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하는 최고의 길
하늘 아래 모든 것이 헛되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신다. 유한한 인생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와 계획을 알 수가 없기에, 때를 분별할 수 있도록 늘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가장 허무한 인생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가치다.
전도서 한눈에 보기
본문
| 1:1~2:26
| 3:1~22
| 4:1~6:12
| 7:1~9:12
| 9:13~10:20
| 11: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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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 인생은 불공평하다
| 아무도 미래를 모른다
| 권세보다 지혜가 낫다
| 하나님을 경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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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코헬렛', 즉 자료 수집가다. 전도서 시작에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1:1)이라고 기록한다. 이는 솔로몬일 수도 있고, 다윗 왕가의 다른 왕일 수도 있다. 왕의 원형과도 같은 이상적인 왕을 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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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 솔로몬이 저자라면 기록 연대는 주전 900년대(초대교회와 유대인의 전통). 솔로몬이 누린 영화의 헛됨을 생각하며 후대 사람이 그의 이름을 붙인 책이라면 주전 400년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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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 전도서는 냉소적이고도 침울하게 삶에 대한 실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이 도리어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들이 결국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1:2) 아무 쓸모없게 되어 버릴 것들임을 말해 준다. 돈, 성, 권력, 지위, 지혜 등 그 무엇도 예외가 없다. 어떤 것도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선을 이루지 못한다. 전도자는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진리를 일깨운다. 그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 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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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성문서, 지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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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의 말씀이라 (1:1)
구약성경에서 표제어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대상 29:29; 렘 1:1; 암 1:1 등). '전도자'로 옮긴 히브리어 '고헬렛'은 '수집가'를 뜻한다. 영어 성경은 헬라어 '에클레시아스테스'를 그대로 옮겨 제목으로 삼았다. 마르틴 루터의 번역(der Prediger)에 따라 '설교자'(KJV)로 의역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1:2~2:26)
세상의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선언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 지혜가 뛰어난 예루살렘의 왕이다. 그는 영예롭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으며, 당대 최고의 현자로 손꼽힌다. 문제는 이런 점이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지혜가 있느니 적어도 어리석은 사람보다는 낫다고 볼 수 있지만, 이 또한 부질없다. 결국 다 잃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과 지혜와 재주를 다해 수고하다 보면 하나님이 보상해 주실지도 모른다고 기대할 수 있지만, 전도자는 이 또한 허무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3:1~22)
범사에는 기한과 때가 있다. 여호와께서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공평하게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즐겁게 행하는 것이 바른 선택이다.
인생은 불공평하다 (4:1~6:12)
잠시 긍정적이며 밝았던 분위기가 다시 어두워진다. 전도자는 불의가 천지를 뒤덮고 있는 세상을 빨리 떠날 수 있다면, 아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하는 수고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전도자는 지독한 냉소에 빠진다. 그러나 친구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지혜도 어떤 면에서는 유익하다. 하나님 앞에서는 함부로 입을 열지 않는 게 낫다. 하나님께 빚진(서원한)게 있으면 빨리 갚는 편이 낫다.
빈민이 학대받고, 정의와 공의가 짓밟히는 현장을 목격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이렇게 잔인한 세상 모습을 보지만, 그보다 높은 이가 악인들을 감찰하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인 왕이 털어놓는 불편한 진실은 경악할 만하다. 삶이 그토록 불공평하다면, 왜 삶을 붙들고 씨름해야 하는가? 왕의 생각은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정의를 세우기 위해 앞장서야 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도서의 의도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그대로를 보여 주려는 것이다. 세상 부조리에 대한 전도자의 냉소는 삶이 과연 그런 것인지 독자로 하여금 되묻게 한다.
아무도 미래를 모른다 (7:1~9:12)
여기서는 찌푸린 얼굴을 펴고 조금 웃고 있는 전도자를 상상할 수 있다. 지혜는 보호막이 되어 준다. 좋은 시절에는 즐거워하고, 나쁜 시절에는 깊은 생각에 잠기면 된다. 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아무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자신에게 조금 너그러워질 필요도 있다. 모든 사람은 평생 마음에 악을 가득 품고 살다가 결국에는 죽고 만다. 사람의 마음은 잔뜩 꼬여 있고, 죄인은 죄를 짓고도 떵떵거린다. 하지만 모두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고 때를 기다릴 일이다.
권세보다 지혜가 낫다 (9:13~10:20)
지혜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권세 있는 우매한 자보다 가난한 지혜자가 더 낫다. 어리석음은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주권자에게 허물이 있는 것은 재난이다. 우매한 자의 많은 말과 수고는 스스로를 피곤하게 할 뿐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11:1~12:14)
순전한 마음으로 베풀면 돌려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장담할 수는 없다. 다가올 일도 역시 헛되다. 노년이 되어 돌이켜 보면 청년 시절만큼 귀한 때가 없다. 그래서 인생 황혼기가 되어 후회하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해야 한다. 전도자의 상념이나 그가 집필한 책도 아무 의미가 없다. 책은 아무리 지어도 끝이 없고 공부는 몸만 피곤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명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모든 대안을 찾아보고 삶의 의미 없음에 직면한 후, 전도자는 인생들이 유일하게 믿을 만한 분인 하나님께로 지친 발걸음을 돌릴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 전도자가 발걸음을 돌린 것처럼, 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을 떼어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전도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
| 전도서
| 신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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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지혜자
| "...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그것이라..."(9:14~16).
|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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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12:1).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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