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예루살렘의 멸망 52:1-11
본문의 이야기는 시드기야왕의 통치초기 무렵부터 시작된다. 시드기야왕 이전에 이미 두번 유대인들이 사로잡혀간 사건이 있었다. 한번은 여호야김 4년에, 다른 한번은 여고냐 통치 제 1년에 있었다.
(1)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지은 죄로인하여 그들에게 진노하셨다(3절).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그앞에서 쫓아내시기로' 정하셨다. 그는 그들을 한량없는 은혜로 함께 하시겠다는 징표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내쫓으셨다. 또한 은혜와 사랑의 계약의 징표로 그들에게 주신 거룩한 성과 성전에서 그들을 추방하셨다.
(2) 시드기야의 악행과 악정으로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벌하셨다. 시드기야는 보좌에 오를때 사리를 분별할만한 나이가 되어있었다. 그는 '이십 일세'였다(1절). 물론 그가 열왕중에서 가장 나쁜 왕이었던 것은 아니다(우리는 그가 우상을 숭배했다는 기사를 찾아볼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다.' 이는 그가 마땅히 행해야할 것을 행치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죄와 어리석음때문이었으며 그리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파멸을 초래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가 바벨론왕에 대해 모반한 사실을 대단히 좋지않게 여기셨다(겔 17:15).
(3) 예루살렘 포위 18개월후에 갈대아인들이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이스라엘의 멸망에 결정적이었던 이 두사건을 기념하기위하여 그들은 포로로 잡혀있는동안 '사월과 시월에 금식'하였다(슥 8:19). 또한 그들은 오월에는 성전이 불탄 날을 기념하기위하여 그리고 칠월에는 그달랴의 죽음을 기념하기위하여 금식하였다. 예루살렘성은 1년 6개월동안 포위되어 있었다. 그동안 생필품의 공급이 끊어졌다. 끊임없는 공격을 당하면서도 수비대는 항복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성에 기근이 들었다'(6절). 그땅 백성의 식물이 진하였더라. 그러니 '성벽이 부서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7절). 사람이 지키지않는 성벽이 어떻게 오래버틸수 있겠는가? 이것은 성벽없이 사람만으로 적을 막기보다 더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군사와 좋은 성이 있더라도 하나님과 그의 보호하심이 없이는 백성들의 안전은 불가능하다.
(4) 왕과 그의 용사들은 '밤에' 성을 빠져나왔다(7절). 그러나 왕은 '여리고 평야에서' 추격자들에게 사로잡혔고 그의 경호병들은 도망쳤으며 그의 군대들은 '그들 떠나 흩어졌다'(8절).
(5) 바벨론왕에 의해 시드기야에게 최후가 임하였다. 바벨론왕은 그를 반역자로 취급하여 '심판을 내렸다'(9절). 곧 시드기야의 아들들이 그의 목전에서 죽임을 당하였고 유다의 모든 방백도 같은 운명을 당하였다(10절). 그리고 '시드기야는 두눈이 뽑혔고 사슬에 묶여' 적들의 환호성가운데 바벨론으로 잡혀갔다. 그는 그의 여생동안 감옥에 갇히는 무기징역형을 언도받고 그후내내 어둡고 비참한 가운데 지내었다(그가 수명을 얼마나 누렸는지는 알수 없다). 예레미야는 이미 그가 어떻게 될것인지를 자주 말했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파멸을 막을수 있었을때에 예레미야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Ⅱ. 바벨론인들의 약탈〔1〕 52:12-23
본문은 갈대아 군대들이 행한 저주스런 만행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만행은 성이 점령된후 약 한달동안 '시위장' 느부사라단에 의하여 명령된 것이다.
(1) 느부사라단은 먼저 성에서 귀중품들을 모조리 약탈한후 성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는 '열조가 주를 찬송하던' 거룩하고 아름다운 집인 '여호와의 전을 불살랐다'(사64:11).
(2) 그는 왕궁을 불살랐다. 이것은 아마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후에 만든 것인듯하며 그이후 줄곧 '왕의 거처'로 쓰인 그왕궁인 듯하다.
(3) 그는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살랐다.'
(4) 그는 '예루살렘 사면의 벽을 헐었다.' 이것은 그토록 오랫동안 그의 군대의 진로를 이성벽이 가로막은데 대한 보복이었다. 이리하여 방비되어 왔던 그성은 폐허가 되었다(사25:2).
(5) 그는 '백성중 많은 자를 사로잡아 갔다'(15절). 그는 성안에 거하는 '백성중 빈한한 자들'을 잡아갔고 빈천한 자들을 남겨두어(시골의 가난한 사람들)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다. 또한 그는 '성중에 남아있는 백성' 곧 칼과 기근을 피한 자들 및 바벨론왕에게 항복한 자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6) 그들은 성전에 남아있던 기명을 취하여 갔다. 이미 상당한 가치를 지닌 귀중품들, 즉 '금은 기명들'은 다가져간 뒤였으나 아직 일부 남은것이 있었다(19절). 이번 약탈된 대부분의 성전용구들은 동제로서 먼저 것보다 값어치가 적은 것들이었는데 이것들이 최후로 약탈된 것이다. 그들은 성벽을 무너뜨린 다음 성전의 기둥도 뽑아버렸다. 특히 이 두사건은 국가와 교회의 힘이요 지지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들로부터 떠나신 것을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떠나가신 자들을 위해서는 성전도 기둥도 그들을 지켜줄수 없다. 성전의 이 기둥들은 장식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들은 '야긴'(즉 '하나님께서 세우시다'는 뜻)라고 불리워졌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를 지닌 기둥들이 뽑히고 만것은 하나님께서 더이상 그의 전을 지탱하지도 않으시며 또 그 전의 능력이 되지도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본문은 이 기둥들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21-23절, 왕상7:15절에서 인용한 것임). 이외에 제단에 딸린 모든 동제기명들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 엘리가문의 불법이 희생이나 제물에 의하여 정하게 될수 없었던 것이다(삼상 3;14). 또한 본문에는 '이모든 놋중수를 헤아릴수 없었더라'고 되어있다(20절). 그런데 그것들을 만들던때에도 '그 놋중수를 능히 측량할수 없었었다'(대하4:18). 제작할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약탈해 간때도 그 놋중수를 헤아릴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Ⅲ. 바벨론인들의 약탈〔2〕 52:24-30
본문에는 매우 슬픈사실이 설명되어 있다.
(1) 립나에서 귀인들이 무참히 살해된 이야기로서 그수는 72이에 달하였다(이 수효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수와 같다, 민 11:24,25). 이 수효는 열왕기하 25:18,19절에도 그렇게 계산되어 있다. 열왕기하에 의하면 왕의 시종이 다섯이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에서는 일곱이라고 되어있다. 그점을 제외한 나머지 수효는 이 두기록이 서로 일치한다. 라이트푸트는 이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느부사라단은 왕의 시종들중 7인을 잡았는데 그중에는 나중에 방면된 예레미야와 에벳멜렉도 포함되어 있었고 따라서 죽은 사람은 실제로 5인이라는 것이다. '대제사장 스라야'가 가장 먼저 살해당하였다. 방백 스라야는 너그러운 인품의 소유자인데 반해(렘 51:59) 제사장 스라야는 성급하고 불온한 인물이었으며 이러한 성격탓으로 바벨론왕으로부터 처벌을 자초했던것 같다. 유다 백성들의 이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정의의 다스림을 받는다.
(2) 나머지 포로들이 당한 운명은 이러하다.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27절, 참조. 레 18:28). 그주체적인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이들은 두번 포로로 잡혀갔었다. 한번은 느부갓네살 제 7년에 있었고(이와 동일한 사건을 열왕기하 24:12절에서는 그왕 제 8년에 일어났다고 전하고 있다) 다른 한번은 제 18년에 있었다. 같은 사건을 12절에서는 제 19년에 일어났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 잡혀간 포로의 수는 전자에 비하여(왕하 24:12) 매우 적게 기록되고 있다. 열황기하에서는 18,000명이 사로잡혀 갔다고 되어있는데 본문에서는 3,023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15절에는 남은 백성이 모두(832명) 사로잡혀 갔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어떤이들은 그성에 거하던 사람들이 832명이상이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라이트푸트는 립나에서의 귀인들의 죽음과 이 잡혀간 사건을 관련시켜 본문에 잡혀갔다고 기록된 자들은 실지로 반역자로 죽임당한 자들의 수효를 말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2) 세번째 포로로 잡혀간 사건은 앞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사건으로 느부갓네살 23년, 곧 예루살렘 멸망후 제 4년이 되었을때 일어난 일이다(30절). 그때 느부사라단이 와서 사로잡아간 자의 수효는 745인의 유대인들이었다. 그것은 그달랴를 살해한데 대한 보복조치였던것 같다. 그달랴의 살해는 바벨론왕에 대한 또다른 반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로잡혀간 자들은 그이유때문에 죽임을 당한것 같다. 이것이 사로잡혀간 자들의 총수효라고 한다면(30절에 '그총수가 4,600인이었다'고 되어있다) 실제 이스라엘 백성의 수에 비하여 잡혀간 자들의 수효는 축소되어 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로하여금 고통당하는 땅에서도 번성하여 창대케 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압제를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더 증가하였던 것이다.

Ⅳ. 여호야긴이 받은 은총 52:31-34
여호야긴왕이 포로된 곳에서 다시 왕의 대우를 받는 내용은 열왕기하 25:27-30절에도 나와있다. 차이점은 열왕기하에서는 에윌므로닥 즉위 원년 12월 27일이라 되어있고 여기에서는 25일이라 되어있는 것뿐이다. 아마 그의 석방명령은 25일에 내려졌으나 27일에야 비로소 왕의 위치로 대우받게된 듯하다. 느부갓네살은 이 불행한 군주를 오랫동안 옥에 가두어 두었다. 그의 아들은 이 죄수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친으로부터 그죄수를 위한 호의를 얻어낼수가 없었다. 그러나 부친이 죽자 아들은 여호야긴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여호야긴은 왕좌에서 감옥으로 전락하였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그는 비록 권력이 있는 자리는 아닐망정 다시 보좌에 오르게 된것을 볼수 있다(32절). 전에 왕의가 수의로 바뀌었던 것이다. 역경의 밤이 아무리 길더라도 우리는 절망해서는 안된다. 마침내 동이 틀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야긴은 18세 되던이래 37년동안이나 옥고를 치르며 감금되어 수모를 당해왔다. 고통의 시간이 예측했던 것보다 너무 길다고 여기는 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어 용기를 얻게하라. 꿈을 지니고 살면 끝내는 좋은날이 오고야 만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로하여금 압제자들로부터 호의를 얻게하셨다. 그는 그들이 그의 백성들에게 마음을 돌려 호의를 베풀게 하셨다(시 106:46). '저희를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하셨도다.' 희망을 갖고 '여호와의 구원을 조용히 기다리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다. 우리는 본서의 예언과 역사를 비교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울수 있다.
(1) 아무리 높은 존경을 받는 교회나 개인이라 할지라도 타락하여 매우 사악해질수 있는데 이것은 이제만 있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2) 불의한 생각을 품는 자는 결국 망하게 된다. 만일 불법을 회개하지 않고 버리지않으면 결국 파멸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 핵심
52:1-30
유다 백성에 관한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부록이다.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은 파괴되었고, 지도층은 모반의 대가로 참혹한 처벌을 받았으며,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다.
피정복민에 대한 정책(52:16)
고대의 전쟁에서 정복자는 피정복국가를 장악하고 효율적으로 다스리기위해 먼저 유력한 인사들을 제거하고, 그다음에 백성을 분류하여 포로로 잡아갔다. 즉 피정복국가를 무력화하기위해 상당수의 백성을 잡아가고 일부만 남겨두었다. 본토에 남겨진 자들은 대개 빈천한 부류였다. 이들은 힘이 없고 무지한 자들로서 반역을 도모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 묵상
시드기야에 대한 예레미야의 평가 ( 52:2 )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유다의 왕들은 그의 열조 다윗이 행한, 여호와 보시기에 선한 길을 걷지않고 우상숭배와 불의의 사악한 길을 걸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사람의 말에 귀기울임으로인해서 멸망받았습니다.
바벨론의 예루살렘성 포위 ( 52:4-6 )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부터, 11년 4월 9일까지 약 3년간 예루살렘성은 바벨론에 의해 포위당했습니다. 이렇게 적들에 의해서 포위된 상태에서도 왕과 백성들은 그들의 죄를 회개치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시드기야의 종말 ( 52:9-11 )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때 그는 도망했으나 바벨론 군대가 여리고 평지에서 그를 붙잡고 립나에 있는 바벨론왕에게 끌고 갔습니다. 바벨론왕은 그를 신문하고 그의 목전에서 아들들을 죽이고 그의 두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해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을때까지 감옥에 있게됩니다. 이로써 시드기야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38:21-23).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들 ( 52:15 )
유력한 자, 부자, 백성의 지도자들이 모두 끌려간 이때는 세번째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결과 이스라엘 땅에는 빈천한 자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었던 그들은 죄로인하여 다시 노예생활을 하게되었으며 이스라엘은 열방에 흩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함락당시 도망자들의 종말 ( 52:24-27 )
예루살렘 함락당시 도망자들은 시위대장관 느부사라단에게 잡혀 립나의 바벨론왕에게 끌려갔는데 왕이 그들을 다 쳐죽였습니다. 범죄하고 타락한 이스라엘에게 정해진 운명은 바벨론에서의 노예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바벨론이라는 풀무에서 단련시키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지못하고 스스로 살길을 찾고자했던 사람들은 이와같이 멸망당하게 됩니다.
바벨론 포로들 ( 52:28-30 )
제1차 포로는 주전 606년에 3,023명이었으며, 제2차 포로는 주전 597년에 532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제3차 포로는 주전 587년에 745명으로 포로들의 수는 총 4,600명이었습니다. 한편 주전 538년 본국 귀환명령이 있었는데 제1차 귀환때 49,897명이 귀환했습니다.
여호야긴의 석방 ( 52:31-34 )
유다왕 여호야긴은 잡혀간지 37년만에 바벨론왕 에윌므로닥의 은혜를 받아 옥에서 풀려나와 왕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는 유다의 회복을 암시하는 사건이며 포로들의 여호와께 대한 신앙성장을 의미합니다. 즉 비록 이방땅이었지만 오래참고 기다리는동안 유다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되었던 것입니다. 이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고, 또한 성취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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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바벨론에 대한 심판 51:1-58
(1) 바벨론은 큰위력을 과시했으며 매우 교만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런 특징을 자신의 섭리를 이루는데 사용하셨다(7절). 바벨론은 '금잔'이라 되어있다. 이것은 바벨론이 부강하고 번영하는 제국이었음을 나타낸다. 또 그것은 '황금성'(사 14:4), '금머리'(단 2:28)라 불리우기도 하며,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금잔'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으로하여금 이잔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였다. 어떤나라는 바벨론이 베풀어주는 쾌락에 도취되어 있었고 또 어떤나라는 바벨론의 위협에 질렸으며 그공격에 멸망당하였다. 이 두가지 의미에서 신약시대의 바벨론도 세상의 열왕을 취하였다고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다(계 17:2;18:3). 바벨론은 하나님이 쓰시는 '철퇴'였었다. 적어도 예레미야가 예언하던 시기동안은 그의 철퇴로 쓰였다(20절). 그러므로 바벨론의 군대는 하나님이 쓰시는 병기요 그의 손에 들려진 도구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용하시어 '열방과 나라들을', 곧 나라의 강대함을 나타내는 그들의 '말과 병거들을' 박살내셨다(21절). 또한 그나라들의 구성원인 '남자와 여자와 노년과 유년'을 부수셨으며(22절) 나라들의 경제력의 원천인 '목자와 양떼와 농부와 멍엣소'를 부수셨다(23절). 하나님이 열국을 치시는 진노의 도구로 그들을 쓰셨을때 그들 갈대아인들은 이러한 위력을 발할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벨론 자신이 멸망할 차례가 되었다.
(2)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대하여 송사를 제기하고 있다.
1)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멋대로 부리는 악행을 원망하였다(9절). 바벨론으로 잡혀간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벨론의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허사였다. 어떤이들은 이것이 이스라엘의 말이 아니라 바벨론이 보조군대로 고용한 군대들이 한 말이라고 한다. 즉 고용된 군대들이 바벨론을 파멸에서 구하려고 최선을 다하였으나 허사였으므로 그들이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말이라고 한다. "그화가 하늘에 미쳤으므로 그화를 지적한다거나 피한다는 것은 헛일일 것이라."
2) 바벨론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품은 철저한 악의가 불평의 대상이 되고있다. 갈대아인들에게 혹사당하기는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스라엘만이 하나님께 그사실을 불평하였으며 또한 확신을 갖고 호소한다(34,35절). 그들은 이렇게 호소한다. "나와 및 내 육체와도 같은 내 자녀들에 대한 그들의 잔학이 그들에게 돌아가게 하소서, 나를 찢고 내 백성의 피를 물쏟듯이 흐르게한 그들에게 그들의 행한 잔학이 돌아가게 하소서. 그죄악을 그들에게 추궁하시고 그들의 손에서 그대가를 받으옵소서."
(3) 이러한 호소에 대하여 하늘과 땅의 공의로운 재판관이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바벨론을 심판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36절). 내가 네 송사를 듣고. "그러니 너는 내게 맡기라. 적당한 시기가 되면 너의 호소를 들어 '너를 위하여 보수하되' 예루살렘이 흘린 모든 핏방울에 이자를 붙여 갚게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그럽게 대하신다. 그래서 그들의 불의와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신다.' 아직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만군의 여호와요 능력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려 하신다.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이시니 반드시 보응하시리로다(56절). 곧 그들이 행한대로 갚으실 것이다. 또한 그는 '그들이 시온에서 모든 악을 행한대로 바벨론 모든 거민에게 갚으리라'(24절)고 말씀하신다. 갈대아인들이 유다인들을 심판하였듯이 이제 고레스가 갈대아인들을 심판할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시온의 자녀들은 개선하게될 것이다(10절). 여호와께서 우리 의를 드러내셨으니. 즉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에게 부당한 처사를 행한 자들을 대적하시며 우리를 치료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찬양이 올려진다. 오라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자. "다른 사람들도 청하여 우리와 함께 찬양하게 하자."
(4) 시온의 송사를 지지하시고 이 거만하고 유력한 적에 대한 보수에 착수하신 하나님의 주권이 선언된다(14절). 하나님께서 무수한 적의 군대로 바벨론을 덮으실 것이다. 그는 메뚜기떼가 덮여있듯이 바벨론이 사람으로 덮히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바벨론이 압도될 것이다. 바벨론과 같이 강력한 왕국을 파멸시킨 분은 누구신가? 선지자는 그가 전에 하나님에 관하여 묘사했던 말을 빌어 하나님을 설명한다(렘 10:12-16).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물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이심을 확신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심으로 이사실을 알리신다는 뜻에서 반복하여 기록된 것이다.
1) 그는 바로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이시다(15절).
2) 그는 그가 지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권세를 갖고 계시다(16절). 그는 그의 섭리하심으로 창조 활동을 계속하신다.
3) 그의 말씀의 실현을 막는 우상은 가짜에 지나지않으며 우상숭배자들은 야만인일 뿐이다(17,18절).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이방의 신들은 서로 비교할수도 없을만큼 큰차이가 있다(19절).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즉 이일을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이요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은 서로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분깃'이요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분깃이기 때문이다.
(5) 본문에는 바벨론을 멸하는데 사용될 도구에 관하여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메대왕들의 마음을 격발시키신다'(11절). 이들은 다리오와 고레스로서 하나님의 뜻으로 바벨론을 치러온다. 왜냐하면 그가 '바벨론을 멸하시기로 뜻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치시는데 사용하신 도구들은 '파괴하는 바람'으로 비유되어 있다(1절). 이는 바람의 한냉함으로 지상의 과열을 상하게 하듯이 또는 바람의 맹위가 그앞에 부딪치는 것을 떨어뜨리듯이 그들이 그렇게 파괴하리라는 뜻이다. 이바람은 '하나님의 곳간에서 비롯된 것이다'(16절). 이바람이 일어나 갈대아인들이 거하는 중심지역을 강타할 것이다. 뿐만아니라 그들과 유대를 맺고있는 이민족들가운데를 강타할 것이다. 바벨론을 치는 자들은 '키질하는 자'에 비교되고 있다(2절). 왜냐하면 '키가 쭉정이를 몰아내듯이' 그들이 바벨론을 몰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갈대아인들은 한때 하나님의 백성을 키질하는 자였었다(15:7).
(6) 그들은 바벨론 국토를 황폐케할 전권을 위임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갈대아인들의 '궁수를 향하여 활을 쏘게' 하신다(3절). 그들은 필요한 준비만 갖추고 있으면 된다. 27,28절에 그들이 이일에 불리움받는 것이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기를 세우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기아래 군대를 모집하라고 하신다. 또한 '나팔을 불어서' 사람들로 깃발아래 모이게 하고 열국으로 신병을 모집하게 하라고 하신다. 이 열국가운데서 고레스의 군대가 징집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라랏과 민니'와 아르메니아의 '아스그나스 나라'와 및 브루기아와 비두니아옆에 있는 아스가니아 나라들에게 명하사 고레스에게 충성할 병사를 보내라고 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이 메뚜기떼처럼 바벨론땅을 황폐케할 것이다(욜 1:4).
(7) 갈대아인들은 위협적으로 그들을 파괴하며 닥치는 군대에 맞서 싸울능력이 없었다. 그들은 싸울준비를 하라고 불리움을 받고있다. 그러나 비웃는듯한 어조로 불리움받고 있다(11절). '화살을 갈라'고 하였는데 이는 오랫동안 사용치않아서 녹슬어 있음을 나타낸다. 방패를 굳게 잡으라. 이는 오랜 평화와 안정으로 방패가 여기저기 흩어져 뒹굴고 있음을 뜻한다. 바벨론 성벽을 향하여 기를 세우고(12절). 그러나 그부름에 즐겨 따르고자 하는자는 없을 것이다(29절). 바벨론의 용사는 싸움을 포기하였다(30절).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력을 쇠하게 하시므로 그들은 요새에 숨어 있을수밖에 없게된 것이다. 그리하여 적들이 그들의 주거지를 불사르며 성문의 빗장을 깨뜨려도 아무런 저항도 할수 없게된다(30절). 56-58절 말씀은 이와 똑같은 취지를 담고있다. 노략자들이 바벨론에 닥칠때 바벨론의 용사들이 즉시 사로잡히고 '그들의 활마다 꺾여질 것이다.' 그들의 정치적인 노력도 허사로 끝난다. 회의에 참석한 방백들과 족장들은 얼이 빠지고 낙담하여 취한 사람과 같이되어 버릴 것이다. '바벨론의 성벽'도 그들의 의지가 되지 못한다(58절). 적들은 유브라데를 건널 길을 찾으면서도 결코 건널수 없으리라 여겼었다. 또한 그들은 바벨론의 성벽이 넓으므로 그성을 도저히 함락시킬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어떤이는 바벨론 성이 외성, 내성으로 되어있고 각각 삼중의 벽으로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성벽들이 '온전히 무너지겠고 그높은 문들과 망대는 불에 탈것이다.'
(8) 그파멸은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권능으로 바벨론을 치고자하시므로 아무도 저지할수가 없다(8절). 예레미야가 이말씀을 예언했을 당시와 그후 오랫동안 바벨론은 최대의 융성을 누리고 있었다. 바벨론의 파멸은 하나님의 공의에 부합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피할도리는 없었다. 왜냐하면 바벨론은 높은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들이 그 지나는 곳을 쑥밭으로 만들듯이 그 주변국가를, 곧 '온세계를 멸한 멸망의 산'이었기 때문이다(25절). 그러나 이제 바벨론 자신이 그암반으로부터 굴러떨어져 나가게 된다. 바벨론은 때가 이른 타작마당과 같은지라(33절). 거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오랫동안 타작을 당해왔다. 그러나 이제 바벨론 자신이 타작당할 시기가 오고있다. 바벨론은 '재물이 많은' 나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물도 많은 재물도 바벨론을 구하지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벨론의 끝날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고레스가 대대적으로 전쟁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한해에 계속 떠돌았고' 그가 치고자하는 곳은 다름아닌 바벨론이라는 '소문이 다른 한해동안 떠돌았었다.' 그러므로 고레스가 침략하기전 멀리에 있을때 사절을 보내어 평화조약을 체결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하기에 그는 너무나 교만하였고 마음이 이미 완고해져 있었으므로 성이 점령당한 것을 알기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렸다. 그러므로 위기에 처한 곳에 있는 사람들이 이사실을 알리고자 연이어 사자를 보내었다(31절). 그들이 전한 소식은 이러하였다. "적이 모든 나루를 빼앗았나이다(32절). 요새와 강변의 전략요충지가 점령당했고 적이 강을 확보하였나이다. 적은 성에 공포를 안겨주려고 강변의 갈대에 불을 놓았고 이를 보고 모든 병사들이 항복하였나이다." 사자들이 이러한 급보를 가지고 연이어 달려왔고 이소식은 곧 적들이 궁중에 들이닥쳐 왕을 시해함으로 사실로 실현되었다(단 5:30). 성이 점령되던 바로 그시각에 그들이 베풀고있던 저주스러운 주연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38,39절). 그들이 다 사자같이 소리하며. 즉 이들은 머리꼭대기까지 술에 취하여 취홍으로 도도해진 사람들과 같았다. 그들은 술잔을 돌리며 마셔댔다. 이제 '여호와의 오른손의 잔이 그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다'(합 2:15,16). 그들이 쓰디쓴 잔을 마시며 즐거워하지만 바로 그날밤 잔치도중에 벨사살이 살해당하였던 것이다. 적들의 침입해 들어오는 세력은, 범람하여 밀어닥치는 물에 비교되어 있다(42절). 바다가 바벨론에 넘침이여. 한번 전선이 무너지면 그것을 막을도리가 없다. 그많은 파도가 그것에 덮였도다. 즉 바벨론은 무수한 적병에 의하여 압도당하였다. 바벨론의 '성읍들은 황폐하여' 살수 없는 불모의 사막이 되었다(43절). 그파멸은 바벨론의 신들, 그우상들과 신상들에도 미칠 것이다. "온땅에 혼란이 일어나고 칼에 맞은 자들이 쓰러져 부상자들의 신음이 점친다는 표시로 내가 바벨론의 조각한 신상들을 벌할 것이라"(47,53절). 침략자들 자신이 우상숭배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벨론의 신상들과 신전들을 부술 것이다. 바벨론 사람들이 주로 경배하는 신은 벨신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에는 그이름이 제시되어 있다(44절). 내가 벨을 바벨론에서 벌하고. 사람들은 신상에 풍성한 제물을 바쳤다. 그러나 벨의 제단은 버림받을 것이요, 아무도 벨을 돌보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우상이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바벨론은 '황폐한 무더기가 될것이요'(37절) 파멸하여 아무쓸모가 없게될 것이다(26절). 사람이 네게서 집모퉁이 돌이나 기촛돌을 취하지 아니할 것이요.
(9) 하나님의 백성에게 바벨론을 떠나라는 명령이 주어지고 있다. 파멸이 다가올때 성을 떠나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이다(6절). 바벨론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그리하면 너희가 바벨론의 패륜의 징벌과 더불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벨론가운데 있다할지라도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나 공연히 공포에 떠느니 '바벨론가운데서' 도망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다(45,46절). 유혹을 당할때 그것을 이길 자제력을 충분히 갖지못한 사람들은 유혹에서 멀찌감치 피해버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이사실은 50,51절에 기록되어 있다. "압제자였던 '갈대아인의 칼을 면한 너희 이스라엘 자손이여.' 또한 갈대아인을 멸할 바사인의 칼을 면한 너희여. '서지말고 달아나라,' 서둘러 너희 조국으로 달아나라. 이곳은 너희가 쉴곳이 아니라. 너희 쉴곳은 가나안 땅이로다." 귀향하는 포로들은 도중에 예루살렘에 관한 소식을 듣고 이렇게 외친다. "우리가 수치를 당하였도다. 예루살렘이 그와같이 되다니! 얘기만 들어도 '부끄러움이 우리 얼굴에 덮였느니라.' '성소가 모욕을 당하고' 이방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소식에 마음이 민망하여 예루살렘을 생각하여도 기쁨이 없도다." 이러한 탄식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그가 바벨론의 신들을 이겼으며 그리하여 이제 예루살렘의 수치가 영영히 불러갈 것이라고 답변하신다(52절).
(10) 바벨론의 함락으로 야기될 여러가지 감회가 언급되고 있다.
1) 어떤이들은 바벨론의 멸망을 슬퍼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벨론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들린다'(54절). 그것은 대단히 큰곡성이다(55절). 그들이 통곡하면서 하는말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41절). 슬프다 세상이 함락되었도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로다! 온세상의 찬양을 받고 영광을 누리며 열국의 '경이의 대상'이었던 성이 그렇게 될줄을 과연 누가 알았던가!"
2) 한편 어떤이들은 바벨론의 함락을 기뻐할 것이다. 이는 같은 인간들의 곤경당함을 인함이 아니요, 바벨론의 멸망이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의 나타남이며 포로된 하나님 백성의 해방을 위한 활로를 터주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Ⅱ. 백성들을 위한 예언 51:59-64
(1) 이예언이 기록된다. 본문에 바룩에 관한 기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예레미야가 손수 기록한듯하다(60절).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임할 모든 재앙 곧 바벨론에 대하여 기록한 이모든 말씀을 한책에 기록하고.
(2) 이기록은 스라야를 통하여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에게 보내졌다. 스라야는 '시드기야왕 4년에' 수행원으로서 거기에 갔다(59절). 그는 시드기야와 함께 또는(다른역본에 있는대로라면) 시드기야 대신으로 바벨론에 갔다. 그는 시종장이었으며 온유하고 평화로운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으나 쉽게 노하며 자기고집만 내세우는 완고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조용한 성품의 소유자로 어떻게하면 화해를 이룰까하는 것을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이와같은 사람이므로 예레미야는 안심하고 그에게 사명을 맡길수 있었다. 위대한 인물이 차분한 성품을 지닐수 있는 것은 대단히 명예로운 일이다.
(3) 예레미야는 스라야에게 이예언을 앞서 포로로 잡혀간 그의 동향인들에게 읽어주라고 간절히 부탁하였다. "네가 바벨론에 이르면 그곳이 얼마나 굉장한 성인가를 알게되리라. 그성의 크기에, 강함에, 부요함에, 완벽한 방비에 놀라, 너는 이 정도라면 이 성은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을 받으리라. 그렇지만 너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너의 친구들에게 이말씀을 읽어줌으로써 포로된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라. 그들로하여금 신앙의 눈을 떠 바벨론의 위협적인 세력의 종말을 보게하라."
(4) 스라야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수호할 것과 그예언의 확실성을 그들로하여금 알게하라는 지시를 받는다(63절). 스라야는 바벨론의 번영을 보겠지만 이예언의 말씀을 읽고서 바벨론이 멸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견해야만 했다. 우리가 이세상을 볼때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이세상의 찬란한 외모와 그럴듯한 계획에 매료될듯한 때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을 읽음으로써 '그유행은 지나간다'는 것을 알아야하며 또한 그런 세상을 거룩한 경멸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을 배워야할 것이다.
(5) 선지자는 스라야에게 책을 돌에 매달아 유브라데 강에 빠뜨리라고 지시한다. 이행위는 그책속에 포함된 말씀이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표시였다. 그말씀의 내용은 '바벨론이 이같이 침륜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53,64절). 이 상징적인 행위에서 책을 가라앉힌 것은 돌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암시하고자 하는 내용은 오히려 책이 돌을 가라앉혔다는 의미를 띤다. '돌처럼 틀림없는' 것같이 보였던 바벨론성을 몰락시킨 것은 이예언에서 바벨론에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선고 바로 그것이었다. 본장의 마지막 말씀들은 이책의 환상과 예언이 끝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예레미야의 말이 이에 마치니라(16절). 그가 이예언을 한것은 그의 최종예언이 끝나기 훨씬전인 시드기야왕 4년이었다(59절). 그러나 바벨론 멸망에 대한 이예언은 이방인들이 멸망에 대한 모든 예언가운데서 맨마지막으로 성취될 것이었다(렘 46:1). 이제 나머지 장에서는 순전히 역사적인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어떤이들이 추측하듯이) 다른 사람에 의하여 추가된 내용이다.

# 핵심
51:42
바다가 바벨론에 넘침이여 거대한 바다물결처럼 대적들이 바벨론을 일시에 덮칠 것을 묘사한다. 한편 바벨론신화에 의하면, 바벨론의 주요 신인 말둑(Marduk)이 혼돈의 바다 티아맛(Tiamat)과 싸워 이겼다고 한다. 바벨론이 바다에 삼켜지는 것처럼 표현하는 본절은 이같은 바벨론 신화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철퇴(51:20)
전투용으로 만든 철퇴는 B.C. 3500년경부터 근동지역에서 사용되었다. 철퇴의 긴막대기 끝에는 속이빈 금속 공이가 달렸고, 맨아래에는 손잡이가 있었다. 철퇴의 공격을 방어할수 있는 투구가 발명되자 철퇴의 효력이 크게 떨어졌고, 철퇴대신에 전투용 도끼가 나오게 되었다. 철퇴는 권위를 상징하기도 한다(참조, 시 2:9).

# 묵상
바벨론 왕국에 대한 심판주도 ( 51:1-10 )
본문은 바벨론에 내릴 심판을 예언하는 것으로서 타국인을 바벨론에 보내어 키질하여 재앙의 날을 당하고 졸지에 넘어져 파멸될 것을 이르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멸망시키는 자의 마음을 충동질해서 바벨론을 치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멸망시키는 자란 궁극적으로 바사왕 다리오를 가리킵니다.
온세계로 취하게하는 금잔 ( 51:7 )
온세계로 취하게하는 금잔이란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바벨론은 열방으로하여금 취하여 제정신을 차릴수 없게하는 포도주 잔이요, 멸망에 이르게하는 죽음의 잔이었습니다.
우리의 의를 드러내시는 여호와 ( 51:10 )
바벨론을 멸하시고 회개한 이스라엘을 속량하시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는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것이며 또한 이스라엘을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죄를 지었으나 누구도 그죄를 찾을수 없도록 그들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말일이 되면 성도들은 의의 행실로 짠 하얀세마포를 입고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앞에 서게될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의롭게 됩니다.
바벨론의 멸망모습 ( 51:41-44 )
바벨론은 사람이나 짐승이 거하지 못하는 황무지가 될것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곧 유다 백성들의 승리이며, 무엇보다 이것은 악인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즉 바벨론을 통하여 유다를 징계하신 것은 하나님의 일시적인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심판은 영구적인 것이며, 이는 곧 마지막날에 있을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우준하고 무식한 사람 ( 51:17 )
하나님께서 그권능과 지혜와 명철과 목소리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존재케했으나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우상을 섬기기때문에, 본문에서는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만 허무하게 사라져버릴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바로 인간의 지혜요 명철입니다.
여호와의 손 ( 51:25 )
여호와의 손이란 그의 권능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손을 편다고 하는것은 여호와의 권능이 역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손을 펴사 대적들을 멸하시고 이스라엘을 그들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이나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이 갑자기 무력하게 되어 패전함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성도는 나라를 다스리는 분은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해야 하겠습니다.
바벨론의 멸망 ( 51:33-35 )
바벨론의 멸망원인은 바벨론의 잔혹한 핍박으로인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송사, 곧 기도하고 간구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의 신음소리를 듣고 출애굽시키신 하나님은 다시금 이스라엘의 송사를 들으시고 그들을 바벨론에서 해방시키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바벨론이 영적으로 볼때에 악의 상징이요, 사탄의 앞잡이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연회 ( 51:39 )
여호와께서는 바벨론으로하여금 취하여 기뻐하다가 영영히 잠들어 깨지 못하게 하기위해서 연회를 베푸실 것입니다. 이는 바벨론이 승리에 취해 연회를 즐기며 타락한 삶을 산것을 암시합니다. 연락을 즐기는때에 여호와의 진노의 칼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악한 자는 영벌에 선한 자는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두려워할 풍설’ ( 51:46 )
두려운 풍설이란 바벨론을 괴롭혔던 수많은 폭동들과 왕위교체에 대한 풍문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풍문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지만, 또한 동시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그중의 모든 것의 노래 ( 51:48 )
바벨론이 파멸되었기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들이 기뻐노래하게 됩니다. 즉 바벨론에 의해서 정복되었던 근동의 여러나라들이 바벨론의 멸망으로인해서 그들의 잔혹한 압제에서 해방되므로 이를 기뻐하게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마음에 두어야할 예루살렘 ( 51:50 )
본문에서, 칼을 면한 자들이란 유다의 포로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어야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그것이 자신들의 악행에 대한 보복임을 명심하라는 경고입니다.
얼굴에 덮인 부끄러움 ( 51:51 )
부끄러움이 얼굴에 덮인 이유는 이방인이 여호와의 집성소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방인은 하나님의 전에서 이방인의 뜰외에는 들어갈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성소에 들어가고 또 하나님의 성물을 만지는 것은 곧 이스라엘이 수치를 당한 것을 의미합니다.
성소를 더럽히는 자들 ( 51:52, 53 )
여기서 성소를 더럽히는 자들이란 바벨론을 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지은 신상을 벌하시고 그들을 신음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자신을 조롱하고 멸시한 자들에 대하여 어떻게 벌하실지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모독한 교만자들은 바벨론처럼 기어이 멸망당하게 됩니다.
유브라데 하수에 던져질 책 ( 51:63, 64 )
예레미야의 이러한 행위는 바벨론이 하나님의 재앙으로인해서 유브라데 하수에 던져진 책처럼 침륜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쇠패할 것을 상징으로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유다는 멸망당했어도 다시 구원받았으나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은 그들의 지나친 교만과 잔악함으로인해 영원히 멸망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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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다인의 귀향에 대한 예언 50:1-8
1. 바벨론 멸망의 예고(1-3)
본문은 바벨론에 관하여 주어진 예언이다. 바벨론왕은 예레미야에게 매우 큰호의를 베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해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지자는 사사로운 정이나 감정에 지배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라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원수노릇을 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화평을 약속할수 없다.
(1) 본문에서 바벨론의 멸망은 이미 도래된 일처럼 말씀되어 있다(2절).
(2) 바벨론의 함락은 이미 남김없이 이루어진 사건으로 언급되어 있다. 백성들이 온갖 정성을 다하여 보호했던 바벨론의 우상들은 파괴될 것이다. 그들의 으뜸가는 두신 벨과 므로닥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 그들의 형상들이 '부스러질 것이고' 국토는 황무해질 것이다(3절). 북방 곧 바벨론 북쪽에 있는 메대와, 고레스가 바벨론으로 진군해 내려올때 경유했던 앗수르로부터 민족이 일어나서 바벨론 국토를 황폐시킬 것이다.
2.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위안(4-8)
본문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위로의 말씀이 예언되어 있다. 그말씀은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에게' 다 해당된다.
(1) 먼저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며 그다음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약속되어 있다. 그들의 회개와 변화에 대한 약속이 다른 모든 약속들을 이루는 통로역할을 하고있다(4,5절). 그들은 사무엘시대에 온이스라엘 지파가 그리하였듯이 '울며 여호와께 구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울며 그길을 갈것이다.' 이눈물은 경건한 애통함에서 나오는 눈물이다. 그것은 죄에 대한 회개의 눈물이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기쁨의 눈물이다. 그들의 해방의 날이 동터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들은 포로가 되어 재난을 당하던날 회개한 것보다 그해방의 날에 더욱 죄를 통회했을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께 문의할 것이다. 그들은 슬픔에만 잠겨있지 아니하고 '울며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삼고' 구할 것이며 더이상 우상들과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다시 조국으로 돌아갈 것에 대하여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자비로 여길뿐만 아니라 의무로 여길 것이다(5절). 그들이 그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길을 물으며. 여로는 멀고 길도 알지못할 것이나 그들은 '길을 물으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것은 가련한 영혼들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참으로 회개한 사람들은 목적을 달성하려는 간절한 염원과 길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들은 장차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동행할 것이라는 계약을 새롭게 한다. 너희는 오라 잊어버리지 아니할 영영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자.
(2) 그들은 현재의 처지가 너무 애처럽고 또 그 기간이 아주 길었기때문에 그들은 울었다.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떼로다(6절). "그들은 '산에서 작은 산으로' 돌아다녔으나 목초지를 발견할수 없었도다. 그들은 자기들의 고향에서 '쉴곳을 잊었으며' 또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지도 못하였도다." 그들을 '곁길로 가게한 것은 그들의 목자들', 즉 그들의 방백들과 제사장들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인들로하여금 그의무에서 떠나게 하였다. 그로인하여 하나님께서 격노하사 그들을 조국에서 쫓아내셨던 것이다. 그들은 길잃은 양떼와 같았다. '그들을 만나는 자들은 그들을 삼켰고' 먹이로 삼았다. 그들을 쫓는 자들은 그들을 비웃으며 말하기를 너희의 선지자들이 너희가 받으리라고 수없이 말하던대로 너희가 어려움을 당했다고 하였다. 그들은 성전과 그들 조상들이 지켜온 전통을 경멸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러한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유의 문이 열려있는 지금 곧 갈길을 떠나라고 재촉하신다(8절). 너희는 바벨론가운데서 도망하라. "국경을 빠져나오라. 서둘러 시온으로 가라. '양떼의 앞장을 서는 수염소같이 앞을 다투라.' 너희는 먼저 있어야할 것을 애써 구하라. 그러면 만사가 순조로우리라."

Ⅱ. 바벨론에 대한 심판 50:9-20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지자를 통하여 바벨론과 쟁론하신다.
(1) 본문에서는 바벨론을 멸망시킬 자들에게 책임이 위임된다. 이일을 수행할 군대는 '큰연합국'이라고 불리우고 있다(9절). 즉 메대와 바사를 비롯하여 그들의 모든 동맹국들과 지원국가들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으키사 이일을 수행케 하시었다. 또한 그들에게 이일을 수행할만한 적합한 힘을 주셨다. 그렇게 한뒤 하나님은 '그들로 일어나 나와서 바벨론을 쳐 항오를 벌이게' 하신다(14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화살을 아끼지말고 쏘라'고 명하신다(14절). 하나님께서는 그위임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신다. 그는 그들에게, 바벨론을 향하여 화살을 쏘라'고 명하실뿐만 아니라(14절), 승리를 이미 확신하고 있는 자처럼 의기양양하게 '소리질러 치라'고 명하신다(15절).
(2) 본문에는 바벨론에 폐허와 멸망이 임한다는 사실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1) 정복자들이 바벨론의 재물을 마음껏 포식하며 손쉽게 탈취할 것이다(10절).
2) 바벨론땅에 거민이 없어 무인지경이 될것이다(13절).
3) 바벨론 군대가 첫공격을 받고 도망함으로써 그들의 조상의 얼굴에 치욕을 가하게될 것이다(12절). 이사실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의 어미가 온전히 수치를 당하리라. 곧 그들의 모성(母城)인 바벨론이 버림을 받아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4) 바벨론에 아첨을 하던 자들도 바벨론이 비참하게 된것을 볼것이다. 열국중 맨나중까지 존속하였던 바벨론도 '광야와 마른땅과 사막이 된것'을 그들이 보게될 것이다(12절).
5) 바벨론의 심장부인 수도가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의 보복이다. 여호와의 보복은 논리로써도 싸움으로써도 도무지 당할수 없다.
6)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바벨론에도 '포도원지기와 농부'가 끊어질 것이다(16절). 추수때가 되어도 거둘 자가 없으며 파종때가 되어도 심을 자가 없다.
(3) 바벨론 멸망의 원인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이었다. 여호와의 진노로인하여 거민이 없는 온전한 황무지가 될것이라(13절). 그의 진노는 의로우시다. 왜냐하면 바벨론이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다(14절). 그러므로 바벨론을 치는 자들에게 '화살을 아끼지말고 쏘라'는 명령이 주어진다.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치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다(11절). 너희가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디도 베스파시안 황제는 예루살렘을 공격할때 예루살렘을 위하여 울었다. 그러나 이들 갈대아인들은 예루살렘에서 개선가를 불렀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얻은 전리품들을 그들의 허영을 채우는데 사용하였다. 재물을 지나치게 삼킨 자들은 언젠가 다시 토해내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도 항복하게 되었다(15절). 그들의 목적한바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완전한 멸망, 곧 '이스라엘이 잃어버린 양떼가 되며'(6절), '흩어진 양'이 되는 것이었다(17절). 이스라엘은 흩어진 양이라 사자들이 그를 따르도다. 이비유적인 표현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사실로서 나타난다. 앗수르의 한 왕이 이스라엘 열지파를 사로잡아가 삼켰으며 곧 이어 다른왕이 유다를 침략하여 폐허로 만들었다. 곧 이들이 이불쌍한 양의 털을 깎고 살을 찢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느부갓네살이 이양을 넘어뜨려 '뼈를 꺾었다.' 그러므로 앗수르왕이 벌을 당한 것같이 바벨론왕도 벌을 당할 것이다(18절).
(4)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자비가 약속된다. 그들은 속박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그리고 흩어졌던 양떼가 우리로 돌아오듯이 '다시 그목장으로 돌아오게'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번창케하실 것이다. 그들은 다시 고국에서 살게될뿐 아니라 위로를 받으며 살것이다. 그들은 그땅의 가장 아름답고 비옥한 곳인 '갈멜과 바산에서' 소출을 먹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할수 있는 시온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5절). 곧 그들은 단지 시온으로 돌아가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시온에 이르게 하실뿐 아니라 그들이 배부르게 먹을수 있는 갈멜과 바산으로 그들을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법을 사하실 것이다. 이 불법이 모든 일의 화근이었다(20절). 그날 그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그들의 불법에 대한 형벌이 거두어질뿐만 아니라 그들의 불법으로인하여 하나님이 품으셨던 노여움도 그쳐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화평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얼마나 철저하게 사하셨는지를 나타내준다. 그는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죄에 대한 완전한 사면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과 생활이 철저하게 변화되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함받은 자들에게 베풀어주실 큰은혜를 예비해 두고 계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가 의롭다 여기신 자에게 또한 영화를 얻게'하시기 때문이다.

Ⅲ. 황폐된 바벨론 50:21-32
(1) 군대가 소집되고 바벨론을 멸망시키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고레스의 군재는 바벨론을 치라는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21절). 먼데 있는 너희는 와서 그를 치고(26절). 고레스의 군대는 전열을 가다듬도록 지시를 받는다. 그들 모두에게 해야할 일과 또 그에 따르는 충분한 보수가 있을 것이다(26절). 특히 활쏘는 자들이 바벨론을 공격하라고 불리움을 받는다(29절). 나 여호와가 그병고를 열고 분노의 병기를 냄은(25절). 이제 메대와 바사제국은 하나님의 군대로 쓰임받는다. 그는 진노의 병기를 꺼내신다. 고레스와 그의 용감한 장군들 그리고 그의 군대가 곧 그병기이다.
(2) 그들에게 수행해야할 임무가 부여된다(21절). 그들은 바벨론 '곳간을 열어야'하며(26절) 그 보고를 약탈해야 한다. 그리고 '바벨론을 쌓아 무더기 같게' 해야한다. 바벨론의 방백들과 존귀한 자들도 칼에 맞아 쓰러질 것이다. 그들은 전장에서의 용사처럼 명예롭게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짐승들처럼 쓰러질 것이다.
(3) 고레스 군대의 승리가 확약된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하신대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에게 경고하신 것이 성취될 것이다. 곧 고레스가 확실히 승리할 것이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싸우기 때문이다.
(4) 바벨론을 엄하게 처벌하시는 이유가 제시된다.
1) 바벨론은 모든 인접국가에게 매우 가시같은 존재요 위협적인 국가였다. 그나라는 '온세상의 방망이'와 같았다(23절). 열국의 하나님께서는 부당하게 무력으로 다른 국가들을 참략하여 괴롭히는 나라들을 대적하심으로써 피해받은 국가들의 권리를 수호하여 주신다.
2) 바벨론은 하나님까지도 무시하였다. 네가 나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24절). 그들은 국가를 통치하는 일이나 전쟁에서 하나님을 공공연하게 대적하였다. "그러므로 네가 올무에 걸렸으며 만난바 되어 잡혔도다."
3) 바벨론은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과 거기있는 성전을 훼파하였다. 성전을 불태우고 그곳의 기명들을 약탈한 책임을 이제 하나님께서 바벨론에게 물으신다. 바벨론은 '온세상의 방망이'인 자기를 더중시하였다. 그러나 시온은 온세상의 기쁨과 영광이 되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게 복수하신 것이다.
4) 바벨론은 오만불손하였다. 그러므로 몰락할수밖에 없는 것이다(욥40:12).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밀침을 당하여 넘어졌다기보다는 스스로 넘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목을 곧게 세워 아래를 내려다 보지않고 걸었기 때문이다.

Ⅳ. 하나님의 큰권능 50:33-46
(1)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수난과 그수난으로부터의 구원이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함께 학대를 받는도다(33절). 앗수르 왕국이 갈대아 왕국을 병합했을때 포로로 잡혀간 열지파 사람들가운데 남은 자들이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간 두지파의 자손들과 합쳤으므로 그들이 '함께 학대받은' 것이다. 그러나 곤경중에도 그들에게 위로가 된것은 비록 그들은 약할지라도 '구속자', 즉 복수해주시는 분은 '강하시다'는 사실이었다(34절). 그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라. 그리고 그는 그의 이름에 부끄러움이 없이 행하신다. 그는 백성들이 의지하는대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신다. 그들의 원을 펴서 그땅에 평안함을 주고. 곧 자기 백성의 땅에 평안을 주사 주변에 있는 모든 적들로부터 쉼을 얻게하신다. 이말씀은 모든 신자들, 즉 죄와 부패에 지배당하는 자기의 연약함에 대하여 근심하는 자들에게 적용된다. "우리의 구속자께서는 강하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는 자기에게 의탁하는 자들을 보호하실수 있다. 그는 죄가 그들을 지배하지 못하게하실 것이다. 그가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시므로 그들이 진정으로 자유하게될 것이다. 또한 그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실 것이다. 이안식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다.
(2) 본문에서는 바벨론의 죄와 그 죄로인하여 그들이 받을 형벌이 진술된다.
1) 그들은 우상숭배와 이스라엘에 대한 박해때문에 추궁을 당한다.
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였다. 그들은 '사로잡힌 자를 그집으로 놓아보내지 아니하였다'(사 14:17).
② 그들은 또한 하나님께 대해 잘못을 범하였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받으셔야할 영광을 다른 신들에게 돌림으로써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였다. 그땅이 조각난 신상의 땅이요 그들은 우상에 미쳤음이니라(38절). 원문에서 우상을 나타내기위해 사용한 말은 '공포'를 뜻한다. '에님'이라고 불리우는 이명칭은 무시무시한 거인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즉 그들은 그들의 신상을 어리석은 자들이나 어린애들이 공포를 느끼도록 무서운 형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바벨론은 '음녀들의 어미'(계 17:5), 곧 우상숭배의 온상이었다.
2) 그들에게 내려진 심판은 가혹하였다. 이러한 죄에 대하여 내려지는 하나님의 심판은 이처럼 가혹한 것이므로 그심판을 당하는 자들은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① 그들이 믿고 의지하던 모든 것이 칼에 의하여 끊어질 것이다. 갈대아인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의 칼로 사용되어 왔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통하여 주변의 죄를 지은 열국들에게 형을 집행하셨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도 다른 나라들처럼 악하였으므로 그들에게 '칼', 곧 전쟁의 칼이 임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심판의 칼이다(35절). 그칼이 '그들의 방백들과 지혜로운 자들'에게 임할 것이다. 곧 바벨론의 철학자, 정치가, 왕실 고문들위에 임할 것이다. 그들의 학식이나 정책도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할 것이며 또한 질서를 유지시켜주지 못할 것이다. 그칼이 바벨론의 술사와 점성가들, 곧 본문에 '거짓말장이들'(36절)이라 되어있는 자들에게 임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벨론의 화와 번영을 예언함으로써 백성들을 우롱하였으며 그결과 백성들이 분별력을 상실한 자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벨론의 용사들이 낙담할' 것이며 그러므로 더이상 '용사'라는 말을 듣지못할 것이다. 칼이 그들의 말들과 병거들과…위에 임하리니(37절). 즉, 침략자들이 그들의 말들과 병거들을 탈취할 것이다. 또한 바벨론에 고용된 타국민의 군대들은 마음이 동요될 것이다. 다시말해 이 '잡족이 부녀같이 약해지고 겁을 먹을 것이다.' 재력은 전쟁의 원동력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노략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원수들이 그들을 치는데 사용될 것이다.
② 국토가 황무해질 것이다(38절). 가뭄이 물위에 임하여 그것을 말리우리니. 그물은 성을 방어해주고 있었다. 고레스는 많은 운하를 파서 유브라데스 강물을 끌어들였고 그리하여 그의 군대가 강을 건너 바벨론 성벽을 쉽사리 공략하게 되었다. 바벨론은 그강물을 건드릴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바벨론 지역을 비옥하게 했던 그물이 이제 마를 것이다(39절). 바벨론에 관한 이러한 예언은 이사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사 13:19-22).
③ 적들이 침략해옴으로 왕과 왕국이 온통 혼란에 빠질 것이다(41-43절). 잔악을 행하고 자비를 베풀줄 모르던 자들은 자기들도 악행을 당하고 자비를 받지못하게될 것을 예상해야 한다.
④ 왕과 백성은 놀라는데 그치지않고 많은 해를 입게될 것이다. 왜냐하면 침략자들이 '사자처럼 올라와서' 그들을 찢어 죽이고 파괴하며(44절) 또한 그들과 그들의 주거지를 황폐케할 것이기 때문이다(45절). 이파괴가 놀랄정도로 극심해서 주변 모든 국가들이 이를 보고 두려워 떨게될 것이다(46절). 위 세구절은 에돔의 파멸에 대한 예언에서도 선포되었었다(49:19-21). 에돔을 파멸시킨 것은 갈대아인들이었다. 이제 그예언이 바벨론의 파멸에 대한 예언에서도 반복되어 갈대아인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 핵심
50:1-51:64
바벨론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예언이다.
렘 50:39절의 바른해석
본절에 “사막의 들짐승”과 “시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각각 ‘치임’과 ‘이임’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① 들짐승과 숲속의 새를 가리킨다. ② 유령들과 악귀를 의미한다. ③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숲의 신인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사티로스와 요정을 가리킨다. 이중에서 KJV와 NIV 등 대부분의 영역본들이 ① 의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바벨론이 완전히 황폐해져 사람은 없어지고 들짐승의 처소가 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는 것이다(사 13:20-22).

# 묵상
벨과 므로닥 ( 50:2 )
벨과 므로닥은 바벨론의 수호신으로서, 벨은 공중과 땅을 다스리는 태양신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이 신의 이름을 본따서 벨드사살, 벨사살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또한 므로닥은 바벨론 제국이 바벨론을 그들의 도성으로 삼은뒤 그들의 주신으로 섬겼습니다. 느부갓네살은 특별히 므로닥을 숭배했습니다. 므로닥역시 존경과 보호의 의미로 사람들의 이름에 붙여졌는데 에윌므로닥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바벨론 멸망예언 ( 50:9 )
바벨론은 북에서 일어난 연합국에 의해서 멸망되리라고 예언되었습니다. 이예언대로 메대를 병합시킨 바사왕 고레스 2세는 주전 539년 벨사살을 제거하고 바벨론을 완전히 점령했습니다(단5:30, 31).
바벨론의 멸망원인 ( 50:11 )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후 그정복감에 못이겨서 마치 ‘곡식을 가는 송아지같이 뛰며 힘센 말같이’ 울었습니다. 이렇게 바벨론은 그자신이 하나님의 심판도구였음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면서 교만해졌던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며(잠16:18), 수치와 치욕만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흩어진 양과 사자 ( 50:17 )
흩어진 양은 이스라엘이며 사자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을 가리킵니다. 사자의 공격에 의해서 양떼가 이리저리 흩어짐같이 바벨론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포로로 수치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찾을수 없는 이스라엘의 죄 ( 50:20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은 죄를 사하셨기때문에 그죄를 찾을수 없습니다. 죄는 있으나 그죄가 가리움을 받는 것은 은혜요 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에서 해방되고 의인이라고 인정받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해서입니다.
온세계의 방망이 ( 50:23 )
바벨론은 하나님이 심판도구로 쓰시던 심판의 방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서 유다와 애굽과 고대근동의 여러나라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방망이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교만해졌기때문에 하나님은 그방망이를 꺾어버리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도구라도 경건치 못하면 하나님께서 쓰시기를 중단하고 심판하심을 보여주는 좋은 교훈입니다.
열방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 50:28 )
하나님은 보수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한없고 긍휼이 끝이 없지만 죄악에 대해서는 철저히 복수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때문에 선인은 반드시 보상받으며 악인은 철저히 형벌받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악인이 형통한다고 하더라도 의인은 그것때문에 하나님의 사심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 ( 50:34 )
이스라엘의 근친법에 따르면 구속자란 생존한 사람중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고엘’이라 합니다. 고엘은 친척이 가난해서 토지를 팔았을 경우에는 그것을 다시 사주고, 노예가 되었으면 속량해주며, 살해당했으면 피의 복수를 해주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입니다. 유다의 고엘은 바로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바벨론 포로상태에서 유다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노예상태에서 자유한 자로 해방시키신 분도 모든 사람의 고엘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대가로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된것입니다.
바벨론 거민이 당하는 재앙의 특징 ( 50:35-38 )
하나님의 재앙은 칼로서, 모든 방백들과 자긍하는 자와 기타 거민과 부녀, 그리고 그들의 재물에까지 이르게됩니다. 즉 칼로 바벨론이 망하게 된다는 뜻인데 ‘칼’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전쟁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강력한 바벨론을 치게 하실 계획으로 바벨론보다 더강한 나라를 세우심으로 바벨론을 치셨습니다. 바벨론은 교만함과 회개치않음으로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북방에서 오는 한 족속 ( 50:41 )
북방에서 오는 한 족속이란 바벨론을 멸망시킨 메대와 바사연합국을 가리킵니다. 이란족인 메대와 아리안족인 바사가 합쳐서 이룩된 이나라는 거의 2세기동안 서아시아를 지배했습니다.
바벨론에 대한 여호와의 도모와 경영 ( 50:45 )
양떼의 어린 것들, 곧 바벨론의 자녀들을 침략자들이 포로로 끌어가고 그처소를 황무케하며 그들의 함락하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고 그부르짖음이 열방중에 들릴 것입니다. 이는 바벨론의 파멸이 바로 여호와께서 세우신 경륜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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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암몬에 대한 심판 49:1-6
이어서 모압과 같은 혈통이며 그 인접국가인 암몬 자손에 관한 예언이 나와있다.
(1) 하나님의 이름으로 암몬 자손에 관한 한 소송이 본문에 제기되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들에 인접되어 있는 땅인 갓지파의 유업을 불법으로 소유한 것에 대한 고소이다(1절). 앗수르왕이 길르앗 자손들을 사로잡아 가자 이땅은 거의 백성들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다음 침략자에게 손쉬운 먹이가 되고만 것이다. "유산을 마땅히 물려받아야할 갓 자손이 없었단 말이냐? 설령 없었다하더라도 너희보다 더가까운 친족인 이스라엘 자손이나 유다인의 남은 자들이 없었단 말이냐? 어찌하여 너희의 왕이 버려진 재산의 상속자인 것처럼 행세하느냐? 또한 너희의 우상인 말감이 이땅을 자기의 숭배자들에게 처분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갓을 점령하며',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중 그지파에게 주어져야할 성읍들에 거함은 어찜이뇨?" '그들이 스스로 커서 그경계를 침범하고'(습 2:8) 그땅이 자기의 것이라고 자랑하였다. 자기가 손을 대는 것은 무엇이든지 자기의 것이 될줄로 생각하는 자들은 자신이 큰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발견하게될 것이다. 재산은 그소유자가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그가 죽으면 당연히 상속자가 물려받아야 하는 것이다. 상속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잘 모른다해서 또는 어떻게 유산을 상속받는지를 모른다고해서 횡령하는 것은 큰죄이다.
(2) 이횡포에 대한 심판이 암몬 자손에게 내려진다. 하나님께서 '전쟁소리로' 암몬인들의 수도이며 매우 강한 요새인 '랍바에 들리게할 것이다'(2절). 그들의 성들은 파멸에 처하게될 것이다 .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마을들이 황무할 것이다(4절).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돌아선데 대하여 문책을 받는다. 그들은 의인 롯의 후예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었고 완고하였도다."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을 버렸고 그리하여 '그들의 골짜기를 자랑하였다'. 그들은 이골짜기를 폭력으로 이스라엘에게서 탈취하였다. 그들은 접근하기 어렵도록 산들로 둘러싸인 그들의 난공불락의 골짜기를 자랑하였고 그소출들을 자랑하였다. 그들은 그땅이 주는 즐거움이 결코 방해받지 아니하리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속였다. 그들은 '내일도 오늘과 같이 무사하리라'고 말하였다. 이같이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심판을 무시하였다. '그들의 왕과 방백들이' 그리고 그들의 신 말감과 '그의 제사장들이 다 사로잡혀갈 것이다'(3절). '각사람이 쫓겨서 바로나갈 것이요' 전력을 다해 도주할 것이다(5절). 또한 '도망하는 자들을 모을 자도 없을 것이며,' 그들을 맞기위해 문을 열어줄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암몬 자손의 땅은 남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중에 넘겨지게될 것이다(2절).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에 모압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들에게도 긍휼을 베풀어주시겠다는 약속이 주어진다(6절).

Ⅱ. 에돔에 대한 심판 49:7-22
다음으로 에돔 자손들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그들의 운명에 대한 선고를 받는다. 그들역시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의 숙적이었다. '에돔에 관한' 이예언에 사용되어 있는 말씀중에는 많은 것이 '에돔에 관한' 오바댜의 예언에서 유래하고 있다. 그이유는 모든 선지자들이 한분같은 성령에 의하여 영감을 받기 때문이다.
(1) 에돔 나라가 황무하게 되겠고 폐허가 될것이다. 에서의 재난을 그에게 임하게 하여(8절). 이는 에돔의 옛 죄때문에 받아야하는 재난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방문하시어 송사하실때가 이르렀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칼을 피하여 도망하며, 전쟁에서 달아나며 은폐된 굴에 은거하여 몸을 숨기게될 것이다. 그들이 가졌던 모든 것은 정복자들이 약탈해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 파괴하는 자들은 만족을 모를 것이다(9,10절). 에서로 적신이 되게 하여. 약탈자들은 에돔 자손에게서 그 가진바 전부를 벗겨갈 것이다. 그의 형제 모압 자손도 그의 이웃인 블레셋도 에돔처럼 노략을 당하여 에돔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수 없으며 피신처조차도 주지못할 것이다. 네 고아들을 남겨두라 내가 그들을 살려두리라 네 과부들은 나를 의지할것이니라(11절). 갈대아인들은 하나님의 이말씀이 그의 백성에게 이루어지게 하였다. 즉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재난을 당한 에돔 자손과 구분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을 다음과 같은 뜻으로 이해할수 있다. "그러나 너 이스라엘 집이여 ! 너희 고아들을 너희가 아주 잃어버리지 않으리니 내가 그들을 보호하고 너희 과부들은 나를 의지할 것이니라. 에돔 자손들의 과부들이나 고아들이야 어찌되든 내가 너희 이스라엘 과부와 고아들을 돌아보리라." 에돔 족속은 힘있는 자의 행세를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열방중에서 작게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하는 자들은 오히려 사람들가운데서도 멸시를 당하게 된다(15절;옵1:2). '에돔이 이같이 황폐하므로' 경계의 대상이 될것이며 '기거하는 사람도 없게'될 것이다(18절).
(2) 에돔을 파멸시킬 도구는 매우 가혹하고 막강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돔이 황페하게 되도록 정하셨다. 또한 그는 에돔을 황폐케할 자를 속히 오게하셨으며 강력하게 힘을 더해주셨다. 본문에서 예언되고 있는 도구는 바로 느부갓네살 이었다. 그는 '사자처럼' 성난 모습으로 미친듯이 쳐들어올 것이다. 즉 요단강 물이 범람하여 물가의 거처를 좀더 높은데로 옮길수밖에 없게된 성난 사자처럼 그렇게 닥칠 것이다(19절). 양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어가고(20절). 즉 느부갓네살의 수행원가운데 가장 비천한 종마저도 그들을 굴복시켜 갈것이다. 느부갓네살이 백수의 왕인 사자처럼 닥칠뿐만 아니라 조류의 제왕인 독수리같이 임할 것이다(22절). 그는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독수리처럼' 그렇게 빠르고 힘차게 들이닥칠 것이다. 그리하여 용사일지라도 상대방이 도저히 싸워 이길수 없는 적수임을 알고 낙담케될 것이다.
(3) 에돔 자손들이 믿던 것은 그들이 고통을 겪는 날에는 아무소용도 없을 것이다.
1) 그들은 자기의 지혜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을 수호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이것이 에돔이 침략을 당하는 예언에서 그첫째 대상으로 등장한다(7절). 그들 국가는 지혜로 명성을 떨치곤 했다. 그리고 그들의 정치가들은 정치에 뛰어난 것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그렇게 뛰어난 그들이 그모든 경영에 있어서 잘못을 저지름으로써 그들의 모든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에돔 자손이 어찌된 일인가?"라고 물을 것이다. 데만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7절). 하나님께서 한백성을 멸하고자 하시면 인간의 모든 지혜는 이렇게 허사가 되고만다. 하나님은 멸하고자하는 자의 얼을 빼놓신다(참조. 욥 12:20). '그들의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 이말씀에 대해 어떤이는 "다 소진되고 말았는가?"라고 해석하며 "지혜가 쓸모없이 되었는가?"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2) 그들은 자기의 힘을 믿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들에게 아무도움이 되지 못하였다(16절). 과거에 그들은 인접한 모든 국가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웃 국가중 누구도 감히 그들과 분쟁을 일으키려하지 않았기때문에 그들은 세계에서 자기를 당할 나라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의 국토는 험한 산악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많은 통로를 가지고 있어 그들은 침략자를 방어하기에 더없이 좋다고 생각하였다(참조. 옵 1:3,4,8장).
(4) 그들의 파멸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1) 그들의 파멸의 결정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12절). 그는 그것을 맹세하셨다(13절). 그들은 '두려움의 잔을 마셔야 한다.' 이잔은 모든 인접국가에게도 주어진 것이었다.
2) 온세상이 그들의 파멸을 주목하게될 것이다(21절). 그 넘어지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며 또한 열국이 그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 부르짖는 소리는' 에돔의 해안을 따라 '홍해에 들릴 것이다.' 또한 그소리는 홍해에 정박중인 선박들에게도 들릴 것이다(왕상 9:26).

Ⅲ . 다메섹에 대한 심판 49:23-27
가나안 북방에 위치한 수리아 왕국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종종 괴롭히곤 하였다. 다른 두도시 하맛과 아르밧도 지명되어 있다. 또한 벤하닷이 세운 그의 궁전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27절에 기록되어 있다(참조 암 1:4). 다메섹의 심판은 두려움과 절망을 몰고오며 시작된다. 그들은 '흉한 소문을 듣는다.' 즉 바벨론왕이 그의 온군대를 끌고 그들을 향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었다. 그들은 이소식에 당황한다. 그들은 마음이 녹아내리며 낙담에 빠진다. 그들은 '쉼없이 요동하는 바다와 같이 되었으며'(시 107:20), 바다가운데서 폭풍을 만난 사람들처럼 두려움에 빠진다(시 109:26). 또한 성안에서 시작된 슬픔이 바닷가까지 퍼진다(23절). 다메섹이 피곤하여(24절). 해산하는 여인이 닥친 산고와 씨름하는 것이 무익하듯이 그들도 자기에게 닥친 운명과 싸우는 것이 무익하다고 생각한다. 다메섹은 '찬송의 성읍'이었다(25절). 그러나 하나님을 찬송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메섹은 스스로를 찬양하였으며 그곳을 방문하는 나그네들에게 그영화로움을 자랑했던 것이다. 다메섹은 또한 '기쁨의 성읍'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성이 슬픔과 두려움으로 압도당하고 있다. 그성은 무서운 몰락과 화염속에서 종말을 고한다. 그주민들은 살해당할 것이다(26절). 성을 방어해야할 젊은이들이 자기가 살던 거리에서 칼에 쓰러질 것이다. 성이 재가운데 누울 것이다(27절). 성을 포위한 자들이 놓은 불이 성벽에 붙고 그불이 벤하닷 궁전을 삼킬 것이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치려는 많은 음모가 획책되었다.

Ⅳ. 게달에 대한 심판 49:28-33
본문은 느부갓네살과 그의 군대가 게달 백성과(게달은 이스마엘의 아들 게달의 후손이며 아라비아의 바위투성이의 땅에 거하였다) 하솔의 거민을 멸하리라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다. 하솔은 그주민의 대부분이 가나안 자손들로 이루어진 나라로서 가나안 북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왕은 야빈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서 쫓겨난 아라비아 사막에 정착하였다. 그들은 '장막'에 거하였는데 그장막은 벽아닌 '휘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29절).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요새화된 성도 없었고 '성문이나 문빗장도 없었다'(31절). 그들은 유목민이었고 따라서 보물도 없었다. 그들은 돈도 없었으며 다만 양떼와 약대만이 있었다. 그들은 침략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홀로 거하였기' 때문이다(31절). 그들에게는 군대도 없었다. 그들은 교역도 하지않고 재물도 없었으나 본문에는 그들이 '평안하고 염려없이 거하는 백성'이라고 일컬어져 있다. 참으로 부유한 사람은 생필품이 넉넉하면 그것으로 만족할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왕이나 제후들의 보물이나 상인들의 현금을 필요로하지 않았고 부유한 국민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들은 '장막에 거하는' 유목민의 생활로 만족하였다. 그곳을 치기로 결정한 바벨론왕은 많은 난공불락의 요새를 깨뜨린 그가 '장막에 거하는' 자들을 정복치않고 그대로 두었다는 말을 듣고싶지 않았다. 그것은 독수리가 파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우습잖은 꼴이었다. 이백성들은 인접국가들을 괴롭히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멸하라'고 말씀하셨다(28절). 하나님께서는 감사할줄 모르는 이백성을 바로잡으시고자 그렇게 명하신 것이다. 갈대아인들의 침략으로 그들은 놀라고 대대적인 파괴가 그들가운데 행하여진다. 너희는…그들을 향하여 외치기를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할지니라(29절). 변방에서 거하던 자들이 전국 각처로 그경고를 전달할 것이다. 이 경고로 대혼란이 야기된다. 하솔 거민들은 "두려움이 사방에 있도다. 우리가 적에게 포위되었도다"라고 외치며 아무도 적에게 저항할 엄두를 내지못할 것이다(29절).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는 말이 사방으로 적에게 포위되어 있을때처럼 실감있게 들리는 적도 없을 것이다. 갈대아인들은 그들의 휘장과 모든 기구를 취하여갈 것이다. 그것들이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갈대아인들은 노략질을 위한 노략질을 할것이다. 너희는 그장막과 약대를 취하며(29절). 약대는 다만 장화를 만드는데 소용이 될뿐이나 그들은 그것을 탈취할 것이다(32). 그들중 살해된 자가 있다는 말은 본문에 없다. 이는 그들이 아무저항도 하지않고 살려주는 보상으로 장막과 양떼를 갈대아인들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흩어져 각처에 거하게될 것이다. 그들 나라에는 거민이 없어질 것이다. 외지에 있고 또 이방인들을 유혹할만한 성이나 땅도 없기때문에 아무도 이땅에 와서 살고자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솔은 영원히 황무하게될 것이다(33절).

Ⅴ. 엘람에 대한 심판 49:34-39
이예언은 시드기야 통치초기에 선포된 것이다. 엘람 자손이란 셈의 아들 엘람의 후손으로 곧 바사 사람을 가리킨다(창 10:22). 그러나 어떤이들은 엘람이 단지 유다에서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바사의 한지역을 뜻할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곳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이스라엘을 정복하려고 '전통을 메고' 있었다(사 22:6). 그러므로 그들도 다른 국가들처럼 하나님의 진노의 계수하심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엘람으로 그원수의 앞 그생명을 찾는 자의 앞에서 놀라게할 것이며 내가 재앙 곧 나의 진노를 그위에 내릴 것이며(37절). 그들의 군대는 무력하게될 것이다. 엘람 자손들은 궁술로 유명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엘람의 활을 꺾을 것이다'라는 말은(35절) 그들의 궁수들이 전멸되리라는 것, 곧 '엘람의 으뜸가는 힘'이 끝장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신임하는 것이 우리를 실망시키도록 일을 정하시며 우리가 으뜸되는 힘으로 삼는 것이 정작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못함을 입증시키신다. 엘람 백성들은 각처로 흩어질 것이다. 곧 세계만방에서 그들을 대적하는 적들이 몰려와서 그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각처로 끌고갈 것이다(36절). '사방 바람'이 그들에게 불어올 것이다. 폭풍우가 때로는 이쪽에서 때로는 저쪽에서 불어닥칠 것이다. 그들의 왕족이 멸망할 것이요 정권이 교체될 것이다(38절). 내가 나의 위를 엘람에 베풀고. 즉 느부갓네살이 엘람의 보좌를 차지하든지 아니면 엘람을 먼저 정복했던 고레스가 그보좌를 차지할 것이라는 뜻이다. 혹 그것은 하나님께서 엘람에 보좌를 정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뜻일수도 있다. 엘람왕은 예전에도 유명했었다(창 14:1). 그돌라 오멜이 바로 엘람의 왕이었고 또한 당대의 용사였다. 짐작컨대 그의 후계자들도 상당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엘람왕도 하나님앞에서는 여느사람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할지라도 엘람의 멸망이 영구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39절). 끝날에 이르러는 내가 엘람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리라.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하고 제국을 다시 바사 사람들의 것으로 복구시켰을때 틀림없이 엘람 자손들도 개선하여 조국에 다시 정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약속의 완전한 성취는 메시야의 날에야 이루어졌다. 성령께서 임하셨을때 엘람인들중 몇사람은 '하나님의 큰일이 자기 나라 방법으로' 전파됨을 들었던 것이다(행 2:9,11).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포로들에게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귀환이라 할수 있는 것이다.

# 핵심
49:1-39
이스라엘과 다양한 정치적 관계를 맺어왔던 주변의 소국가들인 암몬, 에돔, 다메섹, 게달과 하솔, 엘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예언이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놓이기도 했고, 가끔 이스라엘의 고난을 조롱함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하기도 했다. 이제 하나님은 친히 그들에게 보응하사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밝히 드러내신다.
밀곰숭배(49:1)
밀곰은 암몬 족속이 섬기던 주신(主神)으로 몰렉, 몰록, 말감 등으로도 불렸다. 밀곰숭배 의식에는 인신제사가 수반되었다. 솔로몬은 밀곰우상을 도입하고, 예루살렘 동쪽언덕에 그성소를 세웠다(왕상 11:5,7,33). B.C. 622년경 요시야왕의 종교개혁때 밀곰숭배가 타파되었다(왕하 23:13).

# 묵상
암몬에 대한 예언 ( 49:1-6 )
그들이 거하던 땅은 거친 무더기가 되고 촌락은 불에 타며, 딸들이 굵은베를 감고 애통하며, 말감과 제사장과 방백들이 사로잡혀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역시 후에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포로에서 돌아오게 됩니다. 이와같이 열방을 심판하신 여호와께서 말일에는 열방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암몬 자손 ( 49:1 )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으로서(창19:38), 암몬과 이스라엘은 옛부터 원수지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말감을 섬겼는데 ‘밀곰’ 혹은 ‘몰렉’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말감제의는 어린아이를 타오르는 불속에 던지는 희생의식이었습니다(레18:21; 왕하23:10; 렘32:35).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신인 말감을 이스라엘에 몰래 들여와 이스라엘의 여호와신앙을 타락시킨 것때문에 예언자들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도 암몬의 신을 숭배하여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산당을 짓고 그곳에서 자기 자녀를 희생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
에돔 족속 ( 49:7 )
에돔의 조상은 에서입니다. 에서는 신약에서 ‘망령된 자’라고 불렸는데 망령된 자란 물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들이며 성전보다는 시장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야곱과 에서사이에서 시작된 이스라엘과 에돔의 갈등은 역사이래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에돔에 대한 비난이 가장 신랄한 예언서는 오바댜서입니다.
포도를 거두는 자 ( 49:10 )
‘포도를 거두는 자’나 ‘도적’은 다같이 에돔을 침략하여 에돔 사람들의 재산을 약탈해갈 바벨론 군대를 표현합니다. 본문은 바벨론 군대가 에돔을 철저하게 약탈하고 파괴할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에돔에 대한 책망 ( 49:16 )
에돔은 스스로 두려운 자인줄로 여기고 마음이 교만했기때문에 책망받았습니다. 즉 야곱에게 속은 그들의 조상 에서처럼 에돔역시 물질에 눈이 어두워 진정한 장자권, 곧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될수 있는 기회를 잃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양자의 영을 주어 당신을 아버지로 부를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이 바로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길입니다.
다메섹에 대한 예언 ( 49:23-27 )
앗수르에 멸망되었다가(왕하16:9) 다시 재건된 다메섹은 아람의 수도로 북왕국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고 유다를 침공하기도 했습니다(사7:1). 예레미야는 다메섹 청년은 거리에서 엎드러지겠고 모든 군사는 멸절될 것이며 성벽과 궁전은 불살라질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고통당할 다메섹 ( 49:26, 27 )
다메섹의 청년들은 거리에 엎드러질 것이고 모든 군사는 멸절될 것이며, 궁전은 불타버릴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나라의 종말을 암시하는 것으로 아무리 장성한 나라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달과 하솔 족속 ( 49:28-33 )
본문은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게 공격당할 게달과 하솔에 대한 예언으로, 그들은 사방에서 재난이 임하여 영원히 황무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게달과 하솔은 아라비아 족속으로서 팔레스틴 동부의 아라비아 사막에서 거주하면서 대규모 목축(사60:7)과 두로와 시돈과의 교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했습니다(겔27:21). 이들은 자기만 아는 백성으로서 하나님보다는 부를 의지한 교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엘람 사람들 ( 49:34 )
엘람 사람들은 바벨론 동쪽 티그리스강 건너편에 위치한 페르시아계로서 몹시 거칠고 노략질을 일삼으며 활을 잘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전 8-7세기 엘람은 갈대아와 연합하여 앗수르에 대항했으나 그들의 도성 수사는 함락되었습니다. 엘람은 한때 앗수르를 도와 유대를 침략한 것때문에 저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사11:11; 21:2;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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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모압의 멸망에 대한 예언 48:1-13
(1)모압을 멸망시킨 주권자는 '만군의 여호와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1절). 그는 여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항상 괴롭혀온 백성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간청을 들으시고 모압이 옛이스라엘에게 행한 불의에 대하여 처벌하고자 하신다.
(2)'파멸하는 자가 각성에 이를 것'이다(8절). 그들은 '추격하는' 칼을 가지고 올것이다(2절). "내가 모압을 방랑자들에게 보낼 것이라(12절, 한글개역에는 '그 그릇을 기울일 자'로 되어있음-역주). 그들은 집시처럼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압으로하여금 유랑하게 하리라." 그들은 모압을 모해한다. 그들이 목적하는바는 바로 모압의 멸망이다. 와서 그를 끓어서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자(2절).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략자들에게 모압을 철저히 유린할 것을 요구한다(10절).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사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원칙이다. 즉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자' 또는 게을리 하는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3)모압의 성읍들은 황폐할 것이다. 그것들은 노략질당할 것이며(1절), 끊어지고(2절), 황무하여져서(9절) 거하는 주민이 없어질 것이다. 촌락도 폐허가 될것이며 '골짜기는 훼파되고 평원은 파멸될 것이다'(8절). 평원을 뒤덮으며 골짜기를 기쁨에 충만케하던 곡식과 양떼들도 모두 먹히우고 짓밟히며 약탈될 것이다. '제사장들과 방백들이 함께 포로되어 갈것이다'(7절). 그들이 섬기던 신 그모스 또한 멸하여질 것이다. 그의 신전들은 재가 될것이며 그의 신상들은 다른 전리품들과 함께 노략질당할 것이다. 그결과로 큰수치와 혼란이 닥칠 것이다. 기랴다임이 수치를 당하여 점령되었고 미스갑이 수치를 당하여 파괴되었으니(1절). "헤스본에 대한 모압의 칭송이 없어졌도다"(2절은 이렇게 읽어야 옳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신들에 대해서 더이상 자랑하지 못할 것이다(13절). 그들은 '그모스로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인바 이스라엘 집이 베델을 의뢰하므로 수치를 당한 것같이' 당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벧엘의 금송아지를 세웠으나 그금송아지는 그들을 앗수르인들의 손에서 구해줄수 없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모스도 갈대아인들로부터 모압 족속을 구할수 없을 것이다. 언덕에 올라가보아도 골짜기로 내려가보아도 어디에나 울음바다일 것이다(본문에는 '울고울며'라고 되어있다). 모든 사람이 눈물에 젖어있어 눈물없는 눈은 찾을래야 찾을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부르짖을 것이다. "어서어서 서둘러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라(6절). 전력을 다해 달려서 너의 안전을 도모하라. 비록 네가 '광야의 떨기나무'나 귀뚜라미처럼 또는 말라비틀어진 관목처럼 맨발로 달아나는 형편이라도 생명의 안전만을 꾀하라. 너희는 오히려 불모의 광야에서 안식처를 구하라. 위험은 갑자기 신속하게 닥칠 것이라." 그러므로 다음의 권고가 주어진다. 모압에 날개를 주어 날아 피하게 하라(9절).
(4)하나님이 이제 모압을 심판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제까지 태평무사하여 그들의 부와 힘만을, 곧 그들의 '공작과 보물을 의뢰'하였기 때문이다(7절). 그들은 오직 '그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하였다(시52:7). 그들은 오랫동안 침략당한 적이 없었다. 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11절). 모압은 이스라엘이 있기전부터 존재해온 오래된 나라였고 비록 작은 나라일지언정 태평성대를 누려왔다. 모압이 동요된 적은 없었고 포로로 잡혀간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압은 우상을 숭배하는 사악한 민족이요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자를' 치려고 공모하는 자들가운데 하나였다(시 83:3, 6). 그들은 오랫동안 부패해있었고 돌이켜 본적도 없었다. 모압은 그찌끼와 함께 그대로 보존된 포도주와 같았다(11절). 그는 평안을 누리며 번영에 도취해 있었다. 그맛이 남아있고 냄새가 변치 아니하였도다. 즉 그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악하였다.

Ⅱ. 멸망의 원인 48:14-47
여기에는 모압의 파멸이 보다 광범위하게 감동적인 언어로 예언되고 있다. 이예언이 목적하는바는 그들을 각성케하여 개인적인 회개를 일으켜 거족적인 회개를 통하여 고난을 방지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이예언은 인간 생활의 비참한 상태와 패역한 민족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힘을 깨우쳐주고 있다.
(1)본문에 경고되어 있는 파멸은 급작스럽고 놀라운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강력한 적일지라도 싸워 물리칠수 있는 힘을 가지고있다고 생각했으며 전쟁에 대하여 막강하게 대비되어있다고 여겼다(14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이 이르렀을때 모압은 그재난을 격퇴할수 없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그가 독수리같이 날아와서 모압위에 그날개를 펴리라(40절). 즉 원수의 군대가 모압을 치고자 모압에 진을 칠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도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모압의 요새들은 겁결에 점령될 것이며(41절). 그로말미암아 모두 낙담하여 넘어지게될 것이다. 이 갑작스런 두려움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려면 범상치않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2)모압에 내린 파멸은 철저한 파멸이다. 모압이 황폐되었도다(15절). 모압이 패하여 수치를 받나니(20절). 이제 모압은 국가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상실하였다. 모압의 뿔이 찍혔고(25절). 즉 공격과 방어에 있어서 힘과 위력을 자랑하던 뿔이 꺾인 것이다. '모압의 군대는 패하여' 다른나라를 공격할수도, 자기에게 닥치는 공격을 막을수도 없게 되었다(25절). 모압의 젊은이들이 전쟁에 나가 승리를 얻고 돌아오자고 스스로 다짐하였으나 하나님은 그들이 내려가서 '살육을 당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원수된 자들은 빠른시일에, 또한 철저하게 멸하여질 것이다.
(3)파멸은 애통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기쁨을 무거운 슬픔으로 변하게 할것이다. 선지자도 이 파멸때문에 애곡한다. 내가 모압을 위하여 울며(31절). 또한 그가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곡할 것이며(32절). 그의 마음은 모압을 위하여 피리같이 소리할 것이다(36절). 죄인들의 파멸이 하나님께 기쁨이 될리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것을 안타깝게 여겨야 한다. 이장의 다른 말씀들처럼 본문의 말씀은 이사야의 모압에 대한 예언과 상당히 일치되고 있다(사 15:16). 이사야의 예언과 예레미야의 예언은 양자사이에 상당한 시대적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한분같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모압은 스스로의 파멸로 곡하게 될것이다. '영광가운데', 부와 쾌가가운데 앉았던 자들이 '메마른', 곧 물로 위로도 없는 메마른 땅에 '목마른채 앉아 있게될 것이다'(18절). 지방의 가장 외진 곳에 있는 모압인들은 도망치는 사람들에게 '일이 어찌되었는가'(19절)라고 묻게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통한에 잠겨 울며 부르짖을 것이다(20절). 그들은 성읍을 떠나 바위사이에 거하며 거기에서 울음에 잠겨 지낼 것이다. 그들은 '비둘기처럼'(25절) 곧 '골짜기 비둘기처럼'(겔 7:16) 더이상 노래하는 새가 아니라 우는 새가 될것이다. 모압이 기뻐하던 것은 달콤한 과실들과 풍부한 포도주였다. 곧 이러한 관능적인 기쁨이 그들의 기쁨의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모든 소산물을 빼앗기고 그들의 정원과 포도원이 파괴당함으로써 '그들의 모든 쾌락도 끝이 났다'(호 2:11,12). 기쁨과 즐거움이 옥토와 모압 땅에서 빼앗겼다(33절). 관능의 기쁨은 쉽게 잃어버릴수 있는 것이기때문에 그러한 기쁨을 자기의 주된 기쁨으로 삼는 자들은 가장 큰슬픔이라는 폭군에게 자기를 예속시키는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으로 즐거움을 삼는 자들은 '비록 무화과나무에 꽃이 피지않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더라도' 기쁨을 잃지 아니한다. 모압의 모든 인접국가들은 모압과 함께 애곡하며 파멸당할 모압을 위로하도록 요청받는다(17절). 그의 사면에 있는 모든 자여.... 그를 위하여 탄식하여. 어떤 민족도 자신의 강함이나 아름다움을 자랑하거나 신뢰해서는 안된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앞에서는 어떠한 안전함도 있을수 없기 때문이다.
(4)이파멸은 수치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인하여 그들은 경멸당하게될 것이다.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26절).
(5)이파멸은 모압인들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위에 임할 것이다. 그들의 여름실과와 포도뿐만 아니라 그들의 재물도 소실될 것이다(36절). 그 모았던 재물이 없어졌음이니라. 재물이란 우리가 제아무리 그것들을 주의깊게 손아귀에 쥐고있어도 먼지처럼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그 보다 더나쁜 것은 신앙이 잘못된 자들이 무엇보다도 재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본래 재물이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위험물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모압 산당에서 분향하는 자를 그치게 하실 것이다'(35절). 제사 드리던 언덕들이 파괴되겠고 제물을 소출해내는 밭들이 황폐해질 것이다. 또한 '그신들에게 분향하는' 제사장들은 살해당하거나 포로로 잡혀가게될 것이다.
(6)이파멸은 받아 마땅한 것이었으며 죄로인하여 자초된 것이다.
1)그들이 지은 가장 악한 죄는 교만이었다. 이사실은 여섯번이나 지적되어 있다(29절).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있는 것이 훨씬더 광범위한 것이다. 모압의 교만에 관한 두가지 실례가 본문에 나온다.
①모압은 하나님을 향하여 무례하게 행하였다. 모압은 '여호와를 거스려 자만하였기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해 마땅하였다(26절). 모압 족속은 여호와보다 그모스를 더좋아하였다. 그리고 그모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겨룰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②모압 족속은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하고 있을때 이스라엘을 경멸하는 행위를 하였다. 그러므로 모압이 같은 곤경에 빠지며 같은 조소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네가 이스라엘을 조롱하지 아니하였느냐(27절). 이렇듯 모압 족속은 그들의 즐거움을 공공연히 선포하였으며, 곤경에 처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의기양양해 하며 그들을 비웃었던 것이다.
2) 이 죄들이외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악행한 죄와 그들과의 거래에서 속이는 죄를 범하였다(30절). 그들이 망했다고 기뻐하며 말하던 그나라가 다시 일어날 것이다. 44절은 죄인들이 일반적으로 당할 운명에 대한 말씀이다(참조. 사 24:17,18). 두려움에서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떨어지겠고 함정에서 나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그러나 여기서 이말은 특히 모압의 죄인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또한 이 상징적인 표현이 45절에서 다음과 같은 실제로 적용되어 있다. 즉 적의 군대가 무서워서 마을을 벗어나 도망하던 자들이 '헤스본 그늘아래' 서서 이제 안전하겠지 하고 생각하지만(이는 오늘날에 때로 군대가 후퇴하여 대포로 장비된 요새로 몸을 피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결국 헤스본에서도 낙담하게 된다. 왜냐하면 '함정에서 나오는 자가 올무에 걸리듯이' 그들이 안식처라고 여겼던 헤스본이 전에 모세가 예언했던 것처럼 그들을 삼켰기 때문이다(민 21:28). 이장은 그들이 '만일에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리라는 짤막한 약속으로 결론지어져 있다. 그들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하나님께서 '모압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47절).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상으로 모압 족속들을 다정하게 대하신다. 비록 모압 족속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다투지 않으시며 항상 노하지 아니하신다.' 모압에 관한 이 긴예언은 여기에서 끝이 맺어지며 그것은 위로로 끝난다. 모압을 심판하는 말씀이 이에 그쳤느니라.

# 핵심
48:1-47
모압 족속에게 임할 심판에 대한 예언.

# 묵상
모압 족속 ( 48:1 )
롯이 그의 맏딸과 근친상간하여 낳은 모압(창19:30-38)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위해서 그들의 땅을 지나가는 것을 거절하기도 했습니다(삿11:17, 18). 또 그들의 왕 발락은 선지자 발람을 보내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타락케 했습니다(민22-24장). 후에 그들은 다윗에게 굴복하게 됩니다(삼하8:2, 12; 대상18:2, 11).
모압에 대한 멸망예언 ( 48:1-10 )
모압은 자신들의 공작과 보물을 의지하며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오히려 우상인 그모스를 섬겼기때문에 멸망당할 것입니다. 본문에 언급된 그모스는 모압의 민족신으로, 모압 사람들은 그모스의 자녀라고 불리웠습니다(민21:29). 또한 몰렉처럼 그모스에게도 아이들을 불살라 드리는 희생제사가 행해졌습니다(왕하3:27). 이처럼 그들은 여호와를 거스려 자만했던 것입니다. 모압의 교만은 곧 자고(自高)와 오만(傲慢)과 자긍(自矜)이었습니다.
그 그릇을 기울일 자 ( 48:12 )
‘그릇을 기울일 자’란 모압을 멸망케할 나라를 가리킵니다. 그릇이 기울어지면 그안에 있는 음식물이 모두 쏟아지듯이 북방에서 강한 나라가 쳐들어와서 모압의 모든 족속들을 땅에 내치듯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그릇이 비듯이 모압이 살던 모든 곳에서는 사람들이 살지못하고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토한 것에서 구는 모압 ( 48:26 )
여기서 토한 것이란 그들의 우상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섬기던 신들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거짓 신앙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신을 섬기고 경배했기때문에 점점더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처럼 그들이 섬기던 신은 아무런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계속해서 그신과의 관계를 고집했기때문에 그들은 수치를 당하고 또한 열방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모압의 죄악 ( 48:27 )
모압의 죄는 이스라엘이 적군에 패할때마다 그들을 조롱하고 기뻐한 것입니다. 결국 모압은 유다의 멸망을 기뻐했기때문에 저주를 받았습니다(신23:3; 느13:1; 시60:8; 83:6; 108:9).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징계를 당하여 고난당할때 이를 비웃는 것은 바로 모압족의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모압을 위한 애곡 ( 48:36 )
본문에서 ‘피리같이 소리한다’는 말은 곧 애곡을 의미합니다. 즉 모압이 멸망을 당하여 그 모았던 재물이 없어짐으로인해서 사람들이 피리로 애가를 지어 부르게될 것을 암시합니다.
애도의 모습 ( 48:37 )
본문에 묘사된 것처럼 두발을 밀고 수염을 깎고 손이 베어지며, 허리에 굵은베가 둘리는 것은 모압 족속이 그들의 슬픔을 표시하는 관습이었습니다. 이는 모압이 대적들로부터 수치를 당할 것임을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모압의 마지막 운명 ( 48:47 )
모압은 철저히 멸망당하여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지만 유다의 포로들은 다시 그들의 나라로 돌아오게될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말일은 곧 메시야 시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모든 족속은 그마음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시온으로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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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블레셋의 운명 47:1-7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애굽인들은 위선적인 친구노릇을 하며 해를 끼쳐왔었다. 마찬가지로 블레셋도 이스라엘의 숙적이었다. 또한 이스라엘에 인접해 있었기때문에 블레셋은 그위험에 있어서 애굽보다 더하였다. 그들은 다윗시대에는 무력했었던것 같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이 그들을 인접국가들과 함께 멸하기까지 그들은 다시 기세가 등등해졌던 듯하다. 여기에 블레셋의 멸망이 예언되어 있다. 이예언이 주어진 시기는 바로가 가사를 치기 이전이다. 애굽왕이 가사를 친때가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여호와의 이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한 것은 블레셋이 어떤 적으로부터도 위협을 받지않던 강성한 때였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들의 파멸을 예언하였다. 그 예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갈대아 군대가 그들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물이 북방에서 일어나(2절). "북방의 차가운 기후에서 발행한 무서운 폭풍우가 닥쳐오리라. 곧 갈대아 군대가 홍수처럼 그들의 땅에 밀려오리라."
(2)이침략으로 블레셋인들은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그놀라움이 극심하여 그들은 달아날 기력도 없을 것이다. 그땅 모든 거민이 애곡할 것이라. 그러므로 각처에서 오직 통곡소리만이 메아리칠 것이다. 죽이고 살해하는 일이 있기전에 '굽치는 소리와 달리는 병거바퀴의 울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놀람이 하도커서 부모가 자녀들에 대한 본능적인 애정까지 잊어버리게될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가 그자녀를' 안전케 하기위해 '돌아보지 못하리라.'
(3)블레셋 땅이 약탈을 당하여 황폐하게될 것이다(4절). 두로와 시돈은 강하고 부유한 도시국가들이었다. 그들은 블레셋이 궁지에 몰릴때 블레셋을 돕곤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도 공동의 파멸에 봉착하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의 남아있는 조력자들까지도 다 끓어버리실 것이다. '갑돌섬에 남아있는 자들'이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갑도림족은 블레셋인과 가까운 친족이었다(창 10:14). 이들은 아마 조국이 망하자 그친족인 블레셋인들과 함께 정착했던것 같다. 본문에는 몇몇 특정지역의 명칭이 나타나있다. 그곳은 '가사'와 '아스글론'이다(5절). '이들 지역이 삭발을 당하리라.' 침략자들이 그들에게서 모든 귀한 것들을 빼앗아갈 것이며 그들을 칼로 칠것이다. 선지자는 평소의 부드러운 어조로 먼저 그들에게 묻는다(5절). "네가 극도의 노여움과 슬픔에 잠긴 사람이하듯 네 몸베기를 어느때까지 하겠느냐?" 여기서 선지자는 결과로부터 원인을 말하고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스스로를 베는 것'은 여호와의 검이 그들을 베는 것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6절). 그는 여호와의 칼이 칼집에 꽂히기를 간청한다. 이것은 전쟁이 종식되기를 바라는 선지자의 간절한 염원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그들이 비록 블레셋인들이라 할지라도 연민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선지자는 불평을 삼간다(7절). 여호와께서 이를 명하셨은즉 어떻게 쉬겠느냐. 일단 칼이 뽑히면 그목적이 이루기전에는 그것이 결코 칼집에 꽂히지 아니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듯 그의 막대기와 검도 하나님이 보내신바 목적을 이루고야 말것이다.

# 핵심
47:1-7
이스라엘을 가장 오랫동안 잔인하게 괴롭혔던 블레셋에 대한 예언이다. 사사 삼갈 당시 이래로(삿 3:31) 히스기야왕에 이르기까지(왕하 18:8),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원수였다. 에스겔도 예루살렘의 멸망을 즐거워하는 자들가운데 블레셋 사람을 꼽고 있다. 하나님은 이예언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입증하신다.
애굽은 언제 가사를 공격했나?(47:1)
바로느고와 느부갓네살이 B.C. 605년에 벌인 갈그미스 전투와 연관된다는 견해, 요시야 통치기간에 발생했다는 견해, 시드기야 제4년(B.C. 593년)경에 이루어졌다는 견해 등이 있다. 그러나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B.C. 609년 바로느고가 므깃도에서 유다 군대를 패배시키고 요시야왕을 전사시킨(왕하 23:29,30)후에 카디티스란 성을 정복했는데, 이 성이 블레셋의 군사도시인 가사와 동일한 곳으로 밝혀졌다.

# 묵상
열방에 대한 두번째 예언 ( 47:1-7 )
블레셋에 대해 예언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두번째 숙적인 블레셋의 멸망은 여러 선지자에 의해 예언되었으며(사14:29-31; 겔25:15-17; 습2:4-7; 슥9:5-7), 그 예언대로 철저히 멸망했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북방의 물 ( 47:2 )
이것은 바벨론제국을 상징합니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은 애굽과의 전쟁으로 그힘이 쇠퇴한 블레셋을 쳐서 멸망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예언을 이루는 심판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주전 604년경).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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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애굽의 멸망에 대한 예언〔1〕46:1-12
본장의 1절말씀은 인접국가들에 관한 말씀으로서 이부분은 제목의 구실을 하고 있다. 열국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1절). 우리는 구약에서 "이방국가들을 치는 여호와의 말씀"을 대하게 된다. 반면에 신약에서는 "이방국가들을 위한 여호와의 말씀"을 대하게 되는데 이는 곧 멀리있던 자들이 가까워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먼저 애굽에 관하여 말한다.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의 오랜 압제자요 최근에는 이스라엘을 미혹시키는자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예레미야는 '여호야김 제4년에 바로느고의 군대'가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패배하리라는 것을 예언한다. 이패배로서 바로느고는 사년전에 앗수르왕에 대하여 정복전쟁을 일으키고 요시야왕을 살해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왕하 23:29). 애굽에 대하여 승리한 이사건은 본문에 득의양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예레미야는 그사실을 즐거운 어조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요시야의 죽음이 바로느고에게 보복되었기 때문이다.
(1)애굽인들은 이 침략전쟁을 위하여 막강한 준비를 한데 대해 책망을 받는다.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보라고 힐난한다. 너희는 큰방패 작은방패를 예비하고 나가서 싸우라(3절). "그처럼 전쟁무기를 준비하는데 만전을 기해보라"(3절). 애굽은 기병전에 능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 기병이여 말에 안장을 지워타며 투구를 쓰고 나서며 창을 갈며 갑옷을 입으라(4절). 하나님께서는 이토벌을 나일강의 범람에 비교하신다(7,8절). 저 나일의 창일함과 강물의 흉용함 같은자 누구뇨, 애굽이 나일의 창일함과 강물의 흉용함 같도다. "그세력이 모든 인접국가들을 위협하며 두려움에 떨게 하는도다." 애굽인들이 일으킨 군대는 진정 무적의 군대였다. 선지자는 그들을 선동하여 부추킨다. 말들아 달리라 병거들아 급히 동하라(9절). 또한 그들의 동맹국들 역시 함께나오라고 도전한다. 구스인과 붓인과 활을 당기는 루딤인이여 나올지니라. 구스인들은 애굽인들과 같은 조상의 후손이었다(창 10:6). 또한 애굽인들은 애굽서편 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는 동맹국들인 붓인과 루딤인들을 그들의 보조군대로 삼았다. 그러나 이모든 일들은 헛된 것이었다. 그들은 수치스럽게 패배할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적하여 치실 것이기 때문이다(잠 21:30,31).
(2)애굽인들은 이토벌에 큰기대를 걸고있는데 대하여 책망을 받는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알았고 하나님도 그들의 생각을 아셨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께서 '곡식단을 타작마당에 모음같이' 그들을 모으신 뜻을 알지 못하였다(미 4:11,12). 애굽은 "내가 일어나 땅을 덮겠고 나를 막을 자가 아무도 없으리라. 나의 가는 길에 어느 성이 가로놓여 있든지 내가 그성을 멸할 것이라"고 말한다(8절). 또 모세를 추격하던 바로왕처럼 '내가 추격하여 그들을 따라 잡으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날이 자신의 날이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날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대적에게 원수갚는 보수일이라(10절). 그날은 여호와께서 애굽인들을 넘어뜨림으로인하여 영광을 받으실 날이다.
(3)애굽인들은 겁을 먹고 도망한데 대하여 책망 받는다(5,6절). "내가 그들을 보았도다. 그들은 모든 막강하고 막대한 준비가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갈대아 군대와 대면하자 낙담하여 도망가며 마음이 동요하여 정신이 하나도 없었도다." 자기의 위치를 사수할 자들이라고 생각되던 용사들까지도 살기에 급급하여 한사람도 남김없이 혼란속에서 도주하였다. 그들은 뒤돌아볼 시간도 그럴 마음도 없었다. 왜냐하면 '두려움이 그들의 사방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피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도주하다 '넘어질 것이며' 그들의 적국인 '북방을 향햐여 넘어질 것이다.' 곧 그들은 너무나 당황하여 고국으로 도주하지 못하고 엉겁결에 적진을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4)애굽인들은 그들이 입은 타격을 복구하지 못하는 전적인 무능력에 대하여 책망을 받는다(11,12절). 큰자만과 긍지를 갖고살던 처녀인 '애굽의 딸'은 패배로 쓰라린 상처를 입었다. 그리하여 이제 그들은 '길르앗의 유향'을 필요로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패배로 잃었던 것을 복구하기위하여 현자들이 처방해주는 모든 약을 필요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모든 것은 허사이다. 그들은 다시는 이렇게 강력한 군대를 전쟁터에 보낼수 없게될 것이다. "너의 영광과 힘을 인정하던 '열국이 너의 수치에 대하여 듣게되리라.' 얼마나 수치스럽게 너희가 패배하였으며 그전쟁의 타격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그들이 듣게되리라." 네 부르짖음은 땅에 가득하였나니(12절). 이는 그들이 참으로 큰혼란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Ⅱ. 애굽의 멸망에 대한 예언〔2〕46:13-28
1.느부갓네살의 침략에 관한 경고(13-26)
본장 전반부에 기록된 예언이 성취되었으므로 이제 애굽인들은 다른 국가들에 대하여 어떤 시도도 도모할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자기 나라를 보존할 여력이 있었으므로 인접국가들이 감히 그들을 넘보지 못하였다. 본문의 예언의 범위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속히 와서 애굽땅을 치리라'는 것이다(13절). 이일 또한 이전과 마찬가지로 느부갓네살왕의 손에 의하여 성취되었는데 그것은 여러해 후에 이루어졌다.
(1)전쟁경보가 애굽에 울려퍼졌다(14절). 적들이 가까이 이르렀다. 그리고 인접인들이 적들을 방어하기위해 준비해야할 때가 온것이다. 이예언은 애굽의 전지역 특히 '믹돌과 놉과 다바네스'에 전파되었다. 왜냐하면 특히 이지역에 유대의 난민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정착해있었기 때문이다(44절). 이것은 이들 유대인들에게 애굽이란 곳이 그들에게는 여느곳이나 다름없이 안심할수 없는 피난처임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2)본문에는 애굽인들이 돈을 주고 고용한 외국인 군대들이 퇴각하리라고 예언되어 있다. 상당수의 이군대들이 애굽을 방어하기위하여 변방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들은 거기에서 침략자들에게 격퇴당하여 도주하였다. 너희 장사들이 쓰러짐은 어찜이뇨 그들이 서지못함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몰아내신 연고니라(15절,참조. 잠 28:3). 그러므로 그들중의 아무도 자기 위치를 지켜낼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갈대아인들을 통하여 그들을 몰아내신다. 그가 많은 자로 넘어지게 하시매 사람이 사람위에 엎드러지며(16절). 그들 각사람의 칼은 그의 동료를 치게될 것이다. 또한 '애굽의 고용군' 즉 애굽이 자신을 위하여 사들인 군대는 '외양간의 송아지같아서' 자기 욕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들은 잘 훈련되어 있었으므로 적들을 대적하여 자기 맡은바를 잘할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싸우는 대신 '돌이켜 함께 도망하였다.' 그들은 모두 자기의 고국을 향하여 발길을 옮겼다(16절). 그들은 "일어나라 우리가 우리 민족에게로 돌아가자. 닥치는대로 도륙해 버리는 갈대아인들의 '무서운 칼을 피하여' 거기서 편안히 살자"고 말하였다. 위급할때에는 돈으로 고용된 용병을 신임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바로를 원망하였다. 그들은 바로가 서툴게 군대를 통솔했기때문에 패배한 것이라고 하였다. 바로는 용병들을 전선에 배치하면서 위급한 시기가 오면 자기가 정예부대를 직접 인솔하여 그들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던것 같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실망시켰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 위치를 버리고 '애굽왕 바로가 망하였도다. 그가 시기를 잃었도다'라고 외치며 달아났던 것이다(17절).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3)갈대아 군대의 막강한 세력이 그앞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고 표현되어 있다.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가라사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그가 과연 산들중의 다볼같이 해변의 갈멜같이 오리라(18절). "바벨론왕과 그의 군대가 정복하리라. 그들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같이 도끼를 가지고 올것임이니라(22절). 그러므로 애굽은 산림이 벌목하는 자의 도끼에 벌목당하여 쓰러지듯 더이상 그들에게 저항치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4)애굽의 황폐 곧 그비옥하던 나라가 황무하리라고 예언되어 있다. "지금 '애굽은 아름다운 암송아지 같아서'(20절) 살이 찌고 윤기가 흐르며 굴종스런 멍에에 익숙하지 아니하도다." 이렇듯 애굽은, 영양분이 있는 것을 잔뜩 먹은 살찐 송아지처럼 방종하였다. 어떤이들은 이것이 그들이 숭배하는 소의 신 아피스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들로부터 이스라엘 자손들이 금송아지숭배를 배웠던 것이다. 애굽은 여신처럼 아름다웠다. 그럴지라도 '북에서부터 멸망이 이르렀고 이르렀느니라'(20절). 과연 갈대아 군사들이 와서 '아름다운 암송아지'를 죽이고 난도질 할것이다. 그리하여 '딸 애굽은 수치를 당할 것이요'(24절) 놀라 어쩔줄을 몰라할 것이다. 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같으리니(22절) 즉 그들의 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소리, 비굴한 소리가 될것이다. 그들은 정복자들에게 잔인하다고 큰소리로 불평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가난한 자처럼 공손하게 탄원하며 살려달라고 애걸해야할 것이다. 그들은 적국에 포로로 사로잡혀갈 것이다(19절). "애굽에서 평안하게 멋을 부리며 '살던 애굽의 딸들아 너희는 포로로 사로잡혀갈 준비를 하라'. 적으로하여금 너희를 벌거벗기고 싶은 충동이 들게할 사치한 옷대신에 소박하고 따뜻한 옷을 입도록 하라. 고난을 잘 견딜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시켜라." 애굽인들은 달아날 준비를 해야했다. 그들의 성읍들이 유린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놉이 황무하여' 거민이 없을 것이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이 살던 곳이라 불리우던 곳이 벌을 받아 거민이 없으리라'(나3:8). 그들이 서로 손을 붙잡고 도망하려 하지만 피하지못할 것이요, 무리들가운데서 벗어나리라 생각조차 하지못할 것이다. 바로도 넘어질 것이요, '그를 의지하던 자들역시' 모두 넘어질 것이다(25절). 특히 하나님보다 바로를 신뢰하여 바로가 다스리는 나라로 온 유대인들이 넘어질 것이다. 이들 모두가 '북방 백성의 손에 붙임을 입으리로다'(24절).
(5)시간이 경과하면 애굽이 다시 회복되리라는 암시가 주어진다(26절). 그후에는 그땅이 여전히 사람 살곳이 되리라.
2. 이스라엘의 평안(27,28)
본문에는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위안과 평안이 기록되어 있다(27,28절). 이말씀은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에게 주어진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하여 자비를 예비해 놓으셨으며 더나아가 하나님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베풀 자비를 예비해놓고 계신다. 이는 가장 어려운 시기, 곧 하나님의 심판이 열국을 향하실때 그들로 용기를 얻게하기 위함이다. 땅에 있는 악인들은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 종 야곱아 두려워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말라'(27절)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28절에서 또다시 '야곱아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나약한 백성으로 있도록 내버려두시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비록 멀리있을지라도 찾아내어 모아질 것이다. 악인은 쉼이 없이 요동하는 바다와 같이될 것이며 궁지에 몰릴때 추격을 당하게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품을 고향으로 삼는 야곱은 평안히 쉴것이며 누구도 그를 두렵게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두려움이 그를 엄습할지라도 그가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민족이라도 오래 존속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인 복음의 교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세상끝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 핵심
46:1-28
51장까지 이어지는 열국에 대한 심판예언의 서론부로서, 애굽의 멸망을 예고한다.
창(46:4)
고대에 검과 함께 쓰인 주요 공격무기인 창은 세 종류였다. ① 투창 : 길이 약 1.25m로, 던지는데 썼다(수 8:18,26; 삼상 17:6). ② 단창 : 짧고 가벼운 창으로, 찌르는데 썼으며 때로는 던지기도 했다(삼상 13:19,22; 왕하 11:10). ③ 장창 : 보통사람의 키를 넘는 길이인 1.8m 정도로, 찌르는데 썼다(민 25:7,8; 왕상 18:28).

# 묵상
갈그미스 전쟁 ( 46:2 )
갈그미스는 메소포타미아와 남부 애굽을 연결하는 군사교통의 요충지로 이곳에서 애굽은 바벨론에게 패했습니다. 주전 605년경, 이 전투로인해서 승자인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수리아 팔레스틴을 그의 보호국으로 만들었으며 명실상부한 고대 근동의 주권자가 되었습니다.
나일의 창일함같은 애굽 ( 46:7 )
본문은 애굽이 나일의 창일함과 강물의 흉용함같이 많은 군사들을 모아 바벨론을 치기위해 갈그미스로 달려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소리는 곧 패하여 도망하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인생들은 잠시잠깐의 부귀와 권세를 위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모든 것은 크신 하나님앞에는 아무것도 아니며 곧 사라질 것들에 불과합니다.
원수갚는 보수일 ( 46:10 )
애굽은 이스라엘을 학대한 나라이므로 하나님의 대적입니다. 따라서 갈그미스에서 애굽이 패한 날은 바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원수를 갚으시는 날이며 그의 공의대로 보수하시는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길르앗의 유향을 취해야할 애굽 ( 46:11 )
애굽이 길르앗으로 올라가 유향을 취하라고 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애굽 군대가 갈그미스에서 대패할 것이기때문에 나온 말씀입니다. 유향은 죽은 자의 시체에 넣는 향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길르앗은 유향의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본문에서 많은 약이 무효하다는 것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부상당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치유받지 못하고 죽게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애굽은 이 갈그미스 전쟁을 통해 완전히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 빠지게 됩니다.
만군의 여호와 ( 46:18 )
‘만군의 여호와’, ‘만군의 주’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야훼 체바옷’이라 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그의 크신 능력으로 전쟁을 주관하셔서 그의 뜻대로 이끄신다고 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칭호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나타낼때 사용됩니다.
애굽인들이 준비해야할 것 ( 46:19 )
애굽의 놉이 황무하여 불에 타서 거민이 없을 것이므로 애굽인들은 포로의 행장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애굽 사람들처럼 멸망의 날이 가까이 온줄도 모르고 평안을 외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할 야곱 족속 ( 46:27, 28 )
여호와께서는 당신 백성에 대해 분노하고 계신중에도 그들에 대한 자비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흩었던 열방을 다멸할지라도 그들은 아주 멸하지않고 포로된 땅에서 돌아와서 가나안에서 평안히 거하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 족속은 징계가 끝나면 위로의 삶, 곧 새삶이 시작되지만 다른 열방들은 영원히 멸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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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바룩에 대한 예레미야의 메시지 45:1-5
바룩은 예레미야의 예언들을 기록하고 낭독하는 일에 기용되었다(36장). 그리고 그는 그로인하여 왕에게 위협을 당하였다. 바룩은 하나님의 보호아래 도주하였는데, 본장에서 그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다.
(1)왕의 사자들이 바룩을 찾자 가련한 바룩은 당혹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당혹함을 기억하셨다. 그는 하나님과 그의 선지자를 기꺼이 섬기려하는 젊은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일로 자기가 수치를 당케된다는 것을 알자 이렇게 외쳤다. "이제는 끝이로구나. 나는 추적자의 손에 잡히어 투옥되겠고 그다음은 죽음을 당하거나 추방되겠구나."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3절). "내 조국이 파멸하는 내용의 예언을 기록하고 낭독하는 슬픔을 맛보게 하시더니 이제는 내가 그렇게 한것으로 인하여 범인취급을 당하는 슬픔까지 겪게 하시는구나. 이슬픔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무겁도다."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치 못하다. 초신자들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처음으로 직면하는 작은 시험에도 쉽게 좌절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보병들처럼 달리기만 할뿐이지만 그달리기에 지치고 만다. 그들은 환난의 동이 트는것을 보고 낙담한다. 그것은 그들의 힘이 연약하고 그들의 믿음이 약하다는 증거이다(잠 24:10). 바룩은 이같이 선한 목적을 위해 이같이 선한 동료인 예레미야와 함께 자신이 고난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데 대하여 기뻐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하기는커녕 마치 하나님이 자기를 부당하게 취급하신듯 하나님께 불평하였다.
(2)예레미야는 바룩이 그처럼 고민하는 것을 보고 괴로워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무어라 말해야할지를 몰랐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해야할 말을 알려주신다(4절). 현세의 좋은 것들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애착으로인하여 우리는 불행을 당할때 견디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바룩에게 그가 이세상에서의 풍족한 부와 명예를 바라는 것이 그의 잘못이요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배가 침몰하고 있다. 유대 민족에게 파멸이 임박하고 있다. "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집으로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나 자신을 위한 포도원에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이 온땅' 곧 유대 교회와 그 국가에게 그러하리라. 그런데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네가 부자가 되고 영예를 얻으며 무슨 인물이 되기를 바라느냐. 모든 것이 낮아지는 때에 어찌 너만 높아지기를 바라느냐?"
(3)하나님께서 그에게 희망을 주신다. 즉 그는 높아지지는 못한다할지라도 안전하리라는 희망을 주신다. 내가 모든 육체에게(모든 국가들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그러나 너의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로 생명얻기를 노략물을 얻는것 같게 하리라. 여기서의 생명이란 "영혼"을 뜻한다. "너는 이리저리로 끌려다니며 위험에 처하게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빈번하게 아주 극적으로 피할게될 것이며 생명을 보존케될 것이라. 너는 위험과 어려움이 많이 따를지라도 생명을 얻기를 노략물 얻는것 같이 할것이며, 불로부터 구원받음같이 구원받게될 것이라."

# 핵심
45:1-5
예레미야의 서기였던 바룩의 믿음을 굳게하기 위한 위로와 약속의 말씀이다.

# 묵상
바룩을 향한 예레미야의 예언 ( 45:1-5 )
본문은 예레미야에게 임한 계시의 말씀을 바룩을 통해 기록되어진 경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 재앙에 상심한 바룩을 예레미야에게 임한 계시로 아는 내용입니다. 즉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심은 것을 뽑기도 하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스스로를 위하여 경영을 도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기록하고 방백들에게 전한 그를 어느곳을 가든지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고난당하며 피난중에 있는 바룩에게 이말씀은 큰위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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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애굽의 유대인에 대한 경고 44:1-14
애굽에 있는 유대인들은 애굽의 여러지방, 즉 '믹돌과 놉' 및 그외 다른지역으로 흩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사명을 주사 그들에게 보내셨다.
(1)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다와 예루살렘의 폐허를 상기시키셨다. 애굽의 성들로 피난온 무리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잊고있었던 듯하다(2절).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다 모든 성읍에 내린 나의 모든 재앙을 보았느니라(2절). 나의 분과 나의 노를 쏟아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를 살랐더니 그것들이 오늘과 같이 황폐하고 적막하였느니라(6절).
(2)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이렇게 폐허가 된것은 바로 죄때문이었음을 상기시키신다. 그것은 그들의 악행을 인함이었다(3절). 그들의 악행은 거짓 신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행위였다. 그러한 영광은 오직 참하나님께만 드려져야할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알고있는 참되고 유일한 신인 하나님을 버렸다. "그들이 너희나 너희 열조중 어느누구도 왜 이스라엘의 하나님대신 이 거짓 신들을 섬겨야하는지 타당하게 설명하지 못하였도다."
(3)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른 신들을 섬기지말라고 말씀으로 자주 경고하셨던 것을 상기시키신다(4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끓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셨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너희는 나의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치말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리에게 죄의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이다. 이 가증한 일을 행치말라. "만일 너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리하지 말라. 죄는 하나님을 격노케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또 만일 너희가 너희 영혼을 사랑한다면 그리하지 말라. 죄는 영혼을 파멸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것이라면 우리도 그것을 증오해야 한다. 그들이 듣지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5절). " 이사실은 너희에게도 경고가 되는 것이로다. 너희도 그들이 한것처럼 하나님이 말씀하신 심판의 말씀을 듣지않을뿐만 아니라 이미 그의 손의 심판을 경험하는도다."
(4)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계속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것에 대하여 그들을 책망하셨다(8절).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애굽땅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스스로 유혹의 장소에 머물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우리의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신다. 그들은 자신들뿐 아니라 가족들에게까지 상당한 해를 초래하였다. 너희가 어찌하여 큰악을 행하여 자기 영혼을 해하며(7절). 너희 손의 소위로...끓어버림을 당하여(8절). "또한 너희의 명예와 이름마저 끊어지게 하였도다. 어찌하여 너희가 이같이 행하여 너희 죄와 비참한 몰골로 세계 열방중에서 저주와 능욕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그들은 그들 선조들의 불법의 남은 분량을 가득채웠다. 그리고 거기에 죄악을 더하였다(9절). "너희가 너희 앞서간 자들의 악을 잊었도다." 어떤이들은 "너희가 너희 열조들이 받은 형벌을 잊었느냐?"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유다왕들의 범한 죄와 그들이 받은 형벌을 상기시키신다. 그리고 그들을 우상숭배하도록 유혹한 '그들의 아내들이 악'을 상기시키신다. 라이트푸트는 이말을 솔로몬의 아내들 특히 그가 애굽에서 취한 아내를 뜻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네가 네 악과 네 아내들의 악을 잊었느냐. 네가 예루살렘에서 번영을 누리며 살던때 행한 악이 네게 어떤 파멸을 가져왔었느냐?"
(5)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애굽에 있으면서 계속 행한 우상숭배로인하여 철저히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그들은 애굽에서 멸망할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맞서서 대적하려는 마음을 품는 자들은 결국 자기들이 내침받고 말았음을 알게될 것이다. 그들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인들처럼 자연사함으로써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쓰라린 심판을 받아 망할 것이다. 아무도(겨우 심판을 모면한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시는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다(14절). 안달하며 불만투성이인 자들은 어디에 있든지 만족하지 못하고 변화만을 바란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유다 땅에 있을때 애굽으로 가기를 열망했었다(렘 42:22). 그러나 이제 그들이 애굽에 있게되자 '다시 유다 땅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어떤역본을 보면 그들은 고국을 항하여 "그들의 영혼을 높이 들었다"라고 되어있다. 이말은 그들의 간절한 염원을 의미한다.

Ⅱ. 백성들의 교만한 답변 44:15-19
본문에서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복종하기를 무례히 거절하고 있다.
1.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여인들(15)
하나님과 그의 심판을 무시한 백성들은 자신들과 자기 아내들이 예레미야가 책망한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였음을 알고있는 자들이었다(15절). 여인들은 우상숭배나 미신을 섬기는데 있어서 남자들보다 더 죄가 컸다. 그것은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참하나님께 더가까이 있었기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 하나님이나 신앙에 전혀 무관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의 아내들이 거짓된 신앙을 갖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허락한 것이다. 그들이 예레미야의 책망을 참을수 없었던 것은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것을 알고있었으며 또한 그들 자신도 그일에 호의를 보여왔었다. 또한 '곁에 섰던 여인들'도 남자들이 그들과 함께 우상숭배하는 관습에 참여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말한 것은 그들의 아픈 곳을 찌르는 것이었다.
2.무리들의 답변(16-19)
무리들은 예레미야와 그와 함께계시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1)그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행하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 마음먹은대로 행하려고 결심하였다. 즉, 그들은 '하늘여신'이라 불리우는 달을 숭배하고자 하였다. 어떤이들은 이것을 태양으로 이해한다. 애굽에서는 대체로 태양이 많이 숭상되었고(렘 43:13) 또한 예루살렘에서도 그러하였기 때문이다(왕하 23:11). 또 어떤이들은 이것을 "하늘의 성군" 또는 "우주"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렘 7:18).이죄인들은 그들이 복종을 거부한 사실에 대하여 변명하려 하지도 않았고, 또한 이전처럼(렘 43:2) 예레미야가 말한 것은 자기자신의 말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둘러대지도 아니하였다. 오히려 그들은 거침없이 '우리가 네 말은 듣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금지된바를 행하고 경고된바를 위험을 무릅쓰고 행하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 불복종하며 살아가는 무리들은 일반적으로 점점더 악해지게 마련이며 죄의 기만성으로인하여 더욱더 마음이 강퍅하여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말한대로 생각한다. 이것은 젊은이들이 '청년 시절에' 흔히 범하는 행동이다. 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무엇이든지 행하는 것이다(전 11:9).
(2)그들은 자기들이 이와같이 결심한 몇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그들은 관습을 이유로 내세운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하던대로 하늘여신에게 분향하겠노라." 그들은 권력을 내세워 핑계한다. 즉 권력있는 자들이 이러한 일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권하기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왕들과 우리 방백들이 이를 행하는도다. 이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위에 세운 자들이요 다윗의 자손들이라." 그들은 단합을 이유로 든다. 즉 우리 '큰무리'가 일치하여 이를 행한다는 것을 이유로 제시한다(15절). 그들은 보편성을 이유로 든다. 그일이 '유다 성읍들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일의 공개성을 빙자한다. 즉 이일이 어두운데에서나 또는 음침한 숲속에서 행해지지 아니하고 '거리에서' 공공연하게 행하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일이 모(母)교회, 즉 예루살렘 교회에서 행하여졌음을 이유로 들고있다. 그들은 번창함을 이유로 들고있다. "그때에는 우리가 식물이 풍부하여 많은 귀중한 물품들을 소유하였고 복을 받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모든 이유들이 사실이라할지라도 이유가 되지 못한다. 우리가 의거하여 심판을 받아야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이지 인간의 관습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가지들이 최근에 당한 심판이 '하늘여신에 대한 분향을 폐하였기때문에' 그들에게 임하였다고 말하였다(18절). 마찬가지로 초대교회 시대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방 국가들에게 그들이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금하고 그들을 박해함으로인하여 어떤 공적재난을 내리시면 그불신자들은 재난을 역으로 해석하여 그들이 기독교도들을 관용하고 못본체하였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기독교도들을 사자밥으로 던지라"고 외쳤다. 여인들은 그들이 우상숭배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적극적이지만 남편들의 승낙을 받고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여인들은 '하늘여신에게 바치는 소제물'에 필요한 '과자를 만들고 전제에 부울 술'을 마련하기에 바빴다(19절). 어떤이들은 이말을 남자들이 한것이라고 생각하여 "우리 남편의 허락없이 그일을 행하였겠느냐"는 말을 그들이 장군들이나 지배자들의 허락없이 그일을 하였겠느냐는 말로 해석한다. 그러나 '과자를' 만드는 일과 '전제'에 부울 술을 준비하는 것이 여자의 임무로 명시된 것으로보아(7:18), 이말은 여자들의 변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은것 같다.

Ⅲ. 백성들의 교만에 대한 심판 44:20-30
1.예레미야의 설득(20-30)
예레미야는 자기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에게 곤경이 닥쳐온 것은 그들이 '하늘여신에게 분향하는 것을 멈추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답변한다. "아니라. 너희가 재난을 당하는 것은 지금 너희가 우상숭배를 멈추었기때문이 아니라 이전에 우상숭배를 하였었기 때문이라." 그들과 그들의 선조들이 다른 신도에게 태워올린 분향은 사실 얼마동안은 처벌되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래참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참으시던 기간중 그들은 그들의 말대로 무사하였고 사나운꼴을 당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은 '여호와께서 더이상 참으실수 없을정도로'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다(22절). 그러자 그들중 몇은 개전의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대다수에게는 여전히 옛부패의 경향이 남아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선조들과 왕들과 방백들이' 영화로왔을때 '예루살렘 거리에서' 우상숭배하던 것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치셨다(21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저지른 모든 가증한 일들"을 기억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의 땅이 오늘과 같이 황무하며 저줏거리가 된것이다'(22절). 그들이 옛 범죄로인하여 이모든 '재앙이 오늘과 같이 그들에게 미친 것이다'(23절).
2.백성들에게 가해진 처벌(24-30)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그리고 특히 '여인들에게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말씀을 전해야 했다. 그들은 그들의 답변을 제시했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대답을 들어야 했다(24절).
(1)그들이 단호하게 우상숭배를 계속하기로 결정하였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계속 벌하시고자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전에 말했던 것을 반복하신다(25절). 너희와 너희 아내들이(완강이 고집을 부리며)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이루려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서원한대로 반드시 이행하여 하늘여신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리리라 하였은즉. 하늘여신에게 분향하는 것이 죄악인줄 알면서도 그일을 행하겠노라 맹세하는 것은 죄악을 합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죄로 규정하신 것을 인간이 서약을 통해서 자기에게 유리하게 합법화시킬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남아있는 몇안되는 신앙적인 행위도 그들가운데서 제해버리겠다고 맹세하셨다(26절). 그들은 애굽인들에게 가담하여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계속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는데 특히 엄숙한 서약을 맺을때 그렇게하였다(2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애굽 온땅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는 내이름으로 일컬어 맹세하는 일이 없으리라'고 선언하신다. 하나님께서 떠나시므로 신앙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두어진 자들은 매우 비참하다. 하나님께서는 완고한 죄인들을 발견하실때 추호도 용서도 없이 다스릴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늘여신'을 예배하는 일을 다시 계속하면 원상으로 회복될 것처럼 말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이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2)하나님께서는 그들중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칼을 피할' 것이며 그들만이 유다 땅으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신다(28절). 그리고 그수효는 갈대아 땅에서 돌아오는 많은 수의 사람들에 비하면 형편없이 적은 수라고 말씀하신다.
(3)하나님께서는 이모든 경고들이 애굽에서 성취될 것이라는 예표를 그들에게 제시하신다. 보라 내가 ....애굽왕 바로 호브라를 그원수들 곧 그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라. 이는 아마시스 휘하의 반역적인 신하들이 그의 왕위를 찬탈하고, 또한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침략하여 그의 나라를 공격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전자의 사실은 헤로도투스가, 후자의 사실은 요세푸스가 전해주고 있다. 그들은 유다왕 시드기야에게 바랐던 이상의 것을 바로에게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를 적에게 넘겨주었듯이 '바로도 그원수들의 손에 넘겨주리라'고 말씀하신다.

# 핵심
44:1-30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우상숭배에 빠진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선언된다.
하늘여신(44:18)
앗수르와 바벨론 사람들이 숭배하던 여신인 이쉬타르(Ishtar)를 가리킨다. 이쉬타르는 가나안에서 아스다롯으로 불렸다(삿 2:13; 삼상 12:10). 전쟁과 사랑을 주관하는 여신으로서,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졌다. 바벨론에 이쉬타르를 섬기기위한 성소가 180여개나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이우상에 대한 숭배가 널리 퍼져있었음을 뜻한다.

# 묵상
애굽 땅의 유다인에게 주신 말씀 ( 44:1-3 )
믹돌, 다바네스,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거하는 자들은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성읍에 내린 심판을 목격했으므로 그들역시 다른 신을 섬겨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애굽 신을 섬기는 것은 큰악이며 자기 영혼을 해하는 일이기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애굽의 유다 백성에게 내릴 재앙 ( 44:12-14 )
애굽에서 살기를 고집하는 유다 백성은 칼과 기근으로 멸망당하여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며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모욕거리가 될것입니다. 애굽에 거하는 자는 그들에게 동화되어 그들의 생활방식과 우상숭배에 빠져들것이므로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원인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이 받게될 심판의 필연성을 선포했습니다.
멸망선언에 대한 여인들의 변명 ( 44:15-19 )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하는 말들을 듣지않고 하늘여신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리던 때에는 식물이 풍부하고 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상숭배를 그녀의 남편도 알고있었다고 했습니다. 선지자는 15절을 통해 우상숭배가 여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솔선해서 우상에게 예배하지는 않았지만 여자들이 우상에게 예배하는 것을 묵인하고 말리지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그들 모두가 분향한 것처럼 질책하였습니다. 이처럼 멸망을 당했으면서도 유다 사람들은 아직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태초부터 행해진대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했습니다.
우상숭배의 고집이유 ( 44:17 )
백성들은 하늘여신에게 분향하고 그앞에 전제를 드릴때는 식물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앙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핍절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당했기때문에 계속 우상을 섬기겠다고 고집했습니다. 그들은 식물을 풍성케하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요, 그것을 핍절케 한것도 하나님이신줄 알지못하고 우상의 힘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항변하는 인간의 악한 모습을 보게됩니다.
살육당할 애굽 땅의 유다인들 ( 44:24-26 )
본문은 애굽 땅에 거하는 유다 백성들을 향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애굽의 유다인들은 하늘여신에게 분향하고 전제드리기를 고집하면서 서원을 이행하려 했습니다. 이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그들로하여금 다시는 주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자가 없도록 모두 죽음에 이르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함께 우상섬기기를 병행하는 자들에게는 오직 참혹한 죽음만이 기다리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애굽왕에 대한 예언 ( 44:30 )
시드기야를 그원수, 곧 그생명을 찾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인 것같이 애굽왕 바로 호브라를 그원수들의 손에 붙이시겠다는 것입니다. 애굽왕 바로 호브라는 주전 588-569년동안 통치했는데 그는 시드기야를 꾀어 바벨론을 배신하게 한후 자기의 힘과 군대를 믿고 하나님의 심판도구인 바벨론에 대항했지만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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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백성들의 역행된 반응 43:1-7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세우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이백성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이었다. '이후로는 그경영하는 일을 금지할수 없으리로다'(창 11:6). 그들은 애굽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개의치 아니하고 애굽으로 가고자 하였다. 예레미야는 그가 전해야할 말을 그들에게 다 전하였다. 그가 전한말씀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그들에게 보내사 말하라고 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말씀을 모두 청종해야 했다.
(1) 그러나 그들은 예레미야의 메시지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부인한다. 요하난과 및 모든 교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2절). 그들이 불순종한 원인은 교만이었다. 그들은 선지자에게 거짓말을 한 '교만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싶은 것을 막는 것을 참을수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하나님 계획에 의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전해진 말씀을 믿지 아니하였다. 또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기는하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여기고 그에게 간청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기다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가 선지자임을 입증하지 아니하셨던가? 그들은 예레미야에 대하여 어느정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룩이 너를 꼬드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인의 손에 붙여 죽이며 바벨론으로 잡아가게 하려함이니라'고 말하였다(3절). 예레미야와 바룩이 느부사라단과 함께 바벨론으로 갔을 것이다. 그리고 감사할줄 모르는 경멸할만한 이 남은 자들과 운명을 함께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바룩이 그렇게 나쁜생각을 품고 있었다해도 예레미야가 그에게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여 이같이 야비한 목적을 두둔하리라고는 생각할수도 없는 일이었다.
(2) 그들은 애굽으로 갈것을 결심하였다. 곧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에 따라 '유다 땅에 거하려' 하지않고 오히려 만장일치로 애굽으로 가기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유다 땅에 대한 간절한 열망때문에 '쫓겨났던 열방중에서 유다 땅에 거하려 돌아온 자 곧 남자와 여자와 유아들을' 그들 자유로이 선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강권하여 그들과 함께 애굽으로 데려갔다(5,6절). 이들 교만한 자들은 예언자 예레미야와 그의 서기관 바룩까지 그들과 함께 애굽으로 가도록 강요하였다. 그들은 애굽의 유명한 도시 다바네스에 이르렀다(이명칭은 왕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왕상11:19). 그곳은 바로의 궁성이 있는 곳이었다(9절).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민족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다면 그들은 애굽의 화려하고 인구가 많은 성들에 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유다의 광야에 거하는 것을 선택하였을 것이다.

Ⅱ. 애굽이 바벨론에 정복될 것에 대한 예언 43:8-13
본장과 다음장에는 애굽에서의 예레미야의 예언이 나타나 있다. 예레미야는 이제 다바네스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애굽인들과 반역적인 이스라엘 족속들가운데 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받았다.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8절).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어디에 있든지 그의 은혜로 찾으실수 있다. 예언의 영이 머무는 곳은 이스라엘 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비록 예레미야가 강제로 애굽에 끌려갔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에게 사랑을 베푸셨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받을 것을 그의 백성에게 전하였다. 예레미야는 애굽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두가지의 메시지를 받았다. 하나는 본문에 그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바 애굽의 멸망에 관한 예언이다. 다른 하나는 애굽에 있는 유대인들에 관한 것으로 다음장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전에 만일 그들이 애굽으로 가면 칼이 그들에게 미칠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다. 본문에서는 더나아가 느부갓네살의 칼이 그들에게 미치리라고 말씀하신다.
(1)이사실은 징조에 의해 예고되고 있다. 예레미야는 '큰돌들을' 취하여 용광로 또는 벽돌(흠정역, 한글개역에는 '벽돌깔린 곳'으로 나와있음-역주) 진흙속에 그것들을 감추어야 했다. 이 벽돌굽는 가마곁의 '진흙'속에 있었다. 예레미야는 그일을 '유다 사람의 목전에서' 해야했다. 이는 그가 그들이 애굽으로 오는 것을 막지못하였으므로 그들로하여금 거기에 온것을 후회하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2)이것은 구체적으로 예언되어 있다.
1)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직접 애굽 땅을 치러와서 '이 돌들'이 놓인 바로 그장소에 '그의 보좌'를 설치할 것이다(10절). 그때의 상황이 상세하게 예언되어 있는데, 이는 이예언이 성취되었을때 그들로하여금 하나님의 예지의 확실성을 확고히 믿게하고, 또 하나님은 아무리 작은 사건들일지라도 명백히 알고계시다는 것을 확신케하고자 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을 그의 종이라 부르신다. 이는 그가 이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집행하였기 때문이다.
2) 느부갓네살은 수많은 애굽인들을 죽이거나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것이다(11절). 그가 애굽 땅을 치고, 그는 그의 뜻에 따라 죽일 자는 죽이고 살릴 자는 살려 '포로'로 잡아갈 것이다.
3) 느부갓네살은 애굽의 우상들, 곧 그 신전들과 신의 형상들을 부숴버릴 것이다(12절). 그가...애굽 신들의 집을 불사르리라(13절). 애굽 신들의 집은 태양을 위하여 지어졌으므로 '벧세메스' 또는 태양의 집이라 불리었다. 그는 주상들을 '깨뜨릴' 것이다(13절). 바벨론왕 자신도 대단한 우상숭배자로 태양을 숭배하는 신전과 형상을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애굽의 우상들을 멸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4) 느부갓네살은 스스로 애굽 땅의 군주가 될것이다. "그가 애굽 땅의 무수한 약탈물로 자기를 치장하리라." 그는 전리품으로 장신구와 갑옷을 삼아 몸에 두를 것이다. 전리품이 그토록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목자가 아침에 양떼와 함께 떠날때 '그몸에 옷을 두르고' 가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그것들을 가지고 애굽을 떠날 것이다. 그는 애굽 땅의 전리품들을 목자의 외투만도 못하게 여길 것이다. 그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않고 '애굽 땅을 자기 몸에 두르고 평안히 그곳을 떠날 것이다 .' 결국 그곳을 아주 쉽게 진압할 것이다. 바벨론왕에 의한 애굽의 파멸은 에스겔 29:19절과 30:10절에 예언되어 있다.

# 핵심
43:1-13
회복의 약속과 재앙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거부하고 애굽으로 피신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않자 예레미야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며 애굽으로 끌고갔다. 애굽에서 예레미야는 애굽이 바벨론에 의해 초토화될 것을 예언한다.

# 묵상
예언에 대한 요하난 일행의 반응 ( 43:1-3 )
하나님의 참뜻을 예언한 예레미야의 말이 끝나자, 요하난 일행은 예레미야가 거짓을 말하고, 자신들을 갈대아인의 손에 넘겨서 바벨론으로 잡아가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예레미야와 바룩과 남은 백성들을 모두 이끌고 애굽으로 이동하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기도와 예언을 부탁하고도 예레미야의 진실된 예언을 듣지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크나큰 재앙을 당하고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않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유다 백성들이 얼마나 완악했었던가를 알수 있습니다.
교만의 근원 ( 43:2 )
교만은 마귀(딤전3:6), 인간의 악한 생각(막7:21, 22),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2:16), 위선(눅18:11, 12), 세상권력(겔16:49, 56) 등으로 말미암습니다. 이러한 교만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완악한 요하난과 방백들 ( 43:3 )
요하난과 방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룩의 계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바룩도 친바벨론파이므로 그가 예레미야를 꾀어 모든 사람들을 바벨론의 손에 넘겨주려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영원히 멸망할 자들은 스스로의 어리석은 지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악을 고집합니다.
애굽의 멸망예언 ( 43:8-13 )
본문은 예레미야가 애굽에서 받은 영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유다 사람의 목전에서 큰돌들을 가져다가 바로의 집어귀의 벽돌깔린 곳에 진흙으로 감추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행위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감춘 돌위에 그의 보좌를 두고 그위에 화려한 장막을 치고 애굽을 멸망시킨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이는 곧 애굽 멸망에 대한 징조입니다. 이예언에 따라 한때 강대국이었던 애굽과 애굽을 의지했던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멸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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