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예루살렘의 멸망 52:1-11
본문의 이야기는 시드기야왕의 통치초기 무렵부터 시작된다. 시드기야왕 이전에 이미 두번 유대인들이 사로잡혀간 사건이 있었다. 한번은 여호야김 4년에, 다른 한번은 여고냐 통치 제 1년에 있었다.
(1)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지은 죄로인하여 그들에게 진노하셨다(3절).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그앞에서 쫓아내시기로' 정하셨다. 그는 그들을 한량없는 은혜로 함께 하시겠다는 징표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내쫓으셨다. 또한 은혜와 사랑의 계약의 징표로 그들에게 주신 거룩한 성과 성전에서 그들을 추방하셨다.
(2) 시드기야의 악행과 악정으로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벌하셨다. 시드기야는 보좌에 오를때 사리를 분별할만한 나이가 되어있었다. 그는 '이십 일세'였다(1절). 물론 그가 열왕중에서 가장 나쁜 왕이었던 것은 아니다(우리는 그가 우상을 숭배했다는 기사를 찾아볼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다.' 이는 그가 마땅히 행해야할 것을 행치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죄와 어리석음때문이었으며 그리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파멸을 초래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가 바벨론왕에 대해 모반한 사실을 대단히 좋지않게 여기셨다(겔 17:15).
(3) 예루살렘 포위 18개월후에 갈대아인들이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이스라엘의 멸망에 결정적이었던 이 두사건을 기념하기위하여 그들은 포로로 잡혀있는동안 '사월과 시월에 금식'하였다(슥 8:19). 또한 그들은 오월에는 성전이 불탄 날을 기념하기위하여 그리고 칠월에는 그달랴의 죽음을 기념하기위하여 금식하였다. 예루살렘성은 1년 6개월동안 포위되어 있었다. 그동안 생필품의 공급이 끊어졌다. 끊임없는 공격을 당하면서도 수비대는 항복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성에 기근이 들었다'(6절). 그땅 백성의 식물이 진하였더라. 그러니 '성벽이 부서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7절). 사람이 지키지않는 성벽이 어떻게 오래버틸수 있겠는가? 이것은 성벽없이 사람만으로 적을 막기보다 더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군사와 좋은 성이 있더라도 하나님과 그의 보호하심이 없이는 백성들의 안전은 불가능하다.
(4) 왕과 그의 용사들은 '밤에' 성을 빠져나왔다(7절). 그러나 왕은 '여리고 평야에서' 추격자들에게 사로잡혔고 그의 경호병들은 도망쳤으며 그의 군대들은 '그들 떠나 흩어졌다'(8절).
(5) 바벨론왕에 의해 시드기야에게 최후가 임하였다. 바벨론왕은 그를 반역자로 취급하여 '심판을 내렸다'(9절). 곧 시드기야의 아들들이 그의 목전에서 죽임을 당하였고 유다의 모든 방백도 같은 운명을 당하였다(10절). 그리고 '시드기야는 두눈이 뽑혔고 사슬에 묶여' 적들의 환호성가운데 바벨론으로 잡혀갔다. 그는 그의 여생동안 감옥에 갇히는 무기징역형을 언도받고 그후내내 어둡고 비참한 가운데 지내었다(그가 수명을 얼마나 누렸는지는 알수 없다). 예레미야는 이미 그가 어떻게 될것인지를 자주 말했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파멸을 막을수 있었을때에 예레미야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Ⅱ. 바벨론인들의 약탈〔1〕 52:12-23
본문은 갈대아 군대들이 행한 저주스런 만행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만행은 성이 점령된후 약 한달동안 '시위장' 느부사라단에 의하여 명령된 것이다.
(1) 느부사라단은 먼저 성에서 귀중품들을 모조리 약탈한후 성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는 '열조가 주를 찬송하던' 거룩하고 아름다운 집인 '여호와의 전을 불살랐다'(사64:11).
(2) 그는 왕궁을 불살랐다. 이것은 아마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후에 만든 것인듯하며 그이후 줄곧 '왕의 거처'로 쓰인 그왕궁인 듯하다.
(3) 그는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살랐다.'
(4) 그는 '예루살렘 사면의 벽을 헐었다.' 이것은 그토록 오랫동안 그의 군대의 진로를 이성벽이 가로막은데 대한 보복이었다. 이리하여 방비되어 왔던 그성은 폐허가 되었다(사25:2).
(5) 그는 '백성중 많은 자를 사로잡아 갔다'(15절). 그는 성안에 거하는 '백성중 빈한한 자들'을 잡아갔고 빈천한 자들을 남겨두어(시골의 가난한 사람들)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다. 또한 그는 '성중에 남아있는 백성' 곧 칼과 기근을 피한 자들 및 바벨론왕에게 항복한 자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6) 그들은 성전에 남아있던 기명을 취하여 갔다. 이미 상당한 가치를 지닌 귀중품들, 즉 '금은 기명들'은 다가져간 뒤였으나 아직 일부 남은것이 있었다(19절). 이번 약탈된 대부분의 성전용구들은 동제로서 먼저 것보다 값어치가 적은 것들이었는데 이것들이 최후로 약탈된 것이다. 그들은 성벽을 무너뜨린 다음 성전의 기둥도 뽑아버렸다. 특히 이 두사건은 국가와 교회의 힘이요 지지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들로부터 떠나신 것을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떠나가신 자들을 위해서는 성전도 기둥도 그들을 지켜줄수 없다. 성전의 이 기둥들은 장식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들은 '야긴'(즉 '하나님께서 세우시다'는 뜻)라고 불리워졌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를 지닌 기둥들이 뽑히고 만것은 하나님께서 더이상 그의 전을 지탱하지도 않으시며 또 그 전의 능력이 되지도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본문은 이 기둥들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21-23절, 왕상7:15절에서 인용한 것임). 이외에 제단에 딸린 모든 동제기명들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 엘리가문의 불법이 희생이나 제물에 의하여 정하게 될수 없었던 것이다(삼상 3;14). 또한 본문에는 '이모든 놋중수를 헤아릴수 없었더라'고 되어있다(20절). 그런데 그것들을 만들던때에도 '그 놋중수를 능히 측량할수 없었었다'(대하4:18). 제작할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약탈해 간때도 그 놋중수를 헤아릴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Ⅲ. 바벨론인들의 약탈〔2〕 52:24-30
본문에는 매우 슬픈사실이 설명되어 있다.
(1) 립나에서 귀인들이 무참히 살해된 이야기로서 그수는 72이에 달하였다(이 수효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수와 같다, 민 11:24,25). 이 수효는 열왕기하 25:18,19절에도 그렇게 계산되어 있다. 열왕기하에 의하면 왕의 시종이 다섯이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에서는 일곱이라고 되어있다. 그점을 제외한 나머지 수효는 이 두기록이 서로 일치한다. 라이트푸트는 이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느부사라단은 왕의 시종들중 7인을 잡았는데 그중에는 나중에 방면된 예레미야와 에벳멜렉도 포함되어 있었고 따라서 죽은 사람은 실제로 5인이라는 것이다. '대제사장 스라야'가 가장 먼저 살해당하였다. 방백 스라야는 너그러운 인품의 소유자인데 반해(렘 51:59) 제사장 스라야는 성급하고 불온한 인물이었으며 이러한 성격탓으로 바벨론왕으로부터 처벌을 자초했던것 같다. 유다 백성들의 이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정의의 다스림을 받는다.
(2) 나머지 포로들이 당한 운명은 이러하다.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27절, 참조. 레 18:28). 그주체적인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이들은 두번 포로로 잡혀갔었다. 한번은 느부갓네살 제 7년에 있었고(이와 동일한 사건을 열왕기하 24:12절에서는 그왕 제 8년에 일어났다고 전하고 있다) 다른 한번은 제 18년에 있었다. 같은 사건을 12절에서는 제 19년에 일어났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 잡혀간 포로의 수는 전자에 비하여(왕하 24:12) 매우 적게 기록되고 있다. 열황기하에서는 18,000명이 사로잡혀 갔다고 되어있는데 본문에서는 3,023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15절에는 남은 백성이 모두(832명) 사로잡혀 갔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어떤이들은 그성에 거하던 사람들이 832명이상이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라이트푸트는 립나에서의 귀인들의 죽음과 이 잡혀간 사건을 관련시켜 본문에 잡혀갔다고 기록된 자들은 실지로 반역자로 죽임당한 자들의 수효를 말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2) 세번째 포로로 잡혀간 사건은 앞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사건으로 느부갓네살 23년, 곧 예루살렘 멸망후 제 4년이 되었을때 일어난 일이다(30절). 그때 느부사라단이 와서 사로잡아간 자의 수효는 745인의 유대인들이었다. 그것은 그달랴를 살해한데 대한 보복조치였던것 같다. 그달랴의 살해는 바벨론왕에 대한 또다른 반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로잡혀간 자들은 그이유때문에 죽임을 당한것 같다. 이것이 사로잡혀간 자들의 총수효라고 한다면(30절에 '그총수가 4,600인이었다'고 되어있다) 실제 이스라엘 백성의 수에 비하여 잡혀간 자들의 수효는 축소되어 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로하여금 고통당하는 땅에서도 번성하여 창대케 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압제를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더 증가하였던 것이다.
Ⅳ. 여호야긴이 받은 은총 52:31-34
여호야긴왕이 포로된 곳에서 다시 왕의 대우를 받는 내용은 열왕기하 25:27-30절에도 나와있다. 차이점은 열왕기하에서는 에윌므로닥 즉위 원년 12월 27일이라 되어있고 여기에서는 25일이라 되어있는 것뿐이다. 아마 그의 석방명령은 25일에 내려졌으나 27일에야 비로소 왕의 위치로 대우받게된 듯하다. 느부갓네살은 이 불행한 군주를 오랫동안 옥에 가두어 두었다. 그의 아들은 이 죄수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친으로부터 그죄수를 위한 호의를 얻어낼수가 없었다. 그러나 부친이 죽자 아들은 여호야긴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여호야긴은 왕좌에서 감옥으로 전락하였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그는 비록 권력이 있는 자리는 아닐망정 다시 보좌에 오르게 된것을 볼수 있다(32절). 전에 왕의가 수의로 바뀌었던 것이다. 역경의 밤이 아무리 길더라도 우리는 절망해서는 안된다. 마침내 동이 틀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야긴은 18세 되던이래 37년동안이나 옥고를 치르며 감금되어 수모를 당해왔다. 고통의 시간이 예측했던 것보다 너무 길다고 여기는 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어 용기를 얻게하라. 꿈을 지니고 살면 끝내는 좋은날이 오고야 만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로하여금 압제자들로부터 호의를 얻게하셨다. 그는 그들이 그의 백성들에게 마음을 돌려 호의를 베풀게 하셨다(시 106:46). '저희를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하셨도다.' 희망을 갖고 '여호와의 구원을 조용히 기다리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다. 우리는 본서의 예언과 역사를 비교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울수 있다.
(1) 아무리 높은 존경을 받는 교회나 개인이라 할지라도 타락하여 매우 사악해질수 있는데 이것은 이제만 있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2) 불의한 생각을 품는 자는 결국 망하게 된다. 만일 불법을 회개하지 않고 버리지않으면 결국 파멸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 핵심
52:1-30
유다 백성에 관한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부록이다.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은 파괴되었고, 지도층은 모반의 대가로 참혹한 처벌을 받았으며,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다.
피정복민에 대한 정책(52:16)
고대의 전쟁에서 정복자는 피정복국가를 장악하고 효율적으로 다스리기위해 먼저 유력한 인사들을 제거하고, 그다음에 백성을 분류하여 포로로 잡아갔다. 즉 피정복국가를 무력화하기위해 상당수의 백성을 잡아가고 일부만 남겨두었다. 본토에 남겨진 자들은 대개 빈천한 부류였다. 이들은 힘이 없고 무지한 자들로서 반역을 도모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 묵상
시드기야에 대한 예레미야의 평가 ( 52:2 )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유다의 왕들은 그의 열조 다윗이 행한, 여호와 보시기에 선한 길을 걷지않고 우상숭배와 불의의 사악한 길을 걸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사람의 말에 귀기울임으로인해서 멸망받았습니다.
바벨론의 예루살렘성 포위 ( 52:4-6 )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부터, 11년 4월 9일까지 약 3년간 예루살렘성은 바벨론에 의해 포위당했습니다. 이렇게 적들에 의해서 포위된 상태에서도 왕과 백성들은 그들의 죄를 회개치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시드기야의 종말 ( 52:9-11 )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때 그는 도망했으나 바벨론 군대가 여리고 평지에서 그를 붙잡고 립나에 있는 바벨론왕에게 끌고 갔습니다. 바벨론왕은 그를 신문하고 그의 목전에서 아들들을 죽이고 그의 두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해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을때까지 감옥에 있게됩니다. 이로써 시드기야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38:21-23).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들 ( 52:15 )
유력한 자, 부자, 백성의 지도자들이 모두 끌려간 이때는 세번째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결과 이스라엘 땅에는 빈천한 자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었던 그들은 죄로인하여 다시 노예생활을 하게되었으며 이스라엘은 열방에 흩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함락당시 도망자들의 종말 ( 52:24-27 )
예루살렘 함락당시 도망자들은 시위대장관 느부사라단에게 잡혀 립나의 바벨론왕에게 끌려갔는데 왕이 그들을 다 쳐죽였습니다. 범죄하고 타락한 이스라엘에게 정해진 운명은 바벨론에서의 노예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바벨론이라는 풀무에서 단련시키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지못하고 스스로 살길을 찾고자했던 사람들은 이와같이 멸망당하게 됩니다.
바벨론 포로들 ( 52:28-30 )
제1차 포로는 주전 606년에 3,023명이었으며, 제2차 포로는 주전 597년에 532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제3차 포로는 주전 587년에 745명으로 포로들의 수는 총 4,600명이었습니다. 한편 주전 538년 본국 귀환명령이 있었는데 제1차 귀환때 49,897명이 귀환했습니다.
여호야긴의 석방 ( 52:31-34 )
유다왕 여호야긴은 잡혀간지 37년만에 바벨론왕 에윌므로닥의 은혜를 받아 옥에서 풀려나와 왕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는 유다의 회복을 암시하는 사건이며 포로들의 여호와께 대한 신앙성장을 의미합니다. 즉 비록 이방땅이었지만 오래참고 기다리는동안 유다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되었던 것입니다. 이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고, 또한 성취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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