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히스기야의 개혁 18:1-8
이것은 히스기야 통치에 관한 전반적인 기록이다.
(1) 그는 대단히 경건하였다. 이것은 그의 아버지는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왕 가운데 하나였지만, 자신은 가장 선한왕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운 것이다. 사람속에 선한것이 있다면, 그것은 본성에서 나온것이 아니고, 은혜에서 나온것이며 오히려 본성을 거스리는 것이다. 즉 당초에는 돌감람나무였으나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여진 것이다(롬 11:24). 또한 이 은혜는 최악의 어려움과 약점을 극복한다. 아하스는 아들에게 악한 본을 보인것은 물론 나쁜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아하스의 제사장 우리야가 그의 개인교수였고, 시종들과 동료들도 모두 우상에 빠져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뛰어나게 선한왕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할때, 무엇이 막을수 있겠는가?
1) 히스기야는 순수한 다윗의 아들이었다(3절). 히스기야가 그조상 다윗의 모든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히스기야는 제2의 다윗이었으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그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시대와 사람들이 악할때, 그들이 당연히 점점더 악해지는 것처럼 도덕이 점차로 부패해 가는것을 보더라도 우리는 놀라지 말자.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많은 악한왕들 이후에 다윗과 닮은 한왕을 세우셨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것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2) 그는 자기왕국을 위한 열정적인 개혁자였다(대하 24:3). 그는 자기왕국이 매우 타락하였고, 백성들은 모든일에 미신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항상 그상태이었으며, 특히 전왕의 통치때에는 그전 어느때보다도 심하였다. 우상숭배가 전국에 만연해 있었다. 히스기야의 마음은 우상숭배에 반대하며 분노하였다. 그러므로 손에 권력을 잡자마자, 그것을 폐지하는 일에 전념하였다(4절).
① 여러가지 주상과 목상은 우상이다. 그는 이것들을 부수고 근절시켰다.
② 산당은, 특별한 경우에는 선지자들도 사용하였었고, 그때까지 여러 선한왕들도 묵인해왔었지만 분명히 성전에 대한 모독이고 우상숭배의식을 도입하는데 좋은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히스기야는 선왕들의 선례를 따르지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자로 삼아, 산당들을 제하였으며, 산당철폐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단호하게 집행하였다.
③ 놋뱀은 원래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오용되어 우상숭배가 되었기때문에, 히스기야는 이것을 부수었다. 이 물건은 광야에서 조상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의 증거물로서 고이 보존되었던것 같다(민 21:9). 그러나 그들이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경배하기 시작하였을때, 이방인들에게서 빌어온 우상을 숭배하지 않으려는 자들도 미혹되어 놋뱀에게 분향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작되어 그백성들에게 복의 도구가 되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경건한 열심히, 사람들이 이것을 숭배하는 것을 금지하였을 뿐만아니라, 더이상 못하게 하기위하여, 이것은 '느후스단', 즉 구리조각밖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과 이것에게 분향하는 것은 어리석은 악한행위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따라서 그때 히스기야는 놋뱀을 부수어버렸다. 만약 어떤사람이 놋뱀의 영광이 이제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주님께서 요한복음 3:14절에서 놋뱀을 자신의 모형으로 삼으시고 그영광을 풍성하게 다시 나타내신 것을 발견할수 있을 것이다.
3) 히스기야의 개혁에서 뛰어난 점은 다음 두가지이다.
① 하나님안에서의 용기와 확신이다. 우상숭배를 폐지하는 일을 신하들이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가 하는 모든일에서 그를 지키시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구해주실 것을 믿었다.
② 자신의 임무에 대한 꾸준함과 인내심이다.
(2) 그는 대단히 형통하였다(7,8절). 그는 하나님과 함께하였고, 하나님도 그와 함께계셨다.
1) 히스기야는 자신이 성공한 것을 알고 그의 아버지가 비굴하게 굴복하였던 앗수르왕의 멍에를 벗어던져 버렸다. 그가 이방나라들의 우상숭배를 벗어던졌을때, 그들의 압제의 멍에도 벗어던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2) 그는 블레셋을 공격하여 가사에까지 쳐들어갔다.

Ⅱ. 산헤립의 침공 18:9-16
이때 앗수르왕국은 상당한 강국이었다.
(1) 앗수르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를 포위하고(9절), 그것을 취하여(10절),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11절). 이것은 '저희가 그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12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앞장에 언급되었지만, 여기에 재차 언급하는 이유는 다음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1) 이사건은 히스기야와 유다백성들을 자극하여 우상숭배를 깨끗이 치우도록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상숭배가 이스라엘에게 파멸을 가져온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2) 히스기야는 이것을 많이 슬퍼하였지만, 막을힘이 없었다. 비록 열지파가 다윗의 집을 배반하였지만, 히스기야도 이스라엘의 자손이었기때문에, 그들의 재난을 기뻐할수 없었다.
3) 이사건으로 히스기야와 유대왕국은 앗수르왕의 공격을 받게되었고, 앗수르왕이 유대땅을 침입하기가 더욱 수월하게 되었다.
(2) 앗수르의 다음왕인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하였다. 그가 유다로 내려온 것은 유다에게 큰재난이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하여 히스기야의 믿음을 시험하셨고, 그백성들이 우상에서 떠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아직까지 마음속에 우상을 간직하였기때문에 백성들을 치신 것이다. 개혁의 시대가 곤란을 당할수도 있지만 이렇게되면 비난의 화살이 개혁자들에게로 돌아간다. 우리가 다음사실을 살펴보면 알수있듯이 이재난은 히스기야에게 몹시 큰사건이었다.
1) 그는 왕국의 대부분을 상실하였다(13절). 앗수르왕은 유다의 대부분의 성읍과 변방의 촌락들과 요새들을 점령하였다.
2) 그는 화친하기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었다. 그는 예루살렘이 적의 수중에 떨어지려는 위험을 보고는 값을 치르고라도 예루살렘의 안전을 사기를 원하였다. 그는 비굴한 굴복의 값을 지불하였다(14절). 히스기야의 용기는 어디로 갔는가? 하나님께 대한 그의 확신은 어디로 갔는가? 그는 속전으로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의 막대한 양의 금전을 지불하였다. 히스기야는 이금액을 만들기위하여, 국고를 다 비웠을뿐만 아니라, 성전문과 기둥의 금박을 떼어내지 않을수 없었다(15,16절). 비록 성전이 금을 거룩하게 하였지만 절박하였기때문에, 조상다윗이 감히 진설병을 먹었던 것처럼 자신도 감히 그일을 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성전을 경멸하는 의미에서 성전을 약탈하였었다(대하 28:24). 그리하여 그는 자기아버지가 약탈한 것을 이자까지 갚았었으나 지금 성전을 존중하지만 상황이 급박하고 더큰 의를 위하여 성전물품을 차용해달라고 구걸하는 것이다.

Ⅲ. 랍사게의 비방 18:17-37
(1) 예루살렘이 산헤립군대에게 포위되었다(17절). 산헤립이 세명의 장군을 파견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하게 하였다. 이것이 강국 앗수르의 대왕이란 말인가? 군대를 철수한다는 조건으로 히스기야가 준돈을 받고도, 군대를 진주시켜 다시 공격하는 불명예스러운 짓을 감행하는 그를 명예로운 대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서는 안될 것이다.
(2) 히스기야와 유대방백들과 백성들은 세 장군가운데 대변인이며, 풍자적인 언변의 재능을 가진 랍사게에게 조롱을 받았다. 그는 히스기야와 새로운 분쟁을 도발하려는 산헤립에게서 무엇을 말해야하는지 지시받았다. 그는 히스기야의 돈을 받고, 군대를 철수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따라서 대외적인 명분때문에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즉각 공격하지 못하고, 랍사게를 파견하여 히스기야에게 항복하도록 설득하였다. 그리고 만일 그가 거절하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무력으로 점령하겠다고 위협하였다. 랍사게는 무례하게도 왕에게 직접 성밖 윗목수도가에 나와서 들으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신중하게 직접 협상을 거절하고 세명의 사자를 파견하여 그가 말하려는 것을 듣게하였다. 그들은 랍사게의 말을 잠시 중단시키고, 지금은 아람방언으로 말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랍사게의 말하는 내용을 숙고해보고 왕에게 보고한 다음, 만족할만한 대답을 주지못한다면, 그때는 백성들앞에 드러내어 '유다방언'으로 말하라고 요구하였다(26절). 힐기야는 자기가 지금 얼마나 터무니없는 자와 대담하고 있는지 고려하지 않았다. 만일 그랬더라면 이런요구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요구는 오히려 랍사게를 격앙시켰다(27절). 그는 예의와 도리에 어긋나게도 유대군대를 위협하고, 그들에게 탈영하거나 소요를 일으키라고 선동하였으며, 만약 저항하면 그들을 극한 굶주림속에서 몰아갈 것이라고 겁을 주었다. 그리고 계속하여 히스기야와 방백들과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성을 포기하라고 설득하였다.
1) 그는 자기주인 앗수르왕을 찬양하였다. 그는 거듭하여 자기왕을 '대왕 앗수르왕'이라고 호칭하였다(19,28절).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영광과 권능중에 앉으신 왕중왕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앗수르왕조차도 비천하고 왜소하게만 보일 뿐이다(시 82:6,7).
2) 그는 백성들로하여금 항복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고 믿게하려고 애썼다. 만약 그들이 항복하고 선물을 가져와서 자비를 구하면, 그는 그들을 환대할 것이다(31절). 만약 그들이 신중하게 항복한다면, 비록 감옥에 갇히거나 포로가 되는 것이라할지라도 그들에게는 그렇게 되는것이 실상 행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① 옥에 갇히는 것도 이로울지 모른다. 왜냐하면 '각각 그포도와 무화과를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31절). 비록 그들의 재산이 정복자에게 빼앗긴다하더라도, 자유롭게 사용할수는 있을 것이다.
② 포로로 잡혀가는 것은 그들에게 더욱 이로울지도 모른다. 내가 장차 너희를 한지방으로 옮기리니 그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으로, 자기의 소유라고 말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새지방으로 옮기는 것이 무슨소용이 있겠는가?
3) 랍사게가 특히 강조한 것은 유다백성들이 끝까지 버틸이유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19절). 그는 유다백성들에게 말하기를(29절),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아서 스스로 파멸하지 말아라. 저가 너희를 내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너희는 항복하든지 죽든지 둘중에 하나를 결정하여라." 그는 히스기야가 의지하는 세가지를 추정하고, 이것들의 불충분함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① 히스기야의 군사적인 준비상황을 추정하였다. 네가 싸울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그런데 우리는 히스기야가 그러한 능력이 있었다는 기록을 본다(대하 32:3). 그러나 랍사게는 이사실을 일소해 버렸다. 그는 허풍을 떨면서 히스기야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만약 말을 다룰줄 아는사람 2천명을 낼수 있다면 2천마리의 말을 그에게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히스기야에게 군인이 될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빈정거렸다(23절).
② 애굽과의 동맹을 추정하였다. 랍사게는 이스라엘의 왕이 애굽에 말과 병거를 요청하였던 사실로 미루어 히스기야도 그렇게 하였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확신을 가지고서 그는, 애굽왕은 '상한 갈대지팡이'이며 따라서 그에게 기대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손에 찔러 들어갈' 것이다(겔 29:6,7)라고 말하였다.
③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것을 알고있었다(22절).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에 의지함으로 자신을 유지하였고, 이것으로 자신과 자기백성들에게 용기를 주었다(30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32절). 이것이 이스라엘의 커다란 반석이라는 사실을 랍사게는 느끼고, 마치 다윗의 원수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면서 다윗을 하나님에 대한 확신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했던것처럼(시 3:2;11:1), 그리고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그렇게 했던것처럼(마 27:43), 이것을 흔들어 버리려고 노력하였다. 랍사게는 유다백성들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악화시키기 위하여 세가지를 생각해 내었다.
첫째, 히스기야는 '산당과 제단을' 제함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차버렸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랍사게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무수한 산당과 제단을 좋아하는 이방인들의 여러신과 같이 취급하였고, 히스기야는 백성들을 한제단에 한정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큰범죄를 저질렀다고 결론지었다.
둘째,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멸망을 명령하셨다는 것이다(25절).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이것은 완전히 희롱이며 허세였다. 그는 '성위에 앉은 사람들'을 겁주기위하여 이 허세를 부렸다.
셋째,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앗수르왕으로부터 보호하겠다고 보증하셨다하더라도, 그는 그렇게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모독하면서 말을 마쳤다(33-35절). 여기서 발견할수 있는것은 첫째, 그의 교만이다. 그는 어떤도시를 정복하였을때, 그도시의 신들을 정복하였으며, 자신이 그신들보다 강하다고 평가하였다. 둘째, 하나님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떤지역의 신이 아니라 온지구의 하나님이시다.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랍사게는 변절한 유대인이며, 그래서 그렇게 능숙하게 유다방언을 말할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경멸은 더욱더 변명할 여지가 없으며, 그의 적대감도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변절자들은 보통 가장 잔인하고 악독한 원수가 되는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4) 우리는 히스기야왕의 사자들이 한일을 볼수 있다.
① 그들은 조용히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히스기야를 위하여 말할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왕이 그들에게 대답하지 말라고 명령하였기 때문이며, 그들은 왕의 지시를 지켰다.
② 그들은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것을 원통해하고 멸시와 고통을 당하는 예루살렘의 상황을 슬퍼하여 그들의 옷을 찢었다. 예루살렘이 당하는 수치는 그들에게 큰짐이 되었다.
③ 그들은 그사실을 왕에게 충실히 보고하였다.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고하니라.

# 핵심
18:1-8
히스기야왕의 통치에 관한 기록이다. 그는 역대 그어떤 유다왕들보다도 신앙심이 두터웠으며, 철저한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인물이다.

# 묵상
히스기야의 치적 ( 18:1-8 )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고, 산당과 주상을 부수며 목상을 없앴고,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했으며, 여호와의 계명을 지켰고, 앗수르왕을 섬기지않고 블레셋을 쳤습니다.
히스기야 통치의 형통함 ( 18:1-8 )
유다왕 히스기야는 무엇보다 우선하여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맺는데 힘썼기때문에 형통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일소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열심을 다해 실행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이루지않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번영이나 행복은 있을수 없습니다.
놋뱀의 의미 ( 18:4 )
모세시대에 광야에서 불뱀에 물렸을때 고침을 받기위해 만든 구원의 징표입니다(민21:4-9). 그러나 이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그본래 의미를 상실하고 우상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놋뱀에 비유하셨습니다(요3:14). 놋뱀을 바라보는 자가 구원을 얻었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는 자들만이 구원을 얻고 영생을 소유할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패망 ( 18:9-12 )
북이스라엘의 패망은 남유다와는 달리 철저히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와 그에 따른 각종 죄악에 심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등진 인생과 민족은 멸망할수밖에 없습니다. 그이유는 하나님이 복과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요15:5).
전쟁에 패한 히스기야 ( 18:13-16 )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패할것을(사8:7-15)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어떤 환난속에서도 주님만을 바라볼때는 살지만, 세상을 바라보면 그속에 빠지게되며 패하게 됩니다.
앗수르 군대장관의 전술 ( 18:22-25 )
그들은 군사적 약점을 이용한 사기저하와 종교적으로 믿음을 버리게 합니다. 사탄은 성도가 스스로 무력하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를 속이고, 또한 하나님을 아무힘도 없는 존재라고 속여 우리의 믿음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미혹을 합니다.
악의 세력이 준 유혹의 강도 ( 18:29-35 )
악의 세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뢰하라는 경고를 모두 무시하게 하고, 약속의 땅보다 더좋은 땅이 있다고 유혹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다른신들보다 미약하다고 강조합니다. 사탄은 유혹을 이겨내려는 성도들에게 더아름답고 속기 쉬운것을 제시함으로써 그유혹의 강도를 높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을 오직 말씀으로 이겨 내셨습니다(마4:1-11).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에 끼친 폐해 ( 18:32 )
앗수르는 사마리아 지역주민들을 다른 이방지역으로 이주시키고, 대신 다른 이방주민들을 사마리아에 유입시킴으로써 결국 북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말살시키고 혼혈민족으로 만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측면에서, 어두움의 세상주관자인 악한 마귀는 성도들의 삶에 침투하여 그거룩성을 퇴락시키고 죄악으로 혼탁하게 만듭니다.
유혹에 대처하는 성도들의 자세 ( 18:36 )
믿음가운데서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립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침묵으로 당신의 진리를 항변하셨습니다(마26:63).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승리입니다.
옷을 찢는 행동의 의미 ( 18:37 )
성경에서는 주로 회개를 하거나 모독을 당했을때 옷을 찢었는데 이는 슬픔이나 고통, 분노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었습니다(삿11:35). 회개하지 않은 의롭지못한 종들은 바깥 어두운곳에서 이를 갈며 슬퍼함이 있을 것입니다(마25:30).

# 해설
히스기야 통치와 앗스르 침공 ( 18 )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지금까지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하여 교차 진술되던 방법에서 떠나 이제는 유다에 관해서만 언급하게 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왕은 악한통치를 펼쳤던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입니다.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면서 강력하게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반앗수르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앗수르의 공격을 받지만 히스기야는 여호와만을 의지하는 신실한 지도자였습니다.
1. 히스기야의 개혁통치
1) 히스기야의 즉위
유다의 왕들중 위대한 개혁자로 알려진 히스기야가 아하스를 계승하여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비극의 왕 호세아가 3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25세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29년을 통치하였습니다.
a.히스기야의 즉위(대하28:27)
b.히스기야의 모친(대하29:1)
2) 여호와를 의지한 히스기야
히스기야는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동하였습니다. 다윗같이 바르게 행했다는 칭찬은 유다의 왕들중 히스기야를 포함하여 4명뿐이었습니다. 즉 아사, 여호사밧, 그리고 요시야였습니다. 특별히 히스기야는 '여호와외에 다른신은 없다'는 투철한 신앙을 가지고 각종 우상들과 미신들을 훼파하여 백성들로하여금 우상숭배를 못하도록 권장하였습니다. 이처럼 히스기야는 여호와만을 의지하면서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고자 힘써 노력하였습니다.
a.정직히 행함(왕하20:3)
b.모세의 놋뱀(민21:8-9)
3) 히스기야의 자주정책
이처럼 여호와만을 신뢰한 히스기야였기에 매사에 형통함이 넘쳤습니다. 국내적으로 단호하게 행한 종교개혁이 점차 이루어져 갔고, 국외적으로는 블레셋을 정복하였습니다. 한편 히스기야는 부왕인 아하스가 펼쳤던 친앗수르 정책을 지양하고 하나님의 선민답게 단호한 자주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사르곤 2세가 다스릴때는 지혜롭게 앗수르를 자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르곤 2세를 이어 산헤립이 왕위를 계승하자 앗수르에 대해 강경한 애도를 취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예상되는 앗수르의 보복을 준비하여 이웃나라들과 동맹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a.앗수르를 섬긴 아하스(왕하16:7)
b.여호와만을 의뢰하는 히스기야(왕하19:10)
2. 앗수르의 1차 침입
1)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본서의 저자는 다시한번 앗수르에 의한 이스라엘 멸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재위 4년에 포위된 사마리아가 히스기야 재위 6년에 함락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멸망은 유다에게 주는 암시적인 경고가 있었습니다. 또한 여호와만을 의지하는 히스기야의 선정과 우상숭배만을 일삼는 호세아의 타락이 극명하게 대조되면서 한민족이 왜 멸망하는지 그이유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멸망은 히스기야에게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신뢰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a.앗수르를 사용하시는 하나님(대상5:26)
b.사마리아를 취한 앗수르(왕하17:6)
2) 유다를 침입한 앗수르
앗수르의 사르곤 2세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장본인으로서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많은 영토를 확장하고, 여러민족들을 함락시켰습니다. 하지만 그의 뒤를이은 산헤립은 약간 힘이 모자라는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를 비롯하여 베니게, 블레셋, 그리고 애굽 등이 동맹군을 결성하여 앗수르에 대항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을 강화시킴으로 앗수르 공격에 대비하였습니다. 예상대로 앗수르의 산헤립은 자국에 등을 돌린 유다를 공격하러 쳐들어왔습니다. 유다에 오는도중에 동맹국들중 베니게와 블레셋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의 많은 성읍들을 함락시켰습니다. 그후 산헤립은 유다와 블레셋의 국경부근인 라기스에 머물면서 예루살렘을 재차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의 마음은 한없이 약해졌습니다. 여호와만을 의지하기엔 너무나 다급하다고 그는 느꼈던것 같습니다. 그는 산헤립에게 전갈을 보내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잘못했다고 용서을 구하면서 만일 앗수르가 예루살렘에서 철수한다면 어떠한 요구도 들어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그리하여 히스기야는 성전과 궁전안의 모든 은과 문과 기둥에 입혀진 금까지도 벗겨내 300달란트의 은과 30달란트의 금을 산헤립의 요구대로 주었습니다. 물론 앗수르도 약속대로 철수하였습니다. 이러한 앗수르의 침입은 히스기야의 연약함과 불신앙적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었고, 유다를 극도의 혼란과 좌절속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a.솔로몬 당시에 풍부했던 은과 금(왕상10:21)
b.하사엘에게 바친 금(왕하12:18)
3. 앗수르의 2차 침입
1) 항복을 요구하는 앗수르 사신들
히스기야가 보낸 예물을 받고 물러난 앗수르의 산헤립은 유다의 완전한 항복을 요구하고자 사신들을 유다에 보냈습니다. 이를 알고 히스기야도 3명의 사신을 보내 예루살렘 성벽에서 가까운 세탁자의 밭에서 협상을 위해 앗수르 사신들을 만났습니다. 앗수르 사신들은 히스기야의 항복을 요구했습니다. 동시에 히스기야가 애굽이나 여호와를 믿고 또는 무력에 의지하여 앗수르에 반역하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임을 역설하였습니다. 앗수르 사신들은 저항을 통한 비참한 죽음보다는 항복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것이라고 설득하였던 것입니다.
a.궁내대신 엘리야김(사22:20)
b.상한 갈대인 애굽(겔29:6-7)
2) 백성들을 설득하는 앗수르 사신들
히스기야가 보낸 사신들과 대화를 나눈 앗수르의 사신들중 랍사게가 이제는 백성들을 향하여 앗수르에게 항복할 것을 설득하였습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허황된 말을 믿지말고, 구원을 주신다는 여호와의 능력도 신뢰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단지 앗수르에게 항복하고 나아오면 생활의 안정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삶의 터전도 주어 평안한 삶을 누리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끝으로 랍사게는 여호와도 앗수르왕앞에서는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말을 마쳤습니다.
a.평안한 삶(왕상4:25)
b.내손에서 건질 신이 있느냐(단3:15)
3) 침묵하는 백성들
랍사게의 말에 대해 백성들은 침묵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이는 이미 히스기야가 백성들에게 지시한 사항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사신들은 이모든 일을 히스기야에게 보고하러 가서 옷을 찢으며 통분해 하였습니다. 사신들은 하나님에 대한 앗수르의 모독에 참을수 없는 분노를 느꼈으며 암울한 민족의 앞날로인해 고통스러워했던 것입니다.
a.옷을 찢음(수7:6)
b.인내가 필요한 침묵(시37:7)
결론
히스기야는 유다의 왕들중 대표적인 개혁자로 손꼽히는 선왕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여호와중심의 신앙을 갖고 나라를 다스리며 개혁을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또한 앗수르의 위협앞에서는 어쩔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앗수르의 극악무도한 횡포와 회유속에서도 오직 여호와만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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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이스라엘의 멸망 17:1-6
이스라엘의 마지막왕 호세아의 통치와 멸망에 대한 기록이다.
(1) 그는 모반과 살인으로 왕위를 차지하려고 하였으나(참조15:30), 7∼8년이 경과한 다음 왕위에 올랐다.
(2) 그는 비록 악한 왕이었지만, 그이전의 여러왕들처럼 악하지는 않았으며(2절), 그들처럼 송아지를 섬기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떤사람들은 호세아왕이, 이전왕들이 백성들에게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을 금지했던 법령을 철회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로 이스라엘의 멸망이 이스라엘 왕들가운데 가장 선한 왕중의 하나인 호세아때 닥쳤다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수 있겠는가? 호세아는 전왕들처럼 악하지는 않았다하더라도 백성들이 이전 백성들만큼 악하였다. 왕은 백성들이 더 선하게 살도록 허용하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악하여 죄에대한 허물을 지고, 멸망을 자초하였다.
(3) 파멸은 단계적으로 다가왔다.
(4) 이스라엘이 앗수르왕의 멍에를 벗어버리기 위하여 하였던 간접적인 수단이 오히려 멸망을 초래하였다(4절). 만약 호세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호소하고, 뉘우치고, 기도를 드렸더라면 그들은 자유와 안식과 명예를 회복할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조공바치기를 중단하고 반란을 일으키는데 도움을 얻기위하여 애굽왕을 의지하였다. 만약 이계획이 실효를 거두었다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압제자를 교체한것 이상의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굽도 그들에게는 썩은 갈대지팡이밖에 되지 못하였다.
(5) 그들에게 드디어 완전한 멸망이 닥쳤다.
1) 이스라엘왕은 옥에 갇혔다.
2) 이스라엘땅은 약탈당했다. 그리고 앗수르군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당한 적이 아니고, 정의의 칼로 형벌을 받을만한 반역자로 취급하였다.
3) 이스라엘의 왕도는 포위되고 결국 함락되었다. 그러나 온나라가 정복된 뒤에도 삼년간 버티었다.
4)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로 포로로 잡혀갔다(6절). 대부분의 백성들과 높은지위가 있던 자들도 강제로 정복자의 나라로 이송되어 거기서 노예가 되거나 걸인이 되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은 스스로 잊혀진 사람들이다. 백성중 하류층은 뒤에 남았으며, 각지파에서 많은사람들이 유다로 갔거나 앗수르의 식민이 되었다. 그들의 후손이 갈릴리, 혹은 사마리아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국가로서는 끝이나고, 이제 그들은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의미)와 로루하마(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다라는 의미)가 되었다. 야고보는 해외에 흩어져있는 12지파에게 편지를 하였고(약 1:1), 바울도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는' 열두 지파에 대하여 말하였다(행 26:7). 그러므로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 대한 기록은 볼수 없지만 그들중에 도피하여 남은자들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보존하였고 이제 복음교회, 즉 영적 이스라엘로 옷을 바꾸어 입은 이스라엘은 그이름이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갈 6:16).

Ⅱ.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 17:7-23
열지파 왕국의 멸망과 그원인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을 그앞에서 제하신 분은 여호와'이셨다. 즉 도구가 누구이든지간에, 재난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이것은 전능자에게서 비롯된 멸망이었다. 앗수르군대는 '그의 진노의 막대기'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적과 자신의 말씀으로 일으키고 형성시키신 민족인 이스라엘을 왜 파멸시키려고 하셨는가? 이것은 단순히 주권의 행사인가? 아니다. 이것은 필수 불가결한 심판의 행동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일을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가? 아니다. 이것은 그들자신의 행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길과 행위로 이모든 재난을 자초하였고, 그들을 징계한 것도 바로 그들의 악함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이 황폐케된 원인은 바로 이때문이라고 여기에 분명히 드러나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자신을 섬기게 하기위하여 무엇을 하셨는가?
1)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다(7절). 하나님께서 결박을 풀어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종이될 의무를 지고있었다. 만약 그들이 자기들의 불의로인하여 자유를 배반하고 스스로를 팔아버리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을 애굽왕의 손에서 구해내신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을 앗수르왕의 손에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2)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또 자신이 그들의 왕이시기때문에 그들은 선과 악, 그리고 죄와 의무를 몰랐다고 변명할수 없었다.
3) 하나님은 그들에게 땅을 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거주지를 주시기 위하여, 그들앞에서 이방사람들을 쫓아내셨다(8절). 그리고 우상숭배하는 이방인들을 쫓아내신 것은 이스라엘은 그들처럼 행하지 말라시는 가장 분명한 경고이었다.
(2) 하나님께서 이언약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를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고'(7절), '가만히 불의를 행하였다'(9절).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즉 노예가 자기주인의 일에 매달리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스스로 완전히 죄에 매어 달렸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계속 죄를 짓고 마음이 완악하여져 종국에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자신을 회복하는 일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비록 그들이 심히 부도덕하고 십계명의 두번째 돌판의 모든계명을 어겼다하더라도, 여기에서는 특별히 우상숭배만 취급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죄이며, 모든죄 가운데서 하나님께 가장 가증스러운 죄이다. 이것은 결혼계약을 깨뜨리는 영적인 간음이며 다른 모든죄악의 근원이었다. 이스라엘은 다른 여러신들을 두려워하였다(7절). 다시말하면 이방신들이 노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경배하고, 충성을 바쳤다. 모든성읍에…산당을 세웠다(9절). 만약 어떤마을에 망대나(시골에는 성곽이 없고, 전시에 파수병을 보호할 망대밖에 없었다), 목동들의 움막만 있더라도, 그곳을 위하여 산당과 제단을 지었다. 더욱이 견고한 도성이라면 산당을 지어 더욱 강화하였을 것이다. 모든 산위에와 푸른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상을 세우고, 그들은 아세라상(혹자는 이뜻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작은숲의 신이라는 뜻과 함께 자체가 나무로 만들어진 신상이라고 한다) 혹은 아스다롯상(아세라의 복수형)을 세웠고 이것은 분명히 제2계명에 대한 위반이었다(10절). 그들은 자기들 손으로 만든 우상을 섬겼다(12절). 그들은 여러 이방신들을 위하여 '모든산당에서 분향하였고', 이것은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었다(11절). 심지어 부어만든 두마리의 송아지 우상뿐만 아니라, 하늘의 일월성신, 즉 해와 달과 여러별들을 숭배하였다. 그리고 이방신들의 지시를 받기위하여 점술과 마술을 사용하였다.
(3) 하나님은 그들을 우상숭배에서 멀리하시려고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였으나 별로 효과가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여호와의 선한지식을 백성에게 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제사장들을 없애지 아니하셨다. 그러나 이노력도 허사였다(14절).
(4)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인하여 어떻게 처벌하셨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시사'(18절) 그들을 괴롭게 하시고 '노략군의 손에 붙이셨다'(20절). 사사시대와 사울의 시대에도, 그후 이스라엘의 여러왕의 시대에도,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인하여 스스로 깨닫고 자기들의 길을 돌이켜보고 고치는지 보시려고 이와같이 하셨었다. 그러나 이모든 교정노력이 어리석음을 몰아내지 못하게 되었을때, 하나님은 일단 '이스라엘을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나누셨다.' 백성들이 그집의 통치아래 있었더라면 행복하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기 이스라엘의 죄악기록 가운데 유다왕국의 죄악이 언급되었다(19절). 유다도 그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들은 아직까지 이스라엘같이 악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에게 오염되고 있었다.

Ⅲ. 그이후의 사마리아 상황 17:23-41
앗수르왕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강제로 가나안에서 쫓아내고, 거기에 바벨론의 잉여인원을 바로 이주시켜서 거기에서 자기를 섬기며, 남아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감독하게 하였다. 여기에 이 새로운 주민들에 대한 기록이 나와있다.
(1) 이스라엘땅으로 이주한 앗수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1) 그들은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여러성읍에 거하였다(24절).
2) 그들이 처음왔을때,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그가운데 보내셨다.' 물론 그지방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때문에, '들짐승이 번성하였다'(출 23:29). 그러나 이런 자연조건을 떠나서 이일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 하나님은 사자들을 명하여 거칠게 환영하심으로 그들의 교만을 저지하셨다.
3) 그들은 이슬픔을 자기들의 주인인 왕에게 알리고, 이 새로운 식민지에서 사자로인한 손실과 계속적인 공포를 호소하고, 이것을 그들이 그땅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것에 대한 심판으로 간주하며, 그들은 그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하는지 모른다고 보고하였다(26절). 이사실로 앗수르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목소리를 들을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앗수르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배우기 싫어한 교훈을 오히려 배우려고 하였다.
4) 앗수르왕은 그들이 '그땅의 신의 법'을 배울수 있게 배려하였다(27,28절). 이것은 그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자기백성들을 사자에게서 구하기위한 것이었다. 왕은 사로잡아온 제사장들가운데서 한사람을 돌려보냈다. 그는 돌아가 그들중에 거하면서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할 것인지 가르쳤다. 그들은 이렇게 배워서 혼합종교를 만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두려워서 섬기고, 자신의 신들은 사랑해서 섬겼다(33절). 이와같이 저희가 여호와도 경외하고…또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우리가 유대학자들의 전승을 인정한다면, 이우상들은 다음과 같다. 숙곳느봇의 제물은 암탉과 병아리, 네르같은 장닭, 아시마는 깨끗한 수염소, 닙하스는 개, 다르닥은 노새, 아드람멜렉은 꿩, 아남멜렉은 칠면조였다. 영국학자들은 숙곳느봇(딸들의 장막이라는 뜻)은 비너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굿사람들과 바사사람들이 섬긴 네르같은 불이다.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은 몰록의 변형에 불과하다. 본문은 이런 잡동사니 미신행위가 '오늘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책이 기록된때까지 그리고 그이후까지 약 300년간, 알렉산더대왕때까지, 즉 유대의 대제사장 야두스의 형제인 므낫세가 많은 유대인들을 데리고와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설득하여 모든 우상들을 내어버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 섬기게 할때까지 계속되었다.
(2) 앗수르땅으로 옮겨간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남쪽 두지파가 나중에 바벨론으로 잡혀갔을때, 그들은 그사건으로 인하여 우상숭배 습관을 고쳤다. 따라서 70년후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송환되었다. 그러나 북쪽 열지파는 용광로속에서 더 단단해졌으며, 소멸되고 말았다. 그들은 적의 손에 떨어졌을때에도,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때에도 여전히 어리석어서 이전의 방법을 좇아 행하였다(40절). 그들은 하나님과 이방신과의 차이를 알지못하는 것처럼, 참되신 하나님과 거짓된 신들을 함께 섬겼다.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이스라엘은 그들을 정복한 나라들이 행하는 것처럼, 그대로 행하였다.

# 핵심
17:1-23
마침내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다. B.C. 722년의 일이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게된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우상숭배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의 멸망(17:6)
사르곤 2세의 통치연대기는 당시 사마리아에서만도 남자만 27,290명이 포로로 잡혀갔다고 전한다. 아울러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수르의 공격을 피해 남유다로 도망했던 까닭에 유다의 인구가 급증했다고 한다.
사마리아 사람(17:24)
앗수르의 식민정책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른 정복지역의 이방인들로하여금 서로 통혼과 교류를 하게 만들었다. 문화와 인종을 서로 혼합시켜 단일민족의 정체성을 잃게 만들면 앗수르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도에서 시행된 정책이었다. 그결과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새로운 혼혈족이 생겨났다. 후대에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을 이방인 취급을 하며 경멸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요 8:48).

# 묵상
호세아의 통치 ( 17:1-6 )
그는 북이스라엘의 마지막왕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온나라 안에 악이 만연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인내하시면서 기다리시지만 더이상 패역한 것이 고쳐질 기미가 없을때는 심판하십니다.
사마리아인의 천대 ( 17:5, 6 )
그것은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면서 이방인들이 사마리아에 거주하게 되고, 또한 사마리아인들도 앗수르로 끌려가 이방인들과 통혼을 하게되었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 ( 17:7-18 )
이들이 멸망한 원인은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다른신을 섬겼으며, 이방인의 규례를 따랐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이방신상을 두었으며,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않고 계명을 어겼으며, 신상을 만들고, 자녀를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드렸으며, 복술과 사술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특징 ( 17:7-18 )
여로보암에서부터 호세아까지 19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조는 9왕조이며 8차례의 혁명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위로는 지도자, 아래로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악을 저지르고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따라서 반복되는 악의 순환속에서도 회개하지 않고 교만하게 행동함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할 행동 ( 17:15 )
이방인들의 사악하고 부패한 문화와 종교, 습성을 본받지말고 오히려 그들을 거룩한 종교로 인도해야만 했습니다.
남유다의 상태 ( 17:19, 20 )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않고 다른 율례를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누룩처럼 퍼져가는 것이 죄의 속성인데 이것을 잘 통제하지 못하면 결국 나와 이웃 모두가 멸망하게 됩니다(고전5:6-8).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보내심 ( 17:25, 26 )
팔레스틴에는 사자가 별로 살지않았지만 때때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끔 사자나 다른동물들을 통해서 징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본문에는 이러한 징계를 통하여 사마리아에 이주한 이방인들에게도 율법을 가르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인 여호와 신앙이 아닌 혼합주의적인 신앙으로 이끌려 갔습니다.
사마리아의 상황 ( 17:27-33 )
앗수르에 의해 패망한후 원래 사마리아에서 살던 사람들은 먼곳으로 이주되고, 다른민족들이 많이 유입되므로 혼혈민족이 되어버렸습니다. 인종적으로만 혼합된 것이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신이 들어와서 혼합종교의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떠난자리에는 사탄의 세력이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현대에는 많은종교가 난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수 있으며 이것은 영원한 진리입니다(행4:12).
하나님의 언약 ( 17:34-41 )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으로 한백성을 선택하시고 일방적으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오늘날도 성도의 구원은 행위의 대가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엡2:8, 9). 인간은 그언약에 순종하며 참여할때에 복을 받을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약파기는 인간에게 큰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구출해주신 하나님 ( 17:34-40 )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면서 자신을, 이스라엘을 종되었던 애굽에서 구출해내신 분으로 소개합니다(출20:2). 하나님은 무조건 당신의 명령을 준행하라고 다그치는 압제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서 율법준수를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므로 말씀을 따라사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 해설
이스라엘의 멸망 ( 17 )
다윗왕조는 솔로몬이후에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에 의해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열되었습니다. 본문은 여로보암에 의해 창건된 이스라엘이 약 210년만에 멸망하는 역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멸망의 주역이 된 왕은 호세아였고, 이스라엘을 심판한 도구는 앗수르였습니다. 특별히 본문에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게된 원인과 함께 사마리아지역에 생기게된 비극과 그곳에서의 우상숭배 죄악을 다루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의 마지막왕 호세아
1) 호세아의 즉위
베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호세아는 유다왕 아하스 12년에 통치를 시작하여 9년동안 왕위를 지켰습니다. 다른 선왕들과는 달리 여로보암 1세의 죄가 호세아와 연관하여 언급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는 아마도 여로보암의 정책을 장려하지는 않았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기백성들이 유다의 예루살렘에서 여호와께 제사드리도록 허락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a.호세아의 즉위(왕하15:30)
b.악의 창시자(창3:1)
2) 앗수르의 공격을 자초한 호세아
앗수르에서는 디글랏빌레셀 3세의 뒤를 이어 살만에셀 5세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마지막왕이 된 호세아는 앗수르왕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애굽의 외교에 넘어가 앗수르에게 바치던 조공을 중단하고 애굽의 소왕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는 호세아의 돌이킬수 없는 엄청난 실수였습니다. 애굽의 소왕은 이스라엘을 도울능력도, 마음도 없었던 것입니다. 호세아의 배반을 괘씸히 여긴 앗수르의 살만에셀은 곧바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는 호세아를 포로로 잡은후 사마리아를 함락코자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3년동안의 포위속에서도 계속 버텼습니다. 그동안 살만에셀 5세는 죽고 사르곤 2세가 앗수르의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사르곤에 의해 사마리아가 포위된지 3년만인 B.C.722년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앗수르 각지역으로 보내졌습니다.
a.국가사이의 배반(왕하1:1)
b.하나님을 배반한 사마리아(호13:16)
2.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
1) 여호와께 죄를 범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멸망하게된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의 이적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몸소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로는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이방신을 따르고, 이교도들의 관습을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을마다 산당을 세우고 아세라목상에게 숭배하였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한 죄악이었습니다.
a.애굽땅의 풍속(레18:3)
b.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라(출23:24)
2) 우상숭배의 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를 금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선조들이 여호와와 맺은 언약조차도 무시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이들은 금송아지, 바알과 아세라, 그리고 일월성신 등을 숭배했습니다. 또한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이방인의 관습을 따르면서 점술과 마술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전역에 편만해진 우상숭배는 여호와의 크나큰 진노를 사게 되었으며, 동시에 여호와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a.목이 곧은 백성(신9:6)
b.복술을 하지말라(레19:26)
3)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여호와
이스라엘의 이같은 악행은 유다에게도 전염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다도 여호와께 불순종하면서, 우상을 숭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죄악에 대한 징벌로 한나라를 유다와 이스라엘로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창건왕인 여로보암때부터 금송아지를 섬기면서 여호와의 경고도 무시하고 우상숭배와 불순종만을 거듭 반복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200년가량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회개치 않았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심판의 손을 드시어 이스라엘을 치신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해 먼 이방지역으로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a.유다에 미친 영향(렘3:8)
b.멸망를 통한 심판(삿2:14)
3. 이스라엘 멸망의 결과
1) 사마리아에 정착한 이방인들
앗수르의 사르곤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수르지역으로 이주시키고, 대신 여러 이방민족들을 사마리아라는 지역에 정착시켰습니다. 사마리아에 온 이방민족들은 여호와가 아닌 각기 자신의 민족신을 섬겼습니다. 따라서 이곳은 충돌과 무질서가 난무하였고, 심지어 맹수가 출몰하여 사람이 죽는일까지 발생했습니다. 이때 이방인들은 이땅의 민족신이 노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a.스발와임 사람(왕하19:13)
b.여호와앞에 쓰러진 블레셋의 신(삼상5:4)
2) 혼합종교화된 사마리아
그리하여 앗수르왕은 사마리아에 있는 이방인들의 요청대로 이땅의 신을 섬길수 있도록 가르칠수 있는 이스라엘 제사장 한명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제사장은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신앙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이모든 것은 허사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다신교도들이었기에 여호와를 자기들이 믿는 신들중의 일부분으로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여호와를 자신들의 민족신과 함께 섬겼습니다. 이결과로 사마리아는 혈통과 신앙의 순수성 모두를 잃어버렸습니다. 신앙도 혼합종교화되어 사마리아는 일시에 종교전시장이 되어 버렸으며 물론 여호와 유일신 신앙도 여지없이 무시되고 말았습니다.
a.사마리아에 들어온 이방신(왕하18:34)
b.사마리아의 차별대우(요4:9)
3) 계속되는 사마리아의 범죄
본서의 저자가 이글을 쓸때까지도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야곱의 자손들에게 허락한 율법도 지키지 않았고, 족장들과 맺은언약도 무시하였습니다. 오직 우상숭배만이 지속될 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여호와께 대한 불순종만이 난무하였습니다.
a.야곱에게 명하신 말씀(창32:28)
b.여호와를 경외하라(신6:13)
결론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배교로 말미암아 민족전체가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습니다. 특별히 이들은 여호와의 말씀에 청종치 않았으며 심지어 무관심하기조차 하였습니다. 동시대 호세아왕은 700년전에 애굽에서 탈출했던 출애굽의 이적을 행한 여호와가 아닌, 바로 그애굽을 믿고 의지했던 너무나 어리석은 왕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였고, 사마리아의 비극을 스스로 연출하게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멸망은 곧바로 유다에게는 중대한 경고가 되었습니다. 단지 심판은 유보된 것이고, 하나님께서 조금더 관용하고 계심을 유다백성들은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결코 이스라엘의 멸망은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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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다왕 아하스의 통치 16:1-4
(1) 아하스의 통치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 나온다. 그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정직히 행치 아니하고(2절). 그는 성전에 대한 사랑이 없었고, 하나님께 대한 의무에 신경도 쓰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윗의 명예로운 이름과 가문의 수치였으며, 그러므로 사실상 자신에게도 수치가 되었다.
(2)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3절). 그들은 모두 송아지를 숭배하였다. 이스라엘의 여러왕들은 우상숭배가 그들의 국가의 정책이며 대의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하스는 이와같은 구실을 댈수 없었다. 그들은 아하스의 적이었으며, 그들의 우상숭배로인하여 더적대적으로 되어왔었다. 그런데 아하스는 그들의 길을 행한 것이다.
(3) 그는 쓰레기같은 잡신들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아들을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다. 또한 우상에 대한 헌신의 표로 자식들을 불에 태우고(대하 28:3), 다른아들들을 두개의 불사이로 지나가게 하거나, 불한가운데를 지나게 하였다.
(4) 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았다(3절).
(5) 또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4절). 만약 그의 아버지가 좀더 열심을 내어 산당까지 제거해버렸더라면 아들의 방탕을 방지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죄를 묵과하는 자들은 그것이 자기후손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올무를 놓는 행위인지 알지 못한다.

Ⅱ. 앗수르에 도움을 청함 16:5-9
(1) 이웃나라 아람과 이스라엘의 왕이 동맹을 맺고 아하스를 치려고 하였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거기에 자기들의 왕을 세우려고 생각하였다. 이계획은 실패하였지만, 아람왕은 홍해에 위치한 주요항구 도시인 엘닷을 회복하였다. 이도시는 아마샤가 아람에게서 빼앗은 것이었다(24:22).
(2) 그들에게서 벗어나려는 아하스의 계획은 이러했다. 그는 하나님을 버렸기때문에 적에 대항하여 고개를 들 용기도, 능력도 없었으며,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할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앗수르왕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의 군대를 끌어들였다. 죄는 그자체가 형벌이다. 앗수르왕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도우려 다메섹에 내려와서 아람왕에게 강력한 견제공격을 가하였다(9절). 그리고 아람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서 '길'로 끌고감으로 아하스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볼때 아하스는 그의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때 손해나는 거래를 하였다. 그는 목적달성을 위해 첫째, 자신을 종으로 만들었다(7절). 나는 왕의 심복이요, 둘째, 스스로 가난하게 만들었다. 그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의 곳간에서 은과 금을 꺼내 앗수르왕에게 보내었다(8절). 왕이 국고를 이렇게 처리할수 있는 무슨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수 없으나 하나의 죄를 지어서 스스로 협곡에 빠진 사람들은 통상 또다른 죄를 통하여 헤어나오려고 한다.

Ⅲ. 하나님의 전을 더럽힘 16:10-16
비록 아하스 자신은 산당에서 희생을 드렸지만(4절), 그때까지 하나님의 제단은 원장소에서 원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악한왕 아하스는 하나님의 제단을 옮기고 다른제단, 즉 우상의 제단을 그장소에 놓았다.
(1) 이 새제단의 모양은 왕이 직접 다메석의 제단을 본따 만든 것이었다(10절). 앗수르왕이 다메섹을 칠때, 아하스도 그곳에 가서, 그를 축하하고 그의 명령을 받았다. 다메섹에서 그는 그를 꼭 만족시켜 주는 제단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그제단의 모형을 똑같이 본땄음에 틀림없다.
(2) 제사장 우리야가 그제단을 만들었다(11절). 왕이 어떤구실을 제시하더라도 대제사장인 그가 사악한 군주의 명령에 복종하여 제단을 제작한 행위는 가장 형편없는 악한 짓이다. 그는 스스로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자기권위를 매음하듯이 팔아치웠으며, 대제사장의 명예를 더럽혔고, 자기신의를 저버렸다.
(3) 그제단을 봉헌하였다. 우리야는 그것을 놋단옆에 놓았다. 왕은 매우 기뻐하고, 그위에 번제를 드렸다(12,13절). 그희생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아니라, 다메섹의 우상들에게 드려진 것이다.
(4) 새제단을 놓기위하여 하나님의 제단을 치웠다. 아하스는 하나님의 제단을 성전뜰 북쪽, 외진구석으로 옮기고, 대신 성소에 자신의 제단을 놓았다. 아하스의 미신적인 착상은 우선 하나님의 거룩한 제도와 충돌하였고, 결국 하나님의 제도를 밀어내었다. 하나님을 자기의 전부로 여기는 것을 만족해하지 않는자들은 곧 하나님을 무시해버리고 말것이다. 아하스는 감히 하나님의 놋단을 아주 없애지는 못하였다. 그는 자신의 제단을 하나님의 제도위에 두려고 하였다. 놋단은 하나님께 묻기위하여 제작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아하스는 그렇게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는 후에 그놋단의 놋을 가지고 '아하스의 일영표'(참조, 20:11)라고 불리워지는 유명한 해시계를 만들었다고 유대인들은 말한다.

Ⅳ. 아하스의 죽음 16:17-20
(1) 아하스는 성전을 마구 바꾸었다. 성전건물 자체는 아니지만 성전의 여러기물을 오용한 것이다.
1) 그는 물두멍의 받침을 떼어내고(왕상 7:28,29), 놋바다를 내려놓았다(17절). 이것은 제사장들이 씻을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2) 그는 '안식일에 쓰기위하여 성에 건축한 낭실', 즉 안식일을 기념하기위하여, 아니면 제사장들이 다른날보다 안식일에 많은 직무를 행하였기때문에, 제사장들의 편의를 위하여 세운 낭실을 옮겼다.
3) 그는 왕실의 편의를 위하여 만들었던, 여호와의 전에 이르는 왕의 낭실(아마 솔로몬이 만든 당시 시바의 여왕이 보고 경탄한 층계일 것이다)을 다른곳으로 돌려버렸다. 이것은 그가 더이상 하나님의 전에 자주 출입하지 않을 생각임을 보여주려한 것이다.
(2) 아하스는 중년기인 36세의 나이에 생을 마치고, 훨씬 훌륭한 자기아들 히스기야에게 왕국을 넘겼다(20절). 히스기야는 자기아버지가 성전에 대적했던만큼 성전의 친구가 되었다.

# 핵심
16:1-20
아하스는 친앗수르 정책을 폈으며, 심각한 우상숭배에 빠졌다. 그는 유다의 역대왕들 가운데서 신앙적으로 가장 타락했던 왕이다.

# 묵상
아하스의 사람됨 ( 16:1-9 )
요담의 아들로 유다의 왕입니다. 또한 그는 이교도의 영향으로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행한 사람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었습니다(신18:21).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그생명을 보존하기를 원하십니다. 전쟁에서 아하스의 행동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동맹국에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능력의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인간을 의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힘의 근원이십니다(시18:1). 그러나 그힘을 의지하지 않는자는 도리어 화를 입습니다.
지도자의 실책 ( 16:2 )
지도자의 실책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끄는 공동체 전체와 더나아가 그후손들에게까지 악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런점에서 지도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더큰 심판을 받게됩니다(약3:1). 권리보다 책임을 더욱 통감하는 자가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수 있습니다.
아하스의 죄악 ( 16:10-20 )
그는 아람수도 다메섹에 갔다가 그곳에 세워진 우상에 미혹되어 예루살렘 성전내에 아람우상을 섬기는 단을 만드는 악행을 범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숭배 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침해하는 중죄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인생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추악한 범죄를 행하기에 급급합니다.
하나님말씀의 중요성 ( 16:16 )
그어떤 권력자의 불같은 명령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울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어긋난 것임을 알면서도 보이는 인간의 눈을 의식하여 인간만을 기쁘게 하는것은 크나큰 죄악이 아닐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를 구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도리입니다(마6:33).

# 해설
아하스의 유다통치 ( 16 )
다윗왕조를 계승한 유다의 왕들은 비교적 선한 왕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듯이 아하스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아람의 위협앞에서 하나님보다는 앗수르를 더욱 의지했습니다. 그결과로 온유다는 앗수르가 지워준 멍에를 메야만 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방의 우상과 제사의식들을 유다에 널리 보급시킨 장본인으로서, 성전의 기구들과 구조들도 변경시킨 죄악을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1. 아하스의 악한 통치
1) 유다왕 아하스의 즉위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즉위한 해는 이스라엘의 베가가 17년째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아하스는 20세에 왕위에 올라 16년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불명예스럽게도 아하스는 유다의 왕들중 가장 사악한 왕으로 꼽힐정도로 많은 악행들을 일삼았습니다.
a.아하스의 즉위(대하28:1)
b.아하스의 일영표(왕하20:11)
2) 우상숭배를 장려하는 아하스
아하스는 다윗왕조의 훌륭한 선왕들보다는 이스라엘왕조의 사악한 왕들을 본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우상숭배에 깊이 탐닉하게 되었는데, 심지어 자기아들을 불태워 번제물로 드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암몬족을 비롯한 가나안 족속들이 행하던 의식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큰나무 밑에 산당을 지어놓고 백성들에게 경배할 것을 장려했습니다. 이런 산당이 너무 많았기에 본서의 저자는 모든 푸른나무 밑에는 다 산당이 있고 제사가 행해진다고 말할정도였습니다.
a.자녀를 제물로 바침(시106:37-38)
b.몰렉신(레18:21)
2. 앗수르의 속국이 된 유다
1) 유다를 공격하는 연합군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는 연합군을 형성하여 앗수르에 대항코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르신과 베가는 아하스의 동참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앗수르의 위협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였기에 저들의 동참요구에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연합군들은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이때 이사야선지자는 연합군들이 유다에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하스로하여금 여호와께 징조를 구하여 도움을 청하도록 했으나, 아하스는 이를 거절하였습니다(참조, 사7:3-7). 결국 이사야의 예언대로 연합군의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아람의 르신이 항구도시인 엘랏을 탈환했습니다. 유다는 이후로 엘랏을 되찾지 못했고, 에돔족속이 훗날 이곳을 훼파하였습니다.
a.르신과 베가의 살육(대하28:5-6)
b.아사랴가 건축했던 엘랏(왕하14:22)
2)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한 아하스
아하스는 연합군의 공격을 물리치기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는 명령도 거절한채 앗수르의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앗수르의 지배에 복종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아람과 이스라엘의 연합군을 물리쳐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대가로 아하스는 성전과 왕궁안에 있는 은과 금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앗수르왕은 기쁜마음으로 아하스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은 먼저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을 공격하여 그곳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람왕 르신을 처형하였습니다. 또한 수많은 아람사람들은 앗수르의 격리수용 정책에 따라서 '길'이라는 지역으로 옮겨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결국 앗수르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려했던 아하스의 책략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로부터 연합군들은 물러갔지만 이제부터는 앗수르라는 새로운 멍에가 유다에게 지워졌다는 사실을 아하스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a.앗수르왕에게 예물을 바치는 아하스(대하28:21)
b.다메섹의 공격(암1:5)
3. 아하스의 우상숭배
1) 이방의 제단을 만들도록 시킴
아하스는 다메섹에 있는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셀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다메섹에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아람의 것인지, 아니면 앗수르가 새롭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새로운 제단을 보았습니다. 아하스는 이제단의 구조와 제도를 똑같이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어, 이것과 똑같은 것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하스가 왜 이제단을 만들도록 시켰는지는 잘모릅니다. 다만 아람신의 도움을 얻기위해서거나(참조, 대하28:23), 또는 앗수르가 만든 제단으로 생각하여 앗수르신을 의지하기 위해서, 또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보다 화려해서 이렇게 멋있는 제단을 만들고 싶은 욕망에서 만들도록 시켰을 것이라 여러모로 추측만 할 뿐입니다.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의 명대로 제단을 만들었으며, 다메섹에서 돌아온 아하스는 이제단에서 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a.제사장 우리야(사8:2)
b.민족신 앞에 제사함(대하28:23)
2) 성전의 기구들을 변조시킴
아하스는 제사장에게 명하여 이제부터는 드리는 모든제사의 제물을 저 새제단에서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하스는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 없애버렸고, 놋바다의 놋받침을 없애고 돌판으로 대신하였습니다. 또한 안식일날 왕이 성전을 방문할때 그늘을 만들어주던 낭실을 헐었고, 오직 왕만이 성전을 들어가는데 사용되던 낭실도 제거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성전의 모형과 제사의식을 아하스 임의대로 변조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앗수르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아하스의 아부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이는 곧 성전의 주인이 되시는 여호와께 대한 반항이자, 불순종의 극치를 이루는 악행이었습니다. 진실로 유다의 왕들중에 아하스처럼 하나님께 의도적으로 불순종한 왕은 없었습니다.
a.놋받침(왕상7:27-28)
b.놋바다(왕상7:23)
3) 아하스의 죽음
때가 이르매 아하스도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본문에는 단순히 그가 죽어서 다윗성에 그열조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하28:27절에 보면 아하스가 유다의 다른 경건한 왕들과 같이 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는 못하고 단지 예루살렘성에 장사되었다고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하스의 지난 행적들을 살펴볼때 그의 악행이 심했기에 당시의 사람들이 열왕의 묘실에 장사하는 것을 막았던 것으로 판단되어집니다.
a.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한 아하스(대하28:27)
b.히스기야의 즉위(왕하18:1)
결론
아하스의 악정은 유다에서는 보기드문 예입니다. 그는 연합군의 침입이라는 민족적인 위기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생각만을 고집하여 작은악을 물리치기위해 더큰 악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하스가 빠진 깊은 우상숭배의 늪과 여호와앞에서의 신전의식의 결여는 수많은 악행들을 야기시켰습니다. 아하스는 한마디로 여호와를 무시한 패역한 자였습니다. 피조물에 지나지않은 인간이 창조주인 여호와를 외면한다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과 같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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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다왕 아사랴의 즉위 15:1-7
(1) 아사랴는 어려서 왕위에 올랐고 오랫동안 다스렸다(2절). 그리고 열심과 용기를 내어 산당을 없애지 못한일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옳은일을 행하였다(3,4절).
(2) 5절의 특별한 기록(하나님께서 문둥병으로 그를 치심)은 역대하 26:16절이하에 그이유와 함께 훨씬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거기에는 아사랴통치 전반기의 영화로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물론 후기의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나와있다.
첫째로 그는 문둥병 환자였다.
두번째로 하나님께서 그가 제사장직무에 대하여 뻔뻔스러운 월권행위를 했던 죄를 벌하시려고 문둥병으로 그를 치셨다.
세번째로 그는 '죽는날까지' 문둥이가 되었다. 우리는 그가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았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다른사람에 대한 경고로, 끝까지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수밖에 없다.
네번째로 그는 별궁에 거하였다. 문둥병은 율법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규정되었기 때문에, 왕이라도 굴복하고 율법을 준수해야만 했었다.
다섯번째로 궁중일과 국사를 그의 아들이 대신 통치하였다. 그리고 아사랴에게 이처럼 자리를 대신할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자신에게는 위안이 되었고, 나라에는 복이 되었다.

Ⅱ. 이스라엘의 다섯왕들 15:8-31
이스라엘왕국의 전성기는 예후가 정권을 잡고있을 동안이었다. 예후와 그의 세명의 후계자들이 치세할동안, 이스라엘에는 타락이 계속되고 비참한 재난이 많이 있었지만, 왕위는 순조롭게 계승되고, 왕은 천수를 다하고 죽었으며, 국사도 어느정도 수행되었다. 그러나 이시대는 끝나고, 우리가 본문에서 보는 약 33년간의 역사는 상상할수 있는 최대의 혼란에 빠진 이스라엘의 실정을 묘사하고 있다.
(1) 여러차례에 걸친 불행한 혁명으로 인하여 정말로 악한세대라고 불리울만한 시기였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과 자비 두가지로 시험하셨으며, 하나님의 종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설득을 하시고 강권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회개하지 아니하고 고치지도 않았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들에게 합당한 재난을 주셨다.
2) 하나님은 예후에게 그의 자손들이 4대까지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으리라는 기쁜약속을 하셨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어느왕가에도 보여주지 않은 전무후무한 큰은총이었다. 하나님은 바알숭배와 아합의 집을 멸한 예후의 충성을 이와같이 보상하였다. 그러나 예후의 집에 악이 가득찼을때, 하나님은 그집을 '이스르엘의 피'라고 불리우는 피흘림으로 보수하셨다(호 1:4).
3) 이 다섯왕은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 모두 같지는 않았으나 우상을 보존하는 일에는 한결같았으며, 백성들도 그렇게 하는것을 좋아하였다.
4) 이들은 한명만 제외하곤 전부 선왕에 대하여 음모를 꾸미고 살해하였다. 살룸, 므나헴, 베가, 호세아, 이들은 모두 반역자와 살인자로서 왕이 되었다. 악한자는 다른 악한자에게 채찍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모두 스스로 멸망한다.
5) 국가요인들의 야심은 그국가를 불행하게 만든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한성읍 디르사가 나타난다. 이도시는 그주변에 있는 모든마음들과 함께, 이 반역자들중 한사람에게 잔인하게 파괴당하였다(6절).
6) 이스라엘이 국내의 문제로 이와같이 분열되어 있을때 앗수르의 두왕이 차례로 올라와서는(19,29절) 마음대로 약탈하였다.
7) 이것은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하여 포로로 잡혀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이일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통치자 호세아 9년에 일어났다. 만일 그들이 이혼란과 방황의 시대에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았더라면, 이최후의 멸망은 방지될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 이들의 치세를 간단히 살펴보자.
1) 여로보암의 아들 사가랴는 유다왕 아사랴, 혹은 웃시야 38년에 통치하기 시작하였다(8절). 명망있는 역사학자 가운데 몇사람은, 이스라엘 국내의 혼란과 불화로인하여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 사가랴사이에 22년 혹은 11년동안 왕위가 공석이었다고 주장한다. 사가랴는 왕위를 제대로 굳히기전에 폐위되었다. 그가 불과 6개월동안 다스렸을때, 살룸이 백성들의 동의를 얻어서 그를 '백성앞에서 쳐' 죽였다. 이것은 사가랴가 백성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하여 예후의 가계는 끝났다.
2) 그후 선왕을 살해한 살룸은 평화롭게 다스렸는가? 아니다. 그렇게하지 못하였다(13절). 그는 한달정도 통치하고 살해되고 말았다. 므나헴은 살룸의 모반에 분격하였든지, 아니면 그의 전례를 보고 용기를 얻었든지 몰라도, 살룸이 전왕에게 행한대로, 살룸에게 행하였다. 즉 살룸을 거기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14절).
3) 므나헴은 십년간 그나라를 다스렸다(17절). 그는 자기백성중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굴복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잔인하여, 그들의 성을 칠뿐만 아니라 '그가운데 아이밴 부녀를' 가를 정도였다(16절). 그는 이렇게 잔인한 수단으로 백성들을 위협하여 자기편으로 만들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앗수르의 왕이 그를 치러왔을때, 그는 첫째, 백성들을 거의 신뢰하지 못했기때문에 감히 앗수르왕을 대적할수 없었다. 따라서 막대한 대가를 치루고 평화를 살수밖에 없었다. 둘째, 그는 '나라를 자기손에 굳게 세우기위하여' 도움이 필요하였기때문에, 자기를 따르지 않는 백성들을 탄압하는 일에 앗수르왕이 돕는다는 것을 조약에 포함시켰다. 이렇게하여 그는 이번에는 앗수르왕의 손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앗수르군대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많은 전리품을 얻었기때문에 용기를 얻어, 머지않아 다시와서는 모든것을 약탈해 버린다.
4) 므나헴의 아들, 브가야는 아버지의 대를 이었으나, 두달을 다스린후 베가의 반역으로 살해되었다.
5) 베가는 반란으로 정권을 잡아 20년간이나 왕위에 있었다(27절). 그의 폭력행위는 오랫동안 그의 머리로 되돌아오지 않았지만, 결국 오고야 만다. 르말랴의 아들인 베가는 이 왕들중 누구보다도 국외에 이름을 떨쳤다. 그는 유다왕국에게는 큰두려움의 대상이었다(사 7:1절이하). 그러나 그는 앗수르왕에게 왕국의 상당한 부분을 빼앗겼다. 하나님은 이것으로 그가 예루살렘과 유다를 공격했던 것을 벌하신 것이다. 그는 이일후에 곧 분노한 방백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베가가 유대를 침공하는동안, 자기나라를 다른 외국군대에게 노출시켰다고 그를 미워하였던것 같다. 호세아는 이것을 이용하여 베가를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그는 확실히 왕위에 대한 야심이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와같은 때에 왕관을 얻기위하여 반역자들처럼 모험을 감행하셨다. 아마 현자라면 왕관이 길거리에 있어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호세아는 왕관을 얻기위하여 모든것을 내걸고 모험하였고 그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었다.

Ⅲ. 유다왕 요담의 치세 15:32-38
유다왕 요담의 치세에 대하여 간단한 기록이 나온다.
(1) 그는 아주 선하게 다스렸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34절). 요세푸스는 요담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경건하였으며, 공익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았다고 주장하면서 그를 아주높이 평가하였다. 비록 산당을 헐지는 않았지만, 백성들을 거기에서 끌어내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전을 가까이 하게하기 위하여 성전에 상당히 관심을 기울이고 성전대문을 더높게 건축하였다. 집권자들이 죄악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하고싶은 모든일을 할수 있을때는, 경건과 미덕을 중진시키고 장려하는 일을 그만큼 더많이 해야한다. 즉 그가 죄악의 산당을 헐어버릴수 없을때 하나님의 집의 '윗문'을 높이 쌓고, 더아름답게 하였다.
(2) 요담은 중년기에 죽었다(33절). 이 기록을 볼때 다윗의 년수, 즉 70만큼 산 유다의 왕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아사의 나이는 모르지만 웃시야는 68세까지 살았고, 므낫세는 67세, 여호사밧은 60세를 살았다. 이 세왕은 최장수한 자들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50세도 살지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요담왕은 41세에 죽었다.
(3) 그의 시대에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르말랴의 아들이 동맹을 맺고 유다를 공격하였다. 이동맹은 아하스 원년의 유다에 큰위협이 되었다. 이것을 본 왕의 마음은 동요되고, '그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다'(사 7:2).

# 핵심
15:1-7
유다왕 아사랴의 통치가 간략하게 기록되고 있다. 그는 에돔, 블레셋, 암몬을 정복함으로써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비슷한 위세를 떨쳤지만, 말년에는 스스로 교만해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대하 26장).
앗수르의 1차 침략(15:19)
앗수르왕 불(Pul)은 디글랏빌레셀 3세를 바벨론식으로 일컫는 이름이다. 당시 앗수르는 디글랏빌레셀 3세의 통치하에 점차로 강력한 제국을 형성하여 최강국으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앗수르에서 발굴된 디글랏빌레셀의 통치연대기에는, 그가 사마리아의 므나헴을 비롯하여 여러왕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 묵상
아사랴의 통치 ( 15:1-7 )
아사랴는 웃시야라고도 불리며 아마샤의 뒤를이어 52년간 유다의 왕으로 통치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했으나 산당에서 분향하는 일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문둥병의 상징 ( 15:5 )
인간의 죄와 부패를 상징하는 질병입니다. 문둥병원균은 육체를 서서히 허물어버리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합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은 인간을 절망과 사망으로 서서히 이끕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에 식언치 않으십니다(민23:19). 아사랴가 문둥병을 얻은이유도 제사장이 해야할 일을 대신하였기 때문입니다(대하26:16-21). 나라가 부강해지고 모든일이 잘되자 아마샤는 교만해져서 제사장을 무시하고 여호와께 분향하려 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규례를 무시하는 죄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 개개인이 제사장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왕들의 공통점 ( 15:18, 24, 28 )
그들은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처럼 우상숭배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들은 모두 여로보암을 기준으로하여 평가되었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계속적으로 죄를 향해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옛사람을 따라사는, 썩어질 구습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 하나님을 좇는 생활을 해야합니다(엡4:22). 또한 유다의 왕들에 비하여 볼때, 계속적으로 왕가가 바뀐것을 알수 있습니다. 유다의 경우 왕들이 살해되어도 살해자들이 처형되고 다윗왕가의 후계자가 왕위를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전왕을 살해하고 그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유다왕 요담의 통치 ( 15:32-38 )
요담은 웃시야의 아들로 16년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주변의 왕들이 악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선을 행했습니다. 곧 전에는 우리가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빛의 자녀답게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엡5:8-9).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하신 자의 삶은 주변에 어떤 악영향이 있어도 끝까지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요담의 주요업적 ( 15:35 )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열심의 증표로 성전윗문을 건축했고, 여러성읍들을 증·개축했으며, 외적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등 다방면에서 공적을 들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하는 자는 가만히 앉아 하나님을 바라보지만 않고 자기가 할수 있는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을 소망합니다. 내게 주어진 달란트로 최선을 다할때 하나님께서는 일한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계22:12).

# 해설
몰락하는 이스라엘 ( 15 )
여로보암 2세가 죽은이후에 이스라엘은 급격하게 몰락하게 됩니다. 여로보암 2세이후의 통치자들의 지도력 부재로 나라가 크게 혼란해졌습니다. 또한 계속해서 이어지는 혁명은 이스라엘 왕조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멸망의 그늘만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반면 다윗왕조를 계승하는 유다는 이스라엘보다 상황이 호전되어 갔습니다.
1. 아사랴의 유다통치
1) 아사랴의 즉위
유다는 아마샤가 반란군에 의해 살해되자 그의 아들인 아사랴가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27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마샤는 '웃시야'로도 불렸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갔을때부터 시작하여 총 52년간을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a.아사랴의 즉위(대하26:3-4)
b.아마샤의 살해(왕하14:19)
2) 문둥병에 걸린 아사랴
아사랴는 비교적 선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사장들만이 할수 있는 분향하는 일을 하다가 여호와의 진노로 문둥병에 걸렸습니다(참조, 대하26:16-21). 결국 그는 남은 여생을 별궁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아사랴는 자신의 교만한 행위로 평생을 탄식속에 살게되었던 것입니다. 아사랴의 문둥병으로인해 나라는 그의 아들인 요람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a.아사랴의 교만(대하26:16)
b.부정한 병인 문둥병(레13:46)
3) 아사랴의 죽음
문둥병으로 후회와 탄식속에 살던 아사랴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사실 아사랴는 유다의 왕들중 많은 업적을 지닌 영향력있는 왕이었습니다. 그의 업적은 대하 2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엘랏을 건축하고 암몬족속에게는 조공을 받았으며 블레셋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또한 군대를 재조직하고, 여러지역을 요새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가 죽은뒤에는 이웃나라들과 연합하여 앗수르의 위협에 공동대처하기도 한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제사장의 사역에까지도 손을 댄 교만으로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말년에는 비참한 나날을 보내게된 것입니다.
a.별궁에 홀로 살았던 아사랴(대하26:21)
b.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함(대하26:23)
2. 몰락하는 이스라엘
1) 스가랴와 살룸의 통치
여로보암 2세의 뒤를이어 그의 아들 스가랴가 북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조상들처럼 우상숭배를 계속했습니다. 결국 그는 6개월동안 통치를 하다가 살룸에 의하여 공개적으로 암살당했습니다. 스가랴의 죽음은 예후왕조가 4대만에 끝나리라는 예언의 성취였습니다(참조, 왕하10:30).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살룸도 결국은 한달동안의 통치를 끝으로 므나헴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므나헴은 왕으로 즉위한후 디르사와 사마리아 근처의 딥사를 공격했습니다. 이유는 그곳 사람들이 므나헴을 왕으로 인정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므나헴은 자기에게 불순종하는 자에게 어떤형벌이 내리는지 본을 보이기위해 임신한 부녀자들까지도 죽이는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않고 행했습니다.
a.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암7:9)
b.예후왕조에 대한 예언(왕하10:30)
2) 므나헴과 브가히야의 통치
므나헴은 유다왕 아사랴 39년에 왕이되어 10년동안 악한통치를 하였습니다. 그의 배교행위는 조상들 못지않게 악했던것 입니다. 어느날 앗수르의 강력한 지도자들중에 한왕인 디글랏빌레셀 3세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디글랏빌레셀 3세는 '불'이라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사실을 안 므나헴은 부자들에게 각각 은 오십세겔씩을 토색하여 은 천달란트를 불에게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이대가로 므나헴은 왕위를 지속할수 있었습니다. 그후 므나헴은 죽어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등극하였는데, 그역시도 우상숭배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브가히야는 50명의 병사를 이끌고온 베가에 의해 왕궁호위소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이때 왕자인 아르곱과 아리도 살해당했습니다. 이제 베가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a.앗수르왕 불의 공격(대상5:26)
b.왕궁호위소에서의 죽음(왕상16:18)
3) 베가의 통치
베가가 즉위하던 때는 유다왕 아사랴가 52년째 통치하던 해였습니다. 그도 선왕들처럼 하나님앞에서 사악한 일들을 계속 행했습니다. 베가는 므나헴이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기위해 이용한 세금제도 등을 비방하면서 반앗수르 정책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는 곧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셀의 공격을 야기시켰습니다. 앗수르왕은 많은땅을 빼앗았고, 또한 백성들을 앗수르로 잡아갔습니다. 이러한 패배로인해 호세아는 베가에게 반역하여 그를 죽여 버렸습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최후의 왕이될 호세아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물론 호세아는 앗수르에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a.디글랏빌레셀왕(대하28:20)
b.아벨 벳마아가(삼하20:14-15)
3. 요담의 유다통치
1) 요담의 즉위
유다는 아사랴(웃시야)를 이어 그의 아들 요담이 통치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2년째 베가가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요담은 선한 왕으로 16년간을 통치했으나 선왕들처럼 산당은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요담은 특별히 성전의 윗문을 개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밖에 요담이 계획한 건축과 암몬족속의 정복은 대하27:3-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a.요담의 즉위(대하27:1)
b.성전윗문의 건축(대하27:3)
2) 요담의 죽음
요담이 유다를 다스릴때 이스라엘은 베가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당시의 국제정세는 앗수르의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베가왕은 반앗수르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람왕 르신과 협약을 맺고 앗수르에 대항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동참을 강요하기위해 르신과 연합하여 요담이 다스리는 유다를 공격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요담도 죽음을 맞이하여 그조상 다윗성에 열조와 함께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요담을 이어 아하스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a.아람왕 르신(왕하16:5)
b.르신과 베가(사7:1)
결론
이스라엘의 왕조는 계속되는 반역으로 정치, 경제, 사회가 불안해지고, 주변강대국들 특히 앗수르의 공격은 이스라엘의 앞날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웠습니다. 이러한 혼란의 원인은 바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왕들을 언급할때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라는 사실을 반드시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유다의 왕들도 여호와앞에서 선하게 나라를 다스렸으나 산당들은 제거하지 못한 약점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로인해 유다도 여러가지 많은 어려움을 겪게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절대적인 순종과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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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다왕 아마샤의 즉위 14:1-7
아마샤는 요아스의 아들이며 후계자이다.
(1) 그는 성전안에서 어느정도 잘 행하였으나, 다윗과 같지는 못했다(32절). 그는 시작은 잘하였지만 끝까지 밀고나가지 못했다. 우리의 경건한 선배들이 행한 그관습을 그대로 지키는 것은 불충분하다. 오히려 우리는 동일한 신앙과 헌신의 원칙과 동일한 진지성과 결심위에서 그들이 행한 그대로 행하여야 한다. '신당을 제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은 전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우리의 주위를 끈다.
(2) 그는 재판정에서 그의 아버지를 살해한 역적들을 공정하게 처리하였다. 그는 어떤혼란을 야기시킬까 두려워하여, 즉위 즉시 그일을 처리하지 아니하고, 신중하게 '나라가 그손에 굳게' 설때까지 연기하였다(5절). 그러나 모세율법에 분명하게 '아비로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것이라'는 조항이 있었기때문에 '왕을 죽인자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다'(6절).
(3) 그는 전쟁에서는 에돔사람들에게 승리하였다(7절). 에돔사람들은 요람시대에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었다(8:22). 이제 요아스는 그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로 다시 충성을 바치게 하였다. 이 원정에 대한 더상세한 기록은 역대하 25:5절이하에서 볼수 있다.

Ⅱ. 요아스와 아마샤의 대면 14:8-14
왕국분열이후 서너대동안 유다왕국은 이스라엘의 적대감으로인하여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 그리고 아사이후 서너대동안은 이스라엘과 맺은 동맹과 정략결혼 때문에 더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다시 서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것을 보게된다.
(1) 아마샤는 아무런 계기나 싸울이유를 제시하지도 않고 무작정 요아스에게 도전하였다(8절).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즉 "전장에서 우리의 힘을 서로 겨루자." 이렇게함으로 그는 교만하고 뻔뻔스러우며 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떤사람들은 그가 이스라엘왕국을 굴복시키고 유다를 재통일하려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2) 요아스는 그의 도전을 엄히 책망하고, 철회하도록 조언하였다(9,10절).
1) 요아스는 자기를 백향목 즉 고귀한 재목에, 그리고 아마샤를 가시나무 즉 보잘것없는 잡초에 비교하고 또한 자기를 그를 두려워하기는커녕, 그를 경멸하며 자기가 그와 어떤동맹을 맺는것은 백향목이 자기딸을 가시나무와 맺어주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이야기함으로 아마샤의 자존심을 손상시켰다. 그는 옛날 다윗의 집은 이제 예후의 집(비록 유서깊지는 못하더라도)과 나란히 이름불려질 가치가 없는 가문이라고 생각하였다.
2) 요아스는 아마샤의 패전을 예언하였다.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이렇게 가시나무와 백향목과의 협상은 끝이 났다. 마찬가지로 요아스는 자기군대가 쉽게 아마샤를 이길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3) 그는 아마샤에게 그의 도전이 어리석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너는 고작 에돔을 이긴것을 가지고 마치 온세상에서 공포의 대상이나 되는 것처럼 자랑으로 여기는구나"
4) 그는 아마샤에게 이미 얻은 영예로 만족하고, 능력밖에 있는 더많은 것을 잡으려다가 손에 쥔것조차 놓치지말라고 권고하였다.
(3) 아마샤는 자기결심을 고집하였고 결과는 좋지않았다.
1) 그의 군대는 패배하여 흩어졌다(12절). 요세푸스는 아마샤군대가 교전하게 되었을때,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공격다운 공격한번 하지못하고, 모두 도망가기에 바빴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 아마샤는 이스라엘왕에게 포로가 되어 그를 실컷 대면하게 되었다.
3) 개선자는 별저항없이 문이 열린 예루살렘에 입성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벽을 허물고(요세푸스에 따르면, 승리한 그는 전차를 몰고 성벽이 무너진 곳으로 들어갔다) 유다에게 치욕을 안겨주었다.
4) 그는 예루살렘을 약탈하고 가치있는 모든것을 빼앗아가지고, 전리품을 싣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다(14절).

Ⅲ. 아마샤의 죽음 14:15-22
여기 불과 몇절안에 세사람의 왕이 무덤으로 갔다. 첫째로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이 죽고(15,16절) 둘째로 유다의 아마샤왕이 죽었다. 그는 그를 정복했던 이스라엘왕보다 15년을 더살았다(17절). 그는 자기신하들에게 살해되었다. 그의 악정으로인하여 신하들은 왕을 미워하고 예루살렘은 왕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오르게 되었다. 이것은 왕의 어리석음과 허세때문에 성벽이 치욕스럽게 허물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마샤는 라기스로 도망갔다. 우리는 그가 거기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숨거나 보호받았는지는 알지못하지만, 결국 거기에서 살해되었다(19절). 셋째로 아사랴가 아마샤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때, 그는 네살밖에 되지 않았기때문에 12년동안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그가 16세가 될때까지 정치는 섭정하에 있었다. 그는 무척 오랫동안 통치하였지만(참조15:2) 그의 통치기록은 다 건너뛰어 갑자기 끝나버렸다(22절). 아사랴가 엘닷을 건축하였다. 엘랏은 에돔족속에게 속한 땅이었다.

Ⅳ. 이스라엘왕 여로보암2세 14:23-28
이것은 여로보암 2세의 치세기록이다.
(1) 그의 치세는 길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왕들중에서 최장의 통치기간이다. 사십일년을 위에 있으며(23절). 그러나 그와 동시대사람, 유다왕 아사랴는 그보다 더긴 52년간을 다스렸다. 이 여로보암은 아사가 통치한 기간만큼 통치하였는데(왕상 15:10), 한사람은 선하였고 다른 한사람은 악하였다. 사람의 성품은 수명이나 외적인 번영을 가지고 측정할수 없다.
(2) 그의 성품은 다른왕들과 동일하였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여로보암의 모든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24절). 그는 송아지숭배를 계속하였다. 어떤죄가 옛부터 내려오는 습관이라고해서, 하나님께서 그죄를 덜악하게 보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3) 그러나 그는 다른 대부분의 왕들보다 번창하였다. 그가 한편으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지만, 다른한편으로는 그안에 선한것이 있었던것 같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셨다.
1) 예언으로 그를 인정하셨다. 하나님은 갈릴리사람 아밋대의 아들 요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이것은 그의 충성스러운 사역자가 계속 백성을 다스리는동안에는 하나님께서도 그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은 요아스의 손을 강하게 한 엘리사를 데려가시고 요아스의 아들을 격려하기위해 요나를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신 일, 그리고 그가 도망갔고, 그후 니느웨로 가면서 짜증을 부리던 일은 아마도 그가 젊었을때의 일인것 같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후에 요나를 자비의 사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신 것은 그의 실수와 여러가지 어리석음을 다 용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하나님의 위임장은 곧 용서를 의미한다.
2) 보호하심으로 인정하셨다. 여로보암의 군대가 승리한 사건은 여호와의 말씀에 의한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지경을 회복하되' 북쪽 하맛에서부터 아라바 바다에 이르기까지 모든 변경성읍과 촌락을 회복하였다(25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승리의 복을 주신 이유는 두가지이다.
① 이스라엘의 고난이 극심하였기 때문이다. 이 고난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 되었다(26절). 적들이 지배하는 촌락에 살던 사람들은 비참하게 억압받는 노예생활을 하였고, 나머지 지방 주민들도 적들의 잦은침입과 약탈때문에 가난하게 되었다.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 비참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로 위안을 얻도록 하자.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신 심정과(사 63:15; 렘 31:20), 하나님의 마음은 긍휼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시 86:15)을 알수 있다.
② 하나님께서 아직까지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27절). 이말씀을 북방 열지파의 분열로 이해한다면, 머지않아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시고 실행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완전한 근절이라고 이해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지 않으셨고, 또한 하려고하지도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이름은 아직까지 복음 이스라엘속에서 여전히 세상에 있으며, 세상끝날까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4) 여기에 여로보암 통치의 결말이 설명되어 있다. 우리는 28절에서 그의 전력과 그가 어떻게 싸웠는가에 대한 기록을 본다. 이스라엘에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예언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었으나 이제 비로소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호세아가 예언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여로보암이 통치할때이다. 그는 예언을 기록한 최초의 선지자이며, 따라서 호세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여호와의 말씀의 시작'이라고 부른다(호1:2). 동시에 아모스가 예언하고 그예언을 기록하였으며, 그후 곧 미가, 그리고 아하스와 히스기야시대에 이사야가 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자신을 증거하셨다.

# 핵심
14:1-22
유다왕 아마샤는 초기에는 비교적 하나님께 충실했고 에돔과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승리후에 곧 교만해져서 북이스라엘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다 패배했고, 결국은 모반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 묵상
유다왕 아마샤의 행적 ( 14:3 )
역대 유다왕들 가운데 드물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칭찬을 들었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악행을 범했습니다. 결국 아마샤는 기회주의적이고 회색주의적인 신앙행태를 취한 것입니다. 정함이 없이 혼합된 신앙성향을 지닌자는(약1:8)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수 없습니다.
아마샤의 패배 ( 14:8-14 )
이미 얻은 승리로인해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으로 늘 패망만을 가져옵니다(잠16:18). 물론 아마샤가 담대하게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선전포고를 했지만, 이는 아마샤가 지난번 에돔과의 일전을 통해 큰승리를 얻어 자신의 힘과 군사력을 지나치게 과신했기 때문입니다.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분명 유다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개입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아마샤가 이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면 결코 교만하거나 과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삶에 있어 하나님을 늘 염두에 둔 인생은 실패하거나 멸망하는 법이 절대 없습니다.
아마샤의 최후 ( 14:17-22 )
모반으로인해 쫓기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대하25:27). 하나님을 버린 사람은 죄의 종이 되어 죄에 의해 심판을 받게됩니다. 어떤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인생의 실패와 멸절 ( 14:17-22 )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기 때문입니다(창3 :11-19).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 인생들을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멸망에 이르지않도록 하기위해 당신의 일꾼들을 보내어 경고하시고 책망하시는 열심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여로보암의 통치 ( 14:23-27 )
그는 여로보암 1세가 아니라 요아스의 아들로서 41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그의 인간적인 업적은 뛰어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합니다. 성경은 일반적인 역사를 기록하지 않고 하나님이 역사하신 구속사를 중심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비록 인간적으로는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해도 하나님앞에서 악을 행한 사람의 역사는 짧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 14:27 )
이는 이스라엘의 이름을 남겨두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은 ‘그가 하나님으로서 다스릴 것이다’라는 뜻으로, 야곱에게 주어 대대로 그의 자손에게 불리게한 이름입니다. 또한 이는 영적으로 구원받은 이들을 표현하기도 합니다(롬9:6-13).

# 해설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 14 )
이제 다시 유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에 요아스왕이 있듯이 남유다에도 요아스왕이 있는데, 이 왕의 아들이 아마샤였습니다. 아마샤는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에 따라 나라를 통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달랴 통치이후에 쇠퇴해졌던 국력을 어느정도 신장시켰습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인해 많은피해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1. 아마샤의 유다통치
1) 아마샤의 즉위
요아스가 이스라엘의 왕이 된지 1년후에 아마샤는 유다의 9대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이때 아마샤의 나이는 25세였습니다. 아마샤는 선왕인 요아스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숭배하는 산당을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중에는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샤는 다윗왕조의 시조이자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부족하였던 것입니다.
a.아마샤의 즉위 (왕하12:21)
b.산당에서 제사하는 백성들(왕하16:4)
2) 에돔과 전쟁을 한 아마샤
아마샤는 등극하자마자 자신의 부친인 요아스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습니다. 이 신복은 요사갈과 여호사바드를 가리킵니다. 당시의 관습대로 하자면 왕을 죽인 신복들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가족들까지도 몰살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마샤는 그 신복들만 죽이고 자식들은 살려두었습니다. 이는 아마샤가 모세의 율법을 실천했던 것이고,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한편 아마샤는 에돔과 전쟁을 하였습니다(참조, 대하25:5-16). 이전쟁은 사해계곡에서 발생했는데 아마샤가 대승하여 에돔사람 일만을 죽이고, 에돔의 수도인 셀라도 취하였습니다. 아마샤는 셀라를 욕드엘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바로 이곳이 그유명한 성채도시인 페트라였습니다.
a.그자식은 죽이지 말라(신24:16)
b.염곡에서의 승리(삼하8:13)
2. 아마샤와 요아스의 싸움
1) 화를 자초한 아마샤의 교만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아마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과 싸우기로 결심하고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에게 이를 통보하였습니다. 사실 유다는 이스라엘의 아합이후로 이스라엘의 종속국노릇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은 우화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아마샤의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그리고나서 먼저 유다를 공격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과 유다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25km 떨어진 벧세메스에서 전쟁을 하였는데 그결과는 이스라엘의 대승이었습니다. 유다군대는 후퇴하고, 아마샤는 생포되었습니다. 요아스는 예루살렘성벽을 파괴하고 성전과 왕궁에서 많은 귀중품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그리고 많은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사마리아에 끌려갔습니다. 결국 아마샤도 잡혀갔기에 그의 아들인 아사랴가 유다를 통치하였습니다.
a.아마샤의 죄악(대하25:14)
b.아마샤의 교만(대하25:19)
2) 요아스의 죽음
요아스의 죽음은 왕하13:12-13절에 이어 또다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는 죽어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었습니다. 이때에 포로로 잡혀있었던 유다왕 아마샤는 석방되어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요아스가 죽자 그의 뒤를이어 요아스의 아들인 여로보암 2세가 즉위하였습니다.
a.이스라엘왕 역대지략(왕하15:31)
b.여로보암의 즉위(왕하13:13)
3) 아마샤의 죽음
유다는 아마샤가 이스라엘과 무리한 전쟁을 일으키고 크게 패하자 정치, 경제, 사회 전분야에서 큰혼란을 맞이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가운데 일부 무리들은 아마샤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중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아마샤는 유다의 남부국경에 있는 옛수도 라기스까지 도망갔으나, 거기서 반란군에게 잡혀 죽음을 당했고 그의 시체는 다윗성에 장사되었습니다. 유다는 아마샤가 포로로 잡혔을때부터 그의 아들 아사랴가 16세 나이로 통치하기 시작하다가 아마샤의 죽음이후로는 독자적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아사랴는 오빌과의 무역을 위해 아카바만에 엘랏을 건축하기도 합니다.
a.라기스(수10:3)
b.엘랏(왕하16:6)
3. 여로보암 2세의 이스라엘 통치
1) 여로보암 2세의 즉위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이 죽자 그의 아들인 여로보암 2세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이때 유다는 아마샤가 15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이전의 어떤왕들보다도 장수한 왕으로서 41년간을 통치하였습니다. 특별히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할즈음에 주변강대국들은 어려움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여로보암 2세는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이스라엘을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는 크게 성공한 여로보암이었으나, 그는 영적으로는 그의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한 실패자였습니다. 따라서 본서의 저자는 왕들을 신앙적인 면에서 평가하고 있었기에 여로보암 2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로보암 2세의 41년간의 통치도 간단하게 기록되었던 것입니다.
a.여로보암 2세의 즉위(왕하13:13)
b.계속되는 여로보암의 죄악(왕하15:23-24)
2) 이스라엘을 부흥시킨 여로보암 2세
사실 이스라엘은 아람의 하사엘왕때부터 아람의 학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고통이 요아스때부터 호전되기 시작하여 결국은 여로보암 2세때에 아람의 손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를 회복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솔로몬시대에 확장되었던 영토들을 모두 복원시켜 북쪽 하맛어귀에서부터 남쪽 아라바 바다까지 넓은 영토들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토확장은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파한 요나선지자에 의해 계시되었던 것입니다.
a.요나선지자(욘1:1)
b.솔로몬당시의 영토(왕상8:65)
3) 여로보암 2세의 죽음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할때에 아람은 앗수르의 공격을 받아 국력이 쇠퇴해진 가운데 있었습니다. 또한 앗수르도 북방 우라르트민족의 계속되는 침략과 무능한 지도자로인한 내부갈등이 심화되어 국력이 약해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주변강대국들의 약세를 틈타 여로보암은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과 하맛을 침략하였습니다. 본래 이들 도시는 다윗과 솔로몬때에 이스라엘 영토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그밖에 여러지역들을 되찾고 이스라엘을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후 여로보암 2세도 죽음을 맞이하여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a.다메섹을 회복한 일(삼하8:6)
b.유다에 속했던 하맛(대하8:3)
결론
에돔에게 승리했다는 기쁨에서 비롯된 아마샤의 교만한 마음은 민족적인 재앙만을 야기시켰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비참한 죽음만을 몰고 왔습니다. 여기서 한사람의 지도자가 올바르게 선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여로보암 2세의 업적에 관하여 간략하게 기록된 본문을 보면, 인간을 평가하는 하나님의 관점이 우리들과는 크게 다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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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여호아하스의 통치 13:1-9
이것은 여호아하스의 통치시대와 그의 재위기간, 17년동안의 이스라엘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기록이다.
(1) 이스라엘의 영광이 수치로 변하였다. 이스라엘의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1) 이스라엘은 살아계시고 참되신 유일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림으로써 명예를 얻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영 곧 영원한 정신이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또한 그들이 하나님께서 지시한 규례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써 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그들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금수형상의 우상으로 바꾸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된 것으로 바꾸어' 이 명예를 분실하였고, 자신들을 사람의 손으로 만든것을 섬기는 이방민족들과 동일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왕이 '여로보암의 죄를 좇았고'(2절), 백성들도 그죄를 떠나지 아니하고 그안에서 행악한 사실을 발견한다(6절).
2)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었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울타리가 되셨다는 사실은 그들의 명예였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발견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이영광을 박탈당하고, 모든 이웃들로부터 모욕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전에도 종종 이렇게 된적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로인하여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다. 이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사엘의 손과 그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다'(3절). '하사엘이 이스라엘을 학대하였다'(22절). 이스라엘처럼 자주 이웃나라에 짓밟히고 약탈당한 나라는 결코 없었다.
(2) 이 잿더미 속에서 이스라엘의 옛영광의 불꽃이 얼마만큼 남아서 빛나고 있었다.
1) 이스라엘의 옛영광 중의 하나는 그들이 기도하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영광이 되살아나는 것을 본다. 여호아하스왕이 고난가운데서 '여호와께 간구하였다'(4절). 그는 송아지우상(이것이 그들에게 무슨도움을 줄수 있었겠는가?)에게 도움을 청한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하였다.
2)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에게 기도할때마다 그들에게 가까이 하신 사실이 이스라엘의 옛영광이었다(신4:7). 하나님께서 이기도를 가증한 것으로 여기셔서 물리치심이 마땅하였지만 왕자신과 백성을 위한 기도를 '여호와께서 들으시고'(4절),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셨다'(5절). 이것은 여호아하스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여호아하스의 시대에는 항상 하사엘이 이스라엘을 학대하였다(22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 아들로하여금 아람을 이기게 해주셨다. 그결과 아들 요아스왕이 자기 아버지가 빼앗겼던 성읍들을 회복하였다(25절). 하나님께서 여호아하스의 기도에 은혜의 응답을 주신 것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23절).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신속하게 자비를 보여주시며, 또 얼마나 은혜를 베풀고자 원하는지를 알수 있다. 그렇지않다면 옛날의 언약을 돌이켜 생각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Ⅱ. 요아스왕과 엘리사 13:10-19
여호아하스의 아들, 예후의 손자, 요아스가 이스라엘의 왕위를 계승했다. 예후의 집안에서 이 왕위계승자에게 당시 유다의 왕인 요아스와 동일한 이름을 지어준 것을 볼때, 그들이 다윗의 집에 약간의 존경을 보여주고 싶었던것 같다.
(1) 요아스는 가장 악한 왕들중의 한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도 여로보암집의 오랜정책인 우상숭배의 길을 좇았기때문에, 성경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2) 성경은 요아스와 엘리사사이에서 이루어진 일을 특별히 기록하고 있다.
1) 엘리사가 병들었다(14절). 이때는 그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후 약60년이 되었던 때이다. 엘리사가 이렇게 오랫동안 찬란한 빛으로 있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에게, 특히 선지자가 되려는 생도들에게 큰은혜가 되었다. 엘리사 생애의 후반기, 즉 요아스의 즉위 25년전, 예후에게 기름부은 일이후, 그의 신상과 행한일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나와있지 않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임종의 자리에 누운 엘리사를 보게되었다.
2) 요아스왕은 그에게 병문안하고, '그얼굴에 눈물을 흘렸다'(14절). 이것은 요아스안에 있는 어떤 선한것, 즉 그가 충실한 선지자를 존중하고 사랑하였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왕이 엘리사의 병환소식을 들었을때, 그는 가서 엘리사를 방문하고, 그에게서 마지막 충고와 축복을 받았다. 왕은 '나의 아버지여, 나의 아버지여'라고 부르며, 엘리사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이말은 엘리사 자신이 엘리야가 그를 떠나감으로인하여 슬퍼할때 했던 말과 동일한 것이다.
3) 엘리사는 왕에게, 이스라엘의 압제자인 아람사람들에 대한 승리를 분명히 확신시킨 다음, 왕을 격려하여 아람사람들과 용감하게 싸우도록 하였다. "나는 죽지만 하나님께서 분명히 당신을 찾아주실 것입니다. 그는 성신을 남겨두셨으며 당신을 위하여 기도할만한 다른선지자들을 세우실수 있나이다." 엘리사는 왕에게 한표적을 주었다. 즉 왕에게 '활과 화살을' 취하라고 하였다(15절). 하나님은 행위자(the agent)이시며, 왕은 도구가 되어야 하였다. 그리고 왕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함으로써 그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표식을 주었다.
① 아람을 향하여 화살을 쏠것을 지시하였다(16,17절). 왕은 선지자에게 명령을 받았다.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창을 여소서…쏘소서. 왕이 이전에 한번도 활을 쏘아보지 않은 어린애인 것처럼, '엘리사가 자기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였다'. 이것은 왕이 아람을 대적하여 원정할때마다, 언제나 지시하심과 힘을 공급받기위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임종하는 선지자의 떨리는 손이, 하나님의 능력을 일으키고 전달하던 손이기때문에, 왕의 손보다 더강하게 화살을 잡았다. 아람사람들은 동편의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다(10:33). 따라서 활은 그쪽 방향으로 향하였고, 선지자는 화살쏘는 행위를 다음의 뜻으로 설명하였다.
첫째, 아람을 치는것은 왕에게 부여된 의무이다.
둘째,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얻는다.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② 화살로 땅을 칠것을 지시하였다(18,19절).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람에 대한 승리를 확신시켰다. 그런데 이제 그는 왕을 시험하여, 왕이 승리이후에 무엇을 행할 것인지, 전에 아합왕이 벤하닷을 마음대로 할수 있었을때 행하였던 것보다 더큰 열심히 아람사람들을 억누를 것인지에 대해 알고싶었다. 이것을 시험하기위하여 선지자는 왕에게 화살로 땅을 치도록 명하였다. 즉 "이제 왕이 그들을 정복하였을때, 그들에게 어떻게 대할 것인지 나에게 보여달라." 그러나 왕은 이런경우 누구라도 기대할만한 열심과 정열을 보여주지 않았다. 왕은 땅을 세번만 치고 말았던 것이다. 왕은 상징적인 행위를 무시함으로써, 그상징이 의미하는 실제를 상실하였다. 이것은 임종하는 선지자를 매우 슬프게 하였다. 엘리사는 왕이 여섯번은 쳤어야한다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은 넉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자신의 기대치와 노력을 그것밖에 갖지 못하였을까?

Ⅲ. 엘리사의 죽음 13:20-27
(1) 엘리사가 나이많아 죽자, 사람들이 그를 장사지냈다. 그가 죽자마자 모압사람 일당이 그땅을 침범하였다. 이들은 떠돌아다니면서 아무곳이나 급습하여 사람을 죽이고 약탈하는 도둑들이었다. 왕은 아람사람의 위험을 알고있었지만, 이번에는 모압사람들이 침범한 것이다. 엘리사의 시신은 다른시체에게 생명을 전해 주었다(21절). 이 커다란 기적은 사후에도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암시해주고 있다. 이웃사람들이 어떤사람의 시신을 무덤으로 옮기던중, 매장지 근처에 있는 모압사람들을 멀리서 보고, 그들의 손에 잡히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시체를 적당히 편리한 곳에 두었다. 그런데 그곳은 엘리사의 무덤인 사실이 드러났다. 그 죽은사람이 엘리사의 뼈에 닿자마자 회생하여, 아마도 그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다 돌아갔을 것이다. 엘리야는 그가 떠날때, 영광을 입었었다. 엘리사도 이세상을 떠난후에 영광을 입었다. 하나님이 이와같이, 그가 원하시는대로 영광을 나누어주시며, 남아있는 모든성도들도 혹 이렇게 혹은 저렇게 모두 영광을 입게될 것이다(사11:10).
(2) 이스라엘왕 요아스의 칼이 아람사람에 대하여 승리하였다.
1) 그의 승리의 원인은 하나님의 은총이었다(23절). 여호와께서…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어…긍휼히 여기시며 권고하사. 그들이 진멸되지 아니한 것은 여호와의 자비때문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의 여지를 남겨두시고자 했기 때문이다.
2) 요아스는 벤하닷의 손에서 아람사람들이 점령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회복하였다(25절). 요아스는 화살로 땅을 쳤던 횟수대로 아람사람들을 세번 물리쳤고, 이것으로 그의 승리는 끝이 났다.

# 핵심
13:1-9
북이스라엘왕 여호아하스가 우상숭배로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아람군대의 침략을 당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구원자(13:5)
여호아하스의 후손인 요아스(10절)와 여로보암(14:23)을 가리킨다는 해석과 앗수르왕 아닷니라리 3세를 가리킨다는 해석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 해석에 의하면 요아스는 25절에 기록된대로 자신의 부친이 아람에게 빼앗겼던 일부지역을 되찾았으며, 그의 뒤를이은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옛영토를 거의 회복하였다(14:25). 두번째 해석은 당시 앗수르가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공격함으로써 아람이 이스라엘에 대한 침략행위를 중단할수밖에 없었던 사실에 근거한다.

# 묵상
여호아하스의 삶 ( 13:1-9 )
여호아하스는 예후의 아들입니다. 여호아하스는 위험에 처했을때 잠시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을뿐 대체로 악을 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리 악한사람이라도 당신을 겸손히 찾을때는 그손길을 뻗쳐주십니다.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의 실수 ( 13:6-9 )
이스라엘의 실수는 스스로를 멸망에 이르게한 죄악들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특히 가증스런 이방우상인 아세라목상을 제거해 버리지않고 그대로 둔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을 거저받았으나 그구원에 합당하게 살지 못했습니다(엡4:1). 그리고 옛죄악을 청산치 못함으로써 그들은 또다시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요아스의 눈물 ( 13:14 )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떠나갈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는 인간실존의 가장 큰위험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난 자리에는 항상 사탄이 노리고 있습니다.
엘리사의 분노 ( 13:19 )
엘리사가 노한이유는 화살로 땅을 세번밖에 치지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분량이 적음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자기믿음의 분량대로 결과를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세상을 창조하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자녀된 우리는 자녀들로서의 특권을 누려야합니다.
다시 살아난 시체 ( 13:21 )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한 사건은 엘리사가 위대한 선지자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보다 더위대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부활하사 잠자는 자의 첫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15:20). 그것을 믿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안에서 영광으로 부활하여 천국잔치에 참예하게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은혜를 베푸심 ( 13:23 )
선조들과 세운 언약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후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언약가운데 거할때만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선물을 받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겸하여 섬길수 없습니다. 이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아는자에게 결코 용납될수 없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종이 두주인을 동시에 섬길수 없듯이 성도는 하나님과 가증한 우상을 동시에 섬길수 없습니다(마6:24).

# 해설
여호아하스와 요아스의 통치 ( 13 )
본문의 배경이 유다에서 이스라엘로 전환되면서 예후의 아들인 여호아하스와 손자인 요아스의 통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엘리사의 마지막 예언과 그의 죽음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후로 끊임없이 우상숭배에만 전념하였기에 하나님의 징계는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람왕 하사엘을 심판의 도구로 삼았으나 여호아하스가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할때에 당신의 뜻을 돌이키사 이스라엘을 아람으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1. 여호아하스의 통치
1) 여호아하스의 즉위
예후가 죽자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북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남유다는 요아스가 23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아하스는 17년간의 재위기간동안 여로보암이 행한 우상숭배를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진노하사 이스라엘을 아람이 다스리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아람의 하사엘과 벤하닷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a.여로보암의 죄를 따름(왕상14:16)
b.진노하신 여호와(삿2:14)
2) 구원을 간구하는 여호아하스
아람의 학대에 견디다못한 여호아하스는 여호와께 구원을 호소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간구에 응답하사 구원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이구원자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나 능력의 종인 엘리사, 혹은 B.C.800년경에 아람의 하사엘을 무너뜨린 앗수르의 아닷니라리 3세일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아람의 손에서 벗어나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치도 않았고 우상숭배한 죄를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은 계속하여 아세라목상을 섬겼던 것입니다.
a.여호와께 간구함(출32:11)
b.구원자를 주신 여호와(삿3:9)
3) 여호아하스의 죽음
구원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거나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지도 않는 이스라엘에 임한 평화는 잠시뿐이었습니다. 아람왕이 다시금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전멸시켰던 것입니다. 결국 여호아하스도 쓸쓸하게 죽어서 사마리아에 묻혔고 그의 아들 요아스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a.타작마당의 티끌같이 진멸함(암1:3)
b.고통당한 이스라엘(왕하10:32)
2. 요아스의 통치
1) 요아스의 즉위
여호아하스의 뒤를이어 요아스가 등극하였습니다. 그는 16년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는데 5년째 되던해부터는 그의 아들 여로보암 2세와 함께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요아스도 선왕들과 마찬가지로 우상숭배의 범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도 결국 악한왕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날수 없었던 것입니다.
a.요아스의 남은 사적(왕하14:15)
b.요아스와 아마샤의 싸움(왕하14:8)
2) 엘리사의 예언
엘리사가 병이들어 죽음이 임박하자 엘리사를 존경하던 요아스가 병문안차 왔습니다. 요아스는 엘리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 있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런 엘리사가 죽는다는 것은 민족적으로 큰손실임을 요아스는 잘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권력과 승리를 상징하는 활과 화살을 주면서 승리를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요아스는 엘리사가 시키는대로 동쪽창문을 열고 화살을 쏘았습니다. 이제 아벡에서의 아람에 대한 승리를 보장받은 것입니다. 이후 요아스는 땅을 세번만 쳤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진노했습니다. 왜냐하면 요아스의 믿음없는 태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아스는 엘리사가 시키는대로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이렇게한다고 어찌 아람을 이길수 있으며, 또한 엘리사의 승리에 대한 예언에도 분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의없이 땅을 세번만 내리쳤던 것입니다. 결국 요아스는 하나님을 믿는것에 실패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요아스가 아람을 완전히 멸망시킬수 있는 기회를 놓친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결과적으로 3번의 승리밖에 얻지못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a.애절한 슬픔(왕하2:12)
b.기적을 보지못하는 불신(마13:58)
3) 죽어서도 이적을 행한 엘리사
요아스와의 만남이후에 얼마 지나지않아 엘리사는 죽었습니다. 그는 아합때부터 요아스때까지 근 55년간을 활동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엘리사는 당시의 관습대로 동굴이나 바위를 깎아만든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어느날 몇사람들이 엘리사의 무덤근처에서 한시체를 매장하려고 준비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모압의 강도떼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광야에서 살기에 먹을것이 항상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추수기가 되면 갑자기 나타나서 닥치는대로 약탈해 갔습니다. 따라서 시체를 매장하려던 사람들은 몸을 피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급한 나머지 그시체를 엘리사의 무덤안으로 던지고 숨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엘리사의 시신에 닿은 그시체가 즉시 살아나게 된것입니다. 이광경을 당시의 사람들이 목격하면서 이놀라운 사실은 금방 널리 퍼졌습니다.
a.모압의 배반행위(왕하3:7)
b.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왕하19:35)
3. 요아스의 승리
1)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요아스의 부친인 여호아하스의 재위때에는 왕하13:7절의 말씀에서 알수 있듯이 이스라엘은 아람의 하사엘에게 완전히 유린당했습니다. 물론 많은영토도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어느정도 힘이 있었거나, 하나님앞에 그들의 공로가 있었기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장들에게 그들의 자손을 번성케하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가나안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겠다고 약속을 하셨기에 이언약을 지키시고자 이스라엘을 멸망하지않도록 지켜주셨던 것입니다.
a.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출2:24-25)
b.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출32:13)
2) 요아스의 대승
세월이 지난 아람은 하사엘이 죽고 벤하닷 3세가 즉위하였고, 이스라엘도 여호아하스를 이어 요아스가 통치하였습니다. 요아스는 아람의 새왕 벤하닷 3세와 전쟁을 하였습니다. 이전에 엘리사가 예언했던대로 요아스는 3차례에 걸쳐 대승을 하였습니다. 이 3차례의 싸움중에는 아벡에서의 전투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요아스는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결과로 부친 여호아하스가 빼앗겼던 여러성읍들을 다시 찾게되었습니다.
a.아벡에서의 전투(왕상20:26)
b.벤하닷의 멸망(암1:4)
결론
이스라엘의 왕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우상숭배에만 몰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사랑하사 이들이 돌이킬수 있도록 이방민족을 통한 고난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호아하스나 요아스에게 하나님만을 신뢰할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두왕에게는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이 부족하였습니다. 결국 이들은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엘리사의 시체를 통해서도 기적을 행하시면서 믿음없는 왕을 책망하셨습니다. 동시에 오늘날의 믿음없는 성도들에게도 각성을 촉구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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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요아스의 통치 12:1-3
여기에 요아스에 대한 몇가지 전형적인 기록이 나타난다.
(1) 그는 사십년을 치리하였다.
(2) 그는 여호야다가 살아서 지도하는 동안에는 정직히 행하였다(2절).
(3) 그러나 그는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다(3절). 나라곳곳에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기위하여 제사와 분향을 드리는 단이 있었다. 아마도 개인 소유인듯 싶은 이 단들은 초기보다 후기의 악정하에 더자주 사용되었던것 같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 성전봉사가 정해진대로 행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호야다는 그것들을 묵인한 듯하다. 이는 성전이 잘수리되면 백성들이 점차 산당에서 멀어지게 될것이며 그수효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Ⅱ. 성전수리 12:4-16
우리는 여기서 요아스의 성전수리에 관한 기사를 보게된다.
(1) 비록 솔로몬이 성전을 가장 훌륭한 재료로 가장 훌륭하게 지었다할지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성전은 퇴락해지고 갈라진틈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성전이라도 그치장은 점점 낡아지지만 하늘의 성전은 결코 낡아지지 않을 것이다. 성전을 퇴락케 한것은 단지 시간의 톱니바퀴뿐이 아니었다. 아달랴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전을 깨뜨렸던 것이다(대하 24:7).
(2) 왕자신이 성전수리를 가장먼저 제의하였고 진행하였다.
1) 이는 그가 왕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권세를 가진자들에게 그권세를 신앙의 보존과 육성을 위해, 불평거리를 해결하는데, 그리고 퇴락한 것을 회복하는데 사용할 것을 바라시며 요구하신다.
2) 성전은 그의 어린시절의 피난처이자 자라난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을 매우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하면서 성전을 영화롭게 하기위해 열심을 보인 것이다. 어떠한 신앙모임에서 위로와 은혜를 경험한 자들은 그모임의 육성에 관심을 가지며, 그모임이 번창하는 것을 큰기쁨으로 삼는다.
(3) 제사장들은 성전수리를 위한 돈을 모으는 일에 노력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왕은 그들에게 돈을 징수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들은 갖다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각자 자기의 지역에서 속정(출 30:12), 몸값(레 27:2,3), 혹은 헌금 등을 요구하여야 했다.
(4) 이방법은 실패하였다(6절). 돈이 거의 모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제사장들의 무성의로인해 백성들의 호응을 받지못한 것이거나 아니면 제사장들이 돈을 횡령할지도 모른다고 하는 백성들의 불신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뿐아니라 거두어진 돈도 정한곳에 사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전의 퇴락한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6절).
(5) 따라서 다른방법이 취해졌다. 왕은 전의 퇴락한데를 수리하는 일에 더욱 자신의 마음을 쏟았다(7절). 말년에 그가 배교한 사실은, 그가 성전건물에 대해 애착을 가졌던 것만큼이나 성전예배에 대해서도 애착을 가졌는지에 관해 우리의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많은사람들이 교회를 건축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일과 경건의 모양에 대해서는 열심을 내나 경건의 능력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들이다. 어쨌든 요아스왕의 열심은 높이 평가될만하다. 다음 두가지 조처가 취해졌다.
1) 돈을 거두는 방법이 바뀌었다(9,10절). 공개된 함에 돈을 넣도록하자 백성들은 기꺼이 그리고 풍성하게 가지고 왔다.
① 돈은 뚜껑에 구멍이 뚫린궤에 넣어졌다. 이는 돌이킬수 없다는것, 즉 한번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되찾을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② 궤는 들어가는 입구의 우편에 놓여져 있었다. 어떤이들은, 그것이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네 오른손이 하는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자선의 원칙을 암시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백성들은 성전수리를 위해 가능한 모든것을 드리는 중에서도 제사장들에게 주기로 정해져 있는것을 중단하지 않았다(16절). 성전의 퇴락한데를 수리한다는 핑계아래 성전의 종들이 굶는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2) 거두어진 돈을 사용하는 방법이 바뀌었다.
① 그들은 이돈을, 이일에 익숙하지도 않고 다른일에 정신이 팔린 제사장들에게 맡기지 않았으며 이일을 직접 행하는 자들이나 혹은 최소한 그일을 감독하는 자들에게 맡겼다(11절).
첫째, 그들은 세심하게 그돈을 재료구입과 임금지불에 사용하였다(12절).
둘째, 그들은 정직한 자로 평판이 나있어 그들의 계산서를 조사하거나 감사할 필요가 없었다. 정부나 나라, 혹은 교회를 속이는 것을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죄를 그들앞에 드러내실때 비로소 깨닫게될 것이다.
② 그들은 그돈을 성전을 장식하는데나 은그릇 금그릇을 들여놓는데 쓰지않았으며 먼저 성전을 수리하는 곳에 썼다(13절).

Ⅲ. 요아스의 죽음 12:17-21
요아스가 하나님을 배반하여 우상숭배자와 박해자가 되자 여호와의 손이 그를 떠나 '그의 나중형편이 처음보다 나쁘게 되었다.'
(1) 그의 부귀와 영광은 이웃나라의 밥이 되었다. 하사엘이 이스라엘을 침략했을때(10:32)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도 위협을 했으며 견고한 성읍 갓을 취하였다(17절).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진군하려고 하였다. 요아스는 그를 막아낼 힘도 용기도 없었으므로 모든성물과 왕궁과 성전곳간에 있는 모든보물을 내주어 그로하여금 다른곳으로 진군케하였다(18절). 만일 그가 하나님을 버리지않았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박탈당하지 않았다면 형편이 이렇게 극한상황에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왕으로서의 명예뿐아니라 전사로서의 명예도 읽어버리고 아울러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약화시켰다. 그는 또한 하사엘로하여금 별다른 공격없이 그처럼 많은 전리품을 가져갈수 있게 만듦으로서 다시 침공하려는 유혹을 받게하였다. 결국 그다음해 아람왕은 다시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왕을 죽였으며 성읍을 약탈하였다(대하24:23).
(2) 그는 신복들에 의해서 살해되었다. 그들은 음모를 꾸몄으며 결국 왕을 죽였다(20,21절). 이는 그가 제사장인 여호야다의 아들을 살해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행해진 일이었다. 그리고 이것으로써 영으로 시작했으나 육으로 인생을 마친 요아스의 기록은 끝난다.

# 핵심
12:1-21
요아스는 재위기간동안 성전을 수리하는 등 비교적 충성된 왕으로 재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불신앙과 우상숭배로인해 신하들에게 살해당하는 종말을 맞았다.

# 묵상
요아스의 통치가 주는 교훈 ( 12:1-3 )
그는 제사장이 살아있을때에는 정직히 행했지만 제사장이 죽은후에는 이방신을 섬기고 악을 행했습니다. 그것은 요아스의 신앙이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여호야다에게 의존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살아계실때는 무지한 면을 드러내다가 그분의 승천후에는 큰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처음에는 미약해도 끝은 창대해야합니다(욥8:7). 그반대가 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여호와전에 바치는 은의 종류 ( 12:4 )
사람의 통용하는 은은 20세가 넘는 장정이 드리는 주민세이고, 몸값으로 드리는 은은 하나님께 바치기로 한 장자나 서원한 이의 몸값이고(민18:15, 16), 자원하여 드리는 은은 자발적인 헌금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자 ( 12:6 )
요아스의 명을 받은 제사장들은 전의 퇴락한 곳을 수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불충성은 왕의 책망을 받게 했습니다. 일을 맡은자는 오직 충성해야 합니다(고전4:2). 헌신적인 충성이 있기위해서는 맡은일에 대한 깊은 사명의식이 갖춰져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일을 맡겨주셨고, 또 그일을 통해 영광받으시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인생은 결코 맡겨진 일에 게으르거나 소홀할수가 없습니다.
성전수리의 재원 ( 12:9-16 )
성전수리는 백성들의 자발적인 헌금으로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드려서는 안됩니다(고후9:7). 헌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일이 고마워서 드리는 감사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위기상황의 요아스 ( 12:17, 18 )
요아스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않고 여호와께 드려진 성물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우리의 도움은 여호와께만 있습니다(시121:1, 2). 위기가 올때 그분을 찾으면 모든환난에서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요아스의 죽음 ( 12:19-21 )
요아스는 신하들의 모반으로 살해당했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떠난 사람곁에는 악인이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 해설
요아스의 유다통치 ( 12 )
요아스는 태어나자마자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아달랴의 손에서 극적으로 구출되었고, 또한 감격스런 즉위식을 치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아달랴로부터 왕권을 빼앗아 즉위한 요아스는 흐트러져 있는 유다를 다스려 재정비하는데 온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리하여 요아스이후 근 100년 기간동안 유다는 평온을 유지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1. 요아스의 통치
1) 요아스의 40년 통치
요아스는 역대 유다의 왕들중 가장 어린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7세에 즉위하여 40년간 유다를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모부이자 은인이요, 스승이라 할수 있는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생존한 기간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올바로 행동하였습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가르침에 힘입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는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점차적으로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경우에도, 이들은 바알의 제단을 훼파했으나 여호와가 금지한 산당에서 제사하는 행위는 계속 행하였습니다. 아마도 다른 왕들처럼 요아스도 이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율법에서 금한 죄악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a.계속되는 백성들의 죄악(왕하14:4)
b.여호와께 대한 일시적인 순종(수24:31)
2) 요아스의 성전수리 명령
요아스는 성전을 수리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바알을 숭배하는 아달랴가 통치하던 6년동안 성전이 많이 파손되고 손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아스는 자신의 계획을 이루기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이 성전에 헌금으로 바치는 각종 은을 모아 수리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계획을 제사장들에게 알리고, 헌금된 은으로 성전수리를 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a.여호와의 전에 드린 헌금(왕하22:4)
b.자원함으로 드리는 헌물(출35:5)
3) 요아스와 제사장들의 합의
성전수리에 대한 왕의 명령은 그가 통치한지 23년이 되기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요아스왕은 제사장들을 불러모아 성전수리 작업에 진전이 없음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그 새로운 계획을 제사장들에게 제안하였습니다. 즉 백성들이 직접 성전수리 헌금을 내되 이를 제사장들이 관여하지 못하고, 또한 성전수리 책임도 제사장에게 부과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다만 모든것을 성전수리 실무자들이 담당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요아스의 제의에 제사장들은 흔쾌히 수락하였습니다.
a.성전수리에 게으른 백성들(학1:2)
b.전을 건축하라(학1:8)
2. 요아스의 성전수리
1) 성전수리를 위한 헌금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의 명령대로 구멍뚫린 큰나무 궤짝을 성전문옆에 두었습니다. 백성들이 성전수리를 위한 헌금으로 은을 가지고 와서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들은 이은을 궤짝구멍에 넣었습니다. 그궤짝이 다채워지면 왕의 비서와 대제사장이 이은을 계수한후 성전수리의 감독자에게 그은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면 감독자는 성전수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목수와 건축하는자, 미장이, 그리고 석수들에게 정직하게 인건비를 지불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은돈으로는 성전수리를 위해 필요한 각종재료들을 샀던 것입니다.
a.연보궤(막12:41)
b.성전의 수리(왕하22:5-6)
2) 정직하게 쓰여진 헌금들
백성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성전수리를 위해 헌금을 바쳤습니다. 이러한 헌금이야말로 거룩한 재물이었습니다. 따라서 거룩한 헌금이 거룩하고 정당하게 쓰여져야함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성전수리 감독자들은 모든일들을 신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어떠한 부정축재도 하지않고 정당하게 노력한만큼의 대가를 일꾼들에게 지불하였던 것입니다. 자연히 일꾼들도 열과 성을 다하여 성전수리에 힘을 썼고 성전은 하루가 다르게 복원되어져 갔습니다. 그렇지만 백성들이 부지중에 범한 죄와 이웃에 대한 과실을 사함받기위해서 드린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성전수리하는 것에 드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예물들은 제사장들의 생활보장을 위해 제사장들에게 돌리도록 조치하였습니다.
a.헌금으로 만든 성전의 그릇(대하24:14)
b.여호와의 성물(레15:15-16)
3. 요아스의 죽음
1) 하사엘에게 조공을 바친 요아스
아람의 하사엘왕은 자신의 세력을 극대화하여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여세로 유다의 해안을 따라 침공해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블레셋의 도시중에 하나인 가드도 공략하여 점령하였습니다. 이같은 하사엘의 침략은 이제 유다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사엘은 유다를 공략하기위한 전위대를 예루살렘에 파견하였습니다. 이에 다급해진 요아스는 하사엘의 환심을 사서 위험을 모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보물들을 하사엘에게 조공으로 바치게 되었습니다. 요아스는 왕실내의 보물들과 성전안에 있는 모든 금들, 그리고 선조들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바쳤던 모든 신성한 성물들을 하사엘에게 다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사엘은 자신의 군대를 철수하였습니다. 결국 요아스왕은 왕궁내의 모든보물들과 자신의 생명을 맞바꾼 꼴이 되었습니다. 이는 요아스가 점차적으로 여호와를 떠난 결과로 나라가 약해졌으며, 이같은 고초를 당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a.아람왕 하사엘(왕하8:12)
b.앗수르에 바친 조공(왕하17:3)
2) 요아스의 죽음
하사엘에게 조공을 바친 요아스의 행적은 백성들에게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또한 요아스가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성전뜰안에서 쳐죽인 행위는 백성들에게 큰충격을 주었습니다. 따라서 요아스에 대한 적대감이 날이 갈수록 팽배해져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요아스는 실라라는 지역으로 가던중 밀로궁에서 자신의 신복들에 의해 암살을 당하였습니다. 요아스를 암살한 장본인은 바로 요사갈과 여호사바드이었습니다. 이들이 왜 요아스를 암살했는지 분명히는 모르지만 스가랴를 죽인것에 대한 보복내지는 왕의 잘못된 통치에 반감을 가졌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요아스는 다윗성에 장사되었고 유다의 왕위는 요아스의 아들인 아마샤가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a.암살되는 요아스(대하24:25)
b.밀로궁(삼하5:9)
결론
요아스왕의 통치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죽음을 기점으로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그는 여호야다의 가르침에 힘입어 성전을 수리하는 등 의욕적인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야다의 죽음과 함께 요아스의 신앙도 곤두박질하였습니다. 그또한 하나님을 멀리하며 선지자 스가랴를 살해하는 등의 악행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결과 요아스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하사엘에게 조공도 바치고 끝내는 신복들에게 죽음을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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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요아스의 피신 11:1-3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의 가문이 계속되리라고 확신시켜 주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름부음 받은자를 위하여 등을 예비시켜 주신 것으로 일컬어진다. 우리는 여기서 약속된 다윗의 등이 거의 꺼질 뻔하다가 기적적으로 보존되는 것을 보게된다.
(1) 그등은 황태후 아달랴의 잔인한 악행에 의해서 거의 꺼질뻔하였다. 그녀는 자기의 아들 아하시야가 예후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일어나 왕의 씨, 곧 왕의 혈족으로 여겨지는 모든자를 진멸하였던 것이다(1절). 그렇게 행한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 그녀의 야심때문이었다. 그녀는 정권잡기를 갈망했으며 다른방법으로는 그렇게 될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2) 하나님께 대한 분노와 보복심 때문이었다. 아합의 집이 철저히 파멸되자 그녀는 왕위를 찬탈함으로써 다윗의 집을 파멸시키고자 하였다. 그녀의 이름을 '악한 여인'이란 의미인 '아달랴'라고 한것은 잘어울리는 것이다(대하 24:7). 그녀는 이세벨의 친딸이 아닌가!
(2) 그등은 요람왕의 딸이자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인 여호세바의 경건한 보살핌에 의해 기적적으로 보존되었다. 그녀는 왕의 아들들가운데서 요아스라고 하는 한왕자를 빼내어 숨겼던 것이다(2,3절). 요아스는 여호와의 전의 침실에 안전하게 숨어 있을수가 있었다. 그곳은 아달랴가 거의 관심을 두지않는 장소였다. 요아스를 그곳에 데려온 그의 고모는 그아이를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아래 맡겼다. 즉 모세를 숨겼을때처럼 믿음으로 그를 숨겼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시 27:5)라는 다윗의 말은 그의 자손중 하나에게 선하게 이루어졌다. 이런 선한이유가 있기에 요아스는 나중에 성장해서 여호와의 전을 수리했던 것이다. 즉 그에게 있어서 그곳은 피난처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섭리의 지혜로움과 돌보심, 그리고 뜻하신 일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시는가를 보라. 또한 자기자녀를 지혜롭고 선한사람과 결혼시킨 한가문이 어떤축복을 누리게 되는가를 보라.

Ⅱ. 요아스가 왕위에 오름 11:4-12
아달랴는 6년동안 폭정을 하였다. 예후가 이스라엘에서 바알숭배를 근절하는동안 그녀는 유다에서 그것을 일으켰다(대하 24:7). 그사이 요아스는 숨어 지내면서 왕이될 준비를 갖춰가고 있었다. 그는 인생의 첫교육 연한을 마치고 처음맞는 액년인 7세가 되었을때 세상에 나타날 준비를 하였다. 그당시 백성들은 아달랴의 폭정에 지쳐있었으며 따라서 혁명의 시기는 무르익어 갔다. 그러면 혁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1. 혁명의 지도자 여호야다(4)
이 거사의 지도자는 제사장 여호야다였다. 그는 아마 대제사장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의 출신과 지위로보아 권세있는 자였다. 그는 혼인으로 왕족과 인척관계가 되었다. 만일 모든왕족이 멸절된다면 요람의 딸인 자기아내가 아달랴보다도 더나은 지위를 차지하였을 것이었다. 그는 탁월한 재능과 자질을 갖춘 사람으로서, 나라를 위해 봉사하기에 적합한 자였다. 그리고 그가 할수 있는 최상의 봉사는 나라를 아달랴의 압정에서 구하는 것이었다.
2. 혁명의 진행(4-12)
여호야다는 지혜로운 사람답게 매우 신중하게 혁명을 지도하여 갔다.
(1) 그는 백부장들과 장관들, 즉 공직자, 성직자, 군인들과 함께 이문제를 협의하였다. 그는 그들을 자신이 있는곳, 즉 여호와의 전으로 오게하여 의논하고, 비밀을 지킬것을 맹세케 한후에 왕자를 보여주었다(4절). 이일은 그들에게 얼마나 큰기쁨의 충격이었겠는가. 그들은 다윗의 집과 계보가 완전히 끊어진줄 알고 근심하던중 타고 남은 재속에서 불씨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2) 그는 왕자를 본후 더욱 용기를 얻은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에게 위치를 지정해 주었고 그들은 즉시 그의 지시대로 성전으로 통하는 여러길을 지켰다. 다윗은 제사장들을 여러반열로 나누었었다. 매안식일 아치마다 새반열이 성전에 와서 대기하고 지난주간에 봉사한 반역은 안식일 저녁이 되기까지는 성전에서 나오지 못하게 되어있었다. 따라서 안식일이면 두번의 희생이 드려지고 그것을 집례하기위해 사람들도 두배가 되었다. 여호야다는 이번 거사에 이점을 이용하였다. 그는 성전의 창고에서 꺼낸 다윗왕의 창과 방패로 그들을 무장시키고 두가지 지시를 하였다.
첫째, 어린왕을 보호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둘째, 이일로인해서 몰려드는 군중이 성전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하였다(6절).
(3) 호위병들이 배치된후 왕자는 앞으로 인도되었다(12절). 여호야다는 지체하지 않고 이 어린왕자를 즉위시켰다(12절). 이일은 매우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1) 여호야다는 왕의 권세를 부여하는 표시로 그에게 면류관을 씌웠다.
2) 율법에 따라 다스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통치해야 한다는 표시로 그는 왕에게 율법책을 주었다(신17:18,19).
3) 하나님의 신이 임하셨다는 표시로 그는 왕에게 기름을 부었다. 이는 그가 부름받은 이 큰일에 요아스가 왕될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4) 왕을 인정하며 그의 통치에 복종하겠다는 표시로 무리들은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불렀다. 이와같이 그들은 요아스를 왕으로 삼았으며 하나님의 결정하심에 동의하였다. 무리들이 그를 왕으로 환영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는 원래 그가 앉아야할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왕에 대해 '만세'라고 기원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는 죽었다가 살아난 자와도 같았기때문이며 다윗의 집이 그로인해서 다시 일어나게 될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마음속에서 그리스도의 보좌가 들리워지고 침입자 사단이 쫓겨나게 될때 우리는 그와같은 기쁨과 환호로 그리스도의 왕국을 맞아야할 것이다.

Ⅲ. 아달랴의 죽음 11:13-16
위엄이 넘치는 대관식이 끝난후 무리들은 아달랴를 찾아 그녀가 행한 살인과 왕위찬탈, 그리고 폭정에 대해 해명을 요구코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 이세벨처럼 그녀도 스스로 그들을 보러 나왔으며 결국 그것이 자신의 파멸을 재촉한 것이 되고말았다.
(1) 그녀는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섬뜩하여 무슨일이 일어났나 보기위해 나왔다(13절). 여호야다와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이 하고있는 일을 널리 공표하였다.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을때 그녀가 직접 와봐야 할정도로 제대로 통보받지 못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분명치는 않으나 혼자서 왔다는 것은 더욱 이상한 일이다.
(2) 일어난 일을 보고서 그녀는 도움을 청하려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기둥옆의 왕의 보좌에 한사람이 섰고 주위의 장관들과 백성들이 그에게 신하의 예를 표하고 있는것을 보았다(14절). 그래서 그녀는 자기의 옷을 찢으며 이렇게 외쳤다. "반역이다! 반역이다! 이리와서 나를 도와 저반역자들을 쳐라."
(3) 여호야다는 그녀를 우상숭배자, 왕위찬탈자, 그리고 나라의 평화를 해친 죄목으로 사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사항을 염두에 두었다.
첫째, 그녀를 성전에서는 죽이지 않았다.

둘째, 누구든지 그녀를 위해 나서는 자는 그녀와 함께 죽을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말다니는 길을 통해서 왕궁으로 되돌아가려고 노력했으나 그녀를 추격해온 병사들에 의해서 거기서 죽었다(16절).

Ⅳ. 정치와 종교의 평온을 되찾음 11:17-21
여호야다는 이제 그의 일중 가장 어려운부분을 끝마쳤다. 즉 아달랴를 죽임으로, 어린왕이 아무런 반대도 없는 가운데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1) 그는 근본적인 약조를 맺게함으로 선한기초를 놓았다(17절). 그때 왕과 백성 모두가 여호와의 전에 있었기에 여호야다는 그들이 공동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도록 하였으며 또 왕과 백성이 서로 언약을 맺도록 하였다. 이는 하나님과 상대방에 대한 각자의 의무를 정확히 인식시키기 위함이었다.
1) 그는 하나님과 인간들사이에 언약을 맺게함으로 그들가운데 신앙심을 심어주고 또 확고하게 해주려고 노력하였다. 이언약에서는 왕도 신하들과 똑같이 서서 여호와를 섬기는 의무를 져야한다. 이언약에 따라 그들은 상당수가 섬기던 바알을 떠나 하나님의 통치아래 자신들을 내어맡겼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립되면 다른 모든관계에서도 힘을 얻어 더욱 강한 결속을 할수 있게된다. 그러므로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우리에게 주었다'고 하였다. (고후 8:5).
2) 그리고나서 그는 왕과 백성들에게 대관식의 선서와 충성의 선서를 하게 하였다. 즉 왕과 백성사이에 '언약'을 맺게했는데 그언약에 의해서 왕은 율법에 따라 통치를 할뿐만 아니라 백성을 보호할 의무를 지게되었고 또 백성들은 왕에게 복종하여 왕을 신뢰하며 충성을 다해야할 의무를 지게되었다.
(2) 그는 그 기초위에서 순조로운 출발을 하였다.
1)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따라 즉시 우상숭배를 폐해버렸다. 사람들은 앞장서서 바알의 전, 바알의 단, 그리고 모든 상들을 부수는데 힘을 합했다. 바알을 숭배하던 모든자들이 바알을 떠났던것 같이 보인다. 단지 바알의 제사장 맛단만이 바알의 단을 떠나지않았다. 모든사람들이 바알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버리지 않았으므로 그자리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바알의 전을 부순후에 여호와의 전을 수직하는 관리들을 임명하였다. 이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제시간에 합당한 사람들에 의해 규례대로 행해지는지 살피는 임무를 띄고있었다.
2) 그들은 서로간에 맺은 언약에 따라 다음과같이 행하였다.
첫째, 왕은 당당하게 왕궁으로 인도되었으며 왕의 보좌인 심판의 자리에 앉았다(19절). 그자리에서 기꺼이 탄원과 호소를 듣고 답변과 판결을 함에 있어 아마 여호야다와 상의하였을 것이다.
둘째, 백성들은 즐거워하였으며 예루살렘 성중이 평온하였다(20절).

# 핵심
11:1-3
예후에 의해 유다의 아하시야왕까지 죽음으로써 남유다에 정치적인 공백이 생겼다. 아하시야의 모친이자 아합의 딸로 유다에 바알숭배를 전파했던 아달랴가 손자들을 제거하고 짧은기간동안 정권을 장악했다. 이 살육의 과정에서 요아스만이 살아남았다.

# 묵상
요아스를 남기심 ( 11:2 )
아하시야가 예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자 아달랴는 이세벨의 딸답게 왕의 자손들을 진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자손의 대가 끊기지 않게하기 위하여 요아스를 남기셨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로 다윗자손의 혈통을 잇게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이며, 다윗에게 한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다’(민22:19)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 불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히11:6).
여호야다의 즉위식준비 ( 11:4-9 )
그는 비밀스럽게 그러면서 철저하고 완벽하게 왕의 즉위식을 준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시기는 도적이 오는것과 같이 누구도 알수 없습니다(살전5:2). 그러나 그의 오심을 대비하여 철저히 준비하는 자들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맞이할수 있는 복을 주십니다.
여호야다와 율법책 ( 11:12 )
여호야다는 왕에게 율법책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책에는 왕들이 지켜야할 특별한 규례(신17:14-20)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왕이 마음대로 다스리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 다스릴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자기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준을 삼고사는 생활을 해야하는데 이는 그말씀이 성도를 바른길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딤후3:16, 17).
여호야다의 행동 ( 11:17-20 )
여호야다는 왕을 세우고서 먼저 바알의 당을 훼파하고 원래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전을 지키게 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에는 언약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기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호6:1).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요8:29).

# 해설
여호야다의 의로운 반란 ( 11 )
본장에서부터 이야기의 중심이 남유다로 전환되었습니다. 유다는 이스라엘과는 달리 다윗의 후손들이 그왕위를 계승하는 정통성 있는 왕조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파괴하고자 하는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유다왕 아하시야가 예후에 의해 죽음을 당하자, 아달랴는 여러왕족들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아스를 살려주셨고, 여호야다라는 종을 세워 다윗의 왕통을 바로잡도록 하였습니다.
1. 아달랴의 왕위찬탈
1)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요아스
아달랴는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과 이세벨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유다의 여호람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남편을 꾀어 아들인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으나 아들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지금이 왕위를 차지할 절호의 기회임을 알고 아하시야의 아들들인 왕자들을 전부 죽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손자들마저도 희생시키는 잔인한 여자였습니다. 또한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유다의 왕위를 계승코자 약속하셨던 하나님을 거역한 철저한 바알숭배자였습니다. 그런데 아달랴에게는 자신이 낳지않은 여호세바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여호세바는 아하시야의 누이였습니다. 여호세바는 아달랴의 살인이 시작되었을때 아하시야의 아들중에 한명인 요아스를 유모와 함께 침실에 숨겼습니다. 그리하여 목숨을 건진 요아스는 6년동안 숨어서 지냈습니다.
a.목숨을 건진 요아스(대하22:11)
2) 아달랴에 대항하는 여호야다
요아스를 살리기에 힘쓴 여호세바에게는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인 여호야다라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여호야다는 6년동안 요아스를 보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요아스가 7살이 되자, 여호야다는 아달랴를 축출하고자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아달랴를 지지하지 않는 군인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요아스왕자를 보여주면서 요아스가 합법적인 왕위계승자임을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 모두는 여호야다의 계획대로 왕궁의 주요거점을 3개의 집단으로 나누어 지키게 되었습니다. 여호야다는 그리고 또 다른군인들에게 요아스를 호위하도록 하였습니다.
a.여호야다의 반란계획(대하23:3)
2. 여호야다의 반란
1) 요아스의 즉위
여호야다의 계획대로 모든것이 진행되었고 예정일인 안식일이 되자 그계획이 시행되었습니다. 백부장들은 다윗왕의 창과 방패로 무장한후 곳곳을 지켰습니다. 호위병들도 왕의 대관식이 거행될 성전을 중심으로 방어지역을 형성하였습니다. 이때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성전안뜰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에게 왕관을 씌우고, 율법책을 주면서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제 요아스는 왕으로서의 자격과 절차를 모두 갖추었기에 명실상부한 유다의 왕으로 즉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대관식을 숨을 죽이며 지켜보던 백성들은 일제히 왕의 만세를 외치며 환호하였습니다.
a.왕으로 즉위하는 요아스(대하23:11)
2) 당황하는 아달랴
아달랴는 갑작스런 백성들의 고함소리에 놀라 소리가 들리는 성전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놀랍게도 요아스왕자가 왕관을 쓰고 서있는 모습을 보게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제서야 심각한 일이 벌어졌음을 감지하고 당황과 슬픔속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어찌할바를 알지못한 아달랴는 자신의 옷을 찢으며 반역이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어느누구도 그녀의 외침에 귀기울이지는 않았습니다.
a.왕의 즉위를 알리는 나팔소리(왕상1:34)
3) 아달랴의 죽음
여호야다는 아달랴를 사로잡아 성전밖으로 끌고가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동시에 아달랴를 따르는자도 죽이도록 하였습니다. 여호야다는 거룩한 성전에서 더러운 살인행위가 일어나지않도록 그녀를 성전밖으로 끌고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아달랴는 말들이 궁귈을 드나들던 곳에서 칼에 맞아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성경속에 나타난 가장 사악한 두모녀인 이세벨과 아달랴는 이렇게 비참한 최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a.아달랴의 당연한 죽음(레24:17)
3. 여호야다의 개혁정책
1) 새롭게 갱신하는 언약관계
여호야다는 이제 개혁을 시도해 나갔습니다. 먼저 여호사밧이래로 하나님과 멀어졌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따라 왕은 백성들을 말씀으로 다스리고 백성들은 왕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새로운 계약을 세웠습니다. 결국 유다는 하나님과 백성, 왕과 백성사이에 언약관계가 갱신되는 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때 백성들은 아달랴에 의해 숭배되었던 바알신전을 허물었습니다. 또한 제단과 우상도 부수고 바알의 제사장인 맛단도 죽였습니다. 여호야다는 성전에 근위대를 배치하여 이를 보호하도록 하였으며 온백성들과 함께 요아스왕을 모시고 왕좌가 있는 궁전으로 갔습니다. 요아스왕은 호위병들의 보호속에서 왕좌로 인도되어 왕의 보좌에 앉게 되었습니다. 다시금 다윗의 왕조가 계승되는 감격스런 장면이 연출된 것입니다.
a.여호와와 맺은 언약(수24:25)
b.새언약(렘31:31)
2) 평온을 되찾은 유다
요아스왕이 보좌에 앉을때 백성들의 기쁨은 하늘을 찌를듯 하였습니다. 잔인한 아달랴의 학정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정통성있는 다윗의 후손을 왕으로 모시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백성들에게 큰감격을 주었던 것입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새로운관계를 정립했다는 사실이 크나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아달랴의 악정과 바알숭배로 혼란스러웠던 예루살렘이 이제 평온을 되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쁨으로 들떠있던 백성들도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것을 굳게 다짐하였습니다.
a.요아스의 즉위(대하24:1)
결론
다윗왕조를 통한 메시야 도래라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에 아달랴는 정면으로 도전하였습니다. 이는 말세지말에 하나님의 나라에 도전하는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사건이라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야다의 의로운 반란은 아달랴의 악한궤계를 무너뜨렸습니다. 이또한 마지막날에 종국적으로 거두게될 하나님의 승리를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본장에는 요아스라는 남은자를 남겨주시듯 남은자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은연중에 드러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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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아합의 집을 진멸함 10:1-14
예후는 아합의 집이 반드시 멸절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1) 아합의 아들들은 사마리아에서 자신들의 후견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아합의 아들들은 사마리아에 있었다. 그곳은 견고한 도성으로서 아마도 그들은 아람과 전쟁할당시 안전을 위해서 그곳에 있었던것 같으며 지금 예후의 반란이 있자 마찬가지로 그곳으로 피했던것 같다. 그들과 더불어서 이스르엘 방백들, 즉 왕궁의 높은 장관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안전을 위해서 혹은 앞으로 할일을 의논하기 위해서 사마리아로 갔던 것이다. 예후는 아합의 아들들을 죽이기위해서 직접 자기의 군대를 이끌고 사마리아로 가는것이 적절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후견인들로하여금 죽이게하려고 하였다. 그렇게 하는것이 하나님의 손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할것이다.
1) 그는 아합의 아들들과 함께있는 그들의 후견인들에게 도전장을 보냈다(2,3절). 이는 예후가 그들이 자기를 대적하기를 정말로 원했거나 그들이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렇게함으로써 그들의 비겁함과 하나님의 계획을 대적하기에는 그들이 완전히 무능력하다는 것을 드러내어 그들을 꾸짖기 위함이었다.
2) 예후는 그들의 항복을 얻어냈다. 그들은 신중하게 생각을 해보았다. 두왕이 저를 당치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4절). 그의 진노앞에서 희생제물로 쓰러진 두왕을 본 그들은 예후에게 항복할 것을 알려왔다.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무릇 명하는 것을 우리가 행하고(5절).
3) 예후는 더나아가서 그아들들을 교육하는 자들로하여금 그들을 죽이도록 하였다(6절). 이 이스르엘의 장로들은 사악하게도 전에 나봇을 죽이라는 이세벨의 지시를 따랐었다(왕상 21:11). 이세벨은 아마도 그들을 지배하는 자신의 권세를 과시했던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똑같이 예후에게 고분고분하게 행하고 있으며 아합의 아들들을 죽이라는 그의 명령을 기꺼이 따르고 있다. 그들이 아합의 아들들의 머리를 가져왔을때 예후는 죽인 자들을 책망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그렇게하였음을 인정하였다.
① 그는 이러한 보복을 행한 자들을 책망하는 듯하다. "나는 단지 한사람을 죽였으나 그들은 이모든 자들을 죽였다.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아합의 집의 친분이 있는 어느누구도 이일에 대해서 나를 비난할수는 없다. 이는 그들의 장로들과 후견인들이 이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② 그러나 그는 모든것을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으로 결론짓는다(10절). 여호와께서 그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2) 예후는 계속 아합의 집의 남은 모든자들, 즉 그의 자손들뿐 아니라 그와 인척관계에 있는 모든자들을 죽여나갔다. 이스르엘에서 이일을 행한후에 그는 사마리아에서도 같은일을 행하였다.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 남아있는바 아합에게 속한자를 죽여 진멸하였으니(17절). 이것은 피비린내나는 학살이었다. 따라서 지금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와같은 일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된다. 죄인은 고통을 당해야하나 죄인으로인해 죄없는 자까지 고통을 당해서는 안된다.
(3) 예후가 이일을 계속 행하고 있을때, 하나님의 섭리로 길에서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났고 마찬가지로 그들을 죽였다(12-14절).
1) 그들은 아달랴로부터 난 아합의 집의 자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역시 진멸의 대상에 포함되었다.
2) 그들은 아합의 집의 악에 물든 자들이었다.
3) 그들은 그때 아합의 집의 왕자들을 알현하러 가는중이었다.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13절).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은 요람과 이세벨의 후손들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혈연으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서로 좋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Ⅱ. 바알숭배자들을 진멸함 10:15-28
1. 여호나답과의 관계(15-17)
선한사람인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예후가 서로 교분을 맺게된다(15,16절). 이 여호나답의 가문은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고 성읍중에 거하지도 않는 가문으로 삼백년동안을 그와같이 지내왔다(렘35:6이하). 여호나답도 이와같이 세상과 세상의 일에 대해 거의 무관심했으나 일부러 예후를 만나기위해서 찾아갔다. 이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수행하고 있는 예후를 북돋워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여호나답은 비록 선지자도, 제사장도, 그리고 레위지파 사람도 아니었으나 자기부인과 헌신의 삶으로인해 널리 존경받던 사람이었다. 예후는 군인이었지만 그를 알고있었으며 존경하였다. 여호나답을 만났을때 예후는 전과 마찬가지로 거칠게 말을 몰고가는 중이었을텐데도 멈추어 서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1) 예후는 그에게 인사를 하였다. 안부를 묻고(15절). 즉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는 말이다.
(2) 예후는 자기마음이 그에 대해 진실하다고 고백하였다. 즉 그의 인격과 그가 나실인의 영예로움을 가진것에 대해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였다. 아울러서 예후는 그도 자기에 대해 마찬가지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고자 하였다. 네마음도 진실하냐. 여호나답은 그에게 그러하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마음의 표시로 예후에게 자기손을 내밀었다.
(3) 예후는 그를 자기병거에 올라오게 했으며 함께 사마리아로 갔다. 사람들은 여호나답이 예후와 함께 병거에 타고있는 것을 보고는 예후를 더좋게 생각했을 것이다. 경건한 사람들이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무슨일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선한사람들을 자신들의 정책에 끌어들임으로 자신들을 더욱 강하게 해왔다. 여호나답은 세속적인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예후가 하나님의 종이요 바알의 적이라면 여호나답의 신실한 벗이 될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로되 나와 함께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16절). 이말은 종종 그가 여호와를 위하는체 가장하였고 그열심은 실상은 자신과 정권쟁취를 위한 것이었다는 의심을 자아내게 하는 근거로 취해진다.
1) 그는 그일을 자랑하며 마치 하나님과 사람이 자기에게 큰빚을 지고있기라도 한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2) 그는 마치 사람들에게 보이기위해서 행동하던 바리새인들처럼 자기 하는일이 보여지고 드러나기를 바랬다. 여호나답은 그와 함께 사마리아에 가서 아합과 관계된 모든사람들을 진멸하는데 있어서 그를 격려하고 도와주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잔인함은 미워하되 공의는 사랑할수 있어야 한다.
2. 바알숭배자들을 진멸함(18-28)
예후는 모든 바알의 숭배자들을 진멸할 계획을 세웠다. 그의 계획은 그들을 한꺼번에 처단하는 것이었다.
(1) 그는 교묘한 계책으로 그들을 바알의 전에 모았다. 그는 아합보다 더 바알을 섬기려 하는체 하였다(18절). 그는 모든 바알의 숭배자들에게, 자기와 함께 바알에게 제사를 드릴수 있도록 다나아오라는 포고령을 내었다(19,20절).
(2) 그는 여호와의 종은 아무도 그들과 함께 있지않도록 주의하였다(23절).
(3) 그는 모두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그자리에는 여호나답도 함께있었다(23절). 그러자 호위병들이 그들을 진멸하기 위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4) 이렇게해서 우상숭배자들이 진멸되고 난뒤 우상자체도 철저히 파괴되었다. 바알의 당 주변의 건물들도 파괴되었다. 즉 바알의 전을 아름답게 꾸며주었던 작은 조각, 그림, 성체용기, 목상, 그리고 바알자신의 큰상 등은 모두 내어 불살라졌으며(26,27절) 바알의 전은 훼파되었다. 이로써 바알숭배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언젠가는 이방의 모든신들을 부수고 승리를 거두실 것이다.

Ⅲ. 예후의 범죄 10:29-36
여기에 예후의 통치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 나타난다.
(1) 예후가 행한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다.
1) 하나님께서는 그가 잘 행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우상숭배자들과 우상숭배를 근절시킨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잘한 일이었다.
2) 하나님께서는 그보상으로 그의 자손 사대를 '이스라엘 왕위'에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다.
(2) 예후는 더이상 개혁하지 못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대해 온전하지 못하였고 개혁이 부분적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1) 그는 모든악을 제거하지는 않았다. 그는 아합의 죄로부터는 떠나지 아니하였다. 즉 바알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쫓았던 것이다. 금송아지숭배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열지파가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위해 행해진 것이었다. 지역적인 사정으로 시작되었던 그 금송아지숭배는 계속 이어져 내려왔으며 결국 예후도 그것에 집착하게 되었다. 진정한 회심은 세속적인 이익에 해가 되는 죄뿐아니라 세속적인 이익에 도움이 되는 죄도 내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의뢰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것은 그죄를 내어버리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2) 그는 악을 제거했으나 선한것을 마음에 두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31절). 그는 거짓종교를 근절하는데 매우 큰관심과 열심을 보였었다. 그러나 참종교에 대해서 첫째,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일에 전혀 힘쓰지 않았다. 둘째, 그는 전혀 열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신앙심이라고 거의없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이스라엘을 개혁시키는 도구로 쓰신 것으로 보인다.
(3) 그에 대해 이스라엘에 심판이 내렸다. 일반적으로 경건함은 시들해지고 불경함이 점점더 심해질때 다음내용을 듣게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비로소 이스라엘을 찢으시매(32절). 이웃나라들이 사방에서 침입해 왔다. 모든나라 중에서 아람의 하사엘왕은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히고 해를 입혔다. 하사엘이 그사방을 치되, 마지막으로 우리는 34-36절의 내용에서 예후의 통치의 종말을 보게된다. 그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했기에 그의 뛰어난 업적과 용기는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 핵심
10:1-36
예후의 계속되는 정치적 숙청작업과 아합왕가에 의해 장려된 바알숭배를 척결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철저하지 못했고, 여로보암의 금송아지숭배를 답습했다.
예후왕조(10:30)
“사대를 지나리라”는 말씀대로 여호아하스(13:1), 요아스(13:9), 여로보암 2세(14:23), 스가랴(15:8)가 북이스라엘을 통치했다. 예후왕가는 북왕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했고, 여로보암 2세때는 41년동안 장기집권을 하며 북이스라엘을 근동지역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로 세웠다. 하지만 북이스라엘은 예후왕가가 몰락한이후에 정치적인 혼란기를 겪다가 B.C.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다.

# 묵상
부모의 죄 유전 ( 10:1-11 )
구약시대에는 부모의 죄가 그자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출34:7). 그러나 신약시대의 새율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자기죄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습니다(요9장). 인간은 누구나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원죄 즉,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는 그리스도안에서 해결되었습니다.
아하시야의 형제들의 죽음 ( 10:12-14 )
그들은 악인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가는 몽매한 사람들이었음을 배우게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그러한 죽음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이 돌이켜 영생의 복을 누리게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1:16).
레갑족속 ( 10:15 )
그들은 하나님신앙에 철저한 집단이었습니다(렘35:6). 그들은 농사를 안짓고 포도주도 마시지않고 유목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신앙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칭송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후는 하나님께서 자기편에 서서 행하셨음을 보여주기위해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데리고 간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동행자 ( 10:16 )
절대로 필요합니다. 신앙의 동지들이 힘을 합하여 어두움의 권세인 사탄에게 대항하여 연합전선을 펼칠때 정녕 승리를 장담할수 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시대에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심장을 지니고 이방세계로 나아갔던 선교사들처럼 함께 복음을 위해 사역하는 자가 많을때,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며 각개인의 신앙은 더욱 성장해 갈수 있습니다(행15:36-40).
예후의 종교개혁 ( 10:18-29 )
예후에게는 이스라엘땅에서 바알에 대한 우상숭배를 없애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게됩니다. 그런데 우상숭배로부터의 종교개혁은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앞에서 개혁되지 않는 인격, 개혁을 거부하는 교회는 항상 부패하고 맙니다.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성도의 태도 ( 10:24, 25 )
이단에 속한자들도 구원받아야하므로, 먼저 그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죄악에서 돌이키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죄를 고집하면 단호히 관계를 끊고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에 맡겨야 합니다. 요한은 이단에 속한자들과는 인사도 하지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라고 말합니다(요이1:10).
예후의 통치 ( 10:34, 35 )
예후의 통치 장점을 보면 이세벨을 죽임으로써 우상숭배자를 처형했습니다. 그리고 바알의 제사장들을 죽임으로써 종교개혁을 단행했으며, 바알의 목상과 당을 훼파했습니다. 단점을 보면 벧엘과 단에서 금송아지 섬기는 것을 계속했고,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예후의 하나님에 대한 헌신은 그의 왕가가 4대나 계속되는 복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긴것은 아니었기때문에 그의 왕가도 다른사람에 의해 멸망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따르는데에는 전적인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막8:3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도록 충성하기를 원하십니다(계2:10).

# 해설
예후의 대숙청 ( 10 )
예후는 여호와의 뜻에 따라 아합의 아내 이세벨과 그의 아들 요람왕을 살해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스라엘의 죄악을 씻기에는 불충분하였습니다. 따라서 예후는 좀더 신중을 기하면서 아직도 남아있는 아합의 친척들과 아들들, 그리고 바알선지자 등의 바알숭배의 잔재들을 깨끗이 청산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예후도 행악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여호와의 진노를 면치 못했습니다.
1. 아합의 친족들의 죽음
1) 편지를 보낸 예후
비록 아합과 요람은 죽었어도 아합의 직계자손 70명은 사마리아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여러관리들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습니다. 예후는 아합왕가를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훗날 아합왕가의 후환을 막기위해서라도 그들을 진멸해야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예후는 아합의 자손들을 보호하고 있는 관리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편지의 내용은 아합의 자손들을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a.사마리아 성읍(왕상16:24)
b.산헤립의 편지(왕하19:14)
2) 아합의 친족들을 죽이는 관리들
예후의 편지를 받아본 관리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들은 예후가 요람과 아하시야라는 현직의 두왕을 죽인 용맹한 사람임을 일찍이 알고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후에게 충성하기로 결심하고 통보하였습니다. 그러자 예후는 관리들에게 아합의 70명의 자손들을 처형하여 다음날까지 이스라엘에 있는 자기에게 그들의 목을 가져오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관리들은 즉시 명령대로 수행하여 70명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예후에게로 보냈습니다.
a.당신의 종(수9:8)
b.몰수히 살상함(왕상21:21)
3) 아합의 친족들의 죽음을 알리는 예후
예후는 70명의 잘린 머리들을 이스라엘의 성문입구에 두무더기로 쌓아두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아합왕조를 완전히 정복했다는 표현이며 동시에 아합왕가를 신봉하는 적대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기위한 것이었습니다. 예후는 다음날 백성들을 모이도록 하였습니다. 예후는 자신이 요람왕을 죽인행위나 70명의 자손을 죽인행위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한 신적사명이기에 이는 무죄하며 정당한 것이었음을 공포하였습니다.
a.죄악을 벌하는 심판(출20:5)
b.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출9:14)
2. 예후의 계속되는 숙청작업
1) 아하시야 친족들의 죽음
예후와 그의 부하들은 이스르엘에서 사마리아로 가던길에 어떤무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바로 유다왕 아하시야의 친족들로서 이스라엘에서 지금 무슨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채 이스라엘왕을 방문하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예후는 이들의 신분을 알게되자 즉시로 그들을 우물근처에서 모두 처형하였습니다. 이때에 아합왕가와 결혼으로 혈통을 맺은 42명의 아하시야 친족들이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a.친족의 죽음(대하21:17)
b.죽음을 당한 아하시야의 형제들(대하22:8)
2) 남은 아합의 친족들의 죽음
예후는 아하시야 친족들을 살해하고 사마리아로 가던도중에 레갑족속의 후손인 여호나답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서로가 아합왕조가 실시하였던 바알숭배를 배격하고,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공감대가 일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후는 기쁜마음으로 여호나답을 자기마차에 태우고 함께 사마리아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예후는 아직도 생존하고 있는 아합의 친척들을 남김없이 살해하였습니다.
a.레갑의 집(대상2:55)
b.아합 온집의 멸망(왕하9:8)
3) 바알선지자들의 죽음
지금까지 아합왕가의 숙청을 감행한 예후는 이제 바알숭배자들에 대한 종교적 숙청을 감행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위해 예후는 바알을 위한 특별한 집회를 소집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예후의 심중을 모르는 바알선지자들이 모두 참석하였습니다. 이들은 바알의 당에 들어가 열심히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때 예후는 80명의 호위병과 장교들에게 신전으로 들어가 모든 바알숭배자들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바알숭배자들은 죽음을 당하였고, 바알의 당은 무참히 훼파되었으나, 그곳에 변소를 만들었습니다. 이같은 예후의 대학살은 엘리야이후에 가장 큰 바알숭배자들에 대한 학살로서 하나님의 심판이 준엄하게 실시된 것입니다.
a.바알주상의 훼파(왕하3:2)
b.바알선지자들의 죽음(왕상18:40)
3. 예후의 죄와 죽음
1) 예후에 대한 평가
예후는 여호와의 뜻에 따라 아합왕가를 심판하고, 바알숭배자들을 진멸하는 등의 순종은 했으나 여호와께 완전히 복종하지는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예후는 벧엘과 단에 세워진 금송아지를 숭배하면서 여로보암이 저지른 죄악된 종교정책을 답습하는 죄악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는 이같은 예후에게 그의 후손 사대가 이스라엘왕으로 통치하게 될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후손은 곧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그리고 스가랴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a.여로보암의 죄(왕상12:28)
b.예후의 후손(왕하15:12)
2) 예후의 죄의 결과
예후가 금송아지 등의 우상을 숭배한 죄의 결과는 이스라엘땅의 손실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순종치않은 예후를 징계하사 아람의 하사엘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아람의 하사엘은 갓, 르우벤 그리고 므낫세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요단동편의 길르앗 온땅을 점령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누어지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렇게해서 하나님은 예후가 지배한 이스라엘의 영토를 축소시킨 것입니다.
a.하사엘의 잔인한 공격(왕하8:12)
b.길르앗땅(신2:36)
3) 예후의 죽음
예후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여 28년동안 통치하다가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는 사마리아지역을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반면 아합왕조는 이스라엘을 수도로하여 통치하였습니나. 그리고 예후가 죽자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a.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왕상16:24)
b.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왕하13:1)
결론
본장은 예후의 28년간의 통치를 총괄적으로 평가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후는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바알숭배와 싸우며 아합왕가를 심판하여 진멸하는데 최선을 다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예후의 이같은 공적에 대해 하나님은 예후의 왕가가 4대까지 지속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예후는 아합의 죄악을 멸하는 것에는 힘썼으나 자신의 행악에는 신경을 쓰지않고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죄악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그역시 아합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수는 없었습니다. 우상숭배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누구보다도 깊이 절감하며 심판의 도구로서 위용을 떨치던 예후자신도 우상숭배의 올무에 걸렸으니 그에게도 나라의 영토가 빼앗기는 등의 처절한 보응이 뒤따랐던 것입니다. 결국 허상에 불과한 우상은 한인간을 미련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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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예후가 기름부음을 받음 9:1-10
우리는 여기서 예후가 왕으로 기름부음 받는것을 보게된다. 예후가 정권을 잡으려고 노린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어떤이들은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 오래전에 사무엘이 이미 그에게 기름을 부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그에게 기름을 붓도록 명하셨을때 또다른 지시가 있기까지 결코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통고와 함께 은밀하게 이미 기름부음을 받았었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가능성이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엘리사가 하사엘에게도 역시 기름부었을 것으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1. 사명이 주어짐(1-3)
(1) 엘리사는 자신이 직접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러 가지않았다. 이는 그가 나이많아서 그러한 여행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며 또한 너무 잘알려져 있어서 비밀히 그일을 행할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그일을 위하여 '선지자의 생도중 하나'를 보내었던 것이다(1절).
(2) 엘리사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것을 주어서 보냈다.
1) 예후에게 부울 기름을 건네주었다. 이기름병을 손에 가지고(1절). 솔로몬은 '성막가운데서 기름뿔을 가져다가' 기름부음을 받았다(왕상1:39). 이제 그러한 기름을 가질수는 없었으나 선지자의 손에서 받은 기름은 하나님의 집에서 취한 기름과 동등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2) 할말을 일러주었다(3절). 즉 그것은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는다'는 것이었다(7-10절).
3) 또한 다음과 같은 지시를 하였다.
첫째, 그일을 은밀하게 행하여야 한다. 즉 여러장관들 가운데서 오직 예후만 불러내어 '골방으로 들어가서' 기름을 부어야 한다(2절).
둘째, 그일을 신속히 행하여야 한다. 즉 그일을 행한뒤 '지체하지 말고 도망해야' 한다.
2. 임무가 수행됨(4-10)
소년선지자는 신속하게 일을 행했다. 즉 즉시 길르앗라못으로 갔다(4절). 거기서 그는 장관들이 군사회의를 하는것을 보았다(5절). 그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권세있는 자처럼 여러장관들 가운데서 예후를 불러내었다.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말씀이 있나이다. 아마도 예후는 자기의 일에 대해 어떤예감을 가졌던것 같다. 그랬기에 그는 영달을 잡으려고 지나치게 나서지 않는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 모든사람중에 뉘게 하려느냐. 이에 소년선지자는 그를 지명하고 드디어 그와 단둘이만 있게되자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6절).
(1) 그는 예후에게 왕의 지위를 부여한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니(6절). 그는 예후에게 다음사항을 일깨워주었다.
1)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의해서 왕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옴을 알아야했다. 따라서 그는 그권세를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해야하며 반드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한다.
2)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모든 영예로운 관계를 다 박탈당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들은 '여호와의 백성'으로 불려지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예후는 자신이 왕이되어 다스릴 백성들이 '여호와의 백성'임을, 즉 학대하거나 압제해서는 안되는 하나님의 자유민임을 알아야만 했으며 따라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율법대로 다스려야만 했다.
(2) 그는 예후가 당장 해야할 일에 대해서 지시한다. 그것은 아합의 온집을 멸절시키라는 것이었다(7절). 이는 그의 즉위를 분명히 하고자함이 아니고 죄많고 사악한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시행토록 하기 위해서였다. 소년선지자는 아합을 그의 '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너는 네주 아합에게보다 하늘에 계신 네주께 더욱 순종해야 한다. 그는 아합의 온집을 네손을 통해서 멸절하시기로 정하셨다. 위험할까 두려워하지 말라. 그의 명령이 너를 지키시며 번성케하실 것이다." 그 소년선지자는 그로하여금 지혜롭게 아합의 집에 대해 이일을 시행토록 하기위해서 다음과 같은것을 말하였다.
1) 그들의 죄가 무엇인가를 알려주었다. 그들이 우상숭배자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징계받을만하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고자 하는것은 그들이 박해자들이라는 점에 대해서였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단을 훼파했다는 사실보다 선지자들을 칼로 살해했다는 것이 더크게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을 처음 멸망케한 죄가 바로 이것이었으며(대하 36:16) 마지막의 멸망도 이 죄때문에 있게된 것이다(마 23:37,38). 이세벨은 음행과 술수보다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일부를 죽였으며 나머지를 동굴로 쫓아낸 것으로 인하여 더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다(왕상 18:4).
2) 그들의 운명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들은 철저한 파멸을 선고받았다. 특별히 이세벨은 개들에게 던지도록 지시되었다(10절).

Ⅱ. 그사실을 장관들에게 알림 9:11-15
잠시후 예후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회의석상에 돌아왔다. 그는 당분간 혼자만 알고있으려 했던것 같다.
(1) 장관들은 그 소년선지자를 멸시하면서 말했다(11절). 그 미친자가 무슨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뇨. 즉 "그가 그대에게 무슨용무로 왔더뇨?" 그들은 선지자들을 어리석은자로 그리고 신에 감동된 자들을 미친자로(호 9:7) 생각하였다. 일반적으로 비종교인들은 종교인에게 대해 경멸적으로 말하며 미친자들로 본다. 그들은 우리 주님에 대해서 '미쳤다'고 말했으며, 세례요한에 대해서는 '귀신들린 자'로, 바울사도에 대해서는 '네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이와같이 그들은 가장 지혜로운 자들을 어리석은 자로 여겼으며 스스로를 가장 잘아는 사람들을 미친사람으로 간주했다. 아마도 예후는 자기의 동료들에게 "너희는 그사람이 선지자인줄 알면서 왜 그를 미친자라고 부르는가?"라고 말함으로 책망을 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대들이 그사람과 그말한 것을 알리라'고 말하였다. 이와같이 예후는 피하려 하였으나 그들은 말할것을 강청하였다. "그것은 옳지않은 말이다. 우리는 그의 용무가 무엇인지 알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말하라." 이와같이 재촉을 받자 예후는 그들에게 선지자가 자기를 왕으로 기름부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나서 아마 그들에게 자기머리에 기름이 묻은것을 보여주었을 것이다(12절).
(2) 장관들은 그가 왕으로 세움받았다는 것을 처음 알게되자 새왕에 대해서 경의를 표했다(13절). 그들은 충성과 복종의 표시로 자기들의 옷을 예후밑에 깔았다. 이는 그로하여금 옷들이 깔린 '섬돌 위'에 서게함으로 그소식을 듣고 모여든 군사들앞에서 위엄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였다.
(3) 예후는 조심해서 나아갔다. 그는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반면 요람은 심한 부상으로인해 군대를 떠나서 궁으로 돌아가 있었다. 예후는 다음 두가지면에서 훌륭하게 처신하였다.
1) 그는 장관들은 존중하여 그들의 조언이나 승낙이 없이는 아무일도 하려하지 않았다.
2) 그는 요람을 급습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신속히 공격할 채비를 갖추었다. 때때로 신속한 공격이 막강한 공격만큼이나 효과적이기도 하다.

Ⅲ. 예후가 요람을 죽임 9:16-29
길르앗라못에서 이스르엘까지는 하루이상을 행군해야 하는 거리이다. 그리고 중도에 요단강을 건너야 했다.
1. 예후에게 전령을 보냄(17-20)
요람의 파숫군이 먼저 예후와 그의 수행원들을 발견하고 왕에게 한무리가 가까이 오고있음을 알렸다. 그러나 그들이 아군인지 적군인지에 대해서는 말할수가 없었다. 왕은 정보를 얻기위해서 계속해서 두명의 전령을 보냈다(17-19절). 두사람의 전령은 각각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평안이냐 하시더이다(18,19절). 파숫군은 전령들이 포로가 되었다는 보고를 해왔으며, 드디어는 이무리의 지휘관이 아마 예후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는 평소에 말을 거칠게 모는 사람으로 알려졌던것 같다. 예후에게 맡겨진 그런종류의 일을 수행하기에는 그런 거친기질의 사람이 가장 적합했을 것이다.
2. 요람의 죽음(21-29)
요람은 아무런 싸울채비도 갖추지 않고 유다와 아하시야와 함께 직접 예후를 만나러 나갔다. 그가 싸울채비를 하지않은 이유는 적이라 생각지 않았기때문이며 또 자신들의 궁금증을 빨리 풀고자했기 때문이었다.
(1) 요람이 예후를 만난곳은 불길한 곳이었다. 이스르엘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21절). 그땅을 보는 것만으로도 요람은 두려움을 예후는 승리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요람에게는 나봇의 피가 자신을 대적하여 싸우고 예후에게는 엘리야의 저주의 능력이 자신을 위해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2) 요람의 물음역시 자신이 보낸 전령들과 같은 것이었다. 예후야 평안이냐(22절). "모든것이 잘되었는가? 즉 너는 아람사람들에게 도망해오는 것이냐? 아니면 그들을 정복하고 오는 것이냐?"
(3) 예후의 대답은 놀랄만한 것이었다. 그는 하나의 물음으로 답변을 대신하였다. 네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22절). 다음내용을 살펴보자.
1) 예후는 요람에게 그의 어미 이세벨의 악에 대해서 비난을 하고있다. 즉 그녀의 영육간의 음행과 우상숭배에 사용된 마법과 주술 등의 술수에 대해서 비난을 하고있다. 이러한 일들은 수없이 많았다. 이는 악한길 가운데 빠진자들은 어디서 멈춰야할지를 알지못하기 때문이다.
2) 이와 함께 예후는 이제까지 가장했던 평안을 벗어버렸다. 즉 "회개하지 않은 악이 그렇게 많은 네집에 어떻게 평안이 있을수 있겠느냐"고 말했던 것이다. 죄의 길엔 결코 평안이 있을수 없다. 죄가 주장하는 곳에는 결코 어떤평강도 있을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고 버리는 즉시 평안이 있게된다.
(4) 즉시 심판이 행해졌다. 요람은 그의 어머니의 죄를 들었을때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는 오랫동안 두려워하던날이 이제 왔다고 즉시 결론짓고는 이렇게 소리쳤다.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23절). 즉 "예후는 우리의 적이다. 그러니 안전을 위하여 도망하자." 두사람은 모두 도망하였다. 결국 그들은 살해되었다.
1) 이스라엘의 요람왕은 그자리에서 살해되었다(24절). 예후는 그를 직접 처치하였다. 그는 율법이 선고한대로 죄인으로서 죽었다. 그를 죽인 예후는 이제 그시체를 처분하고 있다. 나봇의 포도원이 바로 가까이에 있었으므로 그는 엘리야가 아합에게 내린 멸망의 예언을 기억하게 되었다(25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젯날에 나봇의 피와 그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26절). 아합이 무죄한 피를 흘린후에 매우 득의양양하고 기뻐하면서 차지했던 그땅이 이제는 아들의 시체를 온세상에 구경거리로 만드는 무대가 되고만 것이다.
2) 유다왕 아하시야는 도망가다가 멀리가지 못하고 살해되었다(27,28절). 그가 비록 요람과 한편이라 하더라도 만일 아합의 집과 더불어 범죄하지도 않고 인척관계를 맺지도 않았다면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Ⅳ. 이세벨의 죽음 9:30-37
아합의 집에서 가장큰 행악자는 이세벨이었다. 바알을 끌어들이고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살해했으며 나봇의 살해를 계획했던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먼저는 자기남편을 충동질했고, 다음에는 자기아들들을 충동질하여 악을 행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그녀는 '저주받은 계집'으로 불리우고 있다(34절). 그녀의 통치는 3대에 이르도록 계속 되었으나 마침내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세벨의 파멸은 우상숭배자와 박해자들의 전형적인 말로로 간주된다.
(1) 이세벨의 대담함 : 그녀는 예후가 자신의 음행과 술수로인해 자기의 아들을 죽였으며, 그시체를 나봇의 토지에 던졌고, 지금 이스르엘로 오고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문입구에 있는 창에서 예후와 과감하게 맞부딪혔다.
1) 그녀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여 숨는대신에 자신을 그앞에 드러냈으며 오히려 달아나는 것을 우습게 여겼다.
2) 그녀는 스스로 겸비하게 하고서 자기아들을 위해 애통하는 대신에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몄다'(30절). 이는 자신을 크고 위엄있게 꾸며서 예후의 기를 꺾기 위해서였다. 교만한 마음을 꺾기위한 섭리앞에서 교만한 마음을 갖는것보다 더 분명한 파멸의 전조는 없다.
3) 그녀는 하나님의 복수의 도구인 예후앞에서 두려워 떨기는커녕 도리어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고 위협적인 질문을 던짐으로 그를 떨게하려고 했다.
① 그녀는 자기가문을 진멸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무시했으며 그손의 칼로 들리운 예후를 정면으로 대항하였다.
② 그녀는 예후가 지금 하고있는 일은 틀림없이 멸망으로 끝을 맺을 것이며 평안을 누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만족해 하였다.
③ 그녀는 예후로하여금 하려는 일을 단념케하려고 선례하나를 인용하였다. 시므리여 평안하냐(31절). "시므리가 평안했었는가? 아니다. 그는 결코 평안치 않았다. 그는 피흘림과 반역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결국 7일만에 궁전을 불사를수밖에 없게끔 되었으며 그안에서 자신도 죽고 말았다. 따라서 너는 그보다 더 나을줄 아느냐?" 그러나 시므리는 아무런 사명도 받지않은채 단지 자신의 야심과 잔인함에 의지하여 그와같이 행했었다. 반면에 예후는 선지자의 생도중 한사람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하늘의 지시에 따라 행한 것이다. 즉 그는 하늘로부터 지지를 받고있었다.
(2) 그녀를 치기위해 도움을 청함 : 예후는 그녀의 오만하지만 무기력한 분노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외쳤다. 내편이 될자가 누구냐 누구냐(32절). 개혁이 시작될때 "이일에 함께할 자가 누구냐?"하고 물어야한다.
(3) 자신의 수종자들에 의해 예후의 정의로운 복수에 넘겨진 이세벨 : '두어 내시'가 자기들이 예후의 편이라는 것을 믿게 하려는듯이 내다보았다. 그래서 예후는 그들에게 이세벨을 즉시 내려던지도록 명하였다. 행악자를 절벽같은 곳에서 거꾸로 내려던지는 것은 그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들은 이세벨을 내려던졌다(33절). 이렇게해서 나봇에서 돌을 던지게 한 그녀의 죄악은 복수되어졌다. 그녀는 아주 치욕스럽게 죽었다. 즉 담과 길에 곤두박질쳐졌던 것이다.
(4) 예언의 완전한 성취 : 그녀에 대한 예언대로 개들이 그녀를 뜯어먹음으로 그녀의 치욕과 파멸은 완전히 이루어졌다. 예후는 이세벨이 여자라는 점과 옛날지위를 고려해서 그녀를 매장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비록 매우 악하긴 했으나 그녀는 왕의 딸이요, 왕의 부인이요, 또 왕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래서 예후는 '가서 장사하라'고 말했다(34절). 예후가 먹고 마시는동안 개들이 그녀의 시체를 뜯어먹었다. 굶주린 개들은 그녀의 고귀한 혈통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개들에게는 왕의 딸과 평범한 인간이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예후는 이일에 대한 전갈을 받고 경고의 말씀을 기억하였다(왕상21:23).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을지라(36절). 이세벨의 이름은 아무속에도 남아있지 않고 오직 성경에만 치욕스럽게 나타나있다. 사람들이 "이것이 이세벨의 시체다. 이것이 이세벨의 무덤이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할수 없게되었다.

# 핵심
9:1-37
타락한 아합왕가에 대한 심판이 마침내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예후라는 인물을 왕으로 지명하고 그로하여금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도록 하셨다.
예후(9:6)
아합왕가를 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요람왕과 아합의 처 이세벨을 비롯하여 아합의 70아들과 바알선지자들을 숙청했다. 이에 더하여 아합과 동맹을 맺었던 유다왕 아하시야와 그의 조카들 42명도 처단했다. 그의 혁명은 철저했지만, 나중에 호세아선지자를 통해 동일한 심판을 경고받았다(호 1:4). 혁명당시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잘복종했지만, 권력을 잡은뒤에는 우상숭배를 답습했기 때문이다(10:31).
므깃도(9:27)
갈멜산 남쪽, 이스르엘 평원을 내려보는 위치에 있던 구약시대의 중요한 성읍.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되어 므낫세지파에게 할당되었던 곳이다(수 12:21). 전략적인 요충지로서 솔로몬이 요새화했다. 요시야왕이 애굽군대와 싸우다가 죽은 곳이기도 하다(23:29).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최후의 접전지 “아마겟돈”(계 16:16)은 ‘므깃도의 산’이란 뜻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므깃도를 역사적인 배경으로 삼은 표현이다.

# 묵상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 ( 9:1-10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자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권력, 학벌을 고려하지 않으시고, 오직 당신의 뜻에 합당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행13:22). 하나님께서는 순교자들의 피에 관해 무관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영광을 위해 온생애를 불태우고, 당신의 뜻을 따르기위해 자신의 생명을 순교의 형장에 내어바친 의로운 피에 대해 결코 무심치 않으십니다(히10:30).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희생에 대해 반드시 보수하십니다(신32:35). 이같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를 신뢰한다면 순교와 희생을 더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임의로 취하지 못하는 권력 ( 9:11-13 )
하나님은 예후를 요람을 대신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역사를 보면 반란을 통해서 왕이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곧 무너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비록 잠시 잠깐은 권력을 임의로 탈취할수 있을지 모르나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세상의 모든권세와 권력을 주장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롬13:1). 따라서 인간이 자기힘과 꾀를 믿고 자행자지(自行自止)하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요람왕가의 몰락 ( 9:14-20 )
요람왕가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의 죄악에 심취했기때문에 무너졌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가증히 여기시는 죄로서 멸망의 첩경입니다(출14:26-28). 예후의 행위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일을 행했기에 정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성도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에서는 악인도 하나님의 선하신 도구로 사용합니다.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 ( 9:22 )
음행은 바알과 아세라신을 여호와대신 섬기게 한것이고, 술수는 나봇의 포도원을 권력을 이용하여 강제로 빼앗게 한것입니다(왕상21장).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죄를 보응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은 분명 최후의 심판때 하나님앞에 백일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범죄한 인생들의 심판 ( 9:22-26 )
하나님께서는 친히 거룩한 손을 들어 심판하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심판의 도구로 다른인간을 세워 심판을 집행하기도 하십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는 혹 고통에 처할때에 남을 원망치말고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성도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고 기다려야 합니다.
요람을 죽인 예후 ( 9:25, 26 )
하나님의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요람의 시체가 나봇의 밭에 던져졌습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성을 근거로 꼭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아하시야의 죽음 ( 9:27, 28 )
악한자와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성화의 삶입니다. 이미 의를 얻은 성도도 악을 도모하는 자와 동행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채찍을 드셔서 그를 징계하십니다.
이세벨의 우상숭배 ( 9:30-37 )
그녀의 시체를 개가 먹고 그시체가 거름같이 될정도로 처참한 종말을 맞이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와 악의 세력에 대해서는 남김없이 심판하시며, 그행위대로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계20:12, 13).

# 해설
아합왕조를 몰락시키는 예후 ( 9 )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는 자신들의 사역기간내내 패역한 아합왕가에 대해 그들에게 임할 심판을 경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회개하기는커녕 남유다마저도 바알숭배와 죄악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등의 극에 달한 범죄만 저질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예후를 아합왕가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이로써 아합왕가는 완전히 진멸되고 말았습니다.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극명하게 나타나면서 하나님의 공의가 다시한번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1. 기름부음받은 예후
1) 기름부음을 명령하는 엘리사
일전에 엘리야는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명령이 그의 제자인 엘리사에게 주어졌습니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젊은선지자 생도중 한사람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인 예후에게 가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예후의 머리위에 기름을 붓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후를 왕으로 세우셨음을 나타내는 증표인 것입니다.
a.왕을 위한 기름병(삼상10:1)
b.예후에 대한 예언(왕상19:16)
2) 기름부음받은 예후
엘리사가 보낸 젊은선지자 생도는 요단강동편 길르앗라못에 있는 예후앞에 당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예후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선지자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예후의 머리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서 예후를 이스라엘왕으로 선택하여 세우셨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왜 예후를 선택하셨는지 하나님의 뜻하신 목적도 알렸습니다. 그목적은 바로 아합의 왕가를 진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합과 이세벨의 죄의 심판으로, 주의 선지자들과 종들을 죽인 피의 복수를 행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a.바아사의 집(왕상16:3)
b.예후에게 내린 사명(왕하10:17)
c.기름부음받은 예후(왕하9:6)
3) 예후의 즉위를 선포하는 신하들
선지자는 예후에게 기름을 부은후 엘리사의 말대로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러자 이모습을 지켜본 예후의 신복들이 예후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았습니다. 예후는 선지자와 있었던 모든일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으로 세우셨음을 알렸습니다. 이때 그의 신복들은 즉시로 간단한 의식절차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은 예후의 발밑에 외투를 펴고 나팔을 불며 '예후는 왕이시다'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예후의 즉위를 선포하였습니다.
a.옷을 깔음(마21:8)
b.왕의 즉위식(왕상1:34)
2. 요람에게 반역하는 예후
1) 요람을 배반한 예후
예후가 그의 신복들에 의해 왕으로 세움받은 그시기에 이스라엘왕인 요람은 길르앗라못에서 아람왕 하사엘과 전쟁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만 요람왕이 부상을 당하여 이를 치료하고자 이스라엘로 오게되었습니다. 반면 예후는 마음속에 이미 요람왕에 대해 배반을 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요람왕을 비롯한 아합왕가를 전멸시켜야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예후는 자신이 왕으로 세움받았음을 요람왕이 알기이전에 그를 처형해야 한다는 계획하에 급하게 이스르엘에 도착코자 하였습니다. 이때 요람왕은 병상에 누워있었고, 유다왕 아하시야는 병문안차 요람곁에 있었습니다.

a.하사엘과 싸우던 요람(왕하8:28)
b.아하시야의 병문안(왕하8:29)
2) 이스르엘로 진격하는 예후군대
예후의 군대가 요람왕이 있는 이스르엘을 향해 진격하였습니다. 이모습을 발견한 이스라엘의 파수꾼은 요람왕에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요람왕은 이무리들이 진실로 예후의 군대인지 아닌지 알아보도록 기병을 보냈습니다. 이 기병은 즉시 예후에게 가서 왕의 명령을 수행코자 했으나 예후를 만난후 예후의 뒤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요람왕은 기다리던 기병이 오지않자 두번째 기병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기병도 예후의 뒤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예후는 이전보다 더 빠른속도로 이스르엘을 향해 진격하였습니다.
a.망대를 지키는 파수꾼(삼하18:27)
b.예후의 칼(왕상19:17)
3. 아합왕가를 진멸하는 예후
1) 요람왕을 살해하는 예후
예후가 이스르엘에 도착하자 요람왕은 예후의 반역은 생각지도 못하고 길르앗라못에서의 전쟁소식을 듣고자 말을 타고 아하시야와 함께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공교롭게도 전에 나봇의 포도원이 있던 자리에서 요람왕과 예후가 만났습니다. '평안하냐'라는 요람왕의 질문에 예후는 노골적으로 자신이 요람왕을 배반했음을 답변속에서 드러냈습니다. 이때 분위기를 감지한 요람왕은 급히 도망하며 아하시야에 도망갈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예후는 즉시 화살을 취하여 갑옷도 입지않고 도망치는 요람왕을 향하여 쏘았습니다. 요람왕은 즉시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이에 예후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시체를 나봇의 밭에 던졌습니다. 이는 아합왕가를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예언이 엄중하고도 분명하게 성취되는 전주곡에 불과하였습니다.
a.나봇의 밭(왕상21:1)
b.아합왕가의 심판(왕상21:19)
2) 아하시야를 살해하는 예후
유다왕 아하시야는 예후의 반란을 보고서 정신없이 도망하였습니다. 이에 예후는 그를 추적하여 이블르암 근처에서 아하시야에게 큰부상을 입혔습니다. 아하시야는 큰부상에도 불구하고 므깃도까지 도망하였으나, 결국 그곳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예후의 신복들은 아하시야의 시체를 유다왕가의 묘지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지고가서 그조상의 묘실에 장사하였습니다. 아하시야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아합가와 동맹한 죄의 결과로 죽음이라는 심판을 당하게 된것입니다.
a.아하시야의 죽음(대하22:9)
b.예루살렘에 장사되는 왕(왕하23:30)
3) 이세벨을 살해하는 예후
예후가 이스라엘로 돌아올때 이세벨은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후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몸단장을 하였습니다. 예후를 본 이세벨은 경멸에 찬 조소를 보내었습니다. 이때 이세벨을 따르던 내시들이 예후의 뜻을 받들어 이세벨을 창밖으로 던졌습니다. 그녀는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예후는 그시체를 자신의 말과 전차로 짓밟은후에 엘리야의 예언을 망각하고 그시체를 장사하도록 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시체는 엘리야의 예언대로 들개가 갈기갈기 찢어서 먹었기에 해골과 발, 그리고 손바닥외에는 사라져버렸습니다. 이때야 비로소 예후는 엘리야의 예언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a.엣바알의 딸 이세벨(왕상16:31)
b.이세벨의 죽음에 대한 예언(왕상21:23)
결론
우상을 숭배하며 사악한 범죄를 저질렀던 아합왕가에 대한 심판은 예후를 통해 확실하게 진행되면서 이세벨의 처참한 죽음에서 그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이는 죄악에 대해 필연적이고도 엄중하게 심판이 임하리라는 여호와의 예언성취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아합왕가에 대한 예후의 숙청은 여기에서 끝나지않고 더욱 철저하고도 엄하게 계속되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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