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왕, 나의 주님

 

[마가복음 11장 1절~11절]
1절 -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절 -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절 -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절 -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절 -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절 -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절 -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절 -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절 -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절 -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절 -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예수의 변형

 

[마가복음 9장 9절~13절]
9절 -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절 -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절 -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절 -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절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권위

 

[마가복음 11장 27절~33절]
27절 -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절 -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29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절 -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31절 -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32절 -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33절 -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겨자씨 한 알

 

[마가복음 4장 30절~34절]
30절 -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절 -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절 -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33절 -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절 -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오늘도 우리는 심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4장 30절~32절]
30절 -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절 -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절 -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고발과 불법 재판, 침묵 속에 빛나는 순종

[마가복음 15장 1절~15절]
1절 -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절 -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절 -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절 -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절 -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6절 -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절 -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절 -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절 -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절 -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절 -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절 -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절 -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절 -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절 -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에게 넘겨진 예수님은 자신을 고발하는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빌라도는 죄수 한 명을 놓아주는 명절 전례를 구실로 예수를 놓아주려 하나, 대제사장들이 충동한 무리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라고 소리칩니다. 빌라도가 무리를 만족시키려 요구대로 합니다.

1. 침묵하시는 예수님 (1~5절)
거짓 없는 진실은 침묵 속에서 빛을 발합니다. 예수님의 체포와 재판은 꼭두새벽에 벌어졌습니다. 재판은 '즉시', '곧' 신속하게 진행이 되었고(1절), 어떤 죄목도 발견할 수 없어서 신성 모독이라는 명목을 씌우는 등 문제가 많은 재판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사형 집행권이 없었기에 빌라도 총독에게 사형 집행을 요구합니다. 대제사장들은 여러 죄목을 꾸며 내서 예수님을 고발하고 빌라도는 심문을 계속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왕임을 당당히 시인하시지만 고발에 대해서는 침묵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에 도리어 빌라도가 당황합니다. 진실은 아무리 침묵해도 감출 수 없고, 거짓은 그 어떤 소음으로도 덮을 수 없습니다.
* 예수님이 대제사장들의 고발에 아무 대답도 하시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의 침묵이 공동체에 유익이 된 경우는 언제인가요?

2. 비겁한 빌라도 (6~15절)
아는 것이 책임 있는 행동으로 연결되어야 바른 신앙입니다. 빌라도는 로마 황제가 위임한 권한을 가지고 공의롭게 재판을 진행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님을 넘긴 것을 알았습니다(10절). 심지어 무리에게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14절)라며 발끈합니다. 언뜻 빌라도가 의로워 보이고 예수님을 편들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고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면서 그의 얄팍한 동정심도, 뒤늦은 깨달음도 다 묻혀 버립니다.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15절) 공의를 저버립니다. 아는 것, 공감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에 진리 앞에서 공의를 저버리지 않고 책임 있는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빌라도는 왜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넘겼을까요? 결정적 순간에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창세전부터 품으신 구원 계획을 이루시려고 억울한 누명도, 악의적인 고발도 침묵으로 감당하신 주님 앞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욕심껏 움켜쥐고 악에 충동질당했던 제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저 대신 채찍 맞으시고 십자가에 넘겨지신 주님을 사랑함으로 따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 주님

[마가복음 15장 1절~15절]
1절 -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절 -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절 -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절 -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절 -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6절 -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절 -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절 -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절 -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절 -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절 -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절 -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절 -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절 -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절 -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배경 이해하기]
빌라도는 티베리우스 황제 때 발레리우스 그라투스 총독에 이어서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스렸습니다. 당시 유대 총독은 대제사장 임명권, 유대인들의 사형 집행권 및 산헤드린 공회의 결정을 변경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빌라도의 로마 군영은 가이사랴에 본부를 두고 있었는데, 민란을 염려해 일부 병력을 예루살렘 성전 건물 북서쪽 안토니아 요새에 주둔시키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주로 가이사랴 본부에 있었고, 유월절 등 특별한 시기에만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새벽에 끌려온 예수님을 재판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체포한 후 목요일 밤 안나스와 가야바 집에서 두 차례에 걸쳐 그분을 불법적으로 심문합니다. 그리고 금요일 새벽에 빌라도 총독을 찾아갑니다. 이처럼 서두르며 이례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은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불법 행위를 잘 알고 있었음을 방증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급하게 처형시키려 했습니다. 금요일 안에 처형하지 못하면 다음 날은 안식일이기에 더 이상 안건 처리가 안 될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과 부딪칠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온갖 불법적 의도로 마련된 빌라도 총독의 법정에 예수님이 서십니다.   

[관찰과 묵상]
1. 빌라도의 불법 재판과 대제사장들의 수많은 고발 앞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시나요?(3~5절)

대제사장들이 많은 것으로 예수님을 고발했지만, 그분은 이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밤새 두 차례 불법적으로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사형을 구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그들은 금요일 새벽 빌라도 총독에게 갑니다. 빌라도 총독의 법정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형으로 죽이려 합니다. 그들은 이 일의 모든 과정을 자신들이 주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실제로 주관하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보여 줍니다. 재판의 실제적 주관자는 다름 아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의 심문에 적극적으로 반론을 제기하지 않으십니다. 빌라도 총독 앞에서도 간단하게 대답하시거나 침묵하십니다.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으셨을 때는 “네 말이 옳도다”라고 아주 짧게 답하십니다(2절). 종교 지도자들의 계속되는 고발에도 침묵으로 일관하십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하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랬듯이 빌라도 역시 자신이 재판의 주도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고발과 빌라도의 재판 과정에서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인류 구원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한 순종의 과정이었고, 십자가 사건의 주도권이 종교 지도자들이나 빌라도가 아닌 예수님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스스로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십니다.
적용과 나눔
불법과 소요 가운데서도 침묵하시며 하나님 뜻을 좇아 순종하시는 예수님 모습에서 배우는 교훈을 나누어 보세요.

예수님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체포되는 과정에서 최측근 제자들은 무엇을 했나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깁니다. 나머지는 옷까지 벗어 던지며 도망합니다. 심지어 제자들 중 수장 역할을 하던 베드로는 저주까지 하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참담하게 예수님을 배반하는 가운데 잡히신 예수님은 모함과 수모를 당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버린 제자들을 위해, 자신을 죽이려는 악한 무리를 포함한 온 인류를 위해 하나님 뜻대로 대속의 고난을 당당하게 받아들이십니다. 종교 지도자들과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도 짧게 답변하시거나 아니면 침묵하십니다. 충분히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실 수 있음에도 그 희망의 가능성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자진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이 모든 일의 주도권은 악한 권력자들이나 무지한 무리에게 있지 않고 예수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참된 제자로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말을 아끼며 묵묵히 사명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2. 예수님의 무죄를 아는 빌라도는 어떤 제안을 하나요?(6~10절)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내어 준 이유는 무엇인가요?(15절)
예수님을 시기로 넘겨준 것을 아는 빌라도는 무리에게 살인범 바라바와 예수님 중 예수님을 놓아주기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고, 무죄를 확신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어 줍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구형합니다. 요한복음 19:4절에 의하면, 빌라도는 심문 과정에서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하며 무죄를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강력한 요구에 자신의 자리에 위협을 느껴 결국 정의를 굽히고 맙니다(요 19:12~16). 무리의 요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십자가형을 언도한 것이라 하더라도, 빌라도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여러 부류 사람의 작용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시기심으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소해 넘겼습니다. 무지한 무리는 대제사장들의 충동에 넘어가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풀어 주라 외쳤습니다. 유대인들의 맹목적인 민족적 자존심과 빌라도의 직무 유기 등이 예수님의 십자가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구형하는 장면에서 예수님은 전면에 등장하지 않으십니다. 악인들의 행동을 내버려 두심으로써 하나님은 그분이 계획하신 구원 역사를 온전히 이루십니다.   
적용과 나눔
예수님 시대에 살았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떻게 준비되어야 할까요?

역사 속에서 악한 지도자들은 항상 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이용당해 왔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종교 지도자들이 그러했고, 무지한 무리가 그러했습니다. 사람들의 말에 쉽게 넘어간 무리를 순진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순진함과 순수함을 구별해야 합니다. 순진함은 무엇을 잘 몰라서 단순한 것이고, 순수함은 세상이 악함을 알면서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의로운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추구할 영적 가치는 미련한 순진함이 아니라 깨어 있는 영적 순수함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순수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성도들이 순수함이라는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해, 구속 사역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형을 집행했던 백부장은 그 형을 집행하는 가운데 일어난 이적들과 예수님의 의연한 모습을 보며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백부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수님이 이루신 인류 구속의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기에, 백부장보다 더 나은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심, 무리의 영적 무지, 빌라도의 무책임한 판결 등에 의해 결국 하나님 아들이 십자가형을 선고받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예수님은 왕인 자신의 정체성만 밝히실 뿐 수많은 고발에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재판의 주도권이 종교 지도자들이나 빌라도에게 있지 않고 예수님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인류 구속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말이 아닌 행함과 순종으로 이루셨습니다. 온전히 순종하는 십자가의 길만이 그리스도의 남은 사명을 성취하게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 길은 말이 아닌 행함과 순종으로 걷는 길임을 마음 깊이 새기게 하소서. 사람들의 비방이나 모함에 휘둘리지 않고 어떤 사명이든 예수님처럼 묵묵히 감당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내 뜻을 내려놓는 절대 순종의 기도

[마가복음 14장 32절~42절]
32절 -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절 -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절 -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절 -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절 -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절 -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절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절 -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절 -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절 -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절 -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겟세마네에서 심히 고민하시는 예수님은 자신이 기도할 동안 깨어 있으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때가 지나가기를 바라시면서도 결국 아버지 원대로 하시길 구합니다. 동일한 기도를 세 번 하신 후, 제자들에게 오셔서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릴 때가 왔으니 함께 가자 하십니다.

1. 아버지 뜻에 순종하시는 예수님 (32~36절)
기도는 사명의 길을 끝까지 가게 하는 동력입니다. 겟세마네는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에게 고독의 자리요 마지막 소망의 자리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예수님 내면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통한 사명 성취가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33절),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34절)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심경을 잘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갈등 가운데서 위대한 기도를 하십니다. 인간적인 소원은 고난의 잔을 옮겨 달라는 것이지만, 기도의 결론은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36절)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온전한 순종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사명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 겟세마네에서 예수님 내면의 갈등은 어떠했으며, 기도의 결론은 무엇이었나요? 내 뜻과 하나님 뜻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요?

2. 육신에 굴복하는 제자들 (37~42절)
기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힘든 기도의 시간을 보내신 예수님과 달리, 제자들은 육신의 잠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인류의 운명이 달린 중요한 순간에 기도로 승리하신 예수님과 달리, 베드로는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기도로 준비되지 못한 베드로는 잠시 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해, 인생에서 가장 무력하고 부끄러운 순간을 맞게 됩니다(14:66~72). 반면 기도로 무장하신 예수님은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 당당히 나아가십니다(42절).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분이 어쩔 수 없이 당한 수동적 비극이 아니라, 그분의 능동적 주도로 진행됩니다. 강력한 기도가 선행될 때 우리는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도 없이는 가장 사소해 보이는 욕구에도 쉽게 무릎 꿇고 맙니다.

* 제자들이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충분한 기도 시간을 갖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오늘의 기도

십자가 지는 순종의 길을 가기 위해 엎드려 기도하셨던 예수님 곁에 저 또한 무릎 꿇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꺾고 하나님 뜻에 복종하는, 이 결정적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게 하소서. 연약한 저를 일으키시는 주님 손을 잡고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참주인을 잊은 자에게는 그분의 심판이 임합니다

[마가복음 12장 1절~12절]
1절 -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2절 -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3절 -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4절 -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5절 -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6절 -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7절 -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8절 -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9절 -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10절 -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절 -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2절 -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예수님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주고 타국에 간 주인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때가 이르자 주인이 소출을 받으려 종들을 보내나, 농부들은 매번 종을 때리거나 죽이고 최후에는 주인의 아들마저 죽입니다. 주인은 그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입니다.

1. 은혜를 잊은 악한 농부들 (1~8절)
자신의 참주인을 잊어버리고 주인 노릇 하려는 것이 죄입니다. 포도원 농부 비유는 성전 정화 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11:28)라고 항변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주인은 하나님을, 농부들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주인의 은혜를 잊어버린 악한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들(선지자들)뿐 아니라 그 아들(예수님)까지 무참히 죽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자신에 대한 그들의 음모가 결국 하나님을 향한 반역임을 깨우치십니다. 성도는 자신의 참주인을 알고, 자기 백성을 향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 포도원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을 죽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지금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지, 내가 주인 노릇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세요.

2. 버려진 돌이 머릿돌 되다 (9~12절)
주인의 은혜를 저버리고 자기 욕심을 따라 행하면 결국 심판을 받습니다. 포도원 주인(하나님)은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권세 있는 존재입니다. 주인이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애초에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욕심과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해 그들은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건축자들은 종교 지도자들을, 모퉁이의 머릿돌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10절).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돌을 버린 것처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업신여겨 죽이지만, 그분은 모퉁이의 머릿돌처럼 요긴하게 되실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모든 믿는 이의 주(主) 되실 것임을 가리킵니다. 인생의 참주인을 기억하고 그분을 삶의 초석으로 삼는 것이 지혜입니다.

* 모퉁이의 머릿돌은 무엇을 상징하나요? 예수님을 쓸모없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인생의 참주인이 예수님이심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귀한 아들을 내주시기까지 죄인들이 돌이키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봅니다. 제 안에 차오르는 욕심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배반하지 않게 하소서. 참된 보배를 여전히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구원자 예수님을 힘 있게 증언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예수님께 배우는 기도에 관한 교훈

[마가복음 11장 15절~25절]
15절 -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절 -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절 -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절 -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절 -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20절 -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절 -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절 -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절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절 -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성전의 장사꾼들을 내쫓으시며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꾸짖으십니다. 베드로가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다'고 말씀드리자, 예수님은 믿음으로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십니다. 남을 용서해야 하나님도 우리 허물을 사하십니다.

1.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 (15~19절)
공간은 사용하는 사람 혹은 목적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공간이요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이들에게 분노하십니다. 성전 권력자들은 희생 제물을 팔아 이윤을 챙기며 가난한 자들의 등을 치는 강도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들은 성결한 은혜의 장소를 부정한 탐욕의 장소로 전락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잎사귀만 무성할 뿐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11:12~14) 성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예루살렘 성전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성전 시대가 열렸습니다(요 2:19).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라 성령의 전입니다(고전 6:19~20).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바 되었기에 오직 하나님 영광을 위해 드려져야 합니다.
* 성전에서 매매하는 이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어떤 행동을 취하셨나요?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 된 몸과 마음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2.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 (20~25절)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요 영혼의 호흡입니다. 욕심으로 구하는 것이 아닌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예수님이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후에(11:12~14) 제자들은 그 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목격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기도에 관한 교훈으로 연결시키십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은 첫째, 응답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결국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에 대한 신뢰입니다. 둘째, 걸림돌이나 막힘이 없는 관계입니다. 이는 진정성 있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도는 말로만이 아닌 우리의 전인격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믿음의 기도에 불가능을 가능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 예수님이 교훈하신 기도 응답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기도 응답을 가로막는 내 안의 장애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저와 공동체가 경건의 모양만 화려하고 경건의 능력은 말라 버려 주님께 책망을 들을까 두렵습니다. 제 안에 슬며시 들어온 세상의 가치관을 둘러엎으시고 저를 깨끗한 성전으로 다시 세우소서. 주님을 향한 믿음이 의심 없는 기도와 거룩한 영성으로 드러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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