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이스라엘의 돌이킴 10:1-5

 

1. 에스라의 통회의 결과(1)

에스라의 겸비와 죄에 대한 통회는 백성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을 기쁘게한 새총독이 비통함가운데 있다는 소식이 그 성읍 전체에 들려지자마자 곧 그와 함께 애통하기위해 '큰무리가 그앞에 모였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선한 본이 그 수하에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복된 영향을 미칠수 있는가 보라. 서기관겸 학사이며 왕에게서 직권을 받은 사람인 에스라가 백성의 부패를 심히 슬퍼하자 그들은 자신들이 중한 과실을 범한 것이 분명하다고 단정짓게 되었다.

2. 스가냐의 선한 제의(2-5)

그 장소는 "보김(Bochim)" 즉 우는 자들의 장소였다. 아무런 설명이 나타나있지는 않지만 스가냐(에스라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자들중 한사람. 8:3,5)가 일어나서 에스라에게 말하기까지 모인 무리가운데에서 깊은 침묵이 있었던것 같다. 스가냐는 자기의 말가운데서 백성들의 죄를 시인하며 에스라의 탄원을 한마디로 압축하고서 그것이 사실임을 다음과 같이 나타내고 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2절). 스가냐가 이 일에 있어 그 자신이 죄를 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 집의 여러 사람이 죄를 범했으며(참조. 10:26) 따라서 그는 그 자신을 범죄한 자들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병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이미 그 병의 반을 치료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참으로 우리를 괴롭게 하는 죄는 우리를 편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분명한 깨달음을 얻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잘못되었음이 드러난 행위는 가능한 한 다시는 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보내기로(3절). 에스라는 백성들을 전의 상태로 복귀시키는 일에 대해 절망적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에스라보다 더많이 백성들과 지낸 스가냐는 만일 그들이 현명하게 일을 행하면 그 일이 실행될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에스라에게 주었다. 믿지않는 자들과 멍에를 함께하지 말라고 하는 이일에 있어서 오늘날이라면 스가냐의 권고를 실행할수는 없을 것이다. 즉 명백히 그러한 혼인은 잘못된 것이므로 행해져서는 안되지만 그러한 혼인이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 "행해져서는 안될 일이 행해졌을때는 그대로 두라(Quod fieri non debtit factum valet)." 복음아래서의 규례는 이러하다.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말라'(고전 7:12,13). 스가냐는 에스라와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우리 자신들이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고있다면 그들을 다 내어보낼뿐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취하고 있지않다해도 우리 땅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이방 아내들을 내어보내도록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을 다하기로 언약을 세웁시다."


Ⅱ. 개혁을 위한 총회를 소집함 10:6-14

 

우리는 여기서 이방 아내들을 취한 것에 대해 조처가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보게된다. 에스라는 모든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들에게 '3일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도록 명한다(7,8절). 그 정한 시간안에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에 모여 '하나님의 전앞 광장에' 올라왔다(9절). 에스라는 이 대심판에서 훈시하였다. 그는 그들이 사로잡혔다가 돌아온후로 분명히 다시 우상숭배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이방 여자와의 결혼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들로 '하나님앞에서 죄를 자복'케 하려고, 그리고 그들로 모든 우상숭배를 떠나게 하려고, 특별히 우상을 숭배하는 아내들에게서 떠나게 하려고 그들을 한자리에 모았던 것이다(10.11절). 백성들은 대체로 에스라의 사법권뿐 아니라 이 일에 대한 그의 심사와 결정에 대해서도 순복하였다.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12절).


Ⅲ. 이 죄악에 대한 조사 10:15-44

 

백성들은 흩어졌다. 이는 사람들로하여금 각자의 처소에서 이 일을 진척시키기 위한 지식을 교환케하기 위해서였다. 이 일을 조사하기 위한 일꾼들이 언급되어 있다. 에스라가 총감독이었고 그와 함께 지혜와 열심에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앞섰던 몇명의 족장이 이 일을 맡았다(16절). 그들은 '시월 초하루에 그 일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이 방법이 제의되고 열흘밖에 지나지 않아서였다(9절). 그들은 석달만에 그 일을 끝마쳤다(17절). 이방 여자와 결혼한 자들로 모두 113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중 어떤이들은 자녀를 낳은 자들도 있다고 했다(44절). 이것은 그들가운데 대부분은 자녀를 갖지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결혼이 번성의 축복으로 영예롭게 되지 못하도록 하셨다. 스가냐가 제의했던 것처럼 그들의 자녀들이 어머니와 함께 내어보내졌는지에 대해서는 나타나있지 않다. 아마도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어보내진 아내들은 그들의 지위에 따라 물품을 충분히 받고 나갔던것 같다.

 

# 핵심

 

10:1-17

민족의 죄를 스스로 짊어진 에스라의 모습에 백성이 감동을 받고 회개에 동참했다. 그들은 이방 아내를 취한 사람들을 조사하여, 그 아내와 자식들을 단호히 포기하는 것으로써 사태를 수습하기로 중론을 모았다.

 

# 묵상

 

에스라의 통회 자복에 대한 백성의 반응 ( 10:1-4 )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모였고, 많은 백성이 에스라와 함께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스가냐는 에스라를 격려했고 언약과 함께 당시의 부패와 죄악을 개혁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언약의 백성으로서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할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에스라의 개혁 운동 ( 10:7-11 )

모든 사람을 예루살렘에 모았고, 이방 여인들과 혼인한 그들의 죄를 지적했으며, 즉시 회개토록 촉구했고, 이방 여인과의 관계를 청산토록 명령하였습니다. 백성의 결단은 이방 여인들을 돌려보내는데 있었으며, 이는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위해서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할 문제였습니다.

죄악에서 떠나는 방법 ( 10:9-44 )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악의 심각성을 깨닫고 언약과 함께 아내들을 돌려보내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떠나게 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숫양을 잡아서 속건제물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죄는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과감히 청산하는 것입니다. 참다운 신앙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죄는, 작은 것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하여 죄악에서 떠나는 일에 과감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참된 회개 ( 10:15-44 )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을 취하였던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앞으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것을 서약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을 취한 일을 숨김없이 기록한 것은 그들이 철저한 민족적 정화운동을 전개했음을 보여줍니다. 모든 회개는 죄의 원인을 찾아 깨끗하게 청산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가 이방 여인과 혼인함인줄 알고 그 명단을 발표한뒤, 아내를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이처럼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원인을 찾아 정리하고 청산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하는 모습을 본받아 죄의 원인을 찾아 고백하고 깨끗하게 청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통혼자 명단의 의미 ( 10:18-44 )

통혼자의 명단은 제사장, 레위인, 성전 봉사자, 일반 백성의 순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당시 이방인과의 통혼 문제가 지도자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죄악을 깨닫고 혈연적인 인간의 정을 끊으면서까지 죄악을 고치려했는데,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개혁의지는 칭찬할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다좋은 방법은 죄된 길은 처음부터 가지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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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대인들의 죄악 9:1-4

 

그는 유대인들이 죄를 범하고 있음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많은 백성들과 우두머리들중 여러사람이 이방 여자와 결혼하여 그들과 인척관계를 맺고있다는 소식이 그에게 들려왔다.

(1) 그 죄는 이방인들과 교제와 교역을 함으로써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질뿐만 아니라 '그들과 서로 섞이게 된' 것에 있었다(2절). 그들은 이방인과 모든 친교를 금하고 특별히 그들과 혼인하는 것을 금하는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을 불순종하였다(신 7:3). 그들은 자신들을, 더욱이는 그들의 자식들을, 과거 그들의 민족을 멸망케한 바로 그 죄인 우상숭배의 위험가운데로 빠지게 하였다.

(2) 그 죄를 지은 사람들은 별로 학식이 없고 몰지각한 몇몇의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율법을 가르치는 직무를 맡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중 다수였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더 큰 죄였다. 백성들을 타락시키고 잘못을 범하게 만드는 지도자를 가진 백성의 처지란 실로 비참한 것이다.

(3) 그 소식이 에스라에게 보고되었다. 그것을 고했던 사람들은 고결함과 품위를 지키고 있었던 몇몇 방백들이었다. 그들은 에스라에게 고하면서 그의 지혜와 권위와 세력이 그 일을 잘 해결할수 있기를 바랐다.

(4) 이것이 에스라에게 가져다준 영향(3절) :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백성이 그렇게 심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을 생각하고서 그의 마음은 비통해졌다. 죄에 대한 애통은 지극히 큰 애통이어야 한다. 에스라의 애통은 마치 독자나 장자로인한 슬픔과 같은 것이었다.

(5) 그 죄로인한 에스라의 비통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 : 비통속에 잠긴 그의 모습은 곧 공중의 주목을 받아 가까이 있던 모든 경건하고 진지한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오게 되었다. 모든 선한 사람들은 사악과 불경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행하는 자들을 인정해야 하며, 그들을 세워주고 그들이 할수 있는 것을 행하도록 그들의 손을 힘있게 해주어야 한다.

 

Ⅱ. 에스라의 엄숙한 통회 9:5-15

 

우리는 여기서 에스라의 하나님을 향한 처절한 통회를 보게 된다.

1. 그가 통회한때(5)

저녁 제사를 드릴때에. 그 시간에 경건한 사람들은 사적인 기도를 드리기위해 성전뜰로 찾아오곤 했다. 그들이 듣는 자리에서 에스라는 이 통회를 행하였다. 이는 그들로 그 백성의 죄에 대해 충분히 알게하기 위해서였다. 제사, 특별히 저녁 제사는 대속죄의 한 모형이었다. 에스라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이 참회의 탄원을 드렸다. 그는 그의 손으로 참회하고 있다. 즉 저 대 희생제물의 머리에 안수하였던 것이다. 희생 제물을 통해 우리는 속죄함을 받는다.

2. 통회를 위한 그의 준비(5)

(1) 내가 근심중에 일어나서. 그의 마음을 하나님께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그의 슬픔의 짐을 떨쳐버릴 필요가 있었다.

(2)무릎을 꿇고. 그는 이제 백성들을 위한 중재자로서 백성들을 대표하여 스스로 회개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3)손을 들고. 그는 마치 말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의 손을 하나님을 향하여 높이 쳐들었다.

3. 통회의 내용(6-15)

만일 우리가 기도에 대하여 보다 넓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경건하고 헌신적인 애정을 드리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의 통회는 자기의 죄가 아닌 그의 백성의 죄에 대한 참회였다. 그는 비록 자신은 그 죄로부터 아주 결백했으나 그 자신도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었기에 스스로를 죄인들가운데 포함시키고 있다. '우리 죄악 우리 허물'이라고 한 것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는 그들의 죄악이 매우 크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6절). 즉 우리는 깊은 못과 같은 그 죄악에 빠져 멸망하려 하나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죄악이 하늘에 미친다할지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다는 이 사실로 참된 참회자는 위로를 얻게 된다(시36:5). 이스라엘 백성은 사로잡힌 가운데서도 버림받지 않았고 바벨론에서조차 하나님의 임재의 증표를 얻었다. 즉 그들은 비록 소수이긴 했으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되었으며, 바사 왕의 호의로 원수의 손아귀에서 가까스로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거룩한 처소에 못을 박았다'(8절). 즉 9절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의 전'을 세웠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신앙을 정착시켰으며 한결같은 방법으로 성전을 섬겼다. 이것은 그들의 눈을 밝혀주었고 그들의 마음을 소성케하였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죽었다가 살아난 것과 같았다. 에스라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처럼 관대하신 하나님을 진노케 하다니 우리는 얼마나 배은망덕한 자들인가!" 그 죄는 명백한 명령을 거역한 것이었다. 우리가 주의 계명을 배반하였사오니(10절; 참조. 창34:14). 하나님께서는 이방 족속과의 혼인을 엄하게 금하셨다. 에스라는 그 계명을 다시 인용하고 있다(11,12절). 이에 대해 그 어떤 것도 다음 내용보다 더 분명한 표현일수는 없을 것이다. 너희 여자들을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말고 저희 딸을 너희 아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12절). 그 이유는 만일 그들이 저희 민족과 섞인다면 타락하게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부정한 땅이었고 그들은 거룩한 백성이었다. 에스라는 그들의 죄속에 있는 큰사악을 회개하는 가운데서, 비록 형벌이 아무리 컸다할지라도 그것은 그들이 마땅히 받을 형벌보다 더 가벼운 것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심히 부끄러워 하는 자로서 말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을 시작하였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6절). 죄는 부끄러운 것이다. 거룩한 수치는 거룩한 애통만큼이나 진실하고 정직한 회개에 있어 필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도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스스로 낯이 뜨뜻함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낯이 뜨뜻하도록 해야한다. 세리는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서는 부끄러운 자처럼 더욱더 그의 머리를 들지 못했다(눅 18:13). 참으로 회개하는 자들은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과연 "죄를 범하지 않았다"거나 "하나님은 죄를 문책하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말하겠는가? 만일 우리가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속에 있지 아니한 자일 것이다(요일 1:8). 우리는 또 "우리를 참아주신다면 수천의 수양이나 혹은 우리의 장자를 드려 당신께 우리의 허물에 대한 모든 것을 갚겠습니다"라고 말하겠는가? 하나님은 그처럼 조롱받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계신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소망도 없으니 될대로 되라"고 말하겠는가? 그것은 단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에스라처럼 참으로 회개하는 자라면 하나님께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구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할 것인가? 이렇게 말하라. "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나는 어리석게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죄인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또한 이런 류의 말을 해야할 것이다.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호세아 4:2). 에스라는 하나님의 의로움에 대해 크게 확신한 자처럼 말하고 있다. "주는 의롭도소이다(15절). 그리고 지혜로우시며 공평하시고 선하시나이다. 즉 주는 우리에게 그릇 행하시거나 가혹하게 행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심판을 기다리며 주의 발앞에 엎드려있는 것을 보십시오. 우리는 '주앞에 한사람도 감히' 자신을 위해 변명하거나 자신의 의를 주장하면서 서있을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허물가운데서, 주앞에 엎드려 주의 긍휼에 우리 자신을 의탁하나이다. '주의 보시기에 좋은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삿 10:15). 우리는 우리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뿐 보일 아무것도 없으며 드릴 아무말도 없습니다"(욥 9:15). 이 선한 사람은 이와같이 자신의 비통을 하나님앞에 내어놓았으며 그것을 그에게 내어맡겼다.

 

# 핵심

 

9:1-15

포로로 귀환한 유대인들이 이방 족속과 통혼하는 일이 생겼다. 이방인과의 통혼은 율법이 엄금하는 일이었기 때문에(출 34:10-17; 신 7:1-11) 에스라는 통분히 여겨 기도를 올렸다.

 

# 묵상

 

제2차 귀환 당시의 이스라엘 상황 ( 9:1, 2 )

2차 귀환자들은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정비하고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려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차 귀환자들이나 포로로 끌려가지않고 남아있던 자들은 가나안의 여러 이방 족속들과 뒤섞여 그들의 풍습과 신들을 허용했습니다. 이렇게 이방인들과 섞이게 될때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저버리고 우상을 따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함을 우리는 잊지말아야 합니다.

귀환한 에스라가 받은 충격 ( 9:1-7 )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이방 족속들과 통혼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대하고 에스라는 큰충격을 받게됩니다. 이로인해 그는 회개의 기도를 했는데, 그 이유는 백성의 범죄가 선지자의 책임이라고 통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죄를 자신의 죄로 동일시하여 통회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느1:4-11)나 다니엘(단9:3, 4)에게서도 찾아볼수 있는 태도로서, 백성의 죄를 위해 가슴 아파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슬퍼하고 있는 에스라에게 모여든 사람들 ( 9:4 )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그리고 귀환한 자들로, 백성의 죄로인하여 슬퍼하며 분노하는 자들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을 가지고 죄에 대해 슬퍼하며 죄와 싸우려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다른 동조자들을 통해 위로하십니다.

이스라엘 열조의 멸망원인 ( 9:6, 7 )

언약의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죄악때문이었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한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바로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베푸신 은혜를 의지하여 성실하게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약속하신 복 ( 9:12 )

말씀에 순종할때 왕성하고, 아름다운 것을 먹고, 그 땅을 대대로 이스라엘의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금지 그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마땅히 받을 복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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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에스라와 함께 올라온 무리들 8:1-20

 

왕으로부터 임무를 받은 에스라는 지원자들을 모았다. 말하자면 기호를 세워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과 유다의 이산한 자들을 모은 것이다(사 11:12). "바벨론의 딸들과 함께 거하는 시온의 아들들은 누구든지 예루살렘으로 가야한다. 이제 그곳에 성전이 다 지어졌으므로 성전봉사가 시작된다. 이제 그들의 때가 된것이다."

(1) 어떤이들은 에스라와 함께 기꺼이 올라가고자 나섰다. 그들의 명예를 위하여 여러가문의 족장들의 이름이 여기 기록되어져 있다. 그 각 가문에서 온 남자들의 수효는 모두 1,496명이었다. 그 여러가문, 혹은 일족이 2장에서처럼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2) 이 무리와 함께갔던 레위 사람들은 어떤의미에서는 거의 강압적으로 올라가게된 것이다. 에스라는 다음해 정월초하루에 한장소에서 모든 무리가 집결하도록 정하였다(7:9). 거기서 그는 그들을 점호했으나 '그중에 레위 자손이 하나도 없었다'(15절). 제사장들은 여러명 있었으나 다른 레위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 거룩한 지파의 영은 어디에 있는가? 에스라는 성전봉사에 쓸돈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부족했다. 그는 무리가운데서 명철한 사람 열한 명을 뽑아 이 유감스러운 공석을 메우도록 하였다. 에스라는 그들을 특정한 곳, 즉 '가시뱌'(Cashphia)라고 하는 레위인들이 사는 곳으로 보내었다. 그곳은 바벨론에서 레위 사람들에게 허용된 거리 혹은 네거리였을 것으로, 어떤 사람은 그곳을 실버 스트리트(Silver Street)라고도 부르는데 게세프(Ceseph)가 은(Silver)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을 그곳 족장 잇도라고 하는 특정한 사람에게 보내어 자기에게 소년 몇명 즉,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수종들 자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였다(17절). 비록 전갈은 짧았으나 그들은 에스라에게 수종들 레위인 40명을 보내었다. 거룩한 회에서 잡일을 하는 느디님 사람들가운데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가고자 나섰다. 그들가운데서 220명이 이 급박한 소집에 자진하여 참여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에스라의 점호 명부에 이름이 오르는 영예를 얻게되었다(20절).

 

Ⅱ. 에스라와 무리의 금식기도 8:21-23

 

에스라는 레위 사람들을 얻게되었다.

1. 에스라의 굳은 확신(22)

에스라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보호하심에 대해 굳게 확신하였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보호하시리라는 약속을 가지고있으나 그의 원수들은 그의 능력이 그들을 대적하리라는 경고를 가지고 있다. 에스라는 진심으로 이것을 믿었으므로 왕앞에서 그것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왕에게 경호를 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던 것이다. 즉 그는 왕과 왕의 신하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그의 백성들이 보호될 것이라는 사실과 그 사실에 대한 그의 확신을 의심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라해서 자신의 보호를 위해 적절한 수단을 사용하지 말아야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2. 에스라의 엄숙한 간구(21)

에스라는 그러한 확신속에서 하나님께 진지하게 간구하였다. 때에 내가…금식을 선포하고. 공적인 자비를 위해서는공적인 기도를 드릴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금식은 그들의 겸비함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그가 이 금식을 선포한 의도는 그들이 그들의 죄에 대하여 '그들의 하나님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용서함을 받기위해서 였다. 그들의 금식은그들로 간구케 하기위한 것이다. 신앙적인 금식에는 항상 기도가 따랐다. 그들이 은총의 보좌로 나아간 목적은 '평탄한 길을 하나님께 간구하기 위해서" 였다. 즉 하나님의 섭리의 인도하심에 자신들을 맡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아래 자신들을 두기위해서 그리고 여행길에 자신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여행이 끝나기까지 안전하게 돌보아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기 위해서였다.

3. 그들이 얻은 좋은 성과(23)

우리가…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락하심을 입었느니라.

 

Ⅲ. 성전기명과 헌물을 맡김 8:24-30

 

우리는 여기서 에스라가 그에게 맡겨진 보물들, 즉 하나님의 성소에 속한 것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 것을 대하게 된다.

(1) 에스라는 그것을 지켜주실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면서 특정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돌보도록 맡겼다. 그들의 일은 그것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없이 그것을 지켰다면 그것은 무익한 일이었다.

(2) 그는 그들에게 맡긴 모든 보물들을 하나님께서 보존시켜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특별히 하나님의 전에 속한 것과 하나님께 바칠 헌물에 대해 상당한 정성을 보이고 있다. 그는 이것들을 맡기기위해 열두 명의 제사장 두목들과 많은 레위 사람들을 임명하였다(24,30절). 에스라는 그들에게 그가 왜 이것들을 그들의 손에 맡기는지 말하고 있다.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기명들도 거룩하고(28절). 즉 거룩한 물건들을 돌보는 일에는 거룩한 사람들이 가장 적합한 것이다. 은과 금과 기명들을 달아서 주었으니(25절). 이는 그가 그것들을 다시 달아서 받고자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에게 이 보물들을 맡기며 훈시를 주었다. "이 기명들을…삼가 지키라(29절). 즉 너희는 그것들을 잃어버리지 말며 횡령하지도 말고 다른 물품들과 섞이게도 말라. 그것들을 따로 지키라. 즉 그것들은 그것들끼리 한데 모아 지키라. 성전에서 내가 두목들앞에서 그것들을 달기까지 그것들을 안전하게 지키라."

 

Ⅳ. 예루살렘에 올라옴 8:31-36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당도하였다. 그러나 그의 무리들로인하여 행군은 느렸으며 행군여정은 짧았다. 그의 하나님은 선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였다.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31절). 우리는 평상적이 여행일지라도 기도함으로 출발하고 찬양과 감사로 화평가운데 돌아옴으로써 우리의 나가고 들어옴을 거룩케해야 한다. 더구나 본문에서와 같은 이러한 위험한 원정에서는 더욱더 그렇게 해야한다. 그들은 안전하게 그들의 여행을 끝마쳤다(32절). 에스라와 함께한 자들은 헌신적이었다. 그들이 제단 가까이 당도하자마자 그들은 그들이 바벨론에서 무슨 일을 행했건 제물을 바쳐야함을 스스로 인식했다(35절). 즉 그들은 속죄제를 드렸던 것이다. 왜냐하면 속죄제야말로 우리에 대한 모든 자비를 향기롭게 하며 확고하게 하는 죄씻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드린 제물의 수효는 수송아지가 열둘,수염소가 열둘, 수양이 아흔여섯으로 지파의 수와 관계가 있었다. 이는 에스겔 37:22절에 이미 예언된대로 두나라가 하나로 합한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들은 더이상 열지파와 두지하로 나뉘지 않았으며 열두 지파 모두가 같은 제단에서 그들의 대표자들에 의해 만나게 되었다. 유대인의 적들조차 에스라의 명에 복종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방해하는 대신 그들의 역사를 도왔다(36절).

 

# 핵심

 

8:1-14

2차 포로귀환자 명단이다. 1차 귀환자의 수에 비해 매우 적었다. 남자들의 숫자가 1,754명 가량이었으며(참조, 18-20절), 여기에 부녀자와 어린아이를 합하면 약 5,000명 가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시뱌 지방(8:17)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불분명하다. 대개 바벨론 북쪽의 티그리스 강 근처에 위치한 크테시폰(Ctesiphon)일 것으로 추정한다. “지방”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콤’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성소(a holy place)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신 12:5). 이러한 사실은 당시 유대인 포로들이 하나님께 예배 드렸던 임시 성소가 가시뱌에 있었을거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당시 애굽과 같은 곳에도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성소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성소가 있는 곳에는 주로 레위인들이 거주했을 것이다.

성직과 성물(8:28,29)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이다(레 19:2). 이 거룩성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과 물건에까지 미친다. 즉, 성직을 맡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하나님께 성별되어 바쳐진 거룩한 사람들이며(레 21:6), 성전에 바쳐진 물건들도 마찬가지다(출 30:22-29). 에스라는 거룩한 것을 세속적인 목적으로 함부로 다루지말라고 지시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사사로운 욕심이나 안일하고 나태한 자세는 단호히 배격되어야 한다.

 

# 묵상

 

2차 귀환자 명단의 특징 ( 8:14 )

1차 귀환자 명단이 가계별, 출신별로 기록된 반면 2차 귀환자 명단은 가문별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들은 대부분 유다의 왕족과 그 지파 출신입니다. 이와같이 가문을 중시한데서 제사장직을 강조하려는 에스라의 의도를 엿볼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열두 지파 족보 개념보다는 성전건축에 참여한 가문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습니다.

레위인의 모집을 중요시한 에스라 ( 8:15-20 )

1차 귀환때도 레위인의 수(341명)는 제사장의 수(4,289명)에 비해 매우 적었는데, 에스라의 귀환때에는 1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레위인은 그가 계획한 율법 교육가운데 성전 예배에 대한 교육에 큰 비중을 차지했으므로 매우 중요했습니다. 특히 느디님 사람들은 과거에 솔로몬 성전에서 봉사하던 성전 노예의 후손들로서 레위인의 직무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전이 세워졌지만 점차 사랑이 식고 성전제사도 시들해졌으며 회복되었던 성전제도도 크게 부흥을 하지 못했던 당시 상황때문에 더욱 레위인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행군을 중지하고 레위인 40여 명과 느디님 사람 220명을 참가시켰습니다.

명철한 사람 ( 8:18 )

명철한 사람이란 이해시켜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에스라를 가리킵니다. 그는 사람들을 잇도에게 보내어 레위 자손과 느디님 사람들을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에스라가 궁극적으로 의지했던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난관에 부딪힐때 에스라가 취한 행동 ( 8:21 )

금식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국가적 중대사를 눈앞에 두었을때마다 통치자는 금식을 선포했습니다(삿20:26; 삼상7:6; 대하20:3; 렘36:9). 이는 스스로 자신을 겸비하기 위한 것으로 성도의 마땅한 삶의 기본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 에스라와 그 일행 ( 8:22, 23 )

에스라 일행이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한 이유는 자기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고한 말이 헛되지않음을 나타내려 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와 이스라엘 자손은 아닥사스다 왕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인간들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인간들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이들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의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팔레스틴 지역 곳곳에서 소수민족들이 약탈을 일삼고 있었기때문에 군대의 호위를 받지않은 상태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귀향길에 오른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한 귀환자들 ( 8:24-34 )

백성이 아무런 손실없이 예루살렘에 도착할수 있었던 것은 재정 관리자 10인을 세워서 성전기명과 무리들이 바친 예물을 관리토록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중에 도적들도 만났지만 에스라의 주도면밀함으로 무사할수 있었습니다. 한편 이것은 물질문제에 철저했던 바울에게서 발견할수 있는 지혜로운 행동과 일치합니다(고후8:20, 21). 또한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우리들에게 바른 물질관을 교훈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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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예루살렘에 올라온 에스라 7:1-10

 

1. 에스라의 계보(1-5)

그는 제사장 아론의 자손중 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의 선한 도구로 택하셨으며 그렇게함으로써 그는 제사장 직무를 영예롭게 할수 있었다. 그것은 그 제사장직의 영광이야말로 포로시대 동안에는 결코 드러낼수 없었던 영광인 까닭이다. 그는 '스라야의 아들'로 불리어지고 있다. 이 스라야는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을 약탈했을때 죽임을 당한 대제사장 스라야와 동일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왕하 25:18-21). 간단히 계산해 볼때 스라야가 죽은 것은 75년 전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에스라가 공직에 부름받은 것이 그의 청년기일 것이라고 추측함으로써 그 기간을 더 길게 잡고있다. 따라서 스라야는 그의 직계 부모가 아니며 그의 조부이거나 증조부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대상 6:4이하).

2. 그의 특성(6,10)

그가 비록 장자의 집안 출신은 아니었으나 그의 개인적인 자질은 그를 매우 뛰어나게 만들었다.

(1) 그는 매우 학식이 뛰어난 학자로, 학사, 그것도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였다(6절). 그는 성경, 특히 모세의 글에 통달한 사람이었으며 말씀에 익숙했고 그 말씀의 의미와 목적을 매우 잘 알았다. 바벨론에 거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으며 이것은 염려할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에스라는 그것을 부흥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그가, 자기가 발견할수 있었던 모든 사본들을 수집하여 순서대로 정돈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모든 선지서와 역사서, 그리고 시가서를 정확하게 엮어 냈고, 또한 자기 당대의 예언과 역사를 추가하여 구약성경을 형성시켰다고 말한다. 이제 예언은 중지되었으므로 성경 지식을 더욱 열심히 가르쳐야 할때가 되었다(말 4:4).

(2) 그는 매우 경건할뿐만 아니라 거룩한 열심을 가진 사람이었다(10절).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그는 갈대아인 가운데서 출생하였고 또한 성장하였다. 그리고 갈대아인은 문학으로 유명했고 특별히 점성학으로 유명했으므로, 우리는 매우 학구적인 사람인 에스라가 그 학문에 몰두할 유혹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할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유혹을 이겨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은 그들 술객들이나 점성가들의 어떤 글들보다도 더욱 가치있는 것이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즉 그는 성경을 상고하였으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 곧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그는 그것을 자기앞에 놓고 자기의 규례로 삼았다. 그는 친히 그 율법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먼저 배웠고 먼저 행했으며 그리고 나서야 가르쳤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행하기로 '결심하였다'. 즉 그는 그의 마음을 정하였다.

3. 예루살렘으로 올라감(6-9)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6절). 그리고 그는 4달만에 예루살렘에 당도하였다(8절).

(1)왕은 에스라에게 얼마나 친절했는가. 그는 에스라에게 그가 요구하는 모든 것, 즉 그가 자기 나라를 섬기기위해 무엇을 원하든지 다 들어주었다.

(2)그의 백성은 그에게 얼마나 친절했는가. 그가 갔을때 매우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갔다. 그들은 그가 예루살렘으로 갔을때 위험을 무릅쓰고 그와 함께있고자 했다.

(3)하나님은 그에게 얼마나 친절하셨는가. 그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왕과 그의 나라로부터 이러한 은총을 입었다(6,9절).

 

Ⅱ.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에게 준 조서 7:11-26

 

바사 황제는 에스라에게 조서를 내려 그가 유대인의 선을 위해 행하도록 권세를 주었다. 이 조서는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가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불리는 것은 죽을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인간에게는 너무 좋은 칭호이다. 그는 참으로 여러 왕들중의 왕이었다. 그러나 마치 그가 모든 왕들중의 왕인양 말해지는 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고 계신 이의 대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이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라고 부르며(12절) 매우 신뢰하고 사랑하는 에스라에게 인사를 보낸다. 에스라는 제국의 귀족이나 왕족이 되기보다 '하나님의 율법의 학사'가 되는 것을 더욱 영예로운 것으로 생각했다.

(1) 왕은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그의 백성중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올라가는 것을 기꺼워했다(13절).

(2) 왕은 에스라에게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조사할 권세를 주었다(14절). 그의 조사의 법규는 그의 손에 있는 '하나님의 율법'이었다. 그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신앙에 있어서 율법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리고 그 율법대로 행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조사해야 했다. 즉 성전이 건축되었는지에 대해서, 제사장직이 정착되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제물이 하나님께서 정하신대로 드려지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조사해야 했다. 만일 어떤 잘못이 발견되면 그는 그것을 시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레데에서 디도가 했던 것처럼 '부족한 일을 바로잡아야'(딛 1:5) 했다. 이와같이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자신들을 다스리던 그들의 옛특권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3) 왕은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왕 자신과 모사들이 아낌없이 내어놓고 또 그의 신하들가운데서 모은 돈을 그에게 맡겼다(15,16절).

1)에스라는 돈을 예루살렘까지 가져가도록 책임을 맡았다.

2)그는 가장 합당한 방식으로 이 돈을 쓰도록, 즉 하나님의 제단에 드릴 제물을 사는데(17절)와 '하나님의 뜻을 좇아'라고 하는 조건과 함께 그와 그의 형제가 합당히 여기는 일에(18절) 쓰도록 책임을 맡았다.

(4) 왕은 '강 서편 모든 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에스라가 필요로하는 것을 자신의 세입에서 내주고 그것을 자신의 계산서에 올리라고 명하면서 에스라에게 어음을, 아니 차라리 지불 명령서를 떼어주고 있다(20,22절). 이 일은 사려깊게 행해졌다. 왜냐하면 아직 일의 형세를 조사하지 않았으므로 에스라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며 또한 요구할때에도 매우 조심스럽게 하였기 때문이다.

(5) 왕은 에스라에게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전안에서 혹은 성전주위에서 행해져야할 일을 부족함없이 행하도록 명하고 있다. 이 명령안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나타나 있다.

1)왕은 하나님을 얼마나 영예롭게 말하고 있는가. 그는 앞에서 하나님을 '예루살렘 하나님'으로 불렀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어느 한지역에 국한된 신으로 생각하고 있지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두번이나 큰경배와 함께 '하늘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다.

2)그는 얼마나 면밀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주시하고 있는가. 아마도 그는 율법을 읽고 찬탄했던 것같다. "너의 하나님에 의해 명해진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되 주의하여 신속하게 부지런히 행하라."

(6) 왕은 성전의 모든 사역자들에게 국가에 바치는 세를 면제해 주었다. 가장 높은 제사장들에서 가장 낮은 느디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왕의 관원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서 받듯이 이들에게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받는 것이 불가하였다'(24절).

(7) 그는 에스라에게 강 서편에 있는 유대인들을 위해 유사와 재판관을 임명할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25,26절). 이와같이 자신들을 위해 다스리는 자들을 갖는다는 것은, 특별히 에스라가 임명한 자들을 갖는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큰은총이었다.

1)'에스라의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즉, 유대인의 신앙을 고백한 모든 자들)는 이 재판관들의 사법권아래 있게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이방인 유사들의 사법권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이 재판관들은 사람들을 개종시키도록 허락받았으며 장려를 받았다. "재판관들로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치도록 하라." 그들은 새법을 만들도록 허락받은 것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이 충분히 실행되는 것을 살펴야했다. 또한 그들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두려움을 주기위하여 칼을 사용하도록 위임받았다.

 

Ⅲ. 에스라의 송축 7:27,28

 

에스라는 두가지의 내용으로 하나님을 송축하고 있다.

(1) 그가 받은 임무때문에 : 그는 "왕의 마음에 이와같은 일을 행할 뜻을 두게하신 하나님을 송축할지로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섭리와 은총으로, 사람의 마음과 생각속에, 생명과 경건에 속해있으며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어떤 것을 두실수 있다. 만일 우리 자신의 마음이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떤 선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렇게 하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할수 있어야 하며 그것으로인해 하나님을 송축할수 있어야 한다. 방백들과 유사들이 악을 막기위해서, 그리고 신앙을 장려하기 위해서 행할때, 우리는 그들의 마음에 그렇게 할뜻을 두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2) 그가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얻은 힘때문에 : 그가 …또 나로…은혜를 얻게 하셨도다(28절). 에스라는 용기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힘을 얻은 것을 그 자신의 마음때문으로 돌리지않고 하나님의 손길때문으로 돌리고 있다. 즉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나의 위에 있어 나를 인도하시고 도우시므로 내가 그 일을 행할 힘을 얻었도다"라고 말하고있는 것이다.

 

# 핵심

 

7:1-28

제2차 포로귀환이 아닥사스다 왕의 명령과 에스라의 인솔아래 이루어졌다. B.C. 458년경에 있었던 일이다.

학사(7:6)

서기관(scribe)을 가리킨다. 구약시대에는 일반인들에 의해 고용되어 각종 문서와 계약서를 써주거나 구술을 기록해주는 일에 종사했다. 또한, 정부에 등용되어 왕궁의 공문서나 외교문서를 작성하고 관리하기도 했다. 때로 종교적인 일에 관여한적도 있었다(왕하 12:10). 바벨론 포로기 이전에는 제사장직과는 별개의 직임이었다. 하지만, 포로기 이후부터는 모세의 율법을 필사하고 보존하며 해석하는 직능을 주로 수행하게 되었는데 에스라가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신약시대에는 율법의 전문가들로 인정받았다.

 

# 묵상

 

제2차 포로귀환의 목적 ( 7:1-28 )

하나님의 율법을 통한 신앙개혁이 필요했기때문에 이를 위해 제2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제2차 포로귀환은 제1차 포로귀환(주전 537년)후 80년만에, 그리고 성전재건(주전 516년)후 58년만에 에스라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포로귀환의 역사적 과정 ( 7:1-28 )

제1차는 고레스 왕때(주전 537년)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이루어졌으며, 주전 516년에 성전재건이 완공되었습니다(스1:1-6:22). 제2차는 아닥사스다 1세때(주전 458년) 에스라의 영도하에 귀향했고, 신앙개혁의 운동과 이방인과의 통혼 문제를 해결했습니다(스7:1-10:44). 제3차는 아닥사스다 1세때(주전 444년) 느헤미야의 영도하에 귀향하여, 52일만에 성벽을 중건하게 됩니다(느1:1-13:31).

아닥사스다 왕의 업적 ( 7:1 )

이름의 뜻은 ‘대왕’이며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의 아들로 주전 465년에 바사의 왕위에 올라 40년간을 통치했습니다. 그는 재위 7년(주전 458년)에 에스라의 예루살렘 파견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에스라 ( 7:6 )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으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에 능한 학사였습니다. 그는 율법에 대한 연구, 준행, 가르침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능력있고 인정받는 삶을 사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앞에 순결한 삶을 살았고 이러한 그의 태도와 능력은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서도 인정받았습니다(12절). 그는 순수한 신앙과 말씀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하나님앞에서 크게 쓰임받았던 자입니다.

제2차 포로귀환 조서의 내용 ( 7:11-26 )

이 조서는 귀환하는 유대 백성이 하나님을 잘 섬길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손길이 이방의 왕 아닥사스다라는 도구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셨음을 알수 있습니다.

유대 율법에 관심을 보인 아닥사스다 왕 ( 7:11-20 )

이는 유다 통치를 수월하게 하기위한 정치적 목적과 에스라의 영향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유대 지방의 일을 맡아보는 공직에 몸담고 있었고, 특히 율법연구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에스라의 찬양 ( 7:27, 28 )

에스라는 세상 권세자들의 모략앞에서 은혜를 얻게하신 여호와의 권능과 위엄과 지혜와 자비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적 신앙 역사관을 견지한 신자들의 공통의 찬양과 묵상의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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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성전건축을 위한 다리오 왕의 조서 6:1-12

 

(1) 성전건축을 위한 고레스 왕의 조서가 반복됨 : 고레스 왕의 조서를 찾아보도록 명령이 내려졌다. 그것은 바벨론 서적 곳간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1절) 마침내 메대도 악메다 궁에서 발견되었다(2절). 그 내용이 본문 3-5절까지에 기록되어 있다.

1)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3절) :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전 곧 제사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이러이러한 규모로 그리고 이러이러한 재료로 건축하라.

2) 건축경비는 왕실에서 내리라는 명령(4절) : 우리는 유대인들이 여기서 명해진 것을 받았다는 증거를 찾아볼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궁중에서의 일의 형세는 변하기 때문이다.

3) 느부갓네살이 가져왔던 성전의 모든 기명들을 가져다가 각기 본처에 둘 것(5절)과 제사장들, 곧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전안에서의 자신들의 직무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였다.

(2) 그 명은 다리오 왕의 조서에 의해서 확고하고 견고하게 되었으며 실행케되었다.

1) 다리오 왕의 조서는 매우 명백했으며 만족할만한 것이었다.

①그는 그의 신하들에게 성전건축을 막지말도록 명했다. 본문에 나타난 표현방식으로 볼때 그는 그들이 성전건축을 방해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있었던듯 싶다. "너희는 그곳을 멀리하여(6절) 유다 총독과 장로들로 하나님의 이 전을 건축하게 하라(7절)."

②그는 그 자신의 세금으로 다음의 것들에 대해 건축하는 자들을 돕도록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건축하는 경비(8절) :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고레스 왕의 본을 따르고 있다(4절).

㉡그것이 건축되어진후 그곳에서 드릴 제물(9절) : 여기서 그가 다음의 것들에 대해 어떻게 영예롭게 했는지 보도록 하자.

첫째,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 그는 그 하나님을 '하늘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다.

둘째, 그의 사역자들에 대해 : 그는 신하들에게 제사장들의 소청대로 성전을 섬기는데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도록 명하였다.

셋째, 기도에 대해 :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10절).

③그는 형벌로써 그의 조서를 강화시켰다(11절).

④그는 이 전을 헐고자하는 모든 왕들과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있기를 기원했다(12절).

2) 열왕의 마음은 하나님의 수중에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가 원하시는대로 그 마음을 주관하신다. 그들이 왕된 것은 왕중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왕으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대하여 자비로운 목적을 성취시키실때가 되면 그는 전혀 기대되지 않았던 것들을 통해서 그의 뜻을 성취시키실 것이다. '땅이(때로는) 여자를 도와'(계12:16). 이와같이 거의 신앙을 가지고 있지않은 자들이 신앙을 지키기위해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유대인의 적들은 다리오 왕에게 호소함으로써 유대인들을 억압하라는 명령이 내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유대인을 도와주라는 명령을 받았다.

 

Ⅱ. 성전건축을 끝마침 6:13-22

 

1. 유대인의 적들이 친구가 됨(13)

그들이 왕으로부터 이러한 명을 받게되자 그들은 그들의 전임자들이 그 역사를 중지시키려고 애썼던만큼이나 열심히 그 역사를 도와주며 힘이 되어주었다(참조. 4:23).

2. 성전건축이 곧 마쳐짐(14,15)

이제 '유다 사람의 장로들'은 즐거이 건축을 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에 의해서 그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그들은 이 전에는 고레스 왕, 지금은 다리오 왕, 그리고 얼마후에는 아닥사스다 왕 등 이방 왕들의 명에 의해 그 일을 하게된 것이 그들에게 수치임을 알았다. 그들은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에 의해 그 일을 하는데 힘을 얻게 되었음을 알았다. 이제 그 역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으며 4년후에 완성을 보게 되었다. 영적인 성전이라고 할수 있는 복음교회는 건축되어 온지 오래다. 그러나 그것은 마침내 끝마쳐질 것이며 그때 우리의 몸은 신비스러운 몸으로 완성되어질 것이다. 모든 신자는 살아있는 성전으로 그의 가장 거룩한 믿음안에서 건축되어 가고있는 것이다. 물론 사단과 우리 자신의 부패라고 하는 많은 방해가 이 역사에 개입된다. 또한 우리는 진지하지 못함으로 우리가 진행해야하는 건축작업에 중지와 지체를 겪는다. 그러나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 일을 이루실 것이다. 그리고 심판하여 이기게 하실 것이다.

3. 성전봉헌(16-18)

오직 신앙적인 목적을 위해 계획된 그 성전이 건축되어졌을때 그들은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어져야 하는지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패트릭 감독의 말에 의하면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어져야 하는지 본보기를 보여주다"라는 말이 '봉헌'의 원뜻이라고 한다. 그들은 엄숙하게 그 일을 행했다. 그리고 아마도 세속적인 일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는데에만 성전을 사용한다고 하는 공적인 선포와 함께 그 의식을 행했을 것이다.

(1) 이 의식을 행한 자들은 의식을 집행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 즉 열두 지파의 사람들이 있었고 비록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이 주였다할지라도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도 있었다.

(2) 이때 드린 제물들은 번제와 화목제로서 '수소, 수양, 어린양'이었다(17절).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당시에 드렸던 것을 생각할때 수적으로 비교가 되지않았으나 그들의 현재 능력에 따라 드린 것이기에 그 제물들은 열납되어졌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 수백 마리는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렸던 수천 마리보다 훨씬더 값진 것이었다.

(3) 이 의식은 즐거이 행해졌다.

(4) 그들은 성전을 봉헌할때 성전봉사를 정착시켰다. 비록 그들의 빈곤으로인하여 성전봉사가 이전처럼 아주 화려하고 풍복하게 행해질수는 없었다할지라도 아마도 그것은 전처럼 아주 성결되게 그리고 하나님께서 처음 제정하셨던 것에 가장 가깝게 행해졌을 것이다. 성결은 성전봉사의 참된 영광이었다. 어떤 아름다움도 거룩함만큼 아름답지는 않다.

4. 중건된 성전에서 유월절을 지킴(19-22)

이제 바벨론의 속박에서 새롭게 구원받은 그들이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일은 매우 적절한 일이었다. 새로운 자비는 이전의 자비를 기억케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유월절은 그들이 성전건축을 마치고 봉헌한 그 다음달에 있었으며 그들은 이 유월절을 기쁘게 지켰다(19절). 여기서 다음 내용을 주목하자.

(1) '유월절 양을 잡은'(20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케함에 대해서 : 그들은 일제히 준비를 갖췄다. 이는 그들이 서로 도와줌으로써 단 한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가 정결케되기 위해서였다. 사역자들의 정결은 그들의 사역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주며 그들의 단합 역시 그러하다.

(2) 그들과 함께 이 규례를 행한 개종자들에 대해서 : 스스로 구별하여 자기땅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을 버리고 이스라엘 무리에게 속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다 먹고(21절). 그들은 자기 나라와 그곳의 미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자기들의 운명을 함께한 자들로 우상숭배와 음란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함께 유월절 양을 먹었다.

(3) 무교절을 지키며 있었던 큰기쁨과 만족(22절) : 여호와께서 저희로 즐겁게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기뻐할 이유와 함께 기뻐할 마음을 주셨다.

 

# 핵심

 

6:1-22

성전재건에 관한 고레스의 칙령이 확인되고,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성전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했다.

바사 왕들의 조서(6:14)

본문에서 아닥사스다를 언급한 것은 문맥에 맞지않는것 같다. 왜냐하면, 아닥사스다는 성전재건 이후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에스라서의 저자가 이미 지나간 역사적인 사실들을 모두 염두에 두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7장을 보면, 아닥사스다가 에스라를 인솔자로 삼아 제2차 포로귀환을 명령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경의를 표시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저자는 바사 왕들이 성전에 대해 취한 태도를 통합적인 역사서술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 묵상

 

고레스 왕과 다리오 왕의 비교 ( 6:2 )

고레스는 바사 제국의 초대 왕(주전 558-529)으로 메대 왕 아스타게스의 통치하에 있던 얀샴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메대와 바벨론을 물리치고 주전 539년에 바벨론 전역을 정복하여 바사를 최대 제국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리오는 고레스의 치하에 있던 바벨론의 통치자로서 주전 539년 10월 갈대아 사람 벨사살 왕이 죽은후 왕이 되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그는 성전건축을 지원하였고 아울러 거기에 소용되는 건축경비까지도 지불하였습니다.

다리오 왕의 조서 ( 6:8-12 )

고레스 왕의 조서에다 추가된 다리오 왕의 조서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매일 필요한 번제물의 공급 명령과, 자신의 명령을 변개하는 자와 그 가문은 엄벌에 처할 것, 그리고 성전을 허무는 자를 여호와께서 벌하시기를 원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증거요,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성전 봉헌식과 유월절 준수 ( 6:16-22 )

성전건축을 시작한지 20년만에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주전 536-516). 백성들은 수소와 숫양을 화목 제물로 바치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의미하는 숫염소 열두 마리를 속죄 제물로 바쳤습니다. 비록 이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보다는 못하지만(왕상8:63),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으로 성전을 충만케하셨고(학2:2-9), 건축하는데 충성한 유대 백성을 복 주셨습니다(학3:19). 또한 백성들은 성전 봉헌후 가장 먼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유월절을 마지막으로 지킨 것은 요시야 왕때(주전 640-609)였으나, 그후 약 80년만에 다시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바벨론의 포로에서 풀려난 유대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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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선지자들의 예언 5:1,2

 

이 기간중 유대인들은 제단과 성막을 가지고 있었다. 성전

건축을 방해하도록 고용된 의사들은(4:5) 그들에게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하였다(학1:2). 그들은 머지않아 솔로몬의 성전을 건축할때가 온다고 역설하였다. 따라서 백성들은 하나님의 전은 황폐한 가운데 그대로 내버려둔채 자신들의 살 집만을 짓고 편하게 있었다.

1. 두 선한 사역자(1)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두 선한 사역자가 있었다. 그들은 열정을 다하여 유대인들에게 다시 역사를 시작하도록 하나님의 이름으로 설득하였다. 학개와 스가랴 이 두사람은 학개 1:1절과 스가랴 1:1절에 나타나는 것과 같이 다리오 왕 2년에 예언하기 시작했다. 사람들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전은 세속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건축되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인 병기뿐 아니라 건축의 도구 역시 육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감동케함으로써 그들이 선한 일을 하도록 도울뿐 아니라 그들의 힘을 강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합당하게 묵상케함으로써 그들로하여금 더욱 자신들의 의무를 행하도록 일깨워주고 힘을 북돋우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행할 일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혹은 (어떤이들이 읽듯이) '이스라엘 하나님'을 위하여 예언을 하였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것으로써 말했으며 그의 권위로서 역설했다.

2. 두 선한 지도자(2)

유대인들은 두 선한 지도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으뜸 가는 방백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로서 성전건축의 일을 활발하게 추진하였다(2절). 이 탁월한 두사람은 주의 선지자들이 지시하고 가르쳤을때 이를 조금도 경멸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복되게 생각하였고 이 선한 역사를 다시 시작케한 그들의 도움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여기서 학개서 제1장을 읽어보라. 이는 그것이 이 두구절에 대한 가장 훌륭한 주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통해 얼마나 큰일을 행하시는가를 보라. 그는 성령의 역사와 더불어 그의 말씀을 통해 무엇보다도 그의 이름을 존귀케 하신다.

 

Ⅱ. 성전건축이 재개됨 5:3-17

 

1. 주변인들이 성전건축이 재개된 것을 알게됨(3,4)

하나님의 영이 성전건축하기를 원하는 자들을 감동시키셔서 그 일을 하게 하자마자 악한 영이 그 대적들을 동하게 하여 그 일을 대적하게 하였다. 백성들이 자기들의 집을 건축할때 그들의 대적들은 아무런 훼방을 하지않았다(학1:4). 그러나 그들이 다시 성전을 건축하려고하자 그들은 위험을 인식했으며 모든 우두머리들은 그들을 훼방하였다(3,4절). 본문에 대적들의 이름이 나타나고 있다. 닷드내와 스달보스내(32절). 이들은 비록 성전건축을 진정으로 대적하는 자들이긴 했으나 진실을 말할줄 아는 자들이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에(살후 3:2) 그것을 가지고 있을뿐 아니라 존귀히 여기는 사람이 귀한 것이다.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이라고해서 모두가 똑같이 악하고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2. 하나님의 섭리가 이 역사를 행하게 하심(5)

하나님은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셨으므로. 그들 유다 장로들은 이 역사를 적극적으로 주도해 온 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대적들은 그들로하여금 이 역사를 중지하게 할수 없었기에 이 문제를 다리오 왕에게 올리게 되었다. 그들은 그 일에 대한 왕의 지시가 있기까지 유대인들로하여금 건축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유다 장로들을 굴복시킬수 없었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돌아보셨으며' 그들은 그 하나님을 굴복시킬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다 장로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돌아보시는' 것을 알았으며 자기들이 행한 것을 살펴보고는 잘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온갖 방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적들과 맞부딪쳐 그 일을 활기차게 추진해 나갈만한 용기를 충분히 가지게 되었다.

3. 그들이 이 일에 대해 왕에게 보낸 서한(6-17)

(1) 유다 장로들이 사마리아인들에게 건축공사가 진행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충분하게 설명했는가.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이와같은 질문을 하였다. "너희는 무슨 권한으로 이와같은 일을 하는가? 누가 너희에게 이러한 권한을 주었는가?" 유대인들이 이 말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11절). 즉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한지역에 국한된 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영광을 위해 이 성전을 건축한다고해서 파당을 짓는다거나 분파를 일으킨다는 비난을 받을이유가 없다. 도리어 우리는 모든 피조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경배하려는 것이므로 모든 피조물에 의해 보호받고 도움을 받아야할지언정 누구에 의해서도 방해받아서는 안된다. 우리가 잠시 이 성전을 빼앗겼던 것은 우리의 죄악때문이었다. 즉 다른 민족의 신들이 우리 하나님보다 강하기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격노케했기 때문이었다(12절). 이것때문에 그는 우리와 우리 성전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셨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정당성을 입증해주는 고레스 왕의 조서를 갖고있다." 이것이 그들이 건축을 진행하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들은 "너희가 무슨 권한으로 우리를 심문하느냐"고도 묻지않았으며 그 대적자들의 우상숭배와 미신, 그리고 잡다한 종교들에 대해 꾸짖지도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대답함에 있어서 두려움과 온유함으로 행해야함을 배우도록 하자(벧전 3:15).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위해서 무엇을 했으며 또 왜 했는지 바르게 이해하고 기꺼이 선포하도록 하자.

(2) 사마리아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왕에게 매우 공정히 나타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크신 하나님의 전'(8절)으로 불렀다. 비록 사마리아인들이 많은 신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든 신들위에 뛰어나신 '크신 하나님'으로 인정했다. 그들은 왕에게 그들의 전임자들이 했듯이 유대인들이 전쟁을 위해 방비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으며 단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기위해 성전을 건축하고 있다고 있는그대로 말했다(8절). 하나님의 백성들은 누명을 쓰지않는한 박해를 받지않으며 곰의 가죽으로 뒤집어씌움을 당하지 않는한 곯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하나님과 진리의 주장만이 공정히 말해지고 들려진다면 그것은 항상 경고히 서있게 될 것이다.

 

# 핵심

 

5:1-17

이민족들의 방해공작으로 미루어졌던 성전재건이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다시 독려되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 말씀에 고무되어 성전을 재건하려하자, 당시 바사인 총독 닷드내가 다리오 왕의 판단을 묻는 글을 올렸다.

 

# 묵상

 

예배처소의 변천과정 ( 5:1-17 )

먼저 제단이 있는데, 이는 국가가 형성되지 않은 족장 시대의 예배처소였습니다(창8:20). 그후 모세를 통해 제사제도에 관한 규례를 주신때부터 성막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며(출40:1-38), 솔로몬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함으로써 비로소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왕상8:1-66). 그러다가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이후 예배처소는 다시 회당으로 대치되었으며(스6:13-22), 초대교회 시기에는 다락방 등이 이용되었고, 기독교가 확장되면서 교회건립이 본격화되었습니다(행1:13).

학개와 스가랴 ( 5:1, 2 )

두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전 건축시기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는 백성들에게 안일과 나태에서 벗어나 신앙적 열정을 되찾고 영적으로 각성할 것을 부르짖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장차 세워질 하나님나라와 불의한 자들에 대한 심판, 그리고 하나님앞에 나아온 자들의 복에 대해 예언함으로써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큰위로와 용기를 준 선지자입니다.

성전재건의 제2차 방해사건 ( 5:3, 4 )

먼저 총독 닷드내가 성전건축에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담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전건축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총독 닷드내는 성전건축의 정당성을 따지고 고레스 칙령(주전 538년)의 사실성을 물은뒤 답신이 올때까지 공사 진척상황에 방관하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이일에도 불구하고 성전건축은 좋은 결과를 가져왔고,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진행시키기위해 베푸신 섭리임을 알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패망원인 ( 5:12 )

이스라엘의 열조가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느부갓네살에게 패망하고 성전이 헐리며 포로가 된것은 우연한 역사의 과정이 아닙니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신앙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들은 패망을 통해 더욱 하나님을 생각했으며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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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방해받는 성전건축 4:1-5

 

우리는 여기서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사이의 오랜 원수지간의 실례를 대하게 된다. 사단은 하나님의 성전이 결코 건축되지 못하도록 날뛸 것이며 지옥의 문 또한 그것에 대항하여 싸울 것이다. 복음의 왕국 역시 같은 방식으로 많은 투쟁과 다툼을 통해 세워지게 된다.

(1) 포로에서 돌아온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1절)은 포로 시대중에 출생한 자들로서 여전히 포로된 표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실제 포로는 아니었지만 최근까지 그들을 다스렸던 자들의 지배아래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 곧 그가 처음난 아들이었으나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팔린 백성이 되었으며 노예가 되었고 결국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되었다.

(2) 여기서 방해하는 자들은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으로 불리고 있다. 그들은 갈대아인이나 바사인이 아니었으며 열지파의 잔존자들과, 그들과 연합한 자들로 열왕기하 17:33절에서 볼수 있는대로 혼합 종교를 믿는 이방인들이었다. 그들은 '여호와도 경외하고 자기의 신들도 섬긴' 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땅 백성'으로 불리고 있다(4절).

(3) 그들이 행한 방해는 옛뱀의 교활함을 상당히 많이 지니고있었다. 성전이 건축중에 있다는 것을 그들이 들었을때 그들은 곧 그것이 자기들의 미신에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는 것을 알았으며 따라서 그 일을 대적하기로 했다.

1)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건축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제의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그 일을 더 진전시키는척 하면서 방해하고자 하였다. 그들의 제안은 매우 그럴싸했으며 또한 친절해보였다.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2절). 즉 우리로 어떻게 해서든 너희를 돕게 하라. 그리고 너희의 짐을 나누어지게 하라. 우리도 너희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왜냐하면 비록 그들이 동일한 하나님을 구했다할지라도 그들은 오직 그만을 구하지 않았으며 그가 정한 방법으로 그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곧 그들의 그러한 행위들이 전혀 친절이 아니며 그들이 어떻게 꾸미든간에 그들의 참의도는 자신들에게 해를 주기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하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솔직히 이와같이 말했다.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3절). 즉 "너희는 참된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며 하나님을 진실되이 경배하는 자들도 아니다(요한복음 4:22절대로 하자면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 그러므로 이일에 있어 짐을 함께질수 없다. 너희는 우리가 교제할만한 자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끼리 성전을 건축할 것이다."

2)이 음모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들은 자기들이 할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했으며 그 일을 하는데 위축되게 했다. 원래 이 일에 냉담하고 무관심했던 자들은 이러한 교활한 술책으로인해서 그 일에서 손을 떼게 되었으며 이것은 성전건축에 지장을 초래하였다(4절).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대적함에 있어 교회의 적들의 시험이 끊임없이 일어남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교회의 적들로부터 섬김을 받고 그들로하여금 자신의 일을 행하게 하는 자는 세상 곳곳을 횡행하며 끊임없이 행악을 저지르고 있다.

 

Ⅱ. 바사 왕에게 유대인을 고소함 4:6-16

 

고레스는 확고부동하게 유대인의 이익을 도모했다. 그의 뒤를 이어서 '아닥사스다'(7절)라고도 불리는 아하수에로(6절)가 왕이 되었다. 그는 이교도 작가들에게 캠비세스(Cambyses)로 알려진 바로 그 인물일 것으로 추정되며 천대받는 유대인들을 염려해줄만큼 유대인들에 대한 이해가 없던 자였다. 그러므로 이들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에게 성전건축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즉 그들은 자기들의 뜻을 성취시킬 왕을 갖게되었다고 생각했을때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그 왕이 즉위하자마자 그 일을 행했던 것이다. 교회의 적들이 해를 끼치고자 하는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고자 얼마나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가를 보라. 따라서 성도들은 선을 행하는 일에 항상 세심할수 있어야 한다.

1. 그들이 왕에게 편지를 보낸 목적(6)

그것은 6절에 나타나 있는대로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는 것이었다.

2. 편지를 쓰는데 관계한 사람들(7-10)

계략을 꾸민 자들의 이름이 7절에 나타나 있고, 그것을 문자로 옮긴 자들이 8절에, 그리고 그 일에 동의하고 그 일을 꾸민 자들과 함께 행동하기로 서명한 자들이 9절에 나타나 있다. 통치자격인 자들이 함께 모여서 여호와와 그의 성전을 대적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전건축은 해될 것이 조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선지자들에 의한 '이방의 모든 신들이 망하며 쇠진케되리라'(습 2:11; 렘 10:11)는 예언때문인지 그들은 그 일에 대하여 극심한 악의를 드러냈다. 사람들은 이 허탄한 일을 공모하는데 동조했다. 앗수르, 갈대아, 바사 등의 지역에 있던 여러나라 혹은 성읍들에서 대표들이 와서 이 편지에 서명을 하였다.

3. 편지의 초본(11-16)

에스라는 본문에 바사 나라에 보내진 글을 기록해두고 있다.

(1) 그들은 자신들이 바사 나라에 매우 충성스러울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이익과 영광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으로 자처하고 있다. "우리가 이제 궁의 소금을 먹는고로(14절). 즉 우리는 궁정의 녹을 먹고있으며 고기가 소금없이 보존될수 없는것 이상으로 우리는 궁정의 은택을 떠나서는 결코 살수 없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왕의 수치당함을 참아 보지못하여.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성전건축을 중단케하도록 그에게 간청하고 있는 것이다.

(2) 그들은 유대인들을 충성스럽지 못할뿐만 아니라 바사 나라에 위험스런 자들로 헐뜯고 있다. 즉 그들은 예루살렘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12절)일뿐만 아니라 '열조와 각 도에 해가 되었다'고 말하였다(15절).

1)그들은 예루살렘의 과거 역사가 패역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즉 '그중(성읍)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그 까닭으로 '그 성읍이 훼파되었다'고 말하였다(15절). 이러한 평가를 내리는데에는 몇가지 근거가 있었다. 여호야김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했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권리를 회복하고자하는 그들의 노력은 만일 그들이 올바른 방법을 취하고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졌다면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과 이들의 방백들이 반역의 죄를 범했다고해서 이 성읍에 지울수 없는 낙인을 찍는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유대인들은 포로로 있을 당시 지각있는 자들로서 충족될만큼의 선한 행실의 본을 보여줌으로 누구의 비난도 사지 않았었다.

2)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엄청난 것이었다. 그들은 매우 용의주도하게 유대인들이 '성곽을 건축'하고 있다고 왕에게 알리고자 했다. 그러나 그 유대인들은 단지 고레스 왕이 그들에게 하도록 명한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성곽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이 수년후까지 훼파되어 있는 상태로(느1:3) 나타나고 있듯이 그것을 보수하고자 하는 계획은 그들에게 조금도 없었다.

3)그들이 내다본 결과들은 모두 터무니없는 것이었고 불합리한 것이었다. 그들은 만일 이 성읍이 건축되어지면 유대인들이 '조세와 잡세와 무세를 바치지 않게'(13절) 될것은 물론이려니와 유브라데 강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연이어 반란을 일으키게 될것으로 확신했다. 따라서 만일 왕이 이 사실을 묵인한다면 그 자신은 물론이려니와 그의 후계자까지도 손해가 될것이라고 말했다.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13절). 이 편지안에서 옛뱀의 교활함과 독기가 얼마나 풍기고 있는가를 보라.

 

Ⅲ. 성전건축이 중단됨 4:17-24

 

(1)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들을 대적하여 알려온 것에 대한 답변으로 바사 왕이 내린 명령 : 그는 그들의 거짓에 속아 넘어가. 공사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림으로써 기꺼이 그들을 만족케 해주었다. 그는 예루살렘에 관한 기록을 조사했으며 그 결과 그 성읍이 참으로 바벨론 왕을 반역한 적이 있는 '악한 성읍'(사마리아인들이 말한 것처럼)이며, 한때는 그곳을 통치했던 왕에게 강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조공을 바쳤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19,20절). 그는 이 사마리아인들에게 즉각 그 성읍의 건축을 중단케하라고 명령을 내렸다(21,22절). 사마리아인들이 보낸 편지에서나, 왕이 보낸 편지 어디에서도 성전과 성전건축에 관한 언급은 조금도 찾아볼수가 없다. 이는 양편 모두 유대인들이 고레스 왕의 명으로 그것을 건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단지 그 '성읍'에 대해서만 말하였다. "그것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소서." 즉 그 성읍이 성곽과 성문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라는 말이다.

(2) 유대인의 적들이 속임수로 얻은 명령을 이용함 : 그 명령은 단지 '성곽'을 건축치 못하게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과 힘을 행사하여 그것을 '성전'에 관계된 것으로 되게하였다. 이는 그들의 목적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 대적들의 권력과 오만함으로인해 '하나님의 전 역사가 그쳐지게' 되었다(24절).

 

# 핵심

 

4:1-24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순조롭지 않았다.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멸망한뒤, 앗수르의 이민정책에 따라 사마리아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땅에 강제 이주된 이민족들이(참조, 왕하 17: 24) 그 일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앗수르의 식민지 이주정책(4:2)

앗수르는 디글랏빌레셀(B.C. 745-727)의 치하에서 강력한 국가로 급성장했다. 사르곤 2세때 북이스라엘을 정복했으며, 본격적으로 식민지 이주정책을 실행했다. 식민지 이주정책이란 정복한 국가에 다른 이민족들을 이주케함으로써 인종적, 종교적인 혼합을 야기하여 앗수르에 대항할수 있는 단합된 구심점을 형성하지 못하게하려던 정책이었다. 사르곤 2세의 뒤를 이은 그의 후계자들도 동일한 정책을 폈다.

바사 왕 다리오(4:24)

다리오 1세를 가리킨다. 하지만, 본서의 문맥상의 순서는 마치 다리오 1세가 아닥사스다 이후의 왕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4장에 기록된 바사 왕들, 곧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는 그의 뒤를 이은 후계자들이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맥상 24절이 5절뒤에 오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따라서 어떤 주석들은 에스라서의 문맥을 바로잡아 4:1-5,24절 다음에 5:1-6:22절을 오게 하고, 4:6-23절의 내용은 다리오 왕 이후, 즉 성전재건 이후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때 일어난 일화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재구성한다.

 

# 묵상

 

이민족들의 성전재건 방해 ( 4:1-5 )

이민족들이 성전재건을 방해한 이유는 히브리 민족의 최대 결속요인인 유일신 사상을 깨뜨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먼저 종교적 혼합주의를 제안했고, 또 뇌물을 이용해 이스라엘 백성의 영안을 혼미케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타협과 물욕이 사탄의 양대전략임을 알고 이러한 방해 공작에서 늘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성전재건을 방해하는 악한 무리의 모함 ( 4:11-24 )

악한 대적들은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신앙을 지키고 오직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성도들을 끊임없이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벧전5:8).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시는 과정임을 깨닫고 환난을 당할수록 더욱 큰믿음과 인내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야 합니다(말3:3).

예루살렘성 훼파에 대한 대적들의 관점 ( 4:15 )

대적들은 바사 제국을 중심으로 당시의 세계사를 기술한 제국의 사기(史記) 관점에서 예루살렘 성의 흥망성쇠를 보았습니다. 여기서는 과거부터 계속적으로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제국에 손해가 되었고 그 까닭에 성읍이 훼파되었다고 역사적 사건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를 파악하지 못하고 역사를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불신자들의 오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성전건축 방해의 결과 ( 4:24 )

16년동안이나 불신과 회의, 두려움과 침체, 비굴과 수모, 안일과 무력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는 세력들은 끈질기기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외적인 성전재건보다도 내적인 영적 성전재건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엡2:2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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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단을 세우고 번제를 드림 3:1-7

 

1.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이 총회를 가짐(1)

7월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우리는 그들이 봄에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왔다고 추측할수 있다. 그러므로 곧 7월이 왔으며 그달에는 여호와의 많은 절기들이 있었다. 그들은 신앙에 대한 열심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제단에 참예하고자 자기들의 모든 일을 접어두었다. 즉 그들은 한마음이 되었다. 세상적인 일은 신앙적인 일을 하기위해 뒤로 미루라. 그러면 더욱 번창할 것이다.

2. 지도자들이 제단을 마련하고자 힘씀(2,3)

(1) 예수아와 그 형제 제사장들과 스룹바벨과 그 형제 왕손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단'을 만들었다(2절). 그리고 단을 그 터에 세웠다(3절). 그들은 즉시로 성전을 가질수는 없었으나 제단은 반드시 있어야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단을 쌓았다.' 따라서 우리가 어디를 가든 설교라고 하는 촛대와 성찬이라고 하는 진설병이 없다고해서 기도와 찬양이라고 하는 희생마저 드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행할바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물을 성별시켜 주는 이미 준비된 제단을 가지고있기 때문이다.

(2) 그들이 급하게 단을 세웠던 이유가 본문에 나타나 있다. 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여(3절). 그들은 그들과 그들의 신앙에 대해 악의를 품고있는 적들가운데 있었다. 그랬기때문에 그들은 제단을 세운 것이다. 우리는 위험을 감지하게 될때 더욱 우리의 의무에 힘써야한다. 우리는 우리의 두려움을 이와같이 선하게 활용할수 있어야한다. 우리는 두려움이 있게 될때에 하나님께 우리의 무릎을 꿇을수 있어야한다.

3. 제단에 드린 희생(5,6)

제단을 세운 자들은 그 제단을 비워두어서는 안된다.

(1) 그들은 '7월 초하루부터' 번제를 드리기 시작했다(6절).

(2) 그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5절) 즉 '조석으로' 번제를 드렸다(3절). 그들은 매일 간구를 드리기위해 날마다 희생을 드리는 위안을 얻을수 없었던 고통을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알고있었다.

(3) 그들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를 지켰으며 각 절기에 대해 정해진 희생을 드렸다. 또한 특별히 '초막절'을 지켰다(4,5절).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성읍들에 거하게됨에 따라 그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장막에 거하던 것을 잘 기억할수 있게되었을 것이다.

(4) 그들은 '여호와께 즐거이 예물을 드렸다'(5절). 율법은 많은 것을 요구했으나 그들은 그 이상을 드렸다. 이는 비록 그들이 자신들의 제물을 감당할만한 재산을 거의 가지지 못했다할지라도 큰 열심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제단을 풍성하게 하기위해서 자신들의 식탁을 위해서는 절약하였으리라고 추측할수가 있다.

4. 성전건축을 위해 그들이 행한 준비(7)

고레스의 조서대로, 옛날에 한것처럼 이제도 두로와 시돈 사람이 일꾼으로 보내져야 했으며 레바논 백향목이 공급되어야 했다.

 

Ⅱ. 성전의 기초를 놓음 3:8-13

 

귀환한 유대인들사이에 그들이 성전을 건축할 것인가 말것인가에 대한 분쟁은 전혀없었다. 그 선한 역사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설명을 보자.

1. 성전건축을 시작한때(8)

제2년이 되던 해, 적절한 시기에 이르자 그들은 바로 역사를 시작했다(8절). 그때는 그들이 유월절의식을 끝마쳤을 때였다. 그들은 터와 재료를 준비하는데 반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2. 성전건축을 시작한 사람들(8)

그들은 스룹바벨과 예수아 그리고 그들의 형제들이었다. 행정가들과 사역자들 그리고 백성들이 서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행할때 하나님의 일은 잘되어지는 법이다.

3. 레위 사람들을 감독으로 세움(8,9)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게 하매(8절).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전 공사를 감독'하였으며(9절), 위로와 격려의 말로 일꾼들의 일손에 힘을 북돋우어 주었다.

4. 하나님을 찬양함(10,11)

성전의 기초가 놓일때에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였는가? 제사장들은 모세에 의해 지정된 나팔을 들고 레위 사람들은 다윗에 의해 지정된 제금을 들고서 결코 쇠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찬양을 노래하였다.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영원하시도다(11절). 우리도 그 악기들에 맞춰 하나님을 찬양할수 있어야하겠다. 모든 자비는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온다. 여건이 어떠하든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선하시다(시 73:1). 즉 우리에 대하여 선하시다. 교회가 죽어가는것 같다가도 다시 소생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가 영원히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렇게해서 교회는 존속하는 것이다.

5. 사람들이 보인 반응(11:13)

하나님의 백성들은 서로 상반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각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했다. 그러나 그들가운데 어떤 분쟁도 있지않았다.

(1) 결코 성전을 가져보지 못한 비참함을 알고있었던 사람들은 성전의 기초가 놓이는 것만 보고서도 큰소리로 즐겁게 여호와를 찬미하였다(11절). 그들에게는 이 기초나마 위대해 보였으며 마치 죽음에서 살아난 것만큼이나 대단하게 여겨졌다. 그들은 크게 외쳤으며 '그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13절).

(2) 솔로몬이 건축한 첫번 성전의 영광을 기억하고, 이것이 그 성전보다 규모에 있어서, 즉 웅장함과 화려함에 있어서 훨씬 못하다는 것을 생각한 자들은 '대성통곡하였다'(12절). 만일 우리가 첫번 성전이 파괴된 해를 B.C 586년으로 잡고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해를 B.C 537년으로 잡는다면 새성전의 기초는 첫번 성전이 불탄지 50년후인 B.C 536년에 놓여지게된 것이다. 따라서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사람들은 그것이 서있던 때를 기억하였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이 새성전과 첫번 성전사이의 차이를 보고 슬퍼하였던 것이다.

1)그들이 슬퍼한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눈물을 바른 방향으로 돌려 이러한 서글픈 결과를 가져온 죄를 슬퍼한 것이라면 그들은 잘한 것이다.

2)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유약함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들이 눈물흘린 것을 기쁨과 아울러 실망이 뒤섞여 나온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기뻐하는 자리에서는 슬퍼하는 소리를 내지않도록 하자. 그들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여러가지 섭리에 대해 당연히 감사해야함과 이전의 고통에 대한 기억때문에 오늘의 자비를 잊어버려서는 안됨을 스스로 깨닫고 또한 다른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자들이었다. 본문에 나타난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이러한 모습은 이 세상을 잘 표현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거의 분변할수 없다.

 

# 핵심

 

3:1-13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재건을 위해 번제를 드렸고, 자재들을 확보한후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의 지도아래 성전의 기초를 놓았다.

 

# 묵상

 

성전건축에 쓰인 목재 ( 3:7 )

재료는 백향목인데, 이것은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대로 행한 것입니다. 한편 이스라엘의 세 성전은, ① 솔로몬 성전(주전 959년, 왕상6:1-38), ② 스룹바벨 성전(주전 516년, 스6:15-18), ③ 헤롯 성전(주전 20-주후 63년, 요2:19)입니다.

성전재건과 대적들의 방해 ( 3:8-4:5 )

스룹바벨 성전은 바벨론 느부갓네살에 의해 솔로몬 성전이 무너진지 50여년만에 재건된 것입니다(주전 587년, 대하36:11-21). 그러나 이 성전건축은 중간에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인해 주전 520년까지 16년 동안이나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성전공사가 중단된 이유는 사마리아인의 혼합주의적 신앙으로인한 방해때문이었는데, 사마리아인들이 성전재건에 동참하기를 요청함으로써 시작된 것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북이스라엘 멸망후 앗수르의 민족 이주정책 및 혼합정책에 의해 다른 지역에서 사마리아로 이주한 민족과 기존의 북이스라엘 자손들이 혼합된 자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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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에 대한 기록 2:1-35

 

(1) 포로에서 돌아온 가문과 각 가문의 수효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있다. 그들의 믿음과 용기, 고국에 대한 그들의 애정,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하여금 그들의 선한 본을 따르도록 영향을 준것 등에 대한 보상의 일부로서 이 기록이 그들의 영예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제의를 받아들인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이름들은 영예스럽게도 이것보다 훨씬더 신성한 책, 즉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다. 포로에서 돌아온 가문에 대한 기록은 또한 후손의 유익을 위해 의도된 것이었다. 즉 후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그들의 후손이며 그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하기 위해서였다.

(2) 그들은 '도의 거민들'로 불리워졌다. 유다는 한때 강성했던 나라로서 다른 나라들은 유다의 도와 같이 여겨졌으며 유다에 예속되었었다. 그런데 이제는 유다 자신이 도가 되어 바사 왕으로부터 법규와 위임을 받게되었다.

(3) 그들은 '각기 본성으로' 갔다고 했다. 그것은 지정된 성으로, 의심할바 없이 이전에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지정해 주었던 것을 말한다. 그들은 거의 틀림없이 그 지정된 각각의 성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4) 지도자들이 먼저 언급되어 있다(2저).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유대인들에게 있어 모세와 아론 격이었다. 전자는 그들의 으뜸가는 왕손이었고 후자는 그들의 대제사장이었다.

(5) 여기 기록된 여러 가문들중의 어떤 가문들은 자기들의 조상들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어떤 가문들은 그들이 이전에 살았던 지명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엘람 자손'으로 불리우는 가문이 본문에 둘이 나타나고 있다(하나는 7절에, 다른하나는 31절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상스럽게도 두가문의 수효가 똑같이 1,254명으로 되어있다. 베들레헴의 자손은 비록 그 성이 다윗의 성이었지만 123명에 불과했다. 이는 베들레헴이 '유다 족속중 작은' 성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럴지라도 거기서 메시야가 나오게 되어있었다(미 5:2). 아나돗은 베냐민 지파에게 유명한 곳이었으나 여기서는 단지 128명만이 계수되어 있다(23절). 이는 아나돗 사람들이 자기들의 도성 출신인 예레미야를 핍박함으로써 하나님의 저주를 자초했기 때문일 것이다(렘 11:21,23).

 

Ⅱ.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신복들이 성전으로 돌아옴 2:36-63

 

(1) 귀환한 제사장들 : 그들은 상당한 수효였다. 귀환자 전체의 10분의 1이나 된다. 즉 귀환한 온회중은 42,000명이었으며(64절) 네 제사장 가문의 수효가 4,200명을 웃돌고 있었다(36-39절).

(2) 레위 사람들 : 그들의 수효는 매우 적었다. 즉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을 포함하여(40-42절) 350명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3) 느디님 사람들 : 그들은 기브온 사람들로, 여호수아에 의해 처음 이스라엘 회중에 합쳐졌으며(수 9:27) 사울에 의해 쫓겨났다가 다시 다윗에 의해 이스라엘 회중에 합쳐져 레위 지파를 도와 하나님의 집에서 나무베는 자와 물긷는 자로 일하였다(스 8:20). 기브온이라는 말은 "주어졌다"는 의미이다.

(4) 이스라엘 사람으로 여겨지는 자들과 제사장으로 여겨지는 자들이 있었으나 그 영예로운 호칭을 명확하게 증거할수 없었던 자들

1)자신들이 이스라엘 사람임을 증거할수 없는 자들이 있었다(59,60절). 그들의 수효는 상당했으며 야곱의 자손인 것으로 여겨지기는 했으나 자신들의 족보를 나타낼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던 것이다.

2)자신들이 제사장임을 증거할수 없었던 자들이 있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들은 아론의 자손된 자들로 간주되었다.

 

Ⅲ. 회중과 헌물의 총계 2:64-70


1. 바벨론에서 귀환한 회중의 총계(64)

앞에 언급한 수효는 실제 30,000명에도 달하지않는 29,818명이다. 따라서 추측컨대 유다와 베냐민 지파 이외의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 사람들로서 12,000명이상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갈때의 두배가 넘는 수효이다. 따라서 애굽에서처럼 그들의 시련의 때는 곧 그들의 수효가 증가되었던 때였다.

2. 딸린 자들(66-67)

그들의 노비는 비교적 적은 편이었고(65절) 짐을 진 짐승의 수효 역시 노비들의 수효와 비슷했다(66,67절). 그러나 '노래하는 남녀'가 200명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들은 백성들 가운데서 애가로 애통을 나타내는 자들이었다(대하 35:25절에 나타나있는 자들처럼).

3. 헌물(68-70)

(1)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처에 이르렀다'(68절). 그러나 예전에 거룩하고 아름답던 성전은 이제는 폐허가 되어있었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아낌없이 예물을 드렸다. 그들이 건축하고자 했던 것은 처음의 그 성전이었던것 같다. 그들의 헌물은 다윗시대에 방백들이 드린 헌물과 비교할때에 보잘것이 없었다. 즉 그때는 달란트로 드렸으나(대상 29:7) 지금은 다릭으로 드렸다. 그러나 다릭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능력껏 드린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과부의 두렙돈을 기뻐받으신 것처럼 그들이 드린 다릭을 달란트만큼이나 기꺼이 받으셨다.

(3) 그들은 '본성들에 거하였다'(70절). 비록 그 성읍들이 보수되지 않았으나 그 성읍들은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성읍이었기에 그들은 그 성읍들에 거하기를 기꺼워하였다. 그들의 빈곤은 악조건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일치된 단합으로 좋은 결과를 빚어냈다.

 

# 핵심

 

2:1-70

스룹바벨의 인솔아래 바벨론에서 1차로 귀환한 포로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먼저 평민들의 명단을 가계와 출신지별로 나누었고(3-35절), 성전 봉사와 관련된 직임에 따라 제사장(36-39절), 레위인(40절), 찬양하는 자(41절), 성전 문지기(42절), 성전 노역꾼(43-54절), 그리고 솔로몬 왕의 신복들의 자손(55-57절)들로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의 신복(2:55)

원문상으로 종(servant)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신복’은 솔로몬 왕국에서 고위직을 담당했던 국가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솔로몬이 개인적으로 노예삼아 부렸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어떤 기능을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느디님 사람들과 함께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볼때, 성전 노역에 종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 묵상

 

제1차 귀환의 지도자들 ( 2:2 )

스룹바벨, 예수아, 느헤미야, 스라야, 르엘라야, 모르드개, 빌산, 미스발, 비그왜, 르훔, 바아나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여기의 명단에는 ‘나하마니’가 빠져있는데, 그를 합치면 귀환한 지도자는 열두명으로, 이는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상징합니다. 귀환한 사람들이 지향했던 공동체는 궁극적으로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은 포로지에서 살고있는 유대인들 숫자의 1/6도 안되는 숫자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비해 이스라엘의 헌신이 미미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제1차 귀환자들의 구성 ( 2:2-67 )

귀환자들을 인도한 지도자(2절), 귀환자들의 가계별 수효(3-19절), 귀환자들의 동리와 성읍별 수효(20-35절), 제사장들의 가계별 수효(36-39절), 레위인들의 가계별 수효(40-42절),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 신복 자손의 가계별 수효(43-58절), 출신 종족과 계보가 불분명한 평민들과 제사장들의 수효(59-63절), 포로 귀환자들의 총수(64-67절)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본문에서 귀환자 수가 포로로 끌려갈 당시의 2배가 넘는 것을 볼때 하나님께서는 포로생활 가운데서도 유다 백성을 강성하게 하셨음을 알수 있습니다.

솔로몬 신복의 후손 ( 2:55-58 )

귀환자가운데 솔로몬 신복의 후손은 소대, 하소베렛, 브루다, 야알라, 다르곤, 깃델, 스바댜, 하딜, 보게렛하스바임, 아미의 자손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전쟁때 잡혀온 가나안 원주민으로 솔로몬의 신하가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빛을 이스라엘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믿음으로 언약의 백성안에 들어온 자에게도 선물하셨습니다.

보계에 없는 제사장들 ( 2:59-63 )

족보가 불확실한 제사장들은 제사장 직분을 행치못하고, 지성물을 먹지말도록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그들은 부정한 자로 여겨졌기때문에 그들의 직무수행은 우림과 둠밈을 통해 판결받기까지 보류된 것입니다.

성전재건 공사를 준비하는 이스라엘 백성 ( 2:68, 69 )

제일 먼저 그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번제를 드렸고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새생활을 위해 사용해야할 재산을 성전재건을 위해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그들이 드린 예물의 내용은 금 61,000다릭, 은 5,000마네, 제사장 의복이 100벌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 드릴때는 억지로 하지말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깨달아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를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동안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했으며 해방의 기쁨을 눈물어린 감사의 기도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당시 귀환한 포로들의 상황은 비참한 것이었으나 그들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을 본문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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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고레스 왕의 선포 1:1-4

 

바벨론에 포로가 된 유대인들의 상태는 어떠하였는가? 그들은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의 압제하에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것이라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성전도 없었고 제단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시편을 노래하면 그들의 원수들은 그들을 조롱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여전히 그들가운데 선지자들이 있었다. 그들중 어떤이들은 궁정에서 지냈으며 또 어떤이들은 그 나라안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였다. 그들은 모두 때가 되면 그들이 다시 자기들의 땅으로 되돌아가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러한 기대가운데서 그들은 자기들의 가문을 구별하여 보존하였고, 신앙을 간직하였으며 우상숭배를 증오하였다. 그들이 지배당하고 있었던 정치적 상황은 어떠하였는가? 느부갓네살은 그의 통치 1년에 많은 유대인들을 포로로 끌고갔다. 이때는 여호야김 통치의 4년째 되는 해였다. 느부갓네살은 45년을 통치했으며 그의 아들 에윌므로닥은 23년을 통치했고 그의 손자 벨사살은 3년을 통치하여 통치기간은 도합 70년이었다. 느부갓네살은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보내지 않던 자'라는 비난을 들었다(사 14:17). 만일 그가 가련한 유대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면 '그의 평안함이 장구'할 것이라고 다니엘은 그에게 말하였다(단 4:27). 그러나 바벨론의 죄악의 분량이 다 차게되자 다니엘서 5장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메대사람 다리우스와 바사사람 고레스에 의해 멸망이 찾아오게 되었다. 나이가 많은 다리우스는 정권을 고레스에게 넘겨주었으며 고레스는 유대인들을 구원하는 도구로 쓰이게 되었다. 그 일은 그가 바벨론 왕국의 통치자가 되자마자 곧바로 이루어졌다. 아마도 그는 하나님을 위해 이 일을 행할 사람으로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큰일을 행하고자 하시는 사람으로 명백하게 자기 이름이 언급된 이사야의 예언에 경건한 관심을 가졌던것 같다(사 44:28; 45:1이하). 어떤이는 말하기를 그의 이름이 바사어로 태양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교회에 빛과 치유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는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탁월한 모형이 되었다.

1. 여호와께서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심(1)

고레스는 하나님을 알지못했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 역시 알지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아셨으며 그를 통해 자신을 섬기게 하는 방법을 알고계셨다(사 45:4).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에 영향력을 행사하심으로써 세상을 다스리신다. 어느때에 어떤 선한 일이 일어나든, 그것을 행하도록 마음을 감동시키시며 마음속에 생각을 넣어주시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바른 판단을 하도록 이해를 넣어주시며 자신이 기뻐하시는 뜻을 보여주신다.

2. 예레미야의 예언과의 관계(1)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그들이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셨을뿐만 아니라 그 시기까지도 정해주셨다. 고레스가 행한 일은 오래전에 행해진 '하나님의 종들의 말을 응하게 하는' 것이었다(사44:26). 예레미야는 살아있는 동안 멸시와 미움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오랜후 그를 영예롭게 하였다. 즉 강력한 군주가 그의 입을 통해 말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행하도록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3. 선포의 시기(1)

그때는 고레스가 그의 모국인 바사를 통치하기 시작한때의 원년이 아니라 그가 정복한 왕국인 바벨론을 통치한때의 원년이었다.

4. 그것의 공포(1)

그것은 입으로뿐 아니라 글로도 공포되었다. 이는 그것을 더욱 만족히 하기위해서였으며 또한 열왕기하 17:6절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앗수르와 메대 등 먼지방에 흩어져 살던 열지파 사람들에게도 전해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5. 이러한 자유를 선포한 목적(2-4)

(1) 고레스 왕이 선포한 조서의 서문이 그가 영향받은 동기와 이유를 보여준다(2절). 그의 마음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실뿐 아니라 다스리시는 주재이시며 '세상 만국'을 주장하시는 하늘의 하나님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알았다. 그는 3절에서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신이시라. 즉 그는 홀로계신 하나님이시며 모든것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려주신 은총에 감사해서 이일을 행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만국으로 내게 주셨고(2절). 그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느부삿네살에게 주어졌던 모든 것을 자기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니엘의 말을 빌리자면 느부갓네살의 통치는 '땅끝까지 미쳤다'고 한다(단 4:22; 5:19).

(2) 그는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 거기서 성전을 건축하도록 자유를 베풀어준다(3절).

(3) 그는 가난한 자들과 자신의 소유를 가지고 갈수 없는 자들의 부담을 지기위해 모금할 것에 대한 간단한 지시를 덧붙인다(4절). "남아있는 자들은 누구든지, 예루살렘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행하지 못하므로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도와주어야' 한다." 너희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3절). 고레스는 떠나는 자들에 대해 자신의 선한 바람을 보여줄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들이 그들에게 공급되도록 돌보았다.

 

Ⅱ.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옴 1:5-11

 

1. 고레스의 선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짐(5,6)

(1) 그가 유대인들로하여금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하자 많은 사람들이 잇달아 올라갔다(5절).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이러한 자유를 선포케하신 하나님께서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그 혜택을 누리도록 하셨던 것이다. 이는 '힘으로도 아니고 능으로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된' 것이었다(슥 4:6). 아마도 유대인들가운데 어떤이들에게는 바벨론에 머물고자하는 유혹이 강하게 일기도 했을 것이다. 여행길은 멀고 그들의 처자는 여행하기에 적합치않으며 그들의 고향은 그들에게 낯선 땅이고 그곳으로 가는 길 또한 전혀 모르는 길이기에 돌아가고자 하는 일에 있어 많이 그리고 심히 낙담이 되었을 것이다. 설령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하자. 그들은 거기서 무엇을 할것인가? 그곳은 온통 폐허가 되어있고 그들은 사방에 있는 적들에게 쉽게 먹이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로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그대로 머물고자 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처음엔 가고자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감동시키신 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은총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자유에 대한 강한 열망과 고국에 대한 애틋한 애정, 그리고 자신들의 종교의식을 자유롭게 공적으로 가지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득 넣어주셨다. 복음의 제의와 부르심은 마치 고레스의 선포와도 같다. 구원은 '포로된 자에게' 전파되는 것이다(눅 4:18). 죄의 불의한 지배아래 갇혀있는 자들과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받게될 자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롭게 되어질수 있다. 누구든지 회개와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놓아 주셨으며,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영화로운 자유함가운데로 나아가게 해주셨다. 따라서 이러한 그리스도의 은혜는 복음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하나님의 집인 세상에서의 교회, 사람들가운데 한나라를 세우도록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시며 이러한 그의 복되신 은총을 나타내 보이신다. 이러한 기쁜소리를 듣고서도 여전히 바벨론에 머물기를 택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사랑하는 자들로서 거룩한 삶을 위해 역경들을 이기려고 모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낙담되는 일들을 극복하고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신앙의 천국을 이루고자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와같이 비록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멸망한다할지라도 하늘의 가나안은 다시 채워질 것이다. 따라서 복음의 제의는 결코 무익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2) 고레스가 이웃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돕도록 명한대로 그들은 그렇게 했다(6절). 이웃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여행하는데 필요한 그릇과 물건들을 그들에게 공급했으며 또한 하나님의 전과 그들 자신들의 집을 건축하는데 필요한 것을 공급함으로 그들을 도왔다. 첫번째 성전인 성막이 애굽에서 얻은 물건을 가지고 이방인들에 의해 지어진 것처럼 두번째 성전 역시 갈대아인들의 헌물로 지어졌다. 이 모든 것은 때가되면 이방인들이 교회로 들어오리라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2. 고레스 자신이 이 선포를 지원함(7-11)

그는 하나님의 집에 대한 자신의 열심이 진실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놓아주었을뿐만 아니라 성전의 기명들을 돌려주었다(7,8절). 유다는 포로상태 가운데서도 왕손을 가지고 있었다. 스룹바벨과 동일한 인물일 것으로 생각되는 세스바살이 본문에서 '유다 목백'으로 불리고 있다. 갈대아인들은 그를 '세스바살'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고난중의 기쁨"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백성들 가운데서는 "바벨론의 나그네"라는 뜻을 지닌 '스룹바벨'로 불리었으며, 그 역시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비록 요세푸스가 말한대로 바벨론 왕의 시위대장으로 있었지만 예루살렘을 그의 고향으로 생각했다. 그는 유대인들의 일들을 돌보았다. 성전기명들이 계수되어 그에게 붙여졌으며(8절) 그는 안전하게 그 기명들을 예루살렘으로 운반하였다(11절).

 

# 핵심

 

1:1-11

바사 왕 고레스는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락하며 성전건축을 독려했다. 유대인들은 고레스의 귀환 명령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성전재건을 위한 열망을 갖게되었다.

 

# 묵상

 

고레스 왕 ( 1:1-4 )

고레스라는 이름은 ‘태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메대와 바사를 연합하여 통일 국가를 세운 바사의 초대 왕으로서, 점령국의 종교를 말살하지 아니하고 장려하는 정책을 취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유대인들을 본토로 귀환시켜 성전을 건축하도록 도와주었던 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 왕을 이용하여 당신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의 구원역사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전을 위한 예물 ( 1:4-11 )

고레스가 이스라엘인들을 귀환시키며 은금과 여러가지를 도운 것은, 과거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때 많은 재물을 받은 것(출12:35, 36)을 연상시킵니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이에 동참하여 많은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외의 다른 사람들은 바벨론에서 쌓은 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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