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

여호와의 날
스바냐서는 전체가 53절밖에 되지 않지만 '여호와의 날'에 대해 23번이나 언급하며, 다가올 '여호와의 날'이 철저한 심판의 날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강력한 심판의 날인 '여호와의 날'은 동시에 주님의 백성을 향한 구속과 회복의 날이다. 그래서 스바냐는 진노와 심판의 날인 '여호와의 날'에 대한 선포로 예언을 시작하지만, 진정한 예배와 기쁨, 축복의 날로 주어지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메시지로 끝을 맺는다.

스바냐서 한눈에 보기

초점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

여호와의 날에 임할 구원

구성

온 세상을 향한 심판

유다 민족을 향한 심판

나라들을 향한 심판

구원의 필요성

회개에 대한 약속

회복에 대한 약속

본문

1:1~3

1:4~2:3

2:4~15

3:1~8

3:9~13

3:14~20

주제

진노의 날

기쁨의 날

장소

유다와 열방들

연대

BC 630년경


스바냐, 여호와가 감추신 선지자
스바냐는 히스기야 왕의 현손(1:1)으로 요시야 왕(BC 640~609) 당시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다윗 왕가의 인물이었다. 스바냐가 활동하던 시기는 아직 니느웨가 멸망하지 않은 BC 612년 이전이었다(2:13). 동쪽에서는 바벨론이 일어나 앗수르를 대신하는 제국을 세우고, 남쪽에서는 애굽이 그 세력을 확장할 기회를 엿보는 시대였다. 이 기간에 유다는 잠시 동안 평안을 누렸다. 50여 년 간 지속된 므낫세의 통치로 영적 부패를 경험한 유다는 요시야 왕 때 영적 개혁을 시작했으며, 이때 선포된 스바냐의 강력한 예언은 종교개혁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 온 세상을 향한 심판 (1:1~3)
스바냐는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라는 여호와의 메시지를 선포함으로 즉각적인 심판이 다가왔음을 알렸다.


■ 유다 민족을 향한 심판 (1:14~2:3)
온 세상에 임할 두려운 심판 메시지에 이어 그러한 심판이 이제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것이 선포된다. 그리고 이어서 '여호와의 날'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 나라들을 향한 심판 (2:4~15)
하나님은 유다의 동서남북에 위치한 모든 나라를 심판하실 것이다. 이러한 열방에 대한 심판 신탁은, 유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된다.

스바냐 2장에 나타난 열방들에 대한 심판

나라이름

유다에서의 위치

그들이 처할 운명

유다에 미칠 영향

블레셋 (2:4~7)

서쪽

멸망

남은 자들에게 주어짐

모압과 암몬 (2:8~11)

동쪽

멸망

남은 자들에게 약탈당함

구스 (2:12)

남쪽

멸망

언급 없음

앗수르 (2:13~15)

북쪽

멸망

언급 없음


■ 구원의 필요성 (3:1~8)
스바냐는 회개하지 않는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선언한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분명하게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런 하나님의 경고는 멸망이 아닌 구원을 전제로 하고 있다.


■ 회개와 회복에 대한 약속 (3:9~20)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실 때 완전히 멸하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열방의 입술이 깨끗게' 될 '여호와의 날'을 통해 심판받은 나라들을 용서하시고 회복하실 것이다.

회복의 노래,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여호와의 날'이 이르면 하나님과 원수였던 이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게 될 것이고, 동시에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거짓을 말하지 않게 될 것이다. 스바냐는 부패한 남 유다를 향해 이러한 심판을 예언하면서도 '기쁨으로 부르는 구원의 노래' (3:14~20)로 그의 예언을 마무리한다. 이 구원의 노래는 신앙을 지키며 주님을 앙망하는 참 신앙인들을 향한 기쁨의 노래다.

스바냐

여호와의 날이 오리라
여호와께서 유다와 열방을 심판하실 날이 머지않았다. 그날에 대비해 하나님 백성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공의와 겸손을 구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주님이 진노하시는 날에 화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심판의 날에 모두가 진멸당하지만 하나님 백성은 예루살렘과 시온에 임하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을 것이다.

스바냐 한눈에 보기

본문

1:1~2:3

2:4~15

3:1~20

요점

유다 심판

열방 심판

여호와의 날

저자

히스기야 왕의 현손으로 낮은 서열이지만 왕족이었던 스바냐다. 사회 지도층인 그가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자 유다 사회는 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연대

요시야 왕 때(주전 640~609년) 스바냐에게 말씀이 임했다. 요시야 왕이 여호와 신앙으로 돌아가기 위한 개혁을 시작할 때 선포된 예언으로 보인다(왕하 22:3~22:30; 대하 34~35장).

목적

거짓 신들을 따른 유다는 참되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날이 '여호와의 날'이다. 이날에 자신의 권력을 믿고 방자했던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 스바냐의 예언은 요시야 왕의 개혁으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때로는 예언자의 예언이 당대에 실현되는 것을 보기도 한다.

분류

예언서


유다 심판 (1:1~2:3)
창세기의 홍수 사건처럼 여호와께서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실 것이다. 특히 바알 등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과 하늘의 별을 경배하는 자들은 다시 기회를 얻지 못하고 멸절할 것이다. 이방의 영향을 받아 우상 숭배를 그치지 않았던 유다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막데스 주민들은 울부짖게 될 것이다(1:10~11). 막데스는 예루살렘 저지대의 아래로 푹 꺼진 '우묵한 곳'(삿 15:19)으로, 예루살렘의 지형학적 특징이 나타난다. 어문(漁門, 10절)은 지중해의 해산물을 들여오는 예루살렘의 초입 관문이다. 한동안 예루살렘에 평화가 유지될 때도 있었다.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라기스에 머물며 애굽까지 정복했지만 예루살렘만은 살아남았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결코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여호와는 예루살렘에 심판받을 리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찾아 벌하실 것이다. 죄를 짓는 백성은 패망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망이 남아 있다. 여호와께로 돌이켜 공의와 겸손을 구하기만 하면 그들은 안전할 것이다(2:1~3).

요시야 왕 때 주변국 상황
요시야가 8세에 유다 왕이 되었을 때 메소포타미아 일대는 혼전에 돌입한다. 300여 년간 지속되며 애굽까지 세력을 뻗었던 신앗수르 제국이 무너지고 신바벨론 제국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앗수르의 앗수르바니팔 왕이 사망한 주전 627년부터 앗수르 수도인 니느웨가 함락당한 주전 612년까지 이 지역은 패권의 각축장이 된다. 그 영향은 멀리 예루살렘에까지 이르렀다. 요시야의 할아버지 므낫세가 55년이나 재위한 것은 앗수르 제국의 전성기에 앗수르의 종복으로 자처했기 때문이다. 같은 입장을 택한 요시야의 아버지 아몬은 친바벨론 세력에 암살당한다. 예루살렘 정가는 무너져 가는 앗수르와의 의리를 지킬 것인지, 새롭게 부상하는 바벨론 편에 설 것인지 다투게 된다. 요시야 왕은 강대국 사이에서 독자 노선을 모색하며 여호와 신앙으로 돌아가기 위해 종교 개혁을 벌인다. 강대국 편에 서서 그들의 우상 숭배를 이스라엘에 조장해 온 사람들은 철퇴를 맞는다.

열방 심판 (2:4~15)
유다뿐 아니라 모든 열방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 가사와 그렛, 아스글론 등 블레셋은 파멸하고 그 땅은 신실한 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2:7). 교만한 모압과 암몬은 고난을 당할 것이다. 남쪽의 구스(에티오피아)도, 북쪽의 강한 앗수르도 무너질 것이다. 니느웨는 사막같이 되고 짐승들만 어슬렁거릴 것이다. 한때 아름다웠던 왕궁 위로 까마귀 떼만 날 것이다.

여호와의 날 (3:1~20)
예언자는 하나님을 거역해 온 예루살렘에 다시 초점을 맞춘다. 특히 예배 처소를 욕되게 하는 제사장들, 거짓 예언자들, 부패한 관리들을 향한 심판이 선포된다. 이들은 돌이키라 하신 여호와의 간절한 요청을 마다하고, 열심을 다해 부지런히 더러운 행위를 해 왔다(3:7). 그러므로 마침내 이들에게 여호와의 날이 올 것이다.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이지만, 동시에 평화와 영광의 축제 날이기도 하다. 세상은 깨끗해지고 언어도 정결해질 것이며(3:9), 겸손한 자들은 안전히 거할 것이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환난을 버텨 낸 자들을 위한 축제의 시간이다. 하나님과 시온의 백성은 즐거워하고 소리치며 노래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 백성으로 인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3:16~17).

정결한 예배를 드리며 전능자와 동행하십시오

[스바냐 3장 9절~20절]
9절 -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절 -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11절 -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네 가운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네가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라
12절 -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13절 -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14절 -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절 -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절 -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절 -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절 -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19절 -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절 -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온 땅이 소멸될 때, 여호와께서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셔서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남은 백성은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며 교만하지 않고 악을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원을 베푸신 전능자 여호와께 시온을 사랑하시니 이스라엘은 기뻐해야 합니다.

1. 남은 자 (9~13절)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목적은 정결함과 관계 회복에 있습니다. 때가 이르러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진노가 부어지면 기득권에 안주하던 위선적이고 교만한 자들이 모두 쫓겨나고, 악과 거짓이 없는 자들이 남아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것입니다. 정결하게 된 예루살렘에서는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 곧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깊이 깨닫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이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비록 화려한 성전과 장엄한 제사 의식은 사라지고 없지만, 남은 백성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며 새 노래로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선적인 종교 형식에서 벗어나 상한 마음으로 드리는 눈물과 헌신의 예배를 원하십니다.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소유입니다(마 5:3).
* 묵상 질문
어떤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되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교만하고 위선적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구원과 회복의 은혜 (14~20절)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유다 백성은 이방에 사로잡혀 부끄러움을 당하지만, 죄의 대가를 치른 후에 그들이 받는 은혜는 이전의 모든 아픔을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저는 자, 쫓겨난 자, 수욕받는 자에 불과했던 남은 자들이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명성을 얻을 것입니다. 회복될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이나 가나안 땅, 유대인이라는 장소와 혈통의 제약을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임재와 동행의 복을 누립니다. 전능자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이는 돌판에 새겨진 모세의 언약을 능가하는 새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왕 중의 왕이요,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입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은 곧 심판받을 유다 백성에게 어떤 약속을 미리 주시나요?
* 적용 질문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가 함께하심을 믿을 때, 고난에 대한 마음가짐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오늘의 기도
제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신뢰합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고난을 통해 제 안의 불순물을 제거하시고, 겸비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저를 세우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긍휼의 하나님, 제 길로 가는 백성

[스바냐 3장 1절~8절]
1절 -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2절 -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3절 -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의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4절 -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5절 -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6절 - 내가 여러 나라를 끊어 버렸으므로 그들의 망대가 파괴되었고 내가 그들의 거리를 비게 하여 지나는 자가 없게 하였으므로 그들의 모든 성읍이 황폐하며 사람이 없으며 거주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7절 -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8절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소집하며 왕국들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여호와의 명령과 교훈을 따르지 않고 그분을 의뢰하지도 않은 패역한 성읍에 화가 있을 것입니다. 불의한 방백, 재판장, 선지자, 제사장은 심판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면 형벌을 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듣지 않았기에 온 땅이 소멸될 것입니다.

1. 예루살렘의 죄와 부패함 (1~4절)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면 인간의 부패한 본성을 따라 행하게 되고 그 결과는 사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말씀에 거듭 불순종함으로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앙의 모범을 보여야 할 지도자들이 공의를 저버리고 약자를 착취하며 자기 이익을 도모해 위선으로 행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머리로는 알지만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의 명령과 교훈을 무거운 짐으로 여긴 것입니다. 지도자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생명의 말씀을 따르는 공동체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즐겁게 듣고, 매사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인생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을 떠나고 말씀을 저버리면 결국 어떻게 되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나요? 잘 순종하지 못하는 말씀에는 무엇이 있나요?

2. 기회를 저버리는 예루살렘 (5~8절)
아침마다 태양이 떠오르듯, 하나님의 인자와 공의는 변함없이 날마다 펼쳐집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마음이 굳고 무감각해서 불의를 행하고도 수치심을 느끼지 못합니다. 긍휼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멸망 길로 행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돌이켜 생명 길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방을 반면교사로 삼아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라고 권고하십니다. 비록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깨우쳐 즉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살 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계속해서 악을 행했고, 심판받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고후 6:2). 긍휼의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십시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데도 이스라엘은 어떻게 행했나요?
* 적용 질문
사랑의 하나님뿐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을 늘 의식하나요? 긍휼이 풍성하신 공의의 하나님 앞에 겸손히 고백할 죄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징계와 심판 뒤에 있는 주님의 아픈 마음을 깨달을 수 있는 영안을 주소서. 지금이라도 돌이키라고 강권하시는 주님께 회개하며 나아감으로, 이 세상을 향한 은총의 통로로 쓰임받길 간절히 원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사라지는 강대국, 끝까지 남는 백성

[스바냐 2장 4절~15절]
4절 - 가사는 버림을 당하며 아스글론은 폐허가 되며 아스돗은 대낮에 쫓겨나며 에그론은 뽑히리라
5절 - 해변 주민 그렛 족속에게 화 있을진저 블레셋 사람의 땅 가나안아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를 치나니 내가 너를 멸하여 주민이 없게 하리라
6절 - 해변은 풀밭이 되어 목자의 움막과 양 떼의 우리가 거기에 있을 것이며
7절 - 그 지경은 유다 족속의 남은 자에게로 돌아갈지라 그들이 거기에서 양 떼를 먹이고 저녁에는 아스글론 집들에 누우리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보살피사 그들이 사로잡힘을 돌이킬 것임이라
8절 - 내가 모압의 비방과 암몬 자손이 조롱하는 말을 들었나니 그들이 내 백성을 비방하고 자기들의 경계에 대하여 교만하였느니라
9절 -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내 백성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10절 -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할 것은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에 대하여 교만하여졌음이라
11절 - 여호와가 그들에게 두렵게 되어서 세상의 모든 신을 쇠약하게 하리니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12절 - 구스 사람들아 너희도 내 칼에 죽임을 당하리라
13절 - 여호와가 북쪽을 향하여 손을 펴서 앗수르를 멸하며 니느웨를 황폐하게 하여 사막 같이 메마르게 하리니
14절 - 각종 짐승이 그 가운데에 떼로 누울 것이며 당아와 고슴도치가 그 기둥 꼭대기에 깃들이고 그것들이 창에서 울 것이며 문턱이 적막하리니 백향목으로 지은 것이 벗겨졌음이라
15절 - 이는 기쁜 성이라 염려 없이 거주하며 마음속에 이르기를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하더니 어찌 이와 같이 황폐하여 들짐승이 엎드릴 곳이 되었는고 지나가는 자마다 비웃으며 손을 흔들리로다

여호와께서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 그렛 족속, 가나안을 멸하고 유다의 남은 자를 보살피셔서 그들에게 그 지경을 주실 것입니다. 모압과 암몬, 구스, 앗수르도 황폐케 해 그분의 남은 백성에게 주실 것입니다. 세상 신들이 쇠약해지고 이방이 여호와를 경배하게 됩니다.

1. 블레셋의 멸망 (4~7절)
유다는 일시적인 징계와 연단을 받지만, 블레셋은 교만으로 인해 영원한 형벌과 심판에 처해집니다. 이스라엘을 수시로 괴롭히며 못살게 굴던 가사와 아스글론, 아스돗과 에그론 등 블레셋의 도시 국가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들이 살던 곳은 더는 번창하지 못하고 양 떼를 먹이는 한산한 곳으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은 아무리 큰 재난을 당하고 이방으로 쫓겨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돌아와 회복과 부흥을 경험합니다.
* 묵상 질문
유다가 당하는 재난은 블레셋과 비교할 때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나요?
* 적용 질문
고난의 때를 어떻게 견뎌 낼 수 있을까요? 고난 속에서 믿음으로 기대할 소망은 무엇인가요?

2. 모압과 암몬의 멸망 (8~11절)
하나님 자녀를 미워하고 저주하면 화가 임합니다.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과 인척 관계지만 자존심과 과도한 경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훼방하고 욕을 퍼붓고 기회만 있으면 경계를 침범했습니다. 그 결과 모압과 암몬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황폐해지고, 땅은 장차 유다 족속의 남은 자들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가 어려움 당할 때 긍휼히 여기지 않고 비방하고 저주하면, 그를 지으신 하나님이 친히 갚으십니다.
* 묵상 질문
모압과 암몬이 친족 관계인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괴롭힌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지체의 허물을 보고 쉽게 비방하지 않나요? 교만한 태도로 다른 사람을 대한 적은 없는지 살펴보세요.

3. 구스와 앗수르의 멸망 (12~15절)
하나님 자리에 대신 앉은 교만한 나라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한때 거대한 제국이었던 구스와 앗수르는 점점 세력을 잃고 그 지역의 주도권을 빼앗깁니다. 이들이 세운 도시는 인적이 없는 곳에 서식하는 당아와 고슴도치의 세상이 됩니다. 최고라는 교만에 빠져 방자하게 행하면 필연적으로 패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고 겸손하게 행할 때, 구원 역사의 중심으로 끝까지 남을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세계적인 강대국들이 망하고 이스라엘이 남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주인이 바뀌어야 하는 영역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교만한 자는 결국 패망할 수밖에 없지만,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면 반드시 도우심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그 한 사람이 되어 구원 역사의 증인으로 서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겸손한 자에게는 피할 길을 주십니다

[스바냐 1장 14절~18절]
14절 -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15절 -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16절 -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17절 -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지라
18절 -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
[스바냐 2장 1절~3절]
1절 -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2절 -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3절 -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여호와의 큰 날은 가깝고 빠르며, 분노와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 구름과 흑암의 날입니다. 그날에 은금이 그들을 건지지 못함은 여호와께서 모든 주민을 멸절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날이 이르기 전에 모여야 하며, 여호와를 찾고 공의와 겸손을 구해야 합니다.

1. 두려운 '여호와의 날' (1:14~18절)
'여호와의 날'은 구원과 심판의 이중성격이 있습니다. 그날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위대한 승리와 영광의 날이지만,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처절한 패배의 멸망의 날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배역한 유다 백성에게 '가깝고도 심히 빠르게', '캄캄하고 어두운' 분노와 황폐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에는 '견고한 성읍'과 '높은 망대'가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들이 의지하던 은과 금도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영적 맹인인 유다 백성은 경고 표지판을 보지 못한 채 멸망의 낭떠러지로 질주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선하며, 그분의 맹렬한 진노는 하나님 백성의 죄의 결과입니다.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 돌이키는 자에게는 '여호와의 날'이 '긍휼의 날'로 변할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여호와의 날'은 어떤 날이며, 그런 날이 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주님의 뜻에 무지한 영적 맹인으로 살고 있지 않나요? 주님이 내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은 무엇인가요?

2. 진노의 날에 보호받는 길 (2:1~3절)
하나님 백성의 안전은 통회하는 마음과 삶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에서 비롯됩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백성에게 심판이 임하기 전에 모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심판의 원인이 무엇인지 함께 돌아보고 그 길에서 돌이켜 여호와께서 분노하시는 날에 화를 면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부패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이 분노의 날에 조금이라도 긍휼을 얻기 위해서는 합심해서 하나님을 구하고 전심으로 돌이켜야 했습니다. 맹렬한 분노의 날에도 구원의 길은 있습니다. 그 길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겸손한 마음으로 공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과 길을 찾고, 불의를 버리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사람을 환난 중에 기억하시고 건져 주십니다.
* 묵상 질문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받는 사람은 어떤 이들인가요?
* 적용 질문
곤고한 상황을 어떤 모습으로 견디나요? 하나님을 찾고, 공의와 겸손으로 이웃을 돌아볼 때 주님이 어떤 은혜를 주실까요?

오늘의 기도
교회에 다니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만으로 제가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소서. 참된 행함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며, '여호와의 날'을 심판과 멸망의 때가 아닌 회복과 승리의 날로 맞이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여호와의 큰 날

[스바냐 1장 14절~18절]
14절 -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15절 -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16절 -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17절 -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지라
18절 -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
[스바냐 2장 1절~3절]
1절 -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2절 -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3절 -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배경 이해하기]
유다의 므낫세 왕(BC 697~642년)과 아몬 왕(BC 642~640년)이 우상 숭배를 조장하며 사악한 통치를 행한 이후, 요시야 왕(BC 640~609년)이 즉위합니다. 이스라엘은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그들 자신만을 위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우상 숭배를 비롯해서 영적, 사회적 병폐가 사회에 만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바냐는 BC 722년에 있었던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생각하며 유다에 영적 각성을 촉구합니다.
대제국 앗수르는 에살핫돈(BC 681~669년)과 앗수르바니팔(BC 669~626년) 치세 때 국력이 절정에 이르렀지만, 지나친 국토 확장 정책과 내란으로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신흥 세력인 바벨론이 앗수르를 공격하기 시작했고(BC 626년), 결국 BC 612년에 메대와 바벨론 연합군이 수도 니느웨를 함락하고 앗수르를 멸망시킵니다. 앗수르바니팔이 죽기 전, 즉 앗수르가 여전히 강성한 시기에 있을 때 스바냐는 앗수르가 멸망할 것이며 여호와의 심판이 유다와 열방에 임하리라고 경고합니다.
스바냐서는 12소선지서 중에서 요엘서와 함께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을 선포합니다. 1:2~4절에서는“내가…하리라”라는 구절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심판을 행하실 하나님의 의지를 강조합니다. 1장에서 심판의 대상은 우상(바알, 4절)과 그 제사장들(그마림, 4절), 일월성신을 섬기던 자들(5절),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6절)입니다. 스바냐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임할 것이며 그날은 환난과 고통과 황폐와 패망의 날이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14~15절).

[인도자를 위한 본문 연구]
본문 연구 1: 여호와의 날(1:14~18)
‘여호와의 큰 날’(14절)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심각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유다의 죄에 진노하신 하나님은 큰 권능으로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용사가 적군의 발아래 무릎 꿇고 슬픔과 두려움으로 울부짖듯이, 심판의 날에 유다 백성은 모두 그런 처지에 놓일 것입니다(14절).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바벨론 군대에 의해 유다 땅에 ‘황폐와 패망의 날’(15절)이 임합니다. ‘구름과 흑암의 날’은 하나님의 현현과 임재를 나타내는 동시에 그날에 혼란과 공포가 임하리라는 것을 표현합니다. 스바냐는 경고용 나팔, 견고한 성읍, 높은 망대를 여호와의 날과 연관시켜 하나님의 심판이 전쟁과 같이 무서울 것임을 암시합니다(16절). 하나님이 심판을 내리시면 아무리 튼튼한 성벽도 인간을 보호하지 못하고 아무리 높은 파수대도 멸망을 막아 내지 못합니다.
유다 백성은 혼란과 공포로 말미암아 맹인같이 우왕좌왕하면서 도망갈 길을 찾지 못하고 전멸당할 것입니다(17절). 유다 백성이 그러한 심판을 받게 된 이유는 여호와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엄청난 양의 피를 쏟을 것입니다. 그 피는 마치 강물같이 흐르고 그들의 시체는 매장되지 못한 채 그냥 썩을 것입니다(17절).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하나님을 배반했던 자들은 환난과 고통의 날에 재물을 의지하겠지만 그것들은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입니다(18절).

본문 연구 2: 구원을 얻는 길(2:1~3)
1장은 ‘진멸, 멸절, 분노, 황폐, 패망, 흑암’ 등의 단어를 사용해 마치 선전 포고하듯이 무서운 심판의 날을 예고했습니다. 이제 2장은 그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시작됩니다. 유다 백성은 ‘수치를 모르는’ 오만하고 강퍅한 사람들입니다(1절). 스바냐 선지자는 그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기 시작합니다. 2절의 ‘명령’은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했던 율법의 규정과 규례(신 29:21, 27)를 의미합니다. 2절은 ‘명령이 시행되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이르기 전’ 등 같은 구절을 반복하면서 유다에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냅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3절)이란 유다와 이방을 불문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소위 ‘남은 자들’을 뜻합니다. 이들은 우상 숭배를 그치고 교만과 악함을 회개한 사람들입니다. 멸망의 시간이 임박했다 해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3절에서 ‘공의’는 ‘공정함’, ‘정직함’, ‘정의로움’이란 뜻이고, ‘겸손’은 ‘내리누르다’, ‘굽혀 놓다’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전 인격을 복종시켜야 함을 뜻합니다.

[묵상 포인트]
하나님이 두려움과 공포와 혼란으로 다가올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신 것은 이방 문화와 우상 숭배에 빠진 유다 백성을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목적은 하나님 백성이 빨리 회개하고, 공의와 겸손을 회복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 마지막 심판 날이 가까워졌음을 느끼나요? 가정과 내 삶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는 우상 숭배적 요소는 무엇인지 나누어 보세요.
선지서에 누누이 등장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주로 우상 숭배자들을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그때부터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선포하셨고 백성에게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일월성신이니 말감이니 하는 이방 우상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스바냐 선지자 당시 유다가 종교적으로 크게 타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척하면서도 이방 신전에 발을 들이는 등 이중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1:12). 오늘날 현대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요소가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기거나, 세상적인 가치관에 물들어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지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고후 6:15). 내가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지는 않는지,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이 심판에 앞서 회개를 촉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느덧 죄에 무감각해진 영역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에 무감각해져서 죄를 짓고도 전혀 수치스러워하지 않는 유다를 향해 회개를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에 주목하십시오. 죄인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은 그들이 멸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바냐는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즉 심판의 예언이 시행되기 전에 돌이키라고 선포합니다. 회개는 자신의 부조리와 부패함을 발견하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데서 시작됩니다. 가장 사악한 사람은 자기 죄를 은폐하거나 죄책감을 전혀 갖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악한 사람의 결국에 대해 유다서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유 1:13)라고 합니다. 자기 죄로 인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스바냐는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고 촉구합니다. 수치스러운 죄를 지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그분의 규례를 지키는 것, 이것이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날에 숨김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스바냐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기도문]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을 위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돌아봅니다. 매 순간 하나님을 찾고 여호와의 규례를 준행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하나님을 멀리하면 미래와 소망이 없습니다

[스바냐 1장 1절~13절]
1절 -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2절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3절 -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땅 위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4절 -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절 -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
6절 -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
7절 -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고 그가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음이니라
8절 - 여호와의 희생의 날에 내가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며
9절 - 그 날에 문턱을 뛰어넘어서 포악과 거짓을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
10절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어문에서는 부르짖는 소리가, 제 이 구역에서는 울음 소리가, 작은 산들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일어나리라
11절 - 막데스 주민들아 너희는 슬피 울라 가나안 백성이 다 패망하고 은을 거래하는 자들이 끊어졌음이라
12절 - 그 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13절 - 그들의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폐할 것이라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에 살지 못하며 포도원을 가꾸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유다 왕 요시야 때에 스바냐가 받은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땅 위의 모든 것, 그분을 배반하고 바알과 별과 말감을 섬기는 자들, 포악과 거짓을 행한 자들을 진멸하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기에 그분이 희생을 준비하시고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습니다.

1. 심판의 예고 (1~6절)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면 피조 세계까지도 재앙을 받지만,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면 모두가 생명과 복을 누립니다. 스바냐는 요시야 왕 때 활동한 선지자로, 그의 예언은 므낫세의 악정으로 인해 죄악에 깊이 물든 유다 백성을 향한 심판의 선포입니다. 유다 백성은 풍요의 신 바알을 숭배하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며, 여호와와 말감을 동시에 섬기기도 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이 믿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가증스러운 우상을 선택하며 여호와께 관심조차 없기에 하나님은 노아 홍수때보다 더 철저하게 심판하겠다고 예고하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모든 것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그분을 찾고 그분께 구할 때, 자신과 모두에게 미래와 소망이 있습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 백성의 우상 숭배가 피조 세계 전체에 재앙을 초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신앙의 연수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자라고 있나요? 현재 믿음 생활에서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요?

2. 여호와의 날의 도래 (7~13절)
하나님에 대해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사람은 안전지대에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청할 자'(심판도구)를 불러 '희생'(유다)을 제사로 드리는 것에 비유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유다를 제물로 받으심과 동시에 그들을 정결하게 하심을 의미합니다. 그날에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높은 자리에서 악을 행하는 이들, 이방인의 옷을 입고 이방 관습에 젖어 있는 이들, 이교 신전의 문턱을 뛰어넘어 우상 숭배하는 이들이 모두 희생 제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찌꺼기같이 가라앉아' 그분의 엄위하신 주권을 무시하는 자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은 평안과 부요를 누립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무감각한 이들의 결국은 어떠한가요?
* 적용 질문
믿음이 '찌꺼기같이 가라앉아' 우울하고 낙심될 때,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베푸신 큰 언약을 함부로 여기면서 '잘될 것'만 바라는 악함이 없는지 돌아봅니다. 말씀으로 저 자신을 비추어 보며 지금 이곳 삶의 현장에서 믿음으로 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도와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스바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겸손한 자에게는 피할 길을 주십니다 (습 1:14~2:3)  (0) 2015.12.02
여호와의 큰 날 (습 1:14~2:3)  (0) 2015.12.01
스바냐 3장 - study  (0) 2014.05.22
스바냐 2장 - study  (0) 2014.05.21
스바냐 1장 - study  (0) 2014.05.20

# study
(1~8절)
예루살렘의 심판 -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1:1~2:3)과 관련하여 다시 한번 예루살렘의 죄악(1~4절)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5~7절)가 증거되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에 준하는 책임이 따르며 비록 유다가 하나님의 선민이기는 하나 선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이 점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마 3:7~10).
[1절]
패역하고...포악한 그 성읍.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 이처럼 예루살렘은 반복되는 회개의 촉구에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채 패역한 도시로 전략했던 것이다.
[3절]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백성들을 위해 헌신해야 할 지도자들이 권력을 앞세워 부정 축재를 일삼고 양민들을 무자비하게 학대했음을 가리킨다(겔 22:27). 재판장들은...저녁 이리요. 정의의 편에 서야 할 재판관들이 판결권을 악용해 뇌물을 착복했음을 의미한다(미 3:11). 이와 같이 지도층에 있는 자들이 권력을 남용해 국민을 억압하고 부정 부패에 탐닉하게 될 때 그 사회는 불신과 반목에 휩싸이게 되고 결국에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오고 오는 세대에 영원히 적용되는 만고 불변의 진리이다(렘 23:2; 겔 34:2, 3).
[4절]
선지자들은...간사한 자요. 권력과 부에 아부하는 선지자들이 기득권을 옹호하고 사리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계시 받은 예언인 양 왜곡하여 전달했던 것을 뜻한다(렘 23:32).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종교가 부패한 정권이나 기득권을 소유한 자들과 야합하게 될 때 반드시 타락하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자들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벧후 3:16)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5절]
본절에는 예루살렘 거민들의 패역, 불의(2~4절)와 극한 대조를 이루는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공의가 강조되고 있다. 아침마다...공의를 나타내시거늘 공의의 하나님(신 32:4; 사 30:18)께서는 공의를 사랑하시는(시 33:5; 사 51:4) 분으로서 공의로 판단하시고(시 146:7; 렘 11:20) 지도하시며(시 25:9)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심판을 행하신다(계 19:11). 반면에 악인들은 공의를 깨닫지 못하며(잠 28:5) 설사 깨닫는다 해도 이를 싫어하거나(잠 21:7) 업신여기게(잠 19:28) 된다.
[7절]
내가 형벌을...아니하리라 하였으나.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이 기정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마지막으로 회개할 기회를 또 한번 주셨으나 그들이 이를 거부했다는 의미이다.
[8절]
내가 일어나...나를 기다리라. 유다의 죄악상이 더 이상 재고할 가치조차 없을 정도로 극한 상황에까지 도달했기 때문에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하나님의 심판밖에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온 땅이...소멸되리라.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유다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대한 심판(2:4~15)임을 나타내 준다. 즉 유다가 자신의 죄악으로 인하여(3, 4절; 1:6, 12) 하나님의 도구인 열국에 의해 심판당하는 것처럼(1:10, 16, 17) 열방도 그들의 교만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처럼 썩어서 냄새를 발할 뿐 아니라 주변에까지 해를 끼치는 죄악을 결코 용납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속성인데, 오늘날에 있어서도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랑하면서 여전히 죄의 종 노릇하던 이전 행실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는 가차없이 우리들에게 임할 것이다(롬 11:21).
(9~20절)
여호와의 날에 임할 구원 - 지금까지 유다와 열방에 대한 심판을 예언한 것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스바냐를 통해 '여호와의 날'에 임할 구원을 계시해 주고 있는 부분이다. 이는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예언(9절)과 전이스라엘의 구원 및 회복에 대한 예언(10~20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점을 일러준다. 하나님께서 장차 이방인들까지도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그가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 그분의 본성임을드러내 준다(겔 18:23). 또한 이는 신약 시대에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어 그들이 회심하고서 구원을 얻게 될 것을 예시해 준다(행 10:44~48). 유다의 죄악으로 인해 임하는 멸망 가운데서도 남은 자가 있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창 17:1~8)을 기억하고서 이를 준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증거해 준다. 스바냐가 예언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14~20절)은 장차 완성될 메시야 왕국을 예시해 준다.
[10절]
내가 흩은 자의 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앗수르(왕하 17:6), 메대, 바벨론(왕하 25:8~12) 등지에 포로로 잡혀갔거나 그 당시 세계 각처로 흩어진(왕하 25:26)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킨다.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드릴찌라. 물질적인 헌납의 의미보다는 잃었던 신앙을 회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리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다. 이 같은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예물은 다름아닌 그분에 대한 진실한 믿음과 삶을 통한 전인적인 헌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삼상 15:22, 23).
[11절]

교만하여...할 것임이니라. 특별히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이라 할지라도 교만한 자나 거룩한 체하는 외식자들은 심판으로 인해 멸망하게 되고, 반면에 겸손하고 의로운 자들은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구원의 반열에 동참하게 될 것이란 뜻이다. 성산(요 3:16, 17)

[12절]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 심령이 가난한 자, 곧 의롭고 순전한 자들과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가리킨다(사 14:32). 바로 이러한 자들이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하심을 받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구원의 반열에 동참하는 축복을 받게 된다(마 5:3).

[13절]

구원받을 성도들의 아름다운 영적 상태와 인격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이다.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혀가 없으며. 언어 생활을 함에 있어서 성도들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사항들이다. 이외에도 망령된 말(단 2:9), 저주하는 말(시 59:12), 유혹하는 말(잠 7:21), 헛된 말(엡 5:6), 아첨하는 말(살전 2:5), 속이는 말(롬 16:18), 참람한 말(단 7:24), 모욕과 패역이 가득한 말(삿 12:4; 잠 2:12) 등은 어떤 경우에서라도 내뱉지 말아야 한다. 반면에 아름다운 말(전 12:10), 바른 말(딤전 6:3), 충성된 말(에 7:9), 진실한 말(에 9:30), 지혜로운 말(잠 23:9),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단 2:14), 선한 말(잠 12:25), 감사하는 말(잠 12:25), 위로의 말(잠 15:4), 의로운 말(잠 10:20),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시 119:172; 시 126:2) 등은 우리의 입술을 통해 항상 흘러나와야 할 것이다.

[15절]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절정으로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성도들 가운데 영원히 거하실 것을 상징한다. 다시는 화를...아니할 것이라. 성도들에게 있어서 두려움이란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거나 그분을 의지하는 신앙이 결여되었을 때 불안과 함께 발생되는 감정이다(마 8:25, 26). 그러므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시 23:4) 않으며 또한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16절]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대처하라는 의미이다(사 13:7; 엡 3:12; 딤전 3:13; 히 4:16).

[17절]

본문은 비록 짧지만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구구 절절이 넘치는 한편의 대연가(大戀歌)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나타남과 동시에 하나님의 기쁨은 성도들 안에서 성도들을 통해서 성취됨을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잠잠히 사랑하시며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하고, 위대하며, 자기 희생적인 영원한 사랑(롬 5:8; 엡 2:4)을 뜻한다.

[18절]

대회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었던 축제 행사로서 주로 초막절, 유월절 절기를 가리킨다(슥 14:16). 따라서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는 그러한 기쁨의 축제에 참석하지 못하여 깊이 슬픔을 느꼈던 세계 각처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19절]

대적들에 대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이 언급되어 있다. 저는 자. 극심한 고통을 받아 심리적으로 위축된 자를 뜻한다(미 4:6, 7). 쫓겨난 자는 패전(敗戰)으로 인해 해외로 추방되었거나 세계 각처로 도피한 이스라엘 백성들 곧 디아스포라(diaspora)를 가리킨다<에 서론, 디아스포라의 이해>. 이와 같이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 주시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고, 슬픈 자를 위로하며(사 61:1, 2),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심으로써(눅 4:18) 구원 사역을 계속하고 계신다.

 

# 해설

예루살렘의 범죄와 심판 선언 (1~8절)

심판 선언의 결론부에 해당한다. 심판은 다시 유다의 도성 예루살렘에 집중된다(1절). 하나님을 떠남으로 해서 자신들의 본분에서 탈선한 지도자들(방백, 재판장, 선지자, 제사장)의 죄악을 규탄하고 강력한 어조로 심판을 예언한다(2~7절). 또한 하나님의 심판은 열국 심판도 동반한다(8절). 이러한 전면적인 심판 예언은 1차적으로 바벨론 침략을 통하여 성취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의 심판을 예표한다(계 22:10~15).

여호와의 날에 임할 구원 (9~20절)

본문은 참혹한 심판과는 정반대로 구원의 기쁨과 희락을 구가한다. 즉 여호와의 날은 세상 만민을 향한 심판과 구원의 날로서, 하나님의 주권으로 당신의 뜻이 성취되는 날이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날임을 표명한다.

 

# 핵심

1~5절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하지 않고 죄악 중에 거하는 예루살렘의 죄상을 규탄하고 화가 임할 것을 선포하는 내용이다.

 

# 묵상

예루살렘에 대한 질책 (1~8절)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이 예언된 것은, 권력을 앞세워 부정 축재를 일삼고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학대한 지도자들과 판결권을 이용해 뇌물을 착복한 재판관들, 그리고 권력과 부에 아부하고 사리사욕을 위해 개인의 생각을 하나님의 계시인양 왜곡해서 전달하여 파수꾼으로서의 자신들의 역할을 하지 않은 선지자들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권력과 지위를 남용하여 부정 부패를 일삼고 기득권을 위해 야합하는 행위는 반드시 멸망을 가져오고, 사회는 불신과 반목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자들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에 회복될 유다 (12절)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날에 정결하게 남은 자로 유다를 회복하십니다. 이 남은 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 곧 의롭고 순전한 자들과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나아가 구원의 반열에 동참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 (13절)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고, 궤휼한 혀가 없었습니다. 즉 남은 자들은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간사한 혀로 거짓말과 아첨을 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보호하시고 기쁨과 함께 평강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구원 계획 (20절)

이스라엘을 포로 상태에서 돌이키시어 그들이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시고, 안식을 주셔서 하나님 안에 평안히 거하게 하여 온 세상에 그들의 이름이 알려짐으로 칭찬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보다 나은 신앙의 단계를 위한 훈련 과정으로 보아야 합니다(사 60:21; 계 14:5).

 

 

출처 : 바이블25

'스바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와의 큰 날 (습 1:14~2:3)  (0) 2015.12.01
하나님을 멀리하면 미래와 소망이 없습니다 (습 1:1~13)  (0) 2015.12.01
스바냐 2장 - study  (0) 2014.05.21
스바냐 1장 - study  (0) 2014.05.20
구원의 약속 (습 3:9~20)  (0) 2013.06.06

# study
(1~3절)
심판의 임박성과 회개에 대한 요청 - 회개에 대한 요청이 반복적인 표현을 통해 강조되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우리는 심판 선포의 목적은 심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이 나타난 것으로 죄의 회개와 돌이킴에 있음에 깨달을 수 있다.
[1절]
수치를 모르는 백성. 유대 백성들이 자신의 범죄에 대해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3:5; 렘 6:15) 그 잘못을 뉘우칠 줄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죄에 대한 불감증이 만성화될수록 파멸의 날은 더욱 가까워지는 법이다(전 8:11). 모일찌어다. 죄의 길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의미이다(사 19:22; 렘 15:19; 호 6:1; 욜 2:12). 즉 하나님께서는 임박한 진노의 심판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으로서 자신과의 화해를 제시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서라도 우리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길 원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면치 못하는 자들은 오직 자신의 심령의 완악함 때문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사 50:1, 2).
[2절]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심판의 날이 너무나 임박해 있으므로 회개할 수 있는 시간도 아주 조금밖에 남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3절]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구원이란 인간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롬 3:24; 롬 5:15; 롬 11:6;엡 2:8, 9)이다. 따라서 겸손한 자라 할지라도 결코 그들의 행위로 인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기에 스바냐 선지자는 이를 주지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혹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4~15절)
열방에 대한 심판 - 유다에 대한 심판 선포(1:1~2:3)에 이어 여기서는 일찍부터 이스라엘(전유대 민족)을 대적하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스스로 교만하여진 이방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껏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열국들은 어디까지나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훈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며 궁극적으로 구원 얻을 자는 이스라엘이고, 멸망받을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열국임을 알 수 있다.
(4~7절)
블레셋에 대한 심판 - 블레셋은 원래 지중해 연안의 그레데 섬으로부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온 민족으로서(창 10:14; 렘 47:4; 암 9:7) 이스라엘 민족과는 오래 전부터 적대 관계에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탈취해 갔을 뿐 아니라(삼상 5:1) 유대 왕궁을 침략하여 재물을 탈취하는 등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을 대적한 죄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4절]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수 13:3).
[5절]
그렛 족속. 지중해 연안에 거주했던(렘 47:7) 민족인데 블레셋과 함께 언급되어 있는 까닭은 국경이 서로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삼상 30:14; 겔 25:16). 이 족속은 불레셋이 그레데 섬으로부터 이주해 올 때 함께 들어가 팔레스타인 남서부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블레셋 사람의...없게 하리라. 이 예언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B.C. 605-562)의 침공에 의해 성취되었다. 한편 이러한 심판을 받은 가나안 땅은 통상 요단 강 서쪽 지역(창 12:5; 민 33:51)을 가리키나 간혹 지중해 동쪽 연안까지 포함되기도 한다(민 13:29; 수 11:3).
[7절]
유다 족속의 남은 자. 바벨론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 해방되어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킨다(느 1:2, 3; 슥 8:6, 11, 12). 한편 이것은 신약 시대에 와서는 믿음을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됨으로써(롬 4:13~16) 죄와 사망의 노예 생활(요 8:34)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온 모든 성도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스 9:8, 남은 자 사상>.
[8절]
모압과 암몬 자손은 각각 롯의 큰딸과 작은딸에게서 비롯된 후손(창 19:37, 38)으로서 일찍부터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다. 예언자들은 모압을 하나님 나라의 원수의 전형으로 묘사하였다.
[9절]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하나님의 언약이 지극히 신실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신 32:40; 사 49:18). 나의 끼친 백성이 그들을 노략하며. 이 예언은 유다의 마카비가 암몬을 물리쳤을 때와 알렉산더 얌니어스(Alexander Jamnaeus)가 모압을 점령했을 때에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스바냐는 이러한 현실적인 성취보다는 장차 메시야에 의해 완성되어질 영적인 성취, 즉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의 성취와 사탄 세력의 궁극적인 멸망을 무엇보다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사 14:1, 2; 사 49:23).
[11절]
세상의 모든 신을 쇠진케 하리니.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은 인간이 만든 허망한 것에 불과하므로 그것들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 역시 그것들과 함께 쇠진케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이다(레 19:4; 신 32:21).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참된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으며 우상 숭배는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뚤어진 심성이 빚어낸 죄성의 표출임을 알 수 있다. 이방의 모든...경배하리라. 하나님의 왕국이 이스라엘로부터 온 세상으로 확장됨으로써 장차 구원의 반열에 동참하게 될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사 19:18, 19; 말 1:11).

[12절]

구스 사람(합 3:7).

[13절]

니느웨(욘 1:2).

[14절]

당아(塘鵝). 어떤 동물인지 확실히 규명되진 않았지만 일명 '사다새'로도 불리는 펠리칸(pelican)으로 추정되고 있다(레 11:18).

[15절]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자아 도취에 빠져 하나님마저 부인하려 드는 최악의 교만을 나타낸다. 실제로 앗수르는 군사력을 앞세워 약소국들을 약탈하며(왕하 15:19; 왕하 17:3~6; 왕하 18:9~11, 13~37) 심지어는 하나님에게까지 대적하는(왕하 18:19~35) 교만함을 보였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위한 도구로 선택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으나 결국은 교만함으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들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 16:18)라는 진리를 뼈저리게 절감할 수 있다<렘 43:2, 겸손과 교만>.

 

# 해설

회개를 촉구함 (1~3절)

스바냐는 유다를 향한 심판 선언 이후에 목이 곧은(3:5; 렘 6:15) 백성들에게 회개의 성회를 촉구함(1, 2절)과 아울러 유대인이나 이방인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 회개의 성회에 참여할 것을 권고한다(3절). 이러한 내용은 예수께서 공생애 초기에 선포하셨던 말씀과 직결된다.

유다의 주변국들에 대한 심판 선언 (4~15절)

이제 하나님의 심판은 유다의 사면에 위치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우상 숭배와 자고함으로 패역의 극을 달리던 이방의 열방(서쪽 블레셋 : 4~7절; 동쪽 모압과 암몬 : 8~11절; 남쪽 구스 : 12절; 북쪽 앗수르 : 13~15절)에 대한 심판으로 확장된다. 특히 당시의 강대국인 앗수르에 대한 조롱섞인 선언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 앞에서 인간의 힘이 얼마나 미미한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시 2:1~6; 사 17:13).

 

# 핵심

1~3절

돌이킬 수 없는 진노의 날이 이르기 전에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재촉하는 내용이다.

 

# 묵상

죄가 장성한 결과 (1절)

수치를 모르고, 자신의 범죄에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잘못을 뉘우칠 줄도 모릅니다. 이와 같이 죄에 대해 만성이 되면 나중에는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는 죄의 불감증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파멸의 날이 더욱 가까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날 (3절)

모든 것이 숨김없이 밝히 드러납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우리들은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데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이방인과 하나님 백성에 대한 심판 (8~11절)

이방 민족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완전히 멸망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는 심판 속에서도 멸망하지 않고 다시 회복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의 신실성을 보여줍니다.

앗수르의 비참한 최후 (15절)

이는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는 교만 때문입니다. 즉 앗수르가 군사력을 앞세워 약소국을 약탈하고(왕하 15:11), 하나님께 대적하는 교만을 행했기 때문입니다(왕하 18:19~37). 앗수르는 심판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지만 그 교만함으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처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가 됩니다(잠 16:18).

 

 

출처 : 바이블25

'스바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을 멀리하면 미래와 소망이 없습니다 (습 1:1~13)  (0) 2015.12.01
스바냐 3장 - study  (0) 2014.05.22
스바냐 1장 - study  (0) 2014.05.20
구원의 약속 (습 3:9~20)  (0) 2013.06.06
거룩한 성의 멸망 (습 3:1~8)  (0) 2013.06.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