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앙인으로 세우는 공통분모 (공재영 목사님)
[누가복음 24장 30절~35절]
30절 -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절 -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절 -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절 -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절 -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절 -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성도의 삶을 사람들이 판단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성도,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사회적으로 기부하며 공헌하는 성도, 교회에서 많은 것으로 헌신하며 섬기는 성도로 보여질때 그사람이 진짜 성도답다 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인의 삶은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기에는 너무나 부담되는 삶의 모습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눅7:9)」고 하신 것입니다. 이 사람은 로마의 군대 백부장이라는 지휘관입니다. 예수님이 세워주신 백부장이 보여준 성도의 모습에서 세 가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은 부족한 죄인이라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자신을 받아 주신 큰 은혜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겸손을 보여준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실지라도 자신이 그대로 순종하겠다는 결심을 보여준 것입니다. 누구나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 앞에 기쁘게 세우는 신앙인의 모습을 예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으로 아름답게 세우는 공통분모 곧 일반적인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마17:20)입니다. 신앙인으로 세우는 공통분모는 어떤 모습입니까?
1.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만남을 이루는 것입니다(31).
사람의 모습 속에도 동물적 본능이 다스릴 때가 있습니다. 동물적 본능은 이성과 영혼이 없는 생명체의 수준이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선한 모습을 인간 속에 설정하여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과 만남을 가지며 사람과 좋은 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지혜입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고귀한 선물을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므로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는 곧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보존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본문에서 열어주시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같이 걸어가며 대화를 나누어도 제자들이 알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 예수님이 식사하시면서 떡을 떼어 주실 때에 제자들의 눈이 열리면서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이것이 예배의 자리에서 열리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같이 가는데도 제자들에게 다른 분으로 보였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받아먹는 예배의 자리에서 영적인 눈이 열려 예수님 곧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뤄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은 떡을 받아먹는 자리 곧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예배를 통해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두 제자가 동시에 예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성도의 예배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고백하는 축복된 만남의 자리입니다. 이 하나님과의 만남이 신앙인으로 세우는 공통분모이며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축복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이고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루는 것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신앙적인 표준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변화입니다.
2. 삶 속에서 함께 누리는 복을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32).
성도가 예수님과 영적인 만남을 가질 때에 열려지는 축복은 서로가 다른 사람인데 같은 사실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 두 제자가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받아먹었을 때에 동시에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일컬어 삶의 현장에서 함께 누리는 복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면서 능력이요 영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사도 바울이 증거하기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라(엡4:13)」고 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두 제자가 고백하고 있는 것은 같이 길을 걸어가면서도 예수님이신 것을 알지 못했는데 떡을 받아먹었을 때에 마음이 뜨거워졌던 것을 동일하게 두 제자가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진 것은 단순히 감정을 움직이는 자리가 아니고 마음을 흥분하도록 요동치게 한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자리에서 동일한 삶을 깨달으며 고백하는 것이기에 신앙인으로 세우는 공통분모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도와 함께 하시는 축복은 신비한 사건이지만 성도들의 삶 속에서는 함께 누리는 일반적인 신앙의 수준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만남은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내려주시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삶이 세상의 수준보다 높은 것은 세상에는 모든 것이 능력의 수준으로 세우지만 신앙의 삶은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은혜의 축복이고 능력과 상관없이 삶 속에서 공평하게 누리게 하며 그 축복을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성도로 세워지는 삶 속에는 차별없이 주시는 복을 고백하게 하는 복이 있기에 이것을 신앙인으로 세우는 공통분모라고 하는 것입니다.
3. 구주이신 예수님을 기쁘게 전하는 것입니다(34,35).
본문에서 두 제자가 예수님과 함께 가면서도 알아보지 못했는데 집에 들어가 예수님이 주신 떡을 받아 먹었을때 예수님을 보게 하신 것은 이것이 예수님의 모습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내신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죽게 하신 자리에서 부활하게 하신 것은 사람의 권세로 하나님의 실존을 매장시킬 수가 없으며 하나님의 세계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실체를 보여 주신 것이며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성도를 세워주실 수가 있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세계를 전하는 성도를 하나님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본문의 상황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 때문에 제자들이 무서워 방문을 닫고 방 안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자리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가 들어온 것이며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놀란 제자들에게 두 제자도 한 목소리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친히 떡을 떼어 주셨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서도 믿지 못한 제자 베드로를 예수님이 찾아주신 것이며,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에 낙심하며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달아나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이 친히 찾아주시며 만나주신 것입니다. 이 모습이 하나님이 성도를 세우는 중심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와 두 제자가 하나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만난 것을 기쁘게 전하는 증인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이 지구촌의 모든 성도를 신앙인으로 세우는 공통분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도 같은 수준으로 증인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수원중앙교회의 모든 성도들도 신앙인으로 세우는 공통분모인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기쁘게 전하는 증인으로 성도의 삶을 힘있게 세웠으면 참 좋겠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공동체가 복되고 건강하게 세워지는 지혜는 삶의 공통분모를 공유할 때입니다. 성도의 아름다움은 먼저 믿는 자가 신앙인으로 세우는 공통분모를 공유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세우는 공통분모는 가정과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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