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I. 아합의 출정을 선지자들에게 물음 22:1-14
이제 아합은 전쟁에 참가하여 멸망케 될때가 가까이 오고있지만 겸비와 회개의 모습을 보인 대가로 지난 3년간 평화를 누렸으며(1절) 유다왕 여호사밧의 영예로운 방문을 받게된다(2절). 유대인들의 전설에 의하면 아합이 자기의 죄때문에 스스로 겸비해지고 베옷을 입었을때, 여호사밧에게 사람을 보내어 와서 자기를 징계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그리하여 여호사밧이 아합과 함께 있으면서 매일 그에게 채찍질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근거없는 전설이다. 여호사밧이 왔던것은 아마도 양국의 여러가지 일들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던것 같다. 아람인들은 아합에게 감히 도발을 하지못했다.
(1) 그러나 아합은 여기서 아람에 대하여 전쟁을 계획하고 신복들에게 그사실을 통보한다(3절). 아람왕이 그를 성나게 하였다. 즉 아람왕이 아합의 자비를 입었을때 그는 아합왕에게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들을 돌려주기로 약속을 하였고(20:34) 아합은 어리석게도 그의 말을 믿었다. 벤하닷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쉽사리 약속을 저버리는 그러한 왕들중 하나였다. 다른성읍들을 돌려 받았는지는 알수 없으나 돌려받지 못한 여러성읍들 중에 요단저편에 있는 갓지파의 중요한 성읍으로 레위사람에게 주었던 길르앗라못이 있었다. 아합은 아람왕으로부터 성읍을 돌려받고 약속을 지키지않은 그를 징벌하고자 분개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그자신과 백성들을 나무라고 있다.
(2) 아합은 여호사밧을 끌어들여 길르앗라못의 회복을 위한 이원정에 함께 참여하도록 했다(4절). 여기서 여호사밧이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라고 하면서 말하자면 아합의 이권에 관한 이일에 전적으로 동조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아합과 그의 백성들처럼 악하고 타락했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악한자들에 대해 지나치게 공손하게 되면 방심하게 되어 '무익한 어두움의 일'에 위험한 교분을 갖게된다. 여호사밧은 아합이 자신과 동맹하여 자신을 전장으로 끌어들이면서 했을 많은 찬사에 정중히 답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이들은 그가 이스라엘과 합세하여 아람과 싸우려 한것은 예전에 자기아버지가 아람과 합세하여 이스라엘과 싸운것에 대한 보상으로 그렇게 한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15:19,20).
(3) 여호사밧의 특별한 권고와 요청으로 아합은 이원정에 대해 선지자들의 의견을 묻는다. 아합은 참모들과 논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나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지' 물을것을 요청한다(5절). 선한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계속해서 신앙으로 행해야하며 자신이 신앙을 소유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더나아가 신앙을 달가와하지 않는자들과 함께 있을때에도 그렇게 할수 있어야 한다.
(4) 아합이 모은 사백명의 선지자들(그들은 아세라 선지자들이었다)은 이원정에 대해서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으며 모두가 승리를 확신했다(6절). 아합은 그들에게 '내가 가서 싸우랴 말랴'라는 질문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합이 바라는바가 무엇인가를 알았고 따라서 단지 두왕을 기쁘게만 해주려고 하였다. 그들은 여호사밧을 기쁘게할 목적으로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주께서 그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6절). 그들은 또한 아합을 기쁘게할 목적으로 '올라가소서'라고 말했다. 이는 "왕께서는 틀림없이 길르앗라못을 회복하실 것입니다"라는 말이다. 이선지자들의 대표격인 시드기야는 그의 거짓예언을 표적으로 보여준다(11절). 그는 손수 철로 한쌍의 뿔을 만들어 두왕과 그들의 권세와 영광을 나타내면서(그 두개의 뿔은 각각 힘과 권세를 의미한다) 이것들로 아람사람들은 진멸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선지자들이 하나같이 아합이 이원정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리라고 예언하였다(12절).
(5) 여호사밧은 이런류의 예언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것은 과거에 자신이 늘보았던 것과 달랐다. 거짓선지자들은 오직 진리만은 흉내낼 수 없었기에 영적분별력을 가진 여호사밧은 거짓을 식별할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의 선지자를 따로 찾았던 것이다(7절).
(6) 아합에게는 또다른 선지자가 한명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합에게 미움을 받는자로 미가야라 이름하는 참된 선지자이며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였다.
1) 아합은 그를 미워했으며 또한 자신이 그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유다왕에게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그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8절). 그러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겠는가? 만일 아합이 선을 행하였다면 그는 선한것만을 하늘로부터 들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적나라하게 비판한다고하여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은 불행히도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멸망으로 급히 달려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2) 그는 미가야를 옥에 가두었었다. 이는 아마도 아합이 벤하닷에게 관대하게 대한 것에 대해 미가야가 그를 책망했기 때문이었던것 같다. 그는 삼년동안을 옥에 갇혀있었다. 이것이 아합이 그가 있는곳을 쉽게 알수 있었던 이유였다(9절). 그의 몸은 묶여있었지만 여호와의 말씀은 묶여있지 않았다. 여호사밧은 아합이 신실한 선지자에 대해 화를 내자 아주 점잖게 그를 힐책한다. 왕은 그런말씀을 마소서(8절). 아합과 같은 죄인들은 통렬하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자 아합은 그힐책을 받아들여 미가야를 속히 불러오도록 명한다(9절). 이는 여호사밧을 자극함으로 동맹관계가 파기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두왕은 사마리아 문어귀에서 각각 예복을 입고 보좌에 앉아서 그선지자를 맞아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자 하였다. 그들은 아첨하는 선지자들의 무리와 함께 있었다. 그선지자들은 이제 동맹관계에 있는 영광스런 두왕에게 아주 달콤하고 부드러운 말외에는 어떤예언도 할성싶지 않은자들이었다.
(7) 미가야는 자기를 데리러 온 관원에 의해 동일한 예언을 하도록 압력을 받는다(13절). 그러나 사태를 더 잘아는 미가야는 왕이 기뻐할만한 것이건, 불쾌하게 여길만한 것이건간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만을 신실하게 전하겠노라고 단언한다. 그것도 맹세함으로써 자신의 단언을 뒷받침하기까지 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14절).

Ⅱ. 미가야의 예언 22:15-28
1. 미가야가 전한 말씀(15-23)
우리는 여기서 미가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얼마나 충실하게 전했는지에 대해서 보게된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세가지로 말했고 그것은 모두 아합을 불쾌하게 하는 것이었다.
(1) 그는 다른선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말했으나 빈정대듯이 말하였다.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15절). 아합은 선지자들에게 했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미가야에게 던졌다. 마치 발람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바라는듯이 하면서도 강력하게 자신의 뜻대로 하고자 했다. 미가야는 그사실을 알아차렸기에 올라가라고 하면서 가서 그것을 마음대로 가지라는 식으로 비웃듯이 말한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아합은 미가야에게 희롱하지말고 진실을 말할것을 엄명하였다(16절).
(2) 이와같이 압력을 받자 미가야는 왕이 원정에서 죽고 그의 군대는 흩어져버릴 것임을 분명하게 예언하였다(17절). 그는 환상을 통해서 그들이 목자없는 양같이 산으로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목자인 왕을 잃게될 것과 그들은 불명예스럽게 퇴각할 것임을 암시한다. 군사들은 '각각 평안히 그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왕의 죽음으로인한 사상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같이 미가야는 예언함에 있어서 자신이 보고 들은것을 증언하였다. 이에 아합은 분개하여 여호사밧에게로 가서 미가야가 자기에게 앙심을 품은것이 틀림없다고 한탄한다(18절).
(3) 미가야는, 모든 선지자들이 그원정을 하도록 왕을 독려한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서, 왕을 속여 파멸케하기 위한 것임을 환상을 통해서 알았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시며 세상 모든왕들의 보좌보다도 귀한 보좌를 가지고 계시다. 왕들의 흥망, 전쟁의 도발, 그리고 국가의 모든대사는 현명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논의할 문제이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보잘것없는 시골집의 미천한 문제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사단이 인간을 속이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어야만 가능하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한바를 이루신다. 이와같이 미가야는 아합에게 전쟁에 출전하는 것의 위험과 그를 전쟁에 나아가도록 독려하는 자들을 믿는것의 위험을 엄중하게 경고하였다.
2. 미가야가 받은 박해(24-28)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전함으로인해 미가야가 어떤곤욕을 치루었는가를 보게된다.
(1) 사악한 선지자 시드기야는 방자하게도 궁전에서 그를 모욕했으며 그의 뺨을 쳐서 입을 다물게하고자 하였다. 궁전안에서 그것도 특히 왕의 면전에서 사람을 친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으로도 중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악한 선지자는 여호와의 선지자에게 이같은 박해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미가야는 비록 되받아 공격하지는 않았으나 다음사건을 말함으로써 아합으로하여금 시드기야의 잘못을 깨닫게하고자 하였다.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날에 알리라(25절). 시드기야는 아합과 함께 전쟁에 나가 그철뿔을 가지고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자기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즐겁게 보고 왕과 함께 개선을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군대는 패배하고 그는 적의 칼로부터 도망하는 자들중 하나가 되어 전에 벤하닷이 골방속에 숨었던 것처럼(20:30) 죽지않으려고 도피했음이 분명하다.
(2) 사악한 왕 아합은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27절) 자신이 승리자가 되어 돌아오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않으면서 자신이 돌아올때까지 그에게 거친 빵과 흙탕물을 먹이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돌아오면 거짓예언을 했다는 죄목으로 그를 처형시키려고 하였다(27절). 자신의 파멸을 막아주려고 한자에게 이얼마나 가혹한 처사인가! 미가야는 이문제에 있어서 모든백성이 자신이 말한것에 대해 증인이 되게해달라고 요구하였다.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진대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28절). 이는 "만일 왕이 살아서 집에 돌아오시면 내가 거짓선지자라고 하는 비난과 처벌을 달게 받겠습니다"라는 말이다.

Ⅲ. 아합의 최후 22:29-40
(1) 두왕은 자기들의 군대와 함께 길르앗라못으로 향했다(29절). 아합의 선지자들을 불신하면서 여호와의 선지자에게 물어보기를 원했던 신앙심 깊은 왕인 여호사밧이 그처럼 분명한 경고를 받고도 길르앗라못으로 계속 나아갔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그는 자신의 태평한 성격으로인해서 미혹하는 자들의 말에 휩쓸리고 말았다. 그들이 실패할 확률은 사백대 일이었으므로 여호사밧은 지나치게 아합의 선지자들을 의지하였다.
(2) 아합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여호사밧을 노출시키는 계략을 꾸민다(30절). 즉 자신은 변장을 하여 일반병사처럼 꾸미고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고서 사령관으로 행하게끔 하였다. 아합은 그렇게함으로 여호사밧을 높이는체 했으나 그것은 계략이었다. 즉 선한선지자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기위한 계략이었다. 이렇게함으로써 아합은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것은 또한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선한왕을 기만하는 계략이었다. 하나님께 그릇된 자가 어떻게 친구에게 진실하리라고 기대할수 있겠는가?
(3) 정치보다는 신앙심을 더중히 여기는 여호사밧은 그것이 위험하며 생명까지 위협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영예로운 자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게도 그를 구원해 주셨다. 아람왕은 그의 수하의 장수들에게 자기와 전쟁한 적이 없는 유다왕은 치지말고 오직 이스라엘왕만을 치도록 명령하였다(31절). 어떤이들은 벤하닷이 단지 아합을 생포하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장관들은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을 보고 그를 이스라엘왕으로 착각하여 포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으로하여금 위험에 직면케하여 그가 아합과 동맹을 맺은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게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해주심으로, 비록 자신이 그의 행동을 기뻐하시지는 않으나 아직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음을 알게하셨다. 장관들중에 여호사밧을 알고있던 몇사람이 자신들이 실수했음을 깨닫고 그를 공격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4) 아합은 이전쟁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였다.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자신을 숨길수 없다. 그에게 활을 쏜 아람사람은 어떤사람을 특별히 겨냥한 것이 아니었으며 '우연히' 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화살의 방향을 바꾸셨다. 그래서 정확히 맞아야할 사람을 맞게하셨으며 정확한 부분, 즉 '갑옷솔기'를 맞게하셨다. 이죽음의 화살이 들어갈 곳이라곤 그곳뿐이었다.
(5) 군대는 적의 공격으로인해 흩어졌고 왕이 죽게되자 퇴각하게 되었다.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중에 '온이스라엘이 (길르앗)산에 흩어지리라'(17절)는 부분이 성취될때까지는 살아있을수 있었다.
(6) 왕의 시체는 사마리아로 운반되었으며 그곳에 묻혔다(37절). 이제 나봇의 피는 갚아졌고(21:19) 다윗의 말은 성취되어졌다. '너로 저희를 심히 치고 그피에 네발을 잠그게 하며 네개의 혀로 네원수에게서 제분깃을 얻게하리라'(시 68:23).
(7) 이렇게해서 이스라엘왕 아합에 관한 이야기는 끝을 맺게된다(39,40절). 그의 업적가운데 상아궁이 언급되어 있는데 그궁의 많은부분이 상아로 장식되어 있었기때문에 그렇게 불리웠다. 아마도 그것은 솔로몬이 건축한 유다왕들의 위엄있는 궁전과 견주기 위해서 건축되었을 것이다.

Ⅳ. 여호사밧의 치세 22:41-53
1. 유다왕 여호사밧의 통치(41-50)
여기에 유다왕 여호사밧의 통치에 관한 기사가 약술되어 있다. 그에 대한 더상세한 설명은 역대기에서 볼수가 있다. 여호사밧왕의 위대함과 선함은 아합의 집과 가까이 지낸것만 빼놓곤 어떤것으로도 깍이거나 손상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대로 아합과 동맹을 맺어 전쟁에 가담했던 것은 그에게 위험한 일이었으며 또한 그의 아들 아하시야와 협정을 맺어 무역을 한것도 좋은것이 못되었다. 그들은 오빌에서 상선으로 금을 가져오는 일에 협력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출항하려고 했을때 폭풍이 일어('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 아하시야가 재차 협력을 요청했을때 여호사밧은 거절하였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폭풍을 사용하심으로써 그와 사악하고 불행한 왕과의 동맹을 효과적으로 파기해 주셨다. 여기서 여호사밧의 통치는 가장 길지는 않았으나 가장 훌륭한 통치중 하나로 설명되고 있다.
(1) 가장 길지 않았다함은 그가 25년간을 통치했기 때문이다(42절). 그러나 그의 아버지의 41년간의 선정에 이 25년간의 통치가 더해져 유다왕국은 번영하였을뿐 아니라 신앙까지 번성할만한 좋은여건이 갖춰졌을 것이다.
(2) 가장 훌륭한 통치중 하나라함은 신앙심과 번영의 측면에서 평가된 것이다.
1) 그는 선을 행하였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43절). 그러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다.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유다와 베냐민지파는 예루살렘에 아주 가까이 있었으므로, 다른지파들처럼 멀기때문에 불편하다는 핑계를 댈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산당을 폐하지 아니하였다.
2) 그는 국사를 잘 처리했다. 그는 이스라엘나라와 함께 전쟁에 가담함으로 입은 피해를 지속적인 평화의 유지로 회복시켰다(44절). 그는 에돔에 총독 혹은 대리자를 보내서 그나라를 속국으로 만들었다(47절). 이렇게해서 '큰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는 에서와 야곱에 관한 예언이 성취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권세와 성공으로 축복하셨다.
2. 아하시야 통치의 시작(51-55)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의 이야기가 이제 시작된다. 그의 통치는 매우 짧아 2년을 채 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죄인들에 대해서는 일을 빨리 끝내신다. 여기에 나와있는 그의 성품은 매우 악했다. 그는 여로보암의 우상숭배를 계속했을 뿐만아니라 바알숭배도 마찬가지로 계속하였다. 그는 여로보암 가문의 파멸에 대해서 들었을뿐만 아니라 종종 거짓선지자들로 판명된 바알의 선지자들때문에 자신의 아버지가 파멸한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악한 아버지의 전철을 밟았으며 아직까지 살아있는 더악한 어머니 이세벨의 권고를 따랐다.

# 핵심
22:1-28
아합왕은 남유다의 여호사밧왕에게 아람을 공격하여 길르앗라못을 되찾자고 제안했다. 전쟁의 여부를 선지자에게 묻는 과정에서 아합왕은 참선지자 미가야의 말이 아니라 거짓선지자의 말을 따름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재촉했다.
악한영에 대한 하나님의 통제(22:22)
본절은 자칫하면 하나님이 마귀의 활동을 인정하시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본절은 마귀의 힘이 하나님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만을 전달하고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은 거짓말과 유혹의 원인자가 아니시다. 악한영이 유혹한다고해도 당사자가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에 복종한다면 유혹을 과감히 뿌리칠수 있다. 욥은 마귀로부터 혹독한 시련을 당했지만, 하나님을 향하여 범죄하지 않았다(욥 1:22; 2:10). 하지만 아합은 달랐다. 사람이 유혹을 받는것은 자기욕심 때문이다(약 1:13-15).

# 묵상
남북 이스라엘의 화해조약 ( 22:1-4 )
이 조약으로인해 악인의 죄가 의인에게까지 번지게 됩니다. 사탄은 평온한 시기에 더욱 활동적으로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평안한 시기에 더욱 열심히 말씀과 기도로 사는생활을 해야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날수 있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의 특징 ( 22:5-12 )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권력자의 귀에 솔깃한 이야기만 하는것이 특징입니다. 사탄은 성도들에게 늘 좋은것으로 유혹을 합니다. 그래서 성도가 이런 좋은것만을 찾다보면 유혹에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을 잘 분별하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여호사밧 ( 22:5 )
무슨일을 하기전에 하나님께 먼저 기도했습니다. 세상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고 모든일은 하나님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할때 그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더욱 잘 드러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목자없는 양 ( 22:17 )
목자없는 양이란 올바른 지도자가 없어 산에 흩어져 헤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선한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먹이기위해 수고하셨고 그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셨습니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목자없는 양과 같습니다(막6:34). 그러나 참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 사는 성도는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선지자들에게 주신 하나님 ( 22:23 )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선지자들에게 주신이유는 아합을 속여 마음을 어둡게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결코 속이지않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은혜를 베풀어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눈을 어둡게 하여 진리를 보지못하게 하시고 영원한 벌을 주십니다.
복음선포자 ( 22:24-28 )
복음선포자가 전파를 하지않으면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늘위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길이 마땅히 ‘나의 달려갈 길’(행20:24)이요, ‘의의 길’(시23:3)이므로, 성도는 걸음을 조금도 늦추지말고 면류관을 바라보며 오직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딤후4:7, 8).
하나님의 공의 ( 22:29-36 )
의인에게는 복을 주시고 악인에게는 벌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이의 심판의 주가 되십니다. 마지막때에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앞에 서게되며 우리모두는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심판을 받게될 것입니다.
아합의 변장 ( 22:30-40 )
아람과의 전쟁에서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대로 죽지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자기대신 여호사밧을 죽게함으로써 미가야의 예언이 틀렸음을 입증하려는 마음에서 변장을 하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어떠한 묘책으로도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수가 없습니다. 아합은 이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않았기 때문에 죽게됩니다.
산당을 폐하지 않은 이유 ( 22:43 )
사사시대 이후부터 산당예배는 이스라엘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어렵다는 백성들의 판단 때문입니다. 이는 아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왕상15:14).
여호사밧과 아하시야의 차이 ( 22:43, 52 )
여호사밧의 삶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삶이요, 아하시야의 삶은 자기의 말에 근거한 삶입니다. 또한 여호사밧은 하나님께서 자기삶의 주인이 되시지만, 아하시야의 삶은 자기자신이 주인되는 삶이었습니다. 주인을 바로 모신삶이 오직 안정되고 평안한 삶입니다.
아합의 후손 ( 22:51-53 )
아합의 후손을 보면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수 있습니다. 부모의 바른신앙은 하나님안에서 바른 자녀들을 길러냅니다(딤후1:5). 하나님나라는 가정에서부터 완성됩니다. 사악한 여인 이세벨의 악행은 그자녀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엡6:4).
이스라엘의 범죄가 주는 교훈 ( 22:51-53 )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범죄는, 하나님을 원망하고(민21:5), 우상을 숭배했으며(겔20:16), 이방의 풍습을 따른 것입니다(왕상1;1-8). 이것은 하나님께서 출애굽이후 계속적으로 강조하시고 경계하신 내용이었습니다. 그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분노를 샀습니다. 범죄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자손 삼사대까지 갚으십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는 모든것을 용서해 주십니다(시32:5).

# 해설
아하시야에 내린 재앙 ( 22 )
아합과 벤하닷이 약조한 이스라엘과 아람간의 평화조약은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아합의 지나친 욕심이 아람과의 3차전쟁을 야기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전쟁은 곧바로 아합의 비극적 종말과 연계되고 말았습니다. 한때 하나님앞에 진정한 회개를 하였던 아합이었지만, 그의 죄악된 본성은 결국 그를 파멸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1. 유다와 이스라엘간의 동맹
1) 아합과 여호사밧의 동맹
아벳전투후 이스라엘과 아람간에는 3년동안 전쟁없이 잘지냈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아람이 이스라엘에게서 오래전에 탈취했던 길르앗라못을 다시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아람과의 결전을 다짐했습니다. 이를 위해 아합은 자기에게 찾아온 유다왕 여호사밧과 동맹을 맺어 함께 싸울것을 제의하였습니다. 이에 여호사밧은 흔쾌히 승낙하였습니다.
a.유다왕 여호사밧(왕상15:24)
b.길르앗라못(신4:43)
2) 변절한 선지자들의 잘못된 조언
여호사밧은 아람과 싸우기전에 여호와의 뜻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합에게 이러한 자신의 뜻을 전하자 아합은 400명의 여호와 선지자들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아합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그릇된 예언만을 하는 변절한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신실한 선지자를 다시 요구했습니다. 이에 아합은 진실로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엘리야처럼 당시에 신실한 선지자들중에 하나인 미가야 선지자를 오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합과 여호사밧은 사마리아 성문어귀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때 400명의 선지자들중에 하나인 시드기야가 왕앞에 나왔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아람사람들을 진멸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에 다른선지자들도 동의하였습니다.
a.세상끝날의 거짓선지자들(마24:11-12)
b.하나님의 선지자들(스5:2)
3) 미가야의 예언
아합앞에 도달한 미가야선지자는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전쟁에서의 패배와 아합왕의 죽음을 경고하였습니다. 그리고 400명의 선지자들이 거짓말하는 영으로 아합을 속여 아합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이같은 미가야의 예언은 충격적인 것이지만 아합왕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시드기야는 미가야의 뺨을 치며 그를 모독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합은 미가야를 옥에 가두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이때 미가야는 마지막경고의 말을 아합에게 하였습니다. 이는 아합왕이 전쟁에서 평안히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예언이었습니다.
a.뺨을 때림(애3:30)
b.옥에 갇힘(대하16:10)
2. 길르앗라못에서의 전투
1) 변장하는 아합왕
미가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합과 여호사밧은 길르앗라못으로 갑니다. 아합은 미가야의 경고가 왠지 마음에 걸려 사병으로 변장하고, 여호사밧에게는 왕복을 입게 하였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었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사이의 협정을 깨고 쳐들어온 아합에 대해 아람왕 벤하닷은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로하여금 이스라엘왕만 공격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이 공격목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은 자신이 이스라엘왕이 아님을 소리질렀습니다. 이에 아람군사들도 그가 아합왕이 아님을 알고 공격을 멈추었습니다.
a.변장하는 요시야(대하35:22)
b.병거의 장관 삼십이인(왕상20:1)
2) 아합왕의 죽음
인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경고를 피하고자 했던 아합은 결코 피할수가 없었습니다. 아람군사 한명이 쏜 화살이 우연히 아합왕의 갑옷솔기에 정확히 맞혀진 것이었습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징벌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병거바닥에 많은피를 쏟고 죽음을 당했습니다. 결국 길르앗라못에서의 전투는 아람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의 패배보다도 아합왕의 전사라는 큰손실과 슬픔을 당했던 것입니다. 아합의 시체는 사마리아로 돌아와 이곳에서 장사되었습니다. 아합의 병거는 사마리아 못가에서 씻었습니다. 이때 개들이 와서 그의 피를 핥았습니다. 이는 아합에게 내려졌던 엄중한 심판의 성취였습니다. 아합왕은 많은양의 상아를 써서 왕궁을 치장하고 몇개의 성도 건축했던 유능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상 전례없이 바알숭배를 강력하게 조장하였기에 그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된 것입니다.
a.아합의 죽음에 대한 예언(왕상21:19)
b.우연히(삼하15:11)
3. 야호사밧과 아하시야의 통치
1) 여호사밧의 유다통치
아합왕의 즉위 4년에 남유다에는 여호사밧이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그는 아사왕의 아들로 25년간 왕으로 통치하였습니다. 이기간에는 건강이 악화된 아사왕과의 공동섭정 3년기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유다의 8명의 선한 왕중에 한명이었으며 선왕인 아사왕처럼 개혁자이기도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종교및 재판제도의 개혁을 이루는 등 많은업적을 남긴 왕이었습니다(참조, 대하17-대하20).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위해 아합과 사돈을 맺고, 산당을 없애지 못한 몇가지의 실책을 범한 왕이기도 하였습니다.
a.왕이된 여호사밧(대하20:31)
b.여호사밧의 의로운 통치(대하17:3)
2) 여호사밧의 행적
여호사밧은 기적같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압과 암몬과 에돔의 연합군으로부터 민족을 구한 왕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남색하는 자들을 추방시키는 등의 종교개혁에도 남달리 힘썼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에시온게벨에서 해상교역의 회복을 시도하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의 도움을 거절하기도 합니다. 결국 여호사밧도 죽게되어 그의 아들인 여호람이 즉위하였습니다.
a.여호사밧의 부귀(대하18:1)
b.여호사밧과 아하시야(대하20:35-36)
3) 아하시야의 이스라엘통치
길르앗라못의 전투에서 전사한 아합의 뒤를 이어 아하시야가 이스라엘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그는 부모에게서 좋은교육을 받지 못하였기에 여로보암과 아합같은 악한길을 따라 악행을 답습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바알을 숭배함으로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켰습니다. 그결과 그는 치명적인 사고로 죽음이라는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2년이라는 짧은기간만 통치했던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a.아버지를 본받는 아들의 죄(왕상15:26)
b.여호와앞에서의 악(삿2:11)
결론
아도니야의 왕위찬탈 음모로부터 시작된 열왕기상은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우상숭배 죄악을 지적하면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특별히 여호사밧과 아하시야의 대조적인 모습은 앞으로 전개될 유다와 이스라엘의 역사를 어느정도 예감할수 있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열왕기상의 결론부는 자연스럽게 열왕기하의 내용과 접촉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상 21장 - study  (0) 2022.11.03
열왕기상 20장 - study  (0) 2022.11.03
열왕기상 19장 - study  (0) 2022.11.03
열왕기상 18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7장 - study  (0) 2022.11.02

# Study

I. 나봇의 포도원을 탐냄 21:1-4
(1) 아합은 불행히도 그의 궁전 가까이에 있고 나물밭으로 쓰기에 적합한 이웃의 포도원을 탐낸다. 아합은 이포도원에 마음을 두고 눈독을 들인다(2절). 그것은 그의 기존소유지에 훌륭한 부가물이 될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아무것도 얻지못한다해도 그것은 그의 것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강제로 뺏을정도의 폭군은 아닌지라 공정하게 나봇에게 그가치에 상응하는 돈을 주든가 아니면 더좋은 포도원과 바꿀것을 제안하였다. 자기소유지의 이익을 바라는 것은 악한것이 아니나 어떤것을 과도하게 바라는 것은 이기심의 열매이다.
(2) 그의 제안은 거절당했다. 나봇은 결코 그포도원을 넘기려하지 않았다. 내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3절). 가나안은 특별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땅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작인들이다. 따라서 극히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그리고 희년이 오기까지는 그들이 기업으로 받은땅의 일부라도 다른사람에게 양도해서는 안된단고 하는것이 그들의 임대의 조건중의 하나였다(레 25:28). 나봇은 만일 포도원을 왕에게 팔아버린다면 희년이 오더라도 결코 그것이 자기후손에게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아합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으나 사람보다는 하나님께 더순종해야 하므로 이문제에 있어서는 변명으로 회피하고자 하였다. 혹자는 나봇이 지상에서의 그의 기업을 하늘의 가나안에서 가질 기업의 전조로 보았기때문에 후자를 잃지않기 위해 전자를 넘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3) 이에 아합은 큰불만과 근심에 빠졌다. 그는 전처럼(20:43) '근심하고 답답하게'(4절) 되었으며 그것으로인해 침울하게 되어 침상에 누워서는 아무것도 먹지않았고 그에게 나아오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나봇의 양심이 고지식함을 저주하였다. 또한 그는 실망을 금할수가 없었다. 자신이 뜻하는대로 되지않자 그것이 가슴에 사무쳐서 결국 그는 분통함으로인해 아주 드러눕게 되고 말았다. 그는 가나안의 모든 기뻐할만한 것을 다가지고 있었다. 비옥한 땅, 나라의 부, 궁정의 쾌락, 그리고 보좌의 영광과 권세를 다 장악하고 있었으나 나봇의 포도원없이는 이모든 것이 그에게는 아무의미가 없었다.

Ⅱ. 나봇을 죽임 21:5-16
이세벨, 즉 '그 저주받은 계집'(왕하 9:34) 이 이야기속에 등장할때에는 해악이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것이 없다.
(1) 이세벨은 괴로워하는 남편을 위로해 주는체하면서 그의 자만심과 격분을 만족시켜 주어 타락된 성질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을 근심케 한것에 대해서 말하였다(6절). 그러나 그는 나봇이 거절한 이유를 감추고, 원래는 양심적으로 "나는 당신께 그것을 줄수가 없습니다" 했던것을 역정내듯이 "나는 주지않겠노라"고 말한것처럼 바꾸어 표현하였다. "뭐라고요!" 이세벨이 말한다. 왕이 이제 이스라엘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7절). "왕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데 왕에게 속한 백성중에 당신이 가지기를 원하는 것을 거절하는 자가 있다는 말입니까? 만일 당신이 왕의 체통을 유지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내가 그렇게 할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즉 나에게 단지 당신의 이름을 사용할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곧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겠습니다. 옳건 그르건 그것은 곧 당신의 것이 될것입니다. 그것도 비용없이 거저 말입니다."
(2) 그녀는 그를 기쁘게 하기위해서 나봇을 죽이기로 계획하고 음모를 꾸민다.
1) 만일 그녀가 단지 그의 땅만을 노렸다면 그녀의 거짓증인들이 조작된 사실로 그에게서 그땅을 가로챌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봇은 죽어야 했다.
① 어떤왕도 이세벨이 이스라엘의 장로와 귀인들에게 내린것보다 악한명령을 내린적은 없었다(8-10절). 왕은 그녀에게 옥새를 빌려주었으나 그녀가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지못했다. 그녀는 왕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간단히 말해서 그녀는 충성을 맹세한 자들에게 나봇을 죽일것을 명하고 있다. 이명령이 이행되리라고 기대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녀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정직하고 명예로운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눈먼자들로 간주하였음에 틀림이 없다.
㉠ 그것은 종교의 미명아래 행해져야만 했다. 금식을 선포하고(9절). "즉 너희가운데 발견되지 아니한 큰범죄자가 있어 그로인해서 하나님께서 너희성읍에 대해서 진노하고 있음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가장하라. 그리고 최종적인 혐의로 나봇에게 죄를 씌워라. 어쩌면 그는 이웃과 함께 경배드리는 자리에 없을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그것은 또한 공의의 미명아래 행해져야만 했다. 따라서 그것은 법적절차를 밟아서 행해졌다. 그들이 그를 기소해야 하는 죄목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는 것인데 그것은 복합적인 불경죄였다.
② 이스라엘의 장로와 귀인들에 의해 이명령이 집행된 것보다 더사악하게 집행된 명령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들은 '편지에 쓴대로' 하였는데(11,12절) 그것을 행하는데 어떤곤란함이 발생하거나 어떤 어려운상황에 직면함이 없이 그극악한 일을 수월하게 처리하였다. 그들은 나봇을 돌로쳐서 죽였는데 추측컨대 그의 뒤를 이어서 그의 아들들도 죽였을듯 싶다(13절).
2) 이사건으로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받을수 있다.
① 악한자의 사악함과 불순종의 자녀들가운데서 역사하는 사단의 권세는 이토록 놀라운 것이다.
② 무고한 자가 학대받는 혹독한 상황은 비통한 것이다.
③ 계속해서 우리의 생명과 위로를 하나님께 의탁케 된다. 이는 순결 그자체가 항상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④ 앞으로 있게될 심판을 믿음으로 기뻐하게 된다. 그때에 이러한 악한재판은 다시 소환될 것이다.
(3) 나봇이 제거되자 아합은 그의 포도원을 차지한다.
1)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이세벨에게 자랑할만한 소식이기라도 한양 아주 태연자약하게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통보하였다(14절).
2) 이세벨은 자신의 음모가 성공하였음을 아주 흡족해하면서 아합에게 '나봇이 살아있지 않고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일어나서…포도원을 취하소서(15절). 그는 신하중 한사람을 시켜서 그것을 취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소유지에 이것이 추가되는 것이 너무 기뻐서 그곳으로 가기위해 친히 이스라엘로 여행을 하였다. 이때 그는 마치 대단한 승리를 거두기나 한자처럼 당당하게 갔던것 같다. 이것은 예후가 오랜후에 그자신과 빗갈이 그때에 그를 수행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것으로 보아 알수가 있다(왕하 9:25).

Ⅲ. 아합에 대한 심판의 예언 21:17-29
(1) 아합의 매우 악한성격(25,26절)은 여기서 그에게 중한 선고를 내리신 하나님의 정당성을 보여준다. 또한 그선고가 나봇의 사건에 관련된 그의 죄에 대해 내려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만일 그가 다른 많은죄, 특히 우상숭배를 하지않았다면 그를 그처럼 혹독하게 벌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완전히 죄에 팔려서, 그것으로부터 쾌락을 얻을수 있다면 그삯이 사망일지라도(롬 6:23) 그삯을 치루었을 것이다.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를 악하게 행하도록 충동하여 여러가지 점에 있어서 그가 하고자했던 것보다 더악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죄에 대한 변명이 될수는 없다.
(2)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갔을때 엘리야가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17-19절).
1)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침묵하셨으나 이제 아합에게 책망이 내려지게 되며, 그의 죄는 하나님앞에 하나하나 놓여지게 된다. 보냄을 받은사람은 엘리야이며 장소는 나봇의 포도원이고 시간은 그포도원을 취하려할 바로 그때이다. 그때,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듣게된다. 그런데 그때 그는 악하게 얻은 재산으로인해 기뻐하는 중이었으며 이포도원을 정원으로 꾸미도록 명하고 있는 중이었다.
2) 아합과 엘리야사이에 오고간 말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① 아합은 엘리야에 대해서 분노하였다. 선지자앞에서 스스로 겸비해야함에도 불구하고(대하 36:12) 그는 엘리야를 보자 격분하게 되어 그에 대해 정면으로 대항하고자 하였다. 나의 대적이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20절). 이것은 다음사실을 보여준다.
첫째, 그는 엘리야를 미워하였다. 지난번에 우리는 그들이 매우 좋은관계가 되었던 것을 살펴보았다(18:46). 그때 아합은 개혁에 호의를 보였었다. 그래서 그때 그와 선지자사이의 관계는 모든것이 좋았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악한길에 빠져 전보다 더악하게 되었다. 그의 본심이 하나님과 대적해 있었으므로 그는 엘리야를 결코 자기의 벗으로 여길수가 없었다.
둘째, 아합은 엘리야를 두려워하였다. 내가 나를 찾았느냐(20절). 가난한 채무자나 범죄자라도 자기를 잡으러온 관원앞에서 결코 아합처럼 그렇게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② 엘리야는 아합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였다. 내가 찾았노라 네가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20절).
첫째, 엘리야는 그를 기소하고 악행의 증거를 들어 유죄선고를 내린다.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19절).
둘째, 엘리야는 그에 대해서 판결을 내린다. 그는 아합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집을 파멸시키고 쓸어버리시며 그의 모든자손을 멸하시리라고 말하였다(21절). 네피 곧 네몸의 피도(19절). "그것이 왕의 피라 할지라도, 또 그것이 지금 교만으로 혈관을 부풀리고 분노로 심장에서 끓고있다 할지라도 오래지않아 그피는 개들을 즐겁게 하는것이 될것이다". 그것은 22:38절에서 성취되었다.
(3) 아합이 자기에게 내려진 판결에 놀라 겸비해지자 위로가 될만한 말씀이 다시금 주어졌다.
1) 아합은 일종의 참회자가 되었다. 엘리야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에게 전해준 말씀은 즉시 그를 놀라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옷을 찢고 굵은베로 몸을 동였다"(27절). 아합은 참회자의 복장을 갖췄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겸비하지도 않고 변화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2) 이에 그는 일종의 용서라고 할수 있는 집행유예를 받게되었다. 비록 그참회가 죄가 아닌 단지 심판만을 슬퍼하는 외적인 것이었다할지라도, 그리고 우상을 떠나지도 않았으며 나봇의 포도원을 그상속자에게 돌려주지도 않았다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 조금은 영광을 돌린것이 되기에 하나님께서도 그점을 보시고 엘리야에게도 그점을 보도록 명하셨던 것이다. 아합이 내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29절). 이것은 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조차도 그중에 있는 선한 것에 대해 눈여겨봐야 하는것을 가르쳐준다. 선한것이 행해지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칭찬되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악한사람들이 때때로 오래 번영을 누리는 이유라고 할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외적인 공로에 대해서 외적인 자비로 보상해 주신다. 이것은 진심으로 회개하고 거룩한 복음을 진심으로 믿는 모든자들에게 힘이 되는 사실이다. 불완전하게 겉으로만 참회한 자가 집행유예를 받아 심판에서 벗어날수 있었다면 진심으로 참회한 자는 심판에서 벗어날뿐만 아니라 의심할것도 없이 의롭다함을 받을수 있을 것이다.

# 핵심
21:1-16
아합이 힘없는 농민의 땅을 권력을 남용하여 빼앗은 또하나의 악행이 기록되어 있다.
예언의 성취(21:19)
“개들이…핥으리라”는 엘리야의 예언은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아합이 전사했을때 그의 피를 개들이 먹은 일(22:38)은 나봇이 죽은 이스르엘이 아니라 사마리아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피 곧 네몸의 피”라는 말은 아합의 후손에게 이어지는 피로 가리킨다. 아합의 아들 요람의 시체가 훗날 나봇의 포도원에 던져짐으로써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다(왕하 9:25,26).

# 묵상
아합의 죄 ( 21:1-4 )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여 자기의 욕심을 만족시키려 했습니다. 이와같이 욕심은 죄를 낳는 원천이 됩니다(약1:15). 예수님께서는 자기것을 챙기기보다는 먼저 남에게 주는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봇은 상대가 왕이라할지라도 선조로부터 내려온 기업의 땅을 주기를 거부함으로 말씀을 지킵니다. 사탄은 주로 성도의 물질적인 부분을 공격대상으로 삼습니다. 이때 성도가 지켜야할 것은 물질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물려준 구원의 복음과 말씀입니다.
돌로 쳐죽이는 형벌에 처하는 자 ( 21:10 )
우상숭배자(신13:10), 신접하거나 박수가 된 자(레20:2, 27),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거나 저주하고 멸시하는 자(레24:4), 간음한 자(신22:21) 등입니다. 이기적이고 악한종교의 영향과 전통에 젖어있으면 양심도 없는 음모를 꾸밀수 있습니다. 위의 모든사람은 근본을 이기적인 탐심에 두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심판주이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불의를 행치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세벨의 죄 ( 21:11-26 )
이세벨은 나봇을 모함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1-3계명을 어겨 하나님보다 아합의 권위를 더내세웠고, 9계명을 어겨 거짓증인을 세웠고, 6계명을 어겨 살인을 하였고, 10계명을 어겨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였습니다. 하나의 죄는 또다른 죄를 유발시키는 동기가 됩니다. 나봇사건은 권력형 부조리가 아닌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무시한 영적인 범죄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예언은 아합에게 선포된 저주와 함께 하나님의 언약을 멸시하는 자를 멸절시키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줍니다.
죄지은 사람의 태도 ( 21:20 )
죄를 지은 사람은, 심판자가 올때 죄를 숨기기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는, 그에 대한 참혹한 결과와 함께 언젠가는 반드시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결코 묵과하지 않습니다(창4:1-13).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를 노와 분으로 다스리신다고 하셨습니다(롬2:6-10). 그러나 회개하는 죄인에게는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하나님앞에서 대항하기보다는 겸손히 무릎을 꿇고 회개하는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아합의 잘못 ( 21:25 )
아합은 아내 이세벨의 죄를 보고 탓하지 않고 방치하여 같이 범죄했습니다. 이렇게 다른사람의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고 방치하면 결국 자신도 같은죄에 빠지게 됩니다. 사탄은 성도가 죄에 둔감하여져서 죄를 죄로 보지않게 속임수를 씁니다.
아합을 용서하신 하나님 ( 21:27-29 )
하나님은 죄인이 돌아오기를 언제나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밝히기위하여 아합을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죄인이 돌아오기까지 오래참으시는 분으로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으십니다(눅15:20).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모든사람들이 복음안으로 들어오기만을 인내하며 기다리십니다(벧후3:9).

# 해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 ( 21 )
하나님을 떠난 아합과 이세벨의 악한성품이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는 과정에서 극명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하여 금지한 토지거래를 아합은 물질로서, 이세벨은 무력으로서 강압적으로 행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심판은 더욱 확고해져 갔습니다.
1.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
1) 나봇의 거절로 근심하는 아합
아합이 거하는 궁옆에 나봇의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치와 쾌락에 빠진 아합은 자신의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혀 나봇의 포도원을 소유하길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봇에게 그포도원을 팔것을 제의하였습니다. 이에 나봇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는 절대로 매매할수 없다는 여호와의 말씀에(참조, 레25:23-28;민36:7) 의거하여 아합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물론 아합도 나봇이 거절한 이유를 잘알고 있었기에 답답해하기만 하였습니다.
a.조상의 기업(민36:7)
b.토지매매 금지(레25:23)
2) 이세벨의 음모
이세벨은 남편 아합의 고민을 알고서는 의아해 하였습니다. 잔인하고 저급한 바알종교의 문화속에서 성장한 이세벨로서는 왕의 권세면 무엇이든지 다 할수있고, 소유할수 있다고 믿었기에 아합의 고민을 이해할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세벨은 곧바로 악한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는 나봇이 살고있는 이스르엘의 지도자에게 편지를 써서 나봇을 제거하는 행동지침을 하달했던 것입니다. 먼저 국가적 비상사태 또는 신에 대한 모독행위가 발생했을때에만 선행해지는 금식을 선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후 두명의 증인을 통해 나봇이 왕과 하나님을 저주했다고 고소토록 했습니다. 당시에는 최소 두명의 증인이 있어야 판결을 내릴수 있었기에 두명의 거짓증인을 내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신을 저주한 죄목으로 나봇을 죽이도록 요구했던 것입니다.
a.왕의 편지(에3:12)
b.여호와를 모독한 죄(레24:16)
3) 나봇의 죽음
이세벨의 편지를 받은 이스르엘의 지도자들은 이세벨의 명령이 거짓임을 잘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세벨의 악한성품을 소문을 통해 잘알고 있는 이스르엘은 잘못된 일인지 뻔히 알면서도 이세벨의 명령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봇은 아무런 죄도없이 억울하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것도 대역죄라는 누명을 쓰고 죽은 것입니다. 이때 나봇의 아들들도 함께 죽었고(참조, 왕하9:26), 당시 관습으로는 대역죄로 처형된 사람의 재산은 왕의 소유가 되는 관습이 있었기에 이제 나봇의 포도원은 아합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세벨은 이러한 사실을 아합에게 알렸고, 기쁨에 들뜬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으로 갔습니다.
a.잘못된 금식(사58:4)
b.나봇의 아들들의 죽음(왕하9:26)
2. 엘리야의 심판예언
1) 엘리야에게 임한 명령
하나님은 즉시 엘리야에게 임하사 아합에게 내릴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내용은 첫째로 나봇의 죽음을 아합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나봇이 죽어 그의 피를 개들이 핥았듯이 아합도 바로 이스르엘지역에서 죽어 개들이 아합의 피를 핥게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아합이 비참하고도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당하게될 것이라고 예언하라는 것입니다
a.나봇의 죽음(왕하9:26)
b.피를 핥았던 개(왕상22:38)
2) 아합에게 심판을 예언하는 엘리야
엘리야는 나봇의 포도원에 가있는 아합에게 찾아갔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의 죄악을 지적하면서 그에게 내려질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아합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백성들로하여금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우상을 숭배토록 권장한 지도자였기에 하나님의 진노는 클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합에게 그의 후손이 멸절하리라고 예고하였습니다. 따라서 아합의 왕조는 여로보암의 왕조나 바아사의 왕조처럼 완전히 멸절케 되었습니다.
a.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왕상14:10)
b.아합에게 선포된 심판(왕하9:8)
3) 이세벨에게 임할 심판예언
아합에 대해 심판을 선포했던 엘리야는 이제 이세벨에 대해서도 그녀에게 임할 심판을 예언하였습니다. 즉 엘리야는 이세벨도 아합과 마찬가지로 이스르엘에서 죽어 개들이 그녀의 시신을 먹게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한시대를 좌지우지하던 왕비로서는 도저히 생각할수 없는 비참한 최후라 할수 있습니다. 후에 이세벨은 왕궁의 내시들에 의해 왕궁창문으로 내던져져 죽음을 당함으로써 엘리야의 이예언은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참조, 왕하9:30-37)
a.이세벨에게 임할 심판(왕하9:36)
b.심판의 도구인 개(왕상14:11)
3. 아합의 회개
1) 아합의 범죄원인
여기에서 열왕기서 저자는 좀더 상세하게 아합이 지은 죄목과 그가 범죄케된 원인들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아합은 스스로 사단의 도구가 되어 죄악을 범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그는 이세벨의 유혹에 빠져 이세벨의 요구대로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는 아모리사람의 죄악된 우상숭배 습관을 따름으로써 심히 가증된 행위를 일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몇가지 원인에 의거하여 아합은 몇번의 회개기회도 상실한채 죄악의 깊은 늪속에 잠기게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저주를 피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a.이세벨의 유혹에 빠진 아합(왕상16:31)
b.아모리사람의 죄악(창15:16)
2) 일시적인 아합의 회개
엘리야의 엄중한 심판선포에 아합은 큰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여호와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는 옷을 찢고, 굵은베를 동이며 금식함으로 자신의 통회자복하는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지금까지 아합이 악행을 저지른 죄인이었을지라도 그의 회개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결과로 아합에게 내릴 심판의 재앙들이 그의 아들인 요람시대로 연기되었습니다(참조, 왕하9:24-26;왕하10:17).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악인일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면 반드시 진노를 긍휼로 바꾸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이세벨은 전혀 회개치 않았습니다. 그녀는 오직 바알신만을 의지하였기에 하나님을 무시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았던 것입니다.
a.이세벨의 죽음(왕하9:37)
b.하나님의 예언성취(왕하10:17)
결론
한마디로 이세벨은 가장 잔인한 여인이면서 동시에 가장 어리석은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녀에게 내릴 심판의 재앙은 어떠한 오차도 없이 임하게 되었습니다(참조, 왕하9:30-37).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한 아합과 이세벨에게 심판이 선포되어지는 것은 당연한 하나님의 공의였습니다. 하지만 이세벨과는 달리 아합은 회개하였습니다. 그결과로 심판의 재앙이 연기되는 긍휼을 입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전인격적인 결단에 의한 회개가 아니었기에 아합의 회개는 일시적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죄의 사슬을 단번에 끊는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아합은 죄의 악순환속에서 죽음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열왕기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상 22장 - study  (0) 2022.11.03
열왕기상 20장 - study  (0) 2022.11.03
열왕기상 19장 - study  (0) 2022.11.03
열왕기상 18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7장 - study  (0) 2022.11.02

# Study

I. 벤하닷의 공격과 오만한 요구 20:1-11
1. 벤하닷의 공격(1)
이스라엘에 대해 행한 벤하닷의 위협적인 침공과 그가 사마리아, 곧 이스라엘의 완성을 포위한 사실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다윗의 시대에 아람나라는 이스라엘에 완전히 정복되어 속국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자 그들은 다시 얕잡아 볼수 없는 상대가 되었다. 한때 아사가 아람인들을 부추켜서 이스라엘을 침공을 하였다. 외국의 군대를 나라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후손들이 그값을 치뤄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2. 두왕사이의 협약(2-11)
(1) 교만한 벤하닷은 아합에게 매우 무례한 요구를 하고있다(2,3절). 그요구는 아합이 신하의 예를 갖추어 조공을 바칠뿐 아니라 그의 칭호를 자기에게 양도하며 아내들과 자녀들까지 자기의 뜻에 모두 맡긴다는 조건에 아합이 동의하면 포위를 풀겠다는 것이었다.
(2) 유약한 아합은 벤하닷에게 매우 수치스러운 항복을 한다(2,3절). 나와 나의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4절). 죄의 결과를 보라.
1) 만일 아합이 죄로인해 하나님을 노하게 하고 그를 떠나지 않았던들 벤하닷은 그러한 요구를 할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지 않으신다면 원수들이 우리를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은 다른 모든것에 대한 예속이다.
2) 만일 그가 죄로인해 자신의 양심을 훼손시키지 않고 또 그훼손된 양심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않았다면 그처럼 초라한 항복을 하지 않았었을 것이다. 죄는 사람들을 낙담케하며 또한 겁쟁이로 만든다.
(3) 벤하닷의 교만한 마음은 그의 항복으로인해 더욱 기고만장하게 되고 또한 한층더 무례하고 사악하게 된다(5,6절).
1) 벤하닷은 자신의 교만만큼이나 탐욕스런 자였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의 주권과 소유를 모두 가지지않고서는 떠날수가 없었다.
2) 그는 자신의 거만만큼이나 사악한 자였다. 만일 그가 마음에 원하는 것을 고르기위해 직접왔더라면 그것은 왕관을 쓴자에게 약간이나마 존경을 표하는 것이었을터이나 그는 왕을 모욕하기위해 자신의 종을 보내려했다. 무릇 네눈이 기뻐하는 것을 그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6절).
3) 그는 자신의 불의만큼이나 부당한 자였다. 따라서 그는 아합 개인의 항복을 그의 모든백성의 항복으로 해석하려 하였다.
(4) 아합의 유약했던 마음이, 점점 더해가는 벤하닷의 오만함으로인해 다시 일어서기 시작한다. 혹 그것이 대담함이 아닌 자포자기적인 것이라할지라도 그는 그와같이 모든것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자신의 생명을 모험에 걸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 그는 끝까지 저항하도록 용기를 북돋는 장로들의 충언을 택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거절을 매우 정중하게 나타내 보였다(9절).
(5) 벤하닷은 교만하게도 사마리아를 파멸시킬 것을 맹세하고 있다.
(6) 아합은 그의 자신감에 대해 점잖게 책망을 한다. 즉 그의 위협을 경시하지는 못하면서도 단지 그에게 전쟁의 불확실한 결과에 대해 상기시켜 주고있다(11절).

Ⅱ. 이스라엘의 승리 20:12-21
포위한 자들과 포위당한 자들사이의 협약이 갑자기 파기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발발한 전쟁에 대한 설명을 보게된다.
(1) 포위한 자들, 즉 아람인들은 술취한 왕으로부터 명령을 받았다. 그는 술잔을 든채로 명령을 내렸다. 벤하닷이 왕들과 장막에서 마시다가(12절). 저희가 오정에 나가니 벤하닷은 돕는 왕 삼십이인으로 더불어 마시고 취한 중이라(16절). 만일 그가 승리를 확신하지 않았다면 앉아서 술을 마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만일 그가 취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방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심과 육욕은 옛세상에, 특히 소돔에 만연해 있었다(눅 17:26이하). 벤하닷의 술취함은 벨사살이 그러했던 것처럼(단 5장) 패망의 시초가 되었다. 그는 취한가운데서 그성읍을 포위하도록 명령했다. 그가 포위당한 자들을 죽이지 말 것을 명했을때 그들은 역습을 하였다. 즉 그들을 죽이는 것이 더쉽고 안전했으나 죽이지말고 사로잡을 것을 명했기때문에 그들은 침략자들을 죽일기회를 갖게된 것이다.
(2) 포위당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감받은 선지자, 즉 아합이 미워하고 박해한 여호와의 선지자들중 하나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1) 하나님께서 아합과 같은 아주 사악한 왕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자비롭고 은혜로운 소식을 주신것을 보라. 그러나 이는 다음을 위함이었다.
첫째,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였다.
둘째, 악하고 감사치도 않는 자에게 선을 베푸사 큰자비를 나타내주심으로써 그로하여금 회개케하거나 더이상 변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셋째, 벤하닷의 교만함을 죽이시고 그의 무례함을 꺾기 위해서였다. 아합은 여호와의 선지자에게 묻지않았으나 하나님께서는 구하지도 않은 그에게 한사람을 보내주셨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2) 그선지자는 다음의 두가지 일을 행하였다.
① 그는 승리를 확신시켜줌으로써 아합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모든장로들이 그를 돕겠다고 약속했던 모든 일들보다 훨씬더 큰것이었다(참조. 8절). 아합은 이렇게 축복된 상황으로 급변하게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되었다. 너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13절). 즉 "만물의 주권자가 됨을 알리라."
② 그는 아합이 승리를 얻기위해서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알려주었다.
첫째, 그는 적이 공격해 올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들을 기습하여 그들의 참호를 불시에 공격해야 했다.
둘째, 공격하는 자들은 '각도의 방백의 소년들'로 단지 이백삼십이명에 불과한 신병들이며 보병들이어야 했다. 그들은 전쟁에 대해서 전혀 알지못하며 그러한 대담한 공격을 잘해내리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자들이었다.
셋째, 아합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친히 전쟁을 지휘해야 했다. 이성의 눈으로 볼때 그것은 자신을 가장 위험한 곳에 내어놓는 것이었다.
넷째, 그는 소년들이 공격한후에 잇달아 타격을 주기위해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다른 어떤병력을 사용해도 상관없었다. 그가 사마리아내에 거느리고 있는, 즉 대기하고 있는 군인의 총수효는 단지 칠천명 뿐이었다(15절).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아니한 자들과 이들의 수효가 똑같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참조. 19:18).
(3) 그후 전쟁의 결과는 이렇게 나타났다. 교만한 아람인들은 패배했으며 불쌍하게 멸시받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큰승리자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왕들의 기백을 앗아가시며, 자신을 지상의 왕들에게 얼마나 두려운 존재로 나타내시는가를 보라. 벤하닷이 아합에게 요구했던 은과 금은 어디에 있는가? 사마리아의 한줌의 티끌조차 그는 쥘수가 있었던가?

Ⅲ. 이스라엘의 두번째 승리 20:22-30
아합은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 아람인들과의 전쟁에서 또다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이번에 그는 전보다 더큰 패배를 그들에게 안겨주었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아합은 우상숭배자이면서도 여전히 승리자였고 핍박자이면서도 여전히 정복자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로 번영케하시는데에는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이 있으시다.
(1) 아합은 또 있게될 전쟁을 준비하도록 선지자로부터 경고를 받았다(22절). 선지자는 그에게 해가 돌아오면 적들이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고 자기들이 받은 타격을 보복하고자 다시 공격해 올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아합에게 스스로 힘을 기를 것을 명하셨다. 우리는 영적인 적들로부터 공격받은 것에 대비하여 항상 주의하고 살펴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2) 벤하닷은 신복들로부터 다음싸움에 관한 권고를 받았다.
1) 그들은 '평지'에서 싸울것을 권고하였다(23절). 그들은 자기들을 패배시킨 것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합당한 생각이었으나 그들은 여호와에 대해서 아주 무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즉 여호와는 오직 한분이며 그의 이름도 하나인데 그들은 그가 여럿인듯이 말했으며 그는 창조주이시자 온세상의 주관자이신데 단지 그지역, 그민족만의 신이라고 말하였다.
2) 그들은 지휘관들을 바꿀것을 그에게 권고하였다(24,25절). 즉 날때부터 지휘관인 왕들을 제하고 오히려 전과에 의해 지휘관이 된, 전쟁에 능숙한 장관들을 세울것을 권고하였다.
(3) 양편 군대는 평지에 포진하였다. 벤하닷은 그의 아람군대와 함께 아셀지파에 속한 아벡근처에 진을 쳤고 아합도 그의 군대를 이끌고 그들과 마주하여 어느정도 떨어진 곳에 진을 쳤다(27절). 숫자상의 불균형은 매우 현저하였다. 두개의 부대로 나뉜 '이스라엘 자손'은 수효도 적고 장비도 보잘것이 없어서 마치 '염소새끼의 두 적은 떼'와도 같았다. 그들의 외관은 그처럼 업신여김을 받을만한 것이었다. 반면에 아람인들은 수효와 고함소리와 병거와 마차, 그리고 군수품으로 그땅을 온통 뒤덮었다.
(4) 아합은 적들이 승리를 자신하고 또 유리한 입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고무되어 아람사람들과 싸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하나님께서 그의 손에 그들을 붙이시리라는 말씀을 전했기 때문이었다(28절). 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이는 비록 그사실이 그에게 전달되었더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친히 그일을 해주실만큼 가치가 있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5) 양편 군대가 서로 칠일을 대치한후 접전하여 아람군대는 완전히 참패당했다. 벤하닷은, 승리자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리라고 생각했던 그의 성 아벡이 무너져내리고, 또 그의 군대중 생존자들이 사기가 떨어지고 사방으로 흩어지자 추적자들에게 잡히지 않기위해서 '골방'에 몸을 숨겼다. 어떻게해서 가장 자신만만하던 자가 결국은 가장 비겁하게 끝을 맺는가를 보라.

Ⅳ. 아합의 어리석은 약조 20:31-43
이스라엘이 아람사람에게 승리한후 발생한 한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1. 벤하닷의 비천한 항복(31.32)
왕과 자신들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음을 깨달은 벤하닷의 신하들은 무조건 항복하여 스스로 포로가 되고 아합에게 생명을 애걸하자고 권유하였다(31절). 그신하들은 생명을 내걸고 모험을 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은혜롭고 자비하신 것으로 선포하신 것을 들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왕들도 그들의 하나님을 본받았으리라고 결론내렸던 것이다. 이사실은 불쌍한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앞에 겸손해져야만 할때 그렇게 할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준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고 듣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분이 그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찢고 그분께로 돌이키자"(욜 2:13).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복음적인 회개는 시작된다. 그에게는 죄사함이 있다. 벤하닷의 신하들은 아합에게 보이기위해 두가지 사실을 꾸몄다.
(1) 그들의 주인을 참회자로 꾸몄다. 이는 그들이 문상객처럼 '굵은베로 허리를 묶고,' 죽을죄를 지은자가 죽으러 갈때처럼 '테두리를 머리에 인' 것으로 알수가 있다. 악을 행하여 만일 성공하면 그것을 정당화하고 자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일이 실패로 돌아가면 회개하는체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2) 그들의 주인을 애걸하는 자, 즉 자신의 생명을 애걸하는 자로 꾸민다.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나의 생명을 살려주옵소서(32절). 얼마나 큰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보라.
첫째, 그의 형편의 변화이다. 그는 권세와 영화의 높은곳에서 수치와 비탄의 그깊은 곳에서 떨어졌다.
둘째, 그의 성격의 변화이다. 20장 앞부분에서는 약한 자를 괴롭히고 저주하고 위협하면서 더심한 것이 없을정도의 요구를 하더니 여기서는 벌벌 기면서 애처롭게 더비참할수 없을정도로 애걸을 하고있다.
2. 아합의 어리석은 동맹(32-34)
아합은 어리석게도 벤하닷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즉각 그와 동맹을 맺었다. 자기가 두려워했던 자가 이와같이 자기에게 비위를 맞추자 아합은 교만하여졌다. 저가 오히려 살았느냐 저는 나의 형제니라(31절). 즉 비록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형제는 아니나 형제왕이라는 말이다. 아합은 종교보다는 왕권을 더가치있게 여겼다. "아합아, 벤하닷이 네형제이냐? 그가 야만적인 전갈을 네게 보낼때 형제와 같이 행하였더냐(5,6절)? 만일 그가 승리했다면 그가 너를 형제로 불렀겠느냐? 만일 그가 극한 곤경에 처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자신을 너의 종이라고 불렀겠느냐? 너는 어찌하여 억지로 꾸며댄 거짓항복에 스스로 속아 넘어가느냐?" 항복을 한 벤하닷은 영예롭게 병거에 태워졌을뿐만 아니라 맹우로서 대우받았다(34절). 아합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나 그나라의 장로들과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그와 더불어 '약조'를 하였다. 이제 그는 벤하닷의 몇성읍을 요구할수도 있었으나 그자신의 성읍들이 반환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그는 다메섹의 물품들과 보물들과 비축물들을 요구할수 있었으나, 그자신의 비용을 들여 그곳에 거리를 만들 보잘것없는 권리를 얻은 것으로 만족하였다. 그는 벤하닷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한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책망도 없이 이약조를 하고는 그를 돌려보냈다. 왜냐하면 아합은 하나님의 영광에 하등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3. 아합에 대한 책망(35-43)
아합이 벤하닷을 관대히 대하고 그와 더불어 약조한 것에 대해서 책망이 내려졌다. 그것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한선지자에 의해 그에게 주어졌는데 유대인들은 그선지자가 미가야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아합이 미가야는 자기에 대해 '흉한일만 예언'한다고 불평하고 있기 때문이다(22:8). 이선지자는 비유로써 아합을 책망하고자 하였다. 그는 자신의 비유를 더욱 그럴싸하게 꾸미기위해서 부상당한 군인의 모습을 취하고자 하였다.
(1) 그는 자신을 다치게 하는데 약간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그가 직접 자기손으로 자신을 다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동무 선지자에게 자신을 치라고 하면서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였다(35절). 그러나 동무선지자는 자기가 맞기를 원하지 않듯이 기꺼이 그를 치려고 하지않았다. 우리는 단지 그가 선한이유로 그것을 거절했다고 생각할수밖에 없다. 선한사람은 다른사람을 치기보다는 차라리 부당한 매일지라도 맞는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을 불순종했기에(만일 그자신도 선지자였다면 그것은 더욱 잘못한 것이었다) 다른 불순종한 선지자처럼(13:24) 즉시 사자에게 죽임을 당했다(36절). 한 선한선지자가 하나님께서 치라고 하셨을때 자신의 동무이자 하나님의 선지자인 사람을 치지않은 것으로 이와같이 벌을 받은 사실은 자신의 적이자 하나님의 적인 자를 하나님께서 치라고 하셨을때 치지아니한 악한왕에게 더욱 심한 벌이 내려져야 마땅하리라는 것을 아합에게 암시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만난 다음사람은 아무 어려움없이 그를 쳤으므로 그는 다치게 되었다(37절). 그는 아마도 얼굴을 피가 나도록 맞았던것 같다.
(2) 그는 부상당한채 자신이 선지자인 것을 알지못하게 하려고 재를 덮어 위장한후 왕이 벤하닷을 치지않은 죄와 같은 그러한 죄로 자신이 고발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왕에게 탄원을 하고는 그에 대한 왕의 심판을 기다렸다. 이야기의 요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전쟁에서 잡힌 포로가 이사람에게 감시하도록 맡겨졌다. 만일 저를 잃어버리면 네생명으로 저의 생명을 대신하거나(39절). 포로는 그가 감시를 소홀히 하는틈을 타서 도망을 하였다. 왕의 가슴속에 있는 법정은 포로의 생명대신 그의 생명을 요구하는 지휘관을 거스린 그를 구해줄 것인가? 왕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약속을 하지말든지, 그일을 더욱 주의하여 충실하게 하든지 했어야 했다. 다른 구제책은 없다. 너는 네 약조대로 의무를 지고 그대로 당하여야 한다."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40절). 이제 선지자는 자신이 뜻한바를 행한다. 즉 자신의 변장을 벗고 아합에게 자신이 선지자임을 알게하고는 분명하게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41절). "당신이 바로 그사람입니다. 당신은 당신자신의 입으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의 교만과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분명하게 멸망하시기로 정하신 자를 당신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를 당신뜻대로 기꺼이 풀어줌으로 당신의 책임을 저버렸습니다."
(3) 우리는 아합이 이책망을 불쾌하게 여긴것을 보게된다.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궁으로 돌아가려고(43절). 그는 선지자에게 화를 내고 하나님에 대해 격분하였으나 자신에 대해서는 근심하였다.

# 핵심
20:1-12
아람왕 벤하닷이 사마리아성을 포위하고, 종속국이 될것을 아합에게 요구했다.
고대인의 전쟁관과 신관(20:23)
다신교를 숭배했던 고대인들은 각신들이 특정한 지역에 국한되어 힘과 능력을 발휘한다고 믿었다. 또한 전쟁을 가리켜 궁극적으로 신들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아람인들은 사마리아나 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의 중앙산지에 위치했기때문에 평지에서 싸우면 이스라엘의 신이 영향력을 행사할수 없을것이라고 단정했다.
한선지자의 죽음(20:36)
본절의 한선지자의 죽음은 매우 이상한 사건인듯이 보인다. 하지만 아합이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벤하닷을 살려주었던 앞사건의 맥락에서 보면, 쉽게 이해할수 있다. 이 두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명령에 인간의 생각을 개입시키지 말고 철저히 복종해야 한다는 주제를 제시한다. 즉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으면 어떤결과를 맞이하게 되는지를 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복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묵상
전쟁에 임하는 벤하닷의 자세 ( 20:1-12 )
벤하닷은 자기군대의 힘을 과신하고 교만하여져서 이기리라는 확신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교만한 자의 마지막은 패망입니다(잠16:18). 그러나 겸손한 자의 길은 영화롭고 그길이 평온합니다. 아람과 이스라엘간의 전쟁의 원인은 아람왕 벤하닷의 지나친 패권의식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쟁에서, 당신이 역사의 주인이시며 온세계의 주권자이심을 선포하고 교만한 벤하닷을 심판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은 교만과 함께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게될 것입니다.
장로의 역할 ( 20:8 )
백성들의 대표자와 재판관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고, 백성을 위한 중보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군사적 지도자가 되었고, 모든지파의 보존을 담당했으며, 백성들을 대신하여 어린양을 잡았습니다.
전쟁에 승리한 아합 ( 20:13-21 )
아합이 승리한 비결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내신 선지자의 명령을 그대로 준행한 결과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편에 서기만 하면 대적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친히 성도들의 편이 되셔서 승리를 보장해 주십니다(삼상17:47).
적은 군대로 대군을 이김 ( 20:15 )
싸움의 승패는 군비나 병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좌우된다는 것을 깨닫게하기 위해서입니다(삼상17:47). 하나님께서는 7,232명의 적은군사로 아람의 대군을 쳐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특별하신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승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실때 가능한 것입니다.
아합에게 계속 말씀하시는 하나님 ( 20:22-25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전쟁에 이긴것을 통해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깨닫게하시려고 아합에게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죄악에 빠진 인간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약속을 가지고 계속 회개하고 동참할 것을 권면하십니다. 사랑의 성품을 가지신 하나님은 자비로우십니다.
악인의 복 ( 20:26-30 )
성경은 악인이 복을 받지못하고 망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잠10:28, 30). 그러나 때로 악인이 복을 받는것처럼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사람을 회개시키려고 하시는 경우이거나 잠시동안의 낙을 누리면서 악이 더쌓이게 두시기 때문입니다.
아벡평지 전투의 교훈 ( 20:28 )
당시 사람들은 신(神)들이 각각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람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신인 여호와가 ‘산의 신’이고 ‘평지의 신’이 아니기때문에 평지에서 싸우면 이길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람인들의 편협하고 우매한 생각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로하여금 허탄한 이교사상에 물들지 않도록, 또 이전쟁을 통해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라는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벤하닷은 단지 여호와를 일개지역신으로 여겼으나 전쟁의 결과는 여호와께서 우주만물의 창조자이고 통치자이심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악인이 범하기 쉬운 죄 ( 20:31-34 )
모든일을 자기가 이루었다고 하는 생각과 교만한 행동입니다. 교만한 인간은 그를 도우신 하나님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그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취합니다. 그러나 그결과는 파멸뿐입니다. 악인 아합이 저지른 실책은 자만심으로 불필요한 동정과 함께 벤하닷을 살려보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한 중죄였습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은 가나안 거민을 멸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치 못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손대대로 우상숭배 문제때문에 고민하게 되는 악의 근원을 만들어 주었습니다(신7:2).
사명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사람 ( 20:38-43 )
벤하닷을 살려보낸 아합은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저주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승리하게 하신것은 벤하닷을 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맡겨진 일을 다하지 못하고 헛된 자만심으로 하나님의 작정하신 일을 망쳐놓았던 것입니다. 사명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자신이 필수적으로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 모두에게 각각의 사명을 주셨습니다(마25:14 -30). 성도들은 주어진 삶속에서 자신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 해설
전쟁에서 승리한 아합의 실책 ( 20 )
본장에서는 다시 아합왕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당시 아람의 왕이었던 벤하닷은 앗수르의 공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위해 동맹국들을 규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와중에서 북이스라엘을 자신의 동맹국에 포함시키고자 수도인 사마리아를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아합은 두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모두다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차례의 아합의 실수는 돌이킬수 없는 결과를 야기시키고 말았습니다.
1. 아람과의 전쟁에서의 첫번째 승리
1) 사마리아를 포위한 벤하닷
아람왕 벤하닷은 인근 도시국가의 32명이나 되는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를 포위 공격하였습니다. 벤하닷은 아합에게 항복을 요구하며 은금과 처와 자녀들까지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아합이 쉽게 순응하자 벤하닷은 또다른 조건들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때 아합은 장로들과 백성들의 조언을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조언에 따라 아합은 벤하닷의 요구조건을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벤하닷은 이제 사마리아를 완전히 멸망시키겠다고 위협하였습니다.
a.사마리아를 포위한 벤하닷(왕하6:24)
b.내일 일을 자랑치말라(잠27:1)
2) 승리를 약속해주시는 하나님
이제 북이스라엘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속에 직면하였습니다. 무력으로 대항해서는 결코 승산이 없음을 아합은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때에 한선지자가 아합에게 나타나 여호와의 뜻을 전해 주었습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아람 군대를 무찌를 것이라 예언하면서 이는 하나님께서 아합으로하여금 여호와를 깨닫도록 하기위한 조처라고 말하였습니다. 아합은 선지자의 말대로 전투에 나갈 각도의 방백의 소년들을 준비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에게 먼저 찾아와주셔서 모든어려움과 위기를 잘 넘길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만큼 하나님은 악한 아합마저도 뜨겁게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a.이스라엘의 하나님(왕상18:36)
b.승리의 비결(삼상17:46-47)
3) 북이스라엘의 첫승리
아합은 오전에 기습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때 벤하닷은 술에 취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소수의 소년부대의 공격을 알고서도 이를 깔보고 무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소년부대는 아람진영을 큰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투입된 칠천명의 이스라엘 군사들에 의하여 아람군대는 정신도 못차리고 도주하기에 바빴습니다. 벤하닷도 간신히 말을 타고 도주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싸움에 개입하심으로써, 당신이 역사의 주관자로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아합은 물론이거니와 온백성들이 환난날의 구원자되시는 여호와앞에 자복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a.술취함(왕상16:9)
b.승리는 하나님의 뜻(빌2:13)
2. 아람과의 두번째 전쟁
1) 2차침공을 준비하는 벤하닷
승리의 기쁨을 안고 사마리아로 돌아온 아합에게 다시 선지자가 나아왔습니다. 이선지자는 아합에게 벤하닷이 내년 봄에 또다시 쳐들어올테니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반면 아람의 벤하닷은 1차전쟁에서의 실패를 토대로 새로운 작전을 준비하였습니다. 벤하닷의 신복들은 벤하닷에게 여호와가 산의 신이므로, 이스라엘의 기습공격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이제는 산이 아닌 평지에서 다시금 싸워야 할것을 조언하였습니다. 이에 벤하닷은 이조언들을 토대로 병력을 재정비하고 증강시켰습니다. 그는 겨울이자 우기인 시기가 지나 싸우기가 가장 좋은 내년 봄이 빨리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a.해가 돋을때의 침공(삼하11:1)
b.신성모독(사36:19-20)
2) 북이스라엘의 두번째 승리
해가 바뀌자 하나님의 계시대로 벤하닷은 다시 아벡으로 진군하였습니다. 아벡은 사마리아와 다메섹 중간에 위치한 고원지대로 평평한 곳이었습니다. 아합도 군대를 이끌고 나갔습니다. 아람군대에 비하면 이스라엘 병력은 염소새끼의 두 적은 떼와도 같이 보잘것 없었습니다. 이때 또다시 하나님의 사람이 아합에게 나타나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고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승리는 아합에게 여호와를 입증코자 하는 목적이 있음도 밝혀 주었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자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아람의 보병 십만명이 죽었고, 아벡성읍으로 도망친 군사들은 그성이 무너져 그만 칠천명이 죽기도 하였습니다. 벤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있는 어느골방에 숨었습니다.
a.아벡에서의 전투(왕하13:17)
b.골방에 숨음(대하18:24)
3. 아합에 대한 심판예언
1) 교만에서 기인된 아합의 실책
벤하닷의 신복들은 벤하닷에게 항복을 하여 자비를 구하라고 조언하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신복들이 참회하는 복종의 표시로서 굵은베와 테두리를 하고 아합에게 찾아갔습니다. 아합은 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벤하닷을 자신의 형제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벤하닷이 아합에게 오자 아합은 우정의 표시로 그를 자기의 병거에 태웠습니다. 이에 벤하닷은 아합에게 자기부친이 빼앗은 모든성읍들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또한 다메섹내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주하는 거리를 만들어 무역을 할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벤하닷은 아합과 약조를 한후 아람으로 되돌아갔습니다.
a.굵은 베옷(삼하3:31)
b.벤하닷이 빼앗은 성읍(왕상15:20)
2) 아합에게 내릴 심판의 예언
선지자의 무리중 한사람이 친구에게 자기를 치라고 할때 그친구가 거절하자, 여호와께 불순종한 죄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후 다른친구에 의해 부상을 당한 선지자는 부상당한 병사처럼 변장하여 아합을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실수로 포로 한명을 놓치게 되었다고 아합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아합은 즉시 그사람의 죄를 평가하였습니다. 이는 태만죄에 해당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선지자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바로 당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태만히 행했음을 책망하였습니다. 즉 벤하닷을 죽이지않은 아합의 실책을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선지자는 아합에게 임할 심판을 예언하였습니다. 벤하닷대신 아합이 죽게될 것이고 아람사람 대신 이스라엘백성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아합은 근심된 마음을 갖고 왕궁으로 돌아왔습니다.
a.변장(삼상28:8)
b.왕궁으로 돌아온 아합(왕상21:4)
결론
아합은 아람왕 벤하닷과의 전쟁에서 전적인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러한 승리의 배경에는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당신을 입증시키고자 하는 뜻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합은 이를 깨닫지못하고 오히려 적군인 벤하닷을 살려주는 어리석은 실책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아합에게는 그의 불순종에 대한 대가로 하나님의 심판만이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상 22장 - study  (0) 2022.11.03
열왕기상 21장 - study  (0) 2022.11.03
열왕기상 19장 - study  (0) 2022.11.03
열왕기상 18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7장 - study  (0) 2022.11.02

# Study

I. 이세벨을 피해 광야로 감 19:1-8
어떤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처럼 공개적이고도 분명히 나타난후에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배하는데로 돌아왔을 것이며, 엘리야를 지도자로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 귀중한 자인 그는 사람들에게는 무시되었다. 즉 그에겐 아무런 공경도, 배려도, 또한 어떠한 유익도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그는 이스라엘땅에서 분노를 샀다.
(1) 아합은 이세벨을 자극하여 엘리야에 대해 몹시 격분하도록 만들었다. 이세벨은 후일 황태후가 되었을때 왕과 나라를 지배하여 자기마음대로 오만하게 다스렸던 때처럼, 왕비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섭정 왕비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합의 양심은 엘리야를 박해하는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나 그는 이세벨에게 엘리야가 행한 모든것을 말해줌으로써(1절) 결과적으로 그녀를 납득시킨 것이 아니라 충동시킨 것이 되고 말았다. 그는 그녀에게 그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으로 말하지 않고, 마치 하나님의 손길이 전혀 관여하지 않은채 엘리야가 주문 혹은 마법으로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게 한것처럼 말하였다. 특별히 그는 그녀에게 엘리야가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것을 말하였다.
(2)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자신이 24시간이내에 그를 죽이기로 맹세하였다는 위협적인 전갈을 보냈다(2절). 그럼 왜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그에게 알려서 그로하여금 도망할 기회를 가지게 했는가? 아마도 그녀는 오직 그의 피를 원하였겠지만 그를 선지자로, 그것도 위대한 선지자로 생각하는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감히 손을 대지못하고 단지 이전갈을 보냄으로 그를 위협하여 쫓아내려고 했던것 같다.
(3) 이에 엘리야는 살기위해 아마도 밤중즈음에 브엘세바로 도망하였다(3절). 얼마전 아합과 바알의 모든 선지자들과 대결을 벌였던 엘리야의 그용기는 어디로 갔는가? 그는 자신이 이 중대한 기로에서 이스라엘에게 크게 도움이 될것이라는 사실을 알고있었고,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의지해야 하는것을 잘알고 있었지만 도망친 것이다. 전에 위험에 직면했을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몸을 숨기도록 명령하셨기에(17:3)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했던것 같다.
(4) 브엘세바에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유리했던 황량하고 광막한 광야로 들어갔다. 브엘세바는 이세벨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선한왕 여호사밧의 통치하에 있었으므로 그는 그곳에서 안전하게 지낼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두려움에 홀린 사람처럼 위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조차 쉴수가 없었으므로 광야로 하룻길쯤 더들어갔다. 그러나 아마도 그가 그곳으로 간것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과 더욱 마음놓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위하여 세상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기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기의 사환을 브엘세바에 머물게 하였다(3절). 이는 아마도 어리고 유약한 사환이 광야에서 고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5) 그는 여행으로 몹시 지쳐있었기 때문에 졸릴때의 아이들처럼 찌뿌둥하게 되어 '죽기를 구하였다'(4절).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어떤의미에 있어서는 정말 죽을만한 상태가 아니다. 자신을 죽이겠다는 이세벨의 맹세때문에 초조하게 달아났던 그가 여기서는 다시 죽기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으니 그는 여호와의 손에 죽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세벨의 위협대로 바알의 선지자처럼 죽느니 차라리 광야에서 죽고자 한것이다(2절). 이는 바알을 숭배하는 자들이 승리를 노래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렇게 탄원하고 있다. "이제 족하나이다. 나는 할만큼했고 당할만큼 당했습니다. 이제 사는데 지쳤습니다." 나는 내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4절). 이사람은 엘리야가 아닌가? 그위대하고 담대하던 심령이 이와같이 위축될수도 있다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여호와와 그전능의 힘안에 있을때에는 담대하고 강했지만 홀로 있을때에는 그의 열조나 형제보다 낫지않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이와같이 그를 혼자있게 버려두신 것이다.
(6)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그가 스스로 자초한 궁핍과 위험가운데서 천사를 보내어 그를 먹이셨다. 엘리야는 죽기를 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필요하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그를 사용하고 높이고자 하셨으며 따라서 그를 살리기위해서 천사를 보내셨던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대로 행하시며 또한 급하고 어리석은 요구대로 응답해주신다면 우리는 해로운 자리에 떨어지게 될것이다. 죽기를 기도한후 그는 잠든가운데 죽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누워잤다'(5절). 그러나 그는 깨어났고 자신을 위해서 떡과 물이 준비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천사가 자신을 시중들고 있는것을 보았다. 천사는 그가 잠들었을때 그를 지켜주었으며 아울러 그를 위한 음식이 준비되었을때 두번이나 그를 불러 먹게하였다(5,7절).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디에 있든지간에 여전히 아버지의 땅에 있듯이 그들은 여전히 아버지의 감찰하심과 돌보심가운데 있게된다. 그들이 광야에서 길을 잃을지는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잃어버리지 않으신다.
(7) 그는 이음식으로 힘을 얻어 '하나님의 산호렙'으로 나아갔다(8절). 그는 아마 그곳에 자신의 뜻대로 간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갔을 것이다. 이는 그로하여금 모세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었던 바로 그장소에서 교제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천사가 그에게 두번이나 먹도록 명하였는데 이는 그가 가야할 여행길이 멀었기 때문이었다(7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기위해 우리에게 충분한 은혜로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항해를 결정하신 이가 거기에 따라서 배에 식량을 공급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엘리야를 먹여살리시는가를 보라.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들을 통해서 모든음식으로 그를 먹이셨다. 그다음에는 천사를 통해서 먹이셨으며 이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시기 위해서 음식없이,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의 1년을 하루로 계산한 40일을 계속해서 길도 없는 광야를 가로질러 가게하셨다. 그래도 그는 음식을 필요로하지 않았으며 원하지도 않았다.

Ⅱ. 엘리야와 하나님의 대화 19:9-18
(1)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전에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심으로인해 '하나님의 산'으로 불리우는 호렙산에 있는 동굴에 거하였다. 아마도 이곳은 여호와께서 모세앞으로 지나가시며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실때 그가 숨겨졌던 그굴 혹은 바위틈과 같은곳인것 같다(출 33:22).
(2) 하나님께서 거기로 그를 찾아오셔서 물으셨다.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9절). 우리는 어디에가든 하나님의 눈과 팔과 말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갔을때 그곳에서 전능자의 환상을 보았다(계1:9).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물으신 질문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하는 것이었다(9절, 13절). 이것은 책망의 말씀이었다.
1) 이것은 그가 그곳으로 도망간 것임을 증명해 준다. "너는 무엇때문에 집에서 이처럼 멀리와 있느냐? 너는 이세벨을 피해 도망한 것이냐?" '너'라는 대명사에 강조를 두고있다. 네가 어찌하여(9,13절).
2) 이것은 또한 그가 그곳에 안주하려 한것을 증명해준다. "너는 어찌하여 이굴에 있느냐? 이곳이 여호와의 선지자가 머물 장소이냐? 지금 이세상이 필요로하는 사람이 은신해 있을때냐?"
(3) 엘리야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한 설명이 나온다(10절). 그것은 똑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14절에 다시 반복되고 있다.
1) 그는 자신의 은신을 변명하고 있다. 선을 행할 희망이 있는한 그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며 또한 그자신의 양심이 그에 대해서 증거했다. 그러나 그의 모든수고는 헛되고 그의 모든노력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지금의 대의를 포기할때라고 생각하였다.
2) 그는 죄가운데서 완악해진 백성들에 대해 불평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의 언약을 버렸습니다. 그것이 내가 그들을 버린 이유입니다. 누가 그들중에 남아서 거룩한 것들이 파괴되고 헐리는 것을 보려하겠습니까?" 그는 종종 스스로 백성들의 변호인이 되어왔으나 지금은 불가피하게 하나님앞에서 그들을 고소하는 자가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것으로 백성들을 비난하고 있다.
①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렸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표시이자 증표인 할례를 계속 행해왔다 하더라도 언약의 목적이라고 할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봉사는 그만두었던 것이다.
② 그들은 주의 단을 파괴하였다. 그들은 단을 방치한채 파손되도록 내버려두었을 뿐만아니라 바알을 숭배하는 열심때문에 고의적으로 그것을 파괴하였다. 그당시 제단들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이들 분리된 단들은 비록 그것이 교회의 통일성에 금이가게 했다 할지라도 신실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원하는 자들에 의해 세워지고 섬겨졌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단들을 통해서 그들을 인정하셨다. 따라서 그단들을 무너뜨린 것이 여기 이스라엘의 죄로 비난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③ 그들은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다.' 그선지자들은 이마도 위에서 언급한 그단들에서 섬기던 자들이었던것 같다. 이방여인인 이세벨이 그들을 죽였으나(18:4) 대부분의 백성들이 그들의 죽음에 동의하고 기쁘게 여겼기에 그죄가 백성들 모두에게 씌워지고 있는 것이다.
3) 그는 자신이 이광야로 피신해와서 이굴에 기거하게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① 이는 그가 아무소용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나만 남았거늘. "어떻게 혼자서 수천명을 상대할수 있겠습니까?"
② 이는 그가 안전하게 행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희가 내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그러니 돌이키기를 싫어하는 자들을 돌이키고자 헛된노력을 하다가 목숨을 잃느니 무익하나마 혼자서 내삶을 보내는 것이 더낫겠습니다."
(4)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다. 그는 하나님을 상면하려고 이곳에 왔는가?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앞으로 지나갈때 그는 굴안에 있었으나 엘리야는 바깥으로 나오도록 부름을 받았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11절). 그는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실때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던 것처럼 그역시 어떤형상을 보지못했다. 그러나 첫째, 그는 강한 바람소리를 들었으며 그바람의 가공할만한 힘을 보았다. 이는 그것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기 때문이다. 둘째, 그는 지진의 진동을 느꼈다. 셋째, 그는 불의 분출을 보았다(12절).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세미한 소리'를 감지하였는데 그안에 여호와께서 계셨다. 즉 여호와께서는 바람, 지진, 혹은 불이 아닌 세미한 소리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것들은 그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주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무서운 소리들가운데서가 아니라 부드러운 속삭임가운데서 자신의 마음을 그에게 나타내셨다. 그가 이것을 알아차렸을때,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것을 두려워하여 '겉옷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웠다'(13절). 엘리야는 수치의 표시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는데 이는 그러한 능력의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심에도 불구하고 겁쟁이처럼 자신의 의무에서 도망했기 때문이었다. 바람, 지진, 불은 그의 얼굴을 가리게하지 못했으나 세미한 음성은 그렇게 했다. 은혜로운 영혼은 주의 진노하심보다는 부드러운 자비하심에 의해 더욱 감화를 받는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고 굴의 입구에 섰다. 이제 율법을 소생시키기위해 부름을 받은 엘리야는 여기서 그일을 어떻게 해낼것인가 가르침을 받고있다. 그는 지진이나 불같은 놀라운 이적으로 백성들을 깨우치고 두렵게 할뿐아니라 세미한 소리를 말하여 그들을 확신시키고 설득시켜야 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오는 것이다. 그리고 기적은 단지 그것으로 가는길을 만들어줄 뿐이다.
(5)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주신 명령은 이러하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전에 했던 질문을 다시 반복하고 계시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13절). "이곳은 이제 네가 있을장소가 아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변절과 믿음의 붕괴를 불평하고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다(14절).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그에게 답변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하사엘을 아람의 왕으로(15절),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그리고 엘리사를 그의 후임으로서 고귀한 선지자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임명하라는 지시와 함께 그를 되돌려보내고 계시다. 이것은 예언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시고 그자신의 대의를 변호하시며 언약을 떠난 자들에게 보응하시고자 하셨다(14절). 엘리사는 성령의 칼로써 하사엘의 전쟁의 칼과 예후의 정의의 칼을 피한 자들의 양심을 두렵게할 것이며 상처입게할 것이다.
(6) 엘리야는 오직 자기만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순결을 지킨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심으로 그에게 위로를 주신다. 내가 이스라엘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유다왕국은 제외함)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18절). 부패와 배교가 가장 성행하던 시대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자들, 즉 순결을 지키며 시대풍토에 따라가지 아니한 자들을 항상 남겨오셨으며 또 남기실 것이다. 그 남은자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다른자들과 구별되게 하는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의 은혜없이는 아무도 스스로 구별될수 없기 때문이다. 때때로 하나님의 신실한 자들은 그의 숨긴 자들이다(시 83:3). 키질을 하고 정제하며 구별하는 날이 올때까지 눈에 보이는 교회는 좀처럼 볼수가 없으며 밀은 겨속에 감춰져있고 금은 불순물가운데 섞여있게 된다. 우리는 알지못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알고계시다. 즉 그는 은밀한중에 감찰하신다. 세상에는 현명하고 경건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많은 선한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게될때 거기서 우리가 보게되리라고 생각한 것은 사람이 없는반면에 우리가 그곳에서 보리라고 거의 생각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박애보다 더욱 크고 넓다는 사실이 종종 입증된다.

Ⅲ. 엘리사를 부르심 19:19-21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지시하신 명령중 마지막에 언급되어 있으나 첫번째로 부름을 받았다. 이는 다른 두사람은 엘리사에 의해 부름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엘리야의 자리를 이를 자였고 엘리야도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그런 훌륭한 일꾼에게 물려준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었다. 엘리사의 부르심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찾아볼수 있다.
(1) 그것은 전혀 예기치않았던 놀라운 부르심이었다. 엘리야는 들판에서 그를 만났는데 그는 독서나 기도나 제사드리는 일이 아니고 '밭을 갈고' 있었다(19절). 그는 21절의 잔치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지체가 높은 자였으며 또한 토지와 소와 종들을 거느린 주인이었으나 자기손으로 밭을 가는것을 천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의 훌륭한 직업이 우리를 하늘의 소명에서부터 제외시키지는 못한다. 엘리사는 마치 사도들이 어부로부터 사람을 낚는 사람들이 되었듯이 밭을 가는자리에서 이스라엘을 먹이기위해 말씀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 되었다.
(2) 그것은 권위있는 부르심이었다. 엘리야는 친밀감의 표시로 그에게 단지 자기의 겉옷을 던졌다(19절). 그것은 그의 몸이 겉옷의 보호를 받듯이 엘리사를 그의 보호와 가르침아래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고 또한 그의 영으로 엘리사를 옷입히는 것이라고 할수 있는데 이제 그는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그랬던 것처럼(민 27:20) 자신의 명예의 일부를 엘리사에게 입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후에 엘리야가 승천했을때에야 엘리사는 그의 겉옷을 완전히 소유하게 된다(왕하 2:13). 그는 즉시 소들을 버려두고 '엘리야를 좇았다.' 보이지않는 손길이 그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며 설명할수 없는 어떤 은밀한 권능에 의해 그의 마음이 움직여짐으로 아무런 외적 설득없이 자신의 농사를 내버리고 사역에 헌신케 되었다. 엘리사는 즉시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잠시 시간을 요청했는데 이는 부모에게 허락을 얻기위해서가 아니라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였다. 엘리야는 돌아가서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였다. 그는 그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그의 뜻에 반대하여 그를 붙들지도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효능은 인간의 타고난 자유의지를 보존해준다. 그래서 선한자들은 구속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택에 의해서,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하게 된다.
(3) 그것은 엘리사에게는 기쁘고 만족스러운 부르심이었다. 그사실은 그가 가족들을 위해 베푼 작별의 잔치로 미루어 알수 있다(21절). 선지자들은 절망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을때 나서게 된다. 혈육과 의논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엘리야의 겉옷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며 기꺼이 그의 옷을 입으려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기쁘게, 그리고 크게 만족하는 마음으로 모든것을 버렸다.
(4) 그것은 효과적인 부르심이었다. 엘리야는 그로하여금 억지로 자신을 따르게 하는것처럼 보이지않으려고 오래 지체하지 않았으며, 엘리사도 곧 일어나서 그를 좇았다. 그리고 엘리야와 연합했을뿐만 아니라 그의 종처럼 그에게 수종들었다.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부었다'(왕하 3:11). 훌륭한 교사가 되려면 먼저 오랫동안 배워야 한다. 즉 장차 세움을 받고 다스리게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먼저 기꺼이 자신을 낮추고 섬길수 있어야 한다.

# 핵심
19:1-21
갈멜산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엘리야가 자기를 죽이려하는 이세벨의 음모를 피해 나약하게 도망쳤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엘리야에게 나타나셔서 힘과 소망을 주셨고, 엘리사를 그의 후계자로 삼도록 명하셨다.
엘리사의 헌신(19:21)
엘리사는 선지자의 소명에 임하기위해 자신의 옛생활방식을 버리고 온전히 헌신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이와 비슷한 헌신을 요구하셨고, 그들도 즉각적인 순종을 보였다(막 1:16-20; 2:14). 새로 신앙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결단하는 모든이들에게도 이와 동일한 헌신과 삶의 변화가 요구된다(막 8:34-38).

# 묵상
패역한 인간의 본성 ( 19:1, 2 )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계속 교만한 마음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스스로의 눈과 귀만으로는 깨달을수 없고, 오직 성령께서 깨우쳐주셔야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막4:12).
하나님의 사람의 절망 ( 19:3-8 )
하나님의 사람이 절망하는때는 주님의 일을 이루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결과를 인정해 주지않고 계속해서 핍박할 때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소유한 사람들로서 어떠한 상황아래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절망에 빠진 인간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 19:5-14 )
하나님은 인간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천사를 보내서 도와주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때 친히 고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해야만 그절망에서 승리할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절망중에 있는 성도와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아합과 이세벨을 이기는 것은 강한 바람이나 지진, 불같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조용한 섭리에 의한 것임을 알게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무조건 진행해야만 하는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하나님의 뜻에 맞는방법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절망중에 위로받은 엘리야 ( 19:15-18 )
새로운 사명과 함께 일할수 있는 동역자가 있다는 사실이 엘리야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에 빠진 성도들에게 먼저 확신을 주시고,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여 용기를 더하시고, 위로하여 열정을 불어넣으십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 ( 19:19-21 )
주저하지않고 부르심을 받은 즉시 응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르심이 있었을때 즉시 모든것을 다버리고 예수님을 좇아가는 결단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눅5:28). 주님을 따르는 삶이 기쁘고 참되기에 다른것은 버려두고 참길이 되신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야합니다.
엘리야의 부름에 대한 엘리사의 반응 ( 19:20, 21 )
자신의 사명을 사모하고 있었고, 미련없이 자기의 소유를 버리고 전적으로 헌신을 결단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대언할자로, 우상숭배자들과 대항할자로 등장합니다.

# 해설
엘리야을 위로하는 하나님 ( 19 )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살아계심을 몸소 체험하였을 뿐만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하였습니다. 이러한 그가 이세벨의 보복소식을 듣고서는 한없이 좌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호렙산에서 세미한 음성가운데 엘리야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사엘과 예후와 엘리사에게 기름을 붓도록 하는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후 엘리야는 자기의 뒤를 이을 엘리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1. 낙망에 잠긴 엘리야
1) 보복을 결심한 이세벨
갈멜산에서 돌아온 아합왕은 지금까지 벌어졌던 모든사건들을 이세벨에게 상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보고서도 이에 대한 관심은 없었고 바알 선지자들의 죽음만을 말하면서 이세벨의 분노를 자극하였습니다. 엘리야에 대한 증오로 가득찬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엘리야의 생명을 24시간내에 반드시 죽이겠다는 위협을 전하였습니다.
a.바알선지자를 죽인 엘리야(왕상18:40)
b.선지자를 죽인 이세벨(왕상18:4)
2) 공포에 빠진 엘리야
엘리야는 이세벨의 보복소식을 접하고서는 공포에 질렸습니다. 이러한 엘리야의 모습은 갈멜산에서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지닌 연약한 인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엘리야는 그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었으나 이모든 것을 망각하였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자 남유다의 최남단인 브엘세바에까지 도망하였습니다. 이것도 부족하여 혼자 네게브광야로 하룻길을 더갔습니다. 마침내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쉬던 엘리야는 너무나 낙심한 나머지 죽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이제 엘리야의 마음에는 현실을 초월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이세벨의 증오만이 보였던 것입니다.
a.브엘세바(창21:31)
b.죽기를 간구함(민11:15)
3) 천사의 도움을 입는 엘리야
낙심하여 지쳐 쓰러진 엘리야를 위해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그천사는 엘리야를 깨워 떡과 물을 먹였습니다. 엘리야는 이것을 먹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천사는 또다시 엘리야를 깨워 음식을 권하였습니다. 천사는 엘리야가 앞으로 40일동안의 여행을 통해 호렙산에 가야할 예정을 알고있었기에 음식을 제공했던 것입니다. 천사의 도움으로 새힘을 얻은 엘리야는 호렙산을 향해 40일간의 여정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이기간에 엘리야와 동행하시면서 많은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드디어 엘리야는 호렙산에 당도하였습니다. 이산은 모세의 정취가 가득담긴 하나님의 산으로,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 언약을 맺기도 하셨던 바로 그산이었습니다.
a.천사의 수종(막1:13)
b.하나님의 산 호렙(출24:18)
2. 세미한 소리로 나타나신 여호와
1)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여호와
호렙 산에 당도한 엘리야는 그곳에서 굴을 하나 발견하여 거기에 몸을 숨겼습니다. 어느날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어찌하여 이곳에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는 엘리야의 지금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않음을 내포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궁색한 답변을 하였습니다. 자신은 열심을 냈으나 실패하였고 오직 혼자만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마귀의 세력앞에 모든것이 쓰러졌고 오직 자신만이 무방비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었습니다.
a.엘리야의 궁색한 답변(롬11:3)
b.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출3:4)
2) 세미한 소리로 나타나신 여호와
엘리야의 초라한 모습에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새롭게 자신을 엘리야에게 보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갑자기 엘리야앞에 바람과 지진과 불이 나타났으나, 그곳에는 여호와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금후에 세미한 소리가 엘리야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세미한 음성처럼 부드럽고 가깝게 엘리야와 함께할 것을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a.여호와가 일으키신 현상(겔1:4)
b.세미한 소리(욥4:16)
3) 엘리야의 똑같은 답변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로 조금전과 똑같은 질문을 엘리야에게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불과 지진같은 극적인 상황속에서 엘리야에게 나타났으나, 이제부터는 부드러운 방법으로 나타나실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엘리야에게 새로운 답변과 결심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조금전의 대답과 똑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을 위로하시고, 새롭게 능력을 행사하시는 여호와를 직접 목격하고서도 그의 불신앙적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a.얼굴을 가리우는 모세(출3:6)
b.모세의 답변(출3:11)
3.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은 엘리야
1) 왕과 선지자를 세우라는 명령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다메섹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나서 그에게 3가지 임무를 주셨습니다. 첫째는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이 되게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것과 마지막으로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의 후계자로 삼으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죄악된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바알숭배에 제동을 걸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바알앞에 무릎을 꿇지아니한 신실한 백성들이 엘리야말고도 7,000명이나 더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소식은 엘리야에게 크나큰 용기와 위로를 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어떠한 환난속에서도 좌절치 말아야할 것을 교훈하고 계십니다.
a.기름부음 받은 예후(왕하9:6)
b.이스라엘을 괴롭히는 하사엘(왕하8:12)
2) 엘리야의 후계자가 된 엘리사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임한 즉시 엘리사가 있는 아벨므홀라로 갔습니다. 엘리사는 그곳 지역의 유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겉옷을 던졌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직책, 사명 그리고 능력 등을 전위한다는 뜻을 담고있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의미를 즉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허락하에 부모와 작별인사를 하고, 소를 잡아 이웃주민들과의 작별연회를 베풀었습니다. 그런후 엘리사는 자신의 생업, 포부, 집 등을 모두 깨끗이 청산한후 엘리야를 쫓아갔습니다. 이제부터 엘리사는 엘리야를 수종하면서 후계자로서의 자격과 능력을 갖추기위한 훈련에 돌입하게 된것입니다.
a.엘리야의 겉옷(왕하2:8)
b.수종드는 자(왕하6:15)
결론
갈멜산에서의 엘리야와 로뎀나무 아래에 있는 엘리야의 모습은 너무나 상반되는 신앙의 모습이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몸소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불신앙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연약한 엘리야를 위로하셨습니다. 이는 자기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극명하게 표현된 것입니다. 이제 엘리야는 엘리사를 준비시키는 사역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상 21장 - study  (0) 2022.11.03
열왕기상 20장 - study  (0) 2022.11.03
열왕기상 18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7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6장 - study  (0) 2022.11.02

# Study

I. 엘리야와 오바댜의 만남 18:1-16
1. 이스라엘의 비참한 형편(3-6)
두가지 이유로 이스라엘은 비참한 형편에 놓이게 된다.
(1)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때에(4절). 죽일때에(13절). 우상숭배자인 그녀는 핍박자이기도 했으며 또한 아합도 핍박자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 악한시대에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선한사람들이 있었으며 또한 신앙면에서 그들을 도운 선한선지자들도 있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모두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가버렸다(대하 11;13,14). 그대신 하나님께서는 이선지자들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사적인 모임에서 혹은 성결함을 계속 지키는 가정에서 율법을 읽고 해석해 주었다. 그들은 엘리야처럼 예언의 영을 가지지 못했으며 제사도 분향도 드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들로하여금 경건한 생활을 하도록 가르쳤으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가까이 하도록 가르쳤다. 이세벨은 이들을 멸할것을 계획하고 그대부분을 죽였다. 그것은 공공연한 부조리만큼이나 공공연한 학살로서 이스라엘에 얼마남지 않은 신앙인들을 철저히 진멸할 기세였다. 칼을 피한자들은 도망하여 동굴에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곳에 생매장된 셈이었으며 생명은 아니지만 유용함이 죽임을 당했다. 유용함이란 생의 목적이자 낙이 되는 것이다.
1) 매우 선한사람이 한명 있었는데 그는 '오바댜'란 궁내대신으로 그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종"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하나님께 신실한 자이었으나 아합의 신하였다. 이 오바댜는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3절).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12절).
① 아합처럼 악한자가 그를 등용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이는 틀림없이 그가 뛰어나게 정직하고 근면하며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합이 안심하고 믿을만한 자였으며 본문에 나타나는 것처럼 아합 자신만큼이나 신뢰할만한 인물이었다.
② 오바댜처럼 선한사람이, 우상숭배와 온갖 악한 습성에 빠져있는 궁정에서 고관으로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오바댜가 만일 바알에게 무릎을 꿇어야 그지위에 오를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는 그자리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바댜는 선한양심으로 그지위를 누릴수가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세상이 악하다할지라도 세상을 피할 필요가 없다.
2) 이 지극히 선한사람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보호하는데 자신의 권세를 사용하였다. 핍박이 격렬해졌을때 그는 선지자 백명을 두동굴에 나누어 숨겨 '떡과 물을 먹였다'(4절). 하나님께서 환난때에 자신의 사역자들과 백성들을 위하여 피난처를 준비하심에 있어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곳에서 도와줄 사람을 세우시는 놀라운 능력을 보라.
(2)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일때, 하나님께서는 극심한 가뭄을 일으켜 일용할 양식을 끊어버리셨다. 아마도 이세벨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이재앙의 원인이 된것처럼 꾸며서 그들을 핍박했을 것이다. 이는 엘리야가 그재앙을 예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반대로 알려주셨다. 즉 바알의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기까지 기근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한재가 너무 극심한지라 왕과 오바댜는 친히 가축들에게 먹일 꼴을 찾기위해 그땅 전체를 두루다녔다(5,6절). 아합은 이미 많은짐승을 잃었으므로 남은 것들까지 다잃게 될까봐 염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않았다. 그는 꼴을 찾는데는 많은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은총을 찾는데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않았고, 재앙을 막기위해서는 많은수고를 했으나 그재앙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은 찾지않았다. 유다땅은 이스라엘땅과 가까이 붙어있었으나 유다가 가뭄이 있었다는 기록은 찾아볼수 없다. 이는 유다는 아직 하나님과 더불어 다스려졌기 때문이다.
2. 엘리야와 오바댜의 만남 (7-16)
엘리야는 '디셉'사람으로서 행하기위해, 즉 이낱말의 뜻인 "개종자, 개혁자"로 행하기 위해 이때 다시 나타나는데 그출현은 재앙의 고통을 없애기위해 취해진 단계적인 조처였다. "그들을 다시 패역한 자리로부터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이키게 하라. 그러면 즉시 모든일이 다 잘될 것이다." 이것이 엘리야가 할일이었다(눅 1:16,17절을 보라).
(1) 아합은 엘리야를 찾는자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제의하면서까지 그를 부지런히 찾았다(10절). 그가 엘리야를 부지런히 찾았던 것은 그가 저주한 것에 대해 벌하려 하기보다는 그심판을 철회시킴으로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2) 하나님께서는 드디어 엘리야에게 아합앞에 나타나도록 지시하셨다. 이는 '지상에' 아니 '그땅에' 비를 내리실때(1절)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엘리야는 그릿시냇가에 1년을 숨어 있은후에 사르밧 과부의 집에 2년이상을 숨어지냈다. 따라서 1절에서 말하는 '제3년'은 그곳에서 지낸지 3년째임을 말하는 것으로 기근이 있는지 4년째 되는 해였다. 기근은 우리가 아는대로 3년 6개월간이나 계속되었다(눅 4;25;약5:17).
(3) 엘리야가 먼저 스스로 나타났다. 혹은 오바댜에게 자신을 발견케 했다. 그는 성령에 의해서 오바댜를 만날장소를 알고있었다.
1) 오바댜는 엎드려 큰경의를 표하며 문안인사를 하고는 겸허하게 물었다. 내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7절). 엘리야가 선지생도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애정을 보였듯이 오바댜 역시 선지자들의 어른인 엘리야에게 자식과 같은 존경을 표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그가 참으로 '여호와를 크게 경외하는' 자임을 알수 있다.
2) 엘리야는 그에게 답변하는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① 그는 오바댜가 자기에게 붙여준 명예로운 호칭을 아합에게 양도하고 있다. "나말고 그를 너의 주로 부르라." 그호칭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않는 선지자에게보다는 왕에게 더 적합한 것이다. 선지자들은 지배보다는 의무를 더 염두에 두어야하는 자들로서 '주'라고 불려지기보다는 오히려 "예견자, 목자, 파수꾼, 사역자"로 불려져야 했다.
② 그는 오바댜에게, 가서 왕에게 자신이 왕과 말하기위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말하라고 명하고 있다.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있다 하라(8절).
3) 오바댜는 이소식을 아합에게 전하는 임무를 면하게 해달라고 엘리야에게 간청한다. 이는 그것이 생명을 내걸어야 하는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엘리야가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라고 했을때, 엘리야가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합의 악행이 쓸모없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만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아합이 엘리야로부터 어떤친절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자이며 또한 엘리야가 아합으로부터 어떤해를 입는다는 것도 합당치 못하다는 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합이 자신을 우롱했다는 이유로 혹은 엘리야가 지척에 있을때 그에 대해서 손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우 격노하여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12절). 그는 자신이 이와같이 생명의 위협을 받을만큼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다고 탄원하고 있다. 내가 무슨죄를 범하였기에(9절). "내가 선지자들을 어떻게 숨긴것을 내주는 듣지 못하셨나이까"(13절). 그는 자신이 비록 아합의 신하이긴 했으나 그의 유익을 구치않았다는 것을 엘리야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이와같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주많은 선지자들을 보호한 자신이 큰선지자에 의해 생명이 위태롭게 되는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4) 엘리야는 그가 안심하고 이소식을 아합에게 전하게 하기위해서 맹세를 함으로써 그를 만족시켜 주었다. 즉 바로 이날 자신이 스스로 아합에게 나타날 것을 확신시켜준 것이다(15절).
5) 이로써 엘리야가 한장소에서 즉시 그를 만나기를 원한다는 통보가 곧 아합에게 전해졌으며, 아합은 그요구를 받아들인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려하여 가다가(16절). 우리는 아합이, 그렇게 오랫동안 찾았으나 찾지못했던 엘리야가 찾지도 않았는데 나타났다고 하는소식을 들었을때 크게 놀랐으리라고 추측할수 있다. 그는 꼴을 구하러 나갔다가 엘리야를 만났는데 바로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를 기대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죄악된 양심은 그로하여금 그것을 바라지않고 오히려 또다른 더무서운 심판을 받을까만 두려워하게 했다.

Ⅱ.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제의 18:17-20
교회가 축복으로 누려온 선지자중 가장 훌륭한 선지자인 엘리야와 세상을 괴롭힌 왕중 가장 악한 아합이 만나게 된다.
(1) 아합은 그답게 비열하게 엘리야를 비난하였다. 그는 여로보암이 선지자를 치려고 손을 폈다가 그손이 말랐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기때문에 가히 엘리야를 치려고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 악한말을 하였는데 그것은 그를 보내신 이를 모욕하는 것과 다를바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자여 네냐(17절). 아합의 신하 오바댜가 엘리야에게 '내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라고 문안한 것과 비교해볼때 이것은 얼마나 큰차이인가(참조. 7절). 오바댜는 여호와를 내맡긴 자였다. 이들의 특성은 그들이 각각 선지자에게 말한 양식에 드러났다. 가장 훌륭하고 유용한 사람들도 때로는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자들로 취급받으며 국민을 비탄가운데 빠뜨리는 자들로 내몰리기도 한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조차 이와같이 오해받았었다(행 17:6).
(2) 엘리야는 담대하게 그책임을 왕에게로 돌리며 그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자라는 사실을 그에게 입증해 보였다(18절). 즉 이러한 재앙이 있게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 자들때문이지, 단지 그들에게 예언하고 경고함으로 그백성들로 회개케하여 재앙을 막으려했던 자신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했으나 그들이 치료받기를 원치 않았다." 그 저주받은 바알들을 좇은 아합이 이스라엘을 괴롭게한 자였다.
(3) 엘리야는 왕중의 왕으로부터 직접 권세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제단이 있던 갈멜산에서 국가적인 대회를 즉각 소집하도록 명하였다(30절). 온이스라엘이 엘리야를 만나기위해서 그곳으로 나아와야만 했다. 또한 전국에 산재해있던 바알의 선지자들과 이세벨의 집에서 종교적인 일을 담당했던 모든자들도 각기 그곳에 와야만 했다.
(4) 그에 따라 아합은 이 큰대회를 소집하기 위해서 명을 내렸다(20절). 이는 그가 엘리야를 두려워해서 감히 그를 거역하지 못했기때문이거나 아니면 엘리야가 그땅을 축복함으로 비가 오도록 할것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모든백성들은 왕이 지시하는대로 행하였다.

Ⅲ. 갈멜산에서의 대결 18:21-40
아합과 백성들은 엘리야가 이 엄숙한 대회에서 그땅을 축복하고 비를 오게하기 위해서 기도해주리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는 먼저 할일이 있었다. 백성들이 마땅히 회개하고 돌아와야만 그심판이 끝날텐데 그때까지 전혀 그렇지 못하였다. 하나님을 저버린 자들은 다시 돌아와서 충성하기까지는 결코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지 못한다. 설혹 엘리야라도 그의 일을 이와같이 의롭게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가 일흔번씩 일곱번을 비를 달라고 기도했을지라도 응답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움은 의심할 여지없이 정당해서 그정당성의 증거를 조사하고 판단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1. 엘리야의 책망(21)
엘리야는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알을 같이 숭배하는 것에 대해 책망하였다. 그들은 각기 하나님과 바알을 숭배하였을 뿐만아니라 그들중에는 이둘을 모두 섬기는 자들도 있었다. 그는 이것이 '두사이에서 머뭇머뭇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21절). 그들은 선지자들을 기쁘게하려고 하나님을 숭배했으나 동시에 이세벨을 기쁘게하고 왕궁에 잘보이기 위해 바알을 숭배하였다. "오직 한분 하나님만이 무한하시고 지고하시다. 오직 전능하시고 모든것을 충족케하시는 한분 하나님만 필요하다. 이미 완전한 것에 무엇을 더 추가하랴? 이제 시험을 해서 바알이 무한하고 전능하며 지고한 신이요 모든것을 충족케하는 은혜를 베푸는 자라면 너희는 여호와를 버리고 오직 바알만을 섬기라. 그러나 만일 여호와만이 참하나님이며 바알은 속임수라면 너희는 더이상 바알과 상관하지 말아야한다." 두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는자들이란 확고부동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불안정한 목표를 세우며, 약속을 그럴듯하게 하나 실행을 못하고, 시작은 잘하나 꾸준하지 못하며, 선한일에 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미지근한 자들이다. '그들은 두마음을 품었으니'(호 10: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받지 않으신다. 우리는 우리가 섬길자를 공정하게 택하여야 한다(참조. 수 24:15). 백성들은 엘리야가 여기에 제시한 이 공정한 제안에 대해서 무슨말을 해야할지 알지못했다. 백성이 한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2. 엘리야의 제안922,23)
엘리야는 그문제를 공정한 시험대에 올려놓기를 제안하였다. 모든 외적인면에 있어서 바알은 유리한 입장이었다. 왕과 궁정이 모두 바알의 편이었으며 백성들의 집단 또한 그러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450명이었으며(22절) 그외에 그들을 지원해주는 자들이 400명 더있었다(19절). 그러나 하나님의 선지자는 단지 한사람으로서 그나마 비참한 유랑생활을 하여 가까스로 굶주림을 면한 사람이었다. 즉 하나님의 대의는 그자체의 정당성외에는 지지해줄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제안한다. "각편이 희생제물을 준비하고 각편의 신께 기도하자. 그리고 불로써 응답하는 신을 참신으로 정하자. 만일 어느쪽도 응답이 없으면 백성들은 아무것도 믿지 말것이며 둘다 응답하면 두사이에서 계속 머뭇거려도 상관없으리라." 엘리야가 하나님을 위하여 단신으로 막강한 권력과 인원들을 상대했다는 것은 그의 용기의 한실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증인들과 변호자들로하여금 사람의 낯을 결코 두려워하지않도록 격려해준다.
3. 백성들의 찬성(24)
백성들은 그제안에 동의하였다. 그말이 옳도다. 아합과 바알의 선지자들은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감히 거역하지 못했다. 만일 이시합에서 그들이 단지 무승부만이라도 될수 있다면 다른 여러 유리한 조건들로 그들은 승리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합은 시작되었다.
4. 바알 선지자들의 시험(25-29)
바알의 선지자들이 먼저 자기들의 신으로 시도를 해봤으나 헛수고였다. 엘리야는 그들에게 우선권을 내어주었다(25절). 즉 그들로 크게 당황케하려고 우선권을 그들에게 준것이다.
(1) 바알의 선지자들은 얼마나 끈질기고 요란스럽게 바알에게 간구했는가. 그들은 자기들의 희생제물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하나같이 사력을 다하여 부르짖었다.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26절). 바알에게 간구하는동안에 그들은 얼마나 어리석었으며 얼마나 짐승같았는가! 어리석게도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송아지같이 희생제물이라도 된양 그 '단주위에서 뛰놀았다.' 그들은 그들의 신을 기쁘게하려고 뛰놀았던 것이다. 또한 미친 사람들처럼 그들은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상하게 하였다'(28절). 이는 그들이 응답받지 못하여 안타까왔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일종의 예언자적 광란으로서 자신들의 피를 바알에게 바침으로 은총을 얻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를 경배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베는것을 금하셨다(신 14:1).
(2) 엘리야는 그들에게 얼마나 신랄하게 말했는가(27절). 그는 몇시간동안이나 옆에 서서 그들이 우상에게 기도하는 것을 참을성있게 들었다. 그러나 은근히 모멸감이 생기고 부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정오에 이르러서는 그들을 조롱하였다. 큰소리로 부르지않으면 들을수 없으리라." 바알의 선지자들은 엘리야가 던진 정당한 비난으로 깨우침을 얻기는커녕 도리어 수치를 느끼고는 더욱 격렬하여지고 어리석음가운데 빠져들었다.
(3) 바알은 얼마나 귀가 먹었다. 엘리야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으며 지쳐서 완전히 포기할때까지 계속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것은 '저녁소제'를 드릴때까지 계속되었다(29절).
5. 하나님께로부터 불로 응답받음(30-38)
엘리야는 하나님께로부터 곧 불로써 응답을 받았다.
(1) 그는 단을 수리하였다. 그는 바알의 선지자들이 사용한 단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그것이 바알에 대한 기도로 더럽혀졌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는 거기서 전에 여호와를 섬기는데 사용되었던 단이 무너져 있는것을 보고는 그것을 수리하는 것을 택했다(30절). 이는 그가 어떤 새종교를 백성들에게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조상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숭배를 회복시키려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단을 열두지파의 수효에 따라 '열두 돌을 취하여' 수리하였다(31절). 비록 열지파가 바알에게 돌아섰다할지라도 그는 조상들과의 옛언약으로인해 그들이 여전히 하나님께 속해있음을 알고있었다.
(2) 그는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단을 쌓고는 희생제물을 준비하였다(32,33절). '보라. 송아지와 나무는 있거니와 불은 어디에 있는가(참조. 창 22:7,8). 하나님께서 친히 불을 준비하실 것이다. 만일 우리가 신실하게 하나님께 마음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안에 거룩한 불을 밝히실 것이다. 엘리야는 제사장도 없었고 그를 시중드는 레위사람들도 없었다. 갈멜산에는 성막도 성전도 없었다. 그러나 어떤제사도 이것보다 더 하나님께 받아들여진적이 없었다.
(3) 그는 단에다 많은물을 붓도록 명하였다. 그렇게 하기위하여 그는 도랑을 준비하였다(32절). 그는 불이 내려온 것에 열두통의 물(아마도 바닷물이었을 듯싶다. 왜냐하면 바다가 가깝고 또 가뭄때에 그렇게 많은양의 신선한 물은 아주 귀한 것이어서 그렇게 쓰도록 하지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을 부었다.
(4) 그리고나서 그는 엄숙히 제단앞에 서서 제물을 재가 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열납하셨음을 나타내달라고 겸손한 마음으로 간구하였다. 그의 기도는 길지 않았으나 매우 진지하고 침착한 것이었으며, 그의 마음은 바알의 선지자들의 격렬함이나 무질서와는 달리 조용하고 차분하였다(36,37절). 그는 하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일컬음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선조들에 대한 그들의 관계를 상기시켰다. 그는 여기서 두가지를 탄원하고 있다.
1) 하나님의 영광 : "여호와여, 내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소서. 이는 '주께서 이스라엘중에서 하나님이 되심'을 알게하려 함이니이다".
2) 백성들의 교화 : "이는 그들로하여금 당신이,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사 그들의 마음을 다시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하기 위함이니이다."
(5) 하나님께서는 즉시 불로써 그에게 응답하셨다(38절).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도랑의 물을 핥았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것은 아니었다. 그기적을 완전하게 하기위해 그불은 제단의 돌과 흙까지 태웠다. 모세의 단과 솔로몬의 단도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로 거룩하게 열납되어졌었다. 그러나 이단은 더이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파괴되어졌다. 우리는 그불이, 범죄한 아합과 바알을 숭배하던 자들에게 얼마나 큰두려움이 되었겠는가 하는것을 쉽게 상상할수가 있다.
6. 이 공정한 시합의 결과(39,40)
바알의 선지자들은 패배하였다. 엘리야는 가장 분명하고도 부인할수 없는 증거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대신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였다.
(1) 백성들은 배심원처럼 그시합에 판정을 내렸으며 그들의 판정은 일치하였다. '모든백성이 엎드려'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39절).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이시라면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 될것이며 우리는 단지 그만 섬길 것이다." 이일로 말미암아 어떤이들은 자기들의 마음을 돌이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중 대다수는 그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뿐 회개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굴복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언약에 동의하지도 않았다.
(2) 바알의 선지자들은 범죄자들처럼 법에 따라 포박되고 정죄받았으며 사형에 처해졌다(40절). 엘리야는 그땅을 괴롭게한 죄목으로 그들 모두를 즉각 살육하도록 명했다(그것은 비상사역이었으므로 전례가 될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바알의 선지자 450명이었다. 아세라의 선지자들 400명도(혹자는 이들이 시돈사람들일 것으로 생각한다) 소집을 받았으나 참석치 않음으로 이처형을 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얼마후 그들은 아합으로하여금 길르앗라못으로 올라가게함으로 그를 파멸케하는 도구가 되기위해 보류되었음이 판명되었다(참조. 22:6).

Ⅳ. 비가 내림 18:41-46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인정할만큼 변화되었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문을 여시고 바로 그날 저녁에 그땅에 축복을 부어주셨다.
(1) 엘리야는 아합을 먹고 마시도록 보냈다. 아합은 온종일 금식을 하였다. 이는 경건하게 기도로 하루를 보냈기때문이거나 큰기대로 하루를 지내느라고 먹을여가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 먹고 마시라고 말한다. 이는 비록 다른사람들은 전혀 비가 올 기미를 알아채지 못했지만 엘리야는 믿음으로 '큰비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41절).
(2) 그자신은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물로 응답하시기를 기도하기 위해 물러갔다.
1) 그는 특별한 장소, 즉 매우높고 은밀한 곳인 갈멜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는 그곳에서 혼자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공적으로 행하도록 부름받은 자들도 그와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고 둘만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2) 그는 특별한 자세를 취했다. 그는 겸손의 표시로 땅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었다'(42절).
(3) 그는 사환에게 바다 곧 지중해로부터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자마자 자기에게 알리도록 명하였다. 그는 그것을 갈멜산꼭대기에서 확실히 예견했었다. 오늘날 항해사들은 그곳을 갈멜봉이라고 부른다. 그의 사환은 여섯번이나 언덕꼭대기에 가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지못했으며 그의 주인에게 아무런 좋은소식을 가져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엘리야는 계속해서 기도하였다. 그는 여전히 그의 사환으로하여금 고대하고 있는 구름이 혹 나타나지나 않나 알아보도록 보냈으며 그자신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한 그의 조상 야곱의 결의를 본받으려는듯 전념하여 기도하기를 계속하였다.
(4) 드디어 사람의 손만한 작은구름이 나타났다. 그것은 즉시 하늘을 덮었으며 땅에 비를 내렸다(44,45절). 때때로 큰축복은 작은 시작에서부터 일어나며 큰소나기는 한뼘정도 되는 구름에서부터 일어난다.
(5) 이에 엘리야는 아합을 급히 집으로 보내며 자신이 그를 수행하였다. 아합은 편안히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마차를 타고 갔다(45절). 그러나 엘리야는 아합앞에서 도보로 달려갔다. 만일 아합이 엘리야를 존경했다면 그는 당연히 이스라엘의 장로들앞에서 그에게 존경을 표하고 또 그나라의 개혁에 대해 그와 협의하기 위해서 에디오피아 내시가 빌립에게 했듯이 엘리야를 그의 마차에 태웠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타락은 그의 뉘우치는 마음을 훨씬 능가했으며 따라서 그는 마치 벨릭스가 바울을 내보내면서 더형편이 좋아지면 협의하자고 연기한 것처럼 엘리야를 멀리하려고 했다.

# 핵심
18:1-6
아합왕의 궁내대신 오바댜는 영적으로 극히 타락한 아합왕을 옆에서 보좌하는 직책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분의 선지자들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저녁소제(18:29)
소제는 곡물로만 드리는 제사였다. 성전에서는 매일 어린양을 잡아 아침저녁으로 두번의 제사를 드려야했는데, 이때 소제도 어린양과 함께 드려졌다(출 29:38-41). 저녁에 드리는 제사는 오늘날의 오후 3시경에 드려졌다(행 3:1).

# 묵상
오바댜의 삶 ( 18:1-6 )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오바댜의 삶을 통해 세상이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세상에서 의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때에도 숨어서 일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이 타락하고 몰락해있는 가운데에 머물러 있는것을 원하지 않으시기때문에, 그들은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충성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분별력 ( 18:7-15 )
영적분별력이란 하나님의 역사를 바로 분별할수 있는것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둔감하며 잠자는 성도는 분별력이 없지만, 깨어서 기도하는자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로 분별할수 있습니다(막14:30). 주님께서 오시는때는 어느누구도 알수 없고 추측할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앞에 도적같이 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파수꾼처럼 경성해서 열심히 자신을 지키는 자만이 그때를 알고 맞이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때를 분별할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결단의 순간 ( 18:21 )
인간들은 결단의 순간에 권력이 두려워 하나님편에 서지못하고 침묵을 지키는 소극적 자세를 견지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한 결단이 필요할때에 늘 진리편에 서서 확신있는 결정을 내려야합니다. 또한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선택이어야 합니다. 당시에는 이스라엘의 종교가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과 바알을 섬기는 신앙으로 혼합된 혼합주의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혼합주의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여호와만을 섬길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수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아니면 세상과 함께 멸망의 길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바알의 선지자 ( 18:28 )
이들은 자신들의 몸을 피가 나도록 상하게 했습니다. 그이유는 그것이 자기신을 부르는 최고조의 광적인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종교에서는 이런 자해행위가 신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다짐하는 것이었습니다(레18:21). 그러나 기독교는 자해행위 등의 금욕주의를 강조하기보다는 생활속에서 경건한 삶을 사는것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엘리야의 기도제목 ( 18:36-38 )
주께서 이스라엘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자신이 주의 종이 됨과, 자기가 주의 말씀대로 이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알게해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런 엘리야의 기도는 믿음있는 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인간의 생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여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가능케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갈멜산 대결 ( 18:39, 40 )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하나님을 인정했고, 바알선지자들은 기손시내로 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와같이 본문에서 엘리야는 담대한 하나님의 용사로 부각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믿음없는 사람들에게는 용기를 심어주고, 패역한 자들에게는 심판으로 다가오며,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더큰 믿음의 담력을 갖게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회 ( 18:39 )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태도는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섰음을 뜻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본 도마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것도 흡사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한사람 엘리야의 가르침이 이스라엘왕국 전체를 압도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원해주시도록 만드십니다.
엘리야의 기도 ( 18:42-44 )
간절하게 계속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기도는 온힘과 마음과 영을 다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결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비를 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 하더라도 그를 회개케하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기위하여 계속 은혜를 베푸시는 자비롭고 사랑이 많은 분이십니다.

# 해설
여호와와 바알간의 대결 ( 18 )
하나님께서는 이제 바알신의 허구성을 드러낼 시점에 당도하자 삼년만에 엘리야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어 당신이 비를 주관하시는 분임을 증명토록 하였습니다. 또한 갈멜산에서 모든백성들이 보는가운데 여호와가 참하나님임을 입증해 보이셨습니다.
1. 아합과 대면하는 엘리야
1) 여호와를 경외하는 오바댜
기근이 3년째 계속되던 어느날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기근이 끝나게 될것을 아합에게 알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이극심한 가뭄이 우연한 천재지변에 의해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기인했음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아합이 있는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당시의 사마리아는 가뭄의 재앙을 몰고온 아합과 이세벨이 살고있었기에 그기근이 가장 심했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자신의 궁내대신인 오바댜와 함께 최소한의 짐승들에게 먹일풀이 있는 꼴을 찾아 나섰습니다. 궁내대신인 오바댜는 아합의 신임을 받으면서도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자 할때에 선지자 백명의 생명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켜주기도 했던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a.가뭄의 상태(렘14:3)
b.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시33:8)
2) 엘리야와 오바댜의 만남
오바댜는 아합과 떨어져 꼴을 찾던중에 사마리아에 당도한 엘리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를 알아본 오바댜는 그에게 예우를 갖추고자 땅에 엎드렸습니다. 엘리야는 오바댜에게 아합과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오바댜는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이는 아합에게 엘리야에 대한 보고를 한후, 혹시라도 엘리야를 데려가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면 자신이 죽게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면서 아합앞에 반드시 서리라고 약속하였습니다.
a.다윗의 맹세(삼상20:3)
b.맹세(민30:2)
3) 아합과 대면한 엘리야
드디어 아합과 엘리야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합은 극심한 가뭄을 초래케한 자신의 죄악은 전혀 깨닫지못하고, 이모든 책임을 엘리야에게 전가시켰습니다. 이에 맞서 엘리야는 당당하게 아합의 죄악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는 아합이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바알을 숭배한 것과, 그결과로 가뭄이 임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엘리야는 어느신이 참신인지 밝히자고 아합에게 제의하였습니다.
a.아합과 엘리야(왕상21:20)
b.바알을 숭배한 아합(왕상16:31)
2. 갈멜산에서의 대결
1) 엘리야의 대결제의
갈멜산에서 모이자는 엘리야의 제의에 아합은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갈멜산은 이스라엘과 베니게의 중간에 위치한 곳으로 바알을 섬기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기에 아합은 이장소가 자기들에게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되어 백성들과 바알선지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참신을 섬길것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송아지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그는 바알선지자들에게 제의하기를 이송아지 제물위에 불로 응답하시는 신이 참신으로 드러날것이라 말하였습니다. 바알선지자들과 백성들은 엘리야의 이제의를 옳게 받아들임으로써 마침내 대결은 시작되었습니다.
a.여호와만 섬기라(수24:15)
b.두주인은 섬길수 없다(마6:24)
2) 바알선지자들의 실패
먼저 바알선지자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아침부터 열심히 기도를 드렸으나 무응답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들의 신과 그들을 조롱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들 선지자들은 이교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신의 비위를 맞추고자 자신들의 몸을 자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의 온갖 광란적인 방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바알신은 침묵하였습니다. 자신들 스스로가 바알신의 허구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a.가나안의 신 바알(삿3:7)
b.바알의 제사(렘19:5)
3) 하나님의 승리
이제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는 먼저 12지파의 수효대로 12돌을 취하여 여호와앞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물주위에 도랑을 판후 송아지 제물위에 물을 부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일어날 기적이 어떤 자연현상이거나 조작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임을 입증코자 하였던 것입니다. 드디어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참하나님이시고 백성들이 주께로 돌아올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자 곧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여 제단은 물론이거니와 도랑의 물마저도 다태워 버렸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백성들은 이제 어느신이 참신인지 분명히 알게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엘리야의 말에 따라 바알선지자들을 기손시내에서 몰살시켰습니다. 이때 아합은 어찌할바를 알지못하였고, 반면 이세벨은 엘리야에 대한 증오로 가득찼습니다.
a.마귀에 대한 승리(약4:7)
b.그리스도안에서의 승리(빌4:13)
3. 가뭄을 멈추신 하나님
1) 단비를 간구하는 엘리야
아합에게 가뭄을 예언했던 엘리야는 이제 그가뭄이 끝나고 비가 올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가뭄이 끝난것을 축하하기위해 먹고마시러 가고 엘리야는 비오기를 간구하기위해 갈멜산에 올라갔습니다. 그가 간절히 간구할때에 사람손만한 작은구름이 일어난다는 사환의 말을 듣고 그는 큰비가 올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아합에게 가서 큰비에 어려움 당하지 않도록 마차를 타고 갈것을 권면하였습니다.
a.단비를 간구하는 엘리야(약5:17-18)
b.비를 알리는 구름(눅12:54-55)
2) 삼년만의 단비
드디어 삼년 육개월만에 큰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엘리야도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아합이 가는 이스라엘을 향해 갔습니다. 비록 아합이 회개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불쌍한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자 단비를 허락하셨습니다. 갈멜산에서 여호와가 참하나님이심을 깨달은 백성들은 이비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단비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a.이스르엘 골짜기(수17:16)
b.하나님의 권능(겔3:14)
결론
하나님께서는 회개치않는 아합과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만이 참신임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신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생생하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또한 삼년 반만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하에 단비가 내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회개치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회개의 기회를 상실한 자에게 임할 심판만이 아합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열왕기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상 20장 - study  (0) 2022.11.03
열왕기상 19장 - study  (0) 2022.11.03
열왕기상 17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6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5장 - study  (0) 2022.11.02

# Study

I. 엘리야의 기근예언 17:1-7
엘리야의 이력은 다소 갑작스럽게 시작되고 있다. 엘리야는 멜기세덱의 경우처럼 부모나 자식에 관한 언급도 없이 마치 구름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시작된다. 그것이 몇몇 유대인들로하여금 그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으리라는 공상을 자아내게 하였으나, 사도는 우리에게 '그의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었다(약 5:17).
첫째, 그선지자의 이름 : 엘리야(1절). 그뜻은 "그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다"이다. 다시말하면 "나를 보내시고 인정하시며 증거하실이, 그리고 나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시 찾으시며 그 큰일을 효과있게 하실수 있는 유일하신 이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다"라는 말이다.
둘째, 그의 고향 :그는 요단저편, 즉 갓지파 아니면 므낫세지파에 소속된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였다. 이는 길르앗이 이 두지파에 의해 양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이 무엇하는 자들인지 살펴볼 필요는 있으나 그들이 어디 출신인지는 살펴볼 필요가 없다. 만일 선한 것이라면 그것이 나사렛에서 나온 것이라할지라도 아무문제가 되지않기 때문이다. 그는 디셉에서 온 '디셉사람'으로 불리우고 있다. 그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1. 기근을 예언한 엘리야(1)
그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값으로 기근을 당하게 될것을 예언하였다. 그는 그사실을 왕에게 선포하였다. 이는 왕의 권세로 온백성을 돌이키게하여 그심판을 미연에 방지케하기 위해서였다. 만일 왕이 회개하여 돌이키지 않는다면 이심판은 그땅에 내려지게 될것이다. 수년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진정으로 비를 내리지 말것을 기도하였다. 그러자 그의 기도대로 하늘은 그가 비오기를 위해서 다시 기도드릴때까지 놋처럼 되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다음다실을 일깨워주었다.
(1) 주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왕은 그하나님을 버렸다.
(2)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며 왕이 숭배하는 말못하는 죽은우상과 같지 아니하다.
(3) 자신은 사명을 가진 하나님의 종이며 보내심을 받은 사자이다.
(4) 현재 이스라엘이 평화스럽고 번영을 누리고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우상숭배하는 것으로인해 노여워하고 계시며 비를 내리지않으심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이징벌은 그들의 무력함과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난자들의 어리석음을 효과있게 보여줌으로써 선도 악도 행할수 없었던 자들을 돌아서게 할것이다.
(5) 그는 아합에게 자신이 하늘에 큰세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린다. "내말대로 될것이다."
2. 기근가운데서 보살핌을 받은 엘리야(2-7)
(1) 그는 어떻게 숨겨졌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서 그릿시냇가에 숨도록 명하셨다(3절). 당분간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마도 시냇가의 갈대숲속이었을 듯싶은 어떤인적이 드문 외딴곳에 홀로가서 거했다. 만일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를 한적하고 외딴곳으로 부른다면 묵묵히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만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수 없게될때 그를 위해서 더욱 조용히 앉아있어야 한다.
(2) 그는 어떻게 먹여졌는가. 여자, 즉 교회가 '광야로 도망하며' 저가 거기서 한때와 두때와 반때, 즉 3년 6개월동안 먹여지고 양육되어 지도록 보살펴졌다(계 12:6,14절을 보라). 그기간은 바로 엘리야가 숨어있던 기간이었다. 엘리야는 시냇물을 마셔야했다. 또한 까마귀들이 먹을것을 가져오도록 되어있었고(4절) 또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6절). 여기서 다음을 살펴볼수가 있다.
1) 하루에 두번씩 일용할 양식이 떡과 고기로 계속해서 준비되었다. 하나님의 종들, 특별히 선지자들이 훌륭하고 진기한 음식을 먹으며 각양 진미를 즐긴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우리는 진미를 즐기는 자들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우리보다 더나은 자들로서, 좋지않은 음식으로도 편안하게 살며, 우리가 먹다남긴 찌꺼기같은 것으로도 만족해하는 자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2) 음식을 조달해준 것들은 매우 믿어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까마귀들'이 그에게 음식을 가져왔다. 오바댜가 기꺼이 엘리야를 대접했을터이나 그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던 세례요한처럼 혼자힘으로 산 사람이었다. 만일 그까마귀들이 그것을 어디서 구했으며, 어디서 어떻게 요리되었는지, 그것들이 그것을 정당하게 얻었는지를 질문받는다면 우리는 야곱이 했던것처럼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것을 그까마귀들에게 주셨다"고 대답해야 할것이다(참조. 창 27:20). 그러면 왜 까마귀들을 보내셨는가?
① 그것들은 육식조류로서, 그의 고기를 먹든가 그의 눈을 쪼았어야 더합당했을 것이다(참조. 잠 30:17). 그러나 '먹는 자에게서 먹는것이 나온다'고 하는 삼손의 수수께끼는 여기서 또다시 풀어졌다.
② 그것들은 더러운 피조물들이다. 모든 '까마귀 종류'는 율법에 의해서 먹는것이 금해져 있다(레11:15). 그러나 엘리야는 까마귀들이 항상 가져왔던 그음식을 먹기에 좋지않은 것으로 생각지 않았으며, 거리낌없이 오히려 감사하며 먹었다.
③ 까마귀들은 벌레와 송장을 먹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엘리야에게 사람이 먹을수 있는 좋은음식을 가지고 왔다.
④ 까마귀들은 단지 조금씩 그것도 먹다남은 음식을 가져올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비록 진수성찬은 아니었을지라도 자신이 먹은것에 대해 감사하였다.
⑤ 까마귀들은 새끼들조차 돌보지않는 짐승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기에 그것들은 선지자를 먹였다.
⑥ 까마귀들은 특별한 섭리에 의해서 먹여졌다(욥 38:41; 시 147:9).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 선지자를 먹이는데 쓰여졌다.
이와같이 엘리야는 오랫동안 홀로 조금씩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그는 여늬때와 같이 시내에서 물을 얻었으며 물이 떨어졌을때에는 기적을 통해서 공급받았다. 자연의 능력은 한계가 있으나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시다. 엘리야가 마시던 시내는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마르게 되었다(7절).

Ⅱ. 사르밧 과부의 대접 17:8-16
우리는 여기서 엘리야에 대한 보호가 더욱 더하여짐을 보게된다. 그시내가 말랐을때 요단강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를 그곳으로 보내지 않으셨는가? 이는, 하나님께서는 자기백성을 위해서 어느 한가지 방법에 매이지않고 여러가지 방법을 예비해 놓으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다.
1. 그가 보내진 장소(9)
그곳은 이스라엘 지경밖에 있는 시돈의 '사르밧' 혹은 '사렙다'였다. 우리 구주께서는 이사실을, 때가차면 가련한 이방인들을 위해 나타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암시로 받아들이셨다(눅 4:25,26). 그당시 이스라엘에도 많은 과부가 있었으나 그는 이방성읍인 시돈을 복되게 하고 존귀케하려고 그곳으로 보내심을 받았다. 따라서 그는 라이트푸트박사의 말처럼 첫번째 이방의 선지자가 된것이다. 엘리야는 고향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으며 배격당했다. 그러므로 그는 마치 사도들이 후에 그렇게 명령받았듯이(행 18:6) 이방인들에게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왜 하필 시돈이었는가? 이는 아마도 바알숭배가 시돈사람이었던 이세벨과 더불어 최근에 그곳에서 들어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16:31). 이세벨은 엘리야의 최대의 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그녀의 악함이 소용없음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녀의 나라안에서 엘리야를 위한 은신처를 찾아주셨던 것이다.
2. 엘리야를 대접한 사람(9)
그를 대접한 사람은 가난하고 외롭게 사는 한 불쌍한 과부였다. 세상의 약하고 미련한 것들을 사용하셔서 존귀케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며 영광이시다.
3. 그를 위해 예비된 것(10-16)
하나님의 섭리로 그과부는 성문에서 매우 적시에 그를 만났다(10절).
(1) 그과부의 형편과 성품.
1) 그녀는 양식 한움큼과 기름 약간외에 먹고 살만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녀와 그녀의 아들은 그양식을 먹고나면 모르긴해도 기아로인해 죽을 형편이었다(12절). 그녀는 또한 거리에서 주워모은 나무가지외에 다른땔감이 없었다. 바로 그녀에게 엘리야가 보내졌던 것이다. 이는 엘리야로하여금 까마귀들이 그를 먹여 살렸을때처럼 계속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거하도록 그녀에게 보내시사 그가 식사한 대가를 후히 지불하신 것은 그여종의 비천함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었다.
2) 그녀는 매우 겸손하고 부지런하였다. 엘리야는 그녀가 나무가지를 줍는것을 보았으며 그것이 그녀자신이 먹을 빵을 굽기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10,12절).
3) 그녀는 매우 자비롭고 관대하였다. 낯선사람이 자기에게, 가서 마실물을 조금 갖다달라고 청했을때 그녀는 기꺼이 첫마디에 갔다(10,11절). 그녀는 현재 물이 귀하다고해서 거절하지 않았으며 그가 무엇으로 갚을것인가 묻지도 않았고 또 그가 이방인인지 이스라엘인인지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은채 자기를 위한 나무가지 줍는 일을 버려두고 그를 위하여 물을 가지러 갔다.
4) 그녀는 엘리야에게 가지고 있는 가루와 기름이 적어서 그녀와 그녀의 아들이 먹을수 있을정도의 분량밖에 안된다는 것을 말하였으나 그는 자신을 위하여 작은떡 하나를 먼저 만들고나서 그녀와 그녀의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고 했다. 이것은 믿음과 순종에 대한 큰시험이었다. 엘리야는 분명히 '이스라엘 하나님'을 언급했지만(14절) 그것이 시돈사람과 무슨상관이 있단 말인가? 혹 그녀가 '여호와'란 이름을 숭배했고 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참하나님으로 존귀히 여겼다할지라도 이낯선 사람이 그분의 선지자라는 이름으로 말할만한 근거가 있는지를 어떻게 확신할수 있겠는가? 굶주린 방랑자가 그녀를 속이기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모든 난관들을 극복하고 약속에 의지하여 그권고에 순종한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들은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러면 다른것들은 더하시리라'는 사실에 대한 신뢰하에 교제하여야 한다. 그녀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정도로 믿음이 크게 성장한 것은 틀림없이, 영적인면에서 큰기적이었다.
(2) 하나님께서 그녀의 손님에게 베푸신 은총 :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16절). 즉 가루와 기름이 통과 병에서 퍼내어질때마다 더많은 양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더해졌던 것이다. 홀주교의 말처럼 옥수수나 올리브가 제대로 자라나서 증가한다해도 결코 여기처럼 가루와 기름이 사용함에 따라 증가해가는 것만 같지 못하였다. 그러나 일반섭리에 있어서 '심을것을 풍성하게 주시는 것'(고후 9:10)은 평범한 것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선함을 보여주는 한 실례라고 할수 있다. 가루와 기름은 모아감에 따라서 많아진 것이 아니라 소비해감에 따라서 많아졌다.
1) 이것이 엘리야를 부양하였다. 그의 일용할 양식은 계속되는 기적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제까지는 떡과 고기로 지내왔으나 이제부터는 떡과, 요즘 버터와 같은 역할인 기름으로 지내게 된다.
2) 이것은 또한 그 가난한 과부와 그녀의 아들을 부양하였다. 그것은 선지자를 대접한 것에 대한 보상이기도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게 문을 여는 자들에게로 들어가셔서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약속하셨다. '저희는 환난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시 37:19)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Ⅲ.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림 17:17-24
우리는 여기서 엘리야에게 친절을 베푼 과부에게 더욱 귀한 보상이 있게된 것을 보게된다. 즉 그녀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1. 아이의 병듦과 죽음(17절)
모르긴해도 그아이는 과부된 어머니에게 있어서 유일한 낙인 독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하나님의 큰선지자를 돌보았으며 그를 시중드는 일을 하였다. 따라서 그녀는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선을 베푸시리라는 강한 확신을 갖고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는 자기아이를 잃고 말았다. 그녀는 그기적에 의한 보살핌을 받고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창 만족을 누리는중에 이와같은 고통을 받게되었다.
2. 엘리야를 향한 애처로운 불평(18)
그녀는 격한 감정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상관이 있기로(18절). 아들의 죽음은 그녀에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어려운 일이 갑자기 예상치도 않게 그것도 모든것이 잘되가는 한창 평온한때에 찾아들게 되면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녀는 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면서 마치 그가 자기의 아이를 죽게라도 한양 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내가 어떤점에서 당신에게 죄를 범했습니까? 아니면 내가 내의무를 게을리하였습니까? 무엇때문에 당신이 나를 괴롭게 만드는지 말해 주십시오." 그러나 그녀는 곧 뉘우치는 말을 하고있다. '당신은 이고통의 원인이 되는 내죄를 생각나게 하려고 오셨습니까?' 아마도 그녀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엘리야가 저주한 것을 알고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전에 시돈사람의 신인 바알을 섬겼던 적이 있음을 깨닫고서 그가 자기의 죄에 대해 저주한 것으로 오해했던것 같다.
3. 엘리야가 이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구함(19-21)
그는 과부의 불평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답변도 없이 그문제를 하나님께로 가져와 내어놓았다. 그자신도 그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지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죽은 아이를 어머니의 품에서 취하여 자신의 침상으로 데리고 왔다(19절). 아마도 그는 그아이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듯 싶다. 그는 자기방에 들어가서 다음과 같이 행하였다.
첫째, 그는 겸손하게 그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하나님께 묻는다(20절).
둘째, 그는 진심으로 그아이가 다시 살기를 하나님께 간구한다(21절). 지금까지는 죽은자가 다시 살아난 경우가 결코 없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의하여 이아이의 소생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이사실이 우리도 똑같이 행할만한 정당한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다윗은 금식과 기도가 자기아이를 다시 살릴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삼하 12;23). 그러나 엘리야는 다윗에게는 없었던 기적을 행할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살리기위해서 그아이 위에 자신의 몸을 폈다. 만일 그가 자신의 호흡과 온기로 그에게 생명을 넣어줄수 있었다면 그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의 기도는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이아이의 혼으로 그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21절). 이말씀은 육체와 분리된 영혼의 존재와 결과적으로 영혼의 불멸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로티우스는 이대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고통받는 백성들을 격려하시기위해서 이기적을 통해 영혼의 실재와 불멸성을 나타내시고 증거하시고자 했다고 주장했다.
4. 아이의 소생(22-24)
그사실은 어머니에게 매우 큰기쁨을 가져다주었다. 그아이는 다시 살아난 것이다(22절). 기도의 능력과 기도를 들으시는 이의 능력을 보라. 그는 죽이실뿐만 아니라 살리시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엘리야는 그아이를 어머니에게 데려다주었다. 추측컨대 그녀는 거의 자신의 눈을 믿지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내가 이제야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인줄 아노라(24절). 그녀는 양식이 줄지않는 것을 보고 아마 그사실을 알았었지만 자기아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사실을 의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능력과 선함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신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그아이의 죽음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었고 엘리야에게는 영예로움이 되었다.

# 핵심
17:1-24
북이스라엘의 유명한 선지자 엘리야의 행적을 기록한 내용이다. 그는 기근을 예언했고, 죽은자를 살리는 기적을 행했다.

# 묵상
엘리야를 돌본 까마귀 ( 17:4-7 )
이것은 자연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유의 주인이시기에 어떤피조물도 당신의 뜻을 위해서 사용하실수 있습니다. 본장면은 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얼마나 자상하게 돌보시는지도 보여줍니다.
이방인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 17:8-16 )
이방인의 믿음있는 자세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교훈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와같이 믿는 사람들도 때로는 세상사람들에게서 배울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지역에 선교하시면서 그들의 믿음을 보고 제자들의 믿음이 부족함을 충고하셨습니다(막7:24-30). 따라서 우리들의 믿음의 행위란 이루어질것 같지않은 상황속에서도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우리가 가진 모든것을 포기하는 행위와 그러한 삶을 사는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시대에 믿음이 없음을 한탄하시면서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마17:20). 우리는 이런 순전한 믿음을 지녀야합니다.
아이를 살린 엘리야 ( 17:21-24 )
엘리야는 죽은아이 위에 몸을 세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이는 죽은아이의 소생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표현한 것입니다. 즉, 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사르밧 과부의 아픈마음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이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능력과 계시를 깨닫고 성숙한 신앙으로 전진할수 있습니다. 이적은 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적을 체험함으로써만 믿는것보다 보지않고 믿는것이 더욱 복되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요20:29).

# 해설
엘리야의 초기사역 ( 17 )
하나님께서는 악한 아합왕을 심판하시고, 아울러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신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시고자 한사람을 준비하셨습니다. 그가 곧 엘리야였습니다. 엘리야는 무명의 사람으로서 그가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지, 또한 그의 성장배경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알길이 없습니다. 엘리야의 최초의 활동들은 극적일 뿐이었습니다.
1. 가뭄을 예언하는 엘리야
1) 엘리야의 가뭄선포
디셉사람 엘리야는 길르앗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은 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는 지체없이 아합왕에게 찾아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가뭄이 임할것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가뭄선포는 이스라엘왕과 백성들이 섬기는 바알신의 허구성을 찌르는 핵심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람들은 비와 햇빛을 주는 농경신으로서 바알을 믿고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의 가뭄선포는 백성들로하여금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바알숭배의 어리석음과 바알신의 무력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였습니다.
a.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가뭄(렘14:22)
b.하나님의 심판인 가뭄(학1:11)
2) 그릿시냇가에 숨은 엘리야
아합과의 목숨을 건 대면을 마친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단강동쪽 그릿시냇가 곁의 계곡에 숨었습니다. 이는 아합이 엘리야를 죽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체험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숨어지내는 엘리야를 위해 까마귀를 시켜 떡과 고기를 공급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는 앞으로 하나님의 귀한 사역들을 감당해야 하는 엘리야의 믿음을 돈독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앞에 순종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a.엘리야를 먹이시는 하나님(왕상19:6)
b.까마귀(눅12:24)
2.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와의 만남
1) 사르밧으로 가는 엘리야
엘리야가 어느정도 그릿시냇가에 머물렀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곳에도 가뭄의 영향으로 시내가 말라 마실물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르밧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르밧은 이세벨의 고향인 두로와 시돈중간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한과부가 너를 공궤하리라고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믿고 이방지역인 사르밧에 가게됩니다.
a.사렙다의 옛이름인 사르밧(눅4:26)
b.하나님이 주신땅 사르밧(옵1:20)
2) 사르밧 과부를 만난 엘리야
사르밧에 도착한 엘리야는 그곳에서 한과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곳도 가뭄의 피해가 컸습니다. 따라서 가장 비천한 삶을 살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과부들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이러한 과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과부는 한번 먹을분량의 가루와 기름만을 지닌 가난한 여인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과부의 사정을 듣고선 그녀의 절박한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나서 먼저 자기에게 음식을 먹게하면 가뭄이 끝날때까지 그녀의 집에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a.과부의 보호(신24:17)
b.모범적인 과부(삼하14:4-5)
3) 엘리아의 첫번째 이적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한끼분의 양식으로 엘리야를 정성껏 대접하였습니다. 그결과 하나님의 약속도 신실하게 이행되었습니다. 즉 엘리야가 말한대로 사르밧 과부의 양식이 끊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뭄속에서도 이여인은 어디서도 구할수 없는 밀가루와 기름을 풍족하게 공급받게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적은 신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은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되리라는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가뭄의 고통을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여 하나님의 축복에 동참할 것을 권고하는 사건이기도 하였습니다.
a.엘리야의 이적(왕상18:38)
b.과부의 기름(왕하4:6)
3. 부활기적을 행하는 엘리야
1) 사르밧 과부 아들의 죽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한 얼마후에 사르밧 과부에게 비극이 닥쳤습니다. 곧,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의 생명이상의 존재였던 아들이 죽게된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로 하나님께 형벌을 받아 자기아들이 죽게되었다고 탄식조로 엘리야에게 항의하였습니다. 이여인의 고통은 말로 표현키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a.아들의 죽음(왕하4:20)
b.어머니의 슬픔(왕하4:27)
2) 아들을 살리는 엘리야
과부의 비극을 직접 목격한 엘리야의 심정도 무척 괴로웠습니다. 그는 죽은아들을 자신의 침상에 누이고 자신의 몸을 엎드려 아이의 몸에 닿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엘리야는 간절하게 이아이의 혼이 소생케 해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엘리야의 간구에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기적적으로 그아이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서 죽은자의 소생을 기록한 첫번째 실례였습니다.
a.다시 살아난 아들(왕하4:34-35)
b.바울의 능력(행20:10)
3) 사르밧 과부의 신앙고백
이여인은 다시금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아들을 품에 안게 되었습니다. 이여인은 진실로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며, 엘리야가 섬기는 그하나님이 유일하신 참하나님임을 굳게믿고 이를 고백하였습니다. 엘리야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과 동행하며 역사하고 계심을 확신하면서 감사의 고백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적은 가뭄앞에서도 무기력한 바알신에 대조하여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하는 행위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공경하는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은혜가 임하리라는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사르밧 과부 아들의 죽음에서의 소생은 3일만에 죽음에서 승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기도 합니다.
a.아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왕하4:37)
b.죽은자의 부활(히11:35)
결론
엘리야의 등장과 그의 초기사역들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담고있는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엘리야의 가뭄예언과,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고 죽은생명을 살리시는 이적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의 창조주요, 주권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바알신의 무력함과 바알숭배의 허상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도록 하기위한 하나님의 배려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어도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계셨기에 그들이 잘못된 현실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열왕기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상 19장 - study  (0) 2022.11.03
열왕기상 18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6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5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4장 - study  (0) 2022.11.02

# Study

I. 바아사집의 최후 16:1-14
1. 바아사집에 대한 예언(1-4)
그는 자신의 집을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다. 즉 민활하고 지략이 있고 대담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우상숭배자였고, 이것이 그의 집에 멸망을 가져왔던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것에 대해 경고하셨다. 만일 그가 경고를 받고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멸망하지 않을 것이었다. 만일 그렇지않다면 그멸망이 누구를 통해서 오게되든 그것은 죄에 대한 형벌이 될것이었다.
(2) 그경고는 '하나니의 아들 예후'를 통해서 주어졌다. 그당시 그의 아버지는 선견자 혹은 선지자로 있었으며 유다왕 아사에게 보냄을 받았었다(대하 16:7). 그러나 젊고 더활동적이었던 아들은 더멀고 위험한 임무를 띄고 이스라엘왕 바아사에게 보내졌다. 이 '예후'는 오랫동안 계속해서 유익한 일을 행했다. 이는 40년이상이 지난후에도 그가 여호사밧을 책망하고 있는것(대하 19:2)과 그왕의 행적을 기록한 사실(대하 20:34)에서 찾아볼수 있다.
1) 예후는 바아사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서 행하신 큰일에 대해서 상기시킨다(2절).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손에도 권세를 주신다. 이는 비록 그들이 그권세를 악하게 사용한다할지라도 그것으로서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2) 예후는 바아사의 큰범죄와 비행들에 대해서 책망한다.
① 그는 '이스라엘로 범죄케'했으며,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하는 경배를 더러운 우상들에게 드리게 했다.
② 그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것, 즉 우상을 숭배함으로 하나님의 노를 격동케 하였다.
③ 그는 여로보암의 집을 멸망시켰다. 그집을 쳤음이더라(7절). 즉 여로보암의 아들과 그의 온가족을 죽였다는 말이다. 자신의 사악한 야심을 좇아 이모든 것들을 행했던 그는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했다.
3) 전에 바아사가 여로보암의 집에 행했던 것과 똑같은 멸망이 그의 집에 있게될 것을 예언한다(3,4절).
2. 얼마동안 심판이 유보됨(5,6)
유보기간이 길었으므로 바아사는 평안히 죽어 그자신의 왕성에 영예롭게 장사되었다(6절). 그는 개의 먹이도 새의 먹이도 되지 않았는데, 이는 그경고가 그의 집에 대한 것이었음을 의미한다(4절).
3. 심판의 집행(7-14)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처럼 2년을 통치했을때, 나답이 바아사에게 죽임을 당한 것처럼 엘라역시 그의 신하중 하나인 시므리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그의 집은 경고받은대로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었던 것이다(3절).
(1) 나답때와 마찬가지로 왕이었던 엘라가 제일먼저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엘라는 나답보다 더욱 부끄러운 죽임을 당했었다. 그때 그와 그의 군대는 깁브돈을 포위하고 있었다(15:27). 엘라는 통치자로서 신하들과 같이 있어야했으나 환락을 즐겼고 뒷전에서 쾌락에 탐닉하고 있었다. 그는 신하의 집에서 마시고 취해있었을때 시므리에게 죽임을 당했다(9,10절). 죽음은 사람들이 취해있을때에 쉽사리 찾아든다. 폭음으로인해 종종 만성병에 걸리고 또 그로인해 한창시절을 망치게 되는것은 그만두고라도 그상태의 사람들은 암논이 압살롬에게 당했듯이 더욱 쉽게 적에게 정복당하게 된다. 또한 자신을 가눌수가 없기때문에 아주 좋지않은 사고를 당하기가 쉽다.
(2) 나답때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온집이 멸절되었다. 시므리가 먼저 한일은 '바아사의 온집을 죽이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그는 반역으로 얻은것을 잔인함으로 지켰다.

Ⅱ. 시므리의 죽음과 오므리의 치세 16:15-28
우리는 여기서 시므리와 디브니, 그리고 오므리가 왕위를 놓고 서로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게된다. 교만하게 높아지려고 하는 자들은 서로를 파멸시키며 또한 다른사람들을 파멸로 끌어놓는다. 이혼란은 오므리의 승리로 끝맺게 된다.
(1) 오므리는 어떻게 추대되었는가. 그는 로마의 황제들이 종종 그랬던 것처럼 전쟁터인 깁브돈에 진을 치고 있던 군대에 의해 추대되었다. 이는 지체하지 않고 시므리에게 엘라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깁브돈에 대한 포위망은 풀어졌으며(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울때 블레셋은 항상 득을 보았다) 시므리가 공격대상이 되었다.
(2) 그는 시므리를 어떻게 정복했는가. 시므리는 7일동안 왕이 된것으로 나타나 있다(15절). 그것은 오므리가 왕으로, 그리고 시므리가 반역자로 선포되기전의 기간이었다. 디르사는 아름다운 성읍이긴 했으나 방비가 튼튼한 곳은 못되었다. 그래서 오므리는 곧 그곳을 정복할수 있었으며(17절) 시므리는 왕궁으로 도피했다. 그는 방어할수도 없었고 항복하고 싶지도 않았기때문에 왕궁에 불을 질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18절).
(3) 그가 디브니와 어떻게 싸웠으며 결국 그를 어떻게 제거하였는가. 이스라엘 백성이 둘로 나뉘어 그절반은…디브니를 좇아(21절). 아마도 그들은 시므리편에 속했던 사람들이었던것 같다. 두사람사이에 싸움은 수년동안 계속되었다. 오므리가 처음 왕으로 추대되었던때는 아사왕 제27년이었으나(15절) 그가 대적자없이 통치하기 시작한때는 아사왕 제31년 이었다. 그때 디브니가 죽었는데 아마도 전쟁중에 죽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22절).
(4) 오므리는 왕이 된후 어떻게 통치했는가.
1) 그는 사마리아를 건설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후 그곳은 이스라엘왕들의 궁전이 되었다. 그는 '은 두달란트'로 그곳을 샀다. 그곳은 이전 소유주 세멜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 혹은 세메렌(히브리어로)으로 불리웠다(24절). 이스라엘의 왕들은 거처를 여러번 옮겼는데 처음에는 세겜, 다음에는 디르사, 그리고 이제는 사마리아로 옮겼다. 반면에 유다의 왕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에 거하였다.
2) 그는 악행으로 스스로를 불명예스럽게 했다. 오므리가…그전의 모든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25절). 그는 법으로 정하여 불의를 행함으로써 이전 모든왕들보다 더욱 악하였다. 여로보암은 백성들을 매혹하고 유혹함으로 범죄케했으나 오므리는 강압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다.

Ⅲ. 아합의 범죄 16:29-34
우리는 여기서 아합왕의 통치초기가 이스라엘의 다른 어떤왕보다도 더욱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음을 보게된다.
(1) 그는 자기선조들보다 더욱 악하였다. 그전의 모든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30절). 마치 그가 특별한 악의를 가지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며 이스라엘을 파멸케한양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져 있다. 저는 그전의 모든 이스라엘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33절).
(2) 그는 사악한 여자, 즉 지독한 우상숭배자로 천성도 지극히 오만하고 사악하며 또 술수와 유행에 탐닉하고(왕하 9:22) 모든면에 있어 부도덕한 '이세벨'과 결혼하였다. 그녀가 도대체 무슨악을 행했으며 결국엔 그녀에게 무슨화가 닥치는지 우리는 이어지는 기록에서 찾아보게 된다(왕하 9:22).
(3) 그는 바알숭배를 창시했으며, 시돈사람들의 신, 곧 베니게사람들이 신격화한 쥬피터를 숭배하였다. "주"라는 의미를 갖는 거짓신 '바알'을 섬기기위해 아합은 왕의 도성인 사마리아에 사당을 건축했다. 이는 유다의 왕성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바알에게 희생제물을 드리기위해서 성전에 단을 세웠으며 성전주위에 작은숲을 만들었다.
(4) 그의 신하중 하나가 왕의 큰어리석음을 본따서, 여리고를 건축하는 자에게 저주가 있을것이라는 여호수아의 오래전 예언을 무시하고 여리고를 건축하였다(34절). 그는 그의 자식들을 위해서 건축했으나 그가 건축을 시작하자 장자가 죽었으며 건축을 마치자 막내가 죽었다. 그리고 추측컨대 나머지 자식들도 중간에 죽은듯 하다. 이제까지 하나님에 대하여 자신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도 잘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핵심
16:1-7
선지자 예후를 통해 바아사와 그의 가문에 대한 심판이 선언되었다.
오므리왕조(16:21,22)
북이스라엘의 정치사에 있어서 오므리왕조는 4대에 걸쳐 모두 44년간 권력을 장악했다. 그 4대란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이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정치, 군사적으로 가장 번성하고 강했던 왕가였다. 남유다왕국을 비롯하여 베니게족속과도 우호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역대 그어떤 왕가보다도 영적, 도덕적인 부패가 심했다.

# 묵상
하나님말씀의 임함 ( 16:1 )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나 환경, 사물등을 통한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예후의 예언속에도 언약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과 배려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시1:2).
바아사가문의 결말 ( 16:8-13 )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벌이 있습니다. 이들은 타락했고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은 불순종이며 하나님과 원수되는 일입니다(딛1:21).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있습니다. 한편 26년만에 무너진 왕가의 모습을 통해 세상권세의 무상함을 보게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의 호흡은 코에 있고 수에 칠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사2:22). 인간의 권세뿐아니라 그가 소유한 모든것들은 일시적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가졌다해서 인생의 허무함이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일시적 존재인 사람이 아닌 영원한 존재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므리왕 ( 16:16 )
오므리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은이유는, 시므리의 왕위찬탈이 불법이었고 오므리가 시므리의 상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지휘자는 항상 백성과 같이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오므리는 그들과 더불어 전투에 참여한 직속상관이었습니다.
거듭되는 반역 ( 16:21 )
이스라엘이 거듭되는 반역을 저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뜻대로 행하지않는 사람들은 이미 죄가운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탄의 영향아래 살면서 계속적으로 또다른 악을 도모하게 됩니다.
참다운 행복 ( 16:23 )
오므리는 세상적으로는 성공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참행복을 세상정치를 잘하는 것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행복은 솔로몬처럼 부귀영화(왕상10:4-7)를 누리거나 므두셀라처럼 지상에서 오래사는 것(창5:25-27)에 있지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것에 있습니다. 성도는 하늘로부터 오는 신령한 복을 소망합니다.
이스라엘의 죄의 증가 ( 16:30 )
이스라엘은 점점 악의 강도가 심해져서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이방신을 이스라엘로 들어오게 하는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경시하며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돌아보지 않으시면 그들은 멸망할수밖에 없습니다.
불순종한 자 ( 16:34 )
언약에 대한 불순종은 오직 죽음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성을 건축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할것을 말씀하셨습니다(수6:26). 그리고 그것은 벧엘사람 히엘을 통해 글자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 해설
북이스라엘의 왕들 ( 16 )
바아사는 여로보암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기도 하였으나, 그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수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바아사의 집안은 시므리에 의해 살육을 당합니다. 자살을 한 시므리에 의해 오므리가 즉위하였는데, 그역시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얼룩진 통치를 하였습니다. 오므리의 아들인 아합은 전형적인 악한 왕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정치적인 혼란과 우상숭배의 죄악속에서 계속적인 악한왕들의 즉위로 깊은 영적암흑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1. 바아사에 대한 예후의 예언
1) 예후의 예언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후를 보내어 바아사왕을 책망하였습니다. 그이유는 비천한 출신이었던 바아사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도록 섭리하셨지만 그가 배은망덕하게도 여로보암의 전철을 밟으면서 우상숭배의 죄악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아사도 여로보암과 같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수 없게된 것입니다. 예후는 그가 여로보암의 집같이 멸절케 될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을 심판하실때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바아사는 이제 심판의 대상이 된것입니다.
a.하나니의 아들 예후(대하19:2)
b.심판의 예언(왕상21:23-24)
2) 바아사의 죽음
바아사는 24년이라는 긴기간동안을 통치한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저자는 그가 재위기간에 행했던 일들은 일체 언급지 아니했습니다. 이는 바아사의 우상숭배가 하나님앞에 얼마나 큰죄였던가를 입증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죄악과 더불어 바아사가 여로보암과 그의 가문을 살육한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책임을 바아사에게 돌리셨습니다. 이 두가지 죄악이 바아사를 심판하신 이유임을 재차 강조하셨습니다.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타락을 정죄하였으면서도 자신도 똑같이 그길을 본받아 행했기에 그의 죄는 더큰 심판을 초래할수밖에 없었습니다.
a.디르사(왕상14:17)
b.여호와의 노(호1:4)
2. 이스라엘의 엘라와 시므리왕의 통치
1) 단명하는 엘라
바아사를 이어 그의 아들 엘라가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이때 남유다는 아사왕의 즉위 26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엘라는 자신의 군대장관인 시므리가 왕위찬탈의 야욕을 품고있는지도 모른채 먹고마시며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시므리에 의해 죽음을 당했습니다. 결국 엘라는 2년동안만 왕의 자리를 지켰던 것입니다.
a.궁내대신(왕상18:3)
b.시므리의 모반(왕하9:31)
2) 바아사집안에 임한 심판
엘라의 죽음은 바아사에 대한 예후의 심판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시므리가 하나님의 심판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시므리는 바아사가 여로보암집에 행했던 살육보다 더잔인하게 바아사집안을 멸절시켰습니다. 심지어 바아사집안의 친구들까지도 모조리 죽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진노는 바아사와 엘라가 먼저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백성들도 우상숭배에 동참하도록 장려하였기에 더욱 컸던 것입니다.
a.잔인한 살육(삼상25:22)
b.하나님의 진노(신32:21)
3) 시므리의 칠일 천하
시므리가 엘라를 죽이고 왕으로 즉위할때에 군대장관이었던 오므리는 깁브돈에서 블레셋과 대치중이었습니다. 깁브돈은 원래 단지파에 분배된 성읍이었으나 블레셋이 점령하였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므리는 이곳을 탈취하고자 깁브돈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때 여기에 있는 백성들은 시므리의 모반소식을 듣고서는 시므리를 왕으로 인정치않고, 군대장관인 오므리를 새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오므리를 중심으로한 백성들은 시므리가 머물고있는 수도 디르사를 포위하였습니다. 그러자 시므리는 자신이 더이상 왕위를 소유할수 없으며, 죽게될 것임을 감지하고 왕궁에 불을 놓아 자살하였습니다. 시므리는 7일 천하를 끝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진 북이스라엘은 오직 무력만이 지배하는 무법천지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반역은 또다른 반역을 일으키면서,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할 그날만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a.왕궁호위소에서의 죽음(왕하15:25)
b.반역행위(왕하11:14)
3. 오므리와 아합의 통치
1) 수도를 옮긴 오므리
시므리의 죽음이후 북이스라엘은 오므리와 디브니를 따르는 두패로 나뉘어졌습니다. 하지만 몇년만에 왕권싸움은 오므리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이제 공식적으로 왕이된 오므리는 수도 디르사에서 6년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는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겼습니다. 이곳은 세멜에게서 은 두달란트를 주고산 곳으로 그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 명명한 것입니다. 이성은 산위에다 견고하게 건축하였기에 외적의 침략을 막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므리는 12년동안 강력하게 통치하였으므로 훗날 앗수르인들은 북이스라엘을 가리켜 오므리의 집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a.사마리아 성읍(왕상13:32)
b.사마리아의 비극(왕하17:24)
2) 오므리의 악한통치
오므리는 북이스라엘의 왕들중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모압을 쳐부술만큼 힘도 있었던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토지매매를 금하는 율법을 어기고 사마리아를 사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역시 여로보암의 우상숭배를 지속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열왕기저자는 오므리의 정치적 업적이 뛰어나다할지라도 그의 영적인 상태가 올바르지 못하였기에 그를 평가절하하였던 것입니다.
a.오므리의 악한통치(미6:16)
b.이스라엘의 계속되는 죄악(왕상16:13)
3) 아합의 즉위
오므리의 죽음이후에 그의 아들인 아합이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왕으로 평가받은 왕이었습니다. 그의 부친인 오므리가 베니게와 동맹을 맺은결과로 아합은 베니게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죄를 가볍게 여길정도로 무수한 죄악을 범했습니다. 바알을 섬기는 베니게민족의 신앙을 이세벨을 통해 알게된 아합은 사마리아 수도에 바알의 신당을 건축하고 단을 쌓았으며, 아세라목상을 세워 숭배하기도 하였습니다. 자연히 하나님의 진노는 클수밖에 없었습니다.
a.이세벨을 아내로 삼은 아합(왕상21:25)
결론
바아사에서 아합으로 이어지는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한결같이 우상을 숭배하였고, 또 그결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본장 마지막절에 아합과는 상관없는 히엘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는 여호수아를 통해 금지된 여리고성의 재건축을 시도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아들들이 죽음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우상숭배를 행한 북이스라엘 왕들에게 어떠한 심판이 내릴것인지를 보여주는 경고의 메시지라 할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상 18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7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5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4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3장 - study  (0) 2022.10.17

# Study

Ⅰ. 아비얌의 치세 15:1-8
우리는 여기서 유다왕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의 짧은 치리에 대한 간략한 기록을 보게된다. 그에 대한 더상세한 기록이 역대하 13장에 나타나 있는데 우리는 거기서 그가 여로보암과 전쟁을 한 기사를 보게된다. 거기서 그는 "여호와는 내 아버지시다"라는 의미의 '아비야'로 불리고 있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그의 책임을 물을만한 아무런 악도 보이고 있지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죄에 대해서 볼수 있는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이름 '야'가 그의 이름에서 빠지고 '아비얌'으로 불리고 있다.
1. 그에 대한 몇가지 기록 (1,2,6,7)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별로 나타나있지 않다.
(1) 그의 통치는 여로보암 제 18년에 시작되었다. 반면에 르호보암은 17년을 통치하였을 뿐이다(14:21). 여로보암은 과연 르호보암보다 오래살았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자기보다 먼저 죽은반면에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는 그의 아버지의 뒤를 이었으며 여로보암에게 두려운 상대가 되었다.
(2) 그는 3년을 채 통치하지 못했다. 즉 그는 여로보암의 통치 제 20년이 끝나기도 전에 죽었던 것이다(9절). 그가 여로보암과의 전쟁에서 큰승리를 거둠으로 교만하고 안심하게 되자(대하 13:21)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나은 그의 아들 아사를 위해 길을 열어놓으시고자 그를 치셨다.
(3) 그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2절). 아비살롬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아닌가 싶다.
(4) 그는 자기부친이 여로보암과 벌인 전쟁을 계속 수행하였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었으나 그것은 전면전이 아니었으며 종종 있었던 충돌로서 특별히 국경지대에서 그러했다. 마찬가지로 아비얌과 여로보암사이에도 전쟁이 있었다(7절). 그러나 여로보암이 대군을 막는데 그치지않고 여로보암을 철저히 패배시켰다. 그로인해서 여로보암은 그의 나머지 통치기간동안 조용히 지낼수밖에 없게끔 되고 말았다(대하 13:20).
2. 그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3-5)
(1) 그가 비록 여로보암을 대적할 목적으로 성전과 제사장직을 내세우며 그것을 자랑했다할지라도(대하 13:10-12) 그는 다윗과 같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규례에 대해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3절). 그는 열심을 가진듯이 보였으나 신실성이 부족했다. 그는 처음엔 잘 시작했으나 결국은 타락하여 '그부친의 행한 모든죄를 행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위에 오르고 계속 그자리에 있을수 있었던 것은 다윗때문이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그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하신' 것은 '다윗을 위해서였다'(4,5절). 즉 그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가 그전철을 밟은 그의 부친을 위해서도 아니었으며 오직 그가 본받지 아니한 '다윗을 위해서였다.' 조상들의 경건때문에 축복을 누리고, 그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을 본받지 않는것은 타락한 자손의 죄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다.

Ⅱ. 아사의 치세 15:9-24
우리는 여기서 아사의 통치에 대한 간략한 기록을 보게되며 역대하 14-16장에서 더욱 풍부한 역사의 기록을 보게된다.
(1) 통치기간 : 아사가 유다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41년을 치리하니라(9,10절). 유다왕들에 대한 기록을 보노라면 선한왕들과 악한왕들이 수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사실은 선한왕들의 통치는 일반적으로 길었으며 악한왕들의 통치는 짧았다고 하는 사실이다.
(2) 그의 통치의 선한 특성(11절) : 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것이 참으로 정직한 것이다. 그는 비록 다윗과 같은 선지자도 시인도 아니었으나 '그조상 다윗같이' 행했으며 하나님을 늘가까이 하였다. 만일 우리가 우리보다 앞선 자들의 은혜가운데로 나아간다면 비록 우리가 그들의 은사에는 미치지 못한다할지라도 하나님께 칭찬을 얻게될 것이다.
(3) 아사의 경건의 구체적인 예들 : 그의 시대는 개혁의 시대였다.
1) 그는 악한것들을 제거하였다. 그는 먼저 부도덕을 없앴다. 남색하는 자를 그땅에서 쫓아내고(12절). 즉 그는 매음굴을 탄압하였다. 흑사병 환자가 있는 집보다 더 위험한곳 즉 더럽고 추한 매춘부들의 소굴이 그대로 남아있는한 어떻게 왕이나 백성이 번영할수 있겠는가? 그리고나서 그는 우상숭배를 근절했다. 그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하고(12절). 그의 어머니, 아니 어쩌면 그의 할머니(그녀가 그의 어린시절에 그를 가르쳤기때문에 '어머니'로 불렸을 것이다)였을 마아가가 작은숲에 우상을 세운것이 발견되자 그는 결코 그녀의 우상숭배를 묵인하지 않았다. 개혁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아사는 다른 모든면에 있어서는 그의 어머니를 존경하고 높일 것이다. 즉 그는 그녀를 매우 사랑하나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 그래서(신 33:9절의 레위처럼) 그것이 자신의 의무와 배치될때 기꺼이 그관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만일 그녀가 우상숭배자라면
① 그녀의 우상은 파괴되어야 한다. 즉 공개적으로 치욕을 당케되며 더럽혀지며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져야 한다.
② 그녀는 폐위당해야 한다. 그는 그녀를 태후의 자리에서 폐하거나 아니면 자기아내, 즉 왕비와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그녀를 궁전에서 멀리 떨어지게 했으며 세상과 동떨어진 사생활에 한정시켰다.
2) 그는 선한것을 복구하였다(15절). 저가 그…구별한 것을 여호와의 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그것은 그가 에디오피아를 정복했을때 바치기로 맹세한 전리품들이었다. 어렸을때 세례로써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이 스스로 하나님께 헌신하여 열심히 봉사할때, 이것이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이 구별한 것을 받들어 드리는 것이 된다.
(4) 그의 통치방법 : 그는 인구증가를 장려하고 거주의 편리함을 들어 타국인들을 들어오게 하기위해서 친히 성읍들을 건축하였다(23절).
(5) 그의 통치의 실책 : 그는 칭송을 들은 두가지 일가운데서도 부족한 점이 발견되었다. 아무리 훌륭한 인물일지라도 이런저런 결점이 없을수는 없는 것이다.
① 그가 우상들을 없앴는가?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 오직 산당은 없이하지 아니하니라(14절). 그의 개혁은 그일에 있어서는 부족했다. 아사가 이것들을 없애지 않은것은 잘한일이 못되었다.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앞에 온전하였으며. 선을 행할수 있으며 또 행해야만 하는 자들이 몇가지 일에 있어서 그렇지 못하다할지라도 하나님께 용납되며 정직하고 올바른 자로 여겨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위로가 될만한 사실이다. 새언약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되는 온전함은 죄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멸망했을 것이다) 신실성으로 이해하여야할 것이다.
② 그는 구별한 것을 드렸는가?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후에 그는 그구별한 것을 다른곳에 사용하였다. 즉 그는 하나님의 전으로부터 은금을 취해, 벤하닷으로하여금 바아사와의 동맹을 끊도록하고 또 그의 나라를 침공함으로 라마에 건축하는 일을 그치게 하려고 그에게 뇌물을 주었던 것이다(18,19절).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은 죄를 범하였다.
㉠ 벤하닷으로하여금 그의 동맹관계를 끊게함으로 국제적인 신의를 저버리게 하였다. 만일 그가 그렇게 한것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그로하여금 그렇게하도록 한 아사역시 잘못한 것이었다.
㉡ 그는 이곤경에서 벗어나기위해서 자신을 위해 그토록 많은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았으며 위에서 설명한바와 같은 바르지못한 수단을 사용하였다.
㉢ 비상한 경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전곳간에서 금을 꺼내썼다. 그계획은 성공하였다. 벤하닷은 이스라엘땅을 공격하여 바아사로하여금 라마에서 전병력을 퇴각케했으며(20,21절) 결국 아사는 그곳에서 바아사의 공사를 분쇄시킬 좋은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거기서 쓰던 돌과 재목은 자신의 성읍들을 건축하는데 사용하였다(22절). 그러나 그계획이 성공했다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을 진노케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또한 아사가, 비록 그정책을 자랑하고 그것이 자신의 평화를 효과있게 가져다 줄것으로 기대했다할지라도 그는 선지자에게 어리석은 일을 행했다는 말을 들었으며 그후부터 그에게 전쟁이 있으리라는 말을 들었다(대하 16:7-9).
(6) 그의 치세중 근심거리들 : 그는 대부분에 있어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 이스라엘의 바아사왕은 그에게 매우 골치아픈 이웃이었다. 그들이 서로 끊임없이 괴로움을 겪었던 것은 나라가 분단된 결과로 그것은 그들로하여금 공동의 적에게 쉽게 먹이가 되도록 하였다.
2) 그는 노년에 통풍으로 고통을 받았다.

Ⅲ. 나답과 바아사의 치세 15:25-34
우리는 여기서 유다가 아사의 선정아래서 행복을 누리는동안 이스라엘의 상태는 아주 비참한 가운데 있는것을 보게된다. 이스라엘이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같이' 되리라고 경고받은 것이 14:15절에 나타나있으며 실제로 그러하였다. 즉 아사 한사람의 치세중에 이스라엘의 정권은 여섯번내지 일곱번의 변란을 치렀던 것이다. 아사의 통치초기에 여로보암이 왕위에 있었으나 그의 통치의 말기에는 아합이 왕위에 있었다. 그들사이에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디브니, 오므리가 있어서 서로 전복을 꾀하고 멸망을 시켰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다윗의 집을 버린결과로 나타난 것이었다.
(1) 아히야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로보암의 집은 멸절당했다. 여로보암을 계승한 것은 그들아들 나답이었다. 만일 그의 형 아비야의 죽음이 마땅히 그에게 감화를 끼쳐 그를 신앙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면 그리고 그가 죽었을때 사람들이 그에게 표한 경의가 나답으로하여금 그의 선한 본을 따르게 했다면 그의 통치는 길고도 영화로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아비의 길로 행했다'(26절). 즉 그의 부친이 세운 송아지들을 숭배했으며 백성들로하여금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도록 했다. 다시말해서 그자신이 죄를 범했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속히, 즉 그의 통치 제2년에 그에게 멸망이 찾아들게 하셨다. 나답이 블레셋이 단사람들에게서 빼앗은 성읍 깁브돈을 포위했을때 바아사는 다른사람들과 함께 그를 대적할 것을 공모하여 거기서 그를 죽였다(27절). 그는 자기백성들에게 거의 사랑을 받지 못했는지라 그의 군대는 후계자로서 그를 죽인자를 선택하였다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28절). 그가 왕위에 오르고나서 제일먼저 한일은 '여로보암의 온집을 쳐서 생명있는 자를 하나도 남기지않고 다멸한 것'이었다.
(2) 바아사의 등극 : 그는 24년간을 통치하였다(33절). 그는 여로보암의 길의 결국을 보았으면서도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다(34절).

# 핵심
15:1-34
유다왕 아비얌과 아사, 그리고 이스라엘왕 나답과 바아사의 통치에 관한 기록이다.
북이스라엘 정치사(15,16장)
북이스라엘의 역사는 여로보암의 죄악에 대한 심판의 예고처럼(14:15), 잦은 군사반란으로 점철되었다. 이것은 북이스라엘 왕들이 정권을 잡은후에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종교, 사회, 도덕적인 개혁을 단행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이에비해 남유다는 비교적 안정된 정권을 유지했다. 아마도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9:5; 11:10-13)때문이었던것 같다. 정치적인 반란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징계하고 새로운 정권을 세우기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방편이었다(11:29-39; 왕하 1:2-4).

# 묵상
유다의 존속 ( 15:1-8 )
하나님은 유다를 계속 존속시켰습니다. 이는 다윗과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아비얌의 범죄로인하여 멸망할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이러한 배려로 징계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인간적인 무수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늘 구원의 확신을 지니고 살수 있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영원하신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진 덕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 ( 15:12-14 )
아사는 비록 자기의 어머니라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나는 삶을 살때는 가차없이 그태후의 위를 폐했습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 우선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제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고자, 택한 백성들이 계속적인 악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신실하신 분입니다(시119:86; 행13:23).
아사왕 ( 15:16-24 )
그는 문제에 직면했을때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원조군을 불러들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외에 그어떤 것도 우리에게 참만족을 줄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사왕은 잘못된 결정으로 순간적인 위기는 모면했지만 아람을 끌어들임으로써 더큰 문제의 불씨를 남겼던 것입니다(대하16:9). 결국 아람은 이스라엘을 정벌해 영토를 확장하려 했기때문에 유다의 원군요청을 절호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늘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사탄이 우리에게 다가올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그는 말년에 병이 들었지만 고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병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모습은 인간의 연약함을 나타냅니다.
언약을 저버린 자 ( 15:25-28 )
나답은 다른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왕위도 빼앗기는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린 사람들의 마지막은 처참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지못하면 결국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풍성함을 누릴수 없기 때문입니다(렘3:3-5).
스스로 지도자된 자의 삶 ( 15:30 )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보다는 자기를 위한 삶을 삽니다. 지도자는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므로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합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지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마23:10).

# 해설
상반되는 왕국의 왕위계승 ( 15 )
분열왕국의 두주역이었던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죽음이후에 두왕국의 역사는 다음통치자들에 의하여 계승되어 갔습니다. 열왕기저자는 두왕국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르호보암과 여로보암부터 연대순으로 비교하는 식의 새로운 연대기 서술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남유다는 다윗의 혈통을 이어 아비얌과 아사가 연이어 통치하였습니다. 반면 북이스라엘은 나답과 바아사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피비린내 나는 유혈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1. 유다왕 아비얌의 통치
1) 유다의 왕이된 아비얌
르호보암을 이어 그의 아들인 아비얌이 유다의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이때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18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비얌의 어머니는 마아가입니다. 그녀는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의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아가가 르호보암보다 훨씬 먼저 태어났을 것으로 추측되기에 마아가는 압살롬의 딸이 아니라 손녀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어쨌든 아비얌은 3년동안 남유다를 다스렸습니다.
a.유다의 왕이된 아비얌(대하13:1-2)
b.아비얌의 모친 미가야(대하13:2)
2) 아비얌의 통치
아비얌은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똑같이 악행을 범하며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비얌을 크게 벌하시지 않은 이유는 다윗과 맺은 언약때문이었습니다. 이 언약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왕조를 견고하게 지켜주신 것이고 아비얌의 악행에 대해서도 인내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비얌의 통치기간중에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는 전쟁상태에 있었습니다. 아비얌은 여로보암과의 전쟁에서 극적으로 승리하기도 하였습니다(참조, 대하13:2-20). 이는 아비얌이 비록 우상숭배를 멀리하지는 못했어도 여호와마저 버리지는 않았기때문에 거둔 승리였습니다.
a.다윗에게 주신 한등불(왕상11:36)
b.다윗을 인정하시는 하나님(왕상9:4)
3) 아비얌의 죽음
유다를 3년간 다스렸던 아비얌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열조들과 마찬가지로 다윗성에 장사되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인 아사가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솔로몬과 르호보암, 그리고 아비얌 등이 수많은 죄악을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과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에의해 남유다의 왕조는 계승되어지고, 또한 평화로운 정권이양이 이루어지게된 것입니다.
a.아비얌의 남은 사적(대하13:22)
b.아비얌의 죽음(대하14:1)
2. 유다왕 아사의 선정
1) 아사왕의 종교개혁
아비얌을 이어 유다왕이 된 아사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면서 41년간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가장먼저 종교개혁을 시행하였습니다. 그는 남색하는 자들을 쫓아내고 르호보암과 아비얌 등의 선왕들이 숭배하였던 우상들을 파괴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조모인 마아가를 태후의 자리에서 폐위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든 죄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사왕은 우상숭배의 잔재라 할수 있는 산당을 모두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사왕의 마음만은 여호와를 떠나지않고 온전히 섬겼던 것입니다. 그는 부친인 아비얌이 여로보암과 싸워 얻은 전리품(참조, 대하13:16-17)과 자신이 애굽사람을 쳐부수어 얻은 전리품(참조, 대하14:9-15)을 하나님앞에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a.선한왕 아사(대하14:2)
b.우상파괴(출32:20)
2) 바아사와의 싸움에서 승리
아사왕은 이스라엘왕 바아사와 적대관계에 있었습니다. 바아사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국경에 위치한 라마라는 성을 군사적인 요충지로 삼고자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아사왕은 유다에 남아있는 보물들을 아람왕 벤하닷에게 바치면서, 그대가로 이스라엘을 침략토록 요청하였습니다. 아사의 이같은 계획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아람왕 벤하닷은 바아사와 맺었던 약조들을 깨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몇개의 성읍들을 취하였습니다. 어쩔수 없이 바아사는 라마성의 건축을 포기하고 수도인 디르사로 퇴각하였습니다. 아사왕은 즉시 라마성으로 가서 그곳에 남아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이스라엘과의 국경지대인 미스바성을 견고하게 구축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사왕은 신앙적으로는 큰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아람왕을 의지한 불신앙때문에 그는 선지자 하나니의 책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때 아사왕은 회개하기보다는 하나니를 옥에 가두는 죄악을 범하기도 합니다.
a.인간을 의지하는 아사왕의 잘못(대하16:7)
b.아사왕의 승리(대하16:6)
3) 아사왕의 죽음
아사왕은 말년에 발병이 났습니다. 이때에 하나님보다는 인간을 의지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사왕도 결국은 죽어 다윗성에 장사되고 여호사밧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아사왕은 비록 몇번의 죄악을 행하기도 했으나 그중심이 여호와앞에서 일평생 온전하였기에 그의 삶은 높이 평가받았던 것입니다.
a.발병난 아사왕(대하16:12)
b.아사왕의 죽음(대하16:14)
3. 이스라엘왕 나답과 바아사의 통치
1) 나답의 악한 통치
유다왕 아사 제2년에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이어 그의 아들인 나답이 왕으로 즉위하여 2년동안 다스렸습니다. 나답은 선왕인 여로보암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여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이스라엘백성 전체를 죄악의 늪에 빠뜨리는 악행을 서슴지않고 행했습니다.
a.이스라엘의 왕이된 나답(왕상14:20)
b.선왕인 여로보암의 죄(왕상12:28)
2) 혁명을 통한 바아사의 즉위와 통치
죄악된 여로보암의 왕조가 멸망케되리라는 아히야의 예언은 바아사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바아사는 깁브돈이라는 곳에서 이스라엘의 왕인 나답을 죽이는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이때는 유다왕 아사의 즉위 3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바아사는 나답뿐만 아니라 여로보암과 관계된 모든집안을 완전히 전멸시켰습니다. 이는 보복을 두려워한 바아사의 악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통해 여로보암집에 내렸던 하나님의 심판은 종결짓게 되었습니다. 그후 바아사는 24년동안 통치하면서 북이스라엘 왕들중 세번째로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그도 여로보암이 저지른 악행들을 그대로 답습한 어리석은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도 계속해서 우상숭배에 몰입할 뿐이었습니다.
a.혁명을 통한 왕위찬탈(왕하15:14)
b.여로보암에 대한 심판예언(왕상14:14)
결론
한뿌리에서 시작된 분열왕국은 각기 제길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떠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아사왕이라는 비교적 올바른 왕이 즉위하여 종교개혁을 단행하기도 하였습이다. 반면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왕가의 죄악에 대한 심판이 성취되어 여로보암가계는 전멸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그뒤를 이어 왕이된 바아사도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우상숭배의 죄악만큼은 계속하여 행했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멸망을 향해 나아가면서 끊임없는 혼란의 와중에 빠지게됩니다.





'열왕기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상 17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6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4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3장 - study  (0) 2022.10.17
열왕기상 12장 - study  (0) 2022.10.03

# Study

I. 병든 여로보암의 아들 14:1-6
여로보암은 계속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교를 멸시하였다.
(1) 그의 아이가 병들었다(1절). 그아이가 죽었을때 온이스라엘이 저를 위하여 슬퍼한 것을 보면 그는 여로보암의 장자로서 왕위를 이를 자였던것 같다(13절). '그때에' 즉 여로보암이 제사장직을 더럽히며 악용할때에(13:3), 그의 아이가 병들었다.
(2) 그는 자기아내를 변장시켜서 '그아이가 어떻게 될것'을 묻도록 선지자 아히야에게 보냈다(2,3절).
1) 이재앙에 직면한 여로보암의 큰소망은 '이 아이가 어떻게 될것인가' 즉 저가 살게될 것인가 아니면 죽게될 것인가를 알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① 만일 그가 그아이를 회복시키기위해 무슨방법을 강구해야할지에 대해 알고자했다면 더현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경우에서 뿐만아니라 아하시야(왕하 1:2)와 벤하닷(왕하 8:8)의 경우에서도 그들은 재앙을 당했을때 치료할수 있는 모든방법을 포기하는 아주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것 같다. 이는 만일 그병자가 살것이 확실하다면 그사람의 병을 낫게하는 방법이 하등 필요없는 것이며, 만일 죽을것이면 그방법이 아무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② 만일 그가 선지자의 기도를 구하고 자신의 우상들을 없애버렸다면 좀더 경건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의 손이 성하게 되었던 것처럼 그아이도 나을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이나 의무보다는 장래에 관한 것을 더 듣고 싶어한다.
2) 여로보암은 그아이의 운명을 알고자해서 아히야선지자에게 자기아내를 보냈다. 아히야선지자는 나이로인하여 눈이 어두워진채 실로에 묻혀 아무에게도 보살핌받지 못한 가운데 살고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전능자의 통찰력이 여전히 함께 하였다. 그통찰력은 육안이 필요없으며 오히려 육안이 없는것이 은혜가 되는 것이다. 마음의 눈은 사람으로하여금 한곳에 집중케하며 전혀 다른곳으로 관심을 돌리게 하지않는다. 여로보암은 그의 송아지를 세우거나 제사장을 임명하는 일에 조언을 구하기위해 그에게 사람을 보낸것이 아니었다. 비탄가운데서 그를 의지하고자 해서였다. 그가 섬기는 신들은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못했던 것이다. 그가 아히야에게로 사람을 보냈던 것은 그가 이전에 자기가 왕이 되리라는 것을 자기에게 말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2절). "그는 한때 좋은소식을 전하는 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틀림없이 또 그렇게할 것이다."  죄로인해서 위로받을 자격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역자들이 선하다고해서 그들이 자기들에게 평안과 위로의 말을 해주리라고 기대하는 자들은 자신들은 물론이거니와 그사역자들까지도 크게 잘못되게 만드는 것이다.
3) 그는 그선지자에게 묻기위해 자기아내를 보냈다. 이는 이름을 밝히지않고 가장 잘 물을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다른설명을 할것도 없이 "주여, 내아이가 병들었는데 낫겠습니까, 낫지 않겠습니까?"하고 묻기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그아이가 어떻게 될것을 묻기위해 실로에 가기보다 집에서 그아이를 돌보는 것이 그녀에게 훨씬더 나을뻔했을 것이다. 만일 그녀가 가야한다면 암행으로, 즉 '변장하고' 가야했다. 이는 그녀자신이 지나가야할 자신의 궁정과 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선지자에게까지도 자신을 숨겨야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선지자로하여금 단지 그녀의 자식에 대해서만 대답하게 하고 그녀의 남편의 배교에 대한 달갑지않은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거론하지 않게하기 위함이었다.
(3) 하나님께서는 아히야에게 여로보암의 처가 오는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가 변장을 하고오며, 그녀에게 무엇을 말해야할 것인가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게 알게해주셨다(5절). 그래서 그는 그녀가 문으로 들어올때에 그녀의 이름을 부름으로 그녀를 놀라게 할수 있었으며, 자기주위에 있는 모든사람들에게 그녀가 누구인가를 드러낼수가 있었다. 여로보암의 처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사람인체 하느뇨(6절).

Ⅱ. 아히야의 저주와 여로보암의 최후 14:7-20
1. 아히야선지자의 저주(7-16)
우리는 여기서 아히야선지자가 아이에 대한 질문이 나오기도전에 답변하는 것과 여로보암의 집이 그 사악함으로인해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을 보게된다.
(1)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부르고 계시다. 이스라엘이 비록 하나님을 버렸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백성에게 가장 큰해를 끼치고 그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한 그에게 보복을 하실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그에게 베풀어주신 큰은총을 들어, 즉 그를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을 다스리는 왕으로 삼으시고 '다윗의 집에서' 나라를 취해 그에게 주신사실을 들어 여로보암을 책망하신다.
(3) 하나님께서는 그의 불경건과 배교 그리고 특별히 그의 우상숭배를 들어 그를 책망하신다. 너의 이전 사람들보다도 악을 행하고(9절). 여로보암의 송아지들이 비록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하기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려했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다른신' 혹은 "이방신"으로 부르고 계시다. 이는 그가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것으로 바꾸었고 하나님을 실제의 하나님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냈기 때문이며 또한 많은 무지한 숭배자들이 그우상을 섬기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아주 등한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4)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집의 철저한 멸망을 예고하신다(10,11절). 15:29절에서 이것이 성취된 것을 보라.
1) 만일 그아이가 살게된다면 그의 아비집의 죄에 감염되어 함께 멸망케될 것이므로 그가 죽는것은 그에 대한 자비였다. 그의 품성이 기록되어 있는것을 주목하여 보라. 여로보암의 집가운데서 저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뜻을 품었음이니라(13절). 하나님을 꼭닮은 사람은 그안에 독특한 아름다움과 광택을 지니고 있다. 여로보암의 모든 가족가운데서 오직 그만이 영예롭게 죽어 장사지내질 것이며 살았을적에 사람들이 바라듯이 애도를 받게될 것이다. 기대를 걸었던 이아이는 모든 가족중에서 가장먼저 죽게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종종 사랑하시는 자를 아주빨리 데려가시기 때문이다. 하늘나라는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곳이다. 이땅은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2) 그아이의 죽음은 그가정에 저주가 되는 것이었다. 가정을 새롭게 개혁시켰을수도 있을뻔했던 자가 데려감을 입었다는 것은 그가정이 멸망되어지리라는 표적이었다.
(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스리기위해 또다른 집안이 일어설 것을 예고하신다(14절). 이것은 잇사갈의 바아사에게서 성취되었는데 그는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의 통치 제 2년에 그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나 그와 그의 온집을 살해하였다.
(6) 그는 여로보암이 세운것을 섬기기위해 나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게될 심판을 예고하신다. 15절에 다음과 같은 사실이 예언되고 있다.
1) 그들은 결코 편안하지 못할것이며 자기땅에서도 온전히 안주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같이' 될것이다. 그들이 다윗의 집을 떠난후 정권은 결코 한집에 오래 머물러있지 않았으며 하나가 다른하나를 전복하여 멸망시켰다.
2) 그들은 머지않아 자기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이것은 앗수르왕에 의해서 열지파가 포로로 끌려감으로 성취되었다.
2. 아히야의 예언의 성취(17-20)
여로보암의 처는 여호와의 그말씀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못한채 무거운 마음으로 '디르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디르사는 "아름답고 즐거운 곳"이란 뜻으로 그이름이 보여주듯이 아름다움으로 유명하였다(아 6:4).
(1) 아이가 죽었다(17절). 그러나 온이스라엘은 그처럼 촉망스러웠던 왕자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해 마지않았다.
(2) 여로보암 자신도 얼마 안있어 죽었다(20절). 그는 22년간을 통치하고서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었는데, 그아들은 2년만에 왕위와 자신의 생명, 그리고 온집의 생명까지도 잃고말았다.

Ⅲ. 르호보암의 치세 14:21-31
본장에는 유다와 이스라엘에 관한 기사가 함께 섞여있다. 여로보암은 르호보암보다 4, 5년을 더살았다. 그러나 그의 역사가 먼저 마쳐지고 있는데 이는 르호보암의 통치의 기사와 함께 견주어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그것은 슬픈기사이기도 하다.
1. 르호보암에 대한 기록 (21,30,31)
본문에는 르호보암왕에 대해 좋은것이라곤 아무것도 기록되어 있지않다. 우리가 여기서 그에 대해 찾아볼수 있는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그는 41세에 왕위에 올랐다.
(2) 그는 '여호와께서 자기이름을 두시려고 빼신 성' 예루살렘에서 17년을 치리했다. 그곳에서 만일 그가 자기의무를 행할 마음만 가졌다면 그는 얼마든지 그것을 알기회를 가질수가 있었다.
(3) 그의 모친은 나아마로서 암몬사람이었다. 이사실은 두번이나 언급되어 있다(21,31절). 아마도 그녀는, 다윗에게 친절을 베푼것에 대해(삼하 17:27) 다윗이 자기아들을 그의 가정과 혼인시켜 보답을 하고자했던 암몬 사람 소비의 딸이 아닌가 싶다.
(4) 그는 여로보암과 계속해서 전쟁을 벌였다(30절). 그것은 그를 항상 불안케했을 것이다.
(5) 그는 17년간을 통치하고 죽었으며 자기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2. 유다백성들에 대한 기록(22-29)
본문은 유다백성들의 성격과 형편이 매우 악함을 말해주고 있다.
(1) 본문 22-24절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다고 하는내용은 가장 슬픈기사가 아닐수 없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소유하사 유일하게 신앙고백을 하는 백성인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그들의 조상들은 매우 악했다. 특별히 사사시대에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열조의 행한 모든일보다 뛰어나게' 가증한 일을 행했다. 오직 위로부터 부으신바 되시는 성령만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충성되게 할것이다.
1)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생각이 허망하여져서 그의 영광을 썩어질 형상으로 바꾸었다. 즉 그들은 스스로 '산당'과 '우상'과 작은숲을 지어서(23절) 그것들에다 하나님의 이름을 결부시킴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으며 자기들이 만든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규례를 더럽혔다.
2) 그들은 더러운 음욕에 자신들의 몸을 내어맡겼다(롬 1;26-27절에 언급되고 있는 자들처럼). 즉 그땅에 '남색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일은 생각하기에도 가증스럽고 진노할 일인데 하물며 언급까지 되어져 있다. 그들이 한가지 죄악으로 하나님을 욕되게하자 하나님께서는 또다른 죄로 자신들을 수치스럽게 하도록 내버려두셨다.
(2) 여기서 그들이 얼마나 미약해졌으며 초라하게 되었는가를 보라. 이것은 앞에 언급한 죄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다. 애굽왕 시삭이 그들을 치러왔다. 그리고 무력에 의해서든 항복에 의해서든 스스로 이스라엘의 정복자가 되어 성전과 궁전의 보물들, 즉 여호와의 전과 왕궁의 보물들을 빼앗아갔다. 그것들은 다윗과 솔로몬이 축적한 것이었다(25,26절). 그는 솔로몬의 시대에 만들어진 금방패를 빼앗아갔다(26절). 애굽왕은 이것을 전승기념물로 가지고 갔다. 그래서 르호보암은 그것대신에 놋방패를 만들었다. 이것은 그의 영광의 감소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죄는 금도 그빛을 잃게하며 가장 훌륭한 정금도 변하여 놋으로 바뀌게 한다.

# 핵심
14:1-20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여로보암에게 심판이 선언되었다. 여로보암의 병든 아들이 치유받지 못하고 죽게된 것이 심판의 증거였다.
남색하는 자(히:카데쉬, 14:24)
성전에서 동성애를 비롯한 성행위를 일삼았던 이교의 사제를 가리킨다. 가나안인들은 종교의식을 행할때 성행위를 하면 신의 축복으로 풍요가 깃들인다고 믿었다. 가나안종교의 철저한 물질적인 축복관에 근거한 의식이었다.

# 묵상
여로보암의 판단착오 ( 14:1-5 )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자신의 아들 아비야의 병을 고쳐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 철저히 무지하였으며 병의 원인을 생각지않고 그결과에만 집착했던 것입니다. 그는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했고 단지 선지자의 눈만 속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환난에 봉착할때 성도들은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회개의 자세를 갖고, 병을 낫게하시는 분은 선지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 14:6 )
어떤방법으로도 하나님을 속일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이시기때문에 그안에 거짓이 없으십니다. 또한 악에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친히 사람을 속이지도 않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생각을 아십니다(갈6:7). 하나님을 속이는 자는 반드시 징벌을 받습니다(행5:1-6). 그러나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든죄를 용서해 주십니다(사2:8; 요일1:9).
악인가운데 의인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 14:13 )
하나님은 그아이가 악에 오염되지않게 일찍 당신의 곁으로 부르셨습니다. 의인은 어떠한 상황에있든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돌보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렇기때문에 의인은 비록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당하지 않습니다(시23:4).
여로보암의 삶 ( 14:19, 20 )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기뜻대로 사는 사람은 자기가 행한대로 보응을 받게된다는 것을 여로보암의 생애는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자신이 죄를 저지를뿐 아니라 다른사람까지 죄에 빠뜨리는 이는 더욱 큰벌을 받게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사람에게 화가 있다고 경고하십니다(18:7). 여로보암은 22년간(주전 931-910) 북이스라엘을 통치하다 죽었습니다. 역대기는 여로보암의 죽음이 하나님을 배반했기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대하13:20).
지도자의 잘못이 끼친 영향 ( 14:21-24 )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지도자들은, 자기만 하나님앞에 바로서면 되는것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많은사람들까지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도록 도울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 14:25-28 )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떠난 이스라엘백성들을 이방민족에게 넘겨주어 고생하게 하시는 질투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입니다(호2:19). 그러기에 다른신을 섬기는 것은 외도하는 것과 같아서 신랑되신 하나님께서 노를 발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에 기초한 분노입니다.
환난에 처한 르호보암의 행동 ( 14:27, 28 )
금방패대신 놋방패를 만들어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환난을 받을때는 먼저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하며 자신의 체면을 살리려는 욕심은 버려야합니다.

# 해설
분열왕국 두왕의 죽음 ( 14 )
악행을 범하고도 회개치않은 여로보암의 종말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은 아히야선지자를 통하여 그에게 내릴 심판을 예언케 하셨습니다. 아히야선지자는 한때 여로보암을 격려하여 북이스라엘의 왕이될 것을 예언하였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로보암의 멸망을 예언하게된 것입니다. 이러한 북이스라엘의 상황을 목격하면서 더욱 올바로서야할 유다의 르호보암은 도리어 여로보암의 전철을 밟아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고, 결국은 애굽의 침략이라는 징계를 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와중에서 두왕국을 다스리던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은 각기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1. 여로보암에게 내린 심판
1) 병든 여로보암의 아들
여로보암의 아들중에 하나님께 선한뜻을 품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곧 아비야였습니다. 이 아비야가 무슨병에 걸렸는지는 몰라도 중병에 걸렸음에는 틀림없었습니다. 그러자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고쳐보고자 아내를 선지자 아히야가 있는 실로로 보냈습니다. 이때 여로보암은 하나님앞에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해야 옳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회개치않고 교활하게 행동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속일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에 아내를 변장시켜서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코자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a.실로(수18:1-2)
b.선지자 아히야(왕상11:29)
2) 여로보암에 대한 아히야의 예언
여로보암의 아내가 아히야의 집에 당도하기이전에 하나님은 아히야에게 여로보암에게 내릴 심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히야는 여로보암의 아내가 도착하자 그들의 교활한 행위를 책망한후 여로보암집에 내릴 심판을 예언하였습니다. 먼저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신 이는 하나님인데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버리고 진노케하였음을 상기시켰습니다. 따라서 여로보암일가는 모두다 죽어 장사도 못지내고 개나 새에게 먹힐 것이라 했습니다. 단, 아비야만 죽어서 자기묘실에 장사지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버릴 왕이 일어날 것을 말했습니다. 이는 곧 바아사를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참조, 왕상15:27-29). 더욱이 이스라엘이 흔들리는 갈대처럼 온통 불안정해질 것이고, 결국은 나라를 이땅에서 뽑아 유브라데 하수밖으로 흩으실 것을 명하셨던 것입니다. 이일은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당도하자, 아히야의 말대로 아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는 아히야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였습니다.
a.여호와의 심판(신29:28)
b.북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왕하15:29)
3) 여로보암의 죽음
북이스라엘의 창건왕으로 22년간을 통치한 여로보암이 끝내는 죽음을 당했습니다. 한나라의 왕으로 22년간을 통치했다면 그만큼 유능하고 능력있는 왕임에는 틀림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북이스라엘을 창건할때 다윗에게 주었던 언약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왕조에 대한 언약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절대적으로 믿지않았고 하나님을 섬기지도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죽기까지 우상을 섬기는 죄악을 범했을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여로보암 한사람의 죄는 자기의 온집안은 물론 북이스라엘 민족전체에 무섭고도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a.전쟁하는 여로보암(대하13:2-3)
b.북이스라엘의 창건왕(왕상12:20)
2. 르호보암의 악한통치
1) 악을 행하는 르호보암
유다왕 르호보암은 생전에 두가지 사실을 분명히 목격할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선왕인 솔로몬이 우상숭배의 죄악을 범함으로 나라가 분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로보암이 통치하는 북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르호보암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멀리해야만 마땅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도 암몬사람인 어머니 나아마의 영향을 받아 혐오스런 밀곰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동시에 유다민족 전체에 다신숭배를 전면적으로 허용하였습니다. 결국 르호보암도 여호와 하나님의 노를 격발케하였던 것입니다.
a.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르호보암(대하12:13)
b.하나님을 떠난 르호보암(대하12:1)
2) 남유다의 우상숭배
르호보암이 여호와를 떠남으로 유다에는 다시금 우상숭배가 만연해졌습니다. 이는 곧 가나안의 우상들을 섬기던 사사시대에로 회귀하는 역사적, 신앙적 후퇴를 의미합니다. 유다백성들은 곳곳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목상들을 세워놓고 숭배하였으며, 심지어 이교도들이 행하던 음행을 반복코자 남색하는 자를 두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북이스라엘이나, 다윗왕조를 이어가는 남유다나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항하는 우상숭배의 죄악을 범하는 면에서는 똑같았습니다.
a.우상숭배 경고(출23:24-25)
b.남색하는 자(신23:17)
3. 시삭의 침입과 르호보암의 죽음
1) 애굽왕 시삭의 침입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숭배하는 남유다를 애굽왕 시삭을 통해 징계하셨습니다. 애굽왕 시삭은 한때 여로보암의 망명처를 제공하기도 하였던 왕입니다. 그는 팔레스타인지역을 지배코자 유다에 침공하였습니다. 또한 유다의 성읍들을 빼앗고 예루살렘을 공략코자 하였습니다. 이때 르호보암은 시삭에게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많이 주어 돌려보냈습니다. 이러한 애굽의 침략으로 솔로몬이 죽은지 5년만에 그막대한 재물들이 탈취당하여 유다는 초라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예언대로 유다는 멸망당하지는 않았습니다(참조, 대하12:7).
a.애굽왕 시삭의 침략(대하12:2-3)
b.솔로몬이 만든 방패(왕상10:17)
2) 르호보암의 죽음
르호보암은 평생동안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전쟁상태에 있었습니다. 특별히 베냐민 영토내에서의 국경분쟁과 상호불신에 의한 긴장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민족통일의 염원을 이루지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옛 다윗성에 장사되었습니다.
a.유다와 이스라엘의 분쟁(왕상15:6)
b.르호보암의 아들(마1:7)
결론
왕상13장의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이 숭배했던 우상들이 붕괴되는 예언을 한 반면, 아히야선지자는 구체적으로 여로보암의 집에 대한 멸망을 예언하였습니다. 그예언은 여로보암 아들의 죽음을 필두로하여 성취되어 갔으며 마침내 여로보암도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남유다의 상황도 북이스라엘과 별차이가 없이 우상을 숭배함으로 애굽의 침략이라는 징계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르호보암도 죽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분열왕국의 초창기를 이끌던 두왕이 이제는 역사저편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상 16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5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3장 - study  (0) 2022.10.17
열왕기상 12장 - study  (0) 2022.10.03
열왕기상 11장 - study  (0) 2022.10.03

# Study

I. 여로보암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 13:1-10
(1) 여로보암의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나타내기위해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보내졌다(1절). 그를 진멸키위한 유다의 군대는 거두어졌으며, 어떠한 칼도 그를 대적할 목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하였다(12:24). 대신에 유다의 한선지자가 악한길에서 그를 돌이키게 하기위해 보내졌다. 그것도 때맞춰서, 즉 그의 마음이 아직 냉담해지기전, 그가 그의 제단에서 분향하고 있을때에 보내졌다. 이는 하나님께서 죄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그들이 돌이켜 살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었다.
(2) 그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해졌다. 그것도 속삭임으로가 아니라, 그선지자의 용기와 열정을 보여주기나 하는듯이 큰소리로 외쳐졌다. 그말씀은 여로보암이나 백성들에게가 아닌 제단에게 선포되어졌다. 그러나 제단에 대해서 위협하실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만든자와 그앞에서 경배하는자 모두를 위협하신 것이었다. 그들은 "만일 하나님의 진노가 생명이 없고 죄없는 제단에 대해서도 임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피하겠는가"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제단에 대해서 예언된 것은 때가되면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한왕이 나서, 그제단에서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제물로 드리고 사람의 뼈를 불살라 그제단을 훼파하리라는 것이었다(2절). 여로보암은 다음의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했다.
1) 그가 봉헌한 제단이 더렵혀지리라는 것.
2) 그가 세운 산당의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공의의 제물이 되어지리라는 것.
3) 이일이 '다윗의 집'에서 난자에 의해 되어지리라는 것. 이예언이 성취된 것은 그후 약 356년이 지나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곧바로 있을 확실한 것으로 선포되었다. 이는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같기 때문이다.
(3) 이예언의 진실함을 확고하게 하기위한 징조가 있었다. 그것은 보이지않는 힘에 의해서 단이 갈라지며 희생제물의 재가 쏟아지리라는 것이었다(3절). 그징조는 즉시 일어났다(5절).
1) 이일은 그선지자가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는'(막 16:20)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는 증거였다.
2) 이일은 하나님께서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진노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재적인 징후였다.
3) 그것은 마음이 돌보다도 더굳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깨어지지 아니하는 백성들에게 대한 하나의 힐책이었다.
4) 그것은 요시야에 의해 이예언이 성취되어질때, 그단에 대해 있게될 일의 실례였다. 즉 그것은 앞으로 있게될 그단의 훼파의 증거로 갈라졌던 것이다.
(4) 하나님의 사람을 잡거나 혹은 치려고 뻗었던 여로보암의 손이 말라버렸다(4절). 여로보암은 자신의 손을 거두어들이지 못함으로 주위에 있던 모든자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는데 이는 그모든 자들로 보고 두려워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만일 하나님께서 공의로 죄인의 마음을 완악케하셔서 그들로하여금 죄가운데로 손을 뻗게 하신다면 그들은 결코 회개로도 다시 그손을 거둘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본문에 나타난바와 같이 영적심판으로 매우 두려운 것이다.
(5) 갑자기 말라버린 그의 손이 그의 순종으로 그자리에서 치유되었다(6절).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양심을 건드렸을때 겸허해지지 않았던 그는 그말씀이 그의 뼈와 살에 닿자 교만한 마음이 꺽이고 말았다. 그는 이제 도움을 청하게 된다.
1) 그는 금송아지에게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즉 그의 능력과 은총에 대해 도움을 청한다.
2) 여로보암 자신의 희생이나 분향에 의해서가 아니라 방금 그를 위협하고 그의 파멸을 말한 그선지자의 기도와 중보에 의한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보라. 그는 그선지자에게 자기의 죄가 사해지기를 위해서, 그리고 자기의 마음이 변화되어 지기를 위해서 기도를 구하지 않았으며 오직 그의 손이 성하기를 위해서 기도를 구하였다. 그선지자는 즉시 그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일을 통해 선지자를 더욱 영예롭게 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가 말하자 심판을 철회하시고 또다른 이적으로 손을 성하게 해주셨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해 여로보암을 회개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만일 그가 심판에 의해서 깨어지지 않는다면 자비에 의해서 녹아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당장에는 감화받은 것처럼 보였으나 그감화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6) 선지자는 여로보암의 친절한 초대를 거절하였다. 이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수 있다.
1)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자가 벧엘에서 먹거나 마시는 것을 금하셨다(9장). 이는 그들의 저주스런 우상숭배와 배교를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다.
2) 여로보암은 자기의 손이 치유되자 몹시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그선지자에게 기꺼이 자신의 감사를 나타내고자 했으며 그의 기도의 대가를 지불하고자 했던 것이다(7절).
3) 그선지자는 비록 굶주리고 갈증나고 또 가난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신에게 제의된 대접과 보상을 거절하였다.

Ⅱ. 한 늙은 선지자의 미혹 13:11-22
하나님의 사람은 왕이 자신에게 보상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그의 초대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 늙은 선지자에게 속아 그와 함께 되돌아가 벧엘에서 식사를 함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것을 범하고 말았다.
(1) 늙은 선지자의 사악함(11-18절) : 그가 거짓선지자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사무엘의 선지학교중 하나에서 선지자로서의 훈련을 받았던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선지자의 이름을 얻게되었으나 점차 세속화되고 신성을 더럽히게 됨으로 예언의 영이 그에게서 떠나게 되었던것 같다. 만일 그가 바른선지자였다면 그는 여로보암의 우상숭배를 책망했어야 했을 것이다.
1) 그가 선한목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데리고왔는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혹자는, 그가 그렇게 한것은 그선지자가 기운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그를 동정해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악한의도에서 그랬던것 같다. 이는 거짓선지자들은 보통 참선지자들을 파멸시키려 하거나, 때로는 본문에서처럼 그들을 미혹하여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참선지자들에 대해 항상 가장 악한적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2) 그가 그선지자를 데리고 오기위해 매우 악한방법을 사용한 것만은 확실하다. 하나님의 사람이 그에게 "나는 당신과 함께 식사하러 돌아가서는 안되니 나는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을때 그는 악하게도 자신이 그를 데리고오도록 하늘로부터 지시하심을 받은 것처럼 행세하였다.
(2) 그는 유약함으로인해서 이와같이 속이는 것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에 그사람이 저와 함께 돌아가서(19절). 자기에게 보상을 약속한 왕의 초대까지도 단호하게 거절했던 그는 선지자인체 행세하는 자의 교묘한 수법을 이기지 못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내려진 메시지는 기묘하다. 다음과 같은 심판이 내려졌다. "너는 너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곧 송장이 될것이다. 또한 네시체가 '네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더욱 묘한일은 그늙은 선지자가 바로 그말씀을 전해주는 자였다는 사실이다. 그자신이 메시지를 전하게되자 그는 더욱 감화를 받을수밖에 없었다. 그메시지가 그의 영에 큰감동을 주었으므로 그는 고뇌에 빠진 사람처럼 외쳤다(21절). 아마도 그것은 그에게 좋은영향을 미쳤던것 같다. 다른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전파하면서 자신들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자들은 완악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다.

Ⅲ. 그선지자의 죽음 13:23-14
(1) 속아서 불순종한 선지자의 죽음 : 그를 속였던 그늙은 선지자는 집에까지 타고갈 나귀를 그에게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사자가 길에서 그를 덮쳐죽였다(23, 24절). 하나님께서는 벧엘의 어느곳에서도 먹지말라고 그에게 명하셨는데 그는 다른곳이라면 몰라도 이늙은 선지자의 집이라면 안전하리라고 생각했던가?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개조하는 것이며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현명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명백한 명령을 불순종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노엽게 하는것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자신의 백성의 죄에 대해서 진노하신다. 아무리 고결한 신앙고백을 하고 위엄에 넘치는 의식을 거행하더라도, 또한 아무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훌륭한 봉사를 하더라도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보호받을수 없다.
(2) 놀라웁게 보존된 그의 시체 : 그것은 진노의 한가운데 기억하신바된 하나님의 자비의 징표였다. 그를 천천히 질식시켰거나 덮쳐죽인 그사자는 시체를 먹지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사지를 찢는것조차 하지않았다(24,25,28절). 아니, 더나아가서는 그시체를 가지러온 늙은 선지자를 공격하지도 않았다.
(3) 늙은 선지자가 그의 장사를 위해 취해준 배려 : 그렇게도 선하고 신실한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그처럼 담대했던 사람이 단한가지 범죄때문에 죄인으로 죽게된 반면에 그거짓말 하는 늙은 선지자와 우상숭배하는 왕은 각각 편안히, 그리고 영광과 권세를 날리며 살고있다는 것은 참으로 심히 슬픈일이 아닐수 없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서 그들을 판단할수는 없으며 사람들이 현재 징벌받는 것을 보고서 그들이 죄있다고 생각할수는 없다. 어떤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영혼이 구원받기위해서 육체가 멸망되기도 하는 것이다.
(4) 늙은 선지자가 자신의 장사에 대해서 아들들에게 내린 지시 : 그것은 자신이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이 묻혀있는 바로 그무덤에 자신을 장사지내 달라는 것이었다(31절). 내뼈는 그의 뼈곁에 두라. 그는 거짓말하는 선지자였으나 참선지자로서 죽기를 원했다. "내영혼으로 벧엘의 죄인들과 함께있게 하지말고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있게 하라." 그는 그 죽은선지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즉 비록 몸은 땅에 엎드러졌으나 그의 말은 땅에 떨어지지 않은 그선지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사람들의 뼈들이 여로보암의 단위에 살라지리라고 예언되었다. 따라서 그늙은 선지자의 말은 곧 이런말이라고 할수 있다. "내뼈를 그의 곁에 두라. 그러면 그뼈가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뼈는 안전하게 보존되었다(왕하 20:18). 본문에는 선지자의 무덤에 대한 기사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않다. 우리는 열왕기하 23:17절에서 다음과 같은 요시야의 질문을 볼수가 있다.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성읍사람들이 고하되 왕께서 벧엘의 단을 향하여 행하신 이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5) 여로보암의 완고한 우상숭배(33절) : 여로보암이 이일후에도 그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그는 하나님께서 갈라놓으신 단을 감히 수리하고는 그것에다 다시 제물을 바쳤다. 그를 돌이키기 위한 갖가지 방법이 다행해졌으나 어떤위협이나 표적도, 어떤심판이나 자비도 그의 마음을 변하게 할수는 없었다. 그는 그처럼 아주 별나게 그의 송아지에 집착해 있었다.

# 핵심
13:1-10
벧엘의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는 여로보암에게 한선지자가 나타나서 벧엘의 예배처가 멸망당하리라고 예언했다.
가족묘실(13:22)
가족묘로 주로 사용된 곳은 자연동굴이나 석회암층을 깎아서 만든 것이었다. 무덤의 입구는 대개 돌로 막았으며, 돌기둥으로 비석을 세우거나 상수리나무같은 자연물로 위치를 표시하기도 했다. 도자기따위의 부장품들을 넣어 장사를 지내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 묵상
벧엘제단의 파괴 ( 13:1-10 )
벧엘제단이 파괴된 것은 우상숭배를 조장한 여로보암의 범죄에 대한 심판때문입니다. 위의 예언은 300년후 유다왕 요시야에 의해 실현됩니다(왕하 23:5-20). 이는 결국 인위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제단은 그리스도에 의해 파괴되고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복음선포자의 자세 ( 13:1-5 )
비록 적대적인 장소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이면 반드시 가야합니다. 복음은 모든민족을 위한 것이고 천하만국에 전파되어야 합니다(막13:10). 그러기에 복음선포자들은 세상 어느곳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믿음이 있어야 마땅합니다.
왕권을 수호하기 위한 여로보암의 행위 ( 13:7 )
여로보암은 왕권을 수호하기위해서 여호와의 신앙규례를 무시했습니다. 즉, 그는 선지자를 회유함으로써 그의 예언이 백성들에게 받아들여져 나타나게될 왕권의 위협과 그가 제시한 벧엘성소 제사의식에 대한 백성들의 종교적 의심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거짓선지자의 모습 ( 13:11-18 )
마치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지자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는 ‘천사’를 빙자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속였습니다(고후11:14). 거짓선지자들은 능력을 행할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우는사자처럼 삼킬자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탄의 궤계를 분별하기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늘깨어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유혹앞에 선 선지자 ( 13:19-24 )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유혹은 인간의 육체적인 욕구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은데, 유혹이 올때 이길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마4:1-11). 유혹에 넘어간 선지자는 사자에게 찢겨죽는 결과를 맞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언약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원하십니다. 그렇지못한 자에게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순종에 따른 징벌 ( 13:20-30 )
벧엘의 선지자는 ‘천사’의 명령이라고 속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범하게 했습니다. 사자와 같은 야수는 배가 고프지않으면 사냥을 하지않는데, 시체를 먹지도 않고 당나귀도 해치지않으면서 불순종한 하나님의 사람만 죽인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징벌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지않도록 깨어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 13:32 )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의 오차도 없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작은실수에도 불구하고 죽임을 당할수밖에 없었다면, 여로보암의 죄에 대한 징벌은 더욱 확실하게 실현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말씀은 현시대에도 이루어지지만, 마지막날에 완전하게 이루어지고 드러날 것입니다(고전13:12).
악에 빠진 자의 삶 ( 13:33, 34 )
회개의 기회가 주어져도 그것을 깨닫지못하고 계속 악을 행했습니다. 죄는 또다른 죄를 만들어냅니다. 그러기에 죄에 빠진 사람이 회개하지 않으면 그사람은 영원히 죄의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롬6:16).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사정을 정직하게 아뢰며, 회개하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해야 합니다.

# 해설
여로보암과 하나님의 사랑 ( 13 )
여로보암의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에 의해 책망을 받게됩니다. 이때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경고가 담겨있는 이적을 경험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하나님의 사람은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오는 길에 늙은 선지자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됩니다. 그결과 그는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죄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한 심판은 여로보암에게 강력한 경고를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1. 무너지는 벧엘의 제단
1)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
무명의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우상앞에 분향하는 여로보암에게 갔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심판을 예언하였습니다. 이예언의 내용은 장차 요시야라는 인물이 태어나 벧엘의 단을 부수고 거짓제사장을 죽이게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예언을 입증하는 기적 곧 예조가 일어나 그단이 갈라지게 될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된 요시야는 앞으로 300년후에 태어날 유다의 왕을 가리키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예언은 놀라울 뿐입니다(참조, 왕하23:15-20).
a.하나님의 사람(왕하23:17)
b.벧엘에 있는 단(왕상13:32)
2) 무너지는 벧엘의 제단
예언을 들은 여로보암은 손을 내밀어 저 하나님의 사람을 잡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내민손이 곧 말라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언대로 단이 갈라지고 재가 단에서 쏟아졌습니다. 여로보암은 즉시 그하나님의 사람에게 청원하기를 네하나님께 간구하여 자신의 손을 낫게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결국 그의 손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를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예언의 성취를 목도하게 하심으로 여로보암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지않고 네하나님이라 부르면서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a.우리를 위해 기도하라(출8:8)
b.병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약5:16)
3) 하나님의 사람의 단호한 거절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여로보암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보다는 그하나님의 사람에게만 호의를 베풀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행위는 우상숭배의 죄악을 멈추지않는 여로보암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가 담겨져있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였습니다. 적어도 그는 이시점까지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a.감사의 예물(왕하5:15)
b.단호한 거절(민22:18)
2. 늙은 선지자의 유혹
1) 벧엘에 사는 늙은 선지자
우상숭배의 중심지라 할수 있는 벧엘에 한선지자가 살고있었는데, 그는 늙은 사람이었습니다. 선지자인 그가 이곳을 떠나지않고 사는것은 옳지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아들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람에 관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그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한편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갈길을 속히 가지않고 꾸물거리고 있었기에 국경을 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상수리나무아래에서 쉬던중에 늙은 선지자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a.우상숭배지 벧엘(왕하23:15)
b.상수리나무(사1:29)
2) 유혹에 빠진 하나님의 사람
늙은 선지자는 분명한 이유도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거짓말로 유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목숨 걸고 여로보암에게 심판을 선포할정도로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쉽게 늙은 선지자의 유혹에 빠져 그의 집에서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인간은 이처럼 유혹받기 쉬운 무기력한 존재이며 어리석기 한량없습니다. 한편 하나님의 사람을 죄악에 빠뜨린 늙은 선지자를 통하여 당시 북이스라엘의 죄악된 영적상태를 감지할수 있으며, 여로보암의 배교가 그사회에 어느정도의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분별할수 있습니다.
a.아담을 유혹한 하와(창3:6)
b.유혹하는 이세벨(왕상21:7)
3.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1) 죄에 대한 심판의 예언
하나님께서는 늙은 선지자의 입을 통해 범죄한 하나님의 사람에게 심판이 임할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명령을 어겼기에 죽게될 것이고, 그시체는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명예롭지 못하게 매장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는 참으로 엄격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맡기신 자일지라도 범죄했을때에는 즉각적으로 징계하십니다.
a.죄에 대해 보응하심(출32:34)
b.하나님의 심판(삼상13:14)
2) 징계를 받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은 늙은 선지자의 배웅을 받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가다가 길에서 사자를 만나 죽고 말았습니다. 이사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심판의 도구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은 늙은 선지자에게도 전해졌습니다. 마음한편으로 죄책감이 있었을 늙은 선지자는 그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장사지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예언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은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을 만인들에게 증거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여로보암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그대로 성취될 것이 분명함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a.징계의 원인(민26:9-10)
b.징계의 결과(신28:59)
3) 여로보암의 죄
앞의 사건들은 우상숭배를 서슴지않고 행하는 여로보암과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전혀 개의치않고 우상숭배에만 몰입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는 길만이 북이스라엘 왕국이 번성케되며 자신도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는 길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아무나 제사장이 되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율법을 거역하는 악행이며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였습니다. 이렇게 악한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였기에 그도 이제 멸망을 피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귀하게 쓰임받을수 있었던 여로보암이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자 스스로 무덤을 파고 말았습니다.
a.우상숭배의 죄(출23:32)
b.죄의 결과(롬6:23)
결론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그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말씀에 철저히 순종해야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막중한 사명을 지닌 자일수록 철저하게 순종해야함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런점에서 볼때 여로보암의 죄악은 더욱 큰것이며 회개치 않을때 임할 그심판의 무게는 더욱 클 것입니다.





'열왕기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상 15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4장 - study  (0) 2022.11.02
열왕기상 12장 - study  (0) 2022.10.03
열왕기상 11장 - study  (0) 2022.10.03
열왕기상 10장 - study  (0) 2022.09.3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