선한일을 시작했는데 만약 그가 죽어버린다면, 백성들의 타락때문에 이 모든것이 수포로 돌아갈까봐 그는 두려워했던 것이다. 히스기야의 기도에 있어서 그의 눈물을 해석해볼때 우리는 그의 눈물에서 그가 속박과 고통을 가져오는 것일지도 모르는 죽음에 대한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증거를 찾을수 없다.
2) 히스기야의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진실과 전심으로 주앞에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3절). 즉 "여호와여 저의 행위를 기억하시고 이와같이 계속 행하도록 저를 보존하여 살게 하시든지, 저의 사역이 다 이루어졌다면 이와같이 행한자들을 위하여 당신께서 예비해두신 그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소서." 히스기야가 기도한 내용은 "주여 나를 보존하옵소서", 혹은 "주여 저를 데려 가시옵소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나이다"가 아니라, "주여 저를 기억하옵소서, 제가 죽으나 살아있으나 당신의 것이 되게 하옵소서"이다.
(4)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이 기도에 즉각 응답하셨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중간까지 갔다가 다른메시지를 가지고 다시 히스기야에게로 돌아와서(4,5절) 그가 반드시 회복하게 되리라는 말씀을 전해주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가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하시지 않으셨겠지만 히스기야가 기도했으므로 그를 위하여 역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히스기야를 '내백성의 주권자'라고 부르셨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죽음을 유예하신 것이 자기백성을 위함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또한 하나님 자신을 '다윗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심으로써 다윗에게 세우신 언약을 생각하셔서 히스기야의 죽음을 연기하셨다는 것을 암시하셨다. 이 기도의 응답에서 다음의 사실을 살펴보자.
1)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존중하셨다. 내가 네기도를 들었고 네눈물을 보았도다.
2)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보다 더크게 응답하셨다. 그는 하나님께서 단지 자기의 성실을 기억해달라고 기도했을 뿐인데도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다.
① 히스기야를 병에서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② 히스기야가 감사드리러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정도로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③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더 연장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④ 예루살렘을 앗수르왕에게서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6절). 이것은 히스기야가 자신의 병회복만큼이나 바랐던 일이었으므로 여기서 이일에 대한 약속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5) 그의 병을 치료하기위하여 한가지 치료방법이 사용되었다(7절). 이사야가 그의 의사가 되었다. 이사야는 외부치료를 지시했는데, 이것은 아주 값싸고 일상적인 방법이었다. "'무화과 반죽'을 그종처에 붙여놓아서, 종처가 곪아서 터지게 하라. 그러면 그병의 근원이 제거될 것이다." 우리가 병들었을때도 이와같이 적절한 치료방법을 사용하는 일은 우리가 해야할 사항이다. 그렇게 하지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의뢰하기보다 시험하는 격이 된다. 평이하며 정상적인 의약품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와같은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사용할수 있도록 은총으로 주신 것이다.
(6)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믿음의 용기를 북돋워주시기 위하여 표적을 주셨다.
1) 히스기야는 표적을 구하였다. 그가 표적을 구한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나 약속을 믿지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약속받은 일들이 아주 위대한 일이었으므로 그런식으로 확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히스기야가 '무슨징조가 있나이까'라고 물었던 그징조는 그가 재판의 왕좌나 성문에 올라갈 것에 대한 징조가 아니라,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하실 징조를 물은 것이다. 히스기야는 '시온의 딸의 성문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위하여 병에서 회복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목적이 아닌 다른목적을 가지고 사는삶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2) 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것인가 뒤로 물러나게 할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히스기야의 선택에 맡겨졌다. 일영표의 1도가 반시간이며, 이 제안이 정오에 이루어졌다고 가정한다면, 이것은 다음과 같은뜻이 된다. "해가 아침 일곱시 위치로 되돌아갈것인가 저녁 다섯시 위치로 나아갈 것인가?" 그는 겸손하게 해가 십도 뒤로 물러갈 것을 원하였다. 왜냐하면 해가 앞으로나 뒤로 물러가는 이 두가지 현상이 모두 큰기적임에는 틀림없기에, 해가 앞으로 전진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지만, 뒤로 물러가는 것이 더신기하게 보일것이기 때문이며, 히스기야의 '소년의 때를 회복하는 것'(욥23:25)이라는 의미를 더 내포함으로해서 그의 생애의 날을 연장하게 된다는 표시가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일은 이사야의 기도로 그대로 이루어졌다(11절). 하나님께서 해를 십도 뒤로 옮기셨고, 히스기야는 이것을 아하스의 해시계가 뒤로 물러가는 것을 보아 알았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방의 창문을 통하여 볼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현상이 세상의 모든 해시계, 심지어 바벨론에 있는 해시계에서 관찰되었다(대하32:31). 그런데 이 태양의 후진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는지 따라서 하루해가 보통때보다 열시간이 길어졌는지, 아니면 박식한 페트릭주교가 생각하는대로 이일이 갑자기 이루어졌고, 얼마후에 다시 정상궤도를 회복하여 천체의 현상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않았는지는 알수 없다.

Ⅱ. 히스기야의 죽음 20:12-21
(1) 그의 병회복을 축하하기 위하여 바벨론왕에게서 사신이 왔다(12절). 이때까지 바벨론왕은 앗수르왕을 섬기는 입장이었고 바벨론의 수도는 니느웨였다. 바벨론이 앗수르의 속국이라는 사실은 17:24절에서 볼수 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상황이 바뀌어서 앗수르가 바벨론왕의 속국이 되게된다. 이 바벨론은 두가지 이유때문에 히스기야에게 치하하는 편지를 보냈다.
1) 종교적인 이유때문이다. 바벨론사람들은 태양을 숭배하였다. 그리고 태양이 히스기야를 위하여 뒤로 물러갔으므로, 그들의 신들이 히스기야에게 얼마나 큰호의를 베풀었는지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신들이 히스기야에게 한것처럼 하지않을수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 정치적인 이유때문이다. 당시 바벨론왕이 앗수르왕에 대한 반란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히스기야를 그들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유리하였다. 그리고 앗수르가 약화된 것은 히스기야와 히스기야의 하나님 덕분이라는 것도 알고있었다. 또한 그는 이처럼 천상세계로부터 많은 호의를 받고있는 자와 동맹하는 것이야말로 더할수 없이 강력하고 가치있는 동맹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2) 히스기야는 이 사신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13절).
1) 히스기야가 사자의 말을 듣고(13절). 그들이 우상숭배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는 그들의 우두머리인 바벨론왕과 동맹을 맺으려고 하였다.
2) 히스기야는 사신들에게 자기왕궁과 보물들과 무기고를 보여주기를 몹시 즐거워하여 그들이 그들의 대왕에게 보고하게 했다.
(3) 이일로 인하여 히스기야는 책망을 받게되었다(14,15절). 이사야는 전에는 그의 위로자였지만 지금은 책망자가 되었다. 이사야가 가로되 "저희가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의 용무가 무엇입니까?" 히스기야는 이사야의 책망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내궁에 있는것을 저희가 다 보았나니 나의 내탕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그렇다면 히스기야는 왜 사신들을 이사야에게 데리고가지 않았는가? 최고의 보물이 될뿐만 아니라, 이 사신들이 문의하러온 모든기적들을 기도를 통하여 일어나게한 하나님의 도구, 이사야를 히스기야는 왜 그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단 말인가?
(4) 히스기야의 자만과 허영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가 떨어졌다. 이 선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17,18절).
1) 히스기야가 그렇게 자랑으로 여기는 보물이 이후에는 적의 노략물이 되리라는 것이다.
2) 히스기야가 동맹하기를 원하는 바벨론왕이 이스라엘을 노략하는 대적이 되리라는 것이다. 므낫세의 죄, 즉 우상숭배와 살인의 죄가 이 재난의 원인이 되었지만, 그의 자만의 어리석음을 분명히 알게하기 위하여 이 선고가 히스기야에게 예고되었다. 히스기야는, 바베론왕의 세력이 왕성해질수 있도록 그를 도움으로써 앗수르왕의 막강한 세력을 악화시키려고 했지만, 이제 히스기야는 그의 후손들이 바벨론왕의 노예가 되리라는 예언을 듣게된 것이다. 바벨론은 바벨론을 좋아하는 모든자들을 파멸시킬 것이다.
(5) 히스기야는 겸손하고 참을성있게 이 선고에 순복하였다(19절). 히스기야는 아마도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던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이일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실 것이며, 이일을 미리 알려주시는 자비를 나에게 베풀어주셨으므로 이선고는 정당할뿐만 아니라 은혜이다."
(6) 히스기야의 생애와 그에 대한 이야기의 결론이 여기서 맺어지고 있다(20,21절). 히스기야의 개혁의 업적에 대하여는 역대하 29-32장에 상술되어 있으며, 민간인 역대기에는 히스기야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위대하고 선한사업들, 특히 수도관을 통하여 그성안으로 물을 끌어들인 업적에 대한 기록이 더많이 들어있는것 같다. 여기서는 이렇게 끝을 맺고있다. 히스기야가 그열조와 함께 자고 그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21절). 히스기야의 아들은 아주 불운한 왕이 되었음을 역사가 증명한다. 악한 아하스는 경건한 아버지의 아들인 동시에 경건한 아들의 아버지였음에 비하여 거룩한 히스기야는 악한 아버지의 아들인 동시에 악한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 핵심
20:1-21
히스기야가 기도로 치유함을 받은 일화와 그의 잘못에 대한 이사야의 심판예고가 기록되어 있다. 히스기야의 통치행적에 오점을 남겼던 그사건은 B.C. 701년에 있었던 앗수르침략(18:13) 전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바벨론에서 발굴된 문서는 부로닥발라단(12절)이 B.C. 703년에 세력을 잃었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바벨론왕 부로닥발라단(20:12)
고대 바벨론은 B.C. 1600년경에 헷족속에게 멸망할때까지 메소보다미아 일대를 제패했다. 멸망이후에는 하나의 도시국가 형태로 존재하였다. 부로닥발라단은 도시국가로 존재하던 바벨론의 왕이었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그는 B.C. 721년에 왕이 되어 다스리다가 B.C. 710년에 앗수르의 사르곤 2세에게 정복당해 봉신이 되었다. 사르곤 2세 사후에 잠시 다시 독립을 누리다가 B.C. 703년에 산헤립에게 패배하였다. 하지만 이후 B.C. 7세기경 발흥한 신바벨론은 앗수르를 멸망시켰다.

# 묵상
죽음의 소식을 들은 히스기야의 태도 ( 20:1-3 )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의 이런기도는 세상을 등지고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는 참믿음의 기도입니다. 뿐만아니라 전인격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전인격을 바쳐서 드리는 헌신적인 모습을 지녀야합니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의 예수님의 겟세마네기도는 땀이 피가 되기까지 기도하시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눅22:44). 우리성도들도 환난을 만날때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생명을 15년 연장받은 히스기야 ( 20:6, 7 )
이사건은 하나님이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대하23:18). 하나님은 생명을 주관하시며 모든사람의 수한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성도는 오직 모든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기도와 의학적 치료방법은 둘다 병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의술이나 지혜는 인간들을 위해 사용하게 하신 귀한 선물입니다.
이적을 보여주신 이유 ( 20:8-11 )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게하기 위함입니다. 신약의 많은 이적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나아가 고침을 받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에서도 베풀어졌습니다.
은혜받은 자가 시험에 넘어지는 이유 ( 20:12-19 )
하나님의 은혜를 쉬잊어버리고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선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고전10:12).
허물이 드러났을때 취한 히스기야의 태도 ( 20:16-19 )
히스기야는 자기의 교만하고 불신앙적인 행위가 밝히 드러났을때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왕의 지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적으로 그허물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앞에서 겸손히 참회하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미워하시지만, 회개하는 죄인은 기꺼이 용납해주시며 은혜로 그영혼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 해설
히스기야의 겸손과 교만 ( 20 )
본장은 히스기야왕이 겸손히 행할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은혜와, 그가 교만히 행할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저주를 증거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때 벽으로 낯을 향하여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교만하여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영광과 부를 자랑할때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이방의 속국으로 만드시는 무서운 저주를 선포하셨습니다.
1. 생명을 연장받는 히스기야
1) 병들어 죽게된 히스기야
히스기야왕은 유다백성이 숭배하던 우상을 제거하고 그들을 여호와께 대한 바른신앙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히스기야왕은 자신의 생명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사형선고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받게됩니다. 히스기야왕은 질병에 걸려 죽게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갑작스럽게 질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히스기야왕의 질병이 그의 범죄로부터 왔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히스기야가 걸린 질병이 무엇인지는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사야가 무화과반죽을 히스기야의 종처에 놓아 치료한 것으로 보아 몸에 악성종기가 생겼던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죽음을 예고해주신 것은 히스기야의 믿음을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이면 생명에 관한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이사야의 예언을 무시했을 것입니다.
a.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요11:4)
b.생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욥27:3)
2) 하나님께 간구하는 히스기야
히스기야왕은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자신의 생명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예언을 듣고는 벽을 바라보고 앉아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얼굴을 벽으로 향하는 것은 모든것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음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히스기야왕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는 길밖에 없음을 알고있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진실과 전심으로 하나님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것을 기억하여 주실것을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이는 히스기야가 하나님앞에서 교만히 행한것이 아닌, 그의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또한 히스기야는 하나님앞에서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왕으로서의 체통을 무시하고 하나님앞에서 생명을 구하는 가난한 자의 모습이 되었던 것입니다.
a.눈물의 기도(사38:5)
b. 두려움으로 부르짖음(출14:10)
3)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히스기야왕이 통곡하며 기도할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응답주시기를, 십오년의 생을 연장시켜 주시며 앗수르왕의 손에서 건져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응답을 전할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다윗의 하나님이라고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에 근거하여 다윗의 후손인 히스기야와 그나라에 복을 주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의 표시로 징조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그림자가 십도를 물러가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초자연적 기사는 이전에 여호수아의 기도응답으로 행하셨던 것입니다.
a.눈물을 보시는 하나님(시56:8)
b.다윗언약을 근거한 응답(시89:3-4)
c.징조를 베푸시는 하나님(수10:12-13)
2. 히스기야의 교만으로인한 징벌선포
1) 문병을 받은 히스기야의 교만한 행위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바벨론왕 부로닥발라단은 편지와 예물을 히스기야에게 보냈습니다. 그당시 바벨론 제국은 열방중에서 새롭게 세력을 키워가는 신흥제국으로서, 부로닥발라단은 히스기야왕의 문병을 핑계로 유다를 염탐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바벨론왕이 보낸 문병사절단을 맞이한 히스기야는 그들에 대한 긴장을 풀고 들뜬 마음상태에서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 군기고와 내탕고의 모든것을 다 사자에게 보였습니다. 그가 이와같이 행한 것은 자신의 부와 힘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히스기야왕은 바벨론사절에게 자신이 소유한 재물과 군사적 무기들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자랑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을 교만하여 자신이 취하려함으로써 하나님앞에 범죄하였습니다.
a.부와 영광을 지닌 히스기야(대하32:27)
b.하나님이 시험하심(대하32:31)
c.재물에 대한 집착(전5:13)
2) 이사야에게 책망받는 히스기야
이사야는 히스기야왕에게 나아가서 바벨론왕이 보낸 사절단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들은 어디서 왔으며 무슨말을 했고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사야의 질문속에는 히스기야왕의 행위에 대한 질책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왕이 이방인에게 왕궁의 모든것을 보여준 행위가 악한것임을 알리고 질책한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고 시도했습니다. 교만으로인해 어리석게 된 히스기야왕은 범죄하고도 오히려 자신이 행한일이 정당하다는듯이 이사야의 질문에 뻔뻔스럽게 대답했던 것입니다.
a.선지자에게 책망받는 왕(삼하12:1)
b.여호와께 묻지 아니함(수9:14-15)
c.이방인과의 동맹금지(출34:12)
3) 히스기야에게 선포된 저주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 대한 여호와의 저주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내용은 유다왕 열조와 히스기야가 쌓아둔 왕궁의 모든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히스기야의 아들이 사로잡혀 바벨론왕궁의 환관이 될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저주를 들은 히스기야는 그일이 자신의 대에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후대에 이루어질 것임을 인하여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히스기야의 감사와 찬양은 바람직하지만, 자신의 대에 환난이 임하지 않는다고해서 기뻐하는 그의 모습속에는 이기적인 면이 보여집니다. 그는 오히려 민족이 당할 아픔을 인하여 괴로워하는 마음을 가짐이 마땅하였을 것입니다. 한편 히스기야에게 선포된 유다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는 역사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여호야긴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고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은 예루살렘성전과 왕궁의 모든보물을 노략질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갔습니다. 유다의 멸망은 이와같이 어느 한사람이나 한시대의 범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여러왕과 시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쌓이게된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a.포로되는 유다왕(왕하24:12)
b.멸망예언 성취(왕하24:13)
c.여호와의 예언성취(렘25:13)
결론
성도는 하나님앞에서 겸손히 행하여 긍휼과 은혜를 받아야합니다. 이미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앞에 자신의 모든 죄짐을 내려놓아 사죄의 은총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땅에서 살아가는동안에도 모든일에 하나님의 주권을 겸손히 인정하여 하나님께 형통하는 복을 받아 누려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영광을 자랑하는 자는 결국 넘어지고 실패할수밖에 없음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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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히스기야의 반응 19:1-7
랍사게의 말한 내용이 히스기야에게 전달되었다.
(1) 랍사게가 모욕적인 언사로 하나님을 능욕한 사실에 히스기야왕은 깊은 관심을 보였다. 히스기야왕이 이말을 듣고 그옷을 찢고 굵은베를 입고(1절). 하나님이 능욕을 당하고, 예루살렘이 위기와 공포에 직면한 이 비참한때에, 왕복이 너무 좋아서 찢지못하거나 왕의 몸이 너무 귀하여서 굵은베옷을 걸치지 못할것이 없다.
(2) 히스기야왕은 기도하고 묵상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에 들어갔다. 그는 랍사게에게 무어라고 대답할 것인지를 궁리하지않고 오히려 그문제를 하나님께 상의하였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3) 히스기야왕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귀족들을 사절로 삼아 보내어 그의 기도를 요청하였다(2-4절). 엘리아김과 셉나는 랍사게의 말을 직접 들었던 자들중의 두사람이며, 그상황을 이사야에게 충분히 납득시킬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사절들은 굵은베옷을 입고있는 히스기야왕을 대신하는 입장이기때문에, 그들도 굵은베옷을 입고 이사야에게 갔다.
1) 그사절들이 이사야에게 파송된 용건은 이것이다. 당신은 이 남아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소서(4절). 이말은 다시말하면, "이제 열지파는 갔으므로 오로지 남은자들인 유다지파를 위하여, 그리고 유다의 모든 성곽과 성읍들이 점령당하였으므로 이제 오로지 남은성읍인 예루살렘을 위하여 기도하소서"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다른사람에게 우리를 위한 기도를 요청할때, 우리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히스기야왕은 이사야에게 기도를 요청할때, 그도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직접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의 교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서 남은자들만이 있을때는, 남은자들을 위하여 우리의 기도의 소리를 높일때이다.
2) 이사절들은 이사야로하여금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하기위하여 다음의 두가지를 강조하였다.
① 적에 대한 두려움을 강조하였다(3절). "우리는 지금 아주 위험한 지경에 처해있어서 당신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지 않거나 도와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멸망할 것입니다."
② 하나님께 두고있는 소망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나타나시기를 기대하였고 의지하였다. "하나님께서도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으셨으므로 이사실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실 것이고 그들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이문제를 하나님께 들고나가서 기도로써 우리를 도우소서. 그러면 우리는 안심하고 이일을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4)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왕에게 이사야 선지의 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멸망시키심으로 스스로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을 확실히 약속해주셨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사절을 보낸것은 그사건에 대하여 묻기위함이 아니라 이사야의 도움을 받기위함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크게 낙담한 히스기야에게 용기를 주셨다. 너는 앗수르왕의 신복에게 들은바 나를 능욕하는 말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6절). 즉 랍사게의 말은 하나의 말(허풍을 떨고 과격한 말이지만)에 지나지 않을뿐이며, 바람과 같이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랍사게가 히스기야를 놀라게 한것보다 더크게 앗수르왕을 놀라게 하시겠다고 히스기야에게 약속하셨다. 내가 한영을 저의 속에 두어. 이영은 앗수르군사들을 죽게한 흑사병을 의미한다.

Ⅱ. 히스기야의 기도 19:8-19
랍사게는 앗수르왕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나 히스기야왕으로부터 아무런 대답도 받지못하자 예루살렘에 진치고 있는 군대를 다른 장군들의 통솔하에 남겨둔채 다른명령을 더 받기위하여 왕에게로 갔다. 그때 앗수르왕은 유다를 배반했던 도시인 립나를 포위하고 있었다(8:22). 그러나 이제 앗수르왕은, 아랍사람들과 인접해있는 구스의 왕이 대군을 이끌고 그를 공격하기 위해 나아오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놀라게 되었다(9절). 이소문을 들은 앗수르왕은 더욱더 속히 예루살렘을 점령하기를 원하였다.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것은 많은시간과 병력을 희생시켜야 하였다. 따라서 앗수르왕은 히스기야로하여금 순순히 예루살렘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위해 공격을 재개하였다.
(1)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비방하는 편지, 하나님을 모독하는 편지를 보내서 히스기야가 예루살렘을 포기하도록 설득하였다. 너의 의뢰하는 네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왕의 손에 붙이지 않겠다 하는말에 속지말라(10절). 그는 히스기야에게 겁을 주고, 안식처에서 나오게 하기위하여 자신과 자신의 업적을 과장하였다. 그가 아주 교만하게 자랑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산헤립은 열방을 정복했고(11절) 철저하게 파괴하였다고 과장했다. 그가 온땅을 다 정복했다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왜냐하면 당시 산헤립은 구스땅과 구스왕 디르하가에게 위협을 받고있었기 때문이었다.
2) 산헤립은 온땅의 신들을 정복하였다고 과장하였다(12절).
3) 산헤립은 온땅의 왕들을 정복하였다고 과장하였다(13절). 하맛왕과 아르밧왕과 스발와임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있느냐(13절). 그는 왕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든지 신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든지, 자신을 신이나 왕들보다 위대하게 나타내려고 하였다.
(2) 히스기야는 그편지를 받지않을만큼 교만하지 않았다. 또한 히스기야는 그편지를 읽고나서 격정에 사로잡혀서 그편지에 쓰여진 것과 같은 거만한 어투로 회신을 쓰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즉시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갔다.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가서 그편지를 여호와앞에 펴놓고(14절). 이것은, 그가 그편지를 하나님께 보여드려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표시가 아니라 그가 모든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시인 것이다. 히스기야는 이 편지위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1) 산헤립이 능욕했던 하나님을 히스기야는 찬양하였다(15절).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향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있어서 특별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그룹들의 위에 계신…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는 특별한 거처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헤립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에 국한된 신으로 제한하고, 성전에만 계시는 신으로 한정하였지만, 히스기야는 이와는 달리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했다.
2)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오만과 하나님을 능욕한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께 호소하였다(16절).
3)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이방신들에 대하여 승리한 사실을 인정하였으나, 그신들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구별하였다(17,18절). 또 그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저희가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지은것 곧 나무와 돌뿐이므로.
4)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지금 산헤립을 패배시키시고 그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으로 스스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을 기도하였다(19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줄 알리이다. "그럼으로써 존재하시고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신 것을, 그리고 다른 모든 거짓신들은 공허한 것이며 거짓말인 것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Ⅲ. 이사야의 응답 19:20-34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은혜로운 응답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 즉 산헤립에 대한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응답해주셨다는 확신을 히스기야에게 주셨다(20절).
(1) 산헤립과 그의 군대는 혼란과 수치를 당하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산헤립이 낮아지고 파멸되리라고 예언되어 있다. 여기에 나타나는 산헤립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1)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멸시한 자이다(12절). 그는 자기가 순진하고 아름다운 처녀인 시온의 딸, 다시말하면 예루살렘의 공포의 대상이라고 여겨 그가 위협함으로써 예루살렘을 굴복시킬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처녀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여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21절). "그러나 처녀 시온이 아버지집에서 아버지의 보호를 받고 있으므로, 그는 너에게 대항하고,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는다. 너의 뚜렷한 협박이 우습구나. 하늘에 앉으신 분이 너를 비웃으시고, 그의 그늘에 거하는 자들도 너를 비웃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말씀으로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의 두려움을 가라앉히려고 하셨다.
2) 산헤립은 하나님을 대적한 자이다. 히스기야는 이러한 사실을 호소하였다.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16절).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였구나 그행위는 나를 대적하는 행위라고 여긴다."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훼방하였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22절). "그는 영광받으시기에 합당하며, 그것을 증명할 능력을 가진자가 아니냐? 이방 어느신이 그런능력을 가졌느냐?"
3) 산헤립은 교만하고 허영에 찬 바보이다. 그는 터무니없이 과장된 말을 하고, 거짓힘을 자랑하였으며, 위협하는 말과 교만한 말로 하나님을 비방하였다.
① 산헤립은 자신의 업적을 정도이상으로 과장하였다(23,24절). 네가…이르기를 내가 많은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꼭대기에 올라가며…하였도다. 산헤립은 자기를 스스로 얼마나 위대한 존재로 생각했던가! 병거를 몰아서 가장 높은산들의 꼭대기에 올라가고, 수목과 강들을 가로지르고, 모든 어려움을 뚫고, 그가 생각한 모든민족의 주인이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② 이 모든일이 하나님께서 행한일임에도 불구하고(25,26절), 산헤립은 이 모든일을 자신이 행한 것처럼 자기를 찬양했다.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상고부터 정한바라(25절). "네가 땅에서 이룩한 모든멸망, 특히 유다의 경우에 있어서도 너는 하나님의 손에 잡힌 도구에 불과하다. 이 모든일을 다 이룬자는 바로 나 하나님이다." 여기의 산헤립의 자랑은 이사야 10:13,14절에 상술되어 있다. '그의 말에 나는 내손의 힘과 내지혜로 이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를 옮겼고 그재물을 약탈하였으며.'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도끼가 어찌 찍는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사 10:15).
4) 산헤립은 그가 모독한 바로 그하나님의 시험과 책망아래 있는 자이다.
① 산헤립의 모든행동을 하나님께서는 알고계셨다. 네거처와 네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27절). 즉 "네가 있는곳과 네가 은밀하게 생각하고 계획한 것과 네가 일으킨 소란과 호령을 다 안다. 내가 모든것을 다 알고있다."
② 산헤립의 모든행동은 하나님께서 통제하셨다. 내가 갈고리를 네코에 꿰고 자갈을 네입에 먹여 너를 오던길로 끌어 돌이키리라(28절). 즉 "내가 너 거대한 리워야단의 코에 갈고리를 꿰고, 너 거대한 악어의 턱에 재갈을 물리겠다(욥 41:1,2). 내가 너를 제어하고, 마음대로 처리하며, 내가 원하는대로 보내고 네가 바보같이 왔던길로 집으로 돌아가게 하겠다."
(2)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은 구원과 즐거움을 얻게 되리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표시가 될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과 화해하셨으며, 하나님의 진노가 그쳤다는 사실(사12:1)과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에 대해서 좋은결과가 있으리라는 것에 대한 표시가 될것이다.
1) 과거에는 양식이 부족했었다. 그러면 그들에게 무엇이 양식이 되겠는가? 그땅의 모든열매는 앗수르군대가 먹어치웠다(사 32:9,10절이하). 유다백성들은 그땅에 거주하게 될뿐만 아니라 실제로 먹고살게 될것이다.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29절). 즉 "너희가 뿌리지 않은것을 거두게 되리라." 그러나 다음해는 안식년이었다. 안식년에 그땅은 안식해야 했으므로 따라서 그들은 심거나 거두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해에는 그들이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여호와이레' 즉 하나님께서 공급하실 것이다. 그리고 제삼년에는 농부들은 들판으로 돌아가고 여태껏 하던것처럼 뿌리고 수확하는 일을 해야한다.
2) 유다나라는 황폐되었고 가정은 파괴되었고 유리되었으며 모든것이 혼란에 빠졌었다. 그런 대군이 유다를 짓밟았으므로 유다의 상태가 이와달리 어떻게 될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런상황에 있는 유다에게 '유다족속의 피하고 남은자'는 다시 그들의 거주지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풍족하게 될것이라고 확실히 약속해주셨다(30절). 유다의 번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묘사되었다. 다시 아래로 뿌리가 서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30절). 영혼의 번성함도 이와같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아래로는 뿌리를 내리는 것이고 위로는 의의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다.
3) 이제까지는 예루살렘성문이 굳게 닫히고, 아무도 그리로 들어가거나 나오지 않았지만, 이제 예루살렘과 시온의 남은자들이 자유롭게 나올것이며, 그들을 방해하거나 두렵게 할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31절). 도시와 농촌에 파괴가 심하였다. 그러나 도시와 농촌에 피하여 남은자가 있었으며, 이들은 정말 이스라엘의 구원받아 남은자의 예표이다(이사건을 이야기하는 이사야 10:22,23절과 로마서 9:27절을 비교한다면 알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장차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영광스러운 자유에 들어갈 것이다.
4) 앗수르군대는 예루살렘으로 진격하고 있었으며, 조만간에 그성을 완전히 포위하려고 하고있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앗수르군대에게 함락될 큰위험에 처해있었다. 그러나 목표인 예루살렘 성앞에 진을 치고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결코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살을(화살 하나도) 쏘지못하며'(32,33절)라고, 즉 앗수르군대는 수치를 당하고 퇴각할수밖에 없게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약속해주셨다.
5)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일을 행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의 명예와 신실하심을 걸고 약속하셨다. 이러한 큰일들이 어떻게 실행되겠는가? 여호와의 열심히 이일을 이루리라(31절).
① 하나님의 명예를 위한 열심히 이일을 행하실 것이다(34절). "내가 나를 위하여 이일을 이루고, 내이름을 영원히 빛내리라." 하나님의 자비의 원인은 하나님 자신안에 있다.
②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위한 열심히 이일을 행하실 것이다.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34절). 즉 "내가 내종 다윗을 위하여 이일을 이루지만 이것은 다윗의 명예를 위함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한 약속과 그와 세운 언약 즉 다윗에게 준 분명한 은혜를 위한 것이다."

Ⅳ. 하나님이 앗수르군대를 치심 19:35-37
예언의 말씀이 임한 즉시, 이모든 말씀이 성취되었다.
(1) 앗수르군대는 완전히 참패하였다. 히스기야에게는 앗수르군대의 포위망을 뚫거나 공격할 충분한 군사력이 없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칼이나 활로 앗수르군대를 멸하려고 하시지도 않으셨다. 이일은 강한사람이나 비천한 사람들의 칼로 된 일이 아니었다. 즉 사람의 무력으로 행해진 일이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의 칼에 의하여 앗수르군대가 쓰러지게 되었던 것이다(사 31:8). 요세푸스는, 이일이 일어난 것은 흑사병때문이며, 앗수르군사들은 이 흑사병으로인하여 모두 즉사하였다고 말한다. 죽임을 당한 숫자는 185,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였다. 그런데 랍사게는 살아남은 자중에 속해 있었던것 같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35절). 앗수르군사들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떤사람들은 시편 76편이 이때 기록된 것이라고 한다. '마음이 강한자는 탈취당하며 자기잠을 자고'(시 76:5), 즉 그들은 마지막 잠인 긴잠을 잤다는 것이다.
(2) 앗수르왕은 이로인해서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온갖 교만한 자랑을 다 늘어놓은 뒤였기때문에 자신에게 조차도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패배하고 무력해진 '앗수르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의 표현법이 산헤립의 마음이 얼마나 혼란하고 어지러웠는지를 보여주고 있는것 같다(36절). 그후 얼마 안되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두아들의 손으로 그의 생명을 끊으셨다(37절).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산헤립으로하여금 그가 마땅히 섬겨야하는 유일하시고 참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수 있도록 능력을 행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헤립은 계속해서 자기의 우상숭배를 고집하였고, 저항할수 없이 큰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등지고 자기보호를 위하여 자기의 거짓신들을 찾았다. 산헤립을 살해했던 두아들은 도피하는 고통을 겪기는 했지만, 페트릭주교가 주장하는 것처럼, 산헤립이 그아들들을 신들에게 대한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행한일이 용서받을만하다고 여겨진다. 그외의 다른아들인 에살핫돈이 산헤립을 계승하여 왕이 되었으나 그는 자기 아버지처럼 정복지를 확장하려고는 하지않았고, 기존정복지를 개방하기위해 힘썼다. 따라서 그는 앗수르 식민지 주민들을 사마리아땅으로 보내어 거주하게 한 첫번째 왕이 되었다. 이사실은 에스라 4:2절에 나타나 있다. 여기에 보면 사마리아사람들은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하였다'고 말한다.

# 핵심
19:1-7
히스기야는 위기를 맞이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사야 선지자에게 도움을 구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게 구원과 희망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응답했다.

# 묵상
어려움속에서의 히스기야의 기도 ( 19:1 )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성도에게 닥치는 어려움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흔드는 도구입니다. 히스기야의 중보기도는 선지자의 중요한 사역중의 하나로 능력이 있었습니다(삼상7:8, 9). 의인의 중보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대단히 큽니다(창19:29). 예수님은 지상사역을 마감하시면서 당신의 제자들이 세상에서 살아갈수 있도록 하나님께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보기도를 하셨으며(요17장) 지금도 계속 기도하고 계십니다.
기도응답의 시기 ( 19:6, 7 )
성경은 기도의 응답이 이미 기도가 시작될때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단9:23). 그리고 모든기도는 시기적절한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에 주신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 ( 19:6 )
앗수르로인해 망한 이스라엘에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두려움의 요소를 말끔히 해결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메시지요, 당신께서 평강의 근원이 되심을 일깨워주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결단코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기를 원치 않으시고,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지니기를 원하십니다(딤후1:7).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자는 풍파중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얻게됩니다(행27:19-26).
히스기야의 기도 ( 19:14-19 )
하나님이 능력을 나타내셔서 천하만국이 하나님을 알게되기를 구합니다. 기도는 대체로 경배와 찬양, 자복과 회개, 간구와 소원, 중보, 감사의 형태로 나눌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단지 소원만을 간구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교만한 자의 결과 ( 19:20-28 )
하나님이 능력을 보이셔서 그를 하나님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미약한 것은 인간의 가장 강한 것보다도 더 월등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도전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앞에서의 인생 ( 19:26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앞에서의 비가 오지않으면 곧 시들어버리는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들의 풀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점에서 인생은 생명의 대주재되신 하나님앞에서 결코 교만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인생을 의지하는 자처럼 미련한 자도 없습니다(사2:22).
히스기야에게 보인 응답의 징조 ( 19:29-34 )
열매를 거두고 그것을 먹게될 것이며, 남은자가 생육하고 번성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심많은 도마에게 직접 손과 발의 못자국을 만지게 하심으로 믿음없는 자가 되지말라고 하시면서 보지않고 믿는것이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 19:35-37 )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구원을 약속하신날 밤에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어 앗수르군사 185,000명을 죽이셨습니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천사라기보다는 성육신하시기전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계시와 징계를 위하여 나타났는데, 하갈에게 나타난 경우(창16:7-16)와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경우(왕하1:3)가 있었고, 애굽장자를 치고(출12장), 다윗의 인구조사때문에 온역을 내리는 일(삼하24:15, 16) 등을 했습니다.

# 해설
민족의 구원을 약속받은 히스기야 ( 19 )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가장 절망적인때가 가장 소망스런때로 전환되기도 합니다. 바로 히스기야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항복을 요구하는 앗수르의 사신들을 돌려보낸후의 히스기야 심정은 말할수 없는 절망에 잠겨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도저히 믿기 어려운 사실을 히스기야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눈앞에서 성취되어 가는 과정을 히스기야는 보게되었습니다.
1. 이사야의 예언
1) 절망에 빠진 히스기야
히스기야는 앗수르 사신들의 말을 듣고선 신하들처럼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슬픔과 절망을 상징하는 굵은베옷을 입고 여호와께 탄식하고자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후에 앗수르 사신들을 만났던 자신의 신하들을 이사야 선지자에게로 보냈습니다.
a.굵은 베옷(삼하3:31)
b.여호와의 전에서 기도함(왕하19:14)
2) 기도를 요청하는 히스기야
히스기야는 이사야에게 앗수르 사신들의 말을 전하면서 민족적으로 치욕의 날임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임산부가 힘이 없어 아이를 못낳는 안타까움처럼 유다민족에게 힘이 없어 위기앞에서도 속수무책을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앗수르에게까지 조롱을 받았던 여호와께서 저들을 심판하사 놀라운 구원이 임하도록 이사야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였습니다.
a.모세의 중보기도(출32:12)
b.이사야의 중보기도(대하32:20)
3) 희망의 소식을 예언하는 이사야
이때에 이사야는 신하들을 통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을 히스기야에게 예언해 주었습니다. 그예언의 내용은 간단하였으나 믿기 어려울정도의 놀랄만한 희소식이었습니다. 즉 앗수르왕이 어떤소식을 듣고선 유다를 공격지않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암살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a.두려워말라(수1:9)
b.소망스런 구원의 소식(사52:7)
2. 산헤립의 편지
1) 산헤립의 편지
앗수르의 사신이었던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항복소식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중 산헤립이 라기스를 떠나 립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랍사게는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산헤립은 구스왕 디르하가와 접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산헤립은 이사야의 예언, 곧 여호와께서 유다를 앗수르로부터 구원하시리라는 말을 알고 있었습니다. 산헤립은 즉시 히스기야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리석게 여호와의 말을 믿지말라고 한 산헤립은 어느 민족신도 앗수르의 공격앞에서 자기민족을 구한경우는 없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이같은 자신의 경고를 확증하기위해 자신들이 정복한 10개의 성과 나라도 언급하였습니다.
a.라기스에 있는 앗수르왕(사37:8)
b.산헤립의 교만(사37:10)
2) 구원을 간구하는 히스기야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편지를 보자마자 즉시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유일하신 참신이시며,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임을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앗수르의 악행을 고발하였습니다. 즉 앗수르가 여호와를 무시하고 조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히스기야는 놀라운 한가지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됩니다. 유다의 동맹국들이 저토록 힘없이 앗수르에게 멸망한 이유를 알게된 것입니다. 이들국가들은 살아계신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손으로 만든 무능하고 생명력없는 나무와 돌을 의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께 앗수르의 무력으로부터 선민들을 구원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특별히 히스기야는 자신의 간구가 단지 생명의 보존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실상은 여호와만이 참신이요 구원자되심을 만방에 알리어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자 함이라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히스기야의 영성이 가득담긴 뛰어난 기도였습니다.
a.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다니엘(단6:10)
b.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다윗(삼상17:46)
3. 유다에 대한 회복예언
1) 앗수르에 대한 심판예고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그의 기도가 응답되었음을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앗수르의 산헤립을 심판하시겠다는 소식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산헤립의 악행뿐만 아니라 그가 여호와께 대항하며 조롱하였던 그의 교만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산헤립이 다른민족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였듯이 그대로 산헤립에게 행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과거의 비참했던 상황으로 앗수르를 다시 끌어내리시겠다는 준엄한 심판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a.창조주되신 여호와(사45:7)
b.앗수르에 대한 심판(사10:5)
2) 유다의 회복예언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앗수르에 대한 심판예언이 확실하다는 증표로 하나의 징조를 보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바로 예루살렘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씨가 뿌려져 추수하게 되는 땅의 소출을 2년동안 먹게되고 3년째에는 정상적으로 씨를 뿌리고 추수하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유다백성들중 남은자들이 마치 곡식이 뿌리를 박고 열매를 거두듯이 이땅에 남아서 안정과 번영을 누리게 될것이라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앗수르의 산헤립은 예루살렘에 화살 한개도 못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유다를 회복시키시는 이유는 다윗에게 하신 언약과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신다고 밝히셨습니다.
a.히스기야에게 보이시는 징조(왕하20:8-9)
b.유다의 회복(사10:20)
3) 산헤립의 죽음
앗수르에 대한 심판예언이 있은직후 어느날 밤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군대에서 그들의 병사 십팔만오천명을 순식간에 죽였습니다. 이는 도저히 설명할수 없는 초자연적 사건이었습니다. 산헤립은 즉시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로 갔습니다. 니느웨에서 산헤립은 어느날 자신들의 민족신인 니스록신전에 들어가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니스록신은 반은 독수리고, 반은 사람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산헤립이 경배하고 있을때 그의 아들인 아드람멜렉과 사례셀이 와서 아버지인 산헤립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아라랏땅으로 도망갔습니다. 산헤립은 니스록신의 보호도 못받고 비참하게 자식의 손에 죽는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앗수르는 산헤립을 계승하여 그의 아들인 에살핫돈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a.산헤립의 죽음(대하32:21)
b.앗수르왕 에살핫론(스4:2)
결론
결국 앗수르에 대한 심판의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인간의 힘과 교만은 오래가지 않아 쓰러지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의 심판과 유다회복의 예언을 통해 이스라엘 조상들과 맺은언약을 신실히 이루시는 분임을 다시한번 입증해 주셨습니다. 또한 이언약이 영원토록 유효하기에 당신의 백성들은 반드시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재차 확증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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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히스기야의 개혁 18:1-8
이것은 히스기야 통치에 관한 전반적인 기록이다.
(1) 그는 대단히 경건하였다. 이것은 그의 아버지는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왕 가운데 하나였지만, 자신은 가장 선한왕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운 것이다. 사람속에 선한것이 있다면, 그것은 본성에서 나온것이 아니고, 은혜에서 나온것이며 오히려 본성을 거스리는 것이다. 즉 당초에는 돌감람나무였으나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여진 것이다(롬 11:24). 또한 이 은혜는 최악의 어려움과 약점을 극복한다. 아하스는 아들에게 악한 본을 보인것은 물론 나쁜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아하스의 제사장 우리야가 그의 개인교수였고, 시종들과 동료들도 모두 우상에 빠져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뛰어나게 선한왕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할때, 무엇이 막을수 있겠는가?
1) 히스기야는 순수한 다윗의 아들이었다(3절). 히스기야가 그조상 다윗의 모든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히스기야는 제2의 다윗이었으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그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시대와 사람들이 악할때, 그들이 당연히 점점더 악해지는 것처럼 도덕이 점차로 부패해 가는것을 보더라도 우리는 놀라지 말자.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많은 악한왕들 이후에 다윗과 닮은 한왕을 세우셨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것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2) 그는 자기왕국을 위한 열정적인 개혁자였다(대하 24:3). 그는 자기왕국이 매우 타락하였고, 백성들은 모든일에 미신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항상 그상태이었으며, 특히 전왕의 통치때에는 그전 어느때보다도 심하였다. 우상숭배가 전국에 만연해 있었다. 히스기야의 마음은 우상숭배에 반대하며 분노하였다. 그러므로 손에 권력을 잡자마자, 그것을 폐지하는 일에 전념하였다(4절).
① 여러가지 주상과 목상은 우상이다. 그는 이것들을 부수고 근절시켰다.
② 산당은, 특별한 경우에는 선지자들도 사용하였었고, 그때까지 여러 선한왕들도 묵인해왔었지만 분명히 성전에 대한 모독이고 우상숭배의식을 도입하는데 좋은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히스기야는 선왕들의 선례를 따르지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자로 삼아, 산당들을 제하였으며, 산당철폐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단호하게 집행하였다.
③ 놋뱀은 원래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오용되어 우상숭배가 되었기때문에, 히스기야는 이것을 부수었다. 이 물건은 광야에서 조상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의 증거물로서 고이 보존되었던것 같다(민 21:9). 그러나 그들이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경배하기 시작하였을때, 이방인들에게서 빌어온 우상을 숭배하지 않으려는 자들도 미혹되어 놋뱀에게 분향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작되어 그백성들에게 복의 도구가 되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경건한 열심히, 사람들이 이것을 숭배하는 것을 금지하였을 뿐만아니라, 더이상 못하게 하기위하여, 이것은 '느후스단', 즉 구리조각밖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과 이것에게 분향하는 것은 어리석은 악한행위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따라서 그때 히스기야는 놋뱀을 부수어버렸다. 만약 어떤사람이 놋뱀의 영광이 이제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주님께서 요한복음 3:14절에서 놋뱀을 자신의 모형으로 삼으시고 그영광을 풍성하게 다시 나타내신 것을 발견할수 있을 것이다.
3) 히스기야의 개혁에서 뛰어난 점은 다음 두가지이다.
① 하나님안에서의 용기와 확신이다. 우상숭배를 폐지하는 일을 신하들이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가 하는 모든일에서 그를 지키시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구해주실 것을 믿었다.
② 자신의 임무에 대한 꾸준함과 인내심이다.
(2) 그는 대단히 형통하였다(7,8절). 그는 하나님과 함께하였고, 하나님도 그와 함께계셨다.
1) 히스기야는 자신이 성공한 것을 알고 그의 아버지가 비굴하게 굴복하였던 앗수르왕의 멍에를 벗어던져 버렸다. 그가 이방나라들의 우상숭배를 벗어던졌을때, 그들의 압제의 멍에도 벗어던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2) 그는 블레셋을 공격하여 가사에까지 쳐들어갔다.

Ⅱ. 산헤립의 침공 18:9-16
이때 앗수르왕국은 상당한 강국이었다.
(1) 앗수르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를 포위하고(9절), 그것을 취하여(10절),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11절). 이것은 '저희가 그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12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앞장에 언급되었지만, 여기에 재차 언급하는 이유는 다음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1) 이사건은 히스기야와 유다백성들을 자극하여 우상숭배를 깨끗이 치우도록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상숭배가 이스라엘에게 파멸을 가져온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2) 히스기야는 이것을 많이 슬퍼하였지만, 막을힘이 없었다. 비록 열지파가 다윗의 집을 배반하였지만, 히스기야도 이스라엘의 자손이었기때문에, 그들의 재난을 기뻐할수 없었다.
3) 이사건으로 히스기야와 유대왕국은 앗수르왕의 공격을 받게되었고, 앗수르왕이 유대땅을 침입하기가 더욱 수월하게 되었다.
(2) 앗수르의 다음왕인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하였다. 그가 유다로 내려온 것은 유다에게 큰재난이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하여 히스기야의 믿음을 시험하셨고, 그백성들이 우상에서 떠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아직까지 마음속에 우상을 간직하였기때문에 백성들을 치신 것이다. 개혁의 시대가 곤란을 당할수도 있지만 이렇게되면 비난의 화살이 개혁자들에게로 돌아간다. 우리가 다음사실을 살펴보면 알수있듯이 이재난은 히스기야에게 몹시 큰사건이었다.
1) 그는 왕국의 대부분을 상실하였다(13절). 앗수르왕은 유다의 대부분의 성읍과 변방의 촌락들과 요새들을 점령하였다.
2) 그는 화친하기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었다. 그는 예루살렘이 적의 수중에 떨어지려는 위험을 보고는 값을 치르고라도 예루살렘의 안전을 사기를 원하였다. 그는 비굴한 굴복의 값을 지불하였다(14절). 히스기야의 용기는 어디로 갔는가? 하나님께 대한 그의 확신은 어디로 갔는가? 그는 속전으로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의 막대한 양의 금전을 지불하였다. 히스기야는 이금액을 만들기위하여, 국고를 다 비웠을뿐만 아니라, 성전문과 기둥의 금박을 떼어내지 않을수 없었다(15,16절). 비록 성전이 금을 거룩하게 하였지만 절박하였기때문에, 조상다윗이 감히 진설병을 먹었던 것처럼 자신도 감히 그일을 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성전을 경멸하는 의미에서 성전을 약탈하였었다(대하 28:24). 그리하여 그는 자기아버지가 약탈한 것을 이자까지 갚았었으나 지금 성전을 존중하지만 상황이 급박하고 더큰 의를 위하여 성전물품을 차용해달라고 구걸하는 것이다.

Ⅲ. 랍사게의 비방 18:17-37
(1) 예루살렘이 산헤립군대에게 포위되었다(17절). 산헤립이 세명의 장군을 파견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하게 하였다. 이것이 강국 앗수르의 대왕이란 말인가? 군대를 철수한다는 조건으로 히스기야가 준돈을 받고도, 군대를 진주시켜 다시 공격하는 불명예스러운 짓을 감행하는 그를 명예로운 대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서는 안될 것이다.
(2) 히스기야와 유대방백들과 백성들은 세 장군가운데 대변인이며, 풍자적인 언변의 재능을 가진 랍사게에게 조롱을 받았다. 그는 히스기야와 새로운 분쟁을 도발하려는 산헤립에게서 무엇을 말해야하는지 지시받았다. 그는 히스기야의 돈을 받고, 군대를 철수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따라서 대외적인 명분때문에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즉각 공격하지 못하고, 랍사게를 파견하여 히스기야에게 항복하도록 설득하였다. 그리고 만일 그가 거절하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무력으로 점령하겠다고 위협하였다. 랍사게는 무례하게도 왕에게 직접 성밖 윗목수도가에 나와서 들으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신중하게 직접 협상을 거절하고 세명의 사자를 파견하여 그가 말하려는 것을 듣게하였다. 그들은 랍사게의 말을 잠시 중단시키고, 지금은 아람방언으로 말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랍사게의 말하는 내용을 숙고해보고 왕에게 보고한 다음, 만족할만한 대답을 주지못한다면, 그때는 백성들앞에 드러내어 '유다방언'으로 말하라고 요구하였다(26절). 힐기야는 자기가 지금 얼마나 터무니없는 자와 대담하고 있는지 고려하지 않았다. 만일 그랬더라면 이런요구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요구는 오히려 랍사게를 격앙시켰다(27절). 그는 예의와 도리에 어긋나게도 유대군대를 위협하고, 그들에게 탈영하거나 소요를 일으키라고 선동하였으며, 만약 저항하면 그들을 극한 굶주림속에서 몰아갈 것이라고 겁을 주었다. 그리고 계속하여 히스기야와 방백들과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성을 포기하라고 설득하였다.
1) 그는 자기주인 앗수르왕을 찬양하였다. 그는 거듭하여 자기왕을 '대왕 앗수르왕'이라고 호칭하였다(19,28절).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영광과 권능중에 앉으신 왕중왕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앗수르왕조차도 비천하고 왜소하게만 보일 뿐이다(시 82:6,7).
2) 그는 백성들로하여금 항복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고 믿게하려고 애썼다. 만약 그들이 항복하고 선물을 가져와서 자비를 구하면, 그는 그들을 환대할 것이다(31절). 만약 그들이 신중하게 항복한다면, 비록 감옥에 갇히거나 포로가 되는 것이라할지라도 그들에게는 그렇게 되는것이 실상 행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① 옥에 갇히는 것도 이로울지 모른다. 왜냐하면 '각각 그포도와 무화과를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31절). 비록 그들의 재산이 정복자에게 빼앗긴다하더라도, 자유롭게 사용할수는 있을 것이다.
② 포로로 잡혀가는 것은 그들에게 더욱 이로울지도 모른다. 내가 장차 너희를 한지방으로 옮기리니 그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으로, 자기의 소유라고 말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새지방으로 옮기는 것이 무슨소용이 있겠는가?
3) 랍사게가 특히 강조한 것은 유다백성들이 끝까지 버틸이유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19절). 그는 유다백성들에게 말하기를(29절),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아서 스스로 파멸하지 말아라. 저가 너희를 내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너희는 항복하든지 죽든지 둘중에 하나를 결정하여라." 그는 히스기야가 의지하는 세가지를 추정하고, 이것들의 불충분함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① 히스기야의 군사적인 준비상황을 추정하였다. 네가 싸울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그런데 우리는 히스기야가 그러한 능력이 있었다는 기록을 본다(대하 32:3). 그러나 랍사게는 이사실을 일소해 버렸다. 그는 허풍을 떨면서 히스기야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만약 말을 다룰줄 아는사람 2천명을 낼수 있다면 2천마리의 말을 그에게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히스기야에게 군인이 될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빈정거렸다(23절).
② 애굽과의 동맹을 추정하였다. 랍사게는 이스라엘의 왕이 애굽에 말과 병거를 요청하였던 사실로 미루어 히스기야도 그렇게 하였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확신을 가지고서 그는, 애굽왕은 '상한 갈대지팡이'이며 따라서 그에게 기대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손에 찔러 들어갈' 것이다(겔 29:6,7)라고 말하였다.
③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것을 알고있었다(22절).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에 의지함으로 자신을 유지하였고, 이것으로 자신과 자기백성들에게 용기를 주었다(30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32절). 이것이 이스라엘의 커다란 반석이라는 사실을 랍사게는 느끼고, 마치 다윗의 원수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면서 다윗을 하나님에 대한 확신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했던것처럼(시 3:2;11:1), 그리고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그렇게 했던것처럼(마 27:43), 이것을 흔들어 버리려고 노력하였다. 랍사게는 유다백성들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악화시키기 위하여 세가지를 생각해 내었다.
첫째, 히스기야는 '산당과 제단을' 제함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차버렸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랍사게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무수한 산당과 제단을 좋아하는 이방인들의 여러신과 같이 취급하였고, 히스기야는 백성들을 한제단에 한정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큰범죄를 저질렀다고 결론지었다.
둘째,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멸망을 명령하셨다는 것이다(25절).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이것은 완전히 희롱이며 허세였다. 그는 '성위에 앉은 사람들'을 겁주기위하여 이 허세를 부렸다.
셋째,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앗수르왕으로부터 보호하겠다고 보증하셨다하더라도, 그는 그렇게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모독하면서 말을 마쳤다(33-35절). 여기서 발견할수 있는것은 첫째, 그의 교만이다. 그는 어떤도시를 정복하였을때, 그도시의 신들을 정복하였으며, 자신이 그신들보다 강하다고 평가하였다. 둘째, 하나님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떤지역의 신이 아니라 온지구의 하나님이시다.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랍사게는 변절한 유대인이며, 그래서 그렇게 능숙하게 유다방언을 말할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경멸은 더욱더 변명할 여지가 없으며, 그의 적대감도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변절자들은 보통 가장 잔인하고 악독한 원수가 되는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4) 우리는 히스기야왕의 사자들이 한일을 볼수 있다.
① 그들은 조용히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히스기야를 위하여 말할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왕이 그들에게 대답하지 말라고 명령하였기 때문이며, 그들은 왕의 지시를 지켰다.
② 그들은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것을 원통해하고 멸시와 고통을 당하는 예루살렘의 상황을 슬퍼하여 그들의 옷을 찢었다. 예루살렘이 당하는 수치는 그들에게 큰짐이 되었다.
③ 그들은 그사실을 왕에게 충실히 보고하였다.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고하니라.

# 핵심
18:1-8
히스기야왕의 통치에 관한 기록이다. 그는 역대 그어떤 유다왕들보다도 신앙심이 두터웠으며, 철저한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인물이다.

# 묵상
히스기야의 치적 ( 18:1-8 )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고, 산당과 주상을 부수며 목상을 없앴고,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했으며, 여호와의 계명을 지켰고, 앗수르왕을 섬기지않고 블레셋을 쳤습니다.
히스기야 통치의 형통함 ( 18:1-8 )
유다왕 히스기야는 무엇보다 우선하여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맺는데 힘썼기때문에 형통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일소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열심을 다해 실행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이루지않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번영이나 행복은 있을수 없습니다.
놋뱀의 의미 ( 18:4 )
모세시대에 광야에서 불뱀에 물렸을때 고침을 받기위해 만든 구원의 징표입니다(민21:4-9). 그러나 이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그본래 의미를 상실하고 우상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놋뱀에 비유하셨습니다(요3:14). 놋뱀을 바라보는 자가 구원을 얻었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는 자들만이 구원을 얻고 영생을 소유할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패망 ( 18:9-12 )
북이스라엘의 패망은 남유다와는 달리 철저히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와 그에 따른 각종 죄악에 심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등진 인생과 민족은 멸망할수밖에 없습니다. 그이유는 하나님이 복과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요15:5).
전쟁에 패한 히스기야 ( 18:13-16 )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패할것을(사8:7-15)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어떤 환난속에서도 주님만을 바라볼때는 살지만, 세상을 바라보면 그속에 빠지게되며 패하게 됩니다.
앗수르 군대장관의 전술 ( 18:22-25 )
그들은 군사적 약점을 이용한 사기저하와 종교적으로 믿음을 버리게 합니다. 사탄은 성도가 스스로 무력하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를 속이고, 또한 하나님을 아무힘도 없는 존재라고 속여 우리의 믿음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미혹을 합니다.
악의 세력이 준 유혹의 강도 ( 18:29-35 )
악의 세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뢰하라는 경고를 모두 무시하게 하고, 약속의 땅보다 더좋은 땅이 있다고 유혹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다른신들보다 미약하다고 강조합니다. 사탄은 유혹을 이겨내려는 성도들에게 더아름답고 속기 쉬운것을 제시함으로써 그유혹의 강도를 높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을 오직 말씀으로 이겨 내셨습니다(마4:1-11).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에 끼친 폐해 ( 18:32 )
앗수르는 사마리아 지역주민들을 다른 이방지역으로 이주시키고, 대신 다른 이방주민들을 사마리아에 유입시킴으로써 결국 북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말살시키고 혼혈민족으로 만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측면에서, 어두움의 세상주관자인 악한 마귀는 성도들의 삶에 침투하여 그거룩성을 퇴락시키고 죄악으로 혼탁하게 만듭니다.
유혹에 대처하는 성도들의 자세 ( 18:36 )
믿음가운데서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립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침묵으로 당신의 진리를 항변하셨습니다(마26:63).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승리입니다.
옷을 찢는 행동의 의미 ( 18:37 )
성경에서는 주로 회개를 하거나 모독을 당했을때 옷을 찢었는데 이는 슬픔이나 고통, 분노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었습니다(삿11:35). 회개하지 않은 의롭지못한 종들은 바깥 어두운곳에서 이를 갈며 슬퍼함이 있을 것입니다(마25:30).

# 해설
히스기야 통치와 앗스르 침공 ( 18 )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지금까지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하여 교차 진술되던 방법에서 떠나 이제는 유다에 관해서만 언급하게 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왕은 악한통치를 펼쳤던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입니다.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면서 강력하게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반앗수르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앗수르의 공격을 받지만 히스기야는 여호와만을 의지하는 신실한 지도자였습니다.
1. 히스기야의 개혁통치
1) 히스기야의 즉위
유다의 왕들중 위대한 개혁자로 알려진 히스기야가 아하스를 계승하여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비극의 왕 호세아가 3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25세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29년을 통치하였습니다.
a.히스기야의 즉위(대하28:27)
b.히스기야의 모친(대하29:1)
2) 여호와를 의지한 히스기야
히스기야는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동하였습니다. 다윗같이 바르게 행했다는 칭찬은 유다의 왕들중 히스기야를 포함하여 4명뿐이었습니다. 즉 아사, 여호사밧, 그리고 요시야였습니다. 특별히 히스기야는 '여호와외에 다른신은 없다'는 투철한 신앙을 가지고 각종 우상들과 미신들을 훼파하여 백성들로하여금 우상숭배를 못하도록 권장하였습니다. 이처럼 히스기야는 여호와만을 의지하면서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고자 힘써 노력하였습니다.
a.정직히 행함(왕하20:3)
b.모세의 놋뱀(민21:8-9)
3) 히스기야의 자주정책
이처럼 여호와만을 신뢰한 히스기야였기에 매사에 형통함이 넘쳤습니다. 국내적으로 단호하게 행한 종교개혁이 점차 이루어져 갔고, 국외적으로는 블레셋을 정복하였습니다. 한편 히스기야는 부왕인 아하스가 펼쳤던 친앗수르 정책을 지양하고 하나님의 선민답게 단호한 자주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사르곤 2세가 다스릴때는 지혜롭게 앗수르를 자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르곤 2세를 이어 산헤립이 왕위를 계승하자 앗수르에 대해 강경한 애도를 취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예상되는 앗수르의 보복을 준비하여 이웃나라들과 동맹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a.앗수르를 섬긴 아하스(왕하16:7)
b.여호와만을 의뢰하는 히스기야(왕하19:10)
2. 앗수르의 1차 침입
1)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본서의 저자는 다시한번 앗수르에 의한 이스라엘 멸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재위 4년에 포위된 사마리아가 히스기야 재위 6년에 함락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멸망은 유다에게 주는 암시적인 경고가 있었습니다. 또한 여호와만을 의지하는 히스기야의 선정과 우상숭배만을 일삼는 호세아의 타락이 극명하게 대조되면서 한민족이 왜 멸망하는지 그이유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멸망은 히스기야에게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신뢰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a.앗수르를 사용하시는 하나님(대상5:26)
b.사마리아를 취한 앗수르(왕하17:6)
2) 유다를 침입한 앗수르
앗수르의 사르곤 2세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장본인으로서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많은 영토를 확장하고, 여러민족들을 함락시켰습니다. 하지만 그의 뒤를이은 산헤립은 약간 힘이 모자라는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를 비롯하여 베니게, 블레셋, 그리고 애굽 등이 동맹군을 결성하여 앗수르에 대항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을 강화시킴으로 앗수르 공격에 대비하였습니다. 예상대로 앗수르의 산헤립은 자국에 등을 돌린 유다를 공격하러 쳐들어왔습니다. 유다에 오는도중에 동맹국들중 베니게와 블레셋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의 많은 성읍들을 함락시켰습니다. 그후 산헤립은 유다와 블레셋의 국경부근인 라기스에 머물면서 예루살렘을 재차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의 마음은 한없이 약해졌습니다. 여호와만을 의지하기엔 너무나 다급하다고 그는 느꼈던것 같습니다. 그는 산헤립에게 전갈을 보내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잘못했다고 용서을 구하면서 만일 앗수르가 예루살렘에서 철수한다면 어떠한 요구도 들어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그리하여 히스기야는 성전과 궁전안의 모든 은과 문과 기둥에 입혀진 금까지도 벗겨내 300달란트의 은과 30달란트의 금을 산헤립의 요구대로 주었습니다. 물론 앗수르도 약속대로 철수하였습니다. 이러한 앗수르의 침입은 히스기야의 연약함과 불신앙적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었고, 유다를 극도의 혼란과 좌절속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a.솔로몬 당시에 풍부했던 은과 금(왕상10:21)
b.하사엘에게 바친 금(왕하12:18)
3. 앗수르의 2차 침입
1) 항복을 요구하는 앗수르 사신들
히스기야가 보낸 예물을 받고 물러난 앗수르의 산헤립은 유다의 완전한 항복을 요구하고자 사신들을 유다에 보냈습니다. 이를 알고 히스기야도 3명의 사신을 보내 예루살렘 성벽에서 가까운 세탁자의 밭에서 협상을 위해 앗수르 사신들을 만났습니다. 앗수르 사신들은 히스기야의 항복을 요구했습니다. 동시에 히스기야가 애굽이나 여호와를 믿고 또는 무력에 의지하여 앗수르에 반역하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임을 역설하였습니다. 앗수르 사신들은 저항을 통한 비참한 죽음보다는 항복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것이라고 설득하였던 것입니다.
a.궁내대신 엘리야김(사22:20)
b.상한 갈대인 애굽(겔29:6-7)
2) 백성들을 설득하는 앗수르 사신들
히스기야가 보낸 사신들과 대화를 나눈 앗수르의 사신들중 랍사게가 이제는 백성들을 향하여 앗수르에게 항복할 것을 설득하였습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허황된 말을 믿지말고, 구원을 주신다는 여호와의 능력도 신뢰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단지 앗수르에게 항복하고 나아오면 생활의 안정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삶의 터전도 주어 평안한 삶을 누리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끝으로 랍사게는 여호와도 앗수르왕앞에서는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말을 마쳤습니다.
a.평안한 삶(왕상4:25)
b.내손에서 건질 신이 있느냐(단3:15)
3) 침묵하는 백성들
랍사게의 말에 대해 백성들은 침묵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이는 이미 히스기야가 백성들에게 지시한 사항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사신들은 이모든 일을 히스기야에게 보고하러 가서 옷을 찢으며 통분해 하였습니다. 사신들은 하나님에 대한 앗수르의 모독에 참을수 없는 분노를 느꼈으며 암울한 민족의 앞날로인해 고통스러워했던 것입니다.
a.옷을 찢음(수7:6)
b.인내가 필요한 침묵(시37:7)
결론
히스기야는 유다의 왕들중 대표적인 개혁자로 손꼽히는 선왕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여호와중심의 신앙을 갖고 나라를 다스리며 개혁을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또한 앗수르의 위협앞에서는 어쩔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앗수르의 극악무도한 횡포와 회유속에서도 오직 여호와만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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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이스라엘의 멸망 17:1-6
이스라엘의 마지막왕 호세아의 통치와 멸망에 대한 기록이다.
(1) 그는 모반과 살인으로 왕위를 차지하려고 하였으나(참조15:30), 7∼8년이 경과한 다음 왕위에 올랐다.
(2) 그는 비록 악한 왕이었지만, 그이전의 여러왕들처럼 악하지는 않았으며(2절), 그들처럼 송아지를 섬기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떤사람들은 호세아왕이, 이전왕들이 백성들에게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을 금지했던 법령을 철회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로 이스라엘의 멸망이 이스라엘 왕들가운데 가장 선한 왕중의 하나인 호세아때 닥쳤다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수 있겠는가? 호세아는 전왕들처럼 악하지는 않았다하더라도 백성들이 이전 백성들만큼 악하였다. 왕은 백성들이 더 선하게 살도록 허용하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악하여 죄에대한 허물을 지고, 멸망을 자초하였다.
(3) 파멸은 단계적으로 다가왔다.
(4) 이스라엘이 앗수르왕의 멍에를 벗어버리기 위하여 하였던 간접적인 수단이 오히려 멸망을 초래하였다(4절). 만약 호세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호소하고, 뉘우치고, 기도를 드렸더라면 그들은 자유와 안식과 명예를 회복할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조공바치기를 중단하고 반란을 일으키는데 도움을 얻기위하여 애굽왕을 의지하였다. 만약 이계획이 실효를 거두었다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압제자를 교체한것 이상의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굽도 그들에게는 썩은 갈대지팡이밖에 되지 못하였다.
(5) 그들에게 드디어 완전한 멸망이 닥쳤다.
1) 이스라엘왕은 옥에 갇혔다.
2) 이스라엘땅은 약탈당했다. 그리고 앗수르군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당한 적이 아니고, 정의의 칼로 형벌을 받을만한 반역자로 취급하였다.
3) 이스라엘의 왕도는 포위되고 결국 함락되었다. 그러나 온나라가 정복된 뒤에도 삼년간 버티었다.
4)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로 포로로 잡혀갔다(6절). 대부분의 백성들과 높은지위가 있던 자들도 강제로 정복자의 나라로 이송되어 거기서 노예가 되거나 걸인이 되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은 스스로 잊혀진 사람들이다. 백성중 하류층은 뒤에 남았으며, 각지파에서 많은사람들이 유다로 갔거나 앗수르의 식민이 되었다. 그들의 후손이 갈릴리, 혹은 사마리아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국가로서는 끝이나고, 이제 그들은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의미)와 로루하마(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다라는 의미)가 되었다. 야고보는 해외에 흩어져있는 12지파에게 편지를 하였고(약 1:1), 바울도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는' 열두 지파에 대하여 말하였다(행 26:7). 그러므로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 대한 기록은 볼수 없지만 그들중에 도피하여 남은자들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보존하였고 이제 복음교회, 즉 영적 이스라엘로 옷을 바꾸어 입은 이스라엘은 그이름이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갈 6:16).

Ⅱ.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 17:7-23
열지파 왕국의 멸망과 그원인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을 그앞에서 제하신 분은 여호와'이셨다. 즉 도구가 누구이든지간에, 재난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이것은 전능자에게서 비롯된 멸망이었다. 앗수르군대는 '그의 진노의 막대기'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적과 자신의 말씀으로 일으키고 형성시키신 민족인 이스라엘을 왜 파멸시키려고 하셨는가? 이것은 단순히 주권의 행사인가? 아니다. 이것은 필수 불가결한 심판의 행동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일을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가? 아니다. 이것은 그들자신의 행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길과 행위로 이모든 재난을 자초하였고, 그들을 징계한 것도 바로 그들의 악함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이 황폐케된 원인은 바로 이때문이라고 여기에 분명히 드러나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자신을 섬기게 하기위하여 무엇을 하셨는가?
1)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다(7절). 하나님께서 결박을 풀어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종이될 의무를 지고있었다. 만약 그들이 자기들의 불의로인하여 자유를 배반하고 스스로를 팔아버리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을 애굽왕의 손에서 구해내신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을 앗수르왕의 손에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2)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또 자신이 그들의 왕이시기때문에 그들은 선과 악, 그리고 죄와 의무를 몰랐다고 변명할수 없었다.
3) 하나님은 그들에게 땅을 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거주지를 주시기 위하여, 그들앞에서 이방사람들을 쫓아내셨다(8절). 그리고 우상숭배하는 이방인들을 쫓아내신 것은 이스라엘은 그들처럼 행하지 말라시는 가장 분명한 경고이었다.
(2) 하나님께서 이언약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를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고'(7절), '가만히 불의를 행하였다'(9절).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즉 노예가 자기주인의 일에 매달리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스스로 완전히 죄에 매어 달렸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계속 죄를 짓고 마음이 완악하여져 종국에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자신을 회복하는 일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비록 그들이 심히 부도덕하고 십계명의 두번째 돌판의 모든계명을 어겼다하더라도, 여기에서는 특별히 우상숭배만 취급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죄이며, 모든죄 가운데서 하나님께 가장 가증스러운 죄이다. 이것은 결혼계약을 깨뜨리는 영적인 간음이며 다른 모든죄악의 근원이었다. 이스라엘은 다른 여러신들을 두려워하였다(7절). 다시말하면 이방신들이 노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경배하고, 충성을 바쳤다. 모든성읍에…산당을 세웠다(9절). 만약 어떤마을에 망대나(시골에는 성곽이 없고, 전시에 파수병을 보호할 망대밖에 없었다), 목동들의 움막만 있더라도, 그곳을 위하여 산당과 제단을 지었다. 더욱이 견고한 도성이라면 산당을 지어 더욱 강화하였을 것이다. 모든 산위에와 푸른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상을 세우고, 그들은 아세라상(혹자는 이뜻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작은숲의 신이라는 뜻과 함께 자체가 나무로 만들어진 신상이라고 한다) 혹은 아스다롯상(아세라의 복수형)을 세웠고 이것은 분명히 제2계명에 대한 위반이었다(10절). 그들은 자기들 손으로 만든 우상을 섬겼다(12절). 그들은 여러 이방신들을 위하여 '모든산당에서 분향하였고', 이것은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었다(11절). 심지어 부어만든 두마리의 송아지 우상뿐만 아니라, 하늘의 일월성신, 즉 해와 달과 여러별들을 숭배하였다. 그리고 이방신들의 지시를 받기위하여 점술과 마술을 사용하였다.
(3) 하나님은 그들을 우상숭배에서 멀리하시려고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였으나 별로 효과가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여호와의 선한지식을 백성에게 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제사장들을 없애지 아니하셨다. 그러나 이노력도 허사였다(14절).
(4)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인하여 어떻게 처벌하셨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시사'(18절) 그들을 괴롭게 하시고 '노략군의 손에 붙이셨다'(20절). 사사시대와 사울의 시대에도, 그후 이스라엘의 여러왕의 시대에도,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인하여 스스로 깨닫고 자기들의 길을 돌이켜보고 고치는지 보시려고 이와같이 하셨었다. 그러나 이모든 교정노력이 어리석음을 몰아내지 못하게 되었을때, 하나님은 일단 '이스라엘을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나누셨다.' 백성들이 그집의 통치아래 있었더라면 행복하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기 이스라엘의 죄악기록 가운데 유다왕국의 죄악이 언급되었다(19절). 유다도 그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들은 아직까지 이스라엘같이 악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에게 오염되고 있었다.

Ⅲ. 그이후의 사마리아 상황 17:23-41
앗수르왕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강제로 가나안에서 쫓아내고, 거기에 바벨론의 잉여인원을 바로 이주시켜서 거기에서 자기를 섬기며, 남아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감독하게 하였다. 여기에 이 새로운 주민들에 대한 기록이 나와있다.
(1) 이스라엘땅으로 이주한 앗수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1) 그들은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여러성읍에 거하였다(24절).
2) 그들이 처음왔을때,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그가운데 보내셨다.' 물론 그지방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때문에, '들짐승이 번성하였다'(출 23:29). 그러나 이런 자연조건을 떠나서 이일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 하나님은 사자들을 명하여 거칠게 환영하심으로 그들의 교만을 저지하셨다.
3) 그들은 이슬픔을 자기들의 주인인 왕에게 알리고, 이 새로운 식민지에서 사자로인한 손실과 계속적인 공포를 호소하고, 이것을 그들이 그땅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것에 대한 심판으로 간주하며, 그들은 그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하는지 모른다고 보고하였다(26절). 이사실로 앗수르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목소리를 들을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앗수르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배우기 싫어한 교훈을 오히려 배우려고 하였다.
4) 앗수르왕은 그들이 '그땅의 신의 법'을 배울수 있게 배려하였다(27,28절). 이것은 그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자기백성들을 사자에게서 구하기위한 것이었다. 왕은 사로잡아온 제사장들가운데서 한사람을 돌려보냈다. 그는 돌아가 그들중에 거하면서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할 것인지 가르쳤다. 그들은 이렇게 배워서 혼합종교를 만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두려워서 섬기고, 자신의 신들은 사랑해서 섬겼다(33절). 이와같이 저희가 여호와도 경외하고…또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우리가 유대학자들의 전승을 인정한다면, 이우상들은 다음과 같다. 숙곳느봇의 제물은 암탉과 병아리, 네르같은 장닭, 아시마는 깨끗한 수염소, 닙하스는 개, 다르닥은 노새, 아드람멜렉은 꿩, 아남멜렉은 칠면조였다. 영국학자들은 숙곳느봇(딸들의 장막이라는 뜻)은 비너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굿사람들과 바사사람들이 섬긴 네르같은 불이다.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은 몰록의 변형에 불과하다. 본문은 이런 잡동사니 미신행위가 '오늘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책이 기록된때까지 그리고 그이후까지 약 300년간, 알렉산더대왕때까지, 즉 유대의 대제사장 야두스의 형제인 므낫세가 많은 유대인들을 데리고와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설득하여 모든 우상들을 내어버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 섬기게 할때까지 계속되었다.
(2) 앗수르땅으로 옮겨간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남쪽 두지파가 나중에 바벨론으로 잡혀갔을때, 그들은 그사건으로 인하여 우상숭배 습관을 고쳤다. 따라서 70년후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송환되었다. 그러나 북쪽 열지파는 용광로속에서 더 단단해졌으며, 소멸되고 말았다. 그들은 적의 손에 떨어졌을때에도,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때에도 여전히 어리석어서 이전의 방법을 좇아 행하였다(40절). 그들은 하나님과 이방신과의 차이를 알지못하는 것처럼, 참되신 하나님과 거짓된 신들을 함께 섬겼다.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이스라엘은 그들을 정복한 나라들이 행하는 것처럼, 그대로 행하였다.

# 핵심
17:1-23
마침내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다. B.C. 722년의 일이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게된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우상숭배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의 멸망(17:6)
사르곤 2세의 통치연대기는 당시 사마리아에서만도 남자만 27,290명이 포로로 잡혀갔다고 전한다. 아울러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수르의 공격을 피해 남유다로 도망했던 까닭에 유다의 인구가 급증했다고 한다.
사마리아 사람(17:24)
앗수르의 식민정책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른 정복지역의 이방인들로하여금 서로 통혼과 교류를 하게 만들었다. 문화와 인종을 서로 혼합시켜 단일민족의 정체성을 잃게 만들면 앗수르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도에서 시행된 정책이었다. 그결과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새로운 혼혈족이 생겨났다. 후대에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을 이방인 취급을 하며 경멸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요 8:48).

# 묵상
호세아의 통치 ( 17:1-6 )
그는 북이스라엘의 마지막왕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온나라 안에 악이 만연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인내하시면서 기다리시지만 더이상 패역한 것이 고쳐질 기미가 없을때는 심판하십니다.
사마리아인의 천대 ( 17:5, 6 )
그것은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면서 이방인들이 사마리아에 거주하게 되고, 또한 사마리아인들도 앗수르로 끌려가 이방인들과 통혼을 하게되었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 ( 17:7-18 )
이들이 멸망한 원인은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다른신을 섬겼으며, 이방인의 규례를 따랐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이방신상을 두었으며,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않고 계명을 어겼으며, 신상을 만들고, 자녀를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드렸으며, 복술과 사술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특징 ( 17:7-18 )
여로보암에서부터 호세아까지 19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조는 9왕조이며 8차례의 혁명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위로는 지도자, 아래로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악을 저지르고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따라서 반복되는 악의 순환속에서도 회개하지 않고 교만하게 행동함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할 행동 ( 17:15 )
이방인들의 사악하고 부패한 문화와 종교, 습성을 본받지말고 오히려 그들을 거룩한 종교로 인도해야만 했습니다.
남유다의 상태 ( 17:19, 20 )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않고 다른 율례를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누룩처럼 퍼져가는 것이 죄의 속성인데 이것을 잘 통제하지 못하면 결국 나와 이웃 모두가 멸망하게 됩니다(고전5:6-8).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보내심 ( 17:25, 26 )
팔레스틴에는 사자가 별로 살지않았지만 때때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끔 사자나 다른동물들을 통해서 징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본문에는 이러한 징계를 통하여 사마리아에 이주한 이방인들에게도 율법을 가르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인 여호와 신앙이 아닌 혼합주의적인 신앙으로 이끌려 갔습니다.
사마리아의 상황 ( 17:27-33 )
앗수르에 의해 패망한후 원래 사마리아에서 살던 사람들은 먼곳으로 이주되고, 다른민족들이 많이 유입되므로 혼혈민족이 되어버렸습니다. 인종적으로만 혼합된 것이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신이 들어와서 혼합종교의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떠난자리에는 사탄의 세력이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현대에는 많은종교가 난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수 있으며 이것은 영원한 진리입니다(행4:12).
하나님의 언약 ( 17:34-41 )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으로 한백성을 선택하시고 일방적으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오늘날도 성도의 구원은 행위의 대가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엡2:8, 9). 인간은 그언약에 순종하며 참여할때에 복을 받을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약파기는 인간에게 큰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구출해주신 하나님 ( 17:34-40 )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면서 자신을, 이스라엘을 종되었던 애굽에서 구출해내신 분으로 소개합니다(출20:2). 하나님은 무조건 당신의 명령을 준행하라고 다그치는 압제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서 율법준수를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므로 말씀을 따라사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 해설
이스라엘의 멸망 ( 17 )
다윗왕조는 솔로몬이후에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에 의해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열되었습니다. 본문은 여로보암에 의해 창건된 이스라엘이 약 210년만에 멸망하는 역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멸망의 주역이 된 왕은 호세아였고, 이스라엘을 심판한 도구는 앗수르였습니다. 특별히 본문에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게된 원인과 함께 사마리아지역에 생기게된 비극과 그곳에서의 우상숭배 죄악을 다루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의 마지막왕 호세아
1) 호세아의 즉위
베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호세아는 유다왕 아하스 12년에 통치를 시작하여 9년동안 왕위를 지켰습니다. 다른 선왕들과는 달리 여로보암 1세의 죄가 호세아와 연관하여 언급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는 아마도 여로보암의 정책을 장려하지는 않았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기백성들이 유다의 예루살렘에서 여호와께 제사드리도록 허락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a.호세아의 즉위(왕하15:30)
b.악의 창시자(창3:1)
2) 앗수르의 공격을 자초한 호세아
앗수르에서는 디글랏빌레셀 3세의 뒤를 이어 살만에셀 5세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마지막왕이 된 호세아는 앗수르왕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애굽의 외교에 넘어가 앗수르에게 바치던 조공을 중단하고 애굽의 소왕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는 호세아의 돌이킬수 없는 엄청난 실수였습니다. 애굽의 소왕은 이스라엘을 도울능력도, 마음도 없었던 것입니다. 호세아의 배반을 괘씸히 여긴 앗수르의 살만에셀은 곧바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는 호세아를 포로로 잡은후 사마리아를 함락코자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3년동안의 포위속에서도 계속 버텼습니다. 그동안 살만에셀 5세는 죽고 사르곤 2세가 앗수르의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사르곤에 의해 사마리아가 포위된지 3년만인 B.C.722년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앗수르 각지역으로 보내졌습니다.
a.국가사이의 배반(왕하1:1)
b.하나님을 배반한 사마리아(호13:16)
2.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
1) 여호와께 죄를 범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멸망하게된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의 이적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몸소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로는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이방신을 따르고, 이교도들의 관습을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을마다 산당을 세우고 아세라목상에게 숭배하였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한 죄악이었습니다.
a.애굽땅의 풍속(레18:3)
b.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라(출23:24)
2) 우상숭배의 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를 금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선조들이 여호와와 맺은 언약조차도 무시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이들은 금송아지, 바알과 아세라, 그리고 일월성신 등을 숭배했습니다. 또한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이방인의 관습을 따르면서 점술과 마술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전역에 편만해진 우상숭배는 여호와의 크나큰 진노를 사게 되었으며, 동시에 여호와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a.목이 곧은 백성(신9:6)
b.복술을 하지말라(레19:26)
3)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여호와
이스라엘의 이같은 악행은 유다에게도 전염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다도 여호와께 불순종하면서, 우상을 숭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죄악에 대한 징벌로 한나라를 유다와 이스라엘로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창건왕인 여로보암때부터 금송아지를 섬기면서 여호와의 경고도 무시하고 우상숭배와 불순종만을 거듭 반복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200년가량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회개치 않았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심판의 손을 드시어 이스라엘을 치신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해 먼 이방지역으로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a.유다에 미친 영향(렘3:8)
b.멸망를 통한 심판(삿2:14)
3. 이스라엘 멸망의 결과
1) 사마리아에 정착한 이방인들
앗수르의 사르곤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수르지역으로 이주시키고, 대신 여러 이방민족들을 사마리아라는 지역에 정착시켰습니다. 사마리아에 온 이방민족들은 여호와가 아닌 각기 자신의 민족신을 섬겼습니다. 따라서 이곳은 충돌과 무질서가 난무하였고, 심지어 맹수가 출몰하여 사람이 죽는일까지 발생했습니다. 이때 이방인들은 이땅의 민족신이 노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a.스발와임 사람(왕하19:13)
b.여호와앞에 쓰러진 블레셋의 신(삼상5:4)
2) 혼합종교화된 사마리아
그리하여 앗수르왕은 사마리아에 있는 이방인들의 요청대로 이땅의 신을 섬길수 있도록 가르칠수 있는 이스라엘 제사장 한명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제사장은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신앙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이모든 것은 허사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다신교도들이었기에 여호와를 자기들이 믿는 신들중의 일부분으로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여호와를 자신들의 민족신과 함께 섬겼습니다. 이결과로 사마리아는 혈통과 신앙의 순수성 모두를 잃어버렸습니다. 신앙도 혼합종교화되어 사마리아는 일시에 종교전시장이 되어 버렸으며 물론 여호와 유일신 신앙도 여지없이 무시되고 말았습니다.
a.사마리아에 들어온 이방신(왕하18:34)
b.사마리아의 차별대우(요4:9)
3) 계속되는 사마리아의 범죄
본서의 저자가 이글을 쓸때까지도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야곱의 자손들에게 허락한 율법도 지키지 않았고, 족장들과 맺은언약도 무시하였습니다. 오직 우상숭배만이 지속될 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여호와께 대한 불순종만이 난무하였습니다.
a.야곱에게 명하신 말씀(창32:28)
b.여호와를 경외하라(신6:13)
결론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배교로 말미암아 민족전체가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습니다. 특별히 이들은 여호와의 말씀에 청종치 않았으며 심지어 무관심하기조차 하였습니다. 동시대 호세아왕은 700년전에 애굽에서 탈출했던 출애굽의 이적을 행한 여호와가 아닌, 바로 그애굽을 믿고 의지했던 너무나 어리석은 왕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였고, 사마리아의 비극을 스스로 연출하게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멸망은 곧바로 유다에게는 중대한 경고가 되었습니다. 단지 심판은 유보된 것이고, 하나님께서 조금더 관용하고 계심을 유다백성들은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결코 이스라엘의 멸망은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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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다왕 아하스의 통치 16:1-4
(1) 아하스의 통치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 나온다. 그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정직히 행치 아니하고(2절). 그는 성전에 대한 사랑이 없었고, 하나님께 대한 의무에 신경도 쓰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윗의 명예로운 이름과 가문의 수치였으며, 그러므로 사실상 자신에게도 수치가 되었다.
(2)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3절). 그들은 모두 송아지를 숭배하였다. 이스라엘의 여러왕들은 우상숭배가 그들의 국가의 정책이며 대의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하스는 이와같은 구실을 댈수 없었다. 그들은 아하스의 적이었으며, 그들의 우상숭배로인하여 더적대적으로 되어왔었다. 그런데 아하스는 그들의 길을 행한 것이다.
(3) 그는 쓰레기같은 잡신들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아들을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다. 또한 우상에 대한 헌신의 표로 자식들을 불에 태우고(대하 28:3), 다른아들들을 두개의 불사이로 지나가게 하거나, 불한가운데를 지나게 하였다.
(4) 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았다(3절).
(5) 또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4절). 만약 그의 아버지가 좀더 열심을 내어 산당까지 제거해버렸더라면 아들의 방탕을 방지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죄를 묵과하는 자들은 그것이 자기후손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올무를 놓는 행위인지 알지 못한다.

Ⅱ. 앗수르에 도움을 청함 16:5-9
(1) 이웃나라 아람과 이스라엘의 왕이 동맹을 맺고 아하스를 치려고 하였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거기에 자기들의 왕을 세우려고 생각하였다. 이계획은 실패하였지만, 아람왕은 홍해에 위치한 주요항구 도시인 엘닷을 회복하였다. 이도시는 아마샤가 아람에게서 빼앗은 것이었다(24:22).
(2) 그들에게서 벗어나려는 아하스의 계획은 이러했다. 그는 하나님을 버렸기때문에 적에 대항하여 고개를 들 용기도, 능력도 없었으며,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할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앗수르왕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의 군대를 끌어들였다. 죄는 그자체가 형벌이다. 앗수르왕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도우려 다메섹에 내려와서 아람왕에게 강력한 견제공격을 가하였다(9절). 그리고 아람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서 '길'로 끌고감으로 아하스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볼때 아하스는 그의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때 손해나는 거래를 하였다. 그는 목적달성을 위해 첫째, 자신을 종으로 만들었다(7절). 나는 왕의 심복이요, 둘째, 스스로 가난하게 만들었다. 그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의 곳간에서 은과 금을 꺼내 앗수르왕에게 보내었다(8절). 왕이 국고를 이렇게 처리할수 있는 무슨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수 없으나 하나의 죄를 지어서 스스로 협곡에 빠진 사람들은 통상 또다른 죄를 통하여 헤어나오려고 한다.

Ⅲ. 하나님의 전을 더럽힘 16:10-16
비록 아하스 자신은 산당에서 희생을 드렸지만(4절), 그때까지 하나님의 제단은 원장소에서 원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악한왕 아하스는 하나님의 제단을 옮기고 다른제단, 즉 우상의 제단을 그장소에 놓았다.
(1) 이 새제단의 모양은 왕이 직접 다메석의 제단을 본따 만든 것이었다(10절). 앗수르왕이 다메섹을 칠때, 아하스도 그곳에 가서, 그를 축하하고 그의 명령을 받았다. 다메섹에서 그는 그를 꼭 만족시켜 주는 제단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그제단의 모형을 똑같이 본땄음에 틀림없다.
(2) 제사장 우리야가 그제단을 만들었다(11절). 왕이 어떤구실을 제시하더라도 대제사장인 그가 사악한 군주의 명령에 복종하여 제단을 제작한 행위는 가장 형편없는 악한 짓이다. 그는 스스로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자기권위를 매음하듯이 팔아치웠으며, 대제사장의 명예를 더럽혔고, 자기신의를 저버렸다.
(3) 그제단을 봉헌하였다. 우리야는 그것을 놋단옆에 놓았다. 왕은 매우 기뻐하고, 그위에 번제를 드렸다(12,13절). 그희생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아니라, 다메섹의 우상들에게 드려진 것이다.
(4) 새제단을 놓기위하여 하나님의 제단을 치웠다. 아하스는 하나님의 제단을 성전뜰 북쪽, 외진구석으로 옮기고, 대신 성소에 자신의 제단을 놓았다. 아하스의 미신적인 착상은 우선 하나님의 거룩한 제도와 충돌하였고, 결국 하나님의 제도를 밀어내었다. 하나님을 자기의 전부로 여기는 것을 만족해하지 않는자들은 곧 하나님을 무시해버리고 말것이다. 아하스는 감히 하나님의 놋단을 아주 없애지는 못하였다. 그는 자신의 제단을 하나님의 제도위에 두려고 하였다. 놋단은 하나님께 묻기위하여 제작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아하스는 그렇게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는 후에 그놋단의 놋을 가지고 '아하스의 일영표'(참조, 20:11)라고 불리워지는 유명한 해시계를 만들었다고 유대인들은 말한다.

Ⅳ. 아하스의 죽음 16:17-20
(1) 아하스는 성전을 마구 바꾸었다. 성전건물 자체는 아니지만 성전의 여러기물을 오용한 것이다.
1) 그는 물두멍의 받침을 떼어내고(왕상 7:28,29), 놋바다를 내려놓았다(17절). 이것은 제사장들이 씻을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2) 그는 '안식일에 쓰기위하여 성에 건축한 낭실', 즉 안식일을 기념하기위하여, 아니면 제사장들이 다른날보다 안식일에 많은 직무를 행하였기때문에, 제사장들의 편의를 위하여 세운 낭실을 옮겼다.
3) 그는 왕실의 편의를 위하여 만들었던, 여호와의 전에 이르는 왕의 낭실(아마 솔로몬이 만든 당시 시바의 여왕이 보고 경탄한 층계일 것이다)을 다른곳으로 돌려버렸다. 이것은 그가 더이상 하나님의 전에 자주 출입하지 않을 생각임을 보여주려한 것이다.
(2) 아하스는 중년기인 36세의 나이에 생을 마치고, 훨씬 훌륭한 자기아들 히스기야에게 왕국을 넘겼다(20절). 히스기야는 자기아버지가 성전에 대적했던만큼 성전의 친구가 되었다.

# 핵심
16:1-20
아하스는 친앗수르 정책을 폈으며, 심각한 우상숭배에 빠졌다. 그는 유다의 역대왕들 가운데서 신앙적으로 가장 타락했던 왕이다.

# 묵상
아하스의 사람됨 ( 16:1-9 )
요담의 아들로 유다의 왕입니다. 또한 그는 이교도의 영향으로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행한 사람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었습니다(신18:21).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그생명을 보존하기를 원하십니다. 전쟁에서 아하스의 행동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동맹국에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능력의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인간을 의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힘의 근원이십니다(시18:1). 그러나 그힘을 의지하지 않는자는 도리어 화를 입습니다.
지도자의 실책 ( 16:2 )
지도자의 실책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끄는 공동체 전체와 더나아가 그후손들에게까지 악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런점에서 지도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더큰 심판을 받게됩니다(약3:1). 권리보다 책임을 더욱 통감하는 자가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수 있습니다.
아하스의 죄악 ( 16:10-20 )
그는 아람수도 다메섹에 갔다가 그곳에 세워진 우상에 미혹되어 예루살렘 성전내에 아람우상을 섬기는 단을 만드는 악행을 범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숭배 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침해하는 중죄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인생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추악한 범죄를 행하기에 급급합니다.
하나님말씀의 중요성 ( 16:16 )
그어떤 권력자의 불같은 명령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울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어긋난 것임을 알면서도 보이는 인간의 눈을 의식하여 인간만을 기쁘게 하는것은 크나큰 죄악이 아닐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를 구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도리입니다(마6:33).

# 해설
아하스의 유다통치 ( 16 )
다윗왕조를 계승한 유다의 왕들은 비교적 선한 왕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듯이 아하스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아람의 위협앞에서 하나님보다는 앗수르를 더욱 의지했습니다. 그결과로 온유다는 앗수르가 지워준 멍에를 메야만 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방의 우상과 제사의식들을 유다에 널리 보급시킨 장본인으로서, 성전의 기구들과 구조들도 변경시킨 죄악을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1. 아하스의 악한 통치
1) 유다왕 아하스의 즉위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즉위한 해는 이스라엘의 베가가 17년째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아하스는 20세에 왕위에 올라 16년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불명예스럽게도 아하스는 유다의 왕들중 가장 사악한 왕으로 꼽힐정도로 많은 악행들을 일삼았습니다.
a.아하스의 즉위(대하28:1)
b.아하스의 일영표(왕하20:11)
2) 우상숭배를 장려하는 아하스
아하스는 다윗왕조의 훌륭한 선왕들보다는 이스라엘왕조의 사악한 왕들을 본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우상숭배에 깊이 탐닉하게 되었는데, 심지어 자기아들을 불태워 번제물로 드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암몬족을 비롯한 가나안 족속들이 행하던 의식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큰나무 밑에 산당을 지어놓고 백성들에게 경배할 것을 장려했습니다. 이런 산당이 너무 많았기에 본서의 저자는 모든 푸른나무 밑에는 다 산당이 있고 제사가 행해진다고 말할정도였습니다.
a.자녀를 제물로 바침(시106:37-38)
b.몰렉신(레18:21)
2. 앗수르의 속국이 된 유다
1) 유다를 공격하는 연합군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는 연합군을 형성하여 앗수르에 대항코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르신과 베가는 아하스의 동참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앗수르의 위협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였기에 저들의 동참요구에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연합군들은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이때 이사야선지자는 연합군들이 유다에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하스로하여금 여호와께 징조를 구하여 도움을 청하도록 했으나, 아하스는 이를 거절하였습니다(참조, 사7:3-7). 결국 이사야의 예언대로 연합군의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아람의 르신이 항구도시인 엘랏을 탈환했습니다. 유다는 이후로 엘랏을 되찾지 못했고, 에돔족속이 훗날 이곳을 훼파하였습니다.
a.르신과 베가의 살육(대하28:5-6)
b.아사랴가 건축했던 엘랏(왕하14:22)
2)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한 아하스
아하스는 연합군의 공격을 물리치기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는 명령도 거절한채 앗수르의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앗수르의 지배에 복종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아람과 이스라엘의 연합군을 물리쳐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대가로 아하스는 성전과 왕궁안에 있는 은과 금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앗수르왕은 기쁜마음으로 아하스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은 먼저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을 공격하여 그곳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람왕 르신을 처형하였습니다. 또한 수많은 아람사람들은 앗수르의 격리수용 정책에 따라서 '길'이라는 지역으로 옮겨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결국 앗수르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려했던 아하스의 책략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로부터 연합군들은 물러갔지만 이제부터는 앗수르라는 새로운 멍에가 유다에게 지워졌다는 사실을 아하스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a.앗수르왕에게 예물을 바치는 아하스(대하28:21)
b.다메섹의 공격(암1:5)
3. 아하스의 우상숭배
1) 이방의 제단을 만들도록 시킴
아하스는 다메섹에 있는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셀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다메섹에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아람의 것인지, 아니면 앗수르가 새롭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새로운 제단을 보았습니다. 아하스는 이제단의 구조와 제도를 똑같이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어, 이것과 똑같은 것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하스가 왜 이제단을 만들도록 시켰는지는 잘모릅니다. 다만 아람신의 도움을 얻기위해서거나(참조, 대하28:23), 또는 앗수르가 만든 제단으로 생각하여 앗수르신을 의지하기 위해서, 또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보다 화려해서 이렇게 멋있는 제단을 만들고 싶은 욕망에서 만들도록 시켰을 것이라 여러모로 추측만 할 뿐입니다.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의 명대로 제단을 만들었으며, 다메섹에서 돌아온 아하스는 이제단에서 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a.제사장 우리야(사8:2)
b.민족신 앞에 제사함(대하28:23)
2) 성전의 기구들을 변조시킴
아하스는 제사장에게 명하여 이제부터는 드리는 모든제사의 제물을 저 새제단에서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하스는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 없애버렸고, 놋바다의 놋받침을 없애고 돌판으로 대신하였습니다. 또한 안식일날 왕이 성전을 방문할때 그늘을 만들어주던 낭실을 헐었고, 오직 왕만이 성전을 들어가는데 사용되던 낭실도 제거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성전의 모형과 제사의식을 아하스 임의대로 변조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앗수르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아하스의 아부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이는 곧 성전의 주인이 되시는 여호와께 대한 반항이자, 불순종의 극치를 이루는 악행이었습니다. 진실로 유다의 왕들중에 아하스처럼 하나님께 의도적으로 불순종한 왕은 없었습니다.
a.놋받침(왕상7:27-28)
b.놋바다(왕상7:23)
3) 아하스의 죽음
때가 이르매 아하스도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본문에는 단순히 그가 죽어서 다윗성에 그열조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하28:27절에 보면 아하스가 유다의 다른 경건한 왕들과 같이 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는 못하고 단지 예루살렘성에 장사되었다고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하스의 지난 행적들을 살펴볼때 그의 악행이 심했기에 당시의 사람들이 열왕의 묘실에 장사하는 것을 막았던 것으로 판단되어집니다.
a.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한 아하스(대하28:27)
b.히스기야의 즉위(왕하18:1)
결론
아하스의 악정은 유다에서는 보기드문 예입니다. 그는 연합군의 침입이라는 민족적인 위기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생각만을 고집하여 작은악을 물리치기위해 더큰 악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하스가 빠진 깊은 우상숭배의 늪과 여호와앞에서의 신전의식의 결여는 수많은 악행들을 야기시켰습니다. 아하스는 한마디로 여호와를 무시한 패역한 자였습니다. 피조물에 지나지않은 인간이 창조주인 여호와를 외면한다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과 같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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