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이 불가능해지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나훔 3장 12절~19절]
12절 - 네 모든 산성은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가 흔들기만 하면 먹는 자의 입에 떨어짐과 같으리라
13절 - 네 가운데 장정들은 여인 같고 네 땅의 성문들은 네 원수 앞에 넓게 열리고 빗장들은 불에 타도다
14절 - 너는 물을 길어 에워싸일 것을 대비하며 너의 산성들을 견고하게 하며 진흙에 들어가서 흙을 밟아 벽돌 가마를 수리하라
15절 - 거기서 불이 너를 삼키며 칼이 너를 베기를 느치가 먹는 것 같이 하리라 네가 느치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네가 메뚜기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16절 - 네가 네 상인을 하늘의 별보다 많게 하였으나 느치가 날개를 펴서 날아감과 같고
17절 - 네 방백은 메뚜기 같고 너의 장수들은 큰 메뚜기 떼가 추운 날에는 울타리에 깃들였다가 해가 뜨면 날아감과 같으니 그 있는 곳을 알 수 없도다
18절 -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19절 -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

니느웨는 모든 산성이 쉽게 무너지고 성문이 원수 앞에 열려 무방비 상태가 될 것이니 그것에 대비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수많은 상인과 방백, 장수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백성이 흩어져도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습니다. 앗수르에게 행패를 당했던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손뼉을 칠 것입니다.

1. 조롱당하는 니느웨 (12~15절)
하나님은 강한 힘을 자랑하며 스스로 높이는 자를 흔들어 바닥으로 떨어뜨리십니다. 흔들기만 해도 쉽게 떨어지는 나무 열매를 입에 받아 먹듯, 니느웨의 함락은 아주 손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니느웨는 원수에게 아무 힘도 못 쓴 채 무방비 상태로 공격당할 것입니다. 나훔이 니느웨 백성을 향해 산성들을 견고히 하고 스스로 메뚜기처럼 많아져 보라고 한 것은, 그들이 열심히 방어하고 많은 인원을 동원해 저항할지라도 그 모든 노력이 헛됨을 조롱하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악인들이 나름대로 방법을 강구하며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심판주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분은 난공불락의 철옹성도 단숨에 무너뜨리는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 나훔은 니느웨가 힘없이 패망할 것임을 어떻게 풍자하나요? '견고함'과 '많음'을 내세우던 니느웨의 패망을 보며 내가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되돌릴 수 없는 니느웨의 최후 (16~19절)
악한 세력은 결국 허무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성경은 공포의 대상을 묘사할 때, 농작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메뚜기 떼'를 비유로 종종 사용합니다. 그런데 나훔은 메뚜기의 무서운 습성이 아닌, 후루룩 날아가 버리는 습성을 니느웨의 모습에 빗댑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니느웨의 무수한 상인과 지도자, 그리고 성을 지켜야 할 장수마저 메뚜기처럼 일순간에 도망가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니느웨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될 것입니다. 니느웨의 횡포로 고통당하던 사람들은 그 패망 소식에 손뼉 치며 기뻐할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고칠 수 있을 때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 죄를 버리고 바르게 서야 니느웨처럼 완전히 엎드러지지 않습니다.
* 니느웨의 패망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나요? 나의 마지막은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칭찬의 박수를 받는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오늘의 기도
파멸당하는 니느웨를 보며, 악을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묵상합니다. 심판이 확정되기 전에, 회복할 수 없는 수치와 고통을 당하기 전에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개입을 기다리며, 악한 자들의 횡포 속에서도 인내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죄가 가득한 곳에 '화'가 있습니다

[나훔 3장 1절~11절]
1절 -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2절 -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3절 -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4절 -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5절 -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나라들에게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요
6절 -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 거리가 되게 하리니
7절 -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
8절 -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그는 강들 사이에 있으므로 물이 둘렸으니 바다가 성루가 되었고 바다가 방어벽이 되었으며
9절 - 구스와 애굽은 그의 힘이 강하여 끝이 없었고 붓과 루빔이 그를 돕는 자가 되었으나
10절 - 그가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갔고 그의 어린 아이들은 길 모퉁이 모퉁이에 메어침을 당하여 부서졌으며 그의 존귀한 자들은 제비 뽑혀 나뉘었고 그의 모든 권세자들은 사슬에 결박되었나니
11절 - 너도 술에 취하여 숨으리라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으리라

거짓과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않는 피의 성에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기병들이 칼과 창으로 죽인 시체가 무수합니다. 이는 니느웨가 마술과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되게 했기 때문입니다. 요새였던 노아몬이 멸망한 것처럼 니느웨도 결박과 수치를 당하고 황폐해질 것입니다.

1. 수치를 당할 죄악의 도성 (1~7절)

우리는 죄에 미혹되지도, 남을 미혹되게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속임에 능한 니느웨는 주변 여러 나라를 그럴듯한 말로 현혹해 속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피정복민을 잔인하게 압제하며 부당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우상 숭배와 음행에 빠뜨렸습니다. 이처럼 거짓과 포악과 탈취가 가득한 니느웨에 '화'가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됩니다. 나훔은 멸망당하는 니느웨의 처참한 모습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이는 죄의 끔찍한 결과를 보는 사람들이 그 근처에도 가기 싫을 만큼 죄를 멀리하도록 하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 죄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당장 눈에 좋아 보이고 입에 달콤하다고 죄를 덥석 물어 버리면, 결국 치욕을 당하며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 니느웨가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로 비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뿌리치지 못하고 자꾸 미혹되는 죄의 유혹은 어떤 것인가요?


2. 노아몬처럼 패망할 니느웨 (8~11절)

죄에 물든 이들에게 심판이 임할 때, 세상의 도움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애굽의 수도 노아몬은 나일강 가에 있기에 물이 방어벽 같았고, 애굽의 다른 성읍들과 구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으로 결국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몬보다 나을 것이 없는 니느웨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어린 자녀들이 무참히 살해당하고 권력자들마저 결박당한 노아몬처럼, 니느웨 역시 전쟁의 참혹함을 겪게 될 것입니다. 니느웨 백성은 하나님이 쏟아내시는 진노의 잔을 마시고 술 취한 자처럼 비틀거리며 피난처를 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상 숭배와 죄의 자리에서 돌아서지 않는 자들에게 피할 곳은 없습니다.

* 니느웨 앞에 심판의 본보기가 된 노아몬은 어떻게 패망했나요? 죄를 짓고 하나님을 피해 세상의 힘과 도움 뒤에 숨으려 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세요.


오늘의 기도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다가온 악의 유혹에 넘어간 적이 있었음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무서운 소용돌이 같은 심판을 맞닥뜨리기 전에, 제 삶에서 가증한 모습을 버리게 하소서. 악한 세상 소리에 귀를 닫고, 미혹의 영에 흔들리지 않는 굳은 믿음과 정결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교만의 끝은 패망입니다

[나훔 2장 10절~13절]
10절 -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 주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11절 -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냐 젊은 사자가 먹을 곳이 어디냐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12절 -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고 그의 암사자들을 위하여 움켜 사냥한 것으로 그 굴을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을 채웠었도다
13절 -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니느웨는 황폐해지고 주민이 낙담할 것입니다. 사자같이 두려울 것 없으며 다른 나라를 노략질하던 니느웨의 자취가 없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니느웨의 병거를 불사르시고 젊은 용사들을 멸하시며 니느웨가 노략한 것을 끊으시니, 그들이 다시는 다른 나라를 침략할 수 없을 것입니다.

● 황폐해지는 니느웨
교만과 포학은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옵니다. 니느웨는 한때 어느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강한 사자와 같았습니다. 실제로 앗수르 제국은 사자를 왕실의 상징물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사자처럼 거만했고, 잔인하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들의 악함은 결국 그 대가를 치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보복으로 니느웨는 공허하고 황폐해질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과 많은 민족을 두렵게 했던 니느웨는 이제 낯빛이 어두워질 정도로 망연자실한 채 극심한 두려움에 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니느웨의 대적이 되셔서 그들을 철저하게 치심으로, 그들이 이웃 나라를 더는 노략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며 기세등등했던 니느웨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집니다. 이것이 교만한 자들의 최후입니다. 악의 세력은 만군의 여호와 앞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 심판 전과 후의 니느웨는 어떻게 다르며, 니느웨가 몰락한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승승장구하던 니느웨의 패망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악인을 심판하시는 주님이 성도의 소망입니다

[나훔 2장 1절~9절]
1절 -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지어다
2절 -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 같게 하시나니 이는 약탈자들이 약탈하였고 또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를 없이 하였음이라
3절 - 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그 항오를 벌이는 날에 병거의 쇠가 번쩍이고 노송나무 창이 요동하는도다
4절 - 그 병거는 미친 듯이 거리를 달리며 대로에서 이리저리 빨리 달리니 그 모양이 횃불 같고 빠르기가 번개 같도다
5절 - 그가 그의 존귀한 자들을 생각해 내니 그들이 엎드러질 듯이 달려서 급히 성에 이르러 막을 것을 준비하도다
6절 -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7절 - 정한 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니 그 모든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우는도다
8절 -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9절 - 은을 노략하라 금을 노략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파괴하는 자가 니느웨를 치러 오니 니느웨는 힘을 다해 지킵니다. 그러나 적들이 병거를 타고 번개처럼 빨리 달리며 침략하니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무너지며 왕후가 벗은 몸으로 끌려갑니다. 니느웨에 많았던 사람들이 모두 도망하고, 풍부했던 은금은 노략당할 것입니다.

1. 니느웨의 파멸과 유다의 회복 예언 (1~2절)
전쟁에 능하신(시 24:8) 만군의 여호와의 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파괴하는 자'(1절)는 니느웨를 무너뜨리고자 하나님이 심판 도구로 사용하실 바벨론과 메대의 연합군을 의미합니다. 그날에는 니느웨가 아무리 산성을 지키고 길을 파수할지라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이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파수꾼이 깨어 있어도 헛될 뿐입니다(시 127:1). 니느웨가 파괴된다는 예언은 유다에게 소망을 주는 소식입니다. 그동안 유다는 니느웨에 공격당하고 약탈 당해 가지 잘린 포도나무와도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선택받은 언약 백성으로서의 영광을 회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열방 앞에서 하나님의 기쁜 이름이 되고, 찬송과 영광이 되며, 복을 받는 것이 그분의 뜻입니다(렘 33:9).
* 니느웨에 대한 예언은 유다 백성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공동체와 나를 공격 하는 악한 세력 때문에 괴로울 때 무엇을 소망해야 할까요?

2. 행한 대로 당하는 니느웨 (3~9절)
악한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은 더 강한 세력으로 그들을 치시기에 그 심판을 이겨 낼 자가 없습니다. 이제 나훔은 니느웨가 어떻게 처참하게 무너지는지 자세히 예언합니다. 번개처럼 빠르고 위협적인 적의 군사들이 뛰어다니며 살육하니, 그들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영화롭던 왕궁도 파괴되고, 권세를 누리던 이들도 수치를 당하며 비참하게 포로로 끌려갈 것입니다. 니느웨는 과거에 '물이 모인 못'(8절)처럼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지만 지금은 모두 도망가 버리고, 쌓아 둔 보화와 풍부한 재물은 노략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니느웨에 벌어질 끔찍한 일들은 바로 그들이 다른 민족에게 자행했던 것입니다(2절). 이처럼 악인들은 행한 대로 심판받습니다.
* 니느웨는 얼마나 처참하게 파멸당하나요? 심판 앞에 수치를 당하고 은금을 버려둔 채 도망가는 니느웨 백성처럼 되지 않으려면 어떤 결단이 필요할까요?

오늘의 기도
악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성도를 마침내 승리케 하시고, 영광스럽게 회복시키실 줄 믿습니다.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늘 기억하며, 제 영과 삶에 은혜의 생수를 가득 채워 이웃과 나누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환난 날에 산성 되시고 멍에를 벗기시는 구원자

[나훔 1장 6절~15절]
6절 -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7절 -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8절 -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9절 -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10절 -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은 마른 지푸라기 같이 모두 탈 것이거늘
11절 -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악한 것을 권하는도다
12절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혔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아니할 것이라
13절 -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
14절 -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령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준비하리니 이는 네가 쓸모 없게 되었음이라
15절 -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할 사람이 없지만 그분은 선하셔서 환난 날에 그분께 피하는 자에게 산성이 되십니다. 앗수르가 비록 강해도 반드시 멸절당해 유다에 지운 멍에와 결박이 끊어질 것입니다. 악인이 진멸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으니 유다는 절기를 지키고 서원을 갚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선하심 (6~8절)
악에 대해 분노하시는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악인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진노를 쏟으시면 이 땅에서 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아무것도 남아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대적하는 세력을 완전히 쓸어버리시고,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난 날에도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은 보호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산성이 되어 주시고 그분의 선함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죄를 엄격하게 다루시되, 심판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은 진정 거룩하고 선하신 분입니다.
* 본문에서 알 수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하나님을 아는 사람으로서 나는 죄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께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요?

2. 아름다운 소식을 알림 (9~15절)
하나님은 죄에 빠진 자녀를 벌하시고자 악한 자를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택하신 자들을 괴롭히고 끊임없이 악을 꾀하는 세력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대적이 아무리 강하고 많아도 하나님은 그들을 무력화하시고 철저히 멸하셔서, 그들이 다시는 하나님 백성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의 멍에와 결박에서 해방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으로 유다를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앗수르왕은 죽임을 당하고, 그의 왕좌와 우상도 다 사라질 것입니다. 이는 앗수르의 압제를 받던 유다 백성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궁극적인 악의 세력인 사탄을 물리치시고, 죄와 사망 권세 아래 있던 우리의 결박을 끊으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은 그분께 예배하고 헌신하며, 진정한 승리와 자유와 구원을 주는 기쁜 소식 곧 화평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15절; 롬 10:15 참조).
* 니느웨와 유다에 각각 어떤 메시지가 선포되나요?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죄와 죽음의 결박에서 풀려난 사람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환난 때에 무너지지 않는 산성 되신 주님께로 피하는 것이 살길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죄의 사슬에 묶여 있던 저에게 참자유를 주신 주님! 사망 권세 아래서 끊임없이 시달리며 화평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복음 전하는 사명을 제가 한시도 잊지 않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질투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보복하시는 거룩한 하나님

[나훔 1장 1절~5절]
1절 -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2절 -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3절 -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4절 -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5절 -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니느웨에 대한 나훔의 묵시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며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보복하시는 분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지만 권능이 크시며 벌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바다와 강을 말리시니 바산과 갈멜이 쇠합니다. 그분 앞에서 세계와 그 안의 모든 것이 솟아오릅니다.

1. 니느웨를 향한 경고 (1절)
하나님은 악한 자들을 치시기 전에 먼저 경고하십니다. 니느웨는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유다를 대적한 앗수르의 수도로 그 제국 전체를 대표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니느웨 사람들도 용서하시고 구원의 은혜로 품기 원하셨기에, 그들을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선지자 요나를 보내셔서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욘 4:2 참조). 요나의 경고로 니느웨 사람들이 금식하고 회개함으로 진노를 돌이켰지만, 그들은 일시적인 회개 후에 다시 악을 행합니다. 우상 숭배를 일삼으며 하나님 백성을 공격하고 사로잡은 니느웨에 이제 하나님이 나훔을 통해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그 땅에 파멸의 심판이 임하리라는 것입니다. '위로'를 뜻하는 이름을 지닌 나훔의 메시지는 니느웨에 압제당하던 백성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셔서 니느웨에 경고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즘 우리 공동체와 나는 하나님의 경고를 잘 새겨듣고 있는지 돌아보세요.

2. 보복하시는 하나님 (2~5절)
하나님을 바르게 알면, 그분이 하시는 일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자기 백성을 향한 뜨거운 관심과 열정입니다. 하나님의 보복은 죄악과 불의에 대한 공의로운 징계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거스르는 자들에게 진노하시고 보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내버려 두실 수 없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악을 진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은 바다도 말려 버리고, 비옥한 곳도 한순간에 폐허로 만들 만큼 강력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노하기를 더디 하심은 죄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오래 참으시지만, 끝내 회개하지 않는 자를 심판하시는 그분은 참으로 사랑의 하나님이시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 하나님은 그분을 거스르는 자에게 어떻게 하시나요? 즉시 벌하지 않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앞에서 내 죄를 회개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적은 없나요?

오늘의 기도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를 저지른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고자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거스르고 욕심대로 행하려는 악함을 제 안에서 진멸하소서. 가정과 교회, 사회에서 하나님 뜻을 실천함으로 의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나훔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니느웨는 부흥을 경험한 도시다. 이미 100여 년 전에 요나가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그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함으로 부흥을 경험했다. 하지만 나훔 시대의 니느웨는 이전보다 더 사악한 백성으로 가득했다. 하나님이 나훔을 통해 주시는 심판 메시지는, 강한 성 니느웨가 맹렬한 불에 휩싸이고 앗수르 제국이 멸망할 것임을 예고한다.

나훔서 한눈에 보기

초점

니느웨 멸망의 선포

니느웨 멸망의 묘사

니느웨 멸망의 마땅함

구성

하나님의 일반적

심판 원칙

니느웨의 멸망과

유다의 구원

전쟁으로 부름

니느웨의 멸망

니느웨 멸망의

원인들

니느웨 멸망의

필연성

본문

1:1~8

1:9~15

2:1~2

2:3~13

3:1~11

3:12~19

주제

심판의 선포

심판의 환상

심판의 확증

하나님이 하실 일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방법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이유

장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그리고 유다

연대

BC 640 년경


시대적 배경

예언자 '나훔'은 엘고스 사람으로, 그의 이름은 '위로' 혹은 '위안'이라는 뜻이다. 이는 니느웨의 멸망에 대한 나훔의 메시지가 앗수르인들에게 억압받던 유다 백성에게 '위로'가 되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나훔서가 기록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니느웨 성이 바벨론에게 멸망되기 이전인 BC 612년과, 3:8~10절에 언급되는 노아몬이 앗수르의 공격에 멸망을 당한 BC 663년 사이에 기록되었음은 분명하다. 이 시기에 유다를 통치한 왕은 므낫세와 요시야로, 앗수르의 멸망을 다루는 이 책의 내용에 근거할 때 정치 · 종교적으로 반앗수르 정책을 펼쳤던 요시야 시대(BC 639~609)에 므낫세 시대 이후 남겨진 친앗수르 세력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주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나훔이 사역을 시작하기 약 100여 년 전, 하나님은 요나를 통해 니느웨를 구원하셨다. 그러나 앗수르가 강성케 되자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던 니느웨 백성의 겸손은 곧 교만으로 변했다. 결국 하나님은 나훔을 통해 다시금 니느웨에 임박한 심판을 선포케 하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얼굴을 구하며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는 한없이 자비하시지만, 그분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보복하시는 하나님이다. 이제 니느웨를 향해 멸망은 선포되었고(1장), 묘사되었으며(2장), 또 마땅하게 여겨졌다(3장).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악이 가득한 니느웨를 향해 내리시는 이 심판은 아무도 저지할 수 없으며, 이것은 유다 백성에게 큰 위로의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 니느웨를 향한 예언서 비교

요나

나훔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심판

BC 760년경

BC 640년경

니느웨의 회개

니느웨의 반역

불순종한 예언자

순종한 예언자

순종한 나라

불순종한 나라

물에서 구원

물로 멸망


인간, 망각의 존재

니느웨는 요나가 놀랄 정도로 원색적인 부흥을 경험한 도시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 신앙 부흥이 몇 세대도 못가 짧게 끝나고 말았는가? 그들의 회개가 진실하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부흥의 시효가 원래 짧아서인가? 아니다. 부흥을 경험한 세대가 그 후대에게 그들이 되찾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선지자' 요나와 그가 전한 하나님, 그리고 회개하며 돌이킨 부흥 세대의 삶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신앙이 쇠하면 반드시 이교도의 습관으로 되돌아 가게 되어 있다. 우리는 오늘의 부흥을 이어 가기 위해 하나님을 바로 전하고 있는가? 망각의 본성을 거슬러 하나님의 기억을 날마다 새롭게 하고 있는가?


# study
(1~19절)

니느웨 멸망의 원인 - 니느웨가 멸망당하게 된 원인을 밝혀 주고 있는 본문은, 그 원인이 그들의 관영(貫盈)한 죄악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부분(1~11절)과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게 되었음을 일러주고 있는 부분(12~19절)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여기서 나훔은 앗수르가 유다를 침략하여 많은 피를 흘리게 한 것(1절)과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숭배케 한 죄악(4절)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죄악으로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다.
[1절]
피 성. 이에 해당하는 히, '아르 다밈'은 '피 흘린 성읍'이라는 뜻으로 니느웨의 죄악상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표현이다.
[2~3절]
장차 니느웨를 공략할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들의 위용 및 빛나는 전과와 함께 니느웨가 겪게 될 패배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는 구절이다.
[4절]
마술의 주인. 이 말은 니느웨에 마술사와 술객들이 많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침략과 지배와 약탈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간교한 술책들을 아주 교묘하게 이용했음을 뜻한다. 그리고 음행은 주로 우상 숭배에 적용되는 말(삿 2:11~13)이나 여기서는 유혹, 극도의 이기심, 간교한 술책, 배반 등을 의미한다. 열국을 미혹하고 음행을 이용하여 많은 나라들을 속국으로 삼아 지배하거나 속국의 백성들을 노예로 팔아 넘긴 것을 가리킨다(욜 3:3).
[5~6절]
니느웨가 여자로 비유되어 여자로서 겪을 수 있는 온갖 수치와 능욕은 다 당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는 구절이다.
[8절]
노아몬(No-Amon). 이 도시는 B.C. 663년 앗수르의 앗술바니팔(Ashurbanipal)에 의해 점령당한 상애굽의 수도 테베를 가리키는데 현재 명칭은 룩소르(Luxor)라 불리고 있다. 앗수르에게 점령당하기 전 노아몬은 이방 종교의 중심지였으며, 천연 요새 역할을 하는 나일 강으로 인해 튼튼한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천혜(天惠)의 도시도 하나님의 진노의 손길이 임함으로써 순식간에 멸망당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여기에서 나훔 선지자는 이 도시의 파멸을 장차 니느웨가 겪게 될 멸망에 대한 상징으로 비유하였다.
[9절]
구스(합 3:7), 그리고 붓(현재의 키레니카)과 루빔(리비아)은 애굽의 속국으로서 나일 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편 이 세 나라는 앗수르가 노아몬을 침공했을 때 노아몬에 지원군을 파병했는데 이러한 도움에도 불구하고 노아몬은 끝내 점령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10절]
존귀한 자들은 제비뽑혀 나뉘었고. 당시의 관습은 포로들을 노예로 삼을 때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지는 것이 통례였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은 통상 천민과 평민 출신의 포로들에게 적용되었으며 귀족 출신의 포로들은 이보다 나은 대우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느웨 멸망시 그 귀족들은 천민과 똑같은 취급을 받았는데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는 니느웨가 역사상 얼마나 유례 없는 비참한 최후를 마쳤는지를 알 수 있다.
[11절]
취한바 되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심으로써(렘 25:15, 17, 27; 옵 1:16; 합 2:16) 파멸의 문턱에 당도한 상태를 가리킨다.
[12절]
니느웨를 돕기 위해 파병된 지원군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 아래 전혀 힘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무력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의지하고 신뢰하는 모든 것들을 일격에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권능을 지니고 계신다(수 6:20; 시 9:6).
[13절]
장정들은 여인 같고. 사자와 같이 용맹스러웠던 니느웨의 병사들(2:11, 12)도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심으로써(11절) 겁이 많은 여인처럼 나약하게 된다(사 19:16; 렘 50:37)는 뜻이다. 빗장들은 불에 타도다. 당시 근동 지방에는 정복자들이 점령한 도시의 성문을 불태우는 관습이 있었다.
[14절]
물을 길어...예비하며. 여자적(如字的)으로만 이해할 때에는 적들이 니느웨 성을 포위할 것에 대비하여 성내에 마실 물과 그 밖의 소용에 필요한 물들을 비축해 두라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그러지 않다. 오늘날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니느웨 성내에는 티그리스 강물을 이용한 수도 시설과 우물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적의 침입에 아무리 대비하여도 결국 니느웨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되고 말 것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15절]
늣은 메뚜기와 같은 종류를 가리킨다. 네가 늣같이...메뚜기같이...많게 할찌어다. 메뚜기떼와 같이 많은 지원군들을 확보한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6절]
당시 니느웨는 유리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무역과 상업이 번성하였다. 따라서 이곳에는 각국으로부터 몰려드는 무역 상인들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었는데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으로써 그 많던 상인들이 일시에 교역을 중단하고 단 한 명도 이곳을 출입하지 않게 되었다.
[17절]

너의 방백은 메뚜기 같고. 이 구절은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되어진다. 니느웨의 방백들이 메뚜기떼와 같이 많다. 그 방백들이 사정없이 농작물을 먹어 치우는 메뚜기떼처럼 주변 약소국들을 끊임없이 침략하고 악랄하게 약탈했다. 대장은 큰 메뚜기...날아감과 같으니. 이는 용맹과 지략을 자랑하던 니느웨 장수들도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의 위세에 눌려 감히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눈치만 살피다가 기회가 오면 부하들과 백성들마저 내팽개쳐 버리고 자신의 살 길을 찾아 도주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18절]

목자는 안보를 담당했던 방백과 정치 관료들을 가리킨다. 자고와 누워 쉬며는 전쟁터에서 전사하는 것(시 76:6)을 뜻한다.

[19절]

네 소식을...없음이 아니냐. 이제껏 니느웨로부터 수많은 침략과 약탈을 당해 온 약소국들에게 있어 니느웨의 멸망은 환희에 넘치는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앗수르에게 가장 많은 압제를 받아왔던 유다 백성들에게는 이 소식이 자유와 해방을 보장해 주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한편 이러한 니느웨의 멸망은 장차 사탄의 세력이 심판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마 3:12; 마 25:31~46; 눅 3:17; 요 5:22; 딤후 4:1; 계 2:23)에 의해 완전히 섬멸되어질 것을 예표한다. 이러한 소식이야말로 이제껏 죄와 사망의 노예 생활을 해왔던(요 8:34; 롬 7:24) 우리들에게 참된 자유(롬 8:2)와 진정한 기쁨과 나아가서는 구원의 산 소망(벧전 1:3)을 가져다 주는 승리의 복음인 것이다(요 5:24).

 

# 해설

니느웨의 죄악 (1~7절)

니느웨가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바로 죄 때문이다. 나훔은 본문에서 니느웨의 죄악을 폭로하고, 이제 니느웨의 멸망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선언한다(12~19절). 역사상으로도 악명 높은 니느웨의 죄악은 궤휼, 포학, 수탈, 살육, 부도덕, 이기적인 외교(1~4절)로서 결국 니느웨는 음녀가 받는 형벌에 처해졌다(5~7절; 렘 13:22~27; 겔 16:37~43). 특히 여기서는 하나님을 떠난 것 자체가 영적 간음으로 규정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참된 여호와 신앙의 부재란 곧 우상 숭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후에 요한은 죄악 된 세상을 '음녀'라고 규정했다(계 17:5; 계 19:2).

노아몬과의 비교 (8~11절)

난공 불락의 요새로 간주되었던 상 애굽(upper-Egypt)의 수도 노아몬(테베)이 B.C. 633년에 앗수르의 앗술바니팔에 의해 점령당한 바 있거니와 이제 나훔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테베가 당했던 동일한 운명이 바로 앗수르에게 닥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한편 본문은 그러한 니느웨의 필연적 멸망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삽입된 부분으로 앞 단락과 뒷 단락을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니느웨 멸망의 필연성 (12~19절)

본문은 8절에서 시작된 직접 화법이 19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니느웨 성읍이 아무리 방비를 철저하게 하고(14절), 경제력(16절)과 군사력(17절)을 보강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심판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마지막으로 멸망할 앗수르 왕에 대한 질책으로 본서는 끝난다. 나훔의 예언은 역사상 이중적인 성취의 면모를 지닌 것으로 1차적으로는 앗수르의 멸망과 바벨론 유수 이전 유다의 회복으로 성취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의 세상 심판과 성도의 구원으로 성취될 것이다.

 

# 핵심

1~7절

니느웨 멸망의 원인이 궤휼, 강포, 늑탈 등 돌이킬 수 없는 죄악에 있음을 지적하는 내용.

노아몬 (8절)

카이로 남쪽 약 500km지점의 테베(욱소)로 알려진 도시.

성루 (8절)

성문 위에 세운 누각.

진흙 반죽 방법 (14절)

본절은 진흙으로 벽돌을 만드는 고대의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벽돌은 진흙을 발로 밟아 반죽하여 만드는 매우 힘든 노동이었다. 본문의 진흙은 히브리 '티트'로 진흙 외에 점토를 뜻한다. 헨더슨(Henderson)은 본절을 "진흙 속에 들어가고 그 점토를 밟아라'로 번역하고 있다.

 

# 묵상

니느웨의 수치 (1~4절)

선지자는 니느웨가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죄악, 즉 궤휼과 강포, 늑탈과 우상 숭배, 끊임없는 전쟁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니느웨의 이 모든 것으로 성도는 자기의 생활이 혹 니느웨와 같은 죄된 생활이 아닌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니느웨 멸망의 필연성 (8~19절)

나훔은 노아몬의 예를 들어 그 죄악을 상기케 하고 그보다 더 패역한 니느웨가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죄악은 분명히 피할 수 없는 형벌을 가져옵니다. 아무리 죄를 덮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범죄를 합리화하려고 해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의 결국은 사망(롬 6:23)이라는 사실을 항상 유념하여 회개와 동반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를 위하여 죄를 지으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큰 메뚜기떼가~깃들였다'는 의미 (17절)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이 침략할 때 니느웨의 많은 백성들이 도망하고 숨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은 메뚜기떼가 조직적으로 작물을 크게 황폐케 할 때(시 105:34)나 갑자기 없어지는 것을 상징할 때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 니느웨 (19절)

이는 니느웨가 이웃 나라를 침략하여 잔인하게 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는 죄악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악을 행하는 나라는 하나님의 인내의 때가 끝나면 필히 멸망하게 됩니다.

심판받은 니느웨 (19절)

다친 것을 고칠 수 없는, 중한 상처를 받게 됩니다. 니느웨는 바벨론과 메대의 침략으로 인해 다시금 복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당신의 뜻을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악한 무리들이 다시 회복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멸망시키십니다(시 9:5, 6).

 

 

출처 : 바이블25

# study
(1~13절)
니느웨의 멸망 - 장차 니느웨가 어떻게 멸망될 것인지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나훔이 이 같은 니느웨의 멸망을 야곱의 영광의 회복(2절)으로 이해하고 있는 까닭은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긴 하나 유다 백성들 편에서 볼 때에는 하나님께서 누차 자신들을 괴롭혀 온 원수를 갚아 주신 것이 되기 때문이다.
(1~5절)
바벨론과 메대의 니느웨 침공 - 니느웨를 향해 돌진해 올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의 가공할 공격력과 이에 대해 방어할 능력이 전혀 없는 무력한 니느웨의 전력이 비교되고 있다.
[1절]
파괴하는 자. 바벨론의 나보폴라사르(Nabopolassar, B.C. 626-605)와 메대의 키악사레스(Cyaxares, B.C. 625-585)가 거느린 연합군으로서 하나님께서 패역한 니느웨를 멸망시키기 위해 예비해 두신 심판의 도구들이다(렘 51:20). 너는 산성을...굳게 할찌어다. 역설적 의미를 지닌 풍자적 표현으로서 수비에 대한 권고가 아니라 적의 공격에 철저히 대비한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세력도 이를 막거나 취소시키지 못한다.
[2절]
성경에서 유다 왕국이 포도원에 비유되고 있는 것처럼(사 5:7; 렘 12:10) 여기서 포도나무 가지는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
[3절]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의 무기와 장비가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데, 특히 용사들의 방패와 무사들의 옷이 붉은 색을 띠고 있다는 것은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주 처절할 것을 의미한다.
[5절]
존귀한 자.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을 가리키는데 이들이 존귀한 자로 불림 받게 되는 까닭은 그들이 처음부터 존귀한 품성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성에 내재해 있는 고유 성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신적 존귀성에서 연유된 것임을 알 수 있다.
[6절]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완벽한 수리 시설을 갖추고 있는 티그리스 강도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이 미치면 수문이 부서지고 급기야는 강물이 범람해 단숨에 니느웨는 황폐해지고 말 것이다. 이러한 사건은 과학의 이기에 심취해 있는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시켜 주는 좋은 계기가 된다.
[7절]
정명(定命)대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라는 의미이다. 왕후(히, 후잡)는 앗수르의 왕비를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는 주변 국가들에게 여왕처럼 군림해 왔던 앗수르 자체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따라서 시녀는 자연히 앗수르의 여러 성읍 및 그 주민들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8~13절)
니느웨의 황폐 -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의 침략을 받기 전의 니느웨의 모습과 받은 후의 모습을 대조함으로써 장차 니느웨에 임할 재난이 얼마나 심각하고 결정적인 것이 될 것인지를 미리 예고해 주고 있는 부분이다.
[8절]
물이 모인 못. 니느웨 성읍에 거주하던 주민들의 수가 많았음을 비유하고 있는 말이다. 실제로 이 성읍이 가장 번영하였을 때의 인구는 60만 명에 이르렀다(욘 4:11). 많은 인구는 고대 사회에서 힘의 상징이었다.
[11절]
사자의 굴은 니느웨를 뜻하며, 젊은 사자의 먹는 곳은 니느웨의 침략과 약탈의 대상이 되었던 약소국들을 의미하고, 사자는 용맹하고 잔인했던 앗수르의 병정들을 가리킨다. 이처럼 사자에 비유될 정도로 강성했던 니느웨(앗수르)도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이 닿자 순식간에 폐허로 돌변하게 되었던 것(사 14:24, 25; 습 2:13)을 우리는 성경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13절]
내가 네 대적이 되어. 하나님께서 직접 니느웨와 싸우신 것이 아니라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을 심판의 도구로 삼아 그들의 대적이 되게 하셨다.

# 해설
니느웨의 멸망 (1~13절)
니느웨가 타국의 침략으로 노략당하고 철저하게 멸망하는 모습을 생생하고도 박진감 있게 예언하는 내용이다. 이는 사자로 비유될 정도로 포악하고 잔인한 앗수르가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에 의해서 멸망됨으로써 성취되었다(겔 32:22, 23). 아울러 하나님은 과거 앗수르에게 억압당했던 유다의 회복을 말씀하신다(2절). 본문의 내용은 또한 현재 죄악 된 세상과 교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으로서 주의 재림 때에 행해질 심판과 구원 행위를 예표하고 있다.

# 핵심
1~13절
니느웨의 멸망이 구체적으로 성취될 것과 그 참상을 밝히는 내용이다.
정명 (7절)
명령을 내려 작정함. 정해진 운명.
낙담하다 (10절)
'낙담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나메스'로 이는 '용해하다' '녹이다'라는 뜻을 가진 '마사스' 동사의 기본형이다. '마사스'의 일차적인 의미는 어떤 물질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녹아 없어지는 것, 곧 완전히 제거되는 것을 말하며, 비유적으로는 외부적인 어떤 요인으로 인한 두려움이나 슬픔 또는 비참함 등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크게 쇠약해지는 것을 뜻한다(삼상 15:9).

 

# 묵상

파괴하는 자 (1절)

파괴하는 자는 니느웨를 점령한 바벨론의 나보폴라살(Navopolassar 주전 626-605)과 메대의 키악사레스(Cyaxares, 주전 625-585)가 거느린 연합군을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니느웨를 멸망시키기 위해 예비해 두신 심판의 도구였습니다.

존귀한 자 (5절)

존귀한 자는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존귀한 자로 불리워진 이유는 이들이 존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성에 내재해 있는 성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점에 있어서의 존귀성을 알아야 합니다.

교만한 자의 마지막 (5~10절)

니느웨는 하나님의 심판의 계획에 따라 왕궁이 소멸되고 왕의 시녀가 포로가 됩니다. 도성의 많은 사람들은 흩어지고 바벨론 군대에 의해 금과 은은 약탈을 당하는 멸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직접 행하시기도 하지만 이방 나라를 통하여 심판하시기도 합니다.

너의 파견자 (13절)

이 말이 지칭하는 대상은 정복당한 나라들에게 공물을 징수하기 위해 파견된 앗시리아의 관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침공 계획을 상대국에게 알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국력이 강성해서 정복 국가에 관리들을 판견했던 나라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하여 한 사람의 파견자도 보내지 못한다는 것은, 오늘날의 강성한 국가도 하나님의 존전에서 악행을 일삼는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하게 멸망당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출처 : 바이블25

# study
(1~15절)
니느웨에 대한 심판 -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훔을 통해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하신 부분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심판하시게 된 까닭이 바로 자신의 속성에 있음을 밝히고 있는 부분(1~8절)과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하고 있는 부분(9~15절)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알 수 있는데 그분은 의로우신 분이며(2절), 노하기를 더디하시나 반드시 죄에 대해 징계하시는 분이며(3절), 전지 전능하며 거룩하신 분이다(4~8절).
[1절]
엘고스. 정확한 위치는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고 있지만 나훔 선지자의 관심이 주로 남왕국 유다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으로 보아 남유다 지방에 있는 어느 작은 마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묵시(默示)의 글. 이러한 제목으로 보아 본서의 내용은 나훔의 영안(靈眼)에 비친 하나님의 계시가 보다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진 것이라 하겠다<단 서론, 묵시 문학>.
[2절]
하나님의 속성을 신인 동형 동성론적인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는 구절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즉 인간들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분노하고 질투하며 보복을 자행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공의를 선포하시기 위해 이러한 감정들을 발하시는 것이다. 여호와는 투기(妬忌)하시며. 이러한 하나님의 투기는 결코 이기적이거나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택한 백성들을 당신의 온전한 자녀로 삼고자 하시는 놀라운 사랑에 기인한 것이다.
(3~8절)
심판주 하나님의 권능 - 여호와의 진노와 보복은 통상적으로 초자연적 권능 곧 폭풍과 가뭄, 지진, 홍수 등을 동반한 철저한 파괴(창 6:17; 욥 9:17; 호 13:15; 암 1:14; 합 3:6)를 통해 표출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징조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보호의 은혜를 베푸시나 적대하는 자들은 철저히 파멸시키신다(출 20:5, 6)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파멸은 편협하거나 치우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공의에서 출발된 것으로 엄정하고 올바른 것이다.
[3절]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이는 죄인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시면서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일면이다(출 34:6, 7; 사 48:9; 겔 18:23; 롬 9:22; 딤전 2:4; 벧전 3:20; 벧후 3:9). 그러나 하나님께선 끝까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대하여서는 결코 용서를 베풀지 아니하시는데 이는 그분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도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4절]
팔레스타인. 동북쪽에 위치한 바산은 비옥한 토양과 방대한 목장으로 잘 알려져 있던 곳이며(암 4:1), 갈멜은 비옥하고 아름다운 산악 지대로서 포도로 유명한 곳이다(아 7:5; 사 33:9; 사 35:2; 렘 50:19; 암 1:2). 그리고 레바논 역시 팔레스타인 북부 산악 지대로서 대표적인 산물로는 백향목(아 5:15; 사 14:8), 잣나무(왕하 19:23; 대하 2:8), 포도주(호 14:7), 목재 및 석재(왕상 5:5~18)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풍요로운 땅도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선 황폐하게 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우리는 인간에게 속한 풍요와 번영은 마치 들의 꽃과 같아서 궁극적으로 소망을 걸 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벧전 1:24).
[5절]
본문은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엄중함을 강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은 산들이 녹고. 용해된다는 뜻이 아니라 진동으로 인해 무너지거나 산사태가 발생하는 등의 현상을 가리킨다. 솟아오르는도다. 지진으로 인해 지각(地殼)이 융기되거나 침식되어 지층의 굴곡이 심해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7절]
산성. 이에 해당하는 히, '마오즈'는 '피난처', '안전한 곳', '요새', '성채'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바 이는 곧 의로운 자들이 심판의 손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인 하나님의 품안을 가리킨다(시 31:4; 시 37:39).
[8절]
범람한 물. 자연적인 홍수는 모든 사람들을 삼켜 버리는 것이 상례지만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홍수는 악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인들은 노아의 경우처럼 멸망치 않고 다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창 6:13~8:22).
[10절]
가시덤불같이 엉크러졌고. 니느웨 백성들의 죄악이 마치 가시처럼 그들 가운데 깊숙이 박혀 있을 뿐 아니라 도저히 풀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얽혀 있어 그들이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11절]
한 사람이 누구를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랍사게(사 36:13)를 비롯해 산헤립 또는 앗수르의 왕들을 가리킨다는 여러 견해들이 있으나 14절의 내용과 사 36, 37장을 고려해 볼 때 앗수르 왕 산헤립으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그는 B.C. 705-681년까지 앗수르를 통치했으며 B.C. 701년경에는 유다를 위협했다(왕하 18:13).
[12절]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게 하였으나. 유다 백성들이 과거에 입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했기 때문에(사 29:13)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 산헤립을 통해 유다를 치시고 유다 백성들이 고통을 겪도록 하셨던 일(사 29:3; 사 36:1)을 가리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그릇된 길로 갈 때에는 대적의 세력을 이용하셔서라도 반드시 징계를 내림으로써 회개토록 만드신다.

[13절]

이 예언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된 것으로서(사 9:4; 사 10:27; 사 14:25) B.C. 612년 바벨론과 메대(Media) 연합군이 니느웨를 점령함으로써 그대로 성취되었다.

[14절]

십계명에 의하면(출 20:5)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은 당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삼사 대까지 이르게 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니느웨같이 영원히 멸망될 수도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떤 죄악보다 우상 숭배를 더욱 엄하게 다루시는데 그 까닭은 인간이 피조물에 불과한 잡신이나 생명이 없는 물건들에게 영광을 돌림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기 때문이다<왕상 14:23, 우상론>.

[15절]

아름다운 소식. 니느웨의 멸망 소식을 가리키나 후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될 구원의 복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데 니느웨 멸망 소식은 그 당시 유다 백성에게만 한정된 복음이었으나,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된 기쁨과 진정한 위안을 주는 만인의 복음이다(롬 1:16).

 

# 해설 
머리말 (1절)

본문은 죄악으로 가득 찬 니느웨에 멸망을 선포하는 것이 나훔의 사명이었음을 명시한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요나의 경고를 받아들여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한 바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더욱 교만해져 결국에는 나훔의 심판 메시지에서 드러나듯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심판주 하나님의 권능 (2~8절)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하며(시 18:7~15; 합 3:4~7)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강렬하게 부각시킴으로써 니느웨 멸망의 원인과 그 필연성을 밝히는 본문은 뒤에 이어지는 니느웨에 대한 심판 선언의 도입부이다.

니느웨의 심판과 유다의 구원 (9~15절)

그 동안 유다를 괴롭혀 왔던 앗수르가 하나님의 징계로 멸망함과 동시에 유다에 평화의 소식이 전하여진다는 아름다운 시적 표현은 사도 바울에게서 구원의 복음으로 인용되었다(롬 10:15). 물론 이 예언의 성취는 B.C. 612년 앗수르의 멸망(습 2:13~15)과 유다 왕 요시야의 종교 개혁(왕하 22:3~23:27)으로 나타났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될 구원의 복음을 상징한다 하겠다. 특히 샬롬('화평')의 선포는 이사야서와 밀접한 관련을 보여 주면서(사 9:6, 7; 사 32:17; 사 53:5; 사 54:10, 13; 사 55:12; 사 57:19) 구속의 약속으로 충만해 있다.

 

# 핵심

1~8절

니느웨에 대한 심판의 서론. 니느웨의 멸망이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징계임을 밝힌다.

 

# 묵상

하나님의 속성 (1~8절)

니느웨에 대한 심판 예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로운 분이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반드시 죄에 대해서는 징계하시는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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