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I. 비스가 산상의 모세 34:1-4
1. 산을 오르는 모세(1)
모세는 하늘을 향해 위로 올라가서 비스가 산정상에까지 이르렀다. 그곳은 그가 죽을장소로 정해진 곳이었다(32:49,50). 당시 이스라엘은 모압평원의 평지에 진을 치고 있었으므로 명령에 따라 모세는 그평지에서 느보산의 정상인 비스가에 이르렀을 것이다(1절). 비스가란 그렇게 우뚝솟음, 또는 탁월함을 일컫는 보통명사이다. 비스가 정상까지 모세는 "아무 도움없이 홀로" 등정해야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추측컨대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을 마치고 여호수아, 엘르아살을 비롯한 몇몇 동지들과 숙연한 작별을 고했던것 같다. 어쩌면 이들이 산발치에까지 배웅하러 나왔었겠지만 모세는 아브라함이 다른산에서 자기종복에게 말했듯이 올라오지 말라는 권고를 그들에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라. 나는 저곳으로 가서 죽으리라." 비스가 산정에 홀로 올라가는 그의 행동은 다음 두가지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1) 자기가 죽음도 기꺼워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는 자기가 죽을자리를 알고 결코 그것을 피하지않고 그자리에 이르기위하여 기꺼이 가파른 산을 올라갔다.
(2) 자기가 자신의 죽음을 승천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사람의 영혼, 착한사람의 영혼은 육체를 남기고 위로 올라간다(전 3:21). 하나님께서 그종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실때는 이와같이 "올라와서 죽으라"는 소환장이 내려오는 것이다.
2. 땅을 굽어봄(2-4)
자신이 결코 그땅을 밟아보지 못하게된 지상의 가나안을 살펴보기 위하여 모세는 다시 이땅을 내려다 본다. 그렇지만 이제 즉시 그는 믿음으로 대망하고 있는 하늘의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것이다.
(1) 비록 그가 비스가 꼭대기까지 홀로 올라갔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성부께서 그와 함께계셨기 때문이다(요 16:32).
(2) 보다나은 나라에 대하여 현재 우리가 품고있는 모든 즐거운 기대는 하나님의 은혜덕택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계시의 영'과 더불어 '지혜의 영'도 주시며, 사물과 더불어 그것을 볼수 있는 눈도 주신다.
(3) 그는 멀리서 가나안을 바라보았다. 신자들은 자신들의 장래의 상태의 지복과 영광에 대하여 은혜를 통해서 멀리서 바라보듯 한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말씀과 규례는 비스가 산정이 모세에게 주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4) 그는 그것을 보기만했지 결코 누릴수는 없었다. 장차있을 그리스도 왕국의 영광스런 것들, 그왕국의 발전과 확장 그리고 융성한 상태에 대해서 우리는 듣고 그사실을 내다볼수는 있으나 그러한 사실들을 목격하기까지 살것 같지는 않다. 단지 우리는 우리의 후세대들이 그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을 바랄뿐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5) 가나안은 임마누엘의 땅이었다(사 8:8). 그래서 그는 그땅을 보면서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는 축복을 보았던 것이다.

Ⅱ. 모세의 죽음 34:5-8
1. 모세의 죽음(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죽어. 광야의 그수많은 역경을 뚫고 나왔음에도 목적지인 가나안이 주는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는 것은 모세자신에게 있어서 큰괴로움이었다. 그러나 "그사람 모세는 매우 온유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일을 그렇게 원하신다면 그는 기꺼이 순종하는 것이다.
(1) 여기에서 그는 '여호와의 종'이라 불리우고 있다. 이는 그가 선한 사람으로서만이 아니라(모든성도들은 하나님의 종이다) 대단히 쓸모있고 유용한 인물로서 여호와의 종이라 칭함을 받고있는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고 광야를 통과하도록 이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2) 그런데도 그는 죽는다. 그의 경건도 그의 유용함도 죽음의 손길을 면케할수 없었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의 수고에서 쉬고 그보상을 받으며 다른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하여 죽어야 한다. 하나님의 종들이 이세상에서 더이상 그를 섬기지 않고 떠날때 그들은 더훌륭하게 그분을 섬기기위하여 그리고 '주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섬기기위하여 가는 것이다.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었다. 글자 그대로는 '여호와의 입에서'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입술의 입맞춤으로"라고 말한다. 여호와의 종들은 할일을 모두 마쳤을때 그주인에게 순복하여 마침내 죽어야하는 법이며 그주인이 그들을 부르러 사람을 보낼때면 기꺼이 본향으로 돌아와야 한다.
2. 그의 장례(6)
하나님께서는 자기종들의 시신을 돌아보신다. 그들의 죽음이 가치있듯이 그들의 주검도 가치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검과 함께 언약은 기억되어야 한다. 모세는 '벧브올 맞은편' 계곡에 묻히게 되었다. 영혼이 하나님곁에서 안식하고 있다면 그몸이 어디에서 쉬든지 그것은 큰문제가 못된다. 우상숭배의 성향이 깊었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민족의 위대한 기초자요 아버지인 모세의 사체를 봉안하여 절하는 일이 없도록 그 구체적인 지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3. 그의 나이(7)
(1) 그의 수명은 노령에까지 이르렀다. 그의 나이는 120세에 이르렀는데 이는 비록 그의 선조들의 나이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그당시 사람들보다는 훨씬 많은 나이였다. 모세의 생애는 사십년을 단위로 세등분할수 있다. 그 첫 사십년동안 그는 왕족의 일원으로 바로의 궁궐에서 편하게 위엄을 부리며 살았으며 두번째 사십년동안은 미디안광야에서 가난하고 소망이 없는 목자로 생활하였다. 세번째 사십년동안 그영예와 권세에 있어서 여수룬의 임금과 같이 생활하였으나 심려와 수고로 대단히 힘이 들었던 생활을 하였다.
(2) 그는 늙어서도 건강을 누렸다. 그의 눈은 침침하지도 않았으며 그의 기력도 쇠하지 않았다(이삭과 야곱의 눈은 쇠했었다. 창 27:14;48:10).
4. 모세를 위한 애곡(8)
애통하는 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었으며 그들이 곡을 한 기간은 '삼십일'이었다. 그러나 모세를 위하여 울고 애곡하는 기간이 끝났다는 사실은 비록 우리의 손실이 대단히 클지라도 무한정 슬퍼해서는 안되며 시간이 되어 치유가 될때까지 그상처를 견디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만일 우리가 기뻐하며 하늘나라로 가기를 소망한다면 왜 굳이 애곡하면서 무덤에 가려고 한단 말인가?

Ⅲ. 모세의 탁월성 34:9-12
여기에서는 모세와 여호수아에 대하여 매우 명예스런 찬사를 아끼지않고 있다. 두사람은 모두 찬사를 받고있는데 이는 받아 마땅한 것이다. 두사람 모두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기를…!
(1) 여호수아는 소명받은 사역을 감당할수 있는 자격을 매우 잘 구비하고 있는 사람으로 칭찬받고 있다(9절).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국경지역까지 이끌고와서 율법으로는 아무것도 온전케 될수 없다는 사실을(히 7:19) 나타내기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남겨놓은 채로 죽었다. 율법은 사람을 그에 대해 판결하는 광야로는 인도하지만 안식과 안정된 평안의 가나안으로는 인도하지 못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수 없는 것을'(롬 8:3) 우리를 위하여 하는것은 여호수아(즉 우리주 예수, 여호수아는 그의 예표이다)를 위해 예비된 영예인 것이다. 그를 통하여 우리는 안식 즉 양심의 신령한 안식과 천국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 이 위대한 과업에 대한 여호수아의 소명을 분명히 하기위하여 두가지 사실이 동시에 발생하였다.
1) 하나님께서 그를 그일에 적합케 만드셨다.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9절). 한사람의 장수에게 있어서 지휘능력은 용기와 함께 갖추어야할 필수적인 요소이다.
2)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모세가 그에게 그사명을 이양하였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모세는 자기의 후계자가 될 여호수아에게 안수하고 그를 불러내어 맡기시고자 하는 사명을 감당할수 있는 자격을 그에게 부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2) 모세도 칭송을 받는다(10-12절). 거기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 그는 실로 매우 위대한 인물이었다. 특히 두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① 그는 하나님과 친밀하였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신 자요. 그렇게해서 그도 하나님을 알았다(참조. 민 18:8).
② 자연세계에서 그는 영향력과 권능이 있었다. 그가 애굽에서 바로앞에서 행하였던 심판의 기적과 광야에서 이스라엘앞에서 행하였던 자비의 기적들은 그가 하늘의 친밀한 총애를 누린 자요, 이땅 위에서 나타내 보였듯이 그러한 일을 할수 있는 비상대권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임을 증명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에게는 모세보다 더 사랑해야 할만한 자가 없었으며,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보다 더 두려워해야할 자가 없었다.
2) 그는 구약의 다른 어떤선지자들보다 더 큰자였다. 물론 그들역시 하늘에 큰세력이 있고 지상에 큰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중 어느누구도 이 위대한 인물에 필적할수 없으며 모세가 했듯이 하늘로부터 받은 직권을 증명하고 행사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는 구절로 미루어보아 모세에 대한 이칭찬은 그가 죽은지 오랜뒤에 기록된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는 율법을 수여하시고 유대교회를 만들고 형성시키셨지만 선지자들로는 단지 소소한 꾸지람이나 지시, 처방, 예언 등을 주셨던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중 최후의 선지자는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는 훈계로 끝을 맺고있다(말 4:4). 그리스도께서도 종종 모세의 글에 호소하셨으며 모세가 멀리서 그리스도의 시대를 바라보았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얘기해던 증인임을 보증하셨던 것이다. 모세는 사환으로 충성하였으나 그리스도는 그의 집맡은 아들로 충성하셨다(히 3:5,6). 모세의 역사는 모세를 모압평원에 장사지낸 것으로 통치기간을 끝맺는데 비하여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는 주님을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도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편에 앉아계신 구주예수의 통치와 평강이 끊임없이 임할 것을 확신한다.

# 핵심
34:1-12
모세의 죽음과 장사를 기록하고, 생전에 행한 모세의 업적을 회상하는 부분이다.
모세의 사망기사를 쓴사람은?(34장)
모세의 사망기사를 쓴사람은 아마 눈의 아들 여호수아(9절)인 듯하다. 성령의 인도와 영감에 따라 여호수아가 존경하는 스승의 죽음과 장사에 관한 기록을 첨가하고 책의 말미에 유창한 찬사를 첨부했을 것이다. 어떤저자의 책의 말미에 그의 사망기사가 삽입되었다고해서 그의 저작사실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상당수의 보수주의 학자들도 사망기사는 모세가 쓴것으로 보지않고 있다.

# 묵상
모세가 얻은 복 ( 34:1-4 )
느보산에서 약속의 땅 전역을 바라보는 복을 받았습니다. 아론처럼 모세도 가나안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곳의 풍요함과 아름다움을 눈으로 목격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이세상에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천국의 아름다움과 풍요를 미리 맛보는 복을 얻었습니다.
모세의 장례 ( 34:5-8 )
모세는 가나안이 바라보이는 모압땅에서 죽었지만, 이는 비극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와 안식을 의미합니다. 그의 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그릇된 숭배의 여지를 없애고 올바른 신앙의 대상으로 향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리스도의 좌우편에서 엘리야와 함께 하늘나라의 비밀을 논의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마17:3).
모세의 후계자 ( 34:9 )
앞에서 이미 예정된대로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안수함으로써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했습니다. 여호수아도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의 말에 순종하였습니다.
가장 위대한 선지자인 모세 ( 34:10-12 )
모세가 이렇게 위대한 선지자라고 불리워진 것은 그가 하나님과 가까이 지냈기때문이며(10절),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이 모세를 통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11, 12절). 그렇지만 성도들은 모세보다 더위대한 우리의 사도요, 제사장이시며, 영원한 새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해설
모세의 최후 ( 34 )
신34장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임종을 기록한 장입니다. 모압평지에서 감동적인 율법설교를 마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채 최후를 마쳐야 했습니다. 한편 이러한 모세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모세가 남겼느냐 하는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두가지로 생각할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창조의 기사까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모세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자신의 죽음에 관한 기사도 썼을 가능성입니다. 둘째,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같은 사람이후에 이모세의 죽음기사를 첨부했을수도 있습니다. 이가운데서 어떤가능성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라는 대명제에는 위배되지 않습니다.
1. 모세의 죽음
1) 모세의 죽음
모세는 최후의 유언적 축복을 마친후에 모압평지에서 느보산으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갈 가나안의 온땅을 모세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땅이 바로 과거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땅임을 상기시키셨습니다(참조, 창12:1-3).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가 그곳까지 들어가지는 못할 것을 다시금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의 입구까지 인도하는 일이 그의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의 할일을 다했으므로 모압땅에서 죽었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죽음은 우리성도들에게 있어서 사명이 무엇인가를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성도들을 이땅에 보내어 생을 살게하신 것은 반드시 주어진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사명을 다할때에 죽게될 것이고 천국의 복락을 누리게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가 처한 어떤일에서든지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할 것입니다.
a.자기백성에게서 거부되어 미디안으로 도망한 모세(출2:15)
b.굶주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기와 만나를 제공하는 모세(출16:13-15)
c.제사장들에게 기록된 율법을 맡김(신31:9,26)
2) 묘지를 알지못함
모세는 모압평지에서 죽었고 벧브올 맞은편 모압땅에 있는 어느골짜기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묘지를 아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1500년쯤후에 유다서의 기자는 이일에 대해 언급합니다. 유다서 기자가 말하는 그이유는 하나님께서 장사지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장 미가엘을 보내어 모세의 시체를 인간이 알지못하는 어떤곳에 장사지낸 것입니다(참조, 유1:9). 그이유는 모세의 묘지가 사람들의 우상숭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혹은 변화산사건에서 예수님에게 나타났던 사람이 엘리야와 모세였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도 있습니다. 엘리야는 죽음없이 승천한 사람이고 예수님역시 그렇게 승천하실 분이라면 모세도 그런 특이한 몸이 아닐 것인가 말입니다. 다시말해 모세의 무덤이 밝혀지지 않고 천사장 미가엘이 그의 시신을 가지고 마귀와 시비한 것은 그가 부활체로 승천했기 때문이라고 볼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a.엘리사의 묘실에서 기적이 일어남(왕하13:21)
b.유다의 선한 왕들만이 다윗성 열왕의 묘실에 매장될수 있음(대하24:16)
3) 모세를 위하여 애곡함
모세가 죽은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압평지에서 30일간을 애곡했습니다. 광야생활 40년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 애굽을 물리치고 출애굽한 감격적인 사건때에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슬픔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죽을때 그의 나이 일백이십세였으나 그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도 않았다고 하는것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모세가 아직 죽을때가 안되었는데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해 모세는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데 대해 하나님의 징벌로 죽음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접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 광야생활동안 자기의 부모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의 반역사건으로인해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음을 당했던 사건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사명을 다시한번 기억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기시키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결심은 가나안입성과 더불어 시작되는 전투에 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용기와 믿음을 더해주었을 것입니다.
a.슬퍼하는 모든자들이 애곡에 참여함(삼상25:1)
b.애곡이 영영한 희락으로 바뀜(사35:10)
c.베옷을 입고 애곡함(창37:34)
2. 모세에 대한 회고
1) 후계자 여호수아
모세는 죽기전에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고 여호수아에게는 여호와의 지혜의 신이 충만했습니다. 과거 모세의 지도를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삼아 가나안정복에 나설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지도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광야생활을 인도하셨듯이 이제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정복의 역사를 이끌어가실 것입니다. 어느시대에나 하나님은 적절한 지도자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a.가나안을 정탐하러간 여호수아(민13:1-3)
b.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민27:18-23)
c.이스라엘 모든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한 여호수아(수19:51)
2) 위대했던 하나님의 선지자
신명기를 마감하면서 신명기의 기자는 모세에 대해 회고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역사에 있어서 참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직접 대면하여 말씀하시던 자요,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위엄을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행하던 자였습니다. 신명기 기자는 말하기를 모세후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모세보다 나은 선지자는 우리의 영원한 중보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중요한 한시대를 하나님의 뜻대로 이끄셨습니다.
a.선지자의 선포는 은혜와 구원을 내포함(벧전1:9-12)
b.이스라엘의 파수꾼(겔3:17)
결론
신34장은 모세의 최후를 기록하면서 아울러 이제 새로운 시작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를 통해 전개될 가나안 정복전쟁입니다. 이렇듯이 하나님의 역사는 한지도자의 죽음으로 중단되는 것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생활 가운데서도 한지도자의 교체와 같은 일로인해 교회전체가 갈등과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성도들에게 전하여 함께 나아가자고 권면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신명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명기 33장 - study  (0) 2022.07.13
신명기 32장 - study  (0) 2022.07.12
신명기 31장 - study  (0) 2022.07.10
신명기 30장 - study  (0) 2022.07.10
신명기 29장 - study  (0) 2022.07.10

# Study

Ⅰ. 땅의 분배 48:1-30
열두지파 간에 그땅을 나누는데에 관한 간단한 방법이 주어진다. 이와같이 땅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점을 볼수가 있다.
(1) 이것은 여호수아시대에 땅을 분배했던 것과는 전혀 틀리다. 이것은 그신비함이 많이 숨겨져 있기는 하지만 문자그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영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새로운 방법을 접하게 된것이다.
(2) 처음 가나안땅을 분배할 당시에는 마지막으로 분배받았던 단지파가(수 19:40) 여기서는 제일 처음 분배받는다(1절).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주실때, 섭리를 베푸실때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3) 앗수르왕에 의해서 포로로 잡혀간 열지파와 오랜후에 바벨론으로 잡혀간 두지파 모두가 이 환상속에서 각자의 기업을 분배받는다. 우리는 이것이, 복음교회가 세워져 확장해나가는 것에서 또한 성도들이 새로운 언약의 특권을 확실하게 즐기는데에서 성취되었다고 생각할수 있다. 이특권은 성도들 각각이 누리기에 충분할뿐 아니라 그들 모두가 누리기에도 충분하다.
(4) 환상중에 땅을 분배하는 가운데 모든지파는 하나님의 지정하심으로 각자의 몫을 받았다. 우리는 우리에게 기업을 분배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인정할뿐만 아니라 묵묵히 따라야만 한다. 그리고 그분배가 우리에게 가장 합당하다는 것을 믿고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시 47:4).
(5) 각지파들은 인접해 있다. 그러므로 지파의 경계는 곧 다른지파의 경계가 되었다. 이것은 복음의 통치아래서 교회와 성도간의 교제를 나타내주고 있다. 이와같이 그들은 여럿이지만 하나였고, 거룩한 사랑과 서로 도움으로써 하나로 뭉쳐야만 하였다.
(6) 르우벤지파의 기업은, 전에는 요단건너 멀리 있었지만 이제는 유다 다음에 놓여있어서 성소로부터 두번째에 위치한 지파가 되었다. 왜냐하면 '르우벤은 탁월치 못하리라'(창49:4)고 일컬음을 받았던 그잘못이 이제 벗겨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7) 성소는 그들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북쪽으로는 일곱지파가 있었고 그주위에 레위인과 왕과 도성의 분깃이 있었으며 그남쪽으로 다섯지파가 있었다. 성소는 왕국의 심장부에 있어야 하며 따라서 그렇게 되었다.
(8) 성소가 있는곳에 제사장들도 있었다. 이 드리는 거룩한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지니(10절).
(9) 시련기에 하나님께 신실하였던 이땅에서 제사장의 몫을 가졌다(11절). 이땅으로 사독의 자손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 사독의 자손중 거룩히 구별된 자들이라함은 어떤 결정적인 시기에 자기를 확실히 구별하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할때에도' 그릇하지 않았으며 다른 '레위사람이 그릇할'때에도 그렇게하지 않았던 자들을 의미하는 듯하다.
(10) 성소에서 수종드는 제사장들에게 할당된 땅은 결코 양도나 매각을 할수 없었다. 그땅을 팔지도 못하며 바꾸지도 못하며(14절). 일단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다른용도로 바꾸어 사용하는 일은 신성모독이다.
(11) 성읍과 그근방을 위하여 지정된 땅은 '속된 땅'이라고 불리웠다(15절). 이는 일상적인 땅이라는 의미이다. 성소와 비교해 본다면 그곳은 '속된 땅'에 불과하다.
(12) 그성읍은 정확히 정방형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그 '성의 들'도 같은 모양이었다(16,17절). 첫번째 땅의 분배시 레위인의 성읍이 이러했었다. 이것은 이세상 어느성읍에서도 문자그대로 성취된 적이 없다. 이것은 단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읍인 복음교회의 아름다움과 안정성에 관한 것이라고 영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13) 이전에 예루살렘의 거민은 주로, 그곳을 분깃으로 받았던 유다와 베냐민지파 사람들이었던 반면에 이제는 그 '성읍에서 역사하며' 직무를 갖고있는 자는 '그땅을 기경할'수 있었다(19절).
(14) 성소에서와 마찬가지로 성읍에서 공공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영예롭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게 된다. 그들을 위하여 땅이 정해졌고 '그땅의 소산은 성읍에서 역사하는 자의 양식'이 될것이다(18절).
(15) 왕은 자신의 높은지위에 맞추어 스스로의 분깃을 가졌다(21절).
(16) 성소의 한쪽편으로 붙어있는 기업은 유다지파가 가졌으며 다른쪽으로 성소에 붙은 기업은 베냐민지파가 분배받았다. 이것은 다른 열지파들이 곁길로 나갈때에도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떠나지않았던 그들에게 주어진 영광이었다.

Ⅱ. 성읍의 새이름들 48:31-35
성소에 경배드리려고 나아오는 자들을 위하여 지어진 성읍에 관하여 좀더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그성읍은 아무데서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워지지 않고 그땅도 가나안이라고 불리워지지 않는다.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성읍에 관하여 다음의 사실들을 볼수 있다.
(1) 그성읍의 출입구와 전체면적에 대한 규모가 기록되어 있다(35절). 그러나 이규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것들도 영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2) 문들의 수효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그성에는 모두 열두개의 문이 있었는데 각방향으로 세개씩 있었고 열두지파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사도요한의 계시에서도, 새예루살렘에는 열두문이 있는데 각방향으로 세개씩이고 각문들 위에는 이스라엘자손 열두지파의 이름들이 쓰여져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계 21:12,13). 어느쪽에서나, 어느지파에서부터 오더라도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그리스도의 교회에 자유로이 들어갈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자들에게 하늘왕국을 활짝 열어놓으셨던 것이다.
(3) 이성읍에 붙여진 이름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그것과 같이 평화의 터라는 의미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우지 않고 원래의 의미인 '여호와삼마' 즉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의미로 불리우고 있다(35절). 이것은 다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1) 포로들은 돌아온후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하시고 자기들중에 거하신다는 확실한 증표를 갖게된다는 것이다.
2) 복음교회도 이와같이 그안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데, 이전에 임재하시던 것처럼 쉐키나로서가 아니라 그의 성령으로 임하신다는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때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어떤영혼이라도 그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은혜의 원칙을 갖고 있기만 하면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고 진심으로 말할수 있을 것이다.
3)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말은 특히 하늘의 영광과 축복이 거기 있다는것을 암시한다.

# 묵상
48장의 중심내용 ( 48:1-29 )
본장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은 장차 회복될 팔레스틴땅의 영토분배에 관한 것입니다. 즉 회복된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왕국에 영원히 정착하도록 그들에게 땅을 분배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여호와께 바쳐진 거룩한땅과 왕의 기업을 중심으로하여 북쪽에 일곱지파가 그리고 남쪽에는 다섯지파가 각각 자리를 잡게됩니다. 이예언은 결국 포로로 끌려간 유다백성들의 본토회복에 대한 약속을 강력하게 시사해줍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잃은자를 다시 찾으시는 목자와도 같은 분이십니다.
레위인의 분깃 ( 48:13, 14 )
레위인은 제사장의 지계를 따라 분깃을 나누어 받았습니다. 그땅은 그들의 것이지만 하나님께 거룩한 땅이기에 관리를 매우 주의깊게 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읍주변 땅의 용도 ( 48:16-20 )
본문은 예루살렘 성읍주변 땅의 용도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땅은 농사를 짓기위한 경작지입니다. 여기서 자라는 식물들의 소출은 무엇보다 성전의 예물을 위해 충당되었고, 또 예루살렘 성읍 사람들의 식량이 되었습니다. 이는 결국 노동의 중요성과 땀의 가치를 일러주는 교훈적 의미를 갖습니다. 뿐만아니라 이는 땅의 식물을 먼저 하나님께 드릴줄 아는 신앙훈련적 성격이 강하다 하겠습니다. 바로 이런삶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왕의 기업의 위치 ( 48:21, 22 )
두부분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팔레스틴 왼쪽땅 왕의 기업은 지중해와 접해있고, 팔레스틴 오른쪽땅 왕의 기업은 요단강과 접해 있었습니다. 이는 곧 팔레스틴 좌우 변방지역을 말합니다. 이렇게 왕의 기업이 좌우 변방지역에 위치한 것은, 왕이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왕이란 직책은 매우 존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직책에 상응하는 의무와 사명도 무겁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땅 분할방법 ( 48:29 )
본문은 이스라엘의 땅 분할방법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스라엘의 땅 분할방법은 제비뽑기였습니다. 이는 성경이 없던 당시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잠16:33).
여호와 삼마 ( 48:35 )
이말은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곧 과거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신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돌아오시사 함께 교제하며 거룩한 친교를 나눈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이렇게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며 친교하는 자야말로 복되고도 존귀한 자라 할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이런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 해설
새땅의 분배 ( 48 )
유다의 죄악과 멸망, 그리고 이방나라의 멸망을 예언한뒤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는 내용들이 에스겔서의 흐름이었습니다. 본장은 이러한 에스겔서의 마지막장으로, 회복될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할 새땅의 분배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새땅은 모든지파에게 균등하게 분할되며 그가운데에는 거룩한땅이 있고 왕을 위한 분깃과 성읍이 있습니다.
1. 각지파의 분배
1) 빠짐없는 분할
이스라엘은 솔로몬이후에 두개의 나라로 갈라졌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갈라진 그 두나라입니다. 그중 북이스라엘은 일찌감치 버림받아 멸망하였고 유다는 나중에 멸망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백성은 마치 유다나라에 속했던 유다와 베냐민지파인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회복이 그 두지파에게만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 전체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자기백성을 구원하시기때문에 차별을 두지 아니하시고 선택된 모든자를 마침내 빠짐없이 구원하십니다.
a.같은 삯을 주심(마20:8)
b.확실한 구원(요10:28)
2) 균등분할
옛언약하에서 가나안땅은 불균등하게 분배되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영도하에서 가나안을 점령한뒤 각지파에게 땅이 분배될때 어떤지파는 많이 받고 어떤지파는 적게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새땅에서는 그러한 불균등이 없습니다. 새땅에서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모든지파가 동등한 분깃을 받습니다. 이것은 새땅에서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동일한 구원, 동일한 은혜를 받을것을 말해줍니다. 물론 그열매에 따라 받을 상급은 다릅니다.
a.누구든지 믿으면 받는 영생(요3:16)
b.일하는대로 받는 상급(고전3:8)
3) 영생의 기업
에스겔서 후반부에서 언급되는 이스라엘 회복의 예언은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가 새나라를 건설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이면에는 보다더 중요한 이차적 예언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곧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의 포로된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본장이 말하는 새땅은 성도가 받을 영생의 기업을 상징합니다. 모든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의 날에 다함께 영생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날을 소망하며 기쁨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a.항상 기뻐함(살전5:16)
b.본향을 사모(히11:16)
2. 거룩한 땅
1) 하나님 중심사회
새땅은 북쪽으로는 하맛에서부터 남쪽으로는 애굽시내에 이르기까지의 요단서편 땅입니다. 이땅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게 분배되되 그가운데는 거룩한 땅으로 남겨집니다. 즉 예루살렘땅은 거룩한 땅으로 남겨지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땅 가운데에서도 한가운데 땅은 하나님의 성소가 세워지도록 남겨집니다. 성소는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상징적 장소입니다. 따라서 이사실로 볼때 새땅은 하나님께서 모든것의 중심이 되는 사회입니다.
a.성막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출40:34)
2) 제사장들의 몫
하나님의 성소가 세워지는 땅의 일부와 그 위부분은 제사장들과 및 레위인들을 위한 분깃으로 주어집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일을 주업으로 하기위해 땅을 분배받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바쳐진 지파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 섬기는 일에 전념해야 했기때문에 다른지파 사람들처럼 일상의 수고를 하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일상의 수고를 하는 지파의 사람들로부터 생계를 보장받을 권리를 가집니다. 이렇게 볼때 일반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들의 직업에 충실하고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전파에 전념하되, 일반 성도들은 목회자들의 생계를 담당하는 것이 옳습니다.
a.일꾼이 받을 마땅한 몫(마10:10)
b.복음사역자의 생활권 보장(고전9:9)
3) 공동사회를 위한 장소
하나님의 성소가 세워질 거룩한 땅아래에는 성읍과 성읍기지가 세워질 땅으로 남겨집니다. 성읍과 성읍기지란 12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의 번영과 안녕을 도모하기 위해 공동으로 모여 활동할 장소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성읍은 열두개의 문을 가지되 열두지파의 이름이 각문에 새겨집니다. 한편 새땅에 이와같은 성읍과 성읍기지가 세워진다는 것은 새땅에서는 반목과 질시로서가 아니라 화합과 협동으로 이스라엘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이 조화롭게 살아갈 것을 암시해 줍니다.
a.협력해야할 지체(고전12:25)
b.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5:13)
3. 왕을 위한 땅과 성읍출입구
1) 왕을 위한 영원한 분깃
유다와 베냐민지파 사이에는 거룩한 땅이 남겨집니다. 거룩한땅 한가운데에는 성소가 세워지고 그위쪽은 레위인을 위한 기업으로 주어지고 그아래쪽은 성읍과 성읍기지를 위한 땅으로 제공됩니다. 한편 성소 좌우편의 땅은 왕의 기업으로 주어집니다. 이 왕의 기업으로 주어지는 땅은 여호수아의 분배때에는 없던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땅에서 왕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시는 이유는 왕이 기업을 가짐으로써 백성의 재물을 착취하지 않게하기 위함입니다.
a.이스라엘 방백들의 강포(겔34:4)
b.공의를 행해야할 권세자(롬13:4)
2) 만백성의 나라
옛언약하에서의 이스라엘나라는 기본적으로는 모든 이방나라에게 개방적이었지만 형식적으로는 폐쇄적이었습니다. 이방인도 할례를 받으면 이스라엘회중에 들어올수 있었으나 그것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새언약하에서는 사라집니다. 즉 이제 하나님나라는 모든 이방인들에게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개방되어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될수 있습니다.
a.다 내게로 오라(마11:28)
b.누구든지(요1:12)
3) 여호와 삼마
성읍에는 출입구가 열두개 있습니다. 각문에는 열두지파의 이름이 각각 새겨져 있습니다. 이성읍의 이름은 '여호와 삼마'입니다. 여호와 삼마라는 말을 번역하면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땅에서 이스라엘 모든지파와 함께하십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과 동거하시며 동행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과 떨어져사는 사람이 단한사람도 없이 모두 하나님안에 거하는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a.함께하시는 하나님(계21:3)
b.열두지파의 이름(계21:12)
결론
하나님의 나라는 이세상의 나라와 같지 않습니다. 옛언약의 땅과도 같지 않습니다. 그나라는 영원하며 복되고 공평합니다. 오직 온전하신 하나님만이 주관자되시며 그안에서 모든백성이 하나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온전히 그리스도안에 거한다면 이땅에서도 그축복을 누릴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에게 우리의 모든것을 맡기며 그뜻대로 살아감으로써 이땅에서부터 하늘의 복을 누리며 새땅에서는 영원한 복을 누리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47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6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5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4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3장 - study  (0) 2022.12.13

# Study

Ⅰ. 거룩한 물의 환상 47:1-12
에스겔의 환상중에서 이부분은 신비하고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예언은 스가랴 14:8절의 생수에 관한 예언을 설명해 준다.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그리고 이예언은 사도요한의 계시중에 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과도 관계가 있다(계 22:1). 전자는 완벽한 은혜인 영광과 기쁨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후자는 이미 시작된 영광으로서의 은혜와 기쁨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성경주석가들은 이물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한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곧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발원하여 주변의 국가들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성령의 은사와 전능이 함께 퍼져나가, 그로인하여 복음은 더욱 멀리 퍼지고 복된 열매를 맺을수 있었다.
(1) 이물의 발원(1절) :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즉 전의 우편으로부터 물이 나오는데 그곳은 '제단의 남편'이었다. 그리고 2절에는 '물이 그우편에서 스미어 나온다'고 기록되었는데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라고 기록된 예언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사 2:3). 이예언은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에게 성령이 부어져서 그들이 방언의 은사를 받아 이물을 온세계에 전할수 있게됨으로써 성취되었다. 우선 그들은 성전에서 이 '생명의 말씀'을 가르쳐야만 했다(행 5:20). 그들은 복음을 온세계에 널리 퍼뜨려야 했으나 이일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눅 24:47). 그리스도는 성전이시다. 또한 그는 문이시다. 그에게서, 즉 창에 찔린 그의 옆구리에서 생수가 흘러나온다. 우리는 오로지 그를 믿음으로써 그에게서 나오는 생명수를 받을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믿는자의 받을 성령'인 것이다(요 7:38,39). 이물의 근원은 땅위에 있지 않다. 이물은 문지방 밑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생명의 근원은 신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안에 감취었기 때문이다(골 3:3).
(2) 이물의 진행과 증가 : 그물은 '동으로' 진행되어 갔다(3절). 즉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갔다(8절). 선지자와 그를 인도하시는 자는 거룩한 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그물줄기를 따라갔다. 그들은 약 일천척을 따라 내려간후에 그물줄기를 건너 깊이를 재어보았다. 그때 물은 '발목에' 찼다(3절). 그리고나서 그들은 건너편 둑을 따라 일천척을 더내려간 후에 다시한번 깊이를 재어보았다. 두번째에도 그들은 쉽게 건널수가 있었다. 그물은 '무릎에' 찼던 것이다(4절). 그들은 일천척을 더내려가서 건너보았다. 세번째는 물이 그들의 허리까지 찼다. 물이 허리에 오르고. 그러자 그들은 일천척을 더내려가서 네번째로 건너기를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그때는 불가능하였다. 그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5절). 다음의 사항들을 주목하라.
1) 성소에서 나오는 물은 시내같이 흐르는 물이지 연못같이 고인물이 아니다. 영혼에 작용하는 은혜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완전에 도달하기까지는 계속 진행할 것이다.
2) 그물은 증가하는 물이다. 이 시내는 끊임없이 흐르고, 가면갈수록 점점더 불어날 것이다. 복음교회가 처음에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미약했지만 점차로 발목에 이르고 무릎에 이르게 된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모여들었다. 성령의 은사는 쓰면쓸수록 증가한다. 그리고 아침햇살이 점점더 밝게 비추이는 것처럼 은혜도 점점 증가한다.
3) 이물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에겐 유익이다. 이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지켜보라. 심령속에 은혜가 역사하시는 과정을 지켜보라. 에스겔이 여기서 하듯이 축복의 성령이 하시는 일을 지켜보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주의깊게 살펴본다면 우리는 그중의 몇몇은, 발목에 차는 물처럼 매우 이해하기 쉽고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또한 어떤것들은 좀더 어려워서 무릎에 차는 물같기도 하고 또 어떤것은 우리의 이해한계를 아주 뛰어넘어 도저히 깨달을수 없는것도 있다. 그러나 도저히 그밑바닥을 찾아내지 못할때 바울처럼 물가에 앉아서 그깊음을 찬양해야 한다(롬 11:33).
(3) 이 강의 확장 : 이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바다에 이르리니. 이물은 사막으로 흘러 남동쪽에 있는 사해로 흘러 들어가기도 하고 북동쪽에 있는 디베랴 바다로 흘러 들어가기도 하며 또 일부는 서쪽에 있는 대해로 흘러가기도 한다(8절). 생수의 강이 사방으로 흘러나가리라는 이예언은 복음이 유다와 사마리아의 온지경에 널리 전파되었을때 성취되었다. 그후 복음은 주변의 나라들로 퍼졌고 심지어 이방의 섬들마저도 그복음을 깨우쳤던 것이다.
(4) 이 강의 치유능력 : 이물은 바다로 흘러들어가 소돔의 유황못에 이를지라도 그 '바다의 물을 소성시킬' 것이다(8절). 그래서 그바다는 달고 건강에 좋은물로 바뀔 것이다. 이것은 복음으로 말미암은 복된 변화를 의미하는데 이변화는 대단히 큰것으로 사해의 물을 동산의 샘물로 변화시킬만한 것이다. 복음은 말하자면 엘리사가 던져넣은 소금과 같은 것이다(왕하 2:20,21). 이세상에 의사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최고의 약으로 복음을 주셨다. 그강물은 이르는 곳마다 모든 것들을 소성시킬 것이다(9절). 이물은 생명수인 것이다(계 22:1,17).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이세상에 오셨고 그목적을 이루고자 복음을 주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죽은 죄인들을 다시 살리시며, 살아있는 성도들로 영생을 얻게 하신다. 이세상의 모든것들은 그은혜로 말미암아 풍성한 열매를 맺게되었다. 그러나 그결과는 받아들이는데에 따라, 그리고 각심령이 얼마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5) 이 강에 살고있는 많은 고기들 : 그안에 살고있는 각양의 생물들이 발견될 것이다(9절).
(6) 강둑에 있는 나무들 :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7절). 그것들은 먹을수 있는 '실과나무'이며 그실과는 '끊치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나무들은 '달마다 새로운 실과'를 맺을 것이기 때문이다(12절). 그잎이 시들지 아니하며...그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본문의 환상은 사도요한의 환상과 비교해 볼수 있다(계22:2). 거기서는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다고 기록되었다. 그 생명나무는 '달마다 실과를 맺고 그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나무의 잎사귀는 상처를 위한 약재료로 쓰이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선한 그리스도인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한다. 그들은 약한자를 북돋아 주고 심령이 상한자를 싸매어 준다. 그들의 쾌활함은 약처럼 좋은 것이다. 그잎사귀들은, 뿌리에만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줄기에도 수액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시들지않을 것이다. 또한 각나무는 매달 실과를 맺을 것이다. 이는 열매를 맺을수 있게하는 요인이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와같이 특별하게 실과를 맺을수 있는 이유는 '그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즉 끊임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덕분인 것이다.

Ⅱ. 가나안땅의 경계 47:13-23
이제 기업분배에 관한 사항이 나온다. 본문에서 가나안땅은 확실히 그들에게 유업으로 주신 것이었다(14절). 내가...맹세하여 이땅으로 너희열조에게 주마 하였었나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열조에게 하신 자신의 맹세를 잊지 아니하셨다. "내가 이땅을 주기로 맹세하였으니 그것은 분명히 네게 기업이 되리라." 여기서 그 '지계'가 정해진다. 기업의 지계를 결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그땅이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누어지리라고 기록되었는데 요셉은 두지파로 계산되었다. 이는 열둘을 만들기위한 것이었다. 레위지파는 성소에 수종들기 위하여 따로 세움을 받았으므로 그들의 분깃도 성소에 속해 있었다(13,21). 너희는 피차없이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14절). 그들중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녀를 낳아 가족을 이룸으로써 그백성들을 돕는 '외인'들도 원래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같이 여기고 이스라엘 지파중에서 기업을 얻을' 것이다(22,23절). 이것은 분명히 복음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때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사이의 분리의 담이 무너지고 하나님앞에서 동등하게 되며 그리스도안에서 한몸이 되어 '차별이 없게'될 것이다(롬10:12).

# 핵심
47:1-23
하나님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에 관한 환상을 설명하고,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경계와 이방인의 땅의 상속에 대해 기록한 내용.
소금땅(47:11)
사해지역에 우기가 닥치면 바닷물이 넘쳐 진펄과 개펄의 낮은지역을 덮는다. 여기에 고인물은 곧 증발하고, 소금기운만 남게된다. 염분이 많은 이런땅에는 결코 생물이 살수 없다. 이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완악한 자들이 영원한 저주를 받는다는 사실을 교훈한다(슥 14:17-19).

# 묵상
물의 근원 ( 47:1 )
물은 여호와의 전의 문지방밑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이 생명수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발원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발원한 네강물이 온세상을 적셨듯이 이제 새롭게 지어질 새성전에서 흐르는 물이 모든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가 그들의 영혼을 영원히 살리게 하는데, 그물은 바로 생수의 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4:10; 7:38).
점점 많아지는 물 ( 47:3-5 )
천사가 일천척을 척량할때마다 물이 점점 깊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나중에 4천척 되는곳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차고 넘치게됨을 볼수 있습니다. 이는 성소에 좌정하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은혜와 축복이 점점 풍성해지며 또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들이 많아져서 하나님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엘 선지자가 말일에 하나님께서 그의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실 것이라고 예언한것 역시, 이생명수가 많아질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것을 소성케하는 물 ( 47:8, 9 )
성전에서 흘러내린 이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생물과 바다가 소성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와같이 새로지은 성전에서 나오는 생생한 활력이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모든사람과 피조물 및 자연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신음하고 있습니다(롬8장).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라고 하는 생명수를 마시는 자는 모두 죽음에서 해방되어 참자유와 영생을 얻게됩니다.
어부가 서는 강가 ( 47:10 )
이는 사해와 같이 죽은바다도 이물이 흘러들어가면 고기들이 풍성한 어장이 되고 엔게디에서 에네글라임까지 그물치는 곳이 된다는 것입니다. 엔게디는 ‘염소의 샘’이라는 뜻을 지닌 성읍으로, 사해 서쪽해안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네글라임은 ‘두마리 송아지의 샘’이라는 뜻을 지닌 성읍으로 사해의 북서해안에 위치했습니다. 그리고 이 어부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하나님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상징합니다. 메시야를 고대하는, 사해와 같은 이세상에 제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파견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성도역시 제자들로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없는 죽은세계에 생명수인 복음을 전파함으로 그들을 소생시키는 일에 앞장서 나가야 하겠습니다.

# 해설
은혜의 바다와 약속의 땅 ( 47 )
에스겔서의 마지막에서 두번째 장을 차지하는 본장은 성전척량과 제사규정에 관한 전장들의 내용과는 달리 성전에서부터 발원하여 하나의 강을 이루고 마침내 바다를 이루어 만물을 소생케하는 은혜의 바다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내용과 아울러 마지막부분에서는 마지막장에서 마무리되는 새땅의 경계와 분배내용이 서술되고 있습니다.
1. 계시의 점진성
I) 원시복음
에스겔 선지자는 천사에 의해 이끌리어 성전에서 발원하는 샘물을 일천척마다 척량하매 점점 깊어져 나중에는 사람이 능히 건너지못할 큰물이 되는것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이내용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이 점진적으로 드러난 나중에는 하나님의 나라백성이 수없이 많아질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줍니다. 아담이 범죄한후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구속사역에 대한 계시는 일시에 계시되지 않고 점진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암시되다가 역사가 흐를수록 명확해졌다는 말입니다. 첫 희미한 계시는 아담의 범죄직후에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원시복음이라고 합니다.
a.뱀과 여자의 후손(창3:15)
b.가죽옷을 지어주신 하나님(창3:21)
2) 메시야 예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들, 그리고 출애굽사건들도 메시야를 통한 인류구속의 계시들입니다. 선지시대에 이르면 그와같은 구원계시가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더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사건이나 상징에서 더나아가 분명한 언어로 말해진 것입니다. 예를들면 사7:14;사53장의 내용, 미5:2절 등의 내용들이 그러한 메시야예언의 진수들입니다. 이예언들을 통해 인간은 메시야의 출현, 곧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웠음을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a.처녀잉태(사7:14)
b.하나님나라의 왕(겔34:23)
3) 메시야출현과 재림
원시복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언급된 메시야출현의 예언은 마침내 성취되어 하나님의 구원자되신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가 이세상에 오심으로써 계시는 완전히 드러납니다(참조, 요1:1-18).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하나님의 구원은 다시오실 메시야에 의해 완성됩니다. 이모든 과정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점점 늘어나 나중에는 셀수 없는 무리가 됩니다(참조, 계7:9).
a.죄에서 구원할 자(마1:21)
b.말씀이 육신이 되심(요1:14)
2. 신앙의 단계
1) 어린아이의 신앙
점점 깊어지는 성전에서 발원한 강의 환상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계시의 점진성 및 하나님나라의 확대로 해석할수 있지만 개인의 신앙적 관점에서 보면 각개인의 신앙의 성숙이라는 것으로 해석할수도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른이 될수 없고 한술에 배부를수는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는것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성숙이라는 단계가 있습니다. 처음단계는 이제막 새로태어난 어린아이의 단계입니다. 이때에는 발목에 차는 물에서 노는것과 같이 얕는 은혜의 수준에서 삽니다.
a.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간 요한(행13:13)
b.젖을 먹는 어린아이(히5:13)
2) 청년의 신앙
물이 허리이상 차오르는 곳에 있게되면 거동이 불편해집니다. 초신자는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중생했다고하나 아직 육신의 지배를 더많이 받아 신앙의 활동보다는 육적인 활동을 더자유롭게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자라 육신의 것을 버리고 영적인 세계로 더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육적인 활동은 둔해지고 영의 활동이 자유로워집니다. 육적인 욕망과 영의 행동이 주거니받거니 싸울때 우리는 그상태를 청년기의 신앙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a.영육의 싸움(롬7:23)
b.육신의 생각은 사망(롬8:6)
3) 성숙한 신앙
에스겔은 마침내 머리끝까지 침몰되는 깊은강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육과 죄성이 완전히 활동을 하지못하고 이제 온전히 하나님께 생명을 내어맡겨 놓고 은혜가운데 영적인 삶을 사는단계를 말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목표로하는 도달점은 바로 이단계입니다. 이단계에 이르면 이르는자 자신이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뿐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의 생수를 아직 그은혜의 바다로 들어오지 아니한 자들에게도 공급하는 위치에 서게됩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참조, 엡4:13)에 이르기까지 은혜의 바다 깊숙한 곳까지 헤엄쳐가야할 것입니다.
a.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람(엡4:15)
b.예수의 좋은 군사(딤후2:3)
3. 새땅의 경계와 분배
1) 약속의 땅
하나님의 나라는 돌연적이고 임시적인 곳이 아닙니다. 그나라는 하나님께서 인류가 범죄하기 이전부터 인류가 범죄할 것을 미리 아시고 그죄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과 복락을 누리도록 하시기위해 예비하신 영원하고 완전한 나라입니다. 이나라는 인류초기부터 약속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나라는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하나님에 의해 반드시 도래합니다.
a.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3:8)
b.낙원(눅23:43)
2)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눔
새땅의 분배방식은 제비를 뽑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각지파의 분깃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나타내줍니다. 실로 하나님나라의 모든 통치주권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거기에는 유한한 인간의 뜻이 개입되지 않습니다. 오직 홀로 완전하신 하나님의 통치만이 법으로 있어 나라가 완벽함을 유지합니다.
a.주께 속한 주권(대상29:11)
b.절대주권(단4:17)
3) 이방과 함께 거할땅
본문에 보면 새땅은 이스라엘 백성중에 우거하는 이방인들에게도 분깃이 주어질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새언약, 곧 신약시대에는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이 복음의 빛을 공유함으로 함께 하나님나라의 일원이 될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구원이 모든 만민에게 개방될 것을 암시해주는 것입니다.
a.땅끝까지(행1:8)
b.모든 믿는자에게 주시는 구원(롬1:16)
결론
하나님의 나라는 점진적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완전히 드러나 확장된 시기에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큰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은혜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명확히 드러난 구원을 놓치지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아들였다면 뒤를 돌아보지 말고 성숙한 신앙의 단계를 향해 달려가야할 것입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48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6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5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4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3장 - study  (0) 2022.12.13

# Study

Ⅰ. 예배에 대한 규례 46:1-15
우리는 후대 유대교회의 역사에서 그백성들이 본문의 규례를 지켰다는 사실을 발견할수 없다. 그들은 '이때'(한글개역에는 없음-역주)를 문자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상징적으로 생각하여 단지 모세의 율법만 지켰던 것이다.
(1) 예배의 장소가 지정되고 왕과 백성들에게 그규례가 주어졌다.
1) '동향한 문'은 '안식일과 월삭'(1절), 그리고 왕이 자원하여 제사를 드리려고 할때에만 열리고(12절) 평상시에는 닫아두어야 했다. 어떤이들은 왕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 더불어 안뜰로 들어가 행정관이나 장관들이 협력하여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을 장려하였던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왕이 '바깥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가서 문벽곁에 서고 문통에서 경배하였다'라고 보는편이 더타당하게 보인다(2절). 왕이 서있는 곳에서는 제사장들이 제단에 수종드는 것을 환히 볼수 있었으며 백성들도 그 '문통에서' 왕뒤에 서있었다(3절).
2) 백성들은 북문과 남문을 통하여 '백성들의 뜰'로 들어와야 했다. 북문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북문으로 나가야 했다(9절). 어떤이들은 이것이 서로 떠밀림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해석한다.
3) 안식일과 월삭에는 백성들도 왕이 하듯이 '동향한 문에서 경배해야 했다'(3절).
(2) 예배에 대한 규례가 정해졌다.
1) '아침마다' 번제로 '어린양 하나'를 드려야 했다(13절).
2) 안식일에는, 모세의 율법으로는 두마리의 양을 드리게 되어 있었으나(민 28:9) 여기서는 여섯마리의 양을 드려야 했다.
3) 매달의 첫날, 곧 월삭에는 '수송아지' 한마리가 추가로 드려져야 했다(6절).
4) 모든 희생은 '흠'이 없어야 했다. 우리의 위대한 희생제물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벧전 1:19) 우리 기독교인들도 하나님께 산제사로 자신을 바칠때에 '흠없고 점없으며' 비난받지 않는 상태여야 한다.
5) 모든 희생에는 소제도 같이 드려야 했다. 이는 우리가 가축의 소산과 함께 토지의 소산도 드림으로써(신 28:4)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문에 기록된 소제의 양은 모세의 율법상의 규정보다 많은데, 이는 위대한 속죄제물이 드려진 복음시대에는 이렇게 피를 흘리지않는 희생을 더많이 드려야할 것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Ⅱ. 왕의 기업처분에 관한 규례 46:16-18
땅을 처분하는데에 있어서 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규례가 기록되어 있다.
(1) 만일 왕에게 상을 받을만한 아들이 있다면 보상으로 자기땅의 일부분을 아들에게 줄수 있었다(16절).
(2) 그러나 한종이 있어 아무리 사랑스럽다하더라도 그에게는 땅을 줄수가 없었다(17절). 다만 희년이 될때까지 땅을 빌려줄수는 있었는데, 희년이 오면 그땅은 다시 왕에게로 돌아갈 것이었다(17절).
(3) 왕이 아들에게 주는땅은 왕의 땅이어야만 했다(18절). 왕은 백성의 기업을 취하여 그산업에서 쫓아내지 못할지니. 왕의 관심사는 오로지 자기백성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어야 한다. 백성들의 권리를 보호해줌으로써 그들의 사랑을 받는편이, 그들을 쫓아내어 땅을 빼앗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Ⅲ. 제물을 조리하는 장소에 대한 규례 46:19-24
제물로 바쳐질 고기를 삶는 장소가 설명되어 있다(20절). 그 장소들중 일부는 안뜰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고(19절) 나머지 다른곳은 바깥뜰의 네구석에 있었다(21-23절). 바로 그곳에서 '속건제와 속죄제 희생'을 삶아야 했다. 이제물들은 제사장에게 돌아갈 몫이었다. 또한 '소제제물'도 그곳에서 구워야 했다(20절).

# 핵심
46:1-24
안식일과 월삭 그리고 번제와 감사제에서 왕이 지켜야할 규례들을 설명하고, 왕의 기업에 관한 원칙들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 묵상
그 힘대로 할것 ( 46:1-8 )
본문은 안식일과 월삭제사에 대해 기록합니다. 특히 제물을 드리는데 있어서 ‘그 힘대로’하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무리하고, 억지로 예물을 드리지말라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헌금을 드리는데 있어서도 자기의 형편에 맞게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고후8:12; 9:7).
절기때에 성전에서의 왕의 자리와 행동 ( 46:2, 10 )
왕은 무리들가운데 있어야 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나 여러가지 행동에 있어서 통일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앞에서는 어떤지위 고하나 신분의 차별이 있을수 없음을 교훈합니다. 생명의 속전역시 모든사람이 하나님앞에서 동등함을 보여줍니다(출30:12-15). 참으로 만인은 하나님앞에서 평등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늘날 계층적 권위구조나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사람들을 편애하는 많은 교회들이 반드시 명심해야할 신앙원리입니다.
성전으로 들어오는 문과 나가는 문 ( 46:9 )
성전에 나아올때 들어왔던 문으로 나갈수 없는 까닭은, 혼잡을 피하기 위해서 출입절차를 정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생활이 앞으로의 전진만 있을뿐 후퇴란 있을수 없음을 암시해주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상번제의 규례 ( 46:13-15 )
아침마다 일년 되고 흠없는 어린양 하나로 번제를 드리고, 밀가루 에바1/6과 기름 힌1/3을 섞어서 소제로 드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번제는 매일의 삶을 하나님께 의탁한다는 의미를 담고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는 매일의 번제대신에 매일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습니다.
희년 ( 46:17 )
안식년이 일곱번 지난해, 혹은 그해를 가리키는 것으로써 49년 혹은 50년마다 돌아오는데,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요벨)을 불기때문에 요벨의 해라고도 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희년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억압되었던 모든것이 해방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종이 되었던 사람이나 땅을 판 사람은 종에서 해방되거나 땅을 돌려받고 새출발 할수 있었습니다.
왕이 아들에게 물려줄수 있는 기업 ( 46:18 )
오직 자기몫의 기업뿐입니다. 즉 왕은 백성의 기업을 취하여 그산업에서 쫓아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합왕은 이규례를 무시하고 나봇의 기업을 탐내어 그것을 자기에게 매매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하나님께서 열조의 유업을 다른사람에게 넘겨주는 일을 금하셨음을 알고 왕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위해 그를 살해하기까지 하는 죄악을 저질렀던 것입니다(왕상21:1-16).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48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7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5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4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3장 - study  (0) 2022.12.13

# Study

Ⅰ. 거룩한땅을 구별하심 45:1-8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한후에 땅을 나눌것에 대하여 지시되어 있다.
(1) 성소를 위한 땅이 예비되었다. 그 한가운데에 성전이 지어질 것이었다(1절). 본문에는 그땅을 '여호와께 예물'로 드려야한다고 기록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경배드리고 그 도를 널리 전하는데에 바쳐진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드려진 것으로 간주하시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한구역의 땅의 규모와 경계가 정해졌다. 성전에 수종들기 위하여 가까이에 살아야만 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성소를 둘러싸고 있는 이구역에 살아야 했던 것이다.
(2) 성소를 위한 땅 다음에는 성읍을 위한 땅이 예비되었다. 그안에 거룩한 성이 건설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성의 거민들은 그성에서 나오는 수익과 이익으로 생활해야만 했다(6절).
(3) 성소와 성읍을 위한 땅 다음에 할당된 땅은 왕의 땅이었다(7,8절). 그땅의 한쪽 끝은 성소를 위한 땅에, 그리고 다른한쪽 끝은 성읍을 위한 땅에 접하였다고 기록되었는데, 이는 왕들이 그재산과 권세로 위의 두가지를 보호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왕들이 다시는 내백성을 압제하지 아니하리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치리자들을 평화롭게 하시고 세리들을 정직하게 하실것이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느헤미야는 이전왕들과는 다르게 치리한 사람이었다(느 5:15,18).
(4) 나머지 땅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지파대로' 나뉘어져야 했다.

Ⅱ. 공의의 규례 45:9-12
치리자들과 백성에게 주는 여러가지 공의의 규례가 기록되어 있다.
(1) 왕들은 백성을 압제하지 말고 정당하고 신실하게 백성들사이에 공의를 행해야만 했다(9절). 그들은 '강표를 제하여 버리고' 과중하게 부과된 세금을 없앰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만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에 따라 '공평과 공의'를 시행해야만 했다.
(2) 이웃간의 상거래에서 상대를 속여서는 안되었다(10절). 너희는 공평한 저울...을 쓸지니. 이것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모든거래를 정직하고 공평하게 행하며 모든 세무관계에 정확하고 확실하게 이행해야 하는것을 의미한다. 그이유는 만일 그렇지않다면 그들이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한다하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사람들앞에서의 명성에 손상을 입게되기 때문이다.

Ⅲ. 예물에 대한 규례 45:13-25
인간들을 향하여 공의 규례를 말씀하신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향한 신앙의 표출에 대하여 몇가지 지시를 하신다.
(1) 여호와께 예물을 드려야한다는 지시가 내려진다(13절). '이땅 모든 백성'은 예물을 드려야만 했다(16절). 그들은 자기들의 땅, 곧 '거룩한 땅'을 예물로 드렸었다(1절). 그러나 이제 그들은 자기들의 재물 즉 동산중에서 예물을 드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2) 예물로 드려야하는 비율이 여기에 규정되었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는 없는 것이다.
1) 곡식은 60분의 1을 드려야 했다(13절).
2) 기름은 100분의 1을 드려야 했다(14절).
3) '떼'중에서는 200마리당 '한 어린양'을 드려야 했다(15절). 그런데 그것은 '이스라엘 윤택한 초장'에서 먹여진 것이어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드릴 번제와 감사제물로 그들이 가진것 중에서 가장 살찌고 좋은것으로 드려야 했다. 이 희생들은 그들에게 속죄제물이 되어야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사 우리를 하나님과 다시 화목케 만드셨다.
(3) 이예물은 '이스라엘 왕에게' 드려야 했다(16절, 흠정역에는 '왕을 위해'로 되어있다-역주). 어떤이들은 이것을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께, 아버지께 바쳐야할 예물들을 바쳐야하기 때문이다. 또는 이부분을 '왕과 더불어' 바쳤다고 이해하기도 한다(17절). 백성들은 자기들의 예물을 왕에게 가져오고 왕은 그것들을 성소로 가져가 자기예물의 부족한 양을 메꾸었던 것이다.
(4) 몇가지 특별한 의식에 관하여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
1) 정월초하루에는 연례적으로 성소를 정결케하는 의식이 있다.
① '정월초하루'에는 성소를 정결케 하기위한 희생을 바치면서(18절) 앞으로 일년동안 성소안에서 보다 직무수행을 잘할수 있기를 간구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제사는 성전에서 수종하는 제사장, 레위인, 그리고 일반백성들의 죄와, 심지어 직무수행중에 저질렀던 죄에 대한 속죄제사도 겸한 것이어야 했다. 그들은 그달 초하루에 이일을 하도록 지정받았는데 이는 유월이 그달 14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월절은 구약의 모든 절기중에서 그리스도와 복음의 은혜에 대한 내용을 가장많이 포함하고 있는 절기이다.
② 이제사는 '그달 칠일에도' 되풀이되어야 했다(20절). 그것은 '모든 그릇범죄한 자와 부지중 범죄한 자'들의 속죄를 위한 제사였다. 그와같은 죄들은 무지나 실수 또는 부주의로 지은 죄를 의미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2) 유월절은 정해진때에 경건하게 지켜져야만 했다(21절).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신 '유월절 어린양'이시다. 우리는 성찬식에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신 예수를 기억하고 찬양해야 한다. 성찬식은 우리에게 유월절만찬인 셈이다.
3) 초막절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25절). 본문에는 오순절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오순절은 유월절과 초막절사이에 있다. 죄에 대하여 율법에 기록된 희생은 많지 않다. 따라서 그제사는 자주 반복되었다. 즉 매년이 아니라 매절기에, 또한 절기중 매일 드려졌다. 여기서 우리는 같은 종교의식을 자주 되풀이할 필요성을 알수 있다. 비록 속죄의 희생은 단한번으로 완전히 끝났지만, 우리의 상한 심령과 감사하는 마음을 고백하는 제사 즉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 받아들여질만한 영적인 제사들은 우리가 매일 드려야 한다.

# 핵심
45:1-25
성전의 외부인 거룩한 땅의 분배와 지도자들의 의무 그리고 성전제사와 이스라엘의 각종절기들에 관한 규례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마네(45:12)
이 화폐단위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첫째, 1마네란 20세겔+25세겔+15세겔=60세겔에 해당한다. 둘째, 1마네를 60세겔로 계산하는 것은 바벨론식이고, 이스라엘에서는 50세겔을 1마네(므나)로 간주했다. 셋째, 본절에 언급된 세가지 세겔이 금, 은, 동으로 주어진 세가지 단위의 마네를 가리킨다. 이중 두번째 견해가 가장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 묵상
백성을 압제하지 않게될 왕 ( 45:7, 8 )
왕이 백성을 압제하지 않도록 하려면 거룩한 구역의 옆과 성읍기지 옆의 땅을 왕에게 돌리면 됩니다. 본문에 언급된 서편 국경까지와 동편 국경까지의 방대한 토지는, 왕이 재물을 탐하지 않고 오로지 정치에만 전념할수 있도록 주어진 땅입니다.
공평과 정의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 ( 45:10-12 )
이렇게 할수 있는 방법은 바로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밧을 쓰는 것입니다. 여기서 에바는 곡식과 같이 마른것을 재는 도량형이요, 밧은 액체를 재는 것으로써, 밧의 경우 약 22리터가 1밧이었습니다. 중량을 재기위해서는 게라, 세겔, 마네가 사용되었는데, 마네는 약 60세겔입니다. 즉 하나님은 경제적 정의가 삶의 근본임을 아시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이처럼 구체적으로 지시하신 것입니다.
유월절 ( 45:21 )
정월 14일부터 7일동안 계속되는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에는 누룩없는 떡을 먹었는데, 이는 출애굽시 급히 떠나기위해 그떡을 만들어 먹은것을 기억하고 그때의 고난의 삶을 잊지않기 위한 것입니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가장 큰사건이므로, 이스라엘에서는 3대 절기중 하나로 간주되어 모든 사람들이 이날을 기념해야 했습니다. 한편 이절기는 신약에서 그리스도에게로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종종 하나님의 어린양, 유월절양으로 지칭되곤 하였습니다. 이렇게 구약의 모든절기와 제사는 오직 한분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사역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 해설
하나님께 드려야할 것들 ( 45 )
앞장에서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앞에서 어떻게 해야하며 그것을 충실히 수행할때 어떤상급을 받게되는가 하는 내용이 다루어졌습니다. 이어지는 본장에서는 일반백성들이 하나님께 무엇을 바쳐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백성이 하나님께 바쳐야하는 것은 그의 소유물과 성의와 시간과 정성입니다. 즉 성도는 하나님께 그가 가진 모든것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본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1. 땅
1) 성전을 위한 땅
땅은 인간의 생활을 영위하는 가장 기본적인 공간입니다. 인간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참조, 창2:7;창3:19). 인간은 공간의 제약을 받고사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 땅은 가장 중요한 필요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땅을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드릴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과 몸전체를 거룩을 위해 바칠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a.중앙에 세워질 성소(겔48:10)
b.성전되신 하나님(계21:22)
2) 제사장을 위한 땅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위해서 뿐만아니라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위해 수고하는 제사장을 위해서도 땅을 바칠것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제사장이 그의 온능력과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바치기때문에 자신을 위해 일할수 없으므로, 그의 제사 수직활동과 생계를 위해 그에게 경제적 뒷받침을 제공하라는 의미입니다. 오늘날에도 목자들은 양들을 위해 경성합니다. 따라서 양들은 그들이 복음전파에 전념할수 있도록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어야 합니다.
a.레위지파에게 주어진 땅(수21:41)
b.제사장에게 주어지는 땅(겔48:11)
3) 왕을 위한 땅
왕역시 하나님께로부터 권세를 이양받아 백성의 안녕과 평강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따라서 백성된 자들은 그러한 수고를 하는 왕들에게 그임무를 수행할수 있도록 하는 재물을 바쳐야 합니다. 알기쉽게 말하면 세금을 거짓없이 내야하는 것입니다. 물론 왕이 세금을 공의롭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옳지않은 일이지만 어쨌든 백성된 자는 일단 세금내는 일을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a.왕에게 주어질 땅(겔48:21)
b.선을 이루는 자(롬13:4)
2. 치리자가 드려야할 것
1) 공평과 공의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치리자는 백성의 안녕과 평강과 풍요를 누리도록 하기위해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자들입니다. 백성의 안녕과 평강과 풍요는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을 실행하는데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치리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세를 가지고 백성을 다스릴때 공평과 공의로 다스려야 합니다. 그렇지않으면 그사회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치리자는 강포와 불법을 버리고 반드시 공평과 공의도 치리해야 합니다.
a.공평을 지키라(사56:1)
b.성문에서 세울 공의 (암5:15)
2) 자비와 긍휼
공평과 공의에서 더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백성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인간은 완벽할수가 없습니다. 치리자가 아무리 정의의 편에 서려해도 반드시 왜곡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치리자의 그러한 부족함을 메워줄수 있는 방법이 자비와 긍휼로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있을때 치리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다스림을 베풀어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사회를 바로 인도할수 있습니다.
a.피차에 베풀 긍휼(슥7:9)
b.자비는 성령의 열매(갈5:22)
3) 공적제사
치리자라고해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일에서 배제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치리자는 백성의 대표자로서 백성들보다 더욱 빈번히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럴때에야 비로소 치리자는 하나님앞에 거룩하고 온전한 지도자의 길을 걸을수 있습니다. 따라서 치리자는 백성들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공적제사를 자주 드려 자신을 하나님앞에 바로 서게하고 백성을 영적으로 바로 인도해야 합니다.
a.모이기를 힘씀(행2:46)
b.장로들의 경배(계7:12)
3. 백성이 드려야할 것
1) 공적제사를 위한 제물
제사장과 마찬가지로 왕도 스스로 제사와 생계를 위한 벌이를 할 여가가 없습니다. 그가 맡은 직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백성들은 그가 공적제사를 드리고 국가를 운영하며 생활해 갈수 있도록 세금을 내야합니다.
a.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마22:21)
b.공세(롬13:6-7)
2) 성전제사를 위한 제물
앞에서는 성전을 위한 땅을 바칠것을 말하였고, 여기서는 성전제사를 위한 제물을 바칠것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거룩함을 위해 자신의 삶과 몸을 바쳐야할 뿐만아니라 물질도 바쳐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교회가 이세상에서 운영될수 있으며 목자가 살아갈수 있게되기 때문입니다.
a.재물을 아낌없이 바침(행4:32)
b.십일조(느10:39)
3) 절기제물
한해를 살아가노라면 여러 특별한 날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날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신 날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줄 아는 성도라면 그날에 마땅히 감사의 예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표를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최소한 감사의 표식입니다.
a.절기제사(겔46:9)
b.범사에 하는 감사(살전5:18)
결론
하나님은 값없이 은혜를 주십니다. 그은혜를 받기만 하고 나누어주지 아니하면 사해처럼 썩어버리고 맙니다. 은혜가 감사로 흐르지 아니하면 부패하여 은혜가 은혜로 남지 아니하고 해로운 것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성도된 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그은혜를 하나님께는 감사함으로 나타내고, 사람에게는 같은 은혜를 베풂으로써 나타내야 합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47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6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4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3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2장 - study  (0) 2022.12.13

# Study

Ⅰ. 성전의 동향문 44:1-3
선지자는 이 '동향한 문'에 세번째로 돌아왔다. 거기서 그는 그문이 닫혀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다른문들은 예배하러 오는자들에게 항상 열려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이 닫혀있는 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1) 문이 닫힌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들어오실때에 통과했던 안뜰의 문이 앞으로 영원히 닫혀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표시이다(2절).
(2) 또한 이스라엘의 왕에게도 영예를 부여해주는 것이다(3절).
1) 왕은 그문에 '앉아서 여호와앞에서' 화목제물을 먹을 것이다.
2) 왕은 '그문 현관', 즉 어떤쪽문이나 사잇문을 통해 들어갈수 있을 것이다. 어떤이들은 여기서 '왕'을 대제사장으로 이해하여 오로지 대제사장만이 이 문으로 들어갈수 있도록 허락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대리자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신앙생활에 대제사장이 되신다. 그분은 직접 성소를 들어가셨으며 모든 믿는자들에게 하늘문을 열어놓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Ⅱ. 이스라엘을 깨우침 44:4-9
선지자는 여기서 전에 보았던 것을 다시 새겨보고 전에 들었던 것을 다시 들어야만 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본문에서 선지자는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한' 것을 보게되는데 이것은 그에게 경외감을 불러 일으켰다.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대(4절).
(1)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본것과 들은것을 주의깊게 기억하라는 명령을 하신다(5절).
1) "너는 진심으로 네가 본 모든것을 주목하고 특히 전의 모든 '입구와 출구'를 주목하여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것을 기억하라."
2) "또한 '여호와의 전의 모든규례와 모든율례'에 대하여 내가 말한것을 듣고 백성들을 가르치라."
(2)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그백성 즉 모든 '패역한자 곧 이스라엘 족속'에게로 보내신다(6절).
1) 선지자는 야곱의 자손들에게 그들의 죄를 일깨워 주어야만 했다. 그들은, 성소의 특권을 누릴자격이 없는 자들에게도 그특권을 누리게 허락했었다(7절). 만일 이방인들이 비록 할례는 받지 못하였다하더라도 경건하기만 하였다면 그들의 죄악은 그리 큰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역시 할례받지 못하여 진실로 하나님과 모든 선한것에 대하여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합당치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의 의식에 참예하였다. "너희는 너희가 좋아하거나 너희에게 이익을 줄만한 사람을 시켜 '너희직분을 대신 지키게' 하였느니라." 너희가 내성물의 직분을 지키지 아니하고(8절).
2) 선지자는 그들의 의무를 말해주어야만 했다(9절). 이방인은 내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들이 나의 법을 지켜 행하지 않는한 들어오지 못하리라."

Ⅲ. 타락한 제사장들을 경책하심 44:10-16
성전의 주인이 그 전을 다시 세우려 하실때에 자기의 종 제사장들을 조사해보고 누가 그일에 적합한가를 살펴보신다.
(1) 반역하였던 무리들은 격하되고 비천하게 되었다. 그와같은 레위인들 혹은 제사장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들은 전에 이스라엘 족속이 배교할 당시 그흐름에 편승하였었고(10절), 이스라엘과 유다의 우상숭배하는 왕들에게 동조하여 '그 우상앞에서 수종들던' 자들이었다(12절). 그들은 직무를 부분적으로 박탈당하고 제사장의 권위를 빼앗겨 보통 레위인의 상태로 격하되었다. 그러나 이 선고에는 일루의 자비가 깃들여 있다. 하나님께서 중벌을 감해주신 것이다(11,14절). 그들은 '희생을 잡는' 일을 도울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제단에서는 안되고 '상'에서 잡도록 허락되었다(참조. 겔 40:39). 그리고 그들은 '전 문을 맡아' 수종들수 있게 되었다.
(2) 신실함을 지켜온 자들은 영예를 누리며 확실한 지위를 갖게되었다(15,16절). "그러나 '사독의 자손' 즉 백성들가운데 배교가 만연했던 시절에도 성실함을 지키고 남들이 다 곁길로 가도 자기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자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오고 내상에 가까이 나아와 수종들게' 되리라."

Ⅳ. 제사장의 규례 44:17-31
하나님의 제사장은 속되지 말고 규례대로 행하여야 했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들을 위한 법도가 주어진다.
(1) 그들의 의복에 대하여 : 그들은 수종들때에 '가는 베옷'을 입어야 하고 '양털옷'을 입지말아야 했다. 그이유는 양털옷은 땀을 많이내기 때문이었다(17,18절). 제사가 다끝나면 그들은 옷을 다시 갈아입어야 했다. 그리고 그 가는베옷은, 그옷을 보관할 목적으로 지어진 작은방에 두어야 했다(19절;참조. 겔 42:14).
(2) 그들의 머리털에 대하여 : 이문제에 대하여 그들은 어느쪽이건 극단을 피해야만 했다(20절). 머리털을 밀지도 말며. 이는 이방인의 제사장을 흉내내는 것이었다.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말며. 이는 나실인이 아니면서도 그렇게 보일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오직 그들은 적당히 위엄있게 보이도록 깎아서 짧게 유지해야만 했다.
(3) 그들의 음식에 대하여 : 성전에 수종들기위하여 들어갈때에는 포도주를 마셔서는 안되었다. 이는 너무 과도하게 마셔 하나님의 법도를 잊어버리지 않게하려 함이었다(21절)
(4) 그들의 결혼에 대하여(22절) : 이문제에 있어서 그들은 직책상의 명예를 지켜야만 했다. 즉 그들은 부정한 혐의를 받고 이혼한 여자나 과부와 결혼할수 없었다. 만일 제사장의 과부라면 괜찮았는데, 이는 제사장가문의 관례였었다.
(5) 그들의 가르침과 교회업무에 대하여 : 백성들을 가르치는 일은 그들의 임무중 한부분이었다. 여기서 그들은 그일을 능숙하고 신실하게 해야할 것이 지시된다(23절). 또한 백성들이 청구하는 송사를 다루는 것도 그들의 임무중 하나였다(신 17:8,9). 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24절). 그들은 정의를 가리는데에 있어서 정직하게 행해야하며 올바른 판단을 통과시킬때 그일을 전폭으로 지지해야만 했다. 그리고 교회담당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그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해야하는 것이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는가 또는 그날을 욕되게 할만한 일을 하지나 않나 살펴보아야만 했다.
(6) 죽은자들을 다루는 문제에 대하여 : 여기에 주어지는 법은 모세에게 주어졌던 것과 일치한다(레 21:1,11). 제사장은 가장 가까운 친척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시체'라도 가까이 해서는 안되었다(왜냐하면 그들은 죽은일로부터 정결함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7) 그들의 기업에 대하여 : 그들은 자기들이 수종드는 제단에 의지하여 살아야 했다(28절). 간혹 약간의 땅이 허락되기도 했지만(참조. 겔 48:10) 원칙적으로 자신들의 직무에 의해서만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1) 제사장들은 생계를 위하여 백성들로부터 무엇을 받아야 했는가. 그들은 바쳐진 제물의 고기를 가져야 했다. 또한 그들은 이스라엘중에서 봉헌된 모든물건들을 가져야 했다. 이런것들은 종종 돈으로 바뀌어 제사장들에게 돌아갔다. 이러한 내용이 30절에 설명되어 있다. 그들은 구워지기전의 '첫밀가루'를 가졌다. 이것은 창고에 쌓아두기전에 첫열매를 바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제사장들이 이와같이 잘부양되기 때문에 '새나 육축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찢긴 것'을 먹는것이 용납되지 않았다(31절).
2) 이에 대한 보답으로 백성들은 제사장들로부터 어떤것을 기대할수 있었는가. 이와같이 선지자나 제사장들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들은 그선지자나 제사장들로부터 보상을 받을 것이었다(30절).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축복하는 것은 제사장의 임무중 하나였다. 제사장은 단지 백성들의 모임뿐만 아니라 그들의 집에도 축복을 해야했다.

# 핵심
44:1-31
성전출입에 관한 규례를 설명하고, 레위인과 제사장들의 임무를 밝힌다.

# 묵상
전심으로 주목해야할 대상 ( 44:5 )
여호와께서 계시하시는 것을 전심으로 주목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곧 여호와의 전의 모든규례와 모든율례와 또 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에 관한 것입니다. 이처럼 전심으로 주목하라고 한것은,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해주기 위해서 성전환상을 분명하게 알라고 하는 것입니다. 곧 파괴된 성전이 반드시 복구되며, 이를 위해 당신께서 놀랍게 역사하시겠다는 확실한 약속을 주신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행한 가증한 행위 ( 44:7, 8 )
이방인들로하여금 성소안에 있게해서 하나님의 전을 더럽혔으며, 그들로하여금 할례받은 자들, 곧 이스라엘만이 여호와께 제사드릴수 있다는 언약을 깨게 하였고, 또 레위자손이 아닌 사람들로하여금 성소와 성물을 지키게 하였던 것들입니다. 이렇게 할례받은 자만이 하나님의 공동체의 일원이 될수 있음을 무시하는 행위는, 마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인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부인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할례받은 이방인 ( 44:9 )
새성전에 들어가는 것에 있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의 경우 몸과 마음에 할례를 받은자여야 한다는 것이 지적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몸의 할례만 받으면 괜찮은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몸의 할례가 마음의 할례를 보증해주는 것은 아닙니다(롬2:28, 29).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백성이 된 이방인만이 전에 들어올수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직분을 지킨 사람들 ( 44:15 )
이들은 사독의 자손 레위사람 제사장들입니다. 사독계열은 안티오커스 4세가 베냐민지파에게 대제사장을 넘겨주기전까지 스룹바벨의 제2성전에서 제사장직을 독점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시고 모든성도가 주의 제사장이 되었으므로, 이제는 혈통에 따른 제사장계열이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즉 믿음의 계보에 따라 주를 수종드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결혼상대자 ( 44:22 )
제사장의 배우자로 적합한 조건은, 이스라엘족속의 처녀나 혹은 제사장의 과부였습니다. 이는 정결한 처녀이거나 혹은 결혼했었더라도 제사장의 아내였던 자, 즉 거룩한 족속에 속했던 여자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전제조건을 둔것은, 제사장은 하나님의 일을 수종드는 사람이었으므로 그자신뿐 아니라 그의 아내도 거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세아에게 오히려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취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음란함을 보여주기 위한 표징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의 산업 ( 44:28 )
그들의 산업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제사장, 즉 레위지파 사람들은 본래 이스라엘의 땅을 분배받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모든 지파속에서 흩어져 살면서 그들의 삶을 지도하고 하나님께 나아오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부양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양식을 주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자 산업이었던 것입니다.

# 해설
제사를 수직하는 자들 ( 44 )
앞장에서 저자는 새성전에 설치된 제단에 관해 언급하였습니다. 본장에서는 제단에서 제사를 담당하는 제사장들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상세히 말하면 거짓제사장과 참제사장의 특징과 및 하나님의 제사를 바로 수행하는 참제사장에게 주어질 상급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1. 거짓제사장들
1) 우상을 좇음
하나님께서는 새성전에서 제사를 수직할 제사장들의 직분을 언급하기전에 그들이 하지말아야 할것을 말씀하시기위해 거짓제사장들의 어떠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거짓제사장들의 첫번째 특징은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직을 지키고 있으면 수입이 들어오는것 때문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직분에는 앉아있지만 실제로는 이세상 것을 추구하기때문에 하나님 아닌 다른것들을 마음으로 또는 실제로 섬깁니다.
a.태양숭배(겔8:16)
b.재물숭배(마23:18)
2) 제단을 이방인에게 맡김
거짓제사장들은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제물에만 관심이 있기때문에 제사를 제대로 수직하지 않습니다. 다시말하면 그들은 들어오는 제물을 자기것으로 만드는데에만 관심이 있을뿐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는 아무관심이 없기때문에 제사를 소홀히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드려야할 제사를 사람의 눈을 속여 무자격자에게 맡기며 심지어는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인에게도 맡깁니다.
a.언약의 표징 할례(창17:14)
b.성전안의 우상(겔8:10)
3) 직분을 빼앗기고 멸망함
사람의 눈을 속일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속이지 못합니다. 거짓제사장들은 사람을 속여 실상은 우상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인 것처럼 하여 제사장직에 앉으나 제사를 더럽히는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앞에 드러나 하나님에 의해 심판을 받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의 심장부에서 죄악을 저질렀기때문에 가혹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들은 자리를 빼앗길뿐만 아니라 지옥의 가장 깊은곳에 떨어지게 됩니다.
a.홉니와 비느하스의 죽음(삼상4:11)
b.성전기물을 빼앗김(왕하25:15)
2. 참제사장들
1) 제단을 끝까지 지킴
거짓제사장과는 달리 참제사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제단을 지킵니다. 한예로 솔로몬당시에 사독과 아비아달이라는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중 아비아달은 전쟁에 휩싸여 제사를 멈추었으나 사독은 솔로몬편에 서서 끝까지 제사를 수직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독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참제사장은 제단을 끝까지 지키는 자라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뻐하십니다.
a.꺼지지 말아야할 제단불(레6:13)
b.영원한 섬김(계22:3)
2) 거룩을 유지함
율법에 의하면 일반백성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제사를 수직하는 제사장들은 각별히 속된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므로 그에게 나아가는 제사장은 거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도된 자들은 다 제사장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만인이 제사장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자들은 모두 하나님앞에 거룩해야 합니다. 한편 제사장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거룩하도록 선도해야할 책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a.속된 것으로부터의 구별(레20:25)
b.몸의 거룩성의 필요(고전6:20)
3) 공의를 행함
제사장은 왕과 함께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입니다. 따라서 제사장이 불법을 행하면 그사회가 불의에 빠지기 쉽상입니다. 이런이유에서 제사장은 사회의 건전함을 위해 백성들앞에서 공의를 행하며, 백성들에게 의를 행하도록 가르치고, 왕에게 공평과 정의로 다스릴 것을 권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이것은 동일한 효력을 가집니다. 교회지도자는 공의를 행함으로 사회에 공평과 정의를 심어야 합니다.
a.정의의 하수(암5:24)
b.사무엘의 공의의 행위(삼상8:3)
3. 참제사장들에게 주어질 상급
1) 하나님 자신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전능자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주의 모든것이며 우주보다 더크신 분입니다. 이 하나님을 완전한 자기것으로 할수 있는 피조물이 있다면 그는 영생할수 있으며 우주의 지배자가 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무를 바로 수행하는 제사장에게 자기를 상급으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a.아론의 기업(민18:20)
b.레위지파의 기업(수13:33)
2) 재물과 영광
참제사장은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음으로써 육신과 영혼이 다 축복을 받습니다. 그는 물질적 축복과 아울러 영적인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물질적 축복은 글자그대로 재물의 축복을 받는것이며, 영적축복이란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충만과 아울러 영광의 찬미를 백성들로부터 받는 상급에 이르는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충성하는 자에게 물적, 영적필요를 아낌없이 공급해 주십니다.
a.레위사람들이 받을 물질(느10:37)
3) 복의 통로가 됨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예물을 줌으로써 복을 받으라는 말씀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뒤집어 이해하면 제사장은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주는 매체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실로 제사장은 하나님의 종이기때문에 그를 대접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따라서 그를 대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a.공경하면 넘침(잠3:9-10)
b.바침으로 얻음(말3:10)
결론
제사장은 일반백성들보다 더 각고의 노력을 해야합니다. 자기자신 뿐만아니라 모든백성이 우상에서 떠나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노력해야 하며, 모든이들이 거룩함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 의에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일을 완수할때 크나큰 상급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하나님나라 건설을 위해 배나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46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5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3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2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1장 - study  (0) 2022.12.13

# Study

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 43:1-6
에스겔은 이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곳인 하나님의 성전을 끈기있게 척량하고나서 윗세상의 영광을 볼수 있는 영광을 누린다. '이리로 올라오라.' 그는 넓고 화려한 성전을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기까지 그것은 환상중에 본바와 같이 죽은몸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참조. 37장). 그것들은 생명의 영이 안에 들어오기까지는 '생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이유로 선지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충만한 것을 보게된 것이다.
(1) 그는 하나님의 영광 즉 이스라엘과 언약을 하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이교도의 우상들은 금장색이나 칠장이에게나 바쳐야 마땅한 영광이외에는 아무것도 갖고있지 못한다. 이영광은 '동쪽에서부터' 왔다. 그리스도의 별도 동방에서 발견되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새벽별이시오 의의 태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사실에서 우리는 다음 두가지를 살펴볼수 있다.
1) 선지자가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볼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같고(2절). 그리스도의 복음도 환히 빛나는 영광중에서 큰소리로 선포되어야만 했고 멀리서도 들을수 있어야 했다.
2) 선지자가 보았던 하나님의 임재는 밝은 빛가운데서 이루어졌다. 땅은 그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빛의 밝기를 견딜수 없으며, 그빛을 보았거나 볼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교회안을 밝히 비추시는 하나님의 영광은 이세상도 비추어 주신다.
(2) 선지자는 이영광이 성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영광을 보았을때 그는 겸손히 경배하는 심정으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3절). 그러나 '여호와의 영광이 전으로 들어가신'후 '성신이 그를 들어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한 것을' 보게 해주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이 복음교회를 밝게 비추시고 그안에 가득하게 되는 것으로써 성취되어야 했다. 본문에는 구름이 예전처럼 전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기록이 없다. 이는 우리가 이제는 드러난 얼굴로 여호와의 영광을 볼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예전처럼 상징의 구름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직접 대면한다는 의미이다.
(3) 선지자는 즉시 여호와의 영광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희막에서 모세에게 하셨던 것과 비슷하다(레1:1). 들은즉 누구인지 전에서 내게 말하더니(6절).

Ⅱ. 하나님의 약속 43:7-12
하나님께서는 이제 성전에 다시 임재하심으로써 자기백성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사실상 갱신하신다.
(1)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이전 잘못을 깨우쳐 주신다. 이는 그백성들에게 예비된 위로를 위하여 미리 준비를 시키시는 것이다. 그들은 이전에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었다'(7절). '그들과 그왕들은' 심지어 성전뜰에 우상을 위한 제단을 세움으로써 옛날에 자기들이 고백하였던 신앙을 모욕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존위를 가장 무례하게 모욕하는 행위이다. 이러므로써 그들은 하나님과 자기들사이에 분리의 담을 만들었고 이 담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에게로 흘러오는 하나님의 은총의 물결을 막았던 것이다. 그들과 나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8절).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과 가까이 있었지만 사실은 담을 쌓은 것이었다. 따라서 "교회에 가까울수록 하나님과는 멀어진다"라는 말이 때때로 진리로 드러나고 있다.
(2) 하나님께서는 그백성들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하신다(9절). 이제는 그들이 그음란과...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하여 버려야할 것이라. "그리고나서야 하나님께서 자비로 너희에게 다시 돌아오사 너희자신의 성소를 다시 세우려하시니 너희의 우상 곧 '왕들의 시체'를 버려야할 것이라." 선지자는 백성들앞에 성전의 모양 혹은 '형상'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만일 그들이 그형상을 본다면 자기들의 '죄악을 부끄러워할' 것이기 때문이다(10절).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를 회개하도록 만드실 것임에 틀림없다. 선지자는 그들에게 형상을 스스로 측량하게 하고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일을 예비하고 계신지를 알도록 해야한다.
2) 만일 그들이 자신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게 된다면 그들은 형상 그자체보다 더욱 많은것을 알게될 것이기 때문이다(11절). 너는 이 전의 제도와...형상을 보이며 "그리고 그 전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보여주어라." 우리는 하나님전의 모든 특권들 즉 모든규례들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 그들로 그모든 법도와 그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3) 하나님께서는 그백성들이 되어야 할바대로 될것과 자신도 그들이 원하는대로 하실것을 약속하신다(7절). 그리하면 내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거하리라(9절).
(4) 하나님의 전의 일반적인 법이 설명된다(12절). 그것은 이전에는 상단 혹은 성소만 '지극히 거룩하였지만' 이제는 그 전이 있는 온산이 그러하리라는 것이다. 복음시대에는 교회전체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지성소의 특권을 누릴 것이다. 이제 모든성도들은 복음으로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히 10:19). 대제사장만이 수소와 수염소의 피에 힘입어 들어갈수 있었던 곳을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 나아갈수 있게된 것이다.

Ⅲ. 성전의 환상〔9〕 43:13-27
본문은 이 신비한 성전에 있는 제단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그제단 역시 신비하다. 그이유는 우리의 제단은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포로생활에서 돌아온후에 성전을 짓기 오래전부터 제단을 갖고 있었다(스 3:3). 그러나 본문의 제단은 성전안에 있는 제단을 말하는 것이다.
(1) '제단의 척수'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13절). 제일 윗부분의 넓이는 약 6평방 야드이고 바닥은 약 7평방 야드였다. 그높이는 약 4야드 반이었다. 제단 아래쪽에는 '밑받침'이라고 불리우는 선반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지상 약 1야드 되는곳에 있었다. 이 위에 제사장 몇명이 올라가 수종들게 되어있었고 그보다 약 2야드 위쪽에 또 선반같은 것이 있어서 그위에 또다른 제사장 몇명이 올라서게 되어있었다. 제단에서 태워야할 희생들은, 처음에 낮은곳에 있는 제사장들에게 전해져서 그들이 위에 있는 제사장들에게 건네주고 위에 있는 제사장들이 마지막으로 희생물을 제단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2) 제단의 '규례'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1) 제단을 봉헌하는데 7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7일동안 매일 희생을 드려야했다(25절). 죄사함을 받기전에는 우리의 인격이나 행위로는 하나님께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죄는 제단과 그위에 드려지는 제물을 성별해주는 그리스도의 피이외에 어떤것으로도 사함받지 못한다. 제단을 봉헌하는 것을 본문에서는 '정결케한다'고 표현하였다(20,26절). 모든희생에는 '소금'이 뿌려져야만 했다(24절). '은혜'야말로 우리의 모든 신앙적인 행위에 뿌려져야 하는 '소금'이 된다(골4:6).
2) 봉헌식이 끝난후의 계속적인 쓰임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다(27절). 그위에서 드려지는 모든재물을 정결케 하기위하여는 먼저 제단이 정결해져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제단에서 제사드리는 자들은 누구인지를 살펴보자. 그들은 '사독의 자손 제사장들'이었다(19절). 그의 이름은 의로움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이신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제사장된 사람들은 의의 자손들이다. 또한 제사드리기전에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바치기에 앞서 우리는 스스로를 거룩하게 해야한다.

# 핵심
43:1-27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임하는 모습과 번제단의 규모 및 봉헌에 관한 설명이다. 이내용은 이스라엘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할 경우 구원의 축복을 회복할수 있음을 제시한다.
에스겔 제단형상의 의미(43:13-17)
제단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사함을 받기위한 장소이다. 첫째, 제단의 구조가 밑받침, 아래층, 위층 제단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은 협력과 화합의 의미를 함축한다. 둘째, 제단의 뿔은 권세와 권능을 상징한다. 셋째, 제단의 길이와 폭의 치수가 같은 정방형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은 견고성과 안전성을 시사한다. 제단이 내포하는 이러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의미와 긴밀히 연관된다. 구약의 모든제사를 단번에 영원히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속죄는 죄인을 하나님과 영원히 화목하게 한다(히 9:12).

# 묵상
동문으로 들어간 여호와의 영광 ( 43:1 )
동문은 성전의 정문이라고 할수 있는데, 본구절에서는 이전에 동문으로해서 성전을 떠나갔었던 여호와의 영광이(10:19; 11:1, 23) 다시 동문으로 되돌아 온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온갖 죄악과 불의함으로인해서 이스라엘을 떠나신 여호와의 영광이 되돌아 온다는 사실은, 곧 여호와의 임재하심이 여호와의 백성가운데서 완전히 회복된 것으로 하나님의 통치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광으로인하여 빛나는 땅 ( 43:2 )
‘땅이 그영광으로 인하여 빛난다’는 본문의 표현은, 모세시대의 성막이나 솔로몬성전의 봉헌식때 있었던 여호와의 현현에 관한 묘사와 얼마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이전에는 ‘가득한 구름’으로 언급되었던 반면에 이제는 ‘영광의 빛’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께서 회복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땅은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는 모든곳, 곧 전우주적 의미로서의 지역을 포괄하여 의미합니다. 그래서 떠나셨던 하나님의 영광이 이세계 전체에 임재함으로 땅의 부정함이 제거되고 거룩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종말에 전우주에 충만할 하나님의 영광을 암시합니다(계18:1; 21:11, 23).
이스라엘에게 보일 성전 ( 43:10 )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 전을 보이라고 명하신 것은, 새로운 계시를 백성에게 선포하라고 명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성전형상의 계시는, 새로지은 성전을 보면서 그곳에서 그들이 저질렀던 부끄러운 죄악, 즉 우상숭배를 기억하며 또한 이제 그들에게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갖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전의 환상은 열국에서 포로로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고국으로의 귀환과 제사에 대한 기대를 갖게하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속죄제물을 삼는 흠없는 숫염소 ( 43:22 )
이말은 죄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백성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속죄제물이 되셨음을 의미합니다. 속죄일에 두마리의 염소중 제비를 뽑아 한마리는 여호와께 드리고 한마리는 광야로 보내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염소는 아사셀 염소라고 불리웠습니다. 이와같이 백성의 죄를 다 지워 광야로 보내진 아사셀 염소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백성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 해설
하나님의 영광의 귀환과 제단척량 ( 43 )
유다를 심판하시사 멸망을 결정하실때에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떠나셨습니다(참조, 겔10:18-19). 유다와 및 이스라엘이 회복된뒤 하나님께서는 다시 돌아오십니다. 본장은 바로 그와같이 돌아오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동시에 새성전의 제단을 척량함으로써 새시대에 드려져야할 제사가 어떤것이어야 하는가를 말해줍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의 귀환
1) 동문으로의 귀환
성소의 구조는 동쪽으로부터 성소로 들어가는 현관이 있고 그다음에 성소가 있고 그 맨뒤에 지성소가 있는 형상입니다. 다시말하면 지성소는 맨서쪽에 있으며 따라서 동문으로 들어가면 지성소까지 직선으로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외의 문들은 지성소까지 가기위해서는 돌아 들어가야만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서론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나가실때도 동문으로 나가셨고 돌아오실때에도 동문으로 돌아오십니다.
a.동문위에 머무심(겔10:19)
b.동문의 특별함(겔46:1)
2) 영광의 충만
동문으로 나갔다가 동문으로 다시 되돌아오신 하나님의 영광이 지성소에 좌정하시사 여호와의 영광이 전안에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성전 안에 충만하게 된것입니다. 이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이 거룩하고 완전하고 강력하시어 하나님의 성전, 곧 하나님의 백성들(참조, 고전6:19;계21:2)가운데 충만히 거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줍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지금 자신의 백성들이 계시는 곳마다 충만하게 임재하십니다.
a.영광의 충만(레9:23)
b.성령충만(엡5:18)
3) 영원히 거하심
본문에 의하면 다시 돌아오신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계십니다. 다시오신 하나님의 영광은 이전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자기백성들과 영원히 함께 거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백성들에게 되돌아오신 하나님께서는 다시 떠나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그들과 함께하십니다(참조, 계21:3).
a.항상 함께하심(마28:20)
b.하나님과의 동거(계21:3)
2.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할 일
1) 우상숭배 제거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권능에 의해 새언약하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옛언약하에서 보다 더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그것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이보답의 첫번째 행동은 우상숭배와 우상숭배자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들로서 마땅히 우상을 버려야하며, 또한 우상을 숭배하여 물을 흐리는 악인들을 그들가운데서 제거해야 합니다.
a.하나님 사랑(마22:37)
b.악한자를 내어쫓으라(고전5:13)
2) 회개
회개가 없이는 죄용서함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대속제물로 보내어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인간이 그의 죄에서 속죄함을 받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속죄의 근거가 될뿐 그속죄의 효력이 모든인간에게 무차별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속죄의 효력은 오직 하나님앞에 자기죄를 고백하는 자들에게 미칩니다. 따라서 새언약하에 있는 자들도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참조, 요일1:5-10).
a.회개와 천국(마3:2)
b.자백과 용서(요일1:9)
3) 말씀준행
죄에서 떠나 회개하였다는 것으로 모든상황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죄에서 떠나 회개함으로 의에 속한자가 되었다면, 그는 자신이 의에 속한자라는 것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이 나타냄의 시금석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참조, 요14:15-24). 즉 믿음의 열매를 맺느냐 못맺느냐 하는 것입니다(참조, 약2:14-26). 말씀준행은 온전한 백성이 되기위해 반드시 걸어야하는 연단의 과정이며 하나님나라 건설을 위한 성도의 여정입니다.
a.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14:21)
b.죽은 믿음(약2:17)
3. 제단
1) 정방형
정방형이란 네각이 동일한 길이를 가진 사각형을 말합니다. 이 사각형은 안정과 완전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제단의 형태가 정방형이라는 것은 자기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죄용서가 완전하고 영원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a.죄용서의 견고함(사1:18)
b.구원의 확실성(요10:28)
2) 피의 제사
인류최초로 제사를 드린 가인과 아벨중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열납하셨습니다. 그이유는 아벨의 제사가 피의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곧 생명을 바치는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새언약하에서는 피있는 제사가 열납됩니다. 그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며 우리의 헌신이어야 합니다. 이 두가지가 있을때 온전한 제사가 가능합니다.
a.영적예배(롬12:1)
b.피제사(히9:22)
3) 계속 드려져야할 제사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는 쉬지않고 드려져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쉬지않고 내려지는 것과 대응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사이의 사랑이 교차할때 온전한 관계가 지속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언약하에서도 하나님은 쉬지않는 제사를 원하십니다.
a.아침마다 바쳐야할 상번제(겔46:15)
b.쉬지말고 기도하라(살전5:17)
결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사 은혜와 권능으로 우리에게 돌아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는 그은혜를 따라 옛죄악을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가운데 모든 일상속에서 의를 행하며 죄악을 제거하여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화시키는 것입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45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4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2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1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0장 - study  (0) 2022.12.12

# Study

Ⅰ. 성전의 환상〔7〕 42:1-14
선지자는 성소에 관하여 매우 정확한 모습을 본후 이제 다시 바깥뜰로 인도된다.
(1) 우리에게는 매우 복잡하게 보이는 작은방들의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단지 총괄적으로 다음의 사실만 알수 있을 뿐이다.
1) 공중의 예배하는 장소인 성소주변에는 사실들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뜰에서 예배할뿐만 아니라, 예배전후에 각자의 방에 들어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은밀한 중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해야 한다.
2) 이 작은방들의 수효는 매우 많았다. 이방들은 삼층으로 되어있었다(5,6절). 방들이 이렇게 많은이유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섬기는 여선지 안나같은 사람들을 위해서이다(눅 2:37).
3) 이 작은방들은 비록 은밀한 곳이었지만 성전가까운 곳에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를 대중가운데 헌신할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해서였다.
4) 이 방들앞에는 광이 십척되는 '통한 길'이 있었다(4절). 이길을 통하여 이 방들에 거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얘기하며 체험을 나눌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를 위하여 지어졌고 기독교인들은 성도들간의 교제를 위하여 지어진 존재들이다.
(2) 이 방들의 용도가 지정되어 있다(13,14절).
1) 이것들은 여호와앞에 나아가는 제사장들을 위한 방이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거룩한 방'이라고 불리어진다. 왜냐하면 거룩한 것들을 다루는 직무를 맡은사람들이 봉사하는 기간동안 사용할 방이기 때문이었다.
2) 제사장들은 그곳에 '지성물'들을 두어야 했다. 즉 자기들의 몫으로 할당된 제물의 일부를 두어야했던 것이다.
3) 제사장들은 그곳에 각자의 의복을 두어야 했다. 그의복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제단에서 수종드릴때 입으라고 지정해주신 것이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온후 제사장들의 의복을 준비했던 기록을 찾아볼수 있다(느 7:70,72). 제사장들은 제사를 마친후에 의복을 그곳에 벗어두고 '백성의 뜰로 나갈때'에는 즉 그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그들의 질문에 답해주기 위하여 나갈때에는 일반백성들이 입는것과 같은 '다른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Ⅱ. 성전의 환상〔8〕 42:15-20
우리가 밟고있는 거룩한 땅이 얼마나 넓은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이 신비한 성전을 척량하는 기록이 나온다.
(1) 그것은 각방향으로 오백척씩이었다(16-19절). 척량하는 장대 한척은 약 3야드반이니 한쪽길이가 약 1마일에 이르는 것이었다. 이 신비한 성전의 외곽이 이토록 넓은것은 복음시대에 교회가 현격하게 팽창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의 전에는 수많은 이방인들을 위한 공간이 예비되어야만 하는 것이다(사 49:18;60:4).
(2) 규모가 이렇게 큰이유는 '거룩한 것과 속된것' 사이에 거리를 두어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인 것들과 거룩한 것들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이름과 다른이름들, 하나님의 날과 다른날들, 그리고 하나님의 책과 다른책들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 핵심
42:1-20
성전의 제사장 방들을 설명하고, 성전전체의 크기를 측량하는 내용이다.
제사장들의 방(42:13,14)
이 방의 용도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지성물을 먹는 곳이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된 자로서, 먹고마시는 일까지도 성별되어야 했다. 둘째로, 성물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하나님께 봉헌된 제물은 거룩한 것이므로, 특별한 곳에 구별하여 보관해야 했다. 셋째로, 제사장이 의복을 갈아입는 곳이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제사예복과 평상복을 엄격히 구분해서 사용했다. 제사를 필한 제사장들은 거룩한 방에서 일상복으로 갈아입고난 다음 성전밖으로 나갈수 있었다(레 16:23,24).

# 묵상
거룩한 방의 용도 ( 42:13 )
여호와를 가까이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고 또 그것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제사장들은 제사음식을 성소에서 먹어야 했습니다. 솔로몬성전에서는 제물을 성전 안뜰에서 먹게했으나, 에스겔이 환상중에 본 성전에서는 그것을 거룩한 방에서 먹게했던 것입니다. 다만 화목제물은 제사드린 자와 제사장이 함께 먹는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방에서 먹지 못합니다. 또한 이 방에서는 성전에서 수직하는 제사장들이 예복을 갈아입기도 했습니다. 즉 제사장들은 제사를 마치고나면 바깥뜰로 나갈때에는 제사예복을 벗어두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후에 나가야했기 때문입니다.
거룩과 속됨의 구별 ( 42:20 )
전을 다 척량한후에 척량한 사면(四面)담은 6척 정도로서 매우 낮은 담이었는데, 이것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용도로 세워졌습니다. 한편 ‘속된’ 것은 원어상 ‘평범한’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거룩한’ 전을 일반적인 영역에서 구분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 해설
제사장들의 방 척량 ( 42 )
겔40-41장에서는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건물인 성전외벽과 바깥뜰문, 그리고 안뜰문과 성소를 척량했습니다. 그뒤를 잇는 본장은 성전의 남쪽과 북쪽뜰에 각각 두개씩 있는 골방을 설명합니다. 이 골방들은 제사를 수직하는 제사장들이 쉬는 장소인 동시에 거룩한 의복을 갈아입는 곳이며, 또한 제물을 비축해놓는 창고이기도 했습니다.
1. 구별되어야할 제사장
1) 외부로부터의 구별
앞에서 우리는 성전 남과 북편에 있는 골방들이 제사장이 제사를 수직하기 전후에 거룩한 의복을 갈아입는 장소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장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당시에는 외부로부터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거룩하지 않은 외부로부터 구별되어 성전안에 들어와서 성전 가장 거룩한 곳에서 제사를 준비하고 제사를 수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a.몸의 구별(민6:2)
b.이스라엘을 구별하신 여호와(렘1:5)
2) 속된 것으로부터의 구별
제사장이 성전밖에서 들어온뒤 거룩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며 또 제사를 끝낸뒤에는 거룩한 옷을 세상밖으로 가져가지 않기위해 거룩한 옷을 갈아입고 나가야 한다는 것은 제사장이 세상의 속된 것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 줍니다. 이와같이 예배를 집행하는자는 세상의 속된것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a.속된 것을 분별하고(레10:10)
b.세상사랑은 하나님사랑과 반대(요일2:15)
3) 속된 생각으로부터의 구별
하나님은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참조, 잠16:2). 따라서 제사를 드리는자는 그몸만 외부와 세상의 속된 것으로부터 구별되었다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참제사를 드리려면 드리는 자가 그마음까지도 모든 속된 것과 악한 것으로부터 떠나 영육간에 거룩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전인격을 하나님께 내어맡긴채 진리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a.지켜야할 마음(잠4:23)
b.마음을 다하여(마22:37)
2. 제사에 전념해야할 제사장
1) 전용공간의 필요
성전 남북편에 각각 두개씩 있는 골방들은 제사장들의 휴식을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 바른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제사를 수직하는 일은 전심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기때문에 힘든 일입니다. 따라서 제사를 수직하는 자는 다음제사를 위해서 휴식을 필요로 합니다. 이휴식에는 육체적 휴식뿐만 아니라 정신적 휴식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공간적인것 뿐만아니라 시간적인것도 포함됩니다. 제사장은 그와같은 조건하에서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영력을 재충전함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전념할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점에서 오늘날 목회자들도 그들이 예배에 전념할수 있도록 여러가지 필요한 것들을 제공받아야 합니다.
a.합당한 자의 집에서 머묾(마10:11)
b.유월절장소를 제공한 사람(마26:18-19)
2) 제물의 필요
제사를 수직하는 자가 제사때에 드릴 제물을 직접 세상에 나가 마련할수는 없는 일입니다. 물론 급박한 상황이라면 그러한 경우에 닥칠수도 있겠지만 평상시에는 그런일이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때 제사장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일에 전념할수 없게되기 때문입니다. 이런이유로 제사장들은 그들이 드릴 제물을 백성들로부터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비록 신약시대이지만 지금도 이규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교인들은 그들의 소득의 일부를 하나님께 바치고, 목회자는 그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준비하고 집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 예물바치는 것을 마땅히 여기는가운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a.백성이 바쳐야할 제물(레4:14)
b.레위지파의 안심(느10:39)
c.아낌없는 바침(행4:32)
3. 공급받아야할 제사장
1) 공적활동를 위한 재물
제사장은 제사수직의 의무뿐만 아니라 성전을 유지보존시키고 그제반 사항들을 지켜야할 의무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사장에게는 그일을 감당할 유지비가 필요합니다. 백성들은 따라서 그유지비를 공급해야 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헌금을 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자가 받아야할 권리이며, 성도가 해야할 의무입니다.
a.베드로를 대접한 고넬료(행10:48)
b.곡식떠는 소와 말(고전9:9)
2) 가족부양을 위한 재물
제사장은 그의 모든시간과 능력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수직하는 일에 바치기때문에 가족부양을 위한 노동을 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가족의 생계를 일반백성, 곧 성도들이 책임지도록 명령하셨습니다(참조, 신14:27). 이러한 이유로 성도는 목자가 그의 가족을 잘 부양하도록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야 합니다.
a.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하고(말3:10)
b.제사장은 제단과 함께 나눔(고전9:13)
3) 영성을 위한 뒷받침
제사장이 제사를 잘못드리면 백성들 또한 그영향을 받게됩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제사장이 하나님앞에 온전히 설수 있는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배려에는 물질적인 것도 있겠고 정신적인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볼때 성도는 목자의 영혼을 위하여 많은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a.목자를 위한 기도(살후3:1-2)
b.목자에게 바쳐야 할것(히13:17)
결론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제사는 분명 다릅니다. 신약시대에는 모든사람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수 있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도 예배를 전담하는 목자의 역할은 막중합니다. 그들의 영성과 능력에 따라 양들의 가는길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양들은 그들의 목자의 거룩과 능력과 전력투구를 위해 가진것을 나누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44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3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1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0장 - study  (0) 2022.12.12
에스겔 39장 - study  (0) 2022.12.12

# Study

Ⅰ. 성전의 환상〔5〕 41:1-11
(1) 선지자는 뜰을 본후 드디어 '성소'에 이르렀다(1절). 만일 우리가 신앙의 초보단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지시들을 성실히 수행하고 그럼으로써 유익을 얻는다면, 우리는 한걸음 더나아가 하늘나라의 비밀을 접하게 될것이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뜰에 기꺼이 거하는 자들은 결국 그의 성소에까지 이르게 될것이다.
(2) 우리 주 예수께서 이성전이 헐릴것에 대해 말씀하셨을때 듣는이들은 예루살렘에 두번째로 세워진 이성전을 의미하는줄 알았으나 그는 성전이신 자신의 몸을 의미하신 것이었다(요 2:19,21). 에스겔의 환상은 그 두가지에 다 관련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집'(딤전 3:15)이라고 불리우는 성전이신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과 성령이 거하는 '살아있는 성전' 곧 그몸의 모든지체를 다 포함하는 것이다.
(3) 이성소의 '문벽'은 서로 멀리 떨어져있었다. 즉 결과적으로 문이 넓어진 것이다. 율법시대와 비교해보면 요즈음은 교회로 인도하는 문이 넓다고 말할수 있다. 그문을 좁게 만들었던 분리의 벽, 곧 의식법이 없어진 것이다.
(4) 지성소는 정방형이었다(4절). 새예루살렘도 정방형으로(계 21:6), 이는 안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5) 윗층은 아랫층보다 넓었다(7절). 재목들은 단단히 묶였다(하나님께서는 높이 지으시더라도 단단하게 지으신다). 우리가 가장 거룩한 믿음안에서 스스로를 높이 지을수록 살아있는 성전인 우리마음은 점점더 넓어진다.

Ⅱ. 성전의 환상〔6〕 41:12-16
(1) '서편 뜰뒤에 있는 건물'(곧 성전뒤쪽에 있는 건물)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12절). 이건물은 뜰안에 독립적으로 세워져 있었다. 이 환상중에서 이부분은 아마, 이방인들사이의 교회가 유대인들의 성소못지 않으며 오히려 전혀 다른특성을 가지고 있다는점을 의미하는 듯하다.
(2) 성소와 다른건물의 장식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안쪽벽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로 장식되었는데 그것들은 번갈아가며 새겨져 있다. 각그룹들은 두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요 하나는 '어린사자의 얼굴'이었다(19절). 이것들은 인간보다 지혜롭고 사자보다 용맹한 천사를 의미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승리의 종려나무가 그앞에 놓여져있기 때문이다.
(3) '외전과 내전의 문설주'들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그것들은 '네모졌다'(21절).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에서는 성소의 문이 이것보다 좁았었다. 그러나 이네 그문은 넓어졌다. 왜냐하면 복음시대에는 '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구약시대보다 더욱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이다(히 9:8). 이문들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다(23,24절).
(4) 분향단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본문에는 '나무제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22절). 만일 향을 이위에서 피운다면 이제단은 불에 타버릴 것이다. 따라서 이는 복음성전에서 피워지는 향은 순전히 영적인 것이요 그불도 영적인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제단은 '상'이라고 불리었다. 이제 우리가 할일은 이미 바쳐진 위대한 희생제물로 인하여 여호와의 상에서 잔치를 즐기는 일밖에 없다.

# 핵심
41:1-26
성소와 지성소 및 성전 내부장식에 대해 상세히 묘사한다.
에스겔성전과 솔로몬성전(41:1-26)
이 두성전의 모습은 성소바깥문(1,2절; 왕상 6:2), 지성소의 벽과 골방(5-11절; 왕상 6:5-10) 등의 크기나 규모에 있어서 유사하다. 그러나 솔로몬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속에서 건립된 것인 반면에, 에스겔성전은 바벨론 포로생활중에 환상을 통해 계시된 상징적인 것이다. 또한 솔로몬성전의 주된 의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중에 거하신다는 약속에 있으나, 에스겔성전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는 신약교회를 예표하고 있다(히 9:23-26).

# 묵상
척량하는 자가 들어간 곳 ( 41:3 )
본절에서 에스겔은 들어가지 못하고 성전을 척량하는 사람만이 들어갔다고 하는것은 바로 그곳이 내전, 곧 지성소임을 의미합니다. 이는 에스겔도 제사장이므로 외전 곧 성소에는 들어갈수 있었으나 대제사장만이 들어가는 지성소까지는 들어갈수 없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성소와 지성소의 휘장이 갈라져 이제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믿는 모든사람이 하나님앞에 나아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외전 ( 41:15 )
외전은 곧 성소를 말합니다. 솔로몬의 성소에는 향단과 진설병상과 등대가 있었습니다. 이곳의 등불이 밤낮 꺼지지않도록 돌보는 것이 제사장들의 주된 임무였습니다. 그리고 지성소가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곳이었다면, 성소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곳이요 그분과의 만남을 요청하는 곳입니다.
그룹 ( 41:18 )
하나님을 모시고 다니는 일을 하며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성을 나타내는 존재로서, 에덴동산을 지키고(창3:24) 하나님께서 타고 날으시기도 합니다(시18:10). 이그룹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천사들중에 제일 높은지위의 존재들로 이해했습니다. 에스겔은 지성소에도 새겨진 이그룹에 대해서 처음에는 사람, 사자, 독수리, 소의 형상을 한것으로 보았으며, 환상중의 성전에서는 사람과 어린사자의 얼굴을 한 그룹을 보았습니다.
제단의 재료 ( 41:22 )
본문에 언급된 제단은 나무제단인데, 본래 솔로몬성전에서는 놋제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성소안에 나무제단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속죄제물이 되셔서 나무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막힌담을 허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제단위에 태워진 희생제물과 속죄피를 의지하여 하나님앞에 나아갔듯이, 성도들 역시 참 희생제물되신 그리스도만을 의지해야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게됩니다.

# 해설
새성소 척량 ( 41 )
전장은 성전의 바깥뜰로 들어가는 네 문과 그주변 부속물의 크기와 형태를 말함으로써 새성전의 의미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 다음장인 본장은 바깥뜰을 지나 안뜰문과 및 그주변 부속물의 크기와 형태,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의 크기와 형태를 말함으로써 새성소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알려줍니다.
1. 성소의 거룩성
1) 선지자가 들어가지 못함
성전바깥뜰 문으로부터 성소까지 선지자 에스겔은 인도자와 함께 이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지성소앞에서 에스겔은 멈출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를 척량하기위해 천사만이 그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에스겔은 제사장이었지만(참조, 겔1:3), 지성소에는 들어갈수 없는 자격이었기때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이사실은 지성소가 얼마나 거룩한 장소인가를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는 거룩한 곳이어서 에스겔과 같은 선지자도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a.거룩한 회막(출29:43)
b.거룩한 성(계22:19)
2) 입구의 좁아짐
성소입구 현관의 넓이는 14규빗이었습니다. 성소로 들어가는 입구의 넓이는 10규빗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는 다시 6규빗으로 줄어듭니다. 성소현관에서 지성소로 들어갈수록 그입구가 점점 좁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성소로 갈수록 장소가 거룩해지기때문에 거룩한 장소에 접근하기 어렵도록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지성소로 갈수록 그곳은 거룩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a.하늘에 닿은 사다리(창28:12)
b.좁은 문(마7:13-14)
3) 두그룹과 종려가지 형상
여기서 말하는 그룹은 에스겔이 첫 이상중에 본 그룹과 다른그룹입니다. 첫 이상중에 본 그룹은 하나님을 수종하는 그룹이며(참조, 겔1:4-10), 여기서의 그룹은 지성소안에서 법궤를 수호하는 그룹입니다. 이 두그룹의 얼굴이 사람과 사자라는 것은 지혜와 왕의 용맹과 지도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수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이 두그룹이 생명력과 영광을 상징하는 종려나무 형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두그룹이 하나님의 거룩을 우러러보고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지성소가 거룩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a.그룹들과 종려(왕상6:32)
b.종려가지를 든 백성들(계7:9)
2. 구원의 완전성
1) 정방형 지성소
천사가 지성소에 들어가서 지성소를 척량해보니 지성소는 가로 및 세로가 각각 20규빗이 되는 정방형이었습니다. 정방형이란 모든사각이 같은크기로 구성되어 있어 흐트러짐이 없는 안정된 형태입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장소인 동시에 이스라엘 모든백성들의 죄악을 사함받기위해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들어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죄용서를 받는 장소입니다. 이러한 장소가 안정을 상징하는 정방형의 형태를 하고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이 완전할뿐 아니라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완전하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a.성막에 충만한 영광(출40:34)
b.구원의 확실성(요10:29)
c.하나님의 해방(롬8:1-2)
2) 두그룹과 종려가지
앞에서 종려가지는 생명력과 풍요, 그리고 영광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종려가지는 그외에도 승리라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종려가지는 경기에서 우승한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시지만 이세상 역사가 지속되는한에 있어서는 선과 악의 싸움의 연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죄악가운데서 다 구원하시기까지 악의 세력과 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영광이 지성소안에 종려가지의 형상으로 새겨져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승리하시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하나님의 자기백성 구원의 필연성과 완전성을 종려가지 형상이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a.세상을 이기심(요16:33)
b.십자가의 승리(골2:15)
c.승리하신 다윗의 뿌리(계5:5)
3. 성도의 삶에 주는 교훈
1) 신앙의 단계성
새성전은 성전밖의 지대보다 높은곳에 위치했습니다. 성전안의 성소는 성전지대보다 높은곳에 있었습니다. 성소안에서 지성소는 성소보다 좁은문을 통해 들어갔습니다. 이모든 것은 지성소까지 이르려면 보다 거룩하고 고상한 단계를 거쳐가야 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상징은 성도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려면 신앙의 단계를 거쳐야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a.그리스도(엡4:13)
b.지식의 자람(골1:10)
2) 영적삶의 온전성과 치밀성
성전은 전체적으로 매우 짜임새있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전체 100규빗의 정방형안에 성전의 각건물들과 부속물들은 한치의 빈틈없이 건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사실을 통해 우리는 또한 신앙인의 영적삶이 치밀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성도의 삶은 대충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삶에는 완전, 곧 성화를 위한 치밀성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a.온전하라(마5:48)
b.두렵고 떨림으로(빌2:12)
3) 성도의 거룩성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성전은 그전체가 거룩 자체였습니다. 성전은 세상과 다른, 악인이 범접할수 없는 거룩함 그자체였습니다. 이것은 성전된 몸을 가진(참조, 고전6:19) 성도역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줍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a.거룩한 구별(레11:44)
b.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롬6:22)
결론
새성전은 옛성전보다 훨씬 거룩하고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옛언약하에서보다 새언약하에서의 하나님의 은혜가 크며 그구원이 확실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줍니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는 크고 그구원은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운데 그말씀에 따라사는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43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2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0장 - study  (0) 2022.12.12
에스겔 39장 - study  (0) 2022.12.12
에스겔 38장 - study  (0) 2022.12.12

# Study

Ⅰ. 성전의 환상〔1〕 40:1-4
(1) 이환상을 본 시기에 대해서 기술되어 있다. 그때는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간지 25년째 되는 해였다. 어떤이들은 이때가 처음 포로로 잡혀간지 33년째라고 계산하고 있으나 본문에는 '성이 함락된후 십사년' 되는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땅으로 가시되. 선지자는 멸망당해 황폐해지고 버려진 예루살렘으로 이끌려갔다. 이것은 선지자에게 매우 비참하게 보였을 것이다.
(2)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상중에' 이스라엘땅으로 이끌려갔다(2절). 이번에는 예루살렘의 영광에 즐거운 광경을 보기위하여 간 것이다. 그는 '극히 높은 산위에' 세워졌다. 이는 흡사 모세가 비스가산 정상에 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두번째의 '약속의 땅'이 된 그땅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 산꼭대기에서 그는 '성읍의 형상같은 것'을 보았는데 그성읍은 그대로 하나의 성전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거주하기 위한 성읍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위한 성전이었다. 왜냐하면 지상의 교회안에서는 하나님이 인간들과 같이 거하시며 하늘의 교회에서는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 때문이다.
(3) '모양이 놋같이 빛난사람 하나',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성읍의 자세한 부분은 보여주신다(3절). 그리스도를 통해야만이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전의 온갖 유익과 특권을 누릴수 있게되는 것이다. '놋같이 빛나는' 그의 외모는 그가 광채되시는 것과 강한 분이시라는 점을 암시해 준다.
(4) 이성읍 혹은 성전의 규모는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 혹은 막대기로 척량되어졌다(3절).
(5) 선지자는 여호와께로부터 이계시를 받아 교회에 완전하고 완벽하게 전달하라는 임무를 받는다(4절).

Ⅱ. 성전의 환상〔2〕 40:5-26
척량하는 자의 손에 들려있는 '척량하는 장대'에 대해서는 3절에 이미 언급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장대의 정확한 길이를 알게된다(5절). 그길이는 여섯척(규빗)이었는데 여기서 사용된 척은 보통척이 아니고 성전을 재는 척으로, 보통척보다 '손바닥 넓이'(약 4인치)가 더 긴 척이었다. 보통척은 18인치였는데 여기 쓰이는 척은 22인치였던 것이다(참조. 겔 43:13). 어떤학자들은 이장대가 여섯 보통척에다가 전체길이에 한손바닥 넓이만 더한 것이라고 해석하지만 전자가 더타당해 보인다. 이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1) 집바깥 사면에 담이 있었다. 그담은 온집에 빙둘러 있었는데 이는 세상에 교회의 분리를 의미한다.
(2) 방이 붙어있는 여러문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1) 척량자는 '동향한 문'에서부터 일을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그분은 성전의 가장 낮은 끝으로 들어갈때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문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지성소는 서쪽끝에 있었다. 이제 이문에 대한 설명중 다음사항들을 주목하도록 하자.
① 그는 '층계를 올라갔다'(6절). 왜냐하면 하나님께 예배하려 할때 우리는 위로 올라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4:1절의 부름에서도 이와같은 말씀을 하셨다.
② 그문에 붙어있는 방들은 가로 세로가 각6척씩 되는 작은 방들이었다(7절). 이방들은 그 전에서 제사드리는 일에 봉사하는 사람들이 거하는 방이었다.
③ 이방들은 네모반듯하고 한쪽변의 길이가 각각 한장대씩으로, 이는 그곳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사이에 평등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④ 이방들은 매우 많았다. 이는 '내아버지 집에 거할곳이 많도다'(요 14:2)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이것은 하늘에 있는 집과 땅위에 있는 집이 모두 마찬가지이다. 어떤이들은 이 작은방들이, 거대한 교회 곧 전우주적인 교회의 일부분을 이루는, 성도들의 특별한 모임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⑤ 그는 현관을 척량하였다(14절).
⑥ 이현관은 60척이었다. 어떤이들은 고레스왕이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건하라는 칙령에서 전의 높이를 60척, 즉 약30야드 남짓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을때 이것이 문자그대로 성취되었다고 생각한다(스 6:3).
⑦ 작은방들과 문과 현관에는 창이 있었고(즉 아래에 있는 회랑을 향한 창문이었다) 그둘레에는 창이 있었다(16절). 이것은 하늘로부터 오는빛이 교회를 환히 비추는 것을 상징한다. 그 작은방에도 희미하게나마 빛이 있었다. 그러나 그창문들은 좁은 창문이었다. 지상의 교회가 발견하는 사실들은 나중에 다음세상에서 볼수 있는 것에 비하면 무척이나 좁은것에 불과하다.
⑧ 여러뜰에 대하여 설명되었다. 가장 외곽의 것으로부터 그안쪽의 뜰과 오로지 제사장만이 드나들수 있는 가장 안쪽의 뜰까지 설명되었다. 이 뜰들은 각기 현관 혹은 둘레에 회랑이 있었다. 이는 성전에 봉사하는 사람들을 바람이나 기타 나쁜 일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⑨ 문기둥 위에는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었다(16절). 이는 하나님의 전 뜰에서 '의인이 종려나무같이 번성함'을 의미하는 것이다(시 92:12). 이들은 마치 종려나무처럼, 고난의 짐에 눌리면 눌릴수록 더욱 단단하게 자랄 것이다.
⑩ 뜰안의 박석깔린 땅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17,18절). 이것은 반석으로 포장된 것을 의미하는데 그색깔은 불타는 석탄같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때 이세상의 가장 빛나는 영광이 우리 발밑에 깔리기 때문이다.
2) 북향한 문간(20절)과 남향한 문간(24절)은 '먼저 척량한 동향한 문'과 같았다(21절). 이성전에는 부와 지혜로 유명한 동방자손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동향한 문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북쪽과 남쪽을 향한 문들도 있었는데 이는 가난하고 덜 진보한 민족들도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새예루살렘에는 열두문이 있어서 동서남북 각방향으로 세개씩 향하고 있다(계 21:13). 이는 '동서로부터 많은사람이 이르러' 그곳에 앉을 것이기 때문이다(마8:11).

Ⅲ. 성전의 환상〔3〕 40:27-38
안뜰에 대하여 기술되어 있다. 안뜰의 척량은 남쪽문에서부터 시작하여(27절) 동쪽문을 지나(32절), 북쪽문으로(37절) 진행되어 간다.
(1) 안뜰로 들어가는 이문들은 바깥뜰에 있는 문들과 꼭 같다. 초신자였던 사람이 성숙한 기독교인이 된다하더라도 은혜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똑같은 것이다.
(2) 바깥뜰로 들어서는 각문간에는 일곱층계가 있었으나, 안뜰로 들어서는 각문간에는 여덟층계가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 점점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이세상과 그중에 있는 것들로부터 더욱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점을 특별히 나타내 준다(31,34,37절). 바깥뜰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은 보통사람들보다 일곱층계를 더올라가야 하지만 안뜰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은 그들보다도 여덟층계를 더올라가야만 한다.

Ⅳ. 성전의 환상〔4〕 40:39-49
(1) 안뜰로 들어가는 문현관에 있는 상들에 대한 설명이 기술되어 있다. 본문에는 '여덟상'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그위에서 희생을 잡는 소용'으로 쓰이는 것들이었다(41절). 그상들은 복음시대에 하나님의 전에 드려져야할 수많은 영적희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상들은 제사에 쓰일 고기들을 잡는 곳이었으며(43절) 또한 번제의 희생을 씻는 곳이었다(38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제단에 가까이 나아가기전에 손과 마음 즉 영적 희생물들을 씻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미 언급된 작은방들의 용도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다.
1) 그중 몇개는 노래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44절). 시편을 노래하는 것은 복음시대에 예배를 드릴때도 여전히 계속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모두 노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2) 나머지는 제사장들을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제사장이라함은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들' 즉 성전을 깨끗이 하고 유지보존하는 임무를 띤 제사장들과(45절),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을 모두 의미하는 것이다(46절).
(3) 제사장들만 들어갈수 있는 안뜰은 가로와 세로가 각 백척씩이었다(47절). '절앞에 있는' 제단은 안뜰의 중앙에 놓여있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제단이시며 희생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때면 언제나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4) 그 전에 있는 현관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다. 그현관은 우리에게, 하나님전에 나아갈때 성급하고 무모하게 서두르지 말것을 가르치고 있다. 오직 엄숙하고 장중하게 바깥뜰을 지나 안뜰을 통과한후 현관을 거쳐 나아가야만 한다.

# 핵심
40:1-49
이스라엘의 회복을 성전회복과 직결시키면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이스라엘을 향한 축복의 본질임을 상기시킨다.

# 묵상
선지자의 포로와 예루살렘 함락시기 ( 40:1 )
본문에서 선지자는 자신이 사로잡힌지 25년이 경과했으며, 또한 예루살렘성읍이 함락된때로부터는 14년이 지났다고 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에스겔 선지자가 소명을 받은지 20년이 경과한 때였습니다. 이처럼 선지자가 유다역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언급하면서 그시기와 연대들을 첨부하는 것은, 자신의 소명이나 예언내용이 분명히 역사적 사실가운데서 이루어진 진실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상 ( 40:2 )
꿈이나 황홀경 등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신비한 것을 보는것인데, 그것은 단순히 신기한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에스겔 등 많은 선지자들이 이상을 통해서 민족의 앞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알수 있었습니다.
성전척량에 대한 이상 ( 40:5-14 )
에스겔은 이상중에 손에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성전을 척량하는 한사람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천사가 이상중에 성전을 척량한 것은, 에스겔에게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대신 지을 새성전의 크기를 알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환상은 결국 파괴된 성전의 복구를 암시하며, 나아가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해줍니다.
성전의 각 문벽위에 새긴 종려나무 ( 40:16 )
종려나무는 신성함과 생명력 그리고 영광을 상징하는 나무로서 성전조각에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종려나무(Palm tree)는 대추가 열리는 대추야자나무로 아라비아 사람들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무였고, 더욱이 용도가 다양했기때문에 매우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이나무는 일반적으로 번영(시92:12)과 아름다움(아7:7,`8)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유대사람들은 성전과 회당, 그리고 돌에 이 종려나무를 새겼던 것입니다. 또한 이나무는 승리의 상징으로써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때 사람들이 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어 호산나를 외치기도 했습니다(요12:13).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층계 ( 40:31 )
이는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자는 누구나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돌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외부에서 성전의 바깥뜰로 들어오는데 일곱계단이 있고, 그곳에서 다시 안뜰로 올라오는데 여덟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의 수를 합하면 15입니다. 이는 성전에 올라가는 시편의 숫자와 일치합니다(시120-134편). 그래서 층계마다 한편의 시를 노래하며 하나님의 전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앞으로 나아가는 자의 모습은 이러해야 합니다. 실로 사람의 근본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분만을 즐겁게 해드리는데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하라고 가르쳤습니다(고전10:31).
속건제 ( 40:39 )
속건제는 하나님의 성물을 범하거나 이웃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쳤을때 이를 용서받기 위한 것으로써, 희생제물을 드리는 이외에 벌금을 물고 또 손해배상을 해야하며 제사장에게 배상액의 2할을 지급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속건제는 범죄한 것에 대해서 사함받기 위한 제사라는 점에서 속죄제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몸을 드려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씻김받을 필요없는 순결한 속죄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인해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은 것입니다.
새성전의 제사장의 자격 ( 40:46 )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사람으로는 레위의 후손중 사독의 자손들이 선택되었습니다. 솔로몬이 반역에 가담한 아비아달 대신에 사독을 대제사장으로 삼은후부터(왕상1:8; 2:26,35) 마카비시대까지 사독의 후손이 성전을 관할하는 대제사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역시 사독후손을 유일한 정통제사장 가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오늘날의 성도는 각각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몸을 관리하는 청지기이며,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입니다(고전3:16).

# 해설
새성전 척량 ( 40 )
에스겔 1장은 서론이며 2-32장은 범죄한 이스라엘과 이방의 멸망을, 33-39장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40-48장은 회복된 이스라엘이 누리게될 거룩한 삶을 예언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장은 40-48장 부분을 여는 첫장으로서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중심이 되는 성전의 크기와 의미를 척량이라는 상징적 행동을 통해 말해주는 부분입니다.
1. 바깥뜰과 문의 척량
1) 동문부터의 척량
에스겔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때로부터 이십오년이 지난해 정월십일에 에스겔은 새성전에 관한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환상가운데 천사가 새성전을 척량하였는데, 그천사는 성전으로 들어가는 네 문가운데 동문부터 척량하였습니다. 동문은 태양이 뜨는곳에 위치한 문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출입하는 거룩한 문입니다 (참조, 겔9:19;겔43:4). 또한 그문은 지성소로 곧장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천사는 성전 바깥문중 동문을 가장먼저 척량했습니다.
a.동문으로 나가심(겔10:19)
b.동문으로 들어오심(겔43:4)
2) 일곱계단
동문 척량때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나머지 다른 세문인 북문, 남문, 서문을 척량할때에 그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곱계단을 올라가야 한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일곱은 완전수이며 거룩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칠일동안 이세계를 창조하신 것에서 그수의 의미가 드러납니다(참조, 창2:1-3). 이렇게 볼때 이계단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자가 하나님앞에 거룩하고 완전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말해줍니다.
a.제칠일의 거룩성(출20:11)
b.일곱교회(계1:20)
3) 종려나무 장식
바깥뜰 문으로 들어가면 좌우에 세개씩의 방이 있고 그다음으로는 안으로 들어가는 현관이 있었습니다. 그현관 문벽위에는 종려나무 문양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종려나무는 생명력과 풍요, 그리고 영광과 승리를 상징합니다. 이것으로 볼때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에 이무늬가 새겨져 있다는 것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자가 종려나무와 같이 자신의 모든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쳐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a.종려나무 형상(왕상6:29)
b.종려나무(요12:13)
2. 안뜰과 문의 척량
1) 여덟계단
바깥뜰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곱계단을 올라가야 했으나 안뜰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덟계단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이것은 지성소에 점점 가까워지기 때문에 바깥뜰에서 안뜰로 들어가는 자는 더욱더 거룩해지고 온전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한편 그 두계단을 합하면 15가 되는데, 성전에 올라가면서 읊는 시의 편수도 15입니다(참조,시120-시134). 이로 보건대 이계단은 그편수와 맞춘 것으로 보여지며, 이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누구나 감사와 찬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줍니다.
a.온전하라(마5:48)
b.거룩한 자가 되라(벧전1:15)
2) 여덟제단 상
성전 안뜰문에 들어가면 여덟개의 제단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성전과 다른 형태입니다. 솔로몬성전에는 이처럼 많은 제단상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옛성전에 비해 새성전에 이처럼 많은 제단상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적제사가 많은것과 드려지는 영적제물도 많을것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줍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구나 하나님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릴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a.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요4:24)
b.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음(히10:19)
3) 수직하는 자들의 방
성전안에는 성전을 수직하는 자들의 방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한 장소입니다. 따라서 그곳은 관리되어야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은 성도된 우리의 몸입니다(참조, 고전6:19). 따라서 우리는 우리몸을 거룩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관리를 위해서는 항상 깨어 우리자신들이 죄의 길로 빠지지않도록 경계해야만 합니다.
a.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림(롬12:1)
b.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고후6:16)
3. 새성전 척량의 목적
1) 거룩성 회복
하나님께서 새성전을 척량하는 형식으로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목적은 크게 세가지입니다. 그가운데 첫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하여금 거룩성을 회복하게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성전을 세밀히 보여주심으로 자기백성들이 그성전과 같이 거룩히 되기를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a.진리로 거룩하게 하심(요17:19)
b.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심(엡1:4)
2) 제사회복
성전은 하나님께 나아가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올바른관계를 유지하도록 하기위해 세워졌습니다. 옛성전에서는 그역할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새성전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시는 것은 옛성전에서 이루지못한 그역할을 바로 감당케 하기 위함입니다. 바른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하시려는 것입니다.
a.열납된 아벨의 제사(창4:4)
b.참으로 드리는 예배(요4:23)
3) 하나님의 백성됨의 회복
하나님과의 바른관계 회복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은 하나님되시고 백성들은 백성되게 하는것을 의미합니다. 성전은 그중심 무대인 동시에 핵심 무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새성전을 보여주시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전히 하나님의 백성됨의 관계속에 있게 되었다는 것을 선포해주는 것입니다.
a.아들됨(롬8:14)
b.하나님과 함께하는 그백성들(계21:3)
결론
옛성전은 보이는 성전이요, 불완전한 성전이었습니다. 그성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새성전은 보이지 않는 성전이요, 완전한 성전입니다. 이성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바로 나아갈수 있습니다. 이성전은 큰의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며, 작은의미에서는 우리의 몸을 지칭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며 우리의 몸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42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41장 - study  (0) 2022.12.13
에스겔 39장 - study  (0) 2022.12.12
에스겔 38장 - study  (0) 2022.12.12
에스겔 37장 - study  (0) 2022.12.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