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악행의 이유, 왕이신 하나님의 부재

 

[사사기 21장 16절~25절]
16절 - 회중의 장로들이 이르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까 하고
17절 - 또 이르되 베냐민 중 도망하여 살아 남은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리라
18절 -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하니라
19절 - 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20절 - 베냐민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절 -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2절 - 만일 그의 아버지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시비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23절 -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24절 -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에서 각기 자기의 지파,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갔으니 곧 각기 그 곳에서 나와서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5절 -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 여인이 다 멸절되어, 남은 베냐민 자손이 아내를 얻을 수 없음을 걱정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 자손에게 '여호와의 명절'에 춤추러 나오는 실로의 여자를 붙들어 아내로 삼으라 합니다. 베냐민 자손은 그대로 행하고 이스라엘 자손은 각자 기업으로 돌아갑니다.

 

1. 신부를 구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편법 (16~21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정당해야 합니다. 야베스 길르앗 처녀들을 데려와 베냐민 지파에 주었음에도 여전히 200명이 부족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추가로 200명의 처녀를 구하기 위한 해결책을 강구합니다(16절). 입다의 경우처럼 무분별하고 어리석은 맹세가 계속해서 그들의 발목을 붙잡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잘못된 맹세를 철회하지 않고 또다시 인간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베냐민 남자들이 '여호와의 명절'에 춤추러 오는 처녀들을 납치하는 것입니다(19~21절). 율법은 납치하는 자를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합니다(신 24:7). 하나님이 부재하신 곳에는 진정한 문제 해결도 없습니다.

* 부족한 처녀를 구하기 위한 이스라엘 장로들의 해결책은 무엇인가요? 우리 공동체 안의 문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2. 실로의 처녀를 납치하는 베냐민 (22~25절)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납치당한 처녀들의 가족이 시비할 경우를 대비하는 치밀함을 보입니다(22절). 심지어 납치 행위를 '은혜'라는 말로 포장합니다. 납치당해 강제로 끌려가는 여인과 그 가족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미스바에서 그들이 한 맹세를 지키는 것과 베냐민 남자들에게 아내를 만들어 주는 데만 집착할 뿐입니다. 베냐민 남자들은 장로들의 지시에 따라 실로에서 춤추는 여인들을 납치해 아내로 삼습니다(23절). 이러한 모습은 레위인을 내놓으라고 협박한 베냐민 지파 불량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19:22). 결국 베냐민 지파의 악행을 징벌하기 위해 모인 이스라엘이 그들과 같은 범죄를 저지릅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왕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린 데 있습니다(25절).

*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악행은 결국 무엇 때문인가요? 왕이신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며 산다면, 매사에 문제 해결 방법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오늘의 기도

악이 선으로 포장되고 선이 악으로 오도되는 가치 혼돈의 시대에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지혜가 제게 없습니다. 절대 진리이신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소서. 왕이신 주님이 저의 영과 육을 다스리시고 지정의를 주장하셔서 날마다 말씀에 기초한 의의 길로 걷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상황을 악화시키는 인간적인 해결책

 

[사사기 21장 1절~15절]
1절 -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2절 -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
3절 -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하더니
4절 - 이튿날에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거기에 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5절 -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함께 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
6절 -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어졌도다
7절 - 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8절 - 또 이르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영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니
9절 -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주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10절 - 회중이 큰 용사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 아이를 칼날로 치라
11절 - 너희가 행할 일은 모든 남자 및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하여 바칠 것이니라 하였더라
12절 -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주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명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동침한 일이 없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을 실로 진영으로 데려오니 이 곳은 가나안 땅이더라
13절 - 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14절 - 그 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자들 중에서 살려 둔 여자들을 그들에게 주었으나 아직도 부족하므로
15절 -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빠지게 하셨음이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 앞에 큰 소리로 울며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된 것을 슬퍼합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의 끊어짐을 막기 위해 그들에게 아내를 얻어 주려 합니다. 결국 전에 하나님 앞에 올라와 맹세하지 않은 야베스 길르앗을 쳐서 처녀 400명을 베냐민 자손에게 줍니다.

 

● 베냐민을 위한 애곡과 잘못된 해결책

하나님의 방법은 완전하지만, 인간의 방법은 불완전해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를 응징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합니다. 전쟁 중에 베냐민을 진멸해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벧엘에 모여 하나님 앞에 애곡합니다. 그리고 이전에 미스바에서 베냐민에게 딸을 주지 않기로 했던 맹세를 돌아봅니다(1절). 율법은 가나안 사람과의 통혼을 금지하는데(신 7:3~4), 이스라엘이 그 대상을 동족 베냐민 지파로 바꾼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살아남은 베냐민 남자 600명에게 아내를 주기 위해 인간적인 해결책을 강구합니다(7절). 그리고 내전(內戰)에 참여하지 않은 야베스 길르앗 모든 남자를 죽여 처녀 400명을 얻습니다. 이렇듯 약속의 땅은 무법이 난무하는 '가나안 땅'(12절)으로 변합니다.

 

* 이스라엘이 벧엘에서 애곡한 이유는 무엇인가요?(3절) 세상(가나안)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땅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영적 추락의 실상, 동족 진멸 전쟁

 

[사사기 20장 29절~48절]
29절 - 이스라엘이 기브아 주위에 군사를 매복하니라
30절 - 이스라엘 자손이 셋째 날에 베냐민 자손을 치러 올라가서 전과 같이 기브아에 맞서 전열을 갖추매
31절 - 베냐민 자손이 나와서 백성을 맞더니 꾀임에 빠져 성읍을 떠났더라 그들이 큰 길 곧 한쪽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요 한쪽은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에서 백성을 쳐서 전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 삼십 명 가량을 죽이기 시작하며
32절 - 베냐민 자손이 스스로 이르기를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 하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르기를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 길로 꾀어내자 하고
33절 -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들의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서 전열을 갖추었고 이스라엘의 복병은 그 장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더라
34절 -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만 명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치열하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35절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백 명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36절 - 이에 베냐민 자손이 자기가 패한 것을 깨달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 기브아에 매복한 군사를 믿고 잠깐 베냐민 사람 앞을 피하매
37절 - 복병이 급히 나와 기브아로 돌격하고 나아가며 칼날로 온 성읍을 쳤음이더라
38절 - 처음에 이스라엘 사람과 복병 사이에 약속하기를 성읍에서 큰 연기가 치솟는 것으로 군호를 삼자 하고
39절 - 이스라엘 사람은 싸우다가 물러가고 베냐민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 삼십 명 가량을 쳐죽이기를 시작하며 이르기를 이들이 틀림없이 처음 싸움 같이 우리에게 패한다 하다가
40절 - 연기 구름이 기둥 같이 성읍 가운데에서 치솟을 때에 베냐민 사람이 뒤를 돌아보매 온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았고
41절 - 이스라엘 사람은 돌아서는지라 베냐민 사람들이 화가 자기들에게 미친 것을 보고 심히 놀라
42절 -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몸을 돌려 광야 길로 향하였으나 군사가 급히 추격하며 각 성읍에서 나온 자를 그 가운데에서 진멸하니라
43절 - 그들이 베냐민 사람을 에워싸고 기브아 앞 동쪽까지 추격하며 그 쉬는 곳에서 짓밟으매
44절 - 베냐민 중에서 엎드러진 자가 만 팔천 명이니 다 용사더라
45절 - 그들이 몸을 돌려 광야로 도망하였으나 림몬 바위에 이르는 큰 길에서 이스라엘이 또 오천 명을 이삭 줍듯 하고 또 급히 그 뒤를 따라 기돔에 이르러 또 이천 명을 죽였으니
46절 - 이 날에 베냐민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가 엎드러진 것이 모두 이만 오천 명이니 다 용사였더라
47절 - 베냐민 사람 육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에서 넉 달 동안을 지냈더라
48절 -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은 모두 다 불살랐더라

 

이스라엘 자손은 기브아 주위에 군사를 매복시킵니다. 이스라엘의 복병이 기브아 성읍을 치고, 이스라엘 자손을 뒤쫓던 베냐민 자손은 자신들에게 화가 미친 것을 깨닫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추격하고 짓밟으니 용사 25,000명이 엎드러지고, 베냐민 사람 600명은 광야로 도망칩니다.

 

1. 연합군과 베냐민의 세 번째 전투 (29~35절)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 손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승리를 약속받은 이스라엘 연합군은 전면전 대신 '매복'했다가 '유인'해 '협공'하는 새로운 작전을 펼칩니다. 이는 여호수아 시대 아이성 전투를 떠올리게 합니다. 문제는 전투의 대상이 가나안 족속이 아니라 동족 베냐민 지파라는 것입니다. 이 작전으로 이스라엘은 2만 명이 넘는 베냐민 용사를 쓰러뜨립니다. 본문은 이것을 베냐민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로 설명합니다(35절). 처음 두 번의 전투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셨다면, 세 번째 전투에서는 베냐민을 징계하십니다. 표면상으로는 연합군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승리의 기쁨과 영광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은 서로 죽고 죽이며 동족상잔에 이릅니다.

* 세 번째 전투는 아이성 전투와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나요?(수 8:3~7) 하나님을 떠나 살면 내 삶은 어떻게 될까요?

 

2. 베냐민 관점에서 본 세 번째 전투 (36~48절)

세 번째 전투는 베냐민 지파의 관점에서 서술됩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의 매복 장면부터 시작해 살아남은 베냐민 지파 600명이 림몬 바위로 도망간 경위가 소개됩니다. 베냐민 지파 가운데 전사자는 25,000명(더 정확하는 25,100명)으로, 기브아 앞에서 18,000명, 림몬 바위에 이르는 큰길에서 5,000명, 그리고 기돔에 이르러 2,000명이 죽임을 당합니다(44~45절). 이스라엘은 베냐민 백성과 가축을 칼로 죽이고 성읍을 불사릅니다. 이러한 행위는 이스라엘이 베냐민을 '진멸'했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이 아닌 동족에게 '진멸 전명'을 시행하는 아이러니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 남은 것은 비참한 결말입니다.

* 이스라엘은 패배한 베냐민 백성과 성읍에 어떻게 행했나요?(48절) 나는 악과 싸우기보다 '사랑하고 품어야 할 사람'과 싸우지 않는지 돌아보세요.

 

오늘의 기도

아군이 적군을 이긴 것 같으나 실상은 아군과 적군이 서로를 심판하는 데 사용되었을 뿐 양쪽 다 잘한 것이 없음을 봅니다. 목숨 걸고 싸우지만 승자 없는 어리석은 전쟁에 휘말리지 않게 하소서.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죄를 늘 경계하며 하나님의 경고 앞에서 속히 돌이키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통곡이 아닌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사사기 20장 17절~28절]

17절 -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18절 -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19절 -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절 - 이스라엘 사람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절 -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2절 -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
23절 -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24절 -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25절 -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만 팔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26절 -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7절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28절 -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누가 먼저 싸울지 묻자, 하나님은 유다가 먼저 싸우라고 하십니다. 첫 번째 싸움에서 패한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싸울지 묻고, 하나님은 싸우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에서도 패한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금식하며 묻자, 하나님은 베냐민 자손을 그들에게 넘겨 주겠다고 하십니다.

 

1. 연합군과 베냐민의 첫 번째 전투 (17~23절)

베냐민 지파와 싸우기 위해 모인 이스라엘 연합군 40만 명이 벧엘로 올라갑니다. 이들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누가 선봉에 서야 할지 하나님 뜻을 묻습니다(18절). 하나님은 유다를 지목하십니다. 이 장면은 사사기 1장 1~2절과 비슷하지만, 싸움의 대상이 달라졌습니다. 전에 가나안 족속과 싸우기 위해 하나님 뜻을 묻던 이스라엘이 이제 동족과 싸우기 위해 하나님 뜻을 묻습니다. 영적 추락을 거듭한 이스라엘에 그들 자신이 가장 큰 대적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 음성을 듣고 전투에 임했음에도 연합군은 크게 패합니다. 이스라엘은 패배 후에 다시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통곡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패배에 대한 통곡이 아닙니다. 죄에 대한 진실한 회개입니다.

* 하나님 뜻을 묻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사사 시대 초기 모습과 어떤 면에서 다른가요?(18절; 1:1~2) 하나님이 오늘 내게 원하시는 회개는 무엇인가요?

 

2. 연합군과 베냐민의 두 번째 전투 (24~28절)

바른 질문에서 바른 답이 나옵니다. 첫 번째 전투에서 패한 이스라엘 연합군은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전투에 임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패해 18,000명이 죽습니다(25절). 이에 이스라엘은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하나님 앞에 통곡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세 번째로 물을 때는 베냐민 지파와 싸울지 말지를 묻습니다(28절). 이는 이스라엘이 동족 간의 싸움을 그만둘 의향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스라엘은 싸움의 선봉을 묻는(20:18) 대신, 이 싸움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먼저 물었어야 했습니다. 내가 먼저 결정하고 하나님께 묻는 것은 올바른 순서가 아닙니다. '결정'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 이스라엘의 질문은 세 번에 걸쳐 어떻게 달라지나요?(18, 23, 28절) 하나님 뜻을 구하는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 묻고 응답받아서 움직이는 것이라며 당당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제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의 응답인 양 스스로 취한 것이 아니었는지 점검해 봅니다. 하나님 뜻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으나 제 욕심대로 경솔하게 행한 죄를 철저히 회개하오니 용서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지파별 이기주의, 공동체 파멸의 길

 

[사사기 20장 1절~16절]
1절 -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2절 -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 명이었으며
3절 -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 악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에게 말하라 하니
4절 -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5절 -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6절 -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7절 -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하니라
8절 -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 이르되 우리가 한 사람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말며 한 사람도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말고
9절 - 우리가 이제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를 뽑아서 그들을 치되
10절 -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백 명에 열 명, 천 명에 백 명, 만 명에 천 명을 뽑아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준비하고 그들에게 베냐민의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가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 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11절 -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
12절 -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다니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행이 어찌 됨이냐
13절 -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들 곧 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14절 - 도리어 성읍들로부터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라
15절 - 그 때에 그 성읍들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 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칠백 명인데
16절 -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여 레위인에게 이 일에 대해 묻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도 돌아가지 않고 합심해 기브아 사람들을 징계하기로 합니다. 그들은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 기브아의 불량배를 넘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베냐민 자손은 오히려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기 위해 모입니다.

 

1. 레위인의 자기변명 (1~7절)

하나님 뜻과 무관한 징계는 혼란과 분열을 불러올 뿐입니다. 레위인이 보낸 여인의 시체 일부를 받아 든 이스라엘 자손은 일제히 미스바에서 하나님 앞에 모입니다. 베냐민 지파를 제외하고 요단 서쪽과 동쪽에서 40만 명의 군사가 결집합니다. 전대미눈의 '시체 토막 사건'이 온 이스라엘을 뒤흔들어 놓은 것입니다. 레위인이 나서서 사건의 전말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의 증언은 왜곡과 과장이 뒤섞인 변명에 불과합니다. 자기 잘못이나 책임은 말하지 않고 자신이 받은 수모만을 부각합니다. 이는 자신에게 모욕을 준 기브아 사람들을 징벌하고자 백성을 선동한 것입니다. 사명감 없는 레위인 한 명이이스라엘을 파멸로 몰고 갑니다. 

* 레위인이 백성을 선동하고자 과장하고 왜곡한 내용은 무엇인가요?(5절; 참조. 19:22, 25) 내 말과 행동이 공동체를 와해시키지 않는지 돌아보세요.

 

2. 내전을 준비하는 이스라엘과 베냐민 (8~16절)

레위인의 증언을 듣고 분노한 이스라엘은 기브아 사람들을 치기로 결정합니다. 죄에 대해 확정하려면 두세 사람의 증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율법의 가르침입니다(신 19:15).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레위인의 증언만 듣고서 기브아를 칠 때까지 한 사람도 집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진멸해야 할 외부의 적과 싸울 때는 하나가 되지 못했던 이스라엘이 동족을 치는 데는 연합하는 아이러니를 보여 줍니다(11절). 베냐민 사람들은 기브아의 불량배를 넘기라는 이스라엘 연합군의 제안을 거부하고 칼을 빼는 자(전투병) 26,000명과 기브아에서 뽑은 왼손잡이 700명을 모아 전쟁 준비에 돌입합니다. 이들은 민족의 운명보다 지파 이익을 우선시하는 지파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 불량배를 넘기라는 요구에 베냐민 지파는 어떻게 반응했나요?(13~14절)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해 내가 기꺼이 버릴 이기심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사명감을 잃어버리고 윤리 의식도 바닥난 사람 한 명이 국가 전체를 큰 위기 가운데로 몰아 넣을 수 있음을 봅니다. 죄악에 대해 변명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지 않게 하소서.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책임지며 어그러진 것을 바로잡는, 성도다운 성도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이 없는 곳에는 악이 가득합니다

 

[사사기 19장 16절~30절]
16절 - 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17절 -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18절 -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절 -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
20절 - 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21절 -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22절 -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23절 -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24절 -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25절 -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절 -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27절 -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절 -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절 -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절 -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한 노인이 레위인 일행을 집으로 영접합니다. 밤에 불량배들이 노인에게 찾아와 레위인과 관계하려고 그를 끌어내라 합니다. 레위인은 자기 첩을 내주고, 첩은 밤새 능욕당합니다. 다음 날 엎드러진 첩을 싣고 자기 곳에 돌아간 레위인은 그 시체를 열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사방에 보냅니다.

 

1. 기브아 불량배들의 악행 (16~25절)

기브아에서 유일하게 레위인 일행을 맞아 준 사람은 에브라임 출신의 한 노인입니다. 노인은 레위인 일행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그들의 발을 씻기고 먹을 것을 줍니다. 그들이 편히 쉬고 있을 때, 불량배들이 노인의 집을 에워싸고 레위인을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그와 성적인 관계를 맺겠다는 것입니다(22절). 이러한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소돔처럼 타락했음을 보여 줍니다(창 19:1~5). 노인은 레위인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주겠다고 제안하지만, 계속되는 위협에 레위인은 결국 첩(아내)을 불량배들에게 내줍니다. 자기 목숨을 위해 아내를 희생시킨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약육강식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없는 곳에는 음란과 폭력이 가득합니다.

* 기브아 불량배들과 소돔 사람들의 악행은 어떤 점에서 유사한가요?(창 19:1~11절 참조) 하나님을 아는 것과 건강한 공동체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2. 레위인 제사장의 악행 (26~30절)

기브아 불량배들의 모습뿐 아니라 자기 첩(아내)을 대하는 레위인의 모습 역시 충격적입니다. 첩이 불량배들에게 밤새도록 성폭행을 당하는 순간에도 레위인은 편안하게 잠을 청합니다. 날이 밝자 레위인은 길을 떠나기 위해 서두릅니다. 집 문을 열 때 쓰러져 있는 첩을 발견합니다. 그가 첩에게 건넨 말은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28절)가 전부입니다. 생사조차 확인하지 않습니다. 아무 대답이 없자, 그는 첩을 나귀에 싣고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첩의 몸을 열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보냅니다(29절). 파렴치의 극치를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끔찍한 사회가 된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결과입니다.

* 레위인은 쓰러져 있는 첩을 어떻게 대했나요?(28절; 비교. 19:3절) 나는 주변 사람을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게, 그리고 나 중심으로 대하지 않나요?

 

오늘의 기도

무정하고 잔인한 세상이 죄인을 위해 생명을 내어놓으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녹아들길 원합니다. 음란하고 더러운 죄악에 무너진 가정과 교회가 말씀으로 다시 세워지고 정결함을 회복하게 하소서. 내주하시는 성령께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내어 드리는 성도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세상의 안락에 취하면 죄의 올무에 빠집니다

 

[사사기 19장 1절~15절]
1절 -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2절 -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
3절 - 그의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기뻐하니라
4절 -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머물게 하매 그가 삼 일 동안 그와 함께 머물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
5절 - 넷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의 사위에게 이르되 떡을 조금 먹고 그대의 기력을 돋운 후에 그대의 길을 가라 하니라
6절 - 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 하니
7절 - 그 사람이 일어나서 가고자 하되 그의 장인의 간청으로 거기서 다시 유숙하더니
8절 - 다섯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이르되 청하노니 그대의 기력을 돋우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므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
9절 - 그 사람이 첩과 하인과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날이 저물어 가니 청하건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찍이 그대의 길을 가서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하니
10절 -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하지 아니하여 일어나서 떠나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두 마리와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11절 -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하니
12절 -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13절 - 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가서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14절 - 모두 앞으로 나아가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 해가 진지라
15절 -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에브라임에 사는 레위인의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레위인이 하인과 함께 첩을 데리러 가서 5일 만에 그곳을 떠나 여부스에 이릅니다. 레위인은 이방 사람의 성읍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베냐민 자손이 속한 기브아로 가지만, 그 일행을 영접하는 자가 없습니다.

 

1. 레위인과 첩 (1~9절)

영적 암흑기는 하나님을 잊는 데서 시작됩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거주하는 한 레위인이 베들레헴 출신의 첩을 맞이합니다. 이 레위인은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또 다른 아내를 취한 듯합니다. 어느 날 첩이 행음하고 레위인을 떠나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레위인은 도망간 첩을 다시 데려오려고 하인과 나귀를 이끌고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첩뿐 아니라 하인과 나귀까지 소유했다는 것은 이 레위인이 제사장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첩의 집에 도착한 레위인은 장인으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습니다. 레위인은 장인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데 몇 날 며칠을 허비합니다. 성도가 세상이 주는 안락함과 쾌락에 빠지면, 죄의 올무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 레위인이 에브라임 산지에서 유다 베들레헴으로 향한 이유는 무엇인가요?(1~3절) 세상 유혹에 빠져 삶을 낭비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2. 나그네를 홀대하는 기브아 사람들 (10~15절)

종교적 타락은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 취한 레위인은 떠나야 할 시간을 놓치고 늦은 시간에 베들레헴을 떠납니다. 레위인 일행이 여부스(예루살렘) 맞은편에 도착했을 때, 하인은 이곳에 머물자고 합니다. 하지만 레위인은 그곳이 이방 사람의 성읍이니 기브아로 가자고 합니다. 이스라엘 성읍이 이방인 성읍보다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가나안과 다를 바 없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고 하지만(출 22:21), 기브아에 들어간 레위인 일행을 맞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품을 떠난 세상에 가득한 것은 어둠과 비참함 뿐입니다.

* 레위인 일행은 기브아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나요?(15절)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말씀에 순종해 내가 기꺼이 환대하고 도울 이는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백성이라 자부하면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지 않으면 철저히 부패할 수밖에 없는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저를 자꾸만 잡아매려는 세상의 안락함을 떨치고, 쾌락을 부추기는 타락한 풍조에 휩쓸리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만이 더욱 선명해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헛된 것을 향한 열심의 열매

 

[사사기 18장 14절~31절]
14절 - 전에 라이스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15절 - 다섯 사람이 그 쪽으로 향하여 그 청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그에게 문안하고
16절 - 단 자손 육백 명은 무기를 지니고 문 입구에 서니라
17절 -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져갈 때에 그 제사장은 무기를 지닌 육백 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18절 -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지고 나오매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하니
19절 -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하는지라
20절 - 그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 가지고 그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니라
21절 -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값진 물건들을 앞세우고 길을 떠나더니
22절 - 그들이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붙어서
23절 -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그들이 얼굴을 돌려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 가지고 왔느냐 하니
24절 - 미가가 이르되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내게 오히려 남은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고 하느냐 하는지라
25절 -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하지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26절 - 단 자손이 자기 길을 간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27절 - 단 자손이 미가가 만든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여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그 성읍을 불사르되
28절 -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거리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세우고 거기 거주하면서
29절 -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였더라
30절 -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31절 -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배경 이해하기]
사사기는 반복되는 사사들의 이야기(1~16장)와 이스라엘의 신앙적 몰락(17~21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본문은 두 번째 부분의 앞부분에 해당합니다. 에브라임 사람 미가의 집안에서 일어난 사건은 단 지파의 북쪽 이동과 ‘라이스’(18:14, 27, 29)라는 지명이 ‘단’(18:29)으로 바뀌게 된 일을 잘 보여 줍니다. 미가의 본명은 ‘미가예후’로, 이는 ‘누가 여호와와 같을 수 있는가!’라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우상 숭배와 여호와 신앙을 혼동하는 모습을 보입니다(17:3). 미가는 어머니의 돈 은 1,100개(현재 약 3억 5,000만원 상당)를 훔쳤다가 저주가 두려워 다시 돌려줍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중 은 200개를 가지고 아들 미가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구하며 ‘신상’을 하나 만듭니다. 미가는 자기 집의 신당에 에봇과 드라빔을 두고, 레위인을 포섭해 신당을 운영할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마치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할 요소를 모두 갖춘 것처럼 보입니다. 그 모습을 라이스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단 지파의 다섯 사람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단 지파가 새롭게 정착할 땅에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제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찰과 묵상]
1. 단 지파 사람들은 라이스로 향해 가던 중에 미가 집에 이르러 어떻게 행동했나요?(14~19절)
무기를 든 단 지파 600명이 미가의 집 문 입구에 섰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그 지역을 정탐한 바 있는 다섯 정탐꾼은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약탈하고, 레위인을 포섭했습니다.
사사 시대 신앙은 여호수아 시대의 신앙과 연결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배운 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믿고 섬기는 악을 행했습니다(수 24:31; 삿 17:6; 21:25).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된 신앙의 모습 세 가지를 보여 줍니다. 첫째, 신상을 만들고 운영한 미가의 악하고 이기적인 ‘나만 좋으면 돼 신앙’, 둘째, 자신의 유익을 따라 마음대로 사역지를 옮겨 다니는 레위인의 ‘떠도는 철새 신앙’, 셋째, 자신들에게 주어진 땅을 정복해 차지하는 대신 조금 더 정복이 쉬운 지역을 차지할 계획으로 정탐하고 약탈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새 정착지에 필요한 필수 아이템 정도로 생각해 우상들과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포섭하고는 모두 준비되었다고 생각하는 ‘내가 복음 신앙’입니다. 특별히 단 지파 정탐꾼의 보고와 그에 대한 단 지파 사람들의 결정은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믿음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실행해야 함을 알면서도, 시대의 흐름과 주변의 반응 그리고 무조건 새롭고 좋은 것에 대한 흥미들을 더욱 중요하게 여겨 선택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는 주의해야 할 잘못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적용과 나눔
신앙생활에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얻기 위해 열심을 내는 모습이 있나요?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등록하고 출석하는 종교 활동의 시작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이 창조주요, 구원자요, 심판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과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지켜내는 것’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교회 공동체와 함께 이 땅에서 실천하고 전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교회에 속한 성도로, 또한 세상 속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고 바르지 않은 본보기들이 교회나 성도의 삶 가운데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돈과 명예와 권력과 성취감에 너무 집착한다거나, 미신과 사이비와 이단의 가르침을 분별하지 못하고 헛된 정보에 빠진다거나,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이 아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실망하거나 실족하고 서로를 정죄하는 경우까지 생겨납니다.

2. 미가와 그의 이웃은 왜 단 지파를 따라갔다가 돌이켰나요? 라이스를 점령한 단 지파는 그곳을 어떻게 불렀나요?(21~29절)
미가와 이웃들은 신당 물건들과 레위인을 되찾으려고 따라갔지만, 단 자손들의 위협과 무력에 포기했습니다. 단 자손은 라이스 땅을 점령하고 조상의 이름을 따 ‘단’이라고 불렀습니다.
단 지파는 이스라엘 남부의 서쪽 해안을 기업으로 분배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분배받은 땅을 정복해 내지 못하고 더 쉬워 보이는 북쪽 국경 지역의 ‘라이스’를 향해 온 지파가 이동합니다. 그리고 그 여정 중에 미가의 집을 들러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빼앗아 가고 또 미가가 선발해 세운 제사장을 데려갑니다. 미가와 이웃들은 싸워서라도 잃은 것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단 자손들을 추격합니다.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알게 된 단 지파의 용사들은 죽임 당하기 전에 포기하라고 강력하게 위협합니다. 미가와 이웃들은 그들의 힘으로는 뺏긴 것들을 되찾을 수 없음을 깨닫고 포기한 채 돌아갑니다. 단 자손들과 미가 일행은 그릇된 신앙의 헛된 산물들을 취하기 위해 심각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열심보다는 고가의 신상과 신당 물건에 더 집착하고 있습니다. 미가와 헤어진 후에 단 자손은 한가롭고 걱정 없이 사는 라이스에 도착해 그 땅의 백성을 죽이고 땅을 차지한 후, 지명을 ‘단’이라고 바꾸고 그곳에 정착합니다. 그들은 미가의 신당에서 섬기던 레위인을 포섭해 자신들의 땅에서 섬기게 하는 등 종교적인 부분에서도 겉으로 보기에 부족함 없이 준비했습니다.
적용과 나눔
우리 주변에 뿌리내린 잘못된 신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에 물들지 않고 신앙을 바르게 세워 나갈 방안을 나누어 보세요.
일본의 신자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종교를 믿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도 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혹시 하나님의 말씀이 믿으라고 말하는 것 외에 이 시대에 관심의 대상이 되는 철학적인 것, 신비한 것, 초과학적인 것, 외계·우주적인 것 등 다른 것을 은연중에 믿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합니다. 자신을 살펴봐야 하고, 공동체를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과 헛된 것을 동시에 경배하고 믿는 것은 과학과 신앙의 조합이 미래의 종교라고 주장하면서 ‘진화론을 기반으로 한 세계 종교 통합적 신앙’을 고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오늘날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그릇된 믿음에서 돌이켜 바른 믿음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에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성도 간에 바른 신앙 콘텐츠를 공유하고, 극단적 신비주의나 지나친 이성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의 신앙을 확인하며, 바른 믿음의 소통 안에서 안전한 영적 네트워크를 세워 가야 합니다.

 

* 단 지파의 신상 탈취와 라이스 정복은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던 사사 시대의 종교적 혼란을 잘 보여 줍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성도 중에도 헛된 것을 경배하는 데 열심인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 신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절대 가치로 삼지 않으면, 미가와 단 자손들처럼 헛된 경배에 열심을 내게 됩니다. 헛된 것을 향한 열심의 열매는 탐심, 곧 우상 숭배의 죄악입니다. 우상 숭배의 죄악은 결국 현재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다음 세대에 악한 영향력을 끼치게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저 자신과 공동체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헛된 경배의 모습을 발견하고 돌이킬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탐심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바르게 섬기며 예배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영적 타락의 나비 효과

 

[사사기 18장 14절~31절]
14절 - 전에 라이스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15절 - 다섯 사람이 그 쪽으로 향하여 그 청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그에게 문안하고
16절 - 단 자손 육백 명은 무기를 지니고 문 입구에 서니라
17절 -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져갈 때에 그 제사장은 무기를 지닌 육백 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18절 -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지고 나오매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하니
19절 -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하는지라
20절 - 그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 가지고 그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니라
21절 -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값진 물건들을 앞세우고 길을 떠나더니
22절 - 그들이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붙어서
23절 -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그들이 얼굴을 돌려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 가지고 왔느냐 하니
24절 - 미가가 이르되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내게 오히려 남은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고 하느냐 하는지라
25절 -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하지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26절 - 단 자손이 자기 길을 간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27절 - 단 자손이 미가가 만든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여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그 성읍을 불사르되
28절 -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거리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세우고 거기 거주하면서
29절 -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였더라
30절 -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31절 -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정탐꾼 다섯 명이 미가의 집에서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취하고, 미가의 제사장인 레위 청년에게 자신들의 제사장이 되라고 제안합니다. 레위 청년은 기뻐하며 그들과 함께 떠나고, 미가는 단 자손이 강한 것을 보고 자기 것을 포기합니다. 단 자손은 라이스를 치고 그 성읍을 단이라고 합니다.

 

1. 단 지파의 제사장과 우상 탈취 (14~26절)

하나님 없는 곳에는 늘 불의와 폭력, 욕망이 가득합니다. 단 지파가 미가의 집에 이르자, 그들을 인도하던 다섯 정탐꾼은 그 집에 있는 에봇과 드라빔과 신상을 탈취하자고 제안합니다. 다섯 정탐꾼은 그것이 '마땅히 행할 것'(14절)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이 마땅히 해야 했던 것은 우상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미가 집의 레위인은 한 집의 제사장보다 한 지파의 제사장이 낫지 않느냐는 정탐꾼의 제안을 기뻐하며 단 지파를 따라나섭니다. 단 지파는 앗아 간 우상을 돌려 달라며 찾아온 미가를 힘으로 위협해 내쫓습니다. 단 지파와 레위인 그리고 미가에게서 사명감이나 하나님 경외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 단 지파가 미가의 우상과 레위인을 자신들의 소유로 삼으려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17:13절 참조) 내 삶에서 제거해야 할 우상은 무엇인가요?

 

2. 단 지파의 라이스 점령 (27~31절)

단 지파는 미가가 만든 우상과 레위인을 취해 목적지인 라이스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걱정 없이 살던 라이스 사람을 칼날로 치고 성읍을 불살라 '진멸'합니다. 하나님이 진멸하라 명하신 가나안 족속과는 통혼하던 그들이, 평화로이 살던 라이스 사람은 진멸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 근거는 레위인의 거짓된 신탁입니다. 단 지파는 라이스를 점령해 자신들의 거주지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훔쳐 온 신상들을 세우고 사명감 없는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단 지파의 우상 숭배는 이스라엘이 멸망해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계속됩니다(30절).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한 타락(17:1~2)이 한 지파를 넘어 민족 전체로 확대됩니다.

* 단 지파가 제사장 삼은 레위인의 계보는 무엇을 시사하나요?(30절) 바른 믿음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내가 힘쓸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향한 열망보다 종교적 위안을 얻으려는 마음으로 말씀 묵상과 기도를 하진 않는지 늘 살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한 채 물질의 이익을 따라가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않게 하소서.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닮아 가고 전파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 없는 시대의 특징, 거짓 확신과 자기 합리화

 

[사사기 18장 1절~13절]
1절 -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2절 -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그들의 가족 가운데 용맹스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3절 - 그들이 미가의 집에 있을 때에 그 레위 청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하니
4절 -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이러이러하게 나를 대접하고 나를 고용하여 나를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느니라 하니라
5절 -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6절 -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7절 -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8절 -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가서 그들의 형제들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보기에 어떠하더냐 하니
9절 -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10절 - 너희가 가면 평화로운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는지라
11절 - 단 지파의 가족 중 육백 명이 무기를 지니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12절 - 올라가서 유다에 있는 기럇여아림에 진 치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 단이며 그 곳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더라
13절 - 무리가 거기서 떠나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단 지파 다섯 사람이 정탐꾼으로 땅을 살펴보러 가다가 미가의 집에 이릅니다. 그들이 레위 청년을 알아보고 그에게 앞날을 묻자, 그는 그들의 길이 하나님 앞에 있다고 답합니다. 그들은 라이스 사람들이 평온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그 땅을 차지하고자 형제 600명을 데리고 다시 올라갑니다.

 

● 단 지파의 유업 포기와 라이스 정탐

단 지파는 유다 지파의 영토 중 서쪽 땅을 유업으로 분배받았습니다(수 19:40~48).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땅을 믿음으로 취하지 못하고 도리어 아모리인에게 쫓겨났습니다(1:34). 그들은 힘겨운 전쟁을 치르는 대신 편안히 살 방법을 찾아 나섭니다. 단 지파 정탐꾼들이 도착한 곳은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타락한 레위인 제사장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제사장에게 자신들이 가는 길이 형통할지 하나님께 물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에 제사장은 그들이 기대하는 답변을 해 주지만(6절, '평안히 가라'), 이는 하나님 뜻과 상관없는 답변입니다. 그들은 거짓된 확신을 품고 라이스 지역으로 향하고, 그 땅을 점령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포장합니다. 단 지파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 뜻은 그들이 분배받은 땅을 믿음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 타락한 제사장은 단 지파 사람들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했나요? 하나님 뜻과 상관없는데도 하나님 뜻인 양 말하는 잘못을 범한 적은 없나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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