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최종 판결, 아름다운 회복

 

[욥기 42장 7절~17절]
7절 -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8절 -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9절 -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10절 -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11절 -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12절 -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13절 -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14절 -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15절 -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16절 -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17절 -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을 책망하시고, 욥에게는 그들을 위해 번제를 드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이전보다 더 큰 복을 주십니다. 욥의 형제자매와 지인들이 와서 함께 음식을 먹고 위로하며 재물을 나눕니다. 욥은 7남 3녀를 다시 두고, 140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4대를 봅니다.

 

1. 하나님의 판결 (7~9절)

욥과 친구들의 최종 판결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친구들에게 노하시고 그들의 말이 욥의 말처럼 '옳지 못하다'고 평가하십니다(7절). 친구들이 행위 화복 관계의 일치성을 기계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욥의 고난은 죄악의 결과입니다(4:7~9; 22:4~5). 친구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하느라 욥의 현실을 도외시했고, 하나님의 높으신 경륜을 '신앙과 교리'로 제한했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내 종'(7~8절, 4회)이라 부르십니다. 그 횟수가 욥기 서막에서 부르신 것(1:8; 2:3)의 2배입니다. 욥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문제 해결의 '유일한 가능성'인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그분을 향해 항변하고 탄식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이 친구들의 말이 옳지 못하다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 신념으로 누군가를 판단한다면 훗날 하나님이 어떻게 평가하실까요?

 

2. 욥의 회복 (10~17절)

욥의 회복에는 행복한 결말 이상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 중보 기도자의 삶을 보여 줍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자 하나님은 욥을 곤경에서 돌이키시고 갑절의 복을 주십니다(10절). 둘째, 관계 회복이 물질 회복에 우선합니다. 형제자매와 지인들이 그를 찾아와 위로한 일은 하나님 종으로서의 명예 회복과 더불어 이웃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합니다. 셋째, 아들뿐 아니라 딸에게도 동등하게 기업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는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모습입니다(15절). 욥의 삶은 단순한 회복에 그치지 않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법칙과 목적'에 좌우되는 삶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과 나눔'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 회복된 욥의 삶에 나타나는 특징은 무엇인가요? 나는 회복 차원에 머물지 않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소망하나요? 

 

오늘의 기도

욥의 회개와 중보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명예와 관계와 일상을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 인생의 밤은 왜 이리도 길까!'라고 탄식하던 자리에서 일어서겠습니다. 새 일을 행하시고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함으로 새날을 맞이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기 42장 1절~6절]
1절 -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절 -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절 -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절 -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절 -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절 -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배경 이해하기]
욥기는 욥이 당하는 고난의 문제에 대해 인과 관계적인 이유를 말해 주지 않습니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욥을 향한 친구들의 신랄한 비판과 자의적인 지적들은 욥의 마음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결국 하나님과의 대면을 통해 고난의 실마리를 찾아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42:5). 욥의 이 고백은 사도 바울이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이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보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 즉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경험함으로써 지금껏 가지고 있던 고난에 대한 이해의 범주가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런 후 고난 가운데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철저히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 이전에 누리던 것의 두 배에 해당하는 복을 주심으로써 그를 향한 신뢰와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관찰과 묵상]
1. 하나님이 창조 세계에 관해 말씀을 마치신 후, 욥이 자신을 돌아보며 했던 고백은 무엇인가요?(2~3절)
욥은 못 하실 일이 없는 주님 앞에서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린 자가 바로 자신이며,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했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했다고 고백합니다.
욥은 주권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며 “주께서는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2절). 이는 그 계획의 출처가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은 어떤 힘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음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나타내는 고백입니다. 이전에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무고함을 항변했지만, 이제는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3절)라는 고백을 통해 자신의 무지함과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주권을 고백합니다. 또한 앞선 항변들이 모두 무의미한 탄식이었음을 깨닫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3절)라고 고백합니다. 결국 욥은 자신의 제한적인 생각으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릴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정의에 대해 의문을 품었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은 욥은 자신이 직접 만난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마음 깊이 인정하게 됩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의 섭리를 다 헤아리지 못해 불평하며 항변했던 일을 나누어 보세요. 그때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해 주셨나요?
산 높은 곳에 있는 관광지를 방문하면 산 아래에서 보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망원경을 사용하면 수십 배, 수백 배 더 많은 것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은 이와 같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고, 바라는 것의 실제입니다.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 지식적으로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현장에서 생생하게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전에 욥은 하나님의 크신 뜻과 섭리를 깨닫지 못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시야가 넓어지고 높아지게 된 욥은 하나님의 섭리를 들을 뿐만 아니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더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으십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큰일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크심을 알게 됩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고 고통의 시간이라도 하나님을 신뢰할 때 고난의 신비를 알게 됩니다.

2. 하나님에 대해 귀로 듣기만 하다가 그분을 눈으로 뵌 후에 욥은 어떤 태도를 보였나요?(4~6절)
욥은 자신의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욥은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40:4)라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묻는 말에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대답해 보라고 하셨지만(38:3), 욥은 여전히 소극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위대한 창조주의 권능을 구체적으로 펼쳐내셨고, 욥은 완전히 굴복합니다.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6절)라고 반응합니다. 창조주의 권능 앞에 완전히 꿇어 엎드려 자복합니다. 이전까지 욥은 전통적인 믿음의 전수를 통해 귀로 들은 추상적인 지식을 신앙의 기초로 삼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경험한 하나님이 아니라 타인의 입에서 전해진 관념적인 지식으로서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직접 체험한 욥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현현을 목격하고 체험한 신앙인이 되었고, 이로써 욥에게 있던 의심과 의혹들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이제 욥은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6절)라고 고백합니다. 회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티끌과 재’는 욥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적용과 나눔
지적인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체험하는 신앙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가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묵상할 때 적용할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3P’입니다. 첫 번째는 ‘Personal’, 개인적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그에게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는 ‘Practical’,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추상적인 적용은 바른 적용이 아닙니다. 세 번째는 ‘Possible’, 실천 가능해야 합니다. 실천 가능한 묵상이 삶을 말씀의 길로 인도합니다. 이런 묵상은 신앙을 올바로 성장하게 만듭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경우를 보면 이 세 가지가 부재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지식적인 신앙입니다.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3P를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독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구체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신 말씀을 삶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욥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독대하는 시간을 가졌고,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받았고,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 욥은 마침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뜻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이전에 그가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고 관념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다면, 눈으로 하나님을 뵙고 난 후에는 체험적이고 생생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인간의 고난은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문제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풀어야 합니다. 고난은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게 하는 통로입니다. 이 땅에서 겪는 모든 고난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져갈 때,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게 하시는 그분을 만날 것입니다(롬 8:28).

 

[말씀으로 기도하기]
지금 당면한 고난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뜻이 있음을 알게 하소서. 이 고난을 제가 주님의 거룩한 자녀로 변화되는 기회로 여기며, 통회하는 마음으로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주님을 직접 만난 자의 온전한 회개와 변화

 

[욥기 42장 1절~6절]
1절 -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절 -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절 -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절 -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절 -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절 -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은 하나님이 못 하실 일이 없고 무슨 계획이든 못 이루실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고, 깨닫지도 알지도 못한 일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귀로 듣기만 하던 주님을 이제 눈으로 뵙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기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

 

1. 이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1~5절)

하나님은 못 하실 일이 없고, 원하시는 바를 모두 이루시는 분입니다(2절). 두 차례에 걸친 하나님의 발언을 들은 후, 욥은 그분의 주권을 확실히 인정합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3절)는 하나님의 말씀(38:2)을 인용한 것입니다. 욥은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더는 말하지 않겠다고 한 첫 번째 답변(40:5)을 바꾸어, 자신이 말할 때 들으시고 자신이 묻는 것에 답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요청합니다(4절). 지금까지는 듣기만 했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5절). '들음'과 '봄'의 차이는 계시의 확실성입니다. 두 번의 하나님 발언을 통해 욥은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응답을 경험하며, 그분을 '보게' 된 것입니다.

* 하나님에 관해 '듣는 것'과 그분을 '보는 것'은 욥에게 어떤 차이를 가져왔나요? 하나님을 보듯 내가 선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내가 회개하나이다 (6절)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고 본 후에 욥은 변화되었습니다. 6절은 다양한 번역이 가능합니다. 욥이 '회개'하는 모습을 강조하거나 새로운 '깨달음' 혹은 '위로'를 얻었음을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발언이 욥에게 사고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입니다. 욥은 과거 자신의 생각이 짧았고, 자신의 시각이 하나님의 높고 깊으신 경륜에 미치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욥은 이러한 변화를 선언하고 재확인합니다(6절). 이렇듯 욥은 하나님을 '봄'으로써 자기중심적인 시각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행위 화복 관계의 기계적 적용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을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 자신과 세계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욥의 관점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욥기를 통해 내 안에 변화된 관점(생각)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우주의 먼지보다도 작은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요. 욥기를 묵상하면서, 제 머리로 헤아릴 수 없었던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선명히 보게 되는 은혜가 있을 줄 기대하며, 고난마저 감사함으로 끌어안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거대한 피조물 위에 계신 전능한 창조주

 

[욥기 41장 1절~34절]
1절 -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2절 - 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
3절 - 그것이 어찌 네게 계속하여 간청하겠느냐 부드럽게 네게 말하겠느냐
4절 - 어찌 그것이 너와 계약을 맺고 너는 그를 영원히 종으로 삼겠느냐
5절 - 네가 어찌 그것을 새를 가지고 놀 듯 하겠으며 네 여종들을 위하여 그것을 매어두겠느냐
6절 - 어찌 장사꾼들이 그것을 놓고 거래하겠으며 상인들이 그것을 나누어 가지겠느냐
7절 - 네가 능히 많은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거나 작살을 그 머리에 꽂을 수 있겠느냐
8절 - 네 손을 그것에게 얹어 보라 다시는 싸울 생각을 못하리라
9절 - 참으로 잡으려는 그의 희망은 헛된 것이니라 그것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그는 기가 꺾이리라
10절 - 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킬 만큼 담대하지 못하거든 누가 내게 감히 대항할 수 있겠느냐
11절 -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12절 - 내가 그것의 지체와 그것의 큰 용맹과 늠름한 체구에 대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13절 - 누가 그것의 겉가죽을 벗기겠으며 그것에게 겹재갈을 물릴 수 있겠느냐
14절 - 누가 그것의 턱을 벌릴 수 있겠느냐 그의 둥근 이틀은 심히 두렵구나
15절 - 그의 즐비한 비늘은 그의 자랑이로다 튼튼하게 봉인하듯이 닫혀 있구나
16절 - 그것들이 서로 달라붙어 있어 바람이 그 사이로 지나가지 못하는구나
17절 - 서로 이어져 붙었으니 능히 나눌 수도 없구나
18절 - 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빛을 발하고 그것의 눈은 새벽의 눈꺼풀 빛 같으며
19절 - 그것의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어 나오며
20절 - 그것의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갈대를 태울 때에 솥이 끓는 것과 같구나
21절 - 그의 입김은 숯불을 지피며 그의 입은 불길을 뿜는구나
22절 - 그것의 힘은 그의 목덜미에 있으니 그 앞에서는 절망만 감돌 뿐이구나
23절 - 그것의 살껍질은 서로 밀착되어 탄탄하며 움직이지 않는구나
24절 - 그것의 가슴은 돌처럼 튼튼하며 맷돌 아래짝 같이 튼튼하구나

25절 - 그것이 일어나면 용사라도 두려워하며 달아나리라
26절 - 칼이 그에게 꽂혀도 소용이 없고 창이나 투창이나 화살촉도 꽂히지 못하는구나
27절 - 그것이 쇠를 지푸라기 같이, 놋을 썩은 나무 같이 여기니
28절 - 화살이라도 그것을 물리치지 못하겠고 물맷돌도 그것에게는 겨 같이 되는구나
29절 - 그것은 몽둥이도 지푸라기 같이 여기고 창이 날아오는 소리를 우습게 여기며
30절 - 그것의 아래쪽에는 날카로운 토기 조각 같은 것이 달려 있고 그것이 지나갈 때는 진흙 바닥에 도리깨로 친 자국을 남기는구나
31절 - 깊은 물을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하며 바다를 기름병 같이 다루는도다
32절 - 그것의 뒤에서 빛나는 물줄기가 나오니 그는 깊은 바다를 백발로 만드는구나
33절 - 세상에는 그것과 비할 것이 없으니 그것은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지음 받았구나
34절 - 그것은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이니라

 

하나님은 리워야단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리워야단을 밧줄이나 갈고리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입에서는 불길이 나오고, 몸은 돌처럼 튼튼해 창칼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은 리워야단이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에게 군림하는 왕이라고 하십니다.

 

1. 리워야단의 강력한 힘 (1~12절)

리워야단도 베헤못과 같이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동물입니다. 이사야서에서는 '날랜 뱀', '꼬불꼬불한 뱀'으로 묘사됩니다(사 27:1). 리워야단은 욥이 언급한 '리워야단'(3:8)이나 '바다, 바다 괴물'(7:12. 히, 얌/타닌)에 대한 언급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칠십인역 성경에서는 '혼돈의 용'을 가리킨다고 보고 '드라콘'(영, dragon)으로 번역합니다. 하나님은 수사학적 질문으로 욥이 리워야단에게 할 수 없는 일들을 열거하십니다(1~8절). 리워야단은 욥을 능가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 리워야단은 보기만 해도 기가 꺾이기에 그 누구도 포획할 수 없습니다(9~12절). 창조 세계 안에 혼돈의 세력을 상징하는 리워야단이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입니다.

* 하나님은 리워야단의 어떤 면을 부각하시나요?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인간의 힘을 능가하는 피조물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2. 리워야단의 외적 특징 (13~34절)

거대한 힘을 지닌 리워야단의 외적 모습 또한 놀랍습니다. 무시무시한 이빨이 있고, 눈.코.입에서 불꽃이 튀고 연기가 납니다. 리워야단이 일어서면 아무리 강한 용사라도 정신을 잃습니다. 칼.창.화살도 무용지물입니다. 리워야단이 지나가면 도랑이 파이고 큰 소용돌이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땅 위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두려움을 모르며, 모든 높은 자의 왕처럼 군림합니다. 하나님은 베헤못과 리워야단 같은,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강한 피조물을 언급하시며 그것들을 제어하는 권능이 그분께 있다고 하십니다. 이 세상이 혼돈 상황으로 변해 버렸다고 항변하는 욥에게 창조주의 권능은 위로와 깨달음을 주었을 것입니다.

* 피조 세계의 왕과도 같은 리워야단을 제어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힘은 어떠한가요? 하나님을 의지하며 내가 담대히 맞설 일(대상)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리워야단도 하나님 손바닥 안에 있는 피조물에 불과함을 깨닫습니다. 제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세력을 두려워하던 마음이 사라지게 하소서. 그것까지도 능히 제어하시는 통치자 하나님 앞에 경외함으로 순복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

 

[욥기 40장 6절~24절]
6절 -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7절 -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대답할지니라
8절 -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9절 -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천둥 소리를 내겠느냐
10절 - 너는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며 영광과 영화를 입을지니라
11절 - 너의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모두 낮추되
12절 -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아지게 하며 악인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지니라
13절 -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들의 얼굴을 싸서 은밀한 곳에 둘지니라
14절 -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15절 - 이제 소 같이 풀을 먹는 베헤못을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 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16절 - 그것의 힘은 허리에 있고 그 뚝심은 배의 힘줄에 있고
17절 - 그것이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얽혀 있으며
18절 -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뼈대는 쇠 막대기 같으니
19절 -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으신 이가 자기의 칼을 가져 오기를 바라노라
20절 - 모든 들 짐승들이 뛰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내느니라
21절 - 그것이 연 잎 아래에나 갈대 그늘에서나 늪 속에 엎드리니
22절 - 연 잎 그늘이 덮으며 시내 버들이 그를 감싸는도다
23절 - 강물이 소용돌이칠지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 강 물이 쏟아져 그 입으로 들어가도 태연하니
24절 - 그것이 눈을 뜨고 있을 때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것의 코를 꿸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욥에게 교만한 자를 발견해 낮추고 악인을 심판할 수 있는지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피조물 중에 으뜸인 베헤못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그 허리와 배는 웅장하고, 꼬리와 힘줄은 장대하며, 강이 소용돌이칠지라도 베헤못은 놀라지 않습니다. 베헤못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1. 창조 세계에 대한 신적 통치 (6~14절)

창조주의 통치 방식은 공의에 기초합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 발언에서 인간이 알 수 없는 그분의 '공의'와 '의'를 강조해 말씀하십니다(8절). 이는 모순되게 보이는 하나님 행동에 대한 욥의 탄식(3:20~26)이나, 하나님 심판에 '온전한 자'와 '악한 자'의 구별이 없으며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간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고 한 욥의 비난(9:22~24)과 관련됩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그분과 같은 '신적 자격'이 있는지 질문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천둥소리를 내겠느냐"(9절). 하나님은 반어법적이고도 풍자적인 요구들로 욥 자신의 '공의'와 '의'를 입증하라고 하십니다(10~14절). 성도는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완전한 공의로 통치하시는 분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 하나님이 두 번째 발언에서 강조하시는 주제는 무엇인가요?(8절) 내가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를 신뢰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2. 베헤못 (15~24절)

하나님은 베헤못과 리워야단이라는 특별한 두 동물을 언급하십니다(40~41장). '베헤못'은 '베헤마'(짐승)의 복수형으로 '거대한 짐승', '원시 동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실제 동물로 이해해 '하마'(또는 코끼리나 물소)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욥기 묘사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베헤못도 욥과 같이 하나님의 피조물 중 하나라고 하십니다(15절). 베헤못은 특별한 힘과 능력이 있어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16~19절). 베헤못은 어떤 환경에서도 태연하며 사람이 제어할 수 없는 '동물의 왕'으로 묘사됩니다(20~24절). 하나님은 이러한 피조물까지도 제어하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입니다.

* 하나님은 왜 욥에게 사람이 제어할 수 없는 베헤못에 관해 설명하시나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존재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마저 제 사정을 외면하시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순간에라도 행여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부인하고 자기 의를 내세우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소서. 제 손이 저를 구원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유일한 구원자이신 주님만 붙잡고 의지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부족함을 깨우치실 때 곧바로 항복하십시오

 

[욥기 40장 1절~5절]
1절 - 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2절 -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3절 -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4절 -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5절 -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은 욥에게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욥은 그제야 자신의 비천함을 깨닫고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릴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더는 대답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1.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1~2절)

하나님의 발언은 욥의 탄식과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욥을 지칭하시는 두 가지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먼저 '트집 잡는 자'(2절)라고 하십니다. 이는 욥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 탄식하고 줄기차게 질문한 모습을 평가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욥을 '판결자'라고 하십니다. 개역개정 성경은 '하나님을 탓하는 자'(2절. 히, 모키아흐)로 번역하지만, 히브리어의 의미는 옳고 그름을 정해 주는 '심판자'입니다. 하나님과의 소송을 원하던 욥은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판결자'가 없다고 탄식한 바 있습니다(9:33). 하나님은 이러한 호칭으로써 욥의 행동을 풍자하시며 그의 부족함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탄식에 응답하시면서도 그의 잘못된 세계관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 하나님이 욥을 '트집 잡는 자', '판결자'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말씀으로 깨달은 나의 잘못된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욥의 답변 (3~5절)

하나님의 발언에 비해 욥의 답변은 짧습니다. 욥은 "나는 비천하오니"라고 고백합니다. '비천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가볍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거나 놀라움을 표현하지도, 하나님을 찬양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허리를 묶고...대답할지니라"(38:3)라는 요구에 맞서 자신이 하나님과 다툼을 벌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뿐입니다. 손으로 입을 가리는 행동은 '신중함, 거부, 잠시 멈춤'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됩니다.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는 다짐도 그의 주장 철회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욥의 답변에 하나님은 두 번째 발언을 준비하십니다.

* 대답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욥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내 주장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을 때 내가 하나님께 취하는 태도는 어떠한가요?

 

오늘의 기도

'욥에게 대답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께 대답하는 욥'의 대화에서, 비천한 인간의 삶에 개입하시고 인간과 소통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원망과 불평을 쏟아 냈던 저의 더러운 입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주소서.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회복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동물의 특성이 말해 주는 창조 세계의 다채로움

 

[욥기 39장 5절~30절]

5절 -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6절 - 내가 들을 그것의 집으로, 소금 땅을 그것이 사는 처소로 삼았느니라
7절 - 들나귀는 성읍에서 지껄이는 소리를 비웃나니 나귀 치는 사람이 지르는 소리는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8절 - 초장 언덕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풀을 찾느니라
9절 -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10절 - 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
11절 - 그것이 힘이 세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를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12절 -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13절 - 타조는 즐거이 날개를 치나 학의 깃털과 날개 같겠느냐
14절 -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흙에서 더워지게 하고
15절 -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16절 - 그 새끼에게 모질게 대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고생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나니
17절 - 이는 하나님이 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라
18절 - 그러나 그것이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위에 탄 자를 우습게 여기느니라
19절 -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20절 -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21절 - 그것이 골짜기에서 발굽질하고 힘 있음을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되
22절 - 두려움을 모르고 겁내지 아니하며 칼을 대할지라도 물러나지 아니하니
23절 - 그의 머리 위에서는 화살통과 빛나는 창과 투창이 번쩍이며
24절 - 땅을 삼킬 듯이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에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25절 - 나팔 소리가 날 때마다 힝힝 울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지휘관들의 호령과 외치는 소리를 듣느니라
26절 -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쪽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
27절 -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따름이냐
28절 -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살며
29절 - 거기서 먹이를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30절 -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느니라

 

하나님은 욥에게 누가 들나귀를 자유롭게 했는지, 그가 들소에게 이랑을 갈게 할 수 있는지 물으십니다. 또한 알을 낳고 버리는 타조의 습성을 말씀하시며,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말의 힘을 누가 주었는지 물으십니다. 높이 나는 매와 높은 데 보금자리를 치는 독수리가 누구 명령을 따르는지 물으십니다.

 

● 들나귀와 들소, 타조와 말, 매와 독수리

다양한 동물의 가지각색의 특성은 창조 세계의 신비와 다채로움을 보여 줍니다. 들나귀와 들소(5~12절)는 '자유분방과 길들여지지 않음'이 특징입니다. 그들은 길들여지지 않고, 인간 세계의 이익과는 무관하며, 자신들의 힘과 자유로 인적 없는 초원 지대에서 마음껏 살아갑니다. 타조와 말(13~25절)은 '빠름'이 특징입니다. 타조는 날지 못하지만, 말(전쟁에 출전하는 말)과 그 위에 탄 자를 비웃을 만큼 민첩합니다. 말은 두려움을 모르며 맹렬함과 민첩함으로 전쟁의 승리를 가져옵니다. 매와 독수리(26~30절)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높고 먼 곳'에 사는 동물을 대표합니다. 이들은 짐승의 썩은 고기와 사람 시체를 먹는 혐오스럽고 부정한 동물로 분류됩니다(레 11:13, 16). 이 모든 동물은 인간 세계에 종속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서 살아갑니다.

 

* 너무나도 다른 특성을 지닌 수많은 동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동물 세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배려와 돌봄

 

[욥기 38장 39절~41절]

39절 - 네가 사자를 위하여 먹이를 사냥하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욕을 채우겠느냐
40절 - 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숲에 앉아 숨어 기다리느니라
41절 -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

[욥기 39장 1절~4절]
1절 -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이 새끼 낳는 것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2절 - 그것이 몇 달 만에 만삭되는지 아느냐 그 낳을 때를 아느냐
3절 - 그것들은 몸을 구푸리고 새끼를 낳으니 그 괴로움이 지나가고
4절 - 그 새끼는 강하여져서 빈 들에서 크다가 나간 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은 욥에게 사자의 식욕을 채울 수 있는지,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리는 까마귀 새끼를 먹이는 이가 누구인지 물으십니다. 또한 산염소와 암사슴이 번식하는 이치를 아느냐고 물으십니다. 그 어미는 몸을 구푸려 새끼들을 낳고, 새끼들은 강해져 빈 들에서 크다가 떠나갑니다.

 

1. 사자와 까마귀 (38:39~41절)

하나님은 동물을 지으시고 그 세계를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동물을 다섯 쌍으로 묶어 언급하십니다(38:39~39:30). 첫 번째는 '사자와 까마귀'입니다. 두 동물의 공통점은 난폭한 짐승이자 부정한 짐승을 대표한다는 점입니다. 사자는 고대 중동에서 가장 강력하고 무서운 야생의 약탈자요(창 49:9; 시 17:12 등) 동물의 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까마귀도 육식성 동물로, 다른 포식자들이 남겨 놓은 먹이를 먹습니다(잠 30:17). 사자와 까마귀는 인간과 친화적 관계에 있지 않으며 혐오스러운 동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자와 까마귀도 하나님의 배려로 먹이를 공급받고 생존합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이익과는 상관없는 동물들도 하나님이 사랑으로 돌보신다는 점입니다.

* 사자와 까마귀 같은 난폭하고 부정한 동물들도 하나님이 돌보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러한 사실에서 내가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2. 산염소와 암사슴 (39:1~4절)

산염소와 암사슴은 민첩성(삼하 22:34; 사 35:6)과 아름다움(창 49:21; 잠 5:19 등)을 말할 때 주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높은 산악 지형에서 자유롭게 활동합니다(시 104:18; 합 3:19). 하나님은 두 동물의 '출산'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지역에 사는 동물들의 출산 시기와 임신 기간에 대해 아느냐고 질문하시고, 출산 이후 새끼들의 생존 방식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동물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배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생태 환경이나 생활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시지 않습니다. 새끼가 강해져 빈 들에서 크다가 어미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을 그들 삶의 특성으로 인정하십니다.

* 하나님이 산염소와 암사슴 새끼에게 정하신 생활 방식은 어떤 특성이 있나요? 하나님이 주신 특성임을 인정하고 내가 수용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고난의 이유를 다 알 수 없는 제 한계를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산염소가 새끼 치는 때조차 하나님이 아신다는 말씀을 "하물며 나의 형상으로 지은 너를 돌보지 않겠느냐?"라는 사랑의 음성으로 듣습니다. 주님의 섬세한 눈길과 손길로 저를 살피시고 보듬어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인간이 알 수 없는 기후와 천체 현상

 

[욥기 38장 22절~38절]

22절 -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23절 - 내가 환난 때와 교전과 전쟁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남겨 두었노라
24절 - 광명이 어느 길로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땅에 흩어지느냐
25절 - 누가 홍수를 위하여 물길을 터 주었으며 우레와 번개 길을 내어 주었느냐
26절 - 누가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며
27절 - 황무하고 황폐한 토지를 흡족하게 하여 연한 풀이 돋아나게 하였느냐
28절 - 비에게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29절 -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30절 - 물은 돌 같이 굳어지고 깊은 바다의 수면은 얼어붙느니라
31절 - 네가 묘성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
32절 - 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33절 -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34절 - 네가 목소리를 구름에까지 높여 넘치는 물이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35절 -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번개가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하겠느냐
36절 -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가 누구냐
37절 - 누가 지혜로 구름의 수를 세겠느냐 누가 하늘의 물주머니를 기울이겠느냐
38절 - 티끌이 덩어리를 이루며 흙덩이가 서로 붙게 하겠느냐

 

하나님은 욥에게 눈 곳간과 우박 창고를 보았는지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를 환난 때와 전쟁의 날에 사용하십니다. 또한 비.이슬.얼음.서리의 기원을 아는지, 묘성.삼성 등을 다룰 수 있는지 물으십니다.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구름의 수를 세거나 하늘의 물주머니를 기울일 수 없습니다.

 

1. 다양한 기후 현상 (22~30절)

우리가 경험하는 기후와 천체에는 창조주의 놀라운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앞에서는 사람이 알 수 없는 시원적 창조 세계를 다루었고(38:4~21), 여기서는 사람이 경험하는 하늘의 현상을 다룹니다. 비, 이슬, 얼음, 서리의 기원에 관한 질문은 욥의 첫 번째 발언(3장)과 연결됩니다.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28절),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29절)라는 질문은 욥의 생일 저주와 더불어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3:11)라는 탄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신의 출생과 존재를 거부한 욥과는 달리,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지키려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에도 비를 내려 생명체가 살게 하시는 생명의 주님입니다(26~27절).

* '사람 없는 땅,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26~27절) 황폐한 인생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는 어떠한가요?

 

2. 천체와 비의 통제 (31~38절)

하나님은 천체를 주관하시고 구름과 비를 통제하시는 분입니다. 천체에 관한 묘사(31~33절)에서는 평행법을 통한 질문이 연속해서 나옵니다. 별들을 '묶고' '푸는' 상반된 행동(31절), '이끌어 내고' '이끌어 가는' 유사한 행동(32절)을 통해 질문하십니다. 또한 '하늘'과 '땅'의 대조, '앎'과 '펼침'의 연결, '궤도'와 '법칙'의 유사 어구를 통해 창조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질문을 하십니다(33절). 기후 현상에 관한 묘사(34~38절)에서는 비의 통제와 관련된 질문을 하십니다. 특히 '가슴'(36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투호트'는 이집트의 따오기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된 '토트'로 보기도 합니다. 이는 이어지는 동물 묘사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합니다.

* 천체 묘사에 나타나는 과학적 정확성은 어떠한가요?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통제하시는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할 나의 주장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누가...?"라고 근원을 물으실 때 제가 드릴 답변은 "하나님!"뿐입니다. 살아온 햇수가 오래되었다고 한들 영원에 비하면 단 한 뼘 길이도 되지 않으니, 지식이나 연륜을 자랑하지 않게 하소서. 저 자신의 힘을 빼고, 무한하신 하나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따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응답하시는 하나님

 

[욥기 38장 1절~21절]
1절 -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절 -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절 -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4절 -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절 -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절 -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7절 -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8절 -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9절 -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절 -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절 -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12절 - 네가 너의 날에 아침에게 명령하였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일러 주었느냐
13절 - 그것으로 땅 끝을 붙잡고 악한 자들을 그 땅에서 떨쳐 버린 일이 있었느냐
14절 - 땅이 변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이 되었고 그들은 옷 같이 나타나되
15절 - 악인에게는 그 빛이 차단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16절 -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17절 -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18절 -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19절 - 어느 것이 광명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어느 것이 흑암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20절 - 너는 그의 지경으로 그를 데려갈 수 있느냐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느냐
21절 - 네가 아마도 알리라 네가 그 때에 태어났으리니 너의 햇수가 많음이니라

 

[배경 이해하기]
욥과 친구들의 긴 논쟁이 종결되었지만, 욥의 고난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죄한 사람이 왜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네가 아느냐?”, “버린 일이 있었느냐?”, “네가 보았느냐?”, “측량할 수 있느냐?”, “알고 있느냐?”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십니다. 마치 욥을 심문하듯 던지신 70여 개의 질문은 하나하나가 감히 입을 열어 대답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질문은 로마서 8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대적하겠느냐?”,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고발하겠느냐?”, “누가 정죄하겠느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느냐?” 등 인간이 감히 하나님께 대답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질문은 하나님이 욥에게 하신 질문들을 연상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왜 욥에게 이 같은 질문을 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이 이처럼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욥에게 하신 데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 질문들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신 권능과 주권을 욥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롬 3:3~4)라는 말씀처럼 자연과 인간을 통치하시며 그 모든 것에 목적을 두신 하나님께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관찰과 묵상]
1. 하나님이 폭풍 가운데 나타나셔서 욥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인가요?(1~3절)
하나님은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에 대답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장에서 시작된 욥과 세 친구 그리고 엘리후의 변론이 모두 끝나고, 38장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실 때 종종 폭풍이나 회오리바람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아래는 어두캄캄하도다 그룹을 타고 다니심이여 바람 날개를 타고 높이 솟아오르셨도다”(시 18:9~10). 이는 피조된 자연이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나타나심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폭풍과 같은 신비한 자연 현상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심으로 당신의 위엄과 권능을 드러내시고, 앞으로 전개될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드러내 보이십니다.
하나님은 더는 욥의 무지하고 어리석은 말을 듣지 않으시고, 오히려 욥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질문에 대답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이제까지 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죽기를 간구했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불평하는 등 한마디로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38:2)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무지한 말에 답변하시는 대신 오히려 질문하십니다. 이는 말씀을 읽는 자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대답해 보라고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솔직하게 마주 서라는 의미입니다.
적용과 나눔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 어떤 마음과 태도로 기도해야 할까요? 나의 기도에서 달라져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누구도 예외 없이 고난과 역경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고난이 없다거나 역경이 피해 갈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고난 속에서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알려 주시고, 고난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게 하는 말씀을 주십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과 같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알아 가는 것은 큰 유익이 됩니다. 욥의 인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큰 고난을 통과하면서 마침내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전능하심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성숙과 성장을 위한 축복의 도구입니다. 고난의 과정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고난 후에 있는 영광은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놀랍습니다.

2. 하나님은 창조의 신비를 역설적으로 물으십니다(4~20절). 그중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관해 어떤 질문을 하셨나요?(4~6절)
하나님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누가 도량법을 정했는지, 누가 그 줄을 위에 띄웠는지, 그것의 주추는 무엇이며, 그 모퉁잇돌은 누가 놓았는지 아느냐고 욥에게 물으셨습니다.
욥을 향한 하나님의 질문식 말씀은 욥이 짧은 답변을 하는 부분(40:3~5) 전후에 등장하며,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창조주의 경이로움과 지혜를 보여 줌으로써 욥으로 하여금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고(38:1~40:2), 둘째는 말씀을 통해 욥이 자신의 잘못을 깊이 깨닫고 회개하는 내용입니다(40:6~41:34). 본문은 그중에서 시작 부분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은 무생물과 관련된 자연 현상의 신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욥에게 땅에 관한 질문(4~7절)을 하시면서 창조 사역 때 욥이 어디 있었는지, 그리고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아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는 욥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입니다. 바다에 관한 질문(8~11절)을 하시면서는 바다를 모태에서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이 다루셨다고 하십니다. 새벽에 관한 질문(12~15절)을 통해서는 낮과 밤의 순환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런 후 미지의 영역에 관한 질문(16~18절), 광명과 흑암에 관한 질문(19~21절)을 이어 가십니다. 이 모든 질문은 무지하고 제한적인 인간에게 창조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역설적으로 질문합니다.
적용과 나눔
창조주의 지혜나 권능, 경이로움을 체험한 일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그분 앞에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요?
창조과학 탐사로 미국 그랜드캐니언에 다녀온 성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한결같이 입을 모아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곳을 여행하며 너무나도 많은 창조의 증거를 눈으로 보고 확신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땅과 바다와 빛 등을 통해 욥이 창조주의 주권과 능력을 깨닫게 하십니다. 자신이 당한 고난의 문제에 짓눌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망각하고 있던 욥은 폭풍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거룩한 충격을 받습니다. 차마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을 정도가 됩니다. 우리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자연 현상들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에 대해 깊이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은 욥과 친구들이 이제껏 변론하며 논쟁의 주제로 삼았던 문제, 즉 의인이 당하는 고난의 문제, 인과 관계 문제, 악한 자들의 번영과 같은 내용에 답을 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조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역설적으로 질문하십니다. 하나님이 던지신 70여 개의 질문은 모두 욥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인간은 창조주요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 수 없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의 위대한 권능과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깊으신 뜻을 물으며, 겸손히 행하는 것이 피조물인 인간의 도리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저를 향한 주님 뜻을 다 알 수 없어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매사에 주님의 높으신 권능과 주권을 인정하며 겸손히 행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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